1. 서론
서울시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를 표시하고 알리기 위해 1985년부터 ‘역사문화표석’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기념물을 세우고 있으며, 이렇게 설치된 300여 개의 표석은 ‘윤선도 집터’, ‘김상옥 의거 터’와 같은 제목 아래 그곳에 어떤 시설이나 사건이 있었는지 두세 문장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와 같은 상용 전자지도 서비스에서 모든 표석은 균일한 모양의 점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표석은 길가에 세워진 매우 작은 기념물이므로 지도에 점으로 표출하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여기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현재 서울시에서 표석좌표가 유적좌표의 역할까지 동시에 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5년 2월 현재 카카오맵에 ‘윤선도 집터’를 검색해 보면 점은 표석이 설치된 곳에 찍혀 있으나 유형은 ‘생가, 고택’으로 분류되어 있어 이곳이 표석을 가리키는지, 혹은 그 일대의 유적 영역을 가리키는지 모호하다(그림 1).1)
표석과 유적은 엄연히 다른 만큼 그들을 전자지도상에 표출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표석의 경우 현행 방식으로도 문제가 없으나 유적을 표출할 때는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이유는 어느 축척에서든 점으로 도식되는 작은 표석과 달리 유적은 차지하는 공간적 범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물, 궁, 고개, 촌락을 일괄 똑같이 생긴 점으로 수렴하는 현행 전자지도는 유적의 규모나 경계도 전혀 알 수 없고 그 대표지점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도 알 수 없어 매우 부적절하다. 이때 쓸 만한 기준으로는 정문, 핵심 시설, 고도가 가장 높은 지점, 혹은 다각형의 수학적 중심(centroid)이 있으나 현행 전자지도에서는 그중 무엇을 채택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나마 현존하는 유적이라면 생김새를 보고 대강이라도 유추할 수 있으나 물리적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멸실된 유적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사실 현재 표석좌표와 유적좌표가 구분 없이 섞여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서울 표석이 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2)
유적을 전자지도에 표출할 때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위치비정의 난이도에 있다. 유적 중에는 옛날의 위치가 오늘날의 어디에 해당하는지 고증하기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다시 말해 어떤 곳은 확실한 근거를 토대로 자신 있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나 다른 곳은 사료도 부족하고 해석의 여지도 다양하여 이곳이 그곳이라고 확언하기 어렵다. 그 결과 표석에 새겨진 문안(文案)을 보면 “화동 23번지”, “이곳 순화동 5번지”처럼 유적의 위치정보를 번지 단위까지 자신 있게 명시한 곳도 있는 반면 “이 근방”, “이 언저리”와 같이 애매하게 표현한 사례도 있다. 이토록 위치비정의 정밀도가 다양한 유적이 현재 전자지도상에는 모두 균일한 모양의 점으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모든 위치비정 결과가 똑같이 완벽하므로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다는 식의 오만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명확한 근거를 갖추어 정밀도가 높은 위치는 그 근거를 공개하여 연구의 성과를 홍보할 필요가 있고, 반면에 위치를 비정할 근거가 모자라 개선이 필요한 곳 역시 부족한 대로 추론 근거를 공개함으로써 솔직하게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토대로 서울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용역을 통해 전자지도에 등록된 표석과 유적이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위치정보를 현행화하고자 했다. 2024년 10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진행된 이 3개월간의 연구는 2025년 7월 31일 기준으로 서울시 내 347개의 표석 전체, 그리고 그들 각각에 대응하는 347개 유적을 대상으로 했다. 본고는 그 연구 결과 중 유적을 위치 정밀도별로 구분해서 보여주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선행연구와 방법론
역사적 유적의 위치를 GIS에서 구현하기 위해 본고는 서울시와 역대 외부 연구팀들이 표석을 설치하기 위해 수집하고 축적해 온 자료를 입수했으며, 추가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적원도와 각종 지형도 및 시가도를 QGIS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지오레퍼런싱(georeferencing)했다. 특히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으로 생산된 지적원도와 토지조사부는 역사학자와 지리학자들이 근대화 및 지형 변화 이전 20세기 초의 옛길, 수로, 토지, 시설 등을 복원할 때 필수적으로 참조해 온 사료다(여창환, 2015; 이순우, 2015; 조정규, 2019). 본 연구에서 두 측량자료는 오늘날의 서울시 전역을 포괄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적 측량 자료로서 멸실된 유적의 위치를 찾고 정밀도를 판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지적원도는 현재 서울특별시의 영역에 해당하는, 1910년대 당시의 행정구역명으로 경성부, 고양군 일부(독도면, 숭인면, 신도면, 연희면, 용강면, 은평면, 한지면), 광주군 일부(구천면, 언주면, 중대면), 김포군 일부(양동면, 양서면), 그리고 시흥군 일부(동면, 북면)를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에서 입수하였다. 지형도의 경우 1:10,000 축척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에서, 그리고 서울의 고지도와 시가도는 「都城大地圖」(18세기 추정), 「最新京城全圖」(1907), 「地番區劃入大京城精圖」(1936)를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입수하였다.
유적을 GIS상에서 복원하기 위해서는 지형도나 시가도, 지적도를 컴퓨터로 불러들여 지오레퍼런싱하고 그 위에 도식된 유적을 디지타이징(digitizing)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여러 논문이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를 측정하는 수학적 방법을 개발해 왔다. 그중에서도 Goodchild and Hunter(1997)는 ‘Digital Chart of the World’라는 전자지도상의 해안선을 사례로 삼아 ‘선’으로 디지타이징된 데이터의 위치 정확도(positional accuracy)를 검증했다. 또한 Tucci and Giordano(2011)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대상으로 1884년도와 2005년도 지도에 ‘면’으로 그려진 건물 배치를 GIS상에서 대조함으로써, 역사지도를 통해 도시 구조의 변화를 탐지하는 전통적인 방법론에 뜻하지 않은 오류가 개입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즉 지도 자체의 표현 오류, 혹은 레퍼런싱의 오류 등으로 인해 실제 지표상에서는 건물 배치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변한 것처럼 오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의 두 선행연구가 디지타이징의 정확도(accuracy), 즉 진실이나 정답에 부합하는 정도를 다루었다면 본고에서 구분하고자 하는 정밀도(precision)는 디지타이징을 하기 전에 행하는 사료조사와 위치비정에 연구자가 스스로 얼마나 확신을 가지는지를 뜻한다. 위에서 언급한 표석의 실제 문안 중 “이 근방”, “이 언저리”에서 알 수 있듯이 유적 중에서는 사료가 부족한 나머지 테두리조차 정밀하게 도식할 수 없는 곳이 상당히 많고, 이는 정확도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에 대해 Fisher(1999)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모호한(vague) 공간 데이터를 퍼지 집합(Fuzzy set)으로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불 집합(Boolean set)은 정수(定數) 0 혹은 1이라는 두 가지 값만 취급했으나 퍼지 집합 이론에서는 0과 1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실수(實數)를 포용함으로써 0과 1 사이, 회색지대에 해당하는 공간 데이터를 단계별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0.25와 0.5는 둘 다 정수가 아니므로 불 집합으로는 다루지 못하나 퍼지 집합에서는 0.5가 0.25보다는 1에 가깝다는 식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Fisher, 1999, 197). 같은 맥락에서 “화동 23번지”는 “이 근방”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정밀한 위치비정이라 판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서울을 대상으로 유적의 위치 정밀도를 구분할 때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선행사례는 『서울지명사전』(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이다. 이 사전은 서울시 옛 지명들의 현 위치를 2009년 기준으로 비정했으나 수도 서울이 워낙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변화를 거듭하다 보니 출판 당시의 최신 정보도 금방 낡은 정보가 되어버린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주자동교(鑄字洞橋)라는 다리에 대해 『서울지명사전』은 “주자동 5번지 극동빌딩 동쪽 은막길과 충무로3가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위치를 비정했다. 사전이 편찬된 2009년까지만 해도 이 문장을 토대로 주자동교의 위치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으나 2025년 현재 극동빌딩과 은막길, 충무로3가길은 모두 변경되어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옛 지명이 되었다.3) 이러한 사유 때문에 서울역사편찬원은 이후 홈페이지에서 각 표제어를 전자지도상의 점으로 보여주되 위치비정의 결과를 ‘신뢰’, ‘보통’, ‘비신뢰’의 3단계로 구분했다. 참조할 지명이 특히 많이 달라진 주자동교는 여기서 ‘비신뢰’로 분류되었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는 서울시 종로의 보신각처럼 사료에 기록된 3・1 운동의 시위 장소를 1919년경의 1:50,000 지형도에서 비정하여 점으로 도식했고 그 결과를 웹사이트에서 공개하고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위치비정 결과를 확신할 수 있는 공간범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했다. 그중 신뢰도가 ‘높은’ 장소는 지형도에 표현된 기호의 중심이나 가옥 밀집지, 도로 밀집지에 점 좌표를 생성했으며 동리 단위까지 추적 가능한 ‘보통’도 마찬가지로 지형도의 취락중심점에 시위 장소를 비정했다. ‘낮음’은 장소를 특정할 만한 정보가 적으므로 부득이하게 행정구역의 수학적 중심에 좌표를 생성했다. 이처럼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는 불과 100년 전의 위치를 찾는 일조차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한계를 잘 보여주며, 동시에 1:50,000 지형도에서는 시가지가 다소 부정확하게 묘사되므로 서울시의 유적 위치를 비정할 때는 더욱 세밀한 축척의 지도를 참조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본고는 『서울지명사전』과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라는 두 선행사례를 참조하여 표 1과 같이 서울시 내 347개 유적을 점으로 표출할 때 정밀도를 판정할 기준을 3단계로 마련했다.
표 1.
위치 정밀도(점)의 판정 기준
앞의 두 사례는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와 마찬가지로 유적의 위치를 점으로만 보여주나 점과 면을 동시에 표출한 선행사례도 있다. 『서울지명사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강북편과 강남편으로 나누어 출간된 『文化遺蹟分布地圖』가 대표적이다(서울특별시・서울역사박물관 2006). 이 종이지도책은 축척 1:10,000 지형도 위에 각 유적의 위치를 점・면 중 하나로 나타냈으며 면 중에서도 외곽 경계가 불확실한 유적은 원을 그려 유적의 대략적인 규모와 범위를 표시했다(그림 2). 현재 국가유산청에서 제공 중인 ‘국가유산 보존관리지도’라는 웹사이트에서도 매장유산을 도식할 때 같은 방식을 적용했으나 여기서는 현행법상 제한 때문에 전자지도를 일정 단계 이상으로 확대해서 자세히 보려 하면 점과 면이 모두 사라진다.4) 따라서 본고는 국가유산 보존관리지도 대신 『文化遺蹟分布地圖』를 주로 참고하여 전자지도에서 면으로 표출할 유적의 정밀도를 두 단계로 나누었다. 즉 지적도나 주변 지형지물을 근거 삼아 외곽 경계를 확실하게 그릴 수 있는 유적은 ‘높음’, 범위가 확실하지 않아 원이나 타원으로 도식한 유적은 ‘낮음’으로 분류했다.
이와 같이 3단계의 점 정밀도와 2단계의 면 정밀도라는 기준 아래 본고는 347개의 유적을 GIS의 셰이프파일(.shp)로 작성했다. 각 유적의 이름은 연구팀에서 임의로 짓지 않고, 서울 표석과 일대일로 연동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현행 표석의 제목을 그대로 따와서 ‘윤선도 집터’, ‘김상옥 의거 터’ 등으로 명명했다. 또한 유적을 일괄 점으로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서론의 문제의식에 따라 각 유적의 대표지점과 영역을 모두 복원했고, 결과적으로 총 347개의 점(GIS의 포인트 피처)과 347개의 면(폴리곤 피처)을 생성했다. 유적별로 점과 면 중 하나만을 택한 『文化遺蹟分布地圖』와 달리 본고에서 두 가지 도형을 동시에 만드는 이유는 전자지도의 이용자가 필요에 따라 두 상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적 간 거리를 분석하거나 열 지도(heat map)를 그리고 싶을 때는 점으로, 지적도상의 면적을 다른 유적들과 비교하거나 원 부지(敷地)를 현재 경관과 중첩해서 볼 때는 면으로 표출하면 된다(김유진・강동석, 2022; 박수진 등, 2025; 여창환, 2015). 그러나 본고는 위치 정밀도의 구분과 그 시연만을 목표로 하므로 거리나 면적에 대한 계량 분석은 별도의 논문에서 다루기로 한다.
3. 연구결과
1) 개관
유적을 전자지도상에 점 혹은 면으로 표출했을 때 어느 한 쪽의 정밀도가 높다고 해서 다른 쪽도 자동으로 높다는 보장은 없다. 가령 347개 유적 중 어떤 곳에서는 좌표는 그런대로 믿을 만한데 그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고, 반대로 다른 유적은 최대 어느 범위 안에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나 대표지점을 어디로 정해야 할지 애매할 수 있다. 표 2는 그 경우의 수에 따른 6개 유형을 보여준다. 그중 좌표와 범위 모두 정밀도가 ‘높은’ 유적이 262개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양쪽 모두 정밀도가 ‘낮은’ 유적은 단 9개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오랫동안 수도이자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왔으므로 본고가 위치비정의 근거로 삼을 만한 사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남아 있었고, 따라서 멸실된 유적이라도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점과 면 양쪽으로 추적할 수 있다.
표 2.
점・면 정밀도의 조합
| 면 정밀도 ‘높음’ | 면 정밀도 ‘낮음’ | 점 정밀도 계 | |
| 점 정밀도 ‘높음’ | 262개 (76%) | 21개 (6%) | 283개 (82%) |
| 점 정밀도 ‘보통’ | 22개 (6%) | 16개 (5%) | 38개 (11%) |
| 점 정밀도 ‘낮음’ | 17개 (5%) | 9개 (3%) | 26개 (7%) |
| 면 정밀도 계 | 301개 (87%) | 46개 (13%) | 347개 (100%) |
표석이 궁에서부터 우물까지 다양한 범위를 해설하는 만큼 유적의 면적 역시 다양하게 나타났다. 면 정밀도가 ‘높은’ 301개 유적은 평균적으로 8,074㎡의 면적을 갖고 있었고, 그 최소치는 도심 속 작은 물줄기를 건너는 다리였던 21㎡의 응란교 터, 최대치는 조선시대 훈련원 터로 비정된 115,525㎡에 달했다. 한편 면 정밀도가 ‘낮은’ 46개 유적 중 가장 면적이 좁은 곳은 727㎡의 송학선 의사 의거 터, 가장 넓은 곳은 216,772㎡의 승문원 터, 평균치는 15,541㎡로 나타났다. 이렇게 면 정밀도가 ‘낮은’ 유적은 지적도상의 필지의 경계를 따라 그린 ‘높은’ 유적과 구별하기 위해 타원을 그려 대략적인 범위와 주된 방향만 표시했다. 일부 유적의 명확한 범위를 알아내기 어려웠다는 한계를 부각하기 위해 본고는 이어지는 그림에서 타원을 실선 대신 점선으로 도식한다.
2) 점 정밀도 ‘높음’
세분화된 위치 정밀도는 본고가 주장하는 전자지도상 유적 표출 방안의 핵심이며 그 판정 과정과 기준은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여기서부터는 본고의 방법론을 적용한 실제 사례를 표 2에 구분된 유형별로 하나씩, 총 6개를 열거하기로 한다. 먼저 한 유적의 점 정밀도가 ‘높음’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장악원(掌樂院) 터와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처럼 사료의 양이 풍부하거나 그들이 서술하는 위치정보가 상세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경성부의 역사와 현황을 망라한 『京城府史』는 조선시대의 관청이었던 장악원의 위치를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자리”로 비정했고, 1936년에 인쇄된 「地番區劃入大京城精圖」를 보면 東拓支店이 황금정2정목 195번지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마지막으로 지오레퍼런싱한 지적원도상에서 195번지의 외곽선을 따라 그리면 장악원의 유적 영역이 완성되며 GIS는 그 영역의 중심점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좌표를 생성해 준다.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는 점 정밀도가 높은 반면 면 정밀도는 낮으므로 장악원 터와는 반대로 중심점부터 먼저 도식한 다음 그 주변에 타원을 둘렀다(그림 3). 『東亞日報』는 1927년 1월 13일자 호외에서 나석주 의사가 (장악원 터이기도 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인근에서 총격전을 벌인 끝에 자결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번호순으로 상세히 도식했다.5) 오늘날 표석은 그중 나석주 의사가 순국한 곳, 즉 195번지의 북쪽 맞은편에 대해 해설하고 있으나 실제 표석은 195번지의 서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나석주 의사의 동상 바로 앞에 표석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국 지점은 표석의 설치 지점과 무관하게 새로 찾아야 하는데, 신문 약도로 미루어보아 북쪽 문의 맞은편이라는 매우 좁은 영역에 한정되므로 점 정밀도는 ‘높음’으로 판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범위는 지적도 필지를 통해 확실하게 추적할 수 없으므로 본고는 면 정밀도 ‘낮음’을 의미하는 작은 점선 타원을 그렸다.
3) 점 정밀도 ‘보통’
본고에서 점 정밀도 ‘보통’은 유적의 위치를 비정할 때 정확한 번지까지는 찾을 수 없더라도 주변에 참조할 만한 지형지물이 있음을 뜻한다(그림 4). 먼저 조선시대 왕실 재정을 관리하던 내수사(內需司)는 18세기 「都城大地圖」에 도식되어 있다. 서울시가 표석을 세워 해설하는 유적 중에는 내수사와 같은 조선시대 관청이 상당히 많은데, 본고는 이들의 위치를 비정할 때 지적원도에 도식된 국유지나 대규모 필지부터 가장 먼저 탐색했다. 내수사 건물 자체는 사라졌어도 내수동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수창동(需昌洞)에서 개명된 이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데, 지적원도상 수창동에 관청이 있었을 법한 대형 국유지는 없었다. 그러나 154번지를 중심으로 단일 건물에서 분할된 듯한 소형 필지들이 시각적으로 두드러졌기에 본고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내수사 터로 비정했다. 결국 그 일대의 수많은 필지들 중에서 정확히 그곳이 내수사였는지는 불분명하므로 점 정밀도는 3단계 중 ‘보통’에 머물렀다. 그러나 유적 영역의 테두리를 그릴 때만큼은 지적원도 필지라는 최소한의 근거를 갖추었으므로 면 정밀도를 2단계 중 ‘높음’으로 설정했다.
내수사 바로 남쪽에 이웃한 야주개라는 고개는 「都城大地圖」에 한자식 지명인 夜晝峴과 夜晝峴契로 기재되어 있다. 18세기 「都城大地圖」와 1910년대 지적원도를 맞대어 비교해 보면 200여 년의 시간차와 제도(製圖) 기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도식된 도로망과 수계망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따라서 번지 단위까지 세밀하게 추적할 수는 없더라도 ‘보통’ 단계의 점 정밀도를 부여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단, 내수사와 달리 야주개는 자연지명의 특성상 칼로 그은 듯 명확한 경계를 짓는 방안은 부적절하므로 면 정밀도를 ‘낮음’으로 판정하고 타원을 그렸다. 같은 상황에서 『文化遺蹟分布地圖』이 채택한 원은 사방 동일한 반경의 범위만을 나타낼 수 있는 반면 타원은 중심축과 방향, 각도까지 함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길을 따라 형성된 고개를 도식하는 데 더욱 적합하고 전자지도 이용자의 지리 인식에도 부합한다.
4) 점 정밀도 ‘낮음’
점 정밀도 중 가장 위치비정이 어려운 곳은 ‘낮음’으로 판정되었다. 서울시와 역대 외부 연구팀들이 축적해 온 자료를 훑어보아도 이들만큼은 방(坊)・동(洞)・계(契)까지 추적하는 것이 한계였으며,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유적도 『世宗實錄』 중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 탄생하였으니(生於漢陽俊秀坊潛邸)”라는 구절 외에는 글로 서술된 위치정보가 전무하다. 그나마 「都城大地圖」에 도식된 수계망을 보면 준수방이 도성 북쪽으로부터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두 물줄기에 둘러싸여 있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오늘날의 종로구 통인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 영역은 지금 도랑이 복개되어 도로로 바뀌었으나 지적원도 시점에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어 유적의 면 정밀도를 어느 정도 보장한다. 이렇게 주변 지형지물을 참조하는 방식은 앞서 보았던 야주개와 같으나 준수방의 경우는 그렇게 복원한 영역이 동 하나에 맞먹을 정도로 넓었으므로 점 정밀도를 ‘보통’ 대신 ‘낮음’으로 판정했다.
마지막으로 승문원 터는 점과 면 정밀도가 동시에 낮은 9개 유적 중 하나로, 타원으로 도식한 면적이 전체 347개 유적 중 가장 넓었기 때문에 특별히 대표 사례로 선정했다. 표석에 새겨진 문안에 따르면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이 관청은 처음 양덕방(陽德坊)에 있었고 1443년(세종 25)부터 여러 궁으로 옮겨다니다 1787년(정조 11) 다시 양덕방으로 이전한 끝에 1895년(고종 32) 을미개혁으로 폐지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글로 확인할 수 있는 양덕방의 위치정보는 사실상 이것이 전부다.
글 대신 그림을 참조하려 해도 수백 년 동안 궁궐 내부에 있었기 때문인지 본고는 승문원을 도식한 고지도를 전혀 찾을 수 없었고, 따라서 양덕방의 위치를 대신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양덕방 역시 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新增東國輿地勝覽』 제2권 「경도 하(京都下)」편에 참고할 만한 대목이 있었다. “북부 양덕방에 있어서 민간이 거주하는 곳에 섞여 있으므로”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으로, 본고는 그 대목에 의거하여 일제강점기 1:10,000 지형도상에서 건물이 밀집한 도로(오늘날의 계동길)의 중앙에 ‘승문원 터’의 대표 지점을 설정했다. 이어서 1907년의 「最新京城全圖」에 陽德坊 지명이 도식된 곳, 즉 오늘날의 종로구 계동길을 중심으로 영역을 복원했다. 그림 5에서 한 관아의 유적 영역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타원은 사료가 부족할 때 위치비정이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그리고 정밀도가 낮은 유적을 높은 유적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모양의 점으로 표현하는 현행 방안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4. 결론
본고는 전자지도에서 유적을 동일한 모양의 점으로만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서울시 내 347개 표석에 대응하는 같은 수의 유적을 GIS 셰이프파일로 복원한 뒤 점과 면, 두 종류의 위치 정밀도를 부여했다. 지면의 한계상 347건의 위치비정에 대해 모두 묘사할 수 없었기에 본고는 점 정밀도별로 2건씩 총 6건의 대표사례를 선정함으로써 각 정밀도를 판정하기까지의 여건과 판단 과정을 설명했다. 이것은 본고의 핵심 아이디어인 위치 정밀도를 실제 적용 사례와 함께 구체적으로 해설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제반 여건을 무시하고 모든 유적들을 일괄 똑같은 형태로 표출하는 현행 방안을 비판하면서 그 개선을 돕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는 정밀도가 파일 내부에서만 구분되어 있을 뿐, 본 연구팀에서 만들어 서울시에 제출한 셰이프파일을 GIS 환경에 아무 설정 없이 불러들이면 347개의 모든 유적이 같은 모양의 기본값으로 표출된다. 결국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본고의 생산물은 선행사례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따라서 본고가 유적의 위치 정밀도를 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데 의의를 둔다 하더라도 그렇게 구분한 정밀도를 전자지도 이용자에게 최종적으로 보여줄 방안에 대해서는 서울시의 실무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본고가 제시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전자지도상에서 유적의 점이나 면을 선택했을 때 작은 팝업(pop-up) 창을 띄워 두 정밀도를 명시하는 것으로, 이른바 인터랙티브 맵(interactive map)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다. 용어는 거창하지만 사실 이것은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에서 한 장소의 여러 가지 정보를 보여줄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많은 이용자들에게 이미 친숙하다. 그 여러 정보에 위치 정밀도를 한두 줄 정도로만 추가한다면 큰 부담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며, 여기에는 정밀도의 판정 기준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사기업에서 이 방안을 받아들이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정부가 운영하는 전자지도에서 유적의 정밀도를 구분하여 표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행사례로서 언급한 국가유산 보존관리지도가 대표적이며, 현재 서울시의 표석 자료를 제공하는 공식 플랫폼인 ‘스마트 서울맵’도 좋은 후보다.
실무 단계에서의 적용 이전에 본고에서 위치 정밀도를 구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의의는 디지타이징의 이전 단계인 위치비정에서 연구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을 명시하는 데 있다. 어떤 유적은 다른 유적보다 비정이 어렵고 그 테두리조차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전통적인 GIS로 구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온라인 서울지명사전과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라는 선행사례를 따라 정밀도를 구분한 뒤 셰이프파일의 속성정보로 포함시켰고, 이렇게 생산한 연구성과를 전자지도상에 표출할 때 심볼로지(symbology) 설정으로 외형에 구분을 주거나 팝업 창으로 속성정보를 표시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했다. 본고에서 면 정밀도가 높고 낮은 곳을 실선과 점선으로 구분한 것이 심볼로지의 한 사례에 해당한다.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국가유산 보존관리지도 등 전자지도상에 유적을 표출하는 현행 사례는 이미 수많은 속성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나 위치 정밀도까지 속성정보에 포함한 사례는 본고가 참고한 온라인 서울지명사전과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 등 극히 드문 실정이다. 더불어, 일부 유적의 정밀도가 낮았다는 사실과 그 사유, 위치비정의 과정을 명시하는 작업은 연구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솔직하게 밝히고 후속연구에서 보완을 요청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본고의 연구결과 중 6개 사례의 판단 과정과 근거를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한 것도 같은 목적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본고는 현재 서울시의 연구용역 결과물로 귀속되어 있는 데이터와 위치비정 근거가 언젠가 공개되어 일반 사용자들도 자유롭게 열람하고 내려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미처 찾아보지 못한 사료도 많았고 단기간의 위치비정으로 인해 오류도 많을 수 있다. 특히 양덕방에 임시로 비정한 승문원 터와 같이 그 원위치를 검증할 때 여러 가지로 이견이 많은 유적에 제기될 민원의 홍수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다. 그러나 앞으로 다른 이용자들의 도움으로 오류를 개선하고 이견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공유는 필수적이다. 당장 본고 역시 서울시와 다른 연구팀에서 10년 넘게 축적한 자료가 없었다면 3개월이라는 지극히 짧은 연구기간 동안 347개 유적의 원위치를 비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데이터의 공개와 공유는 차후 본고와 비슷한 과업을 수행할 연구자들이 똑같은 수고를 불필요하게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