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이론적 배경
1) 국내 접경지역 선행연구에서의 시사점
2) 안보-경제 연계를 통한 접경지역 이해
3. 접경지역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
4. 접경지역에 대한 안보-경제 연계적 이해
1)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의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안보-경제 연계
2)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의 해체 과정에서 드러난 안보-경제 연계
5. 결론
1. 서론
지난 2021년 4월, 군 관련 소식들을 전하는 SNS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군 부실급식 관련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출타 장병 격리 과정에서 격리된 장병에게 부실한 구성의 급식이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미온적인 대처로 인해 부실급식 논란은 세간의 화두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군 급식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군 급식 개선 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개선 대책은 한국 접경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기존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이하 군납 체계)’는 한국전쟁 이후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관습이 공식적인 법제화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지역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식재료를 해당 지역에서 재배, 가공하여 납품하는 일련의 공급체계를 의미한다. 다양한 안보적 규제로 인해 농업을 제외한 산업의 발전이 어려웠던 접경지역에서 고정적인 수익 활동이 가능한 군납 체계는 매우 중요한 경제적 수단으로 여겨져왔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지역 경제에 깊게 착근되어 왔다. 군납 체계가 가진 계약재배, 계획생산이라는 특징은 군납에 참여하는 지역민들에게 생산과 판매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하여 그들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반복적인 일상적 수행은 군납 체계가 접경지역을 구성하는 요인 중 하나로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상술한 군 급식 개선 종합대책의 수립 이후의 급격한 제도적 변화는 군납 체계를 바탕으로 한 접경지역의 경제적 연계가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여러 차례의 시위 등 군납 체계 개선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본 논문은 군납 체계에 관련된 다양한 갈등을 비롯한 접경지역 내 정책적 갈등의 기저에 접경지역에 대한 추상적 인식이 존재함에 주목한다. 접경지역에 대한 추상적 인식은 주로 안보적 가치를 기반으로 접경지역의 맥락을 상상하도록 유도해왔다. 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사화로 대표되는 과거 접경지역 정치전략(김도민, 2019)에 의해 이미지화되어,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이루는 한국의 접경지역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안보적 가치에 의해 통제되어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지역(박배균・백일순, 2019)이라는 형태로 구성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인식에 의해 접경지역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나 학술적 연구 과정에서 지역에 관한 기능적 연구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정해용, 2019). 그 과정에서 주목되는 정책적 행위자는 주로 국가 또는 특정한 거버넌스를 사례로 논의되는데, 이는 접경지역 내부에서 다양한 관계를 구성하는 행위자들의 다양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계점은 결과적으로 접경지역을 안보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특정한 내부적 동질성을 지닌 공간 단위로 인식하게 하였고, 이는 곧 접경지역에 대한 외부적 접근이 지역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실제와의 괴리를 갖도록 하는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기존 국내 접경지역 선행연구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사점과 한계를 밝히는 한편, 안보-경제 연계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접경지역 사례연구를 통해 접경지역이 구성되는 구체적 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문서 분석, 서면 및 심층 인터뷰, 그리고 현장답사를 진행하였다. 본 논문에서의 문서 분석은 군납 체계와 관련된 행위자들이 생산한 공식 문서를 비롯하여 사례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던 SNS 게시글과 언론보도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군납 체계의 구성과 해체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였다. 인터뷰는 최초 답사 이후 총 15회 진행되었으며, 인터뷰 참가자의 선정은 문서 분석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정보들과 관련되어 있는 접경지역 내부 행위자들로 선정하였다. 군납이 이루어지는 행정구역 지자체 실무자와 해당 지자체 지역구 선출 의원, 군납 농・축협 관계자 및 실제 군납 농업 종사자, 그리고 군납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군 간부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군납 체계의 존폐를 놓고 상이한 행위자 집단에서 어떠한 이해관계와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확인하였다. 군 급식 개선대책을 주도하고 있는 급식 관련 사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하였으나,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공청회 등에서 공식적으로 발간된 문서자료를 통해 참고할 수 있었다. 현장답사 역시 연구 사례인 군납 체계를 직접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강원도 접경지역 내 행정구역인 춘천시, 화천군, 철원군을 비롯하여 다양한 갈등 및 접경지역민들의 일상적 수행이 직접 이루어진 곳에서 진행되었다.
2. 이론적 배경
1) 국내 접경지역 선행연구에서의 시사점
서구에서 접경지역연구는 정치지리학의 고전적 연구주제 중 하나로 여겨져 왔으며, 국제적 지정학의 흐름에 따라 국경의 구성과 그 형태, 기능과 관련한 논의들을 순차적으로 발전시켜왔다(지상현 등, 2019). 1980년대 시작된 포스트모던 관점을 견지한 접경지역연구들은 전통적 관점과는 다른 초국경적 행위를 바탕으로 한 국경 관리를 연구하는 제도적 형태의 연구로 발전하였으며(Kolossov, 2005), 이 과정에서 경계란 통과될 수 없는 ‘닫힌’ 것이라는 기존의 사고와는 달리 지역 또는 국가 간의 연결을 수행하는 외부적 기능에 주목하는 ‘열린’ 경계에 대한 논의가 등장(Passi and Newman, 2003; Johnson et al., 2011)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구와는 달리 다수의 국내 접경지역연구들은 한국의 접경지역을 여전히 안보적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접경지역이 국가의 안보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으로 상상・인식되어 오는 과정에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한 접경지역의 군사화 및 안보화 정책이 큰 영향을 주었다(김도민, 2019). 이는 접경지역에 반공, 안보라는 가치를 투영하여 국가 정치 엘리트들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전략이 활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의 접경지역에는 ‘군사시설 및 군사기지 보호법’과 같은 다양한 법령과 이에 따른 제약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접경지역은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소외지역으로 전락하였다(이원호・박삼옥, 2004).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와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과거 한국 접경지역에 대한 상상과 재현은 국가적 스케일에서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제안된 안보와 통제의 논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지상현 등, 2019). 즉, 접경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안보나 통제에 대한 보도, 접경지역의 소외성과 낙후에 관한 연구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접경지역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가 일반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내 접경지역 선행연구들은 북한과의 교류나 협력이 제한되는 상황에서의 지역개발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인 차원의 연구 위주로 수행되어 온 것으로 지적된 바 있으며(백일순, 2009),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도발과 ‘반공’이라는 시대적 이데올로기와 지역 접근성의 한계와 같은 요인들에 의해 접경지역에 관한 기초적 연구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정해용, 2019).
한국의 접경지역연구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경향성은 군부대를 중심으로 한 군사시설에 대한 활용, 입지 논의와 군・민 거버넌스의 개발을 바탕으로 한 접경지역 활성화 전략 논의이다(이석호・김용훈, 2006; 허훈, 2008; 김명환, 2010). 이들은 주로 군부대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군 역시 사회체계를 구성하는 구성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내 접경지역에서 군부대의 영향력을 논의하는 이러한 연구들 역시 결과적으로 특정한 정책적 접경지역 활성화 전략을 제안하는 데 그치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접경지역의 행위자를 몇 집단으로 단순화하며, 제도나 규제와 같은 국가적 요인에 의해서 접경지역이 낙후되었음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상술한 내용과 같이 국내 접경지역연구에서 나타나는 접경지역 관련 기능적 연구나 군대의 주둔과 역할에 대한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의 특징에는 각자의 한계점이 존재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접경지역의 저개발과 소외성에 대한 문제는 접경지역 외부에서의 정책적 접근이나 이상적 논리만으로는 접근・해결되지 않을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경지역을 비롯한 소외지역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단순한 개발정책의 제언이 아닌 주민들의 일상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삶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백재환・김성민, 2018). 지리학계에서는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여 접경지역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나 지역적 맥락에 대한 강조의 필요성을 논하는 연구들이 수행되어 오기도 했다(김상빈 등, 2003; 이원호・박삼옥, 2004; 백일순, 2009; 이승욱, 2019). 이들은 국가적 스케일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틀을 통해 균질한 공간으로 상상되는 접경지역 이해에서 탈피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접경지역의 혼종성(Hybridity)을 이해해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한 접경지역연구의 이론적 틀에 대한 개발이 필요함을 함께 제안하고 있다.
2) 안보-경제 연계를 통한 접경지역 이해
Coleman(2005)이 자신의 연구를 통해 주장한 ‘안보-경제 연계(Security-Economy Nexus)’는 접경지역의 맥락과 지역 내・외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접경지역만의 지정학적・지경학적 담론이 구성되고 활용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기존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 대한 미국 내 연구들은 접경지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행위와 사건들에 대한 이해는 미국 정부의 고도화된 정치술이나 정부의 정책을 바탕으로 한 지정학적 논리와 지경학적 논리가 경합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Andreas, 2000).
그러나 Coleman은 접경지역 내부에서 외부의 다양한 담론들을 지역적 맥락을 기반으로 받아들인 결과를 바탕으로 접경지역을 이해해야 함을 주장한다. 즉, 접경지역 외부에서 구성된 담론이나 사회적 가치를 접경지역 내부의 지역적 맥락을 바탕으로 재해석 또는 새롭게 구성하여 접경지역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기존의 연구들이 가진 관점은 접경지역 외부에서 접경지역에 대한 정책적 입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간과한 것으로 지적한다(Coleman, 2005). 이는 접경지역의 지역적 맥락과 관습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더불어, 중앙정부 즉 국가 스케일에 포함되는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접경지역 이해는 지역의 복잡한 사회적 구성을 추상화(Ó Tuathail and Agnew, 1992; Dalby, 1998)하는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접경지역에서의 일상은 타 지역과는 다른 형태로 구성(Newman and Paasi, 1998)되기 때문에 접경지역만의 독특한 맥락을 이해해야만 지역의 사회적 구성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Coleman의 주장과 같이 접경지역 내부의 행위자들이 구성한 지역적 맥락을 바탕으로 접경지역의 일상성을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적 사례를 통해 접경지역의 안보-경제 연계를 논의한 선행연구 중 이승욱(2018)의 연구는 한국 접경지역의 맥락을 ‘도시지정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한반도의 지정학’이라 제안한 바 있다.1) 그는 한국전쟁 이후 지속되는 군사도발로 인해 구성된 남한의 안보 중심적 국가관과 냉전 시기 국제적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던 반공주의 모습이 한국 접경지역에서 국가 중심의 안보적 특징이라는 형태로 공간상에 표현된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지역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국 접경지역에서의 안보와 경제라는 상이한 가치와 담론이 경합하는 과정을 대북 전단이라는 사례를 통해 드러내는데, 이는 박배균・백일순(2019)이 그들의 논문에서 주장하였던 다중적・중첩적・혼종적인 한국 접경지역의 성격과 유사한 관점이라 볼 수 있다.
박배균과 백일순은 국가적 스케일에서의 안보, 경제의 논리와 로컬 스케일에서의 안보와 경제의 논리가 서로 다른 상황을 제시하며 이러한 스케일 간 불일치가 만들어내는 갈등적 상황 속에서 접경지역의 안보-경제 연계가 구성됨을 강조한다. 동시에 접경지역에서의 갈등적 상황은 잘 맞추어진 국가 행위의 결과가 아닌 접경지역과 연관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이한 이해관계의 경합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됨을 강조하기도 한다(박배균・백일순, 2019).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국가 대 지역이라는 스케일을 활용한 갈등 구조로 현실을 추상화할 수 있다는 한계점을 지닐 수 있다.
국가적 스케일에 기반한 논리의 적용 혹은 국가 대 지역이라는 갈등 구조에서 나타나는 추상화된 이론적 틀을 벗어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일상성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Coleman(2005)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가치와 담론의 전유 과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접경지역에서의 안보-경제의 논리가 국가 기반 지정학・지경학의 논리와 다를 수 있으며, 접경지역 내에서의 특정 행위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가적 가치들을 기존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유하여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이승욱(2018) 역시 Coleman의 주장을 활용하여 접경지역에서 지역민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가에서 강조하던 안보적 가치를 차용하여 재생산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따라서 접경지역 내・외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일상적 수행 과정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국가나 지역의 가치들이 고유의 스케일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각 행위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어질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 외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조망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경험하는 국가의 효과와 기능, 그리고 역할에 대한 체험과 재규정 과정 역시 주요한 논리적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Radcliffe, 2001; Painter, 2006; Jeffrey, 2013).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합의된 기능이나 국가에 의한 제도를 일상에서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국가의 역할을 경험한 행위자들이 그 역할이 효과적이며 동시에 필요한 것으로 느끼기에 국가라는 체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van Houtum, 2011). 이는 곧 국가에 의한 다양한 지역 정책과 규제는 그것을 지역에서 체험하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 수행을 통해 그 효과가 규정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일상을 통해 체험되고 규정되는 효과로서의 국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적되면서 지역에서 규정하는 특정한 국가의 역할이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접경지역의 안보-경제 연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맥락의 구성 과정에서 국가와 그 역할을 그들이 어떻게 체험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관점이 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한국의 접경지역을 안보-경제 연계의 논리로 바라보되, 한국 접경지역의 지역적 맥락으로 국가 중심 안보적 가치가 강조되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논리를 전개하고자 한다.2) 또한, 국가적 스케일에 기반한 담론이나 국가 대 지역과 같이 스케일 간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갈등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과 스케일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가치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국 접경지역의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한국의 접경지역에서 나타나는 군납 체계는 접경지역민들의 일상적 차원에 깊게 연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내・외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가 중첩적으로 얽혀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접경지역 외부의 논리를 지역 내부의 맥락과 일상을 바탕으로 재해석하여 지역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제안하는 안보-경제 연계 개념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사례가 되며 동시에 안보-경제 연계라는 이론적 기준을 통해 군납 체계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의 접경지역이 다원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과정을 거쳐 구성된 공간임을 확인할 기회로 볼 수 있다.
3. 접경지역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
군 급식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군의 병참 및 보급체계는 소외지역 및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공헌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기관 조달방식에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다루어지는 군납 체계 역시 국가 또는 지역의 합의에 의해 일종의 ‘소외지역’으로 구분된 접경지역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의 구성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관습화와 공식화 과정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군납 체계의 관습화 과정은 한국전쟁 시기 부족한 국군 조직 체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쟁 시기의 혼란과 부족했던 신생국가의 행정력은 군의 보급체계를 주둔지역 자체에 의존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따라서 국군의 야전 지휘관들은 쌀을 제외한 식재료를 주둔지역에서 직접 구매해야 했으며(Cwiertka, 2013), 이러한 형태의 식재료 납품체계는 접경지역에 있어 일종의 경제적 관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전쟁이 멈춘 이후 1960년대까지도 접경지역 군부대와 인접 지역농협 간의 개별적 군납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전국축협노조, 2005).3)
표 1.
군납 체계 관습화 및 공식화 시기 특징 요약
접경지역에 자리잡은 새로운 관습은 1970년대에 들어 지역의 자생과 발전을 강조하였던 정부의 시책과 맞물려 다양한 제도와 협정을 바탕으로 한 ‘공식화’ 과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안정적인 군 급식 식재료 납품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국방부와 개별 지역의 발전을 추구해온 중앙정부, 그리고 안보적 피해의 누적을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해온 지역주민들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1970년 1월 30일, ‘군 급식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이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협정은 지역민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군 급식용 식자재 원물을 접경지역 지역농협에서 수의계약으로 조달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접경지역 지역농협에서는 이에 따라 군납용 식재료의 품종과 수량을 사전 고지받아 생산하는 계획생산・계약재배 형태로 농업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이는 지역 농업 종사자들의 일상적 모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계획생산이란 군의 연간 급식계획에 따라 필요한 식자재 원물을 사전에 농협으로 하여금 부식물 생산약정을 체결하도록 지시하여 계약재배를 통해 그 수를 확보하는 생산방식이다. 이 과정을 위해 식자재의 연간 계약단가는 조달청과 농협중앙회의 검수를 거쳐 2년간 도매시장 평균가로 결정되며, 조달청 산하 가격협의기구를 통해 조율된다. 이러한 수의계약 군납 체계는 다양한 군 관련 기관 및 국가기관, 농협중앙회부터 지역농협, 지역농민들까지 다양한 단계에 걸쳐 수행된다.
협정이 체결된 1970년부터 지난 2021년까지 운영되어왔던 군납 체계4)는 접경지역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국방부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표 2와 같이 2021년 전체 군 급식 식재료 원물 납품에서 약 63.6%에 해당하는 식재료가 접경지역 수의계약의 형태로 조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표 3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규모는 약 8천억에 달하고 있다. 지자체 군납 실무자의 증언에 따르면 3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접경지역인 강원도 화천군에서의 군납 체계는 지역 농업 비중의 약 18~45%에 해당하는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5)
표 2.
2021년 군 급식 식재료 원물 납품 현황
| 구분 | 쌀 | 중앙조달 | 부대조달 | 현금배정 | 계 |
| 비율(%) | 8.1 | 24 | 63.6 | 4.3 | 100 |
| 조달원 | 농식품부 | 조달청 | 군지사 | 급식운영부대 | - |
| 비고 | 정부양곡 | 경쟁입찰 | 지역수의계약 | - | - |
(출처: 조병만, 2022)
표 3.
2021년 군 급식 식재료 조달 공급액
| 구분 | 쌀 | 농산물 | 축산물 | 수산물 | 기타 | 계 |
| 공급액(억) | 1,150 | 1,910 | 4,035 | 1,830 | 7,289 | 16,214 |
| 공급자 | 농식품부 | 지역농협 | 지역축협 | 수협 | 민간위탁 | - |
| 비고 | 정부양곡 | 수의계약 | 수의계약 | 수의계약 | 경쟁입찰 | - |
(출처: 농협중앙회 군급식지원국, 2022)
전술한 내용과 같이 관습화-공식화 과정을 거쳐 접경지역에 자리잡은 군납 체계는 지난 몇 년간의 체계 개편 시도에 직면해왔다. 가장 먼저 2004년, 이동성의 증가로 인한 거리 및 시간 제약의 감소를 이유로 지역 생산품 공급에 대한 당위성의 부족이 지적된 바 있으며(박세환, 2005), 2016년, 군 운영의 효율성 제고를 근거로 군납 체계의 해체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지난 2021년 4월 발생한 일명 ‘군 부실급식 사태’에 의해 현실적인 군납 체계의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군의 조치로 인해 휴가 등 출타자에 대한 격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격리자에게 제공되는 식사가 부실했다는 것이 SNS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국방부의 미진한 대처는 군 급식 실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야기하였고, 이는 군 급식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국방부는 ‘병영문화개선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급식 관련 안건을 상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군 급식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대책의 주요 골자는 장병을 중심으로 한 급식 개선을 시행하기 위해 기존 군납 체계가 가진 수의계약 시스템을 청산하겠다는 것이며, 국방부는 수의계약으로 인해 장병들의 급식 선호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문제점이 존재했기에 이를 개선하겠다고 주장하였다.
국방부의 대책은 22년 1월 즉시 시행되었으며, 따라서 한국전쟁 시기부터 지속되어 온 접경지역의 군납 체계는 해체 수순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동시에 접경지역은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수단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였다. 이로 인해 접경지역민 등 지역의 농・축산업 관련 이해관계자들은 시위나 공청회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국방부와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다양한 갈등이 지속적으로 파생되고 있다.
4. 접경지역에 대한 안보-경제 연계적 이해
1)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의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안보-경제 연계
2장에서 살펴보았던 이승욱(2018)의 주장처럼, 한국의 접경지역이 가진 지역적 맥락은 ‘한반도의 지정학’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승만 정부에서부터 이어져 온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조와 북한의 끊임없는 군사도발은 접경지역에서 안보적 가치가 특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활용한 안보경관들의 조성과 민간인통제선과 같은 새로운 경계 짓기 행위 및 경계들을 활용하여 수행한 검문과 통제의 일상화는 접경지역에서 안보라는 가치와 담론이 지역주민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부여하게 만들었다. 이에 지역주민들은 입을 모아 일상적으로 체험한 접경지역의 경관 속에 안보적 특징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북한(의 군사도발) 때문에 검문소 운영도 많이 해왔고 또 그런 것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검문소 뿐만 아니라 도로 주변에 보이는 초소라던지 차단벽 같은 것들도 지속적으로 군사작전이 이행되는 지역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고, 이 곳을 지나가는 길이 왕복 2차선인 이유도 검문이나 차단벽을 쉽게 무너뜨리려고 이렇게 된 것이고...(하략).” (인터뷰 참가자 N(강원도 화천군 지역주민 및 군 관련 산업 종사자), 2022.07.20.)
그러나,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주민의 일상에 침투한 접경지역의 안보적 특징 역시 국가적 스케일의 행위자의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만 구성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경관을 통해 국가의 역할인 안보를 체험한 내부 구성원들이 이러한 안보가 지역에 필요하다고 느끼기에 안보경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존중해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van Houtum, 2011). 따라서 한국전쟁 휴전 이후 지속적으로 반복된 북한의 군사도발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들은 안보를 위한 일상적 활동과 안보 경관 소비가 당연한 것이자 필요한 것이라 인식해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과거 국가 엘리트 행위자들의 이해관계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합의되는 과정을 통해 접경지역의 안보 경관들이 지속적으로 조성・유지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안보라는 가치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누적되는 지역민들의 피해 및 기회비용은 결과적으로 안보 가치의 지속적인 소비와 생산을 더는 묵인하지 않도록 하였고, 이에 대한 일종의 보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과의 이해관계 일치로 인해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가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지역주민들은 안보적 피해에 대한 보상적 차원에서 군납 체계가 구성되었다고 강하게 믿고 있으며, 군납 체계의 해체 과정에서 보상적 논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체계의 존속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는 포사격 훈련장이나 다른 훈련장이 많이 있습니다. 훈련이 있으면 지역 사람들은 (포격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서 고통받고, 훈련으로 인해 군 차량들이 도로에 나오면 극심한 교통정체를 겪게 됩니다. (지역주민들이 겪어온) 그런 불편함을 보상하겠다고 군납이 생긴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자 C(화천군 군납 비대위원), 2022.07.20.)
상술한 것과 같이, 군납 체계의 구성 과정에는 안정적인 식재료 납품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국방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구했던 중앙정부, 그리고 안보적 피해의 누적을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해온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의 일치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의 결합과 경합은 표 5와 같이 다양한 법령의 제정 목적과 조항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이는 접경지역 군납 체계를 구성・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군납 체계를 공식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군 급식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의 제1조인 목적은, 군 급식 운영에 필요한 식재료 조달사업을 통해 농・어업인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라 명시되어 있다. 협정이 구성되는 과정에 참여한 행위자인 지역 주민들에게는 안보적 피해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필요했으며, 국가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시급한 당면과제가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접경지역에 특정한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 다양한 법령이 제정되는 과정을 통해서도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와 추구하는 가치・목적에 따른 협력적 연계가 구성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6)
표 5.
접경지역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의 공식화 과정의 근거가 되는 법령과 협정
이처럼 접경지역민들이 부담해온 안보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 표현되는 군납 체계는 기존 국가와 지역에서 소비해오던 중심 가치가 그 스케일과 생산자에 국한되지 않고 필요에 의해 전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북한에 대한 견제라는 안보담론을 생산해온 것은 국가적 스케일 행위자였으며 이를 수용한 것이 지역 스케일에서의 행위로 볼 수 있다면, 접경지역에서의 안보적 피해가 누적되는 과정에서 지역 스케일 행위자들은 기존의 안보 가치를 바탕으로 한 담론을 자신들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재생산하여 사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역 스케일 행위자들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안보적 가치는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기능하여 안보와 경제라는 상이한 가치이자 담론이 서로 연계되는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성된 군납 체계는 지역에 중요한 경제적 수입원으로 기능해왔으며, 지역 경제에 착근하는 과정에서 지역 농민들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군납 체계가 가진 계획생산-계약재배라는 특징에 의해 목표 생산량과 특정 생산 품목을 정해놓고 농업에 임하기 때문에, 1년 단위 농업 계획을 군납 체계에 맞추어 수립하고 이에 맞춘 생활 방식을 구축하는 등 그림 2와 같이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영향도 크게 미쳐왔다. 또한 생산된 식재료를 군납 기준에 맞추기 위해 전처리를 수행하는 구조적 시스템을 농민들의 출자금을 통해 구축하는 등 군납 체계는 지역민들의 경제적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군납 체계는 안보적 목적인 군부대의 지역 주둔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조건임과 동시에 사전 계약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지역 경제와 일상에 뿌리내려왔다. 따라서 납품을 위한 일정과 수량, 품목, 이를 바탕으로 한 연 단위 농가 계획 수립 및 구조적 시설의 조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변화시켜왔다.
“군납 농가들은 계약 재배하면서 무나 배추같은 식재료의 단가를 1년 전에 미리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 계약한다고 하면 얼마 정도의 단가가 될 것이다를 농가는 미리 알 수 있는거죠. 그것을 가지고 농가는 작목별로 생육 기간을 판단해서 1년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그런...(하략).”(인터뷰 참가자 F(강원도청 군납 관련 실무자), 2022.07.21.)
“양파 같은 경우에는 하우스 같은 시설을 (구비) 해놓고 수확기 때 뽑아서 그 자리에서 말려야 합니다. 또 건조를 (하는 과정에서) 마르지 않은 걸 움직이게 되면 썩어서 (상품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하우스 시설 같은 거 그런 것들도 새로 설치했고, 거기에 대한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인터뷰 참가자 C(화천군 군납 비대위원), 2022.07.20.)
결과적으로 군납 체계의 도입을 통해 지역 농업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곧 군납 체계가 지역의 농사 일정, 금융, 설비의 구축과 같은 다양한 일상생활에 깊게 자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군납으로 인한 지역 일상의 변화는 그림 2와 같이 시설 투자, 농사 일정, 가공 형태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변화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시설 투자의 경우 상술한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군납에서 요구하는 식재료 품종의 생산을 위한 하우스 등의 시설 설치, 다양한 품종의 유통을 위한 보관 설비의 설치라는 변화라는 형태로 수행되었으며, 두 번째인 농사 일정의 경우 기존 농업 작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쌀과 같이 5월 파종-10월 수확이라는 전통적 농사 일정과는 달리 다품종 생산을 위한 품종별 생육 기간을 고려한 농사 일정의 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품종별 납품 일정이 정해져있기에 해당 일정을 고려한 작물 파종이 수행되는 등 기존의 농사 일정과는 다른 형태의 농업이 수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가공 형태 측면에서는, 군납 납품 기준에서 요구하는 형태로 (반)가공하여 납품하기 위해, 전처리 센터의 설립을 통해 기존 유통과정에 존재하지 않던 가공과정이 포함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접경지역의 농업 일상을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군납 체계는 안보와 경제라는 상이한 가치와 담론이 연계되어 구성된 공간상의 변화가 접경지역의 일상을 구성하고 변모시키는 기본적인 구조로 전환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접경지역에 주둔한 군부대의 유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보적 피해를 해당 부대의 운영에 필요한 식재료를 지역에서 구매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경제적 이윤으로 보상하는 것이 바로 군납 체계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군납 체계가 추동한 접경지역의 일상적 변화를 보았을 때, 안보와 경제의 연계가 경제적이고 물질적이며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기초라는 형태로 구체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곧 국가 스케일에 포함되는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안보와 경제라는 가치가 접경지역 내부 행위자들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라는 지역적 맥락을 통해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며, 나아가 상이한 가치들의 연계라는 형태로 공간상에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의 해체 과정에서 드러난 안보-경제 연계
부실급식으로부터 시작된 ‘군 급식 개선 종합대책’은 지금까지의 군납 체계를 해체하는 목적을 가지고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안보-경제 연계가 구성한 한국 접경지역에서의 ‘군납’이라는 하나의 일상적 수행은 중단되었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앞서 드러난 것과 같이 접경지역에서의 경제적 수익은 상당부분 군납 체계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기존 군납 체계가 해체되고 타 지역과 같은 형태의 일반적 농업 형태가 들어오게 된다면 기존 군납 체계가 가지고 있던 예측가능성이라는 특징이 사라지게 되고, 생산한 작물의 판로나 가격, 수익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과 같은 불확실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군납을 담당하는 실무자는 이러한 측면을 지적하며 군 급식 개선 종합대책이 추구하는 경쟁입찰체제를 바탕으로 한 군 식재료 구매는 농가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접경지역 농민들은 기존 계획생산 과정에서는 손해나 이익을 판단할 수 있었는데, 그 체제가 무너지고 경쟁입찰체제로 간다고 하면 농가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생기기 때문에 매우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참가자 E(강원도청 군납 관련 실무자), 2022.07.21.)
마찬가지로 농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지역농협 군납 실무자들은 과거 군납 체계의 구성 과정에서 중요시했던 안보적 피해에 대한 보상적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금까지의 군납 체계는 접경지역에 있어 국가의 경제적 구제책으로 체험해오는 등 국가의 존재 이유와 역할, 그리고 기능에 대한 관점에서 새로운 군 급식 개선 대책은 접경지역 농산물의 소비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가치의 창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행위라 비판하기도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급식에 있어서는 농산물의 소비에 관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산물 수급에 관한 부분도 있고, (일정부분) 소비를 시켜야 하는 의무도 있다고 봅니다...(중략)... 그러한 부분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 참가자 A(화천농협 군납 담당자), 2022.07.19.)
즉, 새로운 군 급식 개선 대책은 접경지역의 안보적 피해에 대한 경제적 보상으로 정의했던 과거 군납 체계라는 일종의 합의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으로 관련 행위자들에게 인식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은 국가 스케일 행위자들의 정책적 변경에 의해 기존 접경지역민들이 요구해오던 국가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 다른 보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되었던 다양한 형태로 접경지역민들의 일상을 구성하던 군납 체계가 해체됨을 통해 지난 과정을 통해 구성된 주민들의 일상이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군납 체계의 해체를 반대하는 다른 행위자들의 논거 중 하나는 ‘식량 안보’와 관련한 논리로 전개된다. 그들은 지난 2021년 발생했던 요소수 품귀 현상을 사례로 제시하며, 대기업을 위시한 경제적 효율 추구 방식의 식재료 공급체계는 결과적으로 공급자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렴한 외국산 식재료의 도입을 시도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외국산 식재료의 도입은 해외 생산지 또는 유통지의 국제적 상황에 의해 군의 안정적인 식재료 수급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국방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담회를 통해) 국산 식재료가 비싸면 수입산을 먹으면 된다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요소수 사태만 보더라도 중국(수입국가)에서 문을 닫아 걸면 바로 난리가 날 수 있습니다...(중략)... 기반 시설과 기반 사업은 정부에서 비용이 든다 해도 자급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인터뷰 참가자 C(화천군 군납 비대위원), 2022.07.20.)
군납 체계를 기존의 모습과 같이 유지해야 함을 주장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주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이 소비 및 재생산하고 있는 가치 역시 국가-안보, 로컬-경제라는 고정적인 틀을 지역적 맥락을 바탕으로 변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군납 유지를 원하는 행위자들은 주로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주장은 군부대의 주둔 이유이자 국가 스케일에서의 안보적 목적 달성을 추구하는 가치였던 안보적 가치를 ‘식량 안보’와 같은 형태로 변용・재생산함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즉, 국가 단위에서의 정치적 명분이자 가치였던 안보를 도구화하여 실질적 안보 문제가 아닌 경제적 목적 달성을 위한 반발과 투쟁 과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군납 체계의 해체가 필요함을 주장하는 국방부를 비롯한 행위자들은 부실급식과 같은 문제적 사건들이 발생하는 이유가 기존 군납 체계에 의존하는 군 급식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며, 군 급식 운영의 효율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일선 부대의 급양관리관들 역시 새로운 군 급식 개선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군 급식의 다양성 추구나 장병 선호 반영, 조리의 수월성 측면을 강조하였다.
“군 급식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는 지역 특성과 부대 여건을 고려한 효율적 부대 운용을 가능케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중략)... 기존 체계에서는 군단 내지 사단에서 정해주는 식단표대로 식단을 구성해야 했기에 일선 부대에서의 선택권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장병 선호나 부대 운영의 유연성을 추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인터뷰 참가자 M(OO사단 급식 실무 담당 간부), 2022.07.19.)
“기존의 식재료 조달 방식은 병사들의 선호도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군 급식 개선 대책이 시행된 이후 급식의 질이 향상되었고, 기성 식품의 납품을 통해 장병 급식 선호도도 향상된 것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자 J(OO사단 조리 담당 간부), 2022.07.07.)
이처럼 국방부나 일선 부대원과 같은 군납 체계의 변경을 주장하는 행위자들 역시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가치를 소비, 생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군부대와 관련한 정책적 논의 과정에서 주장했던 안보적 가치보다는 군 운영의 효율과 경제적 이익, 나아가 장병들의 변화된 선호도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즉, 군납 체계를 둘러싸고 새로운 변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행위자와 기존 체계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행위자들 모두 기존 체계의 구성 과정에서 소비했던 가치가 아닌 다른 형태의 담론과 가치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 활용하는 일종의 스케일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특정한 가치가 기존 소속되었던 스케일이 아닌 다른 스케일 행위자를 통해서 새롭게 정의되고 소비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7) 결과적으로 군납 체계를 통해 접경지역의 사회적 구성과정과 이 과정에 개입하는 다양한 행위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군납 체계를 살펴봄을 통해 사회적 구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현실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Coleman이 주장한 바와 같이 접경지역 내부에서의 지정학・지경학적 논의가 국가적 스케일에서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동시에 접경지역만의 맥락을 바탕으로 한 특정한 가치와 담론, 논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군납 체계의 구성과 해체 과정에 연관되어있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의 변화에 이에 따른 스케일 전략・가치 선택의 변화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한국 접경지역을 구성하는 사회적 가치가 안보적 관점 뿐만이 아닌 다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안보-경제 연계의 관점을 바탕으로 다원적 가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접경지역이혼종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지역임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기존 접경지역에 대한 추상적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5. 결론
본 논문은 한국 내에서 접경지역이 안보적 가치와 논리에 의해 구성되는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접경지역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안보적 가치만이 아닌 다른 가치의 개입과 소비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매체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 나타나는 한국 접경지역에 대한 상상과 재현은 접경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접경지역을 안보적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한 접경지역 선행연구는 지역개발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차원에서의 기능적 연구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성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접경지역에 대한 보다 사실적인 이해와 지역적 맥락에 대한 강조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접경지역이 단순히 안보적 가치에 의해 작동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인들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공간임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박배균, 2017; 이승욱, 2019).
한국의 접경지역에서 군납 체계는 한국전쟁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전후 취약했던 국가의 경제력과 유통망 문제로 인하여 주둔 인접 지역 농가에서 식재료를 조달해왔던 관습을 바탕으로 군납 체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1970년 이후 ‘접경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법률과 협정이 조성되며 맥락으로 유지되어오던 군납 체계는 공식화되었다. 이렇게 맥락화-공식화 과정을 거쳐 구성된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는 안보라는 국가적 규모의 가치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역에 경제적으로 예외적인 제도가 부여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 군납 체계는 단순히 군부대의 주둔이라는 안보적 가치만을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닌 안보와 경제라는 상이한 가치가 경합하고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구성된 하나의 넥서스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부실급식 파동이 초래한 군납 체계의 해체 과정을 조망해 보는 과정을 통해서도 접경지역을 구성하는 지역적 맥락 속에는 안보 이외의 가치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접경지역에 군납이라는 특수한 농업 형태를 일상적 차원에 도입한 군납 체계가 국방부를 위시한 국가적 스케일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기존의 안보적 가치를 바탕으로 상상해온 접경지역의 기능이 우선되는 것이 아닌, 군이라는 집단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군납 체계의 해체에 반대하는 행위자들의 논거가 기존 군납 체계의 구성 과정에서 국가적 행위자들의 주장 중 하나였던 ‘식량 안보’로 변모하였다는 점은 상황과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가치의 스케일이 변모하는 것을 드러내어 접경지역에 대한 상상과 재현 과정에 안보 뿐만이 아닌 다양한 가치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논문은 군납 식재료 납품체계가 구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에 주목하여 접경지역을 구성하는 중심 가치가 단순히 안보적 가치의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여 기존 접경지역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접경지역 선행연구 일부가 안보적 렌즈에 의해 추상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접경지역의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건들의 구성과 해체 과정에 대한 조망은 사건 이면에 숨겨진 다원적인 가치들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인식은 접경지역을 둘러싼 다양한 정책적 갈등의 발생을 완화시킬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