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선행연구 및 개념적 틀: 관계적 이주민 장소만들기
1) 이주민 장소만들기와 탈북민 교육공간에 관한 기존 논의
2)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
3. 연구 방법과 사례 소개
1) 연구 방법
2) 탈북민 학교 사례 소개
4. 탈북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 대안적 교육공간을 중심으로
1)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과 정착: 한국 종교기관 주도, 정부부처 참여, 지역민 반대
2) 탈북민 대안학교의 위기와 적응 전략
5. 결론
1. 서론
본 연구는 탈북민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을 다양한 한국 선주민 행위자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본 연구에서 탈북민 학교 설립과정을 ‘이주민 장소만들기’로 개념화한다. ‘이주민 장소만들기’는 이주민의 디아스포라 처지에 대처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물리적, 사회적 디지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지속적인 사회적 과정(Boccagni and Hondagneu‐ Sotelo, 2023; Ralph and Staeheli, 2011)을 뜻한다.1) 이주민 장소만들기에 관한 기존 문헌(박소연, 2022; 정현주, 2010; Pemberton and Phillimore, 2018)이 이주민의 장소만들기에 초점을 둔 데 비해 본 연구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한국 선주민 단체와 개인이 개입한 이주민 장소만들기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으로 한국 선주민은 한국 종교기관, 한국 교사, 통일부, 교육부, 교육청, 학교 지역주민이 개입하여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2)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을 고찰하고, 탈북민 대안학교가 위기에 대응하고자 여러 전략을 구사하는 역동성을 살펴본다. 그 과정은 주요행위자의 탈북청소년3)을 교육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 마련과 제도적 기반 정비부터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기금 조성, 교사 모집, 학생 모집, 교육 내용 조직과 구상, 탈북민 학교 설립 반대를 포함하는 총체적 과정을 아우른다. 이 연구는 이주민 장소만들기를 공간적, 관계적, 총체적인 메커니즘으로 분석(Shin, 2018)하여 정치지리학, 사회지리학에서 증가하는 이주민 공간 논의에 기여할 것이다.
지리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탈북민을 비롯한 이주민 공간에 관한 연구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성장하였다(Chica, 2021). 하지만 기존 연구(박소연, 2022; Habarakada and Shin, 2019; Pemberton and Phillimore, 2018; Seo and Skelton, 2017)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보인다. 첫째, 이주민 공간 연구의 가장 주된 논의는 이주민이 형성한 밀집지역과 이주민 사업체, 이주민 공동체, 이주민 종교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주민 장소 만들기가 단지 이주민의 활동,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선주민과 다른 이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보는 관계적 접근이 제시되었다(Castaneda and Aranda, 2023; Delaisse et al., 2024; Hubner and Dirksmeier, 2023; Shin, 2019). 이주민 장소에 대한 관계적 접근과 시각이 발전하였지만,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된 두 사회의 사람들의 장소만들기인 탈북민의 장소에 대해서는 관계적 접근이 미흡하였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이동과 이주는 국경통제에 의해 철저히 불허되고 한국정부가 공공임대주택에 배정하면서 당시 임대주택 상황에 따라 밀집지역의 형성이나 분산배치도 좌우한다. 이렇게 선주민이 주도한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특징이 유의미한데도 불구하고 조명받지 못하였다. 둘째, 탈북청소년 교육공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주로 다문화 연구와 북한학 분야에서 청소년들의 적응과 정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탈북민의 교육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은 법적, 제도적, 사회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주제임에도 지리학 내에서 그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
본 연구는 다음의 연구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탈북민과 한국 선주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탈북민 대안학교가 설립되었는가? 둘째, 탈북민 대안학교는 제도적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하였나? 본 연구는 수도권 탈북민 대안학교 8곳을 사례로 문헌자료 분석과 심층 면담의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전체적인 논문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 문헌 연구에서는 기존 이주민 공간 연구의 한계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지리학에서 관계적 접근으로 이주민 교육공간을 고찰해야 한다는 연구 필요성을 제기한다. 3장에서는 연구 방법을 제시하고 연구 사례를 소개한다. 연구 결과를 다루는 4장에서는 선주민이 주요행위자가 되어 수도권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 과정을 살펴본다. 더불어 탈북민 대안학교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적응 전략을 분석한다. 마지막 5장 결론에서는 본 연구의 학술적・사회적 함의를 논한다.
2. 선행연구 및 개념적 틀: 관계적 이주민 장소만들기
1) 이주민 장소만들기와 탈북민 교육공간에 관한 기존 논의
지리학 분야에서 이주민 연구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성장해 왔으며, 북한이탈주민을 비롯해 한국 내 이주민 혹은 재외한국인의 정착이 중심적인 연구 대상이었다. 그동안 이주민 장소만들기(Migrant Place-making)는 이주민, 난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지역사회에 자리 잡기 위한 공간 확장 전략으로 조명되어 왔다(Pemberton and Phillimore, 2018). 특히 이주민 밀집지역 내에 있는 이주민 거주지(박소연, 2022), 이주민 종교 공간(정현주, 2010; Habarakada and Shin, 2019), 이주민 사업체(이영민・이종희, 2013) 그리고 이주민 여가 공간(Seo and Skelton, 2017) 등이 주로 논의되는 주제였다. 기존 연구는 이주민의 정착 과정에서 다양한 장소만들기 과정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대부분 이주민의 주체성에 방점을 찍어 이주민을 핵심 주체로 조명하였다(Zhuang, 2021).
한편, 지리학을 위시한 공간 연구는 근래 들어 이주민 밀집지역의 역동적인 과정을 공간적, 관계적, 총체적인 메커니즘으로 밝히고자 하였다(Shin and Gutierrez, 2024). 하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었다. 첫째, 이주민 밀집지역에서 그 민족적 구성과 계층이 세분화(안누리, 2022; 정현주, 2020)되는 양상을 분석하거나 다양한 인종의 이주민이 서로 공존하고 갈등을 빚는 사례(Acolin and Vitiello, 2018)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그 결과 이주민 장소만들기 과정에서 선주민의 역할이 활발히 논의되지 않았다(Adey, 2017; Iaquinto, 2020).
둘째, 선주민의 역할과 선주민과 이뤄지는 관계가 이주민 장소만들기 과정에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선주민이 주도하여 형성하는 이주민 장소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탈북민 장소만들기는 집중거주지를 형성하고 내부적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정보를 교류한다는 측면에서 장소만들기가 수반하는 역할과 기능이 이주민 장소만들기와 유사하다. 하지만 탈북민은 여타 이주민들과 달리 남북한 관계의 특성상 주거지원 정책의 대상이므로 알선된 임대주택에 살게 되어 집중거주지 형성과정이 다르다. 또한 본국으로 귀환할 가능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그들을 위한 지원과 그들의 안녕이 정치적인 함의를 내포하는 까닭에 장소만들기에 참여하는 주체의 범위가 훨씬 방대하다는 차별점을 가진다(신혜란, 2018; Shin, 2021). 탈북민과 같이 지정학적 관계가 복잡하고 역동적인 경우, 지정학적 맥락 변화에 따라 탈북민에 대한 혜택과 규제가 달라지므로 도착국 선주민의 역할이 중추적이다.
탈북민 교육공간은 관계적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지리학계에서 연구가 미진하였다. 사실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등장한 탈북민은 국내 및 국외 정세에 영향을 받는 지정학적 존재인 까닭에 남북관계의 양상, 북한과 중국의 국경 통제 정도, 탈북민 입국 경로, 탈북민 가족관계 구성(Shin, 2024), 탈북민 지원 정책의 변화가 탈북민 교육공간을 연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변화하는 탈북민 교육공간은 탈북민 1.5세와 탈북민 2세를 비롯한 탈북청소년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물리적, 상징적 토대로 기능할 뿐 아니라 선주민과 이주민의 상호작용이 두드러지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으나 장소만들기 관점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탈북민 교육공간에 관한 기존 논의는 다문화 연구 및 북한학 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다문화 연구와 북한학 연구자들은 제도권 교육에서는 탈북청소년의 특성을 반영한 적응 지원 체계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이은혜, 2019), 탈북청소년 대상의 통합교육을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탈북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한 대안적 교육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심양섭・김현주, 2015). 왜냐하면 대안학교는 일반학교보다 탈북청소년의 성장과 정착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어(강윤희・모경환, 2021) 탈북청소년의 발달 정도를 고려한 교육적 처치와 심리적 지지를 적절히 제공함으로써 탈북청소년이 건강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때문이다(박병애, 2024). 한국 정부기관과 지원단체는 특히 탈북청소년을 남북 분단 상황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그들을 한국 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해 탈북민 대안학교가 탈북청소년의 남한 사회적응을 돕는 중간 지대로써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기존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한국의 탈북민 대안학교 사례를 분석해야 한다(Kraftl, 2020). 탈북민 교육공간의 외부적 차원에서 선주민의 주도로 탈북민 대안학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학교 설립에 필요한 정부의 허가, 지역 주민 간 갈등, 학교 임차료와 밀접하게 연관된 부동산 시장 관련성, 학교 운영을 위한 지역사회와 연계, 탈북민 대안학교 간 학생 모집을 위한 경쟁 같은 요소들을 고루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높은 한국의 대도시에서 소수자 공간(장애인 공간, 퀴어 공간, 다문화 공간 등)을 확보하는 행위는 소수자 공간의 정당성을 주류사회에 설득하고 선주민의 강한 저항(Mapitsa, 2019)에 부딪히는 일련의 과정을 수반하여 부동산 문제나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회적 함의를 내포한다. 한편, 탈북민 교육공간의 내부적 차원에서 공교육에서 탈북청소년을 위한 교육지원이 점차 증가하고 기존 탈북민 학교 교사들이 새로운 탈북민 학교를 설립하며 학교의 수가 증가했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과 북한의 국경 통제가 강화되고 남북 관계가 경색됨에 따라 입국하는 탈북학생 수가 급감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탈북민 학교의 존립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하여 한국 선주민이 주도하는 탈북민 장소만들기 과정을 규명하고자 한다.
2)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
본 연구는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를 개념적 틀로 제안한다. 장소만들기에 관한 기존 연구는 정부 주도의 도시계획이나 재개발과 같이 특정 목적 아래 공공장소를 탈바꿈하려는 활동(Sweeney et al., 2018)부터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일상 공간을 재구성하는 다소 즉흥적이고 조직화되지 않은 움직임(Lew, 2017)까지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고 있다. 탈북민 대안학교의 경우 정부의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부터 민간에서 운영하는 대안교육시설까지 장소가 가지는 공공성의 스펙트럼이 넓은 까닭에 장소만들기 개념을 적용하기에 적합하다.
더불어 장소만들기는 장소에 관한 서로 다른 의도와 인식이 경합하는 장소의 정치(진예린, 2018)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쉽게 말해 특정 장소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갈등하고 교차(Pierce et al., 2011)하는 동시에 사회적 협상을 통해 장소의 의미가 구성되고 타협되는 총체적 과정을 고찰하기에 유용하다는 것이다(Yashadhana et al., 2023). 특히 이주민 장소는 선주민을 포함한 여러 행위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상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주민 장소만들기는 특정 장소에 이주민의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여(Castañeda et al., 2023) 주류사회를 설득하는 사회적 구성물(Delaisse et al., 2024)이자 과정적 결과물(Hubner and Dirksmeier, 2023)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본 연구에서는 이주민 장소만들기를 주요 행위자의 상호작용을 핵심으로 상정하는 관계적 접근을 취하고자 한다. 즉, 이주민 장소를 하나의 고정불변한 개체로 간주하지 않고, 장소에 관여하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투영되는 유동적 실체로 개념화한다는 것이다(최병두, 2017; Harvey, 1973). 선주민의 핵심적인 역할에 주목한 본 연구는 한국 종교기관, 한국인 교사, 한국의 지역단체, 통일부, 교육부, 교육청이 주도하는 탈북민 장소만들기가 탈북학생, 탈북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행위자와 교류하며 공간적 실천을 도모하고 협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Liu, 2022).
본 연구의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 분석 틀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기여점이 있다. 첫째,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은 선주민의 핵심적 역할을 강조하여 선주민과 도착지 정부, 도착지 기관 간 관계 양상을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더욱이 법적, 제도적,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선주민은 많은 이주민 장소만들기 사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행하는데, 특히 지정학적 이유로 특정 이주민이 사회적 관심을 받는 경우와 법적, 제도적 허가가 필요한 경우 선주민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둘째, 장소만들기가 단편적인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중점을 두는 개념(Boccagni and Hondagneu‐Sotelo, 2023)이므로 단기적, 장기적으로 그 장소만들기 과정이 보여주는 역동성을 주요 행위자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주민 장소만들기는 정부기관, 민간단체, 선주민 개인, 다른 이주민과 상호작용을 고려할 때 비로소 그 역동성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주민 장소는 각국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나 국제 관계를 비롯한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장소 변화가 상당히 급진적으로 나타난다(Schiller and Çağlar, 2013). 탈북민 장소만들기 역시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적 시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까닭에 행위자 간 상호작용이 탈북민 장소의 존립과 철폐를 결정한다.
3. 연구 방법과 사례 소개
1) 연구 방법
본 연구는 문헌자료 분석과 심층 면담을 연구 방법으로 선택하였다. 먼저, 문헌자료 분석은 수도권 탈북민 대안학교 여덟 곳의 학교 설립 배경, 교육목표, 학교 운영의 핵심 주체, 학교 존립의 위기와 극복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수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각 탈북민 대안학교 공식 홈페이지 자료, 탈북민 대안학교의 이전과 정착에 관한 신문 기사와 뉴스 보도 영상, 탈북민 대안학교의 운영과 지원에 관한 법률, 탈북청소년의 연도별 입국자 수와 탈북민 대안학교 분포 현황 관련 교육부 통계자료, 탈북청소년 지원에 관한 정부 정책, 학교 정보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 등을 이용하였다.
심층 면담은 수도권 탈북민 대안학교 여덟 곳 중 면담 요청을 받아들인 여섯 곳의 핵심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하였다.4) 더불어 초기 학교 형성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수도권 외 다른 지역 학교 관계자와 심층 면담을 시행하여 수도권 탈북민 학교 관계자의 면담 내용을 교차 검증하였다. 심층 면담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총 15명의 한국 선주민을 대상으로 하였다. 탈북민 대안학교는 수가 적고 위치도 수도권 내에 분산되어 있는 까닭에 학교가 속한 지역을 명시한다면 면담 참여자의 익명성 유지가 어렵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학교 명칭을 A~F 학교로 명명하였으며 면담 참여자가 속한 대안학교의 상세 정보는 아래 표 1과 같다.
표 1.
각 면담은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한 차례 면담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추가 면담을 진행하였다. 연구 참여자가 선택한 장소에서 반구조화된 면담, 즉 면담의 기본적인 방향은 유지하되 면담 참여자의 상황에 맞게 질문을 수정하는 유연한 방식을 적용하였다. 주요 면담 질문은 탈북민 대안학교를 설립한 목적과 배경, 탈북민 대안학교의 위치 선정 이유, 탈북민 대안학교의 장소 이전 계기와 이전 과정에서 직면한 어려움과 극복 과정, 탈북민 대안학교의 지역사회 정착에 중요했던 정책이나 사업, 탈북민 대안학교의 재정구조, 탈북민 교육공간 만들기 과정에 참여한 주요행위자의 유형과 역할, 행위자 간 협력과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면담 내용은 면담 참여자의 동의 아래 녹음되었으며, 녹음 미동의 시 면담 내용을 필기하였다. 면담을 통해 확보한 질적 자료는 해석학적 방법을 활용해 분석하였다.
2) 탈북민 학교 사례 소개
본 연구에서 다루는 탈북민 대안학교는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대안학교, 그리고 대안교육시설을 포괄한다. 탈북학생은 ①대안교육 특성화학교, ②대안학교, ③대안교육시설, ④일반학교 네 가지 유형의 학교 가운데 선택하여 재학할 수 있다(김성기・곽재석, 2019). 본 연구는 남한 사회 통합을 목표로 대안교육을 이행하는 교육공간인 ①번부터 ③번까지의 학교를 사례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본 연구의 사례인 여덟 학교의 ①, ②, ③ 분류는 표 2와 같다.
표 2.
통합교육기관 | 대안교육기관 | ||
일반 학교 (초・중・고) | 학력인정 | 학력불인정 | |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 대안학교 (인가) | 대안교육시설 (미인가) | |
한겨레중・ 고등학교 | 여명학교 | 다음학교 | |
하늘꿈중・ 고등학교 | 반석학교 | ||
한꿈학교 | |||
우리들학교 | |||
남북사랑학교 |
구체적으로 ①대안교육 특성화학교는 대안교육과정을 전문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시도교육청의 관리와 감독을 받는다(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대표적인 예로 한겨레중・고등학교가 있으며 약 130명 내외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다음으로 ②대안학교는 시도교육감의 인가를 받아 운영되는 학교로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학력이 인정된다는 특징이 있다(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60조의3). 여명학교와 하늘꿈중・고등학교가 대안학교에 속하며, 각 학교는 대략 70~80명의 학생을 수용하고 있다. 반면 ③대안교육시설은 대안교육을 시행하는 시설, 법인, 단체 등으로 시도교육청에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하였으나 학력을 미인정하는 곳이다(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제2조). 이로 인해 대안교육시설에 다니는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대안교육시설에는 다음학교, 반석학교, 한꿈학교, 우리들학교, 남북사랑학교가 포함되며, 학교당 학생 수는 약 30~40명 안팎이다. 이때, 대안교육 특성화학교와 대안학교는 대개 만 13세에서 25세 사이의 탈북청소년의 입학을 허가하는 반면,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은 별도의 연령 제한을 두지 않아 탈북 배경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세 유형의 학교를 포함한 대안교육기관은 교육부 산하의 탈북청소년지원센터에서 탈북학생을 지원하는 일반학교와 달리,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지원과 감독을 받는다(강윤희・모경환, 2021).
본 연구에서 사례 학교의 지리적 범위를 수도권으로 한정한 까닭은 수도권에 탈북학생과 탈북민 학교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탈북학생은 서울특별시 353명(20%), 경기도 585명(33.1%), 인천광역시 171명(9.7%)으로 전체 탈북학생의 과반수(62.8%)를 차지한다. 그리고 탈북민 대안학교는 전국에 열한 곳이 존재하는데, 그중 여덟 곳이 수도권에 있다. 사례 학교 여덟 곳 가운데 여명학교, 우리들학교, 다음학교, 반석학교, 남북사랑학교 다섯 곳은 서울에 위치하며, 하늘꿈중고등학교, 한겨레중고등학교, 한꿈학교 세 곳은 경기도에 자리한다(그림 1 참조). 수도권에 집중한 대부분의 탈북민 대안학교는 기숙사를 운영하여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현재 모든 탈북민 대안학교에서 북한 출생 탈북학생보다 중국을 포함한 제3국 출생 탈북학생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3년 탈북학생 통계 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제3국에서 출생한 탈북학생의 수가 북한에서 출생한 학생의 수를 압도하기 시작하였으며, 2023년 기준 전체 탈북학생 중 약 70%가 제3국 출생 탈북학생임을 알 수 있다(교육부, 2023). 이러한 경향은 북한 출생 탈북학생이 많았던 기존 추세와 달리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제3국 출생 탈북학생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현재 입국하는 탈북학생은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으며 출생 이후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탈북학생 가운데 제3국 출생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탈북학생 어머니의 이주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탈북민 여성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낳은 자녀가 중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에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중국어에 익숙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은 한국어 언어 장벽으로 일반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백인옥, 2020; 양혜린 등, 2017). 한국의 탈북민 대안학교는 탈북학생이 향후 한국의 공교육 체제에 합류될 수 있도록 이중언어가 가능한 교사를 모집하여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더불어 탈북민 대안학교는 탈북학생의 출생 국적 비율 변화에 대응하여 제3국 출생 탈북학생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 유적지 탐방, 백두대간 종주, 문학기행 등을 진행하고 있다.
4. 탈북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 대안적 교육공간을 중심으로
1)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과 정착: 한국 종교기관 주도, 정부부처 참여, 지역민 반대
(1) 한국 종교기관의 탈북민 학교 필요성 제기
수도권 탈북민 대안학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종교기관에 의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던 북한의 경제난으로 탈북민의 남한 유입이 증가하였으나 당시 탈북민을 지원하는 법률과 제도가 부재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개신교 선교단체들은 정부를 대신하여 제3국을 통한 탈북민 구출, 한국 내 탈북민 보호, 북한 식량 지원 등 여러 방식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탈북민들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선교단체들은 남한 사회에 도착한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보호 없이 방치되고 있던 실태를 알게 되자 탈북민 자녀 세대의 한국 정착과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에 탈북민 대안학교를 설립하였다. 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한국의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북한에서는 가난해서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배우지 못했고, 또 여자들은 중국에 팔려가서 시집살이하는 동안에 공부를 못 했고, 북한에서도 못 했고, 중국 체류 기간에도 못 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위해서 학교를 세웠죠.
(D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3년 9월 22일)
이 면담 참여자에 따르면, 한국의 탈북민 대안학교는 다양한 사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탈북청소년과 탈북청년들의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자 설립되었다. D탈북민 대안학교의 초대 교장이 조직한 선교회는 한국 입국을 앞둔 탈북민을 대상으로 석 달 동안 성경공부를 진행하면서 탈북청소년과 탈북청년들이 경제적 어려움, 시집살이 등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현실을 파악하였다. 선교회는 한국에 있는 젊은 세대의 교육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한국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탈북민이 다수 거주하는 서울 서부 지역에 학교를 세웠다. D탈북민 대안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탈북민 대안학교들도 탈북청소년에 대한 물질적, 심리적 지원의 필요성을 포착한 선교단체가 탈북민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한편, 탈북민 대안학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다. 첫째, 공교육에서 다루지 못하는 탈북민 자녀들의 어려움을 해소하여 그들의 정착을 돕는 것이었다. 탈북학생들의 경우 한국어 의사소통이 대부분 제한되는 까닭에 또래 남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등 남한 친구들과 원만한 교우관계를 맺는 데에 문화적, 사회적 장벽이 존재했다. 또한 이주 과정에서 학습 공백을 겪은 탈북학생들은 한국 교육체계로의 흡수가 어려웠다. 예컨대, 북한 출생 탈북학생에게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짝수가 나오는 경우의 수를 질문했을 때 주사위가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해 대답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들은 탈북학생의 사회 통합을 위해 언어 교육, 심리・정서적 지원, 사회적 의사소통 규범 교육 등을 진행하였다. 둘째, 대부분의 탈북민 대안학교는 한국 교회가 북한 선교를 위해 탈북청소년을 통일 세대의 주역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하여 설립되었다. 교회는 아침 묵상, 예배시간, 성경공부, 수련회, 해외 선교단체와 함께하는 워크숍 등을 통해 학생들이 기독교적 가치관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힘썼으며, 매일 아침 예배당에서 학생들이 QT(Quiet Time, 묵상시간)을 통해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탈북청소년의 한국 정착과 북한 선교를 목적으로 탈북민 학교를 설립한 한국 교회는 통일 한국을 이끌 지도자이자 선교사로서 탈북청소년에 대한 기대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학교를 설립한 분은 그 탈북자들을 어떻게 인정했냐 하면, ‘통일 유학생이다. 남북한은 반드시 통일이 될 거고, 통일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먼저 온 통일민이다’ 이렇게 생각하셨다는 거예요. ‘먼저 이 학생들이 북한에서 우리 남한으로 유학을 온 거고 남한을 배워야 통일이 되어도 함께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시작하셨더라고요.
(A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3년 9월 22일)
면담 참여자가 밝혔듯 탈북민 대안학교는 탈북청소년이 통일 한국을 이끌 지도자이자 선교사로 성장하리라는 기대와 확신으로 설립되었다. 탈북청소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남한과 북한 양쪽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탈북청소년은 난민이나 이주민과는 다른, 특별한 범주로 인식됨을 파악할 수 있다. 탈북민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한반도 분단상황으로 과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대한민국 국적과 신분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난민과 구별되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입국한 모든 탈북민은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적과 신분을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북민은 한국인과 같이 사회적 신분을 보장받고 취업 가능 업종에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재외 동포와도 차이가 존재하였다. 이와 달리, 탈북민 대안학교를 설립한 한국 종교단체들은 탈북청소년을 오히려 북한 땅에서 넘어온 이웃으로 간주하여 탈북청소년이 통일 세대의 선구자 역할을 감당하리라 생각하였다.
(2) 한국 선주민의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 지원
① 교회의 지원
한국 종교기관은 탈북민 대안학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 공간 일부를 대여하였으며, 체육관과 같은 종교기관의 생활근린시설을 학교와 함께 공유하거나 종교기관에 소속된 신자들이 자원하여 급식, 행정, 멘토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대표적 사례인 B탈북민 대안학교는 한국 감리교선교회가 사용하던 건물 2층을 빌려 2000년대 중반 개교하였다.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학교 설립 초기 교육공간이 그림 2처럼 구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건물 입구에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육중한 철문이 있었는데, 철문을 열면 왼편으로는 교무실과 교실들이, 정면으로는 좁다란 복도가, 오른편으로는 창문들이 연이어 있었다고 한다.
B탈북민 대안학교의 물리적 공간은 열악하였다. 기초, 중등, 고등, 대입 등으로 학급을 구분하고자 가벽을 세웠던 까닭에 학생들이 벽을 치면 옆 반까지 들릴 정도로 교실 간 소음이 심하였다. 복도는 두 사람이 일렬로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아서 서로 약간씩 비켜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겨울에는 교실에서 난방을 위해 가스난로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스 냄새로 교실이 매캐해질 때면 학생들이 반에서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복도에 나와야 했었다.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열악했던 학교 시설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론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아이들이 이제 화장실(쓰는 것)이나, 이런 부분도 너무 열악했죠. 다행히 인근 공원에 화장실이 있어서 그걸 쓰기도 했었고요. 또 거기(공원 화장실에서) 가까운 교회의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었어요. 학교 시설은 비록 열악했으나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고 그랬었죠. 학교 인근 지역 시설을 이용하는 그런 부분에서 이제 더 도움을 받았어요.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b, 2024년 2월 13일)
대안학교 관계자의 진술은 2000년대 중반 설립된 초기 탈북민 대안학교는 학교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설이 열악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탈북민 대안학교가 공간의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공간의 공공시설을 이용하거나 종교기관의 허락 아래 사적 시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물질적 자원에 의존하였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열악한 물리적 조건이 오히려 탈북민 학생과 교사들이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도록 하여 탈북민 학교를 따뜻하고 재미있던 집으로 기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B탈북민 대안학교의 한 학교 관계자들은 학생들과 친밀하게 교류하던 학교가 본인에게는 아늑하고 정다운 집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그러니까, 교실과 교무실에 큰 경계가 없이 아이들이 교무실에도 그냥 자주 와서 수시로 이야기 나누고 … 생활도 사실 같이하는 그런 환경이었던 데다가 그런 공간상의 구분이 크게 없이 공유되는 부분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느낄 때 그런 부분에서 좀 편안하게 더 이렇게 했던(느꼈던) 것 같아요.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b, 2024년 2월 13일)
저는 기숙사가 너무 좋았어요. 기숙사 선생님이랑 쇼핑도 같이 하면서 “선생님 이거 어떻게 사요?”하면 선생님께서 먼저 어떻게 하는지 딱 알려주시고 … 기숙사에서는 북한 음식도 해 먹고 생일 파티도 되게 많이 하고 선물도 주고받고 … 되게 불안했지만 뭔가 그래도 따뜻했던 기숙사였고 … 어쨌든 새로운 사회에 오다 보면 그런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되게 불안한 시기잖아요. 그런데 그때 따뜻한 공동체가 있어서 학교생활이 너무 즐겁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a, 2024년 2월 13일)
면담 참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탈북민 대안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활동하는 공간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학생과 교사 간 물리적 장벽이 흐릿한 공간구조는 탈북청소년이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직접적인 심리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다정하고 살가운 안식처로써 탈북민 학교의 장소성을 형성하였다.
② 정부의 지원
다음으로 탈북민 대안학교는 재정적, 행정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통일부는 학교 운영비를, 시도교육청에서는 교사 인건비를 지급함으로써 탈북민 대안학교를 지원하였다. 정부의 지원으로 학교의 운영과 발전이 가능했던 대표적인 사례로는 A탈북민 대안학교가 있다. A탈북민 대안학교는 2004년 한국인 초대 교장이 사비로 주민센터 건물의 반지하 공간을 마련하여 개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수해를 겪으면서 새로운 교육공간이 필요해졌고, 통일부에 탈북청소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탈북민의 한국 정착에 관심을 가지고 남북하나재단을 설립하던 통일부는 이웃하는 시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영구임대주택 단지 상가의 지하공간을 대안으로 제안하였다. 그 지하공간에는 본래 슈퍼마켓이 입점해 있었으나 독거노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단지 특성상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작았던 까닭에 장사가 유지되지 않아 지하공간이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A탈북민 대안학교 이사회는 상가 지하공간에 교육공간을 마련하기로 합의하였다. 그에 따라 학교 이사회는 지하공간을 교장실, 행정실, 교실, 식당, 도서실, 컴퓨터실, 다목적 강당으로 구획하여 탈북학생들이 일반 정규학교과 유사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육공간을 조성하였다. 학교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2009년 … 통일부에서 탈북자들을 케어해야겠다는 게 시작됐을 때 … 여기가 LH공사 건물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형편이 좀 어려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상가 건물 지하에서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슈퍼를 차려도 망하고 … 그러니까 여기가 비어 있는 공간이었어요. 폐공간처럼 쓰레기들도 뒹굴고 … 그래서 2009년에 우리가 여기로 들어온 거예요. 그때 학교 이사회가 만들어지고 그분들이 돈을 좀 모아서 학교로 리모델링이 된 거죠. 그러니까 주변이 독거노인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여기서 탈북자 대안학교가 들어오고 뭐 잘 모르니까 문제없이 여기 있을 수 있었던 거죠. 여기가 한 달에 지금도 저희가 한 40만 원을(공과금으로) 내고… 그러니까 월세가 없는 거예요. 원래 비어 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무상임대로 지금 쓰고 있는 거죠.
(A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3년 9월 22일)
면담 내용에서 언급된 것처럼 A탈북민 대안학교는 탈북민 지원에 관심을 가지던 사회적 분위기에 기대어 통일부의 제안으로 상가 지하에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재정 범위 안에서 교육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교육공간을 지하에 조성하여 탈북민 학교의 입지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를 피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학교가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생활시설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로 작동하였다. 지하공간은 학생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옥외 체육장이 부재하고, 채광이나 환기 측면에서도 교수학습 활동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역시 지하에서 운영하는 교육공간의 해악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것을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지하공간에서 근무하던 교사들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학생들에게도 햇빛이 드는 따뜻하고 안락한 교육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A탈북민 학교가 마련한 지금의 교육공간은 한국 선주민 교사들의 관심과 열정으로 일구어진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생동감 있게 느끼지 못하는 정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재정적 불안정성이 높은 A탈북민 대안학교가 지상에 학교를 설립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외부 주체로부터 학교 용지 마련 비용과 학교 건물 설립 비용을 후원받아 인가 조건을 충족한 후 시도교육청 교육감의 승인을 받아 인가 대안학교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A탈북민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한국 선주민들의 관점에서 지하공간은 학교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공과금을 납부하면서, 부모로부터 충분히 보살핌받지 못하고 한국 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최선의 타협점이었기에 외부 주체의 지원 없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학교 이전을 감행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였다.
③ 지역사회의 지원과 갈등
지방정부에서는 탈북민 학교 주방 인력을 제공해주고 지역 소방서 등 지역단체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탈북민 교육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교육부, 통일부, 교육청 그리고 다른 종교기관도 탈북민 대안학교의 공간마련의 주요행위자로 등장하였다. 2004년 원불교재단에 기반한 학교법인이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탈북민 대안학교 운영 요청을 제안받아 탈북민 대안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법인은 용지 구매, 교육부는 학교 건물 건설, 통일부와 시도교육청은 학교 운영비를 지원하며 다양한 기관의 협력으로 탈북민 대안학교의 운영이 시작되었다. 탈북 과정을 지원하는 이들 중 80% 이상이 개신교 선교사들이라는 점에서 개신교가 학교 운영을 도맡아 하는 것이냐는 불만도 제기되었지만, 교육부는 제도권 밖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경험이 풍부한 해당 학교법인이 탈북청소년을 안정적으로 교육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다.
한국 지역주민들은 이 탈북민 대안학교 만들기 과정에 반대하는 주체로서 개입하였다. C 탈북민 대안학교가 이전하려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주민들은 탈북민 대안학교의 이전에 반대하였다. 지역주민들은 인터넷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탈북청소년 교육보다 지역 학생들의 과밀학급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여론을 조성하였다(박요셉, 2019).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전 반대의 근거로 탈북민 대안학교가 기피 시설에 해당한다는 점, 탈북학생과 일반학생이 교류하여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을 들기도 하였다(박요셉, 2019; 이철호, 2020; 정민구, 2019).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는 탈북민 대안학교를 님비(NIMBY) 대상으로 만들고 학교 이전 과정의 장벽이 되었다. C탈북민 대안학교의 주요 관계자는 학교 이전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대가 학생들에게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학생들이 아무래도 상처를 많이 받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게(반대 내용이) 인터넷에 떠돌잖아요, 기사들이.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이제 댓글을 보지 마라, 마음 아프다고 했는데 애들이 이제 그걸 보면서 알게 되니까, 이제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상처가 좀 많이 걱정되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죠. 그런 상황이 한 1~2년 지나다가 이제 이번에 감사하게도 교육청에서 이런 임시적으로 쓸 수 있는 폐교된 공간, 잠시 쉬고 있는 공간을 이제 저희가 임시로 2년 반 정도 쓰게 된 거고요.
(C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3년 10월 16일)
C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탈북학생들이 지역민들의 학교 이전 반대 소식을 접하지 못하도록 정보 검색을 만류해야 했다며 당시 학생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염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탈북학생을 위한 교육공간 형성 과정에 개입한 이해관계자들의 관계가 새롭게 구축되고 변형됨에 따라 대안학교 교사와 탈북학생들이 심리적 위축을 겪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지역주민들은 지역 학생이 아닌 탈북학생을 위해 편익시설 부지의 용도를 변경할 수 없으며 학생 인구 과밀을 겪고 있는 지역으로 탈북민 대안학교가 이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였다(리혜, 2019; 박요셉, 2019; 황기현, 2019; attheheart, 2019). 지역주민들은 탈북민 대안학교 이전 반대 안건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렸으며, 그 여파로 탈북민 대안학교의 이전 결정이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고유찬, 2023; 이철호, 2020).
C탈북민 대안학교는 지역주민들의 여론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학교 도서관과 주차장을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지역 학생들과 함께 영어캠프를 진행하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약속하였다(김철영, 2020). 하지만 결국 시청과 구청이 탈북민 학교의 진입을 막아섰던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C탈북민 대안학교의 학교 이전이 무산되었다. 이후 C탈북민 대안학교는 교육청의 지원으로 폐교를 재정비하여 2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임대 기한이 끝났을 때 학교를 다시 옮겨야 하는 부담이 남아있었다(김형준, 2024; 제은효, 2023).
C탈북민 대안학교의 사례는 교육공간의 이전 역시 장소만들기의 한 부분으로써 갈등과 대립이 역동하는 공간의 정치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탈북민 대안학교가 제도권 교육에 흡수되는 정도를 결정하는 과정은 외부 자원에 의존해야 하는 탈북민 대안학교의 재정적 취약성과 대도시 부동산 시장 논리에 따른 개발 정치적 논쟁 그리고 시도 관할 구역 내에서만 학력을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와 밀접하게 맞물려 전개됨을 시사한다.
E탈북민 대안학교를 처음 설립할 때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도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가장 가까운 민가가 1.5km 떨어진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기로 하였으나 마을 주민들이 시청 도시과장실을 방문하여 학교 설립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고 학교 설립 반대 서명운동에 약 300명이 동참하여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였다(송상호, 2005).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로 사전 환경성 검토의 불충분성, 주민 의견 미반영, 도시계획시설 공고 기한의 자의성 등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지역주민이 탈북청소년을 위한 학교 설립을 반대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탈북청소년이 마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당시 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겪었던 학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당시 ‘탈북민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한다, 간첩 만드는 학교다’라고 이야기되면서 부정적인 반응이 컸었어요. 아이들의 성향이 거칠어서 칼부림 나고 뭐, 하여튼 온갖 폭력이 난무할 거라고, 이 학교를 이렇게 집단으로 애들 몇백 명 모아놓으면 이 학교는 하루도 안 돼서 없어질 거라고…. 그런 위험 요소(에 대한 걱정을) 많이 (전해) 들었죠.
(E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4년 1월 18일)
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의 진술에 따르면, 학교 입지가 예정된 부지의 인근 지역 주민들은 탈북청소년이 폭력적일 것이라는 짐작으로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에 반대하였다. 탈북민 대안학교가 마을을 위해 경제적 후원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반대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정당성보다,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를 하나원 근처에 설립하는 타당성이 더욱 충분하였기에 학교 설립은 예정대로 이행되었다. 2000년대 후반 학교 운영이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접어들자, 당시 교장은 마을 주민들이 탈북학생에게 가지는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학교 졸업식마다 지역주민들을 초대하여 마을 잔치를 열었다. 탈북학생과 직접 상호작용한 마을 주민들은 그들에 대한 편견이 점차 감소했으며, 이후 마을 부녀회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마련하여 지급하는 등 학교 설립 초기와 달리 한국 선주민과 탈북학생 간 교류가 활발해졌다.
한편, E탈북민 대안학교는 학교 건물이 완공되기 1년 전 컨테이너에서 개교하였다. 학교는 전문 건축가가 지은 컨테이너를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 보건실, 교실 등으로 구획하고, 23명의 한국 선주민 교사가 143명의 탈북학생을 대상으로 교수학습 활동을 진행하였다. 컨테이너의 규모가 작았던 까닭에 컨테이너에서는 여학생들만 잠을 잤고, 남학생들은 밤마다 마을회관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등교하는 생활을 1년 반 동안 지속하였다. 샤워실도 마땅하지 않아 당시 탈북학생들은 밤에 마을 실개천에서 몸을 씻어야 하였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학교 건물이 완공되자 한국 선주민 교사와 탈북학생들의 삶은 크게 향상되었다. 학교 내부에 교실, 대강당, 체육관, 기숙사 등 각종 교육시설이 갖추어졌을 뿐 아니라 형태를 제대로 갖춘 화장실과 샤워실이 마련되었고 교사 휴게 공간도 별도로 구획되었기 때문이다.
C, E 학교 뿐 아니라 B학교를 비롯한 다른 학교도 학교공간을 구할 때 탈북민 학교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거절을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학교 관계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효과도 가져왔다. 탈북학생들이 가정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주방이 필요한 것도 학교공간을 구하기 힘든 이유였다.
2) 탈북민 대안학교의 위기와 적응 전략
(1) 탈북민 학교의 위기
탈북민 대안학교는 교육부와 통일부가 탈북민 사회 통합의 핵심 주체로 기능을 강화함에 따라 탈북학생의 한국 정착을 지원하던 탈북민 대안학교의 입지가 점차 축소되었다. 교육부는 2009년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하여 탈북청소년을 위한 교육 지원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탈북학생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 하나원 학부모 연수, 탈북학생 담당 교사 연수와 같이 학생, 학부모, 교사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통일부도 2010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을 설립하고 북한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던 이들을 탈북학생이 있는 일반학교에 통일전담교육사로 파견하여 탈북청소년의 사회 통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부는 탈북학생은 분단 상황에서 남한과 북한을 잇는 중간자적 존재로 보고 제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탈북학생의 한국 사회 정착을 돕고 통일 인재를 양성하고자 학교를 설립하였던 민간인들의 역할이 제도권으로 이양되고 탈북민 대안학교의 당위성이 점차 줄어들었다.
2010년대 탈북민 지원에 관심을 가지던 선교회나 기존 탈북민 학교에서 파생된 교사들이 새로운 탈북민 학교를 설립하면서 탈북민 대안학교의 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2020년대 팬데믹 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강화되자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청소년의 수가 줄어들어 각 대안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수 역시 감소하였다. 이처럼 탈북민 학교의 수는 이전보다 증가한 데 비해 학생 수는 감소하였기 때문에 학교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하나원에 방문하여 수도권 소재, 내실 있는 교육과정, 자격증 취득 등을 근거로 학교를 홍보하였다. 그리고 탈북민 한마당 같이 탈북민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서도 학교 홍보 부스를 별도로 마련하여 탈북학생 학부모들에게 학교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탈북민 대안학교는 정부의 지원으로 초기 독자적 역할이 약해지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생 유치를 둘러싼 학교 간 경쟁이 가열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였다. 탈북민 대안학교가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현실적인 대안은 역설적으로 공교육 체제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탈북민 대안학교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자율성을 낮추더라도 재정적 안정성을 높이고 학력 인정이 되는 제도권에 포섭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탈북민 대안학교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도교육감으로부터 인가를 승인받아 학력 인정 학교로 전환하거나, 일반학교 학생들을 대신 교육하는 위탁학교로 지정받아 지속가능한 전략을 선택하였다.
(2) 탈북민 대안학교의 위기 적응 전략
① 인가 대안학교로의 전환
탈북민 학교가 장기적으로 존립하기 위하여 공교육 체제에 포함되는 한 가지 방법은 미인가 대안학교에서 인가 대안학교로 전환하는 것이다. B탈북민 대안학교는 인가 제도가 학교 이전을 촉진하여 더 나은 교육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이다. B탈북민 대안학교는 본래 허름한 2층 건물에서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이 탈북학생과 한국 선주민 교사가 이용했으나, 2016년 교회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기업이 학교 건축을 후원하였다. 인가 학교로 전환하여 학교 이전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개선된 학교 공간을 설립할 수 있었다. 대안학교를 설립하려면 먼저 수도권 내에서 저렴한 가격에 학교 부지를 구입하거나, 교육 용도로 지정된 건물을 임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 학교의 경우 경기도의 한국 선주민 목사가 사택을 허물고 그 자리의 토지를 탈북민 대안학교에 무상으로 임대하겠다고 제안하였기에 학교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그 당시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교육청에서 인가를 받으라고 계속 요청하시기도 했고, 그리고 기업에서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때 마침 경기도 □□시에 있는 한 교회에서 목사 사택을 허물고 그 자리에 학교가 들어올 수 있게끔 20년간 무상임대를 해 주겠다고 하셨죠. 그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이렇게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어요.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3년 10월 16일)
B탈북민 대안학교는 안정적인 물리적 기반을 확보하였고 자금 조달 계획도 세웠기 때문에 인가 제도를 통해 기존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가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인근의 국제학교가 학교 이전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탈북청소년의 유입이 교육환경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탈북민 대안학교의 교장이 국제학교에 찾아가 탈북학생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국제학교와 동아리 활동을 통해 교류하는 등 상호 도움이 되는 합의점을 찾아 갈등이 해소되었다.
B탈북민 대안학교는 인가 대안학교로 전환됨으로써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우선, B탈북민 학교는 인가 학교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교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나이스 체계에 따라 학교 행정 관리를 체계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B탈북민 대안학교가 통일 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되면서 정부 지원금을 토대로 탈북청소년을 위한 교재와 수업모델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교사들은 임금이 상승하였고 일반학교 교사처럼 다양한 교직원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특히나 탈북학생들은 새로운 교육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학교 이전 과정을 경험한 탈북민 학교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학교를 옮기니까) 저희는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 그전에도 정겹고 따뜻했지만 뭔가 학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냥 진짜 허름한 상가를 빌려서 하다 보니까 “정말 이게 우리 학교야”라고 자랑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거든요. 그 건물이 우리 건물도 아니고 … 그랬는데 여기 와서 우리만을 위한 공간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굉장히 좋고 … 그리고 학교가 되게 예쁘거든요. 테라스도 있고, 옥상에 텃밭도 있고 … 그리고 저희는 (복도가 교차하는 지점이) 이렇게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 여기서 다 모여서 놀고 약간 이러거든요. 저희는 여기를 모세 광장이라고 부르는데 조금 산만하기도 하지만 여기 있는 애가 저기 (반에) 들어가고 저기 있는 애가 여기 (반에) 들어가고 그러거든요 … 화장실도 너무 깨끗하고 … 진짜 뭔가 공간 자체가 되게 학생들을 위해서 잘 지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B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b, 2024년 2월 13일)
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의 설명처럼 학교가 마련한 새로운 교육공간은 탈북학생들의 자긍심과 애교심을 고취하였다. 탈북학생들은 체계적으로 마련된 교육공간에서 한국 학교 교과서로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며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이 마련된 교육공간은 탈북학생들의 만족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을 고취하는 공간으로 격상하여 자부심의 근간이 되었다.
반대로 C탈북민 대안학교는 인가학교로 전환하면서 학교 이전이 제한되어 장소 기반의 안정성을 상실하였다. 인가 대안학교는 시도교육청에서 학력 인정을 하므로 해당 시도 관할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최선용, 2023). 게다가 학교 운영 자금의 50% 이상을 후원에 의지해야 하는 탈북민 대안학교의 특성상 수도권 내에서 적합한 면적과 시설을 갖추어 인가 조건을 충족하는 낮은 가격의 교육공간을 찾기는 어렵다.
C탈북민 대안학교는 건물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서 학교가 속한 시도 관할 구역 내에서 학생 18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 용지를 물색하여야 하였다(이철호, 2020). 학교가 관할 광역자치단체에 지원을 문의하자, 해당 자치단체는 10년째 유휴지로 남아 있던 주택공사 소유의 부지를 학교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김태규, 2019). 학교가 제안받은 부지는 통일의 징검다리로 발돋움할 것임을 홍보하는 지역 자치단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탈북민 대안학교의 위치로 적합한 명분이 되었다.(김태규, 2019; 조충길, 2021).
B탈북민 학교와 C탈북민 학교의 이전 사례는 각 학교가 직면한 위기 상황에 따라 학력 인가 제도의 득(得)과 실(失)이 다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가제도는 탈북민 대안학교가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반면, 향후 학교 이전 선택이 제한되었고 지역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임시 공간에 자리잡게 되기도 하였다.
② 탈북민 학교의 위기 적응 전략: 위탁교육기관 등록
탈북민 대안학교 가운데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은 재정적으로 불안정하여 인가학교로 전환하기는 어려웠다. 그 대신 관할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위탁 학교로 지정받는 방법을 통해 제도권 교육과 연계될 수 있다. 위탁교육기관은 인가 학교와 미인가 학교의 중간 수준으로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이 공교육 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통로였다. 위탁교육을 받는 탈북학생들은 위탁학교에서 출결이 인정되고 성적이 처리되지만, 위탁학교 과정을 마치면 재적학교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탈북학생들이 학력 인정 대안학교와 유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일반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힘든 탈북민 학생들은 전화상담, 대면상담, 준비적응, 최종상담, 수탁 결정 등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거쳐 위탁학교인 탈북민 대안학교에 등록할 수 있으며, 위탁학교에서 국어, 수학, 영어 같은 일반 교과와 함께 한국언어문화, 중국언어문화와 같은 대안 교과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위탁교육제도는 탈북학생들이 재학 연한을 충족하면 졸업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므로 탈북학생 유치에 효과적이다. 결과적으로 위탁교육기관으로 등록된 미인가 탈북민 대안학교는 위탁교육을 통해 학생 모집 대상 범위을 확대하고 교육청으로부터 학교 운영비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학교 존속의 제도적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탈북민 대안학교를 위탁교육기관으로 등록하는 것은 학교 운영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졸업과 취업에 도움이 된다. 과거에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이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한국으로 입국한 경우 한국어보다 중국어에 익숙하여 검정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위탁교육 제도가 도입되면서 위탁교육기관에서 큰 어려움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D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위탁교육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근데 이미 있는 애(탈북청소년)들이 졸업이 안 되니까, 졸업부터 해야 얘가 취업도 할 수 있고 뭔가 사회로 나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위탁을 만든 거예요.
(D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 2024년 1월 22일)
이처럼 제도권 교육과 연계한 전략은 일반학교에서 탈북학생을 수용함으로써 미인가 대안학교로서 학교 운영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적응 방안이었으며 기존 탈북학생들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는 장치로도 활용되었다.
더불어 D탈븍민 대안학교는 위탁교육기관 등록을 통해 위탁 교육을 신청할 수 있는 학생들까지 포함할 수 있었다. D 학교는 출생 국가과 무관하게 탈북 배경이 있는 청소년들의 입학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탈북학생뿐 아니라 조선족 청소년, 고려인 청소년, 한족 청소년, 남한 청소년 등 다양한 학생들을 포함하는 공동 학교로의 발전을 목표하고 있다. 이를 통해 D탈북민 대안학교가 학교 생존전략으로써 위탁 교육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F탈북민 대안학교는 일반학교 교사가 위탁교육에 동의하지 않아 위탁교육을 할 수 없었다. F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탈북학생의 어머니가 정부로부터 할당받은 임대주택이 서울 안에서도 유달리 학구열을 높은 지역사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탈북학생을 집과 가까운 일반학교로 전학시키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학을 시키는데 (일반학교) 선생님이 싫어하는 거예요.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아니 얘 학교(일반학교) 안 다니고 우리 학교(탈북민 대안학교)에 그냥 다니고 거기(일반학교) 이름만 주는 건데도 싫대요. 싫어하면 안 되고 그냥 학교만 배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말해도…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가 학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이는 학군이 필요 없고 그냥 단지 집이 거기여서… 이 아이의 상황이 그냥 누가 봐도 위장전입은 아니잖아요.
(F대안교육시설 관계자, 2024년 2월 29일)
이 면담 내용은 일반학교의 특정 교사가 탈북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탈북청소년의 전학을 저지함으로써 탈북학생의 위탁교육 기회를 박탈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교육청의 개입으로 탈북학생의 전학 처리에 성공하였으나 탈북학생의 입학을 반대하던 교사와 탈북학생이 지속적으로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였다. 탈북학생은 위탁학교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지내고 있는지 일반학교 교사에게 전달해야 했고, 학력 신장을 검증하기 위해 일반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러야 했으며, 3주 동안 재적학교에서 적응 훈련도 받아야 했다. 결국 위탁교육을 통한 학력 취득보다 탈북청소년의 교육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이 탈북학생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한 F탈북민 대안학교 관계자는 그 뒤로 위탁 처리가 예정되어 있었던 학생들을 추가로 받지 않았다. D탈북민 학교와 E탈북민 대안학교의 사례를 종합하자면, 탈북민 대안학교가 위탁교육 제도를 활용하더라도 학교 관계자의 학교 운영 목표와 탈북민 대안학교가 속한 지역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탈북민 교육공간의 확장 가능성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5. 결론
본 연구에서 탈북민 대안학교 형성 과정을 ‘이주민 장소만들기의 관계적 접근’라는 개념적 틀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탈북민의 교육공간 만들기 과정에서 한국 선주민이 주소, 지원, 반대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였다. 첫째, 2000년대 중반 중국에서 탈북민 구출을 지원하던 선교회가 탈북청소년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그들을 통일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한국에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당시 탈북민 대안학교들은 교회 공간 일부를 대여하여 교육공간을 마련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공간의 열악함이 주요 한계였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선주민 교사와 탈북학생 간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도 하였다. 한편, 탈북민 대안학교 설립은 지역주민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이후 학교는 탈북학생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오해를 풀기 위하여 마을 주민과 탈북학생의 교류를 강화함으로써 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었다.
둘째, 2010년대 이후 정부의 탈북청소년 지원이 체계화됨에 따라 탈북학생의 남한 사회 정착을 돕는 방법과 자원이 다변화되었다. 탈북민 학교의 수가 늘어난 한편,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청소년의 수가 감소하여 학교에 재학할 수 있는 탈북학생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탈북민 대안학교는 미인가 대안학교에서 인가 대안학교로 전환하거나 미인가 대안학교가 위탁교육기관으로 등록하였다. 저렴한 교육공간을 관할 구역 안에서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적합한 장소를 찾았더라도 지역민들의 저항이 극심하여 실질적인 공간 확보에 실패하기도 하였다.
본 연구의 주된 학술적 함의는 이주민 장소에 대한 관계적 접근의 필요성과 유효성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주민 밀집지역에서 형성되는 이주민 사업공간, 이주민 종교공간 연구는 이주민들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강조하는 장소만들기 과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주민 장소를 다각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이주민 장소의 형성 과정을 다양한 행위자 간 상호작용을 중점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특히 선주민들과의 관계를 핵심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탈북민 장소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통일을 대비하고 준비하기 위하여 교육부, 통일부, 교육청, 종교기관, 지역단체 등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이나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관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 통일 담론의 지형의 변화 과정 속에서 탈북청소년을 위한 남한 사회 통합 양상을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존 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 탈북청소년을 위한 교육공간이 한국 선주민들에 의해 어떻게 설립되고 정착되는지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관계적 접근의 필요성과 유효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사회적 약자인 동시에 미래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탈북민을 한국사회에 이어주는 교육 공간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지리학 연구에서 의의를 가진다.
본 연구의 정책적 함의는 이주민 교육공간이 이주민 자녀 세대가 한국 사회에 곧바로 통합되기에 앞서 그들이 언어적・문화적・사회적 규범을 이해하고 예비적으로 소통하는 장치이자 공교육 밖에 존재하는 중간 지대로 중요하게 기능한다는 것이다. 탈북청소년 연구는 그간 탈북청소년의 내적 성장에 집중하는 교육학적, 심리학적 관점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정작 탈북청소년 내적 성장의 근간이 되는 교육공간에 대해서는 정책적 관심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탈북민 교육공간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기와 적응 전략을 종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탈북청소년 교육공간을 둘러싼 포함과 배제, 교착과 타협, 협상과 갈등을 다면적으로 고려하여 탈북민 지원 정책을 다루어야 함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교육공간 뿐만 아니라 탈북민의 거주지가 대한민국 정부 임대주택지원으로 집중지역이 조성되고 선주민 주도로 장소와 장소성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시사점을 가진다. 대안학교뿐 아니라 중간지대역할을 하는 방과후학교나 그룹홈(공동생활시설)과 같은 교육공간, 거주공간도 포함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