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 배경 및 목적
2. 지리답사의 실천
1) 답사 프로그램의 내용과 활동
2) 답사 프로그램의 구성과 이동 경로
3. 지리답사의 결과
1) 지형적 환경
2) 관개 농업을 위한 시설
3) 농촌 마을의 특성
4. 논의
1) 학교 주변 지리답사에 대한 관심의 필요
2) 지리답사 장소로서 농촌 지역의 매력
3) 지리답사에서 지리적 관계성의 고려
4) 지리답사를 통한 개인 지리의 형성
5. 결론
1. 연구 배경 및 목적
지리답사는 지리학의 오래된 연구 방법이자, 지리교육의 실제적인 교수・학습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답사의 방법에 대해 최근 교사의 주도보다 학생의 주도로, 설명적 방식보다 탐구적 방식을 통해, 전형적인 지역보다 학교나 거주지 인근의 생활 지역에서의 답사를 지향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김민성, 2022; 변종민, 2022; 이종원, 2022). 특히, 지리답사는 학습자가 자신의 근거지에서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지리적 개념을 학습하는 지역학습의 방안으로서 유용한 측면을 가진다고 평가된다(이호욱, 2024; 조성욱, 2002).
그동안 선행연구에서는 지리답사와 관련된 많은 논의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진행되었다.1) 이에 반해 촌락 지역을 대상으로 한 답사 사례는 도시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었고, 그중 대부분은 자연지리 주제로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2) 그러므로 농산어촌 지역에서 지리답사를 실천하는 사례 연구가 이전보다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시도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도시 주민들은 농촌을 자연적, 전원적・전통적・향수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강마야 등(역), 2016, 29-42; 권상철 등(역), 2014, 210-221). 그래서 지리 수업에서 답사를 통해 농촌의 현실과 현장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농촌이 위치하는 지형적 환경으로서 하천과 범람원, 벼농사・밭농사 등 관개 농업을 지원하는 수리체계, 농촌 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리적 특성 등을 본 연구의 주요한 답사 주제로 다루고자 한다.
본 연구는 농촌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리 수업 시간에 학교 주변 지역을 답사하는 활동과 그 결과를 논의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농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농촌 출신자가 많겠지만, 본 연구의 대상 학교는 특수목적고등학교로서 농촌 지역에 있더라도 도시 출신의 학생들이 대부분 진학하고 있다.3) 그래서 학생들은 친숙한 집 주변과 달리 학교 주변을 낯선 미지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농촌과 농업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농업・농촌 체험의 경험이 없는 도시 출신자에게 특히 높게 나타나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부혜진 등, 2018, 59). 이러한 상황에서 지리답사는 학생들이 학교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 지역을 지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교육적으로 매우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다(이간용, 2016; 임은진, 2009). 그리고 1~2시간 수업 시간 내에 도보로 학교 주변 지역을 답사할 수 있도록 기획함으로써 교육 현장에서 지리답사를 제약하는 시간적・거리적・비용적 부담을 완화하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의미도 있다(오선민・이종원, 2014).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농촌에서 자연지리와 인문지리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지리답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지리 분야에 다소 치우친 선행연구의 한계를 보완하고, 융복합적이며 종합적인 지리학의 학문적 성격을 반영하는 시도이다. 둘째, 농촌에서 수행한 지리답사에서 의미 있는 지리교육의 내용과 활동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 연구가 농촌 학교를 비롯하여 농촌에서 답사를 계획하려는 다른 학교들에게 유용한 콘텐츠와 방법론을 제안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셋째, 농촌에서 지리답사의 실천 사례를 통해 도출된 시사점을 논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할 주제로 학교 주변 지리답사에 대한 관심의 필요, 지리답사 장소로서 농촌 지역의 매력, 지리답사에서 지리적 관계성의 고려, 지리답사를 통한 개인 지리의 형성 등을 제시한다.
2. 지리답사의 실천
1) 답사 프로그램의 내용과 활동
지리답사는 경남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에서 연구자의 수업을 수강하는 1학년과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었다. 1학년 학생은 통합사회 과목에서 2단원 ‘자연환경과 인간’의 성취기준 ‘[10통사02-01] 자연환경이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조사하여 분석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시민의 권리에 대해 파악한다.’에 근거하고, 3학년 학생은 세계지리 과목에서 2단원 ‘세계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의 성취기준 ‘[12세지02-02] 온대 동안 기후와 온대 서안 기후의 특징 및 요인을 서로 비교하고, 이러한 기후 환경에 적응한 인간 생활의 모습을 파악한다.’에 근거하여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지리답사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교육부, 2018, 125, 179).
통합사회에서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의 방식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대응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장학습을 통해 답사 지역의 기후와 지형적 조건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탐구해 볼 수 있다. 세계지리에서는 세계 각 국가나 권역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일반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장학습을 통해 학교 밖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온대 기후 경관, 하천 지형 경관, 인문 경관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 관계성을 탐구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목표, 학습 요소 등에 따라 지리답사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과 활동을 구성하였고, 수업 상황과 답사 지역 등에 맞추어 이동 경로를 조직하였다.
지리답사의 유형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자율과 의존 정도에 따라, 그리고 관찰과 참여 정도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이 있고(Kent et al., 1997; Panelli and Welch, 2005), 교사 중심과 학생 중심에 따라, 그리고 계량화(quantification)와 정의적 학습(affective learning)에 대한 강조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Job, 1999; Kitchen and Maddison, 2021). 본 답사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과 활동을 지리답사의 유형에 따라 분류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리체계와 홍수 방지 시설, 농촌 마을의 유래와 입지 등을 이해하는 활동은 학생들이 교사의 설명에 의존하여 주로 관찰하는 ‘현지 수학여행(field excursion)’ 유형에 속한다. 둘째, 학생들이 지도 읽기를 통해 공간을 인식하는 능력을 키우고, 하천의 본류와 지류 관계를 이해하며, 범람원의 형성 과정을 현장에서 지리적 상상력으로 확인하는 것은 ‘가설검증(hypothesis testing)’에 기반한 유형에 속한다. 그리고 답사 도중에 초점화된 제방 밖의 범람원을 파악하는 주제는 학생 주도적인 역할이 더 강화된 가설검증 유형에 해당한다. 셋째, 하도 규모와 하천의 크기 관계, 범람원의 토지이용 현황, 옛 마을 지명의 의미와 변화 등에 대한 탐색은 교사가 이미 정해준 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지만, 학생들의 단순한 관찰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인 참여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프로젝트(project)’ 유형에 속한다. 넷째, 축사 옆의 흰색 더미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은 학생들이 지리적 질문을 구체화하고 여러 단서를 수집하여 결과를 설명하는 ‘탐구 답사(enquiry fieldwork)’ 유형에 속한다. 다섯째, 주변 환경 속에서 동식물을 찾아보거나 답사 중에 드는 생각이나 느낌을 기록하는 활동은 학생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경관을 발견하고 조사하는 것이므로 ‘조사 답사(discovery fieldwork)’ 유형에 속한다. 여섯째, 학생들이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촉진하는 활동은 학생들의 자율성, 참여, 정의적 학습 등에 기반한 ‘감각적 답사(sensory fieldwork)’ 유형에 속한다.
이와 같이 본 답사 프로그램에는 여러 가지 지리답사의 유형으로 분류되는 내용과 활동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 지리답사 유형을 구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답사의 유의미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답사의 교수・학습 전략을 효과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이종원, 2020; 조철기, 2022, 544-553). 이에 따라 답사 내용과 활동을 고안할 때, 제반 조건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교사 중심과 학생 중심, 자율과 의존 정도 등에서 적절한 수준을 결정하였다.
특히, 답사 지역의 농촌이 처한 현실과 현장을 학생들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하천과 범람원의 지형적 환경, 관개 농업을 위한 수리체계, 농촌 마을의 지리적 특성에 중점을 둔 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본 답사의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지리학자의 농촌 지역 답사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지리를 배우는 학생들의 농촌 지역 답사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주제라고 판단된다. 학습 요소 측면에서 살펴보면, 본류와 지류, 하도 규모, 하상계수, 범람원, 관개 시설, 배수 시설, 홍수 방지 시설, 면・리 행정 구역, 지명의 유래, 집성촌, 배산임수, 인구 고령화 등은 답사에서 다루어진 주요 개념들인데, 이들은 또한 고등학교 지리 교육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다루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이우평, 2002). 그러므로 답사를 통해 수업이나 교과서에서 학습하는 지리 개념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맥락화할 수 있게 된다.
2) 답사 프로그램의 구성과 이동 경로
본 연구에서는 Rice and Bulman(2001, 11-38)의 답사 단계(stages of fieldwork)를 참고하여 지리답사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설계 단계에서는 사전 답사를 수행하면서 목적, 내용, 활동, 장소 등을 선택하고, 계획 단계에서는 자료 조사, 경로 및 일정 계획, 지도 전략 수립 등을 진행한다. 실행 단계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사전교육과 현장학습을 실제 운영하고, 결과 분석 및 평가 단계에서는 사후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내용 정리, 활동 성찰, 결론 도출, 소감 작성 등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개발된 답사 프로그램은 크게 사전교육, 현장학습, 사후교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장에 나가기에 앞서, 미리 1시간의 사전교육을 통해 현장학습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제공하였다. 현장학습은 2023년 4월에 진행되었고, 학교 주변의 농촌에서 수행되었다. 현장학습의 시간은 각 학급의 상황에 따라 기본 1시간에서 최대 2시간으로 운영하였다. 사후교육에서는 현장학습을 마친 후,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과 학습한 내용을 정리한 답사 활동지를 완성하고 이를 제출하도록 하였다(그림 1).
사전교육에서는 농촌 지역을 나타내는 행정 구역의 이름(면・리), 하천 지형의 형성 과정, 답사 경로 및 주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해 관심을 키우는 것과 개인 지리(personal geography)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현장학습에서는 지도 읽기와 공간 인식, 하천과 하천 지형, 토지이용 현황, 관개 및 배수 시스템, 홍수 예방 시설, 지리적 관계, 마을 특성, 지명 유래와 변화, 개인 지리 등의 주제에 대해 학습하였다. 답사 중에 학생들은 답사 활동지에 제시된 질문들을 생각하며, 현장에서 발견한 사실을 답하도록 하였다. 또한, 답사 장소를 나타낸 지도와 사진에서 자신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오감을 통해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하며, 순간적인 느낌 등을 포착해 기록하도록 하였다.4)
특히, 답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고취하기 위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미션(mission)을 중심으로 현장학습을 설계하였다. 학생들은 인근 축사(畜舍) 옆의 흰색 더미의 정체를 밝혀내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그림 2). 그것은 거대한 마시멜로(marshmallow)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흰색 비닐로 감싼 건초 더미(bale silage)이다. 또한, 학생들은 누가 그것을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대해서도 탐구해야 했다.
그림 3은 세 개의 주요 코스로 이루어진 답사 지역과 이동 경로를 보여준다. 첫 번째 코스는 학교에서 출발하여 차도(車道)의 보도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다. 두 번째 코스는 차도에서 멀리 떨어진 하천 제방에 도달하는 농로(農路) 위를 걷는 길이다. 세 번째 코스는 제방길을 따라 범람원과 하천 합류부를 관찰할 수 있는 조망점 부근으로 가는 길이다.
첫 번째 코스에서 학생들은 축사 옆에 흰색 더미를 살펴보고, 관련된 미션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보도 위를 걸으면서 지역의 주소와 도로명에 반영된 숨은 의미를 추론하였다. 또한, 길가에 문중(門中) 모임을 알리는 현수막을 발견하고, 해당 마을의 특징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다. 두 번째 코스에서 학생들은 농로를 따라 걸으면서, 논, 밭, 비닐하우스 등 토지이용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그림 4). 그 과정에서 축사 옆에 있었던 흰색 더미와 그것을 만드는 기계 장비(baler)를 논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그림 2). 그리고 배수장의 이름과 제방의 표지석을 단서로 이곳의 옛 지명을 조사하였다. 세 번째 코스에서 학생들은 제방 위에서 하천과 하천 지형을 관찰하였다(그림 4). 이와 함께 관개 시설, 배수 시설, 홍수 예방 시설의 기능적 역할에 대해서도 학습하였다. 그리고 미션 수행의 일환으로 농가(農家)와 축사(畜舍) 간의 상호 의존성을 이해하고, 흰색 더미가 만들어지는 미스터리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3. 지리답사의 결과
1) 지형적 환경
답사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하천은 ‘남강’과 ‘반성천’이다. 남강은 반성천의 본류이고, 반성천은 남강의 지류이다. 그리고 남강은 낙동강의 지류이기도 하다. 제방 위에서 학생들은 반성천이 남강과 합류하는 지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관계를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하천 합류부 근처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다소 멀어 전체 일정이 약 2시간 가까이 소요되므로 모든 학급에서 이렇게 실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드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을 통해 합류부를 간접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이동 시간을 효율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그림 5).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하도 규모는 하천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계절별 강수 패턴은 여름에 집중되어 나타나므로 여름이 되면 다른 계절에 비해 하천 유량이 매우 많아진다. 그러므로 하도 규모가 충분히 커야 여름철 하천 범람을 방지할 수 있다. 특히 하천의 합류부는 퇴적 물질이 많이 쌓여 하상의 높이가 증가하는 데다가 홍수 시 지류에서 본류로 가는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오히려 역류할 위험이 크므로 불어난 하천 유량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하도 규모가 클 필요가 있다(그림 5, 6). 반성천에서도 이와 같은 특성이 잘 나타나므로 학생들은 하천 주변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하였다.
하천 주변에는 농경지로 활용되는 범람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관찰한 범람원은 제방의 안쪽 부분뿐만 아니라 바깥쪽까지도 연장되어 있었다(그림 6). 실제로 제방의 바깥쪽 부분은 하도 영역에 속하여 하천 습지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토지 용도상 전답으로 분류된 사실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과거에는 농경지로 활용되었지만, 현재는 치수 목적상 하도에 편입된 범람원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 7). 학생들은 여기 제방이 없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제방 안팎의 범람원이 어떻게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추론하였다. 이곳에서는 여기 범람원 일대를 평구들, 물안들, 하촌들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었다.
2) 관개 농업을 위한 시설
범람원에서 농경지는 벼가 재배되는 논으로 주로 이용되었고, 일부 비닐하우스가 위치하는 곳에서는 밭작물이 재배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경남 지역의 벼농사는 5~6월경에 논에 모를 심기 시작하여 10~11월경에 추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답사 시점이 모내기 철이 아니라서 아직 논에 벼가 자라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비닐하우스에서는 오이, 고추, 호박 등이 주로 재배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범람원을 농경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리체계(irrigation and drainage system)가 반드시 필요하다. 농업에서 수리체계란, 농사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는 관개 시설(irrigation facilities)과 불필요한 용수를 배출하는 배수 시설(drainage facilities)을 운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홍금수, 2017). 아울러 홍수 방지 시설(flood prevention facilities)도 필요하다. 농경지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 바깥쪽에서 발생하는 하천에 의한 범람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제방 안쪽에서 유입되는 지표수에 의한 침수도 방지해야 한다.
답사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관개 시설은 양수장(irrigation pumping station), 용수로(irrigation channel, 다른 말로 상수로) 등이 있었고, 배수 시설은 배수로(drainage channel, 다른 말로 하수로), 배수장(drainage pumping station), 배수문(drainage gate) 등이 있었다. 양수장은 농경지에 사용할 물을 직접 하천에서 펌프로 끌어오는 시설이다(그림 8). 그리고 이 물을 농경지로 이동시키는 용수로와 농경지에서 사용했거나 불필요한 물을 흘려보내는 배수로가 있다. 배수로와 연결되는 배수장과 배수문은 제방 밖으로 물을 배출하는 시설이다(그림 9).
홍수 방지 시설에는 하천의 범람을 일차적으로 차단하는 인공 제방이 대표적이고, 넓은 의미에서 배수장, 배수문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배수장과 배수문은 배수로에 흐르는 물을 제방 너머로 배출시켜 제방 내 농경지의 침수를 방지해준다. 일반적으로 범람원은 주변보다 저지대이기 때문에 사방에서 모여드는 지표수에 의해 침수가 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그래서 여러 곳에 배수문을 설치하거나 배수장의 펌프를 가동시켜 제방 안에 모인 물을 신속하게 밖으로 배출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현장에서 수리체계와 홍수 방지 시설을 직접 관찰하며 이들의 기능적 역할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비록 모든 시설이 가동 중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각각의 작동 원리에 대한 교사의 설명을 통해 범람원에서 이루어지는 관개와 배수의 전체적인 과정을 구조화할 수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관개 농업을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과정과 이에 필요한 시설들을 세세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다.
3) 농촌 마을의 특성
사전교육에서 학생들은 농촌의 행정 구역을 이해하는 시간을 미리 가졌다. 우리나라에서 촌락의 행정구역은 ‘면’과 ‘리’로 대표되는데, 이곳의 우편 주소가 ‘진성면 가진리’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답사 중에 배수장의 이름과 제방의 표지석에서 ‘하촌’이라는 단어를 발견하였다(그림 9, 10). 이 단어의 정체는 이곳의 옛 지명이었다. 학생들은 직접 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지명의 의미와 나중에 지명이 변경된 이유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촌(下村)’은 한자어로 낮은 지대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기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지명이 암시하는 부정적 어감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가진’이라는 이름으로 지명을 변경했는데, 이는 ‘가좌마을’과 ‘진동마을’로 구획된 마을 이름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새롭게 만든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지명마다 부여된 고유한 의미가 있고, 지명의 변화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였다.
우리나라의 자연 마을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조건으로 입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입지 조건은 전통 지리 사상으로 알려진 풍수지리(風水地理)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산에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를 얻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에 유리한 입지 조건이 선호되었다. 여기 마을에서도 배후에는 ‘월아산’ 산기슭에 위치하고, 정면에는 반성천과 남강에 면해 있었다. 이러한 입지 조건을 현장에서 관찰하면서 마을의 구성원과 입지 조건에 대해 학생들과 논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연 마을은 대게 집성촌(集姓村)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도 ‘김녕김씨(金寧金氏)’ 중심의 집성촌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답사 경로에서 문중 모임을 안내하는 현수막을 발견하여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다(그림 11).
이번 답사의 미션과도 관련 있는 흰색 더미의 제작 미스터리를 농가와 축사의 상호 의존 관계에서 탐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촌락은 현재 고령화 현상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촌락에서도 농가에서 필요로 하는 작업인 모내기, 추수 등의 작업을 주변의 축사에서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 반대급부로 축사는 건초 더미의 재료인 볏짚을 얻고, 농한기 때는 논에 사료용 풀을 재배하여 나중에 그 풀을 가져가기도 하였다. 이렇게 농가와 축사는 각자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사료를 서로 교환하며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주변에 축사가 많은 이유는 인근에 고속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한 조건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4. 논의
1) 학교 주변 지리답사에 대한 관심의 필요
지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핵심 개념을 가장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최적의 답사 장소로 선호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여러 사례 중에서 대표적이거나 전형적인 사례를 우선시하는 경향은 우리가 ‘원형’을 중시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만약 답사의 목적이 원형을 찾아 나서야 한다면, 답사 장소의 물색부터 쉽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일 것이다(Fryer, 2022). 만약 답사의 목적이 ‘실례’를 획득하고 확장하는 데 있다면, 답사는 학생의 일상생활의 공간인 집이나 학교 주변에서부터 가볍게 시작될 수 있다.
개념 학습 이론에 의하면, 원형(prototype)은 개념의 속성들이 평균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를 추상화시킨 것이다(조철기, 2022, 366-367). 다시 말하자면, 원형은 재구성된 이상적인 이미지(idealized image) 또는 전형성(typicality)이 높은 최적의 예(best example)라고 할 수 있다(모경환・차경수, 2021, 198). 이러한 원형의 예시로 버제스(E. W. Burgess)의 동심원 모델 속 중심지나 세계의 상업・금융・문화의 중심지로서 미국 뉴욕 맨해튼 등을 들 수 있다. 어떤 대상이나 사례들이 특정한 원형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에 따라 그 개념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실례(exemplar)는 개인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기억하는 사례이다(조철기, 2022, 367-368). 만약 어떤 산을 인식한다고 할 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리산・남산・한라산 등의 사례들, 즉 실례와 비교하여 ‘산’이라는 개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실례는 개념에 대한 긍정적 사례인 예(example)와 부정적 사례인 예가 아닌 것(nonexample)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다른 사례들과 혼동하지 않고 해당 개념을 분명하게 식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리답사는 학생들의 직접적인 경험이 수반되는 활동이므로 실례를 통한 개념 학습의 측면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학교 주변 지역에 대한 답사의 중요성과 장점을 강조하는 논의의 흐름도 이와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변종민, 2022; 이호욱, 2024; 임은진, 2009). 첫째, 답사를 통해 학생들이 생활하는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고취할 수 있다. 일상 지리(everyday geography)를 실천함으로써 이론 위주의 지리 수업이 아니라 학생의 생활 환경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실제적 내용으로 지리 수업을 구성할 수 있다(Greenwood, 2019). 흔히 일상적인 장소는 학생들에게 친숙함을 주어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나 흥미 유발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정이 나타날 수 있다(조상균, 2008, 85-86). 둘째, 답사에 수반되는 시간적・거리적・비용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별도로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방과후학교의 시수 확보 없이도 기존 수업 시간 안에서 지리답사의 기획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본다면, 답사는 지리 수업의 고유한 활동 영역으로 언제든 수시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현재보다 더 활성화할 수 있는 여지가 확대되는 것이다.
2) 지리답사 장소로서 농촌 지역의 매력
그동안 지리답사 장소를 찾는다면, 도시 지역에서 이를 탐색하는 경우가 많았다(김민성, 2022; 류주현, 2012; 박선영・김영호, 2019; 박철웅, 2014; 변종민, 2022; 양희경, 2003). 선행 연구에서 연구자와 답사 참여자들이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지역의 답사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게 된 점은 필연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 “도시는 볼만한 장소가 많지만, 촌락은 볼 게 적다.”라고 오해하는 지역적 편견도 여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촌락에서도 지리 학습 프로그램으로 개발이 가능한 잠재적인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동안 촌락에서 수행된 답사 관련 연구는 인문지리 분야에서도 시도되었지만(이종원・오선민, 2016; 임은진, 2011), 대부분 자연지리 분야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이민부 등, 2014; 이종원 등, 2017; 이종원・허소정, 2018). 사실 촌락 공간은 도시에 비해 자연환경이 개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농산어촌 지역은 기후・지형・토양・생물지리 등에 특화된 답사 장소로서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촌락에서는 기존의 자연지리 중심의 답사뿐만 아니라 자연지리와 인문지리의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답사를 구성해 볼 여지도 많다(이건학, 2014).
본 연구의 답사에서 다룬 다양한 내용과 활동들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자연지리 영역을 살펴보면, 남강과 반성천의 모습과 그 두 하천의 합류부를 관찰하면서 우리나라 강수 패턴과 유량(流量)의 계절차, 유수(流水)와 하도(河道) 규모의 관계, 하천 본류(本流)와 지류(支流)의 관계 등을 탐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천 주변에 나타나는 경작지를 관찰하면서 범람원의 형성 과정, 범람원의 토질(土質)과 토지이용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었다. 또한, 농촌은 도시보다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이점이 크다. 답사지 주변에서 백로, 물까치, 큰줄흰나비, 암먹부전나비, 송엽국, 할미꽃, 버드나무, 아까시나무 등 각종 조류, 곤충, 풀, 나무 등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었다.5)
다음으로 인문지리 영역에서는 농촌의 경작지와 주거지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는 답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 경작지에서 나타나는 관개 시설, 배수 시설, 홍수 예방 시설 등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탐색함으로써 관개 농업과 관련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양수장・배수장・용수로・배수로・배수문 등의 시설을 직접 확인하고, 관개용수를 어떻게 하천에서부터 끌어와서 배수문을 통해 다시 하천으로 배출하는지의 전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논과 비닐하우스에서의 농사 방법과 재배 작물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에서 강조하는 명당의 원리를 인근 마을의 입지 조건에 적용해 보았으며, 마을이 들어설 때 시작된 집성촌의 특징을 확인하였고, 마을 지명의 생성과 변화, 농가와 축사의 상호 의존 관계 등에 관해서도 탐구하였다.
3) 지리답사에서 지리적 관계성의 고려
최근 관계성(relationality)의 개념이 인문, 사회과학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김숙진, 2016; 박경환, 2014). 본 연구에서도 관계성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답사 주제와 활동을 모색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사례로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 건초더미를 매개로 한 농가와 축사의 상호 의존, 오감을 통한 자연과의 교감 등이 있었다. 먼저, 답사를 통해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곳의 자연환경은 하천과 범람원의 지형적 조건을 마련해 주었고, 인간은 수리체계를 통해 자연환경을 개발하여 다양한 농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인간과 자연환경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촌락 경관을 형성해 가는데, 여기에서도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지리적 관계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촌락의 고령화 현상으로 농가에서는 농경에 필요한 노동력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곳에서도 비교적 젊은 세대로 간주되는 50~60대가 고령 세대의 논밭에 농사를 대신 지어주고, 수확물을 소유자와 나눠 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한편, 주변에는 축사가 다수 분포하고 있는데, 남해고속도로의 진성 IC가 가까이에 있어 운송이 편리한 점과 크게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축산업에서는 가축에게 먹일 질 좋은 사료의 확보와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의 절감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답사 지역에서도 축산 관련 종사자가 농가의 논에서 땅을 일구는 작업, 모내기 작업, 추수 작업 등을 대신해 주고 볏짚을 가져가거나, 축사에서 발생하는 가축의 배설물을 경작지에 퇴비로 제공하고 휴경기에 사료용 풀을 재배해 가져가는 등 농가와 축사 간에 상호 유기적인 협력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오감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활동도 지리적 관계성을 직접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박경환 등(역), 2015, 190-212; Clarke and Witt, 2022; Tombling, 2023). 답사에서는 시각 중심의 활동이 일반적이지만, 미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통해서도 주변 환경을 느껴볼 수 있게 답사를 기획하였다. 학생들이 답사 활동지에 기록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었다. 첫째, 청각으로 경험한 자연에는 강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멧비둘기나 까치 등의 새소리, 축사의 소 울음소리, 바람소리, 풀을 밟을 때 나는 소리, 풀숲에서 나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가랑비가 몸에 떨어지는 소리, 주위가 조용한 한적함 등이 있었다. 둘째, 후각으로 경험한 자연에는 꽃향기, 풀냄새, 흙냄새, 물냄새, 비냄새, 축사에서 전해지는 소똥 냄새 등이 있었다. 셋째, 촉각으로 경험한 자연에는 나무나 풀을 만질 때 느껴지는 질감, 따사로운 햇볕,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 비가 내리기 전의 습한 공기, 가끔 벌레와의 불쾌한 접촉, 풀에서 나온 끈적한 진액, 단단한 제방 표지석, 길가에 떨어진 벚꽃 위로 걸을 때 느껴지는 푹신함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학생들은 오감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관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지리답사를 통한 개인 지리의 형성
학생들은 지리답사를 통해 답사 지역의 심상 지도(mental map)를 가지게 되고, 인지적・정서적인 경험을 성찰하면서 주관적인 장소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 개인마다 개인 지리(personal geography)가 형성될 수 있다. 개인 지리는 학교나 교과의 공식적인 교육 내용이 아니라 사적으로 형성된 지식 체계로서 개인이 인지하고 있거나 체득한 지리적 내용의 총체를 의미한다(서태열, 2005; 이경한 역, 1999). 그러므로 답사에서 배운 것과 느낀 것들은 모두 학생들에게 각자 개인 지리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박철웅, 2014). 이렇게 형성된 개인 지리는 이후에 지리 수업이나 지리 콘텐츠 등을 수용하는 태도나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지리 학습과 인식 정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주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부혜진 등, 2018; 이간용, 2016).
그동안 연구자가 담당한 지리 수업에서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수업은 답사 시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동안 학기를 마치고 수업 평가를 하거나 졸업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답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답사를 통해 형성된 긍정적인 개인 지리는 지리 수업이나 지리 과목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지리 수업에서 답사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은 학생들의 개인 지리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리교육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답사 활동지에 기록한 내용을 중심으로 답사에 대한 생각과 소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학교 건물 안이나 교실에서만 머물다가 야외에서 수업을 하니 기분 전환이 된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둘째, 평소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경관들 속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는 반응이다. 셋째, 학교 주변이 예전과 다르게 친숙하게 느껴졌다는 반응이다. 넷째, 농촌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벗어나 인식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반응이다. 다섯째, 답사를 통해 지리적 현상에 관심이 더 많아졌고, 지리에 대한 이해력도 향상되었다는 반응이다. 학생들의 기록 중 일부 내용을 직접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만 하며 학교 안에서 나가지 못하다가 이렇게 밖에 나가서 공기도 쐬게 되어 상쾌했다. 우리나라 농촌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답사를 하며 여러 가지를 알게 되어 신기했고 뿌듯했다.” (학생 1)
“2년 동안 있으면서도 주변에 무엇이 있고, 어떤 강이 흐르고, 마을 이름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지리 시간을 통해서 답답한 학교생활에서 숨도 트고 그동안 지내온 공간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서 힘은 들었지만 매우 유익했던 시간이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생 2)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지형이나 시설 하나하나에도 각각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설들을 알면 알수록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학생 3)
“우리 주변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자세히 보면 저마다 의미와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주변 시설물이나 지형 등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었는데, 새로운 지식들을 많이 알 수 있어 유익하였다.” (학생 4)
“환경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고 그 존재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또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모두 쓸모 있고 상호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학생 5)
“우리 학교가 그저 농촌에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마을의 이름을 알아보고, 거리에 있는 건물의 용도를 알고, 주변 지리에 대해 알아보니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더 정이 가고, 바깥의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학생 6)
5. 결론
본 연구는 경남의 농촌 지역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지리답사를 실천하며 경험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답사 결과를 확인하고, 여기에서 도출된 시사점을 논의하였다. 지형적 환경, 관개 농업을 위한 시설, 농촌 마을의 특성을 중심으로 자연지리와 인문지리 분야를 포함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를 통해 농촌 학교 주변에서 시도할 수 있는 지리답사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답사 결과에서 확인된 유의미한 내용과 활동은 군 단위의 행정 구역에 있는 380여 개의 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농촌에서 답사를 계획하려는 다른 학교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6) 또한, 본 연구의 답사는 학습자가 농촌이라는 생활 공간에서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지리적 개념을 학습하는 지역학습의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다.
답사에서 도출된 주요 시사점을 살펴보면, 첫째, 학교 주변 지역에 대한 답사는 실례를 통한 개념 학습의 측면에서 유익하며, 일상 지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답사에 수반되는 여러 부담들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둘째, 농촌은 지리답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자연지리와 인문지리의 주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셋째, 답사에서 건초더미를 매개로 한 농가와 축사의 상호 의존, 오감을 통한 자연과의 교감 등의 사례를 통해 지리적 관계성을 논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답사에서 인지적・정서적 경험과 장소감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개인 지리를 형성할 수 있다.
지리답사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은 교사의 경험・관심사・역량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박경환 등(역), 2015; 부혜진 등, 2018). 본 연구의 답사에서도 연구자의 경험, 관심사, 지리적 이해 수준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문화지리와 문화지리교육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촌락지리, 농업지리와 관련된 문헌을 많이 접했던 경험들이 농촌을 대상으로 한 지리답사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교육현장에서 답사를 포함한 수업의 효과성과 다양성은 이를 지도하는 교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조철기, 2022, 338-339).
따라서 학계에서는 지리답사에 대한 논의가 더 활성화되고, 교사들의 모임에서도 지리답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직무연수의 개발 및 운영을 대학에서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면 좋을 것이다. 대학 학과의 세부 전공별로 전공자들이 교사 연수를 담당한다면, 해당 연수가 학계의 우수한 연구 성과들이 교육 현장에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지원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러한 교사의 역량을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조건 중에 하나가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지리답사가 지리 과목의 내용 및 방법에서 그 비중이 크지 않아 답사를 위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며, 그나마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지리답사를 운영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교사가 준비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실행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오선민・이종원, 2014). 본 연구에서도 부족한 수업 시간을 할애해 답사를 운영하다 보니 최대 1~2차시 안에 전체 활동을 마무리해야 해서 농촌 이해에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수리체계와 홍수 방지 시설 등에 대한 학습을 교사의 설명 위주로 진행한 점은 본 연구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2022 교육과정’에서 진로 선택 과목으로 ‘한국지리 탐구’가 신설되는데, 해당 과목을 학습하는 주요 방법으로서 지리정보기술과 야외조사(지리답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교육부, 2022, 167-168). 한국지리 탐구에서는 다양한 지리적 질문에 대하여 지리답사를 통해 근거를 수집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탐구 과정을 이전보다 더 용이하게 지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리답사를 운영하는 데 충분한 시량을 확보할 수 있어 프로젝트・탐구・조사 등의 답사 유형으로 내용과 활동을 구성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지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설되는 한국지리 탐구 과목의 구체적인 지도 내용과 방법을 내실 있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