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크라스(Kras) 지방의 지리적 개관 및 답사 경로
3. ‘크라스(Kras)’의 지명 정체성(toponym identity)
1) ‘크라스(Kras)’와 ‘카르스트(Karst 및 karst)’의 관계
2) ‘크라스(Kras)’의 지명 정체성 구현
4. 크라스(Kras) 지방의 경관 정체성(landscape identity) 형성과 변화
1) 크라스(Kras) 지방의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
2) 크라스 지방의 식생 및 석전(石田) 경관의 변화
5. 요약 및 결론
1. 서론
‘카르스트(Karst 혹은 karst)’는 지리학 및 지리교육학을 비롯한 인접 학문 분야의 연구자와 관련자는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대표적인 지리 용어의 하나이다. 또한 중등학교 지리교육과정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체계적으로 다뤄지고(교육부, 2015), 학생들에게도 흥미도 높은 주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카르스트는 ‘지리’를 연상하고, ‘지리’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그 정체성 확보에 적지 않게 기여한다고 하겠다.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 지방은 바로 이 ‘카르스트’와 관계 깊은 곳이다. 따라서 크라스 지방에 얽힌 여러 지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지리의 학문 및 교육 공동체에게 매우 유용한 배경지식이 될 것이다. 그러함에도 국내의 경우, 크라스 지방을 단순히 언급만 하거나 혹은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몇 편의 논문이 있을 뿐(임근욱・진현식, 2009; 박희두, 2015; 안지영, 2016; 이혁진・김경님, 2019),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할 깊이 있는 연구는 거의 없는 듯하다. 특히 국외의 여러 최신의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 문헌에 토대하여 ‘카르스트’의 기원과 변천, 경관 특성 등에 대하여 미흡한 소개나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아쉬움이 크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카르스트’와 관계가 깊은 슬로베니아의 Kras 지방에 대한 지리학적 연구의 일환(一環)으로서, 먼저 이 지방의 지명(toponym) 및 경관(landscape) 정체성의 형성과 변화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차후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의 독특한 관계 등을 비롯한 여러 의미 있는 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첫째, 크라스 지방의 지명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Kras’와 ‘K(k)arst’ 간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 아울러 최근 ‘Kras’의 지명 정체성 구현 노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크라스 지방의 경관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그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최근의 경관적 변화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는 문헌 연구와 현지답사가 병행되었다. 현지답사는 2022. 07. 30. - 31.에 걸쳐 행해졌으며 크라스 지방 소재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자료를 직접 수집, 관찰, 촬영, 기록 하는 등의 활동이 동반되었다. 문헌 연구로서 답사 이전에 구글 맵과 크라스 지방의 여러 관광 안내 홈페이지를 두 달여에 걸쳐 탐색하였고, 답사 이후에는 슬로베니아 지리학자들의 크라스 지방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검토하였다. 한 가지 미리 밝혀둘 점은 본 논문에 등장하는 생소한 지명 표기의 경우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에 따르되, 그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되지 않는 지명들은 현지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였다. 아울러 소문자 ‘karst’는 학술용어를, 대문자 ‘Karst’는 지명을 지칭할 때, 그리고 양자를 통칭할 경우는 ‘카르스트(혹은 맥락에 따라 강조를 위해 ‘K(k)arst)’로 쓰고자 한다.
2. 크라스(Kras) 지방의 지리적 개관 및 답사 경로
이 장에서는 본 연구 내용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위해 크라스 지방의 자연 및 인문 특성을 간략히 개관하고, 아울러 답사 여정과 장소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크라스 지방은 슬로베니아의 남서부,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하며(그림 1의 좌측 지도), 면적 약 440㎢, 해발고도 200-600m의 고원으로서(그림 1의 우측 지도), 지세는 전체적으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가면서 점차 높아진다(Kranjc et al., 1999)(그림 2). 이 지방에는 1,500개 이상의 동굴이 분포하여 평균 2개/㎢의 밀도를 보이는데, 그 중 슈코찬(Škocjan) 동굴은 최대 규모(총길이 5.8㎞)로서 유네스코 자연 및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지질은 대개 백악기 및 제4기의 석회암과 돌로마이트로 구성된다(Kovačič and Ravbar, 2005).
이 지방의 기후는 지중해성(Cs)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연평균 강수량은 1,417~1,683mm이고, 11월에 최다, 7월에 최소의 강수량 분포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10.6~ 11.7℃이고, 최난월은 7월(평균 19.8~21℃), 최한월은 1월(평균 1.6~2.8℃)이다. 이 지역의 유명한 지역풍인 보라(bora, 슬로베니아어로는 burja)는 치내리 바람(fall wind)으로서 주로 겨울철에 빈번하며, 평균 풍속은 19km/h, 돌풍의 평균 강도는 70-90.5km/h, 최대 풍속은 170km/h에 이르기도 하여 인간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Wilfling and Mayrhofer, 2002).
인구밀도는 약 44명/㎢로서 희박한 편이다. 세쟈나(Sežana)는 행정 및 문화 중심지, 디바차(Divača)는 철도 교통의 요지(Kovačič and Ravbar, 2005), 이탈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리피차(Lipica)는 레저 관광의 중심지이다. 전통적으로 슬로베니아 민족이 주류를 이루지만, 주민의 1/5은 이탈리아어를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https://en.wikipedia.org/wiki/Karst_Plateau).
한편, 위 크라스 지방의 답사 활동을 위한 주요 이동 경로를 간략히 제시하면, 대략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E70)-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A2)-슬로베니아의 류블랴냐-(E61)-포스토이나(Postojna)-아이도브슈치나(Ajdovščina)-크라스(Kras) 지방으로 이어졌다. 답사 지역은 포스토이나의 플라니나 폴리예(Planina polje) 일대, 아이도브슈치나의 비파브스카 돌리나(Vipavska dolina) 일대, 그리고 크라스 지방 일대였다. 이 중에서 본 연구와 관련한 주요 이동 경로와 답사 장소는 크라즐예(Kazlje)-포니크베(Ponikve)-코브딜리(Kobdilj)-슈탄옐(Štanjel)-코브예글라바(Kobjeglava)-코멘(Komen)-볼취이 그라드(Volčji Grad)-셰풀예(Šepulje)-크리쥐(Križ)-세쟈나(Sežana)-Lipica(리피차)-Divača(디바차)의 순었다(그림 2).
3. ‘크라스(Kras)’의 지명 정체성(toponym identity)
이 장에서는 크라스(Kras)의 지명 정체성과 관련하여, 어원과 그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Kras’와 ‘K(k)arst’ 간 관계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카르스트의 어원 설명에 대한 국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Kras’의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최근의 학술적, 지역적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크라스(Kras)’와 ‘카르스트(Karst 및 karst)’의 관계
현재 국제적인 학술용어로 통용되는 ‘카르스트’가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라는 지명(toponym)과 관련이 깊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카르스트의 기원과 변천 과정에 대하여 명료하지 않거나, 혹은 미흡한 설명이 여전한 것 같다. 이에 최근의 여러 연구에 기초하여(Gams, 1993; Kranjc, 1997, 2001, 2011), ‘크라스(Kras)’와 ‘카르스트(Karst 및 karst)’ 간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밝혀보기로 한다.
크라스 지방은 기원전에는 일리리언(Ilyrian) 족들이 정착하였으나, 기원전 대략 2세기 말부터 로마의 지배로 들어갔다. 로마 지배 이전의 원래 지명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로마 시대에 들어 ‘카르수스(Carsus)’라는 말로 라틴어화 하였다. 이는 ‘Karus-’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Ptolemy가 인용했다던 이 지명의 그리스어 버전인 ‘Kar(u)sádios oros’를 통해서도 뒷받침 된다(Snoj, 2009; Kranjc, 2011에서 재인용).
‘Karus’는 돌이나 바위를 뜻하는 선(先) 인도-유럽어 ‘kar(r)a/gar(r)’로부터 기원하였다. 이 어근은 현재도 유럽 전역의 지명에 살아 있는데, ‘바위’를 뜻하는 아일랜드 게일어 ‘carraig’, ‘바위 위에’를 의미하는 프랑스 도시 ‘Carcassonne’가 그 예이다(Kranjc, 1997). Alessio(1935)에 따르면(Kranjc, 2011에서 재인용), ‘kal-’, ‘gal-’, ‘ka-’, ‘gar-’와 함께 나중에 자음이 탈락하면서 ‘al-’, ‘ar-’, 나아가 그리스 말에서 ‘l-’ 혹은 ‘r-’도 모두 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kl-’, ‘gl-’, ‘kr-’, ‘gr-’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Rostaing(1974)의 주장을 빌리면(Kranjc, 2011에서 재인용), ‘kal-’이 기본적으로는 돌을 의미하지만, 나중에는 돌로 만든 집, 나아가 집, 요새나 마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프랑스의 ‘Challes’, ‘Chalo’, ‘Caille’가 그 예이고, 석회암 고원인 ‘Causses’나 ‘La Cra’, ‘La Crai’도 ‘kal-’에 기원을 둔다는 것이다. ‘카렌(karren)’이라는 지형학 용어, 슬로베니아에 소재하는 ‘Karavanke’ 산맥도 마찬가지이다(Kranjc, 2011). 이처럼 ‘kar-’와 관련된 지명은 유럽의 많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틴어 형태의 ‘Carsus’는 이후 각국의 언어 규칙에 따라 이탈리아어로는 ‘Carso’로, 슬로베니어로는 ‘Kras’로, 독일어로는 ‘Karst’로 각각 변천하였다. 이탈리아어 ‘Carso’의 경우는 ‘Carsus’의 대격형(accusative form)인 ‘Carsum’이 변화한 것이다. 또한 선(先) 슬로베니아어 ‘Kars(u)’도 ‘Carsus’로부터 유래하였다. 이 ‘Kars(u)’는 9세기 초반에 현대형인 ‘Kras’로 변화하는데, 이 시기에 선 슬로베니아어에서 모음과 자음 사이의 ‘r’ 혹은 ‘l’이 모음 앞으로 위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왕을 뜻하는 슬로베니아어 ‘kralj’가 프랑크왕 ‘Karl(Charles)’ 대제(814년 사망)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비슷한 사례가 될 것이다.
독일어 ‘Karst’의 경우는 이탈리아형과 유사한 변천 과정이 수반되었고, ‘s’로 끝나는 단어에 ‘t’를 붙이는 독일어 음운 경향에 따른 것이다. 영어의 ‘ax’와 독일어로 ‘axt’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프톨레미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kars-’라는 어근은 ‘karus’에서 어중음소실(syncope)의 결과로 해석된다(Kranjc, 2011). 이상을 통하여 ‘Carso’, ‘Kras’, 그리고 ‘Karst’는 모두 라틴어 ‘Carsus’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각 언어의 음운변천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곧, 독일어 ‘Karst’는 슬로베니아어 ‘Kras’의 독일식 표현이 아니며, 라틴어 ‘Carsus’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Karst’라는 지명은 16세기에 발간된 여러 지도에 이미 등장하고 있었다는 점은 함의하는 바가 있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지도학자 W. Lazius(1514-1565)가 제작한 지도(1561년)는 ‘Karst’라는 지명을 표기한 최초의 지도로 알려져 있다(그림 3). 그런데 이 지도는 16년 전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Shaw, 2007), 16세기 초반부터 ‘Karst’라는 지명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아울러 이런 소축척지도에서도 표기될 만큼 당시에도 관심이 높은 지역이었음이 확인된다.
17세기 말의 ‘카니올라(Carniola) 지도’에서도 크라스 지방은 ‘Karstia’로 표기된다(그림 4). 이 지도는 석회암 지형 연구 및 슬로베니아 역사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발바소르(J. V. Valvasor, 1641-1693)의 저서 ‘카니올라 공국의 영광(The Glory of Duchy of Carniola, 1689)’에 게재된 것이다. 카니올라는 오늘날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를 말한다. Valvasor는 자신의 저서에서는 ‘Kras’라는 슬로베니아 지명을 언급하였으나, 지도에는 ‘Karstia’로 표기하였다. “지명은 국내(사람) 언어로 표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슬로베니아 지명인 ‘Kras’를 처음으로 표기한 지도는 B. Hacquet가 제작한 지도(1778) 이었다(Kranjc, 2011).
이상을 통하여 ‘Karst’라는 지명은 국내의 일각에서 알려진 것처럼 19세기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늦어도 16세기 초반부터 이미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과 함께 ‘Kras’라는 지명 역시 통용되고 있었다는 점, 따라서 ‘Kras’라는 지명과 ‘Karst’라는 지명이 일찍부터 독자적으로 병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Karst’가 ‘Kras’로부터 파생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어 고유명사인 ‘Karst’가 보통명사인 ‘karst’로, 곧 지명(toponym)이 학술용어(term)로 변천되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16-19세기 동안 유럽의 지정학적 상황은 급변하였는데, 특히 1719년에 트리에스테(Trieste, 그림 1, 2의 지도 참조)가 자유항으로 선포되면서, 중부 및 동부 유럽에서 지중해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는 오늘날의 크라스 지방을 횡단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 지방은 ‘Karst’라는 이름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여러 여행가와 지리학자들은 이곳의 자연현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하였고, 다른 석회암 경관과 비교하는 연구도 시작되었다. 1830년 F. H. Hohenwart는(Kranjc, 2011에서 재인용) ‘포스토이나 동굴 안내서 서문’에 “석회암 지형은 ‘Kras’에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맨 먼저 주장한 사람으로서, “이탈리아 북부의 프리울리(Friuli) 평원으로부터 그리스 섬 케팔로니아(Cephalonia)까지 뻗어 있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크라스 지방의 지형은 19세기 초반에 들어 다수의 지리학자와 지질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본격화하였다. 그리고 당시 안내서나 연구 성과는 모두 독일어로 출판되면서 독일어 ‘Karst’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을 고려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크라스 지방만을 지칭하던 것을 넘어서서 ‘Kasrt’는 점점 더 큰 공간 단위에 활용되거나 지역을 의미하게 되었고, 급기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국제적인 학술용어로서 그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특히, 카르스트를 국제적인 학술용어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학자는 세르비아 지리학회의 창시자이자 석회암 지형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J. Cvijić(1865-1927)이었다(FordJovan, 2007). 비엔나대학에 재직하던 A. Penck의 제자이기도 하였던 그의 학위논문 주제는 ‘카르스트 현상(Das Karstphänomen, 1893)’ 이었다. 논문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카르스트는 이제 ‘지명’을 넘어서서 어떤 ‘현상’을 지칭하게 되었음이 공인된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Kras’ 지방을 지칭하던 독일어 고유명사(Karst)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학술용어로서의 일반명사인 카르스트(karst)가 된 것이다(Kranjc, 2011).
이와 관련하여 국내의 학계나 지형학 전문서에 나타난 ‘카르스트’의 어원이나 유래의 설명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의 여러 전문서나 논문에 나타난 설명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카르스트(Karst)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 유럽과 중동 언어에서 암석을 뜻하는 카르라(Karra)로부터 유래된 이래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카르스(Kars)에서 크라스(Kras)로 통용되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카르서스(Carsus) 혹은 카르소(Carso)로 불리었다. 그 후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o-Hungarian) 제국이 탄생되고 난 19C 중엽 이후 그 명칭은 ‘카르스트’라는 독일말로 변형되어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다.”(한국자연지리연구회, 2000, 363)
“카르스트(Karst)란 용어는 유고슬라비아어의 kras(=stone)에서 유래하였다. …… (중략) …… 카르스트란 용어는 19세기 후반 구유고슬라비아의 지형학자 치비지크(Cvijic, 1885-1927)가 『카르스트 현상 1893』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부터 사용하였다.”(김주환, 2002, 829).”
“카르스트는 슬라브어의 Krs를 독일어로 옮긴 것인데, 이 말은 원래 바위가 널려 있는 황량한 땅을 뜻하지만 구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석회암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권혁재, 2006, 189)
“카르스트(Karst)는 슬로베니아어 크라스(Kras)에서 유래하였고.”(이혁진・김경님, 2019)
최신의 연구에 비추어 볼 때, 위의 인용문 중 최소한 밑줄 친 부분은 정확하지 않거나 혹은 다소 미흡한 설명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특히 정리가 필요한 점은 세 가지이다. ‘Kras’든 ‘Krs’든 그 어근은 슬라브어가 아니라 선(pre) 인도-유럽어의 어근이라는 점, 독일어 ‘Karst’는 슬로베니아어 ‘Kras’의 변형이나 그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 라틴어 ‘Carsus’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점, ‘K(k)arst’라는 학술용어는 19세기 말 이전부터도 이미 사용되었으며 다만 1893년에 이르러 공식화한 의의가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필자는 추후 전문가들의 더욱 정련되고 정확한 설명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잠정적으로 ‘카르스트(Karst 혹은 karst)’라는 학술용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안한다.
“‘카르스트’라는 학술용어는 슬로베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Kras 고원’의 이름과 관련이 깊다. 이 지방의 로마 시대 지명은 ‘Carsus’였는데, 이는 선(先) 인도-유럽어에서 돌이나 바위를 의미하는 ‘kar(r)a/gar(r)-’ 어근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Carsus’ 지명은 이후 각국의 음운변천에 따라 이탈이라어 ‘Carso’, 슬로베니아어 ‘Kras’, 그리고 독일어 ‘Karst’로 각각 변화하였다. 19세기 중엽 이후 ‘Kras’ 고원의 석회암 지형에 대한 체계적인 여러 연구 성과가 당시 주로 독일어로 출판되면서, 이 지방의 이름은 ‘Karst’로 표기되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J. Cvijić의 학위논문 ‘카르스트 현상(Das Karstphänomen, 1893)’은 지명의 지칭을 넘어 전문 용어로 공식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이후 세계 여러 지역의 석회암 지형을 통칭하는 국제적인 학술용어로 자리매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크라스(Kras)’의 지명 정체성 구현
이 절에서는 슬로베니아 ‘Kras’의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학술적, 지역적 활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몇몇 연구자들은 지명이 학술용어가 되는, 곧 유형 지역(type locality, 모식산지<模式産地> 혹은 기준표본산지)의 성격을 지니는 만큼, ‘Kras’ 지방에 대해서는 ‘Klasični Kras(이하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Classical Karst’로 편의상 지칭)’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슬로베니아 카르스트 지형학의 대가인 Gams(1973)는 Classical Karst를 ‘트리에스테와 포스토이나 사이의 지역으로서 카르스트의 특성이 처음 전문적으로 연구된 곳’으로 정의한 바 있고, Shaw(2007)나 Kaligarič and Ivajnšiča(2014) 등을 비롯한 슬로베니아의 많은 지리학자 및 지질학자들은 자신들의 논문에서 각자 이와 유사한 자신들의 정의를 명시하거나 암묵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Classical Karst’의 범위를 트리에스테-포스토이나-리예카(Rijeka), 이른바 카르스트 삼각지대(karst triangle)로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Jones and White, 2012). 크라스 지방에는 없는 폴리예(polje)와 같은 중요한 지형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Kranjc(1997)는 현재 슬로베니아의 ‘디나르 카르스트(Dinaric Karst)’ 전체가 ‘Classical Karst’에 포함되어야 함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카르스트의 전문 용어인 ‘doline’, ‘polje’, ‘ponor’, ‘hum’ 등 다수가 디나르 카르스트 지역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크라스 지방의 리피차에서 1993년 9월에 ‘Classical Karst 국제카르스트 학회(The International Karstological School ‘Classical Karst’)’가 발족된 것은 학술적 측면에서 ‘Kras’의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활동에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Mednarodna Krasoslovna Šola Klasični Kras, 1994). 이 학회는 해마다 정기적인 학술 대회를 개최하는 등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Kras’ 지방은 오늘날 학술적으로는 ‘Klasični Kras(Classical Karst)’로 지칭된다(Kranjc, 1997). 그리고 2015년에 들어 UNESCO에서도 ‘Classical Karst’라는 명칭을 잠정 목록(Tentative List)에 공식 등재하여 그에 대한 설명을 게재하고 있다(https://whc.unesco.org/en/tentativelists/6072/).
이러한 활동들은 카르스트에 대하여 맨 먼저 기술되고, 체계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기리고, 그 원조이자 본고장(home)으로서의 자긍과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으로 여겨진다.
‘Kras’의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지역민 혹은 지역 차원에서도 활발하다. 그 사례로서 크라스 지방 인근의 포스토이나에 소재하는 모 호텔은 ‘Kras’를 상호로 삼고 있었다(그림 5). 또한, 크라스 지방 중앙부의 크리쥐 마을에 입지한 모 식품회사의 로고도 그러하였다(그림 6). 이 회사의 상품 브랜드명에도 지명(Kraški pršuti, Karst prosciutto)이 등장하는데, 이 상품은 2012년에 유럽연합의 지리적 표시제(Kraški pršut PGI, PGI-SI-0417)에 공식적으로 등록되기도 하였다(https://ec.europa.eu).
그리고 크라스 지방 소속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안내 홈페이지의 명칭 역시 ‘Kras’ 지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그림 7). 특히, 그림 8의 좌측에 있는 크라스 지방의 위치 표시 지도는 함의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곧, 이 인덱스 맵은 다수의 전문가와 지역민들의 관점과 의견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때, 이 지도는 전통적인 크라스의 지역적 범위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 ‘Carso’도 함께 표기된 점도 앞서 살펴본 ‘Kras’의 지명 기원과 변천 논의에 비추어 주목된다. 또한 ‘karra’라는 홈페이지 명칭에도 그 ‘Kras’의 어근이 ‘kar(r)a-’ 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역사성과 공간성이 담겼다고 여겨진다.

그림 7.
‘Kras’ 지명 정체성 구현 사례 3(크라스 지방의 여러 관광 안내 홈페이지 명칭) (출처: https://www.visitkras.info/, https://www.mirenkras.si/, https://karra.si/)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크라스 지방의 식당 메뉴 이름과 같은 미시적 차원에서도 그 사례가 발견된다(그림 8). 그림 8의 좌측에 있는 첫 메뉴 이름인 ‘Kraški’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림 8의 네 번째 메뉴인 ‘Karster art-mit Schinken in Teran Soβe, The karst-with ham in teran wine sauce, Carso-con prosciutto in salsa di vino Terrano’에는 영문 표기와 함께 독일어(혹은 영어) ‘Karst’, 이탈리아어 ‘Carso’가 모두 쓰여 있다. 이는 앞서 카르스트의 기원과 변천 과정에 대한 논의에 비추어 의미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명 정체성뿐만 아니라 지명의 기원과 유래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여러 사례를 통해, 슬로베니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Kras’의 지명 정체성을 구현하고 공고화하려는 여러 학술적, 지역적 활동과 노력을 확인할 수 있겠다.
4. 크라스(Kras) 지방의 경관 정체성(landscape identity) 형성과 변화
이 장에서는 크라스 지방의 경관 정체성 형성 및 변화와 관련하여, 먼저 크라스 지방의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 형성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이어 그 정체성 형성의 두 요소인 ‘식생’과 ‘돌밭[石田]’ 경관의 변천 과정을 통하여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의 존립 여부를 논해보고자 한다. 다만, 지면 관계상 석전 경관과 관련한 논의는 간략히 다루고, 차후 후속 연구에서 상세히 다루고 한다.
1) 크라스(Kras) 지방의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
경관 정체성(landscape identity)이란 “어떤 장소에 대한 지각된 독특성(perceived uniqueness of a place)”을 말한다(Stobbelaar and Pedroli, 2011). 크라스 지방은 전통적으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돌투성이의 초원’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다(Kaligarič et al., 2006; Gams, 1993). 그러나 오늘날의 크라스 지방의 경관은 보통의 온대 지방 모습과 다르지 않다(그림 9). 이에 크라스 지방에 대한 경관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변화 과정을 겪어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지방에 대한 실체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크라스 지방에 대한 최초의 기록자인 고대 그리스의 학자 Posidonius(BC 135-50)는 이곳의 동굴 현상을 언급한 바 있었고(Wilfling and Mayrhofer, 2002), 로마 시인 Virgil (BC 70-19)은 “돌이 많고, 마치 폭풍우 바다의 물결과 같이 수많은 언덕이 있는” 땅으로 묘사하였다(Udovč, 2022). 이렇듯 크라스 지방은 일찍부터 동굴이 많은 땅, 석회암 돌이 많은 파랑상(波浪狀)의 구릉지 등 독특한 경관의 땅으로 지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방이 ‘황량한 돌투성이의 땅(이른바, kraška gmajna)’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중엽 이후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간행된 ‘메르카토르 지도(1642)’에 ‘Karstia’라고 명명된 이 지방은 “나무가 전혀 없는” 땅으로 나타난다. 앞 절에서 언급한 Valvasor의 석판화(1689)에는 “탁 트이고 돌이 있는, 나무가 듬성듬성한 초원”으로 묘사된다(그림 10). 또 그의 책에는 “돌투성이이고, 어떤 곳에서는 수 마일까지 멀리 내다보이며, 모든 것이 회색이고 녹색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바위로 덮여있다. 사람들은 물이 부족하였고, …… (중략) …… 경지는 매우 좁다”라고 쓰여 있었다(Kranjc, 1997).
영국의 E. Brown이 1669년에 이 지방을 여행하고 출간한 책(A Brief Account of Some Travels, 1685)은 이 지방에 대한 국제적인 독자층을 이끈 첫 영어판 자료였다. 1백여 년 후 T. Gruber는 포스토이나에서 아드리아해에 이르는 여정을 소개한 책(Letters on Hydrographic and Physical Contents of Carniola, 1789)에는 “나무라고는 없는, 높은 석회암 돌산, 돌 나대지가 바다까지 이어진다”라고 기술했다. 또 1백 년 후에 류블랴나와 트리에스테 간 기차 여행을 소개한 K. Czörnig의 책(The County of Gorizia and Gradisca, 1891)에서는 “문명화한 유럽에서 그토록 헐벗고 나무가 없는 절망적인 풍경의 이미지라니”라고 기술하였다(Kaligarič and Ivajnšiča, 2014). 실제로 그림 11의 두 사진을 통해서도 당시의 경관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17-19세기에 걸쳐 지도의 제작 보급, 교통의 발달에 따른 여행의 증대와 그에 따른 여행기의 저술과 출간, 그리고 출판물의 대중화 등이 맞물리면서 크라스 지방에 대한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이 형성 및 확산하였던 것이다.
2) 크라스 지방의 식생 및 석전(石田) 경관의 변화
앞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돌투성이의 황무지’로 요약되는 크라스 지방의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의 두 핵심적인 요소는 풀밭과 돌밭, 곧, 초원 ‘식생’과 회색 ‘석전’에 대한 이미지가 주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둘 중에서 식생 특성이 경관 정체성의 형성에 더 큰 시각적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밀도 있는 입목(立木)과 쌓인 낙엽이 지표면을 덮거나 가리는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만일 수목이 우거졌더라면, 크라스 지방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생겨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크라스 지방 식생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 형성의 전후 맥락과 함께 최근의 경관적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크라스 지방의 경관은 역사적으로 시대마다 변화를 겪어왔다. 곧, 크라스 지방이 항상 돌투성이의 황무지였던 것은 아니었다. 화분분석 결과, 7,000년 전에는 오크(oak)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 들어 농업과 목축업을 위해 삼림(森林)이 개간되기 시작하였다. 로마 시대에는 오크 숲이 극성기를 맞이하였으나, 당시에도 이미 지표면엔 돌부리가 드러나는 곳이 있었다. 고대 말에서 중세 초까지는 오크 숲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중세 중기에도 여전히 숲은 경작지나 목초지와 공존하고 있었다(Kranjc, 1997; Panjek, 2018). 중세 말에서 14세기까지 다시 확대하던 오크 숲은 14세기 이후 감소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들어 가장 축소되었다. 이처럼 오랜 시기 동안 크라스 지방의 오크 숲은 자연적인 요인으로 최소 3차례에 걸쳐 주기적인 성쇠의 과정을 겪었다(Panjek, 2018).
이와 관련하여 14세기에는 벌목을 금지하는 법적조치와 산지기 제도도 있었다. 그렇지만 14세기 후반부터는 느슨하게 적용되다가 16세기 초에는 초지 조성을 위한 벌목이 다시 합법화된다. 이를 통해서도 당시까지 여전히 오크가 많았다는 점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 역시 식생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흑사병과 오스만의 침공으로 경지의 약 30%까지 방치되었던 크라스 지방은 포도 재배와 함께 16세기 후반부터 경제와 인구가 회복된다. 17세기까지 양과 염소를 위한 개간 사업은 지속되면서 숲은 줄고 목초지는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경작지나 목초지는 점점 더 작은 단위로 구획되고 분할되면서 돌담(zid)도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18세기 후반에 들어 봉건제의 와해와 함께 주민들의 토지 소유와 개간은 가속화하였고(Haddow, 2011), 인구도 증가하였으며, 특히 18세기 트리에스테의 도시 성장과 조선용 및 건축용 목재 보급을 위한 벌목은 삼림 축소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Kaligarič et al., 2006; Udovč, 2022). 그 결과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크라스 지방의 삼림은 별로 남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1830년대 말에 이 지방의 2/3는 목초지(48.5%)였거나 초지(19.5%)였고, 당시 양 37,000, 소 12,000, 돼지 3,500, 말 800마리, 기타 당나귀와 노새 등 인구보다 많은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Panjek, 2018). 초지 확대는 19세기 초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다(Kranjc, 1997; Kaligarič et al., 2006).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중기까지도 크라스 지방은 비교적 밀도 있는 낙엽활엽수림의 식생 경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 지방의 삼림은 자연적 및 인위적 요인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는데,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 시기에 이른바 근대화의 과정과 함께 다수의 외지 여행가와 지리학자들이 크라스 지방을 여행하거나 조사하면서 남긴 기록이 오랫동안 이 지방에 대한 경관 정체성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크라스 지방의 식생 경관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1842년부터 시작되어 1차 세계대전까지 진행되었던 소나무(Pinus nigra) 인공조림 사업은(Panjek, 2018) 이 지방의 식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그림 12). 그 결과 19세기 중반에는 산림(山林) 면적이 7.3% 정도였지만, 1896년엔 21%로 증가했고 1929년에 이르면 약 30%를 넘기게 되었다(Panjek, 2015). 여기에 산업화에 따른 촌락의 인구 감소, 염소사육 금지령의 효과, 양목업에서 낙농업으로의 전환, 연료의 변화 등 여러 생산활동과 생활문화의 변화 효과가 결합하면서(Gams, 1993), ‘회색 석회암 돌부리와 초원의 땅’은 소나무와 관목, 그리고 낙엽활엽수림의 땅으로 점차 변모하게 되었다. 그림 13은 인공조림이 최초로 시작된 장소와 멀지 않은 곳의 현재 산림 모습으로서 그림 12와 비교하면 그 변화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림 14의 좌측 사진은 예전의 방목지와 돌담이 관목을 비롯한 수풀로 덮여가는 모습, 우측은 낙엽활엽수가 현재의 목초지를 점점 잠식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그래서 한때는 크라스 지방 전체의 82%까지 차지했던 초지는 2000년대 이르러 20%로 감소하고, 대신 산림은 73%로 증가하였다. 장기 예측 결과 2100년까지 초지는 3%, 산림은 90%까지 증가할 것이며(Kaligarič and Ivajnšiča, 2014), 이러한 초지 감소, 삼림 증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오늘날 이 지방은 전체적으로 오크 숲 중심의 옛 식생으로 복원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15는 과거 전형적인 목초지 혹은 방목지였던 곳으로서 현재는 ‘카르스트 생태 박물관(Živi Muzej Krasa)’으로 지정된 곳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 사진에서 길을 사이에 두고 좌측은 낙엽활엽수 자연림이, 우측엔 침엽수 인공림이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서도 소나무 숲 사이에서 생육하고 있는 낙엽활엽수의 모습은 오늘날 크라스 지방의 식생 변화와 그에 따른 경관 변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상의 논의와 관련하여 17-19세기의 크라스 지방의 경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환경과 인간 활동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Panjek(2018)는 인위적 혹은 문화적 사바나(man-made 혹은 cultural savannah)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민의 일방적인 삼림 착취와 훼손이 아니라, 땔감과 가축의 먹이 등을 위해 관목림(macchia)을 조장하는 등 나름대로 지속 가능한 관리와 이용, 자신들의 생산활동에 적합한 방식으로 유지 관리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곧, 단순히 주민들의 무지에 의한 삼림 파괴의 결과로서만 이해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인간의 간섭이 줄어들면서 옛 식생으로의 복원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그림 13, 14, 15). 그런 점에서 크라스의 식생 변천 사례는 ‘인간은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인자이고, 자연은 능동적인 주체의 역할을 한다’는 최근의 인간-환경 간 관계의 관점을 뒷받침한다고 하겠다(Panjek(2018).
한편, 크라스 지방에 대한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 형성의 두 번째 요소인 회색의 ‘돌밭[石田]’ 경관의 변화와 관련하여 간략히 설명하자면, ‘황무지’라는 지각과 이미지 형성에는 과거의 희소했던 수목(樹木)과 함께, 지표면의 석전(石田) 경관도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점은 그림 11의 좌측 사진을 통하여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석전 경관도 크라스 지방의 식생 경관과 마찬가지로 인간 활동에 의하여 상당 부분 변화를 겪었다.
크라스 지방 지표면의 석회암 암석들은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듯이 오스트리아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1740-1780) 통치하였던 18세기 말부터 대규모로 제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봉건제도의 막바지였고, 현지의 주민들이 귀족 소유의 토지들을 매입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넓은 토지는 분할되기 시작하였고, 새 땅주인들은 석회암 돌부리나 바위를 곡괭이와 폭약으로 깨뜨리면서 경지를 개간하였던 것이다(Haddow, 2011). 이 돌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지방의 문화경관을 대표하는 돌담(zid)이나 돌더미(grublja), 혹은 가옥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그림 16). 특히 돌담은 경계와 영역을 나타내는 기능도 하였다. 이처럼 18세기 이후부터 본격화했던 개간 활동과 그에 따른 지표면의 변화 역시 크라스 지방의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이 존속되기 어렵게 할 요인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크라스 지방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지표면 암석의 인위적 제거, 인공 조림 및 옛 식생 복원 등으로 ‘회색의 황무지’로부터 ‘녹색의 산림지’로 큰 변화를 겪어왔다. 따라서 크라스 지방에 대한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국내 일각의 오해는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5. 요약 및 결론
‘카르스트’는 지리학이나 지리교육 관련자는 물론이고, 학생과 일반 대중한테도 매력 있는 학술용어이자, 흥미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지리학습 주제의 하나로 여겨진다. 아마도 성대를 덜 진동시키며 내는 맑은소리[無聲音]와 입술을 동글리지 않고 내는 소리[閉口音]의 음성분이 많아 발음과 기억이 쉽고, 한자어가 아닌 외래어 지리용어라는 점, 게다가 그 독특한 현상이 한국에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지리학습의 대주제(strand)인 인간-자연 간 관계를 살피기에 적합하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카르스트와 여러 맥락에서 깊은 관계에 있는 슬로베니아 크라스(Kras) 지방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를, 지명 및 경관 정체성 측면에서 도모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최신의 여러 연구 성과와 실제 답사를 통해 ‘크라스(Kras)’와 ‘카르스트(Karst 및 karst)’ 간의 관계, ‘Kras’의 지명 정체성 구현 노력, 그리고 크라스 지방에 대한 경관 정체성의 형성 과정과 최근의 변화상을 설명하였다. 연구 결과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간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카르스트’는 슬로베니아어인 ‘Kras’의 독일식 표현이 아니라, 양자 모두 라틴어 ‘Carsu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곧, ‘Kras’ 지방의 라틴어화한 옛 지명인 ‘카르수스(Carsus)’로부터 각국의 음운 현상에 따라 이탈리아어의 ‘Carso’, 슬로베니아어의 ‘Kras’, 독일어의 ‘Karst’로 각기 다른 변천 과정을 밟아 왔다. 현재 ‘Kras’ 지명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한 여러 학술적, 지역적 차원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둘째, ‘회색 돌투성이의 황무지(kraška gmajna)’라는 크라스 지방에 대한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은 17-19세기에 걸쳐 외부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해당 시기는 실제로 삼림보다는 돌투성이의 초지가 발달한 시기였다. 그런데 이 경관 정체성 형성의 핵심적인 두 요소는 초원 ‘식생’과 회색 ‘석전[돌밭]’이라고 할 때, 이 두 요소는 지난 몇 세기 동안에 걸쳐 큰 변화를 겪어왔다. 식생의 경우, 자연적 및 인위적 요인으로 몇 차례 반복적인 변화를 경험하면서 현재는 울창한 소나무 침엽수, 낙엽활엽수, 그리고 관목이 지표면을 덮고 있어 보통의 온대 지방경관과 다르지 않다. 석전의 경우도 18세기 말부터 경지 개간과 함께 지표면에서 대규모로 제거되었다. 따라서 크라스 지방에 대한 전통적인 경관 정체성은 현재 존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지명 및 학술용어로서의 ‘카르스트’의 기원과 관련하여, 또한 크라스 지방의 ‘경관 정체성’과 관련하여 국내에서도 더 이상의 오해는 없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카르스트’ 용어의 기원과 변천, Kras 지방의 ‘경관 정체성’에 대한 국내의 오해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카르스트 관련 연구나 저술, 지리과 교수-학습 과정의 참고 자료, 그리고 여행과 답사 활동 등에 직간접으로 유용할 것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