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1 December 2021. 585-605
https://doi.org/10.22776/kgs.2021.56.6.585

ABSTRACT


MAIN

  • 1. 서론

  • 2. 지리적 상상력과 행성적 상상력

  • 3.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

  •   1) 미지의 땅(Terra Incognita)

  •   2) 정복의 땅

  •   3) 전략적 대치 지역

  •   4) 인류 공동의 땅

  • 4. 한국의 극지 심상

  •   1) 자원의 보고

  •   2) 선진국 진입의 증거

  •   3) 또 하나의 한국

  • 5. 인류세의 행성적 프런티어

  • 6. 결론

1. 서론

지리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는 19세기 초 시베리아와 남미를 여행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동식물종에 대한 기록과 기후정보를 수집했다. 그는 이를 통해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 글로벌 스케일에서 기후-환경-사회의 패턴이 존재하는지를 탐색했다. 훔볼트는 정치와 사회, 자연과 기후를 포괄하는 융합적 차원에서 지리적 패턴을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인류세 연구의 선구적 모습을 보여준다(Thomas et al., 2020). 훔볼트의 지리적 연구가 제국주의 팽창이라는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다면, 오늘날 인류세로 대표되는 행성적 위기는 지리적 지식 생산과 이해의 새로운 맥락을 제공한다. 특히 최근의 ‘행성성(planetarity)’ 논의는 인류세 위기 속에서 하나의 행성으로서 지구가 갖는 물리적 특성을 강조하고, 행성의 구성 요소로서 지리적 장소를 바라본다(Clark and Szerszynski, 2020). 이 논문은 심상지리와 최근의 인류세 논의를 결합해 남북극 극지에 대한 심상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1)

극지는 국내 인문지리학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공간이다. 얼음의 땅, 펭귄과 북극곰, 월동대, 남극조약, 녹아내리는 빙산 등 이미지와 지식의 편린들이 극지에 대한 지리적 상상을 채우고 있다. 극지 심상의 파편성과 부분성은 극지 연구에서 문화지리적 접근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지 생태 변화를 추적하는 자연과학, 공학 연구가 극지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축적된 것과 대조적으로, 극지에 대한 국내 인문사회 연구는 국제법과 국제 환경 협력과 같은 극지 거버넌스, 극지 자원 개발 등의 실증적 연구 위주로 이뤄져 왔다(김기순, 2010; 김민수, 2020; 이영진, 2011; 홍성원, 2010). 지리학 분야에서는 이승호 등의 북극 원주민 마을 연구가 유일하다(이승호, 2011; 이용균・이승호, 2018). 해외 극지 인문사회 연구 역시 법적, 제도적 연구, 북극 주민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가 대부분으로 문화지리적 연구는 아직 초보적 단계다.2)

한편 극지는 인류세 시대의 새로운 지리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 극지에서 이뤄지는 과학 조사와 국제 협력은 극지에 대한 이해와 개입이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 행성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기후변화에 따른 극지 생태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하나의 행성으로 지구가 가진 물질적 차원을 상기시킨다. 극지 심상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필자들은 문화지리학의 심상지리 연구와 인류세 연구의 행성성 논의를 결합하고자 한다. 즉,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과 함께 행성적 맥락 - 지구 행성의 스케일과 물리적 특성 - 과 연계해 분석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먼저 극지 심상 분석의 프레임워크로 심상지리 논의와 행성성 논의를 살펴본다. 이어 서구(유럽, 북미, 소련)를 중심으로 극지에 대한 영역화 과정을 분석하고, 이 과정에서 생산·활용되는 주요 극지 심상을 차례로 살펴본다. 나아가 한국의 극지 영역화 과정과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극지 심상을 살펴본다. 이러한 극지 심상은 식민주의 팽창, 산업 발전, 냉전, 선진국 추격 등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왔다. 논문은 이어 최근 기후 위기의 맥락에서 극지를 ‘인류세 프런티어’로 상상하는 새로운 심상이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기존의 심상과 구별되는 인류세 심상의 영토화 전략, 스케일, 새로운 생태정치적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 논문은 극지 심상에 대한 역사적·맥락적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극지에 대한 문화지리적 지식을 생산하는 한편, 행성이라는 새로운 분석 차원을 제시함으로써 심상지리 연구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2. 지리적 상상력과 행성적 상상력

지리적 상상력(geographical imagination)은 공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으로, 세계를 공간적으로 그려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인식론적 틀이다(Gregory, 1994; Harvey, 1973; Allen, 1999). 동시에 공간 및 장소의 구성을 물질적, 상징적, 역사적 관계와 교차해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Daniels, 2011).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리적 상상력이 권력관계에 굴절돼 만들어지는 상상의 지리학, 즉 심상지리(imagined geographies)에 주목한다(박홍규 역, 1991). 심상지리는 지리적 장소를 재현하는 텍스트, 사진, 그림 등이 식민주의 팽창, 냉전적 대치와 같은 정치적 영향을 받아 특정한 형태로 생산됨을 가리킨다. 즉, 하나의 지리적 장소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진 다른 장소를 ‘영역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지리적 장소에 대한 상상과 이해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김종근, 2016). 동양을 신비롭고 비과학적이며 여성적인 장소로 상상하는 것이 대표적인 심상지리의 예다. 심상지리는 영역화 과정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특정한 형태의 개입을 유발하고 정당화하는 데 활용된다. 비판적 연구자들은 심상지리를 제국주의 팽창과 연결시키고, 특정한 영토 담론이나 경관을 생산하는 데 활용됐음을 지적한다(Linehan, 2014). 심상지리가 실제 현실과 무관할 뿐 아니라, 특정 장소를 타자화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강화한다는 것이다(Smith, 2010; Gottdiener, 2010).

한편, 공간에 대한 관계론적 전환은 심상지리의 부분성과 맥락성을 지적한다. 비판적 공간 연구자들은 공간이 고정되거나 불변이 아니며, 공간이 매개하는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연결망을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것임을 강조한다(Massey, 2005; Warf and Arias, 2008). 따라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지리적 연결망을 통해 생산되는 심상지리 또한 고정불변이 아니며, 연결망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심상지리, 혹은 지리적 심상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극지 심상은 변화 가능하며, 여러 심상이 공존하거나 경합할 수 있다.

심상지리는 국내 역사지리학과 정치생태학 연구에서 공간과 자연경관의 정치적 성격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게 활용돼 왔다(김종근, 2010; 허병식, 2014). 김종근(2016)은 일제강점기 경성의 중국인 거주지에 대한 심상지리를 분석하고, 당시 한국인들이 중국인 거주지를 타자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근대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음을 지적하고 있다. 황진태・전원근(2020) 또한 일본 제국주의의 심상지리를 탐색하기 위해 다중스케일적 분석을 통해 ‘일본해호수화(日本海湖水化)’에 드러난 대동아 심상지리의 형성을 살펴봤다. 전원근(2014, 2020)은 나아가 냉전 시기 한국에서 ‘전방’이라는 지리적 심상의 형성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냉전 경관의 지리적 상상력이 실현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한편, 김지영(2021)은 자연경관의 정치적 형성에 주목한다. 그는 금강산 국립공원을 사례로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일본 본국의 ‘경관’을 이식하기 위해 수행한 지식 생산과 경관 조정 과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일본의 자연에 대한 지리적 상상이 식민지 자연경관의 형성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추적한다.3) 비슷한 맥락에서 진종헌(2016) 또한 1960, 70년대 한국의 발전주의 시기 상징경관(symbolic landscape)으로 ‘푸른 산’ 경관이 민족경관으로 자리 잡아 실제 산림녹화 정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처럼 기존의 심상지리 연구는 일본 제국주의 및 발전주의 국가의 공간 및 자연에 대한 영역화 과정을 중심으로 이 과정에 동원되거나 그 결과 생산되는 특정한 지리적 심상(예. 대동아)을 다뤄왔다. 이들 연구는 심상지리를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맥락에서 벌어지는 영역화 과정과 연결짓고, 특정한 지리적 심상의 형성 과정에서 드러나는 권력 관계를 포착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한편, 필자들은 단순히 국가-국민, 국가-국가 간의 권력관계에 초점을 두는 기존 심상지리 연구로는 최근 극지 논의와 실천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다고 본다. 극지는 오랫동안 국민국가 중심의 영역화 전략과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었지만, 최근 극지에서 벌어지는 과학 조사와 국제 환경 협약들은 초국경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같은 변화는 기후변화와 같이 국경을 넘어 전지구적 스케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 위기의 대두와 무관하지 않다. 즉, 지난 150여 년간 극지 심상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기존 심상지리 연구에서 천착해 온 정치적 권력관계 뿐 아니라, 최근의 전지구적인 환경 위기와 이에 대한 초국가적 대응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들은 최근 인류세 논의의 ‘행성적 상상력(planetary imagination)’이 극지에서 벌어지는 영역화 과정과 극지 심상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라고 본다. 지리적 상상력이 공간을 통해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행성적 상상력은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감각을 가리킨다(Chakrabarty, 2019; DeLoughrey, 2019). 즉, 지구라는 행성 그 자체가 가진 역동성을 강조하고, 행성으로서 지구의 물질적 차원이 인간의 역사적 과정과 결합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행성적 논의는 먼저 가이아 이론과 지구시스템 과학의 영향을 받아 지구를 하나의 전체, 혹은 시스템으로 인지하고자 한다. 나아가, 행성으로서 지구가 가진 지질역사적 역동성과 인간의 역사적 과정이 교차하는 지점을 살펴보는 지질-사회적(geo-social) 접근을 발전시킨다. 행성은 다른 행성들과 자기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해 지리물리적(geophysical) 행위성을 발휘한다. 행성 그 자체의 지질역사에 관한 관심은 인간의 시공간적 인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지질학적 시간성(예. 딥 타임(Deep time))과 공간성(예. 행성적 스케일)을 고려하게 한다. 차크라바티(2019)는 이런 관점에서 지구(땅)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클라크와 체르진스키 또한 지구의 행성성과 인간의 역사가 교차하는 시·공간을 분석하는 ‘행성적 사회사상’을 제안한다(Clark and Szerszynski, 2020).4) 이들은 특히 행성적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의 역사적 과정이 지구상의 다중적 존재들을(earthly multitudes) 파괴하는 ‘비인격적 근대화(inhuman modernity)’였음을 지적한다. 이같은 연구는 행성적 변화를 사회·정치적 맥락과 연결해 재정의하고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환경과 사회’ 분석 틀을 ‘지구와 사회’로 확장하고, 기존에 간과되어 왔던 땅과 사회의 관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정치지질학(political geology)’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Clark and Yusoff, 2017).

이처럼 행성적 상상력은 지구의 물질적 차원을 강조하는 한편, 지리적 분석의 시공간을 지질학적 시간과 행성적 스케일로 확장한다. 행성적 상상력과 기존의 지리적 상상력의 결합은 공간에 관한 새롭고 확장된 접근과 해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지리적 상상력이 물질, 상징, 역사를 교차시켜 장소에 대한 비판적이고 맥락적인 이해를 시도한다면, 행성의 물질성과 행성적 스케일을 이에 결합함으로써 지리적 심상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피터스 등의 ‘땅을 넘어선 영토성’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Peters et al., 2018). 이들은 기존의 영토성(territoriality) 논의가 정치적, 경제적, 법적, 기술적 관계에 주로 집중하면서 권력과 자연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한계를 보여 왔다고 지적하고, 영토의 물질성을 분석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은 인류세의 도래에 따른 지구공학(geoengineering)적 개입 연구에서, 의도하지 않은 지리적 변형, 이에 개입하는 자본과 국가 권력,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치술의 발전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영토성 개념을 물질적 측면인 땅, 하늘, 불, 물의 사례로 다루고, 영토를 하나의 요소(element)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구성하는 환경(environment)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한편 메세리는 행성적 상상력을 통해 ‘우주 공간’에 대한 지리적 심상의 형성과정을 분석한다(Messeri, 2016). 외행성과 외계 생명체의 거주 가능성을 탐사하는 과학프로그램을 문화기술지 방법으로 분석한 이 연구는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을 찾기 위해 외행성의 지질학적 지표를 지구의 지질학적 지식과 비교 분석하는 과학자들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외행성에 대한 지리적 상상력이 오히려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한 상상력을 새롭게 구성하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처럼 행성적 상상력과 지리적 상상력의 결합은 기존 연구에서 간과되어 온 극지나 우주 같은 공간들로 지리적 연구를 확장한다. 또, 상이한 지리적 장소를 연결하는 영역화 과정에 국내 및 국제 정치와 같은 ‘인간들의 정치’만이 아니라 ‘비인간 행성의 물질성’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논문은 비판적 심상지리 연구와 행성적 상상력을 결합해 극지에 대한 지리적 심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먼저 서구, 이어 한국과 극지를 연결하는 영역화 과정을 살펴보고, 이 과정에 동원되거나 생산된 주요 극지 심상을 차례로 살펴본다.

3.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

이 절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주요 극지 심상을 차례로 살펴본다.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는 식민주의 팽창, 근대 과학 기술의 발달, 냉전적 대결 등의 정치적 맥락과 이에 따른 극지 영역화 전략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미지의 땅(Terra Incognita)

1800년대부터 한 세기 넘게 극지에 대한 서사는 영웅적 탐험이 주류를 이뤘다. 극지 항로개발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영국, 북유럽, 미국 등은 미개척 항로 선점, 지도 작성 및 새로운 장소의 발견을 통해 극지 영역화를 꾀하는 한편, 극지와 자국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McCannon, 2018).

북극 탐험과 관련해서는 캐나다와 알래스카를 탐험하고 1846년 빅토리아 해협에서 실종된 영국 해군 제독 존 프랭클린, 북서항로 개척에 나서 프랭클린의 흔적을 발견한 영국 해군 탐험가 레오폴드 맥클린톡과 존 래 등의 활약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시기 각국이 극지 탐험가들을 후원하고 군대를 보냈던 배경에는 상업적 유통경로 확보와 함께 북극권 지역에 대한 주권 확보 문제가 결부되어 있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북극 지역에 대한 영토 재협상 요구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1867년은 영국령 캐나다의 형성과 미국의 알래스카 획득, 덴마크의 그린란드 지배 등 북극권 국가들의 영토 재규합이 일어나던 시기로, 탐험을 통해 극지 지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정부의 탐험 통치(Dominion Government Expedition)’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었다(McCannon, 2018).

남극 역시 1820년 영국 로드 멜빌호 선원 11명이 남극 킹조지섬에 상륙하여 첫 월동에 성공한 이래, 영웅주의적 탐험가들의 남극점 도달 경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특히 1900년대 초반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과 영국의 로버트 스콧의 남극점을 향한 경쟁으로 대표되는 “극점으로의 경주(the race to the Pole)”가 활발히 벌어졌다(Rack, 2018). 한편 서구 주도의 남극점 도달과 남극 영역화 경쟁에 일본도 참여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1911년 12월 14일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 소식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자, 일본제국 육군 대위 시라세 노부(白瀬矗)도 아시아인 최초로 남극을 향해 탐험을 떠났다. 1912년 1월 28일 남위 80도 05분 서경 156도 37분까지 도달한 시라세 노부는 일장기를 게양하고, 그곳을 일본제국령 영토로 선언하고, ‘야마토 유키하라(大和雪原(대화설원), やまとゆきはら)’라고 명명하였다(김예동, 2015).

이처럼 20세기 초까지 극지는 국민국가들의 영토 경쟁과 선점, 탐험이 이뤄지는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으로 상상됐다. 탐험가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영웅주의적 서사와 모험에 대한 담론이 지배적 극지 담론을 이뤘다(Spufford, 2010). 한편 매디슨의 지적처럼,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배 계층 중심의 극지 서사는 실제 초창기 탐험대원을 구성하고 있던 남미와 호주, 폴리네시아 지역 선주민들을 누락시켰고, 극지 탐험을 백인 남성 중심 영웅주의 서사로 재구성하면서 선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준다(Maddison, 2014).

2) 정복의 땅

극지에 대한 대탐험의 시기를 지나,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극지 공간은 다른 형태의 ‘정복’이 활발히 일어나는 공간으로 표상된다. 극지 자체가 하나의 ‘자연’으로 표상되면서 극지는 인간의 진보와 근대화의 기술로 극한의 자연과 대결을 펼치는 공간으로 상상되었다(Dodds and Nuttall, 2016). 1922년 소비에트 연방 결성 직후 소련은 과학기술을 통한 극지 공간 ‘정복 활동’을 장려하고,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 극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소련의 극지 영역화 활동은 자연을 대하는 소련의 인민문화에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소련이 접하고 있는 북극권은 “환경과의 대결” 담론 또는 “소련과 자연의 궁극의 대결지” 등으로 표상되었다(McCannon, 1995).

북극권 통과 비행 시연은 소련의 기술을 통한 극지 정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달 전인 1939년 4월 소련은 미국 뉴욕 세계박람회에 참여하기 위해 당 간부들을 태우고 모스크바에서 북극권을 통과하여 뉴욕까지 무정착 비행에 성공했다(Swift, 1998). 또 뉴욕 세계박람회의 대주제였던 “내일의 세계(The World of Tomorrow)”에서 소련은 ‘소련관’과는 별도로 ‘소련 북극관’을 설치해서 운영하였다. 소련 북극관은 “탐험과 개척의 근대 서사”를 메인 주제로 북극권을 통과할 수 있는 항공기술을 주로 선전했다(McCannon and McCardell, 1998,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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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좌)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 소련 북극관 전경. 우) 소련의 트랜스 폴라(trans-polar) 항공기에 표기된 소련의 북극항로

출처: The New York public library digital collections

북극권을 가로질러 비행할 수 있는 소련의 ANT-25 항공기의 세계박람회 등장과 이 항공기를 통한 무정착 극지권 통과 비행은 당시 “스탈린 경로(Stalin’s route)”로 불리며, 극지 공간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지리적 상상력을 자극했다(Timonina, 2018). 이러한 맥락에서 맥캐넌(1995)은 소련의 극지 영역화 활동을 근대화의 기술적 발전을 통한 인간 진보,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심리적 경관(psychological landscape)의 형성으로 해석한다.

3) 전략적 대치 지역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본격적인 냉전 시기로 진입하면서 극지 또한 새로운 형태의 지리적 분화를 경험하게 된다. 북극의 경우 소련극(Soviet Arctic)과 서방극(Western Arctic)으로 분화되면서, 극도로 군사화된 지역이자 전략적 대치지역으로 변모한다. 소련극의 경우 북극해에 위치한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 제도(Franz Josef land)에 군사기지가 설치됐다. 이어 1961년 10월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핵폭탄 차르붐바 폭발 실험을 비롯해 약 260여 차례의 핵실험이 노바야제믈랴 제도(Novaya Zemlya)에서 수행되었다(Nuttall et al., 2018). 서방극 역시 미국 주도로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군사도시 캠프 센츄리(Camp Century)를 설치하여 소련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Nielsen et al., 2014,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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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캠프 센츄리 계획도

출처: aussie55.worldpress.com

캠프 센츄리 사례는 냉전 시기 형성된 전략적 대치 지역으로서의 북극과 이를 교란하는 행성의 물질성을 드러낸다. 1953년 미국은 과학실험 명목으로 그린란드에 과학-군사시설을 설치했다. 그린란드 빙하 아래 터널을 뚫어 핵미사일 600기 이상을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 소련 영토에 발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전진기지 건설을 진행해 궁극적으로 255명의 군인들이 상주할 수 있는 ‘얼음 아래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기지 건설에 앞서 프로토타입으로 세워진 전진기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빙하 때문에 문제를 겪었다. 터널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뒤틀리기를 반복하다 결국 미국은 1967년 캠프 센츄리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Nielsen et al., 2014). 2019년 덴마크 지질조사국은 그린란드 얼음 아래 레이더 조사를 통해 캠프 센츄리 기지가 원래 지점에서 232미터 정도 해안가로 이동했으며, 시계방향으로 4도 정도 뒤틀렸음을 확인했다(Karlsson et al., 2019).

이 사례는 극지에 대한 냉전적 군사 전략화와 극지 공간의 물질적 요소인 빙하의 움직임이 교차하는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극이 서방극과 소련극으로 인위적으로 분화되고, 극도로 군사화된 공간으로서 상상되었지만, 극지의 물질적 차원은 인간의 정복과 지배의 서사와 무관하게 작동한 것이다. 캠프 센츄리 사례는 극지가 인간 행위의 수동적 배경만이 아니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물질적 실체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행성의 물질적 차원이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준 사례는 캠프 센츄리 만이 아니라 태양의 흑점 변화, 오존층 파괴와 기후 위기와 같은 환경적 변화도 포함된다. 캠프 센츄리 사례는 5절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행성의 행위성을 선행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군사적 대치, 전략적 안보 공간으로서 표상되던 북극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평화적 이용의 공간으로 새롭게 제시된다. 1987년 10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무르만스크 극지 평화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북극해의 비군사화와 북극권 개방, 평화지역 설립을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 북극권 국가 8개국이 참여하는 국제북극과학위원회(IASC)가 설립되었다. 이후 1991년 북극권 환경보호 선언, 이를 보다 구체화한 11개의 행동강령을 포함한 1993년 누크(Nuuk)선언으로 이어졌으며, 1996년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 결성 내용을 담은 오타와 선언이 이어졌다(Nuttall, 2018). 최근 지구 온난화에 따라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활발히 논의되는 북극 항로는 북극의 평화적 이용의 대표적 방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북극 항로는 동북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항로로, 북극 항로 상업적 이용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북극 항로를 이용한 화물 수송과 경제적 평가, 항만 및 선박 인프라, 관련된 법적 제도적 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 현실적 검토들이 이뤄지고 있다(홍성원, 2010; Liu and Kronbak, 2010; Stephenson et al., 2018)

4) 인류 공동의 땅

미국과 소련의 냉전적 영역화가 이뤄진 북극과 달리, 남극은 인류 공동의 이용과 보호를 논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1959년 미국의 제안으로 발의된 남극조약(Antarctic Treaty)이 이같은 변화를 견인했다. 남극조약은 각국의 남극 영유권 주장이 확산되면서 촉발됐다. 영국이 1908년 최초로 남극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이래, 뉴질랜드(1923년), 프랑스(1924년), 오스트레일리아(1936년), 노르웨이(1939년), 칠레(1940년), 아르헨티나(1947년) 등 유럽 및 남미 7개국이 잇달아 남극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극지연구소, 2008). 이들 7개국과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은 5개국(미국, 러시아,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이 주축이 되어 남극조약이 체결되어 1961년 발효되었다.

남극조약은 냉전 구도가 빠르게 자리 잡아 가던 시기 처음으로 맺어진 비군사활동에 관한 국제조약이다. 남극조약에 따라 그 어떤 국가도 남위 60도 이남 남극지역에서 군사적 활동을 할 수 없다. 이는 영유권 주장과 광물개발 활동에 대한 논의를 50년간 동결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아울러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가 1958년 설립되었다(김기순, 2010). 냉전의 교두보로 핵실험을 겪은 북극과 달리, 남극은 남극 조약을 통해 개별 국민 국가의 군사적, 경제적 활동이 중지되면서 ‘인류 공동의 땅’으로 선언됐다. 이는 북극과 구별되는 남극의 역사적 경험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초반부터 경쟁적으로 영토 선점과 항로 개척이 이뤄진 북극과 달리 남극은 20세기 이후에야 인간의 접근이 허용됐다. 자원 탐사와 영유권 주장과 같은 국민 국가의 경제적 활동은 20세기 중반에야 본격화 되었으며, 곧 이어 남극 조약이 체결되면서 제약을 받았다. 또, 북극과 달리 국제극지년(1882년), 국제지구물리관측년(1957-58년)과 같은 과학적 이벤트를 통해 일찌감치 국제 과학 조사 협력이 이뤄졌다. 개별 국민 국가의 영유권 분쟁, 냉전적 대치 대신 여러 국가의 협력을 통해 극지를 공동으로 이용하고 극지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이 남극 이용의 새로운 전략으로 제시된 것이다. 남극에 대한 국제 협력과 과학 조사는 5절에서 보다 상세히 논의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극지에 대한 지리적 심상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변화되어 왔다. 탐험과 선점의 경쟁적 공간, 근대 과학기술을 이용해 정복해야 할 공간, 체제 선전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공간으로 상상되어 온 극지 공간은 1950년대 이후 냉전체제 속에서 분화해 갔다. 북극의 경우 국민국가의 주권적 지배를 인정하고, 군사적 목적으로 영역화되어 오다 1987년 이후 평화적 이용과 개방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한편, 남극은 일찍이 영유권을 주장한 국가들이 있었지만, 영유권 경합과 과학 조사의 필요에 따라 냉전체제 속에서 ‘비무장지대’로 선언됐다. 이처럼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는 식민주의적 팽창, 근대기술주의, 냉전적 대치와 같은 역사적·정치적 맥락과 연계돼 있다. 맥락에 따라 상이한 방식의 영역화(예. 탐사와 지도 제작, 핵실험, 국제조약 등)가 이뤄지고, 특정한 극지 심상이 영역화 과정에 동원되거나 그 결과로 만들어져 왔다. 이 글에서 논의한 주요 극지 심상을 유형화하면 표 1과 같다.

표 1.

주요 극지 심상 유형화

유형 영역화 전략 맥락 시기
미지의 땅 지도화, 항로개발, 영유권 주장 식민주의적 팽창 19세기
정복 대상 북극권 횡단 비행 근대 과학 기술 과시 20세기 초
전략적 대치지역 핵실험 냉전 대결, 체제 대결 냉전 시기
인류 공동의 땅 국제조약 영유권 경합 냉전 이후
인류세 프런티어 과학조사, 환경 협약 인류세, 환경 위기 2000년대~현재

4. 한국의 극지 심상

극지 심상이 역사적, 정치적, 물질적 맥락 속에서 극지 영역화가 이뤄진 방식과 결과를 반영한다면, 한국의 극지 심상은 한국 사회가 경험한 냉전 및 발전주의와 조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절은 한국의 극지에 대한 심상이 어떻게 형성, 변화했는지를 정치적, 경제적, 물질적 맥락과 연결지어 분석하고자 한다.

1) 자원의 보고

한국의 극지 진출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북극 다산기지(2002년 준공)가 남극 세종기지(1988년 준공)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만들어진 점을 볼 때 한국의 극지에 관한 관심은 주로 남극을 향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처음 남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남극해의 풍부한 수산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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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좌) 첫 남빙양 크릴 조사에 나선 남북호. 우) 제1차 남극 크릴새우 어업 조사단 항적도

출처: 좌) 한국극지연구진흥회, 우) 극지연구소(2017)에서 재인용

1970년대 후반 국립수산진흥원은 남북수산주식회사와 함께 남빙양 일대의 원양어업 조건을 조사하고자 하였다. 극지에 다녀온 사람도 없었고, 정확한 정보나 지식이 충분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1978년 12월 5,549톤급 어선 ‘남북호’가 부산항을 출발해서 1979년 3월까지 남극해 주변 엔더비랜드(Enderby land)와 윌크스랜드(Wilkes land) 일대에서 남빙양의 어족자원을 조사해 생태, 분포, 어획 방법 등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극지연구소, 2017, 그림 3). 남빙양 일대 수산자원에 대한 파일럿 조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남극 인근에서 원양어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원양어업은 한국 산업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의 친지들을 떠나 북극과 남극의 망망대해를 누비면서 때로는 모진 풍랑에 시달리고 때로는 무서운 고독과 싸우면서, 오로지 조국과 민족의 내일을 위해 분골쇄신하고 있는 귀하의 노고를 나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 (……) 귀하가 지금 그곳에서 겪고 있는 뼈아픈 고생은 귀하 자신만을 위한 고생이 아니라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사명감에서 우러난 것이며, 일신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중흥의 밑거름이 되려는 고귀한 자각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귀하의 노고를 더욱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와 같은 결연한 사명감과 헌신적인 기여가 바로 내일의 한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요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서슴없이 귀하와 같은 어업의 역군을 진정한 애국자라고 부른 바입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연설 “원양어업 종사자에게 보내는 친서”, 강조 저자)

원양어업 종사자를 ‘애국자’라고 부르는 대통령 친서에서 보듯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원양어업은 산업적 측면 뿐 아니라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한국이 하나의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수교를 확대하고, 스포츠 외교를 활발히 전개하던 당시 원양어업을 통한 극지 진출은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김용호, 2015). 정부는 1985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에 가입하고, 같은 해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주축으로 ‘한국남극관측탐험단’을 조직하여 남극 최고봉 등정팀(4,897 m 빈슨 매시프 정상 등정)과 킹조지섬 탐험팀을 구성하여 남극대륙에 진출하기 시작했다(극지연구소, 2017, 그림 4).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1985년 한국 탐험대의 남극 탐험이 시작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극지가 의미 있는 공간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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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좌) 첫 남극탐사대 기념 동판 우) 남극탐사계획안 대통령 직속 재가 결재 서류

출처: 좌) 국립해양박물관 소장품 촬영 우) 극지연구진흥회

“이처럼 혹심한 환경의 불모지 남극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이 대륙이 지닌 풍부한 자원과 과학적인 연구 가치 때문이다. (…) 남극에서 확인된 지하자원만도 사우디의 매장량에 맞먹는 5백억 배럴의 석유와 12억 5천만 톤의 석탄을 비롯, 금, 은, 구리, 철, 아연, 코발트, 니켈, 우라늄 등 각종 광물이 엄청나게 묻혀있다. 그리고 수산자원도 풍부해서 남빙양에는 연간 세계 총어획고의 2배가 넘는 8천만톤의 크릴새우가 서식하고 있어 미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85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 “남극 만년설에 덮인 자원보고, 한국 탐험대 출발 계기로 알아본다”, 강조 저자)

남극이 성큼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원양어선이 다녀오고 학술회의대표가 발자취를 남겼는가 하면 며칠전 해양소년단의 남극탐험 보도가 흥분을 가져왔다. 하기야 불모의 동토 남극이 그동안 우리와 생소했다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너무 멀고, 비용이 너무 들고, 개발에 따른 이익이 잘 보이지 않는데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자원 이용 필요성이 최근 급증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 남극은 아직 무주물로 2백해리 수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 이용권의 선점 등이 국제 간 논의되고 있는 단계다. (…) 한국민의 모험과 프런티어 정신을 자극하는 넓은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게하길 바란다.” (1985년 1월 21일 동아일보 사설 “남극은 먼 곳 아니다”, 강조 저자)

이처럼 1970년대 후반부터 1985년 첫 남극대륙 탐사에 이르기까지 남극에 대한 지리적 상상은 주로 경제적 자원 이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일련의 탐사 활동과 신문보도에서 보듯 남극은 풍부한 어족자원과 지하자원이 있는 곳으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보고’로 상상된다. 이런 측면에서 첫 번째 남극 탐험이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해양소년단연맹과 문화방송(현 MBC), 포항제철, 국제그룹 등 민간 기업과 단체의 후원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보도진이 탐험대에 포함돼 첫 번째 남극 탐험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그림 자료를 제공하면서 남극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탐험가 허영호가 1991년 북극점, 1994년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고, 허영호 탐험팀의 여정이 신문과 방송 매체로 중계되면서 대중의 남극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남극의 혹독한 자연 환경에 대한 사진과 보도는 남극을 ‘얼음과 펭귄의 땅’이자, 훈련된 탐험가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미지의 땅’으로 상상케 했다. 허영호 팀의 탐험은 남극점 ‘정복’으로 보도되었고, 선발 탐험대를 ‘공격조’로 표현하는 등 인간과 자연의 대결 구도 및 인간의 역량과 우월성이 강조되었다 (한국일보, 1994년 1월 12일자). 이는 앞서 논의한 서구의 극지 심상에서 극지를 ‘미지의 땅’ ‘정복 대상’으로 상상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편, 허영호의 남극점 탐험이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세계 4번째’ 도보 탐험이라는 사실 또한 강조됐다. 이는 후발 국가인 한국이 극지 탐험에 있어서는 세계 주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극지 탐험을 ‘민족적 위상의 과시’, 특히 다음 절에서 살펴볼 것처럼 ‘선진국 진입의 증거’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선진국 진입의 증거

첫 남극대륙 탐험이후 한국 정부는 본격적인 극지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86년 남극조약 가입을 목표로 외교전을 펼쳤다. 남극조약은 국제연합(UN) 회원국이면 자동가입이 가능했으나, 당시 한국은 UN 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극조약 당사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국이 극지조약 가입 의지를 표명하자 남극조약 가입국이던 소련과 중국은 북한의 동시 가입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1978년부터 이미 4차례의 남극해 조사와 남극대륙 탐사를 진행한 업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과의 동시 가입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남극조약 당사자국들에 대한 설득을 통해 한국은 1986년 11월 28일자로 33번째 남극조약 가입국이 되었고, 북한은 이듬해인 1987년 1월 21일 35번째 가입국이 되었다(극지연구소, 2008).

조약 가입 다음은 기지 건설이었다. 일단 북한보다 한 해 먼저 남극조약에 가입하긴 했지만, 북한보다 먼저 남극에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2월 외무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남극조약 가입을 보고받고, 그 자리에서 남극 기지 건설을 결정하였다(극지연구소, 2017). 같은 해 12월 현대중공업과 현대엔지니어링을 필두로 남극과학기지 건설선이 남극 킹조지섬에 도착하였고, 이듬해인 1988년 2월 남극 세종기지가 세워졌다.

미래 자원의 보고로 각광 받고 있는 백색의 제7대륙인 남극, 이곳에 유사이래 첫 해외 상설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울산을 떠난 현대중공업소속 HHI1200호는 10톤짜리 트럭 1천5백대분의 각종 시설장비와 함께 뻗어나는 국력을 싣고 1만 2천여 마일의 항해에 나선 것이다. (……) 우리나라는 남극자원의 개발활용 외에도 극지공학기술을 축적함으로써 앞으로 세계적인 사업장으로 남아 있는 알래스카 및 시베리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그 외 세계 속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고 국민에게 세계에 대한 개척자적인 기상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 (……)” (동아일보 1987년 10월 6일자 “남극에 한국 세운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건설되는 남극과학기지가 공사를 시작한지 2개월여만인 17일 역사적인 준공식을 가짐으로써 남극대륙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갖춘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8번째로 남극에 기지를 설치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발전된 경제력과 과학기술수준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게 됐다.(……) 남극대륙 개발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됨으로써 전세계에 우리의 국력신장을 과시하고 선진과학국으로서의 지위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매일경제 1988년 2월 17일자 “남극대륙개발 교두보 구축”)

남극 과학기지 건설은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남극에 한국 세운다’라는 내러티브를 통해 보듯 기지 건설은 극지 영역화의 수단이자, 선진국과 동등한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확보했음을 알릴 수 있는 국력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극지 진출을 ‘선진국 진입의 상징’으로 여김으로써 극지 진출 과정이 탄력을 받았고, 기지 건설을 통해 다시금 극지가 ‘선진국 진입의 상징’이라는 지리적 심상이 강화된 것이다. 나아가 남북 대결과 냉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극지 진출은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북한보다 빨리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먼저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체제 경쟁에서 승리해야 했던 것이다.

북한 역시 1987년 극지조약 가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극지 진출을 도모했다. 북한은 극지조약 사무국에 제출한 남극 활동 보고서에서 1990년 1월부터 7월까지 177일간 4명이 남극에서 활동하였다고 보고했다(ATSCM/INFO 6, November 20, 1990).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81일간의 항해를 통해 남위 60도를 넘어 극지권으로 진입하였으며, 인도양 방향으로 위치한 오헤시스 테레스코바(Ohasis Terrescoba) 지역의 대기와 토지에 대한 연구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는 북한 남극탐사대가 벨링쇼젠(Belinshauzen) 기지 등 소련 기지 4곳, 중국 그레이트월(Great Wall) 기지, 폴란드, 독일, 우루과이, 칠레 기지들을 각각 방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ATSCM/INFO 6, November 20, 1990). 또, 1990년 7월 1차 탐사대가 귀환한 후 3개월 뒤 2차 탐사대가 남극으로 다시 출발하여 ‘계절-1’이라는 탐험기지를 남극에 세웠다고 주장했다(NK chosun 2005년 4월 29일자, 그림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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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북한이 1991년 발행한 남극탐험 기념 우표

출처: 국립해양박물관

한편, 1990년 북한의 극지탐험이 확인되자 남극 세종과학기지 원정대원들은 한국 정부에 북한 주민 접촉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여 승인을 받았다(한겨레 1990년 3월 1일자, 경향신문 1990년 3월 1일자). 실제 북한 탐험대와 세종기지 인원의 접촉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남북한의 극지 진출이 남북 대결의 양상을 띤 가운데, 이 사건은 경쟁만이 아니라 남북간의 협력 또한 시도되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1991년 8월 중국 연길에서 열린 남북과학기술자 학술대회에서 남한의 과학기술처와 북한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은 극지에서의 남북협력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매일경제 1991년 12월 18일자). 두 기관은 세종기지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세종기지 내에 북한기지연구동 건설을 협의하고, 남극대륙 본토에 대한 공동진출 등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편, 남북한의 경쟁 구도 속에서 남북한이 극지에 대해 상이한 심상을 발전시켜 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1990년 제11차 특별 남극조약국협의회는 남북한의 남극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11차 특별회의는 남극의 포괄적 환경보호를 위한 방안이 제안되었고 이에 대한 당사자국, 비당사자국, 옵저버 기관 등의 의견 표명이 주 의제로 논의됐다. 한국은 앞서 1989년 세계 23번째로 남극조약 당사자국지위(ATCP)를 획득했고, 북한은 비당사자국 지위로 회의에 참여하였다. 한국 정부는 남극의 포괄적 환경보호 방안 제안에 동의하며, 이를 남극조약 체계 내에 포함해야 함을 주장하였다(Interim Report of the Eleventh Antarctic Treaty Special Consultative Meeting, 1990).

한편 북한은 남극 환경보호를 핵 문제와 연결지었다. 북한 정부는 인간 활동에 의한 극지공간의 환경 악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새로운 환경보호 방안 제안에 몇 가지 추가 사항을 요구했다. 첫째, 새로운 남극 환경보호 방안에는 강력한 통제 기능과 법적 규제방안이 포함될 필요가 있으며, 둘째 남극 환경 규제 안에는 평화적 핵 이용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핵폭발 활동, 방사선 폐기물의 폐기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북한은 극지 환경 문제를 핵실험 및 이로 인한 생태계 오염 문제로 여기고, 남극 환경 보호를 위해 남극 비핵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지대를 만들기 위해서 남극이 영구적으로 핵으로부터 자유롭고, 오염되지 않는 공간이 되도록 활동하겠다”고 보고서에서 밝힘으로써, 남극 비핵화를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연결지었다(Interim Report of the Eleventh Antarctic Treaty Special Consultative Meeting, 1990: 85쪽). 극지를 핵실험과 연결시키는 것은 앞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소의 냉전적 대결 속에서 북극을 핵실험의 공간, 냉전적 대결의 공간으로 상상, 활용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미-소 대결 속에서 형성된 북극에 대한 심상이 남북 대결이라는 지역적 스케일의 냉전을 겪고 있던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극 심상에 반영돼 있는 것이다. 북한에게 극지는 핵실험으로 대결되는 ‘냉전적 대결’의 공간으로 상상됐다. 이는 극지를 선진국 진입의 증거로 여긴 남한이 남극을 ‘인류 공동의 땅’으로 바라보는 서구의 남극 심상에 동조하고, 이에 수반되는 포괄적 환경 의무를 받아들인 것과 대조된다. 남북한의 상이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극지에 대한 서로 다른 심상지리가 형성되고 강화되었던 것이다.

3) 또 하나의 한국

남극 진출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는 극지가 얼음으로 둘러싸인 ‘미지의 동토’이지만, 동시에 한국과 친연성을 가진 ‘가까운 땅’임을 강조하는 활동들이 이어져 왔다. 이는 기지 진출로 대표되는 물리적 영역화와 함께, 극지를 한국 문화와 사회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문화적 영역화의 시도로 볼 수 있다. 공중파 연말연시 방송에서 남극 세종기지 월동 대원들을 위성과 화상 전화로 연결하고, 남극 기지와 한국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등은 한국과 남극이 과학기술을 통해 공간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하려는 예다(그림 6 좌). 또, 판구조론을 인용해 초대륙 시절 한반도와 남극이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그림 6 우). 이처럼 남극과 한반도의 지질학적 유사성을 강조함으로써 극지공간이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적인 동질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상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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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좌) 1995년 남극기지와 인터넷 연결 개념도, 우) 한반도와 남극대륙의 지질학적 유사성

출처: 좌) 조선일보 1995년 10월 19일자 “남극에 인터넷 연결 추진”, 우) 조선일보 1998년 5월 18일자 “2억 5천만년 전 한반도 남극 근처 위치”

특히 남극과 한반도의 지형학적 유사성을 찾아내 이를 토대로 남극 반도의 지형 지리를 재구성한 사례는 흥미롭다. 남극조약에 따라 어떤 국가도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없지만, 국제남극과학연구위원회(SCAR)는 각국의 과학기지와 연구 활동의 편의를 위해 극지공간에 자율적으로 지명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공식화된 지도에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현재까지 약 27개 남극 지역에 대한 자체적인 이름을 부여하여 이를 SCAR에 등재하여 사용하고 있다(그림 7). 남극 세종기지 주변으로 부여된 한국 지명들은 대부분 한국에 있는 지형적·지질적 형태의 유사성과 유명 명소 등을 토대로 이름이 붙여졌다. 남극에도 ‘해운대’, ‘울산바위’, ‘아우라지 계곡’ 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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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SCAR에서 공인된 한국의 남극 지형 명명표기

출처: SCAR에 공인된 좌표를 바탕으로 저자 제작, 국문 지명은 부록 참조

SCAR의 남극지명사전(Composit Gazetter of Antarctica)에는 각 지형에 부여된 이름들이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를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부록 참조). 이를 살펴보면, 세종과학기지 주변의 ‘아우라지 계곡’은 두 개의 긴 계곡이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는 점에서 강원 정선군의 아우라지를 연상시킨다고 설명돼 있다. 남극 ‘해운대’는 바톤 반도 남부의 해변이라는 점에서 한국 남부의 대표적인 해변인 해운대를 가리키는 이름이 붙었고, 평평한 고원지대는 지리산 세석평전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세석평원’으로 불린다. 이처럼 낯선 극지의 장소에 비교적 친숙하고 익숙한 국내 장소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공간적 이질감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아울러 김순배(2018)의 지적처럼, 지명 명명은 ‘무명의 장소’를 읽고, 계산하며, 통제가능한 ‘유명의 장소’로 만드는 영역화의 과정으로, 제국주의적 시선과 권력을 반영하기도 한다. 남극의 지형을 한반도의 지질학적 유사성과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지명에 비추어 명명하는 것은 극지를 한반도와 유사한 ‘또 하나의 한국’으로 만드는 영역화의 전략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한국 사회의 극지 심상은 자원 개발이라는 경제적 필요, ‘정상국가’ 인정과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돼 왔다. 특히 냉전적 긴장과 화해라는 국제 정치의 변화 속에서, 남북한의 체제 대결과 협력 시도가 극지 기지 건설과 국제 협력에 투사됐다. 또, 극지에 대한 영역화가 확대되면서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을 투영해 극지 공간을 바라보기도 했다. ‘불모의 땅’으로 여겨졌던 극지가 지난 50여 년간의 정치적, 경제적, 물질적, 문화적 영역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지리적 공간으로 상상되는 것이다.

‘자원의 보고’ ‘선진국 진입의 증거’ ‘또 하나의 한국’이라는 한국의 극지 심상은 앞 절에서 살펴본 서구의 주요 극지 심상과 무관하지 않다. 극지에 대한 관심이 서구에 비해 짧은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미지의 땅’에 대한 상상이 ‘자원의 보고’와 함께 발전했고, 극지를 ‘정복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극지 탐험을 통해 후발 국가인 한국의 정상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선진국 진입의 증거’로 극지를 사유하게 된 것이다. 또, 동서 냉전의 극지 심상이 여전한 냉전적 대치를 겪고 있는 남북의 상이한 극지 심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극지 심상은 서구의 극지 심상의 영향 속에서, 산업화와 발전주의, 남북 대결, 국제 협력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맥락 특수적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경험을 통해 굴절되며 고유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극지 영역화는 과학 탐사를 중심으로 확대되어 왔다. 2002년 북극 다산기지가 세워졌고, 2009년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진수되었으며, 2014년 남극 내륙에 장보고과학기지가 준공되었다. 이같은 흐름은 극지를 둘러싼 환경 변화와 극지 과학 연구의 맥락 속에서 연구 및 인프라 확장을 통해 극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영역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최근의 변화는 다음 절에서 상세히 기술할 인류세의 새로운 극지 심상을 반영하고 강화한다.

5. 인류세의 행성적 프런티어

최근 극지에 대한 상상은 무너져 내리는 빙하, 줄어드는 북극해의 해빙, 빙산 끝에 매달린 북극곰과 같이 지구가 직면한 생태 위기와 연결돼 있다. 극지는 더 이상 ‘미지의 땅’이나 ‘자원의 보고’ 만이 아니며, 지구가 처한 생태 위기를 앞서 경험하는 ‘인류세의 최전선’으로 여겨진다. 극지에 대한 심상의 변화는 앞서 논의한 제국주의적 팽창, 산업화, 냉전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행성이라는 물질적 실체로 지구가 겪는 변화와, 그 변화를 관찰하고 대응하기 위한 노력과 연결돼 있다. 즉, 인간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극지의 지구 물리적 변화, 오존층 파괴, 기후 변화로 이어지는 지구 행성의 변화가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한 대응은 초국가적인 과학 조사와 국제 협력으로 나타난다. 이는 앞서 3절과 4절에서 논의한 개별 국가의 영유권 주장, 핵실험, 항로 개척, 지도화 등과 주체, 전략, 목적 면에서 차별화되는 새로운 형태의 극지 영역화, 즉 ‘재영역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극지 심상이 조형되고 있음을 시사한다.5)

극지의 물리적 변화에 대한 과학적 관심은 최근 특히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 기원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 극지년(International Polar Year, IPY)은 1882년 지구 물리학자들의 국제적 협력을 위해 만들어졌다. 제1회 IPY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극지탐사 활동이 시작되었고, 북극 13회, 남극 2회의 탐사가 진행되었다. 제2회 IPY는 1932년에 제트 스트림 연구를 목적으로 시작되어, 40여 개국이 참여하였다. 제3회 IPY의 시점과 연구 방향을 결정지은 것은 11년 주기로 활발해지는 태양 흑점의 활동이었다. 1950년 미국의 물리학자 로이드 버크너가 제3회 IPY 개최를 제안하였는데, 태양의 활동 시기가 겹치면서 IPY를 국제지구물리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IGY)로 확장하여 국제 과학 조사가 이뤄졌다(Needell, 2010, Chapman, 1962). 약 70여 국가가 참여한 IGY는 태양의 흑점 활동이 극대에 도달한 1957년 7월부터 1958년 12월까지 진행됐으며, 지구시스템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로 이어졌다. IGY의 관측 결과는 남극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1959년 남극조약이 체결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극지를 통해 지구 행성의 변화를 관찰하고 대응하고자 한 국제적 노력은 1970년대 남극 오존층 파괴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이후 인류세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게 되는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1970년 질소산화물에 의한 성층권 오존의 연쇄적 파괴 가능성을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Crutzen, 1970). 이어 다양한 프레온가스 구성물들이 성층권 오존 파괴에 기여하고 있음을 밝히는 과학적 연구들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축적되어 갔다(Molina and Rowland, 1974, Cicerone et al., 1974). 그러다 1985년 5월 네이처지에 남극점 인근에서 대규모의 오존층 구멍이 생겼음을 밝힌 논문이 출판된다(Farman et al., 1985). 이어 같은 해 10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국제 지구자기학과 초고층대기물리학협회’에서 처음으로 1983년과 1984년에 관측한 남극 지역의 대규모 오존층 구멍 이미지가 공개되었다(Bhartia and McPeters, 2018, 그림 8). 극지 오존층에 대규모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파급 효과는 컸다.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꼽힌 프레온가스 사용의 규제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국제적으로 확산하면서, 1987년 100여 가지 오존층 파괴물질 사용을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어 1989년부터 발효된다. 한국은 1992년에 가입하였고, 현재는 200여 국가가 가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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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1985년 처음 발표된 극지방의 오존층 구멍 관측 사진

출처: Bhartia and McPeters 2018, 337쪽 재인용

남극 오존층 파괴는 극지에 대해 ‘국제 과학 조사와 환경 협력’이라는 새로운 이용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같은 변화를 일으킨 핵심 요인은 오존층 대기 구성의 변화이며, 변화 관찰과 대응이 초국가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전지구적, 혹은 행성적 스케일에서 환경 문제가 제기되고 해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극지는 지구 행성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행성적 프런티어’로 상상되며, 과학 조사와 국제 환경 협력(예. 몬트리올 의정서)이 극지의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할 방안으로 제시된다.

이같은 일련의 변화는 최근의 기후 위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과학적 연구들은 극지 환경이 지구 어느 지역보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2021년 채택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의 6차 보고서는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의 변화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지역 스케일의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수집, 분석하는 IPCC 워킹 그룹 1은 극지 지역과 빙하권(cryosphere)의 영구동토층 해빙, 계절적 눈 표면적 감소, 빙하와 빙상, 유빙의 감소가 극대화될 것으로 예측했다(Masson-Delmotte et al., 2021). 즉,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이 극지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지질물리학 연합 학술대회에서 나사(NASA) 연구팀은 북극의 온난화가 지구 평균보다 4배 빠르다고 발표했다(Jacobs et al., 2021). 햇빛, 해빙, 해양의 상호작용과 같은 북극의 고유한 지질물리적 특성 때문에 북극에서는 온난화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가속화되는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나사팀의 연구는 북극 온난화 속도가 그간 알려져 있던 지구 평균의 2배보다 훨씬 빠른 4배임을 강조한 것이다.

극지에서 발생하는 기후 변화의 속도와 규모로 인해 극지 지역은 ‘기후 변화의 최전선’이자 지구 행성 단위의 변화를 예측하고 감지하는 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됐다. 때문에 IPCC에서는 극지와 해양의 변화 과정을 다룬 특별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하였다(Portner et al., 2019). 극지와 해양 공간에 대한 특별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했다.

극지 지역은 매우 급격하게 얼음을 잃고 있고, 그 주변 해양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극지 지역의 이런 변화들의 결과는 전체 행성으로 확장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Portner et al., 2019: 205)

IPCC 특별보고서는 극지의 변화가 행성 전체의 사회경제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Portner et al., 2019). 극지 공간의 변화가 주변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시작해 극지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해양 표층수와 해저 흐름, 대기권의 바람에도 영향을 끼쳐 궁극적으로 행성 전체의 변화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극지 환경의 변화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은 인류의 경제적 활동이 지구 환경 변화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인류가 전대미문의 생태, 환경, 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하는 최근의 인류세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정서진 역, 2018; 최명애・박범순, 2019). 극지에서 촉발되는 생태적 위기가 결국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류세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6) 이같은 위기 의식과 파국의 예감 속에서 극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인류세로 야기되는 변화를 겪을 뿐 아니라, 인류세의 위기를 감지하고, 진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류세의 최전선’으로 사유되는 것이다.

인류세 위기는 더 이상 개별 국가만으로 관찰, 대응할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폭넓은 다국적 협력을 통해 극지에 대한 과학 조사와 환경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1958년 설립된 SCAR는 남극에 대한 국제 연구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민간 학술 기구다. 한국을 포함한 43개 국가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아 남극 및 남극해의 환경 변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SCAR는 남극조약협회당사국회의 뿐 아니라 국제기후변화협약, IPCC와 같은 정부간 회의와 국제 기구에도 자문을 제공하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 극지 연구도 활발한 국제 협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극지 연구 기관인 극지연구소의 경우, 2019년 한 해 동안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등 41개국 408개 연구 기관과 연구 협력을 수행했다(극지연구소, 2019). 연구 분야 또한 극지의 생태 변화를 관측하는 데서 벗어나,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극지 생물 연구와 신소재 연구로 확장되고 있다. 국제 환경 조약은 과학적 진단에 따라 극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뤄지는 국제정치적 실천이다. 남극물개보존협약(1972)을 시작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1980), 남극환경보호의정서(1991), 북극환경보호전략(1991) 등이 잇따라 체결됐고, 각 국가의 국내법을 통해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다(김기순, 2010).

이처럼 최근 극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들은 과거의 극지 영역화와 구별되는 극지 재영역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극지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추동한 근본 원인은 극지에서 벌어진 물리적, 환경적 변화다. 지구물리관측년, 오존층 구멍, 기후변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지구에 대한 행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변곡점으로 작동했다. 앞서 캠프 센츄리 사례에서 살펴본 극지의 지질학적 힘과 남극 지명 사례에서 활용된 한국과 남극의 지형적 유사성과 함께 극지에서 일어난 환경 변화는 극지가 물리적 실체로서 극지 심상의 형성에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별 국가의 영역화 대신, 전지구적 차원의 국제 협력을 통해 극지에 대한 재영역화가 일어났으며, 그 전략으로 과학 조사와 국제협력이 활용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또, 과거 영역화의 목적이 개별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목적보다는 인류가 함께 직면한 위기를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데 있다는 점도 차별화된다. 즉, 개별 국가의 영토주권적 실천 대신, 지구 행성 차원에서 공동 생존을 위한 실천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비판적 지리학자들의 지적처럼 지리적 심상은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로 관계망의 변화와 작동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으며, 특정한 형태의 수행을 가져오는 것이다(Daniels, 2011; Linehan, 2014).

필자들은 극지를 인류세의 프런티어로 상상하는 것이 지구-사회 관계를 혁신하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지구를 유기적 시스템이자 행위자로 보는 행성적 상상력은 기존의 극지 심상이 극지를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온 것과 차별화된다. 또, 국민국가 중심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냉전적 대결 대신, 인류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자각과 생존을 위한 폭넓은 협력이 강조된다. 최근의 과학 조사와 이에 따른 일련의 환경 협력은 지구의 행성적 변화를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이에 조응하고자 하는 대안적 극지 활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극지를 수동적 대상에서 능동적 행위자로 새롭게 이해하고, 인간을 ‘정복자’에서 ‘선한 관리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정서진 역, 2018).

6. 결론

이 논문은 극지에 대한 이해와 상상이 지난 150여년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주요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극지는 ‘미지의 땅’에서 과학기술을 통한 ‘정복의 대상’으로, 나아가 미소 냉전의 ‘대치 지역’에서 ‘인류 공동의 땅’으로 변화해 왔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자원의 보고’ 및 ‘선진국 진입의 증거’로서 극지를 보는 시각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극지 심상은 식민주의적 팽창, 냉전적 대결, 발전주의 산업화와 같은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면서 항로개발, 핵실험, 자원 탐사, 국제조약 가입 등과 같은 특정한 영역화 방식을 통해 생산되고 강화됐다. 한편, 2000년대 이후 극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는 과거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영역화 작업이 극지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극지를 이해하고 상상하는 새로운 심상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존층 파괴, 기후 변화와 같은 극지의 급격한 환경 변화는 극지를 ‘인류세 위기의 최전선’으로 상상케 하며, 이를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초국가적 과학 조사와 국제 환경 협력으로 이어졌다. 즉, 개별 국가의 영토주권적 실천에서 지구 행성이 직면한 위기 속에서 공동의 생존을 위한 초국가적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극지 심상의 형성과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인문지리학에서 소홀히 다뤄져 왔던 극지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생산하고 관련 논의를 촉발하고자 했다. 필자들은 이 연구가 지구 행성의 물질성, 지리적 심상의 다중성, 공간 연구 대상 확장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극지 연구 및 지리학의 심상지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이 연구는 지리적 심상의 권력관계를 분석해 온 심상지리 연구와 인류세의 행성성 논의를 결합함으로써, 극지에 대한 지식과 상상이 비단 국내외 정치뿐만 아니라 지구 행성의 물질적 변화 속에서 조형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필자들은 행성성 논의가 인간 사회의 정치적 관계를 넘어, 자연(지구)의 물질성을 문화지리적 이해에 결합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공한다고 본다. 자연이 갖는 행성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하고, 자연의 변화를 행성적 시공간 속에서 사유함으로서, 지질-사회적 탐색을 통해 자연과 사회의 얽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룬 캠프 센츄리 사례는 극지의 지질학적 힘이 끊임없이 이 공간을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1957년의 국제지구년은 11년 주기로 극대화되는 태양의 흑점을 관측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행성과 항성에 대한 관심이 극지 탐사를 가능케 했고, 냉전 구도가 심화되던 속에서도 남극을 냉전 속 '비무장지대'로 만들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오존층에 발생한 ‘구멍’이나 지구 온난화에 따른 극지 환경의 변화는 최근 극지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개입을 이끌어낸 근본 원인이다. 이처럼, 물질적 실체로 지구가 가진 힘과 변화가 극지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활동에 개입함으로써 극지 심상 및 극지의 사회물질적 조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지리적 심상의 다중성에 관한 부분이다. 이 연구는 극지 심상이 고정되거나 단일하지 않으며, 사회와 지구의 상호작용을 통해 끝없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극지가 사회로부터 절연된 장소가 아니며, 사회의 변화하는 정치적, 경제적, 물질적 상호작용 속에서 개념적으로 새롭게 이해되고 물질적으로 다시금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필자들은 최근 기후 위기 속에서 기존 국민 국가의 극지 영역화와 스케일, 전략, 목적 면에서 차별화되는 극지의 재영역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처럼 주된 극지 심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모하지만, 필자들은 새로운 극지 심상이 과거의 극지 심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과 공존하고 경합한다고 본다. 즉, 인류세 프런티어로서의 극지 심상이 두드러지면서 국제 협력을 통한 극지 과학 조사가 활발히 수행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국가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극지 자원을 미리 탐사하고 확보하려는 ‘자원의 보고’로서의 극지 심상이 결합돼 있다. 또, 각국의 활발한 기지 건설과 과학 조사는 극지 영유권 확보와 관련된 정치적 긴장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즉 극지 심상은 ‘다중적(multiple)’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에서 시도된 행성적 상상력은 극지 뿐 아니라 그간 간과되어 왔던 극지, 우주, 해저, 상공 등을 인문지리학의 새로운 분석 대상으로 위치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심상지리의 비판적 연구와 행성적 물질성 연구의 결합은 이 같은 새로운 공간의 형성과 작동에 대한 맥락 특수적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

부록 1

남극에 부여된 한국 지명

이름(영문) 네러티브
1 아라온계곡(Araon Valley) 빙하를 헤치고 나아간 쇄빙선 아라온호에서 따온 이름으로 빙하가 있는 계곡을 뚫으려는
의도를 반영했다.
2 아리랑봉(Arirang Hill) 빙하를 헤치고 나아간 쇄빙선 아라온호에서 따온 이름으로 빙하가 있는 계곡을 뚫으려는
의도를 반영됐다.
3 아우라지계곡(Auraji Valley) 두 개의 가느다란 계곡이 겹치며 해변 위로 이어지는 형태는 두 개의 흐름이 겹치는
장소를 뜻하는 강원도 정선군의 '아우라지'와 닮았다. 강원도는 두 개의 흐름이
겹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4 백두봉(Baekdu Hill) 그 이름은 20년 전부터 사용되었고, 이것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5 백제봉(Baekje Hill) 정상의 네 봉우리 모양이 한국의 삼국시대와 비견된다.
6 발해봉(Balhae Hill) 발해는 통일신라 시대에 번성했던 나라로 이 지명은 한반도의 활동 지역과 한민족의
정서가 반영된 이름이다.
7 반달곶(Bandal Cape) 해변에 위치한 반달 모양의 낮은 땅이 반달을 의미하는 한국어 ‘반달’과 유사하다.
8 부리곶(Buri Cape) 새의 부리를 의미하고, 세종기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9 촛대바위(Chotdae Rock) 이 이름은 양초의 촛불 모양을 닮아 붙여졌다.
10 대왕바위 (Daewang Rock) 세종기지 주변의 바위는 조수 차에 의해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하는데,
세종기지 연구원이 그 이름을 붙였다.
11 고구려봉(Goguryeo Hill) 정상의 네 봉우리 모양이 한국의 삼국시대와 비견된다
12 해운대빈(Haeundae Beach) 배턴반도 남쪽에 위치한 이 해변은 한국의 해운대 해변과 비견된다.
13 화석봉(Hwaseok Hill) 이 이름은 이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생대 식물 화석들이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14 인수봉(Insubong Hill) 이 이름은 20년 동안 사용되어왔고, 언덕의 모양이 한국의 인수봉과 닮았다.
15 전재규봉 (Jeonjaegyu Hill) 세종기지에서 언덕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고 전재규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16 가야봉(Kaya Hill) 이 이름은 병풍처럼 생긴 모양을 닮은 연맹국 가야에서 따왔으며, 발음하기가 쉽다.
17 마포항(Mapo Harbour) 마리안 만에 위치한 이 항구의 이름은 한국의 서울에 있는 마포항에서 이름을 따왔다.
18 미리내빙하(Mirinae Glacier) 미리내는 한국어로 은하수를 뜻한다. 이곳에서는 빙하가 다양한 모양과 색조를 띠며
밤하늘의 은하처럼 펼쳐져 있다.
19 나비봉(Nabi Hill) 이 이름은 언덕 지형의 정상 윤곽이 나비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20 나래절벽(Narae Cliff) 이 이름은 절벽지형이 병풍처럼 활짝 펼쳐진 날개 모양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1 삼각봉(Samgak Peak) 산의 모양이 삼각형 피라미드이다. ‘삼각’은 한국어로 삼각형을 의미한다.
22 세종곶(Sejong Cape) 이 이름은 10년 전부터 사용되어 왔고, 세종기지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23 세종봉(Sejong Hill) 이 이름은 세종기지 건설 초기부터 사용된 지명이고, 세종기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4 세석평원(Seseok Flat) 높은 위도에 평평한 이 지역 땅은 지리산의 세석평전을 연상시킨다.
25 신라봉(Silla Hill) 정상의 네 봉우리 모양이 한국의 삼국시대와 비견된다.
26 우이동계곡 (Uidong Valley) 우이동계곡은 북한산에 있는 계곡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인수봉 언덕에서 해안 방향으로
계곡이 생성되어 있으며, 인수봉과 우이동 계곡 모두 한국의 북한산에 위치하고 있다.
27 울산바위봉(Ulsanbawi Peak) 이 봉우리의 형태와 능선은 설악산의 울산 바위를 닮았다.

(출처: SCAR Composite Gazetteer of Antarctica https://data.aad.gov.au/aadc/gaz/scar/)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대한민국 정부의 재원으로 극지연구소 학연 극지연구 진흥프로그램(PAP)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자,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 지원(NRF-2021R1A6A3A13039150),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융합부문(CRC) 지원(NRF-2018R1A5A7025409), 해외우수신진연구자 유치사업(KRF) 지원(NRF-2019H1D3A1A01070116)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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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필자들은 이 글에서 심상(image)을 ‘담론, 텍스트, 이미지 등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정 장소에 대한 지식 및 상상’으로 사용한다. 2절 참고.

[3] 2) 한편, Körber et al.(2017), Bennett(2020) 등은 ‘근대성’, ‘폐허’와 같은 개념을 이용해 북극을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북극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발전시키고 있다.

[4] 3) Fedman(2020)은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실시한 조림 산업에서 유사한 지식과 경관의 조정이 이뤄졌음을 지적한다.

[5] 4) 클라크와 체르진스키는(2020) ‘지질-사회(Geosocial)’를 분석하기 위한 4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 지구의 행성적 조건 속에서 진행된 인간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분석(geohistorical analysis), 둘째, 인간의 시, 공간적 스케일로 쉽게 포착되지 않는 행성이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지질학적 현상을 포함한 광범위한 패턴들에 대한 분석(metapattern analysis), 셋째, 행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권역들의 움직임 방식과 이때 이동하는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그 이동이 불러온 의도하지 않은 재난과 같은 결과에 대한 분석(stratal analysis),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성이 다른 행성들과 스스로를 구분짓기 위해서 수행하는 형태 변화와 이를 포착하기 위한 인간의 과학적 수행에 대한 분석(comparative planetology) 등이다.

[6] 5) 필자들은 최근의 변화를 ‘재영역화’와 연결시킬 것을 제안해 준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7] 6) IPCC는 2019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인류세’를 언급하며, 지구 온난화로 발생하는 생태사회적 위기를 인류세와 연결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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