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0 April 2026. 205-232
https://doi.org/10.22776/kgs.2026.61.2.205

ABSTRACT


MAIN

  • 1. 서론

  • 2.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역사지리

  •   1) 제주도의 대외 교류 역사

  •   2)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리

  • 3. 한자 표기 지명의 등장과 변천: 漢拏山과 白鹿潭

  •   1) 漢拏山(한라산)과 漢羅山(한라산)

  •   2) 大池(대지)와 白鹿潭(백록담)

  • 4. 고유어 지명의 추정: 할라산과 ᄇᆞ로못

  •   1) 한라산: *한라・*한로~*할라・*할로~*하라・*하로

  •   2) 백록담: *ᄇᆞᄅᆞ뭇~*ᄇᆞ로못

  • 5. 결론

1. 서론

“(한라산) 정상에 이르자 구덩이가 패여 못을 이루고, 석봉이 빙 둘러 둘레가 7~8리 정도 되었다. 돌비탈길에 기대어 굽어보니 물은 수정 같건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못 가 흰 모래에 향기로운 덩굴이 자라 한 점의 티끌조차 없었다. 인간 세계의 기운이 멀리 3천 리 떨어져 있어 신선의 퉁소 소리가 들리고 신선의 수레가 보이는 듯하였다.” (임제, 1578.02.15.)

“상서화리 천ᄌᆞ님은 / 할로영산 백록담 우이 / 지질개서 솟아났수다.” (세화본향 천ᄌᆞ당 본풀이)

“큰물당 조상님은 / 할루산 섯어깨 / 무유알에서 솟아나니 / 그 할으방이 / 삼방굴사로 ᄂᆞ렸수다.” (사계본향 큰물당 본풀이)1)

21세기 초반인 현재,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 소속된 화산섬인 제주도(濟州島)의 중앙에는 ‘한라산’(漢拏山, 1,950m)과 산 정상에는 ‘백록담’(白鹿潭)이라는 화구호가 위치하고 있다(그림 12).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전라도 나주 출신의 28살 한 청년은 대과에 급제한 후 한라산 정상에 올라 기이하고 신비로운 경치에 선경(仙境)의 감흥을 글로 남겼다. 혹은 제주의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들은 그들이 모시던 당신(堂神)의 영험함을 한라산 백록담에 환유(換喩, metonymy)하면서 나지막이 경건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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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위치와 범위
자료: (좌상) Google Maps (2023.02.15. 검색); (우상) 카카오맵 (서귀포시 토평동 행정구역 포함) (2026.02.09. 검색); (좌하) <제주도지도>(《大東輿地圖》)(김정호, 1861, 국사편찬위원회); (우하) <제주도지도>(《東輿圖》)(김정호, 19세기 중반, 奎10340,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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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라산 백록담의 시각적 재현물
자료: (좌상) 한라산 원경(서귀포시 서홍동 삼매봉에서 조망) [김순배(2022.7.24. 촬영)]; (우상) 백록담 드론 사진(백록담 북서쪽 상공에서 조망)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한국명승학회, 2022, 322); (우중) 백록담 전경(백록담 북쪽 홍량 부근에서 파노라마 조망) [김순배(2022.3.10. 촬영)] (좌하) <白鹿潭>(백록담 북쪽 상공에서 俯瞰) (《耽羅十二景圖》, 18세기전반)(오상학, 2020, 88); (우하) 백록담 표지석(백록담 동쪽 동릉 부근) [김순배(2022.3.10. 촬영)]

제주도에 놀러 가든 그 섬의 소식을 전해 듣든 우리는 무심코 ‘한라산’과 ‘백록담’을 바라보거나 머릿속에 그 모습을 떠올릴 뿐, 이 이름들이 말해주는 보편적인 대주체(大主體) 너머의 무언가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이 이름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이름에는 어떤 의미의 누층(layers of meaning)이 쌓여 있는가? 제주 사람들이 경험해 온 어떤 신산한 삶의 역사가 변신(metamorphosis) 하여 지금의 그 이름들이 되었는가(Kim, 2025). 이러한 물음들이 본 논문이 가지는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漢字) 지명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어원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로는 한라산의 경우 크게 3가지의 어원이, 그리고 백록담의 경우는 1가지의 어원이 제기되어 왔다. 한라산의 어원은 첫째, 15세기 후반, 표기된 한자를 뜻풀이한 ①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 둘째, 고대 탐라어의 높은 산이나 구름이 있는 땅을 뜻하는 ② ‘*칸나(kanna)’~‘*하라(harra)’(*는 추정 자료를 뜻함), 그리고 셋째, 중세몽골어로 ‘검은색’ 또는 ‘위대하다’는 뜻을 지닌 ③ ‘*하라(hara)’ 등이 있다(『(新增)東國輿地勝覽』제38권 全羅道 濟州牧 山川條 漢拏山, 1477년, 1481년, 1530년; 김공칠, 1967; 강영봉, 2001, 354; 임재영, 2021, 107-108).2) 한편 백록담의 어원은 17세기 초반 김치(金緻, 1577~1625)의 「遊漢拏山記」에서 표기된 한자를 뜻풀이하면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① ‘신선이 백록(白鹿, 흰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이 있다.3)

필자는 한반도 육지부에 분포하는 ‘*서리뫼 > 霜嶽[상악, 훈음차 표기] > 金剛山(금강산)’, ‘*서리뫼 > 雪嶽[설악, 음차 표기]~靑峯[청봉, 훈음차 표기]’, 그리고 ‘*송이산 > 俗離山’[속리산, 음차 표기] 등의 산이름 변천 사례와 같이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 또한 표기 이전에 존재하던 음성 상태의 원초 지명으로서 제주 고유어 지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김순배, 2014; 2017). 요컨대 토착 제주도 사람들이 음성 상태로 지칭하던 ‘*한라~*할라~*하라’~*하로’와 ‘*ᄇᆞ로못~*ᄇᆞᄅᆞ뭇~*바람운’이라는 고유어 지명이 어느 시기인가 도가적인 소양을 지니면서 한자와 한문(漢文) 사용에 익숙한 누군가에 의해 ‘漢羅山~漢拏山’[음차 표기]과 ‘白鹿潭’[음차 표기]으로 전부 지명소가 차자표기(借字表記) 되었을 것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명 어원이 제주 고유어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을 설정하여 한자 지명으로 변천해 온 명명 시기, 명명 주체, 명명의 이유, 그리고 본래의 고유어 지명을 역사지리적이고 지명언어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구체적인 논증과 논지 전개를 위해 3단계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째,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역사지리적 성격을 문헌 조사와 현지 답사를 통해 기초적으로 조사하여 제주도의 활발한 대외 교류의 역사와 지명적 특성, 그리고 한라산 백록담 주변에 분포하는 소지명을 정리하였다. 둘째, 공식 지명이자 한자 지명인 ‘漢羅山~漢拏山’과 ‘白鹿潭’의 명명 시기와 명명 주체, 그리고 명명의 이유를 비교 문헌 조사를 통해 추적하였다. 셋째, 한자 지명인 ‘漢拏山’과 ‘白鹿潭’이 등장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제주 고유어 지명을 찾기 위해 제주도 주민들의 토착 신앙적인 신화 및 무속적 가치와 민속 신앙을 반영하고 있는 무가(巫歌) 본풀이 자료를 문헌 조사하였다.

2.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역사지리

1) 제주도의 대외 교류 역사

과거 탐라국(耽羅國)이 자리했던 제주도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해상에 분포하면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수리적, 지리적, 관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4) 이러한 한반도와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고대 제주도의 언어지리적 특성 또한 한반도에 분포한 한계(韓系) 및 부여계(扶餘系) 언어, 특히 백제어(百濟語)의 영향을 크게 받아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도수희, 1977; 2008; 2023).5)

선행 연구 결과, 제주도에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서귀포시 천지연 인근에서 발견된 생수궤 유적(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795번지)은 약 100만 년 전 무렵 수중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제주도에서 현재까지 조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인류 정착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생수궤 유적의 절대연대와 더불어 화산활동과 제4기 해수면변동 과정을 참고하면 약 25,000년 전 이후부터 제주도에 인류가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김상태, 2016). 이러한 고고학적 연구를 뒷받침하듯, 제주 사계리 해안(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대정읍 상모리)에서는 약 15,000~20,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의 사람 및 동물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고, 이는 아시아 최초의 사람 발자국 화석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람 발자국 화석의 형성 시기는 약 15,000년 전으로 해석되고 있다(김경수・김정률, 2006).

한편 제주도에는 1만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한반도의 모습이 현재의 지형으로 바뀌는 시점에 한국 최초의 신석기 시대 유적, 즉 제주 고산리 유적(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28번지)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고산리식 토기는 방사성탄소연대 분석 결과 기원전 7,600~4,500년 사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에서 신석기 시대 초기 문화로 이행되는 전환기의 문화 양상과 함께 한반도의 초기 신석기 문화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제주 고산리 유적; 소상영, 2017, 1). 이러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선사(先史)시대 이래로 제주도 사람들의 언어 활동과 음성 상태의 고유어 지명이 구전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역사 시기에 접어들면서 제주도와 한반도 및 중국 대륙 등과의 활발한 교류 양상은 여러 고고학적 유적 및 유물 발굴 성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금성패총유적(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446-1)에서는 화천(貨泉), 방추차, 갈돌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화천은 중국의 신대(新代, AD. 8~23)에 제작된 동전으로 당시 동북아시아 교류의 직접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제주시 용담동에서 발굴된 회색 토기류의 형식적인 특징들은 경북 경주 안압지와 전남 영암군 구림리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통일신라 토기와 유사성을 갖고 있어 이들 지역과의 활발하게 이루어진 교류의 결과를 알 수 있다(이귀영, 2001, 118-121).

특히 한반도 남해안과의 활발한 해상 교역과 관련하여 기원후 3~5세기까지 제주도의 탐라정치체가 형성된 탐라시대 전기(AD. 200~500)에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馬韓) 세력을 거점으로 변‧진한 및 가야 지역(특히 경남 고성군의 대가야) 등의 한반도 남부 지역의 다양한 정치체와 철(鐵) 등을 매개로 한 다양한 교섭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기원 전후 한 시기에는 제주지역 정치 세력이 한반도 남부의 전남 해남군 군곡리와 경남 사천시 늑도를 연결하는 남해안 해상 교역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강창화 2018, 45-57; 김경주, 2018, 72-73).

그러나 전남 서남부~전남 동남부~경남 서남부로 연결되는 제주해협권의 고대 교역 루트는 6세기 중반 이후 완전히 해체되었다. 백제의 전남권 전역에 대한 영역화와 직접 지배는 제주[탐라]의 다원적인 대외 교류와 활동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자치권이 보장된 신속(臣屬) 과정을 거쳐 간접 지배 권역에 포함된다. 요컨대 탐라는 6세기 중반경 백제에 신속되면서 외교권이 위임된 반자치적인 국(國)체제를 유지하였지만 대외 교섭과 교류의 창구는 백제를 통해 일원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김경주, 2018, 76). 따라서 이러한 한반도와 관련된 제주도의 대외 교류 역사를 통해 앞서 제기한 제주 방언 및 고유어 지명이 가지는 한계어 및 백제어와의 깊은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다.

역사지리적으로 제주도라는 자연 공간에서 진행된 지명화(地名化, toponymization) 과정에는 해당 지명별로 혼재 정도의 편차는 있으나, 대체로 내부자와 외부자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명명의 방식, 그리고 인문적 가치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자연과 지명을 바라보는 시선(way of seeing)이나 가치 부여의 근저에는 내부자, 즉 제주도 주민들의 토착 신앙적인 신화 및 무속적 가치와 민속적 신앙이 고유어 지명 형태로 그 기초에 누적되어 있고, ‘탐라군’으로 육지 권력에 편입된 고려시대(고려 숙종 10년, 1105년)6) 이래로 외부자들과의 왕래 및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원주민들의 인문적 가치 위에 섬 외부로부터 전파된 도교, 유교, 불교적인 정신적 가치 부여가 중첩된 한자 및 한역(漢譯) 지명들이 명명되면서 하나의 지명 경관 속에 다양한 의미의 누층이 쌓여 있다(제주특별자치도・한국명승학회, 2022, 158; 김순배, 2024, 9; 류제헌・김순배, 2025a).7)

2)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리

한라산과 백록담의 자연적인 지리 사실은 인문적인 지리 현상과 융합되어 하나의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을 구성하고 있다.8) 이러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현재 한라산 백록담 일원은 명승과 천연기념물 및 천연보호구역이라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9) 특히 고문헌 및 고회화, 현대 사진 자료 등에 재현된 한라산 백록담의 자연 및 인문 지리적 묘사는 다양한 이미지와 이름들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2). 현재 대한민국 남한에 위치하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은 제주도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 다만 ‘백록담’의 전부지명소인 ‘백록(白鹿)’의 경우, 깨끗하고 상서로운 ‘흰 사슴’이 가지는 도가적이고 유가적인 신성(神聖)하고 신령(神靈)한 의미로 인해 남한에 10여 곳이 분포하고 있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10)

예로부터 제주도의 마을 주민들은 한라산 백록담을 신령하고 신성한 신적인 대상으로 여겨 그들이 모시는 당신(堂神)들이 솟아나거나 그곳에서 내려와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했다는 구전들과 관련 고유어 지명들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표 2; 류제헌・김순배, 2025b). 그러나 제주 고유어 지명들은 고려 및 조선시대 이래로 이곳을 통치하고 방문한 유교적인 관료 및 지식인들에 의해 ‘漢拏山’, ‘白鹿潭’과 같이 대부분 한자 지명으로 기록되어 공식화되었다. 제주도를 방문한 육지의 외부인들에 의해 고유어 지명이 한자(및 한역) 지명으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제주도의 한자 지명화 사례는 한라산 백록담 주변에 분포하는 지리적 실체들의 이름에 남아 있다.

고문헌, 고회화, 고지도 등에 수록된 한라산 백록담 주변 봉우리 등의 지형물 명칭 등을 위치 비정을 통해 위성 영상에 표시하면 그림 3과 같다.11) 그림에 보이는 지명들에서 알 수 있듯이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소지명들이 대체로 한자(및 한역) 지명으로 현재까지 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라산[두무악(頭無岳), 원산(圓山), 부악(釜岳)], 화구호[백록담], 화구 외륜봉[동릉-일관봉-동암-동대-방암 / 북벽-북릉-북면주봉-북암-구봉암-한관봉-혈망봉-혈석-입석-홍량-기우단-황사암 / 서쪽 능선-한라산 정상-서암-서정-상봉-월관봉 / 남벽-남봉-남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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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소지명 분포
자료: 카카오맵(https://map.kakao.com) 위에 지명 표시
주1: ‘구봉암’과 ‘한관봉’의 위치를 위 지도의 백록담 북북동쪽 부근이 아닌, 윤제홍의 <한라산도>(1844)와 백록담(탐라십이경도, 18세기전반)(오상학, 2020, 88) 고지도 등을 근거로 현재의 ‘왕관릉’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음. 정확한 위치 비정에 대한 별도의 후속 조사가 필요함.
주2: ‘방암’의 위치를 위 지도의 구봉암 부근이 아닌, 현 동릉의 백록담 표지석 부근에 있는 인공적으로 가공한 것 같은 직육면체의 바위로 보는 견해가 있음.

3. 한자 표기 지명의 등장과 변천: 漢拏山과 白鹿潭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명 변천 과정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즉 자연 환경과 인간의 인식 작용이 만나는 지점에서 명명되는 지명과 그 변천을 통해 지리적 실체로서의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관점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필자는 다음 장에서 제시될 내부자들에 의해 인식된 제주 무가 본풀이의 설명과 같이 초기의 신화적이고 원초적인 시각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할라산・할로영산・하로산・하라영산’, ‘頭無岳(두무악)・圓山(원산)・釜岳(부악)’, 그리고 ‘*ᄇᆞᄅᆞ뭇, *ᄇᆞ로못’이라는 한라산 백록담의 옛 제주 고유어 지명이 대륙 문명의 유교적이고 도교적인 사상과 이념을 지닌 외부자들에 의해 “漢羅山・漢拏山”, “白鹿潭” 등과 같은 한자로 차자(음차 및 훈차) 표기된 한자 지명으로 변신하고 변형되어 현재에 통용 및 인식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은 언제, 누가, 어떻게, 왜 명명하였을까? 본 장에서는 한자 지명으로 변천해 온 명명 시기와 명명 주체, 그리고 명명 과정에서 작용한 가치 부여의 성격을 비교 문헌 조사를 통해 분석하였다. 한라산과 백록담 관련 한자 표기 지명의 변천 과정을 삼국시대 이래 현재까지 해당 지명과 관련된 시대별 고문헌 및 고지도 등에 기재된 지명 표기를 정리하여 지명 변천 도표를 작성하면 표 1과 같다.12)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표기 지명의 등장과 변천 과정을 추적하였다.

표 1.

한라산・백록담 관련 한자 표기 지명의 변천

지명 15세기 이전 15세기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비고


州胡(『三國志』魏書 東夷傳 韓, 233-297년, 又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州胡國(『後漢書』東夷列傳 韓, 398-445년, 馬韓之西,海島上有州胡國)

躭羅國(『三國』百濟本紀, 文周王 476년, 躭羅國獻方物)
耽羅,躭羅,躭牟羅(『三國』百濟本紀, 東城王 498년, 王以耽羅不修貢賦親征...躭羅則躭牟羅)
①躭牟羅國(『三國』百濟本紀, 威德王 589년, 有一戰舩,漂至躭牟羅國.其舩得還,經于國界,王資送之甚厚)
躭羅國(『三國』新羅本紀, 文武王 662년, 躭羅國主佐平徒冬音律來降.躭羅自武德以來,臣屬百濟,故以佐平位官號,至是降爲屬國)
乇羅(『遺事』海東安弘記, 1281년, 列九韓,乇羅居四)
乇羅,耽羅郡(『高麗』地理志 全羅道 耽羅縣, 肅宗 1105년, 肅宗十年,改乇羅,爲耽羅郡)
耽羅縣/耽羅縣令,耽羅縣尉(『高麗』地理志 全羅道, 毅宗 1153년/食貨志 祿俸, 仁宗 1122-1146년, 毅宗時,爲縣令官/仁宗朝定...二十六石十斗...耽羅縣令...二十石...耽羅縣尉)

濟州牧(『高麗』地理志 全羅道 耽羅縣, 충렬왕 1295년, 忠烈王三年,元爲牧馬場.二十年,王朝元,請還耽羅...以耽羅,還隷于我.翊年乙未,改爲濟州)

漢拏(『高麗』地理志 全羅道 耽羅縣, 鎭山漢拏,在縣南,一曰頭無岳,又云圓山,其巓有大池)

濟州,漢拏山(『高麗』列傳 諸臣 崔瑩, 恭愍王 23년 1374년, 翼日至濟州,瑩部署諸將,四面分攻...諸將屯漢拏山下休兵)

漢羅山(『實錄』太祖 權近 詩, 1397년, 耽羅:蒼蒼一點漢羅山,遠在洪濤浩渺間)
漢拏山(『實錄』太宗 1416년, 啓曰:濟州置郡之初,漢拏山四面凡十七縣)

漢拏,頭無岳,圓山(『世宗』地理志 全羅道 濟州牧, 1454년, 鎭山漢挐,在州南.一曰頭無岳.又云圓山.其官行祭.穹隆高大.其巓有大池)

頭無岳,濟州,乇羅歌[『佔畢齋集』詩集 卷一, 金宗直(1431~1492) 1465년, 乙酉二月二十八日,宿稷山之成歡驛.濟州貢藥人金克修亦來.因夜話,略問風土物産.遂錄其言,爲賦乇羅歌十四首.第十二首.頭無岳上靈湫水,旱不能枯雨不肥]

漢拿山(『實錄』成宗 1472년, 濟州點馬別監事目:一.濟州四面濱海,獨一漢拏山中峙,如二連木)
漢拏山,頭無嶽,圓山(『新增』全羅道 濟州牧 山川條, 1477년『八道地理志』, 1481년『동국여지승람』, 1530년『신증』, 漢拏山在州南二十里.鎭山.其曰漢拏者,以雲漢可拏引也.一云頭無嶽,以峯峯皆平也.一云圓山,以穹窿而圓也)

漢挐山,頭無岳[『冲庵集』卷四 濟州風土錄, 金淨(1486~1521) 1520-1521년, 三邑地皆漢挐山之麓.崎嶇磽确...又山峯之頂.必凹如鑊.陷成泥潦.峯峯皆然.故謂之頭無岳]
漢挐山[『桐溪集』南極壽星, 鄭蘊(1569~1641), 諺云,登漢挐山則見之云.故及之...自歎幽縶固,未上漢挐巓]

漢拏山,瀛洲,上峯,穴望峯[『南峯集』遊漢拏山記, 金緻(1577~1625), 1609-1610년, 仰見石壁削立.撑柱半空者.卽所謂上峯也...日午始到絶頂之上.坐對穴望峯]

漢拏,頭無嶽,釜嶽[『記言續集』四方 耽羅誌, 許穆(1595~1682), 頭無嶽,漢挐別名.亦曰釜嶽,在州南二十里]

漢拏山,頭無岳,圓山,釜岳[『耽羅志』山川, 李元鎭(1594~1665) 1653년, 其曰漢拏者,以雲漢可拏引也]

漢挐山,上峯,白鹿岳[『知瀛錄』, 李益泰(1633~ 1704) 1694년8월16일, 天低白鹿岳,雲鎖赤松開]

漢拏山,頭無岳,圓山,方岩[<제주도지도>《東輿備考》(17세기 후반); 오상학(2020,14), 在漢拏山絶頂,仙人恒遊處]
漢挐山[『鳴巖集』登漢挐山, 李海朝(1660~1711) 1706년]

漢拏山[『三淵集拾遺』白鹿潭記聞, 金昌翕(1653~1722), 漢挐山絶頂甚平.平處爲潭]

漢挐,頭無岳,祈雨壇,紅橋,九峰巖,黃沙巖[『息山別集』漢挐, 李萬敷(1664~1732), 漢挐者,以山極高峻,雲漢可挐也.亦曰頭無岳...其北崖有祈雨壇.過紅橋而東,有九峰巖.又其東有黃沙巖]

漢挐山,濟州,瀛洲,方巖[『定本擇里志』卜居論 海山, 李重煥(1690~1756) 1751년, 濟州漢挐山是爲瀛洲.山上有大池.每人語喧閙,則輒雲霧大作.絶頂有一方巖,如人鑿成...諺傳神仙恒遊之處]

東岩[<濟州三縣圖>《海東地圖》(18세기 중반); 오상학(2020, 24-25)]

漢拏山,立石,穴石,後面主峯,九峯岩,黃沙岩,長鼓項,冰桶,紅梁,入先石,大川源,別刀川源[<白鹿潭>《濟州島圖》(18세기); 오상학(2020,103)]
漢拏山(『實錄』純祖 1801년, 禮曹啓言:濟州漢挐山祭,風雲雷雨祭香祝及討逆領敎文,同船入送矣. 射鼠島前洋,猝遇風浪,仍爲覆沒)

漢挐山[『東寰錄』濟州, 尹廷琦(1814 ~1879) 1859년, 漢挐山.在州南二十里.以其雲漢可挐引,故名之]

漢拏山,穴望峰,白鹿潭[(<제주도지도>《大東輿地圖》(金正浩, 1861년); 오상학 (2020, 58-59))

漢拏山,九峯岩,北,東岩,西岩,南峯,蟻項,斗里峯[<濟州地圖>『濟州郡邑誌』(1899년); 오상학 (2020, 60-61)]

한라산, HAN-RA-SAN, 漢羅山[『한불자전』(1880)]
②漢羅山,濟洲島(「朝鮮漁業協會 第四回 巡邏報告書 進達 件」第八 濟洲島調査, 1898년, 有名ナル漢羅山...其漢羅山頂ノ舊噴火口
한라산,漢拏山,三神山,神州[『별건곤(제4호)』귤 익은 남쪽 나라 제주도 보고 온 이야기, 姜齊煥 1927년2월1일, 한라산은 웅장하고도 미려하야 三神山의 一이란 말이 과연 허언이 안이다 ... 白鹿의 靑潭이든지 백설이 皚皚한 漢拏山頂이든지 모도가 神州 별경 안임이 업다]

漢拏山,頭無岳,圓山,圓嶠山,瀛洲山,三神山,하ᄂᆞᆯ山(『耽羅紀行 漢拏山』登山篇, 漢拏山의 古義, 李殷相 1937년)

③漢羅山(「濟州島民蜂起動態報告件」島民派軍ヲ東西ニ分ツ, 1901년, 西軍ハ李在樹ノ下ニ城下南門外
約壹里ヲ隔ツル漢
羅山麓ノ丘上ニ野營集屯シ居レリ)

④漢羅山(「韓國森林調査書摘要」濟州島漢羅山ノ森林, 1905년)

漢羅山[『대한흥학보(제8호)』國時二首, 소앙 1909년, 漢羅山漢羅山 놉다더니 漢羅山 놉다더니 千里水路에 濟州島에 소업시 숨어잇네에 나아오너라 나아오너라 되거던 나아오너라]

⑤漢羅山[「포로신문보고서」LEE, Tae Won (李泰源)(이태원), 1951년, Code name HALLASAN (漢羅山)]

한라산(漢拏山,두모악,삼신산,영주산,원산)(『韓國』, 한글학회, 1984년, 348)
①涉羅(섭라),儋羅(담라),乇羅(탁라)라고도 함(한국사데이터베이스, 註001)
②일본인 작성(在釜山 一等領事 伊集院彦吉)
③일본인 작성(領事 森川季四郞)
④일본인 작성(日本 農商務省 山林局 西田又二)
⑤미국인 작성(For the Commanding Officer: SHAPPELL)


①白鹿(『三國』高句麗本紀, 太祖大王 62년, 十年,秋八月,東獵,得白鹿)

白鹿(『三國』新羅本紀, 太宗武烈王 655년, 冬十月, 牛首州獻白鹿)

白鹿(『東人之文四六』詞疏 求化修諸道觀疏, 崔致遠 857-908년이후, 蓬島花開,春醉而閑乘白鹿,芝田雨過,曉耕而長任靑牛)

白鹿山[『高麗』五行志 火 鳥, 1369년, (恭愍王)十八年十一月乙未,鳶飛蔽天,集白鹿山]

大池(『高麗』地理志 全羅道 耽羅縣, 鎭山漢拏...其巓有大池)
大池(『世宗』地理志 全羅道 濟州牧, 1454년, 鎭山漢挐...穹隆高大.其巓有大池)

②白鹿洞書院(『實錄』世宗 1439년, 謹按朱文公,淳熙間在南康,請于朝,作白鹿洞書院,爲學規)

靈湫水(『佔畢齋集』詩集 卷一, 金宗直 1465년, 頭無岳上靈湫水,旱不能枯雨不肥)
大池(『新增』全羅道 濟州牧 山川條, 1530년, 漢拏山...其巓有大池.人喧則雲霧,咫尺不辨.五月猶雪在,八月乃襲裘)

池(『南溟小乘』林悌 1577~1578년, 到絶頂則坎陷為池.石峰環邊.周可七八里)
白鹿[『南槎錄』金尙憲 1601년, 頂上陷下如釜中...潭名白鹿(按地誌,深不可測.人喧則風雨暴作)]

白鹿潭(『南峯集』遊漢拏山記, 金緻(1577~1625), 1609-1610년, 四面峰巒,環如城郭.中有潭 深可丈餘,名曰白鹿潭.諺傳群仙,飮白鹿於此,潭之得名)

白鹿泓[『記言續集』四方 耽羅誌, 許穆(1595~1682), 峯皆上有泓.地勢寬平,稱頭無嶽.其絶頂,有白鹿泓.春秋二分,夕見南極老人星]

池[『耽羅志』山川, 李元鎭 1653년, 以山之頭皆有池,似貯水器也]

白鹿潭,祈雨壇(『知瀛錄』耽羅十景圖序 白鹿潭, 李益泰 1694-1704년)
白鹿潭[『鳴巖集』登漢挐山, 李海朝 1706년], 山外四傍,大瀛海環之...登白鹿潭西峯]

漢拏山[『三淵集拾遺』白鹿潭記聞, 金昌翕(1653 ~1722), 而其潭名百鹿潭,以白鹿飮水]

白鹿潭[『息山別集』漢挐, 李萬敷(1664~1732), 其絶頂有大池.石嶂四圍約十里.古有虞者,夜看老翁騎白鹿,驅羣鹿來遊池上,仍稱白鹿潭云]

大池[『定本擇里志』卜居論 海山, 李重煥 1751년, 山上有大池...諺傳神仙恒遊之處]

白鹿潭(『承政院日記』英祖35년 1759년, 上曰,漢挐山上,有白鹿潭乎.啓禧曰,然矣.其處仙人,曾有騎鹿,而來飮潭水,故名之云矣...上顧謂啓禧曰,此明是濟州白鹿潭乎.啓禧曰,然矣.上曰,予慮儒生,或誤認中原白鹿洞而做之...上還入大內,乘輿時,命漢蕭閱輿地圖曰,有白鹿潭乎.漢蕭曰,無之矣)

白鹿潭[<漢拏壯矚>《耽羅巡歷圖》(李衡祥, 1703년); 오상학(2020,19)]
白鹿澤[<濟州圖>(18세기 전반); 오상학(2020,48)]
白鹿潭[<濟州三縣圖>《海東地圖》(18세기 중반); 오상학(2020, 24-25)]
白鹿潭[<白鹿潭>《濟州島圖》(18세기); 오상학(2020,103)]
大池,白鹿潭(『東寰錄』濟州, 尹廷琦 1859년, 山巓有大池.名曰白鹿潭.人喧則雲霧四羃,不辨咫尺.諺傳登最高處,能見南極老人星云)

③大池(「朝鮮漁業協會 第四回 巡邏報告書 進達 件」第八 濟洲島調査, 1898년, 其漢羅山頂ノ舊噴火口(土人ノ說ニ山頂大池アリ鬼神棲
ムト云フ)

白鹿潭[(<제주도지도>《大東輿地圖》(金正浩, 1861년); 오상학(2020, 58-59))

白鹿潭[<濟州地圖>『濟州郡邑誌』(1899년); 오상학(2020,60-61)]
白鹿潭[『별건곤(제4호)』귤 익은 남쪽 나라 제주도 보고 온 이야기, 姜齊煥 1927년2월1일, 산정에는 白鹿潭(고대분화구)이 잇서 景槪絶勝하고]

白鹿潭,ᄇᆞᆯ늪,光明池(『耽羅紀行 漢拏山』 이은상, 1937년)
백록담(白鹿潭)(『韓國』, 한글학회, 1984년, 347)
①고구려, 부여, 신라에서 흰사슴은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됨. 중국에서도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군주가 어질고 도를 갖추면 출현한다고 믿음. 왕권의 정당성을 표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됨(註001).
②현 중국 江西省 星子縣 廬山 五老奉 아래 위치. 唐代(9세기초) 李渤(이발)이 은거하여 白鹿을 기르고 독서를 하며 살았기 때문에 白鹿洞이라 부름(네이버 지식백과)

③일본인 작성  

주1: 항목 내의 윗별표(*)와 물음표(?)는 각각 추정된 음가와 의미를 뜻함.

주2: 항목 내의 원숫자(①, ②, ③ 등)는 각 지명의 간략한 주석을 ‘비고’ 항목에 표시한 것임.

주3: ‘비고’ 항목의 ‘a>b’는 지명 a에서 지명 b로의 통시적 변화를, ‘a→b’는 지명 a에서 지명 b로의 공시적 변화를 뜻함.

1) 漢拏山(한라산)과 漢羅山(한라산)

현재까지 사료에 보이는 ‘漢拏山’(한라산)의 첫 기록은 15세기 중반인 1454년(조선 단종 2)에 인쇄되어 반포된 『高麗史(고려사)』에 2건(『高麗』地理志 全羅道 耽羅縣; 列傳 崔瑩, 1374년)이 등장한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 그러나 『고려사』는 조선 전기의 관료 및 유학자들에 의해 개서(改書)한 혐의가 있어 고려시대의 어느 시기에 ‘漢拏山’을 기록했는지는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사). 그런데 15세기 초반인 1416년에 『太宗實錄(태종실록)』(태종 16년)에도 동일한 표기가 등장하고 있다(표 1의 ‘15세기’ 항목). 따라서 ‘漢拏山’의 경우, 고려 말(1374년)에서 조선 초(1416년)에 이르는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경에 성리학적 개혁 사상을 가진 신진사대부 및 유학자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어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라-’의 표기를 달리하는 ‘漢羅山’(한라산)은 조선이 건국(1392년)된 14세기 말, 『太祖實錄(태조실록)』에 기록된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시(『實錄』太祖 權近 詩, 1397년)에 처음 등장한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13) 이후 19세기 말~20세기 초에도 외국인(프랑스인, 일본인, 미국인) 및 개화기 지식인 등에 의해 기록된 ‘漢羅山’이 약 5건 정도 보인다(표 1). 이 지명은 도가적 의미를 지닌 ‘漢拏山’의 표기보다 더 원형의 음차 표기 형태를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漢羅山’의 ‘-羅-’(-라-)가 ‘新羅’(신라), ‘加羅’(가라), ‘斯羅’(사라), ‘徐羅’(서라) 등의 진한어 및 변한어에서 보이는 고대 지명 형태소의 표기 특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 형태소로서의 ‘羅’의 의미와 지역적 분포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장에 제시되었다.14)

그런데 15세기 중반까지도 현재 알려진 한라산의 지명 유래, 즉 ‘하늘의 은하수[漢]를 끌어당길[拏]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란 지명 인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표 1). 그 후 1530년에 간행된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全羅道 濟州牧 山川條)에 해당 지명 인식(“其曰漢拏者, 以雲漢可拏引也”)이 처음 등장한다(표 1의 ‘16세기’ 항목). 해당 기록이 “新增”(신증) 항목에 기록되지 않은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1481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그대로 전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이 기존의 『八道地理志(팔도지리지)』(1477년)에 『東文選(동문선)』의 시문을 보충하여 간행된 사실을 감안하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증동국여지승람),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는 산’이란 지명 인식이 등장한 하한 시기로 1477년을 설정할 수 있다.

특히 1465년의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기록과 1472년의 『成宗實錄(성종실록)』의 기록에도 이러한 지명 인식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표 1의 ‘15세기’ 항목), 우리말의 어순으로 표기 한자를 뜻풀이한 ‘漢拏山 =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란 지명 유래는 대략 1472~1477년 이후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전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충북 보은군-경북 상주시에 위치한 ‘俗離山’(세속을 떠나 있는 산 = 離俗山)의 사례처럼(김순배, 2017), 한문 문법에 충실한 한역 지명, 곧 ‘拏漢山’(나한산)으로 표기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기존의 음성 상태의 고유어 지명(*한라~*할라)을 도교적이고 유교적인 표기를 빌어 음차(音借) 표기했던 정황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비교 문헌 조사 결과, ‘漢拏山’이란 한자 지명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경에 성리학적 개혁 사상을 가진 신진사대부 및 유학자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어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漢羅山’은 조선 건국 직후인 14세기 말, 1397년에 권근(權近)에 의해 처음 기록된 점과 고대 지명 형태소의 표기 형태를 간직한 점으로 볼 때 도가적 의미를 지닌 ‘漢拏山’의 표기보다 더 원형의 음차 표기로 추정된다.

지명의 의미 및 인식과 관련하여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漢拏山)’이라는 지명 인식은 15세기 후반인 1472~1477년 이후 『팔도지리지』(1477)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漢羅山’과 ‘漢拏山’의 명명 주체 및 이유와 관련하여, 조선 초인 14세기 말(1397년)~15세기 중반(1451~1454)에 도가적인 소양을 지닌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 및 관료들에 의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한자, 즉 도가적 가치를 반영한 ‘漢拏’로 전부지명소 ‘*한라~*할라’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2) 大池(대지)와 白鹿潭(백록담)

‘白鹿潭’(백록담)은 『고려사』(1451~1454)에 “大池”(대지), 『世宗實錄地理志(세종실록지리지)』(1454)에 “大池”, 김종직의 『佔畢齋集(점필재집)』(1465)에 “靈湫水”(영추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大池”, 그리고 임제(林悌, 1549~1587)의 『南溟小乘(남명소승)』(1577~1578)에 “池”(지) 등으로 기록되고 있어, 16세기 후반까지도 고유한 명칭을 얻지 못한 채 다만 보통명사[大池(큰못), 池(못)]로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표 1). 다만 제주도에 ‘大池’(대지, 큰못)를 뜻하는 고유어 지명으로서 ‘한못’이 약 2건이 발견되고 있어 16세기 이전에 이미 고유명사로 지명화되었다가 이후 ‘백록담’이라는 경합 지명에 밀려 지명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15)

그 후 17세기 초반,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南槎錄(남사록)』(1601)에 “白鹿(潭)”이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이 기록에는 지명 어원이나 유래를 제시하지 않고 다만 연못의 명칭만을 제시하고 있다(표 1의 ‘17세기’ 항목). 이후 8년이 지난 17세기 초반인 1609~1610년에 김치(金緻, 1577~1625)의 「遊漢拏山記(유한라산기)」에 “白鹿潭”이라는 명칭과 함께 비로소 ‘신선이 백록(白鹿, 흰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諺傳群仙, 飮白鹿於此, 潭之得名”)이라는 지명 유래가 함께 기록되었다(표 1).

그런데 이보다 앞선 1439년에 관찬 사서인 『世宗實錄(세종실록)』에는 중국의 “白鹿洞書院”(백록동서원)과 “(白鹿洞)學規”(백록동학규)가 언급되어 있고(표 1의 ‘15세기’ 항목), 1542년에는 경상도 풍기(豊基) 군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중국의 백록동서원을 본떠 ‘白雲洞書院’(백운동서원)을 세웠다.16) 이 서원은 1550년(명종 5)에 당시 풍기 군수였던 이황(李滉, 1502~1571)의 요청에 의해 ‘紹修書院’(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아 국가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백록동서원; 국가유산포털, 소수서원).

따라서 고려(918~1392) 말 유교적 소양을 지닌 신진사대부들의 중앙정계 진출 및 불교(佛敎) 폐단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그리고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시행한 조선시대(1392~1910)의 신유학[新儒學, 朱子學, Neo-Confucianism), 즉 성리학(性理學)의 영향력 확대는 당시의 지명 변천에도 큰 영향을 미쳐 전국적으로 많은 유교(儒敎) 지명이 만들어졌다(김순배, 2010; Kim, 2012).17) 이 과정에서 중앙에서 제주도에 파견된 관원(官員)들이나 유배객[謫客], 그리고 제주 출신의 유학자들에 의해 많은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으로 바뀌거나 순수한 한역 지명이 다수 명명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 지배 계층의 정치사상적 특성을 감안하여 필자는 ‘*ᄇᆞᄅᆞ~*ᄇᆞ로(bVrV) > 白鹿(bVrV)’(V는 모음을 가리킴)으로 (유사) 음차 표기한 명명 주체로 1609~ 1610년에 제주판관(判官)을 역임했던 인물이자 ‘白鹿潭’(백록담)이라는 이름과 그 지명 유래를 처음 문헌 기록으로 남긴 김치(金緻, 1577~1625)라는 인물과 함께,18) 이보다 앞서 김정(金淨)이 제주도로 유배왔을 때(1520~1521년) 유일한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이자 제주향교의 명륜당에 시액(詩額)을 쓰고 앞서 제시한 주자학적 교육 지침인 ‘백록동규(白鹿洞規)’를 직접 쓴 인물로 언급됐던 김양필(金良弼, 생몰년 미상)이라는 인물을 주목하였다.

먼저 16세기 초반인 1520년 당시, ‘한라산’과 ‘두무악’이라는 산이름이 통용된 반면 아직 한라산 정상의 연못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을 아래의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제주도) 삼읍의 땅이 다 한라산 자락에 있어서 험하고 기름지지 않은 자갈밭 일색이다......또한 산꼭대기의 정상에는 반드시 가마솥같이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함몰되어 진흙 속의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봉우리마다 모두 그러한 까닭으로 그것을 ‘머리가 없는 산(頭無岳)’이라 하니 이야말로 더욱 괴이하다(三邑地皆漢挐山之麓。崎嶇磽确。 ......又山峯之頂。必凹如鑊。陷成泥潦。峯峯皆然。故謂之頭無岳。此尤可怪。).”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10)]

이와 같이 16세기 초반까지 한라산 정상의 연못 이름이 없던 상황에서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의 명명 주체로 16세기경에 제주도에서 태어나 살았던 유교적 지식인인 김양필(金良弼)이라는 인물이 의심된다. 즉 ‘백록담’ 이전의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되는 ‘*ᄇᆞᄅᆞ뭇~*ᄇᆞ로못’은 언제, 누구에 의해 ‘白鹿潭’(백록담)이라는 유교식 한자 지명으로 표기되었는가? 현존하는 문헌 기록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면 16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김양필이라는 인물이 주목된다.

김양필은 당시 기묘사화로 제주도에 유배를 왔던 김정(金淨, 1486~1521)의 기록에 남아 있다. 김정은 「濟州風土錄(제주풍토록)」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제주의 풍물을 기록하면서 제주 토착 지식인이었던 김양필을 언급하였다.19) 김양필은 제주도 최고(最古)의 읍지인 이원진(李元鎭, 1594~1665)의 『耽羅志(탐라지)』(1653) 인물조(人物條)에도 실려 있다. 1510년 생원시에 입격한 그는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던 당시 제주의 대표적 유학자였다. 또한 그는 제주향교 명륜당에 시액(詩額)을 쓰고 주자학적 교육 지침인 백록동규를 직접 쓴 인물로 1534년 제주목사(牧使)로 부임한 심연원의 핵심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김학수 등, 2023, 18-20).20)

따라서 필자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한라산 정상에 있는 연못, 즉 ‘백록담’의 제주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되는 ‘*ᄇᆞᄅᆞ뭇~*ᄇᆞ로못’에 대해 평소 익히 인식하고 있던 김양필이 자신이 지향하고 선호하는 도가적이고 유교적인 용어인 ‘白鹿’(백록)을 빌어 (유사) 음차 표기하여 만든 지명이 바로 ‘白鹿潭’인 것으로 추정한다.21) 이러한 추정을 유추한 근거로는 크게 두 가지, 즉 조선시대 지명 변천사에서 보이는 비슷한 음차 표기 사례, 그리고 사슴[鹿]이 많이 서식하는 제주도의 생물지리적인 특성이다.

첫째, 조선시대 지명 변천사에서는 이와 유사한 음차 표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지의 경우, ‘宿水寺(숙수사) (sVsV) → 紹修書院(소수서원) (sVsV)’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2-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사적) 영주 소수서원), ‘愁送臺(수송대) (sVsV) → 搜勝臺(수승대) (sVsV)’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9) (국가유산포털-(명승) 거창 수승대; 김순배, 2024, 20-22), ‘불뭇골 (bVmV) → 鳳舞洞(봉무동) (bVmV)’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갈산리) (한글학회, 1984, 213; 김순배, 2012, 220-222], 그리고 ‘무낫골~문압골(水出里) (mVnV) → 文學洞(문학동) (mVhV)’ (충남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사례와 ‘수문골 (sVmV) → 崇文洞(숭문동) (sVmV)’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김순배, 2012, 177-183; Kim, 2012) 등이 있다.

한편 제주도의 경우, ‘오롬>오름 → 五音(오음)・吾音(오음)・岳音(악음)・岳(악) → 吾老音(오로음)・兀音(올음)’ (오창명, 1997; 2024, 82-83), ‘낭끼오름 (nVkV) → 南擧峰(남거봉) (nVgV)’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954) (한글학회, 1984, 379), 그리고 ‘벵디~벵뒤 (bVdV) → 坪代(垈)(岱)(평대) (pVdV) / 쉐둔~쉐돈 (sVdV) → 牛屯(우둔) → 孝頓(효돈) → 孝敦(효돈) (hVdV)’ (제주도 서귀포시 효돈동) (오창명, 2024, 87-90) 등의 사례들이 있다.

둘째, 조선시대 사슴[鹿]이 많이 서식하는 제주도의 생물지리적인 특성이 이와 같은 지명 변천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로부터 제주도에는 호랑이, 곰과 같은 야생 맹수가 없어 사슴과 노루, 고라니 등이 많이 서식하였고 공물(貢物)로 사슴을 진상한 기록들이 다수 남아 있다.22) 즉 조선시대에 일상생활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슴[鹿]에 상서로운 의미를 반영하여(흰 사슴) ‘*ᄇᆞᄅᆞ~*ᄇᆞ로’를 ‘白鹿’(백록)으로 음차 표기한 정황을 유추할 수 있다(표 1 백록담의 ‘15세기 이전’ 항목).

이상의 비교 문헌 조사 결과, ‘白鹿潭’이라는 한자 지명은 17세기 초인 1601년에 김상헌(金尙憲)이 쓴 『남사록』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가적인 의미를 지닌 ‘신선이 백록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白鹿潭)’이라는 지명 인식은 8년 후인 1609~1610년에 제주판관을 지낸 김치(金緻)의 「유한라산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白鹿潭’의 명명 주체 및 이유와 관련하여 16세기 초(1520~1521)에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였던 김양필(金良弼)에 의해 유교적이고 도가적인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白鹿’(흰사슴)으로 전부지명소 ‘*ᄇᆞ로~*ᄇᆞᄅᆞ’를 (유사)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4. 고유어 지명의 추정: 할라산과 ᄇᆞ로못

본 장에서는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의 어원을 추적하였다. 앞서 살펴본 생수궤 유적, 제주 사계리 해안의 사람 발자국 화석, 그리고 제주 고산리 유적 등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문자 기록이 있기 이전에도 제주도에는 후기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이래로 생존과 생계를 위한 오랜 인간의 음성 언어 활동과 지명 통용의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 지명사(地名史)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지명 변천 사례와 유사하게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 또한 표기 이전에 존재하던 음성 상태의 원초 지명으로서 제주의 고유어 지명이 있었을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고유어 지명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지명 변천의 과정을 조사하였다.

제주 고유어 지명을 포함하는 제주방언의 낯섬과 독특함은 일찍이 16세기 초반인 1520~1521년에 제주도로 유배온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의 기록을 통해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23)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제주방언으로 불리어온 제주도의 고유어 지명들은 주민들의 구전을 통해 그 음성적 특성이 현재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으며 문자 언어로 기록될 때는 대부분 한자(및 한역) 지명으로 표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행연구 결과, 제주도에 분포하는 지명들은 대부분 제주방언이 반영된 고유어로 말해지다가 한자를 빌려 쓰게 되면서 한자식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기존 제주 지명 자료집을 살펴보면, 제주 고유어로 부른 것이 많고 극히 일부가 한자식 지명이거나 혼종 지명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현재 제주 고유어 지명은 사용 빈도가 낮아지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고, 한자식 지명이나 혼종 지명은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오창명, 2024, 78-96).

한편 앞 장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신유학, 즉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표방한 중앙권력의 지방 관아와 향교(鄕校) 설치 등을 통해 유교와 도교의 문화와 이념이 제주도로 유입되면서 토착민이 부르던 고유한 신성 경관의 명칭과 고유어 지명 또한 변형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1702년 당시 제주도에 산재하던 본향당(本鄕堂)을 비롯한 신당(神堂)을 미신 타파를 명목으로 파괴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그림으로 묘사한 결과를 《耽羅巡歷圖(탐라순력도)》(<巾浦拜恩(건포배은)>에 남겼다(이형상, 2004). 그러나 무속(巫俗) 신앙에 대한 탄압과 불리한 역사적 상황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제주도 원주민들은 일반적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을 지금까지 전승해 오고 있다(현용준, 1989; 류제헌・김순배, 2025b, 41).24)

앞서 김정(金淨)이 경험했던 제주도 말의 특수성과 원형, 그리고 제주 고유어 지명의 일부를 진성기(1991)의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이하 『본풀이』)을 통해 그 실체를 일부 확인할 수 있다(강소전, 2018).25) 김정 이후 400여 년이 지난 20세기 중반경(1956년 3월~1963년 7월)에 구전되어 온 제주도 무속인들의 무가(巫歌) 가사, 즉 ‘본풀이’를 채록한 이 자료를 통해 제주도 방언의 언어적 특수성과 보편성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사전에는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의 어원을 추적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제주 고유어 지명 자료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표 2). 따라서 본 장에서는 『본풀이』 자료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아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과 관련된 제주 고유어 지명들을 추출하여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 이전에 존재했던 고유어 지명을 추적하였다.

표 2.

『본풀이』 등에 수록된 한라산・백록담 관련 한글 표기 지명

지명 관련 표기
(기록 횟수)
원전 구문(편명, 쪽) 채록 장소 비고


한라산
(3)
한라산 백록담에 / 진을 치었다가 (신당본풀이, 333) 제주시 건입동 칠머릿당 영등송별제 유인물(1984.3.16.)
*한라산 지질개서 솟아난 / 토조관 (신당본풀이, 442) 성산면 시흥리 시흥본향 여무 이백0님 *한라산 지질개(山峰名)서 솟아난 / 土主官
할라산
(3)
제주도 할라산으로 / 피란을 오라 (신당본풀이, 499) 서귀읍 서귀리 서귀본향 서백제 제산국 여무 김0님
할락산
(2)
*할락산이 올라강 낭글 비영 (일반본풀이-문전본, 124) *한라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서
*옛날 할락산으로 솟아난 / 백관님은 큰성이고 (신당본풀이, 491) 남원면 신례리 신례본향 예촌당 여무 이봉0님 *옛날 漢拏山으로 솟아난 / 百官님은 큰형이고
할락
둥(궁)이
(18)
할락둥이 어멍이랑 // 할락궁인 심심ᄒᆞ난 신을 삼고 // 할락궁이 상제님아 날 살려줍서 // 할락궁인 아방 앚아난 방석에 (일반본풀이-이공본, 76-97)
한락산
(1)
*제주영산 한락산도 귀경ᄒᆞ고 (일반본풀이-칠성본, 159) *濟州靈山 漢拏山도 구경하고
한락둥(궁)이
(22)
한락둥이랑 // 한락둥이신디 경 버력을 // 한락둥이가 어멍ᄀᆞ라 말을 ᄒᆞ되 // 사라도령은 한락둥일 // 한락둥인 아방물림 ᄒᆞ연 // 한락궁인, 낮인 낭고질 강 (일반본풀이-이공본, 76-89)
하로산
(30)
하로산이 올라가서 / 대국천ᄌᆞ레 큄이라고 (신당본풀이, 342) 제주시 도남당 도남본향 선앙당 남무 김오0님
<하로산당> *하로산또가 / 처음 대국 중국에서 / 할라산에 귀양을 오라 / 좌우에 본향 한집으로 앚일 디가 읏어 // 매알손당 ᄇᆞ름웃드 // 하로산 소로소천국 ᄇᆞ름웃드 (신당본풀이, 440-441) 성산면 수산리 수산본향 하로산당 여무 조옥0님 *漢拏山都가
*동매매기 서매매기 / 진주요기 **하로산 (신당본풀이, 492) 남원면 위미리 매매깃당 남무 한두0님 *堂神 所在 地名, 는뙤미(위미리)에 있는 등성이
**堂神名
할루산
(7)
*한집님은 할루산 동활개서 솟아나 / 영실기암으로 도큰그루로 / ᄒᆞ연 (신당본풀이, 371) 조천면 선흘리 하선흘리 선흘본향 당동산당 남무 고맹0님 *한집님은 / 한라산 동쪽 어깨에서 솟아나 / 靈室奇岩으로 도큰그루로 / 경유하여서
*고냥할으방은 / 할루산으로 내ᄒᆞ여 온 // 할루산이 오를 목 ᄂᆞ릴 목에서 / **사농나갈 때 (신당본풀이, 442) 성산면 수산리 곶앞 고냥할으방 *구멍할아버지는 / 한라산으로 來하여
**사냥을 하여
할라산
(5)
할라산 백록담에 진을 쳤다 (신당본풀이, 331) // 제주 할라산에 오란 (333) 제주시 건입동 칠머릿당 남무 이달0님 / 여무 윤신0님
*하로산또가 / 처음 대국 중국에서 / **할라산에 귀양을 오라 (신당본풀이, 440-441) 성산면 수산리 수산본향 하로산당 여무 조옥0님 *漢拏山都(神 이름)
**할라산(산 이름)
할로산
(6)
할로산 올라 / 백록담에 진을 치고 (신당본풀이, 332) 제주시 건입동 칠머릿당 남무 홍상0님
할로산을 올라가고 보니 / 천제 할으바님이 (신당본풀이, 389) 구좌면 세화리 세화본향 천제또 남무 고대0님
할로영산
(20)
태ᄌᆞ님은 / *할로영산 백록담에 올라간 //할로영산 단ᄄᆞᆯ애긴 //할로영산 소천국신디 // 할로영산에서 / 태역장오리로 오백장군으로 (신당본풀이, 374) 구좌면 김녕리 김녕당 괴뇌깃당 여무 김명0님 *漢拏靈山
*할로영산은 / 도영주산을 올라 사 // 신중부인은 할로영산을 올라사 / 해구무니, ᄃᆞᆯ구무니, 오백장군 / 영실목, 백록담을 구경ᄒᆞ고 (신당본풀이, 464-465) 표선면 토산리 웃당본 남무 박생0님 *漢拏瀛山은 都瀛洲山을 올라서
*조노기 한집이 솟아나긴 / 할로영산 백록담으로 / 솟아났수다 (신당본풀이, 494) 서귀읍 보목리 보목본향 조노깃당 남무 고문0님 *조노기(보목리神堂, 상동네 동쪽에 있는 당) 大主(堂神)가 솟아나기는
한라영산
(1)
산은 갈라 / 어느 산이 위주런고? / *일름 좋은 한라영산 위주외다 (초감제, 674) *이름 좋은 漢拏瀛山 위주입니다
한로영산
(2)
*천제님은 한로영산 / **지질개 백록담서 솟아날 때(신당본풀이, 388) 구좌면 세화리 세화본향 천제또 남무 고대0님 *天子님은(堂神名) 漢拏瀛山
**지질개(한라산 봉우리의 山名)
하로영산
(3)
*첫체는 하로영산 동남밭디서 / 솟아오른 백관님이우다 (신당본풀이, 490) 남원면 신례리 예촌당 남무 고남0님 *첫째는 漢拏瀛山 東南밭에서
하라영산
(2)
문곡성은 부인을 거느리고 / 일천벵마 삼천군벵을 거느리고 / *하라영산을 올랐다 // **하라영산 ᄇᆞ름목 앚아서 (신당본풀이, 414, 415) 구좌면 송당리 손당본향 소천국광 백주할망 남무 이상0님 *한라산으로 올랐다
**한라산 바람목 앉아서
할루영주산
(5)
*할루영주산서 ᄂᆞ려(?)온 / 괴당할망은 (신당본풀이, 342) 제주시 용강동용강본향 괴당할망 여무 정옥0님 *漢拏瀛洲山서 내려온
*할루영주산 올란 / 어슥더슥 당골머리 / 백록담 들어간 / 그 산신대왕 산신백관 (신당본풀이, 456) 표선면 가시리 당남우영할망당 문씨애기본 여무 신여0님 *漢拏瀛洲山
한로영주산
(1)
*해모살 송씨할마님은 / 한로영주산 어시성이로 (신당본풀이, 564) 한림읍 귀덕리 귀덕본향 해모살 송씨할망 남무 이성0님 *해모살(신당 소재지) 송씨할머니(堂神)는 / 한라산 어승생(한라산 서쪽 중턱 지명)으로
할로영주산 (5) 제주도 ᄉᆞ백리 주위를 / 돌아댕이고 / *할로영주산에 올라가 (신당본풀이, 352) 제주시 외도동 외도본향 큰당 남무 문창0님 *漢拏瀛洲山에
하로영주산
(1)
*하로영주산에는 장군선앙 / 정잇밭딘 애기씨선앙 (특수본풀이-열두선앙본, 651) *한라영주산에는 將軍船王 / 旌義밭에는 애기씨선앙
할로양주산
(1)
백조도령이 인간에 ᄂᆞ려(?) / *할로양주산으로 (신당본풀이, 365) 조천면 와흘리 와흘본향 신당 남무 김만0님 *漢拏瀛洲山으로
하라영주산
(1)
*하라영주산 앞이 / 갈만 ᄒᆞᆫ 밧을 갈아 (신당본풀이, 410) 구좌면 송당리 손당본향 소천국광 백주할망 남무 이상0님 *한라산 앞에
할루영주
(1)
*할루영주 봉래 방장 삼신산 / 포아낭알로 (신당본풀이, 3417) 구좌면 송당리 손당본향 남무 임진0님 *漢拏瀛洲
할로영주
(7)
*할로영주 봉래 방장 / 오를목 ᄂᆞ릴목을 ᄒᆞ다가 (신당본풀이, 345) 제주시 오등동 병다동 ᄀᆞ다싯당 남무 강제0님 *漢拏瀛洲
할로하로산
(1)
*할로하로산서 솟아나신 (신당본풀이, 322) 제주시 이도동(남수각) 과영당 男巫 이달0님 *한라산에서 솟아나신
할노하로산
(1)
*할노하로산 / 高山泰(太)五人피 五位前 (신당본풀이, 325) 제주시 이도동(남수각) 과영당 제주민속박물관소장 巫記帳
하노하로산
(1)
*하노하로산서 솟아신 (신당본풀이, 322) 제주시 이도동(남수각) 과영당 남무 김오0님 *한라산에서 솟아나신
하로하로산
(13)
*하로하로산에 올라산 / 천기지기를 집떠보완 (신당본풀이, 336) 제주시 화북동 ᄃᆞᆯ욋당 남무 김오0님 *한라산에 올라가서 / 천기지기를 짚어보아서
알손당은 소천국 ᄇᆞ름웃또 // 다ᄉᆞᆺ쳇 아들은 *수산 하로하로산 (신당본풀이, 419) 구좌면 송당리 송당본향 손당 여무 양기0님 *성산면 수산리
*구렁ᄆᆞ르 하로하로산또 / 사요수 / 올라 삼신산 (신당본풀이, 456) 표선면 가시리 가시본향 구렁ᄆᆞ르 하로산또 남무 신명0님 *구렁마루 漢拏漢拏山都
*동마마 서마막 / 준지역 **하로하로산 (신당본풀이, 492) 남원면 위미리 위미본향 일뢰당 여무 신금0님 *‘마막’이란 몽고어의 [aimag]을 글자로 쓴 것이며 [바막], [아막]으로도 말해짐. 이는 목축감시의 위병장교에 해당하는 병제인데 제주 지명에 흔적이 남아 있음(임도희, 2016)
**漢拏漢拏山(堂神名)
하로하루산
(1)
가릿당은 백구둘 좌정ᄒᆞᆫ / 영산주 노산주 하로하루산 (신당본풀이, 359) 조천면 북촌리 북촌본향 가릿당 남무 박인0님
할루할루산
(1)
*할루할루산서 / 오를목 ᄂᆞ릴목서 (특수본풀이-산신본-중산간본향 군졸, 650) *한라한라산에서 / 오를목 내릴목에서
하로하로
(2)
*하로하로 금백 세명조 / 아방국은 웃손당 금백조 (신당본풀이, 358) 조천면 북촌리 북촌본향 가릿당 남무 정두0님 *漢拏漢拏
하로-
(12)
*하로백관또 / 저 하늘에 배리 더레 (신당본풀이, 490) 남원면 남원리 남원본향 널당 여무 신금0님 *漢拏百官都 / 저 하늘에 별에 달에
할루산
(7)
*할루산이 올라간 (신당본풀이, 323) 제주시 이도동(남수각) 과영당 女巫 김순0님 *할라산에 올라가서
*한집님은 할루산 동활개서 솟아나 / 영실기암으로 도큰그루로 / ᄒᆞ연 (신당본풀이, 371) 조천면 선흘리 하선흘리 선흘본향 당동산당 남무 고맹0님 *한집님은 / 한라산 동쪽 어깨에서 솟아나 / 靈室奇岩으로 도큰그루로 / 경유하여서
*고냥할으방은 / 할루산으로 내ᄒᆞ여 온 // 할루산이 오를 목 ᄂᆞ릴 목에서 / **사농나갈 때 (신당본풀이, 442) 성산면 수산리 곶앞 고냥할으방 *구멍할아버지는 / 한라산으로 來하여
**사냥을 하여
할라산
(5)
할라산 백록담에 진을 쳤다 (신당본풀이, 331) // 제주 할라산에 오란 (333) 제주시 건입동 칠머릿당 남무 이달0님 / 여무 윤신0님
*하로산또가 / 처음 대국 중국에서 / **할라산에 귀양을 오라 (신당본풀이, 440-441) 성산면 수산리 수산본향 하로산당 여무 조옥0님 *漢拏山都(神 이름) **할라산(산 이름)
할로산
(6)
할로산 올라 / 백록담에 진을 치고 (신당본풀이, 332) 제주시 건입동 칠머릿당 남무 홍상0님
할로산을 올라가고 보니 / 천제 할으바님이 (신당본풀이, 389) 구좌면 세화리 세화본향 천제또 남무 고대0님
하ᄂᆞᆯ山 “그러므로 나는 漢拏山의 이름을 본시 우리말로는 「하ᄂᆞᆯ山」이라 부르던 것으로 解釋코저 하는 것이다.” [이은상, 1937, 耽羅紀行 漢拏山(登山篇, 漢拏山의 古義:「하ᄂᆞᆯ」은 東方文化의 淵源), 조선일보사출판부, 147; 강정효, 2003, 한라산: 오름의 왕국・생태계의 보고, 돌베개, 24]


백록담
(10)
한라산 백록담에 / 진을 치었다가 (신당본풀이, 333) 제주시 건입동 칠머릿당 영등송별제 유인물(1984.3.16.)
할로영산 백록담에 올라간 (신당본풀이, 373) 구좌면 김녕리 김녕당 괴뇌깃당 여무 김명0님 *漢拏靈山
*토주본향 한집님은 / 백록담서 솟아난 / **백조노산주 할으방이우다 (신당본풀이, 427) 구좌면 종달리 종달본향 여무 양기0님 *土主本鄕 大主님은
**백조노산주(종달리 본향 당신명) 할아버지입니다
*백록담 들어간 / 그 산신대왕 산신백관 (신당본풀이, 456) 표선면 가시리 당남우영할망당 문씨애기본 여무 신여0님 *백록담 들어가서 / 그 山神大王 山神百官
백록담
(10)
조노기 한집이 솟아나긴 / 할로영산 백록담으로 / 솟아났수다 (신당본풀이, 494) 서귀읍 보목리 보목본향 조노깃당 남무 고문0님
ᄇᆞ름웃또
(29)
*ᄇᆞ름웃또 배실을 주었습네다 / ᄇᆞ름웃또가 나갈때에 //ᄇᆞ름웃또 두갓은 // ᄇᆞ름웃똔 그 질로 //ᄇᆞ름웃또가 산짓땅으로 (신당본풀이, 327-328) 제주시 용담동(서수문밭 삼동물가) 내왓당 신금0님 *風上都(바람웃또) 벼슬을 주었습네다
온평리 이민이 / *ᄇᆞ름웃또로 / 좋은 자리로 모샀십네다 (신당본풀이, 443) 성산면 신산리 신산본향 남무 한기0님 *바람位都(風位都)로 / 좋은 자리로 모셨습니다
*ᄇᆞ름웃또 ᄒᆞ는 말이 / 부인님은 어떵ᄒᆞ연 / 죈경내가 납네까? (신당본풀이, 484) 표선면 토산리 토산본향 토산당 여무 조산0님 *風位都 하는 말이 // 돼지고기 냄새가 납니까?
ᄇᆞ름웃도
(2)
아방국은 홍톳도 / 어멍국은 비웃도 / 중국서 이 제주에 들어온 신이다 / 체얌이 / *일문관 ᄇᆞ름웃도란 / 서월 대ᄉᆞ의 ᄌᆞ식이 / 중국으로 유람을 갔는디 // 일문관 ᄇᆞ름웃드는 (신당본풀이, 501-502) 서귀읍 서흥리 서흥리본향 남무 김영0님 *일문관 바람위도(風位都)라는 / 서울 대사의 자식이
ᄇᆞ름웃드
(4)
알손당 / *동내국 ᄇᆞ름웃드 / ᄌᆞᆫ소남밭 (신당본풀이, 419) 구좌면 송당리 송당본향 손당 여무 양기0님 *洞內國 ᄇᆞ름웃드(風位都)
*매알손당 ᄇᆞ름웃드 // 하로산 소로소천국 ᄇᆞ름웃드 (신당본풀이, 441) 성산면 수산리 수산본향 하로산당 여무 조옥0님 *매아랫 송당리 바람位都(風神都)
ᄇᆞ름웃뜨
(1)
*이승 오개일통 / ᄎᆞ지ᄒᆞᆫ ᄇᆞ름웃뜨 // 경ᄒᆞ연 이시난 ᄇᆞ름웃뜨가 (신당본풀이, 494-495) 서귀읍 보목리 보목본향 조노깃당 남무 고문0님 *이승 五家一統 / 차지한 바람위또(風位都) // 그렇게 하여서 있으니까 바람위또가
ᄇᆞ름알또
(3)
*ᄇᆞ름알또 짐씨 할으방광 // ᄇᆞ름알또 짐씨 할으방이우다 (신당본풀이, 590-591) 애월면 하귀리 개할망당・개할으방당 남무 양태0님 *바람아랫都(風下都) 김씨할아버지와
ᄇᆞ름운님
(20)
*ᄇᆞ름운님이 / 주멩기코를 배리씨고 시난 // ᄇᆞ름운님이 아바님 어머님에 // ᄇᆞ름운님광 신중부인님이 / 짓갈다 // ᄇᆞ름운님은 저산국 ᄄᆞ님 애기 / 새로금상 훗첩을 ᄒᆞ여 (신당본풀이, 464-465) 표선면 토산리 웃당본 남무 박생0님 *바람운님이(神名) / 주머니 입구를 벌리고 있으니까
*조노기는 ᄇᆞ름운이고, 아시는 예촌 (신당본풀이, 491) 남원면 신례리 신례본향 예촌당 남무 김유0님 *조노기(서귀읍 보목리당신)는 바람운위(風雲位)고 / 아우는 예촌
ᄇᆞ름(神位)
(8)
*ᄇᆞ름알로 좌정ᄒᆞ십서 // ᄇᆞ름 우로 좌정ᄒᆞ여 오던 / 신당한집 (신당본풀이, 344) 제주시 아라2동 간드락 아라본향 큰도안전 남무 김오0님 *바람아래로 좌정하십시요
큰 부인 노릇 못ᄒᆞ키여 / *ᄇᆞ름알로 ᄂᆞ려ᄉᆞ라 / 할마님은 ᄇᆞ름알로 좌정ᄒᆞ연 (신당본풀이, 428) 구좌면 종달리 종달본향 여무 양기0님 *바람아래로 내려서라
문씨 영감이 / *ᄇᆞ름으로 좌정ᄒᆞ라 // 불쌍ᄒᆞ다 / ᄇᆞ름으로 들어사라 (신당본풀이, 454) 성산면 온평리 온평본향 남무 한기0님 *바람위(風位)로 座定하라
ᄇᆞ름-(風)
(2)
*하라영산 ᄇᆞ름목 앚아서 (신당본풀이, 415) 구좌면 송당리 손당본향 소천국광 백주할망 남무 이상0님 *한라산 바람목 앉아서
*ᄇᆞ름궁기 절궁기 막아 / ᄀᆞᆨᄀᆞᆨᄒᆞ고 답답ᄒᆞ다 표선면 토산리 알당본 남무 박생0님 *바람구멍 파도구멍 막혀 / 갑갑하고 답답하다
ᄇᆞᄅᆞ뭇님 “남원읍 예촌리 본향신 ‘백관님’, 보목리 본향신 ‘ᄇᆞᄅᆞ뭇님’: 백관님은 한라산, ᄇᆞᄅᆞ뭇님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솟아났다고 함.”(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한국명승학회, 2022, 131)
ᄇᆞ로못님 “예촌 보목 효돈 토평 본향당 본풀이: 로못님은 백록담에서 내려오다” (제주연구원, 2017, 제주문화원형-설화편1, 118-119)
바람운님 “서귀본향당 본푸리: 제주 땅 설매국에 일문관 바람운님이 솟아났다.” (제주연구원, 2017, 제주문화원형-설화편1, 87-88)
ᄇᆞᆯ늪
(光明池)
“漢拏라는 것을 「하ᄂᆞᆯ」로 解釋하는 것과 아울러 白鹿이라는 것은 「ᄇᆞᆯ늪」의 譯字로 보려 한다...이것을 한자로 말한다면 「光明池」라고 할 것이다.” [이은상, 1937, 耽羅紀行 漢拏山(登山篇, 天上의 白鹿潭: 白鹿을 타고 놀던 漢拏仙翁; 民始道源의 正幹: 光明理世의 埀示와 訓謨), 조선일보사출판부, 186-190, 191-195; 강정효, 2003, 한라산: 오름의 왕국・생태계의 보고, 돌베개, 24, 208]

사라국
사라도령
사라도령신딘 백미에 식ᄉᆞ상을 / 한락둥인 사라도령 독ᄆᆞ립에 / 사라도령은 한락둥일 / 짐정국 아들 사라국 사라도령이 / 꽃감관 사라도령은 (일반본풀이-이공본, 73-95)
한작지 *한작지 바라댕기멍 (일반본풀이-문전본, 112) *많은 돌자갈 타다니면서
연하못 *연하못딘 물이 봉봉 ᄒᆞ였구나 (일반본풀이-문전본, 121) *연하못에는 물이 가득차 있구나
용지소 *용지소에 ᄂᆞ려오고 (일반본풀이-문전본, 130) *龍池沼에 내려오고
삼신선 *백발노인 삼신선이 (일반본풀이-세경본, 291) *白髮老人 三神仙이

주1: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이하 『본풀이』)은 진성기에 의해 1956년 3월 ~ 1963년 7월 사이(약 7년 4개월간)에 제주도 전역에서 수집한 500여편의 무가 본풀이 가사를 제주어의 고유한 발음에 충실하여 한글로 표기한 자료임. 지면 관계상 각 명칭 별로 1~5개의 대표 사례만을 선별하여 제시함.

주2: ‘원전 구문’과 ‘비고’ 항목의 별표(*,**,***)는 진성기(1991)에 의해 해당 용어 및 구문을 뜻풀이한 것임.

주3: ‘비고’ 항목의 ‘a > b’는 지명 a에서 지명 b로의 통시적 변화를, ‘a → b’는 지명 a에서 지명 b로의 공시적 변화를 뜻함.

자료: 진성기, 1991.

1) 한라산: *한라・*한로~*할라・*할로~*하라・*하로

표 2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풀이』 등의 자료에는 ‘한라산’의 전부지명소인 ‘한라’가 다양한 경로의 음운변화 결과 ‘*한라・*한로・*한락~*할라・*할로・*할루・*할락~*하라・*하로 (hVrV)’ 등으로 발견되고 있다.26) 필자는 지명 형태소(이하 지명소) 분석에 있어 ‘한라+산’(+는 형태소 경계), 즉 ‘*한라’를 기본형이자 원형으로 설정하였다. 이때 전부지명소인 ‘한라’를 다시 ‘한+라’로 분석한다면, ‘한+라’의 ‘한(漢)’은 ‘크다’(大)라는 뜻을, 그리고 ‘라(羅)’는 ‘땅’(地, 壤)을 의미하는 마한어(이후의 백제어), 그리고 진한어 및 변한어(이후의 신라어 및 가야어)의 지명소가 제주도에 전파되어 ‘한라산’[큰 땅의 산(오름)]이 명명된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먼저 전부지명소 ‘한-’과 관련하여, ‘한-’을 ‘크다[大]’와 유연성이 있는 어휘를 중심으로 그 유형화를 시도한 황금연(2013)은 고유어 전부지명소 ‘한-’이 ‘漢, 韓’(한) 등의 한자어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들은 단순히 음만 빌린 표기이므로 그 의미는 ‘크다’의 뜻을 갖는다고 분석하였다. 요컨대 ‘한-’형은 ‘크다’의 고어 ‘하-’의 관형사형으로 판단되며 이 형태는 한자어 ‘大’(대)에 직접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漢, 韓, 翰, 寒’ 등으로도 표기된다고 분석하였다. 이는 고유어 ‘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과 음(音)이 같은 한자어로 표기되면서, 고유어와 한자어로 적히는 여러 복수(複數)지명을 생성하기도 한다(황금연, 2013, 197).

‘크다’(大)라는 의미를 가지는 ‘漢’, ‘韓’(한)이나 ‘大’[대, 큰, 한]를 전부지명소로 가지는 지명으로 백제어의 경우, 현재 서울의 한강을 가리키는 ‘漢-水(한-수)’ [『삼국사기』(권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원년, B.C. 18년)]가 있으며, 비근한 예로 ‘한-밭’(大-田), ‘한-내’(漢-川, 大-川), ‘한-못’, ‘한-새미’(大-泉), ‘큰-내’(大-川), ‘큰-못’, ‘큰-밭’(大-田) 등이 한반도와 제주도에서 다수 발견된다.27)

한편 후부지명소 ‘라(羅)’는 ‘땅’(地, 壤)을 의미하는 한계어(韓系語), 즉 마한어, 진한어, 변한어로서 ‘-盧(로)’ 혹은 ‘-內(내)~奴(노)~那(나)’로도 표기된 사례가 많음이 도수희(1977; 2003; 2023)의 선행연구에서 규명되었다.28) 또한 제주도에서도 후부지명소 ‘라(羅)’가 ‘耽牟羅’(탐모라), ‘耽羅’(탐라), ‘乇羅’(탁라), ‘儋羅’(담라), ‘需李都羅’(유리도라), ‘我羅’(아라), ‘吾羅’(오라), ‘紗羅洞’(사라동), ‘沙羅峯’(사라봉), ‘沙羅岳(사라악)’, ‘月羅山’(월라산), ‘月羅峯’(월라봉), ‘馬羅島’(마라도) 등과 같이 발견되고 있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29)

이상의 분석 결과, 필자는 제주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인 ‘漢拏山’과 ‘漢羅山’으로 변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큰 땅’[大地]을 의미하는 ‘*한라・*한로・*한락~*할라・*할로・*할루・*할락~*하라・*하로’ (hVrV)가 ‘漢羅・漢拏’ (hVrV)’로 음차 표기된 것으로 판단한다. 즉 ‘漢拏山’의 제주 고유어 지명은 ‘큰 땅에 있는 산(오름)’(大地山)을 뜻하는 ‘*한라산~*할라산~*하라산’~*하로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부지명소 ‘*한라~*할라’는 이후 조선 초인 14세기 말(1397년)~15세기 중반(1451~1454)에 도가적인 소양을 지닌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 및 관료들에 의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한자, 즉 도가적 가치를 반영한 ‘漢拏’로 음차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백록담: *ᄇᆞᄅᆞ뭇~*ᄇᆞ로못

표 2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풀이』 등의 자료에는 ‘백록담’의 전부지명소 및 제주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되는 ‘*ᄇᆞ름 (bVrV)’, ‘*ᄇᆞᄅᆞ뭇~*ᄇᆞ로못~*바람운’ 등이 수록되어 있다.30) 이때 전부지명소 ‘*ᄇᆞᄅᆞ~*ᄇᆞ름~바람’이 ‘바람[風]’과 함께 ‘뱀[蛇]’의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다.31) 그러나 본 고에서는 ‘바람[風]’에 초점을 두어 ‘백록담’의 제주 고유어 지명이 ‘바람못’[風池・風潭・風澤]을 의미하는 ‘*ᄇᆞ로못~*ᄇᆞᄅᆞ뭇’이었을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제주도의 민간 신앙에는 오래전부터 바람[風]과 뱀[蛇]을 신격화[風神, 蛇神]한 흔적이 아래의 인용문과 같이 발견된다(현용준・현승환, 1995; 문무병, 2005).32)

맹렬한 바람과 소나기같은 괴상한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가 하면 심지어 무덥고 답답하기까지 하다(盲風怪雨。發作無時。蒸濕沸鬱。)......이곳 풍속이 뱀을 신처럼 매우 받들어 모신다. 행여 뱀이 보이면 사람들은 바로 술을 드리며 주문을 외곤 하는데, 감히 몰아내거나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俗甚忌蛇。奉以爲神。見卽呪酒。不敢驅殺。).”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10)]

제주도 사람들은 음력 2월경에 불어오는 바람의 신을 ‘영등신’이라 하여 ‘칠머리당’(제주시 건입동 407-3) 등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현재까지 영등굿을 시행해 오고 있다(한유진, 2009, 13-14; 강소전, 2018, 23-26).33)표 2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풀이』등에 자주 등장하는 ‘ᄇᆞ름’(bVrV)은 ‘바람’(風)을 의미하는 제주방언으로서 ‘*ᄇᆞ름웃드~*ᄇᆞ름웃뜨 [風上都, 風位都(바람位都), 風神都]’, ‘*ᄇᆞ름알~*ᄇᆞ름알또 [風下都(바람아랫都)]’, ‘*ᄇᆞ름목, *ᄇᆞ름궁기 [*ᄇᆞ름=바람(風)의 의미]’, 그리고 ‘*ᄇᆞ름운님 [바람운님(神名), 風雲位(바람운위)]’ 등과 같이 마을을 수호하는 당신(堂神)이자 신령스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이때 ‘*ᄇᆞᄅᆞ~*ᄇᆞ로~*ᄇᆞ름 + 못(+ 님)’이라는 합성명사 및 파생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여러 경로의 음운 변화가 일어났고, 그중 일부가 ‘*ᄇᆞᄅᆞ뭇~*ᄇᆞ로못~*바람운’으로 실현되어 현재에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귀포시 남원읍 예촌리 본향신인 ‘백관님’과 보목리 본향신인 ‘ᄇᆞᄅᆞ뭇님’: 백관님은 한라산, ᄇᆞᄅᆞ뭇님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솟아났다”(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한국명승학회, 2022, 131), “예촌 보목, 효돈, 토평 본향당 본풀이: 로못님은 백록담에서 내려오다”(제주연구원, 2017, 118-119), 그리고 “서귀본향당 본푸리: 제주 땅 설매국에 일문관 바람운님이 솟아났다”(제주연구원, 2017, 87-88)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한라산 백록담을 본향신이자 당신인 ‘ᄇᆞᄅᆞ뭇님’, ‘ᄇᆞ로못님’, ‘바람운님’이 태어난 신성한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생계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어 왔던 바람[風]을 영험한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 왔고, 그 결과 많은 당신들이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한라산 백록담에 ‘바람못’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 즉 ‘*ᄇᆞᄅᆞ뭇~*ᄇᆞ로못~*바람운’이라는 제주 고유어 지명을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이 명명되기 이전, 백록담이라는 화구호를 지칭하는 고유어 지명으로 ‘ᄇᆞᄅᆞ뭇’, ‘ᄇᆞ로못’, ‘바람운’ 등이 있었고, 이 장소를 신령하고 신성하게 여긴 제주도 원주민들에 의해 존칭 접미사 ‘-님’이 붙어 하나의 신격(神格)으로 존숭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후 16세기 초반경에 ‘白鹿潭’이라는 한자 지명이 새롭게 등장하여 한라산 화구호의 이름으로 대체되면서 현재는 본향신 및 당신의 호칭으로 무가 본풀이의 가사 속에 잔존해 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후부지명소 ‘못’(池)은 사전적인 의미로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네이버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가리키는데, 필자는 『본풀이』 등에서는 ‘*못~*뭇’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못~*뭇’의 경우, 고문헌 및 고지도 등의 기록에는 ‘潭(담)・澤(택)・泓(홍)’ 등으로 훈차(訓借) 표기되어 각각 ‘白鹿潭・白鹿澤・白鹿泓’ 등으로 발견되고 있다(표 1의 ‘17세기’ 및 ‘18세기’ 항목).

이상의 분석 결과, 제주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인 ‘白鹿潭’으로 변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바람’(風)을 뜻하는 ‘*ᄇᆞᄅᆞ・*ᄇᆞ로’(bVrV)가 음차 표기 과정을 통해 ‘白鹿’(bVrV)으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白鹿潭’의 제주 고유어 지명은 ‘바람못’(風池・風潭・風澤)을 의미하는 ‘*ᄇᆞ로못~*ᄇᆞᄅᆞ뭇’이었으며, 전부지명소 ‘*ᄇᆞ로~*ᄇᆞᄅᆞ’는 이후 16세기 초(1520~1521)에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였던 김양필(金良弼)에 의해 유교적이고 도가적인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반영하는 ‘白鹿’(흰사슴)으로 음차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5. 결론

한국의 지명이 변천해 온 초기 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음성 상태의 고유어 지명이 한자를 이용하여 음차[음독] 표기된 사례가 일반적이다(도수희, 1999, 146-147; 김순배, 2013, 11-12). 그런데 현재 공식 지명인 ‘한라산(漢拏山)’과 ‘백록담(白鹿潭)’의 경우, 지명의 어원과 의미를 각각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과 ‘신선이 백록(흰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으로 정의하여 통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지명들이 제주도의 고유어 지명을 훈차[훈독] 표기한 한자 지명이거나, 당시 새롭게 명명한 한역(漢譯) 지명인 것으로 오해한 데서 기인한다.

필자는 한국 지명사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지명 변천 사례와 같이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 또한 표기 이전에 존재하던 음성 상태의 원초 지명으로서 제주의 고유어 지명이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그들이 선호하는 생각과 가치를 반영하여 이를 음차 표기한 지명일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지명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지명 변천의 과정을 조사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명 어원이 제주 고유어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을 설정하여 한자 지명으로 변천해 온 명명의 시기, 주체, 이유, 그리고 본래의 고유어 지명을 역사지리적이고 지명언어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그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한반도 및 중국과의 해상 교류와 그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삼한, 그리고 백제, 가야, 신라를 통한 한계(韓系) 지명어와 한자를 이용한 차자 표기 방식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漢拏山’이란 한자 지명은 고려 말(1374년)에서 조선 초(1416년)에 이르는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경에 성리학적 개혁 사상을 가진 신진사대부 및 유학자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어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漢羅山’은 14세기 말 조선 건국 직후인 1397년에 권근(權近)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고 도가적 의미를 지닌 ‘漢拏山’의 표기보다 더 원형의 음차 표기 형태, 즉 고대 지명 형태소의 특성을 간직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지명의 의미 및 인식과 관련하여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漢拏山)’이라는 지명 인식은 15세기 후반인 1472~1477년 이후 『팔도지리지』(1477)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白鹿潭’의 경우, 17세기 초인 1601년에 김상헌(金尙憲)이 쓴 『남사록』에 처음 등장한다. 도가적인 의미를 지닌 ‘신선이 백록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白鹿潭)’이라는 지명 인식은 8년 후인 1609~1610년에 제주판관을 지낸 김치(金緻)의 「유한라산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셋째, 제주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인 ‘漢拏山’과 ‘白鹿潭’으로 변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각각 ‘큰 땅’[大地]을 의미하는 ‘*한라・*한로・*한락~*할라・*할로・*할루・*할락~*하라・*하로(hVrV) > 漢羅・漢拏(hVrV)’ (음차 표기)와 ‘바람’(風)을 뜻하는 ‘*ᄇᆞᄅᆞ・*ᄇᆞ로(bVrV) > 白鹿(bVrV)’ (음차 표기)로 추정하였다. 즉 ‘漢拏山’의 제주 고유어 지명은 ‘큰 땅에 있는 산(오름)’(大地山)을 뜻하는 ‘*한라산~*할라산~*하라산’~*하로산’이고, ‘白鹿潭’의 고유어 지명은 ‘바람못’(風池・風潭・風澤)을 의미하는 ‘*ᄇᆞ로못~*ᄇᆞᄅᆞ뭇’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漢羅山’과 ‘漢拏山’의 경우, 조선 초인 14세기 말(1397년)~15세기 중반(1451~1454)에 도가적인 소양을 지닌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 및 관료들에 의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한자, 즉 도가적 가치를 반영한 ‘漢拏’로 전부지명소 ‘*한라~*할라’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白鹿潭’의 경우, 16세기 초(1520~1521)에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였던 김양필(金良弼)에 의해 유교적이고 도가적인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白鹿’(흰사슴)으로 전부지명소 ‘*ᄇᆞ로~*ᄇᆞᄅᆞ’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의 제주 고유어 지명, 그리고 명명(naming)과 개명(renaming)의 과정을 연역하고 귀납한 본 고는 몇 가지 연구의 한계와 과제를 안고 있다. 즉 필자가 확인하지 못한 누락된 지명 자료가 있을 수 있으며, 새로운 관련 고지명이 발굴되면 본 고에서 설정한 가설이 수정되거나 부정될 수 있다. 또한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한 ‘*한라~*할라’[大地], 그리고 ‘*ᄇᆞ로~*ᄇᆞᄅᆞ’[風]의 의미와 관련하여 논의에서 제외된 다른 가설들에 대한 면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Acknowledgements

본 논문은 제41회 한국지명학회 전국학술대회(2025.04.26., 제주대)에서 발표한 “한라・백록 지명의 역사지리”를 수정 및 보완한 것임.

[8] 1) 이 인용문의 원문 및 풀이는 다음과 같다: “到絶頂則坎陷為池하고, 石峰環邊하야 周可七八里라. 倚石磴俯視하니 則水如玻瓈나 深不可測하고, 池畔有白沙香蔓하니 無一點塵埃之氣하다. 人間風日이 遠隔三千하야 疑聽鸞簫하고 悅見芰車하니라.” [林悌, 1549∼1587, 『白湖先生文集』, 「南溟小乘」(1577~1578); 제주특별자치도・한국명승학회, 2022, 29-30에서 수정 재인용]; “상세화리 천자님은 / 한라산 백록담 위 / 지질개에서 솟아났습니다.” [진성기, 1991,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신당본풀이, 세화본향(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천자(당신) 본풀이, 408]; “큰물당 조상님은 / 한라산 서쪽 어깨 / 무유(無有) 아래에서 솟아나니 / 그 할아버지가 / 산방산 산방굴사로 내려 왔습니다.” [사계본향(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큰물당 본풀이, 533]

[9] 2) 임재영(2021, 107-108)은 ‘한라산’의 어원과 관련하여 이 이름이 탐라국 및 원나라 시대부터 불리던 ‘크고 높은 산’을 뜻하는 ‘카라(하라)’, ‘하로’, ‘할로’에서 유래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漢拏(한라)’로 음차 표기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음은 그의 토론문 원문을 제시한 것이다: “비록 현존하는 기록에는 없지만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 탐라시대에도 산의 명칭을 썼을 것이다. 김공칠 전 제주대 교수는 “탐라어 연구”에서 한라산의 호칭은 높은 산(山)이나 구름을 뜻하는 ‘칸나(kan-na)’에서 유래했다고 해석했다. 이후 ‘k’가 ‘h’로 변음 과정을 거쳤으며 ‘큰 산’, ‘하늘의 산’, ‘하나의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고대 탐라어가 알타이, 아이누 등 북방계열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등의 남방계열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으며 지금 사용하는 ‘한라’는 한자를 차용해서 썼다고 주장했다. 고대 탐라시대에는 높은 곳을 뜻하는 ‘칸(kan)’과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나(na)’가 합쳐진 ‘칸나(kanna)’ 또는 ‘하라(harra)’로 불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몽골어로 ‘검은 색’ 또는 ‘위대하다’는 뜻의 ‘하라(hara)’에서 유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인 류쥔궈(劉均國)는 2015년 제주학회 제42차 학술대회에서 몽골어 기원설을 제시했다. 그는 “몽골어로 검은 색은 ‘하라’(또는 ‘하르’)로 표기하는데 ‘한라(halla)’와 쓰기와 발음에서 유사성이 깊다”고 주장했다. 원(元) 국호를 사용하기 이전 몽골제국 초기 수도 이름인 ‘합랍 화림(哈拉和林, kharakorum)’은 검은 색 도시라는 뜻이고 ‘크고 위엄이 있는 도시’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지 발음으로는 ‘하라호름’, ‘카라코룸’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하라’ 또는 ‘카라’는 한라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몽골지역에서 ‘알락 할르한산’, ‘하르히라산’ 등 한라산과 유사한 산 명칭이 있다. (또한) 제주의 무속신앙에서 한라산을 과거에 ‘하로산’, ‘할로영산’, ‘할락산’ 등으로 불렸다. 한라산에서 출생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당신(堂神) 이름에서 ‘하로영산 백관또’, ‘올래모루 하로산’, ‘중문 하로산’, ‘동백자 하로산’, ‘남판돌판고나무상태자 하로산’ 등에서 ‘하로산’은 바로 한라산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자료를 종합해 보면 한라산은 탐라시대부터 크고 높은 산을 뜻하는 ‘카라(하라)’, ‘하로’, ‘할로’ 등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한자를 차용해 ‘한라산’으로 표기하기 시작했고 음차표기를 한 후 ‘손을 뻗어 은하수를 잡을 수 있다’는 해석을 부여했을 수도 있다. 한라산 어원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10] 3) “四面峰巒, 環如城郭. 中有潭深可丈餘, 名曰白鹿潭. 諺傳群仙, 飮白鹿於此, 潭之得名.” [「遊漢拏山記」, 『南峯集』 (金緻, 1577~1625)]

[11] 4) 화산섬인 제주도는 한국(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탑~제주항)과는 직선거리로 약 87km, 일본(나가사키현 고토시 福江島~성산항)과는 약 177km, 그리고 중국(江蘇省 南通市 黃金海灘~모슬포항)과는 약 437km 떨어져 있다(카카오맵, https://map.kakao.com). 따라서 해로 상의 근접성으로 인해, 과거로부터 일본 및 중국보다는 한반도와의 뱃길을 통한 교류가 활발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2] 5) 도수희(1977)는 고대 탐라어(耽羅語) 및 제주 방언이 한계 및 백제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이숭녕(1971)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추정하였다: “이숭녕(1971, 159-160)에서 제주도 방언을 오늘에는 방언상 독립단위로 계산되지만, 고대에서는 백제어의 일부나 또는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을 것으로 본다......일례로서 15세기어의 ‘ᄒᆞᄅᆞ’(一日)의 고형(古形)으로 추정되는 ‘ᄒᆞ를’이 (육지에서는 현재 사라졌으나) 제주도방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은 바로 고형의 유지라고 보았다. 이것이 모음이나 그 외의 음소(音素)의 변모를 가산해도 백제어까지 소급될 가능성도 보인다(도수희, 1977, 133).”; “(제주어) 즉 ‘耽牟羅語’의 계통은 한계(韓系)에 친근할 듯하다. 물론 그 위치가 한(韓) 지역에 인접하여 있다해서 그 언어적인 계통마저 무조건 동계(同系)일 것으로 추단할 수는 없지만, 그 인접 관계로 보아 아무래도 한(韓)과의 접촉을 예상할 수 있고 백제를 사대(事大)로 섬긴 역사적인 기록 등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 어느 언어보다도 백제어와 친근 내지 동계였을 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가로 놓인 해협은 이들 언어간의 차이를 방언차 이상으로 격리시켰을 것임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도수희, 1977, 143-144).”

[13] 6) ‘탐라국(耽羅國)’이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제되어 1105년에 ‘탐라군(耽羅郡)’이 된 이후로, 고려 의종 7년인 1153년에는 ‘탐라현(耽羅縣)’으로 강등되었다. 급기야 충렬왕 21년인 1295년에는 ‘탐라’라는 지명이 ‘육지에서 물 건너 있는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목(濟州牧)’으로 개명되었다. 그 결과 탐라국의 독자성과 독립적인 국가정체성은 고려의 변경 지역으로서의 종속성과 의존적 지역정체성으로 변질되었다: “忠烈王三年, 元爲牧馬場. 二十年, 王朝元, 請還耽羅, 元丞相完澤等, 奏奉聖旨, 以耽羅, 還隷于我. 翊年乙未, 改爲濟州, 始以判秘書省事崔瑞, 爲牧使.” [『高麗史』(卷57, 志, 卷제11, 地理 2, 전라도, 탐라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김순배, 2024, 9]

[14] 7) 이와 관련된 제주도의 지명 명명 사례로는 ‘訪仙門’(방선문)-‘喚仙臺’(환선대)-‘遇仙臺’(우선대)-‘翠仙潭’(취선담), ‘瀛洲山’(영주산)-‘瀛邱’(영구)-‘瀛谷’(영곡)-‘靈室’(영실), 그리고 ‘볼레오름’-‘佛來(불래)오름’ 등이 있다(제주특별자치도・한국명승학회, 2022, 158).

[15] 8) 현재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의 통용에 큰 영향을 미친 한글학회(1984)의 지명 자료에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적 특성이 통합된 하나의 복합유산으로서의 유산적 가치가 표현되어 있다: “한라-산(漢拏山)[두모악, 삼신산, 영주산, 원산] [산] 제주도 복판에 솟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둘째로 높은 산. 높이 1,950.1m. 꼭대기에 둘레 3km, 지름 약 500 m의 분화구인 백록담(白鹿潭)이 있으며, 여러 기생화산(寄生火山)으로서 유년기에 딸림. 산이 동서로 뻗어 있어서 이 산 북쪽을 북제주군, 남쪽을 남제주군이라 함.”(한글학회, 1984, 348); “백록-담(白鹿潭) [못] 한라산 꼭대기에 있는 못. 동서 600m, 남북 500m, 둘레가 3km쯤 되는데, 본래는 분화구(噴火口)로 둘레에는 괴석들이 병풍을 친 듯이 둘러져 있고, 그 사이로 눈향나무, 구상나무, 철쭉들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특히 군데군데 진달래 꽃밭이 넓게 펼쳐 있어서 그 향기가 그윽하며, 바람은 숲을 스치어 마치 피리를 부는 고운 소리가 나는 듯하며, 겨울 동안에 쌓인 눈은 5월까지도 녹지 않고 남아 있음. 예전에 어떤 무사가 무리에서 떨어진 사슴 한 마리를 쏘아 죽였는데, 조금 있더니 흰 사슴을 탄 사람이 나타나 모든 사슴을 점검하듯이 휘파람을 한 번 불자, 갑자기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함.” (한글학회, 1984, 347)

[16] 9) 국가유산-자연유산-명승(문화경관) 및 천연기념물(자연경관-지형지질경관)으로 지정된 한라산 백록담의 유산 지정 현황은 다음과 같다: [명승] 한라산 백록담(漢拏山 白鹿潭) (Baengnokdam Crater Lake on Hallasan Mountain) - 분류: 자연유산 / 명승 / 문화경관, 수량/면적: 1필지 / 210,230㎡, 지정(등록)일: 2012.11.23.,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산 15-1, 소유자(소유단체): 제주특별자치도, 관리자(관리단체): 제주특별자치도; [천연기념물] 한라산 천연보호구역(漢拏山 天然保護區域) (Hallasan Mountain Natural Reserve) - 분류: 자연유산 / 천연보호구역 / 문화 및 자연 결합성 / 경관 및 과학성, 수량/면적: 91,672,346㎡, 지정(등록)일: 1966.10.12.,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서귀포시, 소유자(소유단체): 국가유산청 외, 관리자(관리단체): 제주특별자치도 (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

[17] 10) 현재 남한에는 ‘한라산’과 동일한 지명은 없다. 다만 전부지명소 ‘한라~한락’을 가진 지명은 전국적으로 2곳이 분포하고 있다: 한라-골 [골] 경남-양산-정관-예림-가동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한락-산 [산] 전남-신안-압해-신장- 용정 동쪽에 있는 산[한글학회(하), 1991, 5936]. ‘백록담’ 또한 남한에 동일한 지명은 없으나, 전부지명소 ‘백록’을 가진 지명은 남한 전국적으로 11곳이 분포하고 있다: 백록-골 [골] 경북-영덕-병곡-영- 백록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백록-동 [마을] 경기-이천-부발-고백- →흔기슭; 백록-동 [마을] 경북-영덕-병곡-영- 연동 남쪽에 있는 마을; 백록-동 [백록, 백록동리] [마을] 경북-달성-가창-우록- 황촌 서북쪽에 있는 마을; 백록-동 [마을] 충북-보은-마로-한중- →힐녹이; 백록-동 [마을] 서울-종로-가회-가회동 막바지 삼청동쪽 일대...지사 유길준이...백록동 정자에 거주 제한을 받고 감금된 중에,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 문화를 소개한 “서유기문”을 지었음; 백록-동 [동] 서울-종로- 1955년 4월 18일, 동제 실시에 따라, 가회동, 재동, 삼청동 동부를 합하여 가회동 막바지에 있는 백록동의 이름을 그대로 따랐음; 백록-리 [백록] [리] 전남-승주-주암- 본래 순천(승주)군 주암면의 지역으로서 백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리, 주암리를 병합하여 백록리라 함; 백록-리 [리] 경남-양산-하북- 본래 양산군 하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백학동과 녹동을 병합하여 백록동(리)이라 함; 백록-봉 [산] 전남-화순- 남면 대곡리와 사수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60m; 백록산 [산] 경남-고성-구만-광덕- 덕암 동북쪽에 있는 산; 백록-재 [정] 경북-고령-덕곡-백- 백동에 있는 정자. 성산 여씨들이 세움[한글학회(중), 1991, 2293-2294].

[18] 11) 17세기 이후 고문헌과 고지도 등에 표기된 한라산과 백록담, 그리고 주변의 소지명들을 일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漢拏山(其曰漢拏者 以雲漢可拏引也, 頭無岳, 圓山, 釜岳)”, “池(以山之頭皆有池, 似貯水器也)” [이원진, 『耽羅志』(山川)(1653년)]; “白鹿澤” [‘澤’(택)은 ‘潭’(담)의 오기이거나, 고유지명 ‘ᄇᆞᄅᆞ뭇’, ‘ᄇᆞᆯ늪’의 또 다른 훈차표기(못 澤)일 것으로 추정] (<濟州圖>, 18세기 전반; 오상학, 2020, 48); “漢拏山 (一云頭無岳,一云圓山)”, “方岩” (在漢拏山絶頂,仙人恒遊處) (<제주도지도>, 《東輿備考》, 17세기 후반; 오상학, 2020, 14); “白鹿泓” [허목(1595~1682), 『記言續集』(권48)]; “白鹿潭” (<漢拏壯矚>, 《耽羅巡歷圖》, 이형상, 1703, 필사본; 오상학, 2020, 19); “白鹿潭”, “東岩” (<濟州三縣圖>, 《海東地圖》, 18세기 중반, 필사본; 오상학, 2020, 24-25); “白鹿潭”, “立石” 2곳, “穴石”, “漢拏山 後面主峯”, “九峯岩”, “黃沙岩”, “長鼓項”, “冰桶” 2곳, “紅梁”, “入先石”, “大川源”, “別刀川源” (<白鹿潭>, 《濟州島圖》, 18세기, 필사본; 오상학, 2020, 103); “白鹿潭”, “漢拏山”, “穴望峰” (<제주도지도>, 《大東輿地圖》, 김정호, 1861년; 오상학, 2020, 58-59); “漢拏山”, “白鹿潭”, “北”(백록담의 북쪽 화구벽), “東岩”, “西岩”, “南峯”, “蟻項”(의항)(현 개미목, ‘蟻’자를 간체자로 표기, 虫+又), “斗里峯”(현 큰두레왓), “九峯岩” (<濟州地圖>, 『濟州郡邑誌』, 1899년; 오상학, 2020, 60-61) 등.

[19] 12) 본 글에서 인용하거나 참고한 (고)문헌과 (고)지도 등의 약호는 다음과 같다: 『三國史記(地理志)』(1145)=『三國』, 『三國遺事』(1281)=『遺事』, 『高麗史(地理志)』(1451~54)=『高麗』, 『朝鮮王朝實錄』(1392~1910)=『實錄』, 『世宗實錄(地理志)』(1454)=『世宗』, 『新增東國輿地勝覽』(1530)=『新增』, 『東國輿地志』(1656~73)=『東國』, 《廣輿圖(奎章閣 古4790 –58)》(18세기)=《廣圖》, 《海東地圖(古大4709-41)》(1750 ~51)=《海東》, 『輿地圖書』(1757~65)=『輿地』, 『戶口總數』(1789)=『戶口』, 《靑邱圖(古4709-21)》(1834)=《靑邱》, 《東輿圖(奎10340)》(1850~63)=《東輿》, 《大東輿地圖(奎章閣 奎10333)》(1861)=《大圖》, 『大東地志』(1861~66)=『大志』, 《1872년지방지도》=《1872》, 『필사본 朝鮮地誌資料』(1911년경)=『朝鮮』, 『(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舊韓』, 『(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1917)=『新舊』, 『耽羅志』(이원진, 1653)=『이耽羅』, 『增補耽羅誌』(윤시동, 1765)=『윤耽羅』, 《朝鮮五萬分一地形圖(西歸浦・大靜及馬羅島)》(大正七年 發行, 1918)=《地形》, 『濟州邑誌』(관찬, 1785~1793)=『濟州』, 『增補耽羅誌』(담수계, 1954) =『담耽羅』, 『韓國地名總覽16(제주편)』(1984)=『韓國』, 『일제강점기 제주 지명 문화 사전』(오창명, 2020)=『제주』, 《카카오맵》(2025)=《카맵》.

[20] 13) 이 한시(漢詩)는 권근이 당시 예문춘추관 학사의 신분으로 중국 명(明)나라에 사신을 갔을 때, 24건의 제목으로 시를 지으라는 洪武帝(홍무제)의 지시로 작성된 것이다. 24편의 제목 중 당시 조선 역사와 관련된 주요 (고)지명을 포함하는 경우는 11건이다: 朝鮮(조선), 西京(서경), 鴨綠(압록), 東夷(동이), 金剛山(금강산), 辰韓(진한), 馬韓(마한), 弁韓(변한), 新羅(신라), 耽羅(탐라), 大同江(대동강) 등. ‘漢羅山’ 지명은 24편의 한시 중 17번째 “耽羅”(탐라)라는 제목의 칠언율시의 수련(首聯)에 등장한다. 이를 통해 당시 명나라의 조정 또한 제주도의 옛 이름인 ‘탐라’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군마(軍馬)를 생산하던 제주도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권근이 『고려사』에 기록된 ‘漢拏山’이 아닌 ‘漢羅山’으로 지명을 제시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첫째, 당시 ‘漢拏山’이라는 표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둘째, 명나라 황제 및 조정에 바치는 시라는 점에서 당시 ‘漢羅山’으로 통용되던 중국 측의 지명 인식과 이해를 고려했다. 즉 당시 이 한시의 독자(讀者)인 중국(元~明 시기) 측에서도 이미 ‘漢羅山’이라는 표기로 한라산을 인식하여 통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21] 14) 도수희(1977, 143)의 선행 연구에서 논의된 ‘羅’(라)의 형태소적 특성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羅’(라)가 단일 형태소라면......이 ‘羅’는 ‘新羅(신라), 加羅(가라), 斯盧(사로), 斯羅(사라), 徐羅(서라), 徐那(서나), 任那(임나), 狗盧國(구로국), 冉路國(염로국), 樂奴國(낙노국), 駟盧國(사로국), 捷盧國(첩로국)’ 등의 ‘羅(라), 盧(노), 那(나), 奴(노), 路(로)’에 해당하는 ‘nara’(국), 혹은 ‘na’(地, 壤)의 의미일 가능성도 있다.”

[22] 15) “한-못(수산한못,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990): [못] 남거봉(南擧峰, 낭끼-오름)(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954) 남쪽에 있는 큰 못.” (한글학회, 1984, 379); “한-못(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못] 구룡이 남쪽에 있는 못.” (한글학회, 1984, 391)

[23] 16) “백록동서원은 현재 중국 장시성[江西省] 싱쯔현[星子縣] 북쪽의 여산오로봉(廬山五老峯) 밑에 있었는데, 이곳은 당대(唐代)의 이발(李渤)이 은거하여 백록(白鹿)을 기르면서 독서를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백록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5대(代) 10국(國) 때에는 이곳에 학교를 설립하여 여산국학(廬山國學)이라 하였으며, 송대에는 이 서원이 건립되어 지방의 자제들을 교육하였다. 남송의 주희(朱熹)가 남강군(南康軍)의 지사(知事)가 되었을 때 재흥시켜서 스스로 백록동서원 원장이 되어,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중용』을 학생에게 강의하는 동시에 천하의 학자를 초청하는 등 유교(儒敎)의 이상 실현에 힘썼다. 따라서 이 백록동서원은 점차 유명해져 천하 제일의 학교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시대의 학자 안향(安珦)을 기리기 위하여, 백록동서원을 본떠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紹修書院)을 세웠는데, 이것이 한국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또 1588년(선조 21) 황해도 황주군 황주읍 예동에 주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백록동서원을 세우고, 1661년(현종 2) 사액(賜額)을 받았다.”(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백록동서원)

[24] 17) 조선시대의 서원(書院) 건축물과 읍치 누정(樓亭)의 명칭을 조사한 다음의 선행 연구들에서 유교 지명의 명명에 작용한 성리학적 사상과 이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읍치 누정의 명칭과 관련해 대략 세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전국적으로 조선 전기 읍치 누정의 명칭에는 그 시대와 사회를 지배하던 담론의 세계가 응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민본주의에 기초한 덕치(德治) 사상, 유가적 인간상인 군자로서의 심신 수양, 임금에 대한 존숭(尊崇) 의식, 기타 지역 정체성이나 문화적 상징 등이 그것이다.”(전종한, 2025, 705-707); “모든 유교적 장소는 ‘상달천리’(上達天理)와 ‘하학인사’(下學人事)의 장소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인간과 천지 세계에 대한 배움과 익힘[學習]의 교학 체계인 유교의 장소는 자연과 친화하는 경관을 기반으로 한 교화적(敎化的) 장소성을 역사적으로 축적 전승해 왔다......유교적 공간 혹은 장소는 학습을 유도하고 학습으로부터 얻어지는 즐거움을 확인시키는 ‘文字的’(문자적) 상징물 혹은 경관으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유교적 건축물의 당호(堂號)와 기문(記文)・시문(詩文)을 게시한 교화적(敎化的) 현판(懸板), 그리고 자연과의 합일(合一)로 유교적 가르침을 느끼고 공감하게 하는 풍화적(風化的) 경관이다......한국의 서원 다수가 심성(心性)을 닦아서 천리(天理)에 통(通)하는 ‘上達天理’에 경도된 점은 서원의 각종 당호에서 보인다.” (김덕현, 2025, 8-9)

[25] 18) 1609~1610년 사이에 제주판관을 역임한 김치는 그가 남긴 기록들 곳곳에서 도가적인 신선(神仙) 사상을 연상케 하는 백록(흰 사슴)과 백록담을 언급하였다. 다음은 그의 기문 및 시문의 일부이다: “6~7리나 지나 영실(靈室)에 다다르니 골짜기가 자못 넓게 트인 바로 이곳이 옛 존자암의 터전이다. 천길 푸른 절벽이 둘러 있어 마치 병풍처럼 우뚝하며, 위에는 괴석(怪石)이 마치 나한(羅漢)처럼 500여 개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래는 샘이 잔잔하게 졸졸 흘러 그 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듣는 듯하였다. (존자암) 스님 수정(修凈)이 나에게 알리기를, “골짜기 속에는 백록(白鹿)이 영주초(瀛洲草)를 뜯어먹어 왕왕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본답니다. 실로 여기가 신선이 산다는 곳입니다.”라고 하였다.”[김치, 『南峯集』(「遊漢拏山記」), 1609-1610년; 이원진, 『耽羅志』, 1653년; 이원진(김찬흡 외 역), 2002]; “萬壑杉松一逕幽(수많은 골짜기에 삼나무 숲 사이 깊숙한 외길) / 每逢佳處暫遲留(곳곳마다 아름다워 잠깐씩 머무네) / 峰頭怪石羅千佛(봉우리 끝 괴석들 천 개의 부처 되어) / 岩底淸泉到十洲(바위 밑 맑은 샘물 영주 바다로 흐르네) / 直下洞天騎白鹿(백록 타고 동천으로 바로 내려가면) / 笑看仙子跨靑牛(신선이 검은 소 타고 가다 웃으며 만날 것 같아) / 飄然逈出人間表(훌쩍 멀리 인간 세계 벗어났으니) / 自此仍成汗漫遊(이제부터 실컷 구경하리라)” [김치, 칠언율시, 「靈室」; 이원진(김찬흡 외 역), 2002; 오문복 편역, 2017, 89]; “石釖撑空島路微(깎아지른 절벽 하늘 떠받치고 섬길 희미한데) / 們蘿直上倚西暉(넝쿨 잡으며 곧장 오르니 서녘에 저녁노을) / 天風女弱香生屐(하늘에서 부는 바람 한들한들 발굽에 향기 일고) / 山靄霏霏翠滴衣(산안개 추적추적 옷에 푸른 물드네) / 白鶴巢邊朱樹老(흰 학은 주목에 깃 들고) / 靑鳶駐處彩雲飛(푸른 솔개 머문 곳엔 노을구름 날리네) / 回頭弱水三千里(뒤돌아보니 약수(신선이 사는 곳의 물)는 삼천리) / 爲聞安期向日歸(묻노라 돌아갈 날 언제인가고)” [김치, 칠언율시 「白鹿潭」; 이원진(김찬흡 외 역), 2002; 오문복 편역, 2017, 67]

[26] 19) “토착인 가운데 생원 김양필 외에는 글을 아는 이가 거의 없고(土人生員金良弼外, 識文者絶少.)”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10)]

[27] 20) “문장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썼으며, 생원시에도 입격했다. 명륜당에 그가 지은 시가 현액되어 있고, 주자의 백록동규(白鹿洞規)도 그가 쓴 것이다. 충암(김정)의 풍토록에도 김양필을 칭송하는 대목이 있다.” [李元鎭, 『耽羅志』, 人物, 「金良弼」; 學校, 「明倫堂」, ‘金良弼詩’]; 한편 현재 서울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자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사당으로 쓰였던 성균관(成均館)과 문묘(文廟)가 남아 있다. 현재 향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 북쪽 뒤편에는 강당 시설인 명륜당(明倫堂)(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25-1)이 있고 그 내부에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 1672)이 글씨를 쓴 ‘白鹿洞規(백록동규)’(백록동서원에서 쓰인 주희가 제정한 학교 규칙)와 ‘白鹿規跋(백록규발)’(백록동 학규에 대해 주희가 직접 지은 발문) 현판 2개가 남아 있다.

[28] 21) 전부지명소인 ‘*ᄇᆞᄅᆞ・*ᄇᆞ로(bVrV)’가 ‘白鹿(bVrV)’으로 유사 음차 표기되는 동시에, 후부지명소인 ‘*못~*뭇’은 ‘ 潭・澤・泓’ 등으로 훈차(訓借)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표 1의 ‘17세기’와 ‘18세기’ 항목).

[29] 22)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제주에서만 나온다고 기록된 궤자(麂子)와 미록(麋鹿)은 사슴과 고라니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가죽이 세밀하고 질겨 가죽신을 만들 만하다”라고 적혀 있다.“ (김학수 등, 2023, 182); “지역에서 나는 토산물은 매우 적다. 들짐승은 노루, 사슴, 멧돼지가 가장 많고, 또한 오소리도 많다. 이 밖에 여우, 토끼, 호랑이, 곰 등은 모두 없다. 날짐승은 꿩, 까마귀, 솔개, 참새가 있고, 황새와 까치 등은 없다(土產尤絶少。 獸但獐鹿猪最多。 猯吾兒里亦多而此外狐免虎熊等皆無。禽有雉烏鴟雀而無鸛鵲等。).”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 10)]; “산에는 곰, 호랑이, 승냥이, 이리같은 모질고 사나운 짐승이 없어, 소, 말이 쑥쑥 자랄 수 있고, 고라니, 사슴이 번식한다. 소 한 마리의 값이 많아야 4, 5필 [匹, 1필은 布帛 4丈(한 자(尺)의 열 배 길이, 약 3m)]이고 적으면 2, 3필에 지나지 않으며, 그 색깔은 모두 검어 누런 것은 전혀 없다. 고라니, 사슴의 무리는 곳곳마다 있어, 사람들이 잡아먹을 수 있다. 전혀 없는 것은 토끼, 여우이고, 닭, 꿩, 까마귀, 제비와 같은 종류는 모두 있지만, 없는 것은 까치이다.” [이건(李健, 1614~1662) (1628년 5월 27일 제주 유배 시작), 2010, 「濟州風土記」(1628~1635), 『葵窓集(규창집)』, 297]; “사슴 진상을 위한 사냥 행사(《탐라순력도》의 <橋來大獵(교래대렵)>): “사슴 등의 진상을 위한 사냥과 관련한 행사도로 『탐라순력도』의 「橋來大獵(교래대렵)」(1703년)이 있다. 이것은 1702년 10월 11일 제주목 교래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당시 사냥에는 3읍 수령과 감목관이 참여했고, 말을 타고 사냥하는 마군 200명, 보졸 400여 명, 포수 120명이 동원되어 사슴 177마리, 돼지 11마리, 노루 101마라, 꿩 22마리를 사냥했다. <飛揚放鹿(비양방록)>이란 그림에는 1702년 10월 11일 교래의 사냥에서 생포한 사슴을 1703년 4월 28일 비양도에 옮겨 방사한 것을 묘사했다......내의원에서 소용되는 사슴 꼬리나 혀 한 개 값이 면포 20~30필에 이르러 진상을 위해 사슴의 방목이 필요했고, 진상용 생사슴을 비양도에서 방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김학수 등, 2023, 221)

[30] 23) “(제주) 본토박이 사람들의 말소리는 가늘고 드세어서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날카로우며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많다. 머무는 기간이 오래 지나자 저절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土人語音。 細高如針刺。 且多不可曉。 居之旣久。自能通之。).”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 10)]

[31] 24) 현용준(1989, 5)은 제주도 사람들의 신앙 체계와 무속(巫俗) 신앙을 조사한 선행연구에서 현재 제주도 남성들은 유교, 여성들은 무속 신앙을 믿는 이중적인 민간신앙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양자가 표면적으로는 충돌 관계인 듯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완전한 민간신앙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32] 25) 현재 전하는 무가 본풀이 사전으로는 진성기(1991)의 자료와 함께 현용준(1980; 2007)의 『(개정판) 제주도무속자료사전』 등이 있다. 그러나 현용준의 자료는 후대로 갈수록 표기가 많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고친 흔적이 눈에 띄고 있어 주요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오창명, 2017, 144).

[33] 26) 『본풀이󰡕 등의 자료에 등장하는 ‘한라산’의 전부지명소 관련 어휘 자료는 다음과 같다: *한라~*할라~*하라 / *한라~*한로~*할로・*할루~*하로 / *한라~*한락・*할락 (가라~가락) / 한라영산~한로영산, 할로영산, 하라영산~하로영산 / 한로영주산, 할로영주산~할로양주산~할루영주산, 할로영주~할루영주, 하라영주산~하로영주산 / 할루할루산, 할로하로산~할노하로산, 하로하로산~하로하로~하로하루산~하노하로산 / 하로백관또, 한락둥(궁)이~할락둥(궁)이 등.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한라산 지명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필자는 기본형이자 원형으로서의 ‘*한라’의 독자적인 음운 변화와 함께 합성명사 및 파생어의 형성 과정에서 발생한 지명 형태소 경계 사이의 음운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34] 27) “한-내(제주시 용담1동-용담2동)(漢川, 大川, 모르내, 도산물): [내] 오라동 남쪽,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곳곳에 소와 못을 만들면서 아라동, 오라동, 연동, 오등동을 거쳐 삼도1동, 용담1동 경계에서 용연소를 이루고 바다로 들어감. 제주시에서 가장 크고 김.”(한글학회, 1984, 379); “한내(漢川)-제주시에서 가장 크고 긴 내다. 그러므로 ‘한내(漢川)’라는 명칭은 크다고 하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한’은 ‘크다’의 옛말이며 한자 이름 ‘한내(漢川)’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표기한 것이다.”(제주문화원, 1996, 257); “한-못(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990): [못] 남거봉 남쪽에 있는 큰 못.”(한글학회, 1984, 379); “한-못(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못] 구룡이 남쪽에 있는 못.”(한글학회, 1984, 391); “한-못 [못] 경북-영일-신광-상읍- 상읍 남쪽에 있는 못(한못-들).”; “한-못 [못] 경북-영천-대창-사리- 용덕동 서쪽에 있는 못(한못-안).”; “한-못 [韓池, 大池] [못] 경북-금릉-야포-국사-(현 김천시 야포읍) 역전 동쪽에 있는 큰 못.”[한글학회(하), 1991, 5937]; “한-새미[제주시 애월읍 어도리(현 봉성리)]: [우물] 구몰동 서쪽에 있는 큰 우물.”(한글학회, 1984, 431); “큰-내(서귀포시 대천동)(大川): [내] 하원동 영실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서 하원동, 도순동, 용흥동의 경계를 이루고 강정동에서 바다로 들어감.”(한글학회, 1984, 489); “큰못-들[큰못](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들] 토기동 서쪽에 있는 들. 큰 못이 있음.”(한글학회, 1984, 390); “큰밭-동네[大田洞](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마을] 솔때왓동 북쪽에 있는 마을.”(한글학회, 1984, 390); “‘할머니’(한+어머니)(큰+어머니)의 방언 = ‘할만’, ‘클마니’(평안) / ‘큰마니’(평안, 함북, 중국 요령성).”(네이버 국어사전, 우리말샘); “‘kan(칸) > han(한)’: 어두에서 ‘k’가 마찰음화로 ‘h’로 음운 변화됨.”; “한텡그리봉(Khan Tengri Peak, 7,010m): (위구르어: Хантәңри, Xantengri; 카자흐어: Хан Тәңірі, Xan Täñiri; 키르기스어: Хан-Теңири; 중국어: 汗腾格里峰)은 톈산(天山)산맥의 산으로,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에 위치한다.”(Wikipedia, Khan Tengri)

[35] 28) “만일 ‘耽牟+羅’와 같은 분석이 더 정확한 것이라면, 이것은 역시 ‘圓’(원)의 의미를 지닌 ‘*tam, *tum’의 전차형(이전 형태)을 ‘*tamo, *tumo, *tamu, *tumu’와 같이 추정할 수 있는 것이어서......만일 ‘羅’(라)가 단일 형태소라면......이 ‘羅’는 ‘新羅(신라), 加羅(가라), 斯盧(사로), 斯羅(사라), 徐羅(서라)......등의 ‘羅(라), 盧(노), 那(나), 奴(노), 路(로)’에 해당하는 ‘nara’(국), 혹은 ‘na’(地, 壤)의 의미일 가능성도 있다.”(도수희, 1977, 143); “고대 한반도의 중부로부터 이북 지역에 ‘壤’의 뜻인 고유어 ‘奴・內・惱’가 적극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사례 - ➀ 고구려 5부족명: 桂婁部(內部), 絶奴部(北・後部), 順奴部(東・左部), 灌奴部(南・前部), 涓奴部(西・右部) 등, ➁ 『삼국사기󰡕 지리 2의 지명: 骨衣奴:荒壤, 仍斤內:槐壤, 今勿奴・今勿內:黑壤, 金惱:休壤 등)......고대 한반도의 중부 이남 지역에 동일한 뜻으로 쓰인 고유어 ‘盧・羅・路’가 비교적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었다. (사례 - ➀ 진한・변한 국명: 斯盧, 瀆盧, 甘路, 戶路, 半路, 樂奴 등, ➁ 마한 국명: 萬盧, 拘盧, 駟盧, 牟盧卑離, 莫盧, 捷盧, 冉路 등).”(도수희, 2003, 184-185); “만일 『삼국유사󰡕 권1에 나타나는 “東泉寺在詞惱野北”에서 ‘詞惱=斯羅’라면 여기 ‘惱’는 북부에서 발견되는 ‘惱’의 침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徐那伐, 阿那加耶, 加那, 任那’의의 ‘那’와 『고려사󰡕 지리지 耽羅條의 ‘良乙那, 高乙那, 夫乙那’의 ‘那’는 북부의 ‘奴・內’에 해당하는 어두음 ‘n’을 소유하고 있는고로 역시 북에서 남으로 침투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那’는 고구려 5부족명 중 ‘灌奴=貫那, 消奴=藻那, 尉那巖城’에서 ‘奴:那’와 같이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믿음직스럽다.”(도수희, 2003, 186);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ra’(羅)가 한 가지 예도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대관령 너머의 관동 지역에서 ‘加羅忽(䢘城), 何瑟羅(溟州)’의 ‘羅’를 발견한다. 이 ‘*ra’(羅)는 태백산맥 너머로 동해안을 타고 신라어가 북진하는 머리에 함께 올라가 분포한 신라어의 요소 속에 박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남하 침투의 의혹이 짙은 ‘*na’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도수희, 2003, 187); “접미 지명소 사례: ‘-盧(로)~羅(라)’, ‘-內(내)~奴(노)~那(나)’.”(도수희, 2003, 291); “지명소 ‘內・奴・那’ 등의 의미: ➀ 內・奴 : 壤 (‘壤’의 새김이 ‘奴・內・惱’임을 확신할 수 있음), ➁ 那・乃 : 川 (‘내’와 ‘나리’가 공존하여 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 ➂ 川 : 壤 : 奴・內・惱・那・奈・乃, ➃ 奴・那 : 壤・川.”(도수희, 2003, 298-300); “내~노(內, 奴, 弩) : 땅(土, 壤)......위 (37)~(80)과 같이 ‘내’가 땅(壤)의 뜻으로 씌었다. 중세 국어의 (土・地・壤)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진한어 斯盧, 斯羅(사로, 사라), 마한어 駟盧(사로)의 ‘盧, 羅’에 소급된다. 그리고 신라 시조의 이름 불구내(弗矩內)의 ‘내’(內)와 신라 누리니사금(儒理尼師今)의 ‘누리’(儒理)에 소급될 듯하다. ‘내’(內)는 世(누리)의 의미라고 『삼국유사󰡕에 주석되어 있고 ‘누리’는 世의 뜻이라 주석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나’도 동일 어원에서 나온 화석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어 na(地), no(野), 만주어 na(地)와 동일한 점이 흥미롭다.”(도수희, 2023, 148)

[36] 29) “需李都羅(유리도라)(왕명), 儋羅(담라)(국명)”[『新唐書󰡕 권320, 儋羅條, 龍朔 初(661~662년)]; “我羅(아라) (제주시 아라동) 아라동(我羅洞) [아라, 아라우, 아라웃, 아란, 아란동].”(한글학회, 1984, 528); “吾羅(오라) (제주시 오라동) 오라동(吾羅洞) [오라, 오라위, 월라, 모르내가름, 모로내가름, 모로동, 모오동].”; “紗羅洞(사라동) (제주시 도평동) 사라-리[사라동, 동사라리] [마을] 뱅디 서남쪽에 있는 마을, 애월면 광평리의 서사라리 동쪽이 됨.”(한글학회, 1984, 522); “紗羅洞”(일본육지측량부, 《3차 조선지형도》, <翰林>, 1918.11.30.); “沙羅峯(사라봉) (제주시 건입동 387-1) 사라-봉(沙羅峯) [사라부수, 사라오름, 사라악, 사라악봉수] [산] 밑에 옛 절터가 있으며 사라사가 있음......‘사봉낙조(沙峯落照)’라 하여 영주 12경의 하나로 이름남.”(한글학회, 1984, 515); “沙羅岳(사라악, 사라오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 사라-오름[사라악] [산] 높이 1,300m. 꼭대기에 못이 있으며, 성널오름 서쪽 위가 됨.”(한글학회, 1984, 347); “沙羅岳(サラオルム)”(일본육지측량부, 《3차 조선지형도》, <漢拏山>, 1918); “月羅山(월라산) (서귀포시 신효동 산1) 다라-미[月羅山] [산] 상효동과 신효동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58m.”(한글학회, 1984, 489); “月羅峯(월라봉)[月羅山] [산] (남제주군-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대평리와 화순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250m.”(한글학회, 1984, 358); “月羅峯”(일본육지측량부, 《3차 조선지형도》, <大靜及馬羅島>, 1918.2.28.); “馬羅島(마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600) 마라-도(馬羅島) [섬] 가파도 남쪽에 있는 섬.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서 넓이 0.43㎢인데, 전 면적의 1/6쯤의 경작지가 있으나 바닷물이 넘나들면서 볼모에 가까움.”(한글학회, 1984, 367); “馬羅島”(일본육지측량부, 《3차 조선지형도》, <大靜及馬羅島>, 1918.2.28.).

[37] 30) 『본풀이󰡕 등의 자료에 등장하는 ‘백록담’의 전부지명소 및 고유어 지명 관련 어휘 자료는 다음과 같다: *ᄇᆞ름, *ᄇᆞ름웃도~*ᄇᆞ름웃또, *ᄇᆞ름웃드~*ᄇᆞ름웃뜨 [風上都, 風位都(바람位都), 風神都] / *ᄇᆞ름알~*ᄇᆞ름알또 [風下都(바람아랫都)] / *ᄇᆞ름목, *ᄇᆞ름궁기 [*ᄇᆞ름=바람(風)] / *ᄇᆞ름운님 [바람운님(神名), 風雲位(바람운위)] / *ᄇᆞ로못님 / *ᄇᆞᄅᆞ뭇님 / *ᄇᆞᆯ늪 등. 그런데 ‘*ᄇᆞ름웃드~*ᄇᆞ름웃뜨(風上都)’와 ‘*ᄇᆞ름알~*ᄇᆞ름알또(風下都)’ 등의 사례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ᄇᆞ로못님’, ‘*ᄇᆞᄅᆞ뭇님’, ‘*ᄇᆞ름운님’ 등의 지명소 ‘못~뭇~운’이 ‘못’(池, 潭, 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합성명사, 즉 ‘바람(風, 蛇) + 웃(위, 上) + 님(존칭 접미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음운 변화의 결과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이들 고유어 지명의 후대 승계 지명이 ‘白鹿潭’(백록담)일 것으로 전제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38] 31) 고대에 ‘바람’과 ‘뱀’이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 관계에 있었고 그 어원 및 음(音)을 ‘ᄇᆞᄅᆞ~바라’로 재구(再構)한 선행연구가 있다. ‘바람[風]’과 ‘바람[뱀 蛇]’의 갑골음(甲骨音), 즉 중국 은(殷)나라 시대 이전의 상고(上古) 한자음을 ‘*ᄇᆞᄅᆞ~*바라(bərə)’로 분석한 최춘태(2017)는 “‘기본형[bərə][ᄇᆞᄅᆞ~바라] ⇒ m명사형[ᄇᆞᄅᆞᆷ][바람, 뱀]’......① 風(바람 풍)의 음운 변천: ‘bərə(기본형[ᄇᆞᄅᆞ~바라]) > bərəm(商‧殷) > prəm(秦‧漢) > piuŋ > püŋ(隋‧唐) > fēng(베이징 현대음)’, 그리고 ② 風(뱀, 几+虫)의 음운 변천: ‘ᄇᆞᄅᆞ~바라 > ᄇᆞᄅᆞᆷ(m명사형) > ᄇᆞ람 > ᄇᆞ얌~암 > 배암 > 뱀’으로 음운 변천해 왔음을 주장하였다(최춘태, 2017, 254-255, 270-271; Bernhard Karlgren, 1966).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 국어학계의 공식적인 검증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39] 32) 한편 제주도에 구전되어 온 설화에는 ‘구렁이가 된 막내’, ‘구정승과 뱀아들’, ‘뱀 이야기’, ‘은혜 갚은 뱀’, ‘토산뱀’, 그리고 ‘뱀으로 환생한 박씨’ 등과 같은 뱀[蛇] 관련 전설들이 다수 전해 오고 있다(김영돈 등, 1985).

[40] 33) 제주도 영등신은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서쪽 한림 앞바다로 불어 들어와 2월 보름에 동쪽의 우도 앞바다로 불어 나간다고 여겨진다. 한편 칠머리당에서 행해지는 이 영등굿은 영등신, 즉 바람의 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 신앙과 민속 신앙이 담긴 굿으로, 한국 유일의 해녀 굿이라는 점에서 그 특이성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유산’에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국가유산포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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