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역사지리
1) 제주도의 대외 교류 역사
2)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리
3. 한자 표기 지명의 등장과 변천: 漢拏山과 白鹿潭
1) 漢拏山(한라산)과 漢羅山(한라산)
2) 大池(대지)와 白鹿潭(백록담)
4. 고유어 지명의 추정: 할라산과 ᄇᆞ로못
1) 한라산: *한라・*한로~*할라・*할로~*하라・*하로
2) 백록담: *ᄇᆞᄅᆞ뭇~*ᄇᆞ로못
5. 결론
1. 서론
“(한라산) 정상에 이르자 구덩이가 패여 못을 이루고, 석봉이 빙 둘러 둘레가 7~8리 정도 되었다. 돌비탈길에 기대어 굽어보니 물은 수정 같건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못 가 흰 모래에 향기로운 덩굴이 자라 한 점의 티끌조차 없었다. 인간 세계의 기운이 멀리 3천 리 떨어져 있어 신선의 퉁소 소리가 들리고 신선의 수레가 보이는 듯하였다.” (임제, 1578.02.15.)
“큰물당 조상님은 / 할루산 섯어깨 / 무유알에서 솟아나니 / 그 할으방이 / 삼방굴사로 ᄂᆞ렸수다.” (사계본향 큰물당 본풀이)1)
21세기 초반인 현재,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 소속된 화산섬인 제주도(濟州島)의 중앙에는 ‘한라산’(漢拏山, 1,950m)과 산 정상에는 ‘백록담’(白鹿潭)이라는 화구호가 위치하고 있다(그림 1과 2).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전라도 나주 출신의 28살 한 청년은 대과에 급제한 후 한라산 정상에 올라 기이하고 신비로운 경치에 선경(仙境)의 감흥을 글로 남겼다. 혹은 제주의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들은 그들이 모시던 당신(堂神)의 영험함을 한라산 백록담에 환유(換喩, metonymy)하면서 나지막이 경건한 노래를 불렀다.

그림 2.
한라산 백록담의 시각적 재현물
자료: (좌상) 한라산 원경(서귀포시 서홍동 삼매봉에서 조망) [김순배(2022.7.24. 촬영)]; (우상) 백록담 드론 사진(백록담 북서쪽 상공에서 조망)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한국명승학회, 2022, 322); (우중) 백록담 전경(백록담 북쪽 홍량 부근에서 파노라마 조망) [김순배(2022.3.10. 촬영)] (좌하) <白鹿潭>(백록담 북쪽 상공에서 俯瞰) (《耽羅十二景圖》, 18세기전반)(오상학, 2020, 88); (우하) 백록담 표지석(백록담 동쪽 동릉 부근) [김순배(2022.3.10. 촬영)]
제주도에 놀러 가든 그 섬의 소식을 전해 듣든 우리는 무심코 ‘한라산’과 ‘백록담’을 바라보거나 머릿속에 그 모습을 떠올릴 뿐, 이 이름들이 말해주는 보편적인 대주체(大主體) 너머의 무언가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이 이름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이름에는 어떤 의미의 누층(layers of meaning)이 쌓여 있는가? 제주 사람들이 경험해 온 어떤 신산한 삶의 역사가 변신(metamorphosis) 하여 지금의 그 이름들이 되었는가(Kim, 2025). 이러한 물음들이 본 논문이 가지는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漢字) 지명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어원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로는 한라산의 경우 크게 3가지의 어원이, 그리고 백록담의 경우는 1가지의 어원이 제기되어 왔다. 한라산의 어원은 첫째, 15세기 후반, 표기된 한자를 뜻풀이한 ①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 둘째, 고대 탐라어의 높은 산이나 구름이 있는 땅을 뜻하는 ② ‘*칸나(kanna)’~‘*하라(harra)’(*는 추정 자료를 뜻함), 그리고 셋째, 중세몽골어로 ‘검은색’ 또는 ‘위대하다’는 뜻을 지닌 ③ ‘*하라(hara)’ 등이 있다(『(新增)東國輿地勝覽』제38권 全羅道 濟州牧 山川條 漢拏山, 1477년, 1481년, 1530년; 김공칠, 1967; 강영봉, 2001, 354; 임재영, 2021, 107-108).2) 한편 백록담의 어원은 17세기 초반 김치(金緻, 1577~1625)의 「遊漢拏山記」에서 표기된 한자를 뜻풀이하면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① ‘신선이 백록(白鹿, 흰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이 있다.3)
필자는 한반도 육지부에 분포하는 ‘*서리뫼 > 霜嶽[상악, 훈음차 표기] > 金剛山(금강산)’, ‘*서리뫼 > 雪嶽[설악, 음차 표기]~靑峯[청봉, 훈음차 표기]’, 그리고 ‘*송이산 > 俗離山’[속리산, 음차 표기] 등의 산이름 변천 사례와 같이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 또한 표기 이전에 존재하던 음성 상태의 원초 지명으로서 제주 고유어 지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김순배, 2014; 2017). 요컨대 토착 제주도 사람들이 음성 상태로 지칭하던 ‘*한라~*할라~*하라’~*하로’와 ‘*ᄇᆞ로못~*ᄇᆞᄅᆞ뭇~*바람운’이라는 고유어 지명이 어느 시기인가 도가적인 소양을 지니면서 한자와 한문(漢文) 사용에 익숙한 누군가에 의해 ‘漢羅山~漢拏山’[음차 표기]과 ‘白鹿潭’[음차 표기]으로 전부 지명소가 차자표기(借字表記) 되었을 것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명 어원이 제주 고유어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을 설정하여 한자 지명으로 변천해 온 명명 시기, 명명 주체, 명명의 이유, 그리고 본래의 고유어 지명을 역사지리적이고 지명언어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구체적인 논증과 논지 전개를 위해 3단계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째,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역사지리적 성격을 문헌 조사와 현지 답사를 통해 기초적으로 조사하여 제주도의 활발한 대외 교류의 역사와 지명적 특성, 그리고 한라산 백록담 주변에 분포하는 소지명을 정리하였다. 둘째, 공식 지명이자 한자 지명인 ‘漢羅山~漢拏山’과 ‘白鹿潭’의 명명 시기와 명명 주체, 그리고 명명의 이유를 비교 문헌 조사를 통해 추적하였다. 셋째, 한자 지명인 ‘漢拏山’과 ‘白鹿潭’이 등장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제주 고유어 지명을 찾기 위해 제주도 주민들의 토착 신앙적인 신화 및 무속적 가치와 민속 신앙을 반영하고 있는 무가(巫歌) 본풀이 자료를 문헌 조사하였다.
2.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역사지리
1) 제주도의 대외 교류 역사
과거 탐라국(耽羅國)이 자리했던 제주도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해상에 분포하면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수리적, 지리적, 관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4) 이러한 한반도와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고대 제주도의 언어지리적 특성 또한 한반도에 분포한 한계(韓系) 및 부여계(扶餘系) 언어, 특히 백제어(百濟語)의 영향을 크게 받아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도수희, 1977; 2008; 2023).5)
선행 연구 결과, 제주도에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서귀포시 천지연 인근에서 발견된 생수궤 유적(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795번지)은 약 100만 년 전 무렵 수중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제주도에서 현재까지 조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인류 정착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생수궤 유적의 절대연대와 더불어 화산활동과 제4기 해수면변동 과정을 참고하면 약 25,000년 전 이후부터 제주도에 인류가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김상태, 2016). 이러한 고고학적 연구를 뒷받침하듯, 제주 사계리 해안(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대정읍 상모리)에서는 약 15,000~20,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의 사람 및 동물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고, 이는 아시아 최초의 사람 발자국 화석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람 발자국 화석의 형성 시기는 약 15,000년 전으로 해석되고 있다(김경수・김정률, 2006).
한편 제주도에는 1만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한반도의 모습이 현재의 지형으로 바뀌는 시점에 한국 최초의 신석기 시대 유적, 즉 제주 고산리 유적(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28번지)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고산리식 토기는 방사성탄소연대 분석 결과 기원전 7,600~4,500년 사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에서 신석기 시대 초기 문화로 이행되는 전환기의 문화 양상과 함께 한반도의 초기 신석기 문화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제주 고산리 유적; 소상영, 2017, 1). 이러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선사(先史)시대 이래로 제주도 사람들의 언어 활동과 음성 상태의 고유어 지명이 구전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역사 시기에 접어들면서 제주도와 한반도 및 중국 대륙 등과의 활발한 교류 양상은 여러 고고학적 유적 및 유물 발굴 성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금성패총유적(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446-1)에서는 화천(貨泉), 방추차, 갈돌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화천은 중국의 신대(新代, AD. 8~23)에 제작된 동전으로 당시 동북아시아 교류의 직접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제주시 용담동에서 발굴된 회색 토기류의 형식적인 특징들은 경북 경주 안압지와 전남 영암군 구림리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통일신라 토기와 유사성을 갖고 있어 이들 지역과의 활발하게 이루어진 교류의 결과를 알 수 있다(이귀영, 2001, 118-121).
특히 한반도 남해안과의 활발한 해상 교역과 관련하여 기원후 3~5세기까지 제주도의 탐라정치체가 형성된 탐라시대 전기(AD. 200~500)에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馬韓) 세력을 거점으로 변‧진한 및 가야 지역(특히 경남 고성군의 대가야) 등의 한반도 남부 지역의 다양한 정치체와 철(鐵) 등을 매개로 한 다양한 교섭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기원 전후 한 시기에는 제주지역 정치 세력이 한반도 남부의 전남 해남군 군곡리와 경남 사천시 늑도를 연결하는 남해안 해상 교역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강창화 2018, 45-57; 김경주, 2018, 72-73).
그러나 전남 서남부~전남 동남부~경남 서남부로 연결되는 제주해협권의 고대 교역 루트는 6세기 중반 이후 완전히 해체되었다. 백제의 전남권 전역에 대한 영역화와 직접 지배는 제주[탐라]의 다원적인 대외 교류와 활동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자치권이 보장된 신속(臣屬) 과정을 거쳐 간접 지배 권역에 포함된다. 요컨대 탐라는 6세기 중반경 백제에 신속되면서 외교권이 위임된 반자치적인 국(國)체제를 유지하였지만 대외 교섭과 교류의 창구는 백제를 통해 일원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김경주, 2018, 76). 따라서 이러한 한반도와 관련된 제주도의 대외 교류 역사를 통해 앞서 제기한 제주 방언 및 고유어 지명이 가지는 한계어 및 백제어와의 깊은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다.
역사지리적으로 제주도라는 자연 공간에서 진행된 지명화(地名化, toponymization) 과정에는 해당 지명별로 혼재 정도의 편차는 있으나, 대체로 내부자와 외부자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명명의 방식, 그리고 인문적 가치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자연과 지명을 바라보는 시선(way of seeing)이나 가치 부여의 근저에는 내부자, 즉 제주도 주민들의 토착 신앙적인 신화 및 무속적 가치와 민속적 신앙이 고유어 지명 형태로 그 기초에 누적되어 있고, ‘탐라군’으로 육지 권력에 편입된 고려시대(고려 숙종 10년, 1105년)6) 이래로 외부자들과의 왕래 및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원주민들의 인문적 가치 위에 섬 외부로부터 전파된 도교, 유교, 불교적인 정신적 가치 부여가 중첩된 한자 및 한역(漢譯) 지명들이 명명되면서 하나의 지명 경관 속에 다양한 의미의 누층이 쌓여 있다(제주특별자치도・한국명승학회, 2022, 158; 김순배, 2024, 9; 류제헌・김순배, 2025a).7)
2)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리
한라산과 백록담의 자연적인 지리 사실은 인문적인 지리 현상과 융합되어 하나의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을 구성하고 있다.8) 이러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현재 한라산 백록담 일원은 명승과 천연기념물 및 천연보호구역이라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9) 특히 고문헌 및 고회화, 현대 사진 자료 등에 재현된 한라산 백록담의 자연 및 인문 지리적 묘사는 다양한 이미지와 이름들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2). 현재 대한민국 남한에 위치하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은 제주도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 다만 ‘백록담’의 전부지명소인 ‘백록(白鹿)’의 경우, 깨끗하고 상서로운 ‘흰 사슴’이 가지는 도가적이고 유가적인 신성(神聖)하고 신령(神靈)한 의미로 인해 남한에 10여 곳이 분포하고 있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10)
예로부터 제주도의 마을 주민들은 한라산 백록담을 신령하고 신성한 신적인 대상으로 여겨 그들이 모시는 당신(堂神)들이 솟아나거나 그곳에서 내려와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했다는 구전들과 관련 고유어 지명들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표 2; 류제헌・김순배, 2025b). 그러나 제주 고유어 지명들은 고려 및 조선시대 이래로 이곳을 통치하고 방문한 유교적인 관료 및 지식인들에 의해 ‘漢拏山’, ‘白鹿潭’과 같이 대부분 한자 지명으로 기록되어 공식화되었다. 제주도를 방문한 육지의 외부인들에 의해 고유어 지명이 한자(및 한역) 지명으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제주도의 한자 지명화 사례는 한라산 백록담 주변에 분포하는 지리적 실체들의 이름에 남아 있다.
고문헌, 고회화, 고지도 등에 수록된 한라산 백록담 주변 봉우리 등의 지형물 명칭 등을 위치 비정을 통해 위성 영상에 표시하면 그림 3과 같다.11) 그림에 보이는 지명들에서 알 수 있듯이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소지명들이 대체로 한자(및 한역) 지명으로 현재까지 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라산[두무악(頭無岳), 원산(圓山), 부악(釜岳)], 화구호[백록담], 화구 외륜봉[동릉-일관봉-동암-동대-방암 / 북벽-북릉-북면주봉-북암-구봉암-한관봉-혈망봉-혈석-입석-홍량-기우단-황사암 / 서쪽 능선-한라산 정상-서암-서정-상봉-월관봉 / 남벽-남봉-남애 등].

그림 3.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소지명 분포
자료: 카카오맵(https://map.kakao.com) 위에 지명 표시
주1: ‘구봉암’과 ‘한관봉’의 위치를 위 지도의 백록담 북북동쪽 부근이 아닌, 윤제홍의 <한라산도>(1844)와 백록담(탐라십이경도, 18세기전반)(오상학, 2020, 88) 고지도 등을 근거로 현재의 ‘왕관릉’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음. 정확한 위치 비정에 대한 별도의 후속 조사가 필요함.
주2: ‘방암’의 위치를 위 지도의 구봉암 부근이 아닌, 현 동릉의 백록담 표지석 부근에 있는 인공적으로 가공한 것 같은 직육면체의 바위로 보는 견해가 있음.
3. 한자 표기 지명의 등장과 변천: 漢拏山과 白鹿潭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명 변천 과정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즉 자연 환경과 인간의 인식 작용이 만나는 지점에서 명명되는 지명과 그 변천을 통해 지리적 실체로서의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관점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필자는 다음 장에서 제시될 내부자들에 의해 인식된 제주 무가 본풀이의 설명과 같이 초기의 신화적이고 원초적인 시각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할라산・할로영산・하로산・하라영산’, ‘頭無岳(두무악)・圓山(원산)・釜岳(부악)’, 그리고 ‘*ᄇᆞᄅᆞ뭇, *ᄇᆞ로못’이라는 한라산 백록담의 옛 제주 고유어 지명이 대륙 문명의 유교적이고 도교적인 사상과 이념을 지닌 외부자들에 의해 “漢羅山・漢拏山”, “白鹿潭” 등과 같은 한자로 차자(음차 및 훈차) 표기된 한자 지명으로 변신하고 변형되어 현재에 통용 및 인식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은 언제, 누가, 어떻게, 왜 명명하였을까? 본 장에서는 한자 지명으로 변천해 온 명명 시기와 명명 주체, 그리고 명명 과정에서 작용한 가치 부여의 성격을 비교 문헌 조사를 통해 분석하였다. 한라산과 백록담 관련 한자 표기 지명의 변천 과정을 삼국시대 이래 현재까지 해당 지명과 관련된 시대별 고문헌 및 고지도 등에 기재된 지명 표기를 정리하여 지명 변천 도표를 작성하면 표 1과 같다.12)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표기 지명의 등장과 변천 과정을 추적하였다.
표 1.
한라산・백록담 관련 한자 표기 지명의 변천
1) 漢拏山(한라산)과 漢羅山(한라산)
현재까지 사료에 보이는 ‘漢拏山’(한라산)의 첫 기록은 15세기 중반인 1454년(조선 단종 2)에 인쇄되어 반포된 『高麗史(고려사)』에 2건(『高麗』地理志 全羅道 耽羅縣; 列傳 崔瑩, 1374년)이 등장한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 그러나 『고려사』는 조선 전기의 관료 및 유학자들에 의해 개서(改書)한 혐의가 있어 고려시대의 어느 시기에 ‘漢拏山’을 기록했는지는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사). 그런데 15세기 초반인 1416년에 『太宗實錄(태종실록)』(태종 16년)에도 동일한 표기가 등장하고 있다(표 1의 ‘15세기’ 항목). 따라서 ‘漢拏山’의 경우, 고려 말(1374년)에서 조선 초(1416년)에 이르는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경에 성리학적 개혁 사상을 가진 신진사대부 및 유학자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어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라-’의 표기를 달리하는 ‘漢羅山’(한라산)은 조선이 건국(1392년)된 14세기 말, 『太祖實錄(태조실록)』에 기록된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시(『實錄』太祖 權近 詩, 1397년)에 처음 등장한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13) 이후 19세기 말~20세기 초에도 외국인(프랑스인, 일본인, 미국인) 및 개화기 지식인 등에 의해 기록된 ‘漢羅山’이 약 5건 정도 보인다(표 1). 이 지명은 도가적 의미를 지닌 ‘漢拏山’의 표기보다 더 원형의 음차 표기 형태를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漢羅山’의 ‘-羅-’(-라-)가 ‘新羅’(신라), ‘加羅’(가라), ‘斯羅’(사라), ‘徐羅’(서라) 등의 진한어 및 변한어에서 보이는 고대 지명 형태소의 표기 특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 형태소로서의 ‘羅’의 의미와 지역적 분포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장에 제시되었다.14)
그런데 15세기 중반까지도 현재 알려진 한라산의 지명 유래, 즉 ‘하늘의 은하수[漢]를 끌어당길[拏]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란 지명 인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표 1). 그 후 1530년에 간행된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全羅道 濟州牧 山川條)에 해당 지명 인식(“其曰漢拏者, 以雲漢可拏引也”)이 처음 등장한다(표 1의 ‘16세기’ 항목). 해당 기록이 “新增”(신증) 항목에 기록되지 않은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1481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그대로 전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이 기존의 『八道地理志(팔도지리지)』(1477년)에 『東文選(동문선)』의 시문을 보충하여 간행된 사실을 감안하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증동국여지승람),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는 산’이란 지명 인식이 등장한 하한 시기로 1477년을 설정할 수 있다.
특히 1465년의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기록과 1472년의 『成宗實錄(성종실록)』의 기록에도 이러한 지명 인식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표 1의 ‘15세기’ 항목), 우리말의 어순으로 표기 한자를 뜻풀이한 ‘漢拏山 =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란 지명 유래는 대략 1472~1477년 이후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전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충북 보은군-경북 상주시에 위치한 ‘俗離山’(세속을 떠나 있는 산 = 離俗山)의 사례처럼(김순배, 2017), 한문 문법에 충실한 한역 지명, 곧 ‘拏漢山’(나한산)으로 표기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기존의 음성 상태의 고유어 지명(*한라~*할라)을 도교적이고 유교적인 표기를 빌어 음차(音借) 표기했던 정황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비교 문헌 조사 결과, ‘漢拏山’이란 한자 지명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경에 성리학적 개혁 사상을 가진 신진사대부 및 유학자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어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漢羅山’은 조선 건국 직후인 14세기 말, 1397년에 권근(權近)에 의해 처음 기록된 점과 고대 지명 형태소의 표기 형태를 간직한 점으로 볼 때 도가적 의미를 지닌 ‘漢拏山’의 표기보다 더 원형의 음차 표기로 추정된다.
지명의 의미 및 인식과 관련하여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漢拏山)’이라는 지명 인식은 15세기 후반인 1472~1477년 이후 『팔도지리지』(1477)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漢羅山’과 ‘漢拏山’의 명명 주체 및 이유와 관련하여, 조선 초인 14세기 말(1397년)~15세기 중반(1451~1454)에 도가적인 소양을 지닌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 및 관료들에 의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한자, 즉 도가적 가치를 반영한 ‘漢拏’로 전부지명소 ‘*한라~*할라’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2) 大池(대지)와 白鹿潭(백록담)
‘白鹿潭’(백록담)은 『고려사』(1451~1454)에 “大池”(대지), 『世宗實錄地理志(세종실록지리지)』(1454)에 “大池”, 김종직의 『佔畢齋集(점필재집)』(1465)에 “靈湫水”(영추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大池”, 그리고 임제(林悌, 1549~1587)의 『南溟小乘(남명소승)』(1577~1578)에 “池”(지) 등으로 기록되고 있어, 16세기 후반까지도 고유한 명칭을 얻지 못한 채 다만 보통명사[大池(큰못), 池(못)]로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표 1). 다만 제주도에 ‘大池’(대지, 큰못)를 뜻하는 고유어 지명으로서 ‘한못’이 약 2건이 발견되고 있어 16세기 이전에 이미 고유명사로 지명화되었다가 이후 ‘백록담’이라는 경합 지명에 밀려 지명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15)
그 후 17세기 초반,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南槎錄(남사록)』(1601)에 “白鹿(潭)”이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이 기록에는 지명 어원이나 유래를 제시하지 않고 다만 연못의 명칭만을 제시하고 있다(표 1의 ‘17세기’ 항목). 이후 8년이 지난 17세기 초반인 1609~1610년에 김치(金緻, 1577~1625)의 「遊漢拏山記(유한라산기)」에 “白鹿潭”이라는 명칭과 함께 비로소 ‘신선이 백록(白鹿, 흰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諺傳群仙, 飮白鹿於此, 潭之得名”)이라는 지명 유래가 함께 기록되었다(표 1).
그런데 이보다 앞선 1439년에 관찬 사서인 『世宗實錄(세종실록)』에는 중국의 “白鹿洞書院”(백록동서원)과 “(白鹿洞)學規”(백록동학규)가 언급되어 있고(표 1의 ‘15세기’ 항목), 1542년에는 경상도 풍기(豊基) 군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중국의 백록동서원을 본떠 ‘白雲洞書院’(백운동서원)을 세웠다.16) 이 서원은 1550년(명종 5)에 당시 풍기 군수였던 이황(李滉, 1502~1571)의 요청에 의해 ‘紹修書院’(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아 국가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백록동서원; 국가유산포털, 소수서원).
따라서 고려(918~1392) 말 유교적 소양을 지닌 신진사대부들의 중앙정계 진출 및 불교(佛敎) 폐단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그리고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시행한 조선시대(1392~1910)의 신유학[新儒學, 朱子學, Neo-Confucianism), 즉 성리학(性理學)의 영향력 확대는 당시의 지명 변천에도 큰 영향을 미쳐 전국적으로 많은 유교(儒敎) 지명이 만들어졌다(김순배, 2010; Kim, 2012).17) 이 과정에서 중앙에서 제주도에 파견된 관원(官員)들이나 유배객[謫客], 그리고 제주 출신의 유학자들에 의해 많은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으로 바뀌거나 순수한 한역 지명이 다수 명명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 지배 계층의 정치사상적 특성을 감안하여 필자는 ‘*ᄇᆞᄅᆞ~*ᄇᆞ로(bVrV) > 白鹿(bVrV)’(V는 모음을 가리킴)으로 (유사) 음차 표기한 명명 주체로 1609~ 1610년에 제주판관(判官)을 역임했던 인물이자 ‘白鹿潭’(백록담)이라는 이름과 그 지명 유래를 처음 문헌 기록으로 남긴 김치(金緻, 1577~1625)라는 인물과 함께,18) 이보다 앞서 김정(金淨)이 제주도로 유배왔을 때(1520~1521년) 유일한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이자 제주향교의 명륜당에 시액(詩額)을 쓰고 앞서 제시한 주자학적 교육 지침인 ‘백록동규(白鹿洞規)’를 직접 쓴 인물로 언급됐던 김양필(金良弼, 생몰년 미상)이라는 인물을 주목하였다.
먼저 16세기 초반인 1520년 당시, ‘한라산’과 ‘두무악’이라는 산이름이 통용된 반면 아직 한라산 정상의 연못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을 아래의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제주도) 삼읍의 땅이 다 한라산 자락에 있어서 험하고 기름지지 않은 자갈밭 일색이다......또한 산꼭대기의 정상에는 반드시 가마솥같이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함몰되어 진흙 속의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봉우리마다 모두 그러한 까닭으로 그것을 ‘머리가 없는 산(頭無岳)’이라 하니 이야말로 더욱 괴이하다(三邑地皆漢挐山之麓。崎嶇磽确。 ......又山峯之頂。必凹如鑊。陷成泥潦。峯峯皆然。故謂之頭無岳。此尤可怪。).”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10)]
이와 같이 16세기 초반까지 한라산 정상의 연못 이름이 없던 상황에서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의 명명 주체로 16세기경에 제주도에서 태어나 살았던 유교적 지식인인 김양필(金良弼)이라는 인물이 의심된다. 즉 ‘백록담’ 이전의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되는 ‘*ᄇᆞᄅᆞ뭇~*ᄇᆞ로못’은 언제, 누구에 의해 ‘白鹿潭’(백록담)이라는 유교식 한자 지명으로 표기되었는가? 현존하는 문헌 기록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면 16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김양필이라는 인물이 주목된다.
김양필은 당시 기묘사화로 제주도에 유배를 왔던 김정(金淨, 1486~1521)의 기록에 남아 있다. 김정은 「濟州風土錄(제주풍토록)」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제주의 풍물을 기록하면서 제주 토착 지식인이었던 김양필을 언급하였다.19) 김양필은 제주도 최고(最古)의 읍지인 이원진(李元鎭, 1594~1665)의 『耽羅志(탐라지)』(1653) 인물조(人物條)에도 실려 있다. 1510년 생원시에 입격한 그는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던 당시 제주의 대표적 유학자였다. 또한 그는 제주향교 명륜당에 시액(詩額)을 쓰고 주자학적 교육 지침인 백록동규를 직접 쓴 인물로 1534년 제주목사(牧使)로 부임한 심연원의 핵심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김학수 등, 2023, 18-20).20)
따라서 필자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한라산 정상에 있는 연못, 즉 ‘백록담’의 제주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되는 ‘*ᄇᆞᄅᆞ뭇~*ᄇᆞ로못’에 대해 평소 익히 인식하고 있던 김양필이 자신이 지향하고 선호하는 도가적이고 유교적인 용어인 ‘白鹿’(백록)을 빌어 (유사) 음차 표기하여 만든 지명이 바로 ‘白鹿潭’인 것으로 추정한다.21) 이러한 추정을 유추한 근거로는 크게 두 가지, 즉 조선시대 지명 변천사에서 보이는 비슷한 음차 표기 사례, 그리고 사슴[鹿]이 많이 서식하는 제주도의 생물지리적인 특성이다.
첫째, 조선시대 지명 변천사에서는 이와 유사한 음차 표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지의 경우, ‘宿水寺(숙수사) (sVsV) → 紹修書院(소수서원) (sVsV)’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2-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사적) 영주 소수서원), ‘愁送臺(수송대) (sVsV) → 搜勝臺(수승대) (sVsV)’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9) (국가유산포털-(명승) 거창 수승대; 김순배, 2024, 20-22), ‘불뭇골 (bVmV) → 鳳舞洞(봉무동) (bVmV)’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갈산리) (한글학회, 1984, 213; 김순배, 2012, 220-222], 그리고 ‘무낫골~문압골(水出里) (mVnV) → 文學洞(문학동) (mVhV)’ (충남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사례와 ‘수문골 (sVmV) → 崇文洞(숭문동) (sVmV)’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김순배, 2012, 177-183; Kim, 2012) 등이 있다.
한편 제주도의 경우, ‘오롬>오름 → 五音(오음)・吾音(오음)・岳音(악음)・岳(악) → 吾老音(오로음)・兀音(올음)’ (오창명, 1997; 2024, 82-83), ‘낭끼오름 (nVkV) → 南擧峰(남거봉) (nVgV)’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954) (한글학회, 1984, 379), 그리고 ‘벵디~벵뒤 (bVdV) → 坪代(垈)(岱)(평대) (pVdV) / 쉐둔~쉐돈 (sVdV) → 牛屯(우둔) → 孝頓(효돈) → 孝敦(효돈) (hVdV)’ (제주도 서귀포시 효돈동) (오창명, 2024, 87-90) 등의 사례들이 있다.
둘째, 조선시대 사슴[鹿]이 많이 서식하는 제주도의 생물지리적인 특성이 이와 같은 지명 변천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로부터 제주도에는 호랑이, 곰과 같은 야생 맹수가 없어 사슴과 노루, 고라니 등이 많이 서식하였고 공물(貢物)로 사슴을 진상한 기록들이 다수 남아 있다.22) 즉 조선시대에 일상생활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슴[鹿]에 상서로운 의미를 반영하여(흰 사슴) ‘*ᄇᆞᄅᆞ~*ᄇᆞ로’를 ‘白鹿’(백록)으로 음차 표기한 정황을 유추할 수 있다(표 1 백록담의 ‘15세기 이전’ 항목).
이상의 비교 문헌 조사 결과, ‘白鹿潭’이라는 한자 지명은 17세기 초인 1601년에 김상헌(金尙憲)이 쓴 『남사록』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가적인 의미를 지닌 ‘신선이 백록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白鹿潭)’이라는 지명 인식은 8년 후인 1609~1610년에 제주판관을 지낸 김치(金緻)의 「유한라산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白鹿潭’의 명명 주체 및 이유와 관련하여 16세기 초(1520~1521)에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였던 김양필(金良弼)에 의해 유교적이고 도가적인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白鹿’(흰사슴)으로 전부지명소 ‘*ᄇᆞ로~*ᄇᆞᄅᆞ’를 (유사)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4. 고유어 지명의 추정: 할라산과 ᄇᆞ로못
본 장에서는 현재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의 어원을 추적하였다. 앞서 살펴본 생수궤 유적, 제주 사계리 해안의 사람 발자국 화석, 그리고 제주 고산리 유적 등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문자 기록이 있기 이전에도 제주도에는 후기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이래로 생존과 생계를 위한 오랜 인간의 음성 언어 활동과 지명 통용의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 지명사(地名史)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지명 변천 사례와 유사하게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 또한 표기 이전에 존재하던 음성 상태의 원초 지명으로서 제주의 고유어 지명이 있었을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고유어 지명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지명 변천의 과정을 조사하였다.
제주 고유어 지명을 포함하는 제주방언의 낯섬과 독특함은 일찍이 16세기 초반인 1520~1521년에 제주도로 유배온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의 기록을 통해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23)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제주방언으로 불리어온 제주도의 고유어 지명들은 주민들의 구전을 통해 그 음성적 특성이 현재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으며 문자 언어로 기록될 때는 대부분 한자(및 한역) 지명으로 표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행연구 결과, 제주도에 분포하는 지명들은 대부분 제주방언이 반영된 고유어로 말해지다가 한자를 빌려 쓰게 되면서 한자식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기존 제주 지명 자료집을 살펴보면, 제주 고유어로 부른 것이 많고 극히 일부가 한자식 지명이거나 혼종 지명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현재 제주 고유어 지명은 사용 빈도가 낮아지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고, 한자식 지명이나 혼종 지명은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오창명, 2024, 78-96).
한편 앞 장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신유학, 즉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표방한 중앙권력의 지방 관아와 향교(鄕校) 설치 등을 통해 유교와 도교의 문화와 이념이 제주도로 유입되면서 토착민이 부르던 고유한 신성 경관의 명칭과 고유어 지명 또한 변형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1702년 당시 제주도에 산재하던 본향당(本鄕堂)을 비롯한 신당(神堂)을 미신 타파를 명목으로 파괴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그림으로 묘사한 결과를 《耽羅巡歷圖(탐라순력도)》(<巾浦拜恩(건포배은)>에 남겼다(이형상, 2004). 그러나 무속(巫俗) 신앙에 대한 탄압과 불리한 역사적 상황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제주도 원주민들은 일반적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을 지금까지 전승해 오고 있다(현용준, 1989; 류제헌・김순배, 2025b, 41).24)
앞서 김정(金淨)이 경험했던 제주도 말의 특수성과 원형, 그리고 제주 고유어 지명의 일부를 진성기(1991)의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이하 『본풀이』)을 통해 그 실체를 일부 확인할 수 있다(강소전, 2018).25) 김정 이후 400여 년이 지난 20세기 중반경(1956년 3월~1963년 7월)에 구전되어 온 제주도 무속인들의 무가(巫歌) 가사, 즉 ‘본풀이’를 채록한 이 자료를 통해 제주도 방언의 언어적 특수성과 보편성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사전에는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의 어원을 추적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제주 고유어 지명 자료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표 2). 따라서 본 장에서는 『본풀이』 자료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아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과 관련된 제주 고유어 지명들을 추출하여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 이전에 존재했던 고유어 지명을 추적하였다.
표 2.
『본풀이』 등에 수록된 한라산・백록담 관련 한글 표기 지명
1) 한라산: *한라・*한로~*할라・*할로~*하라・*하로
표 2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풀이』 등의 자료에는 ‘한라산’의 전부지명소인 ‘한라’가 다양한 경로의 음운변화 결과 ‘*한라・*한로・*한락~*할라・*할로・*할루・*할락~*하라・*하로 (hVrV)’ 등으로 발견되고 있다.26) 필자는 지명 형태소(이하 지명소) 분석에 있어 ‘한라+산’(+는 형태소 경계), 즉 ‘*한라’를 기본형이자 원형으로 설정하였다. 이때 전부지명소인 ‘한라’를 다시 ‘한+라’로 분석한다면, ‘한+라’의 ‘한(漢)’은 ‘크다’(大)라는 뜻을, 그리고 ‘라(羅)’는 ‘땅’(地, 壤)을 의미하는 마한어(이후의 백제어), 그리고 진한어 및 변한어(이후의 신라어 및 가야어)의 지명소가 제주도에 전파되어 ‘한라산’[큰 땅의 산(오름)]이 명명된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먼저 전부지명소 ‘한-’과 관련하여, ‘한-’을 ‘크다[大]’와 유연성이 있는 어휘를 중심으로 그 유형화를 시도한 황금연(2013)은 고유어 전부지명소 ‘한-’이 ‘漢, 韓’(한) 등의 한자어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들은 단순히 음만 빌린 표기이므로 그 의미는 ‘크다’의 뜻을 갖는다고 분석하였다. 요컨대 ‘한-’형은 ‘크다’의 고어 ‘하-’의 관형사형으로 판단되며 이 형태는 한자어 ‘大’(대)에 직접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漢, 韓, 翰, 寒’ 등으로도 표기된다고 분석하였다. 이는 고유어 ‘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과 음(音)이 같은 한자어로 표기되면서, 고유어와 한자어로 적히는 여러 복수(複數)지명을 생성하기도 한다(황금연, 2013, 197).
‘크다’(大)라는 의미를 가지는 ‘漢’, ‘韓’(한)이나 ‘大’[대, 큰, 한]를 전부지명소로 가지는 지명으로 백제어의 경우, 현재 서울의 한강을 가리키는 ‘漢-水(한-수)’ [『삼국사기』(권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원년, B.C. 18년)]가 있으며, 비근한 예로 ‘한-밭’(大-田), ‘한-내’(漢-川, 大-川), ‘한-못’, ‘한-새미’(大-泉), ‘큰-내’(大-川), ‘큰-못’, ‘큰-밭’(大-田) 등이 한반도와 제주도에서 다수 발견된다.27)
한편 후부지명소 ‘라(羅)’는 ‘땅’(地, 壤)을 의미하는 한계어(韓系語), 즉 마한어, 진한어, 변한어로서 ‘-盧(로)’ 혹은 ‘-內(내)~奴(노)~那(나)’로도 표기된 사례가 많음이 도수희(1977; 2003; 2023)의 선행연구에서 규명되었다.28) 또한 제주도에서도 후부지명소 ‘라(羅)’가 ‘耽牟羅’(탐모라), ‘耽羅’(탐라), ‘乇羅’(탁라), ‘儋羅’(담라), ‘需李都羅’(유리도라), ‘我羅’(아라), ‘吾羅’(오라), ‘紗羅洞’(사라동), ‘沙羅峯’(사라봉), ‘沙羅岳(사라악)’, ‘月羅山’(월라산), ‘月羅峯’(월라봉), ‘馬羅島’(마라도) 등과 같이 발견되고 있다(표 1의 ‘15세기 이전’ 항목).29)
이상의 분석 결과, 필자는 제주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인 ‘漢拏山’과 ‘漢羅山’으로 변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큰 땅’[大地]을 의미하는 ‘*한라・*한로・*한락~*할라・*할로・*할루・*할락~*하라・*하로’ (hVrV)가 ‘漢羅・漢拏’ (hVrV)’로 음차 표기된 것으로 판단한다. 즉 ‘漢拏山’의 제주 고유어 지명은 ‘큰 땅에 있는 산(오름)’(大地山)을 뜻하는 ‘*한라산~*할라산~*하라산’~*하로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부지명소 ‘*한라~*할라’는 이후 조선 초인 14세기 말(1397년)~15세기 중반(1451~1454)에 도가적인 소양을 지닌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 및 관료들에 의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한자, 즉 도가적 가치를 반영한 ‘漢拏’로 음차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백록담: *ᄇᆞᄅᆞ뭇~*ᄇᆞ로못
표 2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풀이』 등의 자료에는 ‘백록담’의 전부지명소 및 제주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되는 ‘*ᄇᆞ름 (bVrV)’, ‘*ᄇᆞᄅᆞ뭇~*ᄇᆞ로못~*바람운’ 등이 수록되어 있다.30) 이때 전부지명소 ‘*ᄇᆞᄅᆞ~*ᄇᆞ름~바람’이 ‘바람[風]’과 함께 ‘뱀[蛇]’의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다.31) 그러나 본 고에서는 ‘바람[風]’에 초점을 두어 ‘백록담’의 제주 고유어 지명이 ‘바람못’[風池・風潭・風澤]을 의미하는 ‘*ᄇᆞ로못~*ᄇᆞᄅᆞ뭇’이었을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제주도의 민간 신앙에는 오래전부터 바람[風]과 뱀[蛇]을 신격화[風神, 蛇神]한 흔적이 아래의 인용문과 같이 발견된다(현용준・현승환, 1995; 문무병, 2005).32)
“맹렬한 바람과 소나기같은 괴상한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가 하면 심지어 무덥고 답답하기까지 하다(盲風怪雨。發作無時。蒸濕沸鬱。)......이곳 풍속이 뱀을 신처럼 매우 받들어 모신다. 행여 뱀이 보이면 사람들은 바로 술을 드리며 주문을 외곤 하는데, 감히 몰아내거나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俗甚忌蛇。奉以爲神。見卽呪酒。不敢驅殺。).” [김정, 『冲庵集』 卷4, 「濟州風土錄」(1520.8-1521.10)]
제주도 사람들은 음력 2월경에 불어오는 바람의 신을 ‘영등신’이라 하여 ‘칠머리당’(제주시 건입동 407-3) 등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현재까지 영등굿을 시행해 오고 있다(한유진, 2009, 13-14; 강소전, 2018, 23-26).33)표 2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풀이』등에 자주 등장하는 ‘ᄇᆞ름’(bVrV)은 ‘바람’(風)을 의미하는 제주방언으로서 ‘*ᄇᆞ름웃드~*ᄇᆞ름웃뜨 [風上都, 風位都(바람位都), 風神都]’, ‘*ᄇᆞ름알~*ᄇᆞ름알또 [風下都(바람아랫都)]’, ‘*ᄇᆞ름목, *ᄇᆞ름궁기 [*ᄇᆞ름=바람(風)의 의미]’, 그리고 ‘*ᄇᆞ름운님 [바람운님(神名), 風雲位(바람운위)]’ 등과 같이 마을을 수호하는 당신(堂神)이자 신령스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이때 ‘*ᄇᆞᄅᆞ~*ᄇᆞ로~*ᄇᆞ름 + 못(+ 님)’이라는 합성명사 및 파생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여러 경로의 음운 변화가 일어났고, 그중 일부가 ‘*ᄇᆞᄅᆞ뭇~*ᄇᆞ로못~*바람운’으로 실현되어 현재에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귀포시 남원읍 예촌리 본향신인 ‘백관님’과 보목리 본향신인 ‘ᄇᆞᄅᆞ뭇님’: 백관님은 한라산, ᄇᆞᄅᆞ뭇님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솟아났다”(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한국명승학회, 2022, 131), “예촌 보목, 효돈, 토평 본향당 본풀이: 로못님은 백록담에서 내려오다”(제주연구원, 2017, 118-119), 그리고 “서귀본향당 본푸리: 제주 땅 설매국에 일문관 바람운님이 솟아났다”(제주연구원, 2017, 87-88)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한라산 백록담을 본향신이자 당신인 ‘ᄇᆞᄅᆞ뭇님’, ‘ᄇᆞ로못님’, ‘바람운님’이 태어난 신성한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생계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어 왔던 바람[風]을 영험한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 왔고, 그 결과 많은 당신들이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한라산 백록담에 ‘바람못’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 즉 ‘*ᄇᆞᄅᆞ뭇~*ᄇᆞ로못~*바람운’이라는 제주 고유어 지명을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이 명명되기 이전, 백록담이라는 화구호를 지칭하는 고유어 지명으로 ‘ᄇᆞᄅᆞ뭇’, ‘ᄇᆞ로못’, ‘바람운’ 등이 있었고, 이 장소를 신령하고 신성하게 여긴 제주도 원주민들에 의해 존칭 접미사 ‘-님’이 붙어 하나의 신격(神格)으로 존숭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후 16세기 초반경에 ‘白鹿潭’이라는 한자 지명이 새롭게 등장하여 한라산 화구호의 이름으로 대체되면서 현재는 본향신 및 당신의 호칭으로 무가 본풀이의 가사 속에 잔존해 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후부지명소 ‘못’(池)은 사전적인 의미로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네이버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가리키는데, 필자는 『본풀이』 등에서는 ‘*못~*뭇’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못~*뭇’의 경우, 고문헌 및 고지도 등의 기록에는 ‘潭(담)・澤(택)・泓(홍)’ 등으로 훈차(訓借) 표기되어 각각 ‘白鹿潭・白鹿澤・白鹿泓’ 등으로 발견되고 있다(표 1의 ‘17세기’ 및 ‘18세기’ 항목).
이상의 분석 결과, 제주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인 ‘白鹿潭’으로 변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바람’(風)을 뜻하는 ‘*ᄇᆞᄅᆞ・*ᄇᆞ로’(bVrV)가 음차 표기 과정을 통해 ‘白鹿’(bVrV)으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白鹿潭’의 제주 고유어 지명은 ‘바람못’(風池・風潭・風澤)을 의미하는 ‘*ᄇᆞ로못~*ᄇᆞᄅᆞ뭇’이었으며, 전부지명소 ‘*ᄇᆞ로~*ᄇᆞᄅᆞ’는 이후 16세기 초(1520~1521)에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였던 김양필(金良弼)에 의해 유교적이고 도가적인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반영하는 ‘白鹿’(흰사슴)으로 음차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5. 결론
한국의 지명이 변천해 온 초기 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음성 상태의 고유어 지명이 한자를 이용하여 음차[음독] 표기된 사례가 일반적이다(도수희, 1999, 146-147; 김순배, 2013, 11-12). 그런데 현재 공식 지명인 ‘한라산(漢拏山)’과 ‘백록담(白鹿潭)’의 경우, 지명의 어원과 의미를 각각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과 ‘신선이 백록(흰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으로 정의하여 통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지명들이 제주도의 고유어 지명을 훈차[훈독] 표기한 한자 지명이거나, 당시 새롭게 명명한 한역(漢譯) 지명인 것으로 오해한 데서 기인한다.
필자는 한국 지명사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지명 변천 사례와 같이 ‘한라산’과 ‘백록담’이라는 한자 지명 또한 표기 이전에 존재하던 음성 상태의 원초 지명으로서 제주의 고유어 지명이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그들이 선호하는 생각과 가치를 반영하여 이를 음차 표기한 지명일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여 지명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지명 변천의 과정을 조사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라산과 백록담의 지명 어원이 제주 고유어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을 설정하여 한자 지명으로 변천해 온 명명의 시기, 주체, 이유, 그리고 본래의 고유어 지명을 역사지리적이고 지명언어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그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한반도 및 중국과의 해상 교류와 그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삼한, 그리고 백제, 가야, 신라를 통한 한계(韓系) 지명어와 한자를 이용한 차자 표기 방식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漢拏山’이란 한자 지명은 고려 말(1374년)에서 조선 초(1416년)에 이르는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경에 성리학적 개혁 사상을 가진 신진사대부 및 유학자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어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漢羅山’은 14세기 말 조선 건국 직후인 1397년에 권근(權近)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고 도가적 의미를 지닌 ‘漢拏山’의 표기보다 더 원형의 음차 표기 형태, 즉 고대 지명 형태소의 특성을 간직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지명의 의미 및 인식과 관련하여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漢拏山)’이라는 지명 인식은 15세기 후반인 1472~1477년 이후 『팔도지리지』(1477)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白鹿潭’의 경우, 17세기 초인 1601년에 김상헌(金尙憲)이 쓴 『남사록』에 처음 등장한다. 도가적인 의미를 지닌 ‘신선이 백록에게 물을 마시게 한 못(白鹿潭)’이라는 지명 인식은 8년 후인 1609~1610년에 제주판관을 지낸 김치(金緻)의 「유한라산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셋째, 제주 고유어 지명이 한자 지명인 ‘漢拏山’과 ‘白鹿潭’으로 변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각각 ‘큰 땅’[大地]을 의미하는 ‘*한라・*한로・*한락~*할라・*할로・*할루・*할락~*하라・*하로(hVrV) > 漢羅・漢拏(hVrV)’ (음차 표기)와 ‘바람’(風)을 뜻하는 ‘*ᄇᆞᄅᆞ・*ᄇᆞ로(bVrV) > 白鹿(bVrV)’ (음차 표기)로 추정하였다. 즉 ‘漢拏山’의 제주 고유어 지명은 ‘큰 땅에 있는 산(오름)’(大地山)을 뜻하는 ‘*한라산~*할라산~*하라산’~*하로산’이고, ‘白鹿潭’의 고유어 지명은 ‘바람못’(風池・風潭・風澤)을 의미하는 ‘*ᄇᆞ로못~*ᄇᆞᄅᆞ뭇’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漢羅山’과 ‘漢拏山’의 경우, 조선 초인 14세기 말(1397년)~15세기 중반(1451~1454)에 도가적인 소양을 지닌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 및 관료들에 의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한자, 즉 도가적 가치를 반영한 ‘漢拏’로 전부지명소 ‘*한라~*할라’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白鹿潭’의 경우, 16세기 초(1520~1521)에 제주도 출신의 유학자였던 김양필(金良弼)에 의해 유교적이고 도가적인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白鹿’(흰사슴)으로 전부지명소 ‘*ᄇᆞ로~*ᄇᆞᄅᆞ’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라산’과 ‘백록담’ 지명의 제주 고유어 지명, 그리고 명명(naming)과 개명(renaming)의 과정을 연역하고 귀납한 본 고는 몇 가지 연구의 한계와 과제를 안고 있다. 즉 필자가 확인하지 못한 누락된 지명 자료가 있을 수 있으며, 새로운 관련 고지명이 발굴되면 본 고에서 설정한 가설이 수정되거나 부정될 수 있다. 또한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한 ‘*한라~*할라’[大地], 그리고 ‘*ᄇᆞ로~*ᄇᆞᄅᆞ’[風]의 의미와 관련하여 논의에서 제외된 다른 가설들에 대한 면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