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이성애규범성의 시공간적 구성
1)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
2) 집의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
3. 사례 분석: 공공임대주택과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
1) 공공임대주택 정책 대상의 전환
2) 공공임대주택의 차등적 적용
3) 주거복지로드맵: 시간화된 공간, 공간화된 시간
4. 결론
1. 서론
2023년 한국의 출생률은 0.73을 기록했다. 출생률이 인구 유지에 필요한 최소 합계출산율보다 낮은 현상을 의미하는 저출산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으며 2005년 당시 역대 최저치인 1.08을 기록하며 국가 차원의 심각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저출산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국가적 난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범부처적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김영미, 2018; 배은경, 2010; 신경아, 2010). 약 15년간 280조 원을 투입한 저출산 정책의 예산 중 약 3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분야(대한민국 정부, 2006-2022)는 출산율 반등을 목적으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정책을 대표적으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저출산 정책으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최우선시하는가? 공공임대주택이 지닌 공간적 특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활용되는가?
1989년 처음으로 공급된 공공임대주택은 당시 폭등하는 주택가격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주거 취약계층에게 제공한 영구임대주택으로 시작되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0). 이후 국민임대주택 도입과 100만 호 공급계획 수립과 같은 대표적인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목적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주거안정이었다. 하지만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로 부상하자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의 목적을 전향했다. 청년, 신혼부부, 다자녀부부와 같이 기존의 취약 집단과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집단이 임대주택의 수혜 대상이 된 이유는 저출산 해결을 정치적 우선 과제로 삼았기 때문이며 주택이라는 값비싼 재화가 결혼과 출산을 방해한다는 인식에서 발현된다. 그렇다면 결혼, 출산, 주택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가? 지금은 폐지된 호주제 ‘제826조(부부간의 의무) 제3항 처(妻)는 부(夫)의 가(家)에 입적한다’에서도 알 수 있듯 여성이 남성의 가에 입적함은 단순히 남성 파트너의 가계(家)에 포함되는 것을 넘어 남성의 공간인 집(家)에 거주함을 의미한다. 부부관계 형성의 조건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이며 집이라는 공간에 함께 거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가는 것이라는 전제는 사회의 관습과 통념으로 치부될 뿐 그 작동 기제에 대한 학문적 탐색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우리의 시공간 개념은 강렬하고 휘발적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구조화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며 다만 우리가 시간을 자연적인 진행으로 경험하기에 그 구성과 가치 및 의미의 부여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구동회・박영민(역), 1995). 즉 시간에 대한 정형화된 반응은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반응을 생산해 내고 이는 구성된 시간 감각을 우리가 자연적으로 여기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집은 과거 부모에 의해 태어나고 성장해 온 시공간적 감각을 형성한 공간이기에 집은 곧‘가정’이란 개념은 생애과정에서 지속된다(Bowlby et al., 1997). 즉 집이라는 공간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으로 형성되는 가족이 세대의 반복이라는 생애주기의 순환과 결합하는 시공간적인 장소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생애주기에 따른 재생산성은 포착하였으나 가족의 구성에 기본적인 토대인 집이라는 물질적・관념적 시공간의 역할을 간과하는 양상을 보이거나(정민우・이나영, 2011) 이성애 가족구조에서 벗어난 비혼 청년 여성의 새로운 집 전유에 집중되는 한계를 보였다(신유진, 2021). 따라서 본 연구는 너무나 당연하여 지금까지 간과되어 온 이성애 가족의 생애주기(결혼-출산)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집이라는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출생률 제고라는 국가의 생명통치 프로젝트로써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를 대표적인 주거 공급 정책인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변천 과정을 통해 포착해 보고자 한다.
2. 이성애규범성의 시공간적 구성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이란 이성애(heterosexuality)를 일반적인 섹슈얼리티로 상정하고 이에 특권을 부여하는 인식과 제도적 틀 뿐만 아니라 실천적 지향으로 발현되는 것을 뜻한다(Warner, 1991). 즉 이성애규범성은 이성과의 사랑, 성관계, 재생산이 사회적 규범에 부합하는 규범적 이성애에 관한 것이며 개인과 사회에서 기본적인 관용구와도 같이 작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상태로 위치하는 특성을 지닌다(Berlant and Warner, 1998). 이러한 이성애규범성은 가족의 구성을 통한 국가의 형성이라는 근대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하기에 이성애가족을 형성하는 시간의 선형성을 기본적으로 내재하는 특징을 보인다. 결혼과 가족의 탄생이라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애주기는 기혼자 여성의 출산가능한 몸이라는 생물학적인 시간인 선형적인 시간성을 내포하며 아이의 출산을 통해 규범적이고 올바른 미래가 반복되길 희망하는 재생산적 미래주의로 이어진다(Edelman, 2004; Halberstam, 2005). 이처럼 이성애규범성에 내재한 선형적 시간을 해석하는 연구들은 1980년대부터 AIDS로 인한 게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존의 시간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Dinshaw et al, 2007; Edelman, 2004; Freeman, 2007). 그러나 이성애규범성의 선형적 시간성에 대한 논의는 공간적 관점과 결합하지 못하므로 시간성의 구체적 작동 및 내적 다양성에 대한 통찰의 한계를 노정해 왔다. 이러한 한계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결합, 즉 이성애규범성의 시-공간적 구성에 대한 종합적 탐색을 요구하며 이는 페미니스트, 퀴어 지리학에서 제기된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찰을 접목함으로써 일부 보완될 수 있다. 20세기 말 공간적 전환 이후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을 중심으로 한 비판지리학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또는 텅 빈 수용기(container)로 치부되었던 공간이 사회적 구성물로 인식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 주체의 경험적, 역사적 인식에 필연적으로 시공간이 뒤얽혀 상호작용함을 주장한다(정현주(역), 2015).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의 상호작용을 인식해야 하며 사회현상은 단순히 공간에 위치하고 조직되는 것이 아닌 시간을 통해 서로 다른 장소와 사회적 관계들을 연결하는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흐름에 의해 구성된다(구동회・박영민(역), 1995, 278). 즉 공간과 시간은 각각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의 집합체가 사회적 삶을 상상하고 생산하는 것이다(이무용(역), 1997, 58). 그러나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들의 시공간적 관점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데이비드 하비, 에드워드 소자와 같은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들은 섹슈얼리티를 유희적인 몸의 정치로 규정하여 분석 범주에서 적극적으로 배제하였기 때문이다(Halberstam, 2005). 섹슈얼리티는 몸을 통해 발화되며 그 몸이 배태된 시간과 공간에 그 존재 방식을 투사한다. 이러한 몸은 정치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몸의 발현인 섹슈얼리티는 성적 정체성인 동시에 일종의 권력관계로 작동하며 생산과 반복적 수행을 통해 시공간을 성애화한다. 몸과 다른 몸은 관계를 통해 시공간을 성애화하며 성애화된 시공간은 동시에 몸을 이에 알맞은 체현물(body)로 변형한다. 그러나 몸과 섹슈얼리티는 이성, 공적영역과 반대되는 감성적인 것이자 사적영역으로 치부되기에(여성과공간연구회(역), 2010; 정현주(역), 2011) 섹슈얼리티의 시공간적 구성에 대한 인식과 연구는 주류 지리학에서 여전히 간과되어 왔다. 본 연구는 이성애규범성이라는 시간성을 내포한 개념에 공간, 몸, 섹슈얼리티를 결합하여 몸과 시공간, 이성애규범성이 어떻게 상호 구성되며 작동되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1)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
본 장에서는 몸-시공간-규범의 관계를 통시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이성애규범성이 몸을 경유하여 시공간의 규범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과 메를로퐁티(Merleau-Ponty)는 몸의 지평을 퇴적된 역사로 묘사한다(류의근(역), 2002). 어떠한 행위는 독창적인 것이 아닌 역사의 효과로, 몸짓의 반복 속에서 발생하는 역사는 몸에 특정한 지향성을 새긴다. 이성애규범성은 이성애, 이성애 결혼, 일부일처제, 출산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는 성애 구조를 유지하고 촉진하며, 이성애 행위는 다수에 의해 반복되기에 문화적으로 유지되는 지속성을 가지며 동시에 몸에 대한 규범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몸은 이성애라는 지향과 규범, 실천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시간과 공간을 형성한다. 이는 하나의 축으로서의 몸이 시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이자 몸의 흔적과 표시를 기록하는 행위로, 이성애규범성은 몸의 움직임을 통하여 시공간에 침윤된다.
이성애규범성은 과거-현재-미래가 선형적으로 반복된다는 근대적 관점에 근거하여 이성애를 정상적이고 올바른 시간으로 자연화한다. 몸의 움직임은 과거와 미래라는 현재의 궤적을 내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생애주기는 출생, 결혼, 출산, 죽음과 같은 순차적인 순서와 방식을 몸의 배치를 통해 지시함으로써 선형적이고 반복적인 이성애적 도열을 그려낸다. 그렇기에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은 기혼자들의 일정에 지배되며 이성애 부부의 출산은 가족이 수반한 가치나 부 등을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역할로 간주되며 미래 공동체의 안녕과 직결된 지향점으로 인식된다(Edelman, 2004; Halberstam, 2005). 이러한 시간의 선형성은 세대의 계승과 재생산이라는 몸의 선형적인 시간적 관계에서 규범적으로 그려지며 특정 경로를 따르며 특정 종류의 삶을 재현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기능한다(Ahmed, 2006, 17).
또한 이성애적 욕망의 반복적인 수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응고되어 일반적인 공간이 이성애적 공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Valentine, 1996). 공공공간에서 이성애 커플의 가벼운 접촉은 허용되지만 퀴어한 몸들이 드러나는 퍼레이드는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한다(김현철, 2015). 또한 집과 직장에서 이성애가 아닌 섹슈얼리티를 노출하면 이에 따른 불이익이 따르며 타국으로의 이민에 이성애 결혼만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퀴어들은 위장결혼을 수행하기도 한다(김현철 등(역), 2018, 16-17).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은 성애화되어 있으며 각 공간에 알맞은 몸을 포용하고 배제하는 규율을 내재한다. 이처럼 이성애규범성은 이성애의 특권과 배타성을 공간에 이분법으로 그려낸다. 몸은 공간에 침윤된다는 점에서 ‘여기’와 ‘저기’를 만들어 내며 결혼, 출산과 같이 이성애규범적인 생애주기를 체화한 몸을 포용하고 여기에서 벗어난 몸을 배제한다(Bell et al., 1994; Bell and Valentine 1995; Binnie 1997; Hubbard, 2001; Valentine, 1993). 미국의 경우, 이성애규범성은 안락하고 안전한 교외 지역을 재생산이 가능한 이성애 가족의 장소로 상정하며 이에 반해 불안정하고 위험한 도심에 비정상의 몸, 퀴어를 위치시킨다. 이는 이상화된 이성애 핵가족의 생활을 지원하는 교외와 부도덕하고 비규범적인 성생활에 적절한 장소로 도심을 규정짓는 이분법을 생산하며 이를 구현하는 공간적 분할을 통해 도심-교외의 이분법을 강화한다(Halberstam, 2005; Hubbard, 2008). 이러한 이성애규범성의 시공간적 특성은 정상성이라는 이름하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행복에 부착된다. 이성애 핵가족은 이상적인 사회 구성체로 인식되며 이를 집단적 가정 상상의 일부로 상정하기에 이성애 가족의 관행과 시공간적 관계는 정상성, 소속감, 친밀감 및 행복의 척도로 활용된다(Cox and Buchli, 2017, 16). 이를 순순히 따를 수 있음은 이성애가 내재한 시공간이 만들어 내는 세계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시우(역), 2023, 318). 성애화된 규범을 살아낼 수 있는 이들은 생애주기의 이행과 이성애 가족의 공간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감각은 개인의 욕망을 일괄적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지향시키는 동일성의 원칙에 따라 이성애규범적인 시공간과 이에 순응하는 몸을 하나의 공동선이자 성취해야 할 목표로 위치시킨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공고히 하는 것이 이성애규범성의 진정한 목적일까? 이성애규범적 미래주의는 가족이 창출하는 재생산을 사적영역으로 은폐하고, 노동인구의 창출을 통해 자본의 축적을 유도하는 정치경제학적 논리를 그 심급으로 한다(Berlant and Warner, 1998). 생애주기의 선형성과 출산을 통해 규범적인 세대를 재생산하는 순환성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서로를 측정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성애규범적인 시공간을 만들어 간다.
이와 같이 이성애규범성은 몸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 여기와 저기,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연결고리를 설정한다. 그렇기에 이성애적인 몸과 시공간은 이미 서로 속해있는 것이며 서로에 의해 계속해서 덧대어지며 시공간에 특정한 몸을 허락하고 제약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발전한다. 메를로퐁티는 시공간이 그려진 몸은 과거와 미래, 기억과 상상을 식별할 수 있는 장을 구축하여 이에 알맞은 특정한 사물이 나타나는 전경과 지평선의 구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류의근(역), 2002). 이러한 관점에서 이성애적인 시공간은 이성애에 알맞은 몸의 환경을 형성하고, 이를 강화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작동한다고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성애규범성과 시공간, 몸의 상호작용을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이성애적인 몸의 실천이 곧 성애화된 시공간을 만들어 내고, 동시에 이러한 시공간은 몸을 통제하고 제약하는 하나의 규범으로서 작용한다.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은 이성애의 정상적 위치가 은폐된 시공간에서 은밀한 규범으로 작동하며 몸-시공간-규범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어진다.
2) 집의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
앞서 이성애규범성이 몸을 경유하여 시공간을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면, 본 장에서는 집이라는 공간이 시간과 몸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집은 어린 시절의 포근함과 친밀함의 장소이며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치유 받는 피난처이자 가정의 장소, 어머니의 장소이자 모성의 공간으로 묘사됐다(곽광수(역), 2003, 132; 구동회・심승희(역), 1995). 하지만 제2페미니즘 물결의 부흥에 발맞추어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기존의 집의 의미에 내재된 여성성과 가부장제를 폭로한다(여성과공간연구회(역), 2010; 정현주(역), 2011). 즉 가부장제하에서 집은 남성적 문명(culture)의 반대항인 자연(nature)과 동일시된 여성적 공간으로, 돌봄과 양육이 가득한 안락한 장소로 재현되어 왔다(정현주(역), 2011, 144). 이와 같이 집은 가치중립적이거나 표백된 공간이 아닌 이성애 가족의 형성이라는 이성애규범성이 대표적으로 내재한 장소이다. 집은 이성애규범성에 적합한 섹슈얼리티의 몸이 구성하고 점유하는 공간이자 이성애를 표준화하기 위한 사회정치적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다(Browne, 2006; Cook, 2014).
이성애규범성이 내재된 집이라는 공간은 몸과 시간이 공간에 존재하는 방식을 창출한다. 이성애를 수행하며 구성되는 집이라는 장소의 기억은 가정의 경험이라는 시간의 누적으로 형성되나 그 기억은 시간을 휘발시킨 채 공간에 응집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장소가 지닌 상징과 의미는 몸의 특정한 경험을 유도하며 이를 시간의 차원으로 재현한다. 가족을 꾸리는 것,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과 동일시되는 집에 대한 공간적 상상은 하나의 지평선으로서 지향점이자 미래의 방향성으로 기능하며 이성애규범적인 시간 도열의 이행을 유도한다. 이처럼 가족의 형성이라는 선형적인 시간과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세대가 반복된다는 순환적인 시간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상호 구성되고 강화된다. 가족의 공간, 양육의 장소라는 집의 대표적인 특징은 선형적인 동시에 순환적인 이성애 가족의 시간이 실현되기 위해 집이라는 공간이 물리적・관념적으로 필수적임을 입증한다. 이와 동시에 집이라는 공간에서 수행해야 할 행위와 이에 따른 시간표를 전제하고 자연스럽게 따라야 할 시공간적 규범의 장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집이라는 공간은 이성애규범성이 내재한 시간성을 이행하고 이를 살아낼 수 있는 몸을 집을 점유할 수 있는 존재로 호명한다. 누군가에게 몸이 호명됨은 늘 그 선택에 선행하는 규범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지시에 응답해야 함을 의미한다(조현준(역), 2015, 19). 어떠한 공간에 적합한 몸, 규범에 순응하는 몸은 그 공간을 편안하게 살아낸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공간에 알맞은 몸의 형태가 이미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이성애자는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특정한 모양이 새겨진 이성애규범적인 공간을 편안하게 살아내기에 집이라는 공간에 알맞은 존재가 된다. 이처럼 이성애를 수행할 것이라 호명된 몸들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을 이행해야 한다는 환상적인 정체성의 약속을 부여받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에서 벗어난 자들은 이성애적 서사에 부응하지 못한 존재로 치부되기에 집이라는 공간에 선제적으로 선택되지도, 선택될 수도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이 집은 물리적・상징적으로 특정한 몸을 고정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시간적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시공간의 다양성을 이성애규범적인 통일성으로 종속시키려는 시도는 분열의 요소와 가상의 경계를 필연적으로 양산한다.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라는 시공간과 몸의 동질적인 실천에 대한 욕망은 하나의 동화주의로 이를 실현하려는 시도를 통해 차등적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낸다. 몸의 움직임을 통해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시공간을 가족의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한 거리를 기준으로 몇몇 단면으로 절단하여 규정하는 행위는 규범의 특질인 위계를 구성한다. 이상과 가깝고 먼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거리이며 이 거리는 실제적인 길이라는 객관적 차원뿐만 아니라 시공간적 감각을 내포한다. 몸의 위치와 움직임으로 달라지는 거리는 상대적이며 동시에 대상에 다가가는 시간과 공간으로 인지된다. 우리가 행복을 바라볼 때 그것이 작아 보인다면 시공간적으로 행복과 멀리 있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이, 이성애규범적인 집이라는 이상적 공간과의 거리를 바탕으로 이에 걸맞은 이성애규범성을 수행할 수 있는 몸과 시간은 단계적으로 위계 지어진다. 우리가 생애주기라고 상정하는 청년, 결혼, 신혼부부, 출산과 같은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의 결절에 존재하는 몸은 행복한 가족이라는 대본이 설정한 시간의 순차적 단계에 위치하며, 그렇기에 이에 적합한 공간도 차등적으로 연결 지어진다. 일반적으로 청년, 신혼부부, 다자녀가구에게 어울리는 상상의 공간이 다른 것은 이러한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범국가적으로 주거사다리(housing ladder)라고 명명되는 주택의 상향 이동이 이성애 가족의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한다는 사실 역시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 지닌 정상성의 위치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시공간을 생애주기와 같은 시간적 단면으로 환원하는 것은 공간의 가능성을 협소하게 만든다. 시간의 기준은 생물학적 나이라는 숫자로 인식되는 생애주기를 측정하고 이에 따른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측정되고 재현될 수 없는 시간의 잔여, 가령 1이 2로 넘어가는 그 사이의 시간들도 공간으로 흡수된다(정기헌(역), 2013, 53). 시간의 분절된 단위로 설명할 수 없는 틈새의 가능성을 흡수한 집이라는 공간은 재현된 시간과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차이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생애주기의 도열에서 배제된 호명되지 않은 몸들이 전유한 공간은 변화의 가능성을 응축한다. 따라서 집은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여기에서 탈주할 수 있는 균열을 만들어 내는 차이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시간은 언제나 재현에 저항하며 표상과 경험 사이에는 필연적인 간극과 불확실성이 존재하나 그 찰나를 포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공간의 물질성은 시간의 듬성듬성한 재현을 넘어 흐르는 시간, 더 나아가 시공간의 구조와 균열, 주름을 드러낸다. 시간은 공간에 종속됨으로써 그 모습의 일부를 드러낼 수 있으며(정기헌(역), 2013; 정현주(역), 2015) 공간은 규범과 표상으로 대표되는 시공간과 여기에서 저항하는 시공간, 혹은 그 이상의 가능성을 잠재하게 된다.
3. 사례 분석: 공공임대주택과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
본 연구는 한국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변화 과정을 사례로 채택하여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 어떻게 공공주택 공급 정책에서 작동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산아제한정책이 저출생 정책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2023년까지로 상정하였다. 분석대상으로는 정부에서 발표한 공공임대주택 정책과 관련된 담론들을 파헤치기 위해 국회 회의록, 관련 보고서, 신문기사 등을 포함하였다. 공공임대주택의 수혜대상 및 담론이 미세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2004년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의 대상을 배치하였다.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공공임대주택을 선택한 이유는 국가가 제공하는 주택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권력의 경합이 시공간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족은 국가를 유지시키는 매개자이자 상징으로, 국가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성애적 사생활을 이상적인 세계로 구축하는 동시에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특권을 제공하고, 여기서 벗어난 자를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국가와 이성애를 보호한다(Berlant and Warner, 1998). 국가가 제공하는 건축물에는 규범적인 핵가족의 요구와 열망이 투영되어 있으며 특히 국가가 공급하는 주택은 재생산적인 결합을 주택권과 연결해 왔다(Cox and Buchli, 2017, 35). 실제로 호주의 경우, 주택지원법(Housing Assistance Act 1978), 연방주택저축보조금법(Commonwealth 1964)을 통해 이성애 핵가족이 주택 소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안을 입안했으며 싱가포르 또한 이성애규범적 가족 구성에 더 많은 공공주택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Gorman-Murray, 2007; Oswin, 2010). 하지만 선행연구들은 국가가 공급하는 주택에 녹아있는 이성애규범성의 공간성이 어떠한 몸에게 혜택을 부여하고 배척하는지에 집중하고 있기에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이 몸과 공간을 경유하여 어떻게 발현되고 상호 구성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한계점을 보인다. 다수의 국가에서 출생률 상승에 활용되었던 주택정책은 이성애 가족의 생애주기를 중심으로 차등적인 혜택을 제공하였으나 생애주기라는 시간성과 공간을 결합한 연구는 매우 적은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재 한국에서 청년, 신혼부부, 다자녀가구로 생애주기에 따라 분류하여 적용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사례로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1) 공공임대주택 정책 대상의 전환
전체적으로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전반적으로 일종의 사회문화라고 할까, 사회풍토가 또 그런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범정부 차원 그리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이런 획기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획기적인 인센티브가 부여되는 그런 대책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242회 국회본회의, 이해찬 전 국무총리, 2005.02.17.)
2004년 당시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시행되었던 정책은 아동수당지급제, 육아휴직 평균임금 확대 등이었으며, 3자녀 이상 저소득층 가구주에게 공공부문 취업 및 승진 시 인센티브 부여, 이혼 전 상담 법제화 등 획기적이지만 사회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책들도 포함했다. 이는 출산과 결혼을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제안되었던 정책으로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의 저출산 대책추진기획단은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부처별로 출산장려책을 취합하고 타당성과 효과를 논의하였다(문화일보, 2004.3.26.). 그 중 2005년 당시 다자녀 가구에 청약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책이 논의되면서 저출산 풍토 전환 조치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후 국민임대주택 단지 내 보육시설 590개 신축, 3자녀 무주택 가구 국민임대주택 입주권 부여, 3자녀 가구 주택대출금리 우대, 3자녀 가구 주택 청약가점제 혜택 부여 등 3자녀 가구에 주택 관련 경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들이 시행되었으나(서울경제, 2005.11. 30; SBS, 2006.1.30, 2006.2.8.), 자녀를 이미 출산한 가족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들은 미혼남녀의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의 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미혼남성 중 34%가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고 있다는 통계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5)와 더불어 200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는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경제적 부담, 그중에서도 주택비 부담을 명확하게 도출하며 주택이라는 공간이 원활하게 제공된다면 결혼으로의 이행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주목을 받게 된다(머니투데이, 2006. 3.22.). 이는 집이라는 공간에 내재해 있는 가족의 형성이라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결혼이라는 시간의 이행에 집이라는 공간의 마련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생애주기의 이행, 즉 몸의 실천이 가능할 수 있다는 규범을 보여준다. 결혼, 출산과 같은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행되어야 할 성관계, 돌봄과 같은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간인 집은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의 이행을 돕는 역할로 상정된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수도권과 광역시에 12만 채의 신혼부부 주택공급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다(표 1). 대통령 공약집 부동산 분야의 7장 중 3장을 차지하는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 공급에 관하여 이명박 대통령 후보자는 “20평짜리지만 내 집이 생길 때마다 애 놔서 네 명 됐다”(한겨레, 2007. 8.23.)라는 자기 경험을 언급하며 주택이라는 공간의 공급이 출산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긍정적인 담론을 부활시킨다. 이러한 주택공급의 필요성은 대통령 후보자의 공약집에서 더욱 세부적으로 명시된다.
표 1.
출처: 한나라당, 2007
신혼부부주택마련 청약저축을 통해 신규주택 중 12만 호의 주택을 제공하는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 공급 공약은 집이라는 공간에 어떠한 몸을 배치해야 출산이라는 미래의 시간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시공간적인 규범을 잘 드러낸다. 신혼부부는 출산이라는 미래적인 시간을 재현해야만 하는 존재로 호명된다. 특히 여성의 출산연령을 기준으로 주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지점은 출산 가능한 여성의 몸이라는 생물학적 시간을 규정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을 보편적인 생애주기로 여기는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 이행해야 하는 집단으로 지목된 신혼부부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체현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존재의 위치를 부여받으며 우선적으로 공공재인 주택의 공간획득 권리를 취득한다.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에 이어 사회 초년생과 청년들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대상자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이는 아직 가족을 이루지 못한 미완의 상태에 있는 이들의 몸도 미래적 시간을 투사해 국가에 의해 동일한 재현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출산이라는 사명을 아직은 이루지 못한 미완의 상태이지만 출산율을 반등시킬 수 있는 희망으로 인식된다(나영정, 2012; 홍혜은, 2020). 미래는 현재와 과거에 의해 순차적으로 형성된다는 규범적인 시간성의 관점에서 청년과 신혼부부는 지금, 여기가 아닌 출산이라는 미래에 아직은 다다르지 못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간에 위치하게 된다.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에 의해 출산에 도래하지 못한 현재의 시간은 미완의 상태로 왜곡된다. 이 애매하고 모호한 생애주기의 시간적 위치를 집이라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포섭하는 과정은 청년이 집을 제공받아 신혼부부가 되어 출산할 것이라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에 속해야만 하는 집단이라고 지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것이다.
저는 사회 초년생과 젊은 청년 세대들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우리가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한 대처가 안 되기 때문에....자산이 없는 젊은 가구들에 대한 (주거)지원부분을 좀 더 강화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338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 천현숙 국토연구원 연구원, 2015.12.29.)
여러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데 바로 결혼한 사람, 또 아기를 두 자녀 이상 낳은 사람을 이렇게 확실하게 우대하는 정책(신혼부부 특별공급)을 펴면 아, 결혼하는 것이 좋구나...
(제331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이한성 국회의원, 2008.11.28.)
청년과 신혼부부가 주거정책의 대상으로 호명됨은 국가의 관점에서 이들의 몸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성애적 행위를 수행해야만 국가가 제공하는 주택에 부합하는 시민으로 인정받음을 내포한다. 이들에게 집을 제공함은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에 몸을 올바르게 배치하라는 암묵적 지시이다. 이처럼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은 청년과 신혼부부라는 몸을 출산율 상승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집이라는 공간의 제공을 통해 생애주기를 원활하게 이행하기를 기대 받는 존재로 구성한다.
2) 공공임대주택의 차등적 적용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공급 제도가 기존의 청약가점제와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국토해양부는 신혼부부 청약저축 제도의 신설 대신 특별공급과 우선 공급 방식을 통해 신혼부부를 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한겨레, 2008.3.11.). 이후 2008년 7월 1일 제정된 신혼부부 보금자리 주택 특별공급 운영 지침은 당해 주택건설량의 30%를 특별공급 비율로 지정하였으며 혼인 기간 5년 이내의 자녀가 있는 무주택세대주를 청약 자격으로, 월 평균소득 70%를 소득 기준으로 제정한다(표 2). 저소득층 신혼부부를 겨냥한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시행 이후 높은 경쟁률을 보여 수혜기준 확대가 논의되기 시작했다(중앙일보, 2012. 10.24.).
이 제도(신혼부부 임대주택 특별공급)를 애를 낳아야 준다 이렇게 하지 마시고 신혼부부는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겠느냐......청약조건 중에 결혼한 지 5년 이내에 애를 낳거나 임신한 이 조항이 있어 가지고...애를 하나씩밖에 안 낳는데 대개 집을 갖기 전에 애를 낳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애를 낳으면 집을 청약할 수 있다 하니까....뭔가 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제303회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 최규성 국회의원, 2011.9.20)
표 2.
시행 | 제3조 특별공급비율 | 제4조 청약자격 | 제9조 소득기준 | |
제정 | 2008.7.1 | 당해 주택건설량의 30% |
혼인 기간이 5년 이내이고, 그 기간에 출산하여 자녀가 있는 무주택세대주 |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 평균소득의 70% 이하 |
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008.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기대되는 재현을 수행하길 바라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출산을 할 수 있다’라는 관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향으로 존재하는 미래적 시간이며 ‘집을 갖기 전에 출산하지 않는다’라는 언표를 통해 공간과 상호 구성된다. 생애주기의 과정에서 결혼 이후의 출산이라는 미래의 시간성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가족의 집이라는 미래적인 시간에 걸맞은 공간에 몸을 배치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기 양호한 집이라는 미래 공간의 공급 확대는 신혼부부를 출산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국가의 지향성을 드러내며 이와 동시에 집이라는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집단을 신혼부부로 특정하고 특권을 부여한다. 더 많은 신혼부부가 더 빨리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17번의 일부개정을 거친 신혼부부 특별공급 정책은 신혼부부가 출산을 위해서 어떠한 주택에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특별공급을 받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혼인 기간이 허용되는지, 어떠한 소득계층에 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지속해서 확립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 조건의 혼인 기간은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났으며 출산이 아닌 결혼만을 이행한 신혼부부에게 자격이 주어지며 소득 기준 또한 월 평균소득의 70%에서 120%로 넓은 폭으로 확대된다(표 3). 공공임대주택의 취지인 저소득 가구가 아닌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성애 규범적인 생애주기를 이행한 몸들에게 주택이라는 친밀하고 포근한 공간에 닿을 기회를 부여함은 이들에게 이성애적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해당 정책이 가부장적 결혼과 출산 방식을 전제한다는 비판과(여성신문, 2008.3.28.) 주거 복지가 필요한 취약계층이 소외된다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경향신문, 2008.3.18.), 이성애라는 섹슈얼리티는 저출산 해결이라는 공적인 합리성에 의해 쉽게 은폐된다.
표 3.
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008; 2013; 2018.
그렇다면 저출산 해결이라는 합리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정당화됐는가? 신혼부부 특별공급 개정 과정은 가족의 형성이라는 친숙함과 아이라는 도래할 국가적 희망, 가족의 행복이 곧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재난 상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감각과 연결되기에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성애적 사랑과 사랑의 결실로 표상되는 결혼과 출산은 익숙함과 친밀함을 바탕으로 삶의 목표이자 행복한 결말의 향한 가능성으로 표상된다. 국가는 신혼부부에게 제공할 주택에 행복과 희망이라는 감정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저출산 해결이라는 국가적 열망을 공간에 투사한다. 행복주택, 신혼희망타운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공공임대주택은 가족의 친밀함을 바탕으로 희망과 행복으로 형상화되며, 섹슈얼리티의 욕망이 이성애 수행이라는 국가적 공동선을 향하도록 방향을 제시한다(그림 1). 국가적 상상을 구축하고 구체화하는 임대주택은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이행하게 만드는 친밀함, 익숙함이라는 감각을 바탕으로 신혼부부에게 특권을 부여하면서 이를 정상적이고 행복한 행위이자 국가의 희망으로 전위시킨다. 좋은 삶으로 표방되는 희망과 행복을 좇기 위해 우리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약속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가는 좋은 삶으로 나아가는 생애과정에 행복과 희망이 투사된 주택을 제공함으로써 출산이라는 시간적 이행을 유도하는 동시에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반론을 잠재운다.
최근에 1~2인 가구가 굉장히 증가한다고 그러면서 초소형 주택 40m2 이하의 주택이 굉장히 급속도로 많이 공급됐습니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논의되면서 사실 고령화․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인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가구, 그래서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는 3인 가구나 4인 가구가 중심이 되는 것이 국가정책에 맞다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면 3~4인 가구들이 살 수 있는 주택들도 다양하게 공급되는 것이 맞고 이것이 소형주택은 아니라는 거지요.
(제331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 김덕례 연구위원, 2015.2.24)
청년과 신혼부부는 모두 주거정책의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정상적인 가구로 호명될 수 있는 집단은 청년이 아닌 신혼부부로 한정된다. 이성애규범성이 나누는 위계는 이성애와 그 외의 것만이 아닌 이성애규범적인 시간과 공간 내의 분절로도 이루어진다. 청년은 “결혼하고 싶지만 고용불안정으로 인해 주택을 마련할 수 없어 잠시 결혼을 보류”하고 있는 존재로 치부된다(토지주택연구원, 2018). 청년이 나아갈 수 있는 생애주기는 결혼이 아닌 비혼, 동거, 1인 가구 등의 많은 방향이 존재하지만 이성애를 수행하는 몸의 관점에서 청년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재생산을 수행하지 못한 비정상적인 존재가 된다. 이는 정상성을 강제하는 이성애규범성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규정하는 폭력적인 규범의 성질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청년→신혼부부→다자녀가구(출산)로 구성된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의 도열(그림 2)은 하나의 지향해야 할 규칙이자 규범이기에 목적지인 이성애 가족에 가까이 닿아있는 집단을 정상적으로,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정상적이고 임시적인 존재로 위계적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시간적 도열은 특정한 집단이 지닌 위치와 단계의 의미를 결정하며 이러한 의미는 정상적 시간성을 독점한 집단이 전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3) 주거복지로드맵: 시간화된 공간, 공간화된 시간
정부는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이라는 이름 하에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한다(그림 3). 주거복지로드맵은 청년, 신혼부부, 다자녀가구, 노년층이라는 각각의 생애주기에 알맞은 주거정책을 지원하는 생애주기 주거지원 패키지이다. 각 생애주기에 알맞은 주거 형태는 출산과 자녀양육이라는 목적과의 시간적 거리를 통해 결정된다. 그리고 시간의 순서를 원활하게 이행하게 하는 사다리의 단계적 역할은 어떠한 집을 어떠한 집단에게 제공하는지로 드러난다. 이성애규범으로서 가족의 지향을 올바른 것으로 상정하는 사회에서 이를 실행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게 허락되는 공간은 같을 수 없다. 앞서 결혼을 이행하지 못해 임시적인 존재로 분류되는 청년에게는 임시적인 공간이 제공된다. 청년이라는 명칭이 부과된 임대주택은 면적이 협소하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지닌다. 평균 면적은 16~17m2로 5평 남짓한 작은 방의 크기이다. 2012년 시행된 청년임대주택의 시초인 공공원룸주택이라는 정책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원룸은 집, 주택이 아닌 방으로 구분되기에 그 단위도 호가 아닌 실을 사용한다. 또한 주거복지로드맵에서 청년에게 제공하는 셰어하우스와 같은 유형의 임대주택은 청년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집이 아닌 방만을 허락하며 부엌, 화장실과 같은 공용공간은 타인과 공유해야 하는 불완전한 형태의 주택을 제공한다. 이는 청년이란 생애주기는 결혼을 수행하기 전 잠시 거쳐 가는 시간이라는 관념을 드러낸다. 잠시 머물다 떠날 존재에게는 온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결혼을 소위 정착한다고 표현함은 안정되고 편안한 공간에 닻을 내리고 터전을 일구어 갈 시작 단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혼부부의 경우는 청년에 비해 더 많은 주거지원이 주어진다. 신혼희망타운, 행복주택 등 신혼부부와 다자녀가구를 겨냥하여 건설된 공공임대주택은 청년에 비해 넓은 평수로 이루어진다. 또한 단순히 방이 아닌 온전한 주택과 아파트를 제공하며 양육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단지로 구성된다.
해당 정책은 일명 ‘주거사다리’라고도 명명되는데, 일반적으로 사다리는 현재는 도달하지 않은 특정한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도구 역할을 한다. 주거-사다리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생애주기를 이행하는 도구인 집을 제공함으로써 특정한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준비와 실천을 정부 차원에서 유도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로 이어지는 국가가 설정한 주거사다리는 자연스레 다자녀가구로 이어짐으로써 출산이라는 최종 목표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와 동시에 청년과 신혼부부, 다자녀가구의 단계에 알맞은 주거 형태를 제시하여 공간을 통해 규범적이고 목표해야 할 미래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국에서 주거환경 변화의 가장 주요한 계기는 결혼이며 청년들이 ‘집’이 아닌 ‘방’을 전전한다는 것은 생애의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생애주기를 바탕으로 한 기존의 주거정책은 청년을 포함하여 이성애규범을 이행하지 않은 자들에게 “결혼 안 하면 집도 못 사겠네”(한국경제, 2023.4.11.)와 같은 불안감을 형성한다. 이는 곧 자신이 제도권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인식이자 스스로는 더 나은 공간으로의 이행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관념으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해당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시간의 이행에 따른 차등적인 공간의 제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생애주기에 따라 더 나은 집이라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더욱 쾌적한 공간에서 거주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이들의 시간성을 공간을 통해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주거사다리는 단계별로 형상화된 사다리의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르듯 청년은 신혼부부에서 다자녀가구로, 좁은 방에서 넓은 집으로의 이행을 자연화함과 동시에 사다리의 목적인 시간적 규범에 알맞지 않은 집단은 국가가 제공하는 사다리에 진입할 수 없게 한다. 생애주기 맞춤형 지원 정책인 주거사다리는 이성애규범으로 형성된 잘 닦여진 도열인 생애주기라는 시간적 규범을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생애주기의 규범을 단계별로 원활하게 이행하고 이러한 구조에서 이탈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국가가 유도하는 출산이라는 방향을 따라가며 더 쾌적한 집에서의 거주라는 개인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주거복지로드맵 정책은 ‘로드맵’의 정의와 같이 개인 삶의 방향과 목표, 실행계획을 특정한 미래로 상상하도록 안내한다.
청년→신혼부부→다자녀가구→고령자로 이어지는 주거복지로드맵(그림 3)은 생애주기가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에 알맞게 매끄럽게 이어지는 정상성을 일종의 이상향으로 제시한다. 생애주기가 마치 완성된 퍼즐처럼 구성된 주거복지로드맵의 집에 대한 관념은 하나의 거대한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으로서 기능하며 이러한 관념은 공공임대주택의 실제적인 물리적 수량의 변화로 이어진다(그림 4). 공간의 공급은 정부의 합리성에 기반하며 정부가 제공하는 공간은 거주자의 인과적 특성을 바탕으로 공간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획하고 방출하는 기술로 작용한다(Dean, 1996; Elden, 2001). 주거복지로드맵 정책에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되는 임대주택 물량은 저소득층과 고령자에게 공급되는 양을 단숨에 뛰어넘는다(그림 4). 이는 출산이라는 사적인 행위가 공적 의제가 되었음을 드러내며, 부의 재분배라는 전통적인 복지의 기능이 출산장려와 인구유지라는 (포스트) 발전주의적 가치에 종속되는 양상을 암시한다.
국가는 성의 편향적인 촉진과 규제를 통해 국가의 경제력과 발전가능성을 증대시킨다(이규현(역), 2010, 37). 성은 인구라는 노동력을 생산하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국가는 노동력을 생산하는, 즉 성을 ‘올바르게’ 행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인정인 시민권을 제공한다. 이는 국가가 신체적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면적으로는 관료적이고 자비로운 의식을 통해 구성된다(Hubbard, 2001). 성 시민권(Sexual citizenship)의 지배적인 개념은 중산층의 핵가족 형성을 기반으로 하며 남성과 여성의 이성애규범적인 행위와 궁극적으로는 출산이 성적 관계의 최종적인 산물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성애정상가족 형성을 수행하는 시민은 주택 제공과 같은 국가의 혜택을 받는 반면, 저소득층과 같은 자들은 비가시적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와 같이 집이라는 공간의 정의는 국가적 정체성과 상징적으로 연결된다(Rakoff, 1977, 94). 저출산이라는 국가 존립 위기에 직면하여 공공임대주택이라는 공간에 거주해야 할 대상으로 정부는 청년과 신혼부부를 선택하여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정부의 인구 통제 및 관리가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집의 생산과 분배를 통해 구현됨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사적이자 공적인 공간을 통해 유지되길 바라는 가부장적 국가의 열망을 드러낸다.
4. 결론
본 연구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변화 과정이 출생률 반등을 위해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분석하였다. 세부적으로 청년과 신혼부부가 공공임대주택의 대상으로 호명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청년과 신혼부부가 우발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닌,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이행할 수 있는 집단이기에 공공임대주택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됨을 파악하였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이 출산율의 유인책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공공재로서 공공임대주택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출산율 반등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최근 전환한 배경을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의 작동을 통해 설명했다.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2000년대까지 시행되었던 저출산 해결을 위한 주택 정책은 3자녀 가구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명박 당선인의 신혼부부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통해 처음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신혼부부와 이후 추가된 청년이라는 몸들은 가족을 형성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집단이기에 호명되었으며 공공임대주택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혼부부와 청년이라는 몸은 집이라는 공간 제공을 통해 생애주기를 이행해야 하는 존재, 즉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 지목되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이 어떠한 집단을 정상/비정상으로 위계 짓고 가족의 형성이라는 정상화를 유도하기 위해 행복과 희망이라는 감각을 공공임대주택이라는 공간에 어떻게 접착하는지 분석하였다. 신혼부부와 청년은 모두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수행할 수 있는 몸들이지만, 가족의 형성, 출산이라는 생애주기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청년은 신혼부부보다 상대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미성숙한 존재로 위계 지어졌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에 부착된 행복, 희망이라는 단어들을 포착함으로써 집의 제공을 통해 출산을 이행하길 바라는 국가적 열망이 공간에 투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주거복지로드맵 정책을 분석하여 생애주기에 따라 위계 지어진 집단에 차등적인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국가가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출산율 상승을 위한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의 공간으로 상정했음을 드러냈다. 청년,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공간의 크기와 주택 수량의 차등적 제공은 곧 시공간적 위계를 형성하며 생애주기의 이행과 더 나은 공간으로 이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본 연구는 저출산 해결이라는 국가적 소망에 가려져 있던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통해 포착했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적 행위인 가족의 형성이 특정한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국가적 생명통치 프로젝트로 동원되기도 한다는 당연하게 인식되어 온 사실을 새로운 개념을 통해 재조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성애규범성에 따른 시공간의 규범이 몸을 제약하는 과정을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라는 명명을 통해 기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이 항상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며 최종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을 지탱하는 강제된 규범임을 드러내고, 국가는 이를 유지・강화함으로써 통치 기반을 구축하고자 함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 연구는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따르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이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구체적인 이유를 분석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 1인 가구와 비혼율의 상승, 자본 축적의 위기 등 저출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범분야적으로 방대하기에 이성애 가족 구성에 바탕이 되는 주택이라는 공간의 제공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에 유의미한 효과를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본 연구는 주택이라는 공간을 이성애규범적으로 닫힌 공간으로 바라보는 국가 정책을 우선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에 규범에 저항하고 이를 변화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이성애규범적인 시간성에 담겨있는 통시적 관점을 그대로 수용함은 몸의 저항 가능성을 거세한다는 점에서 협소한 논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강제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공격적으로 확장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하락하는 출생률이 증명하듯, 몸의 물질성은 규범에 완벽히 복종하는 것이 아닌 잔여물을 남김으로써 몸의 틀을 유지하는 동시에 규범을 파괴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능성을 지닌다(임옥희・채진(역), 2019; 조현준(역), 2008). 또한 집은 이성애 규범적인 시간이 융해되어 몸을 이에 알맞게 고정하는 동시에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에서 탈주할 수 있는 시간과 몸의 배치를 통해 시공간의 규범을 교란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Gorman-Murray, 2008; Hubbard, 2008; Pilkey, 2014). 이성애규범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대표적인 존재인 퀴어의 관점에서 집은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아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은폐해야 하며(Valentine, 1993) 성정체성이 발각될 경우 가족으로부터 언어적 모욕과 신체적 학대, 추방을 당하는 불안정한 공간으로 인식된다(Valentine and Skelton, 2003). 하지만 이와 동시에 퀴어는 집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전유함으로써 성적지향을 주장하는 저항적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퀴어들이 안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대안적 공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Gorman-Murray, 2006; Markwell, 1998).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충분히 탐색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며 이성애 시공간적 규범성을 교란하는 몸들의 존재와 공간의 점유를 분석함으로써 규범에 균열을 가하는 과정을 후속 연구로 남겨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