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리
3. 한국 현대 지리학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유입과 지정학적 상상력의 변화
4. ‘한국의 위치’: 포스트식민 한국에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전유
1) 대륙과 해양 사이, 한반도
2) 반도의 수동성으로 인한 비극적 운명 그리고 새로운 의구심
3) 반도의 숙명과 가능성의 공존
5. 결론
1. 서론
“우리는 국가의 위치를 통해 해당 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중간에 위치하여 주변 국가의 정세에 따라 관계적 위치가 시대별로 변화해왔다…우리나라는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를 잇는 지리적 교차로에 위치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동북아시아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는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신정엽 등, 2015, 12-13)
“관계적 위치는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시대 상황과 국제 정세에 따라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위치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과거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일본에 전달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 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태평양 시대의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박철웅 등, 2015, 10)
위의 인용문들은 고등학교 지리교과서 첫부분에 등장하는 ‘한국의 위치’로,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기 쉬운 지리적 위치에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와의 강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어 그 활용 여부에 따라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지식(geographical knowledge)’은 한국의 공간적 위치에 대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naturalized geopolitics)’의 모호한 적용이다.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에서, 환경은 국가 행위에 결정적인 요소이다(Agnew, 2003). 그러므로 근대 유럽의 지정학자들은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 및 쟁탈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생활공간을 확보하고,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선점하거나 다른 국가들이 점유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필요성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들은 환경이 국가 행위에 있어 주요 요소일 수는 있어도 결정 요소는 아님을 암시한다. 즉, 환경은 시대에 따라 국가 행위에 영향을 주거나, 국가와 국민의 역량과 행동 여하에 따라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위치라는 ‘지정학 서사(geopolitical narrative)’는 환경결정론으로도, 가능론으로도 해석되는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본 연구는 초기 지리학자들의 텍스트를 조사하여 ‘한국의 위치’를 역사화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어떻게 그들이 포스트식민 한국1)의 지정학 서사를 구성하려 하였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초기 지리학자’2)의 범주는 오홍석의 목록(2004, 61)을 기초로 하되, 『대한지리학회 70년사』(2016)를 참고하여 보완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적 학문으로서 지리학을 습득하였던 그들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 지리학의 제도적, 학술적 형성에 중추를 담당하면서 여러 형태의 텍스트를 남겼다. 그러나 그들의 텍스트는 지리적 사고 과정에 의한 객관적 산물 이상이다. 이에 관하여, 지리적 지식은 특정 장소에서 특정 엘리트에 의해 이동되고, 적용되고, 변형되기 때문에 장소와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다(Livingstone, 1992; Driver, 1992, 1994; Dodds and Atkinson, 2000; Naylor, 2005; Agnew, 2007; Agnew and Livingstone, 2011; Offen, 2012). 즉, ‘한국의 위치’는 초기 지리학자들이 근대 유럽에서 기원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식에 기초하여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당시 시대의 맥락에서 설명하려는 지적 실천의 결과로 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그동안 미진했던 한국의 지정학 서사에 대한 “사유・담론체계의 연원을 밝히는 학술적 노력”(지상현, 2013, 292)의 일환이다. 식민 및 포스트식민 시대를 경험한 엘리트의 지적 실천을 예시로 하여, 본 연구는 한국의 위치에 관한 우리의 상식이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지적 기초를 제공하였던 근대 지리학과 연속성 및 불연속성 상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이 포스트식민 한국의 ‘지정학적 상상력(geopolitical imagination)’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이를 고려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우리는 Agnew and Livingstone(2011)의 지리적 지식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예시로 하여 설명하고, 본 연구를 위한 함의를 도출한다. 일제강점기의 지리학으로부터 벗어나 초기 현대 지리학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식민 지정학으로부터 냉전 지정학으로의 이행을 논의한 뒤, 실증적 분석은 초기 지리학자들의 텍스트 속에서 공유되는 한국의 위치에 관한 지정학 서사의 구조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포스트식민 한국의 지정학적 상상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마무리한다.
2.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리
Livingstone(1992) 이래로 지리학의 역사를 선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우는 경향은 지양(止揚)되어 왔다. 그에게, 지리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지식의 모음 또는 그것의 계보였다. 과학을 맥락화하려 했던 과학사의 흐름에 맞추어, 그는 지리적 지식이 사회문화적 산물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지리적 지식은 특정 장소에서 특정 엘리트에 의해 이동되고, 변형되며, (재)생산된다는 의미에서 ‘지리적’이다(Livingstone, 1992; Driver, 1992, 1994; Naylor, 2005; Agnew, 2007; Agnew and Livingstone, 2011; Offen, 2012).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지리적 지식이 지리적’이라는 명제를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Ratzel은 자연이 인간 행위를 제약한다는 사고방식과 인구 성장 및 주어진 지리적 거주지 간 불일치를 이론적으로 통합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서 지리학을 정의하였다(Klinke and Bassin, 2018). 그의 시도는 환경결정론을 주창하고 발전시켜 지리학을 전근대적인 자연 신학에서 근대적인 과학적 학문으로 전환하려는 것이었다(Peet, 1985, 1998; Creswell, 2012). 그러나 환경결정론은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권력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Agnew(2003)는 자연 법칙과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의 결합을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으로 명명하였다. Ratzel을 시작으로, 고전지정학(classical geopolitics)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Mackinder, Mahan, Kjellén, Semple, Haushofer과 같은 학자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을 정점으로 한 글로벌 공간의 위계질서를 이론화하였다. 그런 면에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법칙이 아닌, 서구 근대 지리학의 발전 과정에서 지정학자에 의해 서구 제국주의의 사회정치적 환경 속에서 구성된 지정학 전통(geopolitical traditions)으로 간주되었다(Ó Tuathail, 1996; Dodds and Atkinson, 2000).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리적 특성은 Agnew and Livingstone(2011)의 ‘지리적 지식’에 관한 다섯 가지 범주를 통해 더 정형화하여 설명될 수 있다. 먼저, ‘지식의 장소(sites of knowledge)’로, 지식 생산에서 장소의 유의미함을 강조한다. 식민지 탐험의 종결과 제국주의 국가들 간 쟁탈전의 새로운 공포가 점증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 유럽은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형성과 발전의 진앙지였다(Ó Tuathail, 1992; Heffernan, 2000). 두번째 범주는 근대 유럽에서 기원한 지리적 지식의 보편화 및 이에 대한 탈식민적 저항을 다루는 ‘지식의 지정학(geopolitics of knowledge)’으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한 반면(Agnew, 2003), 포스트식민 지정학을 태동시키기도 하였다(Sharp, 2013). 세번째, ‘지리적 존재와 지식(geographical ‘being’ and knowledge)’으로, 현상학적 관점에서 지리적 지식이 세계-내-존재인 인간에 의하여 특정 장소에서 세계를 경험하고 상상한 결과임을 강조한다.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형성 및 발전시킨 ‘지정학자’들은 대개 국가중심주의적, 보수주의적, 인종주의적이었다(예를 들어, Smith, 1984; DeBres, 1986; Macdonald and O’Hara, 1988; Holdar, 1992; Ó Tuathail, 1992; Takeuchi, 2000).
네번째, ‘헤게모니적 지식의 공간적 확산(spatial diffusion of hegemonic knowledge)’은 특정 엘리트의 지적 실천으로 인하여 특정 지식이 공간적으로 전파되면서 지적 헤게모니를 획득해 나감을 의미한다.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독일과 영국에서 기원하여(Heffernan, 2000), 20세기 동안 미국(Dodds et al., 2013), 스웨덴(Holdar, 1992), 일본(Fukushima, 1997; Takeuchi, 2000; Watanabe, 2018), 포르투갈(Sidaway and Power, 2005), 남아메리카(Hepple, 1992; Sidaway et al., 2013)로 확산되었다. 다섯번째, 특정 이론, 개념, 아이디어들이 특정 장소에서 특정 엘리트(들)에 의해 해석되는 방식을 탐구하는 ‘독해의 지리(geography of reading)’로, Watanabe(2018)는 제국주의 일본의 지정학자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영토의 개념에 비추어 환경결정론을 해석 및 적용하는 방식을, Keighren(2006)은 Semple의 책 『지리적 환경의 영향(Influence of Geographic Environment)』에 대한 20세기 초 영국 지리학자들의 반응을 다룬 바 있다. 이러한 범주들은 지리적 지식이라는 ‘구조’와 이를 이동시키고, 적용하고, 변형하는 사용자로서 엘리트(들)의 ‘에이전시’ 간 관계를 상정하는 포스트구조주의적 관점을 띠고 있다.
위와 같은 지리적 지식의 범주들은 초기 지리학자들의 ‘한국의 위치’ 서사 구조를 다루는 데 있어 몇 가지 함의를 제공한다. 두번째 그리고 네번째 범주들로부터, 어떻게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식민지 조선으로 유입되었는가? 첫번째 범주로부터, 어떻게 식민지 조선 혹은 한국이라는 장소는 그들로 하여금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데 있어 영향을 미쳤는가? 세번째 그리고 다섯번째 범주로부터, 어떻게 그들은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식을 이용하여 한국의 위치를 설명하려 하였는가? 본 연구는 마지막 질문을 해명하는 데 집중하며, 그전에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들, 즉 식민지 조선에서 포스트식민 한국으로의 전환기에 한국 현대 지리학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유입과 지정학적 상상력의 변화를 개괄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3. 한국 현대 지리학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유입과 지정학적 상상력의 변화
한국 현대 지리학은 일제강점기에 ‘전통지리학’(오상학, 2015)과 단절하고 제국주의 일본의 지리학을 통해 서구 근대 지리학을 도입하여 그 맹아를 형성하였다(오홍석, 2004). 이 과정은 일제의 교육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제 지리학자들은 그들이 서구로부터 도입한 근대 지리학에 기초하여 식민지 조선의 통치를 위한 지리적 지식을 누적하면서 동시에 이를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교육하였다. 초기 지리학자들 일부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치된 교원양성소 내지 사범학교에서 근대 지리학을 습득하였다.3) 그러나 洪始煥(1998)이 회고한 바 초기 지리학자 중 다수는 일본 본토에 있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하였다. 우용제・안용선(2006)에 따르면,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중등교육을 담당할 조선인 교원 양성 기관을 공식적으로 해방전까지 설치하지 않았으며, 1920년대 이후 일본인 교원이 부족하자 조선인으로 일부를 충원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초기 지리학자들은 일본 본토의 구제대학이나 고등사범학교, 드물게 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초・중・고등교원으로 근무하였다(표 1 참조). 이들은 해방 후 “한국 지리학계를 이끄는 영도세력”(오홍석, 2004, 62)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근대지리학이 일본인으로부터 전수되었고, 그것은 다시 한국의 현대 지리학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크게 미쳤다”(앞의 글, 61).
표 1.
'초기 지리학자' 목록 (출처: 오홍석, 2004, 61, 74; 대한지리학회, 2016) 저자 정리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일제강점기 동안 유입되었다(지상현, 2013). 지정학(geopolitics)은 1925년 일본에서 ‘地政學’이라는 학술 용어로서 처음 등장하였고, 제국주의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된 1930년대 이후 Ratzel, Kjellén, Haushofer 등의 저작들이 광범위하게 번역・유통되었다. 일본 지리학자들은 대동아공영권에도 개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제국주의적 사업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전시동원체제를 확고히 하는 데 있어 이 내용을 교육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Fukushima, 1997). 이는 특히 식민 통치 후반 식민지 조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예컨대, 심정보(2015)는 교토학파의 영향력이 미친 조선총독부의 지리교과서를 소개한 바 있다. 이는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식이 식민지 조선에서 유통되고 교육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문화적 헤게모니는 일제 역사학자들의 조선사 연구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도리야마 기이치, 미시나 쇼에이, 나카무라 히데다카 같은 이들은 한국사를 대륙과 해양 사이에 놓인 반도라는 지리적 제약 조건 속에서 기술하였는데, 이는 후대에 ‘반도성론’으로 칭해지는 식민사관의 일종이었다(강진원, 2016). ‘반도의 숙명’ 담론(지상현, 2013)은 반도성론을 ‘공간화’(spatialization of history) (Ó Tuathail, 1996)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반도성론이 해방 후 꾸준히 비판받아 왔던 반면(예를 들면, 이기백, 2012), 식민사관의 공간적 설명은 포스트식민 한국 사회에서 지정학적 상상력의 한 축을 차지하였다. 일제는 지리적 지식으로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이용하여 식민지 조선을 그들 지정학적 상상력 속에서 일본의 한 지방으로 취급하였고, 이를 식민지 조선 엘리트에게 교육하였다.
해방 후 초기 지리학자들은 지리학의 유용성을 입증하고 그것을 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도록 해야했지만, 양적・질적으로 열세에 있었다. 그 이유에 관해, 오홍석(2004)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먼저, 지리학계는 “외형적 열세”(앞의 글, 63) 속에 있었다. 두번째, 초기 지리학자 다수는 “비전공자”(앞의 글, 64) 상태였거나 일제강점기 동안 교원으로 근무한 사범학교 출신이었다. 세번째, 해방 후 한국을 점유한 미군정을 따라 미국식 제도와 지적 문화를 빠르게 수용하여, 일제강점기 동안 내재화되었던 일본식 제도와 충돌하였다는 점이다. 네번째, 해방 후 시급했던 지리교육 체계를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아, 학술적 연구의 증진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러 문헌은 1960년대 초를 한국 지리학이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게 된 출발점으로 보며, 그 전후를 대체로 학술적 연구가 부재한 ‘블랙박스’로 남겨놓고 있다(예를 들면, 박삼옥, 2005; 대한지리학회, 2016). 결과적으로, 초기 현대 지리학은 오홍석(2004)이 강조한 바,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적 유산과의 연속선 상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롭게 독립한 한국의 지정학적 상상력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식민적 지식이었던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이 지리적 지식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은 채, 그것이 식민 상태에서 벗어난 한국의 민족주의적 맥락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종명(2008)은 제국주의 일본의 한 지방이었던 식민지 조선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에 걸맞는 민족주의적 영토관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였던 초기 지리교육의 시도를 검토하였다. 즉, 근대지리학의 관점(환경결정론)에서 식민 경험을 가진 한국은 논리적으로 서양에 비해 열등한 지위를 점하게 되며, 국토에 대한 애착의 강화4)는 그러한 한국 국토의 열등성을 극복하는 차원으로 발현되었다. 동일하게, 오태영(2015)은 표해운의 “조선지정학개관”을 사례로 해방 후 한국의 지정학적 상상력이 제국주의의 도구로서의 지정학으로 채워졌음을 지적한 바 있다. 식민적 지식의 재활용은 해방 후 한국을 저발전의 상태로 규정할 수 밖에 없으며, 식민 지정학으로부터 냉전 지정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새로운 지정학적 상상력에 있어 미국 헤게모니 하에 서양의 발전을 추종하는 시각을 스스로 내재화하는 모순을 만들어낸다(김예림, 2007; 임종명, 2007, 2008). 그러므로 초기 지리학자들은 이전에 그들이 습득한 지식을 사용하되 그것이 포스트식민 한국의 시공간에 적용됨으로서 빚어지는 모순을 논리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는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포스트식민 한국의 맥락에 맞게 전유하는 것이었다.
4. ‘한국의 위치’: 포스트식민 한국에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전유
이 장은 어떻게 초기 지리학자들이 ‘한국의 위치’를 기술하려 하였는가를 분석하며, 이를 다룬 그들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서사 구조를 재구성한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수집된 텍스트는 단행본, 교과서, 교양잡지에 실린 논문 형식의 글, 신문 칼럼과 같은 형태이며, 그중 대부분은 초기 현대 지리학의 기간으로서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극히 일부는 1970년대 초반에 출간되었다. 본 연구에서 ‘초기 현대 지리학’을 1945년부터 1963년까지로 정의하였으나, 초기 지리학자들의 지적 실천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본 연구는 1963년 이후 출간된 글이라 할지라도 그들에 의해 생산된 텍스트 모두를 함께 검토하였다.
1) 대륙과 해양 사이, 한반도
중등 및 고등 지리교과서들은 ‘한국의 위치’에 관하여 가장 일관된 논리 구조를 제공한다(예를 들면, 崔福鉉 등, 1950; 金蓮玉, 1952; 강대현・주재중, 1956; 박노식・김상훈, 1967; 李智皓, 1968; 姜錫午, 1971). 이들 교과서에서, 한국의 위치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수리적 위치’, ‘지리적 위치’, ‘관계적 위치’(혹은 정치적 위치)의 3요소로 구분되어 기술되었다. 수리적 위치는 한반도에 대한 경위도 좌표를, 지리적 위치는 육지, 강, 산, 바다와 같은 자연지리적 요소들의 배치를 논의하였다. 이가운데 지리적 위치는 한국 국토의 장점을 주로 기술하고 있다. 공통적인 예시 중 하나는 기후이며,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과 농업 국가로서 한국의 역사적 특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기후적 위치: 특히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뚜렷한 4계절의 기후적 변화는 우리들의 생활을 자극하고 적절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또 각종 산업의 발달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춘 좋은 기후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어떠한 기후의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게 되며, 우리 국민성의 순박함과 인내, 관용성을 길러 주고 있다.” (박노식・김상훈, 1967, 5)
위의 인용문은 기후 자체의 기술을 넘어 한국인의 생활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부각시켜 민족주의적 가치 판단을 드러낸다. 朴魯植(1948, 8)은 ‘편찬의 취지’에서 “국민성(國民性)과 그 국토(國土)와의 관계 또는 국토의 변천에 유의”할 것을 주지하였다. 해방 이후 식민 지배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민족주의는 환경에 대한 해석을 일제강점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수’하다고 해석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관계적 위치’의 기술이다. 이는 한국의 위치를 주변 국가와의 역사적 및 동시대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여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적용 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관계적 위치’ 용어의 기원은 Kjellén의 지정학이다(Holdar, 1992). 그는 국가 간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5가지 요소 중 하나로 ‘geopolitik’를 제시하였다.5) 여기서 다시 geopolitik의 하위 3요소를 국가의 위치, 영토의 형태, 크기로 제시하였다. 국가의 위치는 바로 관계적 위치(relative location)이다. 즉, 관계적 위치는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자연지리적 위치가 아닌 지정학적 위치를 의미한다.
‘반도(peninsula)’는 한국의 관계적 위치를 기술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어원적으로, 이것은 16세기 서양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거의 섬에 가까운 것(almost an island)”6)을 의미한다. 강경원(2015)은 일본이 19세기 무렵 ‘peninsula’를 ‘半島’로 번역하여 조선을 지칭하는 데 이용하였고, 구한말 및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지 조선에서도 보편화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7) 여기서 반도의 어원이 가지는 함의는 그것이 자연지리학적 개념 이상으로 지정학적 은유를 획득하였다는 점이다. 즉, 한반도 지역은 대륙(세력)도 아니고 해양(세력)도 아닌 지역으로 가정되었다. 그럼으로서 한반도(그리고 한국)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 놓인 지역 또는 두 성격 모두를 가지거나 아예 두 세력에 전혀 속하지 않은 지역으로 표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대륙과 해양 사이 ‘重要한 位置’(李鳳洙, 1946b), ‘陸橋的位置’와 ‘戰略的地位’(陸芝修, 1947), ‘中央的位置’(朴魯植, 1947[2008], 1)를 점유하는, 지정학적 가치(valence)를 갖는 지역이 되었다. 예컨대,
“우리國土 半萬年歷史을가지고 極東아새아에서 가장重要한位置를占領하고있난 自然環境이야 어너누구가否認하겠는가…實로우리 國土는 地球上類例가없을많곰 重要한位置에 있난데 억지로地形學的見解에서 類似한 꼴을차저본다면 地中海의伊太利와 비슷하다고볼수있다.” (李鳳洙, 1946b, 74; 굵은 글씨 저자 강조)
요약하면, 반도라는 자연지리학적 개념은 지리학자들의 텍스트에서 관계적 위치로서 중간성의 지정학적 은유를 획득하였으며, 그 중간성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 놓인 지역의 성격을 의미한다.
2) 반도의 수동성으로 인한 비극적 운명 그리고 새로운 의구심
관계적 위치에 따라 반도로서 대륙과 해양 사이에 놓임으로서 한국은 언제나 침략에 노출되는 지역으로 서술되었다. 식민 경험을 포함하여 침략을 받은 과거의 사례들은 이러한 논리에 선택적으로 이용되었다.8) 침략 경험들은 일차적으로 한국을 ‘주변 강대국’에 비해 수동적인 대상으로 보도록 한다(예를 들면, 李鳳洙, 1946b; 盧道陽, 1954, 1964[1979]; 이지호, 1960; 李智皓, 1968). 예컨대,
중국・러시아・일본 등의 여러 나라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는 이들 국가에 의하여 침략(侵略)을 받고 희생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몽고(蒙古)의 침입・임진 왜란(壬辰倭亂)・병자 호란(丙子胡亂)・청일 전쟁・노일 전쟁・한일 합방・오늘날의 국토 양단 등이 그것이다.(이지호, 1960, 14)
盧道陽(1954, 1964[1979])은 한국이 예로부터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아시아 대륙의 민족들로부터 광범위한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관계적 위치를 ‘주변적 위치’, ‘근거지적 위치’, ‘대치적 위치’로 세분하였다. 한국 역사가 타자에 의해 결정되어 왔음을 거부하면서 이러한 개념들을 제시한다고 그 스스로 밝힘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념들은 모두 한국을 중국과 일본의 ‘주변’, 대륙과 해양 세력의 진출을 위한 ‘근거지’이자 ‘대치’의 지역으로 설정함으로서 사실상 ‘반도의 숙명’ 논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의 수동성을 거부하고자 한 목적은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설명하기 위함이며, 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결국 ‘숙명’의 논리에 빠진 것은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논리를 이용함으로서 기인한 논리적 모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어떠한 목적이든 상관없이, 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소환하여 한국이 주변 강대국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지역적 공간 내 ‘약소국’, ‘약소민족’의 위치를 점유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한국은 언제나 “重要한 位置에노혀있난것이 우리歷史를永久히左右시킬宿命”(李鳳洙, 1946b, 74)을 가지며, 특수하게 해방공간의 맥락에서 “美蘇의 兩勢力이 陸橋中間에서 對立”(陸芝修, 1947)하는 “美蘇 二代 强國의 幼蟲的 役割의 段階”(朴魯植, 1947[2008], 2)에 있는 것으로 재현된다. 더 나아가, 일부는 당시의 지정학적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 ‘중간적 위치’로서 한반도의 지리적(사실상 지정학적) 속성이 그것을 아시아 대륙의 공산주의 세력과의 최전선에 위치하게 했다는 ‘냉전 지정학(Cold War geopolitics)’(Agnew, 2003)의 서사를 덧붙이기도 한다(예를 들면, 강대현・주재중, 1956; 박노식・김상훈, 1967). 이것의 극단적인 사례로서,
“한국은 자유 진영의 최전선이다. 오늘날 한국의 위치는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그것은 자유 진영을 방위하는데 있어서 최전선이기 때문이다…과연 한국은 동부 아시아 대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유 진영의 발바탕이며, 한국 없이는 아시아는 지키지 못하고, 태평양의 안전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강대현・주재중, 1956, 6)
그러나 이러한 지정학 서사를 더욱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환경의 결정론적 역할은 부정된다. 다시 말해, 환경은 국가의 결정적 요소가 아닌 주요 요소로 취급되는데, 국가의 위치는 환경과 국가 간 상호관계로 간주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부정적인 요소로 보는 반도의 숙명류의 서사는 새롭게 독립된 한국에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 李鳳洙(1946a)는 동아일보에 게재한 기사에서 미군정의 교수요목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선을 대륙에의 육교(陸橋)적 존재라고 혹은 남방진출에 유리한 소지역에 불과한듯이 외국지리서 교육바든 것은 우리 자주 정신에 맛지 안는 그릇된 지리관(地理觀)인 만큼 단연 시정하여야 할 것”. 그가 ‘육교적 존재’를 문제삼는 것은 그 의미가 대륙과 해양 양 세력이 각각 해양 및 대륙 방면으로 진출하거나 문화 교류를 할 때 그들 국가 발전을 위해 한반도를 수단(‘육교’, ‘교통로’)으로 이용한다는 점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앞서 언급한 바대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온전히 적용할 경우 민족주의적 관점과 충돌하여 빚어지는 논리적 모순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육교’나 ‘교통로’ 같은 재현 양식은 陸芝修(1947), 朴魯植(1960), 박노식・김상훈(1967)에서도 등장한다. 더 본질적으로, 이러한 서사는 약소국으로 한국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통해 미래 발전을 위한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므로 지리적 위치는 국가의 필연적 경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盧道陽(1954)은 초기 지리학자 가운데 이를 가장 명확하게 언급한 바 있다.
“‘랏셀’의 學說을 端的으로 評하여 “素朴的 環境論”이라고 함도 一理있는 바이다. 그는 너무나 自然環境을 過大 評價하였다. 그의 學說에 의하면 우리 韓國은 永遠히 第二의 理由로 弱少國이 될것이다…우리 國土의 狹少・貧弱이 事實이라면 波濤인 國民은 아무리 깨어지고 부딪치어 文化 創造에 또는 富國 强兵에 힘써도 아무 소용 없을 것이며 그의 말과 같이 永續的으로 同一한 運命을 되푸리할 뿐일 것이다.” (앞의 글, 45)
한국의 지리적 위치로 설정된 중간성은 과거의 사례들을 비추어 한국과 한국인들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반도의 숙명’류의 비극적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국을 독립 국가로 설정해야 할 초기 지리학자들에게 있어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에 기초한 이러한 서사는 식민 경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부각되는 민족주의적 관점과 충돌하였다. 이에 따라 그들이 과거 배웠을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식이 온전히 적용되는 것은 어느정도 의문시되었다.
3) 반도의 숙명과 가능성의 공존
그러나 반도의 숙명은 거부되지 않았으며, 다음 단계의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전단계로서 기능하게 된다. 한국은 대륙 및 해양 세력과의 관계에서 ‘중앙적 위치’, ‘주변적 위치’, ‘중요한 위치’, 혹은 ‘근거지적 위치’ 등을 점유한다는 점으로부터 주변 세력이 그들 발전을 위하여 획득하려는 좋은 위치로 설명되었다. 그러므로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식민 및 침략 경험을 겪게 된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한 그것의 좋은 위치에 기인한 것이었다. 예컨대, 盧道陽은 이를 ‘근거지적 성격’(1954, 1964[1979])으로 설명하였다.
“韓半島의 位置는 大陸國이나 또는 海洋國의 活動의 根據地로서 利用되는 境遇도 있었다. 大陸方面에서 勢力을 얻어 그 威力을 海洋 方面으로 펼치려고 하면 우리 韓半島를 根據地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盧道陽, 1964[1979], 22)
이는 한국이 주변 국가들이 언제나 탐을 내어 침략하거나 점유하려 한 만큼 지정학적 가치를 가진 위치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요한 논리는 앞서 설명했듯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결정론적 논리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인간과 자연 간 관계를 자연의 인간에 대한 일방향적 영향에서 상호 영향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李鳳洙(1946b)는 한반도가 침략만을 감내해야할 숙명을 가지고 있는가를 역으로 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자답하였다.
“筆者는地理學徒에하나로서 亦是우리國土의自然的環境은 無視하고습지않으나 大體로自然環境이라는 것이 아무리人間의게制約을주어서 其程度의宿命的條件이될지라도 自然環境이 人間을支配하는 全部라고는 絶對로볼수없다” (앞의 글, 74)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상호작용으로 간주하는 것은 가능론(possibilism)을 이용함으로서 더 확고해졌다. 이들 가운데, 박노식과 노도양은 가능론을 능동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 1948년 정갑은 Blache의 책 『Principles of Human Geography』를 『人文地理學』(鄭甲(譯), 1948)으로 중역(重譯)하면서 자연과 역사 간 ‘상관관계’에 주목한 바 있었다. 역시 박노식은 지리교과서 『먼나라』(1948)에서 “지리적과정(地理的過程)에 있어 자연이 문화를 수동적(受動的)으로 규정하는 면과 인문이 능동적(能動的)으로 자연을 이용하는 면을 (동시에) 강조”한 바 있다. 이어 정갑이 중역한 『人文地理學』의 서평에서 “환경 자연의 사회집단에 대한 작용(랏첼의 영향)은 제일 주요한 것은 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朴魯植, 1949)라고 언급함으로서 환경결정론의 수정주의적 관점을 취했다. 이러한 그의 이해는 환경의 영향만큼이나 인간의 ‘에이전시’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新地理學敎授論』(朴魯植, 1959a)과 「文化와 自然의 相關性」(朴魯植, 1959b)에서 재차 확인하였다: “자연은 노동의 대상…자연은 변화되면서 그 고유의 물적 구조의 가능의 범위 내에서 노동을 규정하여 활동을 방향지어 주며 그것으로 의하여 사회생활의 계기가 규정”(앞의 글, 289). 그런 면에서, 그는 한국의 위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우리 동포들은 위치상으로 인해서 받은 지난 날의 불우한 역사를 인식하고 일치 단결하고 분발하여 다른 나라의 문화 발전의 교량(橋梁)이 되지 말고, 우리 문화를 사해(四海)에 뻗치도록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朴魯植, 1960, 2) (그림 1 참조)
“이들 국가에 의하여 침략을 받아 피해를 입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이러한 사실은 지리적인 관계에만 연유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역사적・사회적인 여러 조건에 기인함이 더 큰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위치적 조건은 그 활용 능력에 따라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전개될 수 있다…우리나라는 내륙 국가나 도시 국가와는 달리, 각 지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발전적 위치에 있다.” (박노식・김상훈, 1967, 6).
이들 인용문은 환경의 중요성을 여전히 유지한 채 가능론의 입장을 수용하여, 지정학적 위치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그림 1에서, 우리는 ‘서울’로부터 네 방향으로 뻗어가는 화살을 볼 수 있으며, 이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서 침략 당하는 한국이라는 비극적 서사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노도양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초기 지리학자들 가운데 지리적 환경을 형성하는 데 있어 인간의 의지와 역량을 가장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던 것 같다. 「自然環境論의 再檢討」에서 盧道陽(1947[1979])은 Ratzel의 환경결정론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주장하면서 자연환경을 ‘의지’와 ‘자유’를 가진 인간의 무대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地理學의 諸現象에 있어서의 歷史的 要素」(盧道陽, 1953)에서 지리 현상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당시 냉전 지정학의 양상에서 한국 전쟁 직후, 「所謂 「韓國中立化」地理學的 考察」(盧道陽, 1954)에서는 중립화 정책의 필요성을 논증하려 했는데, 한국이 ‘주변적 위치’, ‘근거지적 위치’, ‘대치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주장하였다. 즉, 그는 이 텍스트에서 한국을 약소국으로 가정하면서, 강대국이 되어야 주체적으로 대외정책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였다. 또한, 「韓國文化의 地理的 背景」(盧道陽, 1964[1979])에서는 역사적으로 대륙과 해양 사이에서 독자적 문화를 형성한 한국인의 역량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한국의 위치’의 핵심은 지리적 위치가 시간을 초월하여 주어진 것이며, 이는 주로 한국인에게 불행한 운명을 낳았음에도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유불리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위치를 기술하는 모든 텍스트는 한국의 위치가 가지는 중요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부각시키면서, 국가 발전을 위한 한국인의 노력과 역량을 촉구하고자 한다. 姜錫午(1971)는 『新韓國地理』에서 이 서사 구조를 압축적으로,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결코 位置란 地理的 조건의 결정적 작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國家 발전에 있어서의 위치적 조건은 그 國土에 살고있는 主民들이 이것을 어떻게 利用하느냐에 따라 價置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며, 國家의 절대적 위치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변함없으나 關係的 위치는 그 時代의 대외관계와 國力에 따라 여러 상태로 變化하게 되는 것이다.” (姜錫午, 1971, 10; 굵은 글씨 저자 강조)
그러나 전체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가능론을 이론적으로 수용하였다고 해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초기 지리학자들은 한국 역사를 공간화하는 서사 구조에서 환경의 과잉결정성을 피하려 했다. 그들은 해방 이후 새롭게 독립한 한국의 지정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이전에 습득하였던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식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포스트식민 한국에서 식민 경험에 대한 반발로서 민족주의적 관점은 그들이 이용하려 했던 지식과 인식론적으로 충돌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그 지식을 포기하지 않고 포스트식민 한국의 맥락에서 이를 ‘한국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는 환경과 인간 에이전시의 조합에서, 한국의 위치가 하나의 제약으로 작동하면서 한국인의 역량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서사 구조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냉전 지정학의 구조 속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역량을 ‘열등한 상태’로 놓고, 한국의 위치를 이용할 역량을 키워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교훈적 논리로 귀결하였다.
한국의 지정학 서사에서 결정론과 가능론 그리고 숙명과 이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모호함 혹은 공존은 특정할 수 없는 초기 지리학자들의 공유된 논리 속에서 형성 및 발전되었다. 본 연구의 분석 대상 중 일부가 중・고등학교 지리교과서임을 감안하면 초기 지리학자들은 이러한 서사를 한국 사회에 전파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추정해볼 수는 있지만, 이는 본 연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대신 그들의 텍스트는 포스트식민 한국 사회에 체현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담론적 실천의 한 사례로 국한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9)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은 근대 지리학이라는 최신 학문으로, 거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며, 초기 지리학자들은 그들 텍스트 속에서 이론과 실제 사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일치를 극복하려 분투하였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론에서 현 고등학교 지리교과서로부터 발췌된 인용문으로 돌아가보면 이러한 지정학 서사는 큰 변화 없이 이어져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지리학자들에게 자명한 지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10)
5. 결론
지리적 지식은 특정 엘리트에 의해 이동되고, 특정 장소에서 변형 및 (재)생산된다. 초기 지리학자들의 텍스트는 식민적 지식으로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을 포스트식민 한국의 지정학적 맥락에서 한국화하려는 지적 실천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이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담론적 실천을 통해 ‘한국의 위치’를 재생산했던 동안, 이는 여전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정치적 의사결정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과정의 지정학적 희망이 줄어듦과 동시에 일본의 무역 규제로 인한 지경학적 공포가 현실화되었던 2019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둘째,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 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초라하고 힘이 없으면, 한반도는 대륙에서도, 해양에서도 변방이었고, 때로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겪었던 지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해 나간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제74회 광복절 경축사, 2019년 8월 15일; 굵은 글씨 저자 강조)
이러한 지정학 서사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로 유형화된 바가 있지만(Radil and Lee, 2021),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선다. 대신, 우리는 한국화된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이 역으로 한국의 지정학을 서양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초기 지리학자들은 해방 후 식민적 유산으로서 근대 지리학의 지적 헤게모니와 포스트식민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 사이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상상력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새로운 상상력은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에 대한 ‘인식론적 불복종(epistemological disobedience)’ (Mignolo, 2006), 예컨대 ‘포스트식민 지정학(postcolonial geopolitics)’(Sharp, 2013) 혹은 ‘서발턴 지정학(subaltern geopolitics)’(Sharp, 2011)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언어와 문법을 지적 토대로 삼아 냉전 지정학의 구조 속에서 한국을 ‘강대국’과 ‘약소국’의 이분법적 범주 어딘가에 위치시켰다.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전유는 인식론적으로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냉전 지정학 하에서 또다른 식민 상태(스스로에 대한 열등성, 그럼으로서 미국 헤게모니의 손쉬운 수용)를 재생산하는 논리적 모순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포스트식민 한국의 지정학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문제삼고 주변국과 비교해가며 강대국이 되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약소국의 지정학’을 지속적으로 생산해왔던 것이다.
본 연구는 해방 이후 초기 현대 지리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미발굴된 여러 자료들을 통해 지리적 지식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서 한국 지리학사의 ‘블랙박스’를 채우는 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진함은 몇몇 부분에서 지적될 수 있다. 먼저, 본 연구는 초기 지리학자들의 텍스트에서 공유된 지정학 서사가 그들의 창작품인지 아닌지를 모호하게 처리하였다. 예를 들면, 만약 창작품이 아니라면, 일제강점기 동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시원적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해볼 수도 있다. 우리는 대신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의 지식에 대한 계보와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지리교육의 교차를 통하여 이를 추론하였다. 이는 향후 더 많은 사료를 발굴함으로서 가능할 것으로 본다. 두번째, 본 연구의 결론은 한국의 지정학 전통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약소국의 지정학’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은 포스트식민 한국에서 나타나게 되었는가? 본 연구는 그 이유를 환경결정론적 지정학 지식의 이동과 변형으로부터 찾고자 하였으나, 한국 지정학 전통의 근본적인 이론화와 실질적인 분석은 앞 문단에서 암시하였던 것처럼 ‘탈식민화(decolonization)’와 ‘탈냉전(de-Cold War)’에 대한 포스트식민 한국 사회 전반에서의 의문과 연결시킴으로서 가능하리라 본다(Chen,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