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0 April 2022. 119-139
https://doi.org/10.22776/kgs.2022.57.2.119

ABSTRACT


MAIN

  • 1. 서론

  • 2. 연구의 이론적 논의

  •   1)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중층성

  •   2) 분쟁지명 논의 속에서 간과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

  •   3) 들뢰즈의 리좀(rhizome) 개념과 지명의 이식

  • 3. 교토국제고의 정체성 변화와 교가에서의 ‘동해’ 지명

  • 4. 문화유산으로서 ‘동해’ 지명의 중층성과 혼종성(hybridity)

  • 5. 결론

1. 서론

2021년 3월 한국과 일본의 언론은 한 고등학교의 야구대회 출전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일제히 해당 소식을 다루었다. 소식의 주인공은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 ‘고시엔(甲子園)’에 첫 출전하게 된 교토국제고등학교다. 이 소식이 이례적으로 양국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교토국제고 교가의 가사가 한글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도 일본에서 쉽게 용납될 수 없는 지명인 ‘동해’로 시작하기 때문이다1). 고시엔(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학교들은 토너먼트 단계에 따라 경기의 시작 및 중간, 혹은 경기 후 교가를 부르게 되어있다.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동해’로 시작하는 한글 가사로 교토국제고등학교 출전 선수들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은 한일 양국 모두의 시선으로 볼 때 생경한 장면임이 분명했다.

본 연구는 교토국제고등학교 교가의 한글 가사가 ‘동해’로 시작하게 된 원인과 배경, 그리고 2021년 고시엔에서의 교가 제창이 불러온 한일 양국의 반응을 조명하면서 지명이 가진 사회문화적 역할과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속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사실 ‘동해’ 지명은 지난 한반도의 역사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화하였으며 그것이 지칭하는 수역의 범위도 시대에 따라 달랐음을 알 수 있다(김순배, 2013). 이는 ‘동해’ 지명과 연관된 다양한 영역에서의 실천이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는 유동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시사하며(김순배, 2020) 그것은 곧 ‘동해’ 지명이 경우에 따라 한반도를 넘어 다른 지리적 영역으로 이동하여 새롭게 정착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음을 반영한다. 이는 한반도라는 영역에 강하게 종속된 ‘동해’ 지명이 우발적인 계기에 의해 새로운 지리적 스케일과 영역으로 투영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명은 지리 정보 전달의 역할뿐만 아니라 장소정체성을 재현하고 공간 영역의 범위를 조정하는 역할도 담당한다(이영희, 2010). 교토국제고의 설립과 ‘동해’ 이름이 교가에 사용된 배경은 정체성과 관련한 지명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재일한인단체인 교토국제학원은 1947년 일본에 남은 조선인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민족학교인 교토조선중학교를 개교했으며 1963년 고등학교를 병설 개교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단과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의 사회적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두고 있었던 만큼 이들에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재현은 학교의 성공적 운영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었다2). 학교를 대표하는 교가에 ‘동해’ 지명이 수록된 것은 조선인 정체성의 유지와 관련한 학교 설립 동기와 연결하여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정체성을 재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지명은 집단의 정신적 자산을 대표하고 구성원에게 꾸준히 집단의식을 심어준다(Mueller and Schade, 2012, 84). 이는 지명이 가진 문화유산으로서의 성격을 조명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문화유산 또한 마찬가지로 문화정체성 및 사회적 화합의 강화 등과 같은 집단적 정신 가치의 재현과 강한 연결고리를 가지기 때문이다3). 더 나아가 문화유산은 집단의 존재 의식을 유지하고 사회적 입지의 보호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특정 집단의 인권 문제와도 연결된다(Silverman and Ruggles, 2007).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았던 조선인들은 여전히 사회적 지위 및 국적 취득과 관련한 사회적 차별을 마주해야 했다(조상균, 2007, 364). 공동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선인들의 부족한 교육 수준을 상승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교토국제학원과 중・고등학교는 조선인 학교로서의 민족정체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으며 ‘동해’ 지명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 도구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문화유산으로서의 ‘동해’ 지명은 조선인 민족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교가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교토국제고 교가가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제창되었던 장면은 문화유산 및 문화유산으로서의 지명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과 한반도에 국한된 민족정체성 너머에 무언가가 존재함을 역설한다. 흔히 ‘동해’ 지명은 한국인만의 전유물이며 일본인에게는 결코 용납되거나 사용되지 않을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 교토국제고 학생의 대부분이 일본인이며 고시엔에서 ‘동해’ 이름이 들어간 교가 제창을 고수해야 함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주체가 일본인 선수들이었음은 특기할만하다. 이는 하나의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이 누군가의 전유물이자 특정한 장소에만 통용된다는 생각을 정면으로 위배한다(Baynham et al., 2016). 특히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특정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만 적용될 수 있는 문화유산의 고집은 점차 그 주장의 정당성을 잃고 있다(Holtorf, 2011). 한 국가와 집단 내에서도 다양한 문화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가는 과정에서 문화유산을 전유하고 활용하는 주체들은 점차 다양하게 분화한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쓰임과 해석이 사회구조와의 관계 설정과 교류에 따라 활발하게 변화될 수 있음이 고려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이렇듯 끊임없는 변화와 조정의 과정을 겪게 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지명을 고찰하고자 한다. 교토국제고 교가는 이러한 중층적 여지를 가진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속성을 잘 반영하는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본 연구는 해당 학교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함으로써 다음의 사항들을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로, 본 논문은 교토국제고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학교와 재단이 걸어온 흔적을 살펴봄으로써 학교 정체성의 변화를 조명하도록 한다. 교토국제고는 조선인 민족학교로 출발하였지만, 반세기 넘게 일본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운영의 성격이 조정되어 왔다. 이는 일반 사립고로의 전환, 야구부 창단, 일본인 학생 모집 등의 과정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조선인 민족학교로서의 정체성은 약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교가에 포함된 ‘동해’ 지명을 받아들이는 학교 구성원의 인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교토국제고의 변화와 관련하여 두 번째로 살펴볼 부분은 문화유산의 중층성과 지명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지명은 단순히 지리 정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능적 수단에서 벗어나 인간의 장소 인식, 정치적 아젠다의 표현, 장소 마케팅과 같은 경제적 동기, 문화적 정체성의 강조 등 다양한 인간 활동과 궤적을 공유한다(주성재, 2018a). 이러한 지명의 사회문화적 특징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정의와 강하게 연결된다. 유네스코(UNESCO, 2003)에 의하면 문화유산은 “공동체, 집단,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 또는 사회적 응집을 구성하는 중요한 매개”라고 정의한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문화적 속성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표현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지명의 개념적 특징은 따라서 문화유산의 정의를 충실하게 따른다. 기계적 속성과 거리가 먼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특징은 또한 지명이 사람과 함께 늘 소통하는 가운데에서 그 해석과 쓰임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문화유산으로서 하나의 지명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전유물 혹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도 공유될 수 있음을 반영한다. 또한 시대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지명의 해석과 쓰임도 유동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가 마지막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부분은 문화유산과 지명의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속성의 이해 및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 지명이 한반도를 넘어 타국의 다른 집단에게도 전유될 가능성을 들뢰즈(Deleuze)의 논의를 바탕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치적 보수성이 강한 일본에서 ‘일본해’ 지명과 갈등 양상을 보이는 ‘동해’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학문적인 시선으로 접근했을 때 교토국제고의 교가 제창이 일본 전국에 전파를 탐으로써 때아닌 ‘동해’ 지명이 일본 국내의 관심을 받게 된 사례는 지명과 문화유산의 중층적 속성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역 고등학교의 전국 야구대회 출전을 계기로 ‘동해’ 지명이 교토 지역사회와 일본에서 인식되는 과정은 문화적 속성의 전파와 지역화(localization)에 대한 개념적 틀을 제공하는 들뢰즈의 리좀(rhizome) 논의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일본인에게 생소하고 경우에 따라 적대적인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는 ‘동해’ 지명이 고시엔과 같은 우발적인 계기를 통해 어떻게 일본 사회에 이식되고 전유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은 두 국가의 문화적 거리감을 극복하는 과정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내 지엽적이고 국지적인 범위에서 동해 지명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지명의 중층적 속성과 유동성의 여지를 일깨운다. 또한 교토국제고 사례는 기계적이고 고정적인 개체가 아닌 사회적 생리의 흐름과 관계를 맺는 지명의 문화유산 속성을 확인시켜준다. 이는 궁극적으로 ‘동해’ 지명이 한반도를 넘어 다른 영역과 주체들에 의해서도 새로운 사회적 의미와 역할이 형성될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동해’ 지명의 세계적인 확산을 위해 그동안 접근되었던 방식은 세계지도에서의 표기 횟수와 같은 양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동해’ 지명이 다른 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모색해보는 작업도 ‘동해’ 지명의 세계화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교토국제고 교가는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이 다양한 시간과 공간적인 맥락 속에서 이질적인 주체들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고 쓰여질 수 있는 중층적 속성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지명과 정체성의 관계를 규명해왔던 그동안의 연구들이 갈등 지명에 초점을 맞춰왔던 데 반해 본 연구는 ‘동해’라는 하나의 지명 안에 다양한 집단의 중층적 전유가 존재함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의의로 볼 수 있다.

2. 연구의 이론적 논의

1)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중층성

지명과 정체성의 유동적 성격은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중층성과 함께 이해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은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무형 문화유산에 관한 유네스코의 설명을 참고할만하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무형 문화유산은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들의 환경, 자연, 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해온 각종 지식과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을 아우른다.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집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로 구전에 의해 전승되어왔다4).”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집단과 주변 요소와의 ‘상호작용’과 끊임없는 ‘재창조’를 통한 무형 문화유산의 형성이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문화유산은 집단의 헤게모니와 정치적 메시지를 통해 의미와 해석이 변화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 해석의 유동성과 중층성은 일본의 산업화와 조선인 강제징용의 상반된 역사성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일본의 군함도 사례에서도 확인된다(윤지환・김숙진, 2020). 군함도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와 다카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 및 항구, 야하타 제철소 등과 함께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의 이름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유산군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에서 비서양권으로 이전되었던 조선, 제철, 광산과 중공업 분야에서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과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예증하였다는 점이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되었다(윤지환・김숙진, 2020, 116; 키무라 시세이・송숙정, 2016, 321-322). 일본 정부와 나가사키 지자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에 부합하는 군함도의 산업혁명 역사성을 취사선택하여 개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군함도에 기대하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함도에 내재한 메이지 시대의 역사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라는 권위적 타이틀과 함께 다른 역사적 흔적과 장소적 가치를 압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를 메이지 산업혁명과 함께 유산의 성격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청원했으며 유네스코는 이를 받아들여 강제징용 역사 추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이행경과보고서 제출을 2019년 요구했다(윤지환・김숙진, 2020, 117). 이러한 문화유산 성격의 중층성은 관련 집단으로 하여금 꾸준히 문화유산에 대한 해석의 충돌과 상호작용, 그리고 역사성의 재창조를 유발한다. 문화유산을 둘러싸고 다양한 집단들이 벌이는 해석상의 갈등은 결국 문화유산과 집단적 정체성의 연결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문화적 입지와 헤게모니적 우위를 점하려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유산 해석의 유동성과 중층성은 물질적 형태를 갖추지 않은 무형 문화유산의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무형 문화유산은 기본적으로 여러 주체나 집단의 문화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형성된다(Arizpe, 2004, 131). 특히 세계화가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서 여러 이질적 주체들의 문화적 요소는 더 빈번하게 융합되고 혼합된다. 이와 관련해 Bortolotto(2007, 21)는 우리가 무형 문화유산의 ‘무형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재현의 방식에서 드러나는 무형 문화유산의 형성 ‘과정’과 ‘활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무형 문화유산의 형태나 재현 방식뿐만 아니라 그것의 의미와 해석도 사회적 맥락의 끊임없는 변화와 연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는 여러 기준을 복합적으로 적용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드러낸다고 판단되는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Labadi, 2013, 54). 이러한 원칙은 문화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두루 고려하여 사라져가는 무형 문화유산, 특히 소수민족의 무형 유산을 유네스코의 권위를 통해 보존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무형 문화유산 형성의 과정적(progressive)이고 수행적(performative)인 특징을 고려할 때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등재는 유산의 경직성 여지를 내포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유산 등재 노력은 유네스코의 기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각국의 전략은 유산의 성격을 특정한 역사성이나 대중적 기억으로만 고정시킬 수 있다.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문화유산 성격의 중층적 속성이 간과된 사례는 조선인 강제징용의 흔적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일본 군함도 산업혁명 유산에서도 드러난다(윤지환・김숙진, 2020). 문화유산의 본질을 구성하는 중층적 속성을 간과한다면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 대한 포용적 수용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구의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가 어렵다. 또한 문화유산과 사회적 주체는 늘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여러 집단의 수행적(performative) 경과에 따라 문화유산의 성격과 형태, 지향점 및 해석은 항상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Arizpe, 2004, 131; Bortolotto, 2007, 28).

이러한 무형 문화유산의 중층성은 집단적 기억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Arizpe(2004, 131)에 따르면 무형 문화유산은 역사적 과정에서 다수 집단의 상호 영향 속에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Kovács(2020)는 탱고의 예를 들며 여러 집단의 기억과 문화적 중층성을 바탕으로 한 무형 문화유산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탱고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이민자 집단의 음악과 아르헨티나 토착 음악이 결합하여 탄생한 장르이다. 유럽의 이민자들은 고향에서의 감성과 체험을 음악적 형식을 통해 아르헨티나로 이식하였으며 아르헨티나에 토착하던 리듬감과 멜로디라인은 탱고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탱고는 아르헨티나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음악 및 춤의 양식과 관련한 많은 논의와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Kovács, 2020, 131). 이는 아르헨티나 중심으로 이뤄진 탱고의 정체성과 뿌리가 유럽에서도 공유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Kovács(2020, 134)는 이러한 무형 문화유산의 중층성과 유동성이 존재함에도 단일한 특정 요소에만 천착하여 음악적 특성을 고정시킨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방식을 비판한다. 이는 무형 문화유산의 진화적 과정과 여러 집단의 참여적 기능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집단적 기억과 삶의 재현 방식으로서 무형 문화유산의 성격은 지명의 속성과 연결된다. 지명을 무형 문화유산으로 보는 관점은 여러 학자의 견해로 뒷받침된다(David, 2013; Cantile and Kerfoot, 2016; Hakala et al., 2015). 이들이 공통적으로 밝히는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속성은 크게 집단과 공간의 기억을 담는 매개체, 정체성 재현의 수단, 지역 문화 보존의 구심점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지명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기능과 특징은 무형 문화유산의 속성과 관련하여 유네스코에서 강조하는 정체성, 상호 교환과 영향, 문화적 재현의 수단 등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지명은 무형 문화유산의 기능적 특징을 상당 부분 포함하는 문화적 재현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중층적 속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명 역시 다른 문화유산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구성물이자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윤지환・김숙진, 2020, 117). 일반적으로 문화유산은 특정 집단, 혹은 복수의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수단이자 환경과의 상호작용 가운데 발전시킨 삶의 적응 양식으로 이해된다(Jenkins, 2008; Ashworth, 2013; Graham and Howard, 2016). 이는 사회문화 집단이 자신들의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문화유산을 정교하게 구성하고 활용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국제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의제에서 문화유산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결국은 민족 집단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문화유산의 가치가 반영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류제헌, 2016, 205). 전 세계적인 경제, 사회, 환경 등의 균형을 강조하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백인 중심의 서구문화와 가치관에 의해 소멸되고 있는 소수민족 문화의 보호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민족은 자신들의 사회문화적 입지와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을 상징적이고 실용적인 수단으로 활용한다. 문화유산과 관련한 이러한 목적성과 실용성은 그것을 전유하는 집단으로 하여금, 그것이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문화유산의 의미를 조정하고 형태적 요소를 변형시키도록 한다.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은 이러한 소수민족 집단의 정체성 보호와 강화에 활용되며 사회문화적 요구에 따라 새롭게 구성 및 조정되는 과정을 동반한다.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지명은 크게 형태적 조정과 의미적 조정의 영역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특정 집단은 시대적 변화와 사회문화적 요구에 따라 문화유산의 형태를 조정하고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호주의 울루루(Uluru)는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문화유산과 지명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호주 대륙 중앙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로 평가받는 울루루는 1872년 유럽의 탐험가 어니스트 자일스(Ernest Giles)와 윌리엄 고스(William Gosse)에 의해 발견된 이후 당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총리 헨리 에어즈 경(Sir Henry Ayers)의 이름을 따 오랫동안 에어즈록(Ayers Rock)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1983년 연방정부가 호주 원주민 집단에게 바위의 소유권을 이전한 후 원주민 단체는 암괴와 관련한 전통적 신앙에 따라 울루루로 개명하였다(Toyne and Vachon, 1984). 이러한 개명 사례는 자연에 대한 서구 백인 사회의 정복 의식을 탈피하고 원주민의 “경관에 대한 권리”와 신성 공간의 회복에 대한 사회적 캠페인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다(Walliss, 2011). 이는 곧 지명의 형태적 조정을 통해 원주민의 사회문화적 지위와 권리, 정체성 회복을 꾀한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는 지명의 형태를 조정하기보다는 의미와 해석적 영역에 관계된 변화가 발생한 사례라는 점에서 기존의 지명-정체성 연구와는 차별화된 맥락을 제공한다. 지명을 둘러싼 이러한 형태적, 의미적 변화는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이 주체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수행적(performative)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Waitt, 2000; Zhu, 2012; McDowell, 2016; Sather-Wagstaff, 2016). 다만 교토국제고 교가 사례는 기존의 지명 사례들이 빈번하게 보여줬던 형태적 조정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물론 지명의 형태적인 변화는 의미의 조정을 동반한다. 병기되어 사용 중인 호주의 울루루와 에어즈록이 비록 같은 장소를 지칭하지만 두 지명 형태는 분명 다른 사회문화적 뉘앙스를 내포한다. 또한 소련 시절 독재자 스탈린의 우상화 정책에 따라 지정된 도시 이름 ‘스탈린그라드’는 스탈린의 사후 ‘볼고그라드’로 개칭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황의 최대 분수령이자 격전지였던 당시 이름 ‘스탈린그라드’를 전쟁기념일 기간만이라도 상징적으로 사용하자는 푸틴의 정책은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에 대한 사회문화적 요구와 그에 대응하는 형태적 전환의 변화무쌍함, 그리고 지명 의미의 유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Yanushkevich, 2014).

2) 분쟁지명 논의 속에서 간과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

정체성 재현의 수단으로서 지명은 사실 문화유산과 깊은 관련을 맺는 영역이지만, 아직 정체성과 지명, 문화유산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일단 정체성과 지명의 관계에 대해서는 흑인 인권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와 연구 성과가 이어져 왔다(Guyot and Seethal, 2007; Rose-Redwood, 2008; Tretter, 2011; Alderman and Inwood, 2013; Duminy, 2014). 그동안 있었던 정체성 재현의 수단으로서 지명에 대한 논의는 문화유산과의 연관성 규명보다는 현실적인 흑인 인권 문제에 있어 지명의 역할에 천착하는 경향이 컸다. 미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인종 차별과 흑인 인권 문제로 사회문화적 혼란을 겪었던 국가에서는 지명이나 거리 이름에 남겨진 백인 우월주의의 색채를 지우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이름을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5)를 딴 거리명(street name)으로 대체하는 운동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던 그의 이름은 미국 흑인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입지를 대표하기도 했지만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지역 공동체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이름을 통해 흑인 정체성으로 씌워지는 일을 달갑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Alderman and Inwood, 2013, 213). 이는 지명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하게 대표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불쾌감과 불협화음의(dissonant) 씨앗을 던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Alderman, 2016, 195). 달리 말하자면 중층적으로 이뤄진 장소의 정체성과 성격은 지명이라는 재현 수단을 통해 갈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집단의 관점과 사회문화적 입지에 따라 하나의 장소에도 여러 지명이 부여될 수 있는 여지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논의는 정체성과 복수 지명의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발견할 수 있지만, 해당 연구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은 바로 하나의 지명을 공유하는 여러 집단의 중층적 해석과 전유의 문제이다.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 지명과 미국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거리명 이슈는 공통적으로 지명에 내재한 중층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사례 간 나타나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중층성의 발현이 교토국제고와 같이 하나의 지명으로 수렴하느냐 아니면 흑백 양 인종 집단이 내세우는 지명처럼 갈등과 논쟁으로 귀결되느냐의 문제이다. 후자의 경우 하나의 공간(거리)에 대한 장소성 재현과 인권이라는 문제도 엮여있어 교토국제고 사례보다 지명의 중층적 요소가 더 예민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중요하게 포착해야 할 사항은 지금까지의 사회문화적 사안과 관련한 지명 논의가 집단 간의 갈등과 논쟁적인 부분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갈등 조정에 따른 지명 개정(renaming)이나 병기(dual naming) 등이 지명 연구의 주된 시사점이자 중심 주제였다고 볼 수 있다(Marin, 2012; Short and Dubots, 2022). 이와 달리 본 연구에서 포착한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 지명 사례는 하나의 이름이 시간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집단에 공유되고 여러 형태와 의미로 분화하는 구성적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문화유산 및 정체성과 관련한 지명 논의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이자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사회 구성적 속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집단의 기억과 관련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은 사회구조 및 주체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한다. 지명과 연계된 정체성과 장소인식이 문화유산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주로 국외의 지명 논의에서 지명의 정체성이 대부분 인권 문제로만 치환되었던 현상에 기인한다(Alderman, 2003; Guyot, and Seethal, 2007; Rose-Redwood, 2008; Duminy, 2014). 지명 사안을 다뤘던 국외의 많은 지리학 논의들은 흑인의 인권 문제에 천착한 나머지 지명 자체가 가진 문화유산으로서의 특징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연구들에서 간과되었던 부분은 지명이 끊임없이 사회적・문화적 구조와 상호작용하면서 조정되고 구성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속성을 가진다는 점과 지명이 탈영토화・재영토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주체에 의해 전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도시들은 지명의 이식과 공유 사례가 다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중층적이고 혼종적인 속성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사회적 구성물로서 지명의 속성을 밝히는 작업은 사회 집단과 주체의 의도에 의해 끊임없는 조정의 과정을 겪는 문화유산의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권선정(2004)김순배(2010)의 연구는 사회적 구성물로서 스케일의 정치와 지명의 특성을 연결하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 및 문화적 실천과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적 속성으로서의 지명의 성격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와의 접점 및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행위에 따라 복수의 지명이 경합과 조정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 주성재(2018b)의 연구는 지명의 중층적 속성에 대해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유엔의 노력(주성재, 2011)에 발맞추고 문화유산과 지명 아젠다를 적용하려는 국내의 실천(김순배, 2021)은 지명의 문화유산 성격에 대한 논의를 주요한 학문적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무형 문화유산으로서의 지명이 가진 이동성(mobility)은 천이와 정착, 적응과 조정 등의 과정을 통해 지명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명이 이동하고 새로운 곳에 착근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이름에 다양한 정체성과 상징, 장소성 등이 축적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중층성과 혼종성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지명에 관한 논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본질적인 속성을 놓치게 된다. 지명의 이동과 착근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층성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게만 강하게 귀속된 전유물로서의 지명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다양한 해석과 색깔의 여지를 남겨놓는 구성물로서의 지명을 재고(再考)하게 한다.

3) 들뢰즈의 리좀(rhizome) 개념과 지명의 이식

리좀의 비유는 들뢰즈가 과타리(Guattari)와 함께 서구 자본주의와 학문 체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절적 이해와 분류체계의 모순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활용되었다(Deleuze and Guattari, 1987). 리좀은 사전적으로 땅속을 통해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뿌리줄기 식물을 의미한다(그림 1). 그림에서 반영되듯이 들뢰즈가 본 문화라는 존재는 전파 과정에서의 시작과 끝을 특정하기 어려우며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의 토양과 환경에 적응하는 가운데 그 형태와 속성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이러한 리좀의 특성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 사회의 연결성과 상호작용을 반영한다. 존재들 간에 발생하는 끊임없는 ‘흐름(flow)’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 접촉의 영역에서 이뤄지며 이는 으레 생각하는 이상의 파급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Deleuze and Guattari, 1987, 20). 사회의 하부 영역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흐름은 새로 유입된 존재와 기존의 토착화된 존재 간의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만남과 융합을 일으키며 이는 문화적 양식과 형태의 끊임없는 ‘이종(heterogeneity)’을 만들어간다(Deleuze and Guattari, 198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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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리좀에 관한 들뢰즈와 과타리의 철학적 개념: 리좀의 생물학적 특징을 그린 도식에서 천이와 정착, 적응과 로컬라이징(localizing)을 대표로 하는 문화 전파의 속성이 드러난다.
출처: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https://literariness.org/2017/04/26/the-philosophical-concept-of-rhizome/

들뢰즈와 과타리가 주장하는 문화 전파의 리좀적 특성은 한 집단이 전유하는 문화유산의 영역, 특히 형태가 없는 무형 문화유산의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하나의 일정한 영역에서 형성된 문화유산은 사회 주체의 자유로운 공간 이동과 함께 다른 토양으로 전파될 기회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문화유산은 원래의 형태 그대로 다른 토양에 이식되기보다는 그림 1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각각의 환경과 맥락에 따라 조정되는 가운데 전수 받을 당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 형태든 의미든 원본의 모습이 일부 남아있을 수는 있지만 다른 토양으로 이식된 상황에서의 문화유산은 이미 새로운 주체와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되고 새롭게 해석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의 천이와 정착은 주체들의 교류와 이동을 통해 우발적인 계기로 이뤄지며 이는 끊임없는 문화유산의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와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를 일으킨다(Deleuze and Guattari, 1972, 435-436). 이러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가지는 시사점은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 확실한 경계와 분류체계, 그리고 소유권의 확실한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하나의 문화유산은 복잡한 리좀의 네트워크를 통해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하는 과정에서 원본과 아류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며 이러한 현상이 반복될수록 문화유산의 소유와 해석은 더욱 중층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하나의 문화현상이나 유산을 바라보는 일은 기존 서구의 분류학적, 계보학적 전통에서 강조되었던 선형(linear)의 전승과 단일함, 그리고 순수성(genuinity)의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거의 모든 문화적 존재가 이질적 요소들의 집합(assemblage)과 혼종성(hybridity), 그리고 중층성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Deleuze and Guattari, 1987, 22-23).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동해 지명이 한반도를 넘어 일본의 교토 지역사회에 인식되었던 과정은 문화유산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동안 ‘동해’라는 지명은 한반도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 국가와 연계된 정체성이 강했던 동해 지명이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 이식되고 전유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서 고착화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은 그 집단의 영역을 벗어나 탈영토화하는 일이 드물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이름이 가진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성과 정체성이 백인 사회에도 이식되어 전유되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사회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두 집단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라는 거리명으로 공간적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은 지명의 탈영토화가 쉽게 이뤄지지 않다는 사실을 반영한다(Alderman, 2003, 164).

미국의 흑백 갈등만큼이나 오랜 세월 잘 봉합되지 않았던 한국과 일본의 국민적 정서는 여러 문화적 교류의 장애로 작용해왔다. 특히나 ‘동해’와 같은 사회적, 정서적 예민함까지 갖춘 지명은 일본 사회에서 더더욱 받아들여지기 힘든 한국만의 유산으로 오랜 세월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전파가 어려운 관계적 조건 속에서도 들뢰즈와 과타리가 언급하는 우발적인 ‘흐름(flow)’은 이질적 토양과의 연결성과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된다(Deleuze and Guattari, 1987, 22-23). 특정한 방향성 없이 흘러가는 문화적 실천은 역사 속의 우발적 계기를 통해 다른 지역에 이식되면서 현지의 사회문화적 토양 속에 이질적인 모습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동해’ 지명이 교가를 매개로 일본 지역 고등학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유산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리좀의 천이와 정착을 통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기제를 따라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에서의 구조적인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로 학교 재단을 설립하였고 이는 ‘동해’ 지명이 일본의 한 교육기관과 지역사회에 정착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다.

3. 교토국제고의 정체성 변화와 교가에서의 ‘동해’ 지명6)

교토국제고의 정체성과 ‘동해’ 지명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토국제고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인 1947년 일본 교토의 재일 한국인 교포들은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함께 교토한국중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1958년 학교법인 ‘교토한국학원’을 설립하고 1963년 교토한국중고등학교를 병설 개교하였다7). 일본의 공식 교육시스템만으로 조선인 자녀들의 교육 수요 충족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점은 일본 사회에 뿌리 깊었던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의식에는 다양한 원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한 연구로는 이승희(2016)를 꼽을 수 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이전부터 존재했던 차별의식이 일본 사회의 수면 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일본 이주가 급격히 증가한 이후로 보고 있다. 정확히는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정점에 이른 1917년 이후로 전쟁 지원을 위한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하자 일자리를 찾고자 떠난 조선인의 일본 입국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매년 증가했던 일본 내 조선인 이주자 수는 1940년 119만 명을 넘어 전쟁 끝 무렵인 1944년에는 2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이승희, 2016, 78). 임진왜란 직전 조선을 정탐했던 일본인들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뿌리 깊은 경멸 의식은 일제강점기 ‘위험’ 요인으로 진화하여 조선인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로 이어지게 되었다(이승희, 2016, 79). 특히 이러한 법적・제도적 차별은 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일본에서 출생하여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일본 사회에 동화한 조선인 자녀를 공적 교육시스템에서 배제한 까닭으로는 “언제 귀국할지 알 수 없다,” “조선인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조선인 중에는] 범죄자가 많기 때문,” 등의 이유가 거론되었다(이승희, 2016, 81).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구조적 차별은 한국인 스스로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고자 하는 인식을 유발했으며 1947년의 교토한국중학교 설립은 이러한 당시 일본 사회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차원으로 봤을 때 교토한국학원이 조선인 민족정체성과 함께 출발했음은 쉽게 짐작되는 바이다. 실제로 학교법인 홈페이지는 소개를 통해 ‘민족교육의 장’이자 ‘한국인 정체성 교육을 위해 설립된 민족학교’로서의 취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민족정체성의 강화는 특히나 소수 민족공동체에 배타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사회일수록 소수집단 본인들의 권리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Hooker, 2005).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드러냈던 일본 사회에서 한인 공동체는 본인들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적극적인 재현 행위를 통해 사회적인 위치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려 했으며 교토한국학원의 설립과 민족정체성의 강조는 이러한 시도의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인의 정체성 교육과 민족공동체의 색채를 드러내기 위해 교토한국학원이 취했던 요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에는 다양한 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학교의 이름, 학교의 특성을 상징하는 동식물 혹은 랜드마크, 교칙이나 교훈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민족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교토한국학원이 선택한 것은 교가였다. 특히 해외에 개교한 민족학교일수록 교가를 통해 민족정체성을 강화하고 타지에서의 고단한 삶을 공동체성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안병삼, 2013; 안병삼・임영언, 2018). 이는 교가가 학교 교육의 방향성, 학교의 역사, 기대하는 인재상 등을 강하게 반영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승윤희, 2014, 2). 교토국제고의 교가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으로 시작한다. 가사에 드러나듯 교토한국학원은 동해 너머 조선인의 본향에 대한 인식과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을 강조한다. 가사 자체도 한글로 쓰여 일본 내 한국인 민족학교로서의 성격은 더욱 두드러진다. 해당 가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동해’ 지명이 교가에서 민족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등장하고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가사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본향인 한반도로부터 바다를 건너 일본 땅으로 온 고대의 우리 조상을 언급하면서 이를 재일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학교로서의 자긍심으로 연결한다. 이를 통해 유추할 때 교가에 사용된 ‘동해’ 지명은 바다를 건너온 한민족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냄과 동시에 본향에 대한 지리적 뉘앙스를 일깨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재일조선인 교육기관으로서 교토한국중고등학교의 정체성은 이후 학교가 일본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겪게 된다. 사실 변화를 위한 노력 없이는 학교의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이성(2016)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자국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입장 대신 귀화의 적극적인 권장을 통해 일본 사회에 동화시키려는 구상을 펼치게 된다. 이는 조선인으로서도 일본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구조적인 차별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민족성을 기반으로 한 학교 정체성의 고수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인 정체성의 확립으로부터 출발한 교토한국학원의 존재 의미와 입지의 축소는 그대로 학생 수의 감소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교토한국학원은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를 근거로 하여 한국과 일본 양국으로부터 학력을 인정받는 국제 사립학교 체제로 전환하였다8). 이에 따라 재단과 학교의 이름도 각각 ‘교토국제학원’과 ‘교토국제중・고등학교’로 바뀌게 된다. 비록 한국인 학교로서의 정체성은 버리지 않았지만 국제 사립학교로의 전환을 통해 교토국제학원은 재일 한국인 학생과 더불어 일본인 학생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게 된다. 그 결과 2021년 학교 정원 131명 중 일본인 93명, 재일 교포 37명으로 일본 국적의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최근 화제를 모은 교토국제고 야구부 40명은 이중 국적자를 포함하여 전원이 일본 국적을 가진 학생으로 이뤄지게 되었다9).

이는 교토국제고가 더는 조선인의 정체성만을 가진 교육기관으로 보기 힘든 조건을 제공하게 되었다. 실제로 해당 학교는 ‘한국’에서 ‘국제’로의 명칭 변경을 통해 이미 학교의 정체성이 민족에 기반한 것이 아닌 일본인을 포함한 국적의 중층성과 다양한 문화의 교류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인 학생 수의 감소와 학교 존립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마련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으며 학교는 일반 교육기관과의 차별화를 위해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문화 동아리와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10). 교토국제고의 야구부도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1999년 창단되었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학생 수를 늘려보려고 만든 야구팀이었는데 창단 22년 만에 어엿한 야구 명문고로 거듭난 것 같아 기쁜 마음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1).

여기서 본 연구는 2021년 봄과 여름 두 차례 고시엔에 출전한 교토국제고 학생들의 교가 제창 의미를 새롭게 환기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바이다. 일단 전원 일본 국적인 교토국제고 야구부 구성원 중에는 일부 재일 교포로서 한국과 일본의 이중 국적을 취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어린 이중 국적 선수들이 부모를 따라 여전히 강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들은 ‘동해’ 지명이 포함된 한국어 교가를 그 어떤 국가적 맥락으로 치환하지 않고 오직 학교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면서 제창했다는 점이다. 일본 스포츠언론인 뉴스포스트세븐의 2021년 8월 27일 자 보도에 따르면 교토국제고 야구부 관계자는 “고시엔에 나갈바에야 교가는 제대로 부르려고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연습”했다고 밝히고 있다12). ‘동해’ 지명은 교토국제고의 입장에서 애초에 민족정체성 재현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흘러 민족에 기반한 특수학교가 아닌 2004년 일반 사립학교로 인가받으면서 ‘동해’가 가졌던 조선인의 본향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교가의 시작을 알리는 ‘동해’ 지명이 학교의 차원에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일본인 학생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현재 ‘동해’ 지명이 포함된 교가는 새로운 의미를 통해 그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2021년 고시엔에 출전하면서 교토국제고의 한글 교가가 일본에서 전국적인 주목을 이끌고 설왕설래가 발생한 이후 학교 구성원과 학부모들이 교가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고 ‘동해’ 지명을 옹호하던 반응을 통해 잘 증명되었다. 일단 교토국제고의 2021년 고시엔 출전 추이와 교가 제창의 과정을 간략하게 검토하고 ‘동해’ 지명이 주목을 받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한다.

일본의 국기(國技)이자 국민적인 인기 스포츠로 여겨지는 야구는 프로리그만큼이나 고교선수권대회도 일본에서 높은 관심을 끈다. 일본은 전국 고등학교 중 약 80%가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야구선수권대회인 고시엔 진출은 고교 야구선수들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영광스러운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13). 그만큼 고시엔 진출은 그 자체로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며 전국 3,940개 고교 팀 중 치열한 지역 예선을 뚫고 올라온 1%에 해당하는 32개 팀들만이 본선에 오를 수 있다14). 이러한 지위와 난이도를 가진 대회에 고작 131명의 전교생을 가진 교토국제고등학교가 봄과 여름 대회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 내에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음이 분명하다. 대회는 1년 중 크게 봄과 여름 고시엔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봄 대회는 지역대회의 성적을 고려하여 야구 연맹 임원들의 의견과 함께 지역 안배 차원으로 출전팀들이 선발된다. 이에 반해 여름대회는 야구 연맹 임원들의 의견과 지역 안배를 배제한 채 순수하게 지역 토너먼트를 통과한 팀들만이 출전할 수 있으므로 여름대회의 인지도와 사회적 관심, 인기가 봄 대회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15).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봄과 여름대회 모두 일본의 전국적인 인기와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고시엔 본선에 출전한 팀들은 토너먼트를 거치면서 매 경기 교가를 제창할 기회를 얻는다. 토너먼트 단계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경기의 중간 두 팀의 교가가 제창되고 승리를 거둔 팀은 경기 후 또 한 번 교가 제창의 기회가 주어진다. 2021년 봄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한 교토국제고는 더 높은 관심도를 보이는 같은 해 여름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고시엔에 처음으로 출전한 학교가 봄과 여름 두 대회 연속으로 예선을 통과하여 토너먼트에 진출하자 일본 고교야구의 많은 관계자와 야구팬들은 놀라워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일본 사회의 주목을 모은 것은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제창한 한글 교가와 노래 속 ‘동해’ 지명이었다. 봄 대회의 16강과 여름대회의 4강에 진출하면서 교토국제고의 교가는 계속해서 운동장에 울려 퍼졌으며 선수들의 교가 제창 장면은 주관 방송사인 NHK에 의해 일본 전국으로 송출되었다(그림 2).

그동안 고시엔의 역사에서 한글 교가가 제창된 사례는 교토국제고가 처음이었다16). 그것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동해’ 지명이 교가의 시작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일본 사회와 여론에 여러 의미로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NHK의 고시엔 중계방송은 출전 학교의 교가 가사를 수정 없이 그대로 자막을 통해 내보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암묵적 관행과 원칙을 교토국제고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해당 학교 교가만의 특성상 부담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다. 이와 관련하여 교토국제고 구성원들은 ‘동해’ 지명으로 시작하는 한글 교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일본어 교가로 바꿔야 하는 여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악화하고 있는 한일 양국 관계에 더해 교토국제고 교가로 ‘동해’ 지명 문제가 불거진다면 고시엔 첫 출전에 대한 기쁨보다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교가로 인해 학생들이 원치 않는 비판과 논란에 휩싸인다면 일본 사회에 성공적으로 연착륙 중인 학교의 존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나 일본인 학생이 한국 학생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현재 학교의 상황을 비춰봤을 때 이러한 염려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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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21년 8월 19일 여름 고시엔 1차전 승리 후 ‘동해’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의 교가 제창 장면
사진: 세계일보, https://m.segye.com/view/20210819517178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사들과 학교 관계자, 학생들은 그대로 한글 교가를 고수하기로 했고 이는 고시엔에서 ‘동해’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울려 퍼지는 과정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에 관한 교토국제고 박경수 교장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다행히 교가 문제가 커지지 않아 안도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야구를 좋아하고 학교를 사랑할 뿐이다. 어른들의 정치는 모른다. 교육 이외의 다른 것으로 우리 학교에 접근하지 않았으면 한다. [학생들이 한국어 교가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국제 학교로 성격을 바꾼 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앙케트를 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학생들 대다수가 반대했다. ‘한국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왜 한국어 교가를 바꾸느냐’고 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17).”

박경수 교장의 인터뷰는 교토국제고 교가에 대한 학교 구성원의 애정과 인식 수준을 잘 반영한다. 한편으로 한글과 ‘동해’ 지명이라는 요소가 일본 사회에 미칠 수 있는 파장에 우려의 뜻을 비치면서도 국적이나 외교적 문제를 초월하여 학교의 전통을 오랫동안 대변하였던 교가를 쉽게 바꿀 수 없었던 그들의 고민도 잘 드러난다. 일본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교토국제고의 한글 교가가 제창되었다는 소식에 한국의 언론은 일제히 관심을 드러내며 ‘동해’ 지명이 상징하는 국가주의적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18) 학교 구성원들은 이러한 주변적 요소에 크게 동요하지 않은 채 학교의 전통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서의 교가를 전유하는 것이다.

교토국제고가 ‘동해’로 시작하는 한글 교가를 고수했지만 한편으로 일본 사회에 미칠 영향과 야구 외적인 요소로의 화제 전환, 그리고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의 예상되는 비판 등을 감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본 우익 여론을 대표하는 산케이신문은 2021년 3월 29일 칼럼을 통해 고시엔 봄 대회 16강에서 패배한 교토국제고의 소식을 전하면서 더 이상 ‘동해’ 가사가 들어간 교가를 듣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는 일부 일본인들의 여론을 전했다. 또한 해당 칼럼은 ‘동해’를 매개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고교야구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을 비판했다19). 한국 정부가 교토국제고를 사주하여 동해/일본해 지명 논쟁과 관련한 프로파간다를 확산시킨다는 주장은 당연히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비난에 동조하여 야구에 집중하고자 하는 교토국제고 선수들과 학교를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공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교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비난과 공격에 교토 지역사회의 일본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반박한다는 사실이다. 2020년 지역대회가 진행될 당시만 해도 교토 지역사회의 교토국제고 야구부에 대한 여론은 사실 그리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한국어 가사로 된 교가를 일본 지역 고교야구대회에서 제창하는 모습이 지역주민의 눈으로도 곱게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20). 하지만 지역 대표로서 전국대회인 고시엔에 진출하여 봄과 여름 각각 16강과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자 교토 시민들은 차츰 교토국제고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현재는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상당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학교에 대한 인터넷에서의 공격이 이어지자 교토 시민단체 ‘교토부・교토시에 유효한 헤이트 스피치 대책을 요구하는 모임’은 광역 지자체인 교토부에 “배외주의적인 악의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밝히며 계몽 강화와 같은 지자체의 대응을 요구했다21).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반적인 여론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우익 세력, 일명 넷우익의 편향성과 공격성을 경계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2021년 3월 29일 자 칼럼에서 교토국제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한국이 주장하는 ‘동해’ 지명이 일본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주입되고 있다는 넷우익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며 여전히 학교를 국가주의와 군국주의의 산물로 보는 일본 우익의 시선이 반영된 여론으로 비평하고 있다22). 본 연구를 위해 참고한 2021년 3월 24일부터 8월 27일까지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출전을 다룬 일본 뉴스 20개 기사 중 일본 넷우익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은 3월 29일의 산케이신문 칼럼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표 1) 전반적인 일본의 여론도 교토국제고의 교가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확장하지 않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23).

표 1.

고시엔 출전 교토국제고 관련 일본 언론 보도 목록

날짜 언론사 기사 비고
2021.03.24. Hochi News 【センバツ】京都国際、甲子園に韓国語校歌を響かせた…99年夏の府大会0―34から
出発、ついに聖地1勝
[센바쓰] 교토국제, 고시엔에 한국어 교가를 울렸다… 99년 여름대회 0-34로 출발,
마침내 야구 성지에서 1승
2021.03.25. Tokyo Sports 【センバツ】京都国際の韓国語校歌が聖地に鳴り響く 歌詞 「東海」は 「東の海」に
[센바쓰]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가 야구 성지에 울려 퍼진다 -
(사설 칼럼) 가사 '동해'는 '동쪽 바다'로
2021.03.25. Tokyo Sports 【センバツ】京都国際の校歌問題 教頭 「近い将来、新しい校歌にする考えがある」
[센바쓰] 교토국제고 교가 문제 교감 "조만간 새로운 교가로 만들 생각이 있다"
2021.03.25. Yomiuri 京都国際の韓国語校歌、歌詞の 「東海」を 「東の海」に…センバツでNHK表記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 가사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센바쓰 NHK 표기
2021.03.25. Kyodo 京都国際の勝利、韓国各紙が報道
교토 한인국제학교 우승 관련 한국 언론 보도
2021.03.29. Asahi ただの校歌の歌詞に対して 「政治的主張」という幻覚を見てしまった人たち
교가 가사의 특정 부분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주입"이라고 주장하는 편향된 사람들
넷우익의 인터넷
공격을 비판
2021.03.29. Sankei 韓国語の校歌が日本全国に鳴り響いた
한국어 교가가 일본 전국에 울려 퍼졌다
넷우익의 ‘동해와
정치이데올로기’
주장 옹호 및 대변
2021.08.19. Sankei 京都国際校歌、韓国語歌詞でNHKがテロップで対応
교토국제고 교가, 한국어 가사로 NHK 자막 대응
2021.08.25. Tokyo Sports 【夏の甲子園】京都国際が初8強入り センバツに続いて校歌流れ…韓国メディア
大盛り上がり
[여름 고시엔] 교토 국제 첫 8강 진출, 센바쓰에 이어 교가 흐름… 한국 언론 열풍
2021.08.26. GENDAI.
ISMEDIA.JP
韓国メディアも大きく報じる 「京都国際高校」の快進撃…強豪校になれたワケ
한국 미디어도 크게 보도하는 '교토국제고등학교'의 쾌진격… 강호 야구부가
될 수 있는 이유
2021.08.27. News
ポストセブン
甲子園に韓流旋風の京都国際 ハングル校歌を覚えた球児たちが重ねた猛練習
고시엔에 한류 열풍 교토국제고 한글 교가를 외운 야구 아이들의 거듭한 맹연습
2021.08.27. Tokyo Sports 【夏の甲子園】〝校歌問題〟を拭い去りプロ野球選手を輩出する京都国際の
着実な強化策
[여름의 고시엔] “교가문제”를 배제하고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는 교토국제고의
착실한 강화책
2021.08.27. Daily Sports 京都国際高をネットで侮辱市民団体が対応申し入れ
교토국제고를 인터넷으로 모욕... 시민단체가 대응 신청
교토 시민단체의
교토국제고 보호 및
대응 신청 보도
2021.08.27. J-CAST
ニュース
「韓国語校歌がNHKを通じて日本全域に...」 京都国際の甲子園ベスト4、
韓国メディアどう報じた
“한국어 교가가 NHK 통해 일본 전역에...” 교토국제고 고시엔 4강, 한국 언론 보도
2021.08.27. Kyodo 京都国際高をネットで侮辱 市民団体が対応申し入れ
교토 국제고를 인터넷으로 모욕 시민단체가 대응 신청
교토 시민단체의
교토국제고 보호 및
대응 신청 보도
2021.03.24. Daily JP 日本海を 「東の海」と表記NHK、京都国際高の校歌
일본해를 [동쪽바다]로 표기 NHK, 교토국제고의 교가
2021.03.24. Kyodo 日本海を 「東の海」と表記 NHK、京都国際高の校歌
일본해를 '동쪽 바다'로 표기 NHK, 교토국제고의 교가
2021.03.24. Sankei 選抜中継での 「東の海」表記 NHK放送総局長 「提出された日本語訳をそのまま表示」
선발중계에서의 '동쪽 바다' 표기 NHK방송총국장 "제출된 일본어 번역 그대로 표시"
2021.03.24. Sankei 京都国際の校歌、日本海 「東の海」と表記 NHK
교토국제고 교가 일본해 '동쪽 바다' 표기, NHK
2021.03.24. Nikkan
Sports
NHKがハングルと 「東の海」の表示 京都国際校歌
NHK, 한글과 '동쪽 바다' 표시 교토국제고 교가

이를 종합해 봤을 때 교토국제고 교가는 일본 내 많은 관심 속에서 일부 논쟁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국제학교의 교가라는 특수성이 고려되면서 일본 사회에 큰 무리 없이 안착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동해’라는 민감한 가사는 일본 사회로부터 대대적인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이는 미국 아시아태평양사령부가 2021년 3월 25일 북한이 동해를 향해 발사한 두 개의 미사일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일본해’가 아닌 ‘동해’ 지명을 사용하자 일본 정부가 성명과 함께 강력하게 반발한 사실로도 추측될 수 있다24). 일본은 여전히 한국과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동해’ 지명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교토국제고 교가에 사용된 ‘동해’의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이는 조선인 민족학교로 출발한 교토국제고의 뿌리와 정체성을 현재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과 교토 주민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신흥 야구 명문으로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러한 상황과 맥락에서 ‘동해’ 지명은 단순히 한국과의 외교적 논쟁 사항 중 하나로 인식되기보다는 철저히 교토국제고등학교라는 국지적인(localized) 스케일에서 학교의 기억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산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4. 문화유산으로서 ‘동해’ 지명의 중층성과 혼종성(hybridity)

교토국제고 교가에서의 ‘동해’가 예나 지금이나 학교와 학교 구성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역할을 드러낸다. 2003년 제32회 유네스코 총회가 선언한 문화유산의 정의는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 “화합(cohesion)” 및 “문화적 정체성(cultural heritage)”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25). 이를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는 학교 구성원의 집단적인 정체성과 화합 정신을 드러내는 문화유산으로 인식할 수 있다. 1947년 학교가 설립될 당시 교가의 ‘동해’가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정체성과 뿌리를 드러내고 본향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가졌다면 현재의 ‘동해’는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문화를 동경하고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 학생들로 인해 국제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된 ‘동해’는 2021년 3월 25일 아시아태평양사령부의 브리핑 중 미군에 의해 우발적으로 사용됐던 ‘동해’와는 다른 의미로 인식된다. 같은 ‘동해’라도 전자의 경우 국지적 스케일의 학교 정체성과 연결되었다면 후자의 경우는 국제적 외교 문제와 관계됨으로써 일본 사회와 정치권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일한 하나의 이름이라도 이를 전유하고 활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지명은 다양한 층위의 성격과 상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지명과 관련한 사회문화적 문제들을 다뤘던 연구들은 대개 하나의 지형지물에 대한 복수의 지명을 분석해왔다. 대표적으로는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의 바다 명칭을 두고 갈등 중인 ‘페르시아/아라비아만’ 사례 연구들이 있으며(Levinson, 2011; Mojtahed-Zadeh, 2013; Obućina, 2015) 최근에는 미국의 흑인 인권 문제가 지명을 통해 공간적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수도 워싱턴 D.C.의 BLM Plaza/Lafayette Square 사례 연구가 있다(Samayeen et al., 2020)26). 이 두 사례는 단일한 지형지물에 복수의 이름이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의 장소에 대한 다양한 집단의 해석과 재현에 따라 다른 이름이 충돌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교토국제고 교가에 등장하는 이름 ‘동해’는 갈등과 복수 지명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맥락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했던 페르시아/아라비아만 갈등이나 BLM Plaza/Lafayette Square 사례의 경우 교토국제고와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복수의 주체와 집단이 관계된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이름과 관계된 갈등의 양상은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전자의 두 사례와 달리 교토국제고의 ‘동해’ 지명은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동해’ 지명이 담긴 교가는 두 국적의 학생들에게 모두 존중받으면서 학교의 정체성과 뿌리를 대표하는 학교의 유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한일 양국의 외교적 영역에 있어서는 ‘동해’ 지명이 여전히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하나의 지명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집단의 중층적 인식과 해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교 설립 초기 조선인 중심의 구성원과 현재의 한국인, 일본인이 혼합된 구성원이 ‘동해’ 지명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는 정체성과 관계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속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민족 고등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대변했던 ‘동해’는 시간이 흐르고 교토국제고의 일본 사회 정착에 따른 일반 사립고로의 전환이 뒤따르자 민족정체성 재현으로서의 상징은 약화 되었다. 하지만 교내에서 ‘동해’가 가진 존재감의 크기가 축소되었다기보다는 학교 정체성의 성격 변화에 따라 상징의 성격도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인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재 학교의 사정상 일본어 교가로의 전환을 고민했던 학교 운영진은 학생들로부터 뜻밖의 반응을 듣게 되었다. 한국인 2세 교육보다는 국제교육을 표방하는 현재 학교 운영 방침에 따라 K팝 등 한국문화를 동경하여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 학생들이 대거 입학하게 되었고 이들에게 있어 한글로 된 교가는 학교의 정체성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배움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했다. ‘동해’ 가사는 이제 민족학교로서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일본인 학생들이 좋아하는 한국문화에 기반한 학교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이는 고시엔에서 한글 교가를 배우고 따라부르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잘 반영된다.

그동안 ‘동해’라는 유산과 연계하여 한반도에서 공유되어왔던 이미지는 호국, 해돋이, 푸른 바다, 독도, 영유권 등과 관련되었다(심정보, 2020, 102).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와 달리 교토국제고의 영역과 스케일에서는 ‘동해’가 한반도와는 뚜렷하게 이질적인 정서로 인식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일본 정착, 조선인 교육, 학교 설립 등 일련의 역사적 과정이 빚어낸 ‘동해’ 지명의 탈영토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교토국제고에서 인식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연관 이미지와는 다른 형태로 재영토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와 연관된 정체성은 한반도에서 공유된 민족정체성에 더해 교토국제고 맥락만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이 중층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토국제고의 일본인 학생들과 교토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일본 내 ‘동해’ 가사로의 공격에 대해 단호한 방어의 자세를 취했던 것도, 결국은 ‘동해’ 가사가 한국으로부터 건너온 유산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교토국제고의 ‘동해’는 한반도 인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유산에서 벗어나, 비록 교토 지역사회의 한 고등학교 스케일이기는 하지만, 서서히 한반도와는 다른 사회문화적 토양에서 기존의 동해가 가지던 상징에 새로운 의미와 정체성이 덧입혀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고시엔에서 일본인 학생 선수들의 적극적인 한글 교가 제창과 ‘동해’ 가사 고수를 지지하는 학교 내 여론, 그리고 학부모와 교토 지역 시민들을 중심으로 ‘동해’ 가사에 대한 일본 우익의 비판을 반박하면서 학교의 전통을 재현하는 유산으로서 ‘동해’를 바라봐주기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청원 등에서 드러난다.

20세기의 역사적 과정에서 교토국제고라는 작은 스케일의 토양에 이식된 ‘동해’ 지명은 한반도에서 공유되는 호국, 해돋이, 푸른 바다, 독도, 영유권 등 민족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일본 땅에서 새로운 정체성의 싹을 틔우고 있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 선수단 코칭스태프 등이 다수의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했던 내용을 상기해보면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한국어 교가는 ‘아리랑’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중략) 70년 넘게 이어온 한국어 교가를 부르지 못하면 전국대회에 진출하는 의미가 퇴색된다. 일본인 학생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27).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한국어 수업이 있지만, 노래에 관해서는 또 사정이 다릅니다. 감독으로서 제대로 부를 수 있도록 지도한 것은 아니고, 고시엔에 나갈 바에야 교가는 제대로 부르려고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연습했던 것 같아요(코마키 교토국제고 야구부 감독)28).

한국문화를 배우고자 교토국제고에 입학한 일본인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한국의 전통과 정체성을 재현하는 ‘동해’ 지명에 우호적이고 자긍심을 가지는 입장에 있으면서 교토국제고의 일원임을 드러내는 데 한국어 교가가 긍정적인 수단으로 작용함을 시인하고 있다. 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는 온전히 한국의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도로 사용된 ‘동해’ 가사가 시간이 지나고 학교의 운영 방향성이 한국과 일본인 학생을 모두 고려한 국제학교로 전환하면서 교가의 성격은 한일 양국 학생의 중층적이고 혼종적인 정체성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일본 NHK 중계방송에 잡힌 한국인, 일본인 학생 선수들의 적극적인 교가 제창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이들에게 ‘동해’ 가사는 한일 양국의 외교적인 영역에서 이어졌던 갈등의 요소에서 벗어나 온전히 국제학교로서의 혼종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유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하나의 지명이 특정 집단에게만 전유된 상태에서 그들만의 정체성 재현의 수단으로 작용했던 사례에서 벗어나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여러 집단에 의해 해석되고 새로운 정체성이 덧입혀지는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문화유산 특징을 반영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교토국제고는 학교의 구성원으로부터 점차 교토 지역사회 구성원에게도 야구를 매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학교 설립 초창기 일본에서 한글 교가를 부르며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학교에 대해 교토 지역주민들은 처음에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곤 했다29). 하지만 지역을 대표하여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선전하는 교토국제고는 점차 지역주민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교토 지역주민들은 이제 교토국제고의 야구대회 선전에 대해 적극적인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그림 3)30) 한글 교가와 ‘동해’ 가사에 대한 일본 우익의 온・오프라인 공격에 대해 지역의 시민단체가 교토시를 상대로 대응 강화를 요청하는 등31) 한국인 정체성과 관계된 학교의 성격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일본 우익의 공격과 관련한 아사히 신문의 논설은 교토국제고 및 ‘동해’ 가사에 대해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도 포용의 자세가 확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당 논설은 일본 우익을 대표하는 산케이신문에서 교토국제고의 한글 교가를 비판하고 학교의 고시엔 토너먼트 탈락을 기뻐하는 내용의 칼럼을 내보내자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개진했다.

[산케이신문은] 교토 국제고등학교가 고교야구에 ‘한국 정부의 편향된 정치적 의도’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과연 그 논리가 사실인지 의문이다. 교토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은 고시엔에서 우승한 고등학교처럼 단순히 학교 노래만 불렀기 때문이다. (중략) [산케이신문은] 교가 가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주입'이라는 편향된 시선으로 해석하였다. 이들이 이런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이유는 학교를 아이들을 길러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학교가 ‘국민’에게 사려 깊은 교육을 제공하는 곳으로, ‘국민’에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국가주의, 군국주의 적인 기능을 하는 곳으로 보기 때문이다32).

https://cdn.apub.kr/journalsite/sites/geo/2022-057-02/N013570201/images/geoa_57_02_01_F3.jpg
그림 3.

‘힘내라! 교토국제고’의 응원 문구를 붙인 교토 지역의 택시
사진: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10826/108774938/1

2021년 교토국제고를 둘러싼 지명 논의의 본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토국제고의 교가에 등장하는 ‘동해’ 지명을 전유하는 주체의 성격이 미묘하게 변화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잘 이해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인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문화유산으로서 ‘동해’ 지명의 상징성이 일본인 학생을 비롯한 일본 지역 고등학교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매개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에게 충분히 흥미를 유발할 요소이다. 리좀(rhizome)을 활용한 들뢰즈의 문화 전파에 관한 논의는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 가사가 지닌 중층성의 시사점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는 하나의 지명이 본향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고 현지의 주민에 의해 새롭게 전유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적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는 일본 사회에서 독도나 과거사 문제처럼 한국의 정치적 도구나 프로파간다 전파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정체성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재현의 수단으로 여김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교토 지역사회와 일본 여론은 교토국제고 스케일의 토양에서 학교의 성격과 역사를 드러내는 유산으로서 ‘동해’ 지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인 이주라는 역사적 과정에서 일본의 한 지역 고등학교로 이동한 ‘동해’ 지명은 교토라는 토양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유산으로서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들뢰즈와 과타리가 언급했던 리좀(rhizome)의 비유에서 하나의 존재가 이동하고 정착하며 착근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혼종적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다(Deleuze and Guattari, 1987). 이러한 관점에서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는 하나의 문화유산이 역사적 과정 중에서 지리적으로 이동한다는 점과 그것이 정착하는 공간적 맥락에 따라 새로운 정체성과 해석이 중층적으로 쌓인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질적인 존재가 더욱 빈번하게 뒤섞이는 현대 사회의 초국적 교류 속에서 중층성과 혼종성에 대한 인식 없이 문화유산의 이해를 시도한다면 향후 중층적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에 대한 논의는 제한적인 상황에 위치할 것이다.

5. 결론

지금까지 본 연구는 지명의 문화유산 속성을 탐색하고 그것이 교토국제고 교가에 등장하는 ‘동해’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밝히고자 했던 바는 크게 조선인 민족 교육기관에서 국제성을 갖춘 일반 사립재단으로의 교토국제고 정체성 변화, 사회적 구성물이자 중층성을 갖춘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성격, 그리고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 가사가 중층성을 갖춘 문화유산으로서 가지는 사회문화적 시사점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분석 과정은 그동안 부족했던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복합적인 정체성의 구축에 있어 지명이 가질 수 있는 사회문화적 기능과 역할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일본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교토국제고가 보였던 정체성의 변화는 교가에 등장하는 ‘동해’ 지명의 성격까지도 변화시켰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지명과 주체, 사회구조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상태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지명을 문화유산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적응과 변화 과정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식될 수 있다. 유네스코가 밝히는 무형 문화유산의 정의는 크게 유산과 주체의 ‘상호작용’과 ‘정체성’의 재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정체성’이 내포하는 주체의 의도성과 ‘상호작용’이 가진 유동성의 특징은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문화유산의 속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에 대한 논의는 해석과 재현 방식에 있어 동반하게 되는 유동적 특징을 포착해야 하며 이러한 유동성은 역사적 과정과 공간적 맥락의 조합 속에 주체의 의도가 반영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지명과 사회적 이슈에 관한 논의는 특정 집단에 강하게 종속된 정체성 재현의 수단으로서 지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특히 흑인 인권과 관계된 국외의 연구는 지명이 가질 수 있는 상징과 장소적 정체성에 대한 의미 있는 시사점들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하나의 지명이 가질 수 있는 중층성과 혼종성에 대해 간과해왔다. 지명이라는 문화유산은 들뢰즈와 과타리의 설명처럼 끊임없는 지리적 이동과 교류 속에서 새로운 토양에 이식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렇게 새로운 곳으로 이식되는 과정이 되풀이될수록 지명은 여러 집단과 환경의 영향에 노출되며 이는 하나의 지명에 중층적이고 혼종적인 사회문화적 성격이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사회문화적 요소가 깃든 중층적 문화유산으로 바라볼 여지를 제공한다. 처음 조선인에 의해 교가 가사로 채택될 당시 ‘동해’는 온전히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일반 국제 사립학교로 재편된 교토국제고 교가의 ‘동해’는 일본인 학생들에게도 혼종적인 학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2021년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인 고시엔에서 교가 제창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교토국제고 일본인 학생들에 의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일 양국 간의 외교적 민감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동해’ 지명이 교토국제고의 스케일에서는 확연하게 다른 뉘앙스로 인식된다는 사실은 하나의 지명을 두고도 지리적 스케일과 맥락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교토국제고의 ‘동해’가 내포하는 지명 유산의 중층성과 혼종성은 지명을 비롯한 문화유산의 논의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보통 문화유산은 하나의 지역에서 단일한 주체에 의해 고유하게 전유되는 속성을 가진다고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초국적 이동과 교류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유산은 시공간적 이동과 다양한 주체와의 만남 속에 특정 주체나 지역만의 전유물로 이해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처럼 과거의 역사로 인해 정서적인 거리감이 뚜렷한 관계일수록 문화유산과 관계된 이러한 경직성은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교토국제고 사례가 보여주듯이 상대방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착근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동해’ 지명은 현재 교토국제고라는 스케일을 넘어 교토 지역사회와 일본 여론으로부터 학교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향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설정되는 방식에 따라 서로의 문화가 더 빈번하게 교류되고 상대방의 영역으로 착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민족이나 국가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주체 중심의 문화유산 담론을 열고 사회와 활발하게 호흡하는 유동적 문화유산의 성격을 인식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교토국제고 교가 사례를 통해 하나의 지명이 기존의 국가와 민족적 범위를 넘어 다양한 스케일과 영역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사회적 구성물이자 중층적 성격의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을 조명하고자 했다. 이를 논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일본 언론 보도와 교토국제고 교장 및 야구부 코칭스태프의 인터뷰가 본 논문에 수록되었으나 ‘동해’ 지명에 대한 교토국제고 학생 및 지역주민의 인식은 조사되지 못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향후 일본에서의 ‘동해’ 지명에 대한 실증적 인식과 문화유산으로서 지명의 중층적 속성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추가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안하는 바이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6A3A0406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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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사실 일본 NHK에 방영된 교토국제고 교가는 한글과 일본어 해석본이 함께 표기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될만한 소지는 ‘동해’의 일본어 해석을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표기한 것이었다. 이는 ‘동해’ 지명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NHK 방송의 완곡한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사전에 교토국제고 측과 조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전국에 송출되는 일본 중계방송에서 ‘동해’를 한글 그대로 표기했다는 점과 자국 언어로 ‘일본해’로 표기하지 않은 점은 나름의 방송사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본 논문은 방송사의 교가 표기에 대한 논란보다는 교토국제고 학생들의 교가에 대한 인식, 지역주민들의 반응, ‘동해’ 가사에 대한 전반적인 일본 언론의 태도 등을 살펴봄으로써 중층적 문화유산 성격을 짙게 내재하는 ‘동해’ 지명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2] 2) 교토국제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소개, https://kyoto-kokusai.ed.jp/kr/info

[3] 3) UNESCO, Declaration Concerning the Intentional Destruction of Cultural Heritage 2003, http://portal.unesco.org/en/ev.php-URL_ID=17718&URL_DO=DO_TOPIC&URL_SECTION=201.html

[4] 4) 유네스코 홈페이지, https://heritage.unesco.or.kr/유산소개/무형문화유산소개

[5] 5)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흑인 인종 차별이 한창이던 1950- 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비폭력 흑인 인권운동을 이끈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흑백 인종의 공간 분리와 일상적 차별에 문제를 인식하였으며 성인이 된 이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으로 흑인 노동기본권, 반전, 각종 사회 부조리 철폐 등의 운동을 이끌었다. 1968년 4월 테네시주 멤피스의 청소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던 중 묵고 있던 모텔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피살되었다. 사후 그는 미국 내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았으며 미국 정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생일(1월 15일)을 전후한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흑인 인권운동에 기여한 그의 업적과 상징적 의미를 기리고 있다.

[6] 6) 교토국제중・고등학교 설립과 이후의 운영 변천사에 관한 정보는 학교법인 교토국제학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입수했으며 본 섹션의 내용은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음.

[7] 7) 東京スポーツ,【夏の甲子園】京都国際が初8強入り センバツに続いて校歌流れ…韓国メディア大盛り上がり, https://www.tokyo-sports.co.jp/baseball/koshien/3557023/, 본 보도에 따르면 ‘교토한국학원’은 2004년 이전까지 재일 한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일반사립고로 승인・전환되어 재단의 이름도 ‘교토국제학원’으로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8] 8) 조선일보, ‘고시엔 돌풍’ 교토국제고, 결승 문턱에서 아쉬운 패배,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1/08/28/SHNIQGCLMBFS3N3GWDUUPHLAGY/

[9] 9) 중앙일보, 日 전역에 울린 한국어 교가... 교토국제고, 고시엔 첫 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19537#home

[10] 10) 서울신문, [씨줄날줄] 교토국제고 민족학교 논란/황성기 논설위원,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827031017

[11] 11) 조선일보, ‘고시엔 돌풍’ 교토국제고, 결승 문턱에서 아쉬운 패배,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1/08/28/SHNIQGCLMBFS3N3GWDUUPHLAGY/

[12] 12) News ポストセブン, 甲子園に韓流旋風の京都国際 ハングル校歌を覚えた球児たちが重ねた猛練習,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210827_1686790.html?DETAIL

[13] 13) 매일경제, ‘최애 스포츠’ 부동의 1위... 왜 그토록 일본은 야구에 열광할까,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06/30334/

[14] 14) Japankuru, 야구소년들의 꿈이 실현되는 성지이자 일본 야구의 대명사 '고시엔'에 대하여, https://www.japankuru.com/kr/entertainment/e3370.html

[15] 15) 매일경제, '최애 스포츠' 부동의 1위... 왜 그토록 일본은 야구에 열광할까,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06/30334/

[16] 16) 경향신문,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에 처음 울린 ‘한국어 교가’, https://m.khan.co.kr/sports/baseball/article/202103242154025

[17] 17) 조선일보, 한국어 교가 울릴때 교포들 눈물… 韓日, 미래만 보고 가야, https://www.chosun.com/opinion/2021/03/29/IDZLG7OLFJHKBCRHJE7F2IK7OA/

[18] 18) 現代ビジネス, 韓国メディアも大きく報じる 「京都国際高校」の快進撃…強豪校になれたワケ, https://gendai.ismedia.jp/articles/-/86626

[19] 19) 産経新聞, 韓国語の校歌が日本全国に鳴り響いた, https://www.sankei.com/article/20210329-WZR4RSP3NBKZ3EZ3YJY7CHIXAU/

[20] 20) 한국교육신문, [인터뷰] “편견과 차별 극복한 한국인 근성에 일본 열도 깜짝”, https://www.hangyo.com/news/article_print.html?no=94633

[21] 21) 연합뉴스, 日단체, 넷우익 한국계 교토국제고 공격에 지자체 대응 요구,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7160900073

[22] 22) Asahi, ただの校歌の歌詞に対して 「政治的主張」という幻覚を見てしまった人たち, https://webronza.asahi.com/national/articles/2021040600002.html

[23] 23) 2021년 고시엔 봄 대회에서 교토국제고가 처음으로 출전하고 경기 중 한글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NHK를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자 일본 언론은 3월 24일 자 기사부터 일제히 보도를 시작하였고 이러한 흐름은 여름대회에서 교토국제고가 4강까지 진출한 시점(8월 27일)까지 지속되었다. 본 연구는 ‘교토국제고’, ‘동해’, ‘한글 교가’ 등을 키워드로 해당 기간 일본 언론 보도를 검색하여 20개의 뉴스 기사를 추출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교토국제고의 교가 제창에 관한 일본 내 여론과 언론 보도 흐름을 파악하였다.

[24] 24) NHK, 米軍 日本海を韓国主張の 「East Sea」 と表記 日本は訂正求める, https://www3.nhk.or.jp/news/html/20210325/k10012936031000.html

[25] 25) UNESCO, Declaration Concerning the Intentional Destruction of Cultural Heritage 2003, http://portal.unesco.org/en/ev.php-URL_ID=17718&URL_DO=DO_TOPIC&URL_SECTION=201.html

[26] 26)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살고 있던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자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추모 행렬과 흑인 인권운동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과거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지목된 인물들의 동상이 미국 전역에 걸쳐 철거되는 실천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듯 공간적 변화를 통해 흑인의 희생을 추모하는 움직임은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도 이어졌다. 백악관 앞 워싱턴 D.C.의 중심부에는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라파예트(Lafayette)를 기념하여 조성한 라파예트 광장이 있는데 이 장소의 바로 앞 16번가 바닥에 시 정부가 ‘Black Lives Matter’ 문구를 페인팅하면서 거리의 이름이 BLM Plaza로 개명된 사례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 현재 해당 공간은 라파예트와 조지 플로이드의 상반된 상징적 인물을 기리는 장소로 극명하게 나뉘어 인종 문제와 관련한 미국 사회의 갈등을 반영한다. 이 밖에도 현재 미국의 많은 거리나 장소는 흑인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이름과 기존 백인 인물을 기리는 이름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명 갈등 공간으로 남아있다.

[27] 27) 동아일보, [단독] “동해 바다 건너~” 한글 교가, 日고교야구 꿈의 무대서 울린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10317/105912852/1

[28] 28) News ポストセブン, 甲子園に韓流旋風の京都国際 ハングル校歌を覚えた球児たちが重ねた猛練習,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210827_1686790.html?DETAIL

[29] 29) 한국교육신문, [인터뷰] “편견과 차별 극복한 한국인 근성에 일본 열도 깜짝”, https://www.hangyo.com/news/article_print.html?no=94633

[30] 30) 동아일보, “동해 바다” 한국어 교가, 또 울려 퍼진다…교토국제고, 고시엔 4강 진출,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10826/108774938/1

[31] 31) 共同通信, 京都国際高をネットで侮辱 市民団体が対応申し入れ, https://www.kyoto-np.co.jp/articles/-/626972

[32] 32) Asahi, ただの校歌の歌詞に対して 「政治的主張」という幻覚を見てしまった人たち, https://webronza.asahi.com/national/articles/2021040600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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