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2. 선행 연구의 검토
1) ‘평화’ 개념과 국가 스케일
2) 평화의 지역적 전환(local turn of peace)
3. 국내 신문기사 분석을 통해 살펴본 평화도시 논의 변동
4. 결론
1. 들어가는 말
2022년 초부터,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는 다시금 한반도와 주변 국가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종전 선언에 대한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대화는 시도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분단 이후, 한반도는 ‘평화’라는 단어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현재에도 평화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이자, 앞으로도 해결해야 하는 과업으로 남아 있다. 특히, 코로나 19 위기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평화 이슈의 입지는 자국민 보호주의, 민족 중심주의의 강화로 인해 더욱 약화되고 있다.
그동안 ‘평화’에 대한 수사는 국가 담론 차원에서 다루어져 왔으며, 이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논의된 평화의 목표와 내용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달라져왔다(박영준, 2017).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중, 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질서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더불어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정책과 연동된 평화에 대한 해석도 변화하여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진보 정권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대북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평화실현을 추진하였지만, 보수 정권의 경우 북한에 대해 경쟁적인 인식을 강하게 어필하면서 평화실현에 있어 소극적 혹은 현상 유지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정권별 평화에 대한 인식과 추진 방향이 극명하게 갈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류지성, 2005; 이화준・노미진, 2019).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국내에서는 광주, 제주, 파주, 인천, 철원, 평창, 고성 등이 ‘평화도시’를 표방하는 도시 브랜딩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각 지역이 해석하는 평화의 의미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으며, 평화를 위해 해야 할 과업 역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평화의 섬’으로 지역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 제주도의 경우, 정상회의 이전에도 제주도 내의 남북화해 모드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데에서 평화도시에 관한 역사적 배경이 상당히 오래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한-소 정상회담이 제주도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제주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되었고, 1998년 민간영역에서도 과잉생산이 예상되는 감귤을 남북협력 제주운동본부가 북한 동포에게 전달하고 동포애를 담은 북한 감귤보내기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남북 민간교류의 바탕이 마련되었다1). 그러던 중, 2000년 제주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과 3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지켜봤던 제주도민들은 제주가 ‘평화의 섬’이자 ‘남북대화의 장’으로서 냉각된 남북간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평화도시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1999년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해 ‘세계평화의 섬’ 지정안이 제시되고, 2004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근거로 지정이 확정되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2001년 6월에 개최된 제1회 평화 포럼에서 제주도가 한반도와 동북아 및 세계 평화 구축에 견인차 역할을 맡기로 하고 ‘제주 평화 선언’을 채택하였고, 2002년 건교부,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여 이와 관련한 행사 유치 등의 방안을 추진하였다. 2005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를 기반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글로벌 사회를 향한 제주형 평화의 섬 실현’이라는 비전이 완성되었다(고경민, 2005; 양현길・장원석, 2002).
제주특별자치도의 평화도시는 4・3의 화해・상생 정신 아래 전쟁과 폭력이 없는 평화를 넘어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정의가 실현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확장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되었으며,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통해 상생・화해의 정신으로 제주4・3의 비극을 승화시키고 제주의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21세기 탈냉전시대의 동북아 평화 구축과 국제적인 교류 협력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제주에 부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평화도시의 첫 사례로 꼽을 수 있는 제주 평화의 섬 지정은 지역적 특색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내의 질서를 재구조화하고 평화 체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일종의 위로부터 만들어진 평화도시라는 점이라는 특징을 보인다(강승호, 2011). 변종헌(2012)의 연구에서, 제주평화의 섬 지정은 지방정부로서 제주도의 비전과 평화 구현 전략일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중앙 정부의 구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한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지역 차원의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은 현재,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평화도시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평화도시에 대한 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평화 이슈가 국가에서 지역으로 확장되는 현상을 탐색하기 위해 평화의 지역적 전환(local turn of peace) 개념을 살펴보고, 국내 신문 기사 분석을 통해 ‘평화 도시’가 지니는 의미의 변화와 그 요인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평화를 적극적인 지역의 이슈로 끌어오려는 지방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와 추진 정책들을 개략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평화의 지역적 전환’ 이 구현되었을 때 가지는 한계와 방향성에 대해서도 논해보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국내 평화도시의 논의의 기원과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자 빅카인즈에서 제공하는 신문기사 분석프로그램을 활용하여 1990년부터 2021년까지 기사로 언급된 ‘평화도시’ 키워드를 중심으로 국내 신문기사의 동향 분석을 실시하였다. 국내 신문기사 분석을 연구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평화도시 논의 전체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기 적합하고, 신문기사를 통해 당시의 여론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기별 평화도시 논의의 추이와 특징을 살펴보고, 평화도시를 추진하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평화도시와 연관된 키워드를 분석하였다.
2. 선행 연구의 검토
1) ‘평화’ 개념과 국가 스케일
일반적으로 평화의 개념에 있어, 전쟁이 없는 상태, 즉 직접적 또는 물리적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와, 집단 간의 전쟁을 막고 없애려는 움직임을 포함하는 상태이자 운동적인 형태인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고 있다. 국제 정치, 외교학, 군사학 등에서는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 세력 균형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 등으로 정의 내려지며, 절대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가치이자 규범으로 설명된다(김동성, 2006; 정천구, 2011). 따라서 그동안 평화 논의는 전쟁의 형태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 충돌과 갈등의 양상이 어떤 요인에 의해 발현되고(구춘권, 2003), 폭력과 비이성적인 행위들에 대한 중단을 촉구하는 논의들로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Galtung, 1996).
현재의 평화의 개념은 역사적, 공간적 맥락을 반영하면서도 근대적인 의미가 덧씌워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Howard, 2000). 서양의 어원에 따르면 평화는 전쟁의 종식과 번영 및 질서를 의미하지만 동양적 평화사상의 경우는 평온하고 화목함을 뜻한다(장영권, 2010). 세계 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전쟁의 부재를 평화로 간주하기도 하였지만, 1960년대 이후 탈식민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국가 간 전쟁에서 내전으로 상황이 전환되면서 폭력과 불합리를 야기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평화의 개념과 정의가 확대, 변화되었다. 평화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착취와 기회의 박탈에 대한 윤리적이고 이성적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발전을 기반으로 하는 다원주의, 인권의 실현 등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Galtung, 1996).
냉전 이후, 세계화는 평화 개념을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성격으로 변화시켰으며, 특정 지역의 갈등과 긴장이 해당 지역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적인 문제로 확장시켰다. 기존의 전쟁의 부재로 보는 소극적인 평화에서 개인, 집단, 국가 모두를 포함하는 행성적(planery) 차원의 적극적인 평화가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평화의 개념은 현실 정치체계의 변화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폭력의 완화(혹은 소멸) 및 공정성, 다양성의 증대를 가져올 수 있는 상호촉진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구춘권, 2003; 김강녕, 2014; 박우섭, 2017).
이처럼 평화의 가치는 하나의 영역으로 정의내릴 수 없으며 다양한 형태로 정의와 안정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평화를 국가와 같은 거시적 집단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지만, 가치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지역, 인종, 계급, 젠더 등 세부 단위에서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갈등을 아래로부터 더 실질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가게 할 뿐만 아니라 갈등의 근원을 드러내고 교정하는 동력이 된다(김성철 등, 2020). 또한 평화의 다양한 가치에 대한 인정은 평화적 상태를 저해하는 비(非)평화적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명시해주며, 평화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이 최근에 이르러 평화에 대한 고민이 다양한 스케일로 확대되고 구체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대해 강승호(2011)는 평화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들로 도시가 부상하면서 적극적 평화와 인간안보를 실천하는 스케일이 변화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평화도시를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면서, 전쟁과 분쟁 경험지역과 평화와 관련된 국제회의 및 기구 유치 도시로 나누고, 이 개념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활동의 주체성과 도시 정책과 발전전략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현재적 시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평화의 실행방식은 국가 중심주의를 벗어나 지역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평화담론과 실천들로 분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이제까지 평화는 국민의 안전, 영토의 보전, 국제 질서 속에서 균형이라는 목표를 위해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으나 사실상 현 시대에 나타나는 도시나 지역에서 추구하는 평화는 그 의미나 목표, 평화를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양길현 등, 2002; 김진호 등, 2005).
평화에 대한 스케일 및 구성 요소들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선행 연구(구갑우, 2008; 이남주, 2013; 임해용・서보혁, 2021)들에서 다루어지는 한반도 맥락에서의 평화 개념과 담론 논의는 여전히 냉전체제이후에 형성된 것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장기화된 분단 상황으로 인해 평화의 목표가 군사력의 균형을 통한 억지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 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평화 실현을 위해 폭력이 허용될 수 있다는 공격적 당위성과 평화를 무너뜨리는 적의 존재를 항시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식론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착되면서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탐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제주 해군기지 설치의 문제는 이러한 한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유지와 대중국 안보를 위한 명목으로 제주에 미 해군기지를 설치하고자 했던 일련의 과정 속에는 무력과 적대화 중심으로 하는 평화만이 국가 안보에 유익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업 시행이 제주도민의 일상적 평화를 깨뜨리고 ‘평화’ 담론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조성윤, 2011; 정영신, 2018)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하여 볼 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평화 개념과 담론은 국가를 주요 행위자로 삼고, ‘불안정한 평화’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현상 유지의 차원에서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하나의 이념상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서보혁, 2015).
예를 들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국가적 관점에서 보는 개념으로 평화경제론(임해용・서보혁, 2021), 한반도 평화체제론(구갑우, 2010; 김동수, 2016) 등을 들 수 있다. 평화경제론의 경우, 분쟁이나 갈등 이후 평화구축 과정에서 물리적, 정서적으로 붕괴된 국가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에서 시작된 개념으로 평화와 경제 간의 관계를 선순환적인 것으로 보고 평화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고 그 역의 관계도 성립하는 것으로 전제한다. 평화의 경제적 가치를 국가 안보와 연동시킴으로써, 평화를 통한 정치-사회적인 안정이 경제적인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다(김연철, 2006; 윤황, 2013; 정유석, 2020).
한편, 평화의 개념과 성격이 현실에서 제도화된 체제로서 평화체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진 상태이자 평화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사전 예방 및 제거할 수 있는 보장체제의 정착을 포함한다(정경환, 2021). 이러한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있어 많은 학자들은 평화협정 체결을 비롯한 이를 주도할 국가 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정일영, 2013; 양문수, 2018). 국가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 ‘체제’라고 불리는 평화 상태의 균형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는 평화 체제론은 평화의 상대성, 가변성을 전제하며(박부전・정경환, 2020), 평화체제 전환에 있어 선결조건으로서 위험요소의 제거, 상호신뢰 구축, 다자간 협력 구조의 개선 등에 대한 논의를 중시한다(문성묵, 2017).
국가 관점의 평화는 단지 당위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차원에서도 평화를 보장하도록 국가의 의무를 명기하고 있다. 도회근(2010)은 국내 법제와 판례 분석을 통해 국가의 평화통일의무의 이행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남북 관계를 규율하는 헌법상 영토조항과 평화통일 조항, 남북기본합의서 등의 판례 속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의 평화통일 조항은 평화주의원리를 표명하고 국가에게 그 의무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의무의 이행을 위해 모든 국가 기관은 평화지향적인 입법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같이, 평화에 대해 정치적 질서, 외교 및 안보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적 관점에 무게를 두면서, 평화 논의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들이 다소 부족한 상황이다(Anderson, 2006; Donais, 2009, 2012). 남북 간 평화 상태에 대한 정의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상황은(유성희, 2006; 박은주・유호열, 2018), 개인적 차원이라기보다는 국가 간의 이념적 경쟁에 비롯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논의되는 평화 이슈들은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평화의 일상성 논의가 부재하게 되고, 현실 사회에서 평화가 실현되는(혹은 평화가 추구되는) 지역 스케일에 대한 분석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2) 평화의 지역적 전환(local turn of peace)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 한반도 평화는 분단 상황 종식이라는 당위적인 목표 아래, 전쟁 중단, 갈등 최소화, 긴장 완화 등과 같은 표면적인 불안정성과 위기의 해소에 집중되어 있었다(구갑우, 2003). 현재까지도 평화 실현의 형태는 국가 주도의 추상적, 이념적 평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정권의 변동에 따라 평화관련 정책이 수시로 변하면서, 평화에 대한 목표와 방향성의 지속성,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평화의 국가 스케일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최근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평화도시 정책이 여러 지역에서 추진되며 지역(혹은 도시) 차원의 평화 논의가 중요해지고 있다(Mac Ginty and Richmond, 2013; Leonardsson and Rudd, 2015; Hughes et al., 2015). 이와 같은 현상은 평화의 추구에 있어 지역적 차원의 능동적, 자율적 노력이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평화 연구는 분석 스케일에 있어, 국가를 분석단위로 하여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역이나 도시에서의 평화는 국가의 논리를 당연히 수렴하는 것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현재 국내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평화 이슈들은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성장의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어, 지방 정부를 비롯한 지역 단위의 분석 스케일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지역에게 부여되어 왔던 정적이고 단편적인 정체성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화된 과정적인 장면들을 포착하는데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다(Brigg, 2020; Brown, 2020).
1990년대 Lederach(1997)의 연구는 평화의 지역적 접근에 대한 고민이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다. 90년대 냉전의 종식은 전쟁의 소멸을 기대하게 했고, 국가와 더불어 국제기구로서 UN이 평화 형성의 구축자로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구축(peacebuilding)이라는 목표는 국가 간의 평화 협정을 중재하고 이행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국가 구축과 평화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안보와 민주적 정치 구조, 경제 개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그러나 소말리아, 르완다, 발칸 반도와 같은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지원하지 못하는 UN과 국제 사회의 실패는 평화 형성에 있어 국가적 관점이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였다(Kappler, 2015).
이와 같이, 평화에 대한 지역적 관심이 등장한 것은 대부분의 갈등과 충돌은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다는 점, 평화에 대한 국가적 이해와 지역적 이해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Van Leeuwen et al. 2020). 평화의 지역적 전환 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 다루어졌던 내용은 외부에 의해 설계되고 주도되는 평화 개입 대신 평화 구축의 주요 행위자로서 지역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의 주된 전제는 궁극적으로 분쟁이나 갈등 상황 내에서 지역의 행위자들만이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국제 평화 구축 과정에 대한 비판이 심화됨에 따라 두 번째 논의가 진전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자유주의적 평화 구축3)의 개념과 이행이 현실적이지 못 하다는 지적과 함께 평화 형성의 국가 개입과 지역 사회의 상호 작용(혹은 비(非)상호작용)에 대한 것으로 하이브리드 형태의 평화 거버넌스(Hybrid peace governance)와 평화를 위한 지역의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Belloni, 2011; Fridman, 2020).
이러한 논의의 흐름 속에는 지역적 수준에서의 평화를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국가 스케일보다도 지역 차원에서의 평화가 무엇인지, 누가 평화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지 등과 같은 지역 내부의 평화 작동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차원의 평화가 단순히 평화를 논하는 스케일의 변화가 아니며 평화를 해치는 근원에 대한 탐색과 더불어 평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Barnett and Zürcher, 2009; Paffenholz, 2015).
평화의 지역적 전환 논의를 주도한 Mac Ginty and Richmond(2013)는 지역(혹은 도시) 수준의 평화가 실질적 차원의 평화 활동을 장려하며, 공식적인 부문과 함께 비공식적 부문까지 고려하여 평화 영역의 확대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또한 평화의 지역적 접근은 지역의 정체성, 가치와 규범 등과 같은 미시적 자원들을 평화 구축과 연계시켜 이를 바탕으로 평화에 대한 인식, 공감, 연대, 지속가능한 평화가 실현될 수 있는 동력으로 전환시키기 용이하다.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평화는 분열된 공동체의 일상적 생존과 위기 대처를 용이하게 하는 일종의 ‘일상적 외교(daily diplomacy)’의 형태를 띤다. 일상적 외교는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평화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하며, 갈등과 분열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현실적이면서도 다양한 접촉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대안적 방식을 만들어낸다(Richmond, 2009; Mac Ginty, 2014).
평화의 지역적 전환은 평화에 대한 사고와 이행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국가 중심의 평화는 보편주의 개념을 전제하는데, 이러한 보편주의는 평화 유지와 정권 교체, 국제 평화 지원에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시킨다(Wiberg, 1991). 그러나 평화의 지역적 관점은 이러한 결정들에 대해 도전하며, 보편주의보다는 특수주의로서 평화, 지역적 변화에 대한 역사적인 진보성과 식민주의와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게 위한 시도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 물론 모든 평화의 지역적 전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에 도전하게 하고 국가 중심의 평화가 반드시 선(善)이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다(Mac Ginty, 2013).
그동안의 평화가 국가 통치의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저항을 쉽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되어왔고, 평화를 만드는 힘의 맥락에 있어서 권력의 방향이 일방향적이고 하향적이었기 때문에, 평화는 역설적으로 권리뿐만 아니라 물질적 차원에서도 불평등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지역적 차원의 평화로 전환을 모색하면서, 평화가 저항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닌 모두가 원하는 안정적인 상태로의 지향을 우선시하고, 불평등의 근원에 평화가 부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Mac Ginty, 2011). 다양한 평화의 형태를 인정한다는 것은 평화를 정의할 수 있는 깔끔하고 매끄러운 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보편적 규범이나 국가 정당성에 숨겨진 부정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화의 지역적 전환에 있어, 국가와 지역이 대척점에 있는 것인가, 혹은 평화 형성의 대안이 반드시 지역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남아 있다(Randazzo, 2016). 지역을 포괄적인 평화의 의사 결정의 장소로 낭만화하는 경향이나 지역을 국가 내의 작은 단위로 보는 것에 대해서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스케일로서 지역이 평화 논의에 적절한가에 대한 합의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Richmond, 2009). 그럼에도 불구하고, Van Leeuwen et al.(2020)은 ‘지역’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이를 둘러싼 담론, 관행 및 아이디어, 그리고 이해 관계자와 이해관계가 이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포함하여 그것의 가치와 필요성에 탐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평화의 지역적 접근에 대한 개념적 정의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아래로부터 평화 형성 과정이 국가보다 지역 주민들, 이해관계자 혹은 이를 대리하는 지방 정부가 평화가 무엇인지를 논하고 평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보다 광범위한 시각에서, 지역적 평화는 기존 거주자들 내에 존재했던 권력 관계의 불균형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집단의 유입을 관대하게 허용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평화 구축”을 목표로 하는 이니셔티브는 기존 국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민족주의를 재평가하고, 평화 구축의 대리인으로서 지역 행위자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Richmond, 2013a).
또한 지역 차원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행위자들의 장기적인 참여를 독려할 수 있으며, 갈등 해결의 능력만을 지원하기보다 포용적 프로세스를 용이하게 하고 평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재구축하는 효과를 가진다. 평화의 지역적 관점은 지역에 기반을 둔 평화가 사회적 변화와 정의를 위한 비전을 제공해준다. 뿐만 아니라 지역적 전환이라는 담론에 내재된, 평화구축에서 지역 이해관계자들을 국가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역 의제로서 평화 이슈에 대한 개입을 조율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 간의 협상 기회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지역이라는 스케일에 응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Richmond, 2013b; Mac Ginty, 2015).
이와 같이 평화의 지역적 전환은 평화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평화실현의 능동성, 주체성, 자율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평화에 대한 공간적 관점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McConnell et al., 2014). 기존 연구들은 평화의 전제 요건으로서 공간적 속성을 갈등과 불화가 야기된 장소로만 기술할 뿐만 아니라 공간의 효과와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부차적인 것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이해하는 배경으로써 ‘공간’은 평화가 재현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근거, 평화와 연관된 아이디어가 창출, 교류될 수 있는 장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Fregonese. 2012; Loyd, 2012; McConnell et al., 2014).
평화의 공간적 측면을 강조한 Kappler(2015, 2019)는 평화형성과 구축과정에 있어서 지역과 공간이 중요하며, 특히 탈지역화와 재지역화의 끊임없는 과정이 평화의 정치적, 사회적 지형과 연관된 행위자들의 위치성을 결정짓는 도구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평화를 지역적(혹은 도시적) 차원에서 행위자들 간의 담론적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전제한다면, ‘공간’을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행위체로 간주하고 그것의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행위체로서 공간(spaces as agency)’으로 접근하는 것이 평화 협상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권력 구조를 설명하는데 유효하다는 것이다(Kappler, 2014).
따라서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관들과 지역의 정체성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를 겪는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Kappler, 2015; 고경민, 2020). 이러한 평화의 공간적 접근에 있어, 평화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그것의 이야기를 정확히 읽어 내려갈 지역 행위자들은 평화의 실천적인 요소와 전쟁과 갈등의 경관을 평화의 경관으로 재번역하기 위한 주체로서 참여하게 된다. 때문에, 평화의 지역적 전환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평화의 상태를 소극적 혹은 적극적 상태로 구분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일상적이고, 시민참여적이며, 상호적 상태의 평화를 지향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국가가 주도하는 담론적 평화는 지방 정부의 경제적 성장과 이미지 재구축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지역 중심의 평화’로 전환되는 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평화도시들은 어떠한 목표, 이슈를 가지고 평화를 지향하고 있는가. ‘평화의 지역적 전환’ 개념이 지향하는 개인적, 공동체적 관점의 일상적 평화, 아래로부터의 평화가 실현되고 있는가. 혹은 여전히 이데올로기나 정책적 차원의 평화가 반복되고 있는가. 다음 장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 국내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평화도시 논의의 현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3. 국내 신문기사 분석을 통해 살펴본 평화도시 논의 변동
‘평화도시’라는 현상이 한국에 언제, 어떠한 계기로 나타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국내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키워드의 변화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현재의 평화도시 논의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평화’ 담론 변화와 마찬가지로 시공간적 맥락을 반영하며 진화하였다. 따라서 90년대부터 2021년까지 평화도시 논의가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되었으며, 그것의 주체는 누구였는지를 확인해봄으로써 ‘평화’의 지역적 전환이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신문기사 분석은 시대적 흐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당시의 여론이 어떤 키워드에 의해 주도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1990년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고 있는 뉴스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BIG KINDS)’를 활용하였다. 빅카인즈는 뉴스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뉴스 카테고리를 자동 분류하고, 뉴스 내 핵심 키워드 추출을 표준화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사의 형태소 분석, 개체명 분석,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원하는 검색어의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빅카인즈에서 제공하는 기사의 메타정보는 뉴스일자, 언론사, 제목, 통합분류, 사건사고, 인물, 위치, 기관, 키워드, 본문, URL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논문에서는 형태소 분석 및 데이터 전처리가 완료된 ‘키워드’를 엑셀파일로 변환하여 가중치를 계산하였다.
분석 대상의 신문은 전국에 발간되는 중앙일간지(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와 28개 지역일간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빅카인즈의 기사 제공 시점인 1990년부터 2021년까지 ‘평화도시’로 기사를 검색하였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90년대 3건에 불과하던 평화도시 이슈는 2002년부터 증가하다가 2018년에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2002년 이전까지는 평화도시 개념이 거의 없었으나, 2002년 이후부터 연간 평균 200건 정도의 평화도시 이슈가 다루어지다가 2018년에 큰 폭의 증가 패턴의 변화가 나타났다(그림 1).
논의 변동량을 기준으로 2002년 이전(1기), 2003년-2017년(2기), 2018년 이후(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시기별 주요 키워드를 보면 평화도시로 검색되는 이슈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가중치4) 기준으로 분류된 상위 10개의 키워드가 시기별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0년에서부터 2002년 사이에는 미군기지 이전과 이전에 따른 환경오염 대책 및 정화문제로 인해 ‘미군기지’, ‘시민단체’, ‘기름유출’ 등과 같은 키워드가 나타났다. 2003년부터 2017년 사이는 광주, 제주의 평화 도시(혹은 평화의 섬) 지정과 연관된 키워드로 ‘육성조례’, ‘인권증진’, ‘민주인권’, ‘역사성’ 등이 추출되었다. 2018년 이후의 경우, 동계올림픽을 실시한 평창과 평화도시 조례를 제정한 인천, 파주 등과 같은 지역명과 ‘접경지역’, ‘남북교류’, ‘판문점’ 등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였다.
표 1.
시기별 평화도시 주요어 비교
따라서 추출된 키워드를 기준으로 시기별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기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미군 범죄의 처벌, 미군기지 오염 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저항과 연관된 시기이며, 2기는 광주, 제주 등 비(非)접경지역에서의 평화도시 논의 확산과 더불어 국토계획 상의 평화도시 언급이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3기는 민선 7기의 시작을 기준으로 지방정부의 평화도시 전략이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이처럼, 시기에 따라 평화도시에 대한 관점과 이를 활용하는 주체들이 상이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기별 평화도시의 개념의 특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시기인 2002년 이전의 평화도시는 2000년대 초, 경기 북부 지역에 국한된 미군기지 이전 관련 논의에서 비공식적으로 평화도시를 언급한 것으로 계기로 평화와 도시가 연결되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다. 경기도 의정부지역 시민단체들이 ‘미군기지 없는 평화도시 만들기 운동’을 시작하였는데(그림 2), 시민단체 중심으로 구성된 평화도시 네트워크는 미군기지 축소・반환원칙을 재확인하고 주둔 지역 주민들의 의사반영 제도화, 반환 비용 지자체비 부담, 반환지 환경훼손 책임 명문화 등을 추진하는 운동이었다. 이 시민운동은 미군범죄 발생시 일시적으로 운영됐던 기존의 대책위와는 다른 성격의 상설기구를 만들어 주민 피해예방과 해당 미군 처벌 등 미군범죄에 적극 대처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 차원에서 평화도시 개념이 만들어지거나 관련 논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 평화도시의 개념은 도시 스케일에서의 평화 개념의 적용이라기보다는 미군 기지 반환과 복원, 미군 범죄로 야기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과 더불어 자주적 안보의 실현, 지역 주민들의 실정이 반영하는 미군부대 관련 이슈들을 지칭하는 키워드로써 평화도시가 사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 단체 중심에서 이루어진 구호적 성격의 ‘평화도시’로서 이에 대한 개념 및 의미의 설정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또한 평화도시 논의와 관련하여 지역 주민, 지방 정부 등 관계 행위자들의 합의 과정이나 추진 전략이 부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당 사안의 진행이 본격화되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두 번째 시기인 2003-2017년 사이에 진행된 평화도시 논의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는 점과 국토 계획 내에 평화도시 개념이 적용된 것이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관련된 특징이 잘 나타난 지역으로 2003년, 평화도시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제안된 곳인 광주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를 꼽을 수 있다.
서론에서 제주지역의 평화의 섬 추진 과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광주광역시 역시 민주, 인권, 평화도시 이미지를 정착시키고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형 종을 건립하는 것을 출발로 평화도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2003년 「세계적인 민주・인권・평화도시육성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였으며, 2007년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 조례’를 제정하였다. 특히 평화도시 사업을 확대 추진하기 위하여 2015년 인권평화협력관실을 신설하였고, 2018년 민선 7기 민주인권평화국으로 확대 개편하여 운영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평화도시 사업은 국제 인권・평화도시 승화전략의 수립뿐만 아니라 민주・인권・평화도시 브랜드 제고에 관한 사항들도 고려하고 있다. 이 외에도 광주 인권지수 개발 및 UN지정 인권도시 추진, 광주인권・평화센터 설립・운영에 관한 사항, 민주・인권・평화관련 국제교류사업 총괄 등도 해당 부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민주인권평화의 광주정신과 민주화운동의 오월정신을 세계인들과 5・18을 공유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의문화수도(Justice Culture Capital)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광주와 제주는 각각, 5.18과 4.3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역적 상처의 치유와 역사적 오점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전략으로 평화도시라는 키워드가 선택되었다(은우근, 2006; 김미경, 2008; 전희진・박광형, 2016; 김동춘, 2020).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문제점들을 가시화하고 동시에 해당 지역의 기억들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평화의 논의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평화의 지향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부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민주화와 정의, 인권의 차원에서 평화 개념이 전유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두 번째 시기의 또 다른 특성으로 국토계획 속에 평화도시가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2000-2020) 수립 이후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국내외 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주요 내용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남북한 교류 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해 관련된 국토기반들을 조성하는 것으로 목표가 조정되었다. 번영하는 통일국토의 목표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접경지역의 평화벨트 조성과 북한지역 개발을 위한 남북 간 협력체제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남북한 경제협력과 국토통합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한반도 통합인프라 구축과 국내 외 지원체제를 확립하고, 그중에서도 남북 접경지역을 화해와 협력공간인 평화벨트로 구축하여 남북 교류협력 기반을 강화하기로 계획하였다(국토교통부, 2000).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평화적 국토개발의 중심 개념으로 평화벨트(Peace Belt)는 군사대치지역에서 평화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국가 정책적 공간이자, 남북한 교류협력 및 세계가 함께 만나는 화합과 번영, 평화 상징지역이다. 이것의 실행을 위해 우선 사업 대상지로 접경지역 내 잠재력이 높은 주요지역을 중심으로 교류협력지구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예를 들어, 남북교류협력의 잠재력이 높은 접경지역 인근에 평화도시(섬) 등 교류협력지구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제4차 국토 종합계획(2006-2020) 수정 계획안에서 ‘평화도시’ 개념이 등장하였다. 도라산 평화공원 조성과 세계평화축전 추진으로 남북교류협력 및 평화상징 공간을 마련하고, 남북교류협력의 거점화를 위한 남북간 경제협력단지 조성과 남북간 물류의 보관・환적 등을 위해 내륙물류기지를 확충하는 것과 더불어, 남북통일을 대비한 사회적 통합의 실험장으로서 남북평화도시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대북정책 변동과 동아시아 주변 정세의 관계에 따른 남북협력 사업의 가능성이 증대된 시기로 국토종합계획 내에서 평화도시를 언급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남북 협력 사업의 공간적 스케일을 도시 단위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지방자치제도의 정착 및 활성화가 이루어진 시점으로 남북협력과 대북정책에 있어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실질적 차원에서의 남북협력 사업의 가능성 있는 범주로 ‘국가’보다 ‘도시’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특구나 권역 위주로 추진되었던 기존의 국토계획과는 다른 지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도시의 지정에 대한 절차와 지역에 대한 설정이 매우 추상적이고, 대북정책의 변동에 따라 남북 간의 협의가 원만히 진전되지 못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보인다. 또한 도시 단위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여전히 중앙정부 주도의 국토 계획이었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중앙 정부의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취하는 경향이 강하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평화도시’라는 단어의 선택은 지역의 성장이데올로기의 연장선으로 읽혀진다. 또한 예산과 인력 부족, 국가 단위의 의사소통 체계 의존, 북한의 정치적 입장 수시 변동 등 남북협력 사업의 특성상 각 지역의 자율적, 개별적 계획 마련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는 점에서 평화의 지역적 전환이 과도기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시기는 2018년 7월에 시작된 민선 7기의 시작과 맞물려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변동이 평화도시가 확산되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1995년 지방자치제(1기) 재개를 시작으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 행정, 경제, 사회 등의 정책 결정 및 지역 사회의 이해의 방식이 변화하게 되었다. 민선 7기는 종전의 중앙-지방 정부 간의 수직, 상하 관계에서 벗어나 대등하고 수평적 관계로 변모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국정 운영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종 사회 문제와 관련된 행위 주체들의 참여와 민관 협치를 통해 지방 중심의 분권적 문제 해결 방식이 강조되었다(배준구, 2018; 설선미・배정아, 2018).
민선 7기와 함께 하는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은 5대 국정 목표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라는 과제와 연동되어 있다. 기존 단위사무 중심이 아닌 기능 중심의 포괄 이양 방식을 통해 지방의 실질적 권한 확대하고, 지역주민・시민단체, 중앙・지방공무원, 현장 전문가 등의 참여를 통해 지방이 요구하는 사무를 우선 발굴・이양하는 것으로 국정목표로 삼았다. 또한 세수의 신장성과 안정성이 높고, 지역의 경제활동이 지방세수로 연계될 수 있는 소비・소득과세 중심의 지방세 확대 및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 추진하였으며, 자치단체 간 다양한 방식의 협력으로 권역별 공동발전 기반마련 및 활성화를 통한 네트워크형 지방행정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김성현, 2018; 황정윤 등, 2019).
한편 중앙정부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안보 전략으로서 남북한 화해협력과 경제통일 구현을 위한 한반도 신경제지도라는 통일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는 남북 간 경협 재개 및 한반도 신경제구상 추진, 남북한 하나의 시장협력 등을 지향함으로써 경제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남북 평화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 라는 3대 벨트 구축을 통해 한반도 신성장동력 확보 및 북방경제 연계 추진하는 사업들을 추진하였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질병, 재난 등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분야에서 남북한 주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남북 공동의 노력을 추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민선 7기는 자율적인 지방정부의 평화도시 전략이 추진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으며, 일상적 실천이 중심이 되어 도시 단위의 평화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정치적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접경지역에 위치한 지방 정부 중심의 인천, 파주, 고성, 철원, 평창 등을 비롯하여, 비접경지역의 제주, 거제, 광주 등에서 평화도시를 추진하여 통일을 대비한 지자체의 도시 경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 내의 평화 조성에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지자체 단위에서의 평화도시 전략들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 평화도시 전략이 해당 지역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폭력 및 갈등에 대한 반성과 관련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민선 7기 이후 접경지역인 경기, 강원, 인천 지역의 평화도시 전략은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해당 지역의 낙후 상황을 타파하고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서 평화도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선 시기와 큰 차이를 보인다. 평화도시 지정 배경에는 해당 지역의 역사적・지정학적 이슈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활성화, 새로운 소득 창출의 방식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다크 투어리즘, 평화관련 축제, 평화 교육, 평화 산업 등과 같은 경제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사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정리하자면, 시기별로 평화도시가 논의된 배경과 그 주체는 매우 상이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90년대 초기 평화도시는 주한 미군의 기지 이전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요구와 합리적, 윤리적 차원의 반환 과정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전개되었다면, 2000년 초부터 2018년 이전까지는 광주와 제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역사적 비극을 평화적 차원의 공감대 형성과 제도적 틀 마련에 기여하는 개념으로 활용되었다. 2018년 민선 7기는 본격적인 지자체 경쟁 구도에 따라 도시 브랜딩 차원의 평화가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재구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18년 민선 7기 이후, 도시 간 경쟁 체제로서 평화도시 논의는 지역별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광주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도 2000년 초반부터 현재까지 평화도시 이슈를 지역의 관심사들과 연결시켜 진행하고 있지만, 민선 7기 이후의 평화도시와는 방향성과 목적에 있어서 상이하므로, 지역별 비교 부분에서는 제외하였다. 2018년 이후, 평화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들은 대체적으로 인천, 경기, 강원권에 해당하는 접경지역에 위치한 지역들로, 평화도시 전략을 취하기 전에, 남북협력과 평화지대 구축을 위해 다양한 정책과 사업에 참여한 도시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남북 교류를 위해 지방 정부 차원에서의 경험들이 많고 접경지역이라는 지리적 제약을 수년 동안 감당해왔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띤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지역들이 민선 7기에 이르러, 평화도시 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사업적 차별화를 위한 이들 간의 경쟁이 빠른 속도로 심화되었다.
지자체별 평화도시 사업을 시각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2018년 7월, 민선 7기 시작시기부터 2021년 12월까지 수집된 기사를 바탕으로 도시별 평화도시 관련 기사에서 다루어지는 키워드의 빈도를 기준으로 가중치 비교표를 작성하였다. 기사 출현 단어 중 유의미한 분석에 활용할 명사, 동사, 형용사를 추출하기 위하여 빅카인즈에서 ‘평화도시’로 검색된 기사의 메타정보를 활용하였으며, 2018년 이전 시기의 경우, 민선 7기에 들어 평화도시로 전환한 지역들- 주로 접경지역 중심(인천, 경기, 강원)의 평화도시- 논의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분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우선 개괄적 차원에서 평화도시 논의가 가장 활발한 경기, 강원권 지역지를 중심으로 해당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행위자와 관련 키워드5)를 확인하였다. 평화도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으로 강원권의 경우, ‘평창’,‘강원도’, ‘고성군’ 등과 같은 지역명과 함께, ‘올림픽 유산’, ‘지속가능’,‘지역경제’, ‘탈바꿈’ ‘남북교류협력사업’ 등이 도출되었다. 경기 지역도 마찬가지로 ‘인천’, ‘파주’ 등과 같은 평화도시 논의를 본격화한 지역들과 ‘남북교류’, ‘통일경제특구’, ‘일자리’ 등과 같이 접경 지역의 지역 발전과 관련된 키워드들이 확인되었다. 평화도시가 해당 지역의 경제적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기존의 남북협력(교류) 사업의 연장선에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키워드들 사이에 눈에 띄는 것은 민선 7기 시, 도지사의 이름이다. 평화도시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행위자들로, 이들의 의지와 사업에 대한 방향성이 현재의 평화도시 사업에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표 2).
표 2.
강원, 경기권 지역지 평화도시 키워드 비교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각 지역의 평화도시 논의들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파주, 고성, 인천, 평창, 연천, 철원 등의 평화도시 키워드로 분석해 본 결과, 지역별로 평화도시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목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 4). 예를 들어, 파주는 통일경제특구, 고성은 접경지역, 인천은 영종, 평창은 동계올림픽이 가장 높은 가중치를 보이는 키워드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각 지역에서 최우선사업 혹은 주요 지역이 평화도시 키워드와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평화도시 전략은 단순한 남북협력, 통일 관련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지역별로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키워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파주는 접경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상생 모델을 만들고자 ‘통일경제특구’라는 법안을 제안하였는데, 개성공단이 가시적인 성과를 낸 이후,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것으로 2006년 여야의원이 ‘통일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공동 발의한 배경에 있어 평화도시로의 전환이 강력히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종전선언’, ‘남북교류’ 등과 같이 문재인 정권에서 실현된 정상회담의 성과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천의 경우, 2020년 12월, ‘군수협의회’에서 DMZ특별자지단체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였던 것이 주요한 평화도시 전략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천의 평화도시 논의는 지역의 낙후를 해소하고 지역발전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의 모토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연천군의 자연 자원인 ‘한탄강’과 ‘임진강’도 평화도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성의 경우, 지리적 특성인 ‘접경지역’이 우선 도출되었으며 평화도시 전략이 접경지역이 가진 장단점을 보완하는 사업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통일전망대’, ‘제진역’, ‘금강산’, ‘화진포’, ‘DMZ’ 등 고성 지역의 안보 관광지로 유명한 장소들이 함께 도출되었으며, 동해북부선, 유라시아대륙 등 남북간 인프라 연결사업이 연상되는 단어도 등장하였다.
2018년 개최된 ‘평창동계올림픽’은 평창의 평화도시의 주요 테마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 평화도시 관련 사업도 올림픽유산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 있다. 평창의 오대산, 발왕산 등 산림자원이나 유산사업 등이 평화도시 사업의 아이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영종지역의 성장이 인천 지역의 평화도시 전략에 중요한 기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천이 평화도시 사업으로 강조하고 있는 ‘서해 5도’의 경우, 우선순위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중치를 보였다. 평화도시와 관련 지역의 인물로 ‘문재인 대통령’이 도출된 바, 한반도 신경제지도 등과 같은 중앙정부의 남북 협력- 교류사업이 지방정부의 평화도시 사업과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철원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철원이 가진 지역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접경지역’등의 단어가 우선 도출되었다. 인프라 사업과 관련된 ‘동해북부선’, ‘SOC’, ‘제 2 경춘국도’ ‘철도망’ 등의 키워드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보다 교통망과 관련된 키워드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철원군의 평화도시 전략은 경원선 복원 및 수도권과의 연결성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한 각 지역별 평화도시 전략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지역에서 진행하여 왔던 관광, 안보 전략이 평화도시 사업으로 치환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파주, 인천 지역의 키워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민선 7기의 성과 및 사업 전략과 평화도시가 연동되어 있다. 기존의 남북협력, 남북교류 사업들이 평화도시라는 이름으로 교체되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평화도시가 추진되는 목표는 ‘지역경제’, ‘일자리’, ‘균형발전’ 등과 같은 경제적인 차원에 집중되어 있으며, 접경지역의 저발전, 낙후 등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평화도시가 활용되고 있었다. 셋째, 평화도시 전략은 민선 7기로 임명된 지자체장의 의지와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자체장의 이름이나 ‘시정 비전’, ‘업무 협약’,‘ 로드맵’ 등과 같은 키워드 등은 평화도시에 대한 비전이 임명자의 선거 공약 혹은 업무 추진 방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민선 7기 이후 지방 정부를 중심으로 평화도시 이슈가 확산되고, 경쟁 구도의 주요 키워드가 되면서 안보, 국가 외교, 동북아 내 지정학적 관계 등과 같은 기존의 평화 논의보다는 지역 경제의 활성화, 일자리의 확보, 남북교류사업의 지역화 등과 같은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 도시 정책 사업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지역 내의 일상적 평화로 전환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중앙 정부의 평화, 안보, 남북협력의 정책이 분산화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민선 7기 지방정부가 강조한 지역의 독립성, 자율성 등이 지역 스스로의 역량을 강조하는 방향이 아닌 중앙정부의 관점을 지역이 답습하면서 평화도시의 주도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경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4. 결론
본 연구는 평화 개념과 담론이 국가 스케일에서 도시 스케일로 전환되는 현상을 살피기 위해 국내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평화도시’ 논의의 변화와 각 지역의 특색을 살펴보았다.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평화라는 단어가 도시와 결합하게 된 것은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이슈들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평화적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했던 광주, 제주의 평화도시 논의에 이어 민선 7기 이후, 남북관계 변동에 따른 지방정부의 도시 전략으로 평화도시가 활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선 7기에 등장한 평화도시라는 도시 브랜딩 사업은 주로 접경지역에서 추진되었으며 기존의 남북협력 사업과 유사한 결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평화도시 사업 추진을 통해 해당 지역들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평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연구의 분석 키워드였던 ‘평화의 지역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연구 질문에 답을 해본다면, 현재의 평화도시 논의는 ‘국가 대 지역’ 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대결구도의 평화 논의에서 벗어나 평화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완벽히 보여주는 사례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선행 연구의 검토에서 언급된 일상적 외교, 공론장의 형성, 탈지역화와 재지역화, 평화에 대한 상상력 등의 개념은 평화도시 담론을 기술하고 분석하는데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이상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현재 국내 평화도시 논의들이 평화를 지역 수준으로 끌어내리는데까지는 도달하였으나 그것의 방향과 목적에 있어서 ‘평화’의 근원적 고민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자체별로 평화도시를 위한 사업의 추진 속도, 목표 내용 등은 다르나 사업 근거로서 평화도시와 관련된 조례를 제정하고, 계획 실현을 위한 기본 계획을 마련하는 등, 인력과 자원 배정을 통해 평화도시 사업을 현실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 단계까지는 진척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의 공감대 형성 미흡, 특정 기관, 집단 중심의 지원 집중, 지역 내부의 평화 논의 방식이 부재하다는 측면에서 이를 해결할 과제가 남아있다.
최근 인천과 파주를 중심으로 평화도시 조례가 제정되었으며, 민선 7기 이후 평화도시를 전담으로 하는 부서 및 기관의 설립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세계와 한반도를 잇는 평화도시, 인천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인천형 남북 교류, 접경지역 평화 협력 강화, 평화 의제의 국제적 확산을 주도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파주 역시 민선 7기 공약실천 계획의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도시 파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평화도시 조성의 기본방향, 남북교류협력의 조건변화, 남북교류협력 추진 원칙과 방향, 평화・통일교육의 활성화, 평화도시 조성을 위한 민・관 협력, 평화도시 조성을 위한 로드맵으로서 평화도시조성 기본 계획을 수립하였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 미사일 발사, 강경한 대남 메시지 등과 같이 남북 관계 개선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평화도시 사업은 남북협력 및 교류보다는 지역의 낙후 해소와 이미지 개선의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의 평화도시 사례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평화가 일상의 수준으로 내려오는 현상에 의해 평화도시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평화도시는 구호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로 인해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합의와 철학은 없고 사업과 도시전략만 남은 ‘공백 상태의 평화’가 야기되고 있다. 또한 도시 간의 평화 교류가 매우 제약적이라는 한계와 모든 지자체가 평화의 연대 관계 형성보다는 ‘중심지’가 되길 원한다는 점에서 평화도시의 본질적 목표를 상실할 우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역적 차원의 평화도시 논의가 다양한 방면에서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앙정부의 평화 관점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태도나 사업 예산을 둘러싼 과도한 경쟁 등에서 지방 정부의 관성적 종속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문제가 반드시 국가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평화를 보다 구체적 수준에서 다룰 때 현실적인 대안이 도출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지역 스케일에서의 평화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각 지자체가 추진하는 평화도시는 평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하고, 소속되어 있는 지역이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따라서 지역 스케일에서의 평화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평화 논의에 대한 지역 내의 논의 및 수렴과정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노력들이 일상의 평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다양한 형태의 전략들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황수환, 2019; 허지영, 2021).
남북교류의 확대에 있어 평화도시의 역할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평화도시를 평화와 탈분단을 위한 일상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접경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지방적 차원의 일상적 실천들이 국경과 접경을 긴장과 갈등의 장소가 아니라 교류와 소통의 통로로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침을 밝히는 연구들이 증가(박배균・백일순, 2019; 최영진・백일순, 2021)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평화도시에 대한 공간적 측면의 접근은 상당히 유의미한 논의들을 도출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본 연구의 한계로서 평화도시의 시론적 연구이기에, 본문에 언급한 지역들의 평화도시 추진의 초기 배경 및 도시 스케일에서의 평화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의견 청취가 부족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추후 연구는 평화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각 지역의 구체적인 평화도시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 신문기사에서 확인한 결과대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 평화도시라는 은유를 선택한 것인지, 혹은 언론에서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목표들이 존재하는지를 담당 공무원, 지역 주민,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를 통해 자세하게 살펴볼 계획이다. 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평화가 담론이나 추상적 개념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지역 스케일로서의 평화가 의미하는 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