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연구 설계와 분석자료
3. 국립묘지 참배 연구의 현황과 문제의식
4. 의례, 기억, 영토화, 그리고 문화지리학
1) 의례와 수행으로서의 정치
2) 기억, 죽은 자, 그리고 영토화된 공간
3) 공간과 신체의 문제
4) ‘묘역의 공간정치’의 재정식화
5. 한국 국립묘지의 형성과 의례적 장치
6. 국립묘지 참배와 정치적 리더십의 생산
1) ‘정치적 일정의 우선성(Primacy of the political calendar): 국립묘지는 어떻게 정치적 일정을 여는가
2) 신체, 동선, 안무(choreography): 참배 의례의 문화지리학
3) 시각적 위계와 미디어화: 누가 전경화되고 누가 배경화되는가
4) 상징적 인프라와 영토화된 정치적 리더십 (territorialised leadership)
7. 맺음말
1. 서론
한국에서 새해의 첫 정치적 이벤트는 내각회의, 정당대회, 혹은 신년 기자회견이 아니라 국립묘지의 현충탑을 향해 이동하는 정치인들의 행렬인 경우가 적지 않다. 대통령, 국회의장, 정당 대표,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대통령 당선자까지도 반복적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을 찾는다. 그들은 헌화, 분향, 묵념, 방명록 작성의 순서를 수행하며, 언론은 이를 ‘새해 첫 일정’ 혹은 ‘첫 공개 행보’라는 문구와 함께 배치된다. 현충일에는 이 장면이 더욱 압축된 형태로 재연된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가 추모의 중심 무대로 작동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그 엄숙한 무대의 중심에 가시화된다. 이러한 장면은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이 되어오지 못한듯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익숙함이야말로 이 의례가 한국 정치의 일상적 문법으로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본 논문은 단순하면서도 문화지리학의 이론화 작업이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국립묘지 참배는 정치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본 논문의 주장은 명확하다. 한국 정치 엘리트의 국립묘지 참배는 국가를 위해 죽은 자들에 대한 감사와 추모를 표현하는 동시에, 살아 있는 정치인을 국가적 연속성의 적법한 매개자로 가시화하는 정치 지도자 만들기의 수행(performance)이다. 다시 말해, 국립묘지 참배는 애도를 표현하는 의례일 뿐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을 생산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치적 리더십은 단순한 개인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국가와 희생, 역사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를 ‘올바르게’ 매개할 수 있는 존재로 공적으로 승인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립묘지는 단순한 매장 공간도, 기념 공간도 아닌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밀도’를 획득한다.
기존 논의들은 이러한 문제를 부분적으로만 다루어 왔다. 대부분의 선행연구들은 동작동 국립묘지의 형성과 그것의 정치적 의미, 국민국가와 죽은 자 모시기의 계보, 국가의례와 유족의례의 차이, 안장 경계와 기억갈등, 국립묘지 내부의 위계와 불평등, 현충탑과 민주묘지의 상징정치, 보훈정책의 제도적 차원 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김종엽, 2004; 지영임, 2004; 정호기, 2005a; 2005b; 하상복, 2013; 2014; 김봉국, 2016; 강인철, 2017; 김이순, 2017; 신동은, 2020; 류민수・심미승, 2022; 조이경, 2022; 신회섭, 2025). 이러한 연구들에서 아쉬운 점은 한국의 국립묘지 참배가 ‘정례적이고 반복적이며 고도로 공간-매개화된 엘리트 의례’라는 점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반복적 참배가 정치적 시간, 신체의 동선, 시각적 질서, 공적 정당성의 생산과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석의 공백이 남아 있다.
본 논문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묘역의 공간정치’라는 개념을 재정식화한다. 여기서 묘역의 공간정치란 국가가 ‘국가를 위해 혹은 국가에 의해 희생당해 죽은 자들’을 특정 경관 안에 “영토화(Territorialisation)”(Deleuze and Guattari, 1987)하고, 그 경관을 통해 정치적 시간을 질서화하며, 정치 엘리트의 신체와 이동을 안무하고, 희생을 공적 정당성의 상징적 인프라로 전환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 개념은 기존의 기억정치 논의가 자주 머물렀던 상징의 해석, 갈등의 기술, 기념물의 의미 분석을 넘어서, 국립묘지가 어떻게 살아 있는 정치인의 위상을 반복적으로 조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때 본 논문은 정치인의 진정성 여부를 입증하거나 폭로하는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국립묘지에서 진심 어린 슬픔을 느낄 수도 있고, 계산된 정치적 행위를 수행할 수도 있으며, 실제 공적 장면에서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내면이 아니라 공적 효능이다. 국립묘지 참배가 공적 장면으로 유통되는 이상, 그것은 사적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는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 카메라, 수행단, 의장대, 방명록, 추모 문구, 언론의 반복적 문장들은 모두 그 결과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립묘지 참배는 정치가 죽은 자들을 단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을 매개로 살아 있는 권력을 배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특권적 사례라 할 수 있다.
2. 연구 설계와 분석자료
본 논문은 국립묘지 참배 일반에 대한 추상적 묘사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공개된 참배 장면의 문법을 추출하는 질적 사례연구이다. 분석의 공간적 범위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중심으로 하되, 국립대전현충원을 보조 비교축으로 포함한다. 시간적 범위는 2023년 1월부터 2026년 1월까지의 공개자료를 핵심 분석 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2011년 대통령의 자기진술은 ‘새해 첫 일정’의 선행적 규범화를 확인하는 보조 자료로 활용하였다. 또한 국립5・18민주묘지 관련 두 사례를 제한적으로 포함하여, 국가추모공간 일반과 민주묘지의 차이를 과도하게 혼동하지 않도록 비교의 경계를 제시하였다.
핵심 사례군은 새해 첫 일정, 취임 직후, 현충일과 같이 정치적 문턱을 형성하는 장면들로 구성하였다. 자료는 정책브리핑・청와대 브리핑・국립서울현충원・국립대전현충원의 공식 사진 및 보도자료, 연합뉴스・뉴시스・경향신문・서울경제 등 언론 기사와 사진, 현충원의 조직, 시설, 연혁에 관한 공식 안내자료로 구성되었다. 자료 선정의 기준은 반복성, 공개성, 비교가능성의 세 가지이다. 즉 동일한 의례 문법이 여러 주체와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사진과 캡션을 통해 공적으로 유통되며,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 그리고, 광주의 국립5・18 민주묘지 사이의 변이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자료만을 핵심 사례들로 채택하였다.
분석 절차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사건의 시간적 배치를 따라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참배를 수행하는가’를 정리하여 정치적 일정의 우선성을 확인하였다. 둘째, 현충문, 현충탑, 분향과 묵념, 방명록, 특정 묘역으로 이어지는 이동 순서를 읽어 신체의 동선과 공간의 안무를 분석하였다. 셋째, 공식 사진과 언론 사진을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구도, 시점, 거리, 캡션이 결합된 시각 텍스트로 간주하여(Rose, 2016), 어떤 인물이 전경화되고 어떤 죽음이 배경화되는지를 해석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국립묘지 참배 전반에 대한 전수 계량적 연구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가시화되는 장면들의 유형과 변주를 해명하는 ‘해석적 사례연구’이다. 다시 말해, 본 논문은 자료의 수를 과시하기보다 밀도 높은 초점 사례와 보조 비교사례의 교차 해석을 통해 한국 정치에서 국립묘지 참배가 작동하는 공간의 정치적 문법을 드러내고자 한다.
3. 국립묘지 참배 연구의 현황과 문제의식
국립묘지와 관련된 연구들은 적지 않은 성과를 축적해 왔다. 다만 그 관심의 중심은 대체로 네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는 국립묘지의 형성과 제도적 계보에 대한 연구이다. 김종엽(2004)은 동작동 국립묘지의 형성을 ‘기념의 정치학’의 맥락에서 파악하며, 국립묘지가 단순한 장지가 아니라 국가의 정통성과 문화정치적 의미가 응축된 공간임을 밝혔다. 정호기(2005a)는 국민국가의 신성성과 ‘죽은 자 모시기’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국립묘지 조성과 유지의 역사적 논리를 추적하였고, 정호기(2005b)는 일제하 조선에서 전사자 추모 공간과 추모 의례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를 검토함으로써 해방 이후 국가 추모체제의 장기지속적 계보를 보여주었다. 강인철(2017)은 동작동 국립묘지 내부의 위계와 불평등을 분석하며, 국립묘지가 단지 평등한 영웅들의 안식처가 아니라 위계가 구조화된 공간임을 드러냈다.
둘째는 의례와 추모의 형식 자체에 대한 연구이다. 지영임(2004)은 국립묘지 전사자 제사를 국가의 의례와 유족의 의례라는 두 층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이 연구는 국립묘지가 국가의 추모와 가족의 추모가 중첩되면서도 긴장하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점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김이순(2017)은 대표적 현충시설물인 현충탑의 기원과 형성을 추적하며, 국가 추모의 시각적 중심축이 되는 조형물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밝혔다. 윤지관(2011), 조이경(2022), 신회섭(2025) 등의 연구는 각각 4・19묘지와 5・18민주묘지의 시비, 운영 담론, 문화공원화 논의를 통해 한국 추모시설이 단일한 애도의 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경합되는 정치적 공간임을 보여주었다.
셋째는 기억정치와 갈등의 차원이다. 하상복(2013)은 국립서울현충원을 둘러싼 남남갈등을 분석하며, 이 공간이 보수와 진보의 기억경쟁이 압축되는 장소임을 밝혔다. 하상복(2014)은 프랑스, 미국, 한국의 국립묘지를 비교하면서 전사자의 추모가 국민국가의 형성과 정당화에 동원되는 과정을 폭넓게 보여주었다. 신동은(2020)은 국립묘지의 경계와 기억의 정치학을 통해 안장 자격, 국립묘지 승격, 경계 밖 존재들에 대한 논란이 기억정치의 핵심 쟁점임을 정식화하였다. 김봉국(2016)은 이승만 정부 초기 애도-원호정치를 분석하며, 국가가 애도를 독점하고 전유하는 양가적 과정을 드러냈다. 이들 연구는 국립묘지가 언제나 정치적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넷째는 보훈정책과 제도 운영에 대한 연구이다. 형시영(2011)은 국가보훈의 제도적 상징성을 논하며 국립묘지와 보훈기념행사의 상징정책적 기능을 검토하였고, 류민수・심미승(2022)은 국가유공자 안장 제도와 공간 확보, 운영 관리의 문제를 제도적 차원에서 분석하였다. 이 흐름의 연구들은 국립묘지의 운영 원리와 법제적 기반을 파악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 관심이 주로 제도 설계와 운영의 합리성에 놓여 있기에 매체화된 참배 의례의 수행성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선행연구들의 성과들은 본 논문이 의존해야 할 필수적 전제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연구의 공백도 분명하다. 이들 연구에서 대통령, 정당 지도자, 장관, 국회의장, 지방자치단체장 등 살아 있는 정치 엘리트가 국립묘지를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장면이 어떤 정치적 효과를 생산하는가에 대한 분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국립묘지’는 연구되었지만 ‘국립묘지 참배’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 엘리트의 정례적・공식적 참배’와 관련해서는 많은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본 논문의 문제의식이 시작된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가 보여준 제도사, 기억갈등, 의례일반, 상징정치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하나의 장면, 곧 반복적이고 정례적이며 고도로 매체화된 정치 엘리트의 국립묘지 참배를 분석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이는 단순한 사례 전환이 아니다. 분석의 초점이 ‘국립묘지라는 장소 자체’에서 ‘국립묘지를 통과하는 정치적 신체와 그 장면의 공적 유통’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논문의 차별성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기존 연구가 국립묘지의 형성, 경계, 안장 자격, 기억갈등에 주목해 온 데 비해, 본 논문은 정치 지도자의 반복 방문을 통해 국립묘지가 현재의 정치 권위를 어떻게 생산하는지에 주목한다. 둘째, 기존 연구가 추모의 의미와 상징, 또는 국가와 유족의 의례 차이를 주로 다루었다면, 본 논문은 참배의 동선, 신체, 시선, 방명록, 사진 유통이라는 수행적 차원을 전면에 놓는다. 셋째, 기존 연구가 국립묘지를 정태적 기억장치로 읽는 경향이 있었다면, 본 논문은 그것을 반복적으로 가동되는 상징적 인프라로 본다. 넷째, 기존 국내 연구 다수가 정치학, 역사학, 민속학, 보훈정책의 시각에서 접근한 데 비해, 본 논문은 문화지리학적 관점에서 영토화, 공간적 안무, 시각적 위계, 정치적 일정의 우선성의 문제를 함께 분석한다.
이와 같은 차별성은 단순히 선행연구와 다른 주장을 제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연구가 축적해 놓은 통찰들을 상호 접속하여, 국립묘지 참배라는 일상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중층적인 장면을 해명하기 위한 문화지리적 분석 틀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선행연구의 성과들을 하나의 더 넓은 해석 구조 속에 재배치한다. 그 결과 국립묘지는 더 이상 과거의 희생을 보관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정치적 리더십을 반복적으로 승인하고 조정하는 정치적 장치로 파악될 수 있게 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립묘지의 형성과 제도에 관한 연구는 5장에서 서울과 서울의 국립현충원의 공간 장치와 의례 기반을 설명하는 토대가 되고, 국가의례와 유족의례에 관한 연구는 6장 2절에서 신체의 동선과 안무를 읽는 틀로 전환되며, 기억갈등 연구는 6장 4절과 맺음말에서 서울국립현충원, 대전국립현충원, 국립5・18민주묘지 사이의 차이를 해명하는 비교축으로 재배치된다. 즉, 본 논문은 기존 논의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사, 의례, 기억갈등, 보훈제도라는 서로 다른 연구 갈래를 ‘정치적 일정’, ‘공간적 동선’, ‘시각적 위계’라는 세 개의 분석 차원으로 재조직하여 국립묘지 참배의 현재적 정치효과를 읽고자 한다.
4. 의례, 기억, 영토화, 그리고 문화지리학
1) 의례와 수행으로서의 정치
국립묘지 참배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이론적 축은 의례 연구이다. 기어츠(Geertz, 1980)는 통치가 단지 명령과 강제의 체계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연출되는 효과의 체계임을 강조하였다. 이 통찰은 정치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물리적 강제만이 아니라 장면, 상징, 반복을 통해 생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벨(Bell, 1992; 1997)은 의례화를 특정 행위를 다른 행위와 구별하고 특권화하는 전략적 실천으로 이해하였고, 케르처(Kertzer, 1988)는 정치 의례가 분산된 권력을 정동적으로 응축하는 메커니즘임을 보여주었다. 터너(Turner, 1969), 고프만(Goffman, 1959), 알렉산더(Alexander, 2004)의 논의 역시 공적 삶이 언제나 무대화되고 수행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정치인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도덕적 질서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성공한 수행을 통해 그 질서의 적법한 대표자로 ‘되어’ 간다.
이러한 의례론은 국립묘지 참배를 이해하는 데 특히 유효하다. 국립묘지 참배는 임의적 행위가 아니다. 참배의 순서, 몸짓, 복장, 이동, 침묵, 수행단의 배치, 방명록 작성의 문구까지도 특정한 규범 속에 조직된다. 이때 의례는 개인적 슬픔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단순히 보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무엇이 국가적으로 공인된 애도인가를 규정하는 규범적 장치가 된다. 따라서 국립묘지 참배는 죽은 자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동시에, 그 감사를 ‘올바른 형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인을 국가적 인물로 가시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 기억, 죽은 자, 그리고 영토화된 공간
두 번째 이론적 축은 기억과 죽은 자에 관한 연구들이다. 기억 연구자들은 공적 기억이 과거를 단순히 보존하지 않고 선택하고 배열하고 제도화한다고 지적해 왔다(Connerton, 1989; Nora, 1989; Olick and Robbins, 1998; Assmann, 2011; Zerubavel, 2003). 민족주의 역시 이러한 기억의 제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Anderson, 2006; Hobsbawm and Ranger (eds.), 1983). 전쟁기억과 추모 연구는 더욱 직접적이다. 즉, 공적 추모는 단순한 상실의 기록이 아니라 정동과 정당성의 분배 장치이다(Mosse, 1990; Young, 1993; 2008; Bodnar, 1992; Winter, 1995, 2006; Doss, 2010; Sturken, 1997). 베르데리(Verdery, 1999)가 강조하듯, 죽은 자의 몸과 그것이 놓인 장소는 물질성과 상징성이 결합된 특수한 정치적 힘을 지닌다. 맥엘리아(McElya, 2016)의 알링턴 국립묘지 연구는 그러한 죽음의 정치가 국가의 영예, 위계, 인종과 계급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문화지리학의 연구들은 이러한 논의를 보다 공간적으로 정교화하였다. 르페브르(Lefebvre, 1991)는 공간이 사회적으로 생산된다고 보았고, 매시(Massey, 2005)는 공간을 관계들의 개방적 배열로 이해하였다. 파시(Paasi, 1998)와 들레이니(Delaney, 2005)의 논의는 경계와 영토가 누가 속하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를 규정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기념물과 추모경관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공간을 국가화하는 영토적 배열로 여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Johnson, 1995; 2004; Kong, 1999; Hoelscher and Alderman, 2004; Till, 2005; Legg, 2007; Dwyer and Alderman, 2008). 아자리아후(Azaryahu, 1996; 2002; 2012), 포레스트와 존슨(Forest and Johnson, 2002), 카뤼홀름(Kärrholm, 2024)은 기념 공간이 도시공간과 공적 시간을 재범주화하며 국민주의적 질서를 물질적으로 고정하는 방식을 분석하였다.
국립묘지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영토화된 죽음의 공간이다. 그것은 ‘누가 국가를 위해 죽은 자인가’를 선별하고, 그들을 특정 경계 안에 모으며, 죽음들의 위계를 공간화한다. 따라서 국립묘지는 죽은 자들을 수용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국가가 국가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와 희생의 질서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때 살아 있는 정치인의 참배는 단지 이미 주어진 영토화된 의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통해 스스로를 국가의 적법한 매개자로 공인받는 정치 행위가 된다.
3) 공간과 신체의 문제
세 번째 이론적 축은 신체, 감각, 이동에 관한 논의이다. 로우와 로런스-주니가(Low and Lawrence-Zúñiga (eds.), 2003)는 공간과 장소가 사회적 삶의 주변적 배경이 아니라 관계와 권력의 핵심 매개라고 보았다. 틸리(Tilley, 1994), 바소(Basso, 1996), 잉골드(Ingold, 2000)는 장소 경험이 서사, 이동, 감각, 기억을 통해 체현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핑크(Pink, 2009)는 감각적 민족지의 차원에서 시각 이외의 신체적 지각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주목하였다. 이 논의들은 국립묘지 참배를 단지 의미 해석의 대상으로만 다루기보다, 움직이는 신체와 공간의 상호작용으로 읽게 해 준다. 즉, 참배는 어디에 서는가, 누구와 얼마나 떨어져 이동하는가, 언제 멈추는가, 무엇을 응시하는가, 어떤 침묵을 유지하는가의 문제를 포함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립묘지 참배는 문화지리적 사건이 된다. 현충탑으로의 이동, 헌화와 분향의 순서, 묵념의 길이, 방명록을 쓰기 위해 몸을 숙이는 자세, 수행단과 유족, 의장대와 사진기자의 위치는 모두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규정한다. 이 의례는 추상적 의미만이 아니라 신체적 기술(techniques of the body)과 간격의 질서, 집단적 호흡의 리듬을 통해 실현된다. 따라서 국립묘지 참배를 분석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국가의 상징질서를 해석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질서가 몸과 공간의 배치 속에서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읽는 일이다.
4) ‘묘역의 공간정치’의 재정식화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본 논문은 ‘묘역의 공간정치’를 네 가지가 겹쳐진 과정으로 재정식화한다. 첫째,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죽은 자들을 경계 지어진 공간 안에 집적함으로써 애국적 죽음의 범주를 영토화한다. 둘째, 국립묘지는 새해 첫 일정과 현충일 같은 반복적 문턱에서 정치적 시간을 질서화한다. 셋째, 국립묘지는 참배의 의례적 동선을 통해 정치 엘리트의 신체를 국가적으로 공인된 애도의 문법에 맞추어 안무한다. 넷째, 국립묘지는 죽은 자들을 살아 있는 정치 권위를 승인하는 상징적 인프라로 전환한다. 여기서 상징적 인프라(symbolic infrastructure)란 이미 공적으로 승인되어 있어 정치인이 반복적으로 진입할 수 있고, 그 진입 자체가 도덕적 진지함의 효과를 산출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국립묘지를 정태적 기념물이나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라, 권력이 반복적으로 가동되는 인프라로 이해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애도와 정치적 리더십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애도의 공적 형식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이 생산된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문제는 정치가 죽은 자들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국가 추모라는 구조 자체가 죽은 자들을 살아 있는 정치 질서의 재생산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묘역의 공간정치는 추모의 윤리와 권력의 효과를 동시에 분석하게 해 주는 틀이라 할 수 있다.
5. 한국 국립묘지의 형성과 의례적 장치
한국의 국립묘지는 전쟁, 국가형성, 냉전, 보훈정책, 민주화 이후의 기억정치를 응축하는 복합적 공간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제도적 기원은 해방 이후 전사자 안치의 필요성과 한국전쟁의 대규모 희생에 놓여 있다. 국가보훈부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해방 직후 장충사와 부산의 임시 안치 공간을 거쳐 국군묘지 설치가 논의되었고, 1955년 7월 서울 동작동에 국립묘지가 설치되었다. 1956년에는 제1회 현충일 추념행사가 거행되었으며, 이후 법제와 묘역이 확대되다가 2005년 현재의 ‘국립서울현충원’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국립서울현충원a; 국립서울현충원b). 국립대전현충원은 서울현충원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1976년 설치가 결정되고 1979년 공사가 시작되어 1985년 준공되었다(국립대전현충원a). 이 두 장소는 현재 한국 국가추모 체제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러나 국립묘지는 처음부터 중립적 공간이 아니었다. 김종엽(2004)이 지적하듯, 동작동 국립묘지의 형성 자체가 국가적 기념의 정치와 결합되어 있었다. 정호기(2005a; 2005b)는 일제하 전사자 추모 공간과 해방 이후 국립묘지 조성 사이의 계보를 검토하면서, 근대 국민국가가 죽은 자를 관리하는 방식을 장기지속적 시계열 속에 놓았다. 강인철(2017)은 동작동 국립묘지 내부에서 묘역 분류, 비석 크기, 위계 질서가 평등과 불평등을 동시에 구성했음을 분석하였고, 신동은(2020)은 국립묘지가 안장 자격과 국가의례, 경계 밖 존재들을 둘러싼 갈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기억정치의 현장임을 밝혔다. 다시 말해, 국립묘지는 추모의 장소이기 이전에 이미 이념, 위계, 선택, 배제의 장소였다.
이러한 장소의 제도적 구조는 오늘날의 참배 의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공식 조직상 ‘참배추모팀’을 두고 있으며, 이 팀은 현충탑 정기 및 수시 참배행사의 계획 수립과 시행, 관계부처 협의, 참배 현황 통계 관리, 추모・묘역참배 행사 계획, 위령행사 계획, 귀빈 안내와 지원 등을 담당한다(국립서울현충원c). 이 행정적 사실은 분석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참배가 묘지 운영에 수반되는 부차적 기능이 아니라, 국립묘지의 핵심 기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국립묘지는 죽은 자들을 보관하는 시설인 동시에 살아 있는 정치적 현존을 반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설계된 의례 공간이다(그림 1).
국립묘지의 공간 구성 또한 이 의례적 기능과 깊게 결합한다. 현충문, 현충탑, 묘역, 대통령 묘역, 위패봉안관, 충혼당, 의장대 배치 공간, 귀빈실 등은 단순한 시설의 집합이 아니라 국가가 추모를 공간적으로 조직한 방식의 물질적 표현이다. 특히 현충탑은 국립묘지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김이순(2017)이 보여주듯, 현충탑은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 확산된 현충시설물의 기원과 국가 추모의 조형 언어를 집약한다. 이 탑은 수많은 개별 죽음을 하나의 애국적 집합성으로 응축시키는 시각적 중심이다. 정치인들이 먼저 향하는 곳이 개별 무덤이 아니라 바로 현충탑이라는 점은, 그들이 특정 개인을 애도하기보다 ‘국가를 위해 혹은 국가에 의해 희생당해 죽은 자들’이라는 국가 범주와 관계 맺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기 위해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을 비교해보면, 두 장소는 동일한 국가추모의 문법을 공유하면서도 상이한 정치적 밀도를 지닌다. 서울현충원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국가기념일 의전이 결집하는 ‘중앙정치의 전면 무대’라면, 대전현충원은 부처, 산하기관, 지역정치가 애국적 정당성을 수행하는 ‘분산된 국가무대’에 가깝다. 이 차이는 공간 구성의 세부와 의전 시설, 사진 구도, 묘역 선택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낳는다.
위에서 제시된 표 2의 내용은 2026년 1월 1일 정책브리핑 사진자료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 순서를 토대로 재구성한 분석적 개념도이다. 이 도식은 현충문을 ‘문턱’, 현충탑 전면을 ‘중앙축’, 제단과 향로를 ‘국가 애도의 몸짓이 표준화되는 지점’, 묵념 지점을 ‘집합적 침묵의 장치’, 방명록과 주요 묘역을 ‘애도가 통치 언어와 역사 계승의 문장으로 번역되는 지점’으로 읽게 한다. 따라서 표 1이 서울・대전의 공간정치적 차이를 비교한다면, 표 2의 내용은 서울현충원 내부에서 공간 구조와 정치인의 행위가 어떻게 조우하여 리더십 효과를 생산하는지를 보여주며 이는 위의 그림 2를 통하여 시각적으로 확인된다.
표 1.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의 공간정치 비교
자료: 국립서울현충원c・d・e・f 및 국립대전현충원a・b・c의 조직・시설・연혁 정보, 정책브리핑(2023; 2024; 2025; 2026), 차지연 등(2024), 김지은 등(2025), 청와대(2026)의 참배 사진・브리핑을 바탕으로 저자 재구성. 다만 ‘공간정치적 함의’ 열은 위 자료의 사실관계를 본 논문의 문화지리학적 분석틀로 해석한 저자의 분석 범주이다.
표 2.
국립서울현충원 중심 참배 동선과 의미 생산 구조
위의 표 1에서 제시된 분석내용을 통해 확인되듯이, 서울과 대전은 현충문과 현충탑을 중심으로 의례를 조직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정치적 위상의 집중도는 분명히 다르다. 서울에서는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의 공적 정당성이 현충탑 전경 속에 압축되는 반면, 대전에서는 국가기관의 분산된 권위와 지역정치의 방문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동일한 참배 문법도 서울에서는 ‘국정의 시작’으로, 대전에서는 ‘국가성의 분산된 수행’으로 읽히게 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제도적 층위는 국립묘지를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상징경관으로 만든다. 서울과 대전의 국립묘지는 매장과 추모, 교육과 보훈, 관광과 시민의례, 안장 자격과 기억 경계, 일상적 방문과 국가기념식이 한곳에 응축된 복합체이다. 따라서 정치 엘리트의 참배는 이미 정치화된 무대에 진입하는 행위이며, 바로 그 무대의 역사성과 제도적 장치가 그들의 방문에 공적 효능을 부여한다. 국립묘지가 제공하는 것은 단지 엄숙한 분위기가 아니라, 이미 국가적으로 승인된 애도와 권위의 결합 양식이다. 이것이 한국 국립묘지 복합체가 정치적 리더십의 생산 장치로 읽혀야 하는 이유이다.
6. 국립묘지 참배와 정치적 리더십의 생산
1) ‘정치적 일정의 우선성(Primacy of the political calendar): 국립묘지는 어떻게 정치적 일정을 여는가
국립묘지 참배가 정치 지도자 만들기의 수행이라는 점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것의 시간적 배치이다. 한국에서 국립묘지 참배는 흔히 ‘아무 때나 가능한 방문’이 아니라 정치적 일정을 여는 문턱(threshold)으로 조직된다. 2011년 당시 대통령은 직접 ‘새해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고 언급하였고(KBS World, 2011), 2023년과 2024년 당시 대통령 역시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새해 첫날의 핵심 공개 일정으로 수행하였다(정책브리핑, 2023; 2024). 2024년과 2025년에는 여야 지도부 또한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로 새해 공식 일정을 시작하였다(김지은 등, 2025; 차지연 등, 2024). 현충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중심 무대로 하여 거행되었고, 현재 대통령의 참석은 단순한 예우가 아니라 국가적 시간을 적법하게 대표하는 행위로 해석되었다(임형섭, 2025).
이와 같은 반복은 단순한 관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카르홀름(Kärrholm, 2024)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립묘지는 정치적 시간의 ‘문(門, gate)’으로 기능한다. 시간의 문이란 특정한 순간을 토대적 기원처럼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재배열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새해 첫날 국립묘지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단지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정치의 시간을 애국적 희생의 계보 아래에 위치시킨다. 다시 말해, 정치적 일정의 시작은 달력 위에서 자동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죽은 자들 앞에서 ‘정당하게’ 개시되는 것이다 (그림 3).
바로 이 지점에서 국립묘지 참배의 시간정치는 강한 규범성을 획득한다.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 국립묘지를 먼저 찾는 행위는 선택이라기보다 의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불참은 설명을 요구받고, 참석은 거의 자명한 행위가 된다. 이와 같은 정례화는 반복될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처음에는 하나의 적절한 의례였던 것이, 시간이 흐르며 ‘올바른 정치의 시작은 국립묘지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상식으로 자연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의례의 핵심이 비범성보다 반복성에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Kertzer, 1988; Bell, 1992).
이러한 정치적 일정의 우선성은 죽은 자들에게 특수한 시간적 기능을 부여한다. 그들은 과거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시작을 승인하는 존재로 호출된다. 정치 지도자는 자신이 애국적 희생을 단지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의 계보를 현재로 이어받아 미래로 운반할 자격이 있는 인물처럼 제시된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국립묘지 참배는 시간 속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생산하는 의례이다.
이러한 의례는 특정 정권의 일회적 습관이 아님을 보여준다. 2023년과 2024년 대통령의 신년 참배, 2024년과 2025년 여야 지도부의 신년 참배, 2025년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의 취임 직후 참배와 현충일 추념식, 2026년 신년 참배는 서로 다른 정치적 위치와 정파를 가로질러 ‘국립묘지에서 정치의 시간을 개시한다’는 동일한 문법을 반복한다. 이때 방명록 문구들 역시 단순한 추모의 기록이 아니라 통치 언어의 압축본으로 기능한다. 예컨대 2026년 대통령의 “함께 사는 세상”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 대한국민과 함께 열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애도의 장면을 곧바로 통치의 서약으로 번역한다(그림 4). 바로 이 점에서 국립묘지 참배는 시간을 여는 의례이자 통치의 언어를 예열하는 의례가 된다.
2) 신체, 동선, 안무(choreography): 참배 의례의 문화지리학
국립묘지 참배는 시간을 여는 의례일 뿐 아니라 신체를 조직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참배 장면은 늘 유사한 순서를 따른다. 현충문을 통과한 뒤 현충탑을 향해 이동하고, 일정한 위치에서 정렬한 후, 헌화와 분향을 수행하고, 묵념을 한 뒤, 방명록을 작성하거나 특정 묘역으로 이동한다. 이 연쇄는 즉흥적인 행동의 집합이 아니라 국가가 승인한 공간적 스크립트이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추모팀’이 따로 존재하며 정기 및 수시 현충탑 참배행사를 계획・시행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례가 우발적 관행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준비된 장치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동선은 문화지리학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로우와 로런스-주니가(Low and Lawrence-Zúñiga (eds.), 2003)가 강조하듯, 공간은 단지 활동이 일어나는 용기가 아니라 활동을 규율하는 사회적 배열이다. 국립묘지에서는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얼마나 침묵해야 하는지, 누구와 나란히 서야 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몸을 숙여야 하는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러한 규율 속에서 정치인의 몸은 ‘슬픔을 표현하는 몸’인 동시에 ‘국가를 대표하는 몸’으로 조직된다. 핑크(Pink, 2009)의 감각민족지적 관점에서 보자면, 침묵, 발걸음의 속도, 현충탑 앞의 정지, 주변 수행단과의 간격, 카메라가 포착하는 시선의 방향은 모두 의례의 감각적 질서를 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립묘지 참배가 사적 애도와 전혀 다른 신체정치(body politics)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가족 묘지를 찾는 일상적 참배에서는 슬픔의 방식이 비교적 개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국립묘지에서의 참배는 ‘국가적으로 올바른 슬픔’의 형식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정치인은 경쾌하게 걷거나 자유롭게 흩어지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이동하고, 정렬하며,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이때 그의 몸은 감정의 자연스러운 배출을 넘어서 국가를 대표하는 기호적 몸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국립묘지 참배는 문화지리적으로 볼 때,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이라기보다 국가가 승인한 신체적 조우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동선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방명록 작성은 이러한 안무를 텍스트로 봉합하는 핵심 장치이다. 헌화와 분향, 묵념이 신체의 언어라면, 방명록은 그것을 정치 언어로 번역한다. 즉 몸이 수행한 애도는 방명록을 통해 결의, 책무, 국민통합, 민생, 국가수호의 약속으로 다시 쓰인다. 여기서 정치인은 단지 묘역을 통과한 방문자가 아니라, 묘역의 엄숙함을 문장으로 전유하여 다시 정치의 장으로 가져가는 인물로 재구성된다. 이것은 국립묘지가 어떻게 신체의 이동과 텍스트의 생산을 하나의 의례적 연쇄로 묶어내는지를 보여준다.
2026년 1월 1일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의 서울현충원 참배의 모습들은 이 의례의 신체 문법을 가장 조밀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동 장면에서 대통령은 수행단보다 반 보 정도 앞선 중앙선에 배치되고, 뒤따르는 국무위원 및 참모진은 느슨하지만 분명한 위계적 종대를 형성한다 (그림 5). 이어 분향 장면에서는 현충탑과 향로가 화면의 중심을 점유하고, 고개 숙임과 손의 동작은 사적 슬픔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승인된 몸짓의 단위로 표준화된다. 마지막으로 방명록 장면에서는 몸의 숙임, 펜의 각도, 테이블을 둘러싼 수행단의 배치가 모두 ‘엄숙함의 연출’에 복무한다 (그림 6). 바로 이 세 장면의 연쇄적 연결이 이동, 애도, 서약이라는 참배의 서사를 압축하며, 정치 지도자의 몸이 어떻게 국가의 경관 속에 봉합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관계를 공간 구조, 정치인의 행위, 신체・시선의 배치, 의미 생산의 대응표로 재구성하면 다음의 내용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표 3에서 보듯이 국립묘지의 공간 구조는 정치인의 행위를 수동적으로 담는 배경이 아니라, 어떤 몸짓이 적절한 애도이고 어떤 위치가 대표자의 위치인지를 미리 규정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현충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방명록을 작성하는 순간까지 정치인의 몸은 ‘이동하는 개인’에서 ‘국가적 희생을 해석하고 이어받는 대표자’로 단계적으로 재구성된다. 이 점에서 국립묘지를 매개로 한 수행은 장소에 덧붙은 행동이 아니라, 장소의 축선・문턱・제단・침묵・기록 장치와 조우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미를 생산하는 공간적 수행이다.
표 3.
공간 구조, 정치인 행위, 의미 생산의 대응 관계
자료: 국립서울현충원c・d・f, 정책브리핑(2026), 청와대(2026)의 시설・조직・사진 설명을 바탕으로 저자 재구성.
3) 시각적 위계와 미디어화: 누가 전경화되고 누가 배경화되는가
국립묘지 참배의 정치성은 그 장면이 촬영되고 유통된다는 사실로 인해 한층 강화된다. 공식 사진과 언론 사진을 보면, 죽은 자들은 대체로 현충탑, 묘역의 줄, 기념비의 형태로 등장하는 반면, 살아 있는 정치인은 얼굴과 자세를 식별할 수 있도록 전면에 포착된다. 카메라는 대개 현충탑을 향해 이동하는 정치 지도자, 헌화하는 손, 분향하는 몸, 묵념하는 얼굴, 방명록을 적는 손끝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죽은 자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중요성이 바로 정치 지도자를 전경화하는 배경적 엄숙성의 형태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각적 위계는 우연이 아니다. 기념 경관은 언제나 특정한 시선의 질서를 조직한다(Johnson, 1995; Dwyer and Alderman, 2008). 한국의 국립묘지 참배 장면에서 그 시선의 질서는 명확하다. 죽은 자들의 개별 전기는 지워지거나 최소화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라는 집합적 범주가 전면에 놓인다. 반면 살아 있는 정치인은 개별화된 인물로 남는다. 바로 이 비대칭을 통해 정치인은 침묵하는 집합적 희생의 살아 있는 해석자로 등장할 수 있다.
정책브리핑과 대통령실 사진자료는 이러한 시각적 위계를 특히 잘 보여준다. 2023년과 2024년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사진에서 당시 대통령은 ‘새해 첫날’ 혹은 ‘새해 첫 일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현충탑으로 향하고, 분향하고, 방명록을 작성하는 장면의 중심에 배치된다(정책브리핑, 2023; 2024). 2024년과 2025년의 연합뉴스 및 뉴시스 기사 역시 여야 지도부가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새해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고 서술하며, 사진 속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표정과 위치를 중심적으로 배치한다(김지은 등, 2025; 차지연 등, 2024). 이것은 언론과 공식 사진이 단지 이미 일어난 의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례를 ‘정치의 시작’으로 판독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임을 의미한다.
미디어화는 이 의례를 지역적 사건에서 국가적 장면으로 전환시킨다. 현장에서 이루어진 몸의 움직임은 사진과 기사, 영상과 캡션을 통해 전국적 공중에게 유통된다. 그 결과 국립묘지 참배는 현장에 참석한 소수의 관계자만이 목격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읽을 수 있는’ 정치적 장면이 된다. 고프만(Goffman, 1959)과 알렉산더(Alexander, 2004)의 수행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여기서 관객은 현장에 있는 유가족과 수행단만이 아니라 화면 바깥의 시민 전체로 확장된다. 바로 이 공중의 확대 속에서 정치적 리더십은 더욱 강하게 생산된다.
미디어화는 단순히 현장을 전달하지 않는다. 예컨대 2026년 정책브리핑 사진자료와 청와대 브리핑에 결합된 문구들은 ‘새해 첫날’,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분향하고 있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장면을 순차적 서사로 정돈한다. 이 서사는 죽은 자들의 개별 전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정치인의 이동과 몸짓을 사건의 주어로 삼는다. 다양한 언론 보도들 또한 ‘새해 첫 일정’, ‘새해 공식 일정’, ‘취임 후 첫 국가기념일’이라는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국립묘지 참배를 정치 일정의 출발점으로 독해하도록 대중을 유도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미디어는 의례의 외부 기록자가 아니라 의례의 공적 효능을 완성하는 공동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4) 상징적 인프라와 영토화된 정치적 리더십 (territorialised leadership)
이상에서 살펴본 시간적 배치, 신체의 안무, 시각적 위계를 종합하면, 한국의 국립묘지는 정치적 리더십을 위한 상징적 인프라(symbolic infrastructure)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상징적 인프라란 단지 의미의 저장고가 아니라, 정치 행위자가 반복적으로 진입하여 공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이미 준비되어 있는 제도적・공간적 장치를 뜻한다. 맥엘리아(McElya, 2016)가 알링턴 국립묘지 분석에서 보여주듯, 국립묘지는 죽은 자들을 기념하는 장소인 동시에 국가가 스스로를 재현하는 무대이다. 한국의 국립묘지 역시 이와 유사하게 작동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그 작동 방식은 전쟁, 반공, 민주화, 보훈의 기억이 한 장소 안에 겹쳐져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긴장감을 갖는다.
본 논문은 이 지점에서 ‘영토화된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추가로 제안하고자 한다. 영토화된 정치적 리더십이란 정치적 리더십이 추상적 능력이나 개인적 카리스마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승인한 특정 공간을 올바르게 통과함으로써 획득되는 공적 위상을 의미한다. 정치인은 국립묘지라는 국가적 경관 안에서 죽은 자들, 기념시설, 수행단, 의전, 사진, 방명록과의 관계 속에 위치지어질 때 비로소 ‘정치 지도자처럼 보이는 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치적 리더십은 영토 바깥에서 완성된 채 공간에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재생산된다. 바로 이것이 ‘묘역의 공간정치’가 지닌 핵심이다.
동시에 이 인프라는 완전히 안정적이지 않다. 한국의 국립묘지는 언제나 합의의 장소였던 것이 아니라, 안장 자격, 반공 기억, 민주화 기억, 묘역 내부의 위계, 국가폭력의 서사 등을 둘러싼 갈등의 장소이기도 했다(하상복, 2013; 강인철, 2017; 신동은, 2020; Mosler, 2020). 따라서 국립묘지 참배는 절대적인 정당성을 보장하는 마법적 장치가 아니라, 경합적인 기억장에 잠정적으로 기대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잠정성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참배가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한 국립묘지는 정치적 리더십이 영토화되는 핵심적 무대로 남는다.
이와 같은 분석은 국립묘지 참배를 단순한 ‘존경의 표시’로만 환원하는 설명이 왜 충분하지 않은지를 보여준다. 존경은 이 의례의 명시적 언어이다. 그러나 그 언어가 공적 장면 속에서 산출하는 결과는 ‘정치 지도자 만들기’이다. 정치인은 죽은 자들에게 애도를 표하지만, 바로 그 애도를 표하는 능력을 통해 자신이 공동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자라는 위상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국립묘지 참배는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와 산 자들의 권위 생산이 하나의 장면 안에서 결합되는 정치의 정련(精鍊, Refining)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그림 7).
보조 비교사례는 이 의례의 범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국립대전현충원의 경우에도 현충문, 현충탑, 의전대기실과 참배안내실, 특정 추모시설과 묘역이 참배의 문법을 지지하지만, 그곳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국가 최고권력의 일거수일투족보다는 분산된 국가기관과 지역정치의 애국 수행이다. 반면 국립5・18민주묘지 참배에서는 동일한 헌화, 분향, 묵념의 형식이 작동하더라도, 그것은 국가 연속성의 승인만이 아니라 민주화 기억에 대한 입장 표명, 사과, 화해, 정치적 자기배치의 의미를 훨씬 강하게 띤다. 이 차이는 국립묘지 참배를 ‘국가추모 일반’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되며, 각 장소의 기억체제와 공간정치에 따라 서로 다른 리더십 효과가 생성됨을 보여준다.
6. 맺음말
본 논문은 한국의 국립묘지 참배를 단순한 추모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을 생산하는 공간정치적 수행으로 해석하였다. 이를 위하여 2023년부터 2026년까지 공개된 대통령, 정당 지도부, 정부 고위직의 참배 사례를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을 중심으로 교차 분석하고, 국립 5・18민주묘지 관련 보조 비교사례를 함께 해석하였다. 분석 결과, 국립묘지 참배는 새해와 취임 직후, 현충일이라는 정치적 문턱에서 정치의 시작을 정당화하고, 의례적 동선을 통해 신체를 국가가 승인한 애도의 문법 속에 배치하며, 미디어화된 이미지를 통해 살아 있는 정치 지도자를 전경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국립묘지는 과거를 기념하는 장소인 동시에 현재의 권위를 개시하고 봉합하는 장소이다.
이러한 학술적 논의가 지니는 의의는 첫째, 국립묘지 연구의 초점을 기원, 제도, 안장 경계, 기억갈등의 분석에서 정례적 엘리트 참배의 수행성으로 확장했다는 점에 있다. 둘째, ‘묘역의 공간정치’, ‘정치적 일정의 우선성’, ‘상징적 인프라’, ‘영토화된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개념들을 통해 국가추모와 정치적 리더십, 영토화와 시각적 위계를 하나의 문화지리적 분석 틀로 묶어냈다는 점에 있다. 셋째,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의 차이를 제한적으로나마 드러냄으로써, 동일한 국가추모의 문법 안에서도 중앙정치의 전면 무대와 분산된 국가무대라는 서로 다른 공간정치가 작동함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점에서 본 논문은 국립묘지를 고정된 기념물의 집합이 아니라, 반복되는 이동과 배치, 촬영과 유통을 통해 현재의 정치효과를 산출하는 인프라로 읽고자 한다.
동시에 본 논문은 몇 가지 한계도 지닌다. 본 연구는 공개된 공식 사진, 기사, 조직 자료를 중심으로 한 해석적 사례연구이므로, 유가족, 참배객, 기자, 현충원 실무자들의 수용과 실천을 현지조사 차원에서 추적하지 못했다. 또한 4・19혁명묘지와 국립5・18민주묘지, 외국 정상의 국립묘지 방문, 해외 국립묘지 참배 의례를 본격적으로 비교하지 못했다. 후속연구에서는 이러한 비교축을 확장함으로써, 죽은 자들 앞에서 정치 지도자가 되는 방식의 장소별 차이와 미디어 재현의 차이를 더욱 정교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작업이 이어질 때, 국립묘지 참배의 문화경관에 대한 문화지리학 연구는 기념물과 기억갈등의 분석을 넘어, 애도, 영토화, 수행, 미디어화가 교차하는 국가의례의 총체적 장면을 더욱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