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0 April 2023. 158-177
https://doi.org/10.22776/kgs.2023.58.2.158

ABSTRACT


MAIN

  • 1. 서론

  • 2. 이론적 논의

  •   1) 서로 다른 체제 간 협력과 통합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할

  •   2) 남북 간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전이성(liminality)’과 제도화 과정에 대한 이해

  • 3.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협력을 위한 내부 시스템 구성과정

  •   1) 관리위원회의 의사소통과 정보 교환을 위한 내부 네트워크 체계 형성

  •   2) 남북 간 면대면(face-to-face) 소통체계의 형성을 통한 신뢰의 통로 구축

  • 4. 남북통합경험 시스템의 탄생과 남북 신뢰의 구축

  •   1) 협력적 과정의 선순환과 남북 간 상호작용의 시스템화

  •   2) 작은 승리(small wins)의 경험과 남북 간 ‘신뢰구간’의 형성

  • 5. 다층적・이질적 성격이 일상화된 개성공단

  • 6. 결론

1. 서론

개성공단은 한반도에서 남북 군사적 긴장도가 상당히 높았던 곳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서울(금융)-인천(물류, 수출)-평양(시장)-개성(생산)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총 2,000만 평을 3단계에 걸쳐 공단과 배후도시를 조성하는 최초의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이다(개성공단5년 발간위원회, 2008). 개성공단은 3단계 계획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1단계 100만 평 지역이 준공되었다. 2003년 기반시설 공사가 시작되었고 2004년 기업이 입주하여 제품 생산을 시작하여 10여 년간 운영되었다. 2016년 전면 중단 당시 개성공단에는 123개 입주기업에서 남한 근로자 1,000여 명, 북한 근로자 5만 5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2014).

남북이 분단된 이후로 개성공단과 같은 형태의 협력사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남북 상호 간 신뢰 관계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못하였고, 협력하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합의된 바가 없었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요소는 남북이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하고 합의에 이르는 것이었는데 개성공단에서 일어나는 남북 간의 상호과정은 대부분 처음 발생하는 일이어서 법률, 관행, 기준, 선례가 없었고 일방의 행동에 대한 용인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김천식, 2015).

따라서, 정치・경제적인 체제가 같은 상황에서는 어렵지 않게 진행되는 일들도 개성공단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협상하고 조율하고 합의에 이르는 남북 간 상호작용과 그 결과물인 합의서가 필요하였다. 당연히 남북 간의 상호작용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남북이 합의에 이른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해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합의한 내용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부분조차도 사전에 서로 양해를 구해야 하는 또 다른 상호작용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남북 간 합의라는 것은 상호 간 합의를 지킬 것이라는 신뢰 속에서 이행되는 것으로 사실상 합의를 어기거나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 등이 법률을 통해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이행되는 ‘계약’과는 다른 성격을 가졌다. 따라서 합의 내용에 대한 위반이 발생하는 경우 위반이 된 부분과 상황에 대해서 또 다른 합의를 새로 진행해야 하는 촌극도 발생하였고 남북 간 합의한 내용을 양측에서 숙지하고 제도화한 후에도 경험적으로 신뢰를 획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이행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간 상호작용과 합의 과정도 힘들고 결과 예측도 대단히 어려우나 일단 합의만 되면 어떤 일도 가능해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문제는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한 합의의 범위는 처음에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이행하는 수준으로 예측하였던 것이 개성공단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었다. 개성공단에서의 합의 과정과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경우까지도 있었으며 어떤 것들은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중단되는 날까지 결과를 얻지 못한 것도 있었다.

따라서 개성공단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상호작용을 관장하고, 제도와 규범을 새롭게 형성하고 일원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관리체계의 형태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국가 간, 접경 도시 간, 서로 다른 지역 간, 초국적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체계와 유사한 것으로 기존 연구들에서는 이러한 기관을 ‘협력적 거버넌스’로 지칭하고 있다. 즉, 서로 다른 법과 제도적인 배경을 가진 국가 또는 지역 간 협력에서 협력적 거버넌스가 연속성과 책임성을 부여받아 참여자들 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성공적 통합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성공단에서 협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 법・제도적인 규범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협력을 위해 거버넌스 체계가 등장하고 ‘협력적 과정’을 수행해 가는 시스템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북 간 적대적이고 신뢰의 형성이 어려운 외부적 여건 속에서도 개성공단이라는 공간 내에서는 참여자들 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신뢰’가 형성된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는지, 이러한 시스템은 어떤 의의가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2013년 12월 13일부터 2016년 2월 11일까지 개성공단 재가동 시기부터 개성공단 폐쇄의 순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소속으로 2년 3개월 동안 개성공단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참여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남한 근로자들만이 아니라 북한 근로자들과의 교류와 대화 그리고 백여 차례가 넘는 북한 측 당국 참사들과의 합의 경험과 수많은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개성 현지에서 직접 생산한 자료들과 현지 근무하면서 기록한 사실들, 직접 보유하고 있는 개성 현지 사진들을 보안 사항을 어기지 않는 범위로 재구성하였다. 북한 근로자와 참사들의 발언 내용은 해당 인원의 허락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보안 수준을 감안하여 수록하였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자료와 관리위원회 및 입주기업 법인장의 발언 내용과 인터뷰 등은 연구자료 게재 및 외부 공개가 가능한 내용을 선별하여 채록하였음을 밝힌다.

이 글은 결론을 포함 전체 6장으로 본문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1절에서 서로 다른 체제 또는 문화 간 통합을 지향하기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기존 문헌을 살펴보았고 2절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개성공단 내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의 형태와 전이적 성격(liminality)에 대해 논의하였다.

3장에서는 남북 분단 이후 최초의 협력적 거버넌스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이하 관리위원회)가 내・외부적 네트워크 및 면대면 협력체계 구성하는 등 협력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4장은 관리위원회라가 구축한 개성공단 협력체계의 실제 작동 방식에 대해 탐구하여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의 형성과 이러한 시스템 구축으로 인해 남북 간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5장에서는 개성공단 내에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정착하고 선순환하게 되면서 참여자들 간 신뢰가 형성되고 북한 당국의 변화를 이끌어내어 남한과 북한의 기성의 체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개성공단만의 제3의 규범과 제도가 형성되고, 정착되고, 일상화되면서 기존 남북의 기성체제와는 이질적인 개성공단만의 체제가 다층적으로 구성되는 현상을 살펴보았다.

2. 이론적 논의

1) 서로 다른 체제 간 협력과 통합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할

초국적 협력 프로젝트의 기존 사례와 연구의 결과, 협력의 성공을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은 바로 참여자들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신뢰 형성’을 통해 능동적 협력과 참여를 확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뢰를 형성하고 참여 유인을 확대하기 위하여 책임 있는 기관 또는 거버넌스의 명목적/명시적 역할과 동시에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교류, 갈등의 원만한 해결 등 의사소통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협력적 성격을 지속 견지하여 상호 간 신뢰를 쌓아 나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핵심과제 중 하나로 분석되었다(홍승표・김유훈 2021; Ciok and Raczyk, 2008; Jasso, 2008; Knippschild, 2008).

그러나 지금까지 남북 관계 또는 개성공단과 관련된 거버넌스 연구들은 이러한 협력을 위한 부분을 다루기보다는 정책적으로 조망하고 그 거시적인 역할을 고찰한 내용이 주를 이루어 왔다. 김규륜 등(2007)의 남북경협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김권식・이광훈(2014)의 통일정책 거버넌스 특성 연구 등 평화, 번영과 같은 거시적 측면에서의 남북 간 거버넌스를 연구한 내용과 양현모・강동완(2009), 박지연・조동호(2016) 등의 연구와 같이 개성공단에서의 거버넌스를 정책적으로 조망하고 그 모델과 역할을 논의한 연구 등이 지금까지의 개성공단과 관련 거버넌스 연구 경향이었다. 즉, 기존의 연구들은 남북 간 또는 개성공단의 거버넌스 체계를 남북 당국의 통제적 역할을 대행하거나 확대하는, 사실상 거버먼트(government)로 간주하고 논의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협력이나 통합의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홍승표・김유훈(2021)은 유럽연합의 Interreg3-A 프로그램의 결과 서로 다른 법, 제도, 문화적인 배경에서의 초국가적 협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권위가 주어진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할이 핵심적이라는 결론 하에서 개성공단에서도 이러한 거버넌스 체계가 존재하였는가를 연구하였고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라는 남북 간 새로운 거버넌스가 설립되고 개성공단 내에서 구조화되는 과정이 있었음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동 연구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협력적인 거버넌스로써 실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그 결과로 나타난 시스템의 구체적인 형태가 어떠하였는지, 남북 간 상호 신뢰 구축에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홍승표・김유훈, 2021).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일상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흔히 사용하는 단어이나 학문 영역과 관심 분야에 따라서 거버넌스가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되고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거버넌스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특징만을 뽑아내어 정리해보면 거버넌스는 정부의 위계적이고 통치적인 하향식 질서가 아닌 정부 및 시민사회 참여자 간 네트워크와 파트너십 그리고 대화, 협상, 조정 등 소위 조종 방식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및 조종 방식은 전통적 행정 패러다임과 구별되어 참여자 간 수평적 관계와 참여 그리고 정치적 권위 내의 민주주의의 확대를 강조하였다(박경원, 2003; 채종헌 등, 2008; 김의영, 2011).

최근 논의되는 거버넌스는 주로 네트워크 거버넌스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해 다양한 참여자인 정부와 공공, 시민단체 및 이익집단, 기업과 주민 등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뉴거버넌스’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Rhodes(1996)는 이러한 ‘뉴거버넌스’를 ①조직 간 상호의존성, ②네트워크 참여자 간 지속적 교류, ③구성원 간 신뢰와 합의된 규범에 따라 정해지는 게임 규칙, ④상당한 수준의 자율성 등을 특성으로 가지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민간조직, 각종 단체 및 NGO의 자발적인 네트워크와 소통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정부-시장 간 교류와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사회정치적 질서 구축을 위한 협력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협의의 거버넌스 또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엄격하게 본다면 공적 및 사적 참여자들이 공공의 재화와 서비스 제공 및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의된 규칙 하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시행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Rhodes, 1996; 박경원, 2003; 최병두, 2015).

전 세계적으로 사회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기제로 지역이 등장하면서 지역 단위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통합을 지향하는 협력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으나 협력적 거버넌스와 그 역할에 대해서도 정의가 통일되어 명확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협력적 거버넌스의 핵심은 참여자 간 쌍방향의 의사소통과 다자간의 상호작용이다(이명석, 2010).

기존 연구들에서 협력적 거버넌스의 특징 중 공통적인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협력적 거버넌스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로서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을 이끌어주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주체이다. 구성원들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은 여전히 공공기관 또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참여하는 사람들은 비정부 참여자를 포함하여 관련된 모든 사람이며, 참여자들은 자문을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직접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셋째, 협력적 거버넌스는 공식적이며 집합적인 조직과 모임의 특징을 지니며, 사익이 아닌 공공정책과 관리에 초점을 둔다. 넷째, 협력적 거버넌스의 목적은 합의와 그에 따른 결정이며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Ansell and Gash, 2008).

협력을 구성하기 위한 초기 조건은 힘과 자원의 불균형, 과거의 역사, 참여의 유인 등으로 구성된다. 참여자들 간 역사적인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은 갈등의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경우에는 신뢰 수준이 낮을 뿐만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충실도 또한 낮아지게 되며 소통이 부정직하게 이루어지거나 소통 자체가 잘 안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사회적 자본의 창출과 협력의 선순환이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참여의 유인은 힘의 불균형과 역사적 배경에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참여로 인하여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성과가 예상되고 서로 간의 협조가 목표 실현에 영향을 준다고 인식된다면 참여 유인이 증가하게 된다. 만약 집단 간 갈등의 역사가 있어서 참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참여 유인이 확실한 경우 협력적인 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보다 원활한 협력을 보장할 수 있다(정재중, 2017; 김도윤 등, 2018).

“협력은 동료, 경쟁자, 적과도 함께 일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협력적 계획의 강점이자 동시에 위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타협이 아니라 파이를 키워서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이익을 위한 노력을 포함하기 때문에 잠재력이 큰 것이다(박경원, 2003). 따라서 이러한 협력의 속성은 상당히 좋은 참여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의 초기에는 상호 간 힘이나 자원의 불균형, 협력 유인의 부족, 서로 적대시해 온 역사적 배경 등 초기 조건이 아주 좋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실제로 시장, 국가, 시민사회의 참여자들 간에는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존재하며 이들 간 네트워크의 형성이 신뢰와 협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평등한 환경에서 협력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토론의 장에서 참가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서로 간의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로 귀결될 수 있다. 협력적 리더십은 협력의 규칙을 정립하고 적용하여 신뢰를 형성하고 대화를 장려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아울러 협력적 거버넌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의 절차적인 합법성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개입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를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합의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정당화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박경원, 2003; 최병두, 2015; 정재중, 2017; 김도윤 등, 2018).

협력적 거버넌스의 협력적 과정은 신뢰의 구축(trust building), 충실한 과정의 이행(commitment to process), 이해 내용의 공유(shared understanding), 중간적 성과(intermediate outcomes), 대면 대화(face-to-face dialogue)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선순환의 형태로 반복하는 과정, 즉 대면 대화 또는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의 신뢰가 형성되면 당사자들은 협력 과정에 충실히 참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중간적인 성과 또는 작은 승리(small wins)를 얻게 되면서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적 과정이 계속 선순환되면서 참여자들 간 신뢰가 구축되면 사회적 자본의 형성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Ansell and Gash, 2008; 정재중, 2017; 김도윤 등 2018).

코헨(Cohen, 1999)은 개인적인 신뢰가 일반화된 신뢰로 전환되려면 필요한 매개체는 법, 제도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참여자들 간 사회 속에서 개인적으로 형성되는 신뢰가 개인 간 연줄망을 넘어서 일반화된 신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공적인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신뢰의 구축과 회복은 정보의 배분과 불확실성에 대한 제도적 관리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버넌스가 이러한 제도화와 공간구성과 활용에 대한 규범을 지정하고 연속성과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가운데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수 있다(이재혁, 1998; 박경원, 2001; 조권중, 2008).

그런데 시민 참여의 장을 만들어 놓더라도 실질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참여의 장이 갈등과 이해 대립의 장으로 변질된다면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Putnam(2000)은 민주주의, 시민사회, 경제성장은 시민적 덕목의 축적이 바탕이 되며 이러한 시민적 덕목은 구성원들의 공동을 이익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위한 수많은 연결망과 결사체를 통해 배양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연결망, 규범,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주장하였다. 신뢰를 통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정은 위에서는 거시적 수준에서 공적 신뢰가, 아래에서는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와 참여의 과정으로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론적으로 신뢰에 대한 제도적, 거시적 구조가 마련되고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마지막 단계는 바로 사회적 관계에서의 참여자의 전략적 행동이다. 즉 관계 형성을 위해 협력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참여자의 전략적 행동의 상황이 만들어지며 이때 사회적인 신뢰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거래비용이 증가하며 사회적 효율성의 저해로 이어진다. 반면에 신뢰 형성의 기제가 사회적으로 작동을 하면 신뢰 문화 형성이 기대된다. 약술하면, 좋은 거버넌스 성과를 좌우하는 개혁과 혁신의 성패는 공적인 신뢰 형성에 있으며 이러한 공적 신뢰는 사회적 신뢰와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회적 자본의 축적인 시민들의 자발성, 관계 형성, 공동체 조직의 활성화 과정에서 축적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의 토대라고 볼 수 있다(Putnam, 2000; 조권중, 2008).

남북 대립적 체제가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사회・문화적인 배경이 서로 다른 남북의 참여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산활동과 생활을 함께하게 된 개성공단의 경우 남북 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문제가 적절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 개인과 집단을 넘어서 남북 당국 간의 문제로 확대될 위험성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은 남북 기성의 체제에서는 자칫하면 이적행위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는 공적인 부분에서의 거시적이고 제도적인 신뢰가 많은 부분에서 형성되어서 참여자들이 협력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신뢰의 구축과 회복의 과정은 정보의 배분과 불확실성에 대한 제도적 관리가 핵심과제이며 개인의 신뢰가 일반적인 신뢰로 연결되기 위해서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 남북이 새롭게 발족한 거버넌스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협력적 과정의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여 작은 승리(small wins)를 지속해 나갔는지는 남북의 공간 협력 과정과 통합과정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이재혁 1998; Putnam, 2000; 조권중, 2008; 정재중, 2017; 김도윤 등, 2018).

2) 남북 간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전이성(liminality)’과 제도화 과정에 대한 이해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해 합의 결과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를 살펴보면 남북 간의 독특한 역학관계로 인하여 개성공단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힘의 균형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균형 관계는 남한 측의 자본과 기술로 지어지고 남한에 판매하는 물건을 생산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적용하여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임금을 주기 때문에 남한 측이 자본적인 주도권을 가지나, 개성공단이 북한지역에 있어서 북한 당국에 영토 주권적 지배력이 있어서 주도권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양측이 서로 다른 부문에서 주도권이 상성(相性)을 이루는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팽팽하게 이루어졌다.

“개성공단에서 남한하고 북한 중에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일 것 같아요? 남한에서 돈을 다 대고 먹고 살게 해주니까 ‘남한이 갑이지’라는 사람도 있고, 아무래도 북한에 들어가 있으니까 북한이 갑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사실 개성공단에서는 갑과 을이 상황에 따라서 계속 바뀌기 때문에 어떨 때는 남한이 갑이었다가 어떨 때는 또 북한이 갑이 되고 계속 바뀌어요. 그래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항상 서로 조심해야지.”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남북 간에는 매일 같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합의를 해야 하는데 벌써 수년 동안 합의라는 걸 해오고 있지만 절대로 그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어. 이제 몇 년 지났고 좀 친해진 것 같아서 ‘이 정도로 되겠지’라고 예상하면 안되더라고. 북한도 보면 ‘목표’는 분명하지만 섣부르게 예측하고 덤비지는 않더라고.”

40대(남), 입주기업(S사) 남한 측 근로자

개성공단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매일같이 반복되었으며 이러한 남북 간의 균형 관계 속에서 남북 참여자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과정과 결과는 전이성(liminality)을 가지게 되었다. 전이성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제3의 혼종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성의 질서, 관습과 권위, 가치관, 인식과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과, 제도, 시스템에도 통합되지 않은 모호하고 확정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기성의 관념과 가치, 이념 등에 대해 강한 저항, 억압, 압제가 일어날 수도, 새로운 제도, 패러다임, 문화 등이 창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전이성에 따라 혼종되는 결과는 기성의 성격을 받아들일 수도, 일부 받아들일 수도, 새롭게 창조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박규택, 2015).

개성공단 초창기에는 남북 당국 간 합의한 내용에 따라서 개성공단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법과 규정이 제정되었는데 남한 측에서 제정한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과 북한 측에서 공표한 ‘개성공업지구법’과 16개의 하위규정이다. 그런데 기본법과 하위규정을 개성공단에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제정된 규정을 바탕으로 하여 생산과 소비 활동 영위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개성공업지구 시행세칙’과 ‘개성공업지구 준칙’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규범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남북 간의 힘의 상성(相性) 관계로 인해 남북의 상호작용과 합의 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전이성이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서 개성공단 세칙과 준칙에 대해서 북한 측 당국에서 먼저 제안하는 경우 북한 측은 소위 ‘공화국의 주권 지역’임을 내세우면서 영토주권적 입장에서 법과 제도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여 제안하고 강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우에 남한 측에서는 북한 측에서 제시한 법과 제도적인 내용에 대해 검토하고 남북 간에 상호작용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상호작용 과정에서 합리적인 부분은 수용되고 상호 간에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거부되며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절충하여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개성공단 내에서의 의무보험의 제도화 및 가입과 관련한 것이었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북한 측은 개성공단에서도 의무보험의 제도화 및 남북 참여자들의 가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개성공단 내에서 화재보험, 가스배상책임보험, 자동차배상책임보험, 종업원재해보험, 자연재해보험의 5가지 보험에 대해서 의무보험으로 제도화하는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남북은 합의 과정을 통해 종업원재해보험과 자연재해보험의 경우 보험요율의 문제, 실효성의 문제, 남북 이중 가입의 가능성 등 문제가 있어서 개성공단 의무보험에서 제외(거부)하였다. 화재보험과 가스배상책임보험의 경우는 그 필요성이 인정되어 수용하여 개성공단 의무보험이 되었으나 ‘자율적 가입’이라는 조건부 수용을 하게 되었다. 자동차책임보험의 경우 남한 측 모든 차량의 가입이 아니라 개성공단에 등록된 차량만 가입하는 방향으로 대안에 합의(대안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자동차책임보험, 화재보험, 가스배상책임보험이 최초의 개성공단 의무보험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제도화된 개성공단 의무보험 제도는 새로운 상호작용을 다시 추동하였는데 ‘조건부 수용’ 및 ‘대안 제시’의 경우 추후 남북 상호작용이 다시 필요한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롭게 남북이 만들어 낸 제도를 누구도 실제로 실행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뢰’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제도는 마련되었으나 그것이 실효성을 가지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또 다른 남북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했고 그러한 경험적인 과정을 거쳐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관련 법과 제도는 참여자들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하였다.

개성공단에서 법과 규범이 제도화되는 과정은 그림 1의 의무보험 가입 관련 사례와 같이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해 대부분 거부, 수용, 대안 제시의 세 가지 형태가 복합적으로 나타났으며 조건부 수용이나 대안 제시 후 논의가 계속되는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처음 등장한 제도에 대한 경험의 부재로 인하여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 상호작용으로 합의된 법・규범이 제도화되어도 즉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 필요한 새로운 과제가 재생산되고 또 다른 합의의 과정을 추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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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의무보험 사례를 통해서 본 법・규범의 제도화 과정

3.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협력을 위한 내부 시스템 구성과정

개성공단의 협력체계는 기존 남북의 통념이나 일상적인 모습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남-북-민-관이 모두 협력구조에 놓이는 복합적이고 혼합적인 형태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을 다루고 합의 결과를 협력적인 방향으로 도출하기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 형태이다.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은 합의에 이르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이성으로 인하여 새로운 상호작용 과제를 추동하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남북의 참여를 유도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1) 관리위원회의 의사소통과 정보 교환을 위한 내부 네트워크 체계 형성

북한 측의 경우 당국에서 개성공단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에게 조를 지정해주고 이러한 조에 일괄적으로 소속되도록 하여 일정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모이도록 하는 강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한 측 참여자들은 개성공단 내에서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여건이었으며 북한 측과 같이 강제성을 가진 네트워크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자발적 협력구조를 구축하고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보 교환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관리위원회 측에서는 이러한 협력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북한 측 성원들은 매주 조별로 모여서 총화하고 문화생활도 하고 토론도 하기 때문에 정보 분석, 교환, 공유, 전파 과정이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고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남한 측의 경우 개성공단에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통신도 불편하고, 거의 천명에 달하는 남측 근로자들이 다 모여서 회의를 할 수도 없고, 북한 측처럼 조를 지정해주고 강제로 회의를 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남한 측도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체계를 조직하였고 일괄적으로 전파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개성공단의 남한 측 참여자들은 개성공단에 입주하여 생산 및 영업활동을 하였던 입주기업과. 공단 내 인프라를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공성을 가진 개성공단 유관기관으로 구분된다. 그중에서 입주기업은 공장에서 직접 생산활동을 하는 123개의 입주기업과 입주기업을 지원하는 130여 개의 영업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2015년 기준으로 개성공단 남한 측 상주 인원은 1,000여 명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남한 측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남북 간 상호작용과 관련된 주요 경험사례를 청취하여 축적하고 분석한 뒤 전체적으로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관리위원회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보 교환 체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남한 측 기업 및 기관들과 형성한 공식적 성격의 협력체계를 구성하고 운영하였다.

표 1.

개성공단에서 관리위원회와 남한 측 입주 기관 간 협의 체계

협의체 명 참여기관 주요 내용
개성공업지구
기업책임자회의
입주기업 개성공업지구관리기관 설립 운영규정(제16조)에 의거 2004년 시작
2010년에 관리위원회에 등록하고 활동 개시
공단 개발 및 관리운영 관련 중요문제 협의
기업 간 친목도모 및 권익 보호
관리위원회가 당연직 운영위원으로 참여
개성공단기업협회 입주기업 2006년 5월 11일 발족한 통일부 비영리 법인
입주기업 다수의 의견 수렴
관리위원회에 정책 건의
법인장회의
운영위원회
입주기업 법인장 2005년 구성, 매주 수요일 개최 → 2013년 이후 월 2회 개최
개성공단 내 기업등록 된 기업의 법인장, 지사장 중에서 업종별로 자문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회장이 임명한 자로 구성
개성공단 현안에 대해 관리위원회와 정보 공유
입주기업과 관리위원회 간 소통 목적
영업기업연합회 입주영업소 대표 2013년 4월, 개성공단 잠정중단 관련 발족
3개 분과(유통, 건설, 서비스) 40개 회원사 영업소 관계자들의 권익 보호
유관기관
정례협의
입주 공공기관 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입주 공공기관 협의체
2012년 4월부터 시작,
관리위원회 등 총 11개 기관장 회의
매주 수요일 정례협의, 정기적인 워크숍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개성공단의 공식적 협력체계는 ‘개성공업지구 기업책임자회의’, ‘개성공단기업협회’, ‘(개성공단 내)법인장회의운영위원회’, ‘영업기업연합회’, ‘유관기관정례협의’이다. 관리위원회는 이러한 남한 측 협의체의 설립을 지원하고 정기적인 운영을 독려하면서 의사소통 및 정보 교환 체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협의체 활동을 통하여 개성공단 내에 입주하여 있는 남한 측 기업과 기관 대표들의 경험과 애로사항, 특히 새롭게 등장한 남북 간 상호작용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정기적으로 분석하고 필요한 사항이나 최근에 분석된 주의사항 등에 대해 전파하고 피드백을 받는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협의체 시스템은 전파하는 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불참하는 경우 중요한 내용의 전달이 잘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관리위원회는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고 남북 간 상호작용과 결과에 대한 최신의 정보를 정확하게 빠짐없이 전달함과 동시에 남북 양측의 피드백을 수렴할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고 ‘민원안내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게 되었다. 다음은 당시 ‘민원안내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제로 조성한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팀장(당시 관리위원회 부장)의 설명이다.

“남한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해서 지키도록 하는 게 원래 어렵잖아. 개성에서도 그랬는데 여기는 공문 내용 받으러 오라고 하는 연락도 어렵고, 공문 내용을 몰라서 사건이 터지면 자기는 그 전달받지 못해서 몰랐다고 하고, 핸드폰도 없어서 일괄적으로 보내고 책임 지울 방법도 없고 아주 골치가 아파서 만들어 낸 것이 ‘민원안내실’이다. 일단 여기에 공문을 넣어두고 가져가도록 하니까 필요한 내용이 그래도 그럭저럭 잘 전달되고 ‘못 받았다’또는‘몰랐다’는 핑계 때문에 남북 간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팀장

민원안내실은 종합지원센터 1층의 북쪽 출입구에 있어서 접근성이 편리한 위치에 있었다. 안내실 상주직원은 북한 측의 여직원 2명이었고 민원 안내, 전화 교환, 개성공단 외부방문객에 대한 홍보 및 안내를 담당1)하였다. 안내실에는 개성공단 내 모든 기업과 기관의 우편함이 비치되어 있었고 남북 참여자가 함께 가볍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민원안내실을 통해서 공문을 발송하는 과정 역시 남북 간 상호작용 통해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었는데 ①관리위원회 측에서 중요한 주요 전달 내용을 작성한 후, ②북한 측 책임자와 합의 후, ③안내실의 북한 측 직원에게 공문을 전달하여 공동 책임하에 우편함에 넣어서 남한 측 참여자들에게 전달한 후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공문을 작성하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종합지원센터에는 1층에 홍보관이 있었고 15층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개성공단을 처음 방문하거나 투자를 위해 시찰 오는 대표단을 위해서 민원안내실에 상주하는 북한 측 안내직원이 개성공단과 그 주변 지역에 대해서 브리핑해주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림 2의 공문이 전달되기 전에는 남북이 합의하여 매일 오후 2시에 정기적으로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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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민원안내실을 통해 전달된 안내문 예시
출처 : 개인소장자료

그런데 남한 측 기업/기관에서는 대부분 투자자, 본사 CEO 등 중요한 인원들이 방문하였을 때 동 시스템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본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다른 기업/기관과 섞이지 않게 안내를 받기를 원하게 되었고 북한 측에서는 안내하는 북한 직원이 불특정 인원에게 노출되는 것에 불만이 있어서 안내받는 사람들에 대한 신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도권을 가지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남북이 합의하여 그림2와 같이 매일 오후 2시 안내 업무는 폐지하고 신청 및 허가제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북 모두가 원해서 공문을 작성하고 시스템을 변경하게 되었음에도 세부내용 합의에 9일이 걸렸고 이후에도 운영과정에서 남북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보완하고 재합의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방문 희망일 7일 전까지 명단을 제출해야 부분과 명단에 들어가는 신상정보의 수준이었다. 남한 측에서는 2-3일 전에도 필요하면 신청을 하기를 원했고 북한 측에서는 신상정보를 최대한 상세하게 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러한 단순한 내용을 조율하는데 9일이 걸렸다.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은 일견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보이지만 개성공단에서는 역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주지한 바와 같이 공문서의 내용을 정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남북이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거친 공문 내용은 개성공단 내에서는 신뢰성 있는 합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림 3의 민원안내실을 보면, 입구 정면에 직원 2명이 근무하였고 오른쪽에 공문서를 주고받는 문서함이 있었다. 그런데 민원안내실에는 티테이블과 쇼파, 의자 등이 있었고 남북 참여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남북 간에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환경으로 조성되었다. 연구자는 민원안내실이 남북 간 전이공간(liminal space)으로서 역할도 하게 되었음을 확인하였고 추후 연구에서 더 상세하게 개성공단 내의 전이공간에 대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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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개성공단 민원안내실 내부
출처 :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2) 남북 간 면대면(face-to-face) 소통체계의 형성을 통한 신뢰의 통로 구축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지속 등장하였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고 원만하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참여자들 간에 안정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최대한 많이 구축하고 지속적인 면대면 접촉의 과정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즉 이러한 통로가 잘 구축되어 있어야 협력적 거버넌스의 주요 목적인 합의하는 과정을 구성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의사결정에 이를 수 있으며 설사 이러한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협력을 위한 과정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Ansell and Gash, 2008).

표 2.

개성공단 관련 북한 측 기관과 관리위원회 협력 담당 부서

북한 측 협력 기관(개소일 순) 관리위원회 담당
통행검사소 및 세관 출입사업부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 기업지원부/법무지원부
출입국사업부 출입사업부
보안소(경찰) 법무지원부
협력부(관리위원회) 관리위원회 전체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개성사무소 관리위원회 전체
세무소 법무지원부/관리총괄부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개성공단 관련 북한 측 기관 중 가장 핵심은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하 총국)’이다. 총국은 북한 측의 개성공업지구 지도기관으로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및 ‘삼천리총회사’의 개성공단 사업 관련 부서를 하나로 조직하여 2002년에 별도 기구로 설립된 북한 측 기구이다. 개성공업지구법에도 ‘공업지구사업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는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이 하며,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은 공업지구관리기관을 통하여 공업지구 사업을 지도한다.’2)고 명시하여 그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총국은 개성공단과 관계되는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였고 산하에 세금 징수 및 회계와 관련한 업무를 하는 세무소,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남한 측 경찰 역할의 보안소, 그리고 북한 측의 근로자 취업을 담당하는 로력(勞力) 알선기업도 있었다. 관리위원회는 북한 측의 이러한 각 업무에 따라 담당 부서와 담당자를 지정하고 특별한 사안이 없는 경우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정례적으로 만나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물론 사안이 발생할 때는 즉시 만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다음은 개성공단의 사건 사고를 전담하였던 법무팀의 남북 간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이다.

“개성에서 사고가 나면 저희가 북한 측 보안(경찰)을 만나서 해결을 하죠. 그리고 특별한 사고가 없더라도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만나서 대화를 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고 있어요. 다른 부서도 (남북 담당자 간) 매주 만나서 대화하는 날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야 좀 친해지는 것도 있고 심각한 협상을 하기 전에 서로 좀 편해지는 부분도 있고요.”

20대(남),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법무지원팀 사원

그런데 북한은 모든 업무의 체계가 철저하게 하향식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가장 윗선과 대화를 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 측의 결정은 총국장이 지시를 내리면 그대로 이행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관리위원회의 대표인 관리위원장은 총국장과 정례적으로 면대면 접촉하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북한 측과의 네트워크 구축 관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한 측과 사회주의 개혁개방 특구 관련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최초로 남북이 공동으로 해외 시찰을 다녀온 것이었다. 2005년 6월 남북은 처음으로 중국과 베트남 공단을 방문하여 시찰하였고, 2005년 11월 5일부터 12월 17일까지 북한 측 관계자 10명이 중국에서 세무회계 연수를 받도록 지원하였다. 이후 2007년에도 남북은 2차례 해외 공동시찰을 추가로 진행하였는데 중국과 베트남에 있는 특구를 방문하여 공단 개발, 관리․운영, 출입 및 통관, 해외 보험사례를 조사하였다. 2009년 12월 12일부터 22일까지의 공동시찰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의 공단을 방문하여 개발 및 관리와 운영 시스템, 기업지원 서비스, 통행과 통관시스템 등을 확인하였다. 다음은 북한 측과 함께 해외 시찰을 다녀온 남한 측 직원의 당시 상황 설명을 요약한 것이다.

“북한 측이 처음에 중국 방문에 대해서는 군말이 없었는데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엄청 많았어. ‘웬남(베트남)에 가서 뭐볼게 있나.’라는 분위기였거든. 그런데 하노이 공항에 딱 내리는 순간부터 갑자기 당황하는 표정을 하더니 공항과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한마디도 안하더라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어. 베트남이 그렇게까지 발전한 지 몰랐던거지. 어쨌거나 해외 공동시찰을 다녀온 이후로는 북한 측과 합의하는 과정이 기존과는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뭐가 좀 막히면 같이 시찰 다녀온 참사에게 연락해서 좀 더 부탁해볼 수도 있게 되었고. ”

40대(남),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팀장

이러한 남북 합동 해외 시찰을 통해서 북한 측은 자신들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었으며 남한과의 협력 남북 간 상호작용과 합의 과정을 대하는 태도나 이것을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변화를 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해외 시찰을 통해 남북 모두는 개성공단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상황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면대면 네트워크가 좀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4. 남북통합경험 시스템의 탄생과 남북 신뢰의 구축

개성공단 거버넌스로 등장한 관리위원회가 개성공단에 참여하는 남북의 다양한 기관 및 참여자들과 협력적 과정을 이행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협력 과정의 선순환을 통한 중간적인 성과(intermediate outcomes) 또는 작은 승리(small wins)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1) 협력적 과정의 선순환과 남북 간 상호작용의 시스템화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실무 합의서의 방향과 흐름을 전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개성공단 초기라고 볼 수 있는 2007년 이전에는 개성공단 전체 운영 및 공단 개발 등 큰 틀을 이루는 내용이 주류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개성공단 초기 남북 간 합의는 그 합의의 주체가 남북 간 당국이거나 다른 기관 또는 참여자가 합의 주체가 되더라도 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거대 담론적 스케일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개성공단에서의 2007년 이후의 합의서들은 대부분 ‘부속 합의서’ 또는 ‘운영지원합의서’로 확인된다. 이는 개성공단에서 실제 참여자들이 활동하는 중에 발생하는 새로운 상호작용에 대해 내부적인 수준에서 합의하는 내용이거나, 또는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참여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이미 남북이 기존에 합의한 내용의 업데이트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된 상황을 보여준다.

즉, 개성공단에서 남북 참여자들의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개성공단 내에서 필요한 상호작용이 계속되면서 합의 결과들이 개성공단 내에서 필요한 내용으로 채워져 나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관리위원회의 주도하에 남북 간 합의와 실천의 경험이 쌓여 개성공단 내에서의 생활이 안정화되면서 내부적으로 중간적인 성과 또는 작은 승리가 도출될 수 있게 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이에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은 개성공단의 특징과 남북 간의 미시적 필요성과 관련된 부분이 점차 강해지는데 이것은 남북이 같이 생산과 소비 활동을 하면서 서로 간 ‘사회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문제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음에서 설명한 ‘똥강아지’사건이다.

“초기에 남북 간에 정치적인 문제나 체제적인 문제는 워낙 조심하니까 그래도 좀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문화적으로 다른 거는 도저히 예상도 어렵고 대처도 안되더라고. 그중에 가장 유명한 사건이 똥강아지 사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많은 어른이 자기 손주들이나 아이들한테 ‘우리 똥강아지’라고 하는 말이 너무 이뻐하는 말이잖아. 어느 날 나이가 많은 남한 측 법인장이 이제 막 입사한 북한 측 어린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기특했는지 ‘우리 똥강아지 정말 열심히 일하네.’라고 한거야. 그랬더니 북한 측 직원은 울면서 뛰쳐나가고 좀 이따가 (북한)참사들이 쳐들어와서 ‘우리 측 성원을 똥 묻은 개에 비유하다니’라고 분노하면서 그 말을 한 남한 측 법인장을 추방시켜 버렸어. 우리가 언어적인 차이를 이해시켜보려고 했는데 초창기에는 그게 안되더라고. 그래서 개성공단에서는 그게 금기어가 되어서 교육하게 되었어. 지금은 그런 문제는 잘 안 생기지.”

50대(남),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부장

위에서처럼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한 문제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하게 확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가 언어 문제를 넘어서 문서상에서 드러난 것이 다음의 운전면허증 사건이다.

그림 4를 보면 북한 측이 발급한 운전면허증 아래쪽에 ‘교통안전’이라고 표기되어있는 5칸의 구획이 있다. 남한 측 근로자 중 몇 명은 아래쪽 ‘교통안전’구획으로 인하여 면허증이 지갑에 잘 들어가지 않고 위로 튀어나오게 되자 몇몇 참여자가 아래쪽 부분을 잘라버리고 면허증을 가지고 다녔다. 어느 날 한 남한 측 참여자가 북한 측 보안원(경찰)에게 교통위반으로 적발되었는데 ‘교통안전’부분이 없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면허가 취소되었으니 차를 놓고 가시오”라고 하였다. 북한 측은 무선 통신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못해서 교통위반을 하면 ‘교통안전’을 한 칸씩 잘라내는 시스템으로 5개가 모두 없는 경우 면허가 취소되는 상황이었는데 남한 측 참여자는 당연히 이것을 몰랐다. 관리위원회는 북한 측과 재협의하여 훼손된 운전면허증을 특별한 제재 없이 바로 재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남한 측 참여자들에게 알려서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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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북한 측 발급 운전면허증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이러한 사건들이 지속 발생하면서 남북 모두가 개성공단 내에서 사소한 ‘서로 다름’도 큰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남북 간에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남북 간 상호작용은 새롭게 재생산되고 확대되는 양상이 계속 나타났다. 이러한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한 합의 결과는 앞서 설명하였던 것처럼 상호 간 금지, 수용, 대안의 제시 중 하나 또는 중복적인 선택으로 예측 불가능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고 남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개성공단에서만’통용되는 제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림 5에서 보여주는 개성공단에서의 자동차등록과 번호판 제도는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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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개성공단에서만 적용되는 자동차 번호판 체계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개성공단의 자동차등록과 번호판 제도는 상당히 독특한데 개성공단에 등록된 자동차와 왕래하는 남한 측의 차량 중에서 개성공단에 등록된 차량은 그림 5의 가장 좌측과 같이 노란색 번호판을 달게 되었다. 그런데 개성공단 등록 차량 중에서 북한 측 운전자가 운전하는 차량은 테두리가 없는 노란색 번호판을, 남한 측 운전자 등록 차량은 노란색 번호판에 검은색 테두리를 달아서 구분하였다. 그리고 남북을 왕래하는 차량의 번호판은 원래 번호판 위치에 임시번호판을 덧씌워서 운행하도록 제도화되었다.

이러한 개성공단의 번호판 체계는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상호작용으로 제도화에 이른 결과물이 금지, 수용, 대안 제시라는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나는 것을 잘 드러낸다. 남한 측의 차량 번호판을 개성에 달고 들어오는 것은 금지되었으나 임시번호판을 발급받아 가리는 방식으로 대안이 제시되었고 공업지구에 등록한 차량은 개성공업지구만의 번호판을 다는 것으로 합의되어 수용되었으나 북한 측의 보안(경찰)에 남한 측 인원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의 문제에 대비하여 변화를 준, 새로운 ‘대안 제시’상황으로 볼 수 있다.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이러한 ‘개성공단에서만 통용되는’ 규범의 제도화 과정은 협력적 과정이 반복・순환하면서 외부 환경인 남한과 북한에서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계적인 형태를 넘어서 남북 양측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는 다의적이고 이질적인 성격이 개성공단이라는 공간에서 중첩되어 구현되는 것이었다.

2) 작은 승리(small wins)의 경험과 남북 간 ‘신뢰구간’의 형성

개성공단 규범의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양상은 상호작용과 남북 합의에 참여하는 계층이 다양화되고 다층화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다층화’현상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게 된 배경이 상당히 중요하다. 개성공단에서 남북의 합의 과정에 영향을 주는 참여자 또는 집단이 남북의 당국이나 대표 기관만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참여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하여 의견을 낼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전제되어야만 ‘다층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성공단에서 기본적인 법과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내에서 남북 간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한 경험이 다년간 누적되면서 남북 상호 간에 익숙해지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들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이미 남북 간 합의된 것 중 실제 경험을 통해서 신뢰가 형성된 부분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성공단 거버넌스가 구축한 협력적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핵심이었다. 즉, 거버넌스의 협력적 역할이 선순환하면서 참여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문제가 잘 중재되어 해결되는 과정의 경험, 즉 작은 승리(small wins)가 누적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선순환하면서 남북 간 ‘신뢰구간’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다양한 참여자들이 다층적으로 참여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림 6은 남북 간 최초로 발생한 교통사고 사진이다. 이 사고를 해결하는 과정3)은 이러한 ‘신뢰구간’이 형성되는 프로세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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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남북 간 최초의 교통사고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남한 측 참여자들은 북한 측 보험회사인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사고처리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었다. 따라서 기존에 남북 간 합의를 통해서 제도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관리위원회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합의하고 북한 측이 정상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을 확인한 남북 참여자들은 자동차보험 제도에 ‘신뢰’를 가지게 되면서 비로소 보험체계가 개성공단 내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당시 사고를 처리하고 보험금이 책정되고 지급되는 모든 과정에서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한 합의하는 과정이 있었고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고 전파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과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결과는 유사한 상황에서 ‘판례(判例)’와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이후 남북 간에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되더라도 기존에 합의하고 이행한 관례에 따라서 문제 해결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남북 경협에 관여하는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금강산의 경우 민간 기업이 북한과 협력하는 구조였고 남북 간 거버넌스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인명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협력하고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확전되면서 폐쇄를 맞이하였기 때문이었다. 개성공단 역시 결국은 폐쇄되었으나 공단 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확전되어서 중단된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개성공단에서도 인명사고가 적지 않게 발생하였는데 관리위원회라는 거버넌스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남북이 내부적으로 조용하게 해결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설사 남북 간에 개인적으로 성격이 안 맞아서 싸운다고 하더라도 그건 두 사람이 가볍게 화해하고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잘못하면 나라 대 나라 싸움 된다니까. 나는 관리위원회가 갑질하는 경향도 있어서 완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관리위원회가 없었으면 아마 개성공단도 금강산처럼 되었을 것이다.”

50대(남), 개성공단 입주기업(T사) 남한 측 근로자

따라서 개성공단에서 남북이 합의하여 만든 거버넌스 체계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할을 통해 남북 간 상호작용을 관리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협력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참여자들은 신뢰를 형성하고 이러한 신뢰가 확대되는 과정인 ‘협력적 과정’의 선순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구간’을 구축하고 확대해나가는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형성되면서 남북 참여자들의 활동영역과 자유도가 확대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것을 토대로 더욱 다양한 참여자들이 다층적으로 개성공단의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5. 다층적・이질적 성격이 일상화된 개성공단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신뢰’가 형성되고 ‘신뢰구간’이 확대되고 누적되면서 중간적 성과와 작은 승리를 얻는 경험이 축적되고 순환하는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그림 7은 이러한 남북통합경험 시스템의 순환 과정을 도식화한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갈등 해결과 상호작용이 필요하여 거버넌스가 설립되었고, 거버넌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트워크 및 복합 다층적 협력구조를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계속된 상호작용과 합의 도출 및 피드백 반영・관리 및 제도화・기록화를 지속하는 활동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하고 공간적인 규범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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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개성공단 거버넌스의 협력적 역할과 ‘신뢰’ 형성 프로세스

이러한 거버넌스의 신뢰를 형성하는 시스템이 내재화되면서 남북 간 상호작용 참여자들의 다양화를 추동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한 합의 내용 자체가 기존과는 다른 다층적인 양상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2015년에 진행되었던 북한 측 근로자 기본급(기본임금)의 인상을 위한 협의와 토지사용료의 기준을 정하는 합의 과정에서 이러한 참여자의 다층화 양상이 잘 드러나게 되었다. 북한 측에서 그동안 개성공단의 생산성이 상당히 향상되면서 남한 측 입주기업들이 예전에 비해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실에 대해 거론하면서 북한 측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률의 재합의를 요구하였다.

한편 북한 측은 토지이용료도 이와 같은 논리로 접근하면서 예상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였다.4) 그런데 2014년에 등장한 이 두 가지 사안에서는 이전 남북 간 상호작용과는 다른 새로운 쟁점이 확인되는데, 하나는 북한 측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일방적으로 ‘생떼를 부리듯’요구하던 기존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남북 간 합의에 임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한 측 근로자의 임금 인상과 토지사용료의 문제가 기존과 같이 남북 당국 간 의견만 일치하면 간단하게 합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남북 다양한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이 연계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었다. 다음의 북한 측 참사와의 대화 내용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아니 생각을 좀 해 보라. 남측은 자본주의 아닌가. 돈을 벌었으면 그만큼은 돌려주고 잘하면 더 주고 못 하면 채근하는 게 맞는거지 않나. 내가 공업지구 처음에 기업들 상태 잘 알고, 그때 법인장 선생들 타고 다니던 차량도 고작 1만 달러 2만 달러짜리였던 것 다 기억하고 있다. 근데 지금은 어떤가, 8만 달러짜리도, 심지어 10만 달러가 넘는 차도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는가. 공업지구도 10년이 넘었다. 모를거라고 생각 하는건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생산성 올라간 만큼5) 다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기존보다 조금만 더 올려달라는 건데, 그리고 우리 성원들이 공업지구에서 함께 있은지도 오래되고 정도 들고 했을 텐데,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니가. 남측에서 이러면 말이 되는 상황이가?”

50대(남), 북한 측 총국 협력부 보장성원

우선 북한 측의 이러한 ‘돈을 많이 벌었으니 그만큼 보상이 필요하고 그만큼 사용료도 내야지’라는 자본주의적 방식의 접근은 남한 측에서 논리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 또 다른 문제인 다층화의 문제를 살펴보면 임금 인상과 토지사용료의 문제는 남북 당국 간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면서 임금과 사용료를 지출하는 당사자인 입주기업들의 문제이기도 하였고 임금을 받는 북한 측 근로자들의 생활과도 연계되는 문제였으며 북한 측 참여자들의 책임 기관인 개성시 인민위원회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 문제에 연계되어있는 다양한 참여자들 간의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관리위원회는 기존에 남북의 다양한 기관 및 참여자들과 구축한 네트워크와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문제 해결을 모색하였고 1여 년에 걸친 협상을 통해서 2015년 8월 임금 문제는 당분간 종전대로 기본급의 5% 인상으로, 2015년 12월에 토지사용료는 ㎡당 미화 0.64달러에 합의하였다.

이렇게 나타난 남북 간 합의 과정에 참여자의 다층화와 북한 측의 자본주의적인 접근 방식이 나타난 것은 기존에 해결된 남북 간 합의와 상호작용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남북통합경험’의 축적은 남한 측만이 아니라 북한 측에서 유효한 것이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남북 간 상호작용의 방법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측 특성상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변화가 전체적・조직적으로 준비하고 내부적으로 합의된 ‘전략적 접근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 측 참여자들에게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화적인 변화상 역시 이러한 양상과 다르지 않게 나타난 점, 그리고 기존 북한 측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었던 북한 측 당국이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까지 한’ 사건이 최초로 나타난 점 등을 토대로 판단하였을 때 ‘남북통합경험’이 북한 측에도 영향을 주어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한 측의 변화는 최초의 북한 측 공식의견 번복 사건을 통해서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2015년 5월 남한 측 기획재정부 개성공단 담당 과장 일행이 예산편성과 관련하여 개성공단을 시찰하기를 요청해왔다. 연구자는 담당자로서 방문에 대해서 ‘기획재정부가 모든 자금을 쥐고 있는 힘 있는 부처이니 방문에 협조해 달라’는 취지로 북한 측과 협상하면서 어렵지 않게 방문에 합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5월 27일 오전, 돌연 북한 측 출입국사업부에서 관리위원회 측에 ‘상부의 지침에 따라서 방문이 취소’되었음을 알려왔다. 이에 관리위원회는 관리총괄부 차원에서 총국의 보장성원을 설득하고, 출입국사업부에서는 북한 측 출입국 쪽을 설득하였고 공단관리부까지 나서서 북한 측 인프라 관련 담당에게 기획재정부 예산이 얼마나 중요하며 당시 개성공단 내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던 사업에 대해서 언급하는 등 개성공단에서 구축한 모든 네트워크 시스템을 가동하여 설득을 시도하였다.

북한 측에서 상부 지시에 대해 다시 의견을 제시하고 번복하는 상황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 협상의 목표는 북한 측에 추후 유사한 문제의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기획재정부 측에는 ‘최선을 다했으나 북한 측의 비협조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27일 오후에 북한 측에서 ‘행사 출입을 상부에서 허가하였다’며 지침 번복을 통지해왔다. 이것은 북한 측이 공식적인 입장을 번복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 총국의 협력부 측에서 “이거 공업지구에는 상당히 중요한 행사인데 (우리 측의 누군가가) 설명을 잘못하고 (윗선에서) 잘못 요해(이해)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놀라게 했구만 기래. (기재부)행사를 잘해서 공업지구 발전을 위한 예산을 많이 타 오시라.”고 언급하였다는 점이다. 이 사건으로 개성공단에서 북한 당국의 내부에서도 남북 간 상호작용과 합의 과정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입장을 번복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남한 측 관점에서 볼 때는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북한 측에서 이렇게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남한 측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많은 분석과 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파악하고자 하였고 연구자 역시 관련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북한 측에 다양한 방법으로 문의한 끝에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관리위원회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북한 측에 다양한 루트로 협의를 시도한 것이 주효했다는 점이었다. 북한 측에서는 같은 내용의 사안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접수되면서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다양한 채널로 같은 내용의 보고가 올라오면서 책임이 분산되면서 설득력도 얻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두 번째는 개성공단의 북한 측 당국 역시 계속되는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경험과 합의의 누적을 통한 ‘남북통합경험’의 축적으로 인하여 남한 측의 법・제도적인 상황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상부 설득에 나설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북한 측 역시 ‘남북통합경험’의 축적으로 인하여 남북 간 상호작용과 합의에 접근하는 방법과 태도가 상당히 변화하였고 업그레이드가 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즉, 북한 측 당국이 관리위원회의 협력적 거버넌스 역할을 통해 개성공단 내에서 구축한 시스템에 어느 정도 신뢰를 형성하게 되면서 활동의 제약이 줄어들면서 자유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개성공단에서 관리위원회의 협력적 거버넌스 역할은 남한 측 당국자가 개성공단에서의 암묵적 규칙을 어겨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성공단 내에서 관리위원회가 북한 측과 신뢰가 상당 수준으로 형성되었고 개성공단에서 남북 모두에게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유효한 것임을 다시 한번 드러내게 되었다. 다음은 동 사건에 대해 북한 측에서 통지한 내용이다.

“남측 당국 000선생이 기업들을 돌아다니면서 북남 간에 합의도 되지 않은 문제를 자기가 해결해주겠다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닌다고 하는데 이거는 중대한 문제요. 공업지구에서 추방되고 다시는 공업지구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오.”

50대(남), 북한 측 총국 협력부장

이 사건은 남북 당국 간 문제였으나 양측은 이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 있어서 복잡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관리위원회의 관리총괄부에서 문제를 중재하게 되었고 다음과 같이 설득에 나섰다.

“우리 측 당국자 000가 개성공단에서 일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최근에 진급하고 기분이 좋아 실수를 한 것 같다. 북측에서도 이해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지금 분위기에서 당국자를 추방하게 되면 개성공단에 상당히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선생들도 이제 남측에는 여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잘 이야기 할테니 개성공단 내에서 해결하고 끝냅시다.”

6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관리총괄부장

결과적으로 남한 측 당국자는 추방되지 않았고 남북은 동 사건이 개성공단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하는데 합의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남북은 ‘남북통합경험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하여 남북 간 문제 발생 시 국가 대 국가 또는 남북 당국 간의 문제로 확전되지 않도록 하는 ‘개성공단을 함께 지키는’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게 되었다.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의 작동으로 인한 ‘신뢰구간’의 형성과 확대는 남북 간 굵직굵직한 사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개성공단에 입사한 후 몇 개월 정도는 언행 실수에 대해 유예기간을 주고 유연하게 대처하게 된 것이다. 처음 개성공단에서 생활하게 되는 경우 언어와 관련하여 실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실수를 하는 경우 상호 체제 비난이나 인격 모독과 같이 심각하게 여겨지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는 남북이 서로 암묵적으로 서로 용인을 하고 가볍게 주의만 주고 넘어가게 되었다. 다음은 연구자가 개성공단에서 합의한 남측・북측이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였을 때 북한 측 참사가 한 말이다.

“북한? 북측이라고 말하게 되어 있지 않나? 선생 입직(입사)한지 두 달밖에 안 되었으니 그냥 넘어가는데 련습 많이 하시라. 계속 실수하면 그거이 안되지 않갔어. 이번에는 문제 제기하지 않갔시오.”

50대(남), 북한 측 총국 협력부 보장성원(보위부 참사)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간 상호작용과 합의 과정이 누적되고 실천의 경험이 쌓임으로 인하여 남한과 북한의 기성체제와 사회문화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이질적’인 형태의 규범화와 일상의 모습이 형성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해 남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비일상적이고 이질적’인 새로운 형태의 제도가 형성되었고 참여자 간 ‘신뢰구간’의 증가로 인하여 남북 참여자들은 모두가 활동의 범위와 자유도의 확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북 간 ‘신뢰’를 통한 활동의 자유도와 범위의 확대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활동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전이공간(liminal space)’의 등장과 활용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서 상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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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개성공단 남북통합경험 시스템 모식도

6. 결론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로 지어지고 남한에 판매하는 물건을 생산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자본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남한 측에 주도권이 있는 반면에 공단이 북한 측 지역에 건설되었고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 북한 주민이기 때문에 북한 측이 영토주권적 측면에서 통제권과 주도권을 가졌다. 따라서 공간의 규범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남북 간의 독특한 힘의 상성(相性) 관계로 인하여 상호작용과 그 결과가 예측 불가능한 ‘전이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결과는 대부분이 일괄적으로 타결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개성공단에서의 모든 규범을 형성하는 과정은 거부, 수용, 대안 제시의 세 가지 형태로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조건부 수용이나 대안 제시 후 논의를 계속하는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남북 간 상호작용은 합의에 이르러 제도화로 인하여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되면서 새로운 남북 간 상호작용을 추동하게 되었다.

개성공단에서 이루어지는 남북의 상호작용은 갈등이 계속되는 과정이었고 그 합의 결과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지속하고 관리하면서 규범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남북은 기존의 초국적 협력의 사례들에서 등장했던 협력적 거버넌스의 성격을 가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설립하고 책임을 부여하였다. 관리위원회는 남북 간 협력적 과정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네트워크 체계를 형성하였고 내부적 네트워크 체계와 남북 간 면대면(face-to-face) 소통체계를 구축하여 남북 간 상호작용 과정에 대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성공단에서의 협력적 과정을 이행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조직되었고 협력 과정의 선순환을 통한 중간적인 성과(intermediate outcomes) 또는 작은 승리(small wins)를 획득해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은 합의에 이르면 더 이상의 상호작용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재생산과 확대로 이어지면서 그 결과가 남북 양측 어느 쪽에서도 적용이나 수용이 불가한 개성공단만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개성공단에서 초기에 만들어진 규범들이 실제 남북 간 생활하는 과정에서 업데이트가 되고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개성공단에 맞게 재조정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남북 간 상호작용 참여자들의 다층화는 개성공단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현상이었다. 이러한 다층화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참여자나 집단이 남북의 당국이나 대표 기관만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참여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성공단에서 발생하였던 서로 다른 제도와 문화 간 차이에서 발생한 갈등적 상호작용의 극복 경험이 누적되어 참여자들이 익숙해지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또한, 남북 간 기합의 된 부문에서는 남북 참여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문제가 잘 중재되어 해결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주요했다. 즉, 계속된 남북 상호작용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신뢰구간’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개성공단의거버넌스 체계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협력적 거버넌스 역할을 통해 참여자들은 ‘신뢰구간’을 형성하였고 실제 일상에 적용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구축/안정화되면서 남북 간 상호작용과 합의의 결과는 기존에 예상한 형태가 아닌, 남한과 북한 기성의 체제에서는 용납이 힘든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모해 나갈 수 있었다.

북한 측도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을 이해하고 남북 간 상호작용에 접근하는 방법과 태도가 변화하였고 업그레이드가 되었음이 확인되었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개성공단 내에서 관리위원회의 역할이 북한 당국과의 신뢰를 상당 수준 형성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남북 간의 일상생활에서도 잘 작동하면서 남북 간 기존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실수에 대해서도 서로 묵인하고 유예기간을 두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남북 체제대립 적 상황에서 남북의 참여자들이 개성공단이라는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형성한 협력과 통합을 위한 시스템의 형성과 이행과정을 밝혔다. 즉, 기존의 통일, 남북 관계, 개성공단 관련 연구의 외부적이고 거시적이며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조금 벗어나서, 내부적이고 미시적이며 협력적 관점에서 공간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최초로 규명하였기 때문에 추후 남북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행하게 될 프로젝트들, 더 나아가서 통일 및 통합의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시행착오를 줄이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의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할을 통해서 남북통합경험 시스템을 형성하고 적대관계에서도 신뢰구간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집단 간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하는 문제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개성공단에서의 협력적 거버넌스 연구 과정에서 나타난 남북의 매개적 공간, 전이공간(liminal space)을 통한 사회적 자본 형성, 남북통합경험 시스템의 작동으로 인하여 형성된 남북의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형태 등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3] 1) 한 명은 평양외국어대학교 또는 김일성종합대학교 등 북한 명문대 출신의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가 가능한 외국어 통역 및 외부인원 안내직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개성시 출신으로 전화 교환을 주 업무로 하면서 외부인원 안내와 민원실 관리를 하는 직원이었다.

[4] 2) 개성공업지구법 제5조

[5] 3) 2006년 7월, 남북이 분단 된 이후 최초로 남북 간에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관리위원회 소속의 북한 근로자 출퇴근버스(북한 측 운전기사)와 남한 측 차량(유관기관 직원)의 개인 차량 간 충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개성공단 내 참여자들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중요하게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①북한에서 북한 측 인원과 사고가 났는데 사고 관련 조사와 사정이 공정하고 상호 간에 문제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②만일에 북한 측의 과실이 있다면 과연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관리위원회의 주도로 남북이 합동으로 사고 사정을 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이 남북이 모두 납득 할 만한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사고 사정 결과 북한 측의 과실이 80%, 남한 측 과실이 20%로 확인되었고 북한 측이 남한 측에 보험금 미화 899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남북 간 처음 발생한 교통사고라서 남북 모두에게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었으나 관리위원회는 3개월에 걸쳐서 북한 측과 계속 협의한 끝에 합의에 이르게 되었고 북한 측 KNIC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 84만 2천 원을 수령하게 되면서 원만하게 마무리 되었다.

[6] 4)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측 근로자의 임금은 남북이 초기에 합의하였던 내용에 따라서 기본급 $50에서 시작하여 1년에 5% 이내로 인상할 수 있도록 합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토지이용료의 경우 개성공단 운영 10년까지는 무상이고 이후부터는 남북이 토지이용료의 요율을 합의하여 남한의 입주기업과 기관이 북한 측에 정해진 토지사용료를 납부하기로 합의되어있었다.

[7] 5) 개성공단 생산액은 2005년 1천5백만 달러였던 것이 2015년에 5억 6300만 달러로 상당히 증가하였다. 입주기업 수도 2005년 18개에서 2015년 123개로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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