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문헌연구
1) 관계 및 관계의 역동성
2) 지역 주민 간 관계의 역동성
3) 농촌 지역의 사회적 관계와 관계의 변화
4) 농촌 지역의 새로운 행위자인 귀농・귀촌인
3. 연구 방법
1) Charmaz의 구성주의 근거이론
2) 질적 코딩 및 관계 유형 도출 과정
4. 연구 결과
1) 우호적 관계의 메커니즘
2) 무관심한 관계의 메커니즘
3) 갈등 관계의 메커니즘
5. 결론
1. 서론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 간 관계는 개인적, 지역적 차원 모두에서 중요하다(조중현 등, 2008; 최예나・김이수, 2015).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 관계는 사회 구성원 간 관계 속에서 느끼는 긍정적 정서가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최예나・김이수, 2015). 나아가 우호적 관계, 갈등 관계 등 지역에서 형성된 다양한 유형의 관계는 개인 삶의 만족도를 넘어 그들이 속한 지역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조중현 등, 2008). 예를 들어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 관계는 지역 사업의 의도적 방해, 사법기관 고소 및 고발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 반면 지역 주민들의 우호적 관계와 갈등 해소는 지역의 사업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조규호, 2006; 조중현 등, 2008).
비슷한 맥락으로 지역 내 구성원들이 교류 및 연대를 맺으며 형성되는 지역 공동체는 많은 경우 지역 발전에 기여하며,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는 지역의 내발적 발전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박병춘, 2012). 이에 따라 지역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지역 주민들 간 긍정적 관계의 역할은 지역 발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전지훈 등, 2015). 이렇게 지역 주민들 간의 긍정적인 관계가 지역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는 상황 속에서, 본 연구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함과 동시에 관계 형성의 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파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즉, 본 연구는 지역 주민들의 관계 형성과 변화의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역 맥락에서 본 연구는 농촌 지역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구체적으로 농촌 지역의 전형적인 변화 특성을 보여주는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을 연구 지역으로 선택하였다. 연풍은 예로부터 풍년을 이끈다는 뜻으로 삼풍(연풍, 삼풍, 신풍)으로 알려졌으며, 1895년(고종 32년)에 연풍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폐군되어 괴산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북쪽으로 충주시 수안보면, 서쪽으로 괴산군 장연면, 남쪽으로 괴산군 칠성면, 동남으로는 경상북도 문경시와 인접해 있다(괴산군, 2024). 연풍면과 문경시의 지리적 인접함으로 인해 두 지역은 문화역사자원을 공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애용되었던 연풍면의 조령은 문경시의 문경새재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일대는 연풍새재보다 문경새재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연풍면은 농촌 생활권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2019년 기준으로 밭 면적(5.6㎢), 논 면적(3.2㎢), 과수원 면적(0.4㎢)이 전체 면적(93.2㎢)의 대략 10%를 차지한다(공공데이터포털, 2022). 연풍면의 공장용지(0.7㎢)가 전체 면적의 0.9% 정도 차지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농지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듯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으며, 농번기와 농한기로 구분되는 생활패턴을 보인다. 집성촌들도 현재까지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연풍면 갈금리는 밀양 박씨의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구성상 특징을 살펴보면, 2023년 11월 2,227명이었던 연풍면의 주민등록 인구수는 달마다 줄어들어 2024년 11월 기준 2,163명으로 1년 사이 약 60명 정도 감소했다(행정안전부, 2024). 2024년 11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수가 1,063명으로 전체 인구수의 49.14 %를 차지하는 초고령화 지역이기도 하다. 한편, 연풍면에 거주하는 귀농・귀촌인 수의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2012년 276명이었던 괴산군의 귀농・귀촌인이 2022년 1,354명으로 증가한 것을 보아 연풍면 또한 귀농・귀촌인 인구수 또한 증가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공공데이터포털, 2024).
연풍면과 같은 국내 농촌 지역의 주민 간 관계 형성 및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민 구성의 변화, 그리고 이와 함께 나타나는 공동체주의의 소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내 농촌 지역에서 주민 구성의 변화는 대체로 고령화와 귀농・귀촌인의 증가로 요약된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이유로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이동하고, 농촌 지역은 고령화되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장문현, 2022). 또한 1990년대 후반 이후 농촌 지역에는 귀농・귀촌인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했고,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2000년대 후반부터 귀농・귀촌인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농촌 생활에 대한 인식 변화, 농업 정책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하며 귀농・귀촌인이 증가했다(부혜진, 2015; 주문희, 2018). 귀농・귀촌인은 농촌 지역의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지역 내의 새로운 관계 형성 및 변화를 견인하는 주체가 된다. 문제는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사이에 항상 긍정적 관계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왔으며, 지역 착근 정도 및 생활방식 차이로 인한 이해관계 충돌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부정적 관계가 심화되기도 하며, 상호 접촉을 꺼리거나 협조가 필요한 지역의 사안을 외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로 마을에서 귀농・귀촌인에게 터무니없는 금액의 마을 발전기금을 요구(정일훈, 2023)하거나 농장 신축을 반대하기 위해 귀농・귀촌인이 무단으로 도로를 점유(심금섭, 2022)하는 등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심각한 경우 이들의 갈등이 비공식적으로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 법적 고소 및 고발로 이어진다는 소식도 언론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농촌 지역 내 갈등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함에 따라 기존의 농촌 지역 주민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 분석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도출하는 데 기여해 왔다.
주민 구성의 변화와 함께 농촌에서 전통적으로 나타났던 공동체성의 변화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과거부터 상부상조의 전통으로 대표되는 두레와 품앗이를 통해 호혜적인 행위와 신뢰를 쌓아 왔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해 왔다(정하나, 2022). 이러한 농촌의 공동체성은 유교적 관습과도 연결되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농촌의 전통적이자 보수적인 성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정용교, 2020). 학연・혈연・지연 등을 바탕으로 한 농촌 지역 원주민들 간 공동체성으로 인해 외지인에 대한 강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한다(김홍상・심재만, 2004). 한편 농촌 지역의 공동체성이 약해지는 모습 또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인구 감소를 비롯(손승호・이호상, 2021), 산업화 이후 두레・품앗이 같은 전통문화가 소멸됨과 동시에 초고령화의 진행, 젊은 층 감소 및 외국 국적 거주민의 증가, 농촌 주민의 인식 변화 및 사회 공동체성이 와해되면서 주민들 간 정서적, 문화적 유대가 감소하였다는 점이 지적된다(정용교, 2020; 황상아, 2020).
본 연구는 농촌 지역 주민 간 관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기존 연구에서 더 나아가 주민 간 관계 형성 및 변화의 역동성이 어떠한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농촌 지역 주민들의 여러 관계 유형을 포괄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농촌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주민 간 관계의 변화를 보다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장 연구를 진행하였다. 한 번 맺어진 관계는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내면적 변화, 환경적 변화 등 내・외적 요인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본 연구는 주민 간 관계 유형뿐 아니라 그 변화의 메커니즘도 함께 밝히고자 한다. 요컨대 본 연구는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변화시키는가?’ 라는 연구 질문을 바탕으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 주민들의 관계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2. 문헌연구
1) 관계 및 관계의 역동성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등이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김화성 등, 2014). 자연 혹은 사회에 의한 약정(convention)과 규범으로 관계가 설정되고 관계를 이루는 대상의 층위에 따라 관계의 층위에 차이가 발생하는 등 다양한 주체와 다양한 상황에 따라 관계는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해체되기도 한다(이향천, 2011). 지리학에서 관계는 인간-공간, 공간-공간, 공간 속에서 여러 주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치유 공간의 담론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된 관계성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공간의 치유적 해석과 동시에 그 공간에서 자신과 관계성, 타인과 관계성, 확장된 관계성과 같은 개념으로 논의된 바가 있다(Kearns and Collins, 2000).
관계는 개인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경우가 많으며,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러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 바 있다. 관계 개념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단일하게 정의되지 않고 연구 분야 및 세부 주제에 따라 그 대상이 조금씩 달리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심리학에서는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성이 개인의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도움을 주고, 결과적으로 개인 간 관계를 강화한다는, 심리적 작용으로 인해 촉진되는 관계의 역동성을 조명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권석만, 1996).
본 연구는 농촌 지역의 지역 주민 간 관계성을 살펴보기 위해 관계의 대상을 인간으로 한정하고 관계성을 특정 지역 안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의 속성으로 개념화하여 논의하였다. 지리학 연구에서 농촌 지역 주민 간 사회적 관계는 공간적으로 구성되며 행위자의 특성, 상호작용의 유형 등 관계를 둘러싼 세부 조건 및 맥락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다(전경숙, 2020). 또한 사회적 관계는 한 가지 유형으로 제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식의 관계가 조합되어 나타난다(Fiske, 1991).
2) 지역 주민 간 관계의 역동성
지역의 공간적 측면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에 따른 관계의 역동성은 관광개발, 주민역량강화사업, 도시재생사업, 귀농지원사업 등 지역 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 간의 관계, 지역기업과 지역 주민들 간의 관계, 지방정부와 주민들 간 관계 등 특정 지역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주체와의 관계 형성 및 변화에 초점을 둔다(한주성, 2022). 대표적으로 한주성(2023b)은 주민역량강화사업이 지역커뮤니티를 성장시키고, 지역커뮤니티는 지역 주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 경쟁과 같은 신뢰관계를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지역 주민 간 관계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유형의 관계 변화를 포착한 연구들은 공동체적 관계가 형성 및 소멸하는 메커니즘, 그리고 협력・경쟁・갈등으로 대표되는 우호적, 적대적 관계의 유형화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김동노, 2023; 김상민, 2016; 양예숙 등, 2017; 정하나, 2022; 조중현 등, 2008). 공동체적 관계에 대한 연구의 상당수는 사회・문화적 특성에 기인한 공동체성과 사회 변화로 인한 개인주의화가 공동체성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심을 가져 왔다(양예숙 등, 2017; 정하나, 2022). 이러한 연구에서 공동체는 집단에서 공유된 가치관, 규범, 정체성 및 목표를 가졌다는 점으로 인해 끈끈한 사회 관계망의 유지가 가능하고, 결속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집단으로 이해된다. 이와 대비되는 개인주의는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와 분리된 독립적인 자아정체성으로부터 시작되며 개인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Hofstede, 1997).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이후 개인주의가 조금씩 강해지면서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김동노, 2023). 탈산업화, 정보화, 신자유주의 확산 등 사회 구조적 변화로 인해 개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요구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주의를 촉발하고 있다(김동노, 2023).
지역 주민 간 관계 및 그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관계 분류 방식으로는 사회적 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따라 나타나는 협력(김상민, 2016)과 갈등 관계(조중현 등, 2008)가 있다. 이 중 갈등 관계는 목표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관계로 정의되는데, 이는 공동체의 목표 달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석호원, 2022). 한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한 갈등 관계를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인식하고,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갈등 관계는 적정 수준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유규상, 2014). 갈등은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참여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김명상, 2024), 그리고 갈등 관리 및 갈등에 대한 대응을 통해 사회의 진화가 촉진될 수 있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유규상, 2014).
3) 농촌 지역의 사회적 관계와 관계의 변화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혼재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농촌 지역은 어떠할까? 여전히 한국의 농촌 주민들에게는 공동체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다고 여겨진다(정하나, 2022; 한경혜, 2003). 지역 주민들에게 농촌 지역은 함께 어울리는 공동의 지역이라는 인식이 높고 마을에 일어나는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사촌이라는 공동체적 정서가 삶의 익숙한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한경혜, 2003). 더불어 농촌 지역이 고령화되면서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이웃과의 연대가 생존 및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신동은 등, 2020). 이 때문에 이들의 삶에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농촌 주민들이 공동체 중심의 삶을 유지하는 중요 요인이다.
한편 농촌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동체주의의 경우, 공동체의 오랜 관행을 통해 획득한 지식과 경험을 주민들 사이에서 공유함으로써 이들이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강화된다(박경철 등, 2016; 오은영・이정화, 2012). 특히 두레와 품앗이 같은 공동 농업 활동을 통한 상호 협력 및 유대감 형성이 공동체주의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성희자・이강형, 2013). 마을 단위에서 운영되는 주요 사회조직인 계 또한 공동체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동창계, 친목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설립된 계들은 마을마다 운영되며, 이를 통해 마을의 친목과 공동체적 생활이 형성되었다(안승택, 2014).
또한 마을의 단결 및 협동에 힘입은 공동체주의 함양의 중요한 요인으로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꼽을 수 있다(조영국・이승철, 2020).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공급된 마을회관은 점차 용도가 다양화・복합화되어 농촌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시설로 인식되고, 복합적인 커뮤니티 기능을 수행하여 공동체주의를 다지는 공간이 되었다(문인영・김미희, 2014).
한편 일각에서는 농촌 지역의 공동체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김주희, 2013). 지역이 서로 경쟁하거나 지역 간 대립이 발생하는 경우 공동체주의가 강화되기도 하며, 지역 주민들이 주로 통신 수단을 통해 여전히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협력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농촌 지역의 공동체주의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강성희, 2008). 하지만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농촌 지역의 공동체주의가 개인주의로 변화하고 있음이 인지되고 있다(김주희, 2013).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며 전통적 가치와 규범이 약화되고 농촌 사회의 공동화 현상으로 주민들 간 연대감이 줄어든 결과이다. 또한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로 인한 마을 내 사회조직의 운영 어려움, 농업의 기계화 및 외국인 노동자 증가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경제적 협업의 필요성 감소,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직접 소통 기회 감소 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김주희, 2013).
4) 농촌 지역의 새로운 행위자인 귀농・귀촌인
2000년대 초 귀농・귀촌 붐이 일어나면서 2001년 880가구였던 귀농・귀촌 가구가 20년 사이 2022년 331,180가구로 약 376배 증가했다(농림축산식품부, 2023). 또한, 2012년에 30~44세의 비교적 젊은 귀농・귀촌인이 다수였지만 2023년에는 더 높은 연령층이 이주하고 있으며, 회사원・자영업자들이 무연고지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한주성, 2024). 이들은 농촌 지역에서 새로운 행위자가 되어 원주민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변화시켜 나간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심화되는 갈등 관계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면서 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김철규 등, 2011). 이에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의 관계와 관련된 많은 연구들이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갈등의 원인, 서로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분석하였다. 또한 이들 간 갈등을 다루는 여러 언론 보도의 영향을 받은 결과 일반인들은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 간 관계 중 갈등 관계를 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의 갈등 원인은 주로 각 행위자가 유발하는 갈등 요인으로 나뉘어 연구되었다. 귀농‧귀촌인이 유발하는 갈등 요인으로는 귀농‧귀촌인의 개인 중심적 성향, 귀농‧귀촌인의 기존 농촌문화에 대한 무시, 농촌 사회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마을 행사나 마을 모임의 참여 문제, 개인주의와 공동체 삶과의 충돌 등이 꼽히며, 원주민이 유발하는 갈등 요인으로는 농촌 원주민의 전통적‧보수적 성향 및 귀농‧귀촌인과의 문화 차이, 이들의 배타적 성향 및 지나친 공동체의식, 귀농․귀촌인에 대한 선입견과 텃세, 재산권 침해 등이 지적된다(김철규 등, 2011; 한주성, 2023a). 또한 서로 다른 가치 및 정체성을 가진 결과, 집단에 따라 분리된 사회적 공간이 형성되는 현상, 즉 농촌 지역 귀농‧귀촌 마을이 원주민들의 마을과 분리되어 생기는 현상이 포착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공간적 분리를 갈등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주문희, 2018). 이들 행위자 간 갈등 요인들은 연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으로 인한 목표 차이, 생각의 차이,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호 협조와 정보의 제공, 동조 혹은 협동 시 나타나는 상호의존성, 제한된 자원의 경쟁에서 시작되는 희소자원의 획득 경쟁, 생각이나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부각되는 의사소통 문제가 꼽힌다(김태균・박상혁, 2019). 하지만 귀농・귀촌과 원주민의 갈등 관계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있어 귀농의 동기 및 농촌에 대한 주관적 인식에 따라 공동체적 규범을 내면화하는 정도가 다르고 도시에서 이주했다고 반드시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송인하, 2016).
한편 최원실 등(2020)은 마을 주민과의 화합이 귀농・귀촌인이 지속적인 농촌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갈등을 경험한 귀농・귀촌인은 다른 농촌으로 이주할 의향이 높음을 밝혔다. 마상진・김남훈(2019)은 청년 농업인의 성공적 정착에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 이들과 농촌 지역 사회 간의 관계가 청년 농업인의 삶의 질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김철규 등(2011)과 같은 기존 연구에서 신규 귀농・귀촌인의 정착에 있어 기존 지역사회 네트워크로의 편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과 결을 같이한다. 이들의 연구는 농촌 생활 만족도에 따른 귀농・귀촌인의 성공적 정착(유영민 등, 2017) 및 역 귀농・귀촌 의향과 귀농・귀촌인의 지속적 농촌 생활 유지 방법을 논하는 데 있어 귀농‧귀촌인의 원활한 사회적 관계의 형성 및 원주민과 귀농・귀촌인들 간 긍정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3. 연구 방법
농촌 지역의 주민들 간 관계 형성 및 변화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하여 1저자가 2023년 7월 1일부터 한 달간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거주하며 이 지역의 총 21개 행정리 중 20개의 행정리에서 인터뷰를 비롯한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자료 수집에 앞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승인을 받고 윤리규정을 준수하여 연구를 진행했다(인하대학교 IRB 승인번호: 230529-11A). 인터뷰 참여자는 연풍면에 거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연풍면 주민 간 관계에 대한 제 3자의 입장을 함께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연풍면 면사무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편, 다양한 주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들 간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인터뷰 참여자의 연령대, 성별, 고향, 교육 수준 등의 인구통계학적 배경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총 69명의 지역 주민과 3명의 연풍면 면사무소 직원을 대상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인터뷰 참여자 중 여성 인터뷰 참여자는 약 44.4%(32명)이며, 남성 인터뷰 참여자는 약 55.6%(40명)이다. 연풍면은 현재 초고령사회이며, 귀농・귀촌인의 대부분은 퇴직 후 노후를 보내기 위해 내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터뷰 참여자들의 약 70.9%(51명)가 60대 이상 노인들이었다. 남성 인터뷰 참여자 대부분은 연풍면이 고향이었다. 이들 중 연풍면에서 태어나서 현재까지 거주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타지에서 일하다 연풍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 인터뷰 참여자의 경우 연풍면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거주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하지만 남성들과 다르게 연풍면으로 시집을 오거나, 결혼 후 남편의 고향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다. 인터뷰 참여자 72명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은 표 1과 같다.
표 1.
인터뷰 참여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또한 총 72명의 인터뷰 참여자 중 본고에 언급된 대상자 21명의 특성은 표 2와 같다.
표 2.
본고에 언급된 인터뷰 참여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모든 인터뷰는 반구조화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이 다른 주민들과 친해지거나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파악하여 관계가 형성, 변화하는 메커니즘을 도출하기 위해 인터뷰는 크게 4가지 부분(연풍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 타인과의 관계, 관계 형성의 과정,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으로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 간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 타 주민과의 관계에 대한 각 인터뷰 참여자의 생각에 대해 질문했다. 이와 함께 각자가 생각하기에 주민들 간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또한 인터뷰 참여자의 답변에 대해 심층적인 이해를 위한 꼬리 질문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였다. 인터뷰 시간은 최대 1시간 30분, 최소 10분이었으며, 10분에 5,000원에 해당하는 사례 물품을 지급하였다.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는 NVivo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관리되었다. 인터뷰의 모든 내용은 참여자의 동의하에 녹음 및 전사되었으며, 박현선 등 역 (2013)의 구성주의 근거이론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질적 코딩 및 분석을 진행했다.
1) Charmaz의 구성주의 근거이론
본 연구에서 사용한 근거이론 방법론은 그 명칭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자료 그 자체에 ‘근거(grounded)’를 두어 이론을 도출하는 방법론이다. Glaser and Strauss(1965)에 의해 처음 사용된 근거이론은 책이 출판된 이후 저자들의 이견으로 Glaser 학파와 Strauss 학파로 나뉘었다. Glaser와 Strauss는 특히 연구자가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구자의 개입과 활동 부분에서 이견을 보였다. 이들의 기나긴 논쟁으로 인해 학자들은 근거이론에 대한 여러 정의와 절차를 제기했고 결국 Glaser 학파, Strauss 학파, Charmaz 학파, Clarke의 상황적 분석 방법론으로 나뉘게 되었다(이동성・김영천, 2012).
그 중 Charmaz 학파의 구성주의 근거이론은 Glaser와 Strauss가 제시한 근거이론의 전략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Charmaz는 연구 참여자로부터 수집된 데이터에 주관적인 경험, 일정한 사회 가치 및 담론과 같은 상황적 요소가 포함된다는 것을 인정했다(박현선 등, 2013). 또한 질적 코딩 과정에서 자료에 부여된 코드는 참여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숨겨진 과정을 검토하기 위해 인터뷰 자료에 밀착한다. 이는 참여자가 사용한 언어의 의미가 코드에 포함되는 과정으로, Charmaz는 질적 코딩 과정에서 참여자가 사용한 언어 의미도 코드에 포함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와 동시에 구성주의 근거이론은 Strauss와 Corbin의 상징적 상호주의 관점은 계승했지만, 이들이 제시한 근거이론의 절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Charmaz의 구성주의 근거이론은 유연한 절차와 방법을 중시하며, 연구에 사용된 근거를 단순히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을 넘어 해석적 분석을 중요시한다(박현선 등, 2013).
한편, Charmaz는 연구 과정에서 메모 작성과 더불어 연구자의 방법론적 자의식(methodological self-consciousness)을 강조했다(Charmaz, 2017). 그는 방법론적 자의식과 메모 작성을 통해 세계관, 언어, 의미 등을 연구자 스스로가 돌아보며,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방식을 깨닫고 연구자가 어떻게 연구에 참여하게 되는지 밝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Charmaz, 2017). 구성주의 근거이론은 연구자가 방법과 데이터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지지하고 인정하는 방법론이다.
2) 질적 코딩 및 관계 유형 도출 과정
질적 코딩은 그림 1과 같이 초기 코딩(initial coding), 초점 코딩(focused coding), 이론코딩(theoretical coding) 순으로 진행되었다. 초기 코딩은 자료를 정리 요약하면서 연구 참여자가 사용한 단어를 사용하여 코드를 부여하는 내생코드(in vivo code)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인터뷰 자료에 있는 동사와 명사를 활용하였다. 또한 줄 코딩을 중점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문단 혹은 내용 단위로 유의미한 코드가 있는지 고려하였다. 그 다음으로 초점 코딩 과정에서는 초기 코딩의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유의미하거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하위 코드를 조직화하였다. 예를 들어 초기 코딩에서 나타난 ‘귀농・귀촌인들은 농사에 대해 모름’과 ‘가로등에 대한 갈등 생김’은 ‘농촌 지역과 타 지역의 문화 차이’로, ‘다툼 및 고소・고발까지 감’과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의 패 갈림’, ‘지역 주민의 뭉침’은 ‘갈등 관계’로 조직화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들의 관계 형성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도록 코드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현상에 대한 분석적・서술적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도록 이론적 코딩을 진행하였다. 연구 수행 과정을 요약하면 그림 1과 같다.
4. 연구 결과
분석 결과 연풍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호적 관계, 무관심한 관계, 갈등 관계가 형성되었음이 나타났다. 각 유형의 관계가 형성, 변화하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1) 우호적 관계의 메커니즘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는 메커니즘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제는 지역 내에서 진행되는 ‘문화 활동 및 다양한 모임’과 이장, 부녀회장과 같은 농촌 지역의 고유한 ‘직책’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은 타인을 만나고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획득했다. 무관심했던 관계들, 특히 귀농・귀촌인들은 해당 요인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우호적 관계로 변화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1) 문화 활동 및 다양한 모임의 지원과 실내 공간
연풍면에는 “군이나 면에서 지원해 주는 단체 활동”(참여자 I), 즉 문화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연풍면의 주민센터에서는 총 7개의 활동(고고장구수업, 요가교실, 서예교실, 농악교실, 탁구교실, 한궁교실, 색소폰교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모임은 지역 주민들 간 교류의 장을 넓혔다. 공간적으로는 주로 주민센터와 마을회관이라는 실내 공간에서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이를 통해 다른 주민들과 교류하고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기회를 획득했다. 특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역 주민들은 하나 이상의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많은 귀농・귀촌인들은 타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 후에 연풍면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 농사를 크게 짓지 않으면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농촌 지역에서 운영되는 문화 활동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비슷한 사람들끼리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친밀감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문화 활동 이외에 군이나 면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봉사 단체, 동아리 등의 모임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모임 또한 지역 주민들이 모여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농촌인 연풍면의 경우 지역 주민들 다수가 농업에 종사한다. 이에 따라 문화 활동과 다양한 모임에 계절적 차이가 발견됐다. 농업의 경우 바쁜 농번기와 한가한 농한기로 나뉘게 되는데, 계절적으로 한가한 겨울, 즉 농한기에 주로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이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경로당 또는 노인회관으로도 지칭하는 마을회관은 새마을운동 이후 각 마을에 건축된 공간이다. 마을회관은 건축된 이후 다양한 활동과 모임이 운영되는 실내공간이자 지역 주민들의 이용도가 높은 공간이 되었고 이들은 마을회관을 관계 형성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예를 들어 참여자 H은 특정 마을의 마을회관 사례를 들며 “수요일에만 군에서 하는 자체 프로그램이 있다”는 언급을 하였다. 이와 동시에 “일철 아닐 때는 경로당에서 거의 만나는 편이지. 밥도 해 먹고 그러니까”라는 참여자 C의 언급과 “경로당 같은 데서 이렇게 밥도 같이 해. (중략) 좀 친하게 지낼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 참여자 D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마을회관은 지역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호혜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즉, 이 연구 지역에서 마을회관은 주민들이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농촌의 특수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실내공간의 유형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이 파악되었다. 참여자 M은 “노인회관”이 생기면서 개인 집에서 모여 놀던 과거와 다르게 이들 공적 공간에서만 사람들이 모인다고 진술했다. 즉, 관계를 형성 및 발전시키는 데 있어 과거에는 개인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 중요했으나, 1970년 이후 마을회관의 역할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한편 참여자 M은 마을회관은 마을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공적 공간이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워져 대화 없이 화투만 치는 삭막함을 경험했는데, 이는 이러한 교류가 진정한 관계 심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였다.
(2) 직책 수행을 통한 우호적 관계 형성과 인맥 확장
농촌 지역에는 각 마을의 이장, 부녀회장, 새마을회장 등 여러 직책이 있는데, 이는 농촌 지역에만 나타나는 농촌의 고유한 문화이자 특색이다. 특히 이장은 한 마을을 관리하고 지자체와 주민들의 연결점이 되어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직책을 맡은 지역 주민은 이를 수행하면서 여러 지역 주민들을 만나게 되고 인맥을 넓혀가고 있었다.
참여자 P는 10년 전 연고가 없는 연풍면으로 귀촌했다. 처음 연풍면으로 이주할 당시 지역 주민들을 아무도 몰랐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 맡게 된 새마을 지도자라는 직책을 통해 인맥이 넓어짐을 경험했다. 이후 4년 동안 이장직을 맡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연풍면까지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 관계 형성의 공간적 확장을 경험했다. 이와 비슷하게 60대인 참여자 G는 마을 내에서 젊은 연령층에 속하며 연풍면 협의체, 주민자치 등 다양한 활동과 직책을 수행하면서 활동 범위가 넓어졌음을 경험했다. 또한 직책 수행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자주 상대”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뿐만 아니라 연풍면 지역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요약하면 그림 2와 같다.
2) 무관심한 관계의 메커니즘
연구 결과 지역 주민의 구성 변화, 그리고 공동체주의의 약화 및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지역 주민 간 무관심한 관계가 심화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즉, 무관심한 관계를 형성하는 기제로 ‘공동체주의 약화’, ‘전자기기의 보급’, ‘귀농・귀촌인 증가’, ‘원주민 감소’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우호적 관계 형성 메커니즘에서 언급했듯, 일부 귀농・귀촌인들의 활동으로 무관심한 관계가 완화되고 우호적 관계로 변하는 모습 또한 발견되었다.
(1) 귀농・귀촌인의 등장과 “박힌 돌이 빠져나가는” 주민 구성 변화
사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귀농・귀촌인이 증가하고 원주민들의 수가 감소하면서 주민 구성 변화가 진행 중이었다. 연풍면의 원주민들은 나이가 많아 사망하고 이들의 자녀를 비롯한 가족은 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한편, 귀농・귀촌인이 이주해 오면서 빠져나간 원주민 수를 일부 보완하고 있었다. 연풍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참여자 F는 이를 “박힌 돌이 빠져가는 상태”라고 표현하였다.
실제로 현장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에 연풍면에서 연풍면발전협의회라는 조직체를 구성하기 위해 인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귀농・귀촌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지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자 F에 따르면 이에 대해 일부 원주민들 사이에서 “조직체 만드는 것을 귀농・귀촌인들에게 넘겨주려고 그러느냐”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귀농・귀촌인들을 적임자로 세움으로써 빠른 일 처리가 가능하고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 모두와 소통이 원활해지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즉, 일부 원주민들은 지역 내 조직체의 주요 활동 인원 구성 변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연풍면사무소 측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무관심한 관계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한편 일부 귀농・귀촌인들은 한적하고 조용한 생활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인해 원주민과의 관계 형성 및 지역 활동에 적극적 의지가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을 일에 관여도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살기 위해서 왔으니까”, “땅 사서 이제 휴양하려고” 이주하는 귀농・귀촌인의 진술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긴밀한 교류를 피하기 위해 마을에서 지리적으로 떨어져 생활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역을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는 경향도 있음을 발견했다. 귀농・귀촌인과의 인터뷰 결과 이들은 도시의 혼잡한 생활을 피해 이주하는 과정에서 조용한 농촌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품거나 한적한 농촌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2) 공동체주의 약화
공동체주의는 급격한 농촌 사회 변화와 농업의 기계화로 인해 주민 간 연대감이 약화되면서 희미해지고 있음이 제기되어 왔다(김주희, 2013). 이에 “옛날같이 했으면 좋겠는데”라고 진술한 참여자 J와 같이 농촌 지역에 존재했던 옛 생활 문화와 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쉬운 주민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품앗이같이 서로의 일을 도와주는 문화가 사라진 중요한 이유는 연풍면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새로 유입된 귀농・귀촌인들은 원주민들처럼 농사를 대규모로 짓지 않고 보통 작은 텃밭 정도만 관리했기 때문에 서로 농사일을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서로의 농사를 도와줄 기회가 상실된 상황에서 점점 품앗이 같은 문화는 사라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만남이 적어”(참여자 L)지고 “서로 교류가 없어”(참여자 B)지면서 지역 주민들 간 공동체의식이 약화되고 있었다.
(3) 전자기기 보급으로 인한 교류 기회 감소
농촌 지역에서 ‘전자기기 보급’이라는 기술적 변화는 본 연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차차 나타난 현상이지만, 많은 연구 참여자들이 농촌 지역의 무관심한 관계가 심화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참여자들에게 과거 TV의 보급률이 도시보다 낮은 경향을 보였던 농촌지역의 특성과 2000년대 이후 발달된 인터넷 및 모바일 서비스로 인한 전자기기 사용 증가는 현재 교류의 기회가 훨씬 줄어들었음을 체감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연구 참여자의 대부분이 고령임을 고려할 때 전자기기 보급으로 인한 주민 간 관계의 변화가 본 연구의 참여자들에게 특히 큰 변화로 감지되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참여자들이 이에 대한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자 E는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연풍면의 모든 세대에서 TV와 전화기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에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여럿이서 모여 놀았지만, 현재는 전화로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었고 각자 TV를 보기 때문에 잘 모이지 않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연구자의 관찰 결과 연구 지역 내 모든 마을회관의 지역 주민들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맞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요컨대, 지역 주민들 간의 관계 형성에 무관심한 귀농・귀촌인들의 등장, 원주민 감소로 인한 주민 구성 변화, 두레와 품앗이 등의 문화 소멸로 인한 공동체주의 약화, 그리고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인한 모임의 감소 등으로 지역 주민들이 대면으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감소하였고 그 결과 대체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현상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요약하면 그림 3과 같다.
3) 갈등 관계의 메커니즘
갈등 관계가 심화되는 기제로는 ‘세대 차이’, ‘금전적 이해관계 충돌’,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간 문화 및 가치관 차이’, ‘융화에 대한 기대 및 상호 인식 차이’, ‘교류의 단절’을 꼽을 수 있다. 해당 요인으로 발생한 갈등 관계는 갈등 관계의 주체가 갈등 해결 의지를 가지거나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해소되는 모습도 보였다.
(1) 세대 차이 및 금전적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갈등 관계
연구 결과 갈등 관계의 심화에 있어 세대 차이와 금전적 이해관계가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 관계를 언급한 연구 참여자들이 다수 있었다. 특징적인 것은 여기에서 세대 차이는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 노인 간의 차이보다는 다른 나이대의 노인 간 세대 차이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60대인 참여자 N은 계속 연풍면에서 거주하면서 큰 갈등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윗세대와 공감대가 다르고 대화가 잘 안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특히 그는 윗세대가 “나도 죽 먹고 살았으니까 니들도 죽 먹고 살아야 된다”라는 식의 행동 즉, 시대가 변함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계속 주장하는 모습에서 세대 차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마을에서는 금전적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갈등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특히 집성촌으로 형성된 한 마을에서 돈 문제로 인해 심각한 갈등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 마을에 10년 가까이 거주한 참여자 O는 “다 집성촌이잖아. 여기 시골이. 그러니까 자기 집안이라 일을 제대로 못해도 감싸는 거야.”라고 진술했다. 참여자 O의 구체적인 진술에 따르면 전 이장이 마을의 돈으로 새로운 마을회관을 짓기 위해서 땅을 샀는데, 그 땅이 그 이장의 집안사람 땅이었으며 심지어는 기존 시세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을 일부 귀농・귀촌인들이 발견했다고 한다. 이들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원주민들은 오히려 귀농・귀촌인들이 잘못되었다고 반응하면서 갈등 관계가 심화되었다. 즉, 여전히 집성촌이 남아있는 농촌 지역의 특성상 한 마을은 대부분 같은 성씨,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집성촌 구성원들은 가족 문제라고 생각하여 조용히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제 3자인 귀농・귀촌인들이 이를 공식적인 문제로 제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촉발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세대 차이와 금전적 갈등으로 인한 갈등 관계는 다양한 관계 주체들 사이에서 형성 및 해소되었다. 즉, 귀농・ 귀촌인과 원주민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갈등 관계의 원인이 세대 차이일 수도 있으며, 귀농・귀촌인들 사이에서도 금전적 이해관계에 의한 갈등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2) 문화 및 가치관 차이로 유발되는 갈등
대다수 인터뷰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갈등 상황을 이야기하기보다 주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 간의 갈등 관계를 일반화하여 진술했다. 또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생활반경, 생활방식, 처한 상황이 비슷하여 이들끼리 지역 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그룹별로 활동이 분리된 결과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 간 심리적 거리감이 생겼고, 이러한 메커니즘을 많은 인터뷰 참여자들은 “패가 갈린다”라고 표현했다. 즉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귀농・귀촌인이 농촌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주민들도 타 지역의 문화에 대한 경험이 없어 이들 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상이 “패 갈림”으로 이어져 갈등 관계가 고착되었다. 본 연구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갈등 관계는 다른 선행 연구에서 보고되는 바(유영민 등, 2017)와 궤를 같이 한다.
이와 더불어 원주민들은 귀농・귀촌인에게 완전한 농촌 사회 융화를 원하기도 한다. 이는 참여자 K의 “시골 정서에 맞게 살아야 해”라는 주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마을회관을 관리하면서 겪은 갈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귀농・귀촌인을 마을 노인회 총무로 세웠던 경험이 있는데, 이 귀농・귀촌인이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책을 읽거나 클래식 음악을 듣는 행동을 시골 정서와 맞지 않으며 거리감을 만드는 행동이라고 인식했다. 동시에 “도시 사람들”(귀농・귀촌인)이 원주민들을 무시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귀농・귀촌인들은 원주민들이 원하는 융화를 “텃세”라고 인식하게 된다. 한 마을의 이장직을 맡은 참여자 S는 “텃세가 어느 마을이든 뿌리내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텃세는 귀농・귀촌인들을 무시하고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농촌 지역에서의 문화에 어울려 함께 하자는 제스처라고 진술했다. 또한 “새로운 지역에 들어간 사람이 지역에 융합”해야 함을 강조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된 참여자 K의 “시골 정서에 맞게 살아야 해” 라는 진술과 비슷한 맥락이다. 참여자 Q, R 또한 시골 정서를 강조하며 귀농・귀촌인들에게 자신들이 기대하는 방식의 삶을 연풍면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들은 원주민들의 기대와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귀농・귀촌인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갈등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다수의 참여자는 자신들이 갈등을 겪어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는 “계속 볼 거고 괜히 사이가 틀어질 일”(참여자 T,U)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게 어려운 분위기”(참여자 A)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전반적으로 갈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참여자 A가 언급한, “싫은 소리를 하는 게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이유는 “시골에 사는 게 바운더리가 좁으니까,” 즉 작은 공동체 안에서 빠른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요약하면 그림 4와 같다.
5. 결론
관계는 개인을 넘어 지역에 영향을 미치며, 지역 주민들 간의 협력 관계, 호혜 등이 지역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어 왔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이들 관계를 변화시키는지 파악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관계 관리 및 지역 발전에 중요하다. 특히 공동체적 삶이 중심이었던 농촌 지역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동체주의가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강해졌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 더불어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사이의 관계가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면서 다양한 관계 형성 과정에 대한 관심보다 이들 간의 갈등 관계가 주로 주목받았다. 이에 원주민과 귀농・ 귀촌인 간 갈등이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성원들 간에 형성, 변화되는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바탕으로 본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농촌 지역 주민들 간 관계 형성 및 변화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기 위해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을 연구 지역으로 택하여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구성주의 근거이론 방법론을 이용한 분석 결과 우호적 관계, 무관심한 관계, 갈등 관계의 세 범주를 도출했다. 또한 각각의 범주 속에는 문화 활동 및 다양한 모임, 실내공간, 전자기기의 보급, 귀농・귀촌인 증가 등의 하위 코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하위 코드는 관계 형성 및 변화를 발생시키는 기제를 나타낸다.
첫째, 우호적 관계는 지역 주민들이 주민센터와 마을회관이라는 실내 공간에서 운영되는 문화 활동 및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여 교류를 반복하며 형성, 증진되었다. 실내 공간인 마을회관과 여러 형태의 모임은 기존 연구에서도 역시 농촌 지역 주민들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특히 마을회관 같은 경우 농촌 지역에만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처음 지어진 후 점차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어 왔음이 나타났다. 또한 마을 이장, 부녀회장과 같은 농촌의 고유한 직책을 수행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게 되고 인맥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특히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편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귀농・귀촌인들은 지역 내에서 문화 활동 및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직책을 맡고자 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현장 연구를 통해 연풍면에서는 문화발굴 워크숍과 같은 지원사업을 추진하여 주민참여형의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고자 함을 발견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 활동 및 모임에 다양성을 만들어내어 지역 내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본 연구에서 밝힌 우호적 관계의 메커니즘은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의 갈등 관계에 초점을 둔 많은 기존 연구의 논의에 더 나아가 농촌 지역에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사이에 다양한 유형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러한 관계가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형성된 갈등을 해결하고 귀농・귀촌인이 농촌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귀농・귀촌인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둘째, ‘무관심한 관계’는 공동체주의의 약화, 전자기기의 보급과 같은 기술적 변화, 그리고 귀농・귀촌인의 등장과 원주민 감소로 인한 주민 구성 변화가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기존 연구에서도 나타나듯이 본 연구에서도 사회가 변화하고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전통이 소멸되며 공동체주의가 약화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증가하는 귀농・귀촌인들의 대다수는 시골에서 한적하고 조용한 생활을 기대하며, 이를 위해서 공동체적 생활보다 개인주의적 생활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지역 내에서 개인주의가 강해졌음을 인식하며, 지역 내 만연한 개인주의는 무관심한 관계 형성을 강화한다. 이와 더불어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지역 주민들 간 교류가 감소하는 상황은 무관심한 관계 형성의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었다.
셋째, 갈등 관계의 경우 세대 차이에 의한 갈등 관계, 금전적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갈등 관계, 관계 주체 측면에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의 갈등 관계로 나뉜다. 한편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의 갈등 관계를 지역 주민들은 종종 “패 갈림”이라고 표현하였다.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이러한 갈등 관계는 고착되기도 하였다.
본 연구는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이라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농촌 지역 주민들 간 복잡한 관계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구성주의적 접근법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나아가 농촌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지역 주민들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구성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려 노력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과를 고려해 보았을 때, 우호적 관계는 농촌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역 내 활동 및 이러한 활동에서의 역할 부여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도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필요성이 보인다. 또한 본 연구 결과는 농촌 지역 내 구성원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정책 수립 시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변화하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정책적 시사점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연구 참여자들이 다양한 갈등 관계에 대한 언급을 꺼려하여 갈등 관계 주체가 여전히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에 치우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 또한, 이들 간의 관계 속에서 믿음, 신뢰 등 세부적인 속성을 발견하지 못한 점, 그리고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유의미한 코드를 조직화 및 추상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엽적인 사례를 본고에서 자세히 소개하지는 못했다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한 지역 내에서 거주하는 주민 위주로 관계 구조를 밝혔기 때문에, 타 지역, 특히 인근 지역 주민과도 형성될 수 있는 복잡한 관계에 대한 연구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지 못하였다. 향후 연구에서는 더욱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주민들 간 복잡한 관계 형성 및 변화의 메커니즘을 밝혀 본 연구의 내용 및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