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이 다른 학문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일까? 경제학, 사회학, 도시공학, 지구과학, 생태학 등 인접 학문 분야의 연구를 접하다 보면, 연구 주제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지리학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같은 연구 주제라고 하더라도 지리학만의 연구방법론을 사용했다면 지리학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방법론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리학만의 연구방법론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물론 역자들 역시 이 질문에 대해 고민했음이 분명하고, 대표 역자는 그에 대해 “지리학만의 고유한 연구방법 만을 골라 엮는다는 것이 기능적으로 어렵다”(5)라고 표현하였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연구방법론이 지리학만의 연구방법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설문조사, 참여관찰법 등은 다른 학문 분야로부터 수입(?)하여 발전시킨 방법론이다. 반대로 지도화, 공간분석 등 지리학에서 발전시켜 다른 학문 분야로 수출(?)하는 방법론도 있다. 이 책은 지리학 연구방법론을 표방하는 만큼 지리학이 ‘원조’를 주장할 수 있을 만한 영역에 대해서 많은 장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지도와 지도화는 여전히 지리학을 다른 학문과 구분되게 하는 지리학 고유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학술지의 논문이나 학위 논문에 나오는 지도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지리학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신호이다.”(704)라고 강조한다. 필자도 논문을 쓸 때 대부분 공간분석 지도를 넣게 되고, 최소한 연구지역을 설명하기 위한 지도를 넣게 된다. 그리고 간단하게나마 지도화를 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다른 학문의 연구자와 공동연구 시에 자연스럽게 지도를 그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지리학만의 고유한 연구방법은 없지만, 많은 수의 지리학자들이 공유하는 연구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38장에 걸쳐 ‘지리학적 세계를 어떻게 재현(representation)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각 장의 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한다. 대표 역자가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다시피 “융합과 종합은 지리학적 접근의 본질”(4)이며, 지리학이 얼마나 다양한 연구 주제와 방법론에 기반한 종합학문인지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지리학의 학문적 특성을 생각한다면 800페이지가 넘는 책 두께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물론 필자도 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장을 정독하지 않고 목차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연구 주제에 맞는 연구방법론을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장을 통독할 기회가 있다면 지리학의 넓은 연구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책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로 개인적인 공부 차원에서는 독자가 특별히 관심이 가는 장을 번역서와 원서를 나란히 놓고 정독해 볼 것을 권한다. 짧은 논문을 읽는 수준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방법론 부문의 문헌 연구를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Progress in Human Geography, Progress in Physical Geography 논문 목록이 엄선되어있어, 이 책으로부터 시작된 방법론에 관한 공부는 관련 논문의 참고문헌까지 무한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둘째로 학부 고학년이나 대학원 수준의 연구방법론 수업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필자 역시 박사과정 중에 이 책의 원서를 교재로 삼는 연구방법론 수업을 수강했고, 학생 개개인이 연구주제와 방법론을 선택하고 학기 전반에 걸쳐 연구 발전 과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필자는 당시 정량적 연구방법론 중에서도 통계 분석을 택했지만, 정성적 연구방법론 중 참여관찰법을 택한 동료 학생 덕분에 꽤 심도 있게 그 과정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한 학기 수업에 불과한 짧은 간접경험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보았던 동료의 참여관찰 연구 과정을 떠올리면 지리학 연구는 물론이고 인류학, 사회학 등 인접 학문의 논문을 볼 때 그 연구과정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대학원 과정 이후 연구주제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그에 필요한 연구방법론만 접하고 불가피하게 연구방법론에 대한 시각조차 좁아지게 됨을 느끼면서, 다양한 지리학 연구방법론을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많은 지리학자들이 이러한 방법론의 다양성에 대해 공감할 것이며, 이 책의 저자 역시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광범위한 지리학 연구 범위야말로 연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의지를 북돋게 하는 또 다른 원천이라 할 수 있다. 핵심은 이러한 다양성에 압도되지 말고 이를 잘 활용하는 데 있다.”(22)
셋째로 정규 수업이 아니더라도 일회성 또는 다회성의 워크숍으로 다룰만한 주제가 많다. 예를 들어 5장 ‘효과적인 연구 소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구 수행 과정 이외에도 학회에서 연구를 발표하고 논문으로 게재하는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한풀 꺾이면서 다시금 오프라인에서 정상화되기를 기대하는 대한지리학회, 전미지리학대회(AAG) 등을 앞두고 동료 연구자들이 모여서 5장을 읽으며 체계적으로 학회 발표를 준비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는 워크숍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다소 지엽적일 수 있지만 연구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될만한 깨알 같은 조언들이 이 책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지형 분석은 가능한 한 큰 모니터 또는 여러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533)와 같이 연구실 옆자리 선배가 해줄 법한 생생한 조언을 들려준다. “연구자가 사례연구를 시작할 때 간략하게라도 본인의 느낌이나 감상을 기록하는 것도 좋다. 전체적으로 그 사례연구에 대한 본인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688)와 같은 조언을 읽고 있으면, 미리 알았더라면 연구뿐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큰 자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수나 세션 사회자가 발표를 끊더라도 슬라이드 중간에서 갑자기 멈추지 말아야 한다. 확실하게 마무리 주장을 하면서 결론 슬라이드에 도달하는 것이 좋다.”(98)와 같이 그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알아두면 좋은 ‘꿀팁’이 책 곳곳에 보물찾기처럼 숨어 있다.
이 책의 원서는 2003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후 3판에 걸쳐서 개정되면서 기존의 장이 대폭 수정되고 새로운 장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17장 ‘가상 공동체 연구’, 38장 ‘비디오, 오디오, 첨단 기술의 활용’과 같이 최신의 연구 동향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분야는 지리학 연구방법론에 있어 최전선이기도 하면서, 한국의 지리학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게임, 메타버스 공간의 아바타 등에 대한 온라인 분석(online analysis)에 관한 사례는 한국에서 무궁무진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희상(Lee, 2005)의 PC방 문화에 대한 논의, 윤경원(Yoon, 2003)의 싸이월드 연구가 이 책에 인용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적 맥락에 맞는 지리학 연구방법론이 더욱 발전해 보기를 기대해본다. 음악에서도 한국 대중음악이 월드뮤직의 한 부분에서 벗어나 K-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였듯이, 한국 지리학이 지역지리학으로서 아시아지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연구주제와 방법론에 있어서도 K-지리학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산업의 시스템적 발전이 K-pop의 밑거름이 되었듯이, K-지리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연구방법론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발판으로 삼아 한국의 지리학 연구에 특화된 다양한 방법론들이 더욱 많이 개발되고 활용되기를 희망해본다.
이 책은 번역서로서 12명의 지리학자들이 참여하여 충실하게 번역한 작업 그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다양한 학술용어 및 방법론 용어를 번역하기 위해 각 장의 번역자들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공간분석의 스케일 차원에 있어 중요하게 거론되는 Modifiable Area Unit Problem (MAUP)를 ‘임의적 공간 단위의 문제’로 번역하였다(390). 당장 몇 개의 국내 문헌들을 검색해보아도 ‘공간 단위 수정 가능성 문제’, ‘가변적 공간단위 문제’, ‘공간 단위 임의성의 문제’ 등 다양한 번역어가 혼재되어 있다. 이 용어를 포함하여 지리학 전반의 수많은 용어의 번역어를 택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 책이 지리학 사전은 아닌 만큼 번역어의 표준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이러한 과정에서 선택된 번역어를 따라 쓰는 것이 한국 지리학 발전의 또 다른 작은 주춧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필자도 앞으로는 이 책의 번역어를 따라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특히 지리학에서 먼저 사용하다가 다른 학문에서 차용하게 되는 많은 용어에 있어 지리학자들이 번역어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번역의 수준은 훌륭하나, 영미권 지리학자들이 쓴 원서를 충실하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남는 아쉬움 또한 있다. 각 장의 끝에 있는 ‘심화읽기자료’가 영미권 지리학 연구에 기반하다 보니, 관련한 국내 문헌이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의 지리학 역사가 깊은 만큼, 각 장과 관련이 있는 국내 단행본이나 논문을 두세 개씩 심화읽기자료에 포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각 장의 번역을 맡은 지리학자들의 연구를 포함해서 말이다. 아울러 관련 데이터 소스 역시 이 책의 주 독자가 될 한국의 지리학 연구 입문자들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미국 지역사회 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나 영국 통계청(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데이터를 쓰는 독자도 있겠지만, 한국의 통계청, 공공데이터포털, 브이월드 등 지리학 연구에 많이 활용되는 관련 데이터 소스를 해당하는 장에서 소개했다면 독자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업은 번역서가 아닌 진짜 한국판 지리학 연구방법론 출판을 위해 아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번역서로 시작한 지리학자들의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는 K-지리학의 기반이 되는 연구방법론 서적 저술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