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필요성
2) 연구동향과 기존 연구의 한계
3) 연구목적
2. 연구방법
1) 유적분포자료
2) 공간통계분석
3. 연구결과
1) 유적출현의 시간적 변화
2) 유적의 공간적인 밀집도와 분포
3) 도시순위규모법칙을 통한 정주체계 분석
4. 고찰: 한국의 토지이용 특성의 시대구분과 변화
1) 개척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2) 정착기(청동기시대, 초기철기/원삼국시대)
3) 확산성장기(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4) 한계성장기(조선시대)
5) 토건성장기(일제강점기 및 현대)
5. 결론
1.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필요성
인간에 의한 토지이용 및 토지피복 변화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지구환경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Hurtt et al., 2011; Verburg et al., 2015; Winkler et al., 2021). 토지이용 및 피복변화(Land Use and Cover Change, LUCC)는 지표면에서 나타나는 물과 에너지, 탄소의 순환을 교란하고 생태계의 안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 Earth Summit)의 의제 21에서 LUCC를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연구 및 정책의 대상으로 지목하였다(Jörby, 2000). 이후 인간에 의한 토지이용 변화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분석하려는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Verburg and Veldkamp, 2005). 또한 LUCC는 2000년대 이후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달성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인식된다(Stehfest et al., 2019). LUCC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장기적인 변화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벗어나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토지 및 환경정책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Verburg et al., 2015).1)
Goudie(2018)는 인간에 의한 지형 및 지표 변화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면서, 인간의 영향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그 규모 또한 컸다고 주장한다. 과학혁명 이후 '대가속기(great acceleration)'를 거치며 인간에 의한 지표면 변화가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구석기 시대에도 인간은 지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그 영향의 정도는 시공간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이해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 변화와 그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 LUCC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자료가 필요하다고 보고하였다(Hurtt et al., 2011).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자료와 고지도 등을 활용한 중장기 LUCC 연구들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예, Mäyrä et al., 2023).
한국은 산지가 넓고 계절적으로 기온과 강우량의 편차가 커, 토지이용 측면에서 ‘한계 지역(marginal area)’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채 높은 인구 밀도를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화재와 유적을 남겼다. 가옥, 사찰과 같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거주의 흔적이 확인되는 생활유적, 통치・전쟁 관련 시설물로 이루어진 유적, 무덤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 및 제례 흔적이 확인되는 유적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재와 유적은 그것이 생성된 시대의 생활양식, 사회 구조, 문화 특성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지리학적 시각, 특히 LUCC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유적은 선사와 역사 시대를 거치며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토지이용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특히 공간 분석 기법을 적절히 활용하면 고고역사 시대별 토지이용 패턴과 변화 양상을 명확하고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 결과로 고대사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사회경제적 발전과 국토 공간구조의 변화를 이해하고 현재의 국토・환경 관리 전략, 그리고 미래의 환경변화를 예측하는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2) 연구동향과 기존 연구의 한계
한국에서는 1996년부터 문화재청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여 문화재 및 새롭게 발굴되는 유적들의 분포를 지도로 제작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다(김유진・강동석, 2022). 최근에는 이러한 정보와 지도가 국가유산공간정보(Heritage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2) 그러나 이러한 유적 공간 정보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구축 방법이나 기술적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그것을 활용한 유적의 공간적 분포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는 제한되어 있다.
기존 연구들은 특정 지역과 시대에 나타나는 유적 분포를 지도화하고, 이들의 지리적・공간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집중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김남신 등(2003)은 거창 가조분지의 선사 유적을 지도화하고 입지 환경을 분석하였으며, 김창환・배선학(2006)은 춘천 지역 문화유적의 분포를 지도화하고, 용수 확보 가능성, 도로 접근성, 고도 등과 같은 입지 환경 특성을 분석하였다. 장문현・이정록(2009)은 영산강 유역권을 대상으로 Web GIS 기반의 역사문화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문화유적의 입지 특성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유적 자료와 환경 요인 간 상관분석을 통해 문화재 출현 가능지를 예측하는 방향으로도 확장되었다(이진영 등, 2005;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09). 유적 분포 지역이나 지형을 대상으로 한 유적 출현 가능성의 사전 예측(Predictive Modelling)을 통해 발굴 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유적자료의 효과적이 수집・관리가 가능해졌다(Mehrer and Wescott, 2006; Danese et al., 2014).
지역 단위 또는 유역 단위에서 유적 분포 해석과 예측 모델은 비교적 활발하게 연구되어 온 반면, 전국 단위에서 유적의 분포특성을 통해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밝히려는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진영 등(2011)은 문화재청의 유적 공간정보를 활용하여, 한국에서 발굴된 유적의 분포특성을 전국단위에서 요약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유적들의 공간적인 분포를 밀도분포로 표시한 뒤, 그 분포가 역사적 도시를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으며 하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시대와 유물의 유형에 따라 공간적 분포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반면 김유진・강동석(2022)은 유적에 대한 공간분석기법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연구로,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생활유적의 공간적 밀집 패턴을 Moran’s I를 사용하여 살펴보았다. 이 연구들은 전국을 대상으로 한 GIS와 공간통계를 활용했다는 점에 그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유적분포의 공간적인 특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거나 해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처럼 유적의 공간 분포 특성을 규명하려는 연구가 제한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고고학과 역사학의 주된 방법론이 현장 및 문헌조사를 통해 특정 유적이 가지는 역사적, 문명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에 치중해 온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현재 구축된 유적 공간정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한계 역시 이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김유진・강동석, 2022; 이진영 등, 2011; 장문현, 2007).
유적공간정보의 기술적 한계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유적은 토지 개발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어서 자료의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 즉, 전 국토를 동일한 기준과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전국 단위의 일반화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둘째, 조사 과정에서 조사자나 지자체의 선호와 주관이 반영되어 기록의 객관성이 떨어진다(김유진・강동석, 2022). 셋째, 유물 간의 특성과 역사적 의미가 매우 달라 표준화가 쉽지 않다. 예컨대, 노동력과 자원이 많이 투입된 산성과 개인의 무덤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고 차별화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넷째, 유물의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기 어려우며, 동일 시기의 유적으로 간주하더라도 출현 가능 기간은 수백 년에 달할 수 있어 시계열 분석에 제약이 있다. 다섯째, 많은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의 유적이 중첩되어 나타나므로 특정 지역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적 자료를 활용하여 구석기 이후 한국의 토지이용 양상과 정주체계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중요한 학문적 의미를 지닌다. 이 연구는 한국이 지난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토지이용 패턴이 변화 혹은 ‘진화’해 왔는지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인 시간 혹은 지역에서 특성을 찾기보다는, 공간통계적인 기법을 활용하여 국가 단위에서의 거시적인 질서와 변화과정을 찾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공간 자료의 정확성과 정보량은 시공간 규모(스케일)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Atkinson and Tate, 2000). 이와 더불어 자료가 가진 일부 오류나 대표성의 한계가 있더라도 표본 수가 충분할 경우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통해 전체적인 공간 구조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가정하였다. 또한, 시범적 연구를 통해 도출된 1차 결과는 후속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3) 연구목적
이 연구는 유적의 분포 밀도를 전국 단위에서 구석기부터 현대까지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남한에 해당되는 지역의 토지 이용 특성(LUCC)과 정주 체계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 현재 유적 분포 자료가 지닌 유적 수의 시계열적 증감 특성을 분석하고, 2) 유적의 출현 혹은 출토 시기를 기준으로 10개 시기로 구분한 뒤, 각 시기별 유적의 밀도와 표준편차를 지도화하였으며, 3) 유적 분포의 공간적 밀집도 변화를 추적하였으며, 그리고 4) 선사 및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정주 체계의 변화를 도시순위규모 법칙을 통해 분석하였다. 이 연구와 동시에 유적지의 분포와 지형 등 환경 요인 간의 상관관계 분석도 수행하였다. 다만 해당 내용은 본 논문에 모두 담기 어려워, 유적 분포와 지형 변수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은 별도의 논문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박수진, 2025).
2. 연구방법
1) 유적분포자료
사용한 문화재와 유적분포자료는 한국문화재청에서 제공하는 ‘문화유산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였다(표 1 참조). 자료를 수령한 시점은 2018년이며, 그 이후에도 자료의 내용은 지속적으로 추가 혹은 수정되고 있다.3) 이 자료에는 모두 195,504 지점의 문화재 위치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동물과 식물, 지질/광물, 동산문화재, 음악, 의식 등과 같이 인간의 토지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항목들을 제외하면 그 수가 185,409지점이었다.
표 1.
이 연구에 사용된 시대구분과 유적의 개수
이 유적분포자료의 경우, 동일한 지점에 대해 시대가 서로 다른 복수의 문화유산(문화층)이 기록된 경우가 많다. 이는 한 지점이 처음 개척된 후, 그곳이 시기를 달리하여 동일한 혹은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남한 지역에서의 토지이용의 공간적 분포와 특성을 통시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한 지점에서 시대가 다른 문화유산이 중복되어 있는 경우에는 출현시기가 가장 빠른 문화유산과 그 추정시대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각 시대별로 나타나는 토지이용특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상당부분 손실될 수는 있지만, 자료의 복잡성을 고려하여 인간이 새로운 땅을 점유하고 이용한다는 측면에 집중하여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87,170지점이 분석의 대상이지만, 시대가 정확하게 동정되지 않은 13,000여 지점을 제외하면 총 74,159지점을 이용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유적의 출현 시기는 모두 10개 시기로 재분류하였으며, 각 시대의 하한과 시기별 유적수는 표 1에 제시하였다. 시대별 하한, 특히 선사시대의 하한은 남한지역이 기준이며, 연구자별로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한국고고학회, 2010). 또한 여기서 사용된 자료가 남한의 문화유적 자료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고구려을 포함한 삼국시대(고구려)와 고려시대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원자료는 폴리곤(polygon)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폴리곤을 중심점(centroid) 기준의 점자료로 변환하여 활용하였다. 점으로 변환한 이유는 유적지의 크기를 특정하기 어렵고, 점분포분석(point pattern analysis)을 통한 공간 밀집도와 전국적인 유적 분포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내삽(interpolation) 기법이 이 연구의 핵심적인 연구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적의 상대적인 중요성이나 공간적인 점유면적 등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각 유적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유적의 특성에 기반한 보다 정성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며, 이러한 연구는 추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2) 공간통계분석
시기별로 출현유적의 시공간적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점분포분석(point pattern analysis)과 커널밀도함수(Kernel density function) 분석을 실시하였다. 유적밀도의 공간적인 분포를 해석하기 위해 한국의 주요 산줄기 지도와 평탄지의 분포를 대비하여 지도화하였다(그림 1). 또한 유적의 분포를 통한 도시와 촌락 등의 공간정주체계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도시순위규모법칙(Zipf's law)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연구에서 점분포분석은 SAS의 Spatial Analysis 모듈을 사용하여 분석하였으며, 기타 다른 공간분석은 ArcView 3.2를 사용하였다. 각 유적 지점별로 추출된 밀도함수와 다른 변수와 상관관계와 회귀분석은 SPSS를 활용하였다.
(1) 점분포분석
유적이 세대별로 공간상에서 무작위적으로 분포하는지, 아니면 특정 지점에 밀집되어 나타나는지는 유적의 시공간적 분포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분석이다. 공간 현상의 밀집도를 분석하는 기법은 다양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Lhat 분석 기법을 활용하였다(Bailey and Gatrell, 1995).
Lhat은 일정한 거리 이내에서 점 사상이 나타나는 특성을 활용하여, 공간 사상의 밀집도를 분석하는 공간 통계 기법이다. 여기서는 완전무작위를 가정한 상태에서 999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된 Lhat(h) 값을 모의평균값으로 제시하였다.4) 실제 계산된 Lhat(h) 값이 모의평균값 보다 클 경우는 공간적으로 밀집된 분포를, 모의평균 보다 작을 경우는 분산된 분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그림 2의 가). 공간 밀집도는 분석에 사용하는 공간 범위에 따라 특성이 달라지므로, 본 연구에서는 0~300km의 거리 범위(h, 분리거리)를 순차적으로 확장하면서 유적의 분포 특성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Lhat(h) 값에서 모의평균값을 뺀 값을 통해, 유적의 상대적 공간 밀집도와 공간적 범위를 분석하였다(그림 2의 나 참조).
(2) 유적밀도 분포 및 해석
유적 분포의 공간적 특성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커널 밀도 함수(kernel density function)를 활용하였다(그림 1의 가, 그림 5와 6). 커널밀도함수는 커널함수(kernel function)5)를 이용하여 단위면적당 나타나는 유적의 빈도, 즉 유적밀도를 추정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단순히 면적 대비 유적 수를 계산하는 방식보다 더 유연하며, 유적 수가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전제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밀도 추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반지름 10, 25, 50km의 커널을 사용하여 각각 유적 밀도를 추정한 뒤, 유적의 공간적인 밀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25km 커널을 선택하여 지도화하였다.6)
시대별로 유적의 밀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비교를 위해서는 각 시대별 밀도의 표준편차를 계산하여 지도화하였다. 그리고 유적밀도의 공간적 해석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한국의 산줄기 지도와 평탄지의 분포를 중첩하여 그 분포특성을 해석하였다(그림 1). ‘산줄기 지도’는 유역의 분수계 중에서 일정한 고도를 가지고 산지로 분류될 수 있는 지점들을 이은 선을 의미한다(박수진・손일, 2005). 분수계가 고도나 지표의 형태에 관계 없이 물의 흐름을 분리하는 선인 반면, 산줄기 지도는 산지로 인식될 수 있는 특정 고도 이상의 분수계를 이은 선으로 규정하여 구분할 수 있다.7) 산줄기 지도는 산과 같은 자연적인 경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기존의 하천도에 비해서 유적분포의 공간적인 특성을 해석하기에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평탄지 분포는 DEM(Digital Elevation Model)을 사용하여 한반도에 존재하는 평탄지를 추출하고 그 형성유형을 구분한 박수진(2009)의 연구 결과를 사용하였다. 한반도에는 산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많은 유적들이 평탄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따라서 평탄지는 산줄기 지도와 더불어 토지이용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형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3) 도시순위규모법칙
도시 혹은 촌락은 공간상에서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기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간의 정주체계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잘 알려진 법칙이 도시순위규모법칙(city rank size rule, Zipf's Law)이다. 많은 국가에서 도시들의 인구나 경제규모가 도시의 순위에 따라 역비례하는 분포를 보인다는 경험법칙이다(Zipf, 1949; Ioannides and Overman, 2003).8)
이 이론은 도시가 무작위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할 경우, 자연스럽게 도시 크기 분포가 파레토 분포 혹은 순위규모법칙에 근접하게 된다고 본다. 그 결과 순위와 인구규모(혹은 다른 변수)간에는 멱함수(power’s law)가 나타나며, 그 기울기가 1일 경우 도시규모법칙이 작용하는 반면, 1이 넘을 경우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하는 종주도시형태의 정주체계가 만들어진다.
한국 도시들에서 도시순위규모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권용우(1998), 이현욱(2017), 문윤상(2018) 등에 의해 수행된 바 있다.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우리나라의 도시 인구분포는 근대와 산업화 초기에 대도시 집중도가 커지면서 인구분포가 선형에서 벗어난 형태를 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 중소도시가 성장하면서 1990년대부터 선형성을 회복하였고, 이는 도시순위규모법칙 계수 추정치(q)가 1에 가까워지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로의 인구 집중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종주도시의 특성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유적 밀도와 조선 말기 군현의 경계를 활용하여 도시순위규모법칙 분석을 수행하였다. 이 분석에서 유적밀도는 그 지역에 대한 인구수 혹은 경제적인 활동 정도를 간접적으로 지시해주는 대리변수(proxy)로 사용되었다. 기존 문헌에 제시된 추정인구와 시대별 평균 유적밀도간에는 높은 상관관계(R2= 0.92)가 나타나지만, 이들을 지역별 인구추정에 직접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박수진, 2025). 현재의 시군구 행정 경계를 사용하지 않고 조선시대 군현 경계를 활용한 이유는, 일제강점기 이후 도로망과 토목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통적인 유역 중심의 행정 경계가 해체되면서 역사시대의 공간구조가 상당부분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9)
3. 연구결과
1) 유적출현의 시간적 변화
각 시대별 유적 수를 해당 시대의 지속 시간으로 나눈 ‘연간 유적 출현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지수 함수적 경향을 보인다(그림 3 가, 표 2). 이 지수 함수는 R2= 0.83으로 비교적 높은 설명력을 나타낸다. 석기시대의 연간 유적 출현 빈도는 연평균 약 2개소에 불과했지만, 청동기시대에는 7.1개소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후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는 4.5개소로 감소했으나, 삼국시대에는 약 31개소로 다시 큰 폭의 증가를 보인다. 반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각각 8.5개소와 13.6개소로 삼국시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에는 약 57개소, 일제강점기에는 약 343개소의 유적이 출현하였다.
표 2.
이 연구에 사용된 유적의 시기별 출현빈도와 유적밀도, 그리고 추정인구
| 시대구분 |
시대 하한 연도 | 유적밀도 |
연간 출현빈도 |
누적 출현빈도 |
추정 인구(만명)* | ||
| 평균 | 표준편차 | CV(%) | |||||
| 석기시대 | 1500 BCE | 0.010 | 0.012 | 120.8 | 2.1 | 2.1 | < |
| 청동기시대 | 300 BCE | 0.084 | 0.075 | 90.0 | 7.1 | 8.2 | |
| 초기철기/원삼국시대 | 300 CE | 0.108 | 0.116 | 107.3 | 4.5 | 20.9 | 450 |
| 삼국시대 | 676 CE | 0.215 | 0.201 | 93.4 | 31.0 | 64.3 | 675 |
| 통일신라 | 935 CE | 0.239 | 0.265 | 110.9 | 8.5 | 101.8 | 780 |
| 고려시대 | 1392 CE | 0.292 | 0.251 | 86.1 | 13.6 | 71.3 | 1,000 |
| 조선시대 | 1910 CE | 0.567 | 0.380 | 67.1 | 57.2 | 119.0 | 1,400 |
| 일제강점기 | 1945 CE | 0.645 | 0.416 | 64.5 | 343.1 | 2754.5 | 2,500 |
| 현대 | 2020 CE | 0.668 | 0.423 | 63.4 | 33.9 | 988.8 | 5,000 |
주: * 추정인구는 정치영(2011)에 제시된 역사시대의 인구추정치의 각 시대별 평균값을 계산한 것이다.
청동기시대 유적 수의 급격한 증가는, 한국 청동기를 대표하는 유적인 고인돌(지석묘)의 대량 출현 및 고인돌의 보존 양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4절 참조). 삼국시대의 유적 출현수 증가 또한 당시 인구의 급성장과 기술력 향상, 그리고 국가 형성 및 경쟁의 본격화와 같은 역사적 요인과 관련이 깊으며, 또 한편으로는 고분의 보존 양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삼국시대의 유적의 출현 횟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은 당시 기술력의 증가와 더불어 인구가 급성장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국가 간의 경쟁하에서 인간의 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유적의 출현 개수도 급감하지만, 유적의 출현 양상이 공간적으로 편향된 특징을 보인다(그림 5 바). 이러한 변화는 고려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며, 전반적인 유적 출현 수가 지수 함수 경향선 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한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삼국시대까지 대부분의 토지가 이미 점유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땅의 개척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삽법을 통해 계산한 유적 밀도의 시대별 변화를 살펴보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원삼국시대를 거치며 점진적인 증가를 보이다가, 삼국시대에 접어들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3 나). 회귀식의 설명력(R2)은 0.97로, 유적 밀도의 시간대별 증가 현상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반대로, 유적 밀도의 공간적 변동 계수(Coefficient of Variation, CV), 즉 지역 간 차이는 시대가 흐를수록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그림 3 다). 초기에는 소수의 유적이 특정 지역에 밀집된 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적의 밀도 자체가 증가하면서 지역 간 편차는 점차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통일신라시대까지는 CV값이 높게 유지되다가, 고려시대를 기점으로 지역 간 차이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고려시대 이후 새로운 토지 개척이 급격히 감소하고, 기존 토지에 대한 이용 밀도가 증가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 유적의 공간적인 밀집도와 분포
토지 이용의 밀집도와 그 변화는 점분포분석에서 계산된 Lhat 모의값의 추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그림 4). 유적 분포지와 그 밀도는 그림 5과 6에 제시하였다. 그림 5는 각 시대별 유적의 분포 밀도를 표시하고 있어, 토지이용이라는 측면에서 해당 지역이 처음 개척되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면, 유적의 시대별 누적 밀도를 표현한 그림 6은 이전에 사용되었던 곳이 후대에도 계속 이용되면서, 현재의 토지 이용 및 정주체계가 고착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시대별 누적밀도와 전체유적 밀도의 상관관계를 보면(표 3),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는 대체로 0.4 정도의 Pearson’s r 에 머물지만,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원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증가(0.53~0.68)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r값이 최고값인 0.94에 다다른다. 조선시대도 유사한 0.93을 보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현대는 오히려 다시 0.5~0.6 수준으로 떨어져서. 이 시기는 한국의 전통적인 공간구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토지이용이 전개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표 3.
각 시대별 유적밀도의 상관관계
| 구분 | 구석기 | 신석기 | 청동기 |
초기철기/ 원삼국 | 삼국 |
통일 신라 | 고려 | 조선 | 근대 | 현대 | 전체 |
| 구석기시대 | 1.00 | 0.32 | 0.27 | 0.39 | 0.12** | 0.18* | 0.46 | 0.44 | 0.17* | 0.25 | 0.42 |
| 신석기시대 | 1.00 | 0.28 | 0.37 | 0.10** | 0.27 | 0.42 | 0.44 | 0.08** | 0.25 | 0.40 | |
| 청동기시대 | 1.00 | 0.68 | 0.75 | 0.61 | 0.54 | 0.44 | 0.40 | 0.25 | 0.68 | ||
| 초기철기/원삼국시대 | 1.00 | 0.57 | 0.45 | 0.47 | 0.32 | 0.11** | 0.24 | 0.53 | |||
| 삼국시대 | 1.00 | 0.78 | 0.63 | 0.52 | 0.50 | 0.30 | 0.77 | ||||
| 통일신라 | 1.00 | 0.76 | 0.72 | 0.44 | 0.42 | 0.86 | |||||
| 고려시대 | 1.00 | 0.94 | 0.50 | 0.45 | 0.94 | ||||||
| 조선시대 | 1.00 | 0.58 | 0.50 | 0.93 | |||||||
| 근대 | 1.00 | 0.35 | 0.63 | ||||||||
| 현대 | 1.00 | 0.52 | |||||||||
| 전체 | 1.00 |
구석기시대는 유적지의 밀집도가 대체로 120km의 분리거리에서 최대값을 보이는 반면, 신석기시대는 약 80km의 분리거리에서 최대값을 보인다(그림 4 가). 그리고 두 시기의 밀집도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즉, 이 시기의 토지이용은 몇 개의 중심지에 밀집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석기시대가 구석기시대보다 짧은 분리거리를 보이는 점은 이 시기에 일부 지역에서 초보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등 식량확보 전략의 다변화로 안정적인 식량확보가 가능해지면서 정착생활로의 이행이 이루어진 점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청동기와 초기철기/원삼국시대는 70-80km의 분리거리에서 최대가 되지만, 이전 시기에 비해 유적의 밀집도는 훨씬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그림 4 나). 특히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는 짧은 분리거리에서 밀집도가 이전에 비해 높아져 다른 시기에 비해 중심지 혹은 유적밀집지 중심의 토지이용 특성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유적들은 전라북도의 동진강과 만경강 하류 지역, 남동해안 지역, 그리고 낙동강 중하류에 유적지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그림 5 라). 반면, 청동기시대는 다른 시기와 달리 밀집도가 정점이 되는 분리거리가 훨씬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는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의 축조와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4장 참조). 청동기시대 고인돌은 그 출현빈도도 높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공간적인 분포특성을 보인다(그림 5 마).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대체로 유사한 유적의 집중현상을 보인다(그림 4 마와 사). 이전 시기에 비해 유적의 밀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진 반면, 분리거리도 150km 내외를 보여서 높은 유적밀도가 공간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반하는 것이 통일신라시대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기존에 토지 이용이 일어나지 않았던 지역에서 유적이 출현한 경우가 경주와 그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으며, 과거 그 어느 시기보다도 공간적으로 불균등한 분포를 보였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고대국가로서 비슷한 성장 양상을 보이고, 사람의 활동 무대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서 유적의 분포가 전국적으로 균등하게 분포하는 결과를 보였지만, 삼국통일 후에는 많은 자원이 과거 신라시대의 영토, 특히 당시의 ‘왕경’이었던 경주에 집중적으로 투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교의 융성으로 경주 및 그 인근 지역에서는 그 전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경관에도 신앙 관련 유적들이 조성되었다.10)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비해 현격하게 높은 밀도를 보이지만, 유적밀집도와 공간적인 분포특성은 유사하다(r = 0.94). 반면, 일제강점기와 현대는 조선시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그림 5 사, 자, 차). 일제 강점기에는 밀집도면에서 다시 100km 내외의 분리거리에서 집중현상이 나타나며, 이는 대하천 유역 하류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광범위하게 진행된 하천 하류 저습지의 간척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림 6 자). 현대의 경우에는 아직 유적으로 지정된 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분리거리에 따른 밀집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
3) 도시순위규모법칙을 통한 정주체계 분석
이 연구에서는 정주체계의 특성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도시순위규모법칙을 적용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 228개 군현을 분석단위로 설정하였고, 시기별 유적밀도의 군현별 순위를 분석하였다. 이 중 유적밀도 상위 150개 군현의 순위규모를 표시한 것이 그림 7이다. 각 시대별 순위규모의 특징을 보면 명확하게 세 가지 특성을 볼 수 있다.
첫째, 구석기시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유적의 밀도는 급속한 증가를 보이며, 전체적으로 직선의 멱함수로 변해 가는 양상이 확인된다. 멱함수의 기울기(계수 추정치) 역시 증가하며, 모델의 설명력도 높아진다. 즉, 구석기 시대에는 전체적으로 ‘ㄱ’자 형태로 직선형에서 많이 벗어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면 직선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구석기 시대의 회귀식은 y = -0.4544x – 0.4943 (R2 = 0.90)이며, 조선시대는 y = -1.4082x + 1.4148 (R2 = 0.98)로 계수 추정치가 1.4로 증가하였다. 회귀식의 기울기(q) 값은 일반적으로 각 도시(군현)가 가지는 종주도와 관련이 있다. 즉, 1 이상이 되면 군현들 간의 유적 밀도 차이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전체적으로 유적 밀도로 추적한 공간 구조의 종주화는 고려시대를 경계로 강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석기에서 삼국시대까지는 계수 추정치가 1 이하였지만, 고려시대는 y = -1.0472x + 0.809 (R2 = 0.95)의 회귀식을 보여 계수 추정치가 1에 가까워 가장 도시순위규모법칙에 잘 부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부터는 1 이상의 값을 가져 유적 밀도의 공간적 집중도가 강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시대별로는 전체적으로 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및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 및 현대의 다섯 개 시기로 그 특성이 명확하게 달라진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러한 특징은 유적의 분포(그림 6), 유적 밀도의 상관관계(표 3), 그리고 점분포분석(그림 4)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4. 고찰: 한국의 토지이용 특성의 시대구분과 변화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유적의 분포를 살펴보면, 한강 하류와 경기만 인근 지역, 전라남북도의 해안 지역, 그리고 포항과 부산을 잇는 남동 해안 지역 등 크게 세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그림 1의 가). 남동 해안 지역의 경우에는 대구와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영천과 대구 지역으로 밀집 지역이 연결되어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유적 밀도의 공간적 특성은 각 시기별로 독특한 분포 특성을 보이지만(그림 5), 이들이 누적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그림 6). 하지만 현재 상태와 유사한 분포 정형은 이미 고려시대(r=0.94)와 조선시대(r=0.93)에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진 후, 일제강점기와 현대에는 이전의 전통적인 토지 이용 특성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표 3 참조).
지금까지 기술한 우리나라 유적의 밀도 분포와 시공간적 차이를 검토해 보면, 선사시대 이래 한국의 토지 이용 특성은 대체로 5단계를 거쳐 진화・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구석기・신석기시대에는 유적 밀도가 낮고, 몇몇 중심지들에 밀집되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당시 정착이나 농경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경 조건이 우수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지와 활동 영역이 제한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청동기시대 및 초기철기/원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정착과 농경이 본격화되고, 남서 해안 지역과 남동 해안~영남 내륙을 잇는 지역을 중심으로 유적 밀집 지역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는 인구와 유적 밀도가 급속히 증가하는 시기이다. 과거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유적 밀집 지역은 이때부터 한강 하류 지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고려의 건국은 이러한 추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한 경기만 지역의 유적 밀도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현재 우리나라의 공간 구조가 완성된 시기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인구 증가와 농업 생산력의 향상으로 인해, 지역 내에서는 이전에 개척되지 않았던 저습지나 산지로 토지 이용이 확산된 시기이기도 하다. 반면,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토지 이용은 조선시대 이전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적인 토목 기술의 유입으로 인해, 이전에는 활용되지 못했던 대하천 주변 저습지와 해안 간석지들이 활발히 간척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유적 분포의 변화와 공간 구조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토지 이용 변화 과정은 개척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 정착기(청동기시대, 초기철기/원삼국시대) → 확산성장기(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 한계성장기(조선시대) → 토건성장기(일제강점기, 현대)로 구분하고자 한다. 연속적으로 변하는 토지 이용의 시공간적 특징을 몇 개의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 무리한 시도일 수는 있으나, 한국의 토지 이용과 정주 체계의 역사를 개념화하고 그 발전 방향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러한 거시적인 관점을 통해 확보한 시사점은 과거의 토지이용에 대해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기존의 연구들, 그리고 고고학과 역사학 분야의 성과를 보완하는 데 기여를 할 수 있다.
1) 개척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이 시대 유적 분포의 특징은 유적이 몇 개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영남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밀도를 보이지만, 이외의 지역에서는 몇 개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러한 유적 밀집지들이 전라남도 남서 해안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륙, 특히 산줄기들이 하천과 만나는 수구(水口)의 상류부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 분포지는 크게 동굴 유적과 야외 유적으로 나뉜다(장용준, 2023). 동굴 유적의 경우에는 강원도와 충청도의 석회암 지역에 위치한 석회 동굴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반면, 야외 유적들은 주로 강이나 해안의 상대적으로 높은 평탄지인 단구 지형 또는 사면 하부의 붕적 퇴적물 속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남신 등, 2003). 이러한 지역은 하천 하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범람 위험이 적고, 산지와 하천이 만나는 경계부에 위치함으로써 방어와 수렵・채집에 유리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신석기시대의 경우 유적 분포가 구석기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구석기시대 유적이 내륙 지역에 우세하게 나타난 데 반해, 신석기시대 유적의 중심지는 내륙과 더불어 해안 지역을 따라서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상남도의 경우 사천, 부산, 울진을 중심으로 유적 밀집 지역이 나타나며, 경기도는 경기만 지역, 충청도는 금강 하구 지역, 강원도는 해안가 지역에서 유적 중심지가 나타난다. 특히 제주도에서 높은 밀도의 신석기 유적이 나타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내륙 지역의 경우에는 주로 임진강과 한강, 낙동강의 합수부에서 밀집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11) 이러한 신석기시대 유적 분포의 특징은 수렵과 더불어 어로 및 해양 자원의 채집, 초보적 농경에 의존했던 당시의 식량확보 전략과 관련 있어 보인다(소상영, 2023). 시대별 유적과 지형 변수를 비교・평가한 결과에서는 신석기시대에는 고도와 토지이용적합성의 평균값이 가장 낮은 반면, 지역 간 차이는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박수진, 2025). 이는 생산 활동과 문화의 다양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토지 이용 패턴의 다양성으로 이어졌음을 의미하며, 내륙 지역과 해안 지역 모두에서 중심지가 확인된 고고학적 연구의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석기・신석기시대 유적 분포의 차이가 경제 활동의 차이 외에도, 주민 집단의 서로 다른 계통을 반영할 가능성은 없는가? 과거에는 ‘2단계 교체설’이 정설로 받아지면서 한반도의 구석기시대 주민이 빙하기가 끝난 뒤, 신석기 문화를 가진 고아시아인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보기도 했다(이태진, 2012).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000~7,000 무렵에 해당되는 유적의 발견이 드물어 구석기・신석기시대 전환기에 대한 정보의 부족으로 주민의 계통을 논하기는 어렵지만(장용준, 2023), 그림 5의 가와 나에 제시된 유적 분포의 차이는 당시 거주했던 주민의 성격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2) 정착기(청동기시대,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청동기시대(기원전 1,500-300년)에 접어들면서 유적의 분포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연간 유적의 출현 빈도가 현격하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유적 출현 빈도 측면에서도 앞선 구석기・신석기시대에 연평균 2.1개소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청동기시대의 7.1개소는 급격한 증가 추세이다. 또한 이어지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4.5개소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문화유산인 고인돌(지석묘)의 존재 때문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약 1,000년간 축조되었으며, 한반도에 약 4만 기 이상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이영문, 2002). 이러한 고인돌은 다른 유적과 달리 지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인지하고 위치를 기록하기 용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호남 및 남해안 지역에서 포착되는 높은 밀도의 유적 분포는 이 지역에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두드러진 유적 분포 특성은 해안과 인접한 대하천 하류에서 상류로 유적의 분포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영산강 하류 지역을 벗어나 전남 서해 및 남해안을 중심으로 유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금강 하류 지역에서는 익산시를 중심으로 분포 밀도가 높게 나타난다. 또한, 남동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높은 밀도의 유적이 분포하며, 이 유적 밀집 지역은 내륙으로 연결되어 영천, 경산, 대구로 이어진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 시기로, 하천 주변에서는 밭농사와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 본격적인 농경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이형원, 2023).
초기철기/원삼국시대는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기원전 300년경부터 삼국과 가야가 고대국가로 정립된 기원후 300년경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대의 유적은 경상남도 고령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중상류 지역, 김제・익산을 중심으로 한 만경강 하구 및 서해안 평야 지역, 그리고 김해・창원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하구 지역 등에서 높은 밀도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철기 문화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경로로 철기 문화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청규, 2018; 한국고고학회, 2010). 첫 번째 경로는 중국제 철기가 육로를 통해 대동강 유역으로 유입된 뒤, 한강 유역을 거쳐 낙동강 유역으로 전파된 경우이다. 두 번째 경로는 해로를 이용한 것으로,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동남부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 두 계열의 문화는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유적 분포에서도 잘 드러난다.
남동해안의 유적 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원삼국시대의 유적 중심지들은 이후 가야・백제・신라로 발전하게 되는 국가의 토대가 형성된 곳으로 보인다. 철제 도구 사용에 따른 생산력 증가와 하천 중하류 지역의 높은 토지 생산성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3) 확산성장기(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이전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 비해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유적의 수는 폭발적인 증가를 보인다(그림 3). 먼저 김해와 창원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남동 해안의 유적 밀집지는 내륙으로 확대되어 낙동강 중상류 유적 밀집지와 연결되는 현상이 명확해졌다. 또한 만경강과 동진강 주변의 유적 밀집지는 영산강 하구 지역을 중심으로 남서 해안 지역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이러한 유적의 공간적 분포 특성을 유적 밀도의 상관관계(표 3), 점분포분석 결과(그림 4), 도시순위규모 법칙(그림 7)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삼국시대는 이전의 초기철기/원삼국시대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양상으로 토지이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하지만, 통일신라시기에 접어들면서 경주를 중심으로 한 단일 중심지가 형성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삼국시대에는 각 국가의 수도를 중심으로 비교적 균등하게 개발이 이루어졌다면, 통일신라시대는 한국 전체가 일극 성장 구조를 이루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 고려의 개국은 토지 이용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개성과 가까운 한강 중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유적 밀도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서해안을 따라 금강・만경강・동진강 유역으로 유적 밀집도가 확산되었다.
시대별로 새로운 유적의 출현 밀도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누적 유적의 경우 이 시기를 거치며 한반도 전체의 토지 이용 패턴과 정주 공간의 특징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농업 기술의 향상으로 인구 수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경작지의 개척, 수전의 본격화에 따른 수리 시설의 축조, 그리고 해안 간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안병우, 1995; 염정섭 2002; 이준선, 2011).
유적지의 지형 특성을 분석하면, 이 시기에는 유적 출현지의 고도, 경사도, 토지이용적합성12) 등 모든 지형 변수가 직선적인 증가 또는 감소 경향을 보인다(박수진, 2025). 즉, 신라에서 고려시대로 갈수록 유적지의 고도와 경사도가 높은 산악지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반대로 토지이용적합성은 급격하게 낮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이전 시기까지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선별해 거주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이 시기부터는 지형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저수지 축조나 간척 등의 방식으로 새로운 토지를 확보해 나가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고려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하천 준설, 수로 축조, 방파제 건설 관련 기록(염정섭, 2012, 114)은 이러한 현상을 입증해준다.
4) 한계성장기(조선시대)
조선시대 유적 밀도의 분포는 한성이 위치한 한강 하류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밀도를 보이지만, 이전 시기와는 달리 전국적으로 고른 유적 밀도를 나타낸다. 강원도 산지 지역을 제외하면, 지역 간의 차이도 이전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든 분포 특성을 보인다(그림 5와 6). 그 결과, 도시순위규모 법칙에서 볼 수 있듯이 명확한 직선 형태를 보이며, 고려시대에 비해 기울기(종주도)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그림 7).
조선시대의 인구는 15세기에 급격하게 증가하다가, 17세기 전반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감소한 이후, 17세기 후반에는 0.44~0.51%의 매우 높은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보이며 급증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18세기 전반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완만한 인구증가 또는 정체기가 왔는데, 그 이유는 인구압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고동환 2011). 이러한 인구정체의 원인을 당시 조선사회의 국토환경이 극도로 피폐했다는 것에서 찾으려는 시각도 있다(예를 들어, 이영훈, 2016). 농업기술의 증가에 따른 인구의 급격한 성장과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농경지의 제약, 기후조건의 악화로 인한 토지생산력의 저하, 그리고 산림황폐화와 토양퇴화로 인한 빈번한 자연재해 등이 겹치면서 소위 ‘생태적 병목현상’이 발생했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한계 상황은 이 시기의 유적 분포와 지형간의 관계 분석 결과에도 반영되어 있다(박수진, 2025). 즉, 전통적으로 선호되던 곡간지와 산록지, 소규모 하천 주변의 평탄지 중심의 분포 패턴에서 벗어나, 산지와 한계 지역까지 유적이 출현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는 조선시대에 인구 증가와 농업 생산력의 향상에 따라 점차 노동력보다 토지가 더욱 희소한 자원이 되고,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경작할 만한 토지는 거의 다 경작되었음’을 시사하는 경제지표인 전결수(田結數)의 정체현상(이호철, 1996)과 잘 맞아떨어지는 현상이다. 또한 토지 수요 압력이 극심해지면서, 최적의 농경지와 거주지였던 하천 주변 저고도・저경사지, 곡간지와 산록완사면 등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안정적인 지형 이외에도, 상대적으로 토지 이용에 부적합한 고지나 경사도가 높은 한계지역까지 개척되기 시작하였다고 보는 시각(이영훈, 2016)과 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이와 동시에 하천주변의 저습지(범람원)와 과거 밭으로 이용되었던 산록완사면의 논으로의 전환(번답), 그리고 간석지를 개간한 언답 등의 개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준선, 2011). 특히 하천주변의 범람원과 평탄지들이 이전에는 하천 범람의 위험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던 반면, 이 시기에는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간척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한계성장기’는 기존의 자연조건에 의존한 토지 이용에서 벗어나 인위적 개입을 통한 지형 변화가 본격화된 시기로, 이 과정에서 국가 전체의 정주 체계가 보다 고밀도화 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5) 토건성장기(일제강점기 및 현대)
일제강점기와 현대는 토목 기술과 대규모 간척사업, 그리고 도시화・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로, 토지 이용 패턴에 있어서 현격한 전환을 가져왔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적인 토목 기술의 도입으로, 하천 하류 및 해안의 저습지와 범람원 등이 대규모 간척을 통해 개발되었다. 우리나라는 산지의 비중이 높고, 강우의 계절적 집중도가 크기 때문에 하천변 범람원과 퇴적지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어려운 지형적, 기후환경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13)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근대적인 토목 및 수리 기술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하천변 저습지의 간척이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이준선, 2011). 일제강점기에는 이러한 지형들이 적극적으로 개간되어 평탄하고 경사가 낮은 토지가 새롭게 형성되었다(이영훈, 2016). 이 과정에서 유적의 분포 역시 조선시대와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대하천과 인접한 평야 지역에 유적이 집중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그림 5의 차). 그 결과, 이 시기의 유적지의 토지이용적합성은 소폭이지만 상승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박수진, 2025). 결과적으로, 토건성장기는 전통적 토지 이용 특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국토 공간이 재구성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유적 밀도의 상대적 분포와 상관관계에서도 그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표 3).
현대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토목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산업, 주거, 도시 개발 등 다양한 용도의 토지 이용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농경지 중심의 공간 구조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국토 활용 패턴이 형성되었다. 유적분포양성을 보면 단순한 농경지 집약에서 벗어나, 도시 및 산업단지 주변 등 새로운 공간에서의 유적이 분포하는 특성이 확인된다. 이러한 토지 이용 특성이 한국의 지형 및 기후 특성하에서 지속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는 추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5. 결론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의 유적 분포 자료를 바탕으로, 구석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10개 고고역사 시대별 유적의 공간 분포, 상관 관계, 점분포 분석, 유적 밀도를 대상으로 한 도시순위규모법칙 분석 등을 통해 한국에서 시공간적으로 토지 이용 특성이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하였는 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 한국의 토지 이용 변화는 크게 다섯 단계(개척기, 정착기, 확산성장기, 한계성장기, 토건성장기)로 구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 개척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에는 자연환경 조건에 의존해 수렵과 초기 농경 활동이 주를 이루었으며, 식량자원 확보가 용이한 하천 중상류 및 해안 인근 평탄지에 유적이 집중되어 있었다.
2) 정착기(청동기시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는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최적의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저고도와 낮은 경사도의 지역에 유적이 집약되었고, 특히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등으로 인해 유적 출현 빈도가 급증하였다.
3) 확산성장기(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인구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따른 토지 포화 현상으로 기존 최적지 외에도 한계지역까지 개척되었고, 그 결과 유적 밀도가 크게 증가하며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 패턴이 나타났다.
4) 한계성장기(조선시대)에서는 인구 압력과 농업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최적 토지 외에도 고지 및 경사도가 높은 한계지역으로 토지 이용이 확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유적 분포는 점차 균일해지고, 지역 간 변동성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5) 토건성장기(일제강점기 및 현대)에는 근대 토목 기술과 대규모 간척사업,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농경지 중심의 토지 이용 특성과는 현격히 다른 새로운 국토 공간 활용 패턴이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유적 분포도 하천 인접 평야 뿐 아니라 도시 및 산업단지 주변 등 복합적인 영역에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사용한 문화유적 자료는 전국 단위로 방대한 양이지만, 조사 기준과 표준화 부족, 조사자 및 지자체의 주관적 판단 등으로 인해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 또한 동일 지점 내 여러 시대의 유적이 중복되어 기록된 경우, 초기 시기만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적 오차와 공간적 중첩 문제 역시 연구 결과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분석과 공간 분석 기법을 통해 한국의 고고역사시대의 토지 이용 변화 양상을 시공간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이다. 이는 야외 현장조사 및 서지학 중심의 단기연구가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이질성과 다양성을 극복하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행되고 있는 토지이용 및 피복 변화(LUCC) 연구와의 간극을 매울 수 있는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향후 진행되는 연구에서는 보다 정밀한 지역 사례 분석과 최신 GIS 자료, 정성적 분석 기법을 병행하여, 유적 분포와 토지 이용 특성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심도 있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 결과는 문화유산 보존 및 국토 관리 정책 수립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토지 이용 전략 마련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