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크라스 지방의 답사 경로 및 자연환경 특성
3.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 관계
1) 돌 문화의 발달: 석조(石造)
2) 물 문화의 발달: 저수(貯水)
3) 바람 문화의 발달: 방풍(防風)
4. 요약 및 결론
1. 서론
슬로베니아 남서부의 ‘크라스(Kras)’ 지방은 카르스트 지형 연구의 본원지(home)로서 일찍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지역이다(Mihevc et al., 2016). 또한 우리도 여러 학문 분야나 지리교육 면에서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정서적 호감도 큰 지역이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지형학 개론서에 간략히 소개된 지식이나 관광 지리적 측면에서 간단히 언급된 몇 편의 논문(임근욱・진현식, 2009; 박희두, 2015; 이혁진・김경님, 2019) 이외에는, 이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지리 정보나 연구는 많지 않다. 이는 옛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에 속했던 슬로베니아의 국가 전력, 독립과정에서의 내전 및 인접 국가의 오랜 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접근성 미흡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아주 최근에 크라스 지방의 지명 및 경관 정체성을 주제로 한 연구(이간용, 2022a), 크라스 지방 일대의 지리 답사 장소 및 코스 개발 관련 연구(이간용, 2023) 등은 크라스 지방에 대한 기초적인 지역적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런데 크라스 지방은 비단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의 발달 지역이라는 지형학적 가치만을 지니는 땅은 아니다. 그곳은 지형 및 기후 면에서 나타나는 자연지리적 특성과 함께, 그에 따른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 관계가 기이할 정도로 독특하다는(Panjek, 2018)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인문지리학적 의의도 큰 지역이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에 의해 오래전에 쓰인 간접적인, 그리고 때로는 그릇된 지리 정보의 관성, 주민 생활은 배제된 채 석회암 지형 중심이었던 기존의 교과 내용(교육부, 2015) 등은 이 지방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걸림돌이 되는 듯하다. 따라서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크라스 지방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 일정 부분 이에 대한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지역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의 조장이나 강화는 지리학이나 지리교육의 존재 이유를 침식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대 변화에 따라 지리학의 성격도 다른 학문과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변모하고 있지만, 인간-자연 관계의 천착은 지리학의 오랜 연구 전통이자(Pattison, 1964), 특히 지리교육의 대주제로서(Boehm and Petersen, 1994) 그 정체성의 일부를 이룰 뿐만 아니라, 작금의 생태 전환(ecological turn) 교육이 부각하는 시대를 맞아(교육부, 2021; 손명철, 2021) 새롭게 조명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실제 답사와 관련 문헌 탐구를 통하여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의 독특한 관계를 ‘돌, 물, 그리고 바람 문화’의 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답사 활동과 문헌 연구의 결과, 이 세 요소가 크라스 지방의 인간-자연 간 관계를 적절히 함의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각각에 대한 분석의 기본 틀은 경관과 기능의 특성 및 변화, 현재 상황 및 의의 등이다.
연구 방법은 현지답사와 문헌 연구이다. 연구 지역(그림 1)에 대한 답사는 2022년 7월 30일부터 31일 이틀 동안 이루어졌다. 답사 전에는 대략 두 달여에 걸쳐 크라스 지방 일대의 여러 디지털 영상 지도 및 해당 지역 관광 안내 홈페이지를 탐색하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였고, 답사 과정에서는 여러 취락과 문화경관을 관찰하면서 다양한 현지 자료를 채집하였으며, 답사 이후에는 크라스 지방 자연과 인문 특성에 관한 슬로베니아 학자들의 여러 연구와 문헌을 검토하였다. 참고로 현지 지명 표기의 경우 국립국어원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되지 않는 경우 최대한 슬로베니아어에 가깝게 표기하고자 한다.
2. 크라스 지방의 답사 경로 및 자연환경 특성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 관계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위해 이 장에서는 크라스 지방의 답사 경로와 자연환경을 간략히 개관하고자 한다. 먼저, 답사 활동은 ‘크라스’의 동부 초입에 위치한 작은 취락인 카즐리예(Kazlje)로부터 시작하여 포니크베(Ponikve)→슈타니엘(Štanjel)→코브예글라바(Kobjeglava)→코멘(Komen)→볼취이 그라드(Volčji Grad)→셰풀리예/크리쥐(Šepulje/Križ)→세쟈나(Sežana)의 카르스트 생태박물관→리피차(Lipica)→로케브(Lokev)→디바챠(Divača) 등의 경로로 이루어졌으며, 크라스 지방의 중앙부를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하였다(그림 2).
다음으로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적 특성을 정리하면, 이 지방은 슬로베니아의 남서부, 아드리아해 북쪽에 위치한다. 길이 60㎞, 폭 15~20㎞, 해발고도 200~600m의 고원 지형으로서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점차 높아지는 지세이다. 전체 면적 850㎢ 중 슬로베니아 부분이 약 550㎢이고, 나머지는 이탈리아에 속한다(Lah and Momirski, 2018). 기반암은 중생대 및 제3기 탄산염암인데, 백악기 및 팔레오세의 석회암과 백운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Kranjc et al., 1999). 이에 따라 지표에는 무수한 돌리네가(그림 3), 지하에는 2016년 현재 3,490개의 동굴이 분포하는 등(Mihevc et al., 2016)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다.
또한 지표수는 거의 없고, 다만 동남부에 소재하는 슈코치안(Škocjan) 동굴 속 및 그 인근에서 하천(Reka강)의 일부 구간이 출현할 뿐이다(그림 2의 동남부 참조). 이 지방의 모든 하천은 지하에서 북서류하다가 크라스 지방 북서쪽, 이탈리아 북동부 소재 고리치아(Gorizia) 지방 해안 부근에서 용천하여 짧은 티마보(Timavo)강을 이룬다(Kovačič and Ravbar, 2005).
크라스 지방의 기후 환경은 아(亞) 지중해성(Cs)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10.6~11.7℃로서 7월이 최난월(평균 19.8~21℃), 1월이 최한월(평균 1.6~2.8℃) 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417~1,683mm로서, 11월에 최다, 7월에 최소의 강수 분포를 보인다(Wilfling and Mayrhofer, 2002). 특히, 크라스 지방의 기후 환경과 관련하여 지역풍인 보라(bora)의 영향은 지대하다. 슬로베니아어로는 ‘부르야(burja)’로 불리는 이 강력한 북동풍은 대표적인 사면하강풍(katabatic wind)으로서 겨울철(11~4월)에 크라스 지방 일대를 중심으로 북부의 비파바 계곡, 남부의 아드리아해 일대에서 맹위를 떨친다. 보라의 평균 풍속은 19km/h이지만, 돌풍 시 평균 강도는 70-90.5km/h를 넘어(Wilfling and Mayrhofer, 2002), 2015년 2월 15일에는 풍속이 200km/h에 이른 적도 있었고, 비공식적으로는 235km/h를 기록하기도 하였다(Primorska Novice, 2015). 이에 따라 보라는 크라스 지방 주민의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오늘날 크라스 고원 지역 전체는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해 있으며, 다양성과 독특성을 지닌 중요한 자연 및 문화경관으로서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인 관심과 보존 노력이 활발하다(Lah and Momirski, 2018).
3.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 관계
1) 돌 문화의 발달: 석조(石造)
크라스 지방의 가장 뚜렷한 지역적 특성은 돌 문화의 발달이다. ‘크라스(Kras)’가 돌이나 바위를 의미하는 선(先) 인도-유럽어인 ‘kar(r)a/gar(r)’로부터 기원한 점(Kranjc, 1997), ‘신이 바다에 던지려고 돌을 자루에 담아 나르다가, 그만 도중에 자루가 터져 숱한 돌이 땅바닥에 쏟아지면서 곳곳에 영원히 그 흔적을 남겼다’라는 이 지방의 전설,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돌투성이의 초원(kraška gmajn)’이라는(그림 4) 전통적 이미지(Kaligarič et al., 2006; Gams, 1993) 등은 크라스 지방이 돌의 땅임을 상징적, 실제적으로 함의한다. 곧, ‘돌’은 크라스 지방의 지역 정체성을 상징하며, 여러 ‘석조(石造)’는 그것을 집약하는 특징적 경관이다. 특히, 크라스 지방의 돌 문화는 경제활동 및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돌담(zid), 돌 오두막(pastirska hiška), 돌 가옥(hiša), 그리고 돌 공장 및 돌 장식 등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기에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돌담의 발달
크라스 지방의 돌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2018)에 등재될 만큼 이 지방을 대표하는 문화경관(kulturni krajini)으로 평가된다. 돌담의 규모와 형태는 다양하지만, 도로변, 산길, 경지나 목초지, 임야, 마을 어귀나 골목길 등 이 지방 전역에 분포한다. 특히 산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마을 인근의 숲속에는 돌담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이 지방의 돌담은 기원전 8세기의 ‘원형 돌담(Devela Griža)’ 유적처럼(그림 5의 ①) 이미 선사 시대부터 축조되었지만, 본격적인 돌담 조성은 18세기 말의 마리아 테레지아 통치기 때부터 시작되어 19세기 중엽에 절정을 이루었다. 곧, 봉건제의 와해 과정에서 귀족 소유의 넓은 토지를 주민들이 분할 매입하면서, 주민들은 돌밭을(그림 4) 목초지나 경지로 개간하기 위하여 석회암 돌덩이부터 제거했고(Haddow, 2011; Panjek, 2015), 제거한 돌로 서로의 목초지나 경작지의 경계 담을 만드는 데 먼저 활용하였다(그림 5의 ②). 이 외에도 돌은 가옥, 돌무더기(grublja 혹은 gomila), 가축우리(pen), 사람과 가축의 진입로나 통로(그림 5의 ③), 여름철 일사와 겨울철 보라를 막기 위한 오두막 등 다양한 석축의 재료로 이용되었다(Zupančič, 2010; Juvane, 2013). 곧, 크라스 지방의 돌담은 경계와 영역의 표시라는 일차적 기능과 함께 사람과 가축의 통행 안내 등 여러 기능도 수행하였다. 또한 바람에 의한 토양 침식을 막는 역할도 하였다(Panjek, 2015). 돌담 석축에는 접착물질 없이 자연석 그대로를 얼기설기 쌓는, 이른바 ‘메쌓기 방식(suhi zidovi, drystone walling)’이 동원되었다.
결과적으로 크라스 지방의 돌담은 석회암 돌밭이라는 자연환경적 조건과 더불어 봉건제도의 와해에 따른 토지 소유 및 생산 수단의 변화라는 정치경제적 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지리적, 역사적 경관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오늘날 크라스 지방의 돌담은 지역 관광 안내 홈페이지 로고로서 등장하는 등 여전히 이 지방의 정체성 상징과 자긍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다(그림 6). 또한 돌담은 비단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그 견고함으로 인해 쉽게 철거 혹은 변형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크라스 지방의 현재 공간구성에도(그림 5의 ④) 큰 영향을 주는 지형지물이기도 하다.
(2) 돌 오두막의 발달
돌담과 함께 돌 오두막도 크라스 지방 돌 문화의 주요 요소로 언급된다. 이는 목초지에서 양이나 염소, 혹은 소 등의 가축을 돌보며 지냈던 목자(shepherd, 牧者)들을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임시 거처였다. 크라스 전역에 최소한 150여 개의 돌 오두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만큼 일반적인 시설이었다(Zupančič, 2010). 실제로 1830년대 말 이 지방 토지의 68.0%가 초지였고, 당시 양 37,000, 소 12,000, 돼지 3,500, 말 800마리, 기타 당나귀와 노새 등을 합쳐 주민 수보다 많은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는(Panjek, 2018)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그런데 이 돌 오두막은 목자들의 임시 거처라는 기본 기능 이외에도 강한 일사, 비, 바람(bora)으로부터 농부들의 피난처(shelter)이자 휴식처, 농기구와 음식물 보관소, 그리고 석공들의 쉼터 등 다양한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Juvane, 2013).
돌 오두막은 목초지나 가축을 관리 감시하기 적절한 곳에 자리하였는데, 주로 숲 가장자리나 돌담으로 쳐진 경지 가까이에 위치하였다. 출구는 보라의 풍향을 고려하여 남쪽 혹은 남서쪽에 두었다(Zupančič, 2010). 큰 바위를 한쪽 벽으로 삼거나 기대어 짓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석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형태와 구조는 불규칙하였다(그림 7). 크기는 작은 것은 2~3명, 큰 것은 7명까지 머물 수 있었다.
리피차 소재 돌 오두막의(그림 7의 ③) 내부를 살펴본 결과, 가장 안쪽의 바닥에는 침상으로 보이는 넓적한 돌이 깔려 있었고, 벽체에는 창문 역할을 하는 환기 구멍과 음식이나 물건을 넣어두기 위한 수납공간(niche)도 마련되어 있었다. 크라스 지방 돌 오두막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석을 활용한 ‘내쌓기(corbelling)’ 방식으로 축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땅바닥에서 상부로 점차 좁아지면서 지붕이 반구형 돔(dome) 형태가 되도록 쌓는 방식이다(그림 8).
돌 오두막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거의 170년에 이르고 1960~70년대까지도 존속하다가 그 이후 방치되어 왔지만, 최근 크라스 지방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석조의 하나로 재평가되면서 국가 유산으로 보호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발굴과 함께 최근에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며(Zupančič, 2010, 2015; Juvane, 2013), 관광자원으로 개발될 가능성도 예상되었다. 세쟈나 소재 ‘카르스트 생태박물관(Živi muzej Krasa)’의 로고는 이 돌 오두막을 이미지화한 것인데(그림 9), 이 생태박물관은 실제로 크라스 지방의 전형적인 목초지였던 곳으로서 다양한 형태와 구조의 돌 오두막들이 산재한다(그림 7의 ②, ③).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크라스의 돌 오두막도 돌담과 마찬가지로 이 지방의 자연조건 및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간소하지만 의미 있는 석조 건축이라 하겠다.
(3) 돌 가옥의 발달
크라스 지방의 가옥은 전통적이든 근・현대적이든, 또 본채이든 부속채이든 간에 거의 모두 석회암 ‘돌집’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먼저 전통 가옥의 경우는 슈타니엘 성내의 15세기 전후에 지어진 이른바, ‘카르스트 가옥(Kraška hiša)’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면 벽체 모두가 석회암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창틀과 현관 아치 틀, 그리고 빗물받이 홈통(rain gutter)도 육중한 돌이다. 특히, 지붕조차도 석회암 돌판(platy limestone) 기와이다(그림 10). 이런 돌기와(stone slabs) 양식은 크라스 지방의 여러 전통 취락 곳곳에서 관찰되며, 지역 건축 정체성에 기여하는 소중한 문화경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Zupančič, 2015).
오늘날 크라스 지방의 일반적인 가옥으로서 널리 분포하는 근대 가옥은 주로 19세기에 지어졌다. 당시는 트리에스테에 조선업이 융성하여 크라스 지방 주민들의 취업이 활발하였고, 그 소득으로 주민 다수가 자기 집을 지었던 시기였다(Udovč, 2022). 이들 근대 가옥도 벽체가 돌로 이루어진 점은 전통 가옥과 같지만, 벽에 점토나 회반죽 칠을 한 점(전통 가옥에서도 부농은 회칠을 함.), 당시의 유행 양식인 붉은 색 타일 지붕(latin roof)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그림 11의 ①). 근대 가옥 중에서도 견고하고 부속채가 딸린 부농 가옥(farmstead)은 돌 벽체 단장 등의 리모델링을 통하여 숙박업소나 레스토랑 등 상업적 관광시설로 활용되고 있다(그림 11의 ②).
이상에서처럼 크라스 지방의 전통 및 근대 가옥은 벽체 및 기타 부속물, 지붕에 이르기까지 모두 석회암 돌로 이루어진 석조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목재나 흙보다 돌이 많고 바람이 센 환경 특성에 대한 주민들의 의존(dependence) 및 적응(adaptation) 양식을 보여준다 하겠다.
(4) 돌 공장 및 돌 조각의 발달
크라스 지방은 석회암 지대라는 환경적 특성에 따라 일찍부터 돌 공장 및 돌 조각 문화도 발달하였다. 특히 채석장은 로마 시대부터 발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PreMrl, 2012). 실제로 크라스 지방 곳곳에서는 오래전 버려졌거나 현재도 운영 중인 채석장(jave)과 돌 공장이 다수 관찰된다(그림 12). 이와 관련하여 세쟈냐의 대표적인 대리석 생산 회사인 M사의 슬로건인, “크라스의 모든 전통은 돌에 그 바탕을 둔다(Celotna tradicija Krasa sloni na kamnu)”라는 글귀는(https://marmorsezana.com/kamnolomi/) ‘돌’이 단순한 무기물 덩이가 아니라, 이 지방 사람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존재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크라스 지방에는 18세기 말부터 슈톨파(Štolfa) 가문을 필두로 하여 명성있는 다수의 석공과 그 가문이 존재하였고, 볼치이 그라드의 경우처럼 한 마을 전체가 돌 공장인 경우도 있었다(PreMrl, 2012). 채석과 조각의 과정이 고도의 분업과 협업 체계를 이루면서, 단계별 작업자의 호칭도 달랐다. 예를 들면 흔히 ‘석공(kamnar)’으로 통칭되는 가운데 채석장 노동자들은 총칭 ‘javarji’, 암석 파쇄공은 ‘kavadurji’, 원석 절단공은 ‘špontači’, 정밀 절단공은 ‘štancarji’, 세밀 연마공은 ‘frigadorji’, 장식 조각공은 ‘ornatisti’ 등으로 불렸는데, 이 호칭들은 독일어, 이탈리아어, 이탈리아 북동부의 프리울리어가 혼합된 크라스 지방만의 전문 용어였다(PreMrl, 2014). 또한 채석, 절단, 연마, 조각 등의 과정에 따라 다양한 도구의 분화도 가져왔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호칭 및 도구의 분화를 통해서도 이 지방의 돌 문화 발달과 그 중요성이 짐작된다. 이러한 전통과 유산은 오늘날에도 크라스 지방 여러 곳에 분포하는 돌 조각공원이나 석공예 가게 등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크라스 지방의 여러 돌 조각 유산 중에서 성소(znamenje, 聖所), 대문 혹은 현관의 아치 틀(kalone), 그리고 까치발(konzola) 등은 전통 취락이나 가옥에 나타나는 이 지방 공통의 문화경관으로 간주되며(https://www.visitkras.info), 실제 답사 활동에서도 자주 관찰된다. 성소는 성모상을 모셔 놓은 담 벽감이나 탑으로서 마을 어귀나 길목에 탑의 형태로 설치된 성소는 이정표나 방향잡이 기능을 하였다(그림 14의 ①). 아치 틀은 전통 혹은 근대 가옥에서 거의 예외 없는 요소인데, 다양한 형태(∩, ⊓, ⌂ 등)로 가옥의 심미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던 장식으로 보인다. 이것은 크라스 지방 최대도시인 코멘의 문장(紋章)에도 등장한다(그림 13 및 그림 14의 ②).
까치발은 가옥 벽면 외부에 둔 새 발톱 모양의 돌기로서 이 역시 크라스 지방 전통 가옥의 공통 양식 중 하나이다(그림 14의 ③, 그림 26의 ②). 이는 밋밋한 석벽에 변화를 주는 심미적 기능과 함께, 처마 홈통 받침대, 건물 이층의 복도 거치대, 포도덩굴 시렁 등 가옥의 외적 연장 장치라는 실용적 역할도 하였다. 크라스 지방에서 이들 돌 조각 유산을 중시하는 이유는 일반 농가의 경제적 여건과 건축 자재로서의 석회암 자연석의 특성에 비추어, 실용성과 함께 무엇보다도 정교한 장식을 풍부하게 하기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 심미성을 추구한 것에 대한 자평으로 해석된다.
이상에서처럼 크라스 지방에는 다양한 석축 및 석조 문화가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곧, 이 지방의 ‘돌’은 거의 모든 구조물과 건축물, 그리고 장식물을 이루는 핵심 재료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주민들의 정신적 동질성과 정체성을 이루는 요체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크라스 지방의 자연조건에 대한 주민들의 의존 및 적응의 관계를 함의한다는 점에서 크라스 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는 바탕이라고 여겨진다.
2) 물 문화의 발달: 저수(貯水)
물은 인간과 가축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생활에 결정적이고 필수적인 자연물이다. 그런데 크라스 지방은 비록 연 강수량은 적지 않지만, 기반암의 특성상 지표수가 거의 없다(Ravbar, 2010). 그런 까닭에 전통 사회의 ‘크라스’ 주민은 집수와 저수를 위한 장치 및 아이디어의 개발이 삶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독특한 저수 문화가 발달하였다.
답사 활동과 문헌 탐구의 결과, 크라스 지방의 대표적인 저수 문화는 주민 식수용의 ‘슈티르네(štirne)’와 가축 음수용의 ‘칼리(kali)’에 집약되어 있어 이 둘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슈티르네’는 ‘카르스트 우물(karst well)’이나 ‘돌 우물(stone well)’로 지칭되기도 한다. 사실 ‘슈티르네’는 우물 형상이지만, 빗물 저장조(貯藏槽)라는 점에서 ‘천수조(天水槽)’가 적합한 명칭이다. 그렇지만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 이 지방의 자연적 특성이 반영되고, 인식 편의성을 감안하여 여기서는 ‘카르스트 우물’로 지칭하고자 한다. ‘칼리’의 경우도 보통 ‘카르스트 연못(karst pond)’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돌리네 지형을 활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기서는 ‘돌리네 연못’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1) 카르스트 우물
‘카르스트 우물’은 식수 및 생활용수의 확보가 어려운 크라스 지방의 환경 특성에 적응한 매우 독특한 식수 저장 장치이다. 식수를 확보하는 대표적인 두 방식에는 지하수를 모아 괴게 하는 ‘우물(well)’과 빗물을 모아 담는 ‘천수조(cistern)’가 있다(그림 15). 카르스트 우물(štirne)은 후자의 방식을 취한다.
카르스트 우물은 크라스 지방을 비롯한 슬로베니아 서남부 일대에 널리 분포하던 시설로서, 답사 과정에서도 어느 취락에서나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구마다 소유했던 시설은 결코 아니어서 초기에는 공동용으로 마을에 하나 정도 있었을 뿐이었고, 부유한 농장주를 제외하고 개별 가정은 소유할 수 없던 귀한 시설이었다.
카르스트 우물의 원형과 기본 구조는 15세기 전후에 지어진 ‘카르스트 가옥’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 16). 그림 16에서처럼 지상부의 도관(導管), 지면부의 외곽(šapa)과 덮개, 그리고 지하부의 빗물 저장 공간으로 구성된다. 지상부의 도관은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처마에서 받아 모아 지하의 저장 공간으로 보내는 긴 관(downpipe)이다. 지면부는 일반 우물처럼 주로 돌로 둘러쌓거나 통돌로 만든 외곽(外廓), 물을 긷기 위한 두레박과 도르래로 구성된다. 부자는 통돌로 우물의 외곽을 만들었다(Terčon, 1996; Belingar, 2012; Cencič, 2012). 지하부는 땅을 파서 돌로 벽을 쌓고 물이 새지 않도록 점토 등으로 돌 틈을 메워 만든 커다란 수조(물통)로 이루어진다.
현재도 활용되는 볼치이 그라드 소재 카르스트 우물을 측정해 본 결과, 지하 수조의 깊이는 대략 6~7m 정도였고, 절반가량이 물로 채워져 있었으며, 외곽의 높이는 84㎝, 통의 지름은 257㎝의 크기였다(그림 17의 ①의 우물). 세 가구의 처마에서 모은 물을 유도하는 긴 철제 도관(그림 17의①의 A, B, C)은 이 시설이 공용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물이 희소한 크라스 지방에서 카르스트 우물의 중요성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곽돌 정면에 우물 소유주의 이름과 건립 일자나, 예수 상징 모노그램인 ‘IHS’(ΙHΣOYΣ의 앞 세 글자)를 새겨 놓기도 하였으며(그림 17의 ②), 물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높은 담장을 쌓기도 하는 등(Udovč, 2022) 소중하게 보호되었다.
카르스트 우물은 기관용(institucionalni), 공용(občinski 혹은 komunski), 사설용(zasebni)의 세 유형이 있었다. 이 중 마을 공용의 경우, 파수꾼(vardjan)을 고용하여 우물덮개 열쇠를 맡겨 관리하도록 하였고, 물이 부족할 경우 공정하게 분배하는 책임도 주어졌다(Belingar, 2012). 물을 긷기 위해 줄 서 기다리는 동안 주민들은 환담과 정보를 주고받았고, 그래서 우물터는 유대감과 연대감을 나누는 일종의 사회적 장소 기능도 하였다(Cencič, 2012; Terčon, 1996). 그런 까닭에 보통은 마을 중앙에 자리 잡았고, 담장과 포장 바닥도 갖추었다. 이처럼 카르스트 우물은 단지 필요를 넘어 마을이나 농장의 자긍이었기 때문에 공들여 설계되었다. 일반적인 우물은 ‘물이 있는 곳’에 존재했던 반면에, 카르스트 우물은 ‘물이 가장 필요한 곳’에 존재했던 것이다(Juvane, 2013).
그리고 크라스 지방 저수 문화의 한 요소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빗물 홈통’의 발달이다. 이 시설은 모든 전통 및 근대 가옥의 처마에 예외 없이 설치되어 있는 공통적인 시설이다(그림 17의 ① 및 그림 18). 빗물 집수를 극대화하기 위한 홈통과 모인 물을 유도하는 도관이 처마와 벽면을 따라 견고하게 이어진 모습은 크라스 지방 가옥의 특징적인 경관으로서, 자연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적응 양식을 잘 보여준다.
카르스트 우물은 크라스 취락의 상징물로서 오래된 것은 16세기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20세기에 들어서야 가구마다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주민들의 중요한 식수원이었다(Sarnek, 2018). 그러다가 1970년대에 지하수 개발에 따른 상수도 보급과 함께(Coraci, 2019) 방치되기 시작하였으나, 크라스 지방의 중요 문화유산으로 재평가되면서 1998년부터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서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왔다(Primc, 2014). 참고로 크라스 지방의 상수도 체계는 1986년에야 거의 완성되었으며, 주요 상수원은 이탈리아 인근의 크라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레스토비차(Brestovica)의 클라리취(Klariči) 소재 지하수 양수장이다(Ravbar, 2004). 또한 카르스트 우물 문화의 전통은 3단 접이식 우물 덮개, 정원 조경용 우물 모형 등의 제작과 판매 형태로도 계승되고 있었으며, 관광 리플릿의 도안, 벽화 소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특히 크라스 지방 최대도시인 세쟈나는 시의 상징 로고에 카르스트 우물이 도안되어 있어(그림 28) 정체성의 상징으로까지 승화하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돌리네 연못
크라스 지방에 목축업이 발달하면서 가축의 식음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필연적이었다. 주민들은 무수히 발달한 돌리네 지형 중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만든 연못(kali 혹은 lokve)에 담긴 빗물을 통해 그 해결책을 찾았다. 이 돌리네 연못도 카르스트 우물과 마찬가지로 크라스 지방 전역에 걸쳐 존재하였으며, 이 지방의 방목과 정착에 중요하게 기여하였다(그림 19).
자연 돌리네 연못의 형성 과정을 보면, 석회암의 용식작용으로 생긴 물질과 점토, 주위에서 굴러온 돌과 흙이 돌리네 바닥에 쌓이고, 적수(積水)와 증발의 반복으로 바닥은 점점 더 단단해져 반영구적인 연못이 된다. 고인 물을 마시러 온 동물이나 가축의 발걸음은 돌과 점토를 더욱 다지면서 거의 영구적인 연못이 만들어진다(그림 20의 ①). 인공 돌리네 연못은 자연 돌리네 연못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 만든 것이다. 먼저 가축의 접근이 쉽도록 돌리네 경사면을 완만하게 만든 후에 사면 상에 돌을 깐다. 이어 돌리네 밑바닥을 좀 더 깊게 판 다음에, 약 20cm 정도 두께의 점토로 다져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과정을 거친다(그림 20의 ②).
돌리네 연못은 증발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그 수위는 우량과 계절에 따라 달라졌다. 또한 점토는 건열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적이었다(Juvane, 2013). 돌리네 바닥을 아예 시멘트로 메우거나 부직포를 깐 경우도 목격되었다(그림 20의 ③). 그리고 돌리네 연못 중에는 주위에 돌담을 둘러쳐 가축의 접근을 막아 주민들의 식수용으로만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다(그림 20의 ④).
돌리네 연못 중 겨울철에 가축 식음수로 쓰이지 않던 연못의 얼음은 트리에스테에 내다 팔아 20세기 중엽까지 농가의 소득원이기도 하였고(Juvane, 2013), 또 카르스트 우물처럼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 겨울철 어린이들의 얼음 놀이터가 되는 등 여러 경제적, 사회적 기능도 수행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크라스 지방의 ‘돌리네’는 문화경관의 하나로 간주된다(Valjavec and Zorn, 2015).
돌리네 연못은 상수도의 보급과 경제활동의 변화로 그동안 대부분 방치되었다가, 현재는 크라스 지방의 자연과 인간 간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습지와 생물다양성 생태계로 재평가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https://www.burger.si/geo/kal.html). 셰플리에 마을의 경우에서처럼 중요한 공간 경관으로 기능하거나(그림 20의 ③), 코브예글라바의 사례처럼 마을 주위의 옛 목초지 일대에 남아 있는 9개 연못을 선정하여 ‘칼리 9경길(Pot devetih kalov)’(그림 20의 ②, ④)이란 생태 학습장이나 관광자원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상에서처럼 카르스트 우물과 돌리네 연못은 지표수가 거의 부재하는 자연조건에서 발달한 독특한 저수 문화로서 크라스 지방의 지역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경관이라고 하겠다.
3) 바람 문화의 발달: 방풍(防風)
크라스 지방의 겨울철 보라는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후 환경이다. 이 바람의 위세는 일찍이 카르스트 연구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발바소르(J. V. Valvasor, 1641- 1693)의 17세기 말 저서(The Glory of Duchy of Carniola, 1689)나 현대 슬로베니아의 유명 화가인 쵸흐(Z. Čoh, 1956~)의 그림동화 책에서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그림 21).
그만큼 보라는 과거와 현재 모두 주민의 의식과 삶에 각인된 자연조건이라는 점에서, 크라스 지방 사람들은 식수 및 용수 확보 문제와 더불어 이 바람의 특성에 적응할 방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보라가 주민 생활에 미친 영향이 취락의 입지와 형태, 가옥의 구조와 시설 등에 잘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이들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건축은 환경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Juvane, 2013).
(1) 취락의 남사면 입지 및 연립형(聯立型) 집촌
크라스 지방의 강력한 북동풍인 보라와 관련하여, 이 지방의 크고 작은 전통 취락들이 지니는 특성을 입지, 배향, 형태 등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먼저 입지 면에서는 취락들은 구릉지와 산지의 남 혹은 남서 사면이나 산기슭에 자리하는 특성을 보인다(그림 22). 이는 북동풍과 직접 마주하는 것을 피할 수 있거나 풍속이 저하되는 바람그늘이라는 입지적 장점에 따른 선택이다. 아울러 북반구 중위도의 여러 취락들과 마찬가지로 채광 효과도 고려된 것임은 물론이다.
크라스 지방 취락의 남사면 입지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이 지방 북부의 슈타니엘성 취락과 남부의 로케브 마을을 들 수 있다. 전자(그림 22의 ①)는 해발고도 364m의 구릉(Turn)상에 위치하는데, 구릉의 남서~남동 사면에 취락이 자리 잡고 있다. 후자(그림 22의 ②)는 마을 북동쪽에 위치한 해발고도 500m 산지의 남서 산기슭을 따라 취락이 발달한다.
이런 입지적 특성과 관련하여 취락 내 개별 가옥의 배향도 슬로베니아 지오피디아의 디지털 사진 지도를 분석해 본 결과, 지형 혹은 토지 형상에 따라 부분적으로 남 혹은 남동향도 나타나지만, 남서향을 취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았다(그림 22의 ②). 최근의 현대 가옥에서 다소 예외적인 사례도 관찰되지만, 그 경우도 대부분 남서향인 경우가 많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동풍을 등질 수 있고, 채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형태면에서 볼 때, 크라스 지방 전통 취락들은 가옥들이 거의 연속적으로 줄지어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그림 22, 23). 곧, 지붕이 거의 횡적으로 이어지거나 옹기종기 모여있는 연립형 집촌(terrace houses)의 모습을 띤다(Zupančič, 2010; Juvane, 2013). 이처럼 가옥의 밀도를 선적(線的)으로 높인 형태는 크라스 지방 취락의 특징적 현상이다. 이러한 특성에 대하여 크라스 지방 문화경관 연구의 대가인 Juvane(2013)는 이 지방의 극단적인 날씨, 곧 보라 바람의 영향으로 해석한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슈타니엘성 취락(그림 22의 ①)은 가장 뚜렷한 연립형 집촌 형태를 보인다. 여기에는 방풍 효과의 고려와 함께 구릉지 사면이라는 공간적 협소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로케브 마을(그림 22의 ②)의 가옥 배열에서도 대략 북서-남동 방향의 선적 분포성이 관찰된다. 크라스 지방 중부의 볼치이 그라드와 두토블리에(그림 23의 ①, ②), 그리고 셰플리에 마을(그림 24의 ①)에서도 가옥이 거의 연속적으로 이어진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가옥의 밀도 양상이 지형에 따라 다소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슈타니엘성 취락의 경우처럼(그림 22의 ①) 능선에 입지하거나, 두토블리에의 사례처럼(그림 23의 ②) 평지라 하더라도 배산(背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는 가옥 밀도가 더욱 높다. 반면 로케브 마을처럼(그림 22의 ②) 북동쪽에 비교적 높은 산지가 있어 자연적 방풍 효과가 나타나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옥의 밀도가 낮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에는 취락의 형성 시기, 그에 따른 현대적 보온재나 기술의 활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처럼 크라스 지방의 취락들은 가옥들이 마을 전체적으로 어떤 축(대략 북서-남동 축)을 따라 배열됨으로써 보라 바람에 대응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2) 바람 적응 [適風] 가옥 구조 및 시설
겨울철을 중심으로 크라스 지방에 부는 강한 바람에 적응 [適風] 혹은 대응하기 위해, 전통 취락의 가옥들은 몇몇 특징적인 구조와 시설을 갖추었다. 먼저 평면 구조면에서 볼 때, 최근의 현대 가옥을 제외하고는 가옥의 본채와 부속채가 대체로 ‘˥, ︿, ㄇ, ⊐,〉’ 등의 형상으로 배치된 반(semi) 닫힘 구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그림 23). 그 전형적인 사례는 옛 볼치이 그라드 마을에서 볼 수 있는데(그림 23의 ①), 한 마을의 가옥들이 ‘˥, ⊐’ 자의 평면 구조로 거의 연립해 있다. 이 형태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음은 몰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면 구조적 특성도 앞서 살펴본 가옥의 밀도 차이와 마찬가지로 지형 조건에 따라 다소 차이를 드러낸다. 예를 들면 바람을 막아 줄 뒷산 [背山]이 없는 평지의 가옥들보다는(그림 23의 ②) 방풍 효과가 큰 산기슭의 가옥들이(그림 22의 ②) 상대적으로 덜 닫힘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반 닫힘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시설로서, 특히 부농 가옥의 경우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 바람이 잠자는(calm) 공간인 보르야치(borjač)를 두었다. 이는 우리의 안마당 혹은 안뜰과 유사한 것으로서 농가의 중요한 작업 공간 기능을 하였다(Juvane, 2013). 현재는 이 공간을 개조하여 식당 등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그림 24).
이어 크라스 지방 전통 가옥의 보라풍 적응 시설이나 장치로서, 먼저 지붕에 석판 돌기와(skrlje)를 얹혔다는(Juvane, 2013) 점은 이미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이는 재료 획득의 용이성과 내구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전통 가옥이든 근현대 가옥이든 강력한 바람에 지붕이 뜯기지 않도록 처마 바로 위의 지붕 끝단에 돌을 얹어 놓은 점이나, 또 처마가 매우 짧다는 공통점도 관찰된다. 처마가 길면 바람의 영향을 더 받아 지붕의 견고성을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붕의 경사가 작고, 우진각이나 맞배지붕 양식이 많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 25). 이는 바람이 잘 타고 넘어가도록 한 아이디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크라스 지방의 가옥, 특히 전통 가옥의 경우 일반적으로 창문의 크기가 다소 기형적일 만큼 작다는 점도 의미 있는 특징의 하나이다(그림 26). 이는 바람에 대한 적응과 함께 돌 재료에 따른 하중을 고려한 까닭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크라스 지방의 전통 및 근대 가옥의 특징적 시설로서(Zupančič, 2015), 주목을 끄는 것은 견고하고 높으며, 복잡한(complicated) 외관의 굴뚝(dimnik)이다(그림 27). 그것은 크라스 지방의 강한 아침 일사와 겨울철 보라 바람의 영향과 관계 깊다(Juvane, 2013). 따듯한 연기는 부력에 의해 상승한다. 그런데 만일 굴뚝이 먼저 태양열에 가열되어버리면 연기 배출은 어렵게 된다. 그래서 크라스 지방에서는 특히 아침 태양이 굴뚝을 급속히 가열시키지 않도록 규모가 크고 여러 물질을 섞어 만들었으며, 보통은 회칠을 하였다. 또한 굴뚝 상부에는 각도와 방향이 서로 다른 많은 작은 구멍을 두었는데(그림 27의 ②), 이는 장식이 아니라 강한 보라 바람에도 잘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굴뚝과 짝을 이루는 난방 및 취사 공간(spahnjenca)도 독특한 시설로서 언급되는데(그림 27의 ①), 굴뚝 하단의 벽체가 외부로 깔때기 형상으로 불룩하게 돌출되어 있어 쉽게 확인이 된다.
이처럼 크라스 지방 취락의 입지와 형태, 가옥 구조와 시설 면에서 나타나는 여러 특징은 이곳의 기후 환경, 특히 보라 풍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었다(Zupančič, 2015). 이와 관련하여 부연하고자 하는 것은 크라스 지방 최대 취락인 세쟈나의 문장(紋章)에 나타난 특징이다(그림 28). 이 문장은 보라에 의한 편향수와 앞 절에서 설명한 바 있는 카르스 우물 외곽이 도안되어 있다. 이를 통해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적 특징은 주민들의 생활문화뿐만 아니라, 지역 정체성의 상징과 자긍의 원천, 곧 정신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 특성과 그에 따른 주민들의 생활방식이 비단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리고 물질문화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어떤 지역이나 장소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의 기본 틀로서 지리학과 지리교육의 오랜 전통인 ‘인간-자연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세계성 이해라는(이간용, 2022b) 지리교육의 교육적 및 사회적 역할을 달성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대가 변하더라도 지리학과 지리교육의 지향이자 소중한 주제라는 점을 역설하고 싶다.
4. 요약 및 결론
슬로베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크라스(Kras) 지방은 지형 및 기후 환경의 특성에 따라 독특한 인간 생활과 문화경관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지리학 및 지리교육의 전통적인 대주제인 인간-자연 간 관계 이해를 위한 전형적인 사례 지역으로 평가된다. 특히, 석회암이란 단일 암석의 광범위한 균질적 분포와 그 지질적 특성에 따른 지표수의 희소, 보라(bora)라는 강력한 지역풍의 존재로 이곳 주민들은 생존과 생활을 위해 그것에 의존하고 적응하는 전략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독특한 돌, 물, 바람 문화가 발달하였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일종의 정형화한 문화경관이 형성되었다. 전통적으로 돌담, 돌 오두막, 돌 가옥 등 석축 문화를 비롯한 돌 공장, 돌 아치 대문, 돌 성소, 까치발 등 채석 및 석조 문화가 발달한 점, 카르스트 우물, 돌리네 연못, 빗물 홈통 등 저수 및 집수 문화가 발달한 점, 그리고 남사면 취락 입지, 연립형 집촌, 남서향 및 반(半) 닫힘 구조의 가옥, 완만한 지붕 경사, 짧은 처마, 지붕돌, 높은 담장과 안마당, 육중한 굴뚝 등 방풍 및 적풍 문화가 발달한 점 등이 그것이다. 특히 크라스 지방의 ‘돌’은 이 지역의 과거와 현재에 걸쳐 지역적 특성 및 정체성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크라스 지방에는 돌과 물과 바람에 의존하고 적응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지역적 특성과 문화경관이 나타남으로써 지리학적 함의가 큰 지역이라고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지리학 및 지리교육의 전통적인 대주제의 측면에서, ‘돌이 많고, 지표수는 거의 부재하며, 바람은 센 땅’인 크라스 지방의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 간의 관계를 실제 답사에 기초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는 크라스 지방의 자연과 삶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를 두텁게 할 수 있고, 아울러 지리교육과 여행 지리에 의미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