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1 October 2021. 565-566
https://doi.org/10.22776/kgs.2021.56.5.565


MAIN

지금의 21세기를 ‘전환의 시대’라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지난 30년 동안 인류는 전환에 “무책임”했었다. 실제로 시대적 전환의 동력이 되고 있는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국제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던 시기는 대략 30년 전인 1992년이었다. 당시 유엔이 주재하는 지구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였던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인류 미래의 발전 방향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삼십년 전에 인류가 공언했던 약속이 지켜졌다면, 지금의 기후재앙 혹은 지구가열화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었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기후변화 관련 법률 제정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을 탓할 수도 있고, 세계 두 번째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이 최대 원인이라는 분석 결과를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탄소배출 순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한국도 기후변화에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하다면 더했지 전혀 덜하지 않았다. 실제로 국제회의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말라는 무대응이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으며,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등장했던 이명박 정부의 경우에도 진정성의 결핍과 철학의 부재로 인해 손에 잡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아무런 기후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탄핵으로 갑자기 정권을 물려받은 문재인 정부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국제사회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리하자면 70억 인류뿐만 아니라 5천만 한국인들도 지난 30년 동안 기후 전환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었다.

다만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즉, 앞으로의 향후 30년 동안에는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목소리와 압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럽을 중심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純)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 선언이 이뤄지고 있다.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마저도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며, 2060년 탄소중립 목표를 공언한 상태이다. 이에 한국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2050년을 기한으로 탄소중립 열차에 편승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후대응 준비가 미흡했던 문재인 정부는 구체적인 목표치의 부재, 감축 수단의 실현가능성 문제, 정책이행을 위한 자금 조달방안의 미흡,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로드맵의 미완성 같은 비판에 직면해야만 했으며, 책임을 전가시켜놓은 탄소중립위원회의 해체까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과거 30년의 무책임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향후 30년의 탄소중립 약속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불신은 심각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올해에는 남한 영토를 뛰어넘어, 한반도 전체의 탈탄소 전환을 지향하는 소장파 학자와 활동가의 연구결과물이 발간될 수 있었다. 즉, 기후정의 문제를 10년 넘게 꾸준히 고민해왔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가 공동으로 『한반도 에너지 전환: 탈탄소 시대를 향한 새로운 에너지 공동체 구상』이라는 단행본을 발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지구환경문제인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시선을 한반도와 동북아라는 보다 넓은 영역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한중일과 몽골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바탕으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에너지공동체의 전망과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50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30년은 강산이 다시 세 번 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이는 인류 생존의 최대 위기이자 현안인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주에 두 번째 지구는 없고,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도 이번의 30년뿐이다. 이러한 향후 30년 대전환의 시기에,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남한 영토 안으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그 사이에 국제사회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남북한 통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한발 양보해서 분단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더라도 남북 관계의 교착상태가 지금처럼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로 시야를 넓히고, 탈탄소 사회로의 전망과 시나리오를 제시하려는 이 책의 상상력은 시의 적절하고 신선한 시도일 수 있다.

다만 저자들이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2018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화기애한 대화를 나누고, 남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 인민들에게 감동적인 연설을 낭독하던 시대적 상황이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1년도 채 안 지나서 한반도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협상의 결렬과 더불어 다시금 냉각기를 지나는 중이다. 과거 30년 동안 한반도 정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으로 완화된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다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금강산 관광 중단과 박근혜 정부에서의 개성공단 철수 같은 일련의 사태를 통해 또 다시 경직되는 관계를 되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남북관계의 일시적 냉각기는 언제, 어느 시점에서 또 어떻게 해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만 찰나의 기복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한반도 대전환의 큰 호흡을 가지고 탈탄소 사회를 고민한다면, 순간적인 남북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의 구상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주창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태양광협동조합이나 지역의 에너지 활동가,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하는 노동조합의 운동가들이 향후 30년 전망을 그려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나드는 이 책의 참신한 구상은 학계와 대학에서 후속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시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2021년 차기 대통령에 대한 후보자 선출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전환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대한민국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탈탄소 에너지 공동체의 리더로 자리매김해야 할 여야 정당의 후보자들이 특별히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손꼽히는 유력 후보자들이 기후변화, 탄소중립, 에너지전환과 관련해서 과연 적절한 지식, 진지한 정치적 의지, 체계적인 국정개혁의 로드맵 등을 갖추고 있는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선거 운동 기간만이라도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이 책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예비 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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