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2) 연구 방법
2. 연구 동향
3. 노동력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
1) 공유자원의 황폐화와 소득 감소
2) 외부인의 어장 출입과 정책적 한계
4. 노동력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요인
1) 입학단계
2) 교육단계
3) 졸업 및 해녀 입문 단계
5. 논의 및 결론
1.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현재 제주해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라 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제주도 내 현직 해녀 인구는 2,839명이며, 이는 전년도 대비 387명 줄어든 것이다. 활동 중인 해녀들의 6할 이상이 70대 이상의 고령이다(제주해녀박물관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통계포털).1) 따라서 신규해녀 충원을 통한 해녀 노동력의 재생산은 제주해녀문화의 전승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라 하겠다.
본래 해녀 노동력은 모계 승계를 기반으로 공동체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점차 해녀들은 물질 작업이 어렵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녀 승계를 꺼리게 되었고 산업화 및 교육 수준의 향상에 따라 해녀 외에도 직업 선택의 대안이 증가함으로써 자연적인 노동력 재생산 구조의 작동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신규로 어촌계에 가입하는 해녀의 수는 2021년 40명, 2022년 28명, 2023년 23명으로, 고령과 지병 등의 이유로 은퇴하는 해녀의 수에 더해 전체 해녀 수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2) 이러한 해녀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지자체와 민간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실질적인 기능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민간 부문에서 운영하는 2개의 해녀학교(「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해녀학교」)가 해녀 노동력 재생산 기능을 담당하는 유일무이한 제도적 주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민간 해녀 양성기관이 없는 동부권에도 해녀학교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경향신문, 2024.04.09.). 그렇다고 현실이 장밋빛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해녀학교에서 교육을 이수하고 졸업해도 해녀가 된다는 보장이 없고, 해녀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외에도 실제 직업 해녀로 입직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19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 졸업생은 29%, 같은 기간 「법환해녀학교」 졸업생은 30.1%만이 어촌계에 가입하여 신규해녀가 되었다.
물론 신규 해녀 양성을 비롯한 해녀 노동력 재생산 이슈는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환경 변화 및 사회구조적 측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제주해녀 노동력 재생산에는 환경변화와 생산량 감소, 정책한계 등과 같은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고 그러한 구조적 요인은 노동력 재생산의 핵심주체인 해녀학교의 제도적 요인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해녀학교는 신규해녀 양성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제주해녀 노동력 재생산에 있어서 해녀학교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
본 연구는 “제주해녀의 노동력 재생산 연구 방향”3)의 후속 연구로써 선행연구에서 제시된 제주해녀학교 연구의 주제 및 분석 방향을 실제 적용한 경험적 연구이다. 따라서, 환경 변화 및 구조적 한계 내에서 노동력 재생산의 문제에 대해 제주해녀학교를 중심으로 재검토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해녀학교의 인력 양성 기능에 대해 양적으로 기술해 온 기존 연구와는 달리, 해녀학교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관계자와 해녀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 의견이 있는 현직 해녀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담을 주요 연구방법론으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해녀공동체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를 파악하여 입학과 교육, 졸업 이후에 걸친 전 과정에서 노동력 재생산 기관으로서 제주해녀학교의 기능을 심도 있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본 연구는 해녀학교의 신규해녀 양성 기능에 대해 관계자 및 현직 해녀를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통한 정성적 연구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해녀학교는 현재 신규해녀 양성의 유일한 기관으로 기존 해녀학교의 노동력 재생산 기능에 관한 측면은 입학생 대비 졸업생 수 및 어촌계 가입원 수 등과 같은 통계치를 통한 정량적 분석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해녀라는 직업은 졸업 후 가입의 과정에서 공동체의 수용 의지, 상호작용 등이 영향을 주며 ‘물질’ 작업의 특성상 공동체 진입 이후 적응과 갈등에도 기존 공동체 구성원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이종호 등, 2024). 전통적으로 공동체 내부에서 담당하던 이러한 교육과정이 현재는 해녀학교에서 수행되고 있는바, 해녀학교로의 입학 및 교육의 전 과정이 해녀가 되는 것뿐 아니라 해녀의 삶을 지속해서 유지하고 싶은 감정과 의지 및 여건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처럼 정서적으로 깊이 있는 주제, 해녀라는 직업을 중심으로 각자 살아가는 삶을 통한 시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자료수집이나 통계치를 통한 양적연구를 통한 설명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양경숙, 2019).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기존 자료를 통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가능한 한 그대로 기술하여 경험의 실재와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강점이 있는 심층 면담을 통한 질적연구의 방법을 택하고자 한다.
심층 면담에 사용한 문항은 본 연구의 선행 연구 성격을 가진 이종호 등(2024)에 따라 표 1과 같이 구성하였다. 심층 면담의 대상은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교감, 법환해녀학교 교장,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 재학생,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 졸업생, 법환해녀학교 졸업생, 조천리 어촌계 현직 해녀 2인이다. 면담은 2024년 5월 17일부터 7월 15일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1인당 평균 면담 시간은 1시간 내외이다(표 1).
표 1.
심층 면담 대상자 인적 사항 및 주요 질문 내용
면담 대상4) | 인적 사항 | 면담 일시 | 주요 질문 내용의 범주 | |
해녀학교 운영 관계자 |
•법환해녀학교 교장 /법환동 어촌계 계장 |
2024. 7.05.~06. | 입학의 과정 | 입학생 선발 기준 |
교육과정 | 교육 프로그램 내용, 중점 사항, 운영상 어려움 | |||
•한수풀해녀학교 교장 /귀덕2리 어촌계 계장 | ||||
졸업 후 관리 | 해녀 입직의 상황, 졸업 후 적응 및 정착 도움 | |||
해녀학교의 역할 | 사회적 네트워크의 플랫폼, 문화전승, 기술학습 등 | |||
•한수풀해녀학교 교감 | ||||
해녀학교 졸업생 |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2017) /현 해녀박물관 연구원(30대) |
2024. 5.17.~18. | 입학의 과정 | 입학 동기, 입학 장벽 |
교육과정 | 입학 동기에 기준한 만족의 정도 | |||
졸업후 관리 | 해녀 입직의 상황, 졸업 후 적응 및 정착 도움 | |||
•법환해녀학교(2017년) /현직 해녀(40대) | ||||
해녀학교의 역할 | 사회적 네트워크의 플랫폼, 문화전승, 기술학습 등 | |||
해녀학교 재학생 |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2024) /현 게스트하우스 운영(40대) |
2024. 7.15. | 입학과정 | 입학 동기, 입학 장벽 |
교육과정 | 입학 동기에 기준한 만족의 정도 | |||
해녀학교의 역할 | 사회적 네트워크의 플랫폼, 문화전승, 기술학습 등 | |||
현직 해녀 | •조천리 해녀(74세), 경력 43년 |
2024. 7.05. | 해녀 입문의 과정과 학습의 방법 | |
해녀직업과 해녀공동체 유지의 어려움 | ||||
•조천리 해녀(70세), 경력 53년 | ||||
신규해녀에 대한 입장 |
2. 연구 동향
제주해녀학교를 분석한 선행 연구는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 모두 매우 부족하다. 해녀학교를 직접적인 분석 대상으로 한 연구는 조인애(2019)가 거의 유일하다. 이 연구는 「한수풀해녀학교」의 생활 세계를 이해하고 해녀학교가 어떤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해녀학교를 통해 어떤 배움을 얻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연구자는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에 입학하여 참여관찰과 심층 면담의 연구방법으로 배움의 장으로서 물리적・관계적인 해녀학교의 기능과 입학생들의 배움의 동기, 물질 실습과 이론 수업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의 분석, 배움의 결과로서 전통 생태지식의 습득과 공동체 문화 체득 방법, 불턱의 기능, 이주 적응도와 사회적 네트워크 만족도 등을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해녀학교는 생물문화 다양성 보존하고 확대하는 역할을 하며 공동체 의식과 공유자산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양경숙(2019)의 연구는 해녀를 직업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직업 전승 방법의 하나로 해녀학교의 역할에 대해 논함으로써 그간의 해녀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차별성이 있다. 연구에서는 전, 현직 해녀와의 심층 면담을 통해 해녀 고유의 직업훈련과정을 파악하였는데, 1970년대 이후 제주해녀는 해녀수의 급감 문제에 직면하는 ‘직업 전환기’에 이르렀으며, 201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이후 이와 같은 문제해결을 위한 각종 복지 및 지원정책과 해녀학교를 중심으로 한 직업 전승 과제를 기술하였다. 이에 직업교육의 내용, 직업 능력 개발 프로그램의 비중, 입학생・졸업생의 수, 졸업 후 어촌계 가입자 수, 어촌계 가입 조건, 훈련 수당 등을 분석 요소로 직업교육 담당 기관으로서 해녀학교의 교육내용을 분석하였다. 해당 연구는 ‘직업인으로서 해녀’에 대한 연구로, 해녀 노동력 재생산에 기여하는 방안 중 직업양성 기관의 측면에서 해녀학교의 역할에 접근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밖에 제주 해녀문화에 대한 보존과 관리 및 활용 등을 주제로 한 연구에서 보존 및 관리 방안 중 하나로 해녀학교를 언급한 연구가 있다(고은솔, 2018; 이선화, 2016; 조소현, 2019). 조소현(2019)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이후 제주 해녀문화의 보호조치 상황에서 제정된 정책들의 효과와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하여, 해당 정책 중 하나로써 해녀학교 두 곳의 교육내용과 교육과정을 소개하였다. 고은솔(2018)은 제주 해녀문화 유산관리 체계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발전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로 민관산학 네트워크 형성과 전승공동체 지원 측면에서 해녀학교 운영을 지원해야 함을 강조했다. 연구는 해녀학교가 소속된 어촌계 면담 조사를 통해 운영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두 곳의 해녀학교 수업내용 분석을 통해 「법환해녀학교」의 경우 비교적 인식 변화에 힘쓰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선화(2016)는 제주해녀의 생애사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제주해녀 문화콘텐츠 활성화를 강조하였다. 연구에서는 제주해녀의 문화콘텐츠 사례 중 인프라 사업에 해당하는 해녀박물관, 「한수풀해녀학교」, 「법환해녀학교」를 소개한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해녀학교」 각각의 설립 배경과 교육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 전문 해녀 양성의 측면에서 「한수풀해녀학교」에 대해서는 기본기 습득과 경험 축적 등 해녀 체험에 치우치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적했지만, 「법환해녀학교」의 경우 물질교육과 해녀문화에 대한 이론교육, 현장 중심의 실무를 교육하는 전문적인 해녀교육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평가하였다.
덧붙여 노동력 재생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해녀학교는 직업훈련기관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본 연구의 선행적인 성격을 가진 이종호 등(2024)에 따르면, 직업훈련기관에 관한 대다수의 연구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의 내용과 효용성을 정량적으로 평가한 연구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존 연구는 일반적인 산업 노동시장 투입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과 노동력 양성의 방법, 투입되는 시장의 성격, 직업의 적응 및 유지 조건, 지식 전달의 체계 등에서 그 성격을 달리하는 해녀양성 교육기관의 평가에 적용하기는 한계가 있다.
선행 연구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녀학교의 설립 목적에 근거하여 해녀 노동력 재생산과 같은 경제적 부문에 해녀학교의 역할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달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다. 기존 연구에서 언급되는 해녀학교의 교육과정 소개는 정리의 수준에 그쳤으며, 해녀학교의 직업훈련 기관의 역할보다 공동체 문화 및 지식 전승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부족한 해녀학교의 경제적 기여 즉, 노동력의 지속적인 수급에 대한 기능과 역할, 한계점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제주해녀 노동력 재생산과 암묵적 지식 전달의 전통적인 방식인 모계 승계와 해녀공동체를 통한 암묵적 지식 전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 신뢰 등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공적 기관인 해녀학교에서는 어떻게, 어느 정도 구축되고 있는지에 관한 연구가 없다. 사회자본은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높이고 암묵적 지식 전달을 가능하게 하며 해녀라는 직업의 적응과 지속, 해녀공동체의 유지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전통적인 학습의 과정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구축된 사회자본을 해녀학교의 교육 주체와 프로그램 등이 어떤 방식을 통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이종호 등, 2024).
3. 노동력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
오래전부터 해녀들의 어로 방식은 지속가능 어업의 한 모델로서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측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져왔으며, 그중 경제적 측면은 일찍부터 제주도 경제의 전반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주목을 받아왔다(조철기 등, 2023). 그러나 2023년 기준 해녀 1인당 연간 소득은 683만 5천 원에 불과해, 근래에 와서는 해녀 물질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해녀공동체의 자원 공유와 보존, 유지 등에 대한 규범과 질서를 파괴하는 외부의 침입 역시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사실, 이러한 외부적 상황으로 인한 노동력 재생산의 한계 요인은 해녀학교나 해녀공동체, 해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다만, 이미 훼손된 자연환경,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소득의 감소, 자원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의 침입과 공유자원의 훼손, 직업으로서의 위험부담 등 현재 처한 환경에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는 어떠한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다(고은솔, 2018).
1) 공유자원의 황폐화와 소득 감소
해녀공동체의 공유자산인 바다 자원의 생산력 감소는 공동체 유지 및 노동력 재생산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연발생적인 자원의 황폐화는 공유자산의 자치적 ‘관리’의 문제를 넘어 ‘존립’의 문제를 야기한다(김민주, 2015). 인터뷰 대상자들은 신규해녀들이 늘어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자원과 소득의 문제라고 했다.
“자원문제야. 진짜 거의 한 열흘, 길면 스무날은 하잖아. 근데 이틀 갔다 돌아왔어. 알맹이가 하나도 없어. 이게 물질하고 올해 처음. 우리 어촌계는 우뭇가사리가 엄청 많이 나. 그게 먹이야. 근데 올해는 3분의 1도 안 났어요.” (현직해녀 O씨)
공유자산이 자치적으로 관리되는 이유는 자산이 주는 이득 때문인데, 자원의 황폐화로 인한 생산력의 감소는 이에 대한 노동력 유인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김민주, 2015).
“현재 해녀들 수입도 많이 줄었지. 지금 1년에 평균 낸 게 6백만 원인가 되더라고. 성게가 아니면 6백만 원도 안 될걸? 성게도 올해는 작년의 3분의 1밖에 안 나왔어.” (한수풀해녀학교 교장)
과거 해녀들은 물질만으로 자식들 교육, 생계유지, 재산증식까지도 가능했다. 한 면담 대상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물량 부족으로 수협에서 금채 기간을 더 오래 두어서 한 달에 많이 작업하면 6일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현재 제주도 출신 해녀 대부분이 밭농사, 과수원 등에 수입을 의지하고 있다.
“옛날은 밭에서 수입이 별로 안 나왔거든. 근데 지금은 밭이 더 많아. 반농반어가 아니고 ‘어’는 한 10%밖에 안 돼. ‘농’이 많지. 아마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만. 한 세 군데 외에 해녀만 해서 먹고사는 사람은 적고 거의 다 농업.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야.” (한수풀해녀학교 교장)
그러나 제주도 외부에서 온 신규해녀들은 현직 해녀처럼 농사를 병행하거나 남편의 과수원 일손을 돕는 등의 일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일자리를 추가로 구해야 하는데 물때라는 게 규칙적이지가 않고 해녀공동체 생활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할 공동작업들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발생하기도 해서 아르바이트조차 병행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6일 나가면 상군 같은 경우에는 소라 150kg, 200kg을 잡기도 하는데 신규해녀들은 많이 잡아봐야 20kg. 그거 잡고 생활할 수가 없잖아요. 신규해녀들은 물질 외에 남는 기간은 알바를 하던가 뭐든 해야 될거 아니요. 직업 해녀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신규해녀들도 별문제가 없지만, 물질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알바도 잘 없으니까 상당히 힘들어요.” (법환해녀학교 교장)
그래서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현직 해녀들은 신규해녀들에게 해녀를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 없다고 했고 유인을 위해 마을 내 해녀들의 부수입원이 되는 해녀식당 등의 사업을 원하고 있었다. 또 신규해녀들에게 다른 직업을 병행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해녀학교 입학생들의 입학 동기 및 목적도 변질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즘 입학생들은 해녀를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 아닌, 세컨드 직업으로, ‘부심’이라고 하지. 막연한 로망? ‘나 해녀야’라고 하면서 해녀와 관련된 사진, 글이나 그림, 해녀라는 콘텐츠로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친구들이 제법 많아요.” (한수풀해녀학교 교감)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당시 해녀에 적용한 기준인 ‘생업에 기반한’을 전제로 봤을 때(고미, 2023), 해녀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해녀학교를 통해 신규해녀를 배출하는 것에 앞서 그들을 유인할 수 있는 유인책으로써 해녀공동체에 속한 ‘바다’에서 어떤 형태로든 ‘물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소득이 보존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2) 외부인의 어장 출입과 정책적 한계
현직 해녀들은 자연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공동체 외부인의 공동어장 침입 역시 소득 감소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다 어장은 대표적인 공유자산이다. 공유자산은 권리를 지닌 사람에 한정해 ‘비배제성’과 ‘경합성’을 특징으로 한다(이종호 등, 2023). ‘비배제성’은 공유자산은 다수의 주체가 공유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므로 잠재적인 사용자들을 배제하기 불가능한 특성을 의미하여 ‘경합성’은 공유자산에 대한 개인의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다른 사용자들의 사용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최재송 등, 2001). Hardin(1968)은 많은 사람이 한정된 공유자산을 공동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황폐화와 같은 비극이 나타난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원의 사유화와 강압적 장치의 마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유화 과정의 어려움, 중앙통제에 의한 관리 등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한계로, 이후 Ostrom(2003)에 의해 대안적 모델로서 공동체 자치적 관리 모델이 제시되었다. 공동체 자치적 관리 모델은 사용자들의 자발적 합의에 따른 황폐화 극복 방법으로(김민주, 2015), 제주해녀 공동체는 공동어장에 대한 대표적인 공동체 자치적 관리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공유지의 특성, 즉 ‘비배제성’과 ‘경합성’에 대한 불안감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이종호 등, 2023) 이상의 대안들은 ‘비배제성’과 ‘경합성’에 대한 사용자의 불안감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 제주해녀 공동체는 공유지로의 외부인의 침입으로 인해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도에서는 업(業)으로 하지 말고 레저로 하라고 했는데 거의 다 업으로 해서 당근 마켓에도 올리고, 자기네끼리 어느 포인트에 뭐가 잘 나오는지 다 공유하면서..” (현직해녀 O씨)
수산업법 제8조 ‘마을어업 등의 면허’에 따르면 ‘마을어업은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는 어업인의 공동이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어촌계나 지구별 수산업협동조합에만 면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국가법령정보센터) 제주도에서는 ‘해루질’5)을 놓고 벌어지는 해녀와 비어업인 간 갈등 해결을 위해 ‘제주도 비어업인의 수산자원 포획・채취 관리기준 조례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제주일보, 2024.7.25.). 그러나 현재의 법과 규제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해루질하는 사람들은 이게 불법이 아니고 합법이라고 해. 마을 어장 아닌 데는 입어를 할 수 있으니까. 장비도 규제가 있어요. 고리 긴 거, 2개짜리는 할 수 없고, 또 웨이트(납을 이용하여 잠수시 도움을 받는 것)는 할 수 없고. 그래서 라이트용 배터리를 허리에 차고 들어가. 그게 딱 납 무게야. 교묘하게 법을 피하는 거지.” (현직해녀 O씨)
“수산법에 나와 있어. 항구 사이에 몇백 미터 한계를 정해서, 여기는 네 것도 내 것도 아니라. 그래서 ◎◎리에서, (외부인이) 들어가서 해루질을 했지. 그런데 거기 들어갈 때 우리 어촌계 어장으로 들어가야 되거든? 비행기 타고 들어갈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허가 난 곳에서만 잡냐? 아니지. 견물생심이라..(보이면) 잡지. 그것 때문에 재판하고 몸싸움하다 물에 떨어지고 살인미수죄로 고발하고 아주 난리가 났었어.” (한수풀해녀학교 교장)
Berkes(1986)는 공동체 자치 관리에 관한 터키 소규모 해안어업 비교 연구에서 세 곳의 성공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의 패턴 중 하나로, 협동조합의 공식 규정 및 지역의 행정가 또는 경찰과 같은 행정 권한의 사용을 꼽았다. 즉 공동체 자치에 의해 공유자산이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지만 그러한 자발적 합의를 준수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공동체 자치 관리 모델을 제시한 Ostrom(1990) 역시 공유자산이 자치적으로 관리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7가지 기본 설계 원리(design principles)6)를 제시했는데 그 첫 번째가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로 공유자산의 경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함과 동시에 공유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의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공유자산이 관리되는데 기여한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공유자산으로부터 생산되는 이득을 불합리하게 취득하는 것을 막고 내부 사용자에게 사용 및 관리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러한 ‘입법화’의 가능성은 공유자원 이용에 있어서 외부인의 배제를 쉽게 하고 자원 이용에 대한 지역 규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외부인의 어장 출입에 대한 어촌계의 제재가 현재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동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해녀들은 외부 사용자들의 마을어장, 공유자산, 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소라는 금채기잖아요. 근데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잡아서 우리가 ‘이거 안 됩니다’하면 ‘우리 세금 갖고 너네 먹는데, 이게 너네 바당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근데 우리가 이걸 관리를 하잖아요. 우린 싸울 때 ‘너네 괭생이모자반7) 걷어낼 때 같이 관리해 봤냐’ 하지.” (현직해녀 O씨)
공유지는 만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 소유 집단 구성원이 아닌 잠재적인 사용자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공유자산에 인식에서부터 공유자산의 공동체 자치 관리체계, 제주해녀 공동체의 가치 등에 관한 부분의 인식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해루질을 하고자 하는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허가의 과정에서 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홍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 노동력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요인
「한수풀해녀학교」는 해녀들의 고령화와 어족자원의 고갈, 직업 여건의 어려움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해녀문화 전수를 목적으로 2008년 설립되었다(한수풀해녀학교 홈페이지). 설립 초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녀라는 직업군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운영되었던 「한수풀해녀학교」는 2017년부터는 신규해녀 양성을 위해 직업반을 신설하여 입문반과 직업반으로 나누어 운영해 왔다.
「법환해녀학교」는 2008년 문화관광부에 의해 법환 어촌계가 “녀마을”로 지정된 이후, 2015년 공동체 문화인 해녀문화의 보존, 전승을 위하여 서귀포시를 비롯한 5개 기관의 협약으로, 보다 전문적으로 해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양경숙, 2019; 이선화, 2016).
본 장에서는 노동력 재생산 측면에서 제주해녀학교의 ‘입학’, ‘교육과정’, ‘졸업과 해녀 입문’의 객관적 현황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에 참여하기까지’, ‘교육과정 참여 중’, 그리고 ‘교육과정 이후’ 상황에 대한 주관적 맥락을 통해 제주해녀학교가 가진 현재의 기능과 한계점을 파악하여 해녀 양성의 측면에서 제주해녀학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탐색해 보고자 한다.
1) 입학단계
(1) 입학과 선발의 과정
「법환해녀학교」는 ‘해녀를 직업으로 하고자 하는’ ‘만 55세 미만의 여성’을 대상으로 매해 35명 내외의 인원을 모집한다. 필수 지원 조건은 아니지만, 어촌계 추천자에게 우선순위를 주며, 연고지와 연령 역시 우선순위로 고려된다(법환해녀학교 홈페이지).
“1기당 33명쯤 뽑아요. 도민만 들어오면 좋은데 육지 사람이 주소만 옮겨놓고 접수를 많이 해요. 그러니 서류상 한 80% 정도는 도내 분들이죠. 그래서 우리가 서귀포 관내에 있으니까 서귀포 주소지는 점수를 좀 더 줍니다. 그다음 연령 점수는, 제가 오기 전에는 어린 분에게 제일 점수를 많이 줬는데 해보니까 이게 안 맞더라고. 젊은 애들은 체험한다 생각하고 오거든요. 그래서 가정도 있고 어느 정도 직장생활, 사회생활도 해본 30대 후반~40대 초반에 가장 점수를 많이 주도록 체계를 바꿨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다음. 지원 자격이 55세까지니까 55세까지를 제일 낮은 점수를 줍니다.” (법환해녀학교 교장)
「한수풀해녀학교」는 입문반과 직업반을 별도 모집한다. ‘만 50세 미만인 모든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입문반에 비해 직업반은 ‘해녀가 되고자 하는 여성’이라는 조건을 추가하고 ‘어촌마을에 2년 이상 거주한 자’라는 명확한 조건이 있다(조인애, 2019).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과 「법환해녀학교」는 모두 ‘해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법환해녀학교」의 경우 지원 신청서에 포함된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서 해녀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파악하지만,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의 경우, 반드시 ‘어촌계의 추천서’를 받아온 사람만 지원할 수 있다.
“직업반은 지원하면 다 뽑아요. 직업반 지원조건이 그 지역에서 2년 이상 거주하고 어촌계장이나 해녀 회장한테 추천서를 받아서 오는 건데, 어촌계 찾아가면 그냥은 안 받아주거든요. 그래서 ‘학교라도 다녀오라게’라고, 어촌계에서는 학교라도 다녀오는 성의를 보이면 이제 그때부터 너를 지켜보겠다는 그런 거죠. 그래서 추천서 받아오는 분들은 저희가 다 합격시킵니다.” (한수풀해녀학교 교감).
「법환해녀학교」는 어촌계의 추천서가 입학 시 가산점으로 작용하고,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은 어촌계의 추천서가 지원의 필수조건이다. 이것은 해녀학교가 해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해녀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입학생 선발의 공통 기준이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해녀가 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실제로 해녀학교로의 입학, 교육, 졸업 과정이 직업 해녀로 이어지기에는 어촌계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실제 신규해녀 입직에 있어서는 해녀학교보다 어촌계 영향이 크게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2) 입학 동기의 이질성
「한수풀해녀학교」 모집 안내에 따르면 입문반 졸업 후 직업반으로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입문반 역시 직업 해녀로서의 입직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각 과정에 지원하는 지원자들의 입학 동기는 달라 보인다. 조인애(2019)는 해녀학교에 지원하는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등 해양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함, 둘째 제주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실제 면담의 결과 커뮤니티 형성 방법은 ‘직접 해녀가 되는 것’과 ‘해녀학교에서의 인맥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뉠 수 있었고 외에 해녀문화에 대한 학습도 지원동기로 꼽을 수 있었다.
“물질 기술을 배우겠다는 것보다는, 사람들하고 인맥을 형성하고 친숙한 유대관계도 필요했고 사실 육지(출신) 사람들끼리라도 편하게 지내면 좋은데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지금 34명 중에서(직업반, 입문반 전체) 학교 근처나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서 3, 4명밖에 안 돼요. 다 시내권에. 일 때문에 온 친구들이 수업받고 있고, 저는 이 동네에 진심으로 스며들고 싶어서 이 지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가 해녀였거든요.”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 재학생)
“그러니까 한 반에 조가 한 6개 정도 있어요. 그러면 그 조끼리 카톡방을 만들거나 해서 네트워크가 형성돼요. 사실 제주도도 조금은 폐쇄적이고 외지 분들은 지연, 학연 등이 형성될 수 없으니까 해녀학교라는 공감대로 모여서 연결을 확대해 가시는 것 같아요.”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 졸업생)
입문반 졸업생은 인터뷰에서 입문반 지원자 중 다수는 제주도 및 해녀 문화에 대한 학습이 지원의 동기라고 했다.
“해녀 문화를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고 그래서 해녀학교에 가면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원했던 것 같아요. 제 추측으로 입문반은 해녀 문화 체험을 원하는 분들이 한 80% 가까이 되는 느낌이고 직업반은 거의 이미 (어촌계와) 연결되어서 해녀를 준비하는 분들.”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 졸업생)
그런데 일반적으로 공동체(community)는 주어진 공간을 기반으로, 구성원이 갖는 다른 사람들과의 유사성에 대한 인식, 인지된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성,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유지하려는 의지 등을 바탕으로 한다(권경희, 2019). 해녀공동체 역시 공유자원인 바다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동질적인 성격의 구성원들은 유사한 행위와 목적을 공유하며 ‘물질’이라는 특수한 작업방식으로 인해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서로 간 의존성을 유지하는 집단이다.
특히 해녀공동체는 폐쇄적 공동체이며 그 안에서 전달되는 지식은 공동체 내에서만 공유되는 ‘암묵적 지식’으로 이러한 지식은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 간 긴밀한 정보 공유, 접촉, 경험, 훈련 등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이종호 등, 2024).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맺고 신뢰를 통해 사회자본을 형성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는 개인의 안전과 안정감, 적응 및 정착에 영향을 주는데, 전통적인 해녀 양성의 방식에서는 훈련과 교육의 과정 및 노동시장으로의 실제 투입이 해녀공동체라는 하나의 조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신뢰 및 사회자본을 형성, 직업 적응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나 제주해녀학교의 등장은 교육과 훈련을 위한 기관과 실제 투입되는 노동시장을 분리시켰고, 결국 해녀로서의 직업에 적응하고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과정에서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녀학교 내 입학생들 간에는 공유된 공동의 목표, 구성원 간 동질성이 부족해 보인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그분들은(입문반) 수업 끝나면 다시 가잖아요. 계속 이렇게 3, 40명이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은데 연결고리가 조금 부족해요. 저는 진심인 친구들이 입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호기심에 왔다는 것에 놀랐어요. 지금은 다 같이 잘 지내지만, 그냥 체험하고 갈 거야라고 하니까 좀 달리 보이더라구요.”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 재학생)
“동기들과는 거의 연락을 안 해요. 왜냐하면 다들 생업이 따로 있으니까. 제주도에 잠깐, 1년살이 하신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은 변호사였는데 다이빙에 관심 있어서 오셨고. 직업반과 입문반이 같은 해 입학해도 같이 모임을 하지도 않고요, 커리큘럼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은데 같이 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에요.”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 졸업생)
이러한 상황에서 해녀학교 내에서 학생들 간의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이것은 교육과정을 통합해서 운영하고 있으나 입문반과 직업반을 별도의 조건으로 선발하고 있는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한편, 해녀학교에서의 실기 수업은 강의를 담당하는 현직 해녀 삼촌들과 기본적인 네트워크 형성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상의 유대관계는 전적으로 학생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2) 교육단계
「법환해녀학교」는 총 80시간 중 실습강좌에 45시간을 배정하고 그중 43시간이 해녀 물질 수업이다. 이론강좌는 제주, 제주해녀 문화, 제주해녀의 물질, 잠수기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의 경우, 원래 직업반과 입문반의 수업 시간과 내용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직업반은 일주일에 두 번 수업하고 수업 시간도 입문반의 두 배였으나(양경숙, 2019) 현재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업반과 입문반의 수업은 통합 운영된다. 전체 50시간 내외의 교육시간 중 31시간을 실습강좌에 배정하고, 이론강좌는 「법환해녀학교」와는 달리 제주해녀 문화에 대한 이해보다는 제주문화 그 자체 혹은 제주어업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관련 이론 수업은 1회에 그쳤다. 현직 어촌계 및 해녀회와 교류목적으로 개설된 ‘학교생활 중간 점검’, ‘운동회’, ‘해녀들과의 대담’은 일부 다른 수업으로 대체되거나 대체될 계획이었다(표 2).
표 2.
해녀학교의 교육과정(2024년)
출처: 법환해녀학교 홈페이지, 한수풀해녀학교 내부자료8)
“이렇게 수업하고 아마 내년에 또 바뀔 거예요. 운동회는 빼고 성게 들이는 행사가 있어요. 멀리 있는 성게를 잘 크는 곳으로 옮기는 그 작업을 아마 27일 할 것 같아요.” (한수풀해녀학교 교감).
교육과정 중 수업이 변경되거나 해마다 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의 부족과 강사 섭외의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예산 부족으로 입학생 수를 줄일 뿐만 아니라, 인문학,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주제의 강좌와 입문반, 직업반 구분하여 진행했던 수업도 직업반 수업 시수를 줄이고 통합 운영하게 되었다. 교육 후 인턴과정은 6회로 제한되어 있고 또 실습강좌를 맡는 현직해녀들에게 강사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족한 부분은 어촌계 자체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실습과 이론강좌의 중요성에 대해서 경력이 오래된 현직 해녀들과 재학생들은 학교에서의 실습강좌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실제 작업 현장에서의 실습 또한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학교 수업을 통한 실습 교육이 실제 노동시장 즉, 어촌계 해녀로 투입되어 생산활동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했고, 인턴과정과 같이 졸업 이후 실제 해녀공동체에서의 반복적인 실전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론 수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녀학교 운영자나 해녀학교 졸업생들은 제주해녀 공동체 문화에 대한 이론 학습의 필요성 또한 강조한다.
“해녀 신입분들이 폐쇄적인 해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 수업이 있으면 좋겠어요. 폐쇄적인 문화를 극복하고 이 문화를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해요.” (법환해녀학교 졸업생/신규해녀).
“(교육을 통해) 폐쇄성, 공유재산의 이해를 해녀들의 정체성으로 인정하는 데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배움없이 닥쳤을 때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많으면 좋겠어요.”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 졸업생)
이에 대해 해녀학교는 교육과정을 통해 제주문화, 제주해녀 공동체에 대한 공식적 교육을 수행함으로써 실제 해녀공동체 내에서 적응과 정착에 도움을 주고자 함과 동시에 해녀학교 내 운영자, 강사인 해녀들이 비공식인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 접근할 수 있는 노하우, 해녀공동체의 속성 등을 지속적이고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3) 졸업 및 해녀 입문 단계
해녀가 되고자 제주해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해녀학교에서 교육을 이수하고 졸업을 한다고 해도 해녀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림 1은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해녀학교」 졸업생 수 추이를 보여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법환해녀학교」는 2015년 설립 이후 당해부터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그 수에 있어서 30명 내외로 큰 변화는 없다. 「한수풀해녀학교」 전체 졸업생 수는 「법환해녀학교」 졸업생 수보다 많다.
그러나 「한수풀해녀학교」는 2008년 설립되어 2017년 직업반과 입문반으로 구분하여 입학생을 받고 있으며 직업반, 입문반 각각의 졸업생 수는 표 3과 같다. 「한수풀해녀학교」는 입학생들의 목적으로 볼 때 직업반의 성격이 「법환해녀학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과 「법환해녀학교」를 비교하면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의 졸업생 수가 훨씬 적은 편이다.
표 3.
2017년 이후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입문반 졸업생 수
단위 : (명) | |||||||
구분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전체 | 57 | 67 | 54 | 54 | 52 | 48 | 54 |
직업반 | 15 | 15 | 15 | 18 | 21 | 18 | 13 |
입문반 | 42 | 52 | 39 | 36 | 31 | 30 | 41 |
그림 2는 2015~2022년까지 「법환해녀학교」 졸업생 수와 어촌계 가입 해녀 수를 비교한 그래프이다. 해당 기간 「법환해녀학교」 졸업생 241명 중에서 어촌계에 가입한 해녀의 비율은 29.5%(71명)에 불과하다.
여타 도시 및 농촌공동체와는 달리 어촌공동체는 바다라는 공유자원에 의존하면서 공동으로 생산, 분배하고 함께 관리하는 등 협동을 목적으로 한 ‘어촌계(契)’의 형태를 발생시켰다. 이에 어촌공동체는 마을어장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어업권을 갖는 법률적 공동체임과 동시에, 이익의 공동생산과 분배를 위한 경제적 공동체이자 특정 지역성과 내부 작업 조직, 협력과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적 공동체의 특성을 가진다(김권호・권상철, 2016; 김언상・원도연, 2022). 교육과정의 경험 이후 직업 해녀가 되는 길에서의 어려움은 대부분 이러한 어촌공동체의 독특한 성격에 기인한다. 본 장에서는 교육과정 이후 해녀공동체로의 입문과 공동체 입문 후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해녀공동체의 진입장벽
해녀 수의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제주에는 해녀학교가 설립되었으나, 해녀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해녀가 된다는 보장이 없고, 해녀가 되는 절차 역시 쉽지 않다(조인애, 2019). 해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촌계의 계원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일정 기간 해당 어촌계 구역에 거주해야 하며 이후 수협 이사회와 해당 어촌계 총회를 통해 승인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김경돈・류석진, 2011; 양경숙, 2019). 또 규모는 조금씩 다르지만, 자원을 공유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각각의 어촌계는 출자금 명목의 공동의 재산을 모아 두고 있는데, 이에 신규해녀의 경우 가입 시 출자금 명목으로 수백만 원이 소요된다. 신규해녀들의 이러한 비용 부담 조건은 수긍되기도 하지만 신규해녀에게 가입 출자 금액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엄밀히 따지면) 가입비는 아니지. 현재 어촌계가 가진 재산에 대한 1/N 이거든. 만약에 재산이 1억이고 10명이면 한 사람당 천만 원씩이잖아. 여기 한 사람이 더 들어오면 9백만 원은 내고 들어와야지. 이걸 가입비라고 하고 너무 많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 실제 무슨 일이 생기면 재산을 처분해야 되는데.” (한수풀해녀학교 교장)
“출자금은 나중에 자기가 찾아오긴 한다지만, 젊은 애들이 무슨 돈이 있어. 생계 유지비 월 50만 원씩 받으면서 하는데 출자금 8~9백만 원 내버리면 뭘 먹고 살아.” (법환해녀학교 교장)
어촌계 가입 시 들어가는 비용 부담 요인 외에, 어촌계와 해녀공동체가 소득 배분에 따른 수입 감소를 걱정해서 그동안 신규 인력의 가입을 꺼려온 것도 주요한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젊고 유능한 신규 인력을 받아들여 어촌계 활력을 높이고 신규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등 해녀공동체 특유의 폐쇄성을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진금주, 2019). 심층 면담을 한 현직해녀들도 젊은 신규해녀의 유입을 위해 폐쇄적인 관행과 문화를 벗어 던져야 한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현재 해녀 물질만으로는 생계를 위한 수익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해녀공동체에서 식당, 해산물 판매 등의 수익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상황을 반영한 변화이다. 현직 해녀들은 그러한 사업 운영에 있어서 공동체 내 젊은 해녀들의 존재가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순수 물질 소득에 대한 분배에 있어서는 여전히 폐쇄적인 성격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어장이 좋은 형편도 아니고 황폐화되서 감태, 미역 이런 것이 바다에 하나도 없어요. 지금 현직해녀분들은 신규해녀 한 분이 늘어나면 자기 어장에 소라를 같이 채취해 가기 때문에 자기 물건을 빼간다고 느껴요.” (법환해녀학교 교장)
“사실 마을에서 받아준다는 느낌은 몇 군데 없어요. 얼마 전에 성게 작업하는 삼촌들이랑도 얘기 해봤는데 ‘지금도 생계유지가 잘 안 되는데 젊은 사람들이 유입됐을 때 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셨어요. 또 재작년에 젊은 해녀들을 받았던 마을에서는 ‘작업할 때 좀 늦게 들어와라’고 선을 그으셨나 봐요. 그래서 서로 간 불만이 생기고 싸우기도 하고.”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 재학생)
한편, 현직 해녀들은 직간접적인 경험이나 풍문 등을 통해서 해녀공동체에 신규해녀의 유입에 따른 부정적 효과, 예컨대 공동체 질서의 붕괴 및 내부 분열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자본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신뢰(trust)는 과거의 경험과 피신뢰자의 평판 등에 의해 신뢰수준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경험적 사건들에 의해 통계적으로 결정되는 신뢰로 동태적인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통계적 신뢰가 장기간 계속되어 결과가 내면화되면 신뢰도가 쉽게 바뀌지 않는 정태적 신뢰의 상태가 되어, 그 상태로서의 신뢰가 해당 공동체에 뿌리내리면 사회자본은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권경희, 2019).
“한림(한수풀해녀학교)에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내가 걔(신규해녀)한테 얘기했어. 하려면 최소 10년은 해야 한다고. 근데 걔는 2년은 보조금을 주니까 해녀 활동을 했던 거야. 그만두면 보조금 다 토해야 한다고 하니까 안 오더라니까.” (현직 해녀 K씨)
“이 사람을 들임으로 해서 뭔가 분란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얘를 받아서 우리한테 좋을 게 뭐가 있냐는 거죠. 사실 그들 입장에서 명맥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법환해녀학교 졸업생/신규해녀)
오래전부터 해녀공동체는 모계 승계를 바탕으로 한 폐쇄적인 공동체였다. 지금은 모계 승계의 방식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고, 또 사회・경제적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 재산 분배에 따른 출자금, 소득 분배, 공동체 분열 우려, 편견 등의 이유로 해녀공동체의 폐쇄성을 가중하는 요인들이 신규해녀의 입직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수풀해녀학교」와 달리 입학생들이 어촌계와 사전 연계가 되어있지 않은 「법환해녀학교」는 교육과정 중에 학생들이 직접 어촌계를 찾아다니거나 관리자가 각 어촌계를 찾아다니며 가입을 부탁하는 실정이다.
(2) 해녀공동체 문화의 적응
원래 해녀의 물질 지식과 기술은 공동체 내에서 상군에서 중군으로, 중군에서 하군으로 이어지는 선・후배 간 접촉에 따라 축적되는 암묵적 지식이며, 일하면서 체득한 경험적 지식을 통해 배우는 학습의 형태를 보인다. 전통적으로 해녀의 물질 교육은 어머니에서 딸로 혹은 마을 공동체 내에서 집단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양경숙, 2019).
그러나 현재 제주도에서 해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해녀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그러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데, 해녀학교의 교육 기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환경에 대한 지식을 체득하고 기술을 연마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실제 공동체 내에 투입되어 현직 해녀들과 함께 작업하는 경험의 축적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해녀학교 교육과정 종료 후 인턴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예산 문제 등으로 참여 횟수는 6회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법환해녀학교」는 현재 인턴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를 기존 졸업생 중 재모집하여 인턴 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물질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직업 해녀로서 발을 들이는데 필수조건이라고 한다면 해녀라는 직업을 유지하고 해녀공동체 내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자질은 해녀공동체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통해 함양할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제가 항상 얘기하는 것은, 기술은 가서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 어느 정도 기본만 갖고 가면. 현직 해녀들과 조업하면서 계속 늘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첫 번째는 어떻게 현직 해녀들과 대화하고 융화하느냐, 그것을 나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지.” (법환해녀학교 교장)
이에 대해 해녀학교를 졸업한 신규해녀는 이러한 적응 과정은 해녀학교의 교육과정과 관련이 없으며 졸업 후 인턴으로 투입되었을 때부터 개인의 역량에 따라 해나가야 할 몫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교육과정에는 새내기 해녀와의 간담회, 신입해녀의 삶, 해녀와의 대담 등의 수업과 제주해녀 문화에 대한 수업이 배치되어 있어 일부분 해녀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적응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해녀학교에서 교육받고 있으면서 정착한 마을 어촌계의 해녀공동체에서 수시로 일손을 돕고 있는 해녀학교 재학생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일단은 학교에서 그런 것들(해녀공동체 문화)을 배우고 기본적인 것을 알고 갔기 때문에 사실은 조금 도움이 됐죠. 왜냐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거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기본적인 베이스는 학교에서 줬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 재학생)
따라서 공동체 문화 적응에 있어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는 하나,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해녀학교에서의 교육과정과 생활이 담당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관리자와 학생 모두 교육과정 중에 해당 부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5. 논의 및 결론
본 연구는 제주해녀 노동력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현재 제주해녀 학교의 노동력 재생산 기능에 대해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훼손된 자연환경, 소득의 감소, 공유자산으로의 공동체 외부인 침입과 정책적 한계 등의 구조적 요인은 신규해녀의 유입을 막고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바다 환경의 변화는 수산물 생산량을 감소시켰고 환경파괴로 인한 책임은 공동체에 분배되어 해녀공동체는 조업일수에 대해 제약받게 되었으며 이것은 또다시 소득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공유자산인 마을어장에 대한 외부인의 잦은 침입과 그로 인한 분쟁은 소득의 감소뿐만 아니라 공동체 및 직업 유지에 대한 의지마저 약화시켰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해서는 정책 및 제도의 한계와 공유자산에 대한 인식 부족을 문제로 꼽았다. 기본 소득이 보장되지 못함에 따라 현직의 해녀들은 다음 세대에게 해녀라는 직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도 못했고 해녀학교 졸업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일회성 금전적 지원보다는 ‘물질’이라는 해녀의 근본적인 직업 행위에 따르는 수입의 보장을 원하고 해녀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을 원하고 있다.
현재 처한 이러한 환경에서 해녀학교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어떠한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입학과 교육, 졸업 이후에 걸친 전 과정에서 노동력 재생산 기관으로서 제주해녀학교의 기능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입학의 단계에서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과 「법환해녀학교」는 모두 ‘해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한수풀해녀학교」 직업반의 경우, 반드시 ‘어촌계의 추천서’를 받아온 사람만이 지원가능하다. 「법환해녀학교」에서 ‘어촌계의 추천서’는 필수 지원 요건은 아니지만 가산점의 요소이며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해녀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파악한다. 이는, 특히 「한수풀해녀학교」의 경우, 입학 전 쉽지 않은 ‘어촌계의 추천서’라는 한 단계의 조건이 더 존재해 이것이 입학의 장벽이 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교육 이수 후 어촌계로의 진입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님을 암시한다. 또 「한수풀해녀학교」의 경우 직업반과 입문반으로 분리하여 선발하기 때문에, 「법환해녀학교」의 경우 ‘어촌계의 승인’과 같이 미리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특별한 지원조건이 없기 때문에 두 학교 모두 입학생들의 입학 동기에 이질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해녀공동체의 존속과 해녀라는 직업의 유지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을 방해한다.
둘째, 교육의 단계에서는 두 학교 모두 실습강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습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학교에서 수업으로 진행되는 실습 외에 해녀공동체에 소속되어 해녀들과 짝을 지어 물질하는 ‘실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인턴과정으로 마련되어 있으나 횟수가 매우 제한적이고 일부 해녀공동체에서는 인턴 해녀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한수풀해녀학교」는 직업반과 입문반을 따로 모집하나 수업을 통합하여 운영한다. 이로 인해 직업반의 수업 강좌 수는 줄어들었으며 통합하여 운영함에도 직업반과 입문반은 서로 다른 입학의 목적으로 인해 과정 중에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강좌는 실습강좌에 비해 적은 시간이 할애되어 있지만 교육생, 신규해녀는 이론강좌가 해녀공동체의 적응, 해녀문화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다만 「한수풀해녀학교」의 경우 해녀문화나 해녀공동체에 대한 주제보다 전반적인 제주, 제주의 역사 등을 주제로 수업을 구성하고 있어 실제 해녀로서 공동체에 입문한다면 적응에 있어서 구체적인 도움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졸업 및 해녀 입문의 단계에서는 어촌계와 해녀공동체의 폐쇄성이 가장 큰 진입의 장벽으로 보인다. 어촌계는 바다라는 공유자원에 의존하면서 공동으로 생산, 분배하고 함께 관리하는 등 협동을 목적으로 하며 이러한 어촌공동체의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계원 등록에 있어 거주의 조건이 존재하고 절차는 까다로우며 비용 또한 발생한다. 또 어촌계와 해녀공동체가 소득 배분에 따른 수입 감소의 우려로 그동안 신규 인력의 가입을 꺼려온 것도 사실이다. 비록 최근 신규 인력을 받아들여 어촌계 활력을 높이고 신규 사업들을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등의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이는 새로운 어촌계 수익 사업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의도일 뿐, 순수 물질 소득에 대한 분배에 있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면을 보인다. 폐쇄적인 태도는 직간접적인 경험이나 소문 등을 통해 더욱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규해녀에 대한 과거 경험과 평판으로 인한 신뢰의 결과가 내면화되면 신뢰도가 쉽게 바뀌지 않은 상태가 되고 그러한 상태로서의 신뢰가 공동체에 뿌리내리면 전반적인 해녀공동체에 사회자본이 형성되기 어렵다.
제주해녀문화를 유산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 해녀문화와 해녀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은 해녀의 존재이다. 이에 제주해녀공동체가 계속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또한 제주해녀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해녀의 존재 즉, 신규해녀의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두 곳의 해녀학교가 그 설립 목적에 부합하여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 또한 필요하다.
먼저, 해녀활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생업으로서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경제적 수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적 수익은 해녀문화에 대한 가치, 그로 인한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녀의 기본 행위인 ‘물질’로 인한 수익이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변화된 환경에서도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종자의 개발, 해녀에 의해 채취된 수산물의 가치가 보존되는 유통, 판매 방식, 양식 등과 접목한 ‘물질’의 새로운 형태 등 새로운 수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해녀공동체의 개방성이 높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규해녀, 현직해녀 상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접촉과 대면의 경험이 상당히 중요하다. 물질에 대한 기본 기술과 해녀문화와 공동체 규범 및 관습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학습된 학생들과의 접촉의 기회를 늘이고 긍정적 경험을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해녀학교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입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체험이나 해녀문화 학습 등과 같은 기능은 별도 운영하고 해녀양성을 목적으로 운영하여 입학생들 간 교육 목적의 동질성을 높여 해녀학교가 교육과정 중에서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이후 해녀 입문과 그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해녀 네트워크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