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지리학회장을 역임한 권용우 성신여대 지리학과 명예교수가 아홉 권으로 구성된 <세계도시 바로 알기>를 펴냈다. 2021년 3월 제1권(서부 유럽, 중부 유럽)을 시작으로 2024년 2월 제9권(말, 먹거리, 종교)을 발간했다. 젊은 연구자도 하기 힘든 일을 70대 중반 노학자가 연작(連作) 형식으로 펴냈으니 한국 지리학계의 큰 성과임에 분명하다. 저자가 펴낸 <세계도시 바로 알기>는 한국판 <총, 균, 쇠>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대중적 지리서이다.
필자가 전남대에 재직할 때, 필자의 교양 수업(분쟁의 세계지리)을 듣는 학생들에게 <총, 균, 쇠>를 읽도록 했다.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총, 균, 쇠>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왜 어떤 민족은 다른 민족의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되었는가? 유라시아인이 세계의 부와 힘을 독점한 이유가 무엇인가? 등의 지구적 불평등 문제를 지리학・생물학・인류학・역사학・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통해 접근해 문명의 생성과 번영의 수수께끼를 밝혀 학생들의 지리관을 함양시키기 때문이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총, 균, 쇠>를 읽도록 강요하면서, 미국 워싱톤포스트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필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했던 <총, 균, 쇠>와 유사한 지리서가 한국에는 왜 없을까? 한국 지리학계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내공을 가진 지리학자가 정녕 없는 것인가? 대한민국 수재들이라고 자부하는 서울대 출신 지리학자들은 왜 그런 역작을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등의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권용우 성신여대 지리학과 명예교수가 <총, 균, 쇠>와 필적할 만한 대작(大作)을 펴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을 ‘총, 균, 쇠’로 요약해 설명했다면, 저자는 인간의 삶의 터전인 도시의 문명 변천은 ‘말(Language), 먹거리(Industry), 종교(Religion)’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세계도시 바로 알기>는 <총, 균, 쇠>에 비견할 만한 지리서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제1권에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서부와 중부 유럽 국가를 다룬다. 영국이 해양 강국으로 성장한 과정과 친환경적 도시(레치워스와 웰윈, 도크랜드와 밀턴 케인즈, 베드제드), 프랑스의 비옥한 땅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에서 문명을 구가한 주요 도시(파리, 칼레, 보르도, 샤모니, 마르세유, 니스 등),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주도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독일의 지방 중심도시(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뮌헨, 프라이부르크, 슈투트가르트) 등은 비교적 쉽게 설명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용이하게 한다.
제2권은 북부유럽의 노르딕 5국과 발틱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다룬다. 덴마크 코펜하겐, 스웨덴 4대 도시(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웁살라), 핀란드 헬싱키, 아이슬람드 레이캬비크 등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3권은 남부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을 주로 다루고, 발칸반도 9개 소국도 언급한다. 이탈리아의 로마,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스페인의 주요 지역 도시(톨레도, 그라나다, 말라가, 빌바오) 이야기는 흥미롭다. 제4권은 동부유럽의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등의 수도를 다루고 있다.
제5권은 중동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튀니지, 튀르키예,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의 주요 도시들 이야기이다. 예루살렘, 텔아비브, 브엘세바, 에일라트, 하이파, 나사렛, 가버나움, 헤브론, 베들레헴, 여리고, 나블루스 등 성경의 주무대였던 오래된 도시들을 다룬다. 신앙심이 돈독한 교회 장로답게 성경에 나오는 도시들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튀르키예 유적 도시(이즈미르, 에베소, 트로이,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설명은 관광 안내서를 방불할 정도로 필요한 정보를 수록했다.
제6권은 북남미 많은 국가 중에서 미국,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등 6개국의 도시를 설명한다. 하지만 전체 내용의 절반 정도는 미국 도시 이야기이다. 수도 워싱턴 디시와 세계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뉴욕을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보스턴, 시카고, 디트로이트,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 휴스턴, 댈러스-포트워스, 애틀랜타, 샬럿, 마이애미,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가스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 특징을 명료하게 설명한다.
제7권은 대양주와 남아시아 편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등을 다룬다. 오스트레일리아서는 수도 캔버라를 비롯하여 시드니, 맬버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등을, 인도에서는 뉴델리, 올드데리, 아그라, 자이푸르, 뭄바이, 콜카타, 찬디가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8권은 동아시아(대한민국, 중국, 일본)와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타이, 필리핀, 대만)이다. 우리나라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세종을 세계적인 도시 반열에 올려 설명한다. 중국에서 다룬 도시들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충칭, 선전, 텐진, 난징, 칭다오, 웨이하이, 연변, 홍통, 마카오 등이다. 일본에서는 도쿄, 요코하마, 쿄토, 오사카, 고베, 나고야,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치민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제9권은 <세계도시 바로 알기>의 완결편으로, 제목도 차별적인 ‘말 먹거리 종교’이다. 제1권부터 제8권에 걸쳐 다룬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 특성을 알려면 ‘총체적 생활상’에 천착해야 하고, 지리적・역사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말(언어), 먹거리(경제), 종교를 파악하면 특정 국가와 도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특히 제9권에서 저자는 <세계도시 바로 알기>의 지름길로 ‘총체적 생활상(TLP: Total Lifestyle Paradigm)’을 제시했다. 총체적 생활상이란 지리, 역사, 경제, 문화 등 4가지 요소로 구성되며, 이 중에서 지리・역사・문화는 말(언어)과 종교로, 경제는 먹거리(산업)로 수렴된다. 총체적 생활상이란 지리학의 주요 개념인 ‘지역성’과 동일한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국가나 도시의 문명 변천과 발달을 이해하려면, 말, 먹거리, 종교를 파악하면 가능하다는 견해이다. 쉽게 말해 ‘언어, 산업, 종교’ 등 3개 요소를 알면, 특정 국가와 도시의 특성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제9권 제목을 ‘말, 먹거리, 종교’로 설정한 이유라고 본다.
저자가 말한 ‘말, 먹거리, 종교’ 3개 요소가 만들어 낸 ‘총체적 생활상’을 특정 국가에 적용하면 이렇다. 동아일보 인터뷰(2024년 4월 25일) 내용이다.1) “인도네시아는 1920년대 이후 ‘바하사 인도네시아’ 언어로 민족 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데다 최근 봉제 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아시아의 새로운 제조업 생산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 중 이슬람교가 87%로 종교 정체성이 분명하다. 슬로바키아는 1843년 민족 부흥 운동으로 1,000년 전 모라비아 제국의 언어를 복원해 슬로바키아어를 체계화했다. 자동차 공장 등을 유치해 유럽의 제조업 기지가 됐다. 가톨릭이 전인구의 68.8%다. 이처럼 말, 먹거리, 종교 세 가지를 통해 국가의 총체적 생활상을 간략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제9권에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총체적 생활상을 구성하는 먹거리(산업)를 알면, 특정 국가나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이해할 수 있는 지표라는 관점에서 다뤘다고 판단한다. 먹거리 산업(자동차, 2차전지, 조선 등을 포함한 23개 품목)별 상위 10위권 산업이 4개 이상인 국가가 세계적으로 16개국으로 압축되었고, 우리나라는 미국(1위)과 중국(2위)에 이어 3위로 도출되었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는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저자는 1991년부터 성신여대에서 ‘세계도시 바로 알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답사하고 촬영한 슬라이드로 수업을 진행해 성신여대 최고 인기 교양과목이 됐고, 한 학기에 840명이 수강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수업은 정년 퇴임 후 2015년까지 지속됐고, 수강생수를 종합하면 1만여 명에 달한단다. 저자의 행보는 퇴임 후에도 계속됐다. 2019년부터 저자가 속한 예닮교회에서 <세계도시 바로 알기> 강의를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대면강의가 유튜브 강의로 전환됐고, 그 결과가 전 세계 62개국 240개 도시를 다룬 9권 시리즈로 탄생했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는 저자의 오랜 노작(勞作)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9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저서를 왜 펴내려고 했을까?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4년에 걸쳐 2,500여 페이지로 구성된 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려면, 저자가 평소에 가졌던 학문적 철학과 자세를 알 필요가 있다. 저자와 35년 이상 학문적 교류와 개인적 우정을 나누면서 느낀 필자의 뇌피셜은 저자는 분명한 학문적 철학과 학자가 수행해야 할 미션을 가진 지리학자였다는 것이다. 지리학자는 지리학의 지평 확대와 대중화를 위해 책도 많이 내고, 가능하다면 현실적인 사회・공간적 현상과 문제에 대해 전문가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었다.
저자는 도시 주변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충남 대덕군(현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중학교 때는 세계사에 심취했고, 서울고 시절 당시 연세대 김형석 교수 특강은 저자에게 세계 여행의 꿈을 꾸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울대 지리학과에 입학하면서 지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77년 청주의 작은 사립대학 지리교육과 교수가 된다. 당시는 박사학위가 없어도 교수가 되는 시절이었다. 1982년 성신여대로 옮긴 저자는 지리학의 대중화를 위해 젊은 지리학자들을 규합해 연구회를 조직했다. 1988년 출범한 한국지리연구회이다. 이 모임은 비서울대 출신이고 변방의 지리학자였던 필자가 저자와 개인적 우정을 나누게 된 계기가 됐다.
저자는 1988년 전국의 소장 지리학자들을 규합해 한국지리연구회를 만들고, 회장을 맡는다. 소모임의 취지는 국토를 정확히 이해하고 현대지리학을 알리며, 우리 사회의 공간적 현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매월 서울역 앞 대우재단 빌딩에서 정기적으로 독회와 콜로키움을 가졌다. 당시에는 대한지리학회와 한국지리교육학회가 개최하는 학술행사를 제외하면 지리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학술모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가 주도한 한국지리연구회의 독회와 콜로키움에는 매월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15명 내외 소장학자들이 참여했고, 열띤 학문적 향연을 즐겼다.2) 모임 후 뒤풀이 단골 토론 주제는 지리학 대중화를 위한 학자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젊은 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지리학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리학의 대중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리학자들이 지리학 관련 도서를3) 많이 펴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당시 모임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뒤풀이 분위기를 주도한 실질적 리더는 저자였다. 저자가 추동한 소모임 한국지리연구회 멤버들은 그후 한국 지리학계를 변혁하고 업그레이드한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한국 지리학계에 미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는 저자가 젊은 시절 열성과 약속을 견지하고 생산한 노작인 셈이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9권 시리즈를 관통하는 3가지 명제가 있다. 첫째는 “도시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도시의 총체적 생활상을 알면 자연스럽게 세계 전체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둘째는 “말, 먹거리, 종교를 알면 그 도시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고,” 그 도시가 부유한가 가난한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인간은 땅과 함께 먹고 살 때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견해이다. 저자는 정체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을 ‘총체적 생활상’으로 설명했다. 지극히 지리학적 관점이다. 요약하면, ‘총체적 생활상’은 세계도시를 바로 알 수 있는 유용한 통로(exit)라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이다.
‘말, 먹거리, 종교’에 기반한 ‘총체적 생활상’을 알면 국가와 도시의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논리는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한 ‘총, 균, 쇠’라는 요소를 통해 잘 사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알 수 있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때문에 필자는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가 한국판 <총, 균, 쇠>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 9권은 편집과 삽화가 미려하고 서술도 간결하다. 평소 털털했던 저자의 성품과 태도와 비교하면 완전 딴판이다. 노학자의 완숙함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굳이 사족을 단다면, 내용이 너무 쉽고 독자의 가독성이 높은 책이라 일반 대중이 너무 좋아해 한국판 <총, 균, 쇠> 반열에 오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다. 저자가 소장학자 시절 격정적으로 토로했던 지리학의 대중화에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 9권은 분명 일조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 9권은 대학교 교양 교재 및 대륙별 지지 강의 부교재로 괜찮다. 뿐만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의 지리적 지평과 세계관을 넓히는 데 유용한 지리서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다. 유년 시절부터 산을 좋아해 어머니가 지리학을 전공해도 괜찮다고 해서 지리학자 길을 걷는 노학자의 노작이니 여러 분야에서 활용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리학 연구자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왜냐하면, 쉬운 글쓰기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교범을 <세계도시 바로 알기> 시리즈 9권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청소년들이 환호했던 1세대 지리학자 김찬삼의 세계지리 이야기 이후 2세대 지리학자인 저자가 펴낸 <세계도시 바로 알기>는 지리학의 지평을 넓히는데 부족하지 않다. 이 책이 저자가 평생 견지한 ‘지리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