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지방소멸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2. 이론적 배경
1) 장소감의 이론적 재구성
2) 정동의 순환과 비재현 이론
3) 지방소멸: 담론, 프레이밍, 그리고 정책 언어의 권력
3. 연구방법
1) 연구대상지 선정
2) 연구참여자 선정 및 특성
3) 자료 수집 방법
4) 분석 방법
4. 지방소멸 담론과 장소감의 재배치
1) 담론 이전의 복합적인 장소감
2) 지방소멸 담론과의 조우
3) 장소감의 재배치
5. 결론
1. 서론: 지방소멸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고향은 한국인의 정서적 지형에서 특별한 위상을 점유해 온 장소다. 급격한 산업화 및 도시화 속에서 고향은 개인에게 향수의 대상이자, 추억이 보존된 정서적 공간으로 낭만화되곤 한다. 고향은 단순한 출생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그곳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얽혀있음을 시사한다(김광억, 2000). 이처럼 고향에 대한 감정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이 공간과 결합하여 형성되는 고유하고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Tuan, 1977).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지방소멸’이라는 강력한 서사가 등장하면서 고향이 가진 사회적 인식에 균열이 발생했다.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가 2014년 보고서를 통해 처음 제시한 ‘지방소멸’은 저출산 및 고령화,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 등으로 인해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존립 기반을 상실하고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을 담고 있다(김정환 역, 2015). 즉, 일부 지역은 인구 감소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소멸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는 미래 예측적인 경고성 담론이다. 이러한 담론은 대한민국 사회에도 빠르게 이식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16년 마스다 히로야가 고안한 소멸위험지수를 바탕으로 국내 지방소멸의 위험성을 수치화하여 제시하였다(박진경, 2022). 또한, 행정안전부는 지방소멸대응기금 등 행・재정적 지원에 활용되는 인구감소지수를 개발하여 2021년 10월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였다(김민영・이소영, 2023). 이러한 제도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방소멸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닌 미래를 위협하는 국가적 난제이자 정책적 화두로 떠올랐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확산된 지방소멸 담론은 인구 감소 현상을 두려움으로 각인시켰다(송준섭, 2025).1) 그러나 문제는 지방소멸이라는 용어가 인구 감소 현상을 중립적으로 서술하는 객관적 언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지방소멸 담론 이전에도 지방의 인구 감소, 고령화 등과 같은 변화가 실재했다. 하지만 ‘소멸’이 내포한 극단적, 비가역적, 그리고 종말론적인 어감은 그 자체로 강력한 프레임을 형성한다. 주민 간 관계성, 정주 경험, 지역사회 문화 등은 배제된 채 경제・인구 지표만으로 지역을 판단하여 주민들의 삶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미래를 규정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지방소멸 담론 안에서 지역은 더 이상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아니라, 쇠퇴의 길을 걷다 결국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한 비극적 공간으로 단선적으로 해석된다. 특히 정부와 언론, 연구기관 등 공신력 있는 주체들이 지방소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을 물리적으로 지정하면서, 지방소멸 담론은 추상적 서사가 아닌 지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강력하고 실질적인 정책담론이 되었다.2)
그러나 외부 시선으로 형성된 담론들은 해당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주민, 즉 당사자들의 장소감과 어떻게 조우하는가? 오랫동안 고향에 거주하며 인구 감소를 체감하면서도 나름의 평온함을 느끼던 주민들이나 고향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출향민들의 고향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은 외부에서 규정한 ‘소멸’이라는 거대 서사 앞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이 지점에서 본 연구는 시작된다. 지방소멸 담론의 원래 취지인 인구통계학적 진단을 넘어 고향이라는 장소에 부착된 감정, 즉 장소감을 재배치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 비판적 탐구가 요구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지방소멸 담론이 청년의 고향에 대한 장소감을 재배치하는 과정을 ‘정동(affect)’ 개념을 통해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담론의 권력성을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소멸 담론은 고향이라는 장소를 어떻게 프레이밍(framing)하며, 지역과 청년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둘째, 지방소멸 담론은 잠재되어 있던 정동을 어떻게 활성화하여 장소감을 재배치하는가?
전통적으로 장소감은 주로 개인의 내적 의미 부여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이해되었다(Jorgensen and Stedman, 2001; Nielsen-Pincus et al., 2010). 이러한 기존 장소감 연구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기반한 ‘감정’상태를 주로 분석하였다면, 본 연구는 장소감을 사회적 담론과 같은 힘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기존의 지방소멸 연구가 인구통계학적 분석이나 경제적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추어 지역 주민들의 삶에 미치는 정서적인 차원은 간과하였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거시적 담론과 개인의 정서적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을 분석하여 지방소멸을 단순한 인구통계와 경제적 현상이 아닌 장소와 사람의 관계에 관한 현상으로 확장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당사자성을 배제한 지방소멸 담론이 청년들의 삶과 장소감에 미치는 과정에 대해서 성찰하고자 한다.
2. 이론적 배경
본 장에서는 정동 개념을 활용하여 장소감을 보다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지방소멸 담론이 고향에 대한 장소감을 재배치하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구축하고자 한다.
1) 장소감의 이론적 재구성
1970년대 인간주의 지리학의 등장으로 장소는 지리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아 왔다. 장소는 공간과 구분하여 인간의 경험과 의미 부여를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ph, 1976; Tuan, 1977). 특히 투안(Yi-Fu Tuan)은 인간의 경험과 의미 부여를 통해 물리적 공간이 애착의 대상인 장소로 전환된다고 설명하며, 인간과 장소의 정서적 유대를 ‘장소감(sense of pla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장소감에 대한 초기 이론적 논의는 대체로 개인의 정서적 유대, 긍정적 애착 중심의 감정 구조로 논의되었다. 장소감을 개인이 특정 장소에 대해 갖는 주관적인 감각으로 설명하면서, 장소를 애정과 정체성 형성의 기반으로, 개인의 경험을 통한 정서적 안식처로 인식하였다(Tuan, 1977). 이러한 장소감 개념은 객관적 공간 분석에 초점을 두었던 지리학을 인간의 실존적 경험과 감정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오인혜, 2013).
이후 다양한 지리학 연구분야에서 장소감을 고정된 감정이 아니라 관계적 전환에 따라 변형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김숙진, 2016). 프레드(Allan Pred)는 장소를 고정된 물리적 배경이 아닌 사회적 구조, 일상적 실천, 제도 등이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했다(Pred, 1984).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장소 개념은 장소감 역시 개인의 삶, 이동 경험, 사회적 관계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편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레드의 장소에 대한 정의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렀던 인간주의 지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소를 보다 다층적이고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나아가 매시(Doreen Massey)는 장소를 글로벌하고 유동적인 공간에 대응하는 수동적이고 고정된 로컬로 해석하는 관점을 비판하고 모든 장소는 지구적인 동시에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로컬이라는 ‘지구적 장소감’을 제시했다(정현주 역, 2015). 그녀의 장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장소야말로 지구적 불평등의 수동적 희생양이 아니라 그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사이트인 동시에 매개체라는 점을 내포한다. 매시에 따르면 장소는 추상적 공간의 반대항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관계가 배태된 공간으로, 즉 모든 장소는 관계적으로 구성된 공간인 셈이다. 매시에 의하면 공간을 관계적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공간이 존재 이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이미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장이자 복수의 궤적이 엉켜있는 장으로, 열린 시스템으로서 항상 과정 중에 있는 구성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Massey, 2005, 10-11). 이처럼 관계적 공간론에 입각한 장소관은 장소감을 장소 내부의 특성에 기인한 개인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장소 간 관계에 따라 변화하고 협상되는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2000년대 이후 지리학에서는 장소감 형성 과정을 신체, 실천, 분위기 등 미시적인 층위에서 주목하였다. 지리학계에서 정동연구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온 스리프트(Nigel Thrift)는 텍스트 중심의 재현물로는 장소를 구성하는 실천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한계를 지적하며, 장소를 신체와 감각,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설명하였다(Thrift, 2004). 또한, 앤더슨(Ben Anderson)은 장소를 둘러싼 소리, 빛, 밀도 등과 같은 물질적인 흐름들을 ‘정동적 분위기(affective atmospheres)’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Anderson, 2016). 이는 장소감은 명명된 ‘재현물’로 환원되지 않는 관계적・물질적 흐름으로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장소를 관계적인 공간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장소가 개인적 애착에 기반하여 수동적으로 호명되는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즉 감정적, 언어적 ‘재현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실재를 내포하고 있는 정동적이고 물질적인 구성물임을 의미한다. 또한 장소에 대한 감각은 단일하고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궤적이 교차하고 뒤엉켜서 만들어내는 다중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일 수도 있는 것으로, 주체의 위치성에 따라, 즉 성별, 계층, 세대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장소감이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관계적인 접근에서 장소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적인 사회적 맥락에 조응하여, 장소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지는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소감에 대한 이론적 계보는 최근 한국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복합적이고 변화하는 감각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장소에 대한 감정은 개인의 경험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 이데올로기, 정책 등을 통해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대도시 중심주의적 가치에 의해 위계화되거나 낙인화되기도 한다(Fulkerson and Thomas, 2019). 특히, 이동성이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장소감은 고정성과 흐름 사이를 오가며 관계적으로 구성되는 감정적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Di Masso et al., 2019). 즉, 장소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다양한 관계성, 사회적 맥락 등으로 인해 비가시적이었던 감정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거나 특정 감정이 강화되는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감정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되는 복합적이고 정치적인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소멸과 같이 단선적 위기론에 입각한 자극적인 하향식 담론은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감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권력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청년들의 장소감을 탐구함에 있어서 개인의 의미 부여뿐만 아니라, 사회적 담론 및 위계화된 공간 인식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역동적인 과정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
2) 정동의 순환과 비재현 이론
본 연구는 장소감의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창발을 탐구하고자 감정보다 더 근원적이고 체현된 힘을 의미하는 정동 개념을 활용하고자 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슬픔이나 기쁨처럼 이름 붙여지고 사회화된 감정과 정동을 구분한다(김민지, 2020). 감정은 특정 자극에 의해 유발되며 일시적인 반응으로 이해되지만(Ekman, 1992), 정동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느낌’으로 감정보다 먼저 신체에 발생하는 자율적이고 비언어적인 반응을 의미한다(Massumi, 2002). 즉, 정동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를 끊임없이 흐르고 순환하는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수미(Brian Massumi)는 정동을 동시에 주고받는 순환적 관계로 설명한다(Massumi, 2002). 즉 정동은 주체 내부에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신체와 외부세계가 서로에게 미세하게 반응하는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정동은 주체를 특정할 수 없는 상호적 생성 과정이며,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 또한 정동의 상호인과적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소감은 개인의 해석에만 의존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 담론, 미디어, 정책 등 외부의 정동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로는 영향을 주고 받는 동적인 감정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동적인 장소감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리프트의 비재현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재현이론은 재현물 분석에 주력했던 기존 문화지리학의 한계를 넘어 언어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정동에 주목한다(Thrift, 2007). 세상은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신체와 감각, 행위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becoming)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재현으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재현 이전의 또는 재현과 재현 사이의 끊임없는 정동의 흐름이 있으며, 이는 우리의 신체와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신체에 배태되어 있는 감각이다. 즉, 정동은 의식적인 사유나 언어적 재현 이전에 신체를 통해 먼저 감각되는 살아있는 강도(intensity)로 이해할 수 있다(Massumi, 2002).
비재현이론의 계보 속에서 정동 연구를 수행한 맥코맥(Derek McCormack) 또한 정동을 특정 개인에게 귀속되는 내면적 속성이 아니라, 외부에 퍼져 존재하며 신체를 감싸고 변화시키는 분위기로 작동한다고 이해한다(McCormack, 2015). 분위기는 감각적 층위에서 신체가 받아들이는 강도로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각되는지에 대한 잠재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정동은 감정뿐만 아니라 감정이 형성되기 이전에 신체가 환경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긴장, 리듬, 감응의 흐름을 포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장소감은 개인의 의식적 인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신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접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지방소멸 담론이 고향을 둘러싼 감정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 포착하는 데 유용한 개념적 도구가 된다. 지방소멸이라는 언어적 재현은 객관적 정보 전달을 넘어 일상에 침체, 위기감과 같은 정동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특정한 감정 반응을 유발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어제와 동일한 고향의 풍경을 담론을 접한 이후에는 다르게 감각하게 된다.
비재현이론은 언어와 같은 정동의 재현물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현물이 정동을 강화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간주한다(Thrift, 2007). 즉, 언어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그 자체로 정동적 힘을 가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방소멸 담론의 힘이 명확해진다. 지방소멸 담론은 인구 감소라는 현상에 대한 중립적인 정의가 아니라 소멸이라는 종말론적이고 비관적인 느낌과 같은 부정적 정동을 실어 나르는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지방소멸 담론은 ‘소멸’이라는 언어적 재현을 통해 하나의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하여 이전까지 다양하게 존재하거나 특별히 인지하지 않았던 현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한 정서적 반응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장소에 존재하는 오래된 건물이나 한적한 거리와 같은 풍경은 그 자체로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평화로움, 그리움, 낙후됨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닌다. 하지만 소멸이라는 강력한 언어적 재현이 개입되는 순간 일종의 필터처럼 작동하여 잠재된 다양한 감정 중에 쇠퇴와 불안과 같은 특정한 정동의 흐름만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한다. 평화로움의 상징이었을지 모를 한적한 거리가 소멸의 징후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소멸 담론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방소멸이 단순한 정책 언어가 아니라 주민들이 장소를 감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배치하는 수행적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정동과 감정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되, 정동을 감정과 분리된 독립적 대상이라기보다 감정이 발생하는 조건이자 배경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정동을 언어적 진술만으로 완전히 포착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청년들이 지방소멸 담론과의 조우 속에서 잠재된 정동이 감정으로 재현되는 과정을 인터뷰 자료를 통해 추적하고자 한다.
3) 지방소멸: 담론, 프레이밍, 그리고 정책 언어의 권력
지방소멸 담론은 인구 감소 현상을 극단적 어휘로 표현함으로써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언어적 프레임이 지역을 어떻게 낙인찍고 여론을 형성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정성호(2019)는 일본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은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공론화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소멸이라는 용어가 지나친 공포감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소멸위험지수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여 인구 수만으로 소멸을 논하는 단편적 접근에 대해서도 경고한다(정성호, 2019). 다른 연구에서는 소멸이라는 용어는 인구 감소라는 사실에 해석을 덧씌우는 행위로 비판하기도 한다(박진도, 2024). 또한, 인구 감소 현상에 소멸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씌워 대상이 된 지역에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지역 불균형과 정책 실패라는 구조적 원인을 회피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이향아・양승훈, 2025). 이로 인해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대립 구도 속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을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왜곡된 자기-재현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정명진, 2025). 즉, 지역 주민들은 담론의 극단적인 언어적 표현으로 인해 지역에 낙인을 찍고, 원인 또한 지역의 문제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은 지방소멸이라는 언어적 표현이 주민들의 인식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언어적 표현이 어떻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푸코(Michel Foucault)가 제시한 ‘담론’의 개념을 통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푸코는 담론을 단순한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라, 특정 시대에 무엇이 진실로 간주되는지 결정하는 체계로 이해했다(이정우 역, 2000). 다시 말해, 담론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통제하는 권력을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가 설명한 권력으로서의 담론은 스리프트가 주장한 재현물로 인해 사회적으로 순환하고 특정 방향으로 증폭되는 정동 개념을 뒷받침한다. 장소는 이념과 권력, 갈등이 내포된 역동적 공간으로 장소감 역시 사회적 담론과 상호작용한다(Stokowski, 2002). 즉, 지방소멸은 인구 감소 현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언어가 아니라 지방을 ‘문제적 공간’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강력한 담론으로 감정의 스펙트럼을 제한하여 그 외의 다른 감정들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이러한 담론의 힘은 엔트만(Robert Entman)의 ‘프레이밍(framing)’ 이론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레이밍이란 현상에 대해 일부 측면을 부각하여 특정한 평가와 해석을 유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Entman, 1993). 인구 감소가 반드시 소멸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방소멸이라는 종말론적 프레임을 통해 지역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단한다. 이처럼 프레이밍은 부정적 정동을 증폭시켜 긍정적인 가치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방소멸 담론의 권력은 정책 용어라는 점에서 극대화된다. 정부와 언론, 연구기관과 같은 권력기관이 사용하는 정책 용어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따라서 국가가 특정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으로 공식 지정하는 행위 자체로 해당 지역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실질적인 권력으로 작동한다. 즉, 지방소멸 담론은 주민들의 신체적 감각에 개입하여 장소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배치하는 정동적 동력으로 작용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권력기관이 부여한 ‘소멸’이라는 프레임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막연하게 느끼던 불안감과 공명하여 신체에 감각적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담론과 정동, 감정이 분절적인 것이 아닌 중첩되고 상호구성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스리프트는 정동이 전인지적이고 신체적인 차원에서 주로 작동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국가, 제도 등 시스템에 의해 기술 및 사회공학적 과정을 통해 조정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Thrift, 2004).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소멸 담론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정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조율하는 정치적 도구로 작동된다. 즉, 정동은 재현의 과정을 통해서도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재생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신진숙, 2019). 지방소멸 담론은 이러한 장치로서 잠재된 정동적 흐름에 개입하여 청년들의 비가시적인 정동을 증폭시킴으로써 고향에 대한 감정을 재배치한다. 따라서 담론과 정동, 감정은 서로 다른 층위가 아닌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3. 연구방법
1) 연구대상지 선정
본 연구는 산업화 시기부터 이촌향도를 통해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어 왔던 전형적인 농촌이 아닌, 최근에 ‘소멸 위기’에 처한 인구 감소 시(市)를 고향으로 삼고 현재 체류하거나 또는 타지에서 살고 있는 청년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농촌 기반의 인구감소지역보다 시 단위 인구감소지역에서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정서적 변화가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정된 인구감소지역 중 시 단위 지자체가 가장 많이 분포된 경상북도를 대상으로 연구 목적에 부합하는 4개의 도시3)를 연구대상지로 선정하였다.
2) 연구참여자 선정 및 특성
연구참여자는 대상지로 선정된 경상북도 내 4개 도시를 고향으로 인식하는 청년4) 총 17명으로 선정하였다. 고향은 지리적 출생지를 넘어 연구참여자가 ‘유소년기를 보내며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정체성의 기준으로 인식하는 장소’로 정의하였다. 연구참여자는 표 1과 같다.5)
표 1.
연구참여자
타지로 이주한 청년뿐만 아니라 고향에 잔류하는 청년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청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가 강한 지역 특성상 성별에 따라 고향에 대한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성별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였다.
3) 자료 수집 방법
자료 수집을 위해 연구참여자를 모집하여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는 2025년 2월부터 6월까지 약 5개월에 걸쳐 진행하였다. 1:1 대면 인터뷰를 원칙으로 하되, 연구참여자의 상황에 따라 요청이 있을 시 비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심층 인터뷰는 고향 경험, 감각적 인식, 정서적 반응, 향후 계획 등 4가지의 주제로 구성된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활용하되, 연구참여자들의 성장 과정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질문 순서와 내용을 유연하게 조정하여 최대한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인터뷰 과정에서 연구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소멸과 같은 용어는 먼저 사용하지 않고, 연구참여자가 관련 맥락을 먼저 언급하거나 인터뷰 후반 맥락 확인을 위한 보조적 용도로 활용하였다. 연구참여자가 진술한 내용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이 본래 의도와 부합하는지 확인하고,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 대부분의 연구참여자와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17명의 참여자로부터 총 33회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4) 분석 방법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반복적 비교분석법(Constant Comparative Method)을 활용하였다. 반복적 비교분석법은 질적 자료로부터 의미있는 개념을 도출하고, 개념들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비교・분석하여 현상을 설명하는 데 효과적인 분석 방법이다(Glaser and Strauss, 1967). 특히 연구참여자의 서사를 통해 장소감의 재배치 과정을 탐구하는 본 연구에 적합한 분석방법으로 판단하였다.
구체적인 분석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터뷰 자료를 줄 단위로 면밀히 검토하여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장소감과 관련된 표현들을 개념화하였다. 이후 도출된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비교・분석하여 유사성과 관계성을 중심으로 범주화하였다. 이를 통해 개별적인 개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분석하였다. 또한 정동의 비언어적 차원을 고려하여 무의식적 신체 반응과 비언어적 재현을 분석에 포함하였다. 마지막으로 범주들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지방소멸 담론과 장소감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핵심 주제들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분석 과정은 자료 수집과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새로운 개념이나 범주가 더 이상 도출되지 않는 이론적 포화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의 심층 인터뷰 자료를 반복적 비교분석법으로 분석한 결과, 다음 표 2와 같이 39개의 개념, 7개의 범주, 3개의 주제를 도출하였다.
표 2.
핵심 주제 코드
4. 지방소멸 담론과 장소감의 재배치
1) 담론 이전의 복합적인 장소감
(1) 고향에 대한 청년들의 양가감정
지방소멸이라는 거대 담론을 본격적으로 마주하기 전,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장소감은 단일한 감정이 아닌 양가적인 감정의 상태에 있었다. 이는 명확히 분류되는 이분법적인 감정이 아닌 익숙한 풍경이 주는 신체적 이완과 좁은 관계망이 유발한 신체적 압박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청년들에게 고향은 정서적 안정감과 숨막히는 구속감이 분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있는 장소로 감각된다. 연구참여자들은 어린 시절의 정겨운 기억을 긍정적으로 회상하면서도, 동시에 도시 기능에 접근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불편함에 대해서 진술했다.
애들이랑 같이 막 놀고 했던 그런 추억들이랑 주변에 이제 뭐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어릴 때부터 되게 좋아해 주셔서 뭔가 정겨운 면 그런 것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다 좋은데 인프라가 좀 부족해서 이게 생활하는 데 좀 불편하다 그런건 저도 느끼긴 했었거든요. … 시내나 이런 데로 나가야 되니까 그게 좀 많이 번거로웠던 것 같아요. - 남1(서울)
남1(서울)은 유년 시절 친구들과 이웃 어르신들의 추억을 기반으로 고향을 ‘정겨운 공간’으로 묘사했다. 이는 고향을 정서적 안정을 주는 장소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장소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곧이어 고향의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일상의 불편함에 대해 진술한다. 이는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신체적 친밀감은 고향을 안온한 장소로 감각하게 하지만 동시에 인프라 부재가 야기하는 물리적 결핍은 도시 기능에 접근하기 위해 감내한 피로이자 일상의 리듬이 끊기는 감각적 제약으로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즉, 남1(서울)에게 유년 시절 고향은 이웃 간 관계 속에서 온기가 주는 신체적 이완과 물리적 환경이 가하는 압박이 분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있는 복합적인 정동의 장으로 감각되었고 양가적인 감정상태가 기억으로 축적되었다.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가치인 ‘정(情)’을 감각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고향이 확실히 정은 있어요. 고향에서 아파트 살았는데도 앞집 윗집 아랫집은 당연히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같은 동네 사람이라서 인사하고 그러는데 그게 저는 되게 불편했어요. - 남3(경기)
청년들에게 정은 안정감의 원천인 동시에 신체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구속의 기제로 작동했다. 남3(경기)는 이웃 간 ‘당연한 인사’를 통해 정의 따뜻한 온기를 인정하면서도 신체를 옥죄는 힘으로 감각했다. 이는 상호 유대라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가치와 사생활 존중 등과 같은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즉, 고향의 정은 본래부터 따뜻함이나 유대감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시사한다. 남3(경기)은 ‘확실히 정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에 작동하는 압력의 강도에 대해서 진술했다. 이웃의 관심은 본인에게 상호 호혜적인 유대가 아니라, 개인의 리듬을 끊고 침범하는 강도 높은 정동적 압력으로 작용했다. 보편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로 해석되는 요소들도 개인의 수용 능력과 사회적 환경, 상황 등에 따라 신체적 마찰과 긴장 속에서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향에 대한 복합적인 장소감은 지역사회의 관계적 차원을 넘어 도시 이주 경험과 맞물리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여5(대구)의 진술은 도시 이주 경험을 통해 생성된 감각들이 고향에 대한 장소감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보여준다.
시골(고향)에 있을 때는(도시 애들처럼) 비교를 하는 게 잘 없었거든요. 그냥 애들이 막 순수 그 자체에요. 스트레스 덜 받고 그런 게 좋긴 한데, 근데 또 한편으로는 뭔가 뒤처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있더라고요. - 여5(대구)
여5(대구)의 진술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은 대도시로 이주한 청년들이 도시에서 겪는 전형적인 내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여5(대구)는 고향의 순수함에 대해서 회상하면서 긍정적인 미소를 띠었지만, 곧이어 도시의 경쟁사회에서는 도태될 수 있다고 진술하며 경직된 자세로 고쳐 앉았다. 미소가 고향이 주는 신체적 이완을 의미한다면 경직된 자세는 사회적 압력을 내면화하는 신체적 긴장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고향은 평화로우면서도 도태될지 모른다는 이율배반적인 장소로 감각된다. 따라서 여5(대구)의 고향에 대한 장소감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정동들이 서로 경쟁하며 복합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긴장 상태는 고향을 떠나 추억하는 감정과 고향의 현실을 물리적으로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간극에 대해 언급한 여4(경기)의 진술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보니까 뭐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거 그리고 그거(고향)에 대한 좀 그리움은 가끔 있어요. 그 고향 자체에 대한 그리움. 근데 이제 또 내려가면은 그 현실이 보이니 되게 또 암담하기도 해요. … 좀 변한 게 없구나 싶어서 실망할 때도 많고요. - 여4(경기)
여4(경기)는 고향을 물리적으로 떠나 있을 때는 그리워하는 대상으로 설명하지만, 변한 것이 없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더욱 실망스럽게 느낀다고 진술한다. 여4(경기)의 진술 과정에서 포착되는 비언어적인 표현들은 고향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내려가는 순간 사라진다며 내쉰 깊은 한숨은 고향이라는 장소가 주는 현실적 암담함에 대한 신체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생각을 정리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 변화는 고향에 대한 애착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 신체적으로 반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여4(경기)에게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본인을 짓누르는 암담한 압력으로, 그것은 언어적 재현뿐만 아니라 신체적 감각을 통해서도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참여자들의 진술은 지방소멸 담론과 마주하기 전 청년들에게 고향은 이분법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마찰과 긴장 속에 놓인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즉, 고향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동적 흐름들이 개인에게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며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는 청년들이 지방소멸 담론과 마주하며 공명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닌다. 따라서 담론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양가감정들이 어떠한 기반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각각의 층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양가감정의 부정적 기반: 낙후된 물리적 환경과 폐쇄적인 문화
연구참여자들의 양가감정 중 부정적 기반은 낙후된 물리적 환경이 야기하는 신체적 마찰과 폐쇄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정동적 압력이 일상에 축적된 결과였다. 이는 청년들이 담론을 마주하기 전부터 인프라 부재와 과잉된 관계망을 신체적 감각으로 체화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부정적 기반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지방소멸 담론이 청년들의 내면에 공명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 즉, 이미 청년들의 신체에 각인된 일상의 불편함과 관계의 구속감을 ‘소멸의 징후’로 호명하고 증폭시키는 촉매제로 작동한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청년들을 담론에 취약하게 만든 배경을 물리적 환경과 문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시각적으로 포착되는 교육, 일자리, 문화 등 인프라의 부재는 단순한 결핍이 아닌 청년들이 고향이라는 장소에서 겪어야 했던 신체적 마찰로 경험되었다. 다수의 연구참여자들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진술했다.
남4(서울)는 상경해야 했던 결정적 계기를 교육인프라 부재로 설명했다. 고향의 교육인프라 부재는 단순한 물리적 불편함을 넘어 성장의 필수적인 기회의 박탈로 감각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의 높은 학구열 속에서 교육인프라 부재는 청년들에게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공간으로 각인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는 선행 연구에서도 비수도권 고교 졸업생들의 수도권 대학 진학이 지역 이탈을 결정짓는 핵심 원인으로 분석한 바 있다(류장수, 2015).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학원은 청년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필수재로 인식된다. 따라서 고향을 떠나는 결정은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기보다 ‘없음’에서 비롯되어 박탈감과 공포감을 유발하는 정동적 흐름에 등 떠밀려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이탈이었음을 시사한다. 즉, 남4(서울)의 이탈은 고향의 물리적 환경이 만들어낸 정동적 흐름에 신체가 반응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결핍에서 비롯된 부정적 기반은 취향의 영역인 문화인프라 부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청년들에게 문화적 소비 공간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감각적 안식처이자 필수적인 장소성을 지닌다(정다인・김승인, 2020). 따라서 문화인프라 부재는 고향을 지루하고 뒤처진 공간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또 다른 부정적 정동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서 서울 같은 경우에는 저기 스타벅스도 이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또 있고 또 저기 가면 있고 막 그렇잖아요. 근데 이제 고향에는 제가 알기로는 스타벅스가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 남1(서울)
연구참여자들은 현대적 도시 문화로 상징되는 스타벅스라는 매개물을 통해 대도시와 고향의 격차를 측정하였다. 청년들에게 스타벅스는 단순한 기호식품 판매처가 아니라, 도시적 세련됨과 표준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보장하는 상징적 기표로 기능한다. 특히, 남1(서울)에게 고향의 스타벅스 부재는 보편적인 도시 기준에 비해 부족한 장소임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로서 작동한다. ‘없는 걸로 알고 있다’라는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향에 스타벅스 입점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으레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게 만드는 공간, 즉 ‘없음’이 당연시되는 장소로 감각된다. 이는 사실 여부를 떠나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과 낙후성이 내면화되어 고향을 ‘없음’이 당연시되는 장소로 위치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부정적 기반은 물리적 인프라 부족이라는 가시적 결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근원적인 거부감은 지역사회의 폐쇄적인 문화에서 기인한다. 물리적 환경이 신체적 마찰의 영역이라면, 폐쇄적인 문화는 정동적 압력으로 작동하여 청년들의 부정적인 장소감을 형성한다.
솔직히 말하면… 좀 폐쇄적이었어요. … 다들 서로를 너무 잘 알아요. 집안 배경, 형제, 부모님이 뭐 하는지까지 전부 알고 있어서, 그냥 동네 사람들끼리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는 느낌이에요. 여기서 태어나면 평생 ‘누구네 아들, 딸’로 불리는 거니까요. - 여2(서울)
여2(서울)의 진술에서 포착된 비언어적 표현은 고향의 관계적 분위기가 청년에게 가하는 심리적 부하를 짐작하게 한다. ‘솔직히 말하면’이라며 서두를 뗀 뒤 몇 초간의 정적을 유지하며 망설이는 모습은 고향의 공동체 문화를 비판하기에 앞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신체적 위축이자 자기검열의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 ‘보이지 않는 서열’, ‘누구네 아들, 딸’이라 언급하며 보인 확신에 찬 표정은 자신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언어적으로 정리한 순간의 감각적 확신을 보여준다. 즉, 여2(서울)에게 고향은 개인의 고유한 주체성을 배제하고 귀속 지위에 의해 위계가 결정되는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향의 폐쇄적인 공동체 문화는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정동적 압력으로 작동하여 고향을 탈출하고 싶은 부정적인 장소감을 형성한다.
지역사회의 폐쇄성은 서열화를 넘어 성별에 따른 역할 수행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문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성에게 고향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가 신체를 통제하는 규율의 공간으로 감각된다.
저희 아버지도 굉장히 좀 가부장적이신 게 모든 일은 다 여자가 해야 해요. … 제 고향에서는 좀 당연한 거고 ‘여자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좀 그런 인식이 좀 많이 강한 것 같습니다. - 여4(경기)
여4(경기)는 성차별적 규범에 기반한 고향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해서 진술한다. ‘모든 일은 다 여자가 해야한다’고 진술할 때, 여4(경기)의 황당하다는 표정은 평등한 성가치관을 체화한 청년 세대에게 고향의 성역할 구분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합리적 마찰임을 드러낸다. 이는 고향이 개인의 주체성보다 성별에 따라 역할을 강제하는 장소로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어서 ‘고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는 진술에서 여4(경기)는 황당함에서 체념의 눈빛으로 전환된다. 이는 고향의 가부장적 분위기가 개인이 바꿀 수 없을 만큼 공고히 굳혀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고향의 가부장적 문화는 청년, 특히 여성에게 변화가 불가능한 장소로 감각되어 이주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진술들은 청년들이 감각하는 고향에 대한 기반이 물리적・관계적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교육 및 문화인프라 부재는 청년들의 성장을 위협하는 가시적인 요인이라면, 지역사회의 수직적 위계질서, 경직된 성규범은 비가시적인 압력으로 작동한다. 이는 청년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만드는 강력한 정동적 흐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여전히 고향에 대한 애착을 완전히 놓지 않고 있었다. 다음 절에서는 청년들이 고향을 완전히 등지지 못하게 하는 감정의 긍정적 기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양가감정의 긍정적 기반: 안정감과 유대감
지리학에서 장소에 대한 긍정적 감정은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정서적 유대의 결과로 이해된다(Tuan, 1977). 고향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양가감정의 다른 한 축 또한 정서적 안정감과 유대감에 기반했다. 고향의 풍경은 비록 인프라는 부재할지라도 도시의 속도에 지친 청년들에게 신체적 이완을 제공하며 고향에 대한 애착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여8(고향)의 진술은 이러한 고향의 풍경을 대도시의 경쟁적인 ‘북적북적’과 대비되는 ‘복작복작’이라는 감각적 표현을 통해 묘사했다.
고향에 거주 중인 여8(고향)은 고향에 대해서 감각적인 어휘를 통해 풍경의 밀도를 설명한다. ‘북적북적’이 수많은 개인이 무질서하게 모여 경쟁적인 대도시의 혼잡함을 연상시킨다면, ‘복작복작’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인 정겨우면서 인간적인 공동체를 묘사한다. 여8(고향)은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무슨 말인지 알겠냐’는 눈빛을 보냈다. 이는 고향이 주는 긍정적인 정동이 언어적으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실제로 경험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체화된 감각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정서적 안식처로서 고향은 청년들이 느끼는 양가감정 중 애착을 유지하게 만드는 긍정적 기반이 되며, 가족이라는 강력한 유대 관계와 결합될 때 더욱 강화된다.
교통체증이 없어서 좋고 엄마 아빠도 거기 살고 계시고 살기에 정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고향이) 좋아요. 현실적인 이유만 아니면 저는 거기서(고향에서) 살았어요. - 남6(경기)
남6(경기)의 진술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좋다’라는 형용사의 반복적인 사용이다. 교통체증으로 대변되는 도시의 혼잡함이 없는 환경이 ‘좋고’, 부모님과 함께라서 ‘좋고’, 결과적으로 고향 자체가 ‘좋다’고 연거푸 강조한다. 이는 고향의 여유로움과 부모님과의 관계적 유대에 기반하여 고향에 대한 긍정적인 장소감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장소감은 현실과 마주하며 짙은 상실감으로 전환된다.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난 남6(경기)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강제된 이탈임을 설명한다. 이는 본인이 만족하는 정주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욕구를 대변한다. 즉, 고향은 거주하고 싶지만 거주할 수 없는 역설적인 그리움의 장소로 위치한다.
연구참여자들은 언어로 포착하기 힘든 고향 특유의 분위기를 통해 긍정적인 장소감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는 앤더슨이 정의한 특정 장소에 들어섰을 때 신체를 감싸고 도는 막연하지만 공유되는 감각적 공기, 즉 ‘정동적 분위기’로 이해할 수 있다(Anderson, 2016).
직업적 특성상 다양한 장소를 경험하는 남9(고향)는 각각의 장소가 가진 고유한 정동적 분위기를 포착한다. 남9(고향)의 진술에서 ‘처음 갔을 때 느껴지는 기운’은 시각적 풍경을 인식하기 전 신체에 와닿는 장소의 비재현적 감각을 의미한다. 이어서 그는 고향을 수많은 타지와의 감각적 비교로 검증된 심적으로 안정된 장소로 묘사한다. 즉, 고향은 다른 장소들이 주는 미세한 긴장과 달리 신체적 이완을 제공하는 장소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장소감이 단순히 기억이나 해석에 의한 의미 부여가 아닌 타지역과 구별되는 정동적 분위기를 신체가 포착하는 경험임을 시사한다.
이제 딱 들어왔을 때 뭔가 이제 좀 분위기가 일단 좀 다르다 보니까 느껴지는 바람이라든지 뭔가 냄새라든지 그런 것도 좀 다른 것 같기도 해요. … 그 분위기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아요. - 남1(서울)
이러한 정동적 분위기는 후각과 촉각 등과 같은 비재현적인 감각의 층위에서 원초적으로 확인된다. 남1(서울)은 고향에 도착하는 순간 마주하는 바람과 냄새를 언급하며 신체가 반응하는 장소의 질감 차이에 대해서 진술했다. 앞서 인프라 부족을 지적하며 고향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남1(서울)은 감각으로 체험되는 고향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며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고향의 공기, 냄새와 같은 분위기가 인지적 판단 이전에 원초적인 감각들을 통해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신체가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낙후된 환경과는 별개로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고향의 정동적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신체에 감각되는 것이다. 이는 고향에 대한 긍정적 장소감이 논리가 아닌 정동적 층위에서 지탱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청년들에게 고향은 비록 물리적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풍요롭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기반은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도 고향을 회상하고 안식처로서 역할을 하는 양가감정의 버팀목이 된다. 따라서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감정은 단순히 이분법적인 호불호가 아니라 부정과 긍정이 공존하며 역동적인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복합적인 층위로 이해해야 한다.
2) 지방소멸 담론과의 조우
(1) 담론의 각인: 현실이 될 것만 같은 느낌
앞서 서술한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복합적인 장소감은 지방소멸이라는 외부의 강력한 담론과 마주하면서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청년들은 지방소멸 담론과 마주하면서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고 잠재되어 있던 감정들이 요동치게 된다. 청년들에게 지방소멸 담론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막연했던 인식을 명료한 감정으로 전환하고, 고향의 풍경을 재해석하는 정동으로 확장한다. 즉, 지방소멸 담론은 고향에 대한 애착과 불편함 사이의 긴장 관계를 해제하는 새로운 감각의 렌즈로 이해할 수 있다.
지방소멸 담론은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이면서 다양한 형태로 청년들과 조우한다. 청년들은 소멸위험지수와 같은 정량적인 지표를 접하거나, 인구 유입을 위한 지원 정책 등을 통해 고향이 소멸 위기 지역임을 자각한다.
고향이 지방소멸 위험지역 1위다 이런 얘기도 들어봤고, 주택을 여기에 사도 괜찮다. 그거(2주택 중과세) 면제해 준다. 그런 얘기 들으면(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빨리 탈출해야겠다 생각하죠. - 여4(경기)
여4(경기)는 고향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지방소멸 위험지역 1위’라는 통계적 순위를 언급한다. 미디어가 언급한 자극적인 타이틀은 고향을 수치적으로 공인된 ‘위험한 곳’으로 낙인찍는다. 나아가 인구 유입을 위한 ‘2주택 중과세 면제’와 같은 정책 또한 청년들에게 고향의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여4(경기)가 ‘빨리 탈출해야겠다 생각하죠’라고 진술하는 순간 웃음기 없이 가라앉은 숙연한 분위기는 지방소멸 담론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담론이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각인되는 정동적 신호로 작동하여 고향에 대한 감정을 재배치하는 장치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지방소멸 담론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발전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숏폼 콘텐츠는 주로 짧은 호흡으로 지방소멸에 대한 맥락적 설명 없이 자극적이고 단순화된 이미지로 전달된다.
릴스나 쇼츠같은거 보면 인구수 줄어든 거 보여주면서 사라질 동네 Top 5 이런 거 보는데 여기(고향)가 나와서 놀랐어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좀 실감했죠. - 여7(고향)
여7(고향)은 짧은 영상 속에서 자신의 고향이 ‘사라질 동네 Top 5’ 중 하나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위기를 실감했다고 진술했다. 숏폼 콘텐츠는 지역을 서열화하여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청년들에게 소멸을 더욱 극대화하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놀랐다’라는 감정은 고향의 평온한 일상으로 체화된 감각과는 반대되는 수치적 통계를 기반으로 파국적 프레임으로 다가오는 인지적 충격이다. 이러한 충격은 여7(고향)이 인지하지 못했던 고향의 위기를 확인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했다. 즉, 담론을 접하면서 고향이 이미 위험 궤도에 진입했다는 것을 새롭게 학습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평소에는 생각을 안 했지만 지금 와서 좀 드는 생각이죠. 그러니까 전에는 그냥 인구가 줄어든다 정도만 생각했지 이제 본격적으로 지방소멸 얘기 자꾸 하고 그러니까 진짜 지방소멸에 가까워졌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 남4(서울)
남4(서울)의 진술은 지방소멸 담론이 현상을 해석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남4(서울)는 담론을 접하기 전에도 인구가 감소한다는 객관적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통계적 지식에 가까운, 가치 판단이 배제된 중립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지방소멸 담론이 사회적으로 회자되면서 인구 감소라는 객관적 사실은 ‘소멸’이라는 파국적 결말과 연결되었다. 즉, 외부의 담론이 제공한 위기의 프레임이 인지적 판단과 결합하여 공포의 서사를 덧씌운 것이다.
지방소멸 담론의 노출은 청년들에게 인지적 판단을 넘어 감각을 동반하는 정동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외부에서 전달되는 위기의 담론들은 추상적인 미래를 ‘현실’로 신체에 각인한다.
저도 이제 뭐 요즘 하도 ‘지방소멸’, ‘지방위기’ 이런 뉴스들을 한 번씩 봐요. 그래서 이게 약간 진짜로 좀 뭔가 와 닿더라고요. … 진짜 뭔가 현실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거예요. 뭔가 스르륵 없어질 수도 있겠다. - 남1(서울)
남1(서울)은 지방소멸과 관련된 뉴스에 대한 반응을 ‘와 닿았다’는 표현으로 진술한다. 이는 담론이 개인의 정서와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고향의 종말을 묘사하며 사용한 ‘스르륵’이라는 의태어는 남1(서울)이 느끼는 소멸의 공포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즉, 담론은 소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고향의 미래를 불가항력적이고 운명적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참여자들의 진술을 통해 지방소멸 담론은 사회 현상의 객관적 정보 전달을 넘어 청년들의 장소감을 근본적으로 재배치하는 정동의 기제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앞서 이론적으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장소는 고정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담론과 신체, 물질이 얽혀 끊임없이 생성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Stokowski, 2002; Massey, 2005; Thrift, 2007). 지방소멸 담론은 청년들의 신체에 위기와 불안을 유발하는 정동을 지속적으로 주입하여 고향이 지닌 다양한 잠재성 중 소멸의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감각하게 만든다. 이는 비재현적 정동이 언어와 같은 재현물을 통해 더욱 증폭되고 감정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Thrift, 2007).
지방소멸 담론은 청년들이 고향의 고요함을 ‘평화’가 아닌 ‘소멸의 징후’로 읽어내게 만드는 정동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기존의 복합적인 장소감을 와해시키고 떠나야 하는 위기의 장소로 인식하게 만든. 이처럼 담론은 정보 제공의 영역을 넘어 청년들의 감정에 작동하여 고향에 대한 복합적인 장소감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동적 동력으로 작용한다.
(2) 소멸의 증거 찾기: 고향에 대한 재해석
청년들이 지방소멸 담론과 마주한 이후 고향의 물리적 환경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멸’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씌워진 시선은 평온했던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위기의 징후를 적극적으로 포착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막연했던 불안을 눈앞의 현실로 확인하려는 일종의 ‘소멸의 증거 찾기’ 과정이다.
서울도 지금 사실 좀 그렇다고 생각은 하지만(고향에서는) 일단 애들이 길거리에 안 보여요. 애들이 약간 아기 울음소리 이런 게 아예 안 보여요. 보면은 다 약간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 위주고 젊은 사람도 많이 안 보이고. - 남1(서울)
지방소멸 담론을 내면화한 청년들에게 고향의 풍경은 지방소멸 증거의 현장으로 전환된다. 남1(서울)은 고향의 거리를 떠올리며 아이들의 부재와 노인들의 존재를 대비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 역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라고 남1(서울)이 고향에서 느끼는 저출산 문제의 체감은 다르다. 아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노인 위주의 풍경을 보면서 고향을 활력 부재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담론을 접하기 전에는 자신을 좋아해 주던 노인들의 존재가 지방소멸이라는 렌즈를 통해 소멸의 징후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고향은) 빈집 있는 중소 도시 중에 하나라고는 알고 있어요. 이제(지방소멸 담론을 접한 후) 빈집이 좀 많다는 의미는 좀 소멸을 한다는 의미로도 생각해 봐야겠다. - 남4(서울)
남4(서울)는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빈집을 소멸의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고향을 ‘빈집이 있는 도시 중 하나로 알고 있다’는 진술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지다. 남4(서울)에게 빈집은 소멸과 직결되는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방소멸 담론을 접한 후 빈집은 소멸의 증거로 작동했다. 고향의 빈집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쇠퇴를 의미하는 시각적 상징물로 해석되었다. 빈집은 물리적으로 어제와 동일한 모습일지라도 정동적으로는 고향의 위기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증거가 되었다.
남2(서울)는 고향의 가로등이 객관적으로 어둡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어느 순간 가로등 불빛이 거슬렸다’고 진술한다. 이는 지방소멸 담론의 정동이 장소에서 느끼는 신체적 감각을 변화시킨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고향은 물리적으로 밝을지 모르나 이미 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둠의 공간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담론이 활성화한 부정적 정동이 연구참여자의 신체에 감각되어 장소에 대한 근본적인 느낌 자체가 변화하였음을 보여준다. 지방소멸 담론은 밝게 빛나는 가로등이 감각적으로 활기가 없다고 느낄 만큼 소멸의 증거로서 작동하여 감각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진술을 통해서 지방소멸 담론은 청년들의 인식에 개입하여 고향의 풍경을 소멸의 징후로 재해석하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앞서 이론적 논의에서 살펴본 프레이밍은 특정 측면을 부각하여 해석을 유도한다(Entman, 1993). 지방소멸 담론의 프레임은 고향의 물리적 환경이 지닌 다양한 잠재성 중 소멸의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담론이 활성화한 소멸의 위기감을 상징하는 고향의 풍경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게 된다.
결국 지방소멸 담론은 청년들로 하여금 익숙했던 고향을 소멸의 공간으로 감각하게 만듦으로써 막연했던 불안감을 명료한 확신으로 전환시킨다. 과거의 장소감이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양가적 상태였다면, 담론을 접한 이후 부정적 감정이 활성화되어 고향의 풍경은 소멸을 가리키는 상징이 된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풍경이 소멸의 증거로 인식되는 과정은 청년들에게 소멸을 신체적으로 각인시키며, 긍정보다 부정적 감정으로 쏠리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3) 장소감의 재배치
(1) 심리적 균열: 약화되는 장소 애착과 정체성의 혼란
지방소멸 담론을 접하며 고향의 풍경으로부터 스스로 소멸을 입증한 청년들의 장소감은 더 이상 양가적인 균형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담론에 의해 촉발된 부정적 정동은 청년들의 장소감 변화는 고향에 대한 애착의 약화로 이어진다. 특히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유대감은 부담감으로 해석되어 고향과의 연결고리는 약화되고 신체적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여2(서울)의 진술에서 ‘반갑기는 해요’라는 진술은 고향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신체에 본능적으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곧바로 부담과 싫음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 전환되어 동향 사람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거부한다.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긍정적인 장소감에 기반한 유대적인 관계를 형성하지만, 지방소멸 담론과 도시적 가치관이 결합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변질된다. 즉, 고향의 정은 긍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동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여2(서울)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에게 ‘너무 못됐나요?’라고 반문하는 것은 고향 사람과 유대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편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보여준다. 이러한 혼란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급격히 단절되는 것이 아닌 정서적 동요가 축적되면서 서서히 약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남2(서울)의 진술은 지방을 부정적 이미지로 일반화한 외부 담론으로 인해 고향을 재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2(서울)는 고향에 소속되기 싫은 이유를 고향의 문제점이 아닌 지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안 좋게 말하는 곳에 소속되는 게 싫다’는 진술은 고향의 이미지가 장소뿐만 아니라 소속된 개인에게도 낙인찍는 현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단호한 어조로 ‘싫어요’라고 진술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강한 거리두기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방’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지리적 범주를 넘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어 부정적 의미로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롭게 정의된 ‘지방’이라는 용어는 남2(서울)에게 고향에 대한 애착보다 낙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방소멸 담론은 외부의 시선을 내재화하여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장소감을 재배치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지방소멸 담론은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에 사회적 낙인을 부여했고, 청년들은 이로 인한 상처를 경험했다. 여3(서울)은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단적인 조롱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지방소멸 담론이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편견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대학 와서 대외 활동으로 만난 사람인데 그냥 그냥 시골 출신인 걸 되게 무시하더라고요. … 그걸 한 번 당하고 나니까 굳이 말하지 않았어요. 대화 중에 ‘병원이 없어서 아파서 치료 제대로 못 받고 죽지?’ 막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 여3(서울)
여3(서울)은 말을 더듬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했는데 이는 불쾌감을 넘어 깊은 상처를 암시한다. ‘병원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죽지?’라는 상대방의 발화는 인프라의 부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생존 가능성을 조롱하는 폭력적인 편견을 보여준다. 이는 지방소멸이라는 거시적 담론이 만들어낸 자극적인 프레임이 다수에게 각인되어 학습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지방소멸 담론은 특정 지역을 열등한 공간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편향적 사고를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애착을 약화시키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른들은 사투리를 다 쓰시는데도, 이제 특히나 저희 아버지가(저한테는) 굉장히 그런 걸(사투리 사용에 대해서) 엄격하셨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서울 생활을 일찍 하셔서 그런지 ‘야 서울 가려면 미리미리 고쳐야 돼’ 이렇게(말씀)하셨어요. 제가 기억이 나는 게 그 선생님까지 왔었어요. 서울말 해주는 선생님이요. 진짜로. 그래서 그 분한테 막 조금씩 배웠던, 사투리 단어 같은 거는 못 쓰게 하셨던 기억이 나요. - 여4(경기)
여4(경기)의 진술은 고향에 대한 애착 약화가 감정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장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요소를 교정하려는 실천적 노력을 보여준다. ‘사투리를 없애야 하는 것’, ‘교정해야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향이 외부의 가치 체계 속에서 열등하게 위치하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아버지가 ‘서울 가려면 미리 고쳐야 한다’며 사투리 사용을 금지하고, 심지어 ‘서울말 선생님’에게 교정받았던 일화는 가족 내에서도 이미 수도권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내면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투리는 단순한 말투가 아니라 지방을 표상하는 정동적 기표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를 교정하려는 시도는 곧 자신의 출신 지역에 대한 거리두기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고향의 문화적 특성이 긍정적 자원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성공을 위해 버려야 하는 요소로 규정된 것이다. 이는 외부의 기준에 의해 지속적으로 고향을 부정하면서 발생하는 정동적 긴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청년들이 고향의 문화적 정체성을 숨기려는 노력은 고향에 대한 장소감이 재배치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청년들에게서 확인한 심리적 균열은 외부의 부정적인 담론이 정동적으로 신체에 반응하여 열등감과 같은 감정을 지속적으로 생산한 결과다. 수도권 중심의 위계적 질서 속에서 지방 출신이라는 사실은 극복해야 할 문제로 치부되며, 이에 따라 청년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장소정체성을 스스로 은폐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즉, 장소 애착의 약화는 담론의 권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향의 연결고리를 끊어낸 실천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긍정과 부정이 대항하던 복합적 장소감의 균형은 무너지고 청년들의 고향에 대한 장소감은 새롭게 재배치된다.
(2) 이탈의 정당화: 선택에서 필연으로
앞서 논의한 애착의 약화와 정체성의 혼란은 심리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실천의 당위성을 제공한다. 고향이 미래가 없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청년들에게 고향 이탈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합리화된다. 즉, 재배치된 장소감은 청년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는 행위를 돕는 명분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고향 이탈은 개인의 선호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필연의 영역으로 인식된다. 지방소멸 담론은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입하여 고향에 남는 것은 도태로, 고향을 떠나는 것은 성공으로 프레이밍한다. 특히 청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기성세대에게도 만연한 상식으로 자리 잡아 청년의 이탈을 오히려 독려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들이 말해요. ‘너도 고등학교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지’라는 식으로요. 학교 선생님들도 그런 분위기예요. ‘너 평생 여기에 남는 수가 있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여기 남으면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는 거예요. - 남3(경기)
고향을 떠나는 것이 선택을 넘어선 필연으로 굳어지는 과정은 청소년기부터 시작된다. 청소년에게 학교는 사회적 규범을 교육하는 기관이지만 지방의 청소년들에게는 고향 이탈의 당위성을 학습시키는 장소로도 작동한다. 남3(경기)의 진술은 부모와 교사로부터 타지역으로 진학하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과정으로 학습되는 점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지’라는 부모의 발언과 ‘평생 여기에 남는 수가 있다’는 교사의 발언은 고향에 정주하는 것을 마치 실패의 과정으로 확언한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남3(경기)의 진술은 고향 이탈에 대한 인식이 외부의 강요가 자신의 판단처럼 완전히 내면화되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지역사회의 기성세대에게도 고향을 떠나야 성공한다는 프레이밍이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청년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주를 필연적인 수순으로 인식하게 된다.
어쨌든 거기(고향)에 남아 있는 애들을 보면서(어른들은) 이렇게 말씀들 하세요. “OO아, 니가 그래도(잘 된거다.) 그렇게 좋은 서울로 학교도 가고 … 솔직히 쟤들(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 봐봐라. 이 촌구석에 살고 …”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약간 비하? 안 좋게 보는 거죠. - 남5(경기)
남5(경기)의 진술은 지역사회에 만연한 패배주의적 인식을 보여준다. 남5(경기)는 고향에 남은 친구들과의 비교를 통해 본인의 선택을 인정받는 현실에 대해서 진술했다. 고향을 ‘촌구석’이라고 표현하며 ‘쟤들 봐봐라’라는 기성세대의 발언은 고향을 멸시하는 표현이다. 이는 고향에 남은 청년들을 무시의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폭력적인 시선이다. 또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약간 비하?’라며 말끝을 흐리는 남5(경기)의 진술은 고향에 대한 내적 갈등을 드러낸다. 친구들을 깎아내리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들의 논리대로 고향을 떠나 성공한 사례로 인정받는 현실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이는 개인의 성취감이 아니라 담론의 구조적 모순 위에서 획득한 지위라는 점에서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정서를 유발한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차별적 시선은 청년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것이 필연적이고 옳았음을 정당화시킨다.
지방소멸 담론은 행정구역 통합과 같은 변화를 통해서도 청년들에게는 소멸의 불안감으로 포착된다.
OO군이 이제 대구광역시에 편입이 되잖아요. … 그렇게 된다는 게 저는 좀 불안하긴 한 거죠. 행정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진짜 사람들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약간 이런 생각이 좀 들어요. … 저는 다행히 서울에 살고 있지만요. - 남1(서울)
남1(서울)은 군(郡) 지역이 인근 광역시에 편입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고향의 소멸에 대해서 ‘불안하다’고 진술한다. 앞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에서 느꼈던 감각적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남1(서울)은 지방소멸 담론이 예고한 대로 고향이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결국 대도시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쩔 수 없는’ 필연으로 수용한다. 또한 ‘저는 다행히 서울에 살고 있지만요’라는 진술은 그러한 고향의 현실을 ‘남의 일’로 치환하는 정서적 거리두기를 보여준다. 즉, 고향의 소멸을 걱정하는 시선을 유지하다가도 서울 거주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남1(서울)에게 고향의 소멸 위기는 아쉽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서울로 떠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개인 카페 하려면 서울에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여긴(고향) 사람도 많이 없고 … ‘너 정도 실력이면 비벼볼 만하다. 지방에 남기엔 아깝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서울로 가야 하나 싶기도 해요. - 여8(고향)
여8(고향)의 진술은 지방소멸 담론이 고향의 미래에 대해 이주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여8(고향)은 고향에 남아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은 평가절하된다. 지역사회에서 청년의 고향 이탈은 종종 개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칭찬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칭찬을 가장한 고향 비하 발언은 성공을 바라는 선의에서 사용되지만, 고향은 능력 있는 자가 머물러서는 안 될 공간으로 규정하는 논리를 내포한다. ‘아깝다’라는 표현은 여8(고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능력이 발휘될 장소로서 고향은 부적합하다를 전제하여 서울 중심으로 장소를 위계화한다. ‘서울로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며 흔들리는 여8(고향)의 모습은 이러한 외부의 시선이 신체에 정동적으로 감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의 고향 이탈은 온전한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 지역사회 전반에 스며든 지방소멸 담론에 의해 짜여진 필연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청년들의 고향 이탈을 지방소멸 담론의 단일한 변수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고향을 떠나는 선택은 지역 간 구조적 불균형, 수도권 집중 현상 그리고 개인의 생애 등 복잡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결과로 담론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실재한다. 그러나 본 장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지방소멸 담론은 이러한 구조적 조건에서 작동하여 청년들의 장소감과 이탈 선택에 개입하고 있다. 즉, 담론은 고향에 대한 장소감에 균열을 발생시키고 불가피한 선택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정동적 환경을 조성한다. 따라서 지방소멸 담론은 청년들의 이탈을 직접적으로 결정하지 않더라도 명분을 제공하고 공명을 강화하는 상호구성적 힘을 발휘하는 정동적 기제로 이해하여야 한다.
5. 결론
본 연구는 청년들이 ‘지방소멸’이라는 거대 담론과 마주하면서 고향에 대한 장소감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담론 이전 청년들의 장소감은 긍・부정적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와 정책 등을 통해 유입된 지방소멸 담론은 위기와 불안을 유발하는 정동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며 균형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고향의 풍경을 소멸의 징후로 재해석하고 고향에 대한 애착을 스스로 끊어내며 이탈을 필연적인 선택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즉, 지방소멸 담론은 객관적 정보 전달을 넘어 청년들의 장소감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정동의 기제로 작동함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갖는다. 첫째, 개인의 주관적 해석 차원에 머물러 있던 기존의 장소감에 정동 개념을 접목하여 장소감의 이론적, 분석적 지평을 확장하고자 했다는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기존 장소감 연구는 개인이 장소에 대해 가지는 만족도와 정서적 심리 상태로 장소감을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소감의 역동적인 과정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지점에서 정동의 접목은 비선형적이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장소감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이론적 자원으로 기능한다. 정동은 언어로 명확히 규정되기 이전의 신체적 반응이나 공간을 감싸는 분위기 등 이성적인 인지 과정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재현적인 감각들을 포착한다. 즉, 정동은 장소감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구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장소감이 어떻게 재배치되는지 입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정동 개념을 통해 장소감이 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시하였다.
둘째, 본 연구는 사례 분석을 통해 지방소멸 담론이 청년들에게 본인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포착하는 등 정책담론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작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는 실천적 의의를 지닌다. 인터뷰를 통해 청년들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시선을 내재화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청년들은 담론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향에서 소멸의 증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며 이탈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지방소멸, 위험지역 등과 같은 자극적인 용어들은 인구 감소 문제를 전국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는 낙인으로 해석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정부 및 언론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식적인 낙인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다. 이는 지방소멸이라는 정책 용어가 중립적이지 않으며, 장소감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수행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책 용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요구된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경상북도 4개 도시 출신 청년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감소지역이나 다른 세대에게 일반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역적・세대적 맥락에 따라 담론을 감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는바, 향후 다른 지역이나 세대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소멸 담론이 확산된 이후 인터뷰를 수행했기 때문에 이미 담론을 내재화하여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담론 전후의 장소감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종단적 연구 설계를 통해 한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