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1 August 2025. 391-410
https://doi.org/10.22776/kgs.2025.60.4.391

ABSTRACT


MAIN

  • 1. 들어가며

  • 2. 연구의 틀

  •   1) 시대적 맥락을 재현하는 대중문화 텍스트로서의 TV 드라마

  •   2) 거주지 분리 양상의 재현을 중심으로 한 대표 TV 드라마 선정

  • 3. 1980년대 TV 드라마에 나타난 계층과 공간의 재현

  •   1) 1980년대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

  •   2) 1980년대 대표 TV 드라마 분석

  •   3) 소결: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상상한 공간들

  • 4. 1990년대 TV 드라마에 나타난 계층과 공간의 재현

  •   1) 1990년대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

  •   2) 1990년대 대표 TV 드라마 분석

  •   3) 소결: 경계와 배제의 서사로 전환된 달동네

  • 5.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에 나타난 계층과 공간의 재현

  •   1)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

  •   2) 2000년대 이후 대표 TV 드라마 분석

  •   3) 소결: 폐쇄적 상류층 공간과 계층 갈등의 시각화

  • 6. 나가며

1. 들어가며

최근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득의 양극화는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발표한 국가별 소득불평등 데이터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3.3%p 증가하여 전체 소득의 11.7%에 달하였고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2.5%p 증가하여 34.4%를 기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류이근, 2023). 이 같은 상위 계층의 소득 점유율 확대는 중하위 계층의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 약화를 초래하고, 전반적인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소득불평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Kawachi and Subramanian, 2014), 이 현상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증거 기반의 정책(evidence-based policy)을 마련하는 것은 그간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받아 왔다.

공간 분리의 악순환(vicious circles of segregation)을 고려하면, 거주지 분리(residential segregation)는 소득불평등과 상호작용하며 그 구조를 강화하는 주요 메커니즘으로 주목되어야 한다(구한민, 2024a; Comandon et al., 2018). 소득불평등은 양질의 거주지를 선호하는 고소득층의 독점적인 공간 점유와, 주거 선택이 제한적인 저소득층의 공간적 고립을 초래한다. 계층 간 거주지의 공간적 분리가 격화되면, 공공 서비스, 인프라, 고용 접근성과 같은 공간 자원의 불균형뿐 아니라 교육 기회와 사회적 자본 등 사회 자원의 격차 또한 가속화된다. 이 같은 공간적・사회적 불평등은 계층 이동성(social mobility)을 제한하며, 결과적으로 소득불평등을 한층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득불평등과 거주지 분리의 악순환 속에서 저소득층의 고립은 고착화되고 계층 상승 가능성은 감소하며 고소득층의 거주지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화하면서 계층 간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거주지 분리 현상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계층별 거주지 선택 양상, 계층 상승 가능성의 조건, 공간적 분리의 형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미래의 거주지 분리 양상을 예측하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접근에 기여할 수 있다.

지리학에서 거주지 분리는 단순한 주거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배제와 기회의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적 메커니즘으로 인식된다. 대표적으로 공간 층화론(place stratification theory)은 시장 불평등과 제도적 차별 등 구조적인 한계가 저소득층의 공간적 이동을 제한한다는 관점에서 공간적 분리가 고착화될 것임을 지적하였다(Logan and Molotch, 1987). 반면 공간 동화론(spatial assimilation theory)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상승이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의 이동을 촉진한다는 관점에서 공간적 통합의 가능성을 강조하였다(Massey and Denton, 1985). 한편 사회적 배제와 고립 속에서 저소득층이 밀집하여 형성된 게토(ghetto)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Wilson, 1987), 그리고 고소득층이 사회적 동질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며 자발적으로 물리적 장벽을 설치하여 형성되는 빗장공동체(gated community)가 초래하는 공공공간의 사유화와 공간적 양극화에 관한 논의(Blakely and Snyder, 1997) 역시 거주지 분리의 주체에 따라 이질적으로 나타나는 공간 분리의 양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된다. 물론 인종과 민족을 중심으로 이주민의 공간적 이동을 설명하는 해외의 이론을 우리나라의 맥락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정수열, 20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론들에서 사회・경제적 측면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소득불평등과 상호작용하며 강화되는 공간 분리의 악순환 구조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소득수준에 따른 거주지 분리는 미시적 공간 단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은 읍면동 이하의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통시적 분석을 위한 장기간의 소득수준 자료를 미시적 공간 단위에서 수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박영민・김종구(2020), 봉인식・최혜진(2015) 등은 주택가격과 교육수준을 소득수준의 대리변수로 활용하여 거주지 분리를 설명하는 연구를 수행하였으나, 소득수준과 거주지 분리 사이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이성호(2021)와 같이 소득 자료를 직접 활용하여 거주지 분리를 분석한 연구도 일부 존재하나, 시군구를 단위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배제에 초점을 두고 수행되어 거주지 분리에 대한 세부적이고 다각적인 이해를 제공하지 못하였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본 연구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TV 드라마에 나타난 거주지 분리를 조사하기 위하여 서사분석, 내용분석, 담론분석을 수행한다. 드라마는 특정 시대,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시대적 감정을 드러내는 텍스트로서 방영 당시의 사회적 문제, 갈등 구조 등에서 비롯된 현실을 심층적으로 반영한다(최윤정・권상희, 2013). 따라서 드라마 속 등장인물, 공간적 배경, 플롯(plot), 대사 등에 대한 정성적 분석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대리변수에 의존한 수치적 분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소득불평등과 거주지 분리의 복잡한 맥락을 드러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드라마의 이야기 구성과 전개 방식을 파악하고 주제 의식이나 주요 키워드를 식별하며 각 드라마에 반영되어 있는 당시의 사회적 규범을 확인한다. 이를 통하여 사회적 계층 이동성과 거주지 분리 양상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오늘날 거주지 분리가 나타내는 주요 특징을 조명한다.

본 연구는 TV 드라마라는 대중문화 텍스트를 분석 도구로 활용하여 계층 간 공간 분리의 인식 구조와 사회적 서사를 정성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독창성을 갖는다. 또한 기존의 거주지 분리 연구가 주로 계량적 지표나 정량적 기법에 의존하여 공간 불평등을 피상적으로 설명하여 왔다면, 본 연구는 정량적 접근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사회적 정동, 계층 인식, 공간의 상징성에 주목함으로써 거주지 분리의 복합적 작동 메커니즘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있다. 아울러 시대별 드라마에 나타난 공간의 재현과 인물 간 관계 구조를 통하여 사회구조의 변화, 계층 갈등의 심화, 그리고 계층 상승 가능성의 위축을 추적함으로써, 정책적 접근에 필요한 문화적 맥락과 사회심리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으로 기여한다.

이어지는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문화 텍스트로서 TV 드라마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배경과 분석 방법을 정리하고, 시대 구분 및 대표 드라마 선정 기준을 제시한다. 3장부터 5장까지는 각각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시대별 사회경제적 맥락 변화와 함께 드라마 속 계층 인식과 거주지 재현 방식의 전환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이러한 통시적 분석을 종합하여 드라마 속 공간 서사가 현실의 공간 분리 구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논의하고 그 함의를 제시한다.

2. 연구의 틀

1) 시대적 맥락을 재현하는 대중문화 텍스트로서의 TV 드라마

TV 드라마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빠르게 생산되어 소비되는 대중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초반 TV 수상기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드라마가 특정 시대,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시대적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텍스트로서 작용하게 되었다(최윤정・권상희, 2013). 드라마의 시청률은 방송사의 광고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방송사는 시청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성은 제작사로 하여금 사회적 관심사나 갈등 구조를 드라마에 반영하게 만든다. 따라서 드라마는 순수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물로서 시대적 감정을 드러내는 텍스트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드라마의 변화는 방영 시기의 특수한 사회적 맥락과 함께 이해되어야 하며, 두 요소는 상호 연결된 분석 단위로 파악될 수 있다(정영희, 2005). 이러한 맥락에서 드라마의 주제, 소재, 서사, 인물 관계 등의 요소는 방영 당시의 사회적 문제와 갈등에서 비롯된 거주지 분리의 양상을 뚜렷하게 재현한다.

TV 드라마의 콘텐츠를 분석하는 데 있어 양적 연구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은 제한적인 의미를 지닌다. 드라마는 서사와 상징적 요소를 활용하여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이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양적 기법은 텍스트의 맥락과 상징을 정량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한계를 드러낸다(구한민・이상원, 2023). 아울러 드라마의 방영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점도 자료의 체계적 구축을 어렵게 하여 텍스트 마이닝과 같은 분석에서 요구되는 코딩(coding)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제약은 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자료 선택과 해석 과정에서 본질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드라마 연구를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까지의 연구 중 60.4%가 질적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최윤정・권상희, 2013). 특히 본 연구에서와 같이 드라마의 내용이나 소재에 대한 서사분석, 내용분석, 담론분석 등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 TV 드라마는 전후(戰後) 황폐화된 국가를 재건하자는 집단적 목적의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1970년대에도 영웅적 주인공을 내세운 유사한 유형의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기의 드라마는 문화 계발기 또는 낭만적 전유기의 특징을 지니며 뚜렷한 사회적 목적의식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김승현・한진만, 2001). 당시 드라마 제작은 정부의 편성 지침에 따라 엄격히 제한되었고 창작 과정에서의 유연성과 표현의 자유 또한 크게 제약되었기 때문에 시대적 갈등이나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하기 어려웠다(정영희, 2005).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일상생활을 다루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문화적 소비 공간이자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드라마는 사회적 현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게 되었고, 거주지 분리나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도 드라마 서사에 자연스럽게 통합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10년 단위로 시기를 구분하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TV 드라마를 선정하여 소득수준에 따른 거주지 분리의 재현 양상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드라마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 간의 계층 관계는 내용분석과 서사분석을 통하여 접근하며, 사회적 배경과 경제적 불평등, 공간 분리 현상의 의미는 담론분석을 통하여 해석한다. 이를 통하여 드라마가 각 시대의 사회 구조와 계층 질서를 어떻게 재현하고, 거주지 분리에 대한 대중의 인식 구조 형성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였는지를 심층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2) 거주지 분리 양상의 재현을 중심으로 한 대표 TV 드라마 선정

시대별로 다양한 드라마를 폭넓게 분석하는 접근은 거주지 분리의 일반적인 패턴과 경향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대표작에 대한 집중 분석은 특정 시기의 사회적 맥락과 공간 분리 양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 접근이다. 이에 본 연구는 각 시대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되 이를 대표할 수 있는 드라마를 선정하고, 주제, 문제의식, 상징적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성적 분석을 수행한다. 1980년대 드라마에서는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강조한 《달동네》(1980)와 《보통 사람들》(1982), 1990년대에는 달동네를 계층 분리의 상징으로 활용한 《서울의 달》(1994)과 《파랑새는 있다》(1997), 2000년대 이후에는 극단적인 계층 분리와 갈등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 《SKY 캐슬》(2018)과 《펜트하우스》(2020) 등이 분석의 주요 대상이 된다.

1980년대 TV 드라마는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모범적인 가치관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강조한다. 이 시기의 드라마는 소득에 따른 공간적 분리를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의 주거지인 달동네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근면성과 계층 상승의 의지를 통하여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서사적 특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달동네》와 《보통 사람들》이다. 두 드라마는 하층민과 중산층이라는 서로 다른 계층의 삶을 조명하면서도 공통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또한 이들은 거주지 분리를 강조하기보다는 공동체 의식과 성실함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1990년대 TV 드라마는 달동네라는 공간적 배경을 계층 분리의 상징으로 활용하면서 빈부 격차와 저소득층의 소외 문제를 직접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드라마는 달동네를 빈곤과 소외의 상징으로 부정적으로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들의 희망적 서사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서사가 함께 나타나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서사적 특성은 《서울의 달》과 《파랑새는 있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두 작품은 1990년대 우리 사회에 존재한 계층 분리와 사회적 불평등, 계층 상승의 욕망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달동네라는 상징적 공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서울의 달》은 상류층 진입을 꿈꾸는 인물들이 달동네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히는 과정을 묘사하고, 《파랑새는 있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과 사랑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처럼 달동네를 계층 분리의 상징으로 조명하면서도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드라마는 1990년대 거주지 분리를 다양한 시각에서 고찰할 수 있는 분석적 기반을 제공한다.

2000년대 이후의 TV 드라마는 계층 간 거주지 분리를 당연한 현실로 전제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과 수직적 위계 구조를 계층 격차를 부각시키는 주요 장치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계층 간 접촉을 사건화하고, 상류층의 특권 의식과 독점적 네트워크를 이기적인 속성으로 묘사하며 이들을 타자화하는 서사가 빈번히 나타난다. 이러한 서사적 특성은 《SKY 캐슬》과 《펜트하우스》에서 두드러진다. 두 드라마는 각각 ‘SKY 캐슬’과 ‘헤라팰리스’라는 폐쇄적 고급 주거지를 배경으로 하여 상류층 내부의 극단적인 갈등과 위선적 욕망을 다룬다. 이들 공간은 과장된 설정과 연출로 인하여 현실성이 희생되기도 하지만, 실제 고급 주거지의 위계 구조와 상징성을 일정 부분 반영함으로써 계층 분리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두 드라마는 계층 분리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갈등의 핵심 서사로 전면화함으로써,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계층 격차와 공간적 분리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인식되고 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텍스트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본 연구는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시기로 통합하여 분석한다. 이는 첫째,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서 안정 성장기로 전환되면서 성장률과 산업 구조 등에는 변화가 있었으나 거주지 분리 양상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형태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같은 시기 외주 제작이 본격화되고 로케이션 전문 회사가 등장하면서 전통적 주거지를 배경으로 한 사례가 급감하였고, 이에 따라 시기별 거주지 분리의 재현 양상을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 수 자체가 제한되었다.

3. 1980년대 TV 드라마에 나타난 계층과 공간의 재현

1) 1980년대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

1981년 TV 보급률이 80%를 넘어서고 컬러 방송이 전면 도입되면서 TV 드라마는 대중문화 형성과 확산의 핵심 매체로 자리매김하였다(국가기록원, 2015).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TV를 체제 정당화와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검열 강화는 역설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대중문화 형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김성일, 2018). 한편 이 시기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콘텐츠와 자본의 유입으로 문화시장의 개방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고 전통과 새로운 요구가 충돌하면서 사회 집단 간 이해관계가 주요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였다(남상욱, 2024; 박진희, 2025).

1980년대 초반 KBS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명확한 주제 의식을 지닌 서민 서사, 정치적 사건의 극화, 기업 드라마, 문예물 등 다양한 소재의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신군부 정권이 공영방송을 체제 정당화 수단으로 활용한 탓에 드라마에는 이산가족 상봉이나 근면・자수성가를 강조하는 기업가정신 등, 체제 순응적 메시지가 다수 반영되었다(윤상길, 2020). 이러한 경향은 ‘한국인의 모범적 성취감 수용’을 핵심 기조로 내세운 1983년 KBS1 기본 방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드라마는 빈부 격차나 소득 분배의 혼란 등 민감한 사회 문제를 우회적으로 고발하고, 이를 소시민적 윤리나 현실 적응의 서사로 풀어내는 방식을 통하여 현실과 조응하고자 하였다(정영희, 2005).

1980년대 후반에는 미니시리즈가 정규 편성되었으나, 당시에는 전용 극본이 부족하여 주로 기존 소설을 각색한 작품들이 방영되었다(남명희, 2008; 이양환 등, 2014; 정영희, 2009). 특히 인간 소외와 사회적 모순을 주제로 한 소설의 TV 드라마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회성과 시사성을 갖추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의 드라마가 체제 정당화에 방점을 두었다면, 후반기의 드라마는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고 인정하며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처신할지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정영희, 2005).

2) 1980년대 대표 TV 드라마 분석

1980년대 TV 드라마는 오늘날과 같은 자연스러운 로케이션 촬영이 일반화되기 이전으로, 대부분 방송국 내 스튜디오 세트장에서 제작되었다. 따라서 세트장으로 구성된 주거 공간은 당대 도시 서민의 생활 환경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인위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달동네》는 서울 산꼭대기 변두리 마을을 배경으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서민들의 고단하지만 희망 어린 일상을 그리며 계층 간 거주지 분리를 강조하기보다는 공동체적 삶의 면모를 부각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번듯한 양옥(洋屋)을 중심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간적으로는 차이를 보이지만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계층 간 대비보다는 서민적 삶의 성실함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다.

《한지붕 세가족》(1986)은 도시 외곽 단독주택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 가족들과 집주인이 함께 사는 구조를 통하여 가진 것은 없지만 서로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가능성을 연출하였다. 한편 《철수의 꿈》(1989)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도시 빈민 문제와 재개발의 그늘을 정면으로 다룬 이례적인 사회고발 드라마였다(정영희, 2005). 상계동 철거민 가족의 8살 아들 철수의 시선을 통하여 재개발 정책의 폭력성과 도시 빈민의 삶을 고발하고자 하였으나 방송 자체가 논란이 되며 조기 종영되었다. 연출자 이민홍은 당시 인터뷰에서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는데(최보은, 1989), 이는 해당 드라마가 담고자 한 사회적 메시지의 무게를 방증한다.

(1) 《달동네》(나연숙 극본, 김재형 연출): 1980. 10.01.~1981.09.05., TBC 및 KBS1 방영

《달동네》는 1980년 10월 1일 TBC에서 일일연속극으로 첫 방송된 이후, 방송 통폐합에 따라 KBS1로 이관되어 1981년 9월 5일까지 방영되었다. 1980년대의 혼란스러운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하층민 거주지를 주요 배경으로 삼은 이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고선희, 2011). 등장인물들은 당시 사회의 다양한 직업군을 반영하며, 이들의 직업은 곧 인물의 사회적 위상과 생활 환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주요 직업군은 세무서 과장, 무역회사 사원, 복싱선수, 미용사, 방앗간 사장 등으로 최빈곤층보다는 도시 하층 서민 계층에 해당한다.

《달동네》의 서사는 김과장 댁을 중심으로, 이무기 댁, 달근・덕자 커플, 탁상필 가정, 배서방 가정, 염병권 가정 등 여섯 가구의 일상과 갈등, 희로애락을 통하여 서민적 삶의 애환을 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이처럼 가난하지만 근면한 인물들의 일상을 통하여 달동네라는 공간을 가까운 미래에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서민의 터전으로 묘사하였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후 달동네는 하층민의 주거 공간을 상징하는 용어로 널리 통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과거 하꼬방촌1)으로 불리던 달동네의 부정적 이미지가 점차 희망의 의미로 전환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선희, 2011). 이러한 공간 인식의 변화는 본 드라마의 주제곡 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드라마가 의도한 공간 연출의 정조를 반영하고 있다.

“하늘 안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들, 기쁠 때는 같이 웃고 괴로울 때에 한마음. 걸어온 길목들은 서로 달라도 앞으로 가는 길은 크고 환한 길. 새벽부터 한밤까지 근심 잘 날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라네 우리 동네 달동네.” (《달동네》 주제곡 中)

《달동네》에서는 떠나온 고향에서 경험했던 훈훈한 인심과 상호부조의 공동체 의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공용 부엌에서 참기름이 줄어든 사실을 두고 이웃을 의심하는 장면에서 아내 옥순이 도시적 불신의 정서, 이른바 서울식 불신의 태도를 보이자 남편 배서방은 “언제부터 서울 사람이 됐냐”며 나무란다. 이어 그는 고향 인심을 언급하며 “변하지 말자”고 말하고 이에 옥순은 “내가 또 변하면 당신이 꼭 말해 달라”고 응답하는데, 이 장면은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적 윤리를 되새기도록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달동네 내부에 시계방, 이발소 등의 생활 기반 시설이 설정되어 있으며 산 아랫마을과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달동네가 단순히 사회로부터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족적인 생활 공동체로 기능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달동네 주민들 또한 자신들의 주거지를 산 아랫마을과 구별하여 인식하고 있었음을 드라마 장면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김과장 댁 장남의 결혼식 날 이웃인 똑순이 아빠는 “동부세무서 김 과장님 댁 큰아들에다 사업가 댁 따님 결혼식장이 어째서 변두리 예식장이냐”며 아쉬움을 표현하는데, 이는 변두리 공간에 대한 내면화된 열등감과 공간적 위계 의식을 드러낸다.

그림 1은 《달동네》에 등장하는 주요 주거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화면 속 장면들은 대부분 방송국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는데, 이는 1980년대 도시 서민의 주거 현실을 상징적으로 구성한 공간이다. 상단과 하단 우측의 이미지에서는 여러 인물이 마당과 부엌에서 함께 집안일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는 협소한 주거공간을 함께 사용하며 살아가는 당시 도시 하층민 특유의 생활양식과 공동체적 유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장독대, 솥단지, 세숫대야 등은 생활의 물리적 환경을 드러내는 소품으로 활용되며 가족 간 혹은 이웃 간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하단 좌측의 이미지는 협소한 실내 공간, 소박한 가구 구성, 좌식 식사 문화 등 당시 생활양식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장면이다. 이처럼 《달동네》는 극심한 빈곤보다는 일상 속 연대와 성실한 삶의 태도를 조명하는 공간 구성을 통하여 하층민의 주거 공간을 공동체적 의미가 담긴 서사적 배경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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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달동네》에 나타난 주거 공간
자료: TBC・KBS1(1980-1981)

(2) 《보통 사람들》(나연숙 극본, 최상식 연출): 1982.09.20.~1984.05.31., KBS1 방영

《보통 사람들》은 1982년 9월 20일부터 1984년 5월 31일까지 KBS1에서 방영된 일일연속극으로 《달동네》와 동일한 작가인 나연숙이 집필한 후속작이다. 전작이 도시 하층민의 집단적 삶을 조명하였다면, 이 작품은 도시 중산층의 일상과 정서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주인공 가족은 양옥 세트장에서 생활하고 등장인물로는 치과의사, 대학생, 부장 등 당시 기준의 중산층 전문직이 등장한다. 《달동네》 종영 이후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이 작품은 현실의 궁핍함 속에서도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공영방송의 기획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고선희, 2011). 하층민이 중산층으로의 계층 상승을 염원하는 서사는 당시 한국 사회 다수가 공유한 시대적 욕망이었으며, 《보통 사람들》이라는 제목도 이러한 대중 정서를 반영하고자 당시 KBS 사장이 직접 작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하여 강동순(2006)은 “비록 정권이 기획한 드라마였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평론한 바 있다.

《보통 사람들》은 총 3년에 걸쳐 장기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일각에서는 “그게 어디 보통 사람들 이야기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는 드라마 속 주인공 가족의 경제적 안정성과 직업군이 당시 다수 시청자의 생활 수준과 괴리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연출자 최상식은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담는 다른 세계다. 등장인물은 개성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응답한 바 있다(김홍묵, 1983). 이러한 해명은 《보통 사람들》이 서민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중산층이라는 이상적 모델을 통해 계층 상승의 가능성과 정서적 안정을 시청자에게 제시하려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림 2는 《보통 사람들》에서 묘사된 도시 중산층의 주거 공간을 보여준다. 상단 좌측의 이미지는 정원과 마당이 연결된 단독주택을 배경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담고 있으며, 이는 안정적이고 단란한 가정의 외양을 부각한다. 상단 우측과 하단 장면에서는 서양식 식탁, 넓은 거실, 서재 공간 등이 등장하는데 깔끔하고 정돈된 내부 구성은 당시 드라마가 이상적으로 제시한 중산층 생활양식을 반영한다. 특히 소파, 테이블, 장식장, 실내 식물 등은 물질적 풍요와 안정된 삶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하며, 이는 전작 《달동네》의 공간 연출과 대조를 이루는 지점이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은 제목과 달리 현실 중산층이 지향하던 이상적 가족상과 주거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당시 대중이 꿈꾸던 계층 이동의 목표 지점을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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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보통 사람들》에 나타난 주거 공간
자료: KBS1(1982-1984)

3) 소결: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상상한 공간들

1980년대 TV 드라마에서 재현된 거주지 분리는 달동네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하여 도시 하층민의 삶을 조명하면서도 그 공간을 결핍의 장소가 아닌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희망의 무대로 형상화하였다. ‘열심히 일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당시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비교적 안정된 고용 환경이라는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시청자들에게 실현 가능한 미래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계층 서사는 단순한 현실 묘사를 넘어서 공영방송을 통하여 유포된 국가 주도의 이상적 삶의 모델이자 체제 순응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용하였다. 특히 드라마 속 저소득층과 중산층 주거 공간은 위계적으로 구분되면서도 상호 간의 적대적 긴장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사회 전체의 조화로운 발전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 방식은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재개발 사업은 원주민의 강제 이주와 새로운 빈민층의 양산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하였고, 이는 공간적 불평등과 계층 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는 1990년대 이후 드라마 서사의 방향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게 된다.

4. 1990년대 TV 드라마에 나타난 계층과 공간의 재현

1) 1990년대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

1990년대는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전 사회적으로 개혁과 반성의 흐름이 확산된 시기였다. 문화적으로는 민중・노동 문학의 퇴조와 함께, 탈이념화・개인주의・‘우리 것 찾기’로 상징되는 민족주의 담론이 대중문화 전반에 확산되었다(박해남, 2020; 양경미, 2010). 방송 시스템도 변화하여 방송국의 민영화와 더불어 정권 개입보다는 시장 논리가 주도하는 프로그램 기획이 활발해졌고(윤석민・이현우, 2008), 이는 TV 드라마의 서사와 제작 방식에도 다양성과 실험성을 불러왔다. 특히 드라마의 주제 선정과 평가 기준이 기존의 계몽적・교육적 성격에서 탈피하여 오락성, 상품성, 흥미성을 중심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대중의 현실 도피 욕망과 맞물리며 비현실적・환상적 서사의 유행을 촉진하였다(정영희, 2005).

당시 대중적 인기를 끈 대표작으로는 역사적 상처와 민족 정체성을 조명한 《여명의 눈동자》(1992), 권력과 정의를 둘러싼 사회 구조의 모순을 그린 《모래시계》(1995), 도시 청춘의 감정선과 감각적 연출로 호평받은 트렌디 드라마 《질투》(1992)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별은 내 가슴에》(1997), 《신데렐라》(1997), 《프로포즈》(1997)와 같은 작품들의 고아, 빈곤, 사회적 약자인 여성 등의 서사는 신분 상승과 성공, 이상적 사랑을 주제로 삼으며 대중이 열망한 사회적 이동성과 정서적 보상을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후반 시트콤의 부상과 젊은 세대의 본격적 유입으로 이어졌고 TV 드라마는 점차 전 세대적 국민 장르로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한편 급격한 도시화와 가족 구조의 해체는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을 반영하는 서사적 경향으로 이어졌다. 윤리적 금기였던 불륜이나 가족 해체조차 감정적으로 미화되거나 일상의 고민으로 재현되는 경향이 등장하였다. 예컨대 《애인》(1996)은 기혼 남녀의 고독과 사랑을, 《청춘의 덫》(1999)은 배신과 복수를 통해 감정의 격렬한 분출을 다루며 당대의 탈규범적 감성과 대중 심리를 반영하였다. 또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현실의 고통을 회고하면서 가족과 생존의 의미를 되새기는 복고적 서사가 강세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육남매》(1998), 가족 간 갈등과 화해를 주제로 한 《보고 또 보고》(1998), 여성의 자립과 성공 서사를 담은 《국희》(1999) 등이 있다. 이들 TV 드라마는 위기 속에서도 공동체적 유대와 개인의 자립 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당대 시청자의 정서와 강하게 호응하였다.

2) 1990년대 대표 TV 드라마 분석

1990년대에도 달동네는 빈곤층의 주요 거주지로 재현되었으나, 희망적 상징에서 배제와 절망의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서울의 달》은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달동네를 계층 상승이 좌절된 장소, 즉 탈출하지 못한 이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그렸다. 이와 유사하게 《내가 사는 이유》(1997)에서도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배경으로 생계와 가족 책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시 빈민의 삶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이들 TV 드라마는 더 이상 달동네를 희망의 공동체로 묘사하지 않고, 대신 도시 내부의 구조적 배제가 초래한 공간적 고립과 심리적 박탈감을 부각하였다.

동시에 1990년대는 트렌디 드라마의 유행과 함께 전통적인 신분 상승 판타지를 재현하는 신데렐라 서사가 빠르게 확산된 시기였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는 재벌가 상속자와 평범한 여성 노동자 간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극단적인 신분 차이를 극복하는 서사를 구성하였다. 이때 각 계층의 주거 공간은 신분적 위계를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장치로 활용되었고, 이후 《줄리엣의 남자》(2000), 《가을동화》(2000) 등에서도 재벌과 서민 간의 우연한 만남, 출생의 비밀, 재산 다툼 등의 전형적인 설정을 통하여 계층 간 경계를 넘나드는 운명적 로맨스가 반복적으로 서사화되었다. 이처럼 1990년대 TV 드라마는 한편으로는 도시 하층민의 절망적 현실을 조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극적인 계층 상승 서사를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던 대중의 욕망을 드러내었다.

(1) 《서울의 달》(김운경 극본, 정인 연출): 1994. 01.08.~1994.10.16., MBC 방영

《서울의 달》은 1994년 MBC 주말드라마로 방영되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대표작으로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신분 상승과 사랑을 꿈꾸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당대 서민의 욕망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1980년대의 《달동네》와 유사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동체적 연대나 근면함을 통한 계층 상승이라는 희망 대신 한탕주의와 도시 탈출, 계층 집착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즉, 과거 달동네가 공동체적 회복의 장소였다면, 《서울의 달》에서는 탈출과 배신이 벌어지는 장소, 곧 근대화에서 밀려난 이들이 머무는 사회적 낙오의 공간으로 재현된다(고선희, 2011).

《서울의 달》의 주요 등장인물인 홍식, 춘섭, 영숙은 각각 제비족, 시골에서 상경한 순박한 청년, 대학 남성과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는 여성의 상징으로서, 당시 도시 하층민의 욕망과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이들이 속한 달동네는 서울 외곽 산비탈에 위치할 뿐 아니라, 작중 인물들의 인식 속에서도 도시 질서 바깥의 ‘쓰레기통’으로 상징된다. 드라마 속 다음의 대사들은 이러한 공간 인식과 자기 정체화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홍식) 너는 인간 쓰레기야. 물론 나는 너보다 더한 쓰레기고… 우린 결국 쓰레기통에서 만난 거야… 난 지금 쓰레기통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야.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어. 내 말 이해가 가니?”

“(미선) 한 번만 안아줘. 우린 같은 쓰레기잖아…”

(《서울의 달》 中)

이러한 자기비하적 정체성과 공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계층 이동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홍식은 강남 부유층 여성인 경란과 결혼하여 형식적 신분 상승에는 성공하지만, 과거 달동네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결혼 생활은 위기에 처한다.

“(경란) 이럴 수가 없어… 난 거지하고 결혼한 거야! 나쁜 자식.” (《서울의 달》 中)

이 같은 경란의 대사는 상류층이 달동네 출신 인물에게 갖는 공간적・계층적 차별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당시 부유층에게 달동네가 더 이상 인접한 이웃의 공간이 아니라 분명한 경계로 구분되고 차별화되어야 할 공간, 곧 가능한 한 외면하고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1980년대 《달동네》에서 공동체적 희망으로 묘사되었던 공간이 1990년대 중반의 《서울의 달》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강남 개발과 도시 재개발 정책의 영향 아래 점차 사회적・공간적으로 소외되고 분리되는 장소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그림 3은 《서울의 달》에 등장하는 달동네의 주거 공간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세트는 1990년대 중반 서울 외곽 저소득층 거주지의 공간적 특성을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상단 우측의 이미지는 여러 세대가 한 울타리 안에 거주하는 다가구형 주택 구조를 반영하며, 마당 곳곳에 널린 생활용품과 가재도구 등은 사적인 공간과 공용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집합적 거주 형태의 특징을 부각한다. 상단 좌측과 하단 좌측의 이미지는 낡은 벽지, 협소한 주방 및 거실, 단출한 가구 배치 등을 통하여 당시 달동네 주거의 열악한 환경과 제한된 생활 조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하단 우측의 이미지에서는 인물이 달동네 꼭대기에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본다. 이 장면은 달동네의 지리적・사회적 고립성과 더불어, 도시 중심부에 대한 거리감과 소외감을 함께 드러낸다. 이러한 공간적 연출은 달동네를 희망의 공간으로 그렸던 1980년대 서사와 달리, 1990년대에는 계층 상승의 절박한 욕망과 도시 중심으로부터의 구조적 단절을 상징하는 서사적 배경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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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서울의 달》에 나타난 주거 공간
자료: MBC(1994)

(2) 《파랑새는 있다》(김운경 극본, 전산 연출): 1997.04.26.~1997.11.30., KBS2 방영

《파랑새는 있다》는 1997년 4월 26일부터 11월 30일까지 KBS2에서 방영된 주말드라마로 《서울의 달》의 작가 김운경이 집필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서울의 달》과 유사하게 도시 하층민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차력사, 떠돌이 창녀, 삼류 무명가수 등 사회 주변부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묘사한다. 주인공 김병달은 라스베이거스 진출이라는 허황된 꿈을 안고 지리산에서 서울로 내려온 차력사로, ‘코리아 브라더스’에 합류한 뒤 점차 도시에 물들고 본래의 순수함을 잃어간다. 상대역 김봉미는 초등학교 중퇴의 전직 성매매 여성으로 기초적인 한글 맞춤법조차 모를 정도의 인물로 설정되며, 빚에 쫓겨 자살을 시도하다 김병달에게 구조된 후 달동네 셋방살이를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서울의 달》과 같이 달동네를 배경으로 하지만, 한탕주의나 사회적 성공 욕망보다는 이웃 간의 유대와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서사를 구성한다. 하지만 당시 같은 시간대 MBC에서 방영된 신데렐라 스토리 계열의 드라마인 《신데렐라》와 비교하여 시청률의 부진을 겪었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공감보다 환상적 서사를 선호하게 된 1990년대 후반 시청자 정서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김종태, 1997).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시청자들은 서민의 삶을 조명하는 공간보다는 상류층의 고급 주거지와 삶에 더욱 큰 호기심을 보였는데, 이는 1980년대와 대비되는 소비문화적 정서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기의 달동네는 더 이상 공동체적 이상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으로, 생존 경쟁의 긴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이는 당대의 사회 인식 변화와 함께 드라마 속 공간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림 4는 《파랑새는 있다》에 나타난 주거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상단 좌측의 이미지는 폐쇄된 구조의 달동네 마당에서 주민들이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공동체적 삶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상단 우측과 하단 좌측의 이미지에서는 비좁고 낙후된 실내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대화와 행위들이 등장하며 각 인물들이 처한 생계의 긴장감과 주변부적 위치가 강조된다. 한편 하단 우측의 이미지에서는 도박판을 중심으로 한 인물 구성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민 주거지 내의 비공식적 생존 방식과 주변화된 노동・여가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이 드라마의 주거 공간은 1980년대 드라마에 나타난 희망적 달동네와는 달리 피폐한 현실과 생존의 곤궁함을 드러내는 장소로 재현되며, 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도시 하층민의 삶이 드라마에서 점점 더 비관적이고 단절된 현실로 재현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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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파랑새는 있다》에 나타난 주거 공간
자료: KBS2(1997)

3) 소결: 경계와 배제의 서사로 전환된 달동네

1990년대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실이 본격화되며 중산층 주거 형식으로서 아파트가 대도시 전역에 확산된 시기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달동네는 더 이상 공동체적 연대와 계층 상승의 희망이 담긴 공간이 아니라, 경제 경쟁에서 탈락한 패배자들이 고립된 채 살아가는 부정적이고 사회적 시야에서 배제된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서울의 달》과 《파랑새는 있다》는 이러한 인식 전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달동네는 더 이상 함께 사는 동네가 아닌 떠나야 할 동네, 즉 사회적 배제와 계층 분리의 상징적 장소로 묘사된다. 이처럼 달동네의 이미지가 드라마 속에서 퇴장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서사 기획의 변화가 아니라 현실 도시에서의 물리적 공간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재개발과 아파트 중심의 주거정책이 확산되며 달동네는 쪽방, 지하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 등 다양한 형태의 도시 내 비주택(非住宅)으로 분산되었다(구한민, 2024b). 이로 인하여 달동네는 점차 시청자의 시야에서도 사라졌고 드라마 서사에서는 주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신데렐라 서사라 불리는 재벌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만남이 주류 트렌디 드라마로 부상하며 시청자의 감정적 투자와 계층 욕망은 현실의 빈곤보다 이상화된 부유함에 집중되었다. 이로써 1990년대 드라마의 계층 재현은 가시적 빈곤의 실재 공간에서 이상화된 고급 주거 공간으로 초점이 옮겨지는 분기점을 형성하였다.

5.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에 나타난 계층과 공간의 재현

1)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과 서사적 경향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는 소재와 장르의 다변화가 본격화되었고 원천 텍스트도 기존의 소설이나 실화를 넘어 웹툰, 웹소설, 만화 등으로 확장되었다(장원호・송정은, 2017). 역사적 사건이나 민족적 서사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는 점차 쇠퇴하고 개인의 감정과 욕망, 일상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서사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정영희, 2019). 이는 드라마가 더 이상 현실 비판의 매체라기보다는 시청자의 감정 소비와 정서적 향유를 목적으로 기획되는 소비 콘텐츠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정영희, 2005).

이 시기 외주 제작이 본격화되고 방송국 중심의 제작 방식에서 전문 프로덕션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TV 드라마 기획과 소재 발굴의 자율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로케이션 전문 회사의 등장으로 외부 촬영이 활성화되고 공간적 배경이 더욱 다양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드라마보다는 트렌디 멜로, 청춘물, 퓨전사극 등 다양한 장르물이 전면에 부상하였다. 아울러 스마트폰의 대중화, 케이블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드라마 제작 진입,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 대자본의 유입, 작가 세대의 교체, 그리고 넷플릭스(Netflix), 디즈니 플러스(Disney+) 등 2010년대 후반 이후 OTT(Over-the-Top) 플랫폼의 확산 등은 드라마 산업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였고, 이에 따라 소재와 형식 전반에서 비약적인 다변화가 이루어졌다(정영희,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계층 상승 욕망, 복수 등 전통적인 서사는 여전히 유지되었으며, 계층 간 격차를 반영한 생활 밀착형 드라마도 꾸준히 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는 상류층의 폐쇄적 일상과 그들이 지닌 욕망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본격화하였고 고급 주거지 및 소비 공간을 배경으로 사회적 위계질서와 계층 간 격차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특히 수직적 혹은 수평적 공간 분리를 통하여 계층 격차를 강조하는 설정이 빈번하게 활용되었으며 기존의 달동네와 같은 저소득층 주거 공간 중심의 서사는 점차 고소득층의 사적 공간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2) 2000년대 이후 대표 TV 드라마 분석

2000년대 이후 TV 드라마에서 거주지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주인공의 계층적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활용되었다. 저소득층의 주거지는 일반적으로 저층 주거지에 위치하지만 옥탑방, 반지하와 같이 수직적 위치 차이를 통하여 열악한 환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는 2000년대 이전의 달동네나 판자촌처럼 집단적 빈곤이 응축된 공간과는 달리, 보다 개별화되고 상징적으로 구분된 공간을 통하여 계층 분리를 시각화하는 방식이다. 특히 재벌가 남자주인공과 저소득층 여성 주인공이 만나는 설정에서 상류층이 낯선 저소득층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계층 간 격차를 드러내는 장면 구성에 자주 활용되었다. 《꽃보다 남자》(2009)에서는 옥탑방에 사는 여자주인공 옆 건물로 재벌가 남자주인공이 이사 오고, 바퀴벌레에 놀라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을 통하여 상류층 남성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시크릿 가든》(2010)에서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영혼이 바뀌며 남자주인공이 옥탑방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 등장하는 화려한 샹들리에, 실크 침구, 대리석 식탁 등은 상류층의 생활양식을 극단적으로 타자화하며 옥탑방이라는 공간의 계층적 이질성을 강조한다. 한편 옥탑방은 단순한 빈곤 공간이 아니라 청년층의 자립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재현되기도 한다(김성태・권영상, 2020). 《옥탑방 고양이》(2003)에서는 여자주인공이 귀향 대신 서울에 남아 자립을 선택하며 옥탑방에서 남자주인공과 동거하는 서사가 전개된다. 이 공간은 궁핍함보다는 청춘의 낭만과 자립의 서사가 담긴 장소로 형상화되며 남자주인공이 훗날 검사가 된 이후에도 추억의 공간으로 유지됨으로써 상징적 의미를 더한다.

이처럼 계층에 따른 거주지 분리는 뚜렷하게 지속되며, TV 드라마는 이를 갈등이 아닌 일상적 배경으로 설정해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별에서 온 그대》(2013)에서는 고급 아파트가 톱스타와 외계인이라는 초현실적 인물의 만남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부부의 세계》(2020)는 동질적 배경의 고소득층이 거주하는 타운하우스를 배경으로 하여 부부 갈등과 배신, 복수의 서사를 전개한다. 특히 《부부의 세계》는 미국 교외의 계층 분리를 한국 사회의 맥락에 맞게 각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이러한 공간적 위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와 함께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서 도입된 사회적 혼합(social mix) 정책은 TV 드라마에서 갈등의 서사로 재현되기도 한다. 《해피니스》(2021)는 고층은 일반분양, 저층은 임대주택으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하여 바이러스 감염을 통한 계층 간 분리 및 갈등을 서사화한다. 《엉클》(2021)에서는 브랜드 아파트 내 ‘로얄 맘블리 클럽’과 같은 비공식 모임을 형성하여 임대주택 거주자를 노골적으로 배제・차별하는 행태가 재현된다. 이들 드라마는 임대주택 거주자를 타자화하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하층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상류층 인물들을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역전된 감정이입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주거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계층 갈등이 집약되고 반복되는 사회적 투쟁의 장으로 설정한다.

(1) 《SKY 캐슬》(유현미 극본, 조현탁 연출): 2018. 11.23.~2019.02.01., JTBC 방영

《SKY 캐슬》은 2018년 11월 23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상류층 사회의 교육 집착과 계층 재생산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인 SKY 캐슬은 상류층만이 거주할 수 있는 석조 저택 단지로 설정되며, 단순한 고급 주거지가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한 인물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진진희) 게다가 돈 있다고 아무나 들어오는 곳도 아니잖아요?”

“(이명주) 주남대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 정교수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잖아.”

(《SKY 캐슬》 中)

이 공간의 입주자들은 주로 대학병원 교수, 로스쿨 교수 등 고학력・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쟁을 통하여 획득한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계층적 우월성을 내면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해당 지위를 자녀에게 대물림하기 위하여 대학입시와 사교육에 집착하고 고가의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하거나 이웃의 입시 포트폴리오를 공유하는 등의 방식으로 교육 경쟁에 몰입한다. 여성은 가문 내 자녀 교육을 책임지는 존재로 정체화되고, 자녀는 학업 성취를 통해 계층 피라미드 상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는다.

“(한서진) 3대째 의사 가문 우리 예서가 만들면 돼요.”

“(윤여사) 내가 널 며느리로 인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SKY 캐슬》 中)

드라마에서 SKY 캐슬은 단지 물리적 주거지가 아니라 계층 재생산의 거점으로 기능하는 공간이다. 입주민들은 대학 입시라는 공통 관심사를 기반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유지한다. 예컨대 로스쿨 교수 차민혁은 자녀들의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거나 독서토론이라는 명목으로 입시 정보를 공유하는 등 사적 자본을 통하여 상류층 내 결속을 공고히 한다.

“(한서진) 전 우리 SKY 캐슬이 아이들 교육시키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라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차민혁) 서울대 자소서 4번 문항! 고등학교 재학 중 감명 깊게 읽은 책 세 권도 내가 다!”

“(노승혜) 당신… 영재 자소서 대신…”

(《SKY 캐슬》 中)

반면 외부인은 이 공간에 대한 진입이 원천적으로 제한되며 우수한 배경과 가문을 갖지 않은 인물은 커뮤니티로부터 배제된다. 이는 SKY 캐슬이 계층 상승을 꿈꾸는 공간이 아니라, 이미 상류층으로 규정된 자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계층 봉쇄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김혜나는 성적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비혼모 출신이라는 이유로 집단적 따돌림을 당하고, 이수임과 같은 신규 입주자의 문제제기는 커뮤니티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배타적으로 여겨진다.

“(한서진) 김혜나 사퇴시켜줄래? 자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서진) 우리 캐슬에 소문나면? 아니, 아니. 우리 예서, 예빈이가 알게 되면?”

“(한서진) 내장, 선지, 잡뼈나 팔던 술주정뱅이 딸년 곽미향은 나한텐 치욕이니까.”

(《SKY 캐슬》 中)

그림 5는 드라마 《SKY 캐슬》에 등장하는 상류층의 주거 공간을 시각적으로 제시한 장면들로, 외부 단지의 전경부터 실내 공간에 이르기까지 폐쇄성과 고급성이 강조된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상단 좌측의 이미지에서는 고급 석조 주택들이 집단적으로 배치된 단지 외관이 나타나는데, 이는 제한된 사람들만 입주 가능한 특권적 공간이라는 드라마의 설정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상단 우측의 이미지는 테라스에서의 일상 대화를 담고 있으나 인물들의 의상, 가구, 장식 등 전반적 연출을 통하여 계층적 여유와 거리감을 부각시킨다. 하단의 이미지에 나타난 거실과 주방 공간은 고급 자재, 대형 가구, 조명 장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상류층의 소비문화와 폐쇄적 생활양식이 시청자에게 명확히 전달되도록 연출된 것이다. 이처럼 《SKY 캐슬》은 주거 공간 자체를 상류 계층의 위계성과 사회적 특권을 드러내는 물리적 표현으로 활용하며 시각적 요소를 통해 공간이 계층 구조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핵심 장치임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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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SKY 캐슬》에 나타난 주거 공간
자료: JTBC(2018-2019)

(2) 《펜트하우스》(김순옥 극본, 주동민 연출): 2020.10.26.~2021.01.05., SBS 방영

《펜트하우스》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방영된 3부작 시리즈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헤라팰리스를 배경으로 상류층의 부, 권력, 교육 욕망이 교차하는 세계를 다룬 작품이다. 작중 헤라팰리스는 신화 속 여신 헤라와 궁전을 뜻하는 팰리스의 합성어로 대한민국 최고가의 아파트이자 입주자 간의 추천과 동의 없이는 거주가 불가능한 철저히 폐쇄된 커뮤니티로 설정된다. 단지 내에서도 고층일수록 넓고 비싼 평형이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100층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주단태는 공간적・사회적 위계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설정은 강남의 타워팰리스를 연상시키는 물리적 상징과 더불어 주거 공간 자체가 계층 위계를 구체화하는 상징적 매개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주요 등장인물은 자녀의 성악 교육을 매개로 결성된 ‘헤라클럽’의 구성원들로, 건설회사 대표, 사학재단 이사장,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및 기업가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들 중 천서진은 세습된 부를 배경으로 한 상류층 인물이자, 유명 소프라노이자, 자녀들이 다니는 청아예술고등학교의 이사장으로서 교육 권력까지 함께 점유하며 헤라클럽 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헤라팰리스 거주자만이 가입할 수 있는 헤라클럽은 단순한 사적 친분을 넘어 교육 기회를 독점하고 계층 재생산을 공고히 하는 폐쇄적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강마리) 헤라클럽이 어디 보통 인연이에요? 애들 초딩 때 성악시키면서 만났으니까 벌써 5년이나 됐네요.”

“(고상아) 우리 아트 스터디 모임도 나오시고 운동도 같이해야 친해지죠.”

(《펜트하우스》 中)

헤라펠리스에 거주하는 상류층 인물들은 교육을 계층 재생산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며 입시 기회조차 권력으로 철저히 통제한다. 이들에게 실력은 부차적 기준일 뿐이며 사회적 배경과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성악 실력이 부족한 천서진의 딸 하은별은 문제 행동과 음이탈에도 불구하고 명문 예술고등학교에 무리 없이 입학하는 반면, 실력 있는 민설아와 배로나는 고아 혹은 저소득층이라는 배경으로 인하여 체계적으로 배척당한다. 특히 민설아는 가정 교육조차 받지 못한 존재라는 이유로 헤라클럽 구성원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며 결국 아무런 연대나 애도 없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천서진) 이런다고 내가 널 받아들일 거 같니? 우리 착한 은별이가 너한테 물들었을까봐 소름 끼치고 끔찍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불결하다고. 하필 가정 교육도 못 받은 애랑 엮여서…”

“(주단태) 저게 얼마짜리 조각상인데 왜 하필 저기 떨어져 죽냐고 왜! 우릴 엿 먹이려고 일부러 저기 떨어져 죽은 거라고요. 보란 듯이!”

(《펜트하우스》 中)

헤라팰리스는 단순히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내부의 비윤리적 사건마저 은폐할 수 있는 철저한 통제 체계 아래에 존재한다. 민설아의 사망 사건에서 입주자들은 시신 유기와 입주 기록 삭제를 공모하며 헤라팰리스의 명성과 위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공동의 거짓말을 감수한다.

“(주단태) 일단 저 시신부터 처리해야죠. 제 말 잘 들으세요. 민설아는 이 시간 우리 헤라팰리스에 온 적이 없는 겁니다.”

“(이규진) 사체를 유기하자는 거예요?”

“(주단태) 쟤 하나 때문에 우리 모두가 똥물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는 거죠!”

“(강마리) 난 찬성 우리 아이들과 헤라팰리스를 지켜야죠.”

(《펜트하우스》 中)

이처럼 《펜트하우스》는 물리적 거주 공간을 계층 권력과 욕망, 위선, 배타성의 총체로 재현한다. 고층 구조, 폐쇄적 입주 조건, 철저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은 주거 공간 그 자체가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주거지가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사회적 갈등과 긴장의 중심 서사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 6은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등장하는 초고층 주거지의 위용과 폐쇄적인 내부 공간 구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상단의 두 이미지는 헤라팰리스 외관의 야경 장면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높이와 웅장한 외관이 물리적 고도와 사회적 위계의 상징으로 기능함을 표현한다. 이는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초상류층만의 독립된 영역으로서 헤라팰리스를 제시하는 한편 공간 자체가 배타성과 특권의 물리적 경계임을 부각한다. 하단 좌측의 이미지에서는 대형 소파, 고급 인테리어, 아트월, 오브제(objet)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과시적 소비가 극대화된 생활양식과 외부와 단절된 일상 환경을 드러낸다. 하단 우측의 이미지의 대형 서재 공간은 상류층의 문화적 자산과 상징 자본을 시각화하는 대표적 장치로서 거주자들이 단순한 부의 소유자를 넘어 지적 권위와 문화 자본까지 독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펜트하우스》는 주거 공간을 극단적으로 위계화하고 시각적 호화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공간 자체를 권력, 배제, 욕망이 교차하는 구조적 장소로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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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펜트하우스》에 나타난 주거 공간
자료: SBS(2020-2021)

3) 소결: 폐쇄적 상류층 공간과 계층 갈등의 시각화

2000년대 이후의 TV 드라마는 계층 간 거주지 분리를 하나의 전제처럼 받아들이고 상류층과 하층민 간의 이질적 접촉이 갈등의 주요 촉발 지점으로 기능하는 서사를 구성한다. 특히 상류층의 주거지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폐쇄된 독립적 공간으로 설정되며 이 안에 거주하는 인물들은 부와 권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삶의 가치와 윤리에 부적응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들은 사치스럽고 과시적인 소비생활을 일상화하며 타 계층에 대한 멸시와 배제를 통하여 스스로를 선택된 집단으로 정당화한다. 대표적으로 《SKY 캐슬》과 《펜트하우스》는 이러한 상류층의 폐쇄적 공간을 강남, 타워팰리스, 초호화 단지 등 구체적 장소로 형상화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교육열, 사교 네트워크, 계층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극단적으로 재현한다. 특히 교육과 부동산을 통한 사회적 지위의 세습이 주거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지는데, 이 공간은 갈등과 긴장이 축적되는 서사적 중심이자 계층 간 위계와 분리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를 통하여 드라마는 상류층 주거지를 단순한 배경을 넘어 계층 불평등과 사회적 분열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6. 나가며

본 연구는 소득불평등의 심화가 공간적 분리와 사회적 배제의 양상에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작동하여 왔는지를 규명하였다. 계량적 지표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시대별 계층 인식과 공간 서사를 조명하기 위해 TV 드라마라는 문화 텍스트를 분석 도구로 활용하였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시기를 구분하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드라마를 선정하여 서사 분석, 내용 분석, 담론 분석을 병행함으로써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거주지 분리의 상징성과 계층 간 거리감의 변천 과정을 입체적으로 고찰하였다. 이를 통하여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 매체를 넘어, 시대별 계층 정서와 공간 인식을 반영하는 문화적 기록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본 연구는 확인하였다.

1980년대 TV 드라마에서는 달동네라는 공간이 저소득층의 거주지로 설정되었지만 그 안에는 계층 상승의 가능성과 공동체적 연대감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 《달동네》나 《보통 사람들》은 당시 우리나라의 가파른 경제성장에 기반한 사회적 상향 이동의 서사를 강조하였고 빈곤층도 언젠가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해당 공간을 통해 재현되었다. 이러한 공간은 주변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기보다는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율성과 회복력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하였다. 공간 분리는 존재했지만 그것이 곧 배제나 낙인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계층 간 연계와 상호 이해가 가능한 구조 속에서 희망적인 이야기의 방향이 설정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TV 드라마에서 달동네는 더 이상 계층 상승의 교두보가 아닌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낙오자들이 거주하는 절망의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서울의 달》에서는 계층 상승을 위한 탈출 욕망이 주요 서사로 등장하고 달동네는 경멸과 자기혐오가 중첩된 상징 공간으로 기능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달동네를 떠나고자 하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고, 이러한 구조는 도시 내 계층 경계가 얼마나 공고해졌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파랑새는 있다》는 보다 인간 중심적인 정서를 담고 있지만 여전히 달동네는 희망보다는 생존의 공간, 사회로부터 은폐된 소외된 장소로 그려진다. 공동체 연대와 공간 통합의 가능성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사회적 이동성과 계층 간 상호작용 역시 사실상 단절된 양상을 보인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심화된 소득격차와, IMF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이 대중문화 속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2000년대 이후의 TV 드라마는 거주지 분리의 양상을 한층 더 구조화하고 시각적으로도 뚜렷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특히 기존에는 드러나지 않던 고소득층의 거주지가 중심 배경으로 등장하며 계층 간 거주지 분리의 주체가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SKY 캐슬》이나 《펜트하우스》와 같은 드라마는 고소득층의 주거지가 얼마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해당 공간이 계층 재생산과 사회적 배제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공간적 폐쇄성은 아파트가 자산 축적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도시 내 위계화된 질서를 재생산한다는 기존의 논의와도 연결된다(박해천, 2013). 상류층의 거주지는 단순한 물리적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자본의 결합체로 기능하며, 거주자들은 내부의 공고한 네트워크를 통하여 자녀 교육, 사회적 관계망, 정보 등을 독점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인은 철저히 배제되고 계층 간 접촉은 사건화되거나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공간 분리의 정도는 과거에 비하여 훨씬 심화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거지는 더 이상 계층 상승의 경로가 아닌 계층 고착화의 기제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간 분리와 소득불평등이 단절된 문제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면서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1980년대의 달동네는 희망을 품은 공간이었지만, 1990년대에는 절망의 상징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고소득층의 배타적 거주지가 갈등의 진원지로 등장하였다. 이처럼 거주지 분리는 단순한 소득 분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 전반의 위계화가 지속되는 구조적 맥락과 맞물려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공간 분리가 심화될수록 계층 간 접촉은 줄어들고 상호 이해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이는 종국적으로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TV 드라마는 단순한 허구의 산물이 아니라 당대 사회가 계층과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불안과 욕망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자료로 기능한다.

본 연구에서는 TV 드라마 속 계층 인식과 공간 재현을 통하여 주거정책 및 도시계획의 정책적 함의 또한 도출할 수 있었다. 시대별 드라마에 나타난 거주지 분리는 단순한 물리적 배치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간 상호작용의 단절과 배제,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저소득층을 고소득층 커뮤니티에 물리적으로 배치하는 데 그치는 현행 사회적 혼합 정책이 실질적 통합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박기덕・서원석, 2020; 정현・전희정, 2018).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 통합을 넘어 계층 간 상호작용 기회를 유도하고, 교육・보육・문화・커뮤니티 조직 등 삶의 기반이 되는 사회 자본의 균형 있는 분배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커뮤니티 기반 시설 설계, 공공임대와 일반분양 입주민 간 실질적 교류를 위한 생활 동선 구성, 갈등 조율을 위한 중간 조직 마련 등은 계층 간 접촉을 실질화하기 위한 핵심적 장치가 될 수 있으며(구한민 등, 2021), 이는 문화적 수용성과 상징성을 함께 고려한 통합적 공간정책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적 방향을 제시한다(박미선, 2020).

본 연구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의 TV 드라마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도시 공간에서 나타나는 계층적 분리 양상과 이를 재현하는 문화적 서사 구조를 고찰하였다. 다만 드라마에 나타난 공간 서사가 실제 도시 공간과 어떤 실증적 연관을 가지는지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청자의 수용 과정을 정성적・정량적으로 검토하는 작업도 본 연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는 첫째, 드라마에서 재현된 공간이 실제 도시의 특정 주거지와 어떠한 대응 관계를 맺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수용자 연구를 통하여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계층적 공간 분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재해석하는지를 규명함으로써, 문화 텍스트가 계층 간 공간 인식과 이에 대한 사회적 태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힐 수 있다. 셋째, OTT 오리지널 콘텐츠, 유튜브 기반 단편극, 온라인 커뮤니티 등 신흥 문화 매체를 포함한 비교 분석을 통해 거주지 분리에 대한 보다 다층적인 문화 재현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성적 서사 분석과 함께 정량적 도시 공간 데이터를 통합하는 혼합연구 설계를 통해 문화 재현과 물리적 도시 구조 간의 교차영역을 보다 체계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도시계획학, 인문지리학, 공간사회학 등 인접 학문과의 학제적 연계를 확대하는 기반이 되며, 문화 기반 접근을 통한 공간 불평등 해석과 정책적 대응 논의에도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국토연구원의 연구보고서 「지역의 소득불평등과 거주지 분리의 특성 및 변화: “서울의 달”에서 “펜트하우스”까지」(기본 22-27)의 내용 일부를 대폭 수정・보완하여 작성한 것이다.

[1] 1) 하꼬방은 상자를 뜻하는 일본어 箱(はこ, 하코)에서 유래한 말로, 1960~70년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산비탈・하천변 등에 밀집한 비공식 주거지에서 비좁고 허름한 방을 속되게 이르던 표현이다(김수현, 2022; 정혜경, 2010). 이른바 하꼬방촌, 즉 판자촌은 청계천 일대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 존재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정부의 도시 정비 및 주택 개량 사업 추진에 따라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Gu,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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