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평가 1: 국가-자연 연구의 시공간 범주
1) 공간적 범주
2) 시간적 범주
3) 소결: 후속 연구주제의 지도화
3. 평가 2: 국가-자연과 인간 너머의 마주침
4. 평가 3: 국가의 해석을 둘러싼 오독과 몇 가지 조정 제언
5. 결론: 동아시아 차원의 인간 너머의 국가-자연 연구를 향하여
1. 서론
생태・환경에 초점을 둔 비판적 사회과학 분야인 정치생태학, 환경사회학에서는 생태주의, 신진대사 균열론,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행위자-연결망 이론, 녹색국가론, 토건국가론 등의 다양한 접근이 제시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국가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했다. 기존 접근의 일부는 무정부주의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국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국가의 부정적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국가에 대한 내밀한 분석이 부족했다. 또한 녹색국가론, 토건국가론처럼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접근이더라도 국가와 자연의 복잡한 관계를 밝히기보다는 환경을 지키거나(녹색국가론) 또는 파괴하려는(토건국가론) 국가관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가를 관료들의 집합으로 한정하는 막스 베버(Max Weber)식의 단조로운 이해에 갇히는 한계가 있었다(각 이론의 평가는 황진태・박배균(2013: 357)을 요약함).
한편, 국내 사회과학(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지리학이 주도)은 동아시아 발전주의의 맥락에서 한국의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강력한 국가의 역할을 주목했다(박배균, 2012). 하지만 기존 사회과학의 지배적 인식은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자원이 어떻게 자연으로부터 변환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다. 정리하면, 환경에 초점을 둔 정치생태학/환경사회학 연구와 국가를 주목한 사회과학 연구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다. 이처럼 국가와 자연 간의 이론적, 경험적 틈새를 메꾸고자 12년 전 황진태・박배균(2013)은 국내 학계에 국가-자연(state-nature) 개념을 처음 소개하면서 국가가 어떻게 자연을 제도적, 담론적, 물질적으로 생산하는지를 밝힐 것을 제언했다.
국가-자연 개념을 처음 제안한 연구는 화이트헤드 외(Whitehead et al., 2007)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국가-자연을 자연이 본래 갖고 있던 지역의 생태적 맥락이 소거되고 추상화된 자연으로 정의한다. 국가-자연에서 국가와 자연을 연결하는 하이픈(-)은 그러한 추상화 과정을 가리키며, 이 하이픈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는 틀 짓기(framing), 중앙집중화(centralization), 영역화(territorialization)라는 세 가지 공간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틀 짓기는 다양한 맥락 속에 다채롭게 존재하는 사물들을 단일한 틀에 가두려는 과정을 가리키며, 중앙집중화는 복잡한 실체인 자연을 표준화된 지식으로 통일하려는 과정을 의미하며, 영역화는 자연을 통제하기 위한 공간을 생산하는 과정이다.1) 이처럼 국가-자연을 만들기 위한 국가의 세 가지 공간 전략은 자연의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을 드러내기 위한 분석 틀로 삼을 수 있다.
화이트헤드 외가 제시한 국가-자연 개념에 대한 통찰을 받아들이면서도 황진태・박배균(2013)은 다음과 같이 강조점을 약간 달리한다. 이들은 “국가 안에서 (혹은 국가를 통해서) 작동하는 사회의 행위자들이 기후, 물, 식생, 지형 등과 같은 자연적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국가의 행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하여 담론적, 물질적으로 구성”(p. 358)되는 과정을 국가-자연으로 정의한다. 이들의 연구는 국가는 단일 행위자가 아닌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경합하는 장(site)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하는 밥 제솝(Bob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을 차용한다(Jessop, 1990).2) 즉, 국가 안과 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상호작용(갈등, 경합, 타협 등)에 따라서 국가의 의사결정이 결정되며, 국가와 자연이 맺는 관계도 다양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사회세력들은 국가 스케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지역, 도시 등의 다양한 지리적 스케일에 위치하면서 각자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이해관계 및 가치를 실현하려는 실천과 전략을 시도하는데, 어떤 세력은 국가-자연의 생산을 지향하지만, 다른 세력은 ‘글로벌-자연’, ‘지역-자연’과 같은 다른 스케일에 기반한 자연을 지향하면서 세력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정리하면, 황진태・박배균(2013)은 다중스케일적(multi-scalar)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세력들이 만들어 내는 역동성, 복합성의 거미줄 안에서 국가-자연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를 자연을 사회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자로 간주하거나 국가 스케일 이외 다양한 스케일상의 행위자, 역학관계가 국가-자연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는 국가중심적 인식을 지양한다.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의해 경제성장과 자본주의 발전을 경험한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가-자연 개념을 적용하기에 적절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황진태・박배균, 2013: 360).3) 그리하여 지난 12년 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국가-자연 개념에 대한 이론화와 사례연구가 꾸준히 축적되었다(대표 성과로는 김준수, 2018, 2019; 김준수 등, 2022; 김지영, 2021a, 2021b, 2024; 이상헌, 2019, 2021; 장예지, 2018; 정예슬・이영민, 2024; 진종헌, 2016, 2024; 황진태, 2018a, 2019a; Hwang, 2015, 2021 등).4)
하지만 축적된 연구들을 아우르는 종합적 검토는 부재했다. 어떤 자연에 대한 연구가 집중됐고, 어떤 자연이 연구에서 소외가 되었으며, 인간 너머의 지리학과 같은 새로운 인식론, 존재론적 조류가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 연구에 스며들면서 어떠한 충돌이 발생하고, 생산적 함의가 생겼는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높은 고도에서 바라보는 새의 시선으로 현재 우리 연구자들의 좌표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를 설정할 시점이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국내 학계에서의 국가-자연 연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생산적 논의를 이끌 연구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평가는 크게 세 측면으로 나눠진다. 본 논문의 핵심 분석이 될 첫 번째 평가는 국가-자연에 대한 연구성과의 시공간 범주를 조망한다. 여타의 지리학 개념들처럼 국가-자연 개념의 유효성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논하기보다 구체적인 시공간 맥락에서의 적용으로 효과적인 검증이 가능하다. 특히, 동아시아 발전주의 맥락에서 국가-자연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 황진태・박배균(2013)의 초기 연구방향 설정을 인지하고 후속 연구에서 다뤄진 시공간 범주의 진전과 한계를 논한다.
두 번째 평가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more-than-human geography)(Braun, 2005; Choi, 2016; Whatmore, 2006)이 국가-자연 연구에 미친 영향을 검토한다. 초기 국가-자연 연구는 인간의 의도, 필요에 따라서 자연이 (재)생산되는 것으로 가정했지만, 최근 지리학계에서 인간 너머의 지리학의 번성은 국가-자연 연구도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 (다른 말로 인간 예외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국가-자연 연구에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은 황진태・박배균(2013)이 출간될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관련 연구가 간헐적이지만 강렬하게 나오기 시작했다(김준수, 2018; 2019). 그렇다면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에 바탕한 개념과 분석은 인간 너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어떤 변화가 있고, 학술적, 실천적 기여는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세 번째 평가는 황진태・박배균(2013)이 제시한 국가-자연 개념에 관한 후속 연구에서 나타난 국가의 해석을 둘러싼 오독과 몇 가지 조정 방향을 간략히 제안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에 대한 비평을 통해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논의의 경로를 재설정함으로써 생산적인 후속 논의를 도모하고자 한다.
2. 평가 1: 국가-자연 연구의 시공간 범주
1) 공간적 범주
본 절은 지금까지 축적된 국내 국가-자연 연구의 공간적 범주를 분류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표 1은 자연의 형태(하천, 산 등)와 지리적 스케일(한국, 한반도, 동아시아)을 기준으로 한국 연구자들의 국가-자연 연구의 공간적 범주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적 범주는 첫째, 어떤 유형의 국가-자연들이 연구되었고, 둘째, 그 자연들은 어느 국가, 지역에서 생산되었는지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덜 연구된 영역을 확인할 수 있고,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자연, 지역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적 범주를 유형화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지리적 스케일의 위계(즉, 근린-도시-국가-글로벌 등)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별 스케일이 갖는 역사적, 제도적, 비교연구의 맥락 속에서 각 스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초창기 국가-자연 연구인 황진태・박배균(2013)에서는 국내 국가-자연 연구의 분석 스케일로 한국과 동아시아 스케일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를 참고하여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황진태・박배균(2013)은 한국의 국가-자연 연구의 공간적 범주를 한국과 동아시아 스케일로 구분하여 접근한다. 여기서 공간적 범주를 언급하는 것은 개별 사례/지역에 근거한 분석은 자칫 단일 사례/지역의 범위를 넘어 작용하는 제도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과 연루된 행위자들의 영향을 간과하고, 상대적으로 지역 고유의 특성, 맥락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지역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자연은 지역의 국지적 범위를 넘어서 영향을 미치는 국가를 주목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례/지역들과의 비교를 통한 중범위적 추상화(meso-level abstraction) 작업의 필요성을 열어둔다.5)
중범위적 추상화의 범위는 상대적이다. 한국의 국가-자연에 대한 중범위적 추상화라면, 서울, 전라도, 경상도처럼 국가 아래의 지역 스케일 상에서 생산된 국가-자연 관계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동아시아의 국가-자연에 관한 중범위적 추상화는 1960년대부터 발전과 성장을 지배이념으로 내세우고 국가가 자본과 시장을 적절하게 통제,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동아시아 국가(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간의 비교를 가리킨다.
그런데 동아시아 발전주의의 맥락을 강조한 황진태・박배균(2013)은 한국의 국가-자연을 탐구함에 있어서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북한은 고려하지 못했었다. 남북분단과 냉전 구도에서 북한을 외부의 적으로 설정한 것은 내부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의 유지와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였음을 상기하면(Glassman and Choi, 2014; Woo-Cumings, 1991), 북한을 포함하는 분단체제가 한국의 국가-자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한 화해 국면에서는 한국과는 별개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북한에 위치한 자연(가령, 백두산)이 두 나라가 같은 민족에 기반한다는 이유로 ‘한반도 자연’으로 재현, 호명되었지만, 관계의 악화 국면에서는 한민족보다 두 국가라는 단절을 강조했다. 이러한 역동성은 국가-자연 관계를 한반도라는 공간적 범주에서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황진태, 2018a). 본 연구는 한반도 정세에 따라서 북한의 자연이 한국의 국가-자연 형성과 연결/단절을 발생시키는 조건을 감안하여 공간적 범주에 한반도 스케일을 추가한다.
(1) 주요 연구 주제: 하천, 산, 바다/해안
표 1에 따르면, 연구 편수가 많은 자연 유형은 하천, 산, 바다/해안이고, 환경오염, 도시화, 비인간 주제가 상대적으로 적다. 지역적으로는 한국 연구에 집중되었고, 동아시아/한반도 차원의 연구는 빈약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천, 산, 바다/해안은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 자연이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관심이 높았기에 주요 연구 주제가 되었고, 핵심 자연에 대한 학술적 규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부터 환경오염, 도시화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인간 너머의 지리학은 국내 학계에 시기적으로 뒤늦게 소개되어 국가-자연 연구에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공간적 범주의 검토는 우선 주요 연구 주제들을 살피고서 다음으로 새로운 연구 주제들을 논한다.
표 1.
국내 국가-자연 연구의 공간적 범주화
하천 | 산 | 바다/해안 | 환경오염 | 도시화 | 비인간 | |
한국 | Hwang(2015, 2021) 황진태(2019a) 김준수(2019) 이상헌(2019) Park(2022) | 진종헌(2016, 2024) 장덕수・황진태(2017) 장예지(2018) 김지영 (2021a, 2021b, 2024) | Choi
(2014, 2019, 2023) 최영래(2019) Choi(2020) | 이상헌(2021) Kim(2024) | 김준수(2018, 2019) | 김준수(2018, 2019) 최영래(2019) Hwang(2021) |
한반도 | a | 황진태(2018a) 김서린・성종상(2021) 오삼언(2024) | c | Cho(2023) | e | g |
동아시아 | 중국 (이선화, 2023) | 일본, 대만 (김지영, 2021a) | b | d |
싱가포르 (정예슬・이영민, 2024) 일본 (김은혜, 2023) | f |
글로벌 | X |
황진태(Hwang, 2015)는 국가-자연 연구의 물꼬를 텄다. 박정희 정권 시기의 수자원정책을 사례로 선택한 그는 박정희 정권의 수자원정책을 중화학 공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화라는 축적전략과 조국근대화라는 헤게모니 프로젝트와 조응하여 전개된 것으로 보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지역에서 이용하는 자유재, 공유재였던 물이 ‘수자원’으로 틀 지워지고, 수자원 확보와 전력 생산을 위한 다목적댐 건설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법안(특정다목적댐법), 국가기구(수자원국, 한국수자원공사), 국가통계(수자원개발조사연보)를 구축하는 중앙집중화, 그리고 물의 지위를 지역의 자유재/공유재에서 국가 소유의 경제재로 확고히 안착시키기 위하여 전국 단위의 유역(流域) 스케일인 ‘4대강 유역’(한강, 영산강, 금강, 낙동강)을 새롭게 형성하는 영역화가 수반되었음을 밝혔다.
황진태는 화이트헤드 외(Whitehead et al., 2007)가 제시한 국가-자연 관계 형성에 필요한 세 가지 공간전략(틀 짓기, 중앙집중화, 영역화)이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에서 적용 가능한지를 살피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또한 세 가지 전략의 추진 과정에서 국가 부처(건설부, 상공부 등), 미국의 엔지니어, 국가관료, 지역주민 등의 다양한 사회세력 간의 경합과정이 어떻게 국가-자연 관계의 양태를 결정짓는지를 살폈다.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박서현(Park, 2022)은 박정희 정권의 수자원정책을 둘러싼 사회세력 중 수문학 전공자 및 관련 학회와 수자원정책 담당 국가 관료 간의 갈등, 경합을 상세히 파헤쳤다.
이후 국가-자연으로서 하천 연구들은 주로 담론적 측면(즉, 헤게모니 프로젝트)을 주목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황진태(2019a)는 소양강댐 건설을 보도한 박정희 정권의 대한뉴스 영상 분석을 통해 국가-자연이 헤게모니 프로젝트로써 생산되는 측면을 밝히려 했다. 이상헌(2019)은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관한 홍보영상을 주목했는데, 그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4개의 주요 하천을 국가-자연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런 점에서 정부의 홍보 동영상은 국가-자연의 틀 짓기 전략으로 분석했다. 이선화(2023)는 중국의 남수북조 공정(중국 남쪽 지역의 풍부한 물을 물이 부족한 북쪽 지역으로 보내려는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기 위하여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분석했다. 그녀는 남수북조 다큐멘터리가 황진태(2019a), 이상헌(2019)이 밝히려 한 동아시아 발전주의 맥락에서의 근대화 과정에서 대형 댐 건설의 선전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다큐멘터리에서는 경제발전, 근대화뿐만 아니라 환경보존, 이주민 복지와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중국만의 새로운 측면일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목소리들도 국가 주도 발전주의 담론에 포섭되었다고 평했다. 중국이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 목록에 포함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6) 중국과 기존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 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밝히려 한 이선화(2023)의 시도는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연구 지역을 넓히고, 연관하여 국가-자연 논의가 한층 다채로워질 수 있는 연구 방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산에 관한 국가-자연 연구를 살핀다. 해당 주제의 연구는 진종헌(2016)에서 출발한다. 그는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산림녹화정책을 통해 민둥산, 붉은 산이 ‘푸른 산’으로 바뀌게 되는 발전의 상징경관 형성을 국가-자연으로 접근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발전에 대한 상이한 입장과 담론이 존재했지만, 민족 생존과 번영을 위한 푸른 산의 이미지가 그러한 차이들을 사라지게 하고, 조국근대화로 향하는 전 사회적 동원을 정당화했다고 보았다. 한편, 진종헌은 전 국토의 푸른 산 만들기에 포섭되지 않은 제주의 산림녹화 사례도 살폈다. 제주 고유의 기후와 풍토로 인해 제주에서는 육지 산림녹화의 대표 수종이 아닌 다른 수종을 심게 되었고, 특히 오름을 비롯한 황무지처럼 보이는 제주의 초지경관은 나무로 뒤덮인 푸른 산의 경관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푸른 산 담론에 균열을 내었음을 지적했다. 최근 진종헌(2024)은 푸른 산 담론 균열의 원인을 제주 고유의 자연지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척박해 보이는 피복 상태가 만들어 낸 오름의 매끈한 곡선을 ‘고유한 제주경관의 심미성’(진종헌, 2024)으로써 재발견한 문화적, 재현적 측면도 강조한다. 그는 이 사례를 통해 국가-자연의 핵심 전략인 틀 짓기를 국가-자연을 형성하려는 ‘제도적, 과학적 틀 짓기’와 ‘문화적, 시각적, 재현적 틀 짓기’로 세분할 것을 제안한다. 재현적 틀 짓기는 국가-자연 만들기에 협력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데, 고유한 제주경관의 심미성을 저항의 예시로 간주했다.
장예지(2018)는 진종헌(2016)이 주목한 푸른 산의 출현 이전인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 사이에 산촌민의 화전농업과 벌채로 인하여 만들어진 ‘벌건 산’의 출현부터 주목하여,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산림녹화정책에 의해 화전이 불법으로 규정되고, 화전지가 조림지로 바뀌는 과정을 추적했다. 또한 그녀는 2000년대 들어서 송이버섯 생산과 금강소나무숲길로 유명해진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을 살폈다. 발전주의 시기에 주민들을 자연으로부터 배척한 국가가 이제는 주민들에게 산림을 지키는 감시자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주민들의 송이버섯 생산을 허가하면서 국가와 주민의 관계가 변화했음을 포착했다. 더불어 국가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된 화전 활동의 흔적은 관광 프로그램 코스에 속한 ‘자연’으로 전유되었음을 포착한 저자는 산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며 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 있는 ‘사회적 공간’임을 주장한다.
끝으로 일제강점기 금강산국립공원 지정 논의와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과정을 국가-자연 개념으로 살핀 김지영(2021a, 2021b, 2024)을 주목할 수 있다. 특히, 필자는 김지영(2021a)이 일제강점기 금강산국립공원 지정 논의를 살피면서 황진태・박배균(2013)이 강조했던 축적전략과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역학관계 속에서 국가-자연이 형성되는 세 가지 공간전략(틀 짓기, 중앙집중화, 영역화)을 받아들이면서도 네트워크화를 새롭게 추가한 이론적 보완이 인상적이다. 김지영(2021a)에 따르면, 일제가 금강산국립공원을 지정했던 것은 관광지 개발을 통한 자본을 축적하고 일본을 넘어 조선, 대만, 만주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내선일체를 실현할 (그녀의 용어로) ‘국가풍경’을 생산하고자 했던 헤게모니 프로젝트였다. 박정희 정권에서 추진된 지리산국립공원의 지정 과정을 살핀 연구(김지영, 2024)는 박정희 정권의 수자원정책 연구(Hwang, 2015)와 유사한 국가의 공간적 실천들이 확인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하천과 산에 대한 사례연구에서는 국가-자연 형성의 세 가지 전략 중에서 일부(가령, 이상헌(2019)은 틀 짓기를 선택)를 선택하거나 혹은 세 가지 전략을 모두 적용(김지영, 2024; Hwang, 2015)했다는 차이가 있으며, 국가와 자연의 다채로운 관계를 상당 부분 밝혀낸 기여를 했다고 평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자연 연구의 축적은 앞으로 다른 자연 형태들에 적용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자연의 형태는 바다/해안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면, 하천, 산만큼이나 바다/해안의 연구 필요성도 뒤처지지 않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 주제를 다루는 연구로는 최영래(최영래, 2019; Choi, 2014, 2019)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녀는 국가-자연 개념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맥락에서 해안의 정치생태학적 변화를 심도 있게 연구해 왔다는 점에서 마땅히 본 논문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Choi(2014)는 해안의 간척사업과 발전주의 국가의 관계를 살핀 초기 연구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시기를 연구했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전후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쌀 생산의 자립도를 높일 목적으로 간척사업이 시행되었다. 당시 간척사업은 소규모였고, 국가의 개입 수준도 미미했다. 박정희가 집권한 1960년대에 들어서 쌀은 근대화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면서 정책적으로 중요해지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부터 국가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주도하였고 결과적으로 남서해안의 경관이 급격히 변화했다. 이처럼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간척사업은 해안 경관의 변화와 발전주의 국가 간의 상관관계를 드러내는 유용한 사례이다. 그러나 근대화, 발전을 목표로 발전주의 국가에 의해 시도된 간척사업은 1980~2000년대의 다양한 변화(국가경제구조의 변화, 민주화와 지방분권의 발전, 환경의식의 고양 등)로 인해 그 양상이 바뀌게 된다. 경제성 결여와 환경파괴 등의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면서 예정된 대규모 간척사업이 중단되었고, 간척사업 재개의 논리는 더 이상 쌀 생산이 아닌 낙후된 해안지역의 지역발전으로 바뀌었다. 최근 출간된 Choi(2023)는 Choi(2014)에서 드러낸 발전국가와 간척에 대한 문제의식을 유지하되 해방 이전인 일제강점기 시기의 간척사업 실태를 추적하여 일제강점기의 간척사업이 경로의존적으로 발전주의 국가의 간척사업에 미친 영향을 역추적했다.7)
지금까지 확인한 주요 연구 주제들(산, 하천, 바다/해안)에 대한 두터운 성과들은 12년 전 황진태・박배균(2013)이 제안했던 동아시아 발전주의 맥락에서 한국의 국가와 자연의 관계에 대한 정치생태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유효했음을 사후적으로 증명한다. 동시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한계도 확인된다. 첫째, 해외지역연구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본래 황진태・박배균(2013)이 동아시아 발전주의 맥락을 강조했던 것은 한국 이외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비교연구의 필요성을 고려한 것인데, 주요 연구 주제들의 사례지역이 한국이 대다수라는 사실은 동아시아 차원의 중범위적 일반화/이론화는 충분히 진행하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둘째, 주요 연구 주제인 하천, 산, 바다/해안 등은 활발히 연구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새롭게 부상한 연구 주제와 지역 연구의 축적은 적다고 평가 내릴 수 있다. 앞으로 새로운 주제 및 지역의 발굴은 국가-자연 논의를 이론적, 경험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 가능성을 제공한다.
(2) 새로운 연구 주제: 환경오염, 도시화
새로운 연구 주제들은 앞서 다룬 주요 연구 주제들처럼 자연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발전주의 국가가 추진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인하여 자연의 변형(혹은 파괴)에 따른 결과(환경오염, 대도시의 출현)를 더 주목하고 있다.
먼저, 이상헌(2021)은 국가-자연 관계 형성의 세 가지 공간전략을 적용하여 한국에서의 미세먼지 논란을 분석하는데,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순수한 과학의 영역이기보다 국가를 매개로 정치적 의사결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대기 상에 자유롭게 이동하는 미세먼지의 특성상 비선형적 인과관계로 인해 발생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는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관련 지식을 생산・독점하는 국가기구에 의해 현재의 미세먼지 논란은 특정한 시각이 투영된 틀 짓기가 이뤄지면서 미세먼지가 국가-자연으로 생산된다고 보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세먼지에 대한 표준적 지식(배출원별 배출량 측정 및 추정)을 독점하는 국가기구(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등)가 다른 대기오염 물질에 비해 미세먼지가 더 위험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를 환경정책의 우선순위에 배치한 것을 중앙집중화 전략으로 해석했다. 또한, 환경부는 국내 미세먼지의 국외 기여도를 강조하면서 미세먼지의 피해를 당하는 한국과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중국이라는 ‘우리 vs. 그들’로 나누는 영역화 전략을 시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영역화 전략은 한국 국민이 중국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국내 배출원에 대한 책임 규명을 모호하게 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본축적에 이바지한다고 보았다.
최근 출간된 김성은의 연구(Kim, 2024)도 한국의 미세먼지 논란에 있어 중국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지식생산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경합을 살폈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과 한국 국립환경과학원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한미 협력 대기질 합동연구(KORUS-AQ)의 활동을 주목했다. 그 결과, 한국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의 외부 기여에 있어 중국의 책임이 크다는 견해를 강조하고, 미국 전문가들은 중국 이외 지역에서 다양한 원인의 미세먼지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 데이터를 강조하면서 대기과학이 국가의 영역/영역화와 긴밀히 관련되었음을 포착했다. 과학기술사회학을 배경으로 한 그는 과학자들의 상이한 인식과 연구방법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이상헌과 분석대상의 유형은 다소 다르지만, 대기측정에 관한 지식생산에서 영역화가 발생한다는 문제의식과 해석은 이상헌과 매우 유사하다.
조은성(Cho, 2023)은 1970년대 북한의 공해담론의 출현을 주목했다.8) 그녀는 냉전과 발전주의가 북한사회에서 공해에 대한 인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북한 당국은 한국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은 이후 중공업 중심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 공해기업을 한국에 유치한 것을 비판했는데, 조은성은 북한 당국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해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사회주의 국가는 공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체제경쟁의 맥락에서 공해를 담론화했음을 포착했다. 또한 최고지도자 김일성의 환경 관련 발언과 사회주의 체제의 깨끗한 환경을 보여주는 대표 공간으로 평양의 이미지가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북한주민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근대화-발전-성장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북한은 중공업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발전을 추구한 결과, 북한 내부에서 발생하는 공해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1980년대에 환경보호법이 제정된다. 냉전과 발전주의의 맥락에서 북한에 접근한 조은성의 관점은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로서 한국을 접근하는 인식과 이론적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녀는 한국의 국가-자연을 연구한 Hwang(2015)을 인용하면서 냉전과 발전주의를 매개로 북한과 한국의 유사성과 차이가 있을 것임을 언급했는데(Cho, 2023: 124-125), 이는 국가-자연 개념으로 남북한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을 상호비교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9)
환경오염 다음으로 눈여겨볼 새로운 연구 주제는 도시화이다. 연구자들이 국가-자연과 도시화 간의 관계를 주목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계기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한국의 도시화 과정을 ‘발전주의 도시화’로 개념화하는 도시연구자들이 국가의 역할이 도시화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Hwang, 2023; Park, 1998; Shin and Kim, 2016). 따라서 발전주의 국가가 생산한 국가-자연도 도시와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사유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오늘날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되면서 유엔이 ‘도시의 시대(Urban Age)’를 선언하고, 2020년 들어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80% 이상을 도시가 담당하는 전지구적 변화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도시연구와 정책서클에서 도시가 환경오염 유발의 진앙지로서 지속가능성을 약화하는지 아니면 스마트 기술을 이용하여 지속가능성의 전진기지가 될 것인지 등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상황은 도시가 생태・환경의 주요 정책영역으로 부상했음을 가리킨다(Angelo and Wachsmuth, 2020). 셋째, 기존 도시연구가 도시화 과정과 자연의 관계를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하다가 이들 간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재인식하기 시작한 점이다. 대표적으로 ‘도시로부터 떨어진’ 촌락, 야생의 공간을 연구한 정치생태학에서 도시정치생태학(urban political ecology)이 새로운 학문분야로 출범했다(Heynen et al., 2006).10) 일찍이 도시정치생태학을 선도적으로 제기한 에릭 스윈지도우(Erik Swyngedouw)는 도시를 사회와 자연의 변증법적 과정이자 산물인 ‘혼성체(hybrid)’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Swyngedouw, 1996). 종합하면, 발전주의 국가에서 국가와 도시의 긴밀한 관계, 최근 도시연구 및 도시정책에서 도시와 자연의 변증법적 관계를 주목하는 도시정치생태학의 부상 등이 국내 연구자들에게 국가-자연 개념을 도시화에 적용하도록 유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김준수(2018, 2019)는 발전주의 도시화와 비인간(비둘기, 한강)의 관계 변화를 살피는 연구를 시도했다.11) 예컨대, 발전주의 시기에 강력한 국가에 의해 조성된 국가-자연으로서의 비둘기는 발전주의 도시 서울이 ‘깨끗하고 평화로운 도시’임을 재현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 속에서 국가가 처음 고안한 계획에서 벗어나 비둘기는 ‘질병, 더러움’의 상징이 되면서 서울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과정을 그는 국가-자연 관계의 재조정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발전주의 도시화 과정이 강력한 국가 주도의 도시-자연 생산에 개입”(김준수, 2018: 61)하는 과정을 통하여 한국의 도시(화)는 국가를 매개로 스윈지도우가 제안한 사회와 자연의 경계가 교란되는 혼성체로 이해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정예슬・이영민(2024)은 한국을 벗어나 싱가포르의 도시화 과정을 국가-자연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이 연구는 국내 국가-자연 연구자 중에서 한국 이외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성과이다. 다만 저자들은 국가-자연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동아시아 발전주의 맥락에서 싱가포르를 분석하기보다는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인 리콴유가 싱가포르 도시화에 미친 영향에 상당히 초점을 두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리콴유는 열대 원시림을 식민지배의 과거이자 열등한 것으로 규정하고, ‘정원도시’로 불리는 선선한 온대기후의 자연환경 조성이 신생국 싱가포르의 새로운 국민・국가정체성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초기 정원도시에는 원시림이 제거된 공간에 그늘을 제공할 녹화를 추진하고자 싱가포르의 기후를 견딜 수 있고 생장속도가 빠른 종들이 선택되었으며, 이러한 녹화정책은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정예슬・이영민, 2024: 229). 또한 저자들은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남성 vs. 여성’의 이분법적 구도에 따라서 ‘깨끗하고 청정한 도시’인 싱가포르와 싱가포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성서비스가 이뤄지는 ‘열등한, 미개한’ 인도네시아 바탐섬을 대비하면서 소위 제1세계 국민성을 지향하는 싱가포르의 국가-자연은 성차별적, 인종차별주의를 내재했다면서 젠더적 시각에서 국가-자연 연구의 지평을 넓힐 가능성을 보여줬다(정예슬・이영민, 2024: 233-234).12)
(3) 새로운 연구 지역: 한반도, 북한
마지막으로 한국과 동아시아 스케일에 초점을 둔 국가-자연 연구에서 새로운 연구 지역인 북한과 한반도 차원에서의 국가-자연 연구를 논한다. 황진태(2018a)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사례로 하여, 남한과 북한이 각각 생산한 국가-자연은 내적 통일성을 강조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낸 것에 반해,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정상회담의 공간(회담장에 걸린 금강산・백두산 그림, 두 정상의 소나무 공동식수, 백두산 공동방문 등)을 통해 남북한의 통합성을 높이는 형태의 “한반도 자연”13)이 형성되는 양상을 주목했다. 하지만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 한국에 대해 강 대(對) 강 노선으로 변경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2023년 말 개최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남한이 같은 민족임을 부정하고, 통일 정책 폐기를 지시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황진태(2018a)가 예상했던 민족을 매개로 남북이 결합한 새로운 국가-자연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작아졌음을 의미한다. 즉, 상대방에 대한 배타성과 내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노선에 기반하여 ‘두 개의 국가-자연’이 재구성될 것으로 볼 수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 노선을 발표하기 이전에 북한은 2017년부터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새로운 지배담론으로 제시하였는데(이무철, 2024), 이 담론 안에서 소나무를 국수(國樹)로, 목란꽃을 국화로, 풍산개를 국견으로 지정하는 등 자연의 틀 짓기가 이뤄지면서 ‘북한의 국가-자연’ 형성이 목격된다.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반도 자연을 의미하는 ‘삼천리 금수강산’의 사용금지를 지시한 것에서도 남한과의 교류단절 및 같은 민족임을 부정하는 의도가 발견된다. 그렇다면 현 국면에서는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반도 자연보다 북한에서 형성되는 국가-자연에 대한 분석이 우선적인 연구과제가 될 수 있다.
김서린・성종상(2021)은 북한의 명산과 보호지역 지정을 국가-자연 개념으로 접근했다. 북한 당국은 해방 직후 서산대사가 지칭한 4대 명산을 따랐고, 이후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포함한 5대 명산, 현재는 칠보산을 포함한 6대 명산(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구월산, 칠보산)을 지정했다. 저자들은 명산이 있는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과정을 지역 스케일로부터 국가 스케일로의 위상을 올림으로써 국가의 영토적 통일성 확립과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논리와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해석했다. 오삼언(2024)도 산을 주목했다. 북한에서는 2015년부터 한국 사례(진종헌, 2016)의 ‘푸른 산’과 유사하게 ‘황금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황금산이 북한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 될 것이라는 사회주의강성국가의 이미지로 재현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김정은 집권 이후 환경이 통치에 활용되는 양상이 증가한 것을 두고서 ‘생태환경정치’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생태환경정치라는 일반적인 낱말들(생태, 환경, 정치)의 결합은 환경정치학, 생태정치학 등의 다른 유사 개념들과의 차별성이 크진 않다. 북한 당국이 특별히 ‘생태환경’ 용어에 정책적 의미 부여를 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론적 추상화, 개념화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생태환경정치 개념의 이론적 근간은 푸코(M. Foucault)의 영향을 받은 녹색통치성(green governmentality)에 근거한다고 밝혔지만(오삼언, 2024: 188-189),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주체화를 설명하는 데 효과적인 녹색통치성 개념(최명애, 2016)은 저자의 ‘풍부한’ 사례에서 일부만을 다루고 있다.
오히려 국가-자연 개념틀을 적용하면 오삼언의 분석 내용은 보다 체계적이고, 다면적으로 살필 여지가 많아진다. GIS(지리정보체계)에 근거하여 산림을 포함한 생태・환경 관련 전국 차원의 정보를 수집 및 축적하는 전국산림자원관리정보체계와 위성자료에 기반한 환경상태변화통보체계의 구축은 중앙집중화의 측면에서 볼 수 있고, 2015년부터 시작된 산림복구전투나 보호구 지정은 북한주민을 자연과 함께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영역화의 일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앞서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부상을 설명하며 소개했던 국수, 국화, 국견은 자연/비인간을 국가 스케일에서의 틀 짓기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오삼언(2024) 연구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그녀의 생태환경정치 개념이 이론화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고, 국가-자연 개념이 들어가기에 적절한 그릇을 제공했다는 것에 방점을 둔다.
2) 시간적 범주
앞서 국가-자연 연구를 공간적 범주에서 조망했다. 다음으로 시간적 범주를 살필 필요가 있다. 발전주의에는 고도성장을 이룬 특정 지역인 동아시아를 가리키는 공간적 함의가 들어있지만, 식민주의 ‘이후’와 포스트 발전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이전’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시간적 함의도 들어가 있다. 이러한 시간적 이해는 국가-자연의 기원, 형성, 변화를 보다 역동적,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의 ‘저발전의 발전’(Frank, 1967) 양상과 달리 동아시아가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국가의 역할을 손꼽는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무능하다고 간주된 제3세계 국가관료들과 달리(Evans, 1989),14) 동아시아에서는 전후에 탄생한 일본의 통상산업성(현재의 경제산업성), 한국의 경제기획원의 기술관료(technocrat)를 통해서 자본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인 경제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계획합리성(plan rationality)에 기반한 사례들이 발견된다(Johnson, 1982).
그런데 발전주의 국가론은 이들 국가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데 있어 기술관료 출현 이전의 식민주의와 같은 역사적 국면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간과할 수 있다(한석정, 2016). 일부 연구자는 조선시대의 지배사상과 직접 연결하는 역사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즉, 19세기 통치철학인 유교가 20세기 국가관료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소위 ‘유교적 발전주의’(유교 철학의 영향을 받아 관료들은 부패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Kim, 1977)를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서구의 시장 자본주의와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동아시아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황진태, 2010: 21-22).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등의 다양한 역사적 국면을 포함하여 발전주의 국가의 기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자연 연구에서 시간적 범주를 살피려는 목적도 발전주의 시기 국가-자연의 형성이 발전주의 국가 출현 이전의 역사적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간적 범주는 식민 시기의 오랜 과거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와 현재도 포함한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초반 지방자치제 실시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흐름은 30년가량 군부 독재로 유지되어 온 발전주의 국가 통치방식의 변화를 요구했다. 위로부터의 정치가 지배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시민사회는 지방자치, 지역민주주의로 불리는 밑으로부터의 정치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는 국가의 정책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Park, 2008). 다른 한편으로 1990년대에는 세계화와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이식되면서 발전주의 국가의 성격 변화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지기도 했다(Park et al., 2012). 신자유주의화는 국가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강한 국가의 역할이 나타난 동아시아 국가들도 더 이상 강한 국가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입장과 산업부문에 따라서 국가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시각이 병존했다(최병두, 2007; Hwang, 2017: 227-229).15) 이처럼 정치적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발전주의 시기에 형성된 국가-자연은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에는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살피기 위하여 포스트 발전주의를 시간적 범주화의 한 국면으로 포함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표 2는 한국의 국가-자연 연구를 식민주의, 발전주의, 포스트 발전주의로 구분한다.
표 2.
국내 연구자들의 국가-자연 연구의 시간적 범주화
1945년 이전 | 1960년대~1990년대 | 2000년대~현재 |
식민주의 | 발전주의 | 포스트 발전주의 |
김지영(2021a, 2021b), 장예지(2018), Choi(2023) | 김준수(2018, 2019), 장예지(2018), 진종헌(2016, 2024), 황진태(2019a), Choi(2014, 2023), Hwang(2015) | 김준수(2018, 2019), 이상헌(2019), 장덕수・황진태(2017), 최영래(2019), Choi(2019) |
발전주의 국가의 국가-자연과 식민 시기와의 연결성을 찾는 연구로 Choi(2023)를 우선 주목할 수 있다. 그녀는 서해안, 남해안 갯벌이 간척되는 과정이 박정희 정권부터 대규모로 전개되었다고 보았지만, 식민 시기의 간척사업이 남긴 공간적 경로의존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의 갯벌을 간척하여 농경지로 전환하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은 ‘외부자’ 일제로부터 시작되었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쌀을 생산하여 일본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산미증식계획이 세워졌다. 이에 따라 일제는 간척을 통한 농경지 확보를 도모했고, 간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안의 시초인 1923년 조선공유수면매립법이 제정된다. 1921년 일본에서 동법이 제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민지에 이식된 것이다. Choi(2023: 27)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가 갯벌을 간척한 범위(사업완료된 곳을 기준)는 약 500㎢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관료, 토목 기술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활약했음을 감안하면, 박정희 정권 시기에 공유수면매립법(1962년 제정)이 유지되고,16) 일제강점기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대규모 간척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간척 경험과 변형된 해안경관(500㎢ 규모의 간척지)이 관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필자는 추정해 본다.
장예지(2018)는 화전민과 ‘벌건 산’ 형성을 해방 이후부터 중점적으로 연구했지만, 그녀는 화전민과 토지의 관계를 일제강점기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왕토사상에 근거하여 조선의 산림 소유권은 왕에게 선험적으로 있었고, 왕실의 허가하에 누구나 산림의 산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예지는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근대적 소유권 개념에 따라서 국유림과 사유림이 법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화전민의 경제적 지위가 불안정하게 된 것이 해방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장예지, 2018: 34-35). 다음으로 일제강점기 금강산 국립공원 지정 논의를 살핀 김지영(2021a, 2021b)은 연구 지역이 현재 북한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발전주의 국가의 맥락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김정일 정권 시기의 금강산관광지구, 김정은 집권 이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마식령스키장과 같은 금강산 일대에 대한 개발 논의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필자는 일제강점기부터의 공간적 경로의존성이 사회주의 국가 북한에 영향을 미쳤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군(群)에 속하는 일본, 대만이 1930년대에 국립공원을 지정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김지영, 2021a: 114), 필자는 오늘날 일본, 대만의 국립공원 형성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규명할 필요가 있고, 일제의 금강산국립공원 지정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발전주의 시기의 국가-자연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식민 시기와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 연관성이 단편적, 간헐적으로 다루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언어(일제강점기 일본어 문헌 등) 및 자료접근의 방법론적 제약과 함께 인식론적으로 연구자들이 식민주의와 발전주의와의 관계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여러 국가-자연들의 탐구에서 식민 시기와 발전주의의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를 살핀다. 포스트 발전주의를 설명하는 대표적 핵심 개념은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케인즈주의,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신자유주의에 직면하면서 포스트 케인즈주의, 포스트 사회주의로 전환되었듯이,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 신자유주의는 동아시아의 포스트 발전주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Park et al., 2012). 서구 학계에서 시도한 제1세계, 제3세계 중심의 정치생태학 연구는 신자유주의를 매개로 한 자연의 생산과정(가령, 국가가 관리하던 숲, 식수 등의 민영화)에서 최소국가(minimal state)를 포착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이념형(즉,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과 유사함을 확인했다(Castree, 2008). 반면에 황진태・박배균(2013: 354)은 동아시아에서 자연의 신자유주의화에는 국가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면서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녹색성장 정책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예시로 들었다.
장덕수・황진태(2017)는 강원도 양양 케이블카 유치 갈등을 사례로 발전주의 시기에 만들어진 국가-자연인 설악산 국립공원이 정치적・경제적 민주화 이후, 국가뿐만 아니라 국가 밖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개입하고, 친환경 수사가 케이블카 건설을 정당화하는 개발담론에 포섭되는 양상을 살피면서 이를 자연의 신자유주의화로 규정했다. 비록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논의를 차용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헌(2019)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살리기 사업 홍보영상에서 댐 건설이 생태계 복원, 수질 개선과 같은 친환경적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다는 점에서 앞 연구처럼 환경이 개발담론에 포섭되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최명애(최명애, 2016; Choi, 2020)는 1990년대 환경보전과 지역발전을 동시에 실현할 것으로 기대하며 국내에 들어온 생태관광의 개념을 주목한다. 그녀는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 정책을 계기로 정부 주도로 생태관광이 제도화된 것은 발전주의 국가의 관성으로 볼 수 있다면, 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환경을 보호하는 주체로서 생태관광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자연 보전을 통한 자연의 상품화와 상업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독특한 자연의 신자유주의화로 보았다. 끝으로 최영래(2019)는 2010년대 소위 “갯벌어업”이 급부상을 한 것을 포스트 발전주의 국가의 사례로 주목한다(유사한 논의로 Choi(2019)를 참조). 그녀는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 정책에 의해 갯벌어업이 등장한 것은 과거 국가 주도의 성장계획과 유사하지만, 갯벌을 보존하여 기존 자연이 자본축적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된 점은 개발/보존 이분법의 어느 한쪽에 해당하지 않는 자연의 신자유주의화가 작동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지금까지 살핀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의 정치생태학 연구는 국가-자연 개념을 분석에서 핵심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필자는 무엇보다 각 연구가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개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 것에 있다고 본다. 노엘 카스트리(Noel Castree)는 2008년 Environment and Planning A에 출간한 논문(Castree, 2008)에서 당시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관련 논문들을 메타리뷰를 하였고, 해당 논문은 이후 정치생태학 연구에서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높인 핵심 연구가 되었다. 국가-자연 연구를 주도한 저자가 참여한 장덕수・황진태(2017)조차 국가-자연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간과한 Castree(2008)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다른 연구자들도 유사한 비평의 경로를 보이고 있는데, Choi(2019)는 갯벌어업 연구에서 한국의 발전주의적 특성을 강조하지만, 한국 사례의 의미를 “신자유주의적 사회적 자연”(p. 28) 혹은 “신자유주의와 자연의 사이”(p. 28)의 여러 변형 중 하나로 머물게 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전지구적으로 미친 파급력을 고려하면,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개념을 분석의 중심에 두는 방식은 적절한 접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연구방향은 최영래(2019)가 말한 “발전‘국가’를 넘어”(p. 161)서 다양한 행위자를 바라보기 위하여 어셈블리지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어셈블리지, 행위성, 정동 등의 포스트 구조주의 개념이 발전국가를 ‘통과’함으로써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의 국가와 자연 관계의 고찰을 진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17)
이상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의 국가-자연 연구 현황을 정리하면, 세계화, 정치・경제적 민주화라는 사회적 변동을 맞이하여 한국사회에서도 다양한 행위자들의 출현과 이들이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됨에 따라, 연구자들의 시선도 국가 이외 행위자들로 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발전주의 국가의 관성이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서구 연구와의 차별적 특성도 부각되었다. 여기서 필자가 한 가지 우려하는 바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포착할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의도하지 않게 상대적으로 다양한 행위자들의 행위성(agency), 정동(affect), 행위자들 간의 (어셈블리지 개념을 적용하여) 관계성에 대한 밀도 있는 분석이 자칫 국가를 여러 행위자 중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국가의 내적 동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인간 너머의 지리학, 신유물론의 조류가 전통적으로 국가 간 갈등에 초점을 둔 학문인 국제관계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민병원, 2024; 황진태・박민주, 2022: 365-368), 그보다 앞서 정치지리학에서 지정학적 생태학(geopolitical ecology)의 출현은 국가-자연 연구에서 국가의 내외부에 대한 역학관계의 이해가 여전히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Graddy-Lovelace and Ranganathan, 2024).
3) 소결: 후속 연구주제의 지도화
2장에서는 지난 12년간 전개된 국가-자연 연구를 공간적, 시간적 범주로 구분하여 조망했다. 공간적 측면에서 하천, 산, 바다/해안이 두드러졌고, 상대적으로 전체 연구에서의 비중은 작지만, 환경오염, 비인간, 도시화가 새로운 연구주제로 부상했음을 확인했다. 사례지역은 한국에 집중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은 동아시아 비교연구 및 한반도 차원의 연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간적 측면에서는 식민주의와 포스트 발전주의의 상관관계 속에서 발전주의의 형성, 변화를 보다 주시한 국가-자연 연구가 필요함을 환기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연구방향은 표 1의 빈칸들을 채우면서 이론적, 경험적 분석의 수준이 깊어져야 할 것이다. 본 소결의 나머지 지면은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연구주제들을 간략히 지도화(mapping)한다.
첫째, 하천 연구에서는 동아시아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댐 건설을 사례로 식민지 시기, 냉전/발전주의 시기에 걸쳐 유사한 정황은 단편적으로 확인되었지만(김은혜, 2013; Moore, 2013), 국가-자연 개념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한국의 수자원에 관한 국가-자연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중국(이선화, 2023)과 더불어 일본, 대만, 싱가포르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 차원에서 남북한의 수자원정책을 비교하는 것(표 1의 a)은 동아시아 맥락과는 미묘하게 구별되는 남북한의 유사성(예컨대, 자연지리적 유사성, 권위주의 체제(김일성 vs. 박정희), 국가 주도의 개발방식 등)을 추출할 수도 있다. 김일성의 서해갑문 건설, 김정은의 동서해 연결 대운하 계획, 황주긴등물길(황해북도 곡창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전력을 필요로 하는 펌프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흐르는 방식의 수로) 공사 등을 개별 분석(황진태, 2022)하거나 남한의 유사 사례(한반도대운하 프로젝트)와의 비교가 가능하다.
둘째, 산은 다른 연구 주제들에 비하여 한국, 동아시아, 한반도 차원에서 고르게 연구가 진행된 편이다. 그러나 표 1에서 대만, 일본의 국립공원 지정 과정을 살핀 김지영(2021a)의 연구를 바탕으로 대만, 일본을 언급했지만, 실제 그 논문에서 대만, 일본의 사례분석은 간략히 다뤄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바다/해안을 동아시아, 한반도 차원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다. 최영래(Choi, 2023)의 한국 서해안 연구는 황해의 간척을 역사적으로 규명했는데, 황해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북한에 걸쳐 있는 바다로서, 두 국가의 해안 일대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표 1의 b, c; Choi et al., 2023; 김혁 등, 2023). 특히, 북한 서해안 연구가 미진하지만, 연구의 잠재성이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의 서해안 간척(북한 용어로 ‘새 땅 찾기’) 사업이 활발하면서 북한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김혁 등, 2023).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업현황을 파악하는데 머물러 있고, 국가-자연의 관점에서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당과 국가의 의도, 사업의 물질 및 담론적 과정에 대한 체계적 분석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넷째, 환경오염의 해석을 둘러싼 국가-자연 연구이다. 선행연구는 한국 정부의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한 해석에 초점을 두었다(이상헌, 2021; Kim, 2024). 반면에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된 주변국들(특히, 중국)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선행연구에서 사용한 접근방식을 중국에 동일하게 적용하여 중국 정부는 미세먼지 문제를 어떠한 틀 속에 규정지음으로써 주변국이 주장하는 중국이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나려 하는지, 혹은 어떤 미세먼지 관측 데이터를 활용하고, 자국의 이해관계에 유리한 해석을 하는지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주제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주변 해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일본, 한국, 중국과 함께 북한도 당국의 의견을 빈번하게 표명했다는 점에서 미세먼지 사례와 같은 비교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다섯째, 도시화이다. 국내 사례에서도 국가-자연과 도시화를 연결한 연구는 많지 않다. 아직 정치생태학과 도시 간의 개념적 마주침인 도시정치생태학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학계 풍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제안하려는 주제는 도시연구자들에게 익숙한 개념을 통해 국가-자연-도시화의 연계를 인식시키는 데 있다. 그 주제는 에벤저 하워드(Ebenezer Howard)가 제안한 정원도시이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도시와 자연이 분리되자 도시와 자연을 함께 구하자는 사회개혁운동의 성격으로 제시된 정원도시 개념은 오늘날 지속가능한 도시계획의 중요한 사조로 남아있다. 앞서 살폈듯이, 정예슬・이영민(2024)의 싱가포르 연구는 리콴유 정권에서 국가-자연으로서 정원도시 개념의 변용을 추적했다. Lan and Hsu(2024)는 1950년대 동아시아 냉전에 돌입한 이후, 대만의 근대 도시계획에 정원도시 담론이 이식되는 과정은 중국의 공중폭격 가능성을 우려한 대만 정부가 도시의 폭격 피해를 줄이고자 분산화된 도시공간구조를 지향한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밝혔다. 정원도시 개념은 도시민들의 녹지접근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북한의 수도 평양은 김일성부터 김정은 정권까지 ‘공원 속의 도시’를 강조하며 환경적 우수성을 자신들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연결하여 선전하고 있다(이선, 2018; 이종겸・정현주, 2022; Hwang, 2024). 이처럼 싱가포르, 대만, 북한의 정원도시 개념 수용과정은 서구 도시에서의 정원도시 개념 수용에서 나타나지 않는 강한 국가의 역할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및 한반도(표 1의 e)의 범주에서 새로운 개념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섯째, 글로벌 스케일에서의 국가-자연의 연구와 실천이다. 표 1의 글로벌 스케일의 연구는 아직 미지의 영역 X로 남겨져 있다. 사실 식민주의, 발전주의,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국면 모두에서 국제정치적 요인은 긴밀히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자들이 글로벌 스케일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냉전으로 불리는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신흥안보로 규정될 정도로 전 인류가 도전받는 기후변화와 같은 새로운 글로벌 환경의제들(Busby, 2022)은 새로운 국가-자연(가령,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국가 주도의 조림정책)의 형성과 글로벌 스케일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과업과 그러한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해외 연구자들과의 협업이라는 실천의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끝으로 비인간과 국가-자연의 관계가 남겨져 있다. 이 주제는 앞서 다뤘던 연구주제들이 가정하고 있는 인간중심주의(즉, 국가-자연을 생산하는 국가의 전략은 인간의 판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가정)를 비판한다. 국내 국가-자연 연구를 처음 제안했던 12년 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앞으로 이 주제의 연구 잠재성과 합의되지 않은 논쟁지점들을 고려하여 더욱 세밀한 논의를 위해 다음 장에서 다룬다.
3. 평가 2: 국가-자연과 인간 너머의 마주침
일반적으로 대중이 생각하는 국가란 막스 베버가 정의하듯이 인간 관료들의 집합인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은 앞서 빈번히 인용했던 밥 제솝의 정의처럼 관료뿐만 아니라 국가 안팎의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경합하는 장으로서 국가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 두 관점 모두 국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인간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간 너머의 지리학과 신유물론의 부상은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을 낳았고, 국가와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은 급진적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 즉, “국가는 항상 인간 너머이지 아니었던가?(Hasn’t the state always been more than human?)” (Hwang, 2021: 647)라고 말이다.
전통 정치지리학에서 국가는 주권, 국민, 영토로 구성된다고 보고 있다(최병두, 2024: 52-56). 특히, 환경결정론의 영향을 받아 각국 영토(자연)의 특성이 해당 국가(권력)의 특성을 일방적으로 규정짓는다고 본다. 가령, 열대 지역 거주민들은 노동하기 어려운 후덥지근한 기후로 인해 게으르다거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노출된 ‘반도의 숙명’으로 인해 한반도는 외부의 침략이 잦을 수밖에 없다는 등의 편견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병두가 지적했듯이, 영토와 그것의 물리적, 자연환경적 특성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정치적 활동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가변적 요소이며, 그것들은 물리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활동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관계적 접근이 필요하다(최병두, 2024: 81). 국가-자연 연구도 영토와 인간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고자 자연과의 관계 맺기를 통하여 국가는 어떻게 형성, 지속, 변화하는지를 파악하려 한다.
그런데 최병두가 언급한 ‘상호관계’, ‘관계적 관점’은 환경결정론에서 벗어나려는 인식으로는 필요할지 몰라도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인식으로 확장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현대 지리학에서 이미 환경결정론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지만, 환경이 인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경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뭉뚱그려진 범주인 환경, 자연을 더 세부적으로 쪼개면, 비인간, 물질, 사물, 동물, 식물 등이 도출되며, 이렇게 세분화된 범주들에 그간 인간에게만 부여했던 개념들을 접착시키면, 비인간 카리스마, 비인간 행위성, 비인간 노동력, 물질권력, 사물의 의회, 정치적 동물/식물 등의 다채로운 개념들이 피어난다. 이와 같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개념들을 받아들인다면, 최병두가 강조한 국가 형성에 있어서 영토와 인간의 상호관계는 더욱 관계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환경/자연이 인간에게 일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환경결정론의 장막을 경계해야겠지만, 그 대안이 자리 바꾸기를 통해 인간이 환경/자연에 일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환경가능론이라는 또 다른 장막으로 덮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들(비인간 행위성 등)을 섬세한 분석의 칼날로 활용하여 거대한 장막들을 해체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오랫동안 환경결정론의 대표 주창자로 간주되었던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이 최근 해외 지리학계에서는 인간 너머 지리학의 선구자로 재평가하는 연구도 있다(Barua, 2018)는 점은 본 절에서 살필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 개념에 대한 재평가, 재해석의 여지를 열어준다.
표 1에서 확인하듯이, 지금까지 축적된 국가-자연 연구에서 인간 너머의 지리학을 적용한 논의는 양적으로 풍부하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에 가려졌던 인간과 비인간 간의 파열음, 인간의 예상을 벗어난 비인간의 행위성, 그러한 비인간 행위성이 다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재발견한다면 표 1의 다른 범주들(산, 하천, 환경오염, 도시화)의 분석 결과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자연 개념과 인간 너머의 사유 간의 마주침에 대한 논의는 선제적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
인간 너머의 지리학을 적용한 국가-자연 연구로 김준수(2018, 2019)가 있다. 그는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설명하던 발전주의 국가론에 공감하면서도 기존 분석이 국가 스케일에 경도된 점이 이들 국가의 도시화, 산업화, 근대화 과정을 밝히는데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국가 스케일보다 생동적이고 우발성이 나타나는 도시 스케일에서의 연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한국의 발전주의 도시화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는 비둘기, 한강을 비인간 행위자로 보았다.
먼저, 그는 한강에 대한 연구에서 홍수 방지, 강남 신도시 건설, 북한군의 침투 방지 등의 다양한 목적에 따라 서울 안팎에 조성된 댐, 수중보, 상하수도 시설과 같은 (그의 용어로) ‘콘크리트 비인간’을 주목했다. ‘한강의 기적’이란 용어처럼 조국근대화 과정에서 한강은 대표적인 국가-자연으로 인식되었고, 그 기적을 만드는 데 콘크리트 비인간들이 중요했다. 하지만 1970~80년대의 고도성장 이후 1990년대에 수돗물 바이러스 사태로 알려진 한강의 수질오염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원인 중에는 상수도 취수장과 하수처리장이 인접하여 배치된 점, 신곡수중보와 잠실수중보 사이에 물이 갇혀 있는 구조(즉, ‘서울의 한강’으로 알려진 공간 범위) 등이 확인되었다. 결국, 상수도 취수장은 잠실수중보의 상류로 이전되고, 서울의 한강은 식수 기능을 상실했다. 사례분석을 통해 김준수는 ‘수질’이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1960년대 이후 국가가 한강을 성공적으로 포섭해왔던 관계를 변화시켰다고 분석했다(김준수, 2019: 127-128). 또 다른 비인간 행위자로는 신곡수중보 하류에 형성된 장항습지를 꼽을 수 있다. 신곡수중보 건설로 일정하게 한강의 수위가 유지되면서 모래섬 위에 장항습지라는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애초에 습지를 조성하려는 국가의 의도는 없었지만,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습지는 국가에 의해 보호습지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다음으로 비둘기 연구를 살펴보자(김준수, 2018).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비둘기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지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비둘기는 평화와 자연의 상징(유사 표현으로 ‘인간 정서에 도움이 되고’, ‘사랑과 낭만의 가족주의’ 등)이었다. 그리하여 고도성장 시기와 맞물려 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메가이벤트와 여러 행사에 비둘기가 대량 동원되었고, 비둘기 개체수가 급증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늘어난 비둘기의 배설물에 의한 문화재 훼손, 생활환경의 악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인간들은 비둘기 외모에서 평화가 아닌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둘기가 인간에게 주는 실제 피해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이 갖는 혐오감에 기반하여 국가는 2009년에 비둘기를 유해조수로 지정한다(김준수, 2018: 79-88). 이 연구는 국가의 필요로 비둘기가 동원되었지만, 개체수 증가와 배설물에 의한 문화재 파괴와 같은 인간이 예상치 못한 물질적 변화가 인간이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에서 제거의 대상으로 재인식시키는 정동적 특성을 포착하면서 국가-자연 관계의 역동적 변화를 확인했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김준수의 연구에서 드러난 비인간들은 나름의 행위성을 발현하면서 국가의 계획에 없던 습지가 형성되고, 또는 국가정책이 계획합리성에 따라 집행되기보다 인간의 주관적 인식(비둘기에 대한 혐오감에 기반한 퇴치 정책)이 결정적일 수 있음을 밝히면서 국가-자연 연구에서 인간 너머의 지리학의 필요성을 환기했다. 김준수가 선구적으로 시도한 인간 너머의 지리학과 국가-자연의 마주침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지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자연 관계의 형성 초기 단계에서 비인간 행위성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령, 김준수의 사례연구들에서도 발전주의 국가의 국가-자연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는 인간과 비인간 간의 파열음, 비인간 행위성이 나타나지 않고, 1990년대 발생한 한강의 수돗물 바이러스 사태나 비둘기에 대한 혐오 여론에서 보듯이, 특정한 국가-자연의 형성 ‘이후’에 비인간의 존재감이 환경오염과 같은 부정적인 사건을 통해 극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연구자가 국가-자연 형성 이후에 비인간 행위성이 활발해진 사례들만 우연히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자연의 초기 형성단계에서 실제 비인간 행위성이 발생했더라도 연구자가 국가, 인간의 두드러진 역할을 주목하면서 비인간 행위성은 나중에 발생한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즉, 국가-자연의 초기 형성은 필연적으로 인간 중심적이라는 인식론적 편견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필자의 문제제기는 앞서 살핀 선행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제주의 오름을 연구한 진종헌(2016)은 박정희 정권 시기에 추진된 육지의 산림녹화사업에 사용된 수종이 제주에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수종을 심었고, 결과적으로 국가가 기획한 ‘푸른 산’ 담론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만약 그가 어떤 수종이 제주 토양에서 성장하기 어렵고, 그러한 생태학적 원인은 무엇이며, 제주 토양에 적합한 수종은 육지의 수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깊이 탐색했더라면 ‘식물의 행위성(plant agency)’ (Elton, 2021)이 국가-자연 관계에 미친 영향을 포착했을 수도 있다. 다만 Choi(2022)의 갯벌 연구에서는 갯벌의 물질성(조수의 흐름에 따라 땅이 물에 잠기거나 드러나는 특성)이 국가의 시각에서는 경제적 쓰임새가 낮고, 불모지로 판단하여 간척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가-자연 생산의 초기 단계에 비인간 행위성과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하면, 비인간 행위성이 드러난 사례들이 정치・경제적 민주화가 활발한 포스트 발전주의 시기(표 2)에 집중했지만, 식민주의부터 발전주의까지 이전 시기에 대해서도 비인간 행위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인간 너머의 사례들을 분석하기에 앞서 사례 분석에 필요한 개념과 이론도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 개념을 인간 너머의 관점에서 재개념화하는 것이다. 재개념화를 시도한 연구로 Hwang(2021)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국가-자연 연구들이 중요하게 차용하는 밥 제솝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에 인간 너머의 시각을 접목했다.
그는 먼저 기존의 전략관계적 접근에 내재한 인간중심주의를 네 가지 측면에서 드러낸다(Hwang, 2021: 642-644). 첫째, 전략관계적 접근은 자본주의 동학과 연관되어 생산되는 ‘2차 자연(second nature)’에만 초점을 두면서 본래 제솝이 지양한 경제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형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가와 자연의 상호작용은 경제 체계뿐만 아니라 경제 외적(extra-economic) 체계(윤리, 문화 등)를 포함하는 복잡다단한 것이다. 따라서 전략관계적 접근은 자본과 국가의 지배적 논리(즉, 축적)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비경제적, 평범한(ordinary) 자연들이 인간과 국가에 미칠 영향을 간과한다. 둘째, 전략관계적 접근은 인간의 필요를 주목하고, 비인간의 필요를 간과한다. 기존 환경운동 진영은 인간의 필요 중에서도 자본주의 작동의 원천인 교환가치에 복무하는 것을 비판하고, 대안적으로 사용가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 너머의 시각에서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둘 다 인간의 필요만을 고려한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비인간의 필요를 옹호할 수 있다. 비인간이 직접 자신의 필요를 국가에 요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비인간을 대변하는 인간들(변호사, 동물권 옹호 단체 등)과의 연대를 통해 전할 수 있다. 셋째, 전략관계적 접근은 인간의 의사결정과 실천을 외부 세계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에는 전략, 정책을 수립하는 데 인간의 합리성이 주요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김준수(2018)는 비둘기에 관한 국가정책의 변화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비둘기의 위험한 물질성(가령, 인간 감염병의 전염 가능성, 위생, 도시 번식습성의 변화 등)에 집중한 과학적 용역 보고서를 국가기구가 채택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의사결정 속에 비인간에 대한 특정한 방식(주로 위험성과 경제적 효용성)의 과학지식 생산이 동반된다(김준수, 2021). 즉, 비인간은 국가가 선택한 물질적 특성들을 통해 이해되면서 비인간은 인간이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국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전략관계적 접근은 환경운동을 자본주의 폐해를 고치려는 사회운동의 일부로 접근한다. 지금까지 사회운동의 발생은 자본주의 동학과 긴밀히 연관되었지만, 전략관계적 접근은 앞으로 비인간의 필요를 대변하는 인간들이 증가하여 그들이 ‘사회세력’으로 성장하고, 비인간 관련 의제가 ‘사회문제’로 격상되는 새로운 형태의 환경운동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에 내재한 인간중심주의를 확인한 Hwang(2021)은 인간 너머의 시각에서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의 수정을 제안한다.
그림 1은 제솝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의 핵심 틀인 축적전략과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연계18)를 인간 너머의 시각에서 재해석했다. 기존 국가-자연 연구는 특정 축적전략을 뒷받침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역-자연들을 단일한 국가-자연으로 변형하려는 담론적, 물질적, 제도적 실천들을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Hwang(2015)이 분석했듯이, 각 지역의 개별화된 강들(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박정희 정권에서 ‘4대강 유역’이라는 하나의 국가 스케일로 만들어진 것을 그 사례로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 경제기획원 관료들이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건설부 관료들은 경제개발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지역의 자유재, 공유재였던 물을 국가적으로 필요한 ‘수자원’으로 변형, 통제하기 위한 물질적 조치(댐・제방 건설)와 담론적 조치(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4대강 유역에 담론적으로 연결)를 성공적으로 추진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구에서는 김준수(2019)의 한강 연구에서 포착된 비인간의 행위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비록 발전주의 국가론에서 진리처럼 가정한 국가정책을 관료들의 계획합리성19)의 산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세력간 경합의 산물임을 드러낸 것은 학술적 의의가 있지만, 인간 너머의 지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Hwang(2015)의 연구 역시 인간들의 다양한 합리성들을 밝히는 선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너머의 지리학을 통해 인간들의 합리성, 예측가능성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비인간들의 행위성을 깨달았다고 후속연구(Hwang, 2021)에서 밝힌 그는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 연구에 대한 성찰적 작업을 시도했다. 특히,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형성된 4대강 스케일과 댐 중심의 수자원정책의 연장선에서 추진된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고,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국가정책 비판의 발화점이 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의 출현을 주목한다. 그는 이 비인간들은 단순한 오염물질이 아니라 수십 년간 정당화되었던 대규모 다목적댐 건설 중심의 수자원정책과 국가 주도의 하향적 추진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저항을 유발한 인간들의 ‘동료(comrade)’로 보아야 할 것으로 해석했다(Hwang, 2021: 642).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은 그림 1에서 B의 1~2를 가리킨다. 그런데 인간 너머의 국가론은 비인간의 행위성이 도드라지고, 그러한 비인간과 정동적 관계(affective relationship)를 맺은 인간들이 사회세력으로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비례하여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위협, 착취가 줄어드는 상황만을 가정하지 않는다. 그림 1에서 A의 1~2는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로서 축적전략에 조응하면서 비인간을 자원으로 전유하고(A의 1), 심지어 인간과 비인간 간에 맺어진 (비인간에 대한 위협, 착취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예상한) 정동적 관계를 활용하여 축적을 도모하는 상황(코끼리 트랙킹, 악어쇼 등)까지도 열려 있는 것이다(A의 2).
이상, 그림 1에서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을 넘어서고자 제시된 다양한 경로들은 아직 추상적이며,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끝으로 김준수 등(2022)은 Hwang(2021)이 제시한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비평하면서 이론적 발전방향을 제시했는데, 아래서는 핵심 내용을 축약하여 논한다.
먼저, 인류학자 이강원은 그림 1을 구성하는 축적전략과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이원적 구조가 저자가 비판한 경제중심주의로 돌아갈 소지가 있음을 경계한다(김준수 등, 2022: 111). Hwang(2021: 645, 647)이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하여 새로운 토대 위에서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제시하지 않고, 인간중심주의가 투영된 제솝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을 수정하는 방식을 취한 이유는 현실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행위성이 비인간의 그것보다 여전히 압도적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지리학자 최명애는 축적이라는 경제적 목적 외에도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자연을 관리, 통제한다면서 생명안보(biosecurity)를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김준수 등, 2022: 113). 팬데믹, 기후변화, 재해재난이 심화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생명안보는 이강원이 지적한 국가-자연의 이원론적 구조를 다변화할 새로운 요소로 적극 고려될 수 있다. 끝으로 사회학자 박지훈은 Hwang(2021)이 제솝의 전략관계적 접근을 정치이론의 영역에서만 다뤘는데, 그는 본래 전략관계적 접근은 국가뿐만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사회이론에서 시작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인간 너머의 시각에서 사회구조와 행위성을 검토하고서 국가이론과 연결하는 이론작업을 제언한다(김준수 등, 2022: 114; 박지훈, 2024). 이상의 제언을 수렴한다면, 그림 1은 보다 입체적으로 구조화된 도식으로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4. 평가 3: 국가의 해석을 둘러싼 오독과 몇 가지 조정 제언
지금까지 2장과 3장에서 시도한 평가들은 국가-자연 연구의 전반적 경향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면, 마지막 4장은 앞으로의 국가-자연 연구의 생산적 전개를 위한 몇 가지 지점을 간단히 논한다. 첫째, 국가의 해석을 둘러싼 오독, 둘째, 비인간의 의인화, 희생양 프레임에 대한 경계, 셋째, 황진태・박배균(2013)의 초기 문제의식의 재환기(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맥락성)이다.
첫째, 일각에서는 초기 국가-자연 연구들이 국가를 단일한 행위자로 바라보는 것으로 비평한다. 예컨대, 박서현(Park, 2022)은 황진태・박배균(2013), Hwang(2015)이 “자연을 담론적, 물질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하고 단일한 주체”(Park, 2022: 119)로 국가를 묘사했다고 보았다.20) 본 논문에서 재차 강조했듯이, 제솝의 전략관계적 접근은 국가를 단일한 행위자로 보지 않고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다양한 행위자들 간의 갈등, 경합, 타협의 장으로 접근하며, 그러한 상호작용의 결과로써 국가정책이 선택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황진태・박배균(2013), Hwang(2015)은 제솝의 전략관계적 접근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나아가 황진태・박배균(2013)은 국가-자연 개념을 정초(定礎)한 Whitehead et al.(2007)이 국가-자연 이외에 다른 지리적 스케일에서도 자연은 생산될 수 있으며(즉, 지역-자연, 도시-자연, 글로벌 자연 등), 이처럼 각축을 벌이는 사회세력들이 생산한 다른 스케일의 자연들과의 역학관계와 연계하여 국가-자연을 인식할 것을 환기했다(황진태・박배균, 2013: 360). 다시 말해, 이 연구들은 국가-자연의 지배적 위상은 필연적이지 않으며, 상이한 스케일에 위치한 행위자들과 그들이 각기 추구하는 다른 스케일에서 생산된 자연들과의 갈등, 경합, 긴장 구도를 인지하는 다중스케일적 인식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행연구의 사례분석도 정부 부처 간 갈등(대표적으로 상공부 vs. 건설부)과 함께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엔지니어, 한국 국회의원 등의 여러 스케일 상의 행위자들이 연루되었음을 포착했다(Hwang, 2015: 1932-1933).
박서현의 비평과 유사하지만, 초기 국가-자연 연구가 아닌 인간 너머의 국가론에 초점을 둔 이강원의 비평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는 Hwang(2021)이 제시한 “인간 너머 국가 이론은 국가를 한 덩어리로 보고 있는 거시적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김준수 등, 2022: 112)고 평했다. 인간 너머의 시각을 접목하기 이전에 앞서 필자는 인간 중심적 국가-자연 연구가 국가를 단일하게 보지 않고, 사회세력들의 갈등, 경합, 타협의 장으로 보는 전략관계적 접근을 차용했음을 강조하여 박서현의 평가를 반박했다. 따라서 ‘국가를 한 덩어리로 보고 있는 거시적 이론’으로 전략관계적 접근을 규정하는 이강원의 비평 또한 섬세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강원의 비평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Hwang (2021)이 인간중심주의에 기반한 전략관계적 접근을 수정하여 제시한 인간 너머의 국가론으로는 ‘인간 vs. 인간’, ‘인간 vs 비인간’, ‘인간 + 비인간 vs. 인간 + 비인간’과 같은 “서로 다른 인간 혹은 비인간들을 대변”(김준수 등, 2022: 112)하는 상황을 포함하여 인간 너머의 다채로운 역학관계를 밝히는 데 근본적 제약이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황진태가 고안한 그림 1의 B의 1~2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비인간의 등장과 비인간을 대변하려는 인간들의 사회세력화 가능성이 포함되었음에도 “메기와 지진의 연합”(이강원, 2022: 14)21)을 포착하는 고감도의 안테나를 갖고 있는 이강원에게는 전략관계적 접근의 ‘수정’조차 인간중심주의에 갇혀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인간 중심적 이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인간 너머의 국가이론화를 주문한 것으로 읽힌다. 앞으로 본문에서 확인한 오독과 오해에 대해 연구자 간의 상호이해가 형성된다면, 미래의 논의 방향은 전략관계적, 다중스케일적, 인간 너머의 국가이론을 설계하기 위한 집합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22)
둘째, 비인간의 의인화, 희생양 프레임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다. 지난 12년의 국가-자연 연구성과를 검토하면서 필자는 자연의 사회적 구성론과 같은 인간 중심적 정치생태학 이론(황진태・박배균, 2013: 353)에 기반한 국가-자연 연구를 멈추고, 다소 과감할 수 있지만, 인간 너머의 국가-자연 연구로 나아갈 것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3장을 국가-자연과 인간 너머의 마주침에 할애한 점도 아직 인간 너머의 국가-자연 연구 논문이 편수는 적지만, 인문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산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과 인류가 기후변화, 재해재난의 존재론적 변화에 직면한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인간 너머’에 대해 이론적으로 지나치게 집중함에 따라 경험적 분석을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환기하는 것도 필요하다(황진태・박양범, 2024: 240-241). 여기서는 비인간의 의인화와 비인간을 희생양 프레임에 가두는 경향을 지적한다.
∙ 비인간의 의인화(anthropomorphism): 일본의 만화영화 『고양이의 보은』(2002년 작)에 나오는 ‘말하는 고양이’와 같은 의인화는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빗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연구자들은 말하는 고양이를 주장하지 않지만, 필자는 관련 연구자들의 논문, 토론, 심사 등에 참여하면서 비인간 행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한 인간 너머의 지리학 연구가 ‘인간화된 인간 너머의 지리학’으로 역변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생겼다. 인류학자 안나 칭(Anna Tsing)이 ‘알아차리기의 기예(art of noticing)’라는 용어를 제시한 것은 비인간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주문한 것이다(Tsing, 2015). 최명애가 지적했듯이, 앞서 Hwang(2021)이 제시한 인간 너머의 국가론만 하더라도 본질주의적 특성을 탐색하는 정치경제학과 비본질주의적 경향의 인간 너머의 지리학이 인식론적으로 정면충돌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김준수 등, 2022: 113; 최명애, 2020). 이러한 충돌이 타협될 수 있을지는 향후 연구과제로 남겨졌지만, 비인간의 의인화 경향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인간 행위성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인간 세계의 권력관계가 비인간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알아차리기의 기예가 필요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들이 정치경제학과 인간 너머의 지리학 간의 인식론적 마찰을 안고 간다면, 그들의 분석에서 비인간 행위성의 좌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 나름의 적절한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비인간을 희생양 프레임에 가두기23): 말하는 고양이의 비유처럼 비인간은 선한 존재이고, 그들이 식민주의, 신자유주의, 발전주의 국가에 의한 희생양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사회구조에 ‘영합’하는 측면도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최명애(2020)는 제주 돌고래 생태관광 사례를 연구하면서 돌고래의 행위성(가령, 돌고래는 생태관광 선박의 존재를 인지하고 선박 주변을 맴돌거나 수면 위를 뛰어올라 물보라를 일으킴)이 생태관광의 정동정치(affective politics)와 결합하는 지점을 포착했다. 이 연구는 ‘인간 지배와 비인간 피지배’의 이분법으로 수렴되지 않는 인간과 비인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결국, 돌고래의 외모로부터 발생하는 ‘귀여운 카리스마’를 확인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돌고래의 다양한 행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앞서 비인간의 의인화를 피하기 위해 강조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식민주의, 신자유주의, 발전주의 등)의 필요성을 재확인한다.
이러한 인간 너머의 지리학 연구의 성찰은 세대와 상관없이 필자를 포함한 관련 연구자 모두에게 향한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2000년대 이후부터 전 사회적으로 사회・환경적 가치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비인간 동물의 권리, 비인간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필자는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인간 너머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세대론적 차별성을 인지한다(김어진, 2018; 김지혜, 2023). 최근 초중등 교육과정도 인간 너머의 지리학적 시각을 적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래세대는 현재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적 공감대를 더욱 확대할 것이다(김선희・김혜진, 2023).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신진연구자들이 인간 너머의 지리학에 관심이 높다는 소식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그들의 학술활동(발표, 심사, 토론 등)에서 비인간에 대한 의인화, 희생양 프레임을 종종 목격한다는 점에서 필자가 갖고 있는 우려를 신진연구자들도 함께 고민했으면 바람이다.24)
셋째, 국가-자연 연구에서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25) 국내 학계에 국가-자연 논의를 처음 소개하고, 우리 상황에 맞게 맥락화를 시도한 황진태・박배균(2013)은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라는 역사적, 공간적, 제도적, 문화적 맥락과의 연계 속에서 국가-자연 연구가 필요하며, 유사한 영향을 받았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한국의 국가-자연의 규명이 필요함을 명시했었다. 개별 국가, 지역을 넘어서 작동하는 동아시아 차원의 맥락을 간과하고 사례연구를 할 경우에 사례의 특수성이 강조되면서 2장 서두에서 지칭한 지역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서 살핀 싱가포르의 국가-자연 연구(정예슬・이영민, 2024)는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군에 속하는 싱가포르를 분석하면서 국가의 역학관계보다는 리콴유라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분석의 소실점으로 위치시켰다. 발전주의 국가 한국을 이해하는 데에 ‘한국의 리콴유’인 박정희가 중요하다. 그러나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독립된 핀(pin)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팎의 다양한 사회세력들과 그들이 위치한 공간에 착근되어 있다(황진태・박배균, 2014: 11-12).26) 즉, ‘한국 = 박정희’, ‘싱가포르 = 리콴유’와 같은 특정 지도자로 환원하여 일국가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지역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정예슬・이영민(2024)과 같은 해에 싱가포르 정원도시를 주제로 발표된 조경학 연구(조담빈・배정한, 2024)에서는 리콴유의 역할도 살피지만, 시대의 변화(리콴유가 의도한 국가만들기 목적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환경담론의 부상, 해외관광객 유치의 중요성 등)에 조응하여 정부 부처와 관료들의 역동성도 주목하였다. Usher(2019)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물 공급을 의존하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의 부침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를 위하여 담수화 비중을 높이는 데 필요한 역삼투압 기술 확보를 위해 국가 관료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연계되는 기술 외교(techno-diplomacy)를 살피는데, 이러한 기술 외교의 과정이 싱가포르의 주권 확보, 국가 만들기와 긴밀히 연관되었음을 밝혔다. 즉, 온전히 리콴유로만 환원되지 않는 ‘발전주의 국가 싱가포르’의 안팎에 다양한 역학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정예슬・이영민(2024)의 연구는 싱가포르 국가-자연 연구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로는 시야를 넓혀 사회적 관계로서 싱가포르 국가의 역동성을 살피는 것이 요구된다.
5. 결론: 동아시아 차원의 인간 너머의 국가-자연 연구를 향하여
12년 전 황진태・박배균(2013: 360-361)의 결론에서는 자신들의 연구 의의로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지난 12년 동안 지리학을 중심으로 한국학 연구자들의 국가-자연 연구를 통하여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시기의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정치・경제적 민주화, 신자유주의와 그 이후까지 격동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자연들이 국가와 결합/분리하는 과정을 풍부하게 살핌으로써 황진태・박배균(2013)이 기대했던 후속 연구들은 일정 부분 수행되었다고 자평할 수 있다. 비록 표 1에 빈칸이 남겨졌지만, 국가-자연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수고 덕분에 상당 부분의 빈칸들이 채워지는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반 정도 채워진 물잔에서 학문발전의 낙관을 전망한다.
무엇보다도 초창기 국가-자연 연구에서 고려하지 못했던 인간 너머의 지리학적 시각이 국가-자연 연구에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후속 연구를 통해 그림 1의 투박한 인간 너머의 국가이론은 보다 입체적인 분석틀과 정밀한 이론적 논의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 너머의 국가-자연을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감응 수준이 높은 신진연구자들은 비인간 예외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는 섬세하고 예민한 연구역량을 갖춰야 하며,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을 자신의 연구지역으로 삼아 동아시아 차원의 인간 너머의 국가-자연 연구를 활발히 전개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필자를 포함한 ‘국가-자연 1.0’ 연구자들도 그들과 보폭을 맞추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