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28 February 2022. 117-118
https://doi.org/10.22776/kgs.2022.57.1.117


MAIN

‘기후의 힘’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소셜미디어의 한 게시물이었다. 저자와 필자는 교수와 대학원생 신분으로 대화한 적이 있지만, 세부 전공이 서로 달라서 학문적으로는 깊이 있게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소셜미디어에서 저자의 ‘기후의 힘’ 출간 소식을 알렸을 때, “올 것이 왔구나!”하는 것을 직감하고 곧바로 책을 주문했다. 한 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 밑줄을 쳐가면서 며칠에 걸쳐서 읽었다.

완독 후,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꼭 써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저자의 학문적 업적은 이 좁은 지면에서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지만, 필자는 지리학자가 기후 문제와 인류 역사의 관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균・쇠》는 지리학자가 이렇게 흥미로운 서적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정작 지리학자들은 ‘환경결정론’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이 같은 흥행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유발 하라리의《사피엔스》와 같은 책을 보면서 지리학계에도 인류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책을 기다렸는데, 한국에서 기후와 인류사를 다룬 책이 나왔다니 반가웠다.

이 책은 인류 역사와 기후와의 관계를 통시적으로 다룬다.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 3부까지는 인류 역사와 기후와의 관계가 시간의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의 공식적 첫 문장은 공룡의 멸종원인을 설명하면서 시작하는데, 이 문장은 이 책이 앞으로 공룡 멸종 이후부터 시작된 인류 출현을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방향을 짚어준다. 저자는 곧바로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냈다. 처음부터 인류 조상의 학명이 바로 등장하는 바람에, 독자들이 이 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도 잠시, 저자는 학문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인류는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을까?(21), 직립보행은 뇌의 크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23), 한반도에서 농경은 어떻게 전파되었을까?(33), 아프리카 들소가 멸종 위기를 극복한 과정(132) 등 흥미롭고 중요한 의문을 툭툭 던져주었다. 최신 학계에서 논의된 정보를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은 부록에 있는 두꺼운 참고문헌을 모두 읽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한 최신 연구의 동향을 제법 접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프록시이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 프록시란 기후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말한다. 빙하, 석순, 나무의 나이테, 꽃가루, 호수의 퇴적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에 따르면, 제주도의 하논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호수 퇴적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하논 이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호수 퇴적물은 없을까 궁금해진다. 한편, 고기후 복원에 결정적 단서를 가지고 있는 하논에 야구장을 만들 계획이 세워진 적이 있었다고 하니, 그 계획이 실행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으로 여겨졌다.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이 무한한 연구 가치를 가진 프록시를 함부로 없애지는 않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 가설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기후변화와 송국리 문화의 전파과정에 대한 가설이다. 송국리는 부여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벼농사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인데, 전국적으로 유사한 유적이 발견되지만, 2500년전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2800년전(2.8ka라고 표기한다) 급격한 기후악화의 시기가 있었는데, 송국리 문화는 기후 악화로 인하여 일부는 일본으로 이주했을 것이며, 이 때 벼농사가 일본에 전해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설명이 옳다면, 송국리 문화인의 이주는 기후 변화로 인한 이주, 그로 인한 문화의 분화 및 벼농사 전파의 획기적 사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고대 문화인 야요이 문화는 통상 BC 3세기경, 즉 2300년 전으로 보는데(현재 AD 2022년이므로 BC 3세기면 약 2천3백년 전), 최근 일부 학자들은 이보다 좀 더 일찍 야요이 문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인해서 벼농사 문명을 가지고 조금 더 따뜻한 일본의 교토지방에 정착하였고, 이 이주가 야요이 문화의 출발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233). 요컨대, 송국리문화가 약 2800년 전, 기후변화로 일본으로 이주해 벼농사를 전파하고 일본 유전자 80%정도를 차지하는 야요이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한국인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벼농사를 전수해주었다는 주장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송국리 문화인들이 기후변화로 인하여 이주하였고, 그 결과 벼농사를 기반으로 하는 야요이 문화가 생겨났다는 가설은 진지하고 추후 연구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러 논거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만, 송국리 문화인의 기후변화 이주설에 스모킹건이 될 만한 사료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생겨난다.

이어서, 저자와 함께 흥미롭게 기후 여행을 하다 보면 4장에서 기후변화와 미래를 만나게 된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인간의 활동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주장들도 친절하게 소개한다(302). 송국리 문화인들처럼 기후변화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과감한 대응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주장한다.

기후변화와 인간의 역사의 관계는 언어가 아닌 사료와 프록시로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는 제법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과거 한반도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어 풍족한 지역이었고, 농사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는데(33), 과거 바다는 그렇게 풍족함의 조건은 아니었을 수 있다. 한반도 구석기 문화는 바다가 아니라 내부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의 주장이 ‘환경결정론’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조심성을 가지고 읽어줄 것을 당부한다. 이런 문장은 학자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며, 독자들을 쉽게 현혹시키기 보다는 학자로서 독자의 섣부른 추론을 막으려는 마음이 느껴져서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기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전 세계의 프록시를 면밀히 검토한 학자들의 노력에 빚지고 있다. 또한, 일반 독자들이 일기 쉽게 공들여 저술한 저자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고기후와 인간 역사라는 흥미롭고 어려운 주제에 대해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고기후와 초기 인류를 상상하면서, 비판적 독서와 질문으로 이 책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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