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국내 지리학계의 국가 연구: 자본주의 발전국가 중심의 비판적 국가 연구
3. 사회과학에서의 국가 개념의 확장: ‘국가-인간’부터 어셈블리지 국가까지
1) ‘국가-인간 모형’과 하나의 개체로서의 국가 자율성 및 독립성 문제
2) 보다 더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를 향하여: 푸코부터 네트워크, 어셈블리지 국가까지
4.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국가 아카이브 연구의 방법론
1) 국가 연구에서의 인터뷰, 참여관찰, 그리고 국가 아카이브 연구
2) 어떤 아카이브 자료를 찾아야 하는가? 국가 아카이브 연구의 사례
3) 국가 아카이브 연구 실제: 정보 탐색부터 획득까지의 구체적인 절차와 주의할 점
5. 결론
1. 서론
국가는 지리학을 포함한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서 오랜 연구 주제였다. 국가에 대한 논의는 근대 국가의 성립에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했으며, 근대 국가의 발전은 다시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국가와 사회과학의 이 밀접한 관계는 오늘날 여러 측면에서 비판받기도 했지만(예를 들어, 방법론적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 이러한 비판을 발판으로 국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기도 했다.
반면, 국내 지리학계에서는 국가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많지는 않았다. 특히 국가 자체가 무엇인지, 국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국가가 어떤 특징을 갖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다루는 ‘국가론’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는 주권, 영토(또는 영역), 보더, 권력의 문제 등과 더불어 (정치)지리학 및 지정학의 핵심 연구 주제이면서 국가를 간접적으로 다루는 다른 지리학 분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물론, 국내 지리학계에서도 일부 연구자들이 국가에 대한 정교한 논의를 발전시켜왔다(예를 들어, 김준수, 2018; 김준수 등, 2022; 박배균, 2012; 황진태, 2018a, 2018b; 황진태・박배균, 2013). 이들은 방법론적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국가 스케일에 집중되어 있는 기존의 연구 경향을 지적하면서, 국가를 넘어서 국제 및 지역 스케일과의 복잡한 관계를 고려하는 다중스케일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은 공간적으로 수직적인 측면에서 국가를 다양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국가 연구의 ‘수직적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이는 국가론에 대한 지리학의 중요한 기여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연구의 수직적 확장과 달리 ’수평적 확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와 사회적 영역(또는 비국가 영역) 사이의 뒤엉킴, 경계 흐려짐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비교적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또한, 기존의 연구들은 암묵적으로 국가를 자본주의 발전국가와 동일한 것으로 가정하는 경향을 갖기도 한다. 본 논문은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발전시켜 국가 연구를 보다 다양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다음의 두 가지 목표를 갖는다.
첫째, 국가의 ‘수평적 확장’에 대한 지리학 및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와 이론적 배경을 검토하여 국가에 대한 논의를 확장한다. 이 접근은 국가에 대한 비교적 최근의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 중 하나로(그러한 연구의 일부분으로서, Biebricher, 2013; Ferguson and Gupta, 2002; Foucault, 2007; Gupta, 1995; Jenssen and von Eggers, 2020; Jessop, 2011; Lemke, 2007; Mitchell, 1991; Pain, 2010; Painter, 2006; Passoth and Rowland. 2010; Thelen et al., 2018), 국가를 사회라는 더 넓은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특정 시점과 장소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실천, 행위자, 물질 등의 결과물로 보는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관점을 취한다. 또한, 이 접근은 국가를 자본주의 발전국가와 동일시하는 기존 다중스케일적 접근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국가의 수평적 확장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국가 아카이브 연구를 방법론적 측면에서 논한다. 이론적 확장은 연구 방법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하며, 특히 국내 지리학계에서 국가에 대한 이론과 연구 방법을 함께 논하는 방법론적 연구는 많지 않다. 본 연구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서 아카이브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을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국가 아카이브 연구가 다른 연구 방법들에 비해 가지는 장점과 유의점, 그리고 국가를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과의 접점을 설명한다. 방법론 논의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정보공개청구와 국가기록원 제도를 통해 아카이브 자료를 실제로 획득하는 세부적인 과정과 요령을 서술한다.
2. 국내 지리학계의 국가 연구: 자본주의 발전국가 중심의 비판적 국가 연구
일찍이 고태경(1994)이 자본주의 사회의 공간 구조와 불균형 발전 등을 설명하면서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논한 바 있지만, 국내 지리학계에서 국가의 개념 자체를 보다 일관된 흐름으로 논한 것은 자본주의 발전국가 연구를 지리학의 관점에서 확장한 비판적 국가 연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들은 국가에 대한 보다 복합적인 이해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두 가지 기여가 중요하다.
첫째, 비판적 국가 연구자들은 기존의 발전주의 국가 연구에서 자주 나타나는 방법론적 국가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서 다중스케일적 접근을 통해 국가를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예를 들어, 박배균(2012)은 한국 국가를 설명하는 모형으로서의 자본주의 발전국가론에서 나타나는 방법론적 국가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기존 연구들이 국민국가의 국경과 영토로 한정되는 영역에서의 논의에 집중하는 “영역적 함정에 깊이 빠졌다”(p. 53)고 지적한다. 그는 이 ‘함정’으로 인해 기존 연구들이 동아시아, 환태평양과 같은 넓은 스케일이나 도시, 지역 등의 좁은 스케일에서의 지리정치 및 경제적 과정을 적절히 포착하지 못하고, 이는 국가 스케일의 행위자와 그 외 다른 스케일의 행위자들 간의 역동적인 관계와 그로 인한 공간적 불균등성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p. 53-6). 따라서, 그는 그가 ‘다중스케일의 네트워크적 영역성’이라고 불렀던 역동적인 사회-공간 개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이 개념은 사회-공간이 장소, 영역, 네트워크, 스케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Jessop et al.(2008)의 논의에 기반하는 것으로서, 이에 따르면 다양한 스케일에서의 사회-공간적인 과정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네트워크는 특정 장소를 형성하는 동시에 그것에 의존한다. 또한, 이 과정은 다양한 지리적 스케일에서 만들어지며, 몇몇 장소는 영역화 정치를 통해 특정한 영역(예: 국민 국가의 영토, 지역의 영역 등)을 형성하며 보다 뚜렷한 스케일로 거듭나기도 한다.
비슷하게, Hwang(2015a)은 Agnew(1994)의 ‘영역적 함정(territorial trap)’ 개념을 보다 깊이 논함으로써 발전주의 국가 연구에서 자주 나타나는 “영토적으로 갇힌 경제적 상상”(p. 558)을 넘어서고 여러 스케일을 넘나드는 다양한 행위자들과 요소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인식론으로서 다중스케일적 접근법을 강조한다. Hwang의 연구는 국가에 대한 인식론뿐 아니라 방법론까지 강조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는 발전주의 국가 연구가 국가 단위의 자료(예: 국가 통계자료, 중요 국가 아카이브 문서, 엘리트 정치인들의 담화문 및 발언 등)에 의해 뒷받침되었고 반대로 이러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왔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Hwang은 국가 외의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지리적인) 데이터를 분석하여 발전주의 국가의 다중스케일적인 역동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둘째, 비판적 국가 연구자들은 발전주의 국가론에서 암묵적으로 가정해 온 국가와 자연 사이의 이분법을 극복할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황진태・박배균(2013)은 자본주의 발전국가론이 국가와 사회를 별개로 보는 오랜 베버주의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같은 논리로 국가를 자연과 분리된 것으로 바라본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법으로 인해 자본주의 발전국가가 자연을 활용하는 방식과 자연에 의해서 교란되는 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연을 배제한 기존의 국가 개념으로는 댐 건설이나 4대강 사업과 같이 경제발전 및 축적을 위한 국가의 자연에 대한 깊은 개입과 활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스케일에서의 갈등과 정치는 자본주의 발전국가의 중요한 정책 프로젝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1) 따라서, 황진태와 박배균은 국가와 자연을 연결하는 논의(예: Whitehead et al., 2007)를 바탕으로, 국가가 자연을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관점을 받아들임으로써 국가와 자연의 이분법적 구도 대신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상정하는 ‘국가-자연’의 틀을 제안한다, 나아가 그들은 이 틀을 통해 자본주의 발전국가의 축적전략과 이를 정당화하는 헤게모니 프로젝트(Bob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론, Jessop, 1990)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은 후속 연구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예를 들어, Hwang(2021)은 ‘국가-자연’ 연결(황진태, 2016; 2018a; 2018b)을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이 연구에서 그와 동료 연구자들이 핵심적인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던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론 역시 인간 중심적 접근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기존 연구에서 비인간 행위자의 중요한 행위력과 힘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고 본다. 따라서 Hwang은 비인간지리학(또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의 논의를 바탕으로 전략관계적 국가론에서의 축적전략과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사이의 종속적 관계(후자가 전자에 종속)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비인간지리학의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축적전략이 특정한 헤게모니 프로젝트를 동원하는 것 뿐 아니라 반대로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축적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 드러나며, 여기에서 비인간 행위자가 갖는 중요성 역시 포착될 수 있다. 나아가 김준수 등(2022)은 Hwang의 이 연구에 대해 여러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건설적인 비평을 제시하며, 국가와 자연 사이에 놓인 경계를 보다 부드럽고 구멍 뚫린 것으로 개념화하는 등 인간 너머 국가론의 이론적 정착과 발전에 기여했다.
이 두 갈래의 연구는 국가를 관계적이고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이들은 국가를 ‘비국가’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그 힘을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별개의 정치적 실체로 보는 전통적 국가론(3장에서 논의)과 거리를 둔다. 대신, 다중스케일적 접근을 강조함으로써 이들은 특정한 국가 현상이 국가 스케일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케일에서의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점을 포착해낸다. 또한, 국가-자연 복합을 강조하는 연구들은 국가가 비국가, 즉 자연과 분리되어 있다는 가정을 비판하며, 국가 분석에 자연과의 상호작용, 자연에 의한 교란과 같은 변수를 포함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러한 관계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은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이 연구들이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전략관계적 국가론은 자본주의 국가를 하나의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국가 내외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이자, 그러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장(場)으로 본다는 점에서 국가와 비국가 사이의 복잡한 역동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틀을 제공해왔다(Jessop, 1990).
본 논문은 이러한 비판적 국가 연구의 중요한 통찰에 동의하면서도 조금 다른 이론적 경로를 통해 국가를 다룸으로써 국내 지리학계의 국가 연구에 기여하고자 한다. 첫째, 본 논문은 국가를 더욱 관계적이고 해체된 것으로 보며, 비판적 국가 연구에서 가정하는 자본주의 발전국가로서의 국가 모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기존 연구들은 다중스케일적 접근과 인간 너머 행위자를 강조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 특히 한국의 맥락에서는 자본주의 발전국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 연구들은 국가와 다양한 행위자들(인간 너머 행위자 포함)의 상이한 영향력, 이해관계,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복합적으로 다루지만, 논의의 최종 단계에서 국가는 결국 자본 축적과 경제발전을 궁극적이고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발전국가로 귀결되곤 한다.
그러나 국가는 그 외에도 국제정치 관계 관리, 국민의 안전 보장,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의 발전, 복지 체제의 구축, 기후변화 대응, 문화의 발전, 전쟁 수행, 담론의 개발과 유행, 심지어는 주요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허영심이나 야심 추구와 같이 다양한 기능, 역할, 필요성 등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국가는 비판적 국가 연구자들이 상정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행위자, 그들의 이해관계, 담론, 물질 등이 충돌하는 장이 된다. 또한, 이 연구들이 최근에는 인간 너머의 국가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국가를 자본주의 발전국가로 국한시키는 것은 ‘인간 너머’와 ‘국가’ 사이의 개념적인 충돌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상 현상, 지질적 활동, 해양 현상, 기후 변화, 동식물, 바이러스의 이동 및 활동과 같이 인간 너머 지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 발전국가에 포섭되거나 그것을 방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본 축적 및 경제발전과 같은 국가와는 무관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자본주의적 발전국가 이상의 존재로 정의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국가를 보다 더 관계적이고 복합적인 것으로서 다양한 특징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본주의적 발전국가를 그 하위의 한 유형에 위치시킬 필요성을 암시한다.
둘째, 첫 번째 지점과 관련된 것으로서, 기존 연구들은 국가 외의 다양한 공간적 스케일에서의 역동성(국가의 수직적 확장)과 국가-자연 관계를 주목할 필요성은 적절하게 지적했지만, 국가와 사회 간의 상호작용과 뒤엉킴(국가의 수평적 확장)(예: Mitchell, 1991; Painter, 2006; Thelen et al., 2018)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다중스케일적 접근은 국가와 사회 간의 상호작용과 관련되지만, 이는 여전히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수직적이고 위계적으로 구분하며, 이로 인해 국가와 지역, 국가와 사회 사이의 잘못된 수직적 구도와 이미지를 공고하게 만드는 문제(Ferguson and Gupta, 2002)를 안고 있다. 또한, 스케일 개념은 국가(그리고 다른 스케일을)를 특정하게 구획된 하나의 존재로 가정하는 문제점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를 사회 위에 존재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 바라보는 인식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지리학자들과 여러 사회과학자들은 국가를 사회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국가가 사회와 마주하는 다양한 형태의 구체적 지점과 양상은 점점 더 스케일에 대한 논의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2) 예를 들어, 동사무소, 파출소, 지방 법원과 같은 낮은 스케일(또는 레벨)에서 민원인, 일반 시민 및 외국인, 행정 업무 대리인 등과 국가가 얽히는 모습뿐만 아니라, 국회, 중앙 정부 기관, 대법원과 같은 높은 스케일(또는 레벨)에서도 민원인, 일반 시민 및 외국인, 행정 업무 대리인, 기자, 증인, 참관인, 행정 업무 대리인, 민간 기업인, 이민자 및 난민, 시민 단체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이 국가 행위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엮이면서 서로의 영역을 넘나든다. 이뿐만 아니라, 법적, 제도적 장치, 물질(예: 신분증이나 행정 서류 등), 담론과 같이 스케일을 특정하기 어려운 국가 장치들도 국가와 사회가 마주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이러한 행위자, 제도, 물질 사이에는 뚜렷한 위아래의 구분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 힘의 방향이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다양성과 역동성은 다시 국가를 특정한 하나의 성격으로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고, 국가를 보다 복합적이고 해체적인 존재로 이해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3. 사회과학에서의 국가 개념의 확장: ‘국가-인간’부터 어셈블리지 국가까지
이번 장에서는 국가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하여 국가의 정의와 이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3) 살펴본다. 이를 통해 앞 장에서 다룬 자본주의 발전국가 연구가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자 한다. 특히, 필자는 정치학, 인류학, 지리학, 보더 연구, (과학기술)사회학 등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시켜 온 더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 그럼으로써 국가를 둘러싼 ‘수평적’ 측면을 강조한다. 이 접근법은 국가와 권력 일반에 대한 푸코의 논의, 페미니즘, 들뢰즈와 가타리의 접근, 신물질주의(New Materialism) 등에 기반한 것으로, 자본주의 발전국가 논의가 갖는 두 가지 문제점에 의미 있는 대안을 제공한다. 또한, 이 접근은 국내 지리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이론적 흐름이라는 점에서도 다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국가-인간 모형’과 하나의 개체로서의 국가 자율성 및 독립성 문제
(근대) 국가를 개념적으로 정립한 정치철학에서 국가는 오랫동안 하나의 인간 행위자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짐이 곧 국가다’로 대표되는 절대왕정 시대의 ‘군주=주권자=국가’ 도식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하지만 아주 대표적인 예로서, 홉스에게 국가는 인간의 몸을 한 리바이어던이었고, 베버에게도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 주권의 소유자로서 주어진 영토에서 그 힘을 배타적으로 휘두르는 하나의 정치체였다. 또한, 지리학에 보다 친숙한 것으로서, 이러한 개념은 베스트팔렌 조약 체제하에서의 국제 관계와 결합하여 국가를 지구라는 거대한 보드게임 위에서 행동하는 한 명의 게임 참가자로 보는 지정학적, 정치지리학적 이해를 낳기도 했다(예: 그림 1). 국가를 하나의 행위자로 바라보는 이러한 접근은 ‘국가-인간 모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텐데, 그 직관성과 단순명료함으로 인해 학계뿐 아니라 대외정책, 언론, 대중서적, 게임, 유튜브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널리 수용되어왔다.
그러나 필자는 이 국가-인간 모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이 모형의 서로 관련된 두 가지 핵심 가정을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국가를 인간처럼 여기는 것은 국가가 근대적 인간에서 상정하듯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율적인 행위력을 갖는다고 가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국가의 자율성). 즉, 인간으로서의 국가는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그것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하나의 자율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국가는 자율적이기 때문에 사회나 자연환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간주된다(국가의 독립성). 따라서, 국가는 외부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되는 경계를 갖는 별개의 개체로 여겨진다. 본 논문에서 강조하는 더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 개념은 20세기 후반부터 지속되어 온 국가-인간 모형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이 도전의 핵심은 국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파헤치고 이에 대한 대안적 모형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Timothy Mitchell의 1991년 논문은 이러한 도전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로 볼 수 있다(Mitchell, 1991). Mitchell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정치학에서 두드러졌던 ‘국가를 되돌리는’(Evans et al., 1985) 작업의 일환으로 국가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연구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국가 자율성 개념을 비판했다. 예를 들어, Skocpol(1979)은 프랑스 국가가 상업적,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국가의 영광을 위한 ‘행동’을 반복했고, 그 누적의 결과로서 프랑스 혁명이 발생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국가 자율성(state autonomy)의 존재를 강조했다. 그러나 Mitchell은 Skocpol이 말하는 국가의 자율적인 행동은 사실 사회적인 부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국가 자율성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 외에도 Mitchell은 국가 자율성 개념을 주장하는 많은 연구에서도 국가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의 사례로 여겨지는 것들이 실제로는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Mitchell은 우리가 흔히 국가 자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국가는 “실제 구조는 아니지만 강력하고 그러한 구조가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들의 “구조적 효과(structural effect)” (Mitchell, 1991, 94)라고 주장했다.
국가 자율성의 문제는 국가 독립성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Gupta(1995)와 Ferguson and Gupta(2002)는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민족지적 접근을 통해 국가가 사회로부터 독립적이고 그 둘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다는 가정에 도전했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독립적이라는 생각에서 국가가 사회와 무관하게 별도의 독립적인 영역을 가지고, 그 위치는 사회의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Gupta와 Ferguson에 따르면, 국가 독립성 개념과 국가와 사회 사이의 위상 차이에 대한 이러한 가정은 국가와 사회 모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낳는다. 예를 들어, 국가는 사회와 분리된 높은 곳에서 법, 정책, 권력을 일방적으로 ‘아래’의 사회에 행사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이는 국가를 구조, 거대한 사건과 프로젝트, 주요 정책과 전략, 중요 인물들(Gupta, 1995), (사악한) 권력의 작동과 같은 것들과 동일시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그와 반대로 사회는 국가나 권력 작동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영역으로서, 진정한 생활과 경험, 풀뿌리, 민중과 같은 것과 동일시되어 정치적 투쟁의 중요한 근거지로 낭만화되곤 한다. 그러나 Gupta와 Ferguson은 국가와 사회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국가의 독립성 개념은 사실 상상되는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따라서 국가가 사회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라는 관념은 적절하지 않으며, 국가를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것”(Foucault, 2007, 108, 저자가 강조 추가)으로 보는 것은 국가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아니게 된다.
2) 보다 더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를 향하여: 푸코부터 네트워크, 어셈블리지 국가까지
이처럼 국가가 자율적이지도 않고 독립적인 존재도 아니라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많은 연구자들은 이 질문을 논하는 과정에서 푸코의 생각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Kalpagam, 2020). 푸코는 미시적이고 국지적인 권력의 기술, 즉 부랑자나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방식, 학교, 군대, 감옥에서의 규율을 만드는 방식, 공간적 배치, 담론의 생산과 유통 등을 분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이후 이 미시적인 기술을 국가와 권력 일반에 대한 논의로 연결하여 국가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즉, 통치성에 대한 논의,4)Foucault, 2007, 2008; Lemke, 2007; Jessop, 2007도 볼 것). 푸코의 국가와 권력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 중 하나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국가가 존재하고 그것이 이 기술들을 구사함으로써 권력이 발생하고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기술 그 자체와 그것들이 씨줄과 날줄과 같이 얽히는 과정에서 국가라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생각이다(Lemke, 2007; Mitchell, 1991; Sawyer, 2015).5) 이런 맥락에서 Mitchell에 대한 논의에서도 보았듯이, 푸코에게 국가는 단일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앙상블(또는 장치(dispositif)6))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즉, 국가의 존재를 먼저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자와 그들의 실천, 담론, 물질과 같은 것들이 작동하고, 관계를 만들고 끊기를 반복하는 과정(즉, 국가화(statification)) 또는 “사회문화적 현상”(Nettl, 1968, 565)으로 국가를 정의하는 것이다.7) 따라서, 푸코의 영향을 받은 국가 연구자들은 국가를 ‘분해된’(disaggregated) 것으로서 국가와 사회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그 분해된 다양한 요소들의 구체적인 작동이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현상을 엮어내는 지점과 과정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그중 지리학자들은 특정한 장소와 그곳에서 발생하는 역동성을 포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국가가 구성되는 지점과 과정을 포착해왔다. 정치지리학자 Joe Painter의 2006년 논문은 이 작업에 기여한 중요한 논문 중 하나다(Painter, 2006). 그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국가에 대한 푸코의 접근법 뿐 아니라 Jessop(1990). Poulantzas(1978), 과 같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도 함께 검토하면서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의 개념을 다양한 배경에서 계승했다. 하지만, Painter는 Poulantzas와 Jessop의 관계적 국가론이 다양한 힘의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종국에는 통일성(unity)을 유지하는 쪽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푸코식 국가 연구(그리고 Mitchell의 입장)에 조금 더 방점을 둔다. 따라서 그는 통일성보다 평범한(prosaic) 요소들이 국가성(stateness)를 만드는 구체적인 현장과 그 과정에 주목했고, 이것이 지리학자들이 국가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Painter는 이론적인 작업 외에도 그가 평범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들의 구체적인 사례 역시 제공해 주었다.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해도 그 자체로서 즉각적인 효과를 [자동적으로] 내는 것이 아니다. 그 법안이 실제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공무원, 시민, 경찰관, 형사, 교사, 사회 복지사, 의사 등이 실제로 행하는 여러 가지 일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게다가, 법안을 통과시키는 행위 역시도 속기사, 선출직 공무원 뿐 아니라 기자, 선거 조직원, 로비스트, 학자와 같은 사람들의 의회 내에서의 여러 가지 일상적인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다.”(p. 761, 저자가 강조 추가)
즉, 우리가 국가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법안이라는 것은 사실 의회 안팎의 여러 행위자들의 일상적인 실천의 누적이라는 것이다.8) 이는 다른 사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그는 영국의 ASBO (Anti- Social Behaviour Order)거버넌스를 사례로 그 거버넌스에 포함된 행위자들이 매우 다양하다고 지적하며(예: 사회 복지사, 법관, 경찰관, 평범한 이웃, 교사, 주택 공무원, 커뮤니티 조직, 다양한 종류의 파트너십, 자발적 봉사 단체 등), 이들이 단순히 정책의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행위자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ASBO를 다양한 행위자 뿐 아니라 여기에 동원되는 사례 보고서, 목격자 진술, 경찰의 메모, CCTV, 법정의 문서 등이 뒤엉킨 “명목상 국가인 것과 국가가 아닌 것, 실천, 행위자의 혼종”(p. 767)이라고 본다.
페미니스트 정치지리학들과 지정학자들은 Painter와는 조금 다른 경로를 밟았지만, 마찬가지로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이 국가(성)를 구성한다는 관점을 제공했다. 이들은 고전 지정학과 비판적 지정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국가-인간 모형에 기반한 국가중심적이고 엘리트 중심적인 하향식 접근 대신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적인 실천에서 국가적인 것, 국제적인 것이 재생산되는 방식”(Dowler and Sharp, 2001, 1717)을 주목할 것을 촉구해왔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구체적인 현장으로서의 몸의 중요성과 문화지리학에서 발전시켜온 물질, 감정, 정동, 육체적 경험에 대한 논의를 결합하여 평범하고 심지어는 개인적인 것이 국가(성)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밝혀왔다(Hyndman, 2004; Mountz, 2003; Mountz and Hyndman, 2006; Naylor, 2017; Pain, 2010; Sharp, 2000).9) 따라서, 페미니스트들도 앞서 살펴본 연구자들과 유사하게 국가와 사회 사이의 경계를 흐리면서 다양한 것들이 뒤엉킨다고 보고, 국가를 그 뒤엉킴 속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정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자연 환경, 기후 변화, 자연 및 사회적 재해, 동식물의 존재, 오염, 식량과 섭식과 같이 더욱 다양하고 구체적인 것들이 국가를 만들어내는 요소로 받아들여지면서 국가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왔다(예를 들어 Dalby, 2017; Dittmer, 2014, 2021; Gokariksel and Secor, 2020; Sharp, 2021).
보더(border, 또는 국경, 경계 등)를 연구하는 다양한 배경10)의 연구자들 역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국가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기여를 더해왔다. 전통적으로 보더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사람’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간주되었으며, 보더를 넘나드는 이주자와 그 흐름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국가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보더 연구자들은 이러한 관점이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보더의 작동은 다양한 행위자와 제도, 정책 등의 역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즉, 지금까지의 논의들과 비슷하게 국가의 보더가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통제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보더의 작동에 관련된 요소들이 (국가의 중요한 부분으로서의) 보더를 만들어나가고 지속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더의 작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장치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의 활동의 결과물 또는 효과로서의 하나의 느슨한 장(場)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이주 국가(migration state) 연구는 보더 및 이주 정책과 그 실천이 국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고용주, 일반 시민, 학자, 이익 단체, 인권 단체, 국제 기구, 정치인과 같이 여러 행위자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다양한 방식의 권력 작동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대표적으로 Adamson et al., 2024; Hampshire, 2013; Hollifield, 2004). 또다른 연구들은 드란다, 신물질주의 등의 논의에 기반하여, 행위자 및 국가 단위의 제도 및 정책 뿐 아니라 신분증, 가이드라인, 비자의 종류, 일상적인 행정 서류 및 절차 등의 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질과 실천이 보더의 작동을 구성하고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을 밝혀왔다(예를 들어, Bierschenk, 2019; Cabot, 2012; Eule et al., 2018). 유사한 접근에서 지리학자와 과학기술사회학자들은 인공 지능, 생체 정보 기반 탐지 시스템, CCTV, 빅데이터, 기후 및 지형, 바이러스, 동물과 같이 전통적인 보더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비인간 행위자를 포함시키면서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보더를 설명하고 있다(Amoore, 2006; Dijstelbloem and Broeders, 2015; Leese et al., 2022; Pollozek and Passoth, 2019).
논의를 여기까지 진행한다면 국가는 오늘날 사회과학의 많은 부분에서 중요한 인식론이자 존재론으로 자주 논의되는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 어셈블리지(assemblage), 장치(dispositif)와 같은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Passoth and Rowland(2010)은 국가를 행위자-네트워크로 개념화할 것을 가장 분명하게 제안한 연구 중 하나로서, 이들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국가를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것의 장점을 취하면서 동시에 국가를 행위자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제공하는 직관적인 이해의 편의성을 함께 가질 것을 주장한다. 다른 연구자들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국가 그 자체를 논하거나 국가를 넘어선 권력 작동 일반을 어셈블리지나 장치로 설명하고 있다(예를 들어, McGowran, 2024; Minca et al., 2022; Savage, 2020; Wiertz, 2020). 이 개념들이 각각 강조하는 지점과 그 지적 배경이 조금씩 다르지만(Muller, 2015), 국가를 하나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로 보기보다는 사회의 일부로서 사회의 다양한 것들과 더불어 이루어진 망(網)이나 일시적인 배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최근의 국가 연구는 국가를 “담론, 제도, 건축 형태, 규제적 결정, 법(률), 행정적 수단들, 과학적 진술, 철학적, 도덕적, 박애주의적 문제[등]”의 “말해지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Foucault, 1980, 194) 이질적인 것들이 구성하는 특정한 방식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물질, 자연환경 등도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로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전까지 잘 존재하지 않던 방식으로 결합하고 거기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살펴본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 개념들은(표 1에 정리) 자본주의 발전국가 연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측면들을 적절히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2장에서 필자는 기존의 자본주의 발전국가 연구가 기본적으로는 국가에 관계적으로 접근하지만, 최종 단계에서는 국가를 자본주의 발전국가라는 필연적인 특징을 가진 하나의 모형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국가와 사회적 영역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평적 위상관계에 대한 관심이 공간적 다중스케일에 대한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달리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국가에 대한 접근방법은 국가를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 실천, 제도, 물질 등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 관계의 양상과 상황에 따라 국가는 보다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은 국가에 국한되는 ‘거대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보다 넓은 사회의 ‘작은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국가 자체가 사회라는 넓은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표 1.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 개념에 대한 여러 접근법 요약
4.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국가 아카이브 연구의 방법론
Hwang(2015a)은 국가 연구를 위한 방법론적 논의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음을 적절히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다중스케일적 접근을 위한 연구 방법으로서 중앙정부 기관이 생산한 자료보다 다양한 스케일(특히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자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론적 탐색은 연구 방법에 대한 논의와 병행되어야 하며, 본 논문 또한 지금까지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던 이론적 접근을 제안하는 만큼, 이에 부합하는 연구 방법에 대한 논의도 함께 다루고자 한다. 필자는 국가를 보다 관계적이고 해체적으로 연구하여 국가의 수평적인 측면을 살펴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아카이브 연구를 제안하며, 특히 한국의 사례에서 정보공개청구 제도와 국가기록원 자료의 활용을 강조한다.
물론 아카이브 연구와 이 두 방법이 연구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아카이브 자체를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국가 이론과 연결한 방법론적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아카이브 연구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하여 연구에 적용하고 있으며, 방법론적 측면에서 아카이브 연구를 보다 체계적으로 논한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본 논문, 특히 이번 장의 논의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먼저 국가 아카이브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통해 이를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 개념과 연결시키고, 국가기록원과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통해 아카이브 자료를 획득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1) 국가 연구에서의 인터뷰, 참여관찰, 그리고 국가 아카이브 연구
앞 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국가를 다양한 요소들이 관계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본다면, 이를 연구하는 적절한 방법은 이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요소들과 그 과정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현장을 분석하는 것이다. 지리학자들은 현장 연구에 대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과정을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행위자들과 직접 대화하거나(인터뷰), 그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정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관찰/참여(참여관찰) 함으로써 연구자들은 국가가 구성되는 과정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지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은 여러 국가 및 민간 행위자들(예를 들어 공무원, 민간 보안 기업 관계자, 이민자나 난민, 인도주의 단체의 구성원 등)이 제도, 물질, 실천, 담론 등을 동원하여 복잡하게 구성하는 이민 거버넌스의 양상을 효과적으로 연구해왔다(예를 들어, Cabot, 2012; Hiemstra and Conlon, 2017; Mountz, 2003; Topak,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와 참여 관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하며, 아카이브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인터뷰와 참여관찰은 연구자와 피연구자11)의 특징이나 둘 사이의 권력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인터뷰와 참여관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료수집 허락을 포함한 연구자와 피연구자 사이의 신뢰 구축인데, 이는 연구자의 태도, 화술, 사교성, 인맥과 같이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뿐 아니라 외모, 젠더,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 취미, 신체적 역량, 연구자와 피연구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같이 둘 사이의 (권력)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특징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12) 이 요소들은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진입장벽이 될 수 있으며, 연구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국가 연구에서 특정한 행위자를 관찰할 때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무원, 정치인, 민간 기업 행위자들은 인터뷰에 쉽게 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13) 응하더라도 보안 및 기밀 유지 등을 이유로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14) 참여관찰은 이러한 한계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국가 기관의 공무원이나 관료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민원인, 협력 관계의 민간 행위자들과 나누는 대화나 주고받는 서류 같은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장의 승인을 필요할 수 있으며, 특정한 사회경제적 지위나 인맥을 가지지 못한 연구자의 요청은 이 단계에서 쉽게 거부당할 수 있다.
반면, 아카이브 연구는 이러한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특히 아래에서 더 논할 정보공개청구나 국가기록원을 통한 아카이브 자료 획득 과정에서는 연구자의 특성이나 연구자와 피연구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자료 수집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인터뷰나 참여관찰과 달리 연구자의 개인적,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자료의 양과 질이 거의 동일하게 확보될 수 있으며, 비교적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15)
그러나 질적 연구에서 완벽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국가 아카이브 연구에도 적용된다. 국가 아카이브 자료를 분석하는 연구자는 연구자와 피연구자 사이의 권력 관계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지만, 국가 아카이브 자체가 지닌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카이브 연구자들은 국가 아카이브가 단순히 문서를 모아둔 물리적이고 중립적인 저장고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푸코와 데리다의 영향을 받아 국가 아카이브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저장될 자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저장하는 방식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Caswell, 2016; Schwartz and Cook, 2002; Stoler, 2002). 푸코는 ‘지식-권력의 넥서스’의 개념으로 지식과 권력의 밀접한 결합을 논의한 바 있으며, 그는 아카이브를 “말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법칙”(Foucault, 2003, 145)으로 보았다. 이처럼 아카이브가 특정한 질서를 만드는 법칙이자 체계라는 점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통제가 없는 정치적인 권력은 존재하지 않”으며(Derrida, 1996, 4), 특정한 담론 체계를 만드는 것으로서의 아카이브는 근대 국가 건설의 중요한 도구이자 참여자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 식민주의 역사가들이 제국주의 (국가) 권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주장했듯이, 아카이브를 읽을 때에는 그 “결의 반대로(against the grain)”(Guha, 1999; Spivak, 1985) 읽을 필요가 있다. 즉, (제국주의) 국가의 아카이브를 읽을 때에는 식민정부가 피지배민과 소수자들의 목소리, 행위, 심지어는 존재 자체를 국가 아카이브에서 축소 및 삭제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Manoff, 2004). 하지만, 동시에 또다른 연구자들은 결의 반대로 아카이브를 읽는 방식이 “아카이브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권력”(Stoler, 2002, 101)의 윤곽을 읽어 내는 것에는 실패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음을 지적하며, 아카이브를 분석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는 권력의 배열과 작동 방식, 나아가 아카이브에 포함된 “잘못된 정보, 생략, 실수”(p. 100)등을 주목하는 ‘결을 따라(along the grain)’ 읽는 방식 역시 중요함을 강조한다(Hamilton et al., 2002; Stoler, 2002).
하지만 아카이브를 지식-권력 넥서스로 바라보는 것이 모든 국가 아카이브가 왜곡되어 있다거나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이해는 국가가 하나의 단일한 존재로서 특정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아카이브 전체를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관점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하나의 ‘권력 덩어리’로서 구조적이면서 일관된 힘을 휘두르는 국가의 이미지를 다시 부른다는 점에서 위에서 논의했던 국가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 아카이브를 다루는 연구자들은 국가 아카이브를 국가와 그 권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으로 바라보는 관계적이고 구성적인 관점을 견지하되, 아카이브 자료와 국가 권력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균형잡힌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2) 어떤 아카이브 자료를 찾아야 하는가? 국가 아카이브 연구의 사례
그렇다면 앞 장에서 논했던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를 위한 아카이브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언급했듯이 국가 아카이브 자료는 연구자들에게 완전히 생소한 것이 아니며, 연구자들은 보고서, 회의록, 정책 발표 자료, 연설문, 법령,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분석해왔다. 예를 들어, 2장에서 논했던 발전주의 국가 연구들은 아카이브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 중 하나다. Hwang(2015b), 황진태(2018b)는 발전주의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수자원의 활용, 여성의 몸에 대한 통치 전략을 연구함에 있어서 우표, 포스터와 같은 시각적 아카이브 자료를 분석했다. 보다 중요하게 황진태・박배균(2013), Hwang (2015a)은 국가 연구에서의 다중 스케일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관련 기록물, 중앙정부 문서와 같이 국가 스케일에서의 행위자들을 보여주는 문서 뿐 아니라 지역 유지, 지역 정치인과 같이 하위 스케일에서(또는 다중 스케일에 걸쳐서) 활동하는 행위자들에 대한 아카이브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분명히 중요하고 본 논문에서 강조하는 자료들과 겹치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간적 다중 스케일을 강조하는 이 연구들은 다양한 스케일의 엘리트 정치 및 경제인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예를 들어, 지역 정치인이나 기업인들). 이와 달리, 본 논문은 공간적 스케일과는 별개로 국가와 비국가를 넘나들면서 그 경계를 흐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사회의 일부분으로 위치시키는 다양한 행위자, 그들의 실천과 물질들의 복합적인 영향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3장에서 논의한 Painter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의 작업처럼 국가의 정책 프로젝트, 주민센터, 중앙 (행정) 기관, 국가의 지방 기관, 유무형의 여러 위치에서 작동하는 보더, 동네 펍과 같이 공간적 스케일과 별개의 다양한 현장이 중요하며, 국가가 구체적인 것들로부터 구성된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다루어야 할 국가 아카이브 자료는 이 현장에서의 역동을 보여주는 것들이 된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는 공문, 이메일(국가 내외부 행위자들과 주고받은 것), 회의록, 녹취록, 보고자료, 제안서, 지시사항, 기획안, 의견서, 질의 및 답변서, 민원인이 작성한 신청서나 탄원서, 각종 법령과 가이드라인, 계약서, 기타 문서, 사진 및 영상, 메타 데이터 등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더와 이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국가 아카이브 자료를 사용해서 국가와 이민자, 그 외의 민간 행위자(국제기구 관료, 자원 봉사자, 언론인, 브로커, 민간 기업 및 이민 산업 종사자 등)가 얽히는 현장과 방식을 연구해왔다. 이 연구들은 대개 인터뷰나 참여관찰과 같이 질적 연구자들이 보다 많이 사용해온 연구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카이브 자료 역시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자들은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서 인터뷰나 참여관찰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 사이의 일상적 실천과 상호작용을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흐려지는 국가와 사회 사이의 경계와 분해되고 해체된 것으로서의 국가를 이해하고 있다(Siener and Varsanyi, 2022, The Professional Geographer 74권 3호도 볼 것). Hughes and Martin (2022)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의 아카이브 문서를 분석함으로써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폭력이 추상적이고 담론적인 제도, 법령보다 교도관과 같은 구금시설의 (준)관료들의 일상적 실천으로 만들어지고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Hughes and Martin은 “일상적 구금 기록(Daily Detention Log)”, “주간 구금 활동 동향 리포트(Weekly Detention Service Monitor Report)”와 같은 문서철을 분석했는데, 여기에는 교도관들이 수감자에게 저지르는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 내용과 해당 사건의 처리 결과들이 담겨있다.
가령, 남성 수감자가 반나체로 갇힌 곳에 여성 교도관이 아무런 조치 없이 출입하거나, 교도관이 수감자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강제로 하는 행위, 수감자가 화장실에서 용무를 볼 때 교도관이 쳐다보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Hughes와 Martin은 이처럼 ”일견 진부해 보이는 절차상의 문서들“(p. 416)과 거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실천, 수감자들과의 상호작용을 단순히 국가의 폭력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 너머의 것을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즉, 이민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실제로 드러나는 지점은 추상적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예를 들어, 법령, 제도와 같은), 일선 공무원과 이민자 사이의 상호작용((성)폭력, 가혹행위,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 등), 그것을 처리 및 은폐하는 관련 공무원, 이런 실천, 행동들을 뒷받침해 온 가이드라인 및 관습과 같은 것들의 복합적인 작동이라는 것이다.
행정적인 가이드라인 문서를 분석한 Vetters(2019)의 연구 역시 비슷한 지점을 드러내 준다. Vetters는 다른 연구 방법도 사용하지만 일선 국가 관료들이 “사용하고 만들고 인용하는 문서들“을 획득하고 분석하는 ”민족지적으로 문서 연구하기(ethnographing documents)“(Lowenkron and Ferreira, 2014, 81)의 중요성을 분명히 강조하며 독일 베를린시 외국인 등록 사무소의 행정 가이드라인 문서들을 분석했다. 가이드라인은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법체계에 포함되지 않고 일선 행정 관료들이 편의상 공유하는 대략적인 규칙으로 간주되지만, Vetters는 가이드라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것이 행정에서 갖는 (독립적인) 역할 및 효과에 주목하는 법학의 관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특히 행정 가이드라인이 국가와 이민자(그리고 다른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가이드라인은 일선 공무원들이 이민자와 관련된 현장 업무를 처리할 때 필요한 행동 및 일처리 방식을 정해준다. 예를 들어, 비자 발급의 문제, 비정규 이민자 (길거리) 단속 및 구금과 같은 문제들을 처리할 때 가이드라인은 상위법보다 더 직접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갖는다. 둘째, 가이드라인은 일선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독자적이고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근거가 되며, 동시에 반대로 그들이 이민자, 이민자 이익 단체, 시민단체 등과 마주하면서 형성되는 현장 경험, 관계, 실제 일처리 방식 등을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나아가 상위법(국내법 뿐 아니라 유럽연합법)을 바꾸기까지 한다. 셋째, 따라서 이 가이드라인은 이민자와 국가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재판에서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이민자, 이민자 이익 단체, 시민단체 뿐 아니라 정당, 변호사 등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자 로비 및 압력을 행사하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즉, 행정 가이드라인은 단순한 국가의 행정적, 법적 측면의 일부분이 아니라 국가 안팎(또는 반대로 사회 안팎)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일상적인 현장과 상황을 둘러싸고 마주하는 현장이면서 동시에 그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천, 상황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나아가 상위법 까지) 것으로 재정의된다. 그리고 이는 국가가 하나의 덩어리와 같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의 상호작용, 뒤섞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3) 국가 아카이브 연구 실제: 정보 탐색부터 획득까지의 구체적인 절차와 주의할 점
이러한 자료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16) 하나는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활용하는 것으로서,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을 통해서 각 국가기관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적으로 청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청구인은 이미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는 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각 국가 기관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정보의 목록을 제공하고 있는데, 해당 목록은 대개 ‘정보공개’, ‘행정정보’, ‘소통’, ‘자료실’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목록은 기관에 따라 엑셀 스프레드시트 또는 일반 문서(대개 pdf 파일)의 표로 제공되거나 홈페이지 내부에 탑재된 목록으로 제공되며, 일반적으로는 자료 제목, 문서 번호, 담당 부서, 담당자, 생성(등록)일자, 공개여부(또는 보존기관) 등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그림 2). 또는 해당 목록과 동일한 것으로서 정보공개포털에서 각 기관들을 검색해서 같은 정보 목록에 도달하는 방식도 존재한다. 한국은 고도로 발달된 전자정부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로서(UN, 2022) 행정부를 포함한 국가 전체의 국가 내외부와의 의사소통(예를 들어, 사실관계 조회, 통보, 정보 수정, 집행, 계획, 보고, 결재, 질문 회신, 계약 체결, 업무 협조 요청 및 합의 등)은 기본적으로 전자정부(또는 그에 기반한) 인트라넷 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는 많은 자료가 전자 문서의 형태로 데이터베이스에 자동적으로 저장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국가 아카이브 연구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정보 목록은 자료의 실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정보 공개 청구인은 정보 목록의 자료의 제목만으로는 그것이 자신의 청구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지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며, 청구인은 자료의 제목, 담당 부서(또는 자료 생산 부서), 생성(등록)일자 등의 정보만을 토대로 자료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자료의 제목이 그 자료의 내용을 적절히 요약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 방식을 사용하는 청구인은 관심 있는 자료를 광범위하게 청구한 후, 획득한 자료를 선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보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자료 역시 청구할 수 있다. 청구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특정한 형태의 자료를 피청구기관에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피청구기관은 청구인이 요구한 형태의 자료를 만들어서 제공해야 한다. 이는 언론 보도에서 종종 보도되는 것처럼 시민 단체나 언론 등에서 취재의 목적으로 국가 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때 주로 사용되는 방식인데, 연구자 역시 목적에 따라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민원인과의 분쟁을 둘러싼 서류 및 연락 내용, 특정한 시간 범위 내에서의 특정한 민간 업체와의 계약 건수 및 계약 내용, 내부에서 활용하는 비공개 가이드라인 또는 절차 자료집과 같은 자료, 나아가 일선 공무원들이 특정 업무와 관련해서 주고받은 이메일도 공개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다(대구지방법원 2010구합3833). 따라서 이 방법을 활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청구할 자료를 결정한 후에는 실제로 해당 자료를 청구하는 청구신청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자체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관리하는 몇몇 기관17)을 제외하면 모든 국가 기관의 자료는 언급했듯이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의 ‘청구신청’ 메뉴에서 필요한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청구할 수 있다. 청구인이 얻고자 하는 자료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구내용’18) 부분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두 가지 청구 유형 중 정보 목록상의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해당 정보의 문서번호나 제목을 정확히 기재해야 하며,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자료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자료를 담당 공무원이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청구 내용을 명료하게 서술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이 부분을 단순히 필요한 자료에 대한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장치 이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실용적인 측면으로서, 이 부분을 잘 활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정보공개 거부 결정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어떤 문서에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서 개인 정보와 무관하게 그 문서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청구내용 부분에 해당 문서의 정보만을 입력한다면 개인 정보 공개를 금지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 불가 통지를 받게 될 것이다. 대신 청구내용 부분에 해당 문서에 존재하는 개인 정보는 불필요하므로 모든 개인 정보를 삭제한 상태의 문서를 청구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주면 높은 확률로 해당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관습적인 측면으로서, 청구내용 부분을 청구인과 담당 공무원 사이의 의사소통의 첫 단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다른 일상적인 의사소통과 마찬가지로 정보공개청구 역시 일종의 사람 사이의 대화라는 점에서 적당한 수준의 예절 또는 요령이 필요한데, 여기에서 이 청구내용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공개 청구의 목적이나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여 담당 공무원의 이해를 돕는 것,19) 청구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필요한 것들을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등의 것 또는 전체적으로 친절한 어투를 사용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담당 공무원에게 비굴한 태도로 자료 공개를 간청하라는 뜻이 아니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청구인과 피청구인(기관) 모두 사람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의사소통의 방식과 태도가 자료 획득 과정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이 연구에 큰 이점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정보공개청구 이후에도 의사소통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원칙적으로 정보공개청구가 담당 기관에 접수되면 해당 정보의 존재 여부와 규정에 따른 공개 가능 여부(대표적으로 정보공개법 9조의 비공개 대상 정보)를 판단하는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보공개청구 건이 접수된 후 담당 공무원들은 대개 청구인에게 직접 연락해서(특히 전화 통화로) 청구 목적을 다시 확인하거나 심지어는 청구자의 신분을 확인하곤 한다. 피청구기관은 그럴 권리가 없으며, 청구인도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의무를 갖지 않지만, 실제로 담당 공무원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러한 원칙들을 고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담당 공무원이 자료를 공개할 것을 암시하면서 청구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심지어는 질문 자체에 대해 미안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해당 질문들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표하거나 대답을 거부하는 것은 자료 획득을 위한 적절한 전략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화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담당 공무원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태도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강조하건대, 이러한 전략의 필요성이 담당 공무원의 부당한 요구나 태도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수동적이고 수용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공무원들은 정보공개청구 제도의 취지와 반하는 부적절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정보 공개에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앞의 경우와 같이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부드러운 의사소통보다는 관련 법령과 같은 원칙을 강조하며 단호하게 해당 공무원을 설득하거나 때로는 격렬하게 항의하는 것이 더 적절한 대응 방식일 수 있다. 요컨대, 이 모든 과정이 일종의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각각의 상황과 상대의 반응에 따라서 적절한 대화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상의 과정을 통해 청구한 자료가 공개된다면, 청구자는 이를 곧 우편 또는 전자파일의 형태로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청구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며 담당 공무원 또는 국가 기관과의 의사소통은 더욱 복잡해지고 격렬해지곤 한다. 앞 문단의 통상적인 과정 이후, 피청구기관이 자료를 부분적으로 공개하거나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그 결정 내용과 사유를 청구인에게 명확하게 통지해야 한다(정보공개법 제10조, 제13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당한 사유로 부분공개 또는 비공개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이다. 청구인이 결정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첫 번째 결정을 통보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이의제기는 공개 청구와 마찬가지로 정보공개포털을 통해 이루어지며,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상세히 기재할 수 있다. 언급했듯이 정보공개청구의 결정은 정보공개법(특히 제9조의 비공개 대상 정보의 사례)에 근거하므로, 해당 법 조항을 숙지하고 적절하게 해석하는 일종의 법적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피청구기관에서 제시한 부분 공개 및 비공개 사유를 면밀히 검토하고 그것이 정보공개법과 어떻게 상충되는지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청구인의 이의가 접수된 경우, 해당 피청구기관은 별도의 정보공개심의회를 소집하여 해당 이의를 포함한 정보공개청구건 전체를 7일 이내에 다시 심의한 후 청구인에게 그 결과를 통지해야 한다(정보공개법 제18조).
만약 여기서 이의가 기각되고 그 결정에 청구인이 다시 불복한다면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통해서 청구한 자료의 공개를 다시 요구하는 방법도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 있다.20) 청구한 자료가 연구에 필수불가결하고 피청구기관이 자료 공개를 완강히 거부한다면 이 방법들을 사용해야 하겠지만, 이 단계부터는 법률적 분쟁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본 논문이 다루는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이는 많은 시간, 비용, 에너지를 요구하므로 연구자에게 큰 어려움을 안길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과정을 요약하면, 국가 아카이브 연구자는 다른 질적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료 획득의 각 순간마다 자료의 중요성, 구득 가능성, 현실적인 문제 등을 두루 고려하여 적절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림 3은 지금까지의 정보공개청구 과정을 요약하여 보여주며, 그림 4, 5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필자가 획득했던 문서의 사례로 국가가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들과 주고받았던 실천, 제도 등을 보여준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청구하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국가 기관이 생산한 공공기록물 중 30년 이상 보관하도록 분류된 비교적 오래된 중요 기록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방대한 기록물이 보관되어 있는 만큼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확보하는 방법 역시 연구자가 얻고자 하는 자료에 따라 다양하다.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탐색하고 얻는 가장 기본적인 경로는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의 검색에서 시작된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archives.go.kr)에서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자료에 대한 검색 기능을 제공한다(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기능). 이 검색에서 확인된 자료에 대한 메타 데이터에 따라 자료 획득을 위한 전략이 다양해진다. 먼저, 국가기록원의 모든 자료는 다른 자료와 마찬가지로 자료의 중요도와 민감도에 따라 공개, 부분공개, 비공개로 각각 분류된다.
공개로 분류된 자료 중 일부는 전자화되어 있으므로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하여 직접 그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6의 원문보기 기능). 그러나 일부 오래된 자료들을 제외하면 대개 온라인에서 원문이 제공되지 않으므로 자료 획득을 위해서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먼저 온라인에서 원문이 제공되지 않는 공개 및 부분공개 기록물은 서고정보를 확인한 후(그림 7의 서고정보) 해당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국가기록원을 직접 방문하거나,21)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사본신청 서비스를 이용하여 획득할 수 있다.22)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개인 정보 등이 포함되어 있다면 해당 부분은 제거된 상태로 제공될 것이다. 한편 비공개로 분류된 자료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획득할 수 없다.23) 따라서, 비공개 자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해야 하며, 이 절차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하다.
5. 결론
본 논문은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국가에 대한 보다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접근들을 이론적으로 검토하고, 연구 방법으로서의 국가 아카이브 연구를 방법론적으로 논의했다. 발전국가를 다루었던 기존 연구들이 국가를 관계적으로 바라보고 그 공간적인 다양성을 수직적 다중스케일적 접근을 통해 적절히 다루어왔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은 국가가 사회와 뒤섞이는 수평적 양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보이거나 국가를 자본주의 발전국가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이 기존 연구가 미처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국가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국가를 사회의 일부분으로 바라보았다. 이는 국가가 사회적 행위자와 사물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실천, 작동,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효과 또는 결과물이라는 최근 사회과학의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접근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또한, 이러한 논의를 통해 국가는 자본주의 발전국가와 같은 특정한 하나의 속성을 갖는 것이라기보다 보다 다양한 하나의 네트워크 또는 어셈블리지와 같은 것으로 다시 정의될 수 있다.
국가의 이러한 수평적 측면을 조명한다면, 이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도 고려되어야 한다. 인터뷰나 참여 관찰과 같이 이미 다른 연구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연구 방법 역시 유용한 국가 연구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본 논문은 이러한 방법들이 국가 연구에서 가지는 한계를 보완하고 연구 방법을 다양화하기 위해 아카이브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을 논했다. 아카이브 연구는 국가 안팎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일상적 실천과 행동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국가 연구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아카이브는 권력 형성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 아카이브를 독해할 때에는 항상 그 ‘결의 반대로’ 또는 ‘결대로’ 읽는 비판적 접근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어서, 국가 아카이브 자료를 획득하는 주요 방법으로서 정보공개청구와 국가기록원 제도의 활용 방법을 살펴보았다. 이 두 제도는 연구자들에게 익숙한 것이지만 연구 방법론의 측면에서 논의된 적은 없다는 점에서,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서 자료를 얻는 구체적인 절차, 노하우, 연구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이 검토한 국가의 개념과 아카이브 연구 방법이 국가 연구를 위한 유일하거나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늘날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관계적이고 해체된 국가의 개념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국가를 ‘국가-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간결하고 명료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Passoth and Rowland, 2010을 볼 것). 또한,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관점은 현실 세계에서의 복잡한 존재로서의 국가를 더 잘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설명을 지나치게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에서 강조하는 국가 개념은 국가를 완전하게 설명해주는 하나의 거대한 우산과 같은 것이 아니며, 이것이 지리학자들과 여러 사회과학자들 간에 완전한 합의에 도달한 것이라고도 보기는 어렵다. 또한, 국가 아카이브 연구는 보다 관계적이고 해체적인 국가와 개념적, 이론적으로 잘 들어맞는 하나의 자료이자 연구 방법일 뿐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4장에서 인터뷰와 참여 관찰이 국가 연구에서 가질 수 있는 한계점을 논했지만, 그 한계점을 적절히 극복할 수 있는 연구자에게 이 연구 방법들은 여전히 유용할 수 있다. 또한, 각 연구 방법의 장단점을 적절히 고려하여 서로 보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뷰나 참여 관찰에서 확인한 내용을 아카이브 자료로 검증하고, 그 반대로 아카이브 자료에서 확인한 내용을 인터뷰에서 집중적으로 질문하거나 참여 관찰에서 더 주의 깊게 관찰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로 다른 연구 방법들을 생산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triangulation’, Hughes and Martin, 2022를 볼 것). 따라서, 국가에 대한 각 관점은 국가의 다양한 특징을 다른 관점에 비해 더 잘 설명해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다양한 연구 방법과 이론적 접근이 공존할 때 국가라는 복잡한 존재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