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1 August 2021. 461-461
https://doi.org/10.22776/kgs.2021.56.4.461


MAIN

코로나 19의 장기화는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엄청난 규모의 이동들이 순식간에 정지 상태가 되었다. 발병지인 우한시의 주민들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지역 내, 외부의 이동 제약을 경험하게 되었고, 연이어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례없는 국가적 차원의 이동 통제 혹은 동선 감시가 시행되었다. 코로나 19는 개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개별적인 이동 및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제한하게 하는 미시적 모빌리티 제약의 기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확산 방지라는 명목 아래 이동에 대한 의미와 그것을 구성하는 체계 전체를 단숨에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뉴노멀의 세상은 ‘모빌리티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대학의 지리학자 팀 크레스웰(Tim Cresswell)은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 미미 쉘러(Mimi Sheller), 피터 에디(Peter Adey) 등과 함께 모빌리티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학자이다. 사회적 현상을 모빌리티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모빌리티의 사회-공간적 효과를 탐색하는 ‘새로운 모빌리티스 패러다임’ 연구에 1990년대 초반부터 참여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활발한 모빌리티 이슈를 제기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작업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서적은 2006년에 출간한 「On the move: Mobility in the modern western world」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리학의 전통적인 개념인 장소, 영역,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리학 내에 고착되어 있던 정주의 안정성, 이동의 비장소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에 문제를 제기한다(p.113). 과학이란 미명 아래 노동자의 움직임을 측정하려고 했던 마이브리지 사례에서부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야기한 미국 사회의 모빌리티 정치에 이르기까지 신체와 교통수단, 국제 이주와 이동 공간 등과 같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저자는 서구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스케일의 모빌리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고 되고 새로운 도덕지리학을 만들어내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이 책의 명제들을 중심으로 내용 전반을 살펴보면 크게 4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첫째, 모빌리티는 장소처럼, 공간적이며 인간의 세계 경험에서 핵심이다(p.20). 지리학 내에서 모빌리티는 장소와 대별되는 개념으로 순간적이고, 임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용이 없다거나 의미, 역사, 이념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생산된 운동으로서 모빌리티는 권력을 생산함과 동시에 권력에 영향을 받는 장소의 역동적 등가물이다. 1장과 2장에서 사례로 든 철도라는 교통수단의 개발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인지되었던 시-공간의 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표준화된 시-공간에 맞춰 모빌리티가 확장되었고, 그것을 벗어난 모빌리티는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p.25). 이와 같은 모빌리티의 인식 전환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다시 말하자면 봉건 시대 토지와 영주에 귀속되는 것이 정상이었던 사회에서 모빌리티는 불안을 야기하고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였다면, 근대 사회로 넘어가면서 자유와 행복의 근거로 탈바꿈하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책 전반에서 모빌리티의 정의와 개념적 의미가 끊임없이 변동을 겪어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동시에 공간적(지리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 명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모빌리티는 권력적 관념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으며, 새로운 사고방식과 윤리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A에서 B로의 움직임 속에서 젠더, 인종, 민족 등과 같은 수많은 차이들이 지워져 있지만, 그것을 연결하는 선의 존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4장에서 소개되는 릴리어 길브레스의 사례는 여성의 모빌리티가 가정에 국한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명제 아래, 가정 주부의 주방 이용의 동선 효율성이 집안일에 대한 피로도 감소와 행복, 궁극적으로 도덕적 유익함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20년대 이민제한과 취업 기회의 확대로 집에 하인을 두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중산층 여성들은 스스로 자기 집을 가꿔야 했다. 주부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해주겠다는 전자제품, 가정용품 등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에서 발전한 가정공학은 능률, 질서, 합리성과 같은 근대를 실현할 수 있는 과학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여성의 모빌리티 제거를 통해 젠더 관계는 공간적으로 더욱 공고해졌고, 현대적 효율성은 도덕적인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p.214). 저자는 모빌리티가 가진 힘이 인간과 시공간을 포함한 권력의 변동을 추동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주목하며, 모빌리티 기회가 차등적일수록 존재들 간의 불평등성이 더욱 강화된다고 보았다.

위의 주장과 연결된 세 번째 명제는 ‘권리’로서의 모빌리티가 시민권과 정의(justice)를 설명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점과 맞물려 있다. 6장과 7장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이주자들의 사례에서 모빌리티가 시민권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모빌리티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국가의 판단이 오히려 시민의 권리를 희석시키고 평등의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65년 네바다주를 드나드는 역마차를 몰던 크랜달이 승객수를 신고하지 않고, 세금도 납부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된 사건에서 과연 인간의 움직임을 수출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팽팽한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미 연방대법원의 클리포드 판사는 ‘시민이 시민이기 위해서는 이동이 가능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보아 세금 부과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 사안에서 인간의 이동의지와 능력이 곧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직결되어 있다는 판단은 모빌리티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 해방, 평등에 대한 존중이 요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지리학이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특정한 학문 영역을 뛰어 넘어 ‘권리의 공간성’, ‘공간적 정의’ 등과 같이 겉보기에는 보편적으로 보이는 권리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지리학이 권리 담론의 한계에 도전하고 인간으로 셈해지는 자의 재산과 시민권의 의미를 확대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p.285) 따라서 지리학에서 언급되는 모빌리티로 실현되는 보편적 권리는 절대적인 총체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포괄적이며, 다중적이고, 그러므로 영원한 투쟁의 근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움직이는 사물들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내 모빌리티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했던 과거의 공간 이론가들과는 달리, 저자는 서로 다른 스케일을 갖는 모빌리티들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모빌리티들을 연결짓는 것은 역설적으로 모빌리티 간의 차이임을 시인한다(p.379). 본질적으로 모빌리티를 연결해주는 것은 유사성이 아닌 사회적 차별화를 수행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구체화하기 위해 9장에서 제시된 공항이라는 공간은 테일러주의에 기반하여 인체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리, 통제하는 곳으로 모빌리티 간의 접속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공항을 비장소나 새로운 탈국가적 유토피아로 상정하게 되면 복잡하게 얽힌 여러 층위를 간과할 수 있다. 공항에서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개별 신체들의 집단적 효과로서 장소-발레(place-ballets)가 매일매일 서로 다른 형태로 뒤엉켜 펼쳐진다. 공항에는 제 뜻대로 움직이는 이동특권층이 모빌리티의 쾌락을 느끼며 지나가는 반면,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어 공항에서 살아가는 노숙자도 존재한다. 이코노미 좌석에 앉는 사람들은 수속장에서 긴 줄을 만들지만, 상위 클래스는 줄을 서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는 모빌리티의 속도와 선택에 결정적이다. 이러한 차이들로 인하여 전 세계의 모든 공항은 같은 모습을 띠지 않고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지역적 장소가 된다. 그러므로 저자는 메타포로서의 매끈한 공항의 기능과 형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빌리티의 사회적 특성으로 인해 결코 완성되지 않거나 항상 완성을 향해 진행되는 형태를 띠게 된다고 설명한다(p.398). 모빌리티의 차이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체인 것이다.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의 세상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이동한 그 곳에서 나의 존재적 의미와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가까운 여행지를 가는 것에도 망설이게 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도 수많은 걱정과 염려가 스친다. 자유와 즐거움의 모빌리티가 공포와 불안의 모빌리티로 바뀌게 된 것은 비단 코로나 19 때문만이었을까? 이처럼 모빌리티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범위와 관계 맺는 방식 전부를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빌리티 연구자로서 팀 크레스웰의 저작은 학문적으로 명쾌한 통찰력을 주면서도 일상의 모빌리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례들이 주는 흥미로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 마지막장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그의 주장과 논리적 근거들이 탄탄하다는 것이며, 무엇보다 독자들을 배려한 가독성 있는 서술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주고 싶다. 모빌리티 연구에 막 입문하거나 모빌리티 연구 방법에 있어 고민이 많은 분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1) 본문에 기재된 페이지 수는 본서의 번역본인 <최영석 역, 2021, 온 더 무브: 모빌리티의 사회사, 앨피>를 기준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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