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평의 취지(김준수)
2. 전략관계를 넘어선 ‘인간 너머의 국가 이론’을 위하여(이강원)
3. 보다 ‘조심스러운’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위하여(최명애)
4. 인간 너머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위하여(박지훈)
5. ‘연구자-어셈블리지’의 영토확장을 기다리며(황진태)
1. 논평의 취지(김준수)
이 글은 지리학자 황진태가 촉발한 인간 너머의 국가론(more-than-human state theory)을 정교하게 확장하기 위한 국내 사회과학자들의 논평을 담고 있다. 최근 인간 너머의 접근이 지리학, 사회학, 인류학, 과학기술사회학 등의 각 분과학문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밥 제솝(Bob Jessop)의 전략관계론적 국가론을 인간 너머의 관점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황진태의 시도는 이론적, 실천적으로 시의적절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황진태의 이런 시도에 대해 인류학자 이강원은 황진태가 제기한 비인간 행위자들의 범주 확장을 주문함으로써 국가의 전략관계 속에 포함되지 않은(혹은 포함되지 못한) 타자들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리학자 최명애는 국가 이론과 인간 너머의 접근이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을 주문한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자 박지훈은 밥 제솝의 국가 이론에 대한 철저한 독해와 재해석을 통해 인간 너머의 국가론이 이론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본 논평은 국내 사회과학 분과의 각 영역에서 인간 너머의 관점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연구자들이 참여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함의를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글을 통해 인간 너머의 접근 또한 방법론, 이론화의 목표, 분석의 대상이 서로 상이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인간 너머의 접근 내에서의 인식론적, 이론적, 분석적 차이는 황진태가 제안한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다층적인 관계성을 사회과학 내에서 다채롭게 재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논평을 통해 인간 너머의 관점에 대한 다양한 분과학문의 연구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전략관계를 넘어선 ‘인간 너머의 국가 이론’을 위하여(이강원)
이 연구는 국가 이론과 인간 너머의 지리학 간의 접촉구역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임을 밝히고 있다. 인간 중심적인 전략관계 접근(국가에 대한 미시적 접근 혹은 헤게모니적 접근)과 거리를 두며, 비인간을 이론의 배경에서 끄집어내 이론의 전면에 위치시킴으로써 비인간의 사회적 힘을 국가 정치에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비인간의 전략관계가 인간의 전략관계 만큼이나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 착안해서, 비인간의 행위자성을 경험적 연구를 넘어 이론적 시도에까지 확장시키고자 했다. 예를 들어, 국가적 사업인 4대강 사업은 이끼벌레나 녹조와 같은 비인간의 예측불가능한 행위성에 의해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 다루기 힘든 사물들이 합리적인 것처럼 여겨졌던 국가사업을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무력화한다. 국가를 전략관계로 접근하면서 비인간이 그 전략과 관계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 이 연구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현대의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러한 비인간의 목소리와 협의하고 타협하기 시작한 시점에 이르렀고, 또한 인간 너머의 국가 이론이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 되었음을 주장한다. 이 연구는 비인간이 시민환경단체와 지역주민과의 동맹을 통해서 국가의 일방적인 인간중심주의적인 개발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늘리고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저자는 제솝의 SRA(strategic-relational approach: 전략관계적 접근)를 정치생태학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비인간도 중요한 사회적 힘으로 다루고 경제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 하는 듯하지만, 자본축적의 과정에서 여전히 수동적인 자원의 역할에 비인간을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제솝의 확장된 SRA에서는 국가와 자본의 논리에 자연은 여전히 전유되고 있다. 자연은 곧 자원이라는 등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자연과 비인간의 존재는 제솝의 이론에서 완전히 간과된다.
이렇듯 제솝의 SRA에서 비인간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로 대별되는 가치논의에서 주로 교환가치로 논의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환/사용의 이분법 조차 인간중심적이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 결과, 제솝의 확장된 SRA는 인간의 합리적 선택과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전략에 비인간의 개입을 사실상 고려하지 않고 있다. 즉 사회적 힘을 구성하는 데 인간뿐 아니라 사물과 동물이 개입해서 합리적 결단을 내리는 데 관여하고 있음을 간과한다.
물론 제솝은 환경운동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SRA에 도입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와 경제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정동적 관계가 국가의 전략적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제중심주의적 한계는 비인간의 개입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위처럼 SRA의 한계를 드러내고 인간과 비인간의 정동관계를 고려한 국가의 전략이 전개되어 왔던 한국의 사례들을 통해서 자신의 인간 너머의 국가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국내의 현상과 문제에 근거해서 제솝의 SRA에 대한 대안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깊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사례를 통해 제솝의 SRA를 비판하는 단계의 논의를 넘어서서 국가의 전략관계를 이해하는 데 더 적실성 있는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오랜 동안 논의는 되었지만 그 시도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현실에 맞는 이론의 구축이라고 하는 과제에 과감히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이론적 도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지점에 대해 논의를 이어나간다면 더 정교한 이론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해서 의견을 내 본다. 저자의 이론적 시도는 제솝의 이론을 넘어서고자 하지만, 동시에 제솝의 이론적 구도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제솝의 국가이론에서 국가 프로젝트는 축적 전략과 헤게모니적 프로젝트의 관계이고, 헤게모니적 프로젝트가 자본 축적 전략을 위해 일반 공중과 자본들을 동원한다는 구도이다. 저자는 축적전략에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종속되어 있다는 점, 헤게모니 프로젝트는 축적 전략을 위해 지역의 자연을 자원으로 변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담론 틀이라는 점에서 이 구도 역시 경제중심주의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인간 너머의 국가이론으로 이러한 축적전략우위와 경제중심주의에 대한 전도를 통해서 제솝의 이론적 구도에 도전하고 있다. 그것이 그림 1의 B 경로로 표시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의 사례들, 천성산의 도룡뇽, 설악산의 산양 등이 소송의 원고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를 제시하면서, 헤게모니적 프로젝트, 즉 비인간의 목소리에 사회적 힘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시민의 환경운동이 국가의 축적전략에 먼저 영향을 끼치면서 경제 이외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정책을 주도하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 밖에 돌고래 제돌이의 사례도 비슷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비인간과 연대한 시민들의 출현은 국가 권위의 비합리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개발주의가 주를 이루었던 한국이란 국가의 축적전략에 무시할 수 없는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저자는 SRA와 결합된 인간 너머의 국가이론이 20세기의 민족이라는 헤게모니 대신 인간과 비인간의 정동적 관계를 맺는 동물애호자들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린뉴딜과 녹생성장과 같은 새로운 국가의 축적전략들은 인간과 비인간의 정동적 관계조차도 축적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생동있는 자본주의, 정동적 자본주의의 축적 형태의 도래로 연결될 수도 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결합된 정치경제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저자는 여전히 상부와 하부구조, 제솝의 이론대로라면, 축적전략과 헤게모니적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원적이며 위계적인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비인간의 정동적 관계를 이 이원적 구도 속에 도입함으로써 인간 너머의 국가이론을 제시한다. 그런데 인간 너머는 차치하고 국가이론은 이러한 이원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솝의 이원론적인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대안은 없을까? 이러한 이원론을 유지하는 한은, 필자가 제솝의 연구에서 비판한 경제중심주의로의 환원과 회기의 문제에서 필자 자신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필자의 결론에 들어가기 직전의 논의를 보면, 경로 B조차도 다시 축적 전략에 전유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 너머의 국가 이론은 결국, 자본축적의 또 다른 전략이란 이야기로 돌아감으로써 제솝의 경제중심주의를 비인간까지 더 세련되게 확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자의 논의에서 비인간이 시민의 환경운동의 대상이 되었던 사례 속의 동물들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타자가 동물이라면, 동물의 타자로 곤충이 있다. 그리고 생물의 타자로 식물이 있고, 물질의 타자로 생물조차 되지 못하는 다양한 무생물들이 있다. 비인간은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환경운동의 동물들 외에도 많다. 비인간이 초래하는 여러 저항과 문제들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비인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제돌이와 4대강의 목소리도 잘 들어야 하지만, 인류세의 환경에서 탄소나 토양, 그리고 곤충과 미생물 등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대변자들도 다양하다는 점도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시민환경단체 뿐 아니라, 과학자들, 정부의 연구기관들 등 비인간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전략관계에 비인간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갖도록 하는 수많은 대변자, 변호인들이 있다. 이 대변인들은 환경운동의 담론에서 아직 쟁점이 되어 보지 못한 수많은 비인간들의 목소리를 듣고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데 개입하고 있다. 천성산의 도룡뇽이 원고가 되었다는 것은 그 원고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 대변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변자와 변호인 없이는 우리는 비인간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SRA에서 비인간의 영향력이 어떻게 사회적 힘으로 변형되는지, 비인간의 목소리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대변하는지에 대한 정교한 이론화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간 너머 국가 이론은 국가를 한 덩어리로 보고 있는 거시적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부처별 경쟁과 타협, 각각의 부처들이 다른 시민단체, 다른 대항 과학자들과 연합하고 다른 부처의 연합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다양한 당사자들이 각기 다른 비인간 혹은 인간을 대변하면서 협상하고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관점이 더 전략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각각의 진영들이 서로 다른 인간 혹은 비인간들을 대변하면서 국가 정책에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전략적 협상과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민환경운동가가 정치인으로 정부 부처의 수장에 자리 잡고 환경운동과 연합하는 사례는 한국 정부 부처와 연구소 등에서 이미 보기 힘든 사례가 아니게 되었다. 국가/환경운동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국가는 여러 인간과 비인간을 대변하는 여러 부처와 부서들 간의 경합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간 너머 국가 이론에서 고려되어야 할 추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제안해 보았다. 저자는 이러한 요소들을 이론을 정교화하기 위해 받아들이거나, 이러한 요소들의 논의가 이론의 정교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배제하거나 그 중요성을 축소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서 인간 너머의 국가 이론을 정교화하는 결과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이 논평을 마친다.
3. 보다 ‘조심스러운’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위하여(최명애)
황진태는 이 논문에서 국가 이론을 인간 너머 지리학 및 관련 사회과학 논의와 결합해, 국가의 축적 및 헤게모니 전략이 갖는 ‘인간 너머’의 차원을 드러낼 것을 제안한다. ‘인간 너머 국가론’ 제안은 - 특히 국가-자연과 관련지어 - 실제 국가의 자연 통제 및 관리에 결합하고 때로는 교란하는 비인간 동식물 및 자연 현상에 주목하고, 이들 비인간의 존재와 작동을 국가의 자연 정책과 실천에 반영할 여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필자는 황진태의 인간 너머 국가론이 실제 환경 담론 및 정책 뿐 아니라, 최근 국내 지리학 및 사회과학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른 바 ‘인간 너머’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Choi, 2016; 황진태, 2018; 2019). 특히 국내 국가-자연 논의에서 발전시켜 온 발전주의 국가 이론을 인간 너머 연구 경향과 결합함으로써 한국 및 동아시아의 맥락 특수적인 국가-자연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간 너머 국가론 논의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이론적 정교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전략관계적 국가 이론과 인간 너머 지리학이 각각 정치경제학과 신유물론이라는 상이한 철학적 논의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두 이론을 결합하는 데는 개념적, 이론적 긴장과 충돌이 수반될 것으로 예상한다. 필자는 인간 너머 국가론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 아래의 몇 가지 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인간 너머 국가론 논의는 2010년 전후 환경 지리학 분야에서 제기된 ‘보다 조심스러운 정치생태학(careful political ecology)’ 논의를 연상시킨다. 정치생태학자 캐런 바커(Karen Bakker), 개빈 브릿지(Gavin Bridge), 브루스 브라운(Bruce Braun) 등은 신자유주의 자연 논의를 인간 너머 지리학 연구의 비인간 행위성, 정동 논의와 결합함으로써 자연의 신자유주의화(neoliberalization of nature)를 보다 다면적,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제안했다(Bakker, 2010; Bakker and Bridge, 2006; Braun, 2005). 환경지리학자 제이미 로리머(Jamie Lorimer), 스티브 힌츨리프(Steve Hinchliffe) 등도 마찬가지로 동물 연구 위주로 전개해 온 인간 너머 지리학 연구를 자연의 신자유주의화와 결합함으로써 인간-동물 관계의 정치경제적 차원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봤다(Hinchliffe, 2008; Lorimer, 2012). 이들은 비인간 행위성, 정동과 같은 인간 너머 지리학의 개념을 자연 자본, 축적 논의와 결합해 정동적 경제(affective economy), 대면 가치(encounter value), 살아있는 재화(lively commodity), 정동적 노동(affective labour) 등과 같은 흥미롭고 유용한 개념들을 발전시킨다. 인간 너머 국가론에서 제안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비인간, 정동적 인간-자연 관계 역시 바커 등의 논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간 너머 지리학은 비인간 행위성과 정동 외에도 다중적 존재론(multiple ontologies), 인식론적 다원주의(epistemological pluralism), 관계적 윤리 등과 같은 보다 철학적인 논의들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다양한 존재론적 세계의 공존과 과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인간 너머 연구의 비본질주의 경향은 인간 주체와 진보적 사유에 기반을 둔 정치경제학의 본질주의 경향과 상충한다. 상이한 이론의 전략적 결합을 위해 Hinchliffe(2008)는 ‘보다 조심스러운 정치생태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너머 연구의 실험적, 탐색적인 경향을 정치생태학과 절충시킬 것을 제안한다. 기존의 환경 정의 논의와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적 윤리를 결합하고자 하는 최근 인류세 논의의 ‘다종적 정의(multispecies justice)’도 참고할 만하다.
둘째, 비인간의 정치적 참여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 논문은 큰빗이끼벌레를 사례로 국가의 자연 통제 및 관리에 결합하는 비인간의 존재를 지적하며 이들을 정치적 주체, 혹은 당사자의 하나로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필자는 비인간을 자연과 관련된 의사 결정 논의에 참여시키자는 제안을 환영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보다 본격적인 실험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인간과 구별되는 비인간의 ‘다름’과 관련돼 있다. 큰빗이끼벌레와 같은 비인간 존재는 언어로 의사소통하지 않으며,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주 활용되는 방식은 인간 대리인을 통해 비인간이 원고로 참여하는 환경 소송이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환경의 변화가 비인간 존재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안나 칭(Anna Tsing)이 ‘알아차리기의 기예(art of noticing)’라고 표현한 섬세한 관찰(Tsing, 2015)과 그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response-ability)이 필요하다(Haraway, 2008). 이 같은 관계적 인식론과 윤리를 환경 정책과 제도의 언어로 바꿔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천적, 정책적 실험들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국내 국가-자연 논의는 국가가 자연을 ‘자원’으로 바라보고 축적을 위해 이용, 혹은 개량하는 전략과 효과에 중심을 맞춰 왔다. 그러나 국가와 자연의 관계는 비단 자본주의적 관계만이 아니며,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서도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70년대 쥐잡기 운동, 구제역 방어, 최근의 아프리카 돼지 열병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생명안보(biosecurity)을 이유로 자연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해 왔다. 또, 기생충 박멸 캠페인이나 각종 예방 접종을 통해 신체라는 마이크로 공간에서 미생물을 통제해 왔다. 국가 보건 체제의 형성과 변화는 국가와 자연의 생명정치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이처럼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자연 논의에 포착되지 않는 국가-자연의 관계를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비인간에 대한 생각과 실천, 비인간의 행위성 등을 살펴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자연의 고유한 물질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발전주의 국가라는 특성 외에도, 한국의 국가-자연 관계는 인구가 많고 자연 자원이 부족하다는 물질적 한계 속에서 이뤄져 왔다. 국토의 상당수가 구릉성 산지라는 지형의 특성으로 도시, 농경지, 산업 용지 개발을 위해 산악 지형을 훼손하거나, 해안 매립을 통해 토지를 확장해 왔다. 전쟁과 산업화, 도시화로 대형 야생 동물이 사라지고, 식량 증산 등의 목적으로 다양한 외래 동식물이 전략적으로 수입된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물질적 특성은 비단 한국이 아니라, 일본, 홍콩, 대만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개발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보편적인 물질적 특성이 동아시아의 국가-자연 관계의 형성과 작동에 어떻게 같고도 다른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4. 인간 너머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위하여(박지훈)
이 글에서 황진태는 세 가지의 작업을 수행한다. 첫째는 밥 제솝의 전략관계적 접근 및 국가론에 내재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는 인간중심주의로부터 탈각한 전략관계적 접근에 기반하여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수립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러한 국가론에 의거하여 한국의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다. 논평자는 황진태의 문제의식과 이론적 작업의 방향성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전략관계적 접근 및 국가론과 관련하여 여전히 불명료한 진술들이 존재한다. 이에 본 논평은 주로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사항들을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황진태의 향후 작업과 관련하여 하나의 제안을 하려 한다.
첫째, 황진태는 사회이론으로서의 전략관계적 접근과 정치이론으로서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양자 간 구분에 대해서는 Jessop et al.(2006)을 보라). 밥 제솝의 전략관계적 접근은 일차적으로 사회구조와 행위성 그리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사회구성체의 응집과 재생산 그리고 변동 등을 다루는 사회이론적 접근법이며, 우리가 흔히 전략관계적 국가론이라 부르는 것은 그러한 사회이론에 기초한 일종의 정치이론이다(실재론적 사회이론으로서의 전략관계적 접근의 성격에 대해서는 Jessop(2005a)를 보라). 둘째, 황진태의 글에서는 이 양자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너머의 국가론을 위한 사회이론적 작업 역시 결여되어 있다. 인간 너머의 국가론은 그간의 사회과학이론들이 비인간적 행위주체들을 이론적 고려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특히 전략관계적 국가론의 개선을 통해 ‘인간 너머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이라는 것을 구성하려면, 전략관계적 접근이 사회구조와 행위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그에 반해 황진태의 논문은 이러한 작업 없이 혹은 그러한 사항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 없이 축적전략, 국가전략, 국가형태, 헤게모니 프로젝트 등의 논의로 직행한다. 물론, 황진태의 작업은 중요한 이론적 시도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의 작업은 전략관계적 접근을 개선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될 수 있다. 즉, 그의 작업은 전략관계적 접근에 대한 수선작업 없이 전략관계적 국가론 중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셋째, 황진태의 분석에서는 전략관계적 국가론이 축적전략, 국가전략, 국가형태, 그리고 헤게모니 프로젝트 등에 대한 논의로 축소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념들은 밥 제솝의 지적 프로젝트, 가령 마르크스주의적 국가론 내부에서 발견되는 이론적 긴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풀란차스에 대한 재해석과 전략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에 대한 재발견을 거쳐 북대서양 국가들과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전략관계적, 조절주의적 사례분석에 이르는 여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대한 제솝의 초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Jessop(1982)를 보라; 풀란차스에 대해서는 Jessop(1985)를, 북대서양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Jessop(2002)를, 그리고 동아시아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에 대해서는 Jessop(2005b); Jessop and Sum(2006)을 보라). 물론, 축적전략, 헤게모니 프로젝트 등의 개념은 전략관계적 국가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는 개념이다(이에 대해서는 Jessop(1990)을 보라). 하지만 밥 제솝의 지적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고려 없이 몇몇 개념들에만 주목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고, 그러한 문제들이 황진태의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황진태가 서술한 것과 달리, 전략관계적 국가론은 베버의 정치주의와 마르크스의 경제주의 사이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네오그람시안들의 정치주의적이고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국가분석과 서독 국가도출론자들의 경제주의적이고 일반적인 국가분석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출현한 것이다(Jessop, 1982). 제솝은 양자를 모두 지양하고 통합하기 위해 처음에는 전략이론적으로, 이후에는 전략관계적인 접근 및 국가론을 제시하기에 이른다(Jessop, 1990).
또한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의 몇몇 경제들의 논의함에 있어 제솝은 조절주의적 분석을 선호한다. 가령, 한국경제를 다룰 때 그는 주류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외부효과’에 대한 논의에 의존하고 있는 ‘수출주도형 경제’ 혹은 ‘수출주도형 산업화’라는 개념보다 수출주의 혹은 포스트수출주의와 같은 개념들을 선호한다. 아울러, 동아시아 국가들을 다룰 때도 그는 발전국가와 같은 개념보다 ‘리스트적 근로연계복지 국민국가’와 ‘슘페터적 근로연계복지 탈국민정치체제’와 같은 개념들을 선호한다.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나일링 섬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제시된 이러한 개념들은 황진태가 중용하는 개념들이 제시된 이후 이뤄진 사례분석의 과정에서 등장한 것들이다(Jessop, 2005b; Jessop and Sum, 2006). 따라서 만약 황진태가 전략관계적 국가론의 맥락에서 한국을 다루려고 했다면,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관련된 논의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제솝과 나일링이 수행한 사례분석들과 좀 더 친화적인 작업을 수행했어야 한다. 끝으로 한 가지를 추가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밥 제솝의 사회이론과 정치이론 그리고 사례분석은 모두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사회과학철학에 의존하고 있다(Jessop, 2005a).
따라서 인간 너머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수립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한국의 사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실재론, 사회이론으로서의 전략관계적 접근, 정치이론으로서의 전략관계적 국가론, 그리고 동아시아 경제와 국가에 대한 전략관계적이고, 조절주의적 사례분석을 일관성 있게 수선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안들이 황진태의 향후 작업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5. ‘연구자-어셈블리지’의 영토확장을 기다리며(황진태)
필자가 제안한 인간 너머의 국가론에 대한 세 논평자의 날카롭고, 생산적인 논평에 감사한다. 이강원은 필자의 이론 틀이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 너머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명애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과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은 상이한 철학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두 논의 사이에 보다 신중한 접근의 필요성을 환기한다. 박지훈은 국가를 논하기 전에 사회이론으로서 전략관계적 접근을 살펴보는 작업을 포함한 제솝에 대한 보다 방대하고, 엄밀한 독해를 주문한다. 지적(知的) 카타르시스를 촉발하는 주사바늘이자,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짚어주는 나침판 바늘과 같은 논평들이다. 그리고 이 바늘은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논평자들에게도 향해 있다.
논평자들은 최근 인류학계(이강원, 2017; 2020), 사회학계(박지훈, 2020; 김준수, 2021), 지리학계(Choi, 2016; 2021)에서 선도적인 지적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본 비평에 참여한 필자들 외 학자들(최영래, 이선화, 김지혜, 전원근 등)도 얽혀있는 이 느슨한 ‘연구자-어셈블리지(assemblage)’는 국내 학계에서는 전례 없는 다학제적 연구의 일관된 여정을 밟아가고 있다(황진태, 2018; 2019). 앞으로 이 어셈블리지는 개인연구와 공동연구로, 때로는 국내외 학술지 특집호 및 단행본 기획을 통하여 미완의 프로젝트인 인간 너머의 국가론의 정립, 나아가 국내 인문사회과학의 인간 너머의 재구성이라는 경로가 설정되어 있다.
물론 연구자-어셈블리지의 영토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치밀한 이론적 고민과 치열한 사례연구를 실천하고, 궁극적으로 이 어셈블리지마저 탈/재영토화하려는 다음 세대 연구자들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