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28 February 2022. 59-79
https://doi.org/10.22776/kgs.2021.57.1.59

ABSTRACT


MAIN

  • 1. 서론

  • 2.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 소리와 글자 사이에서의 선택

  •   1) 『한불자전』(1880)의 로마자 표기: 전자법의 채택

  •   2) 『한영자전』(1890, 1897) 편찬 이후의 로마자 표기 경향: 전음법의 우세

  • 3. <조선전도>(원본) 지명의 로마자 표기 방식

  •   1) 『서한』 자료의 로마자 표기

  •   2) 모음의 로마자 표기

  •   3) 자음의 로마자 표기

  •   4) 한국한자음의 반영과 몇 가지 오류들

  • 4. 결론

1. 서론

과거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정확한 지도 제작과 양안(量案, 토지대장) 및 호적의 작성은 중앙집권적 국가를 유지, 관리하기 위한 기본적인 통치 도구로 활용되었고 중요한 국가 기밀로 관리되었다.1) 우리나라 첫 가톨릭(이하 천주교) 사제였던 성 김대건(안드레아, 1821~1846) 신부가 1846년 6월 5일 황해도 해안의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어 군문효수로 처형될 때의 죄목 또한 외국(프랑스) 군함을 불러들여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 ‘역적’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234). 당시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 그가 제작한 <조선전도>의 외부 반출은 기밀의 국토 정보를 외국으로 유출시킨 반국가적인 이적 행위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는 천주교가 지닌 사랑과 평등의 사상이 신분 차별과 인권 유린으로 점철된 조선 후기의 혼란한 사회를 해방시켜줄 유일한 믿음으로 신봉하였고, 하루 빨리 천주교를 고국인 조선에 널리 포교하여 공인 받아지길 소원하였다. 그 간절한 소원의 과정에서 <조선전도>가 제작되었고 당시 의도하던 조선 포교의 용도를 넘어 이 지도는 조선인에 의해 조선의 지명을 한국 한자음을 반영해 로마자로 표기한(Romanization)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Carte de la Corée>(1845) [117×64cm, 종이 1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이하 <조선전도>(원본)]는 만 24세의 김대건 신부(조선 순조 21년 辛巳年~헌종 12년 丙午年)가 1846년 9월 16일, 현 서울 용산구 이촌동 199-1번지(이촌로 80-8)에 있던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1년 전, 당시 서울에 머물던 약 3달 사이에 제작된 것이다(가톨릭대사전, 김대건,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 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131).2)김종근(2020, 145-147)의 연구 결과, 지도의 크기, 해안선의 형태, 섬의 묘사 방식 등을 볼 때, 이 지도의 저본은 현재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정상기류의 <팔도전도>(《팔도지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3)

한편 1846년에 <조선전도>(원본)을 중국인에게 의뢰하여 복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사본 지도 2종(<사본Ⅰ>, <사본Ⅱ>)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함께 소장되어 있다. 이들 지도에 수록된 지명의 수는 <조선전도>(원본)에 400개(자연지명 114개, 인문지명 286개), <사본Ⅰ>에 376개, 그리고 <사본Ⅱ>에 373개가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다(김종근, 2020, 138, 148).

본 연구의 목적은 이 3종의 지도에 기재된 지명의 로마자 표기를 전수 조사하여 로마자 표기 방식의 유형을 나누고 그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다. 특히 김대건 신부가 전사한 <조선전도>(원본) 속 로마자 지명의 표기 방식이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에 있어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후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론적으로 살펴보는데 초점을 두었다.

연구 내용은 첫째,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를 전자법과 전사법(전음법)으로 구분하여 『한불자전』(1880)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전자법이 우세하게 적용되다가, 『한영자전』(1890, 1897) 이후 전사법이 주류를 이루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상황을 정리하였다. 둘째, 김대건 신부가 1842년부터 1846년 사이, 즉 1845년 <조선전도>(원본)을 제작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라틴어 및 프랑스어 등으로 작성하여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에게 보낸 21통의 편지들에 수록된 로마자 표기 지명 자료 등을 대상으로 <조선전도>(원본) 수록 지명들과 교차 분석하여 당시 표기 규범이 마련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진행된 로마자 표기의 특성을 비교하였다.

셋째, 김종근(2020)의 연구 과정에서 정리된 <조선전도>의 지명 자료들, 특히 가톨릭의 조선 포교를 위한 조선으로의 이동 루트 파악과 포교 전략 수립을 위해 중시되었던 군현과 도서(섬) 지명 자료 등을 중심으로 해당 로마자 지명의 모음과 자음을 분석하여 로마자 표기의 전자법과 전사법적 특성을 도출하였다. 이를 토대로 전자법이 우세하게 채택된 것으로 보이는 『한불자전』(1880)의 로마자 표기에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표기 방식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에 있어 이 지도에 수록된 로마자 지명이 가지는 언어적 가치를 제시하고, 지도 작성 및 지명 표기 과정에서 발견되는 주요 오류들을 지도 제작의 정확성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2.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 소리와 글자 사이에서의 선택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를 먼저 살펴보는 이유는 김대건 신부가 제작한 <조선전도>(원본)(1845)는 어떤 방식으로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했고, 이것이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표기가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그 영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로마자 표기는 대체로 『한불자전』(1880)의 편찬 시기에는 전자법이 우세하게 적용되다가, 『한영자전』(1890) 이후에는 전사법(전음법)이 주류를 이루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romanization)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즉 전자법(轉字法, transliteration, 글자 전달 방식)과 전사법(轉寫法, 轉音法, transcription, 소리 전달 방식)이 있다(표 1). 전사법(전음법)은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음성적 이름을 전환하는 방법(소리를 문자로 전환)이고,4) 전자법은 서로 다른 자모 문자와 음절 문자 사이에서 수행하는 지명 전환의 방법(문자를 문자로 전환)으로서 전사법과 달리 원어로의 환원성과 가역성(reversibility)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5) 현재 유엔지명전문가그룹(UNGEGN)에서는 전자법을 권장하고 있다(김순배, 2019).

표 1.

전자법과 전사법(전음법)의 분류

표기 종류 표기 목표 사례
(속리산)
환원성 가부
전자법 (轉字法) 원어로의 환원성 문자 전달 중시 글자(철자) 중시 Soglisan 속리산 (가능)
전사법 (轉寫法) 원음과의 유사성 음성 전달 중시 발음(소리) 중시 Songnisan 송니산 (불가능)

자료: 배석주(2003, 177)김영훈・김순배(2010, 49)를 수정하여 작성함.

예를 들어, 전사법(전음법)은 한 언어의 말을 발음(소리)대로 다른 언어의 자모로 옮겨 적는 방법으로,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이 방법에 따른다면 ‘신라’를 ‘Silla’ [실라]와 같이 표기한다. 이와는 달리 전자법은 한 언어의 말을 철자(문자, 글자)대로 다른 언어의 자모로 옮겨 적는 방법으로, ‘신라’는 ‘Sinla’ [신라]로 표기한다(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

그런데 특정 언어를 다른 문자로 표기할 때 그 언어의 소리를 적을 것인가 혹은 문자를 적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대상 언어에 문자가 따로 없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국어의 경우 ‘한글’이라는 고유의 문자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한자(漢字)와 같은 표의문자는 문자가 있더라도 그 문자에는 소리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는 고유의 표기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 양상이 더 복잡하다고 알려져 있다(한성우, 2020, 238).

전자법의 경우, 대상 언어(원천 언어)의 문자를 목적 언어(수혜 언어)의 문자로 전사하면서 문자 대 문자의 대치이므로 간단해 보일 수 있으나 문자의 한계와 체계의 차이, 그리고 대상어와 목적어의 문자체계가 완벽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문자가 소리를 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에 대한 고려 없이 문자만을 대치시킬 경우 대상 언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전사법(전음법)의 경우, 언어의 본질이 문자가 아닌 소리이기 때문에 대상 언어의 정확한 정보를 나타내기 위해서 전자법보다 더 본질적이고 정확한 방식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목적어의 표기체계에 한계가 있다면 대상어의 소리가 제대로 반영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전사 과정에서의 소리의 인식과 표기의 문제, 즉 ‘들리는 소리’에 대한 인상적인 표기가 이루어질 수 있어 소리를 실체적으로 반영하는 표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한성우, 2020, 238-239).

전자법과 전사법(전음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이 장에서는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에 있어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는 두 이개어 사전, 즉 가톨릭 신부들에 의해 편찬된 『한불자전』(1880)과 십여 년 후에 『한불자전』을 참고하여 편찬된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한 『한영자전』(1897)의 로마자 표기 방식의 차이점과 후대의 영향을 간략히 제시하였다.

1) 『한불자전』(1880)의 로마자 표기: 전자법의 채택

조선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 선교사, 펠릭스 클레르 리델(F. C. Ridel) 신부가 1880년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판한 『한불자전』(1880)은 당시의 이개어(한국어-프랑스어) 사전 중 가장 많은 표제어인 약 29,000개(어휘부, 지리부)를 수록했다는 점에서 이후 집필된 이개어 사전의 기초 자료로서의 의의와 함께 한국어에 대한 방대한 규모의 로마자 표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크다(파리외방전교회・펠릭스 클레르 리델, 2014; 이은령 등, 2013, 107-108). 특히 『한불자전』이 편찬되기 40여 년 전, 김대건 신부가 작성한 서한 자료(1842~1846)들이 리델 신부와 동일한 선교 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과 나눈 편지들임을 감안할 때 로마자 표기 방식에 있어 이 두 자료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불자전』이 한국어가 체계적이고 전면적으로 로마자로 표기된 최초의 문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의 한국어 로마자 표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전의 서문에는 한글의 모음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제자 원리를 먼저 밝히고, 한국어 모음을 프랑스어의 알파벳 모음 순서에 따라 로마자 표기와 함께 표로 제시하였다. 또한 자음에 대해서도 서문의 본문 중간과 말미의 표에 프랑스어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한글과 그것의 로마자 표기를 제시하고 있어, 일종의 전자표(轉字表, transliteration key)를 갖추고 있다.

이 전자표에는 한국어의 음운체계에 따른 모음이 아니라 관습적인 모음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데, 단모음과 이중모음이 같이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표기만 남아 있던 ‘ㆍ’(아래아)가 모음으로 제시되어 있다.6)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단모음화된 것으로 보이는 ‘ㅔ’, ‘ㅐ’ 등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불자전』이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소리가 아닌 글자를 로마자화 하는 전자법을 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 ‘고기’는 음성적인 변화까지 감안하면 ‘KOGI’로 표기해야 하는데 『한불자전』에서는 ‘KOKI’로 표기하고 있어, 이 사전이 전자법을 채용했음을 알 수 있다(한성우, 2020, 242-246).

한편 『한불자전』(1840)의 로마자 표기는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사용하여 대상 언어인 한국어 글자를 명확하게 목적 언어로 전달하는 전자법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졔쥬, TJYEI-TJYOU, 濟州”와 “한라산, HAN-RA-SAN, 漢羅山”의 사례와 같이 음절 사이 붙임표(-)를 사용하여 로마자로 표기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붙임표를 사용하지 않은 <조선전도>(원본)(1845)의 “Tsetsou”와는 달리, 서한 자료(1842~1846)에는 ‘충청도’를 “Ttsoung-ttseng-to”로 표기한 사례와 동일하다(표 3).

이를 통해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의 로마자 표기 방식이 그들과 편지를 왕래하던 김대건 신부의 로마자 표기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붙임표(-)가 없는 서한 자료의 또 다른 “Tsoungttsengto” 표기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대건 신부의 로마자 표기 당시에는 전자표와 같은 일정한 표기 규범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음도 유추할 수 있다. 붙임표(-)를 사용하는 로마자 표기 전통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14)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2) 『한영자전』(1890, 1897) 편찬 이후의 로마자 표기 경향: 전음법의 우세

캐나다 선교사 게일(J. S. Gale)이 『한불자전』(1880)과 미국 선교사가 편찬한 소형 사전인 『한영자전』(1890), 그리고 오랜 기간 조선에 체류하면서 수집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이개어(한국어-영어) 사전이 바로 『한영자전』(1897)이다. 게일의 『한영자전』은 전문용어, 신조어, 고유명사(인명, 지명) 등을 등재하여 3판까지 출판하면서 점진적으로 등재어 목록을 확장해 나갔고, 약 34,000개의 표제어를 로마자 표기와 함께 제시하면서 이후 우리나라 로마자 표기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이은령 등, 2013, 74-75, 107-108, 183).

특히 『한영자전』(1890)은 한국어의 소리에 초점을 맞춰 로마자로 표기하였다. 『한불자전』은 한글 자모의 제자원리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한영자전』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즉 한글 표기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귀에 들리는 소리에 따라 로마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영자전』이 전사법(전음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ㆍ’(아래아)를 ‘ㅏ’와 같게 표기한 것이다. 즉 이 시기의 ‘ㆍ’는 문자로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사전에서는 로마자 표기에서는 따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한성우, 2020, 252-253).

그런데 『한영자전』은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에 있어 『한불자전』보다 표기 방식에서 더 영향력이 컸다. 당시 프랑스어와 영어가 모두 국제어로서 기능을 했지만 이후 영어의 위상이 더 높아졌고, 따라서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도 영어를 전제로 개발되고 변화하게 되었다(한성우, 2020, 252-253). 한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영어식 로마자로 표기된 지도의 생산과 보급이 증대되면서 영어가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방식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는 연구도 있다(박경, 2015, 35).

『한영자전』 출판 이후,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1939년 영어를 사용하는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매큔-라이샤워 표기법(The McCune-Reischauer System for the Romanization of Korean)이 등장하였고 지금까지 다섯 차례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표 2).7) 대체로 전사법(전음법)과 전자법이 시대별로 달리 적용되어 오다가 현재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14)은 전자법을 예외 규정으로 포함하고 있는 전사법을 기준 표기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표 2.

주요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의 특징

연도 표기법 표기 방식
(속리산 / 전주 / 신라)
주요 특징
1939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전사법 자음의 유ㆍ무성 구별, 구별 부호 사용
자음이 유성음화 반영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유리하고 일반 내국인에게는 난해함
발음(소리) 중시
Songnisan / Chŏnju / Shilla
1940 조선어음 라마자표기법
(조선어학회안)
절충안(전자법) 구별 부호 사용
한국인들의 표기에 유리함
글자 중시, 일부 발음 적용
Sognisan / Zŏnzu / sinla
1948 한글을 로오마자로 적는법
(문교부 1안)
절충안(전자법) 구별 부호 사용
자음의 유성음화 반영
한국인들의 표기에 유리함
글자 중시, 일부 발음 적용
Soknisan / Chŏnju / Sinla
1954 예일 시스템 전자법 단모음 표기에 이중자 사용
한국인과 외국인(전문가)들의 표기에 유리함
일반 외국인들에게는 표기와 발음이 난해함
철저한 글자(철자) 중시
Sok.li-san / ceoncu / sin.la
1959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문교부 2안)
전자법 단모음 표기에 이중자 사용
일반 외국인들에게는 표기와 발음이 난해함
글자 중시
Sogrisan / Jeonju / Sinla
1984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문교부 고시)
전사법 자음의 유ㆍ무성 구별, 구별 부호 사용
자음의 유성음화 반영
한국인들에게는 표기와 발음이 난해함
발음 중시
Songnisan / chŏnju / Shilla
2000
(2014)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문화관광부 고시)
전사법 단모음 표기에 이중자 사용(어: eo, 으: eu)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유리함
발음 중시
Songnisan / Jeonju / Silla

주: ‘연도’ 항목에 있는 ‘(2014)’는 2000년에 고시된 표기법을 2014년에 일부 개정하여 고시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4-0042호 (2014.12.05.)]을 가리킴.

자료: 배석주(2003, 178)김영훈・김순배(2010, 49)를 토대로 수정・보완함.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제시되어온 표기법들은 외국인들의 사용을 전제로 한 한국어 발음과 소리를 중시한 표기법도 있지만, 외국인의 사용과는 무관하게 한국어의 체계를 중시하여 한국어의 철자(글자, 문자) 중시의 표기법을 취한 것도 적지 않다. 따라서 표기법의 원칙과 목표가 음성(소리) 전달을 위주로 할 것인가, 혹은 문자(글자) 전달을 위주로 할 것인가에 의해 전혀 상반된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배석주, 2003, 175; 김영훈・김순배, 2010, 49-50).

표 2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2000년(2014년 일부 개정)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4-42호 (2014. 12. 5. 시행)]의 경우, 전사법을 채택하여 대상 언어의 발음과 소리를 목적 언어인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다. 로마자 표기 사례에 있어 ‘속리산 / 전주 / 신라’의 경우, 각각 ‘Songnisan / Jeonju / Silla’로 표기된다. 특히 ‘어: eo’, ‘으: eu’ 등과 같이 단모음 표기에 있어 이중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유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사법(전음법)을 로마자 표기의 기본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14)에는 “[붙임]”의 형태로 앞서 살펴본 붙임표(-)를 사용하는 방식 등과 같이 전자법의 장점을 보완하거나8) 전사법(전음법)이 가지고 있는 발음상의 혼동과 한계를 대체하는 번거로운 방식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9) 그 결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정확하게 한국어를 로마자로 전달하고 안내해야 하는 로마자 표기법의 기본 원칙을 고려할 때 ‘문자의 가역성 및 환원성’과 ‘원활한 소통’을 촉진하는 전자법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의 표준 발음’을 강조하는 듯한 기존의 전사법(전음법)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김선일, 2019; 김순배, 2019).

3. <조선전도>(원본) 지명의 로마자 표기 방식

전자법과 전사법(전음법)의 기능과 한계를 고려할 때, <조선전도>(원본)에 수록된 로마자 지명 또한 1845년 제작 당시 김대건 신부가 어떤 자료를 토대로, 어떠한 방식으로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당시의 로마자 표기 방식을 규명하는데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당시 김대건 신부가 저본으로 추정되는 <팔도전도>의 한자로 표기된 지명을 혼자서 또는 주변 조선인의 도움을 얻어 한국한자음으로 읽어 그 들리는 소리를 로마자로 표기했는지(전음법), 혹은 <팔도전도>에 수록된 한자 지명을 당시 한글로 표기된 다른 기록 자료를 참고하여 그 문자를 로마자로 옮겼는지(전자법)에 대한 판단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조선전도>(원본)에 수록된 로마자 표기에 대한 구체적인 음성 및 음운 분석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로마자 표기 분석에 앞서, <조선전도>(원본)의 제작자인 김대건 신부의 언어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1821년 당시 충청도 면천군 번서면 솔뫼 마을(현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서 태어나 만 6세가 되는 1827년에 박해를 피해 서울 청파, 용인 한덕동, 그리고 용인 골배마실로 이주하였고, 만 15세가 되는 1836년 4월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그해 12월에 마카오로 이주하였다. 그 후 만 21세가 되는 1842년 2월 프랑스 함대의 에리곤호에 승선하여 마카오를 떠나기까지, 약 5년 간 마카오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임시로 설립된 조선 신학교에서 신학, 프랑스어, 라틴어 등을 학습하였다. 1842년 2월부터 <조선전도>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1845년 1월까지는 조선 입국을 모색하면서 약 3년 간 주로 중국에 거주하였다(가톨릭대사전, 김대건; 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39-45; 김종근, 2020, 135-136). 즉 실제 조선에 거주한 것은 약 15년간이었고, 약 8년간 외국에 거주하다 만 24세가 되는 1845년에 조선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조선전도>(원본)를 제작한 1845년 당시 김대건 신부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라틴어, 중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특히 그의 서한문(편지)에 나타난 언어와 관련된 여러 일화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한자 지명에 있어 한국한자음 보다는 중국한자음에 더 익숙한 상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지명 표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토대로, <조선전도>(원본)에 수록된 로마자 지명들에 대한 분석은 김대건 신부의 서한 자료에 등장하는 표 3의 로마자 표기, 그리고 표 45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불자전』(1880)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14)에 제시된 모음 및 자음 표기와 상호 비교하여 진행하였다.

표 3.

김대건 신부 『서한』의 주요 지명 로마자 표기

지명 및 인명 『서한』(1842~1846) 지명 표기
(번호/연도/장소)
<조선전도>
원본(1845)
지명 표기
비고
조선(어)(인) Coream (1/1842/마닐라)
Coreā Coreae Coreanus (4/1842/요동 백가점)
Corea (6/1843/요동)(16-2/1845/서울)
*Corée Coréens (9/1844/몽골 소팔가자)
Corée *프랑스어
서울[한양] Seorum Hangnan (6/1843/요동)
Seoul Hangniang (10/1845/서울)
Seoul (14/1845/상해)(16-2/1845/서울)
SEOUL HANGNAN (16-2/1845/서울)
Seoul (17/1845/상해)(20/1846/서울)
Seoul Anyang
금부[義禁府] Keumpou (11/1845/서울)
*Keum-pou(16-2/1845/서울)
없음 *음절 사이에 붙임표(-) 표기
포청[捕盜廳] Potseng 없음
사관청(仕官廳) *Sa Kouan Tseng 없음 *음절 사이 띄어쓰기
형조(刑曹) *Ieng tso 없음 *[h] 표기 생략
*음절 사이 띄어쓰기
충청도 *Ttsoung-ttseng-to (10/1845/서울)
Tsoungttsengto (16-2/1845/서울)
Tshoung-tsheng (20/1846/서울)
Tsongtsengto *음절 사이에 붙임표(-) 표기
전라도 *Tselato (16-2/1845/서울)
*Tsella (20/1846/서울)
**Tsenlato *절라(도): 전음법
**전라도: 전자법
강원도 *Kangouento (16-2/1845/서울) *Cangouen *강[kang/cang]
김해 Kim-ay (1/1842/마닐라)
Kim-ai (5/1842/요동)
*Kimai (9/1844/몽골)
Kim-hai (10/1845/서울)
KIM-HAI (11/1845/서울)
**Kim Hai (16-1/1845/상해)
Kimhai *붙임표(-) 없이 연철 표기
**음절 사이 띄어쓰기
수원 *Souen (6/1843/요동) Souèn *수언(전음법)
의주 Ietsou (6/1843/요동)
Eitsou (10/1845/서울)
Eitseou (14/1845/상해)(16-2/1845/서울)
Eitsiou
邊門[柵門] *Pien-moun (4/1842/요동)(10/1845/서울)(14/1845/상해)
**Pien Moun (16-2/1845/서울)
Pienmen Desert *당시 조선(의주 변문)과 중국
(책문) 사이의 국경을 이루는
성문
**음절별 띄어쓰기
경원(慶原) Kien-nen (9/1844/몽골) Kiengouen
평양 Piengiang (10/1845/서울)
Pieng-iang (14/1845/상해)
없음
홍주(洪州) Hongtsou (16-2/1845/서울) Hongtiou
해주(海州) *Hai tsu (20/1846/서울) Haitsou *음절별 띄어쓰기
강경(江景) Kiang-kieng (18/1845/서울) Kangkien *충청도 강경
이천(利川) *Jesan (20/1846/서울) **Itsen [Liesan] *충남 예산군(?)
**경기도 이천시
양지(陽智) *Jantsi (20/1846/서울) 없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 *Ogni (20/1846/서울) 없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한터골[寒德洞] *Hantecol (16-2/1845/서울) 없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군푸대[군포내] *Kounputai (16-2/1845/서울) 없음 *과천 군포내
노돌[鷺梁津] *Notol (16-2/1845/서울) 없음 *ᄃᆞᆯ~돌~들 梁, 새남터
용당리(龍塘里) Iontanggni (16-2/1845/서울) 없음 *충남 아산시 선장면 가산리
제주도 *Quelpaert (18/1845/서울) Tsetsou *외래지명,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 명칭
백령도(白翎島) *Pe-lin-tao (19/1846/서울)
*** Pelintao (20/1846/서울)
**Paiknieng *중국 한자음 표기
**한국 한자음 표기
***음절별 붙여 쓰기
연평도(延坪島) Yenpieng (20/1846/서울) Eanpang
순위도(巡威島) Souney (20/1846/서울) Souneito
소강(蘇江) So Kang (20/1846/서울) 없음
마합(馬哈) Maihap (20/1846/서울) 없음
터진목 *Thetsinmok (20/1846/서울) 없음 *황해도 장연군 서대면
대진포(垈津浦)
소청도(小靑島) Sotseng (20/1846/서울) Siotseng
대청도(大靑島) Taiseng (20/1846/서울) Taitseng
외연도(外煙島) *Oiento *Eiyèn *외[oi/ei]
압록강 Yalo (6/1843/요동)
Ialo (7/1843/요동)
Amno fl.
豆滿江 *Mikiang Mi-kiang (9/1844/몽골) 없음 *密江鄕(Mijiangxiang)
(현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태백산(太白山) Ta-pei-chan (9/1844/몽골) 없음
수리산(修理山) *Surisan (16-2/1845/서울) 없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3동 뒤뜸이
노고산(老姑山) *Lokousan (16-2/1845/서울) 없음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서강대 뒷산
관악산(冠岳山) *Kouanaksan (16-2/1845/서울) 없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三聖山
황해 Hoang-hai (20/1846/서울) 없음
일본해 *mer du Japon (9/1844/몽골) 없음 *프랑스어, 훈춘과 가까운
바다(동해)를 지칭하면서 사용
중국[淸](어)(인) Sinas (1/1842/마닐라)
Sinarum (4/1842/요동)
*Chine Chinois (9/1844/몽골)
Sinenses (12/1845/서울)
없음 *9번째 편지는 프랑스어
역본만 남음
蓋州 Kaitcheou (4/1842/요동)
Kaitseou (5/1842/요동)
없음
陽關 Iang-kouan (5/1842/요동) 없음
몽골 *Mongolie (9/1844/몽골)
Mongoliā (10/1845/서울)
없음 *프랑스어
山東 *Chantong (3/1842/상해)
Xan-tong (4/1842/요동)(16-1/1845/상해)
Xantonenses (19/1846/서울)
**Chantong (20/1846/서울)
없음 *음절 사이에 붙임표(-) 없이
표기
**Ch→X→Ch
遼東 Leao-Tong (4/1842/요동)
Leatong (5/1842/요동)
없음
강남(江南) Kiang-nan (3/1842/상해)(16-1/1845/상해)
*Kiangnan (10/1845/서울)
Kiangnang Kiang-nang (12/1845/서울)
없음 *[jiāngnán](네이버 중국어사전)
北京 Peking (3/1842/상해)
Pékin (9/1844/몽골)
Pekino (16-2/1845/서울)
없음
上海 Sang-hai *Sanghai (3/1842/상해)
**Xang-hai (16-1/1845/상해)
Xang-hai (17/1845/상해)
없음 *음절 사이에 붙임표(-) 없이
표기
**S→X
대마도 없음 *Taimato *한국 한자음 표기
(이하 인명)

김여상 이
*Kim Ye-sam i (6/1843/요동)
Kim Iesangi (12/1845/서울)
**Kim Iesangi Kim Jesangi Kim Iesangni (16-2/1845/서울)
없음 *~i(~이): 인칭 접미사
**Y→I→J
김정의(희) *Kim Tseng Ei (11/1845/서울)
Kim Tsengei (16-2/1845/서울)
없음 *秋史 金正喜(1786~1856)(?)
*음절별 띄어쓰기
이승훈 이 *I Senghungni (16-2/1845/서울) 없음 *李承薰(1756~1801), 1784년
봄에 조선인 최초로 세례
받은 인물
문화 *MOUNHOA (16-2/1845/서울) **Mounhoa *남 다미아노 (南明赫)
(1802~1839)의 이름
**황해도 문화
원 마리아 *MARIA OUEN **Ouentsou *元貴任(1818~1839)
**원[ouen], 강원도 원주
정 바오로 *PAULUS TSENG **Tsengsen *丁夏祥(1795~1839)
**정[tseng], 강원도 정선
유용선 이 *IOUIONGSENGNI **Yeniou
***Yongan
*劉進吉(1791~1839)
**유[iou], 평안도 영유
***용[iong/yong], 전라도 용안

주1: ‘『서한』 지명 표기’ 항목의 ‘(번호/연도/장소)’는 각각 편지의 번호, 작성 시기, 작성 장소를 가리킴.

주2: ‘『서한』’과 ‘<조선전도>’ 항목의 밑줄 및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은 두 자료의 표기가 일치하는 경우로, 필자에 의해 편집된 것임.

주3: ‘비고’ 항목의 ‘a > b’는 지명 a에서 지명 b로의 통시적 변화를, ‘a → b’는 지명 a에서 지명 b로의 공시적 변화를 뜻함.

자료: 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한국교회사연구소.

1) 『서한』 자료의 로마자 표기

김대건 신부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과 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간행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2021) (이하 『서한』)이 주목된다. 이 자료에는 김대건 신부가 1842년부터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직전까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에게 보낸 21통의 편지가 라틴어, 프랑스어 등의 원문과 함께 번역되어 있다(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37).

특히 『서한』 자료는 <조선전도>(원본)이 제작된 1845년을 전후로 작성된 것으로 당시 로마자 표기에 대한 일정한 규범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의 지명에 대해 다양한 로마자 표기 방식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따라서 『서한』자료에 등장하는 고유 명사(지명, 인명, 관직명, 인공시설 명칭 등)의 로마자 표기는 <조선전도>(원본)에 기재된 지명 로마자 표기의 특수성과 일반성을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표 3).

표 3에 제시된 바와 같이, 김대건 신부의 서한에 기재된 구체적인 지명 및 인공시설 명칭 등에 대한 로마자 표기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시된 순서는 ‘지명’, ‘『서한』에 나타난 지명 표기’, 그리고 괄호 안에 서한문의 고유번호와 작성 연도, 발신 장소 순으로 설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조선전도>원본(1845)에 기재된 해당 지명의 표기를 제시하였다.

우선 ‘조선(어)(인)’의 경우, 서한에 Coream (1/1842/마닐라), Coreā / Coreae / Coreanus (4/1842/요동 백가점), Corea (6/1843/요동)(16-2/1845/서울), 그리고 Corée / Coréens (9/1844/몽골 소팔가자) 등으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Corée로 나타나고 있어 그 표기가 일치한 사례가 있다.

당시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한양]’의 경우, 서한에 Seorum / Hangnan (6/1843/요동), Seoul / Hangniang (10/1845/서울), Seoul (14/1845/상해)(16-2/1845/서울), SEOUL / HANGNAN (16-2/1845/서울), 그리고 Seoul (17/1845/상해)(20/1846/서울) 등으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Seoul과 Anyang으로 표기되고 있어, 서로 일치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당시 조선 정부의 관청 명칭이던 ‘금부[義禁府]’의 경우, 조선전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며, 서한에 Keumpou (11/1845/서울), Keum-pou(16-2/1845/서울)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Keum-pou’는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표기하고 있어 『한불자전』(1880)에서 보이는 붙임표 사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포청[捕盜廳]’의 경우, Potseng으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관청(仕官廳)’의 경우 서한에 Sa Kouan Tseng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특히 ‘Sa Kouan Tseng’의 경우 음절 사이를 띄어 쓰는 표기법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형조(刑曹)’의 경우, 서한에 Ieng tso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특히 [h]음의 표기가 생략되어 있으며, 음절 사이 띄어쓰기를 적용하였다.

당시 조선의 도명인 ‘충청도’의 경우, 서한에서는 Ttsoung-ttseng-to (10/1845/서울), Tsoungttsengto (16-2/1845/서울), Tshoung-tsheng (20/1846/서울)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 표기된 Tsongtsengto와 비교할 때 약간의 표기상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특히 ‘Ttsoung-ttseng-to’의 경우,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사용하여 표기하였다.

‘전라도’의 경우, 서한에서는 Tselato (16-2/1845/서울), Tsella (20/1846/서울)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Tsenlato로 표기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가 보이고 있다. 특히 서한의 ‘Tselato’ (절라도)는 전음법적 특징을 보이며, 조선전도의 ‘Tsenlato’ (전라도)는 전자법적인 특징이 발견되고 있어 흥미롭다. ‘강원도’의 경우 서한에서는 Kangouento (16-2/1845/서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Cangouen로 나타나고 있어, ‘강’[kang/cang]의 표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경상도 지명인 ‘김해’의 경우, 김대건 신부의 본관(本貫)으로 서한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Kim-ay (1/1842/마닐라), Kim-ai (5/1842/요동), Kimai (9/1844/몽골), Kim-hai (10/1845/서울), KIM-HAI (11/1845/서울), Kim Hai (16-1/1845/상해)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Kimhai로 기재되어 있어, 약간의 표기상의 차이점이 보이고 있다. 특히 서한의 ‘Kimai’의 경우 붙임표(-) 없이 연철(連綴)로 표기(‘기매’)했으며, ‘Kim Hai’는 음절 사이를 띄어 쓰고 있어 조선전도의 표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 ‘수원’ 지명의 경우 서한에서는 Souen (6/1843/요동)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서는 Souèn으로 표기되어 있다. 두 표기 사례 모두 ‘수언’으로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있어 전음법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평안도 ‘의주’는 중국 청나라의 국경과 접경한 곳으로 당시에는 중국의 변문과 조선의 책문이 근처에 설치되어 있어 김대건 신부의 서한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즉 서한에서는 Ietsou (6/1843/요동), Eitsou (10/1845/서울), Eitseou (14/1845/상해)(16-2/1845/서울)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전도에서는 Eitsiou로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두 자료에서 서로 일치하는 표기는 없으나, 유사하게 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로 비정되는 인명 ‘김정의’가 음절별로 띄어 쓴 형태인 Kim Tseng Ei (11/1845/서울)와 성과 이름 사이를 띄어 쓴 Kim Tsengei (16-2/1845/서울)로 표기되어 있어, 두 자료 모두 ‘의주’의 [의]를 [ei]로 동일하게 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의주 변문)과 중국(책문) 사이의 국경을 이루는 성문이었던 ‘邊門[柵門]’의 경우, Pien-moun (4/1842/요동)(10/1845/서울)(14/1845/상해), Pien Moun (16-2/1845/서울)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전도의 표기에는 Pienmen Desert가 기록되어 있다. 서한의 ‘Pien Moun’의 경우, 조선전도와는 달리 음절별 띄어쓰기를 보이고 있다. 두만강변에 위치하던 함경도 ‘경원(慶原)’의 경우, 서한에서는 Kien-nen (9/1844/몽골)으로, 조선전도에는 Kiengouen으로 나타나고 있어,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평안도 ‘평양’은 서한문에서는 Piengiang (10/1845/서울), Pieng-iang (14/1845/상해)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조선전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충청도 지명 ‘홍주(洪州)’의 경우, 서한에서는 Hongtsou (16-2/1845/서울)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서는 Hongtiou가 표기되어 있어, 표기상에 약간의 차이가 보이고 있다. 황해도 ‘해주(海州)’ 지명의 경우, 서한에서는 Hai tsu (20/1846/서울)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음절별 띄어쓰기를 적용하고 있다. 충청도의 주요 포구인 ‘강경(江景)’의 경우, 서한에서는 Kiang-kieng (18/1845/서울) 등으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는 Kangkien으로 기록되어 있어 약간의 표기 차이가 있다. 충청도 ‘예산’의 경우, 서한에서는 Jesan (20/1846/서울) 등으로 기록되어 있고, 조선전도에서는 Liesan으로 표기되어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대건 신부가 유년시절을 보낸 경기도 용인 지역의 지명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지명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경기도 ‘양지(陽智)’(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의 경우, 서한에서는 Jantsi (20/1846/서울) 등으로 나타나나 조선전도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은이’ 지명은 서한에서 Ogni (20/1846/서울)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로 비정되는 ‘한터골’[寒德洞]의 경우, Hantecol (16-2/1845/서울)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밖에 당시 천주교인들의 거주지나 조선 입국과 관련된 해로 상의 섬(도서) 지명이 서한에 다수 나타나고 있다. 현재 경기도 과천 군포내로 비정되는 ‘군푸대’[군포내]의 경우, 서한에서는 Kounputai (16-2/1845/서울) 등으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현재 서울 노량진 지명에 해당하는 ‘노돌’[鷺梁津]의 경우, 서한에서는 Notol (16-2/1845/서울)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당시 김대건 신부의 처형 장소인 새남터 부근에 위치한다. 현재 충남 아산시 선장면 가산리에 위치했던 ‘용당리’(龍塘里) 지명의 경우, 서한에서는 Iontanggni (16-2/1845/서울)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도서(섬) 지명들과 관련하여 먼저 ‘제주도’의 경우, 서한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의 명칭에서 유래한 Quelpaert (18/1845/서울)가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제주’라는 한국한자음을 표기하여 Tsetsou로 기록되어 있다. ‘백령도(白翎島)’의 경우, 서한에서는 중국한자음으로 표기한 Pe-lin-tao (19/1846/서울), 그리고 음절별로 붙여 쓴 Pelintao (20/1846/서울)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한국한자음을 반영하여 Paiknieng이 기재되어 있다. ‘연평도(延坪島)’의 경우, 서한에서는 Yenpieng (20/1846/서울)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서는 Eanpang으로 기재되어 있어 표기상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황해도의 ‘순위도(巡威島)’는 서한에서는 Souney (20/1846/서울) 등으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서는 후부지명소인 ‘~도’를 포함하여 Souneito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현 위치를 비정할 수 없는 ‘소강(蘇江)’이, 서한에 So Kang (20/1846/서울)으로, ‘마합(馬哈)’이 Maihap (20/1846/서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두 지명 모두 조선전도에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현재 황해도 장연군 서대면 대진포(垈津浦)로 비정되는 지명 ‘터진목’의 경우, 서한에서는 Thetsinmok (20/1846/서울)으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소청도(小靑島)’의 경우, 서한에서는 Sotseng (20/1846/서울) 등으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에는 Siotseng으로 표기되어 있어 약간의 표기상의 차이가 있다. ‘대청도(大靑島)’의 경우, 서한에는 Taiseng (20/1846/서울)으로, 조선전도에는 Taitseng으로 표기되어 초성 자음 [ㅊ]에 대해 [s]와 [ts]로 달리 표기되어 있다. ‘외연도(外煙島)’의 경우, 서한에서는 Oiento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는 Eiyèn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외]에 대해 [oi]와 [ei]로 달리 표기되어 있어, 이를 통해 김대건 신부의 당대에는 전자키와 전사키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로마자 표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조선전도>(원본) 지명의 모음과 자음에 대응하는 로마자 표기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자연 지명인 하천 및 산지 지명과 관련하여, ‘압록강’의 경우, 서한에서는 Yalo (6/1843/요동), Ialo (7/1843/요동) 등으로 나타나고, 조선전도에서는 Amno fl.로 기재되어 있어, 일정한 차이가 보인다. ‘두만강(豆滿江)’의 경우, 서한에서는 Mikiang, 그리고 Mi-kiang (9/1844/몽골)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에는 해당 표기가 없다. 이 때 Mikiang(미강)은 현재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위치한 密江鄕(Mijiangxiang)과 관련된 지명인 것으로 보인다.

‘태백산(太白山)’의 경우, 서한에서는 Ta-pei-chan (9/1844/몽골)으로 등장하고, 조선전도에서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현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3동 뒤뜸이에 위치한 ‘수리산(修理山)’의 경우 조선전도에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서한에 Surisan (16-2/1845/서울)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현재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서강대 뒷산인 ‘노고산(老姑山)’이 서한에 Lokousan (16-2/1845/서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전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현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三聖山(삼성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관악산(冠岳山)’은 조선전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서한에 Kouanaksan (16-2/1845/서울)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다 명칭과 관련하여 김대건 신부의 서한에는 황해와 동해(일본해)가 기록되어 있다. ‘황해’의 경우, 서한에 Hoang-hai (20/1846/서울)와 같이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사용하여 표기하였으며, ‘동해’의 경우, 당시 훈춘과 가까운 바다(동해)를 지칭하는 프랑스어 mer du Japon (9/1844/몽골), 즉 ‘일본해’로 기재되어 있다. 그 까닭은 1602년(조선 선조 35) 이탈리아 예수회 소속 가톨릭 사제였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에 의해 제작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에 이 해역이 “日本海”(일본해)로 표기된 이래로, 가톨릭 선교사들은 이 해역을 동해보다는 일본해로 학습하여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김대건 신부 또한 프랑스인 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들이 정확하게 해당 해역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일본해, 즉 “mer du Japon”으로 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한에 표기된 황해와 일본해는 모두 조선전도에는 그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건 신부의 서한에 등장하는 중국 지명의 경우 중국한자음 등으로 로마자 표기가 되어 있고, 조선전도에는 대부분 표기되어 있지 않다. 구체적인 로마자 표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淸](어)(인)’의 경우, 서한에 Sinas (1/1842/마닐라), Sinarum (4/1842/요동), Chine / Chinois (9/1844/몽골), Sinenses (12/1845/서울) 등으로 나타난다. ‘蓋州’의 경우, 서한에는 Kaitcheou (4/1842/요동), Kaitseou (5/1842/요동) 등으로, ‘陽關’의 경우, 서한에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사용하여 Iang-kouan (5/1842/요동)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몽골’의 경우, 서한에 프랑스어로 Mongolie (9/1844/몽골), Mongoliā (10/1845/서울)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山東’의 경우, 서한에 Chantong (3/1842/상해), Xan-tong (4/1842/요동)(16-1/1845/상해), Xantonenses (19/1846/서울), Chantong (20/1846/서울)으로 표기되어 있어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사용하거나 편지의 작성 시기에 따라 ‘山’의 중국한자음 초성이 [Ch]→[X]→[Ch]로 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遼東’의 경우, 서한에 Leao-Tong (4/1842/요동), Leatong (5/1842/요동) 등으로, ‘江南’의 경우, 서한에 Kiang-nan (3/1842/상해)(16-1/1845/상해), Kiangnan (10/1845/서울), Kiangnang / Kiang-nang (12/1845/서울)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현대 중국어 발음인 [jiāngnán]과 비교하여 [k]와 [j]의 차이가 보이고 있다.

‘北京’의 경우, 서한에 Peking (3/1842/상해), Pékin (9/1844/몽골), Pekino (16-2/1845/서울) 등으로, ‘上海’의 경우, 서한에 Sang-hai / Sanghai (3/1842/상해), Xang-hai (16-1/1845/상해)(17/1845/상해) 등으로 표기하고 있어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사용한 경우도 있으며, ‘上’의 중국한자음 초성이 작성 시기에 따라 [S]→[X]로 달리 표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현재 일본의 쓰시마섬인 대마도가 조선전도에 [Taimato]와 같이 한국한자음으로 표기된 점이 주목된다.

표 3의 하단에 제시된 서한의 인명 표기 자료들을 통해 조선전도에 사용된 지명 표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김여상 이’의 경우, Kim Ye-sam i (6/1843/요동), Kim Iesangi (12/1845/서울), Kim Iesangi / Kim Jesangi / Kim Iesangni (16-2/1845/서울)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전 대통령 ‘이승만’을 ‘이승만 이’와 같이 인칭 접미사 [-이, -i]를 붙여 호칭하던 방식을 1840년대의 서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여’의 초성이 [y], [i], [j]로 작성 시기에 따라, 또는 동일한 편지 안에서도 다르게 표기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또한 남 다미아노(南明赫)(1802~1839)의 이름 혹은 자호(自號)로 추정되는 ‘문화’의 경우, 서한에 MOUNHOA (16-2/1845/서울)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전도에 황해도 문화를 로마자로 표기한[Mounhoa]와 대/소문자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게 표기되어 있다. ‘원 마리아’의 경우, 서한에 MARIA OUEN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전도의 강원도 원주를 표기한 [Ouentsou]와 같이 [원]을 동일하게 [ouen]으로 표기하고 있다. ‘정 바오로’의 경우, 서한에 PAULUS TSENG, 조선전도에 강원도 정선이 [Tsengsen]으로 표기되어 있어 [정]이 동일하게 [tseng]으로 표기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유용선 이’의 경우, 서한에 IOU IONGSENGNI, 조선전도에 평안도 영유를 표기한 [Yeniou]와 전라도 용안을 표기한 [Yongan]이 나타나고 있어, [유]를 [iou]로, [용]을 [iong]과 [yong]으로 표기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2) 모음의 로마자 표기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지명들에 사용된 모음 표기를 분석한 결과, 표 4에 제시된 바와 같이 하나의 모음에 다양한 표기가 대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표기 방식에는 일정한 문자 대응을 위해 필요한 전자표가 없이 한국어 지명의 소리(발음)에 의존하여 로마자로 표기한 전사법(전음법)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서 『한불자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문자 ‘ㆍ’(아래아)에 대한 별도의 표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전사법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표 4.

모음의 로마자 표기

종류 모음 <조선전도> 원본
(1845)
『한불자전』
(1880)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2014)
비고

모음
a, ai, ia, *ye, **e A a * 경상도 합천(yepsen)
** 평안도 곽산(quaksen)
* Ă * EU, A로도 발음
ou, o, *e, ae, ie, **a *** E eo * 경상도 절영도(Tseriongsem)
** 함경도 온성(onsang)
*** O와 무음 E 사이의 소리
o, a, io, *ho, **e 0 o * 황해도 옹진(hongtsin)
** 함경도 고원(keouen)
ou, oui, o, oiu OU u
*o, e, **yo EU eu * 함경도 경흥(kienghon)
** 강원도 흡곡(yopkok)
i, e, ei, *y I i * 강원도 이천(ytsen)
ai, a, ou AI ae
e EI e
ouei, oa, ei, oi, oei, o OI oe
ei, oui OUI wi
이중
모음
ia, a, ya * YA ya * S소리가 앞에 오면 A로 발음(샤 : sa)
ie, oa, ye, ea, a, *io, ya, **e *** YE yeo * 경상도 절영도(Tseriongsem)
** 함경도 양영(yangeng)
*** 셔는 so로 읽음; 졍쥬, TJYENG-TJYOU,
定州
yo, o, io * YO yo * 쇼는 so로 읽음
iou * YOU yu * 슈는 sou로 읽음
e, ye, ie YEI ye
oa, oue, oua, ua OA wa
OAI wae
oue, oae, e, ou OUE wo
OUEI we
ei, e, ie EUI ui
ㆍㅣ ĂI

주1: ‘종류’항목의 구분은 2014년에 고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름.

주2: ‘<조선전도>’ 항목의 밑줄로 표시한 모음들은 후대의 표기들과 일치하는 경우임.

주3: ‘『한불자전』’ 항목의 밑줄로 표시한 모음들은 2014년의 표기와 일치하는 경우임.

특히 대상 언어의 소리를 전달하는 전사법적 특징을 보이는 지명 사례가 약 12개가 발견되고 있다(표 34의 비고). 즉 한자로 표기된 지명을 한국어로 읽고, 그 소리를 인식한 결과를 로마자로 표기한 사례들이다: “강령:강연, 동래:동내, 록도:녹도, 수원:수언, 울릉도:울능도, 은률:응율, 절영도:저령섬, 철원:처뤈, 칠원:치뤈, 함안:암안, 함흥:함응, 흥덕:응덕 등.” 이 중 ‘절영도:저령섬’의 경우, 도서(島嶼, 섬)를 가리키는 고유한 후부 지명소, 즉 ‘~섬’을 로마자(~sem)로 표기하고 있어 현대 일본의 지명과 같이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한자로는 ‘絶影島’(절영도)로 표기하고 읽기는 ‘저령섬’으로 통용하던 당대 우리나라의 지명 독음(讀音) 전통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10)

한편 전자법적 특징을 보이는 로마자 표기 사례도 일부 보인다: “백령:백녕(paiknieng)(뱅녕×), 령광:령광(Liengkoang) (영광×), 례산:례산(Liesan)(예산×) 등.” 또한 표 3에 음영으로 처리한 약 16개의 모음의 경우 『한불자전』의 모음 표기에 승계되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전도>(원본)의 모음 로마자 표기 방식이 약 35년 이후에 편찬된 『한불자전』의 로마자 표기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전도에 나타난 모음의 로마자 표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ㅏ]의 경우, [a, ai, ia, ye, e]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일부 해당 사례로는 경상도 합천(yepsen)과 평안도 곽산(quaksen)이 있다. [ㅓ]의 경우, [ou, o, e, ae, ie, a]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사례로는 경상도 절영도(Tseriongsem), 함경도 온성(onsang) 등이 있다. [ㅗ]의 경우, [o, a, io, ho, e] 등으로 표기되며, 해당 사례로 황해도 옹진(hongtsin)과 함경도 고원(keouen) 등이 있다. [ㅜ]의 경우, [ou, oui, o, oiu] 등으로 표기되며, [ㅡ]의 경우, [o, e, yo] 등으로 표기되며, 해당 사례로 함경도 경흥(kienghon), 강원도 흡곡(yopkok) 등이 있다.

[ㅣ]의 경우, [i, e, ei, y] 등으로 나타나며, 사례로는 강원도 이천(ytsen) 등이 있다. [ㅐ]의 경우, [ai, a, o] 등으로 나타나며, [ㅔ]는 [e]라는 하나의 표기로 등장하고 있다. [ㅚ]의 경우, [ouei, oa, ei, oi, oei, o]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었으며, [ㅟ]는 [ei, oui], [ㅑ]는 [ia, a, ya]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ㅕ]의 경우, [ie, oa, ye, ea, a, io, ya, e]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해당 사례로는 경상도 절영도(Tseriongsem), 함경도 양영(yangeng) 등이 있다. 특히 한불자전(1880)에서는 ‘졍쥬, TJYENG-TJYOU, 定州’의 표기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조선전도의 표기 사례 중 하나인 [ye]로 표기되고 있다. [ㅛ]의 경우, [yo, o, io]로, [ㅠ]는 [iou], [ㅖ]는 [e, ye, ie], [ㅘ]는 [oa, oue, oua, ua], [ㅝ]는 [oue, oae, e, ou], 그리고 [ㅢ]의 경우, [ei, e, ie] 등으로 표기되었다.

3) 자음의 로마자 표기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지명들에 사용된 자음 표기를 분석한 결과, 표 5에 제시된 바와 같이 앞서 제시한 모음 표기의 다양성 보다는 미약하나 하나의 자음에 다양한 표기가 대응된 경우가 발견된다. 또한 대체로 모음보다는 표기의 다양성은 낮으나 약 10개의 자음이 후대의 표기와 일치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 한자(漢字)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한 <조선전도>(원본)에는 된소리(경음) 대부분(‘ㄲ, ㄸ, ㅃ, ㅆ, ㅉ’)과 거센소리(격음) 중, ‘ㅋ’에 대한 로마자 표기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한자 지명에 사용된 한국한자음에는 해당 소리를 가진 한자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표 5.

자음의 로마자 표기

종류 자음 <조선전도> 원본
(1845)
『한불자전』
(1880)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2014)
비고
파열음 k, *c, **g, ***h, ****q ***** K g, k * 강원도(cangouen):초성ㄱ, 독거(tacke): 종성ㄱ
** 횡간(hoingan)
*** 전라도 옥과(okhoa): 초성ㄱ
**** 평안도 곽산(quaksen)
***** a 소리 앞에서 가끔 G
ㄲ, ㅅㄱ KK kk
HK k
t, *ts ** T d, t * 취도(tsoutso)
** ye, yo, you 앞에서 TJ로 발음
ㄸ, ㅅㄷ TT tt
*tt **HT t * 수태(souttai)
** 텰원, HTYEL-OUEN, 鐵原
p, *m P b, p * 도갑(tsokam)
ㅃ, ㅅㅂ PP pp
p HP p
파찰음 ts, *t, **s ***TJ j * 덕적(tektek)
** 전라도 진산(sinsan); 함경도 장진(tsangsin)
*** 졀영도, TJYEL-YENG-TO, 絶影島
ㅉ, ㅅㅈ TTJ jj
*ts, **t TCH ch * 강원도 철원(Tserouen)
** 추원(touoaen)
마찰음 s * S, T s * 초성에서 S, 종성에서 T; Z 소리 나는 예는 없음
SS ss
h, *Ø H h * 혈도(iolto): 무표지(Ø)
비음 n, *ng N n * 경기도 마전(matseng); 황해도 은율(engoul)
mM m
ng, *n ** NG ng * 잉분(inpoun): 종성ㅇ; 경기도 안성(ansen)
** 기음화된 모음 앞에서 gn
유음 r, *n, **l, ***Ø **** R, L r, l * 백령(paiknieng): 초성ㄹ; 울릉도(oulnengtou)
** 보길(pokil): 종성ㄹ; 전라도 영광(liengkoang):
초성ㄹ
*** 황해도 강령(kanien)
**** 초성에서 R, 종성에서 L

주1: ‘종류’항목의 구분은 2014년에 고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름.

주2: ‘<조선전도>’ 항목의 밑줄로 표시한 자음들은 후대의 표기들과 일치하는 경우임.

주3: ‘『한불자전』’ 항목의 밑줄로 표시한 자음들은 2014년의 표기와 일치하는 경우임.

조선전도에 나타난 자음의 로마자 표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ㄱ]의 경우, [k, c, g, h, q] 등과 같이 여러 로마자로 표기되었으며, 조선전도의 해당 사례로는 강원도(cangouen)의 초성 [ㄱ], 독거(tacke)의 종성 [ㄱ], 횡간(hoingan), 전라도 옥과(okhoa)의 초성 [ㄱ], 그리고 평안도 곽산(quaksen) 등이 있다. [ㄷ]의 경우, [t, ts] 등으로 나타나며, 해당 사례로는 취도(tsoutso) 등이 있다. [ㅌ]의 경우 [tt]로 단일하게 나타나며, 해당 사례로는 수태(souttai), 그리고 한불자전에서는 “텰원, HTYEL-OUEN, 鐵原”이 나타나고 있다.

[ㅂ]의 경우, [p, m]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전도의 해당 사례로는 도갑(tsokam) 등이 있다. [ㅍ]의 경우, [p]로 단일하게 나타나며, [ㅈ]의 경우 [ts, t, s]로 다소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다. 조선전도의 해당 사례로는 덕적(tektek), 전라도 진산(sinsan)과 함경도 장진(tsangsin) 등이 있으며, 한불자전의 사례로는 “경상도 부산 졀영도, TJYEL-YENG-TO, 絶影島” 등이 있다. [ㅊ]의 경우, [ts, t] 등으로 나타나며, 조선전도의 해당 사례로는 강원도 철원(Tserouen)과 추원(touoaen) 등이 있다. [ㅅ]의 경우, [s]로 단일하게 나타나고, [ㅎ]은 [h, Ø]로 표기하는데, 해당 사례로는 혈도(iolto)가 무표지(Ø)로 기재된 경우이다.

[ㄴ]의 경우, [n, ng]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의 해당 사례로는 경기도 마전(matseng)과 황해도 은율(engoul) 등이 있다. [ㅁ]의 경우, [m]로 나타나며, [ㅇ]은 [ng, n] 등으로 기록되어 있고, 사례로 잉분(inpoun)의 종성 [ㅇ]과 경기도 안성(ansen) 등이 있다. [ㄹ]의 경우, [r, n, l, Ø] 등과 같이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으며, 조선전도의 해당 사례로는 백령(paiknieng)의 초성 [ㄹ]과 울릉도(oulnengtou), 보길(pokil)의 종성 [ㄹ]과 전라도 영광(liengkoang)의 초성 [ㄹ], 그리고 황해도 강령(kanien) 등이 있다.

이상의 <조선전도>(원본)의 지명들을 대상으로 모음과 자음으로 나누어 로마자 표기를 분석한 결과, <조선전도>(원본)의 지명 로마자 표기 방식은 전사법(전음법)이 우세하게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로마자 표기법의 규범이 설정되기 이전에 선구적으로 로마자 표기를 시도한 인물이다. 이러한 사유로 전자표를 작성하여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로마자로 옮기지 못했으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의 소리[발음]를 발화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로마자로 표기하였다.

즉 그는 <조선전도>(원본) 위에 한국의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면서, 대상 언어[한국어]를 목적 언어[라틴어, 프랑스어]로 로마자하는 과정에 음성 전달과 원음으로의 환원성이 가능한 전사법(전음법)을 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건 신부가 수행한 지명 로마자 표기의 방식은 이후 문자 전달과 원어로의 환원성을 중시하는 전자법을 채택한 『한불자전』(1880), 그리고 전사법을 적용한 『한영자전』(1890, 1897)과 현재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14)에 일정한 선구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4) 한국한자음의 반영과 몇 가지 오류들

<조선전도>(원본)에는 중국한자음이 아닌 실제 조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명의 한국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하였다: 서울(seoul), 한양(aniang), 울릉도(oulnengtou), 우산(독도)(ousan), 제주(Tsetsou) 등. <조선전도>(원본)의 지명 로마자 표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자국인에 의해 한국한자음을 반영한 사례이다. 중국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당빌(D’Anville)의 <조선왕국도>(1735),11) 그리고 일본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시볼트(Seibold)의 <조선반도도>(1840)에 이어, 처음으로 조선인 스스로 한국한자음으로 조선의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다(가톨릭대사전, 조선전도; 박경, 2015).

요컨대 1845년 이전에는 외국인들이 주도하여 한국 지명의 로마자 표기가 중국한자음이나 일본한자음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원본)에 이르러 비로소 조선 사람 스스로 우리의 지명을 한국한자음으로 로마자 표기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수도를 지칭하는 ‘seoul’(서울)과 ‘aniang’(한양),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는 ‘ousan’(우산), 그리고 ‘Tsetsou’(제주) 등의 로마자 표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명의 한국한자음을 로마자로 옮겨 놓았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한편 ‘Tsetsou’(제주)의 경우, 『한불자전』(1880)에는 표제어 “졔쥬, TJYEI-TJYOU, 濟州”와 “한라산, HAN-RA-SAN, 漢羅山”에 대한 이어지는 설명에서 제주와 한라산이 “Quelpaërt”(퀠파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이름, 제주도를 지칭하는 외래 지명)에 위치한다고 기술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편찬된 『한불자전』에는 토착지명(endonym)인 ‘제주도’ 대신 당시 제국주의의 권력관계가 반영된 외래지명(exonym)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선전도>(원본)은 지명의 로마자 표기와 경계선 작도 등에 몇 가지 누락과 오류가 발견되며, 이를 통해 당시 촉박하고 긴박했던 지도 제작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즉 약 3개월(1845년 1월 15일 ~ 4월 7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지도를 만들면서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들을 수정 및 보완하여 새로운 도면에 다시 작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도 작도 및 지명 표기 과정에서 발생한 누락 및 오류 사례를 4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전도>(원본)에는 저본으로 추정되는 <팔도전도>에 표기된 군현(郡縣) 지명 중, 약 24개의 지명이 누락되어 있다: 경기도(2곳) 과천, 금천, 충청도(1곳) 연산, 전라도(3곳) 고창, 나주, 장성, 경상도(10곳) 군위, 대구, 성주, 신령, 영천, 인동, 자인, 칠곡, 풍기, 하양, 평안도(7곳) 강서, 삼등, 상원, 순안, 중화, 평양, 함종, 황해도(1곳) 장연 등. 경상도(10곳)와 평안도(7곳)에 누락된 군현 지명이 많은 이유와 관련하여, 경상도의 경우, 당시 청나라로부터 조선으로 이어지는 주요 포교 루트에서 원거리에 위치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평안도의 경우, 기해박해 시(1839, 헌종 5) 선교사들이 평안도 의주(義州)를 통해 육로로 입국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선 정부의 경계와 경비가 강화되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그 후 1846년 페레올(Jean Ferréol, 1808~1853) 주교는 김대건 신부에게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라는 지시를 하게 된다(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44). 그 결과 <조선전도>(원본)에는 서해 해로에 인접한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의 군현과 연근해 섬들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편 전라도 ‘長城’(장성)은 <사본Ⅰ> 지도에 [traugtseng], 그리고 <사본Ⅱ>에 [tsangtseng : *창청]으로 표기되어 있어, 현대 중국어의 ‘长城’ [chángchéng]과 그 발음이 유사하다. 당시 메스트로(J. A. Maistre, 1808~1857) 신부의 서한에는 김대건 신부가 보내온 <조선전도>를 중국인을 시켜 복제할 것을 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김종근, 2020, 138), 이 모사본 지도가 원본 지도에 누락된 한자 지명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선 지도를 참고하여 중국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 아닌 가 추정된다.

둘째, <조선전도>(원본)에는 지명 형태소가 도치되어 표기된 사례가 약 5건이 발견된다: 도초:초도(tsoto), 압해:해압(haiap), 연화:화련(hoarien), 주문:문주(mountsou), 운산:산운(sanoun) 등. 특히 현재 전라남도 해안에 위치한 섬인 ‘壓海’(압해)(현 전남 신안군 압해면)의 경우, 그림 1(좌)의 <팔도전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 글자로 된 한자 지명이 섬 윤곽선 안쪽에, 왼쪽 위에서 대각선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를 오해하여 일반적인 한자 표기처럼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즉 ‘해압’으로 지명을 잘못 읽어 로마자로 표기(‘haiap’)한 것으로 보인다. ‘都草’(도초)의 경우,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즉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서양식 독법을 적용하여 ‘Tsoto’(초도)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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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압해도와 도초도 부근(자료: (좌) <팔도전도>(1767년 이전)의 전라도 서남해안 부분, 《팔도지도》(영남대박물관 소장); (우) <조선전도>(원본)(1845년))

셋째, <조선전도>(원본)에는 충청도 덕산(Teksan)의 위치를 수정한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 2의 좌). 김대건 신부의 고향에 인접한 덕산의 위치를 바로 잡은 흔적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약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지도를 제작하면서 새로운 도면에 다시 작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당시의 촉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https://cdn.apub.kr/journalsite/sites/geo/2022-057-01/N013570104/images/geo_57_01_04_F2.jpg
그림 2.

충청도 덕산의 위치 수정(자료: (좌) <조선전도>(원본)의 충청도 덕산 부분; (우) <팔도전도>《팔도지도》(영남대박물관 소장))

넷째, <조선전도>(원본)에는 행정 구역 경계선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그림 3). 즉 당시 전라도에 소속된 금산(錦山, kemsan)과 진산(珍山, sinsan)을 충청도에 표시하고, 경상도 소속이던 김산(金山, kimopsan)을 전라도 구역으로 포함시켜 도경계선을 그렸다. 이후 1963년에는 1914년에 전북 진산군을 병합했던 전북 금산군이 충남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김순배, 2020, 110-113). 이러한 도경계선 획정의 오류는 원본 지도의 모사본인 <조선전도>(사본Ⅰ 및 사본Ⅱ)(1846)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그림 3의 우상). 또한 경기도 남동부(음죽현 남동쪽)와 충청도 북동부(음성현 북동쪽)가 접한 도경계선의 일부 구간이 생략되어 있다(그림 3의 우하). 그러나 이 부근의 누락된 도경계선은 모사본 지도들(1846)에서는 모두 굵게 표시되어 수정 및 보완되어 있다.

https://cdn.apub.kr/journalsite/sites/geo/2022-057-01/N013570104/images/geo_57_01_04_F3.jpg
그림 3.

행정구역 경계선 오류(전라도 금산-진산-경상도 김산, 경기도 음죽-충청도 음성)(자료: (좌상) <조선전도>(원본)(1845년)의 금산 및 김산 부분; (우상) <조선전도>(사본Ⅰ)(1846); (좌하)<팔도전도>《팔도지도》(영남대박물관 소장)의 전라도 금산 및 경상도 김산 부분; (우하) <조선전도>(원본)의 경기도 음죽 및 충청도 음성 부근)

4. 결론

김대건 신부는 당시 생사를 넘나드는 조선 포교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한자음을 로마자로 반영한 <조선전도>(원본)(1845)를 제작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 지도와 이를 모사한 2종의 사본 지도를 대상으로 지명의 로마자 표기를 조사하여 로마자 표기 방식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특히 김대건 신부가 전사한 <조선전도>(원본) 속 로마자 지명의 표기 방식이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에 있어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후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서한』(1842~1846)과 『한불자전』(1880)의 표기 자료와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 역사를 전자법과 전사법(전음법)으로 구분하여 분석한 결과, <조선전도>(원본) 제작 전후에 작성된 『서한』(1842~1846)에서는 당시 특정한 로마자 표기 규범이 없는 상황에서 동일한 지명에 대해 다양하게 로마자로 표기되었고, 일부 음절별 띄어쓰기나 음절 사이 붙임표(-) 등을 사용한 점에서 글자 전달을 중시하는 전자법적 특성도 발견되고 있다. 이후 『한불자전』(1880)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전자법이 우세하게 적용되다가, 『한영자전』(1897) 이후 전사법이 주류를 이루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상황을 정리하였다.

둘째, 김대건 신부는 <조선전도>(원본) 위에 한국의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면서, 한국어를 라틴어 및 프랑스어로 로마자하는 과정에 음성 전달과 원음으로의 환원성이 가능한 전사법(전음법)을 주로 적용하였다. 특히 대상 언어[한국어]의 소리를 전달하는 전사법적 특징을 보이는 약 12개의 지명 사례를 통해 한자로 표기된 지명을 한국어로 읽고, 그 소리를 인식한 결과를 로마자로 표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의 로마자 표기 방식은 이후 전자법의 『한불자전』(1880), 그리고 전사법을 채택한 『한영자전』(1890, 1897) 과 현재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2014)에 선구적인 영향을 미치었다.

셋째, 『서한』과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표기를 비교 분석한 결과, 당시 로마자 표기 규범이 마련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대체로 표기의 다양성이 발견되나, 일부 공통된 표기들이 다음과 같이 발견 된다: Corée(조선), Seoul(서울), Mounhoa(황해도 문화), Ouentsou(강원도 원주)의 [원 : ouen], Tsengsen(강원도 정선)의 [정 : tseng], Yeniou (평안도 영유)의 [유 : iou] 등. 한편 ‘전라도’의 경우, 『서한』의 Tselato [절라도]는 전음법적 특징을, <조선전도>(원본)의 Tsenlato [전라도]는 전자법적인 특징이 발견되고 있어 일정한 표기 규범이 없던 당시 상황의 다양한 표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경상도 김해의 경우, 김대건 신부의 본관으로 Kim-ay, Kim-ai, Kimai, Kim-hai, KIM-HAI, Kim Hai 등과 같이 『서한』에 자주,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전도>(원본)에는 Kimhai로 기재되어 있다.

넷째,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지명들에 사용된 모음과 자음 표기를 분석한 결과, 하나의 모음이나 자음에 다양한 표기가 대응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지도의 로마자 표기 방식에는 일정한 문자 대응을 위해 필요한 전자표가 없이 한국어 지명의 소리에 의존하여 로마자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약 16개의 모음과 약 10개의 자음이 『한불자전』의 표기에 승계되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전도>(원본)의 로마자 표기 방식이 약 35년 이후에 편찬된 『한불자전』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조선전도>(원본)의 표기는 지금까지 소개된 사례들 중, 조선인 스스로 한국한자음을 반영하여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한 최초의 사례이다. 1845년 이전에는 외국인들에 의해 한국 지명의 로마자 표기가 중국한자음이나 일본한자음을 반영하여 이루어지던 것이, 이 지도에 이르러 비로소 한국한자음으로 우리의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게 되었다. 특히 seoul(서울), oulnengtou(울릉도), ousan(우산, 독도), Tsetsou(제주) 등의 표기와 같이,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사용하던 지명의 한국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전도>(원본)에는 지명의 로마자 표기와 경계선 작도 등에 있어 몇 가지 누락과 오류가 발견되며, 이를 통해 당시 촉박하고 긴박했던 지도 제작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즉 약 3개월(1845년 1월 15일 ~ 4월 7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지도를 만들면서 발생한 오류들을 수정 및 보완하여 새로운 도면에 다시 작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주요 누락이나 오류들은 다음과 같다: ① 경상도 및 평안도 소속 지명의 표기 누락(경상도 10곳, 평안도 7곳 등), ② 지명의 도치 표기(압해→해압 등), ③ 지명의 위치 수정 흔적(충청도 덕산 등), ④ 행정구역 경계선의 오류(전라도 소속 금산과 진산을 충청도에 표시, 경상도 소속 김산을 전라도에 표시, 경기도 남동부와 충청도 북동부 사이의 도경계선 누락 등).

한편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원본)에 기재된 지명의 로마자표기를 분석한 본 연구는 앞으로 조선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한 17세기 이후의 유럽 지도들, 그리고 당대 로마자표기 관련 국내・외 고문헌 및 고문서들에 대한 향후 면밀한 비교 연구가 요구된다.

Acknowledgements

본 논문은 내포교회사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며, 제1회 김대건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하였음. 특히 본 연구를 위해 <조선전도> 관련 지도 및 지명 자료들을 제공해주고 연구를 독려해 주신 동북아역사재단의 김종근 박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각주

[16] 1) 중앙집권적 전제국가의 통치와 지배에 있어 지도, 그리고 호적과 양안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중국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교체 시기에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 BC.247 ? ~ BC.195)의 참모였던 소하(蕭何, ? ~ BC.193 )의 일화가 있다. 당시 유방의 군사가 진나라의 도성인 함양(咸陽)에 입성하면서 다른 장수들이 도성 궁궐의 재물과 미인들을 약탈할 때, 소하는 진나라 승상부(丞相府)에 보관되어 있던 도적(圖籍, 지도와 각종 호적, 양안, 율령 문서)을 찾아내어 한나라 왕조 경영의 기초를 다졌다(김순배, 2016, 41에서 재인용).

[17] 2) <조선전도>(원본)의 하단, 제주도와 일본 나카사키 사이 공란에는 “Carte de la Corée faite par André Kim” [안드레아 김이 제작한 꼴리(조선)의 지도]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1845년 1월 15일, 중국 변문을 통해 조선에 입국해 서울 돌우물골[石井洞] 숙소에서 머물다 같은 해 4월 30일, 라파엘호를 타고 제물포에서 중국 상해로 떠나기 전, 약 3개월여 사이에 이 지도가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가톨릭대사전,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 특히 이 지도는 1845년 4월 7일,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지부장이던 리브와(Napoléon Liboias, 1805~1872) 신부에게 보낸 12번째 편지(열두 번째 서한)와 함께 동봉되어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신부님께 조선 종이 20장이 들어 있는 봉투, 조선 그림 석 장이 들어 있는 작은 봉투, 병풍이라고 하는 여덟 폭으로 된 그림, 밤에 사용하는 놋그릇(놋요강), 신부님들의 유해, 누런 주머니 세 개, 조선 지도, 빗 세 개와 빗을 소제하는 기구, 붓을 쓸 때 붓끝만 풀어서 쓰는 붓 네 자루, 돗자리 하나를 보내드립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131).

[18] 3) <조선전도>(원본)에는 조선 영조 43년 때인 1767년에 각각 ‘安陰’(안음) ⇒ ‘安義’(안의) (현 경남 함양군 안의면), ‘山陰’(산음) ⇒ ‘山淸’(산청) (현 경남 산청군)으로 개명(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109권-영조 43년 윤7월 30일 辛酉 1번째 기사) 되기 이전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경상도 산음(sanem), 안음(anem). 한편 저본 지도로 추정되는 <팔도전도>(<<팔도지도>>, 영남대박물관 소장)에도 개명되기 이전의 지명, 즉 ‘安陰’과 ‘山陰’으로 표기되어 있어(영남대학교박물관 편, 1996), 저본 지도로서 추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19] 4) “transcription [전사(법)]: (a)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음성적 이름을 전환(→conversion)하는 방법으로서, 원천 언어(→source language)의 발음은 보통 추가적인 발음 구별 부호(→diacritics)에 의지하지 않고 특수한 대상 언어(→target language)와 그것의 특수한 문자(→script)에 의해 기록됨.”(유엔지명전문가그룹, 2012, 39); “전사, 전사법(轉寫, 轉寫法, transcription) 어떤 고유한 문자를 다른 문자 체계를 이용하여 원천언어의 소리를 옮겨 적거나 표시하는 방법 또는 체계. 한 단어를 전사한 것은 동일한 형태로 환원되지 않을 수 있음. (예시) ‘설악산’은 ‘Seoraksan’으로 전사될 수 있으나, ‘Seoraksan’은 ‘설악산’으로 환원되지 않을 수 있음(서락산, 세오락산 등도 가능)......전사표(轉寫表, transcription key) 특정 원천언어의 글자들을, 각각의 전사에 해당하는 수혜언어의 글자들과 함께 나열한 표.”(동해연구회 편, 2020, 30)

[20] 5) “transliteration [전자(법)]: (a) 서로 다른 자모 문자(→ alphabetic scripts)와 음절 문자(→syllabic scripts) 사이에서 수행하는 지명 전환(→names conversion)의 방법으로서, 원천 문자 (→source script)의 글자(→character), 이중(→di-), 삼중(tri-), 그리고 사중음자 (→tetragraph) 각각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문자, 이중, 삼중, 사중음자, 발음 구별 부호(→diacritic), 또는 이들의 조합에 의해 대상 문자(→target script)로 나타남. 전자법은 전사법(→transcription)과 구별되어 가역성 (→reversibility)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그러나 반드시 성취되지는 않음), 음역표 (→transliteration key)가 수반되어야 함.” (유엔지명전문가그룹, 2012, 40); “전자, 전자법 (轉字, 轉字法, transliteration) 어떤 고유한 문자를 다른 문자 체계를 이용하여 원천언어의 문자를 옮겨 적거나 표시하는 방법 또는 체계. 원천언어와 수혜언어의 표기 간 환원이 가능함. (예시) 그리스 문자 ‘Aθήνα’를 로마자 ‘Athína’로, 이디오피아 문자 ‘አኆበአበባ’를 로마자 ‘Adis Abẹba’로 전환하는 것......전자표(轉字表, transliteration key) 특정 원천언어의 글자들을, 각각의 전자에 해당하는 수혜언어의 글자들과 함께 나열한 표.”(동해연구회 편, 2020, 30-31)

[21] 6) 『한국지명총람 16(전라편Ⅳ・제주편)』(1984)의 제주도 지명 표제어에는 다수의 아래아(‘ㆍ’) 표기가 남아 있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 지방에는 이 표기가 1980년대 초반까지 주민들의 발화와 기록으로 잔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ᄆᆞ르, 효자문-ᄃᆞ리, ᄃᆞᆰ-밭[독밭], 외돌, 거(ᄀᆞ)는-세” 등(한글학회, 1984, 396, 438, 499, 547).

[22] 7) 『한영자전』(1897)과 매큔-라이샤워 표기법(1939) 사이에, 일본인 고토 분지로의 Map of Koran Peninsula와 함께 발간된 『라마자색인조선지명자휘』(1903), 그리고 17세기 이후 제작된 프랑스어 지도 등에 기재된 조선 지명의 로마자 표기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해 주신 익명의 심사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3] 8) “[붙임 1] ‘ㅢ’는 ‘ㅣ’로 소리 나더라도 ui로 적는다. (보기) 광희문 Gwanghuimun” (제2장 제1항); “제8항 학술 연구 논문 등 특수 분야에서 한글 복원을 전제로 표기할 경우에는 한글 표기를 대상으로 적는다. 이 때 글자 대응은 제2장을 따르되 ‘ㄱ, ㄷ, ㅂ, ㄹ’은 ‘g, d, b, l’로만 적는다. 음가 없는 ‘ㅇ’은 붙임표(-)로 표기하되 어두에서는 생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타 분절의 필요가 있을 때에도 붙임표(-)를 쓴다.”(제3장). (국립국어원-한국어 어문 규범-국어의 로마자표기법, http://kornorms.korean.go.kr)

[24] 9) “[붙임 2] 장모음의 표기는 따로 하지 않는다.” (제2장 제1항); “[붙임 1] ‘ㄱ, ㄷ, ㅂ’은 모음 앞에서는 ‘g, d, b’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k, t, p’로 적는다.([ ] 안의 발음에 따라 표기함.)......[붙임 2] ‘ㄹ’은 모음 앞에서는 ‘r’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l’로 적는다. 단, ‘ㄹㄹ’은 ‘ll’로 적는다.” (제2장 제2항); “[붙임] 된소리되기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제3장 제1항). (국립국어원-한국어 어문 규범-국어의 로마자표기법, http://kornorms.korean.go.kr)

[25] 10) 그러나 “絶影島”(절영도)는 <조선전도>(원본)의 저본 지도로 추정한 <팔도전도>(<<팔도지도>>, 영남대박물관 소장)(김종근, 2020)에는 해당 섬과 지명이 누락되어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의 다른 많은 고지도에는 섬 모양과 함께 “絶影島”라는 지명이 표현되어 있다. 35년 후에 편찬된 『한불자전』(1880, 2부 지리사전, 19)에는 “졀영도, TJYEL- YENG-TO, 絶影島”로 기록되고 있어, 후부 지명소를 ‘~섬’이 아닌 한국한자음인 ‘~TO’(~도)로 독음해 놓았다.

[26] 11) 당빌이 제작한 <조선왕국도>(1735)는 중국의 <<皇輿全覽圖>>(1717)를 바탕으로 그린 지도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한자 지명들이 중국한자음으로 표기되어 있다. 중국한자음에 대한 로마자 표기는 <<坤輿萬國全圖>>(1602)를 만든 마테오 리치(Matteo Rich, 利瑪竇, 1552~1610)가 당시 한자에 대한 로마자 발음을 표기한 「西字奇迹」(1605)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이 문서에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명대(明代) 말기의 중국어 음운 체계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김영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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