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이론적 논의
1) 이질적 체제의 통합문제와 상호문화적 상호작용
2) 상호문화적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사이공간
3. 자본과 영토주권의 대립관계가 형성한 상호문화성
1) 남한 측 자본과 북한 측 주권의 대립
2) 상호문화적 상호작용의 고착과 일상화
4. 남북 간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전이적 사회문화의 중첩
1) 혼합적인 언어문화의 탄생과 일상화
2) ‘상호문화적 감수성’과 행동양식의 변화과정
3) 공동체적 개인에서 사적 개인으로 변화해 간 북한 측 행위자들
5. 완전체에 이르지 못한 ‘사이공간’ 개성공단
6. 결론
1. 서론
개성공단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이 합의하여 산업도시를 건설하고 운영한 공간협력 프로젝트이다. 2000년에 남북 간 합의가 구체화 되어 2003년 6월 착공식을 시작으로 2007년에 1단계 구역 100만 평에 대한 인프라가 준공되고 2016년 2월 전면 중단 전까지 10여 년 동안 운영되었다. 특히, 개성공단은 전면 중단 직전인 2015년 기준으로 남한 근로자 1,000여 명과 북한 근로자 5만 4천여 명이 한 공간에서 함께 근무한 곳으로 남북경협과 남북통합경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로 남아 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평화, 통일, 경제, 법제, 남북 관계 등 거시적이고 정치・경제적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이러한 연구 동향은 분단 이후 남북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 최초의 공간인 개성공단의 실체적인 모습을 종합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정치・경제적인 필요와 관점에 따라서 분절적이고 단절적인 형태로 기술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접근으로 인해 개성공단의 운영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본질적인 목표, 즉 통일의 여정에서 남북 간 통합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발생 가능한 시행착오와 갈등 문제 등을 선험하여 평화적인 통일을 준비하고 계획하기 위한 공간 실험이라는 목표지점에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개성공단에서 남북 5만 5천 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10년 넘게 함께 생활하였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변화가 발생하였을 것이고 이러한 변화상은 남북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하였고 살아있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개성공단을 조망하지 못했다.
삶의 현장으로서의 개성공단은 남북 간 대립과 갈등이 존속하는 상태에서 남북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주어진 것이어서 ‘서로 다름’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라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할로 인해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경험과 결과가 축적되고 이러한 과정이 선순환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순환 과정이 일상화되면서 남북 행위자 간 신뢰구간이 형성되어 활동영역의 자유도가 높아지는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작동하게 되었다. 남북 관계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개성공단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은 이러한 행위자들 간 신뢰구간의 형성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었다(홍승표, 2023).
이 글에서는 개성공단에서의‘남북통합경험시스템’의 선순환을 통해서 발생한 남북 행위자 간 신뢰구간 내에서 형성되고 정착된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을 언어와 행동양식으로 나누어 우선 분석하고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변화 속에서 나타난 북한 측 행위자들의 변화상을 조망하여 개성공단의 공간-사회문화적 특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서 남북 간 체제 대립 속에서 갈등적 상호작용과 신뢰 형성을 통해서 나타난 사회문화적 변화의 성격을 규명, 남북 협력과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2013년 1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개성공단 잠정중단 이후 재가동 시기부터 개성공단 전면중단 시기까지‘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소속으로 2년 3개월 동안 개성공단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참여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남한 근로자들만이 아니라 북한 근로자들과의 교류와 대화 그리고 백여 차례가 넘는 북한 측 당국 참사들과의 합의 경험과 수많은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개성 현지에서 직접 생산한 자료들과 현지 근무하면서 기록한 사실들, 직접 보유하고 있는 개성 현지 사진들을 보안 사항을 어기지 않는 범위로 재구성하였다. 북한 근로자와 참사들의 발언 내용은 해당 인원의 허락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보안 수준을 감안하여 수록하였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자료와 관리위원회 및 입주기업 법인장의 발언 내용과 인터뷰 등은 연구자료 게재 및 외부 공개가 가능한 내용을 선별하여 채록하였음을 밝힌다.
이 글은 결론을 포함 전체 6장으로 본문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개성공단에 대한 지리학 관점에서의 연구들을 분석한 후 1절에서 적대적 또는 서로 이질적인 집단 간 접촉 시 사회문화적인 통합을 추구하기 위한 상호작용과 상호문화적 관점에 대해서 고찰하고 2절에서는 이러한 상호문화적인 성격으로 구현되는 공간인 사이공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3장에서는 남북 간 언어의 차이에 따른 상호작용의 과정과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발생한 매개적이고 이질적인 언어문화가 일상화되는 경로를 고찰하여 남북의 혼합적인 언어문화의 탄생과 일상화 과정을 밝혔다.
4장은 남북 행위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호문화적 감수성의 발달과 이로 인해서 나타나는 행동양식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5장은 북한 측 행위자들의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변화와 실천,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실천과정을 고찰하여 공동체적 개인에서 사적 개인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2. 이론적 논의
개성공단에 대한 지리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학술적 접근은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주로 경계와 국경 공간에 대해 ‘관계적 공간인식’을 토대로 기존의 개성공단 주요 논의 주제인 경제협력, 남북교류라는 행위를 다루는 부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즉, 기존의 전통적인 공간에 대한 인식, 미시적인 스케일의 공간 변화에 대한 논의 결여로 인하여 유연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개성공단의 역동성을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백일순, 2020).
정현주(2018)는 통일 담론에서 공간과 영토에 대한 논의가 결핍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공간이 수동적이 아니라 여러 과정과 상호관계적으로 구성된다는 관계적 공간인식을 중심으로 개성공단의 예외 공간적인 측면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측면으로 바라봐야 하며 주권과 주체-영토성의 결합을 새롭게 구상하는 상상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통일 공동체 구상과 차별과 차이를 배태하는 공간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의 담론 반영 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관계적 공간론에 입각한 비판 지정학적 접근과 네트워크적 접근을 주장하였다.
박배균(2017)과 이승욱(2016)의 경우 개성공단을‘예외공간’으로 보고 ‘주권 공간적’인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예외공간의 형성에서 주권 통치의 논리와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적인 논리가 교차되어 나타나는 것에 주목한 Ong(2006)의 예외성과 구획화의 논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성공단을 주권의 논리와 신자유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경학적 예외공간으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결론적으로 개성공단의 예외공간으로서의 이중성, 즉 북한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 모두에서 예외적인 공간으로 작동하면서 실험적 형태의 영역성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개성공단 운영과 폐쇄까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정학적 담론과 비전의 교차과정을 통해 예외공간은 복잡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진보와 보수진영으로 양립하여 대립하면서 지경학적인 논리가 선택적이고 단선적으로 선택되면서 개성공단이 폐쇄된 사건은 역사적 일탈이자 실패한 실험이라고 밝히고 있다.
개성공단의 출퇴근 버스를 통해 공간적인 성격과 그 확장성을 밝히고자 하였던 백일순 등(2020)의 연구는 개성공단에서의 특정한 사례를 통해 개성공단의 공간이 확장되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 특유의 중앙집중적, 직주 근접의 도시계획 형태에서 사회적인 통제로 인해 모빌리티가 극심하게 제한되었던 개성지역에 개성공단 통근버스가 등장으로 인하여 개성 일대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와 자본과 권련관계 형성이 나타났으며 모빌리티의 증가로 인해 개성공단의 경계 역시 다공적이고 가변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개성공단이라는 사회-공간의 형성이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과정으로 창발적으로 발전했음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모빌리티 이론으로의 설명이 유용함도 강조하였다(백일순 등, 2020).
개성공단을 접촉지대로 보고 분석한 백일순(2019)의 연구는 개성공단의 개발을 새로운 접촉지대의 형성으로 보고 새로운 이식경관 등에 대해 분석하였다. 결론적으로 기존 접촉지대에 대한 논의들과 같이 접촉지대로서의 개성공단은 관련 행위자들의 서로 간의 이해와 의사결정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개성공단이라는 접촉지대에서 나타난 모습은 개성공단을 계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면서 새로운 접촉공간이 형성되었음을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남한과 북한 어느 쪽의 일방적인 결정과 행위가 아닌 스스로 경로 의존적으로 발전해 나갔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개성공단 연구의 동향을 전반적으로 분석하여 경협의 공간과 위기의 공간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서 연구되고 있는 경향을 밝힌 백일순(2020)의 논문에서는 경제협력의 공간으로 보았을 때 성공한 모델로, 위기의 공간으로 접근하는 경우 남북 간의 충돌과 갈등의 위기를 드러나는 곳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개성공단의 현재 상황이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지정-지경학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며 추후 연구에서 개성공단의 공간성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되는지를 추상적인 것이 아닌 실제 사례를 통해 협력과 위기가 공간을 통해 실현되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개성공단에 대한 지리학 연구들은 핵심과제로 개성공단을 ‘관계적 공간론’의 관점에서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미시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스스로 경로 의존적이고 창발적인 과정을 밝힐 수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촉지대, 예외적 공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과 분석을 시도해왔다. 다시 말해서, 개성공단에 대한 ‘관계적 공간론’의 관점에서의 연구들은 접경지역이면서 새로운 영토적‧공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개성공단과 추후 남북협력지구 또는 남북협력 공간 연구의 방향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자료조사와 현지 조사를 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하여 개성공단에 대해 공간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 못하며 그러한 연구가 상당히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1) 이질적 체제의 통합문제와 상호문화적 상호작용
우리 사회의 혼종문화 또는 사회문화적인 다양성과 통합에 대한 논의는 주로 ‘다문화(multicultural)’라는 이름으로 정책화/이념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문화사회, 다문화가정, 다문화 정책 등의 용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문화주의는“각 문화는 일정한 가치와 신념을 지닌 체계여서 다른 문화와 환원될 수 없으므로 모든 문화는 있는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라고 정의한 미국 문화인류학의 ‘문화상대주의’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소수집단이 다수집단의 동화정책을 거부하는 경우 도입하여 활용되었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소수집단 간의 관용과 존중을 강화하고 자신감을 고취하여 집단 간 사회적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장한업, 2014, 115).
다문화사회는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사회 즉, 다양한 민족, 종교, 계층, 국적 등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문화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문화 간 접촉, 교류, 협력, 소통을 통한 통합을 추진하는 것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문화주의는 물론 소수의 집단에 대한 다양성 인정, 차이에 대한 관용, 권리의 인정 등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동화주의보다는 진일보한 개념이기는 하나 다문화주의의 기초가 되는 다문화성은 동질적인 단일 문화 모델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의 다문화주의 역시 분단된 한반도의 특수성과 총체적 지향을 가진 독창적인 모습으로 진화하지 못하였고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정책적인 효과가 높지 않다는 평가가 최근 들어서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다문화주의는 분단 한반도의 구조적 갈등과 통일,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충돌하며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하지 못하는 측면을 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최현덕, 2009; 박영자, 2012; 김정흔・박치완, 2018).
유럽에서도 200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와 다문화 정책이 사회 공간의 분리와 게토(ghetto)화로 인한 주변화 타자화, 상대주의의 인정으로 인한 각자의 정체성의 고착화로 인하여 문화충돌과 사회균열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와 상호문화정책이 부상하게 되었다. 즉 상호문화주의와 상호문화정책은 유럽의 외국인 이주자 정책의 발전과정에서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도달한, 다문화 정책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상호문화주의의 중심이 되는 상호문화성과 다문화주의의 다문화성은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방향성에서 차별성이 있다. 다문화는 한 사회 안에서 다양한 문화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집단이 공존하는 사회구조 현상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고 상호문화는 상호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회구성원들이 상호적 관계 속에서 쌍방향으로 문화교류와 대화를 지속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문화는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상호문화는 문화 간의 만남 속에서 상호 간 대화와 교류를 역설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면, “다문화는 정태적 성격이, 상호문화는 역동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할수 있다(김형민・이재호, 2017; 김정흔・박치완, 2018).
상호문화의 개념은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에 의해 철학적으로 정립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짐멜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수많은 이주 현상이 우연하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 이방인, 타자성, 이주민의 긍정성과 사회적 필연성의 관계를 조망하면서 사회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보았다. 짐멜은 “한 집단 속으로 낯선 요소들을 지닌 타자가 들어오고 정착하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기인하는 사회적 필연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주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흐름이며 이러한 이주라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잠재적 방랑자, 즉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있고 언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는 이방인은 원주민과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구성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존재이다. 또한 이방인은 자신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가진 개별 주체이면서 새로운 집단에 이방인의 새로운 문화를 이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짐멜은 어쩔 수 없이 타자성을 가진 이방인으로 존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인식하고 다양성을 인정할 것을 주장하였다(정창호, 2011; 박영자, 2012; 김태원, 2012).
이러한 짐멜의 이론은 당대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1920년대가 되어 독일의 나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사회학자들이 수용하면서 발전하였다. 이후 미연방의 동화주의 문화변용 정책을 대체하기 위해 설립되어 1924년에서 1945년까지 활동하였던 미국의 상호문화교육국(Bureau of Intercultural Education)으로 이어졌으나 완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였다. 이후 1970년대 독일학계가 재수용하고 유럽이사회 위원회가 ‘상호문화적 선택(intercultural option)’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박영자, 2012; 장한업, 2014).
상호문화주의는 1960년대 캐나다 퀘벡주 프랑스계 민족주의자들이 분리주의자들에 반대하며 상호문화주의 이론을 내세워 사회적 통합을 촉구하는 활동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상호문화주의는 캐나다와는 다른 맥락에서 시작되었으며 발전하는 양상 또한 달랐다. 프랑스의 경우 계몽주의 철학에 따라 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보편성의 원칙을 중시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몽주의 철학에 따른 보편성의 원칙이 자칫 소수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소수자와 다수자를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 독특한 형태이다. 소수자인지 다수자인지에 대한 중요성보다‘법률에 의거 한 단체’를 제외한 그 어떤 공동체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교분리원칙1)1)’이 이러한 형태를 잘 보여준다(장한업, 2014, 120).
상호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유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의식, 행위, 이론, 현실 상황 등이 단순히 하나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겹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또한 상호문화적인 접근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집단의 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이고 그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의미의 조직망 속에서 파악하거나 민족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교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상호문화는 집단보다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행위자들의 정체성이 더 중요시되기 때문에 행위자들 개개인이 환경과 관계 맺는 질적 방식과 관련되어 유동성, 인간과 환경 상호 간의 침투를 강조하여 개개 행위자 주체들의 변화 가능성이 중시된다. 따라서 이러한 주체들은 서로 간 상호작용을 통해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 퀘벡주와 프랑스의 상호문화주의는 다소 다른 사회문화적인 배경에서 진행되었지만 공통적으로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이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방향에서 사회구성원들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추구한다(박영자, 2012; 홍종열, 2012; 장한업, 2014).
결국, 상호문화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행위자들 쌍방 간 대화와 소통을 통한‘상호작용’이며 상호작용을 통해 계속 새로운 형태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Parekh(2006)는 다문화적 사회통합과 관련하여 상대주의와 일원론 모두가 아닌 다원주의적 보편주의의 접근을 통해‘상호적 다문화주의(interactive multiculturalism)’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Parekh는 특히 서로 다른 사회문화 간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 대화와 소통과정, 즉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서로 다른 사회문화집단 간의 갈등은 보편적인 가치들에 대해 서로 관점과 태도를 달리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것인데 이러한 보편적 가치는 절대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고 각자 사회・문화에서 용인하는 맥락에 따라서 재해석하고 수정된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것으로 보았다. Brah(1996) 역시 주체의 동질적인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차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고 역사적 맥락에서 재조직화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주체는 다양한 주체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얻으면서 기존의 정체성을 대체하면서 다양한 정체성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체성 자체가 고정된 범주가 아닌 것으로 보았다. 즉, 각 문화의 가치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의 상호주관적인 합의에 따라서 발생하는 것이며 개개인의 사회문화적인 정체성과 서로 다른 문화가 옹호하는 각자의 가치관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닌 구성원들 간에 합의되고 공유된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을 해소하고 보편적인 가치의 실현을 통해 통합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상호작용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Brah, 1996; Parekh, 2006).
Parekh(2006)는 문화는 일상적인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특성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나 아주 다양한 사회의 특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갈등적 요인 역시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서로 다른 사회문화 간의 만남은 문화의 속성으로 인하여 충돌과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중요하다. 즉, 상호문화적 인식, 관계, 소통, 행동양식에서 행위자 간 상호작용은 단순히 병존하는 상태를 지양하며 접촉과 만남을 전제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결코 평화적인 경로만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박영자, 2012; Parekh, 2006).
따라서 상호문화적 상호작용은 접촉과 만남에 따른 갈등과 투쟁, 논쟁 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며 상호 간섭, 방해, 의존, 침투 등의 과정이라는 충돌과 투쟁, 힘겨루기의 쉽지 않은 과정의 수반을 강조한다. 이러한 상호과정은 다문화적인 타자에 대한 인정과 초 문화적 공통성과 친숙성 찾기를 넘어서서 자아와 타자, 친밀한 것과 낯선 것, 서로 다른 체제와 간 ‘사이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박영자, 2012; Parekh, 2006)(표 1).
표 1.
상호문화적 인식, 관계, 소통, 행동양식
박영자(2012, 305)를 토대로 재구성
개성공단의 경우 서로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배경이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남북 간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상호문화의 형태가 자유롭게 나타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정치・경제체제의 차이와 이에 따라 나타나는 서로 다름과 갈등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남북 간 상호작용과 이에 따라서 나타나는 사회문화 통합적 상황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2) 상호문화적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사이공간
사이공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 생활세계 A와 B를 배경으로 하는 참여자들이 서로에 대해 상호작용하고, 의사소통을 통해 정태적인 새로운 테제가 아니라, 시너지가 있는 중간 세계인 C를 발전시킬 때”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A와 B의 요소들을 뒤섞어서 두루뭉술한 잡종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역사적 맥락에서 정치적인 극단성이 제거된 제3의 사이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박영자, 2012; 최대희, 2014).
이러한 사이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체제와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공통의 정치・사회적인 구조와 공간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다차원적이고 중첩적으로 관계가 형성되며 부분적으로라도 공통적인 규범과 제도하에 보편적인 장소에 대한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상호문화적 정체성은 어떤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역사적인 맥락과 과정으로써의 ‘프로그램’이자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과가 아닌 계속되는 과정으로 설명되는 상호문화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공간적 통합의 정도 또는 공간의 성격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박영자, 2012).
Bennett(1993)은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사회구성원이 타문화에 적응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자민족 중심적 태도가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상호문화발달 감수성 이론은 크게 자신의 문화를 중심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c)에서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하여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민족 상대주의(Ethnorelative)로의 발달을 설명하며 이를 6단계로 세분화하고 각 단계의 특성과 상호문화적인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상호작용의 방향 및 생각의 방식에 대해서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Bennett, 1993 ; Bennett and Bennett, 2004).
상호문화적 감수성 발달이론은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단순히 나와 얼마나 다른지 차이의 정도를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의 문화에 대한 평등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호작용하는 쌍방향적인 방향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이 중요한 것은 장기화 된 분단으로 사회문화적 차이가 벌어진 남북한의 만남 역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이 아닌 수평적인 상호작용을 지향하는 남북한 문화간 감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호문화적 감수성 발달을 통한 상호작용은 사실 통일문제와 남북관계에만 국한되어 적용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구성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며 사회문화통합을 위한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박성춘, 2018)(그림 1).
상호문화적 사이공간이라고 하였을 때 개념적으로는 통합과 협력의 부분에서 상당히 이상적인 개념으로 여겨지나 이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실천 가능한지, 그 공간적인 성격은 어떠한 구성요소를 가지는지, 어떤 공간성이 사이공간이라고 규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상호문화적 사이공간이라고 했을 때 그 공간적 통합의 정도나 그 공간성에 대해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의하는 것이 어려운 것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박영자, 2012).
이과 관련하여 하이데거 이래 시간의 문제를 공간의 틀로 변형시킨 주요한 사상가로 볼 수 있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공간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였는데, ①현실적 공간, ②유토피아, ③헤테로토피아(hétéropie)로 구분하였다. 그중 헤테로토피아는 기존의 현실적인 공간도 아니고, 유토피아도 아니면서 두 가지 공간의 성격을 모두 가지는 사이공간적 성격을 내포한다. 즉, 특이성을 그 특성으로 갖는 공간, 다시 말해 한 사회 내에서 여타 공간들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으로 다원적이고 분산적이며 이질적인 성격의 공간이다. 여기서 이질적이라는 의미는 한 사회나 집단에서 ‘일상적인 것’또는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 한계를 넘어서 위치하는 다른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푸코가 주장한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기존의 현실적 장소 안에서는 그 자체로는 양립 불가능한 복수의 공간들 또는 영역들을 병렬시킬 수 있으며 보다 복합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 공간은 행위자들을 받아들이고 격리하는 자신만의 개폐 체계가 있고 개방적 체계처럼 보이나 또 다른 배제의 체계를 갖는 특성을 가지기도 한다. 결국 헤테로토피아는 나머지 공간들과는 다른 하나의 기능을 갖는 곳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의미 생산을 촉발하는 다원적이며 이질적인 장인데 이것은 이러한 공간이 완결되고 완전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프로그램적인 성격을 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이상길(역), 2009; 허경, 2011; 강수미, 2014).
결국 사이공간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힘들이 만나는 지점 또는 경계 지역에서 일어나는 미결정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파악된다. 즉, 기존의 이념, 지식, 인식과 행위 양식, 제도, 관습, 권력이 그대로 적용되지 못하게 되며 상호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지식과 관습체계, 대안적 조직과 제도, 실천양식 등이 모호하고 혼돈된 상태인 전이성(liminality)을 가지는 것이 사이공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이공간에서는 전이성의 지속적인 영향력으로 인하여 기존의 것들과의 지속과 단절이 모두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치, 인식, 지식, 조직, 제도, 규범 등의 새로운 대안의 모색과 등장의 기회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전이성의 공간은 대표적으로 해안가, 공항, 산정, 노점상을 들 수 있다. 해안가의 경우 바다와 육지가 맞닿아서 경계가 불분명하여 사람들이 해방과 두려움, 안정과 불안정성이라는 전이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으며 공항의 경우 출발과 도착이 교차하는 고정성과 유동성이 모두 존재하는 전이성을 가지고 있다. 즉, 같은 공간이지만 공통적이며 이질적인 성격이 다차원적으로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체험은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자기중심성이 아닌 상호관계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어 새로운 행동양식을 촉발하는 경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이상길(역), 2009; 박규택, 2016).
따라서 사이공간으로서 지역성(locality) 또는 공간적 특질은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행적 관계, 생성, 변화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이공간의 공간적 성격이라는 것은 그 공간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물질적 또는 비물질적인 힘이 접촉하거나 충돌하는 과정인 전이성으로 인하여 상호 간에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롭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다. 박규택(2016)은 이러한 사이 공간으로서 지역성의 수행적 상호관계성은 세 가지 매개체 ①언어(문자와 말), 기호, 이미지, ②조직, 제도, 관습, ③(사람의)몸, 자연적 물질과 인공물(건조환경)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언어, 기호, 이미지를 토대로 한 서사와 재현, 조직, 제도, 관습이 몸과 물질을 매개로 하여 형성된 서로 다른 공간이 접촉하거나 충돌함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사이 공간’으로서의 지역성이 생성된다는 것이다(박규택, 2016).
사이공간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사이공간 구현을 위한 노력에 대해 고찰한 결과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조작적으로 정의하였다.
첫째, 사이공간은 경계 지점의 미 결정성과 결론이 모호하고 혼돈된 상태인‘전이성(liminality)’이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참여하는 행위자들 간 상호문화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전이성이 지속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전이성이 계속 담보되어야만 기존의 것들과의 지속, 단절, 새로운 대안 제시가 모두 가능하게 되어 완결된 모습이 아니라 지속적인 프로그램적인 성격이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이성은 ①언어, 기호, 이미지, ②조직과 제도, ③행위자와 건조환경에 토대를 두고 형성되는데 언어, 기호, 이미지를 통한 서사화 재현, 조직과 제도의 구성, 물리적 건조환경의 형성을 통해 사이공간적 성격이 구현된다.
따라서 사이공간으로서의 개성공단은 남북의 합의 과정과 결과라는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미시공간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은 대립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남북 행위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전이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합의 결과가 간결하고 명료하게 귀결되기보다는 기존 것의 수용, 기존 체제들과 완전한 단절 또는 금지, 새로운 대안의 등장이라는 다층적인 결과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간 상호작용은 분석의 중심틀로서 그 전이적 성격이 중요한 핵심적 과제로 파악된다.
두 번째로 사이공간은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체제 간 상호작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적 상황을 조정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규범의 제도화를 통해 행위자들의 신뢰를 형성하고 행동반경과 자유도를 높여주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며 이는 상호과정의 협력적 제도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호과정의 관리와 규범의 제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시너지가 있는 중간 세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공간적인 규범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상호 간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서로 다른 체제와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그 공간만의 공통적인 규범과 제도하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사이공간은 공간의 형성에 참여하는 기존의 사회문화 또는 국가들과는 다른 ‘다의적’이며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특히, 이질적이라는 의미는 한 사회나 집단에서 ‘일상적인 것’또는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 한계를 넘어서 위치하는 다른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다의성’과 ‘이질성’이 완전한 통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성격들과 다양한 스케일에서 중첩되어 나타나면서 공간적인 성격이 변화하고 확대되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적인 성격, 즉 다른 공간들과 차별되는 하나의 기능을 완결되게 갖는 완전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의미 생산을 촉발하는 다원적이며 이질적인 장(場)이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이 공간은 공간구성의 측면에서 서로 다른 대립적 요소 간의 단절적인 성격을 가지면서도 이것을 이어주거나 완충해주는‘전이성’을 중심으로 구현되고 있으며 이러한 전이성은 대립적인 요소들 사이의 공간, 모호성을 지닌 공간, 중재적인 공간 등 다양한 개념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공간의 전의성은 중첩, 병치, 삽입의 형태가 단일적 혹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3. 자본과 영토주권의 대립관계가 형성한 상호문화성
1) 남한 측 자본과 북한 측 주권의 대립
집단 간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행위자들의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집단 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연속적인 집단 간 접촉을 통해서 외집단에 대한 학습할 수 있는 과정의 기회가 주어지고 이러한 학습 과정에서 획득한 외집단에 대한 지식이 편견을 감소시키는 과정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순환적 과정을 통해서 상호 간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즉, 외집단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은 태도를 개선할 가능성을 제공한다(이봉민, 2012).
하지만 이러한 상호 접촉의 상황이 무조건 같은 공간에서 접촉하도록 한다고 해서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상호 간 접촉의 관계가 어느 정도 동등한 지위, 공동의 목표, 내적 협력, 제도적 지원의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접촉과 면대면 만남이 이루어져야 서로 간의 관계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이원형(역), 1993). 즉, 제도적으로 지원을 하고 경제적인 이익이 분명한 행위자들 간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내적으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는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러한 불평등은 결국 상호문화성이 자리할 곳을 잃게 만든다. 상호문화성이‘사이공간’에서의 사회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호 간 평등한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다음의 문장은 개성공단에서의 상호 간 접촉 조건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다(그림 2).
‘개성공단에서는 갑도 없고 을도 없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와 함께 개성공단 내에서는 격언처럼 여겨지는 말 중 하나로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의 독특한 역학관계로 인하여 나타나는 남북 간 묘한 힘의 상성관계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개성공단은 남한 측의 자본을 투입하고 남한의 생산 및 소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나 북한 측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북한의 법과 제도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근로자들이 북한 주민이어서 북한 당국의 통제 속에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남북이 서로 침범이 불가능한 영역에서 상성을 이루는 팽팽한 힘의 균형 관계로 인하여 남북 간 상호작용의 과정과 결과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 영향을 받지 않고 결과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전이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성공단에서 나타난 힘의 대칭관계는 자본이 침투하여 확산하는 과정에서 영토주권이 이를 통제하고 그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자본의 이동성과 고착성에 따서 힘의 긴장 관계가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즉 자본은 본질적으로 초국가적으로 지속적인 확장을 추구하는 성격을 가지며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 어떤 경우에는 특정의 지리적 스케일에서 국가 혹은 지역의 통제와 조절 장치를 활용하여 독점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지역적인 고착성을 추진하기도 한다. 자본의 급격한 침투와 확산은 어떤 방식이 되었건 간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이를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온 북한 측에게는 영토주권과 기존 질서의 유지・안정에 커다란 위협이기 때문에 당국은 충격을 최소화하고 국가의 영토성을 미시적으로 재조정하려는 노력을 하였다(박배균, 2017; Glassman, 2010).
개성공단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사안에 따라서 남한 측이 갑이었다가 북한 측이 갑이었다가 하는 주도권 관계가 계속 바뀌면서 순환하는 과정을 매일 같이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남북 간 갑과 을이 변화하는 상호관계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행동하는 방식도 바뀌게 된다. 하지만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이후에‘을’이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 불편함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경험을 반드시 하게 된다.
“이야 선생이 공업지구에 몇 년 있더니만 이제 다 적응했구만 기래. 기래도 너무 빡빡하게 굴지는 말라. 이 다음에 남측에서 우리 공업지구 방문하겠다는 행사라도 갑자기 생기면 어쩌려고 기러나.”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협력부 직원
근로자에 대한 임금, 야근 및 특근수당, 인센티브, 간식 및 물자지원 등과 관련된 것은 남한 측의 권한이지만 출근과 업무지시는 북한 측 직장장이나 조장을 통해야 하는, 북한 측에 권한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북은 상호 간에 묘한 힘의 상성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남북 간에 이러한 상성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 관련된 남한 측이나 북한 측 행위자 그 누구도 더 이상 개성공단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는 남북 간에 싸움이 일어나거나 서로 다름으로 인한 갈등 그 자체보다는 남북이 합의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에 있는 경우 또는 어떤 사안이 합의되지 못하고 대치하고 상황에서의 성급한 언행이 문제였다. 즉, 아직 남북 간 상호작용을 통해 합의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결과를 예단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 또는 행위자 개인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레발을 치는 경우, 남북 간 합의하는 과정과 결과와 관련하여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언행을 하는 경우 크게 문제가 되었다.
“입주기업 대표들은 맨날 자기들이 북측에 손해를 보고 있고 고생하고 있다고 해.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서 그런 말을 했거든. 개성공단에서 돈을 못 벌면 그건 기업이 아니라고. 개성공단에 있는 기업들은 임금, 세금 등 혜택도 많이 받고 돈 엄청 많이 벌었어. 그래서 남한에 있는 경쟁사들이 혹시 개성공단 좋다는 소리 들리면 들어오려고 할까 봐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돈을 그렇게 잘 버는데‘을’이라고 할 수가 있나? 여기는 갑을이 항상 바뀌는 곳이야.”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팀장
이는‘남한 측 당국자 추방 위기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남한 측 당국자가 아직 협의 중인 사안들에 대해서 “내가 당국자니까 해결해 보겠다. 잘되도록 하겠다. 걱정하지 마시라.”라고 말하고 다닌 것에 대해 북한 측에서 ‘유언비어 유포’라고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었다. 물론 북한 측 행위자들도 같은 유형의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런 경우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크게 문제가 되었으며 해결 과정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측에서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고 항상 유의하였다. 다음의 개성시 인민위원회 간부의 대답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선생 이번 합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궁금해하시는데, 나도 전혀 모르겠어요. 북남 간 합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누가 알겠나. 그저 공업지구가 잘 발전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공업지구 만들어지는 날부터 관여하고 있는데 북남 간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지. 함부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 50대(남), 개성시 인민위원회 간부이자 남북공동위원회 북한 측 간부
2) 상호문화적 상호작용의 고착과 일상화
남북 간 팽팽한 힘의 균형 관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상호작용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은 개성공단 내 행위자들의 사회문화가 형성되는데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이 확인된다. 개성공단에서 남한 측은 ‘협의해 봅시다’라고 하고 북한 측은‘토론해 봅시다’라고 말하고 즉각적인 의견제시를 피하는 것이 모든 생활에서 일상화되었으며 행위자들은 큰 사안이 아닌 일도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개성공단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같은 공간에서 이질적인 문화 간의 만남 속에서 상호 간 대화와 교류가 강제되는 상황으로 “상호문화적 성격”이 나타날 수 있는 근간이 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그 형태는 ‘법률에 의거 한 단체’를 제외한 그 어떤 공동체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의 ‘정교분리원칙’에 따른 상호문화주의적인 형태와 유사한 형태라고 생각된다(장한업, 2014; 김형민・이재호, 2017; 김정흔・박치완, 2018).
그런데 개성공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평화롭게 진행되는 경우보다는 서로 간의 차이로 인해 갈등, 투쟁, 논쟁의 발생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상호 간섭, 방해, 의존, 침투 등 충돌과 투쟁, 힘겨루기가 수반되는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적인 상황을 감수하고 상호 용인하는 것이 상호문화적인 상호작용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에? 초기에는 남북끼리 정말 맨날 싸운 기억밖에 없어. 서로 너무 다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양쪽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싸움만 나고 자꾸 싸우다 보니까 감정적으로 서로 격앙되더라고.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가다 보니까 양쪽이 너무 지치고 힘들게 된거야. 그렇게 되니 남북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만 싸워야 하지 않을까. 이러면 안 되는건데, 잘해보려고 만난 건데 잘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더라고. 지금도 합의하려고 다투고 싸우는 게 일과지만 초창기에는 진짜 살벌했데이.” 50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개성공단에서는 이러한 갈등적 상호과정을 피하지 않고 계속하는 과정을 통해 다문화적인 인정과 초 문화적 공통성과 친숙성 찾기를 넘어서 자아와 타자, 친밀한 것과 낯선 것, 서로 다른 체제 간 상호문화적인 성격이 나타날 수 있었고 정치적인 극단성과 대립성이 완화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혼합적이고 이질적’인 성격이 다층적이고 중첩적으로 공간에 나타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박영자, 2012; 최대희, 2014).
4. 남북 간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전이적 사회문화의 중첩
북한은 외부세계의 정보를 차단하고 정보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 인민이 이사 등 이동에 대해 어려운 승인과 등록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중 평양시와 개성시의 이주와 출입 절차는 특히 까다로워서 시‧구역‧군 사회안전부장의 명의로 등록을 해야 하는데 개성시의 경우 ‘신해방지구’로 특별관리대상이었기 때문에 외부세계와의 단절이 아주 심한 곳이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북한 당국은 평양과 신해방지구 주민들의 출신 성분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정권에 대한 잠재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 외부와 손잡을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분산, 와해시켜 핵심 군중의 포위 속에 들게 함으로써 체제 안정성을 기하고자 하였다(이금순, 2007).
최근까지도 개성시와 인근 지역은 남북 간 경계 지역이면서 남북의 상호작용이 지속되는 공간인 개성공단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거주가 제한되고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개성에 거주하기 위한 자격요건은 개성에 부모가 있거나, 고향이거나, 중앙당이나 인민무력부에서 파견된 사람으로, 인민보안성 주민등록국에서 거주 승인을 받아야만 거주할 수 있으며 특별 통행 금지지역으로서, 그 지역에 직계가족이 있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고 출입할 수 있다2). 즉, 개성은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치밀하게 작동하는 지역으로 남북 양측 외부세계와의 단절이 극도로 제한된 곳으로 외부세계와의 접촉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김병로 등, 2015).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남한 측 행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측과의 접촉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북한 측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 발생하는 남북 간 행위자 간 상호작용의 과정은 갈등, 투쟁, 논쟁이 빈번히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은 상호 간섭, 방해, 의존, 침투, 충돌, 힘겨루기의 쉽지 않은 과정으로 이어졌다. 남북은 상호작용이 계속되는 과정과 결과를 얻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면서 행위자들은 때로는 적응하고 때로는 스스로 변화의 중심이 되면서 개성공단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기존의 사회문화적 바탕 위에 남한과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혼합적이고 이질적’인 사회문화가 다의적이고 중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절에서는 남북 간 상호문화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사회문화의 성격을 탐색하고 이렇게 등장한 사회문화가 ‘사이 공간’을 구성하는 중첩적이고 매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1) 혼합적인 언어문화의 탄생과 일상화
개성공단에서는 서로 다른 행위자들 간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하여 투쟁과 논쟁의 과정을 통해 ‘금지’, ‘수용’, ‘대안 제시’의 결과가 계속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는 고정되지 않고 재생산되며 다른 변화를 추동하는 프로그램적 성격을 보인다. 개성공단에서의 상호작용은 남북이 적대적인 속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고 70여 년을 서로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 다름이 상당히 커서 만만치 않은 갈등과 고통의 시간을 거치게 되었다.
개성공단 초기에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경우‘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축적되기 이전이라 단순하게 서로 다름으로 인한 일차적인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후 ‘남북통합경험’의 선순환을 통한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갈등의 양상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언어문화라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에서는 기존의 언어 위에 새로운 언어문화가 등장하여 중첩되어 나타났다.
(1) 언어의 차이에 따른 상호문화 과정
개성공단에서 남북의 행위자들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일상생활 중에 필연적으로 언어문화의 차이를 가장 먼저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사회문화의 차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언어의 차이는 대화 중에 언제 어디서 문제가 될지 모르는 채 갑자기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행위자들의 상당한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어려웠던 문제는 남북 간 서로 다른 체제와 정치적인 부분과 관련된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남북 간에는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괴뢰’로 규정하여 왔기 때문에 상호 간에 사용하는 명칭도 서로를 불인정하는 방식으로 공식화되어 왔다. 남한 측에서 쓰는 ‘북한’이라는 말에서의 ‘한’은 대한민국을 의미하며 북한 측에서 부르는 ‘남조선’에서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뜻하는 말이다. 즉, 기본적으로 상대를 괴뢰정부로 규정하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서라도 수복을 해야 하는 적대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개성공단이라는 공간에서 남북의 행위자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남한 측 행위자는‘북한’이라고 말할 수 없었고 북한 측 행위자는‘남조선’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즉, 기존에 남한과 북한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대립적인 뜻의 언어와 문자는 개성공단 내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남북 간 합의에 따라서 새롭게 대안으로 제시된 ‘남측’과 ‘북측’ 또는 ‘남쪽’, ‘북쪽’으로 지칭하도록 정해졌다.3)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측과 북측은 남북 간 회담이나 서로 간 방문 등 대부분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남한이나 북한 모두에서 일상적이고 통념적인 언어는 아니다.
반면에 개성공단에서는 남북의 행위자가 함께 있을 때는 남측, 북측 또는 남쪽, 북쪽이라는 표현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남한 또는 북한에서는 특별한 경우에서만 사용되는 단어가 개성공단에서는 공식적이고 일상적인 언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남한이나 북한에서는 비일상적이고 통념에 반하는 단어이다 보니 처음에 개성공단에서 생활하게 된 남한 측 행위자와 북한 측 행위자는 모두 이 부분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북한’이라고 하고 ‘남조선’이라고 실수하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남북이 서로 간에 잘 모르고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측 북측으로 인해서 재밌는 사건도 많았어. 어느 날 우리 직원이 주말에 북한산을 다녀온거야. 그리고 개성으로 출근을 했는데 북한 직원들이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본거지. 그래서 ‘등산 갔다 왔다.’라고 했더니 북한 직원 하나가 ‘무슨 산에 다녀왔어요?’라고 되물은거야. 거기서 우리 직원이 고민을 한거지‘북한이라는 말은 안 되는데 북한산이라고 말해도 될까?’ 라고 고민하다가 ‘북측 산에 다녀왔다.’라고 한거지. 거기 있었던 남북 사람들 다 웃다가 기절했어. 고유명사는 말해도 되거든. 북한 직원이 ‘아 삼각산이라고도 하는 북한산을 다녀오셨구만 기래’라고 했거든”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팀장
하지만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작동하고 행위자 간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남북 상호 간 말실수를 하더라도 2~3개월 정도는 서로 허용해주고 가볍게 주의만 주고 지나가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연구자도 실제로 새로 입사한 북한 측 직원이 “남조선에서는 뭐라고 합니까?”라고 해서 그 직원에게“남측이죠. 새로 오셨으니까 뭐 실수할 수도 있죠. 연습 많이 해요.”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남측, 북측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을 통해서 개성공단 내에서는 서로의 체제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주의하는 것이 확인된다.
이와 유사하게 발생하였던 문제로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 문제가 발생하였다. 남한 측 행위자들이야 애국가, 월드컵응원가 등을 제외하면 노래가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없었으나, 북한 측 행위자들이 듣고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노동당 등을 찬양하고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성공단에서 부르거나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북한 측 행위자들은 하루에 한 번 전원이 모여서 ‘업간체조’라 불리는 집단체조를 하는 문화가 있었으며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노래를 듣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남북은 업간체조 노래와 개성공단 내에서 북한 측 행위자들이 듣는 노래의 경우 가사는 삭제하고 곡만 나오도록 하면서 해결되었다(그림 3).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남북이 함께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개성공단 내에서도 남한 측 사람들끼리, 또는 북한 측 사람들끼리만 있을 때는 기존 사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대화를 하였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의 이러한 언어문화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틀 위에 남북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중첩되어 나타나는 형태로 볼 수 있다.
(2) 매개적이고 이질적인 언어문화의 일상화
남북 행위자 간 체제와 사회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 중 상호 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은 서로 용인하면서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북은 계속 함께 생활하면서 언어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로 남북 양측 모두에서 기존에 발견할 수 없었던 이질적 언어문화가 새롭게 중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남북이 처음에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 중 하나가 바로 두음법칙과 외래어의 표기 및 사용법이다. 우선 북한 측에서는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상호 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남한 측 행위자들은 두음법칙을 사용하고 북한 측 행위자들은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아도 서로 대화에 지장을 받지 않았고 새롭게 조정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외래어의 경우 서로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남한 측 행위자가 “여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 났는데?”라고 하면 북한 측 행위자는 “녀자 위생실은 만날 고장이 나.”라고 두음법칙에 상관없이 대화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북한 측 행위자들이 한국식 영어인 콩글리시와 한국화된 일본식 공장용어를 사용하는 모습이었는데 ‘시간 체크’, ‘0시 타임 버스’ 등의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그리고 공장에서 생산활동 시 사용하는 단어들은 남한 측에서 사용하는 일본어 잔재들인 ‘시다(보조원)’, ‘다이마루(면 티셔츠원단)’ 등의 단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남한 측 행위자들 역시 랭풍(에어컨), 온풍(히터), 정형(현황, 통계, 분석 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 고뿌(컵), 인차(방금, 바로)와 같은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남한 측 행위자들은 친밀한 북한 측 행위자에게 ‘동지(존칭어, 손 위)’, ‘동무(친구나 손 아래)’라고 하는 등 북한 측 방식으로 상대방을 부르기도 하였다.
언어 중에서 남북 어느 한쪽이라도 사용이 곤란한 내용은 합의하고 양해하여 표준화를 하였는데, 상호 간 존칭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개성공단에서는 상호 간 호칭을 북한 측 행위자들이 사용하는 ‘~선생’이 규칙으로 적용되었다. 서로 간 호칭을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남북 간 회담에서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 측 행위자들의 경우 ‘~님’이 원래 최고 존엄 등을 부를 때 붙이는 존칭이며 ‘~씨’는 북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남한 측 행위자들에게 ‘선생’이라는 호칭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북한 측의 호칭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개성공단에서의 언어문화는 남북 간 상호작용을 지속하면서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고 ‘금지’, ‘수용・중첩’, ‘대안 제시와 제도화’의 형태를 중첩적이고 다의적으로 취한 것으로 확인된다. 개성공단에서 남북 행위자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반적인 언어문화는 개성공단 이외의 남한 측이나 북한 측 양쪽 모두에서 사용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문제의 소지가 될만한 것들이 많다. 남한 측 행위자가 개성공단을 벗어난 남한 지역에서 ‘랭풍기’라고 하고 ‘북측’이라고 말하게 되면 일상적인 공동체 내에서 상당한 이질감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느 날 집사람하고 애들 데리고 놀러 갔는데 에어컨이 너무 쎄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개성공단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냉풍기를 세게 틀었네’라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고 심지어 우리 가족들까지 뭐라고 막 하더라고. 집사람이 나중에 제발 좀 조심하라고 했어. 아 그때 ‘개성공단은 내가 원래 속해 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구나’가 느껴졌어.” 50대(남), 개성공단 입주기업(M사) 남한 측 근로자
“개성공단이 처음 생기고 우리 측 성원들이 아무도 입직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무서워하더라고, 남측하고 일하다가 무슨 일 당하는 거 아닌가 하고 조심하더라고.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인민들을 모아놓고 호소를 했어요.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북남이 힘을 합쳐서 잘한 번 살아보자. 걱정하지 말고 해 보자고 하면서 겨우 설득해서 입직하도록 했거든. 그런데 요즘 보면 너무 다들 익숙해져서 큰일이야. 우리 성원들이 개성공단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개성공단 밖으로) 나가서도 그러는데 조심해야지. 여기하고 밖은 다르니.” 50대(남), 개성시 인민위원회 간부이자 남북공동위원회 북한 측 간부
북한 측의 경우 개성공단 이외의 지역에서 개성공단에서 사용하는 언어・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다가는 혁명사상이 의심된다는 명목하에‘로동단련대’에 잡혀가 고초를 당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즉, 개성공단에서 새롭게 조성한 언어문화는 개성공단에서 생활하는 남북 행위자 간에만 유효한 독특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표 2).
표 2.
개성공단에서 언어의 금지, 수용/중첩, 대안제시/제도화의 상호작용
2) ‘상호문화적 감수성’과 행동양식의 변화과정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행위자들의 사회문화적 행동양식의 변화는 크게 전체적인 행위자들의 변화와 북한 측 행위자들의 변화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특히 남한 측 행위자들의 경우 행동양식에서 확연하게 어떤 변화가 드러나기보다는 북한 측 행위자들이 남한 측과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지고 거기에 맞게 실천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북한 측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이 누적되면서‘상호문화적 감수성’이 발달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 중요했다. 북한 측 행위자들은 이러한 ‘상호문화적 감수성’이 발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확연한 행동양식의 변화까지 나타내게 되었다.
표 3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2016년에 분석한 남한 측 행위자들이 개성공단 생활을 통해서 본 북한 측 행위자들이 남한 측과 다른 사회문화적인 차이점을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자료에서는 문화적인 부분과 체제 및 정치적인 부분으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이 내용을 분석하여보면 남한 측과 비슷한데 좀 과도하거나 이전의 모습이 유사하게 남아있는 부분, 즉 ‘유사한 부분이 있는 다름’과 체제나 정치적인 차이로 인하여 발생한 ‘전혀 다른 다름’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북한 성원들은 얼마나 가부장적이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따지는 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 보면 나이가 많은 남자 법인장들이 주류인데, 다 이유가 있지. 북측에서 나이 많은 남자한테는 함부로 못하거든.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북한 사람들 보면 우리 어릴 때하고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니까 비슷한데 우리보다 발전이 더뎌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이 들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는거야. 지금은 그래도 많이 개화된거야. 처음에는 진짜 왜 이러는지 이해도 안 되고 정말 미치겠더라니까.” 60대(남), 개성공단 입주기업(S사) 남한 측 근로자
표 3.
개성공단에서 남한 측 행위자들이 본 북한 행위자들의 사회문화적 차이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2014) 자료를 중심으로 재구성
그런데 북한 측에서 상호문화적인 감수성이 발달하면서 ‘서로 다름’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절충해 나가는 사례도 있었는데 그 중 사회문화적인 차이에서 감수성이 발달한 사례가 주로 확인되었다. 특히, 북한 측 행위자들이 남한 측의 여성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는 성공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개성공단 내에서는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많이 줄어들었고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을 나누거나 차별하는 모습이 드물어졌다. 그러면서 입주기업에 여성 직장장(북한 측 근로자 대표)까지도 등장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어떤 섬유・봉제 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남자 직원이 뭔가 걱정이 있어 보여서 물어봤더니 자기 딸이 같은 회사로 오게 될 것 같다면서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데 걱정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개성공단 초창기에 남자들은 봉제는 여자들 바느질하는 일이지 않냐면서 한심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절대로 여자들이 하는 일은 못하겠다고 그랬는데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팀장
“개성공단 초기에 세칙을 합의하기 위해서 모였을 때 우리 쪽 담당자 중 여성이 있는 것을 보고 북한 측에서‘여성이 담당자인가? 나보고 나보다 어린 여자를 상대하며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냐. 윗사람을 데려오라’면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어쨌거나 여자라고 완전히 무시했어. 남북 간 회의하는 곳에 여성이 있는 것조차도 싫어하고 그랬는데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할 수 밖에 없잖아. 그런데 (우리 측)여성들이 일을 열심히 독하게 하잖아. 그렇게 같이 일하면서 일이 잘되는 사례도 있고 그러다 보니 북한 측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고 업무 관련해서 대화도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북한 측에서 여성 직장장(입주기업 북한 측 대표)도 들어오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3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과장
남북 측 행위자들 모두에게 이러한‘유사한 부분이 있는 다름’의 경우 남한 측 행위자들에게 70년대에서 80년대 초 정도까지의 모습과 비슷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고 북한 측도 같은 민족의 유사성에 바탕을 두고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다름’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 사람들은 연대책임을 지는 체제 탓인지 절대 사과를 한다거나 감사 표시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 아무리 잘못해도 핑계를 대고 그랬거든.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우리 측의 사과하고 감사하는 문화에 대해서 이해도가 좀 생겼는지 신뢰가 좀 쌓여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 없이 조용할 때 감사 표시도 하고 사과도 하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사람들 같이 있을 때는 절대로 안 해”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처음에 북한 사람들은 정말 가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많이 했어. 사회주의 체제 영향으로 무조건적인 평등의식이 있어서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뭔가를 받으면 똑같이 달라고 하고. 특히 남자들이 심했는데 공장 근처에 죽 둘러앉아서 담배만 줄창 피고 있고 일을 안해.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낸다는 거 자체에 대해 의식이 없었고. 대화 자체가 잘 안되었어. 서로 신뢰도 없고, 그런데 모범적인 사례들이 나타났고 조금씩 나아지더라고.”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팀장
서로 간의 체제와 정치적인 다름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남북 행위자 간 이해하고 절충되는 지점이 없어서 극복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상호문화적인 감수성이 높아지는 단계가 필요하였고 실패하는 사례와 모범사례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남북 행위자들의 공동체적 인식이 형성되고 행동양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개성공단 초기에 어떤 기업에서 있었던 일인데. 남한 측 법인장이 북한 근로자 중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거야. 그런데 그 공장 법인장이 북한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고 대화도 많이하고 그래서 좀 알던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북한 측 직장장(한 기업의 북한 측 근로자 대표)을 불러서 공장 뒤쪽 공터에 공장 건축 하려고 자재 들여온 것 중에 합판이 좀 있는데 그걸 가지고 가서 관을 짜서 장례를 치르게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어. 당시 북한 측 근로자들하고 교감을 많이 하면서 사람이 죽으면 나무가 없어서 관을 못짜고 특히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불효자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던 거지. 북한 측 직장장 그 자리에서 울고, 그 공장에 있는 북한 직원이 다 울었다고 해. 이후에 그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은 그랬다더만, ‘우리’회사, ‘우리’법인장 선생님이라고. 그 뒤로 그 공장은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더라고.” 50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3) 공동체적 개인에서 사적 개인으로 변화해 간 북한 측 행위자들
개성공단에서 남한 측 행위자들이 가장 불편하고 답답해했던 것은 북한 측 행위자들이 ‘자본주의적 생산활동과 보상’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등 우선의 의식하에서 행동하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생산활동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해야만 하는 기업의 특성상 이런 부분이 가장 골치 아팠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생산활동만이 아니라 개성공단 운영 전반에서 문제점으로 부각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볼만했다. 일을 해서 일 한 만큼 더 받는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하지를 못했고 품질, 납기 일 준수, 불량률을 낮추는 게 왜 중요한지도 몰랐거든. 특히 남자들은 정말 심각했는데 개성공단이 또 경공업이 많잖아. 그러니까 남자들이 와서는 ‘남자가 무슨 바느질을 하고 그럽니까.’라고 하기도 하고 정말 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지. 그런데 사람이 실제로 돈 버는 경험을 하니까 생각보다 빨리 바뀌더라고.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개성공단에서 확인 가능한 북한 측 행위자들의 핵심적인 변화상 중 하나는‘자본주의적인 생산활동과 보상 방식’에 대해 적응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다음 북한 측 간부의 말을 통해서 기존의 북한 측 행위자들의 사회주의적인 행동양식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탈북하는 것들 있잖나. 걔들은 바보야. 나라에서 보장해 주는 게 얼마나 많았는지 아마 남측 가서 깨달았을거이야. 능력도 없는 것들이 가서 고생해 보라지. 경쟁이 되겠냐는 말이야 만날 주는 거 받으면서 살다가 말이지. 공업지구(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성원들도 마찬가지야. 아마 ‘와 세상이 쉽지 않고 경쟁하는 건 힘들구나. 국가가 나를 부족한 부분이 있지마는 편하게 해준 거였구나’ 하는 거를 알았을거이야.”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협력부 참사
개성공단의 북한 측 행위자들이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에 적응하고, 사유재산에 대해 인식하고 이러한 모습이 생활에서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행동양식의 변화까지 얼마나 걸렸는지에 대해 남한 측 행위자들이 대부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개성공단에서 북한 측 행위자들의 변화가 생각보다 빠르고 확연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양식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1)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변화와 실천
북한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고 국가의 경제계획에 따라서 일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방식의 생활양식이 정착되어왔다. 물론 이러한 계획 경제와 배급제는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잘 알려진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장마당의 등장으로 인하여 변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건설되고 남북이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시기만 하더라도 장마당이 장려되고 전국적으로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이전이었다.4) 따라서 개성공단 초창기의 북한 측 행위자들은 일하는 만큼 받을 수 있다는 개념과 자기가 일한 것을 집에 가져가서 개인이 처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생소하게 여겼다.
“처음에 입직한 우리 측 성원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나한테 와서 힘들다고 토로하고 계속 일하는 게 맞는지 물어보는거이야.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우리도 밥 굶지 말고 잘 살아보자고 했지. 그런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더라고. 똑같이 배급받고 살아서 몰랐던기야.” 50대(남), 개성시 인민위원회 간부이자 남북공동위원회 북한 측 간부
개성공단에서 북한 측 행위자들이 사유재산에 대해 인식할 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이 공단 내에서 물리적인 경관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로 북한 측 행위자들이 공단 내에 조성한 밭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공단 내에서 북한 측 행위자들의 밭농사가 성행하게 된 것은 북한 측 행위자들이 개성공단 내에서 경작한 농산물은 개인이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림 4).
“초창기 북한 근로자들은 기본급이 있고 일을 더 하면 더 받을 수 있고 일을 잘하면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단순한 원리가 말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해.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1년 까지는 안되었을거야. 그런데 곧 시스템에 적응하는게 느껴지더라고. 지금은 뭐. 북한 사람이다라고 볼 수가 없는 수준이지. 공단 보면 온 천지에 다 농사짓고 있잖아. 그거 다 자기가 가져갈 수 있어서 그런거야.” 50대(남), 개성공단 입주기업 (T사)남한 측 근로자
북한 측 행위자들은 처음에는 농작물을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행위자들이 선도적으로 농사를 짓고 사적으로 소유를 하게 되면서 이것이 실제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개성공단 내에 밭농사 구역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비어있는 땅뿐만이 아니라 공장의 옥상까지 농사 가능한 터만 보이면 밭을 조성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 측 행위자들이 기존에 개성공단 외부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는 공동농장의 경우 개인이 농작물을 소유할 수 없고 공동으로 분배하기 때문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었는데 ‘개성공단 상추하고 공동농장 상추는 크기가 몇 배는 차이가 나고 소출도 몇 배 차이 난다.’라는 말도 있었다.
“북한 측 근로자들이 처음에는 일을 더 하자고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어. 그런데 이제는 집에 가라고 일찍 퇴근하라고 해도 잘 안가고 주말에도 나오고 그래” 50대(남), 개성공단 입주기업(S사) 남한 측 근로자
북한에는 기본적으로 공동농장, 건설 노동 등 함께 일정한 할당량을 일해야 하는 ‘동원로동’이 있다. 개성공단에서 연장근무(야근)를 하거나 특근(휴일에 일하는 경우)을 하는 경우 이러한 의무는 면제되면서 임금도 1.5배에서 2배를 더 지급한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 측 행위자들이 개성공단 임금을 자기가 일한 만큼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북한 당국에서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의 사건을 통해서 북한 측 행위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일한 만큼 보상받고 있고 자신의 임금을 최대한 증가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음은 그중 개성공단에서 잘 알려진 사례이다.
<사례 1: 임금 분쟁-북한 측 행위자들끼리의 다툼 사례>
개성공단에서 남한 측 행위자들 간의 관계는 남한에서와 거의 다르지 않아서 서로 욕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주먹다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 측 행위자들끼리 욕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기는 정말 쉽지 않다. 연구자는 개성공단에서 2년 3개월 동안 딱 두 번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한겨울에 영하 18도로 떨어진 날 버스 배차가 잘못되어서 50명이 넘는 인원이 한 시간도 넘게 길에서 떨어서 북한 측 행위자끼리 싸움이 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례는 북한 측 행위자들이 자신이 받을 임금 내역을 노동보수명세서에서 확인하고 수표(서명, 싸인의 북한 말)하는 날 벌어진 일이었다.
전체 직원의 임금 통계를 계산하는 북한 측 행위자가 기록한 명세서에 실제 북한 측 근로자가 일한 것보다 적게 기록되어 있어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앞서 남한 측 행위자들이 본 북한 측 행위자들의 남한 측과 다른 모습 중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일이 일어나면서 쌍욕을 하고 멱살잡이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남한 측 행위자가 개입하여 싸움을 중재하고 다시 계산하고 확인하면서 일이 해결되었다.
사실 남한 측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북한 측 행위자들끼리 다투는 행위는 북한 측에서는 크게 비판을 받고 심각한 경우에는‘로동단련대’까지 들어가서 사상교육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서로 엄청나게 욕을 하면서 끝까지 싸우는 모습에서 북한 측 행위자들이 자신이 받을 몫에 얼마나 예민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 5).
<사례 2: 북한 측 행위자들의 초코파이 계>
개성공단은 원래 초코파이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처음 초코파이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하다 계속 쓰러지는 북한 측 행위자들을 위해 입주기업이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어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북한 측 행위자들은 기본급이 아닌 추가수당과 인센티브를 초코파이를 비롯한 남한 측에서 들여오는 막대 커피(커피믹스의 북한식 표현), 간식, 업무 관련 지원물자로 받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북한 측 행위자가 초코파이를 비롯한 남한 물품을 받아서 장마당에 내다 팔면 가치가 10배에서 20배까지 폭등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물품의 장마당 가격은 번들의 포장 상태, 즉 박스의 상태에 따라서 또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었다. 큰 박스에 안전하게 포장된 상태에서의 가치가 훨씬 높았는데 이것은 평양, 평성 심지어 북중 접경지역의 장마당까지 운송이 가능한 경우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북한 측 행위자들은 개인으로 받는 경우 박스에 포장된 상태로 받을 수가 없어서 여러 명이 모여 소위 ‘초코파이 계’를 만들어서 박스에 포장된 상태 그대로 장마당에 판매하여 받을 수 있는 최대 가격으로 팔고 돈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하였다.
북한 측 근로자가 사유재산에 대해 인식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이와 비례하여 북한 측의 추가 근무시간은 빠르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는데 2015년이 되면서 추가 근무시간이 2006년에 비해서 약 2.5배가 늘어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는 개성공단 생산물량 증가의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생산량의 증가를 위한 추가 근무는 북한 측 당국과 행위자들의 동의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해본다면 북한 측 행위자들이 추가 근무를 선호가 통계 수치로도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가라 근무’라고 불리는 추가 근무시간은 지키되 실제 업무는 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추가 근무를 하는 것도 조별로 순서를 정해서 차례대로 하는 상황도 등장하였다(표 4).
“나라도 집에 가기 싫을 것 같아. 특히 여성 근로자라면 더 집에 가기 싫을거야. 어떤 (북한 측) 직원한테 들었는데 집에 할아버지, 남편, 아들 3대가 살고 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이 3대가 먹을 밥을 다 차려놓고 나온대. 일찍 집에 들어가면 설거지 하나도 안 해놓고 집안 엉망으로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이 친구들도 이제 다 알거든. 나가서 동원 노동하는 것보다 여기서 농사도 짓고 야근하고 특근도 하는게 훨씬 도움된다는거. 얼마나 집에 안가려고 하는지 알아? 야근하고 주말 근무도 조를 짜서 순서대로 하는 것 같더라고.” 50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부장
표 4.
북한 측 행위자의 추가 근무시간 증가 추이 (단위: 시간)
| 구 분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 연장/야간 | 5.3 | 5.7 | 6.4 | 6.5 | 7.6 | 8.4 | 10.7 | 9.0 | 11.5 | 13.8 |
| 휴 일 | 1.9 | 2.4 | 1.2 | 1.3 | 2.2 | 2.9 | 3.2 | 2.8 | 3.9 | 4.1 |
| 합 계 | 7.2 | 8.1 | 7.6 | 7.8 | 9.8 | 11.3 | 13.9 | 11.8 | 15.4 | 17.9 |
이렇게 북한 측 행위자들이 공동체적인 행동양식에서 사적인 개인의 행동양식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사적소유를 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추어지더라도 이것이 안전하며 실제로 유효하다는 경험을 통해 신뢰가 형성된 후에 급속하게 정착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남북통합경험시스템’이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즉, 개성공단에서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여 실천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①제도의 등장 → ②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행위자의 등장 또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에 의한 실사례의 등장 → ③신뢰의 형성과 제도의 순서를 따랐으며 북한 측 행위자들이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에 대해 인식이 변화하고 실천하는 과정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2) 자본주의적 생산/소비의 실천
북한 측 행위자들은 단순히 근무시간 증가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실천하고 있었다. 생산품의 품질을 높이고 불량률을 줄이며 납기 일을 맞추는 방법을 통해서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모습이지만 북한 측 행위자들의 변화상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개성공단에서 발견되는 생산과 관련된 표어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6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한 곳의 사진으로 ‘품질’과 ‘납기’는 자본주의적인 용어이고 ‘생명줄’은 북한 측에서 사용하는 강한 구호적인 성격의 단어이다. 이것은 남북의 서로 다른 표현이 합쳐져서 새롭게 탄생한 표어의 형태로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생산 현장에 부착하였던 표어의 내용, 표현, 형식 등을 분석5)한 결과, 표어를 게시하는 과정에서 북한 측 당국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남북 간에‘납기’,‘품질’,‘정리・정돈’과 같은 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북한 측에서 주로 사용하는 선동적인 표현이 아닌 중립적인 방향으로 표어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남한 측 입주기업과 북한 측 근로자는 종속관계가 아닌 협력사업의 당사자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각종 표어 내용이 생산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납기, 품질에 대한 표현이 구현되면서 변화하였던 과정과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기존의 북한의 모습과는 다른 진일보해 나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박천조, 2016).
이러한 모습은 표어를 게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생산하는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성공단 내에 기업 중 생산 공정 라인에 현황표를 부착하고 생산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이 많았는데 그 현황표에는 오늘의 생산 목표, 지금까지 달성량과 달성률, 불량률이 기재되어 있었다. 입주기업 공장의 생산 공정마다 같은 양식의 현황표가 있었고 북한 측 근로자들이 이것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다른 생산공정과 비교하며 독려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보게 되면 처음에 무서워서 (개성공단에) 입직도 안하겠다던 우리 성원들이 많이 달라졌어. 솔직히 말하면 이제 너무 남측 물이 들어버려서 걱정이 되기도 해. 그래도 공업지구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기도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50대(남), 개성시 인민위원회 간부이자 남북공동위원회 북한 측 간부
기존에는 불비(不備)한 여건에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원들끼리 말을 맞추고 윗선에 뇌물을 고이면서6)성과에 대해서 거짓으로 보고를 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나 개성공단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내 몫을 더 받겠다’라는 개인의 목표와 수입의 증대를 통해 세금과 자금 확보가 가능한 당국의 목표가 결합 되어 ‘현황판’을 활용하여 실시간 관리를 실천하는 모습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북한 측 행위자들은 개인적으로도 품질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성공단에서는 북한 측 행위자가 입사하면 특정한 하나의 공정 기술을 교육받은 후에 추후 개인의 능력과 숙련도에 따라서 다른 공정에 대한 훈련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초기 북한 측 행위자들은 공정 중에서 어떤 곳으로 배치되더라도 이견 없이 받아들였고 특별히 숙련도를 높이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 측 행위자들은 기술을 습득하여 숙련공이 될 수 있는 공정에 배치되기를 희망하게 되었고 사무실 직원들의 경우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즉 북한 측 행위자들이 개개인도 자기 계발을 통해서 좀 더 효율적인,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 개성공단에서 북한 직원들은 컴퓨터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더라고, (컴퓨터를) 처음 본거지. 그런데 어느 날 엑셀, 워드, 파워포인트 교재를 구해달라고 하더라고, 좀 시간이 지나니까 사무실 직원들이 그 책에 있는 기술들을 다 배워서 사용하는 거야. 엑셀을 매크로도 하고 기존 업무들을 자기들이 프로그램을 다시 짜서 효율성을 높이기도 하고”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과장
여기서 더 한발 더 나아가서 북한 측 행위자 중에서 자기 계발의 수준을 넘어 이러한 것을 더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는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태도 감지되었다. 개성공단 내에서 북한 측 행위자의 이직은 개인의 이직을 위해서 남북의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 간 합의가 필요한 아주 복잡한, 공식적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이거(불법 이직) 적발하려고 5만 명 넘는 (북한) 근로자들 리스트를 엑셀에다가 정리해서 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의심되는 사람이 몇 있네. 이거 확인하면 대부분 (이직한게) 맞더라고, 윗선에다가 뇌물주고 노임 많이주면서 편한 곳으로 이직하려고 하는 건데 이게 합법적으로는 사실상 힘들거든. 이게(이직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 같아.” 4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차장
생산에서만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소비의 측면에서도 북한 측 행위자들의 변화는 확연하게 나타났다. 그중 브랜드의 가치를 인식하고 선호도가 발생하게 되면서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브랜드를 따지고 각자 선호도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요구하게 되었다. 남한 측에서 보았을 때는 브랜드의 가치를 인식하고 선호도가 생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체제에서 인민들은 균질한 물품을 배급받으며 살아오면서 상품이 다양하지 않았고 따라서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은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장품은 남측 제품하고 일본 것도 좋아하지요. 남측 설화수를 제일로 치고요. 다른 제품들도 인기가 있습니다. 중국제는 품질이 한심해서 (북한 상점에서) 눅은 값에(싸게) 팔아도 아무도 사지 않아요.” 20대(여),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민원안내실 직원
개성공단의 북한 측 행위자들의 상품에 대한 선호도의 형태는 ‘로동보호물자(이하 노보물자)’7)부문에서 쉽게 확인된다. 북한 측 행위자들은 노보물자 관련하여 선호하는 브랜드의 물품을 원하지만 남한 측 행위자들은 정해진 예산에 맞추어 물자공급을 해야만 하였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물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니 선생님, 하나만 물어봅시다. 선생님이 돈 내고 사 먹는다라고 한다면 오리온 초코파이를 사서 드실래요. 다른 걸 사드실래요. 콜라도 그래요. 코카콜라 사서 드시잖아요. 처음이시니까 몰랐나보지요. 다음부터는 신경써달라요.” 40대(여)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통계직원
북한 측에서는 초코파이는 오리온, 라면은 삼양 소고기 라면, 커피는 맥심 모카골드를 원하는데 남한 측에서는 좀 더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공급하려고 하다 보니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실제로 이것과 관련해서 북한 측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기도 하였다. 특히 북한 측은 ‘중국제’를 아주 싫어해서‘Made in China’라고 적혀 있는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공급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처음에 그 사실을 모르고 기존에 공급한 것과 같은 중국산 제품을 원산지 라벨 제거 없이 북한 측에 그대로 공급했다가 반품 요청을 당하기도 하였다.
“선생님, 어떻게 근무복을 이렇게 한심한 제품으로 줍니까. 남측 제품으로 줘야지요. 선생님은 남측 제품 쓰지 않아요? 중국제를 돈 주고 사요?” 30대(여),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통계직원
이렇게 개성공단 북한 측 행위자들의 삶에서 나타난 사유재산에 대해 인식하고 실천하는 모습,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이해와 실천, 소비생활에서 브랜드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물품에 대한 선호도를 드러내는 모습 등은 개성공단에서 새롭게 형성된 이질적이고 혼합적인 사회문화적 성격이 기존의 질서 위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5. 완전체에 이르지 못한 ‘사이공간’ 개성공단
개성공단에서 남북은 기존의 대립적 관계에서도 다양한 상호작용을 거쳐서 많은 합의를 이루고 행위자들 간 어느 정도 신뢰 관계도 형성되면서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문화적인 성격들이 나타나고 일상화되었으나 기존의 남북 관계를 뛰어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완성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개성공단 내에서도 남한 측 행위자들끼리만 모여있거나 북한 측 행위자들만 있는 경우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새로운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기존에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일상으로 여겨지는 규율에 따라 행동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성공단이라는 같은 공간에서도 남북이 함께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일상적으로 구분되어 나타나는 다의적인 성격이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사이공간’적 특징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언어사용에서 가장 쉽게 파악된다. 기본적으로 남북이 함께 자리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남측, 북측이라는 말과 선생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았다. 즉, 개성공단에 있더라도 남한 측 행위자들끼리 있을 때는 ‘우리’, ‘북한’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북한 측 행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같이 근무하는 북한 측 행위자들끼리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남측’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중심으로 외부세계에 대한 의식변화가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남측’이 아니라‘남조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측 행위자의 경우 기존의 북한 측의 사회문화적 규율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당하고 ‘로동단련대’교육을 가거나 개성공단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었다.
“얼마 전에 북한에서 준전시상황 선포했을 때 어떤 입주기업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말해줬는데 북한 근로자들끼리 ‘동무 어제 준전시상황 선포했다면서 조선중앙티브이에서 남조선에서 겁먹어서 물건 사들이고 막 그러는 장면 나오는데 사람들 입고 있는 요즘 옷이 아니라 우리가 한 10년 전쯤에 만든 옷 같더라고. 다르더라고’라고 했다네” 3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대리
같은 공간에서 사회문화적으로 다의적 성격이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문서에 사용되는 언어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북한 측의 노동보호물자 신청 서류에는 콜라를 비롯한 모든 음료 제품을 ‘물’이라고 작성하고 라면을 제외한 모든 음식류는 대부분 ‘빵’이라고 기재하고 신청하는 것이었다. 앞서 물품에 대한 선호도와 브랜드 가치를 인식하고 선호도가 높은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는 모습과 아주 상반되는 행동이어서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북한 측 행위자들에게 이를 문의하였으나 답을 얻지 못하다가 어렵게 듣게 된 북한 측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홍 선생님, 이 문건이 공업지구 내에서만이 (쓰이는 게) 아니라 우리 측에서도 확인하지 않습니까. 콜라, 초코파이 이런 식으로 써 있으면 (위에서) 좋아하지 않갔지요. 선생님도 아실 때가 되시지 않았습니까.” 30대(여),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통계직원
이러한 공간적으로 불완전성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은 남북 간의 상호작용이 서로 간의 체제나 정치문제에 대한 부분에까지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사실상 합의 자체를 무기한 보류해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일하는 것 중에 제일 힘든 게 가끔 (북한 측의) 기념일이거나 그래서 (북한 측에서) 위에서 뭔가 새로운 지침 같은 게 내려오잖아? 그러면 방금까지 웃으면서 대화하고 그랬던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이 싹 바뀌면서 막 뭐라고 해. 그럴 때마다 배신감도 들고 머리가 콱 아프면서 정말 힘들거든.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도 되고 뭐라고 하는 정도가 좀 덜해진 것 같기는 한데 그럴 때마다 힘들고 어렵지. 아 여기가 북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50대(남), 개성공업지구 입주기업(T사) 남한 측 근로자
실제 이러한 문제들은 북한 측 행위자들은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과 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절, 노동당 창건일 등 북한의 중요한 기념일이 되었을 때 자주 발생하였다. 그러한 시기에는 북한 측 행위자가 북한의 노동당과 정권을 찬양하는 가사의 노래를 불러 남한 측의 문제 제기를 당하는 것이 북한 노동당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을 알고도 어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북한 측 당국에서 북한 측의 주요 기념일에 이러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행동을 촉구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남북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 주의 주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넘어가게 된다. 즉,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의 근원적인 갈등을 해결하고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대체하는 완전체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은 계속 발생하였다. 다음은 그중에서 직접 겪은 주요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사례1: 북한 측의 당과 정권에 대한 찬양 노래>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 합작 식당인 평양식당에서는 저녁마다 다양한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평양식당은 저녁 시간에는 남북 행위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체제나 정치와 관련하여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조심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평양에서는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북한의 명절이나 기념일에는 가끔 정권과 노동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갑자기 공연에 포함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연구자도 북한 측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김정일 생일 주간 중 평양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찬양하는 가사가 들리기 시작함을 느꼈고 거기 있었던 남한 측 행위자들 대부분이 이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확대하지 않고 대부분은 ‘합의한 사항을 지킬 것’을 골자로 하여 주의 주면서 앞으로는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례2: 북한 측의 당에 대한 충성심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대응>
2014년 8월 17일, 북한 측은 개성공단에서 김대중대통령서거5주기 화환을 전달하였다. 당시 연구자가 남한 측 담당자로 행사를 진행하였으며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도록 통제하였기 때문에 사진 촬영까지 하게 되었고 직접 찍은 사진이 남한 측으로 전달되면서 이 행사의 기사가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아래의 사진 5-7 때문에 북한 측 협력부에서 난리를 치면서 어떻게 이런 짓을 하냐면서 추방까지 당할 각오를 하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연구자는 아무리 사진을 보아도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설명이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사진상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에 빛을 먹어서 사진상으로 얼굴이 훼손되도록 하여 자신들의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당시 북한 측의 곤란한 상황은 어느 정도 이해되었으나 남한 측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문제를 더 크게 일으키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어서 연구자는 한동안 북한 측과 팽팽하게 맞서게 되었다. 결국 북한 측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자신들의 뜻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앞으로는 특별하게 주의해 달라’라고 당부를 하고 상황이 마무리되었다(그림 7).
위 사례들과 같이 행위자들 개인이 문제를 유발하는 경우 남북의 행위자들은 모두는 이러한 상황이 확대되어 남북 양측 당국 간에 대치하게 되는 경우로 국면이 확대되면 개성공단 운영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조용히 무마하고 그 의미를 서로 간에 최소화하면서 덮고 지나가는 쪽으로 넘어가고는 하였다. 사진 5-7 로 인한 문제가 어느 정도 처리되고 난 후 남북 측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선생도 이제 공업지구에서 일한지 좀 되어서 이제 어느 정도 (우리 측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가. 공업지구 안에서야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끼리) 토론하면 되지만 밖으로 나가면 (우리)입장이 아주 곤란하지 않갔어. 이런 문제로 북남 간에 문제가 있어서 공업지구 발전에 방해가 되면 안되지.”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협력부 참사
“(남북관계)분위기도 안 좋으니까 이쯤에서 넘어가자. 협력부에서도 더 이상 문제 제기 안 하려는 것 같던데. 이건 사실 아직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 30대(여),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과장
위 사례들은 개인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개성공단 내의 남북한 행위자들 모두는 이러한 상황이 확대되어 당국 간에 대치하게 되는 것을 개성공단의 존속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처리하고 넘어간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합의 내용을 파기하는 행동을 북한 측만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2015년 8월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인하여 북한에서 전방 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을 때 북한 측에서는 의외로 개성공단 내에서의 생산업무는 예외적으로 정상조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서 정세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도록 조치를 하였으나 남한 측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남한 측 인원 중 필수인원만 제외하고 개성공단에서 긴급히 빠져나오도록 하면서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고 갈등을 초래하게 되었다. 당시 개성공단의 북한 측 참사들은 이러한 남한 측의 대응 방식과 이러한 대응에 따라 행동하는 남한 측 행위자들에 대해 실망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공화국에서 준엄하게 준전시를 선포했음에도 공업지구는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지 말고 운영하도록 지침을 받았는데 남측에서는 다 나가버리더라고. 그래도 북남 간에 회담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다행이야. 선생 전선(戰線)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보니까 좋구만 기래” 50대(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북한 측 협력부 참사
결과적으로 개성공단에서 남북이 형성한 새로운 공간은 정치・경제적인 문제의 개입에서 자유롭게 기존의 체제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남북한 양측의 적대적인 대립체제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인하여 2016년 2월 11일 전면 중단을 맞이한 후 여전히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성공단은 성공과 실패라고 단순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미시적으로는 남북 행위자들이 모여서 대립적이고 적대적인 기존의 관계 속에서도 함께 생활하기 위해 상호작용을 통해 제도와 사회문화를 형성하여 실제로 적용해 나간 유일한 남북 매개적 공간 형성 프로그램이지만 대립 관계로 인한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기존의 체제나 적대관계를 대체하거나 독립적으로 완전체에는 이르지 못한‘사이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6. 결론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행위자 간에는 어느 한쪽으로 힘이 편중되어 있지 않은 팽팽한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행위자들의 모든 상호작용에서 높은 전이성이 발휘될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아무리 사소한 상호작용도 논의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강제적으로 반드시 거치게 되었고 이러한 행위자 간 상호작용이 순환하면서 개성공단만의 독특한 상호문화적인 성격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개성공단에서 나타난 사회문화적인 현상의 형성은 행위자들 간 매일의 상호작용은 상호 간섭, 방해, 의존, 침투, 투쟁, 힘겨루기의 갈등적 상황의 계속이었는데 행위자들은 이러한 갈등을 피하지 않고 지속적인 상호과정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갈등적 상호작용의 결과는 그 전이성으로 인해 창발적이며 스스로 경로 의존적이고 역동적인 발전과정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고정되지 않은 상호문화적 성격이 계속되며 변화가 지속되는 과정인, ‘프로그램’적인 상태를 추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호문화적 성격은 개성공단 행위자들의 실제 생활 속에서 혼합적이고 이질적인 형태로 기존의 사회문화적인 성격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 확인된다.
개성공단에서 남북의 행위자들은 서로에 대해 사실상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만났으나 상호작용이 지속되면서 기존에 남북에서는 정상으로 여겨지는 규범/질서와는 다른 이질적이며 혼합적인 형태의 사회문화가 기존의 속성 위에 중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크게 ①남북의 혼합적으로 새롭게 형성된 개성공단만의 언어・문자 문화, ②남북 행위자의 새로운 행동양식, 즉 남북이 접촉을 통해서 서로 간의 상호문화적인 감수성을 높여가면서 행동양식의 변화가 나타난 점, ③북한 측 행위자들의 사유재산에 대해 인시하고 실천하며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소비양식에 적응한 모습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나타난 남북 행위자들의 의식 및 행동양식의 변화와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성격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기존 규범/질서 위에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행위자들의 행동양식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남북 간의 상호작용들이 서로 다른 체제나 정치체계에 대해서 합의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점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개성공단은 미완성의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통일이라는 단어를 국가적으로 지우는 일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였고 남북 간 경계를 더욱 단절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남북 관계는 그 어느 때 보다 경색되고 있어서 남북협력과 통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런데 독일 분단 시절 동독은 두 국가 이론(Zwei- Staaten-Theorie)을 내세우며 헌법을 개정하고 ‘독일 민족’, ‘통일’등과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서독은 이를 거부하며 대립한 아주 유사한 역사가 있다. 결국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독일은 준비되지 못한 채 사회문화적 통합 상황을 갑자기 맞이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독일도 하지 못했던, 남북의 평화적 협력과 통일이라는 역사가 도래하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엄청난 사회문화적 통합과정을 남북이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사이공간을 만들며 미리 경험해 본 소중한 자산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개성공단의 경험이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과 통합에 기여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