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젠트리피케이션, 철 지난 유행가?
2.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서사의 흐름
3.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성
4. (안티)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 사업의 뒤얽힘
5.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의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
6. 서촌의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도시재생
7. 결론: 끝나지 않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
1. 서론: 젠트리피케이션, 철 지난 유행가?
도시공간의 가치상향화와 그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2010년대 국내 도시지리학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주제 중 하나이다. 2009년 홍대 두리반 사태 이래로 소위 ‘뜨는 동네’ 현상 속에서 나타나는 임대료 상승, 임대인과 임차인 갈등, 원주민 전치, 장소성 상실 등이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저항으로써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이 활발해진다. 이 과정에서 생소한 학술 용어였던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공간을 둘러싼 갈등을 설명하는 친숙한 시사 용어가 되었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는 신문기사 건수는 2014년을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표 1).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빅카인즈 검색 결과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제목이나 본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한 신문기사는 총 50건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한 해 동안만 423건의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신문기사가 출판되었으며, 그 수는 2016년 1,198건, 2017년 1,449건으로 증가한다.
표 1.
년도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건수 | 2 | 1 | 7 | 6 | 34 | 423 | 1198 | 1449 | 1272 | 1120 | 605 | 349 | 289 | 309 |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들이 증가한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제공하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검색 결과에 따르면, 제목이나 초록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는 논문의 편수가 2015년을 기점으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표 2). 마찬가지로 지리학계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루는 논문이 증가한다. 젠트리피케이션 연구가 가장 활발한 대한지리학회, 도시지리학회, 공간환경학회에서 출판된 논문 중 제목이나 초록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는 논문의 편수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1편 내외로 적었으나, 2016년에는 총 8편으로 증가하였으며 현재까지 매년 적게는 1편에서 많게는 5편의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논문이 출판되고 있다(표 3).
표 2.
년도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건수 | 8 | 7 | 7 | 4 | 7 | 19 | 44 | 35 | 44 | 50 | 41 | 31 | 30 | 22 |
표 3.
년도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건수 | 0 | 0 | 1 | 1 | 1 | 1 | 8 | 5 | 1 | 3 | 2 | 3 | 3 | 5 |
그러나 2019년을 기점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언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하는 신문기사 건수가 2019년 1,120건에서 2020년 605건으로 줄어들었으며, 이후 이러한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원인으로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을 들 수 있다. 2020년 1월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같은 해 3월부터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때 가장 주요했던 방역 규제 중 하나는 카페, 음식점 등의 영업 시간과 집합 인원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뜨는 동네’에서 카페, 음식점 등이 인기를 끌며 시작되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이 약화되었으며, 상가 부동산 투기나 임대료 인상보다는 매출 감소로 인한 영업 손실과 폐업 증가가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김삼희・정소윤, 2024).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이외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맥락이 변화한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2010년대 중반 이래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며 서울시, 성동구 등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들을 펴내게 된다(경향신문, 2015; 한겨레, 2015). 또한,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 등 영세 자영업자의 강제 퇴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이 진행되었으며, 여기에 정치인들이 합세하여 몇몇 성과를 만들어낸다(한겨레, 2016, 2019). 예를 들어, 2018년에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어 임대료 인상률의 상한이 연 9%에서 5%로 하향 조정되었고, 계약갱신청구권의 행사 기간 역시 5년에서 10년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이 같은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의 성과는 지나친 임대료 인상, 폭력적인 명도소송 강제집행 등과 같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측면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인상을 남겼고, 그에 대한 언급이 줄어드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 측면이라 여겨지는 지역경제 활성화 및 개발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는다. 이는 서구 학계에서 2000년을 전후로 하여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서 급진적 색채가 줄어든 것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Slater, 2006). 후술하겠지만, 서구 사회에서 1960년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처음 고안된 이래로, 해당 용어는 자본주의적 혹은 신자유주의적 도시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부자에 의한 빈자의 축출이라는 부정적 함의를 가진 현상을 지칭해 왔다. 하지만 1990년대의 경제불황과 긴축재정 속에서 도시재생 사업 등 적극적인 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의 필요성이 부각되었으며,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동의를 얻기 시작한다(Anderson, 2020; Smith, 1996 참고). 결과적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여 도시의 성장 동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연구들이 증가하게 된다(대표적으로 Florida, 2005).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지역의 낙후, 침체, 노후화 등을 좌시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여전히 도시공간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야기할 수 있는 무분별한 개발과 상업화를 지양하면서 동시에 적절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도시재생이 새로운 도시계획 패러다임으로 등장한다. 2013년 제정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사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지역을 지역 역량 강화, 신규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물리적, 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제2조 1항). 이러한 법령에 근거하여, 각 지자체는 사업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 중인데, 대표적으로 서울시에서는 산업 및 경제 활성화를 중심에 둔 ‘경제기반형’과 주택정비 및 생활시설 확충을 중심에 둔 ‘근린재생형’으로 그 유형이 나누고 있다(서울시, 2015; 2023).
이렇듯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사업은 종전의 합동재개발 사업과 뉴타운 사업 등 ‘나쁜’ 개발에서 나타난 빈익빈 부익부, 공동체 파괴 등의 부정적 결과와 거리를 두며, ‘착한’ 개발을 통한 지역 공동체의 보존과 상생을 추구한다(김지윤, 2015; 이영아, 2019). 주목해야 할 점은 서구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주로 1990년대의 경제불황에 대한 타개책으로서 ‘개발’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정당화된 반면,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사업은 오히려 2000년대까지의 대대적인 철거 재개발로 말미암은 부정적 효과를 줄이자는 ‘보존’의 필요성을 통해 정당화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사업은 표면적으로나마 탈성장, 탈신자유주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되는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지역의 개발과 보존, 성장과 지속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가 지속적으로 충돌하게 되며(신현준・김지윤, 2015; Nam and Lee, 2023), 결과적으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기치를 세운 도시재생 사업 속에서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이 재생산되는 모순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지나치지 않은 개발’과 ‘뒤쳐지지 않는 보존’이라는 모순적인 도시재생의 목표 속에서 젠트리피케이션과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이 서로의 순환적인 동력으로 작동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2020년을 전후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과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젠트리피케이션과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도시공간의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양가적 담론과 실천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담론과 실천이 그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순환적으로 공존하는 양가성을 띠며 생산 및 소비되고, 한편으로 도시재생 사업과 뒤얽히는 과정을 탐색한다. 구체적으로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의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담론과 실천이 지역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양가적 욕망과 뒤얽히며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2010년대부터 현재까지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국내외 선행연구, 미디어 서사, 정부 정책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이 그 자체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비판으로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즉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성을 띤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본 논문에서는 탈성장, 탈신자유주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표방하는 현재의 도시재생 사업이 여전히 성장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젠트리피케이션을 지탱하는 면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즉,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적 담론과 실천이 (탈)성장의 모습으로 도시재생 사업 속에서 지속되는 양상을 조명한다. 이러한 (안티)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의 뒤얽힘에 대한 분석은 서울 서촌의 사례에 대한 비판적 해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경복궁 서측의 오래된 동네인 서촌은 2004년 재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었으나, 낡은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도시유산으로 재평가받으며 2010년 역사보존을 위해 철거 재개발이 무산된 곳이다. 아울러 서촌은 2010년대 중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은 지역이자, 노후화된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해 2019년 서울시에 의해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된 지역이다. 따라서 서촌은 재개발, 역사보존, 도시재생 등 도시계획 패러다임의 혼재 속에서 나타나는 개발과 보존, 성장과 지속의 양가적 담론과 실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본 논문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학술적,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공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적 욕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2.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서사의 흐름
본 장에서는 학계와 미디어의 젠트리피케이션 서사를 되짚어 봄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담론과 실천의 다양한 갈래들을 추적한다. 분명히 하자면, 본 논문에서는 이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거나, 어떤 관점이 맞거나 틀렸는지를 논하지 않는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해 왔듯, 젠트리피케이션 이론은 다양한 변용을 통해 그 개념적, 지리적 경계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Lees, 2012; Lees et al., 2016; Shin et al., 2016).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담론과 실천이 어떻게 다층적으로 생산 및 소비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특징이 나타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기 이전인 2010년대 초반까지 해당 개념을 다루는 대부분의 국내 연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 여부를 양적으로 측정하거나, 철거 재개발 사업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이슈를 정치경제적으로 분석하거나, 특정 지역의 문화예술적 상업화를 질적으로 해석하는 세 갈래의 경향을 보여왔다.
먼저 국내 지리학계에 처음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을 소개했던 김걸・남영우(1998) 이후로 도시경제지리 연구자들은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의 측정과 수량화에 힘썼다. 이때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은 주로 Smith(1996)가 강조한 지가 상승을 통한 경제적 변화와 Ley(1996)가 강조한 후기산업사회의 인구통계학적 그리고 사회문화적 변화였다(김걸, 2007; 오창화・김영호, 2016; 이희연・심재헌, 2009). 이러한 정량적 연구들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젠트리파이어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통해 도시공간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가치상향화를 입증해 왔다.
한편,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이론을 사용하는 학자들은 1980년대 이래로 시행된 대규모의 합동재개발 및 뉴타운 사업에 주목하며, 그로 인한 철거민 양산, 주택가격 상승, 투기 성행, 주거 불안정 및 양극화 심화 등을 비판적으로 탐구해 왔다(Ha, 2004; Shin, 2009; Shin and Kim, 2016). 이들 연구는 신자유주의적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 하에 시행된 대대적인 철거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과 그에 동반된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발전주의적 혹은 투기적 도시화의 과정이자 결과로서 분석하고, 이를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로 서구 학계에 널리 소개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도시문화지리 연구자들은 주로 Zukin(1982, 1991)의 저작에 영향을 받아, 문화예술인들의 차별적 취향에 의해 가치상향적 소비문화 공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문화 주도(culture-led) 혹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해석해 왔다(김학희, 2007; 정지희, 2008). 이들 연구는 삼청동 등 서울의 오래된 동네의 상업화를 분석하기 위해 그 주요한 동인으로서 문화예술의 역할을 밝히고, 해당 지역의 변화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데 기여해 왔다. 특정 사례 지역을 대상으로 심미적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연구는 여전히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한 축을 이루는데, 홍대(이기웅, 2015; 최윤영・고정민, 2017), 서촌(신현준, 2015; 지명인, 2022), 연남동(윤혜수, 2016), 익선동(윤지환, 2021) 등에 대한 연구가 그 예이다.
이상의 세 갈래의 연구 경향은 2010년대 중반부터 ‘뜨는 동네’ 현상과 함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담론과 실천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변화를 겪는다. 사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학계에서조차도 드물게 사용되던 것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듯, 2000년대에 이루어진 삼청동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은 경우가 잦았으며, 대신 상업화, 재활성화 등의 단어로 그 개념을 풀어서 설명했다(대표적으로 정지희, 2008).
하지만 2014년을 전후로 젠트리피케이션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오래된 동네들의 상업화와 그에 따른 장소성 상실, 문화 백화, 세입자 전치 등 부정적 효과를 지칭하는 대중적인 시사 용어가 되었다(안지현, 2018; 이선영, 2016). 특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주요 언론에서는 2014년 하반기에 젠트리피케이션 특집 기사를 통해 서촌, 익선동, 연남동 등 새롭게 ‘뜨는 동네’의 상업화에 주목했으며, 그러한 동네들이 가진 진정성이 자본과 외부인의 유입 탓에 사라지는 과정이 비판적으로 그려졌다(경향신문, 2014; 한겨레, 2014). 이러한 미디어 서사에서는 주민을 대상으로 영업하던 꽃집과 세탁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방문객을 위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나, 상가 부동산에 대한 수요 증가로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되었으며, 이 같은 오래된 동네의 변화는 현재 대중에게 매우 익숙해진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담론이자 실천이 되었다.
2010년대 중반 몰아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담론과 실천의 대중적 유행은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연구 경향을 다각화 및 정치화한다. 먼저 지금까지 주로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에 집중해 왔던 양적 연구들이 상업화와 관련된 변수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구형모, 2020; 김종성・김걸, 2020). 이들 연구는 특히 월세, 권리금, 공실률, 생존율 등을 토대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정도를 측정 및 예측하기 위한 지수를 고안하고, 이를 통해 건강한 지역상권 유지를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기여하고 있다(이건학, 2023; 이수미 등, 2020; 이진희, 2022).
한편, 정치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재개발 및 뉴타운 사업에서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해 온 학자들 역시, 용도변경을 통한 주거지 상업화, 상가 임대료 인상과 세입자 축출 등 상업적 이슈를 중요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신현방, 2016; 이선영, 2016). 대표적으로 신현방은 2017년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의 실천적 지향점을 담은 시의적인 책을 엮어내며, 2010년대 들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주목받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표현이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이토록 유행하게 되었으며, 이를 낳은 구조적 배경은 무엇일까? […] 뉴타운 개발의 주요 대상인 기존 단독주택 주거지는 수많은 토지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고, 어지간한 고밀도 아파트 개발로는 수익성을 맞추기 힘들다는 한계로 개발 계획 진행이 정체된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이러한 도시공간에서 기존 단독주택의 상업용도로의 변환을 포함, 개별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결과가 현재 한국에서 크게 대두되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신현방, 2017, 16-17).
이러한 맥락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문화예술의 역할과 행위자의 소비 성향을 분석하는 데 치중되었던 질적 연구 경향 역시 정치화된다. 특히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서촌 궁중족발 등에서 발생한 상가 세입자의 강제 퇴거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며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부정적 서사가 대중매체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 및 재생산되었던 시대 상황과 맞물려, 특정 사례지역에서 나타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을 다루는 연구가 증가한다(김지윤・이선영, 2016; 박은선, 2019; 이선영・한윤애, 2016).
주목해야 할 것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안티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그 둘을 둘러싼 대립적인 담론과 실천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양가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비판은 대체로 지나친 상업화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오래된 동네의 ‘진정성’과 매력적인 장소성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데서 시작한다(신현준・김지윤, 2015; 지명인, 2021). 이러한 진정성 위기 담론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지역의 장소성이 이미 많이 사라졌으며, 곧 전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이 특히 강조된다(윤지환, 2021, 344-345). 그러나 이 같은 허상적 상실감(imaginary feeling of missing)은 해당 지역에 대한 미학적이고 낭만적인 환상을 키우고 있으며, 그러한 장소성이 다 사라지기 전에 그곳을 경험 및 보호하고 싶다는 대중적, 정책적 욕망을 (재)생산하고 있다(Ji, 2021, 233-234). 정리하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생겨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움직임이 오히려 해당 지역을 희소화 및 가치상향화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다시 추동하는 모순적인 순환의 굴레가 생겨난다.
예를 들어, 2010년을 전후로 서촌의 문화예술적 재가치화와 상업화가 진행되자 그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소규모 도시 한옥에 대한 보존 정책이 강화되었고, 방치되던 낡은 한옥들은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한 뒤 뉴트로 감성을 좇는 소비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 같은 급격한 주거지 상업화 속에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 담론을 뒷받침하는 진정성에 대한 욕망과 환상으로 인해 서촌의 ‘뜨는 동네’ 현상은 심화되었고, 이는 임대료 인상과 잦은 손 바뀜을 자극하며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속시키고 있다(지명인, 2022).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과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은 서로가 발생하는 조건이자 결과로서, 즉 (안티)젠트리피케이션으로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3.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성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공존과 양가성을 더욱 세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그러한 담론과 실천을 체화하고 수행하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먼저 ‘뜨는 동네’ 현상을 처음 주도했던 예술가, 언론인, 학생 및 학자, 심미적 소상공인 및 소비자 등 선구자 젠트리파이어(pioneer gentrifie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예술가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지만 미적으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오래된 동네에 공방, 카페, 레스토랑 등을 열고 그 공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밈으로써 동네의 문화예술적 가치상향화를 이끄는 동시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들은 해당 동네가 ‘뜨고 있다’는 소문을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유인한다(Zukin, 1982; 2010).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이 심화되고 임대료 인상과 상가 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본격화될 경우, 그들 역시 전치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이러한 선구자 젠트리파이어들의 전치는 글로벌 대형 자본에 의해 그들 역시 쫓겨나는 현상으로서 슈퍼 젠트리피케이션(super gentrification, Lees, 2003)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산물 혹은 유사 현상으로서 주변적 젠트리피케이션(marginal gentrification, Elliott-Cooper et al., 2020, 196-197)으로 개념화된 바 있다.
학자들마다 예술가, 심미적 소상공인 등을 고정적인 젠트리파이어 혹은 젠트리파이드(gentrified)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인지, 나아가 이들의 유동적인 위치(positionality)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들이 2010년대 한국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관여했던 주요한 행위자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경제자본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높은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가진 선구자 젠트리파이어들은 고정적인 승자나 패자의 카테고리에 위치시키기 어려운 양가적인 존재들이다(김숙진, 2020, 7-8; 윤혜수, 2016; 최윤영・고정민, 2017). 이들은 자신의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활용하여 오래된 동네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자극하는 동시에 전치에 대항하기 위해 그러한 자본을 운용하여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을 주도해 왔다.
“젠트리피케이션 담론은 문화 예술가들이 임대료 상승과 비자발적 전치에 반대하는 투쟁, 즉, ‘반(反)젠트리피케이션 투쟁’을 수행하면서 형성되고 작동한 정동적 연대(affective alliance)를 통해 비로소 담론으로 형성된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0년대를 거치면서 문화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장소라고 주장(claim)할 수 있었던 곳에서 밀려나는 경험을 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도입되고, 고안되고, 공유되고, 공인된 것이다” (신현준・김지윤, 2015, 229).
즉, 기존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철거민들이 생존권이나 주거권 등 경제사회적 함의를 지닌 슬로건을 동원했다면(Shin, 2018), 현재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행위자들은 그들의 미학적, 문화예술적 성향이 투영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슬로건 아래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시민사회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Lee, 2020; Lee and Han, 2019). 이상의 과정을 통해 2010년대 후반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은 더욱 큰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러한 파장의 동인이자 효과로 등장한 또 다른 중요한 양가적 행위자는 바로 정부이다. 사실 국내외 선행연구에서 정부는 이미 중요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행위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젠트리피케이션과 정부의 유동적인 관계가 탐구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Hackworth and Smith(2001)는 뉴욕의 사례를 통해 20세기 후반 경기변동에 따른 정부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 양상에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1980년대까지 정부의 자유방임 속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했던 것은 탈산업화 도시에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중산층 혹은 예술가이거나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은 젠트리파이어로서 민간 투자자 및 개발업자들이었다(Ley, 1996; Smith, 1996; Zukin, 1982). 그러나 1990년대 초반의 경기침체 이후, 뉴욕시는 기존의 퇴행적(roll-out) 신자유주의에서 공격적(roll-back) 신자유주의로 기조를 전환하였으며 글로벌 자본과의 결탁을 통해 줄어든 연방정부의 지원을 충당하고 교외에서의 대규모 개발을 진행한다(Hackworth, 2002). 이러한 정부와 자본의 결탁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제3의 물결(third wave)로서 신자유주의적 정부의 글로벌 성장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Hackworth and Smith, 2001; Smith, 2002).
이렇듯 서구 학계의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서 국가 혹은 지방 정부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21세기 들어서지만, 사실 정부 주도의 도시개발사업과 그에 따른 전치는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다양한 동아시아 사례 연구들이 발전주의적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부가 어떻게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는지를 탐구해 왔으며(He, 2007; He and Wang, 2019; Shin et al., 2016), 그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부터 시행된 우리나라의 합동재개발 사업이다(Shin and Kim, 2016). 이들 선행연구에서 한국 정부는 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우호적인 조력자이자 능동적인 행위자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2014년을 전후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들끓자,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다각화된다. 구체적으로 2015년 이래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 「서울특별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 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 등 피폐해지는 지역공동체와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경향신문, 2015; 한겨레, 2015). 그러나 지방 정부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상가 세입자의 전치와 장소성 상실을 비판하면서도 그러한 변화의 기반이 되는 지역의 문화예술적 가치상향화와 경제적 활성화는 긍정하는 양가성을 보인다(김숙진, 2020; 조현진・지상현, 2020). 즉, 정부는 한편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비판하고 그를 막는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일으키는 기반을 형성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담론과 실천을 생산 및 소비하는 양가적 행위자들이 반드시 예술가나 정부 등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간 대다수의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에서 지역 주민과 상인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물리적, 정치적, 사회적 전치를 경험하는 피해자로 다소 고정적으로 인식해 왔지만(Davidson, 2009; Hyra, 2015; Mazer and Rankin, 2011), 일부 연구는 원주민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그를 통해 혜택과 이윤을 추구하는 역동적인 행위자라는 점을 주장한다(Arkaraprasertku,l 2018; Doucet, 2009; Ji, 2021). 지역민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 행위자로서 양가적 면모는 지명인(2022)의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서촌 한옥마을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서촌의 개발, 보존, 상업화 등과 맺는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관계를 통해, 동지이자 적으로서 서로가 서로의 감정과 실천을 내면화/외면화하며 (안티)젠트리파이어가 되어”(2022, 528)가는 과정을 규명한다. 실제로 그의 연구에서 지역민들은 상업화로 말미암은 일상공간의 변화, 생활상권의 파괴, 방문객에 의한 공해, 사생활 침해 등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만, 그로 인한 지역의 경제적, 문화예술적 가치상향화를 긍정하며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을 갱신하는 (안티)젠트리파이어로서의 양가적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적 행위자로서 예술가, 정부, 지역민 등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지향하면서, 지나친 활성화에 따른 지역 공동체의 변화를 지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은 그 자체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비판으로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포함하는 양가성을 띠며, 양자 간의 위상적(topological)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조건으로 삼아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순환과 공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지명인, 2022). 이러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성은 지역의 개발과 보존, 성장과 지속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재 도시재생 사업의 양가적인 목표와 궤를 같이한다. 그 결과 2020년 이래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중적, 학술적 관심과 언급이 줄어드는 상황임에도, (탈)성장의 염원을 담은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적 담론과 실천이 도시재생 사업과의 뒤얽힘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4. (안티)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 사업의 뒤얽힘
민관 파트너십에 기반한 도시재생(regeneration) 혹은 재활성화(renaissance) 사업은 서구의 비판적 지리학계에서 또 다른 이름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여겨져 왔다(Davidson and Lees, 2005; Lees, 2008; Smith, 2002; Peck, 2005). 대표적으로 Smith(2002, 437-446)는 1990년대부터 서구 사회에 보편화된 도시재생 사업이 신자유주의적 정부가 도입한 새로운 글로벌 도시 전략이라 설명한다. 사실 1960년대 Glass에 의해 처음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이 고안된 이후, 해당 개념은 낙후된 도심의 저소득층이 자본(가)에 의해 공간을 빼앗기는 과정으로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에 따라 도시운동가, 정치인, 행정가, 도시계획가 등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추잡한 단어(dirty word)’로 여겨왔다(Smith, 1996, 28-45).
그러나 1990년대 초반의 경제불황에 따른 도시의 쇠퇴는 퇴행, 낙후, 저개발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역젠트리피케이션(degentrification)이라는 단어를 등장시켰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이 필요하다는 보복주의적(revanchist) 도시주의가 힘을 얻기에 이른다(Anderson, 2020; Smith, 1996). 실제로 2000년대 들어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에서 ‘전치(displacement)’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줄어들기 시작했으며(Slater, 2006; 2009),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뚜렷한 전치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등장한다(Freeman, 2005; Freeman and Braconi, 2004).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도시재생을 통해 사회적 혼합(social mix)을 비롯한 창조성, 다양성, 포용성의 향상 등 도시를 성장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연구들이 주목을 받는다(Byrne, 2003; Cameron, 2003; Florida, 2005).
이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은 그 동력을 잃게 되며, 도시 정부는 지구화된 도시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필요악을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조하기 시작한다. 즉, “[도시]재생의 언어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달콤하게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Smith, 2002, 445).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도시 정부의 민관 파트너십을 통한 대규모의 도시개발 사업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제3의 물결 젠트리피케이션’이자 새로운 글로벌 도시 전략으로 기능하며 21세기 도시계획 패러다임의 중심에 서게 된다. 실제로 런던(Davidson and Lees, 2005; Pratt, 2009), 바르셀로나(Arbaci and Tapada-Berteli, 2012; Ulldemolins, 2014), 상하이(Sun and Chen, 2023; Wang, 2009) 등에서 낙후된 도시공간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한 신축(new-build), 역사보존, 문화예술 기반의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이 시행되어 왔으며, 이들은 노골적이고도 은밀하게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을 탈정치화(depoliticization)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자연화하고 있다.
비록 서로 다른 시공간적 맥락에서 발생하였지만, 서구 사회에서 나타난 이 같은 (안티)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의 뒤엉킴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도시계획 패러다임 변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0년대 서구 사회에서의 도시재생 사업이 적극적인 ‘개발’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정당화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한 반면, 2000년대 우리나라에서의 도시재생 사업은 오히려 적극적인 ‘보존’이 필요하다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목소리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사업은 철거민 양산, 공동체 해체, 양극화 심화, 장소성 상실 등 다양한 사회공간적 문제를 야기했던 20세기의 합동재개발 사업과 그를 이어받은 21세기의 뉴타운 사업을 대체하는 대안적 도시계획 패러다임으로 등장한다.
특히 정부는 2000년대 중반을 전후로 도시계획에 있어 “국가 주도의 하향식 정책[에] 많은 폐해가 있었다는 반성적 수사”와 함께 “도시재생을 기존의 전면철거 방식의 재개발이나 뉴타운 개발과 대비시킴으로써, 전자는 주민참여와 주민주도로 점진적 변화를 통해 주거안정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착한 정책’”이라 홍보하기 시작한다(김지윤, 2015, 131). 이 과정에서 도시재생은 지역의 무조건적인 개발보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사업이자, 탈성장, 탈신자유주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의 시각을 포용하는 정의로운 사업으로서 찬사를 받는다(이영아, 2019). 결국 정부 주도의 도시계획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도시재생은 “참한 도시”(정석, 2013)를 만드는 “작은 개발, 착한 개발, 공정한 개발”(김경민・박재민, 2013)로서 개발주의 이후의 대안적 도시 성장 전략으로 공고하게 자리잡는다(신현준・김지윤, 2015, 233).
구체적으로 2006년 국토부는 세계 일류 기술 개발을 위한 10대 연구사업 중 하나로 도시재생을 선정하였으며, 2007년 ‘도시재생 사업단’을 발족하여 2014년까지 총 1000억 원이 넘는 연구비를 투여하겠다는 R&D 로드맵을 제시한다(김혜천, 2013; 조명래, 2011). 이에 따라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된다. 특별법에는 도시재생의 정의, 목표, 거버넌스, 계획 체계 등이 제시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4년에는 전국 13개 지역이 국가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16년에는 33개 지역이 추가로 선정된다. 더 나아가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그간 소규모로 진행되었던 도시재생 사업을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뉴딜사업’으로 확대하여 향후 5년간 연간 1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쇠퇴하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도시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핵심 목표로 삼는다(이영아, 2019; 전경숙, 2017). 이에 따라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의 50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경제기반형, 근린재생형 등으로 특화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었다.
중앙정부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과 더불어 서울시는 독자적인 추진 전략을 세우고 별도의 재정을 동원하여 맞춤형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박세훈・김주은, 2018; Nam and Lee, 2023). 실제로 서울시는 중앙정부보다 발 빠르게 도시재생 사업을 위한 토대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도시재생의 비전은 2000년 「도심부 관리 기본계획」에 잘 드러나는데, 서울시는 해당 계획에서 서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시 조직(urban fabric)을 보존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성장과 개발의 논리에서 벗어나 구도심을 재생해 나가겠다는 점을 밝힌다. 이에 따라 2000년 북촌 한옥마을 가꾸기 사업, 2002년 난지도 생태공원화 사업,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2008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지구단위계획’ 시범사업, 2010년 ‘휴먼타운’ 시범사업 등이 진행된다(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 2021). 특히 2013년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로는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여 2015년 「2025서울시 도시재생전략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2024년까지 총 52개(국가 지정 17개, 서울시 지정 35개) 지역에서 사업이 이루어졌다(서울시, 2015; 2023).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지로는 2014년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국가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된 창신・숭인동을 들 수 있다. 해당 지역은 낙산과 동대문 사이의 경사지에 위치한 다세대,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이다. 1980년대부터는 동대문에 의류를 납품하는 봉제공장들이 임대료가 싼 이 지역으로 찾아들면서 주택가 사이에 소규모 공장이 자리 잡게 된다. 창신・숭인동에 대한 도시재생 사업이 결정됨에 따라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이를 통해 창신소통공작소, 백남준기념관, 채석장전망대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공공공간이 조성되었고, 동네 배움터 운영, 마을해설사 양성, 창신골목시장 상인회 지원 등 마을 공동체 활동이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도시재생 사업이 종료된 2018년부터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은 도시재생기업(CDC, 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인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에서 주민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키우기 위한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김지윤, 2015; 이나영, 2020).
그러나 이러한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신・숭인동의 도시재생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지역에 대한 투자와 그로 인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필연적으로 해당 지역의 물리적, 상징적 가치상향화를 불러오며, 이는 자연스럽게 해당 지역에서의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갈등을 통해 누군가는 사회공간적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창신・숭인동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의 중심에 봉제산업을 둘 것인지, 관광산업을 둘 것인지, 주민을 둘 것인지, 나아가 누구를 ‘진정한’ 주민으로 볼 것인지 등을 두고 논란이 발생한 바 있다(김지윤, 2015).
이 같은 도시재생의 한계는 서울시에서 진행된 몇몇 사업(특히 해방촌, 성수동, 경복궁 서측 지역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진정한 무언가’를 보존하기 위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주장하지만 결국 진정성의 문화정치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 기반을 제공”(지명인, 2021, 29)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도시 재생이 원주민들의 전치, 장소를 둘러싼 갈등과 경합, 주민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상충을 낳는다면, 이는 ‘국가 주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또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신현준・김지윤, 2015, 233). 즉,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담론과 실천이 도시재생 사업에 함축된 개발과 보존, 성장과 지속에 대한 양가적 욕망 속에서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5.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의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리학계에서도 도시재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탈성장, 탈신자유주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목소리를 포용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실제로는 기업가주의, 신자유주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떠받치는 모습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Nam and Lee(2023)는 도시재생 사업에서 강조하는 참여적 거버넌스가 주거 불평등, 양극화, 빈곤 등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탈정치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도시주의를 유지하는 새로운 전략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도시재생 사업이 주민, 공동체 등을 내세우며 재개발을 대체하는 대안적, 해방적 사업임을 표방하지만, 그러한 참여적 거버넌스로의 전환이 오히려 “정치적 논쟁의 소지를 효율적으로 무력화하는 탈정치적 프로젝트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Nam and Lee, 2023, 618-619).
마찬가지로 이영아(2019)는 도시재생이 표면상으로 탈신자유주의적 공간 전략으로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 담론을 계승하지만, 세부적인 목표나 전략에 있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 없다고 말한다.
“결국 쇠퇴한 지역을 성장하는 지역으로 바꾸는 경제적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도시재생의 가장 큰 문제는 목표가 되는 대상이 ‘주민’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지역’이라는데 있다. 지역의 성장이 곧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의 성장과 복지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결국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재생은 성장의 결과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성장기계로서 도시재생은 도시에서 과거보다 더 큰 불평등과 격리를 발생시킨다.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상승시키는 도시재생은 지역의 경제성장과 관광객을 유인하는 물리적 환경을 갖추게 할 수는 있으나 토지 가치를 상승시켜 오히려 지역주민의 둥지 내몰림을 발생시킨다” (이영아, 2019, 215).
같은 맥락에서 2018년 「공간과 사회」의 특별 호 “성장기계로서 도시재생의 탐색”에서 이영은(2018, 7)은 현재의 도시재생 사업이 “시장으로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주기 위해(즉, 교환가치를 높이기 위해) 도시 하부 구조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성장기계와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경제 성장과 공동체 지속이라는 도시재생의 모순적 목표가 현실에서 뒤틀리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장보다는 지속 가능성을 추구했던 ‘도시재생특별법’에 한 가지 맹점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경제기반형과 근린형의 공존이었다. […] 법이 제정되자마자 공모방식의 선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사업이 시작되면서 […] 전략 계획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활성화 계획은 사업 아이템 메뉴판으로 변질되었다. 장기간에 걸쳐 선행되어야 할 거버넌스 구축은 공모를 위한 단타적‧형식적 전제 조건이 되었고 경제기반형과 근린형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업임에도 각각 별도의 사업 수단을 갖지 못했다. 그 결과 경제기반형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고 근린재생형은 벽화 그리기로 상징화되었다. […] 그야말로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잡으려다 혼동과 정체에 휘말린 셈이다” (이영은, 2018, 6).
이렇듯 도시재생 사업에서 추구하는 개발과 보존, 혹은 (안티)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양가적 목표는 현장에서 혼동과 정체를 낳고 있으며, 이러한 혼동은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의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국내 선행연구들은 이러한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의 이유를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사업이 가진 태생적 한계에서 찾는다. 먼저 학자들은 현재 도시재생 사업의 동력이 기존의 재개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며, 도시재생이 도시의 쇠퇴를 전제한 사업임에도 대부분의 사업지에서 뚜렷한 쇠퇴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어떠한 유형의 도시재생 사업도 투기적인 부동산 개발 효과를 수반할 정도로 도시의 성장 잠재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조명래, 2011, 51). 이러한 주장은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 사업도 “그 추진 동력이 개발이익과 부동산 투자에 기반”하고 있으며, 사업의 성패가 “부동산 시장의 부침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김혜천, 2013, 9). 아울러 김지윤(2015, 138)은 도시재생사업단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시하는 도시의 쇠퇴 지표(5년간 평균 인구성장률 감소, 5년간 총사업체 수 변화율 감소, 2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율이 50% 이상)에 의문을 표하며, 쇠퇴 여부를 가름하는 기준의 자의성과 과대 추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다음으로 도시재생 사업의 내용과 거버넌스 역시 재개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지적된다. 도시재생이 학술적, 정책적 논의에서는 기존의 재개발이나 재건축과 다른 목표를 가진다고 여겨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물리적 환경개선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김혜천, 2013; 조명래, 2011). 또한, 도시재생 사업의 대부분이 정부의 계획과 예산에 따라 기획 및 선정되어 하향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의 특성이나 지역민의 요구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주민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중간지원 조직인 현장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 역시 상향식의 의사소통과 의견 수렴보다는 정부에서 만든 사업을 주민에게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박세훈・김주은, 2018; 이나영, 2020).
마지막으로 도시재생 사업에서 고유한 지역 문화, 주민, 공동체, 장소성 등의 보존과 재생을 강조하지만, 추상적인 이상과 구체적인 현실의 괴리 속에서 결국 주민, 공동체 등의 낭만적 수사가 경제적 개발과 성장을 위해 도구화된다는 점이 지적된다. 실제로 참여적 거버넌스 등 도시재생의 이상적인 슬로건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성장주도의 도시계획을 탈정치화하며, 사업에서 호명되는 시민들과 주민들은 “행정의 효율적인 운영”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재스케일링”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Nam and Lee, 2023, 620). 예를 들어, 박세훈・김주은(2018)의 서울시 도시재생 활동가 양성 교육에 대한 연구에서 도시재생 사업에서 나타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지켜져야 할 지역 주민과 공동체가 사실은 구체화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참여하는 주민’과 공동체를 지속시키기 위해 먼저 그것을 만들어 내야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모순을 설명한다.
“주민들은 보통 자기 지역에 무관심하며,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정부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 결국 도시재생 사업에서 ‘참여하는 주민’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활동가의 존재가 요구되는 것이다. 정부는 아래로부터의 도시재생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동가라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한 것이다. [결국] 정부 - 시민사회의 협력 관계를 반드시 시민사회의 활성화 혹은 역할 증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균형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정부는 더욱 정교하게 시민사회 부문에 침투해 세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그때그때 정책사업에 대응해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박세훈・김주은, 2018, 49, 77).
같은 맥락에서 조명래(2011, 54)는 현재의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성의 공간”에 대한 해석, 공유, 합의 등의 공론화 과정, 즉 공동성의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문화적 획일주의와 상업주의가 나타나기 쉽다고 비판한다.
6. 서촌의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도시재생1)
서론에서 언급했듯, 서울 서촌의 예시는 앞서 언급한 도시재생의 한계는 물론 불완전한 도시계획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계속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적 욕망을 잘 보여준다. 먼저 40대 남성인 A 주민(2018년 3월 24일 인터뷰)의 이야기에서 지역의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때로는 젠트리파이어로, 때로는 안티젠트리파이어로 변모하는 양가적 행위자를 발견할 수 있다. A 주민은 서촌 일대가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던 2000년대 중반 개발이익을 노리고 서촌에 한옥 한 채와 단독주택 한 채를 구매하여 이주하였다. 그는 2008년 ‘서울시 한옥선언’과 2010년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으로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서촌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사 온 지] 10년 좀 더 됐어요. 여기가 그 당시에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서, 아파트 따려고 왔죠! 그때는 재개발이 많이 추진된 상태였어요. 시공사까지 다 확정이 되어 있었죠. 그러다가 서울시장이 오세훈으로 바뀌면서 [...] 다 없던 일로 만들었죠. 그 당시에 ‘디자인 서울’이라고 오세훈 시장이 했었잖아요. 그러면서 ‘여기를 한옥보존지구로 하겠다’고 하면서 다 틀어졌죠.”
A 주민의 설명처럼 철거 재개발이 무산되며 주택가격 상승, 투기 성행, 공동체 해체 등 전통적인 형태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할 수 있는 동인은 사라졌다. 다시 말해, 서촌의 한옥에 대한 역사보존은 철거 재개발을 비판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운동과 같은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촌의 역사보존은 2010년대 들어 새로운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자극하게 된다. 오래된 한옥과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서촌의 경관이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심미적 소비자들을 위한 갤러리, 공방, 카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급속한 상업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가 부동산 투기, 임대료 상승, 임대인과 임차인 갈등, 업종 획일화, 장소성 상실 등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측면이 대두된다(신현준, 2015; 지명인, 2022).
이에 따라 주민들은 장소에 남아(in place) 있으면서도 장소를 잃은 듯한(loss of place) 간접적인 전치를 경험하게 된다(Davidson, 2008; Shaw and Hagemans, 2015 참고). 구체적으로 주민들은 자신의 일상공간이자 사회적 공간인 골목길, 상점 등에서 불편을 겪고, 지역의 정체성이 주거지에서 상업지로 변화함에 따라 집이 상실되는 느낌을 받으며, 이 같은 지역의 변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공적, 사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힘을 잃게 된다(Hyra, 2015; Mazer and Rankin, 2011 참고). A 주민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간접적 전치의 경험을 나열하며, 자신의 (안티)젠트리파이어로서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네가 너무 시끄러워졌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요. [...] 가뜩이나 골목도 좁은데, 관광버스들 여기저기에 주차하겠다고 밀려들고, 중국인 관광객들 우르르 왔다 갔다 하고, 그런 게 사실 달갑지는 않죠. [...] 이제 재개발은 불가능해졌어요. 이렇게 변해버렸기 때문에. (창을 통해서 골목길 반대편 길가의 4층 건물을 가리키며) 저렇게 세를 주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재개발을 반대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임대료가 이미 오를 만큼 올랐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한테는 재개발 안 하는 게 이득이죠. 그런데 [우리 집 같이] 이렇게 끼인 집들은 사실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돼 버린 거죠.”
A 주민은 상업화와 관광지화로 변해버린 서촌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이러한 변화로 상가 건물주와 상인들만 이득을 본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본인과 자신의 집을 역사보존과 상업화 속에 ‘끼인’ 존재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라고 설명했다. 즉, 잠재적으로 아파트 재개발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젠트리파이어였던 A 주민이 재개발의 무산과 함께 실질적으로는 안티젠트리파이어로 변모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철거 재개발을 원하고 역사보존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변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지역에서 원주민은 자발적으로 이주를 택하기도, 개발 및 상업화의 혜택을 누리고 그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행위자이다(지명인, 2022; Arkaraprasertkul, 2018). 인터뷰 당시, A주민은 자신이 소유한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에어비앤비로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역사보존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옥을 상업화하여 활용하기로 선택한 그의 결심이 결과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올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A의 이야기는 재개발에서 역사보존과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과 연동하는 개발이익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행위자들에게 주요한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한편, 서촌의 상업지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주거지에서는 낡은 한옥, 좁은 골목길, 부족한 주차시설 등 주거 및 생활기반 시설의 노후화와 열악함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된다. 특히 낡은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건물주들에게 새로운 이익 창출의 수단이 되며 전면적인 철거 재개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서촌의 상황에서, 1990년대부터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해 온 주민들에게 새로운 도시계획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커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시는 2019년 서촌을 근린형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하였으며, 2020년부터 현장지원센터를 통해 주민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청회를 거쳐 2022년부터는 생활환경 및 노후주택 개선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2022). 그러나 고유한 장소성 보존과 공동체 지속, 주민참여 등을 표방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내용은 사실상 골목길, 한옥 등의 물리적인 수선과 보수에 집중되고 있으며, 여전히 정부 주도의 하향식 사업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도시재생 사업 과정에서 재개발 혹은 상업화 기반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열망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기대감이 오히려 도시재생 사업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2월 26일 온라인으로 열린 ‘경복궁 서측 도시재생활성화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지역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타협되지 않는 줄다리기의 순간을 관찰할 수 있다. 공청회는 그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작성된 도시재생활성화계획 초안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는데, 세부 계획은 주거환경 개선(집수리, 방재안전 등), 기반시설 확보(주차장, 보행환경 등), 역사문화자산 활용(주민 공유공간 등), 다양성 존중(주민 공모사업 등) 등 주로 물리적 환경개선에 관한 4개 목표를 중심으로 한 13개 세부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설명이 끝난 후에는 계획에 대한 전문가 패널의 토론과 주민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B 패널리스트는 서촌의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길었던 논쟁을 되짚으며,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민분이 원하셨던 것은 전면 철거 형식의 재개발이셨습니다. 근데 10년이 지나고 많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 우리 동네[를] 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운을 떼며 토론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 10년 사이에 철거 재개발이 아닌 보존을 통한 도시재생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며, 주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감사가 무색하게도, 전문가 토론이 끝난 뒤 자신을 한옥에 사는 사람이라 밝힌 C 주민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이후에도 서촌살이가 나아진 게 없다며 여전히 재개발을 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도심지 재개발을 한다면 [...]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됩니다! 재개발을 해주면은 도시재생을 할 필요가 없어요! 전부 다, 어린이 놀이터, 주차장, 공원! 다 재개발하면 문제가 해결돼요!”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의견을 냈다.
실제로 B 패널리스트의 설명처럼 재개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보편화되었고 문화역사적 가치를 지닌 오래된 도시공간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 주민의 외침처럼 도시재생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개발과 보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있다. 이때, 도시재생에 대한 예산과 계획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현장지원센터와 공청회 등을 통해 하향식으로 집행 및 홍보되는 현재의 사업 구조 속에서 주민 의견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현장에서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도시재생과 재개발 사업을 추상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에 따라 구분 짓는 현재의 도시계획 기조 속에서, 정책과 동떨어진 주민의 철거 재개발에 대한 요구는 교육을 통해 인식을 개선해야 할 문제로 여겨진다. 재개발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라는 점을 열심히 토로했던 C 주민조차도 재개발을 ‘나쁜’ 개발이라 여기면서 자신은 ‘착한’ 개발인 “도시재생을 지지”한다고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도시재생 사업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이분법적 시각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서촌의 도시재생 사업에서 추구하는 장소성 보존, 공동체 지속, 주민참여 등 이상적인 사업의 목표가 참여적 거버넌스를 통해 현실화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추상적인 이상과 구체적인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재개발과 도시재생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으며, 주민, 공동체 등의 낭만적 수사는 도시공간에서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현재의 사업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도시재생을 탈정치화하고 있다. 실제로 도시재생 사업에서 지역 주민이나 공동체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순수하고 동질적인 집단인 것처럼 그려지는 경향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서촌의 주민들은 주택 소유 여부, 거주 기간, 자산과 직업, 가치관과 취향 등의 차원에서 모두 다 다른 이해관계가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지역의 변화 역시 제각각이다. 공청회 안팎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민 의견들 속에서, 누군가는 세련된 아파트 단지로의 철거 재개발을 원하고 누군가는 고즈넉한 한옥과 골목길의 정취가 보존되기를 원했으며, 누군가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안전한 보행공간을 원하고 누군가는 더 넓은 차도와 주차장을 원하고 있었다.
한편, 정부가 도시재생 사업에서 주민참여를 높이기 위해 먼저 그에 기반이 되는 새로운 집단으로서 ‘참여하는 주민’을 만들어 내듯(박세훈・김주은, 2018), 서촌의 주민들 역시 정부의 도시계획 패러다임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민들 중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부만이 주민의 대표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의 실제 입장과 반대되는 사업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적응 및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앞서 A 주민이 재개발을 지지하고 역사보존에 반대하면서도 역사보존에 기반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편승하려고 했던 것이나, C 주민이 재개발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지역의 변화를 현재의 도시재생 사업에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실현하려고 하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기치 아래 지역의 장소성을 보존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오히려 재개발, 상업화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구하는, 즉 젠트리피케이션에 친화적인 주민과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재생 사업의 아이러니 속에서 지역의 개발과 보존, 성장과 지속에 대한 양가적 욕망은 여전히 서로의 동력이 되어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지속시키고 있다.
7. 결론: 끝나지 않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
본 논문에서는 지역의 재활성화와 가치상향화를 지지하면서도 그에 따른 임대료 상승, 세입자 전치, 장소성 상실 등의 부정적 효과를 비판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가적 담론과 실천에 주목하였다. 우선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서사 속에서 그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순환적으로 공존하는 양상을 살펴보았으며, 그러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주요한 양가적 행위자로서 예술가, 정부, 지역민 등에 대해 탐색하였다. 나아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학술적,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담론과 실천이 도시재생 사업과의 뒤얽힘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구체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경제 성장과 공동체 지속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발과 보존, 성장과 지속에 대한 양가적 욕망을 통해 재생산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논문의 말미에서는 서울 서촌의 사례를 통해, 재개발에서 역사보존과 도시재생으로의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나타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그 과정에서 지속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순환과 공존을 규명하였다.
2021년 4월 오세훈 시장의 취임 이후 나타난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의 기조 변화는 끝나지 않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다시금 입증한다. 개발주의 이후 서울시의 새로운 도시 전략으로 떠오른 ‘박원순식 도시재생’은 노후주택 밀집지의 전면 철거를 비판하며, 보존과 관리를 통한 지역 공동체의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었다(서울시, 2015).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개발과 정비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형 도시재생’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규제 유연화와 민간사업지원 강화를 약속하고 있다(서울시, 2023). 이러한 기조 변화 속에서 그간의 도시재생 사업이 노후주택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보다, “담벼락에 그림만 그려놓거나, 이웃 공동체를 다지겠다며 모임만 갖기 일쑤더라”는 비판의 여론이 형성된다(경향신문, 2021). 또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교두보로 쓰였던 현장지원센터에서 실제 사업비보다 인건비에 더 많은 예산이 사용되는 등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드러났으며(한국일보, 2022), 현재 서울시의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결과적으로 도시재생에서 재개발로의 재전환은 서울시의 첫 도시재생 사업지였던 창신・숭인동에서 2013년 뉴타운 사업이 무산된 이후 10년 만에 다시 철거 재개발이 추진되며 더욱 힘을 얻고 있다(매일경제, 2023). 물론 재개발에 대한 우려들은 다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주택을 소유한 주민들은 개발이익과 세련된 아파트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저렴한 거주지를 잃게 되는 세입자들과 영세한 봉제업체들은 전치에 대한 압박을 호소하고 있다(조선일보, 2023). 이렇듯 현실의 도시재생 사업은 재개발로부터의 불완전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젠트리피케이션과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양단, 그 어딘가를 부유하며 지속되고 있다. 즉, 보존을 추구하는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움직임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기도, 동시에 개발을 추구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움직임이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기도 하면서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의 순환적 공존에 대한 재투자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