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0 June 2022. 319-320
https://doi.org/10.22776/kgs.2022.57.3.319


MAIN

‘지리학과에서 그런 것도 해?’

지리학과에 진학한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자주 들었던, 그리고 여전히 듣고 있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심지어 지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조차도 가끔은 옆 연구실 동료가 심취해있는 연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지리학은 연구 범위가 넓다. 그래서 세상사 무슨 일에든 한마디 정도 쉽게 거들 수 있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리학 전문가를 대중 매체에서 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지리학의 핵심 연구 대상인 공간을 다루는 이야기도 지리학자가 아닌 건축가가 예능에 나와 재미나게 풀이한다. 상황이 이러니 지리학과 관련 없는 사람은 스스로 관심을 두고 찾아보지 않는 한, 지리학이 어떤 학문이고, 내 인생에서, 혹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유용한지 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지리학 홍보 부재의 상황에서 책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地圖力)>>(이하 <<지도력>>)의 저자 김이재 교수는 아마도 지리학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하는 지리학자가 아닐까 싶다. 그는 TV뿐 아니라 신문 칼럼으로, 대중서로 ‘지리학을 공부하면 개인에게, 기업에, 사회에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를 지리학계 외부에 활발하게 알리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수준의 ‘지리 문맹’에 ‘열 받아서’ 유튜버가 되었다고 말하며, 더 젊은 방식으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지리 알리미’ 역할을 하고 있다. 내용이나 방식에 대한 호오를 떠나, 그가 대중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리학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도력>>은 ‘지리학의 위기’ 속에서 ‘지리를 모르는 것이 위기’라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도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라면 도해력(圖解力)이나 독도(讀圖)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저자가 지도력(地圖力)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이 단어가 비단 지도를 읽는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도력은 다양한 공간적 스케일에서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공간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지리적 능력으로,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역량, 즉 지도력(指導力, leadership)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책은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서는 과거 융성했던 국가와 민족의 지도력, 2부에서는 근, 현대에 성공적으로 기업을 일군 사업가의 지도력을 보여주고, 마지막 3부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성장한 기업의 사례를 들어 지도력으로 펼쳐갈 미래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1부의 첫 소제목부터 3부의 마지막 소제목까지 사례를 중심으로 글이 전개되고, 현학적이지 않은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읽힌다. 내용에 앞서, 지도를, 지리적 감각과 지식을 활용해 성공한 사례를 이렇게나 많이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일단 놀라게 된다.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1부에서 저자는 안정, 안주와 대조적인 진취적 탐험 정신, 도전과 개방성을 지도력의 핵심 속성으로 삼는다. 지역 정보, 공간 전략, 현장 조사와 답사 같은 현장의 중요성 등 지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강조하기 새삼스러운 것들이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의 성공을 이끌었는지 소개한다.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다룬 2부에서, 공간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점포개발팀이 직접 입점 위치를 선정하는 스타벅스의 사례는 저자의 부가적인 설명 없이도 지도력의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에르메스, 구찌, 샤넬 등 명품 제조 기업과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기업의 성장 사례에서 공간정보와 지리적 지식이 어떻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정리해준다. 3부는 2부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성공사례를 다루지만, IT 기업, 유니콘 기업 등 더 최근의 사례를 다루면서, 미래를 함께 전망한다. 지역연구자로서 저자의 전문지역인 동남아를 비롯해 중국, 인도, 중동 등 신흥지역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소개하며, 섬세한 지역적 맥락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통치자가 지도 대신 법전 문구에만 집착하면 그 나라는 망조가 든다’(p. 71)라고 말할 정도로 지역 정보와 공간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현장과 경험의 힘을 역설한다. 이는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지도력이 쌓이는 점은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을 엮어 성과로 내기 위해 또 다른 능력 필요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배달하며 지역 정보를 축적한 저명한 기업가와 그 누구보다 지역 정보가 많은 택시기사의 차이는 무엇인가? 결국 지도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인가? 지리학을 공부하면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 혹은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지도력’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3부에 등장하는 기업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지도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1, 2부에 등장하는 국가 지도자, 사업가의 사례는 그들 자체의 천부적 능력에 비해 ‘지도력’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떤 사례는 ‘외교적 감각’이라고 말한대도 무리가 없고, 누군가는 ‘그것은 지도력이 아니라 탁월한 경영자 마인드, 사업가 기질’이라고 얼마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지도력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지리학이 그런 것처럼 융합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다양한 능력과 경험이 어우러졌을 때 더 빛을 발하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즉, 공간적 감각이 있는 외교관이, 지역적 특성을 읽는 사업가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지리학자에게는 너무 당연해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대중을 독자로 염두에 둔 책이라면 조금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지리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여전히 지리학이 무엇이고,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떻게 보탬이 되는가를 고민하는 내게, 개인과 기업, 국가의 성공과 융성에 지리학이 핵심적이라고 웅변하는 저자의 확신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 확신은 저자의 말대로 무수히 현장에 나가고, 그곳에서 ‘진짜 세계’를 만나 영감을 얻은 내공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다만 지리학이 이 책의 제목을 수식하는 ‘부와 권력의 비밀’을 여는 학문으로만 비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지리학의 세상은 넓고 깊기 때문이다. 지리학에서는 (탈)식민주의 논의, 젠더/퀴어 이론, 이주, 장소의 생산과 점유 등 갈수록 첨예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적 열쇠가 될 논의를 풍성하게 해오고 있다. 실천적이고, 유용한 학문으로서 지리학의 가치는 어쩌면 부와 권력 너머에서 더 크게 빛을 발할 수 있다.

연구자는 연구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대중이 지리학이 ‘어느 나라의 수도는 어디고, 어디에선 밀이 많이 나고’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기를 원한다면, 학계 안에서만 맴도는 연구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가만히 있어도 매일같이 TV에서, 신문에서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경제학적 측면에서는~’이라고 언급되는 다른 학문과 달리, 지리학은 대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대중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더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지도력>>은 반가운 ‘지리학 대중서’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우리 사회의 지리 문맹률을 낮추고, 사람들이 지리학에 더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기를, 나아가 대중을 위한 더 다양한 지리서가 등장해 더 많은 사람이 지리학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라본다.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