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1 December 2025. 800-823
https://doi.org/10.22776/kgs.2025.60.6.800

ABSTRACT


MAIN

  • 1. 서론: 감정적 전환, 그 이후

  • 2. 지리학에서 감정, 정동, 그리고 정신분석

  •   1) 비재현 이론과 정동지리학

  •   2) 페미니즘과 감정지리학

  •   3) 무의식과 정신분석지리학

  • 3. 주체/타자와 무의식의 공간

  •   1) 주체/타자의 위상학: 대상 a, 욕망, 환상

  •   2) 무의식의 공간: “무의식은 외부에 있다.”

  • 4. 결론: 정신분석지리학으로의 초대

1. 서론: 감정적 전환, 그 이후

“도시는 들끓는 정동(affect)의 거대한 소용돌이다. 분노, 두려움, 행복, 기쁨과 같은 특정한 정동들은 끊임없이 끓어오르며, 어떤 곳에서는 솟아오르다 다른 곳에서는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정동들은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기도, 그저 끊임없는 일상의 일부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사건들을 통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 도시의 필수 요소인 정동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 모두가 인지하는 다양한 색채로 거의 모든 도시 활동을 물들인다.” (Thrift, 2007, 171)

스리프트는 정동이 이제 “수도관이나 케이블”처럼 도시를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으며, 이러한 정동 공학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 현대 도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Thrift, 2007, 171-175). 이때, 정동은 의식적으로 인지되기 이전의, 신체에 직접 와닿는 인간-너머의 힘이자 강도(intensity)를 의미한다. 반면, 감정(emotion)은 정동이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포획되어 이름 붙여진, 우리가 인지하고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즉, 정동이 원초적인 신체적 감각이나 변화를 만들어낼 잠재성(virtuality)이라면, 감정은 그것이 구체적인 이름과 의미를 갖게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Deleuze and Guattari, 1994; Massumi, 2002).

하지만 정동과 감정을 분리하는 이 같은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아메드는 “감정이 단순히 주체나 대상 ‘안에’ 있지 않다”(Ahmed, 2014, 6)라고 주장하며, 감정/정동, 안/밖, 마음/몸, 개인/사회 등의 구분을 해체한다. 아메드는 감정과 정동에 대한 개념 정의 자체보다, 그것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여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분석의 초점을 맞춘다. 특히 정동경제 개념은 감정이 마치 자본처럼 사회적으로 순환하며 정동적 가치를 축적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Ahmed, 2014, 44-49). 이 관점에서 감정은 언제나 어떤 대상(사람, 사물, 장소 등)을 향하고, 기호나 표현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이동한다. 이러한 순환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과 함께 반복되면, 감정의 대상은 특정 정동으로 가득 차 끈적이는 상태가 된다. 즉, 상품이 교환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축적하는 것과 유사하게, 감정이 대상들 사이를 순환하며 정동적 가치가 축적된다. 결국 주체와 대상 ‘사이’에 축적된 정동적 가치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 및 재편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특정 집단의 표면은 집단 간의 경계를 형성하고 그에 대한 특정 감정을 고착화하며 정치적 효과를 생산한다.

지리학자들에게 감정과 정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정치적 효과가 언제나 공간적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정동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공간적 관계 속에서 순환하며, 개인과 집단의 표면과 경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난민’을 마주할 때 느끼는 양가적 감정(불안과 연민, 경계와 환대 등)은 난민에 대한 사회적 담론(미디어의 재현, 정치적 수사 등),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의 물질성(임시 거처, 도시 경관 등), 개인적인 접촉 경험과 마주침에서 오는 몸의 미묘한 반응(긴장, 이완 등) 등의 뒤엉킴을 통해 발생한다. 나아가 미디어를 통해 난민에 특정 감정(위협, 공포, 혐오 등)이 반복적으로 달라붙을 때, 그들에게 맞서는 방어 의식을 공유하며 ‘우리’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난민’(Ahmed, 2014, 46 참고)과 같이 끈적이는 언어와 이미지를 매개로 순환하며 집단적으로 증폭되는데, 이는 결국 국경 통제를 강화하거나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힘으로 작동한다. 즉, 감정과 정동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이며, 무엇보다 사회공간적이다.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이성보다 하위에 두는 사상적 전통, 감정을 언어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방법론적 한계, 공적 영역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지리학의 역사에서 감정과 정동은 학문적 탐구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다(Anderson and Smith, 2001; Bondi et al., 2005; Thrift, 2007). 이러한 경향은 고전적 입지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의 지리학은 모든 인간을 경제적 효율성만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경제인’으로 가정했다. 크리스탈러의 중심지 이론을 생각해 보자. 이 이론은 최소 요구치와 재화의 도달 범위라는 경제적 원리에 입각해, 도시의 계층과 분포를 완벽한 육각형의 공간 패턴으로 설명한다. 이 모델 안에서 사람들은 오직 ‘가장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뿐, 특정 카페의 분위기가 좋아서 혹은 주인과 정이 들어서 조금 더 먼 카페로 가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지리학은 어디에 카페가 들어서야 가장 효율적인지를 명쾌하게 증명했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지, 나아가 그러한 느낌이 어떠한 사회공간적 효과를 갖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즉, 인간의 마음은 합리적 모델의 블랙박스 안에 버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감정적 전환’이라 불리는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Bondi et al., 2005). 이는 1950~60년대 계량주의의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냈던 선구적인 흐름들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1970년대 인본주의지리학은 투안의 ‘장소감’과 같은 개념을 통해, 인간이 장소와 맺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관계를 학문의 장으로 끌어들였다(Tuan, 1977). 비록 긍정적이고 인지적인 차원의 감정에 집중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는 지리학이 인간의 내면 세계에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중요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8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 지리학은 장소감을 정체성과 사회적 배제의 문제와 연결했다(Pain, 2000). 특히 발렌타인은 여성이 밤길에서 느끼는 ‘공포’가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특정 공간에 새겨 넣은 권력의 효과임을 폭로했다(Valentine, 1989). 이처럼 감정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정치적 기제로 분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적 토양 위에서, 2000년대 들어 감정과 정동은 지리학의 핵심적인 분석 범주로 자리매김한다. 감정과 정동에 주목하는 지리학자들은 인간의 공간 인식과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합리성의 환상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오히려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역동적인 마음의 차원을 학문의 중심부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Transactions of the Institute of British Geographers, Social & Cultural Geography, Gender, Place & Culture 등 주요 지리학 저널에서 감정과 정동에 대한 특별 호를 연이어 내놓는 결과로 이어졌다(Anderson and Smith, 2001; Davidson and Bondi, 2004; Davidson and Milligan, 2004). 이 같은 성과를 집대성하며 ‘감정적 전환’의 선언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감정지리학(Emotional Geographies)』(Davidson et al., 2005)이다. 책의 서문에서 편집자들은 그간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지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감정지리학이 단순히 느낌(feeling)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장소 사이의 감정적 관계”와 같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언가”(Bondi et al., 2005, 2)를 포착하여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정지리학은 “전적으로 내면화된 주관적인 정신 상태”로서 감정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감정이 어떻게 사회공간적으로 매개되고 구체화되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인 것이다(Bondi et al., 2005, 3).

‘감정적 전환’은 지리학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지리학은 특정 공간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 ‘감정 자체의 지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즉, 감정이 어떻게 특정 장소나 신체에 달라붙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순환 및 공유되며, 새로운 정치적 효과를 생산하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Anderson, 2023; Burnett and Emery, 2023). 영미권 지리학계에서의 이러한 흐름은 국내 지리학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박수경은 건강지리학의 관점에서 ‘감정’에 주목해 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카페, 학교, 집 등 일상 공간이 치유, 소속감, 돌봄과 같은 감정들로 어떻게 채워지고 재구성되는지를 탐색해 왔다. 구체적으로 그의 연구는 정신과 상담에 대한 문화적 낙인(박수경, 2014)이나 유학생의 소외감(박수경 등, 2022)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특정 집단을 공간적으로 밀어내는 현상을 분석하는 동시에, 심리상담카페나 학교 밖 관계망과 같은 대안적 공간에서 그 감정들이 긍정적으로 전환되고 재배치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더 나아가 청년층의 코로나19 팬데믹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는 집이 돌봄과 갈등의 양가적 공간으로, 공공 공간이 신뢰에서 통제의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증명한다(박수경, 2021). 박수경이 이처럼 일상 공간의 감정적 지형에 집중했다면, 박향기(2024)는 치유적 네트워크 개념을 재고함으로써 건강지리학의 관점을 한층 더 확장한다. 그는 기존의 치유 연구가 병원, 가족, 친구 등 인간 중심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머물러 있음을 비판하며, 실제 치유와 돌봄의 과정은 인간과 비인간 요소들(자연환경, 반려동물, 사물, 기술 등)이 함께 엮인 복합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한편, 송원섭(2015)은 영미권의 비재현 이론을 국내에 소개하며, 기존의 재현 중심 경관 연구를 넘어 인간과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인지적이고 관계적인 감응(정동)과 정서(감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러한 비재현 논의를 확장하여, 신진숙은 문학지리학의 관점에서 국내 지리학계에 ‘정동’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는 문학,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기존의 구조적・재현적 서사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공간의 잉여적 정동과 그 정치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폐광촌 연구(신진숙, 2018)에서는 산업 폐허가 자아내는 특유의 정동과 기억의 정치를 통해 공식 기억에 저항하는 대항-기억의 서사를 조명했고, 조선산업 도시 연구(신진숙, 2019)에서는 산업 위기가 촉발한 유동하는 공포가 도시 공동체를 어떻게 재편하고 내부적으로 균열시키는지 분석했다. 아울러 강남 지역에 대한 연구(신진숙, 2021)에서는 강남/비강남, 재현/비재현의 이분법을 넘어 불안, 욕망, 향수 등 이질적 정동들이 교육, 부동산, 생태 담론과 결합하며 도시를 구성하는 정동적 아상블라주를 탐색한다. 이처럼 신진숙의 연구는 흐름과 경합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공간적 정동 정치를 잘 보여준다.

비슷한 맥락에서 브라이언 마수미(더 근본적으로는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정동 이론(Massumi, 2002, 2015)을 차용하여, 영향을 주고받는 신체적 역량이자 관계적 힘으로서 정동에 주목하는 연구가 늘고 있다. 이들은 정동이 어떻게 신체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관계와 공간을 재구성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예를 들어, 한경애 등(2023)은 광교 신도시 주민들의 주거 가치 실천을 정동경제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즉,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불안과 욕망 같은 정동이 어떻게 교환가치를 향한 투기적 신체를 만들고, 동시에 삶의 일상적 가치들(삶의 질, 가족의 안녕 등)과 어떻게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지 규명한다. 다음으로 사라 아메드의 정동 경제(Ahmed, 2014) 개념에 기반한 최혜진(2025)의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개발될 뻔했으나 되지 못한’ 창원 연안 공동체를 대상으로, 수십 년째 실현되지 않은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 만들어낸 정동적 시간성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좌절된 개발이 남긴 실망감과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기대감이 뒤섞인 정동적 잔여가 어떻게 공동체의 시간을 정체시키고 현재의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지 드러낸다.

정동 개념의 도입은 연구 방법론 자체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2023년 출판된 『공간과 사회』 특별 호 “정동과 비재현적 사유로부터 연구자와 연구 현장, 연구방법론 탐구하기”에서 잘 드러난다(김현철・최하니, 2023). 이 특별 호에서 김현철(2023)은 음성 나환자촌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가 느끼는 유감/수치(shame)의 정동과 아카이브의 잔여를 통해 재현적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였으며, 최하니(2023)는 농부시장의 물질-담론적 실천 속에서 발생하는 집합적 정동과 그 자생적 힘을 분석하여 정동이 대안적 윤리와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조명하였다. 이 외에도 지리교육의 관점에서 감정과 정동 기반 교수법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 역시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민성(2023)은 감정지리학의 교육적 효과를 탐색하기 위해 예비교사 15명을 대상으로 감정에 실증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지역사회 문제와 관련된 참여자들의 감정을 설문과 성찰문, 감정지도화를 통해 표현 및 시각화하게 함으로써, 감정이 지닌 교육적 함의를 분석한다. 반면, 범영우・김미혜(2023)는 감정과 구별되는 비재현적 개념으로서 정동에 주목하며, 고등학생 23명을 대상으로 지리적 경험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감응을 포착하기 위한 정동적 글쓰기를 실험한다. 학생들은 글을 통해 지리적 대상의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발바닥으로 느끼는 나무줄기의 감촉이나 공기 중의 물방울과 하나가 되는 상상 등, 대상과 관계 맺으며 발생하는 신체적 감각과 비재현적 경험을 묘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감정적 전환 이후, 감정과 정동에 대한 국내 지리학계의 관심과 연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학술적 토대에 대한 논란 역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 차원, 즉 ‘감정과 정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론적・존재론적 차원과 ‘그것을 어떻게 유의미하게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차원에서 전개된다. 국내 학계에 소개되는 영미권의 논의들(감정지리학, 정동지리학, 페미니즘지리학, 건강지리학, 문학지리학 등)이 풍부해지는 만큼, 각각의 이론적 흐름과 그들 사이의 관계, 나아가 주요 개념들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부재하다는 점 역시 이러한 논란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먼저 감정과 정동을 둘러싼 개념적 논쟁에 집중하여, 2000년대 영미권 지리학계의 감정적 전환 당시 다양한 학자들이 감정과 정동 개념을 어떻게 다르게 혹은 비슷하게 정의하고 사용해 왔는지, 그 학문적 계보를 면밀히 추적하고자 한다. 특히 비재현 이론과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서 감정과 정동의 경계 설정 문제를 두고 나타난 핵심적인 이견들을 분석하고, 선행 연구에서 다소 피상적으로 언급되는 리듬, 분위기, 신체, 주체 등의 개념들이 갖는 뉘앙스를 사례 연구를 통해 더욱 명료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는 국내 지리학계에서 파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감정과 정동 개념에 대한 검토를 종합하고, 해당 논의를 현대 지리학의 구체적인 학술적 맥락에 위치시켜 국내외의 학술적 논의를 연결 및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감정과 정동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경험적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은 그러한 연구의 한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것이다. 즉, 본 연구는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의 유용성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기보다, 그간 두 흐름 모두에서 간과되어 온 무의식(unconscious)의 차원에 주목한다. 이러한 접근은 감정지리학이 ‘재현된 감정의 목록에 집착’하고 정동지리학이 ‘재현 불가능한 정동을 끊임없이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주체와 무의식의 공간이 지리학적 논의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는 파일(Pile, 2010, 17)의 지적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다만 파일(Pile, 2010)의 연구가 정신분석 이론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면, 본 논문은 정신분석지리학자들이 실제 공간적 맥락에서 이 이론을 어떻게 적용해 왔는지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무의식의 공간을 천착함으로써, 정신분석 이론이 어떻게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의 한계를 보완하고 인간-공간의 위상적(topological) 역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하는지 탐색한다. 이러한 탐색은 ‘프로이트의 자아’와 ‘라캉의 주체’를 둘러싼 주요 개념들에 대한 지리적 해석(Blum and Secor, 2011; Kingsbury and Pile, 2014)으로 시작되어, 위상적 주체와 공간에 대한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장될 것이다(Kingsbury, 2011; Blum and Secor, 2014). 이를 통해 본 논문은 감정과 정동, 나아가 무의식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국내 지리학계에 유용한 학술적 언어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 개념들을 모호하다고 비판해 온 학자들이 그 구체성과 학문적 유용성을 재고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2. 지리학에서 감정, 정동, 그리고 정신분석

감정과 정동은 ‘감정적 전환’ 이후 지리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상한다. 이러한 논쟁의 가장 핵심적인 전선은 두 개념의 인식론적・존재론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대립에서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용어 정의의 차원을 넘어, 지리학자들이 인간 주체와 공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어떻게 생산 및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반영한다.

1) 비재현 이론과 정동지리학

두 개념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강조하는 입장의 선두에는 비재현 이론의 선구자인 스리프트가 있다. 그는 스피노자, 들뢰즈, 마수미 등에 영향을 받아, “정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며, 한 개인 주체의 정서나 지각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Thrift, 2007, 116). 즉, 정동은 인간 주체에 의해 소유되거나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환경,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마주침을 통해 생성되는 힘의 강도이다. 이때, 이 정동적 힘은 영향을 줄(to affect)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향을 받는(be affected) 즉,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적인 역량이다. 그는 들뢰즈를 인용하며, 이러한 정동의 초개인적, 관계적, 잠재적 특성을 강조한다.

“지각 대상(percepts)은 지각(perceptions)이 아니다. 지각 대상은 그것을 경험하는 자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감각과 관계의 묶음이다. 마찬가지로 정동은 느낌이 아니다. 정동은 그것을 살아내는 자들을 넘어서는 생성의 과정들(되기, becomings)이다. 정동은 다른 것이 된다.” (Deleuze, 1995, 137; Thrift, 2007, 116에서 재인용)

들뢰즈에게 느낌과 감정은 한 개인 주체가 경험하고 인지하는 것이지만, 정동은 그 주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그 주체가 사라진 이후에도 세상을 흐르는 잉여의 힘이자 변화의 잠재성이다(Deleuze and Guattari, 1994). 공포 영화를 생각해 보자. 영화의 음산한 배경음악,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장면, 예측 불가능한 편집은 관객에게 영향을 주어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이 순간의 순수한 신체적 자극과 강도가 바로 정동이며, 그것은 우리가 ‘공포’라는 감정을 인지하기 이전에 원초적으로 작동한다. 관객이 영화관을 떠난 후에도, 영화 필름, 거대한 스크린, 웅장한 스피커 등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들 안에는 다음 관객의 공포를 유발할 잠재성으로서 정동이 달라붙어 있다. 다시 말해, 정동은 주체가 사라진 이후에도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나아가 이 정동은 다음 관객들과 마주치면서 그들에게 새롭게 감각되며, 이전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공포-너머의 감정들을 자아낸다. 이는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짜릿한 즐거움일 수 있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에게는 웃음과 행복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정동은 규정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인간-비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규정되지 않은 ‘되기’의 과정이다.

이어서 스리프트는 마수미를 인용하며, 어떻게 초개인적인 정동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전환되는지를 포획(capture)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마수미의 설명에 따르면, 정동은 특정 신체를 통해 지각(perception,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외부 자극을 파악하는 과정) 및 인지(cognition, 지각된 정보를 기억, 추론, 판단하는 과정)되는 순간, 하나의 구체적인 감정으로 포획된다(Massumi, 2002). 다시 공포영화의 예를 들자면, 영화를 통해 지각되는 붉은 피, 날카로운 비명 등은 우리에게 위협으로 인지되며, 이는 눈을 감아 버리거나 어깨를 움츠리는 등의 행동 반응과 함께 ‘공포’라는 감정으로 포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포획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마수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언제나-이미 감정이라는 닫힌 문을 열고 도망치는 잉여의 정동을 지각한다.

“정동의 탈출(escape)은, 정동의 포획이라고 할 수 있는 지각 곁에서, 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곁-지각(side- perception)은 (행복이나 슬픔이 그 옆의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갑작스럽게 깨닫는 것과 같은) 하나의 사건 속에 국지화된다. [그러나] 곁-지각은 그때그때 나타나면서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즉, 그것은 우리의 지각 과정 뒤편에 언제나 존재하는 시시한 배경과 같이, 모든 사건에 동반된다.” (Massumi 1997, 227; Thrift, 2007, 117에서 재인용)

이렇듯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이름 붙여진 감정과 함께 그 이름으로 완전히 포획되지 않고 도망친 정동의 잉여들을 곁에서 나란히 느낀다. 이것이 바로 모든 감정이 때로는 알쏭달쏭하고, 때로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결국 길들여지지 않는, 살아 움직이는 정동에는 새로운 감정들이 잠재되어 있으며, 이는 곧 끊임없이 차이를 현실화한다(Deleuze, 1994 참고). 이와 같이 스리프트는 들뢰즈와 마수미의 이론에 기대어, 신체와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하는 초개인적인 ‘강도’이자, 동시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차이의 ‘잠재성’으로 정동을 개념화한다.

감정과 정동의 구분을 강조하는 이러한 관점은 여러 지리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 대표적으로 맥코맥은 댄스 클럽에서 춤을 추는 신체들 안팎에서 생성되는 정동적 리듬(rhythm)을 분석한 바 있다(McCormack, 2002, 2008). 이때, 정동적 리듬이란 “1,2,3... 1,2,3... 1,2,3...과 같은 엄격하게 정돈된 박자가 아니다. 리듬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소리, 이미지, 제스처, 가사 등 많은 요소로 구성된 일종의 배경적인 흐름이며, 특정 지점에서 다양한 질서의 패턴이 출현하는 것”이다(McCormack, 2008, 1829). 이는 마치 재즈 연주와 같다. 반복되는 후렴구 속에서도 연주자들은 언제든 즉흥적인 변주를 통해 리듬을 바꿔 나간다. 드럼의 리듬은 트럼펫에 영향을 주고, 트럼펫의 선율은 다시 피아노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다양한 악기, 연주자, 관객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리듬은 끊임없이 조율되고 살아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댄스 테라피(Dance Movement Therapy)에 대한 맥코맥의 연구는 이러한 정동적 리듬이 만들어내는 관계적 힘으로서 잠재성을 잘 보여준다(McCormack, 2003). 파트너와 천을 사이에 두고 움직여야 했던 댄스 테라피 교실에서, 그는 어색함에 천을 반복적으로 움켜쥐는 단순한 신체적 움직임에 집중한다. 두 신체와 천의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과 움직임 속에서, 그의 파트너는 천을 움켜쥐는 맥코맥의 리듬을 따라 하게 된다. 이러한 모방은 정동적 리듬에 잠재해 있던 새로운 관계를 현실화하며, 즉 천을 마주 잡고 서로 어색해하던 처음의 분위기를 환기함으로써 새로운 (더 친밀한) 상호작용을 생성한다. 이처럼 맥코맥은 인간-비인간의 미시적인 마주침과 움직임의 리듬을 통해, 정동이 언어로 포획되기 이전의 즉각적인 신체적 강도이자,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향해 열려 있는 잠재성의 장임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정동지리학의 또 다른 예시로 주체들 안팎을 가로지르는 감정과 정동의 모호한 경계를 정동적 분위기(atmosphere)로 개념화한 앤더슨의 연구를 들 수 있다(Anderson, 2009). 그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혁명적 분위기’라는 어구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이 발표되었던 1848년 당시 혁명적 분위기가 유럽 사회를 거대한 물리적 힘처럼 둘러싸고 짓눌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혁명적 분위기는 공간을 지배하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손에 잡히지도 않고 결과가 예측되지도 않는 무언가이다. 이는 현존하면서도 부재하고, 물질적(공기압)이면서도 관념적(혁명적)이며, 확정적(희망과 기대)이면서도 불확정적(아직-아닌 것)이다. 앤더슨은 “현존과 부재 사이, 주체와 주체/대상 사이, 그리고 확정적인 것과 불확정적인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바로 그 정동적 분위기의 모호함이야말로, 우리가 정동적 경험을 주체 형성의 너머(beyond), 주변(around), 곁에서(alongside) 나란히 성찰할 수 있게 한다”라고 설명한다(Anderson, 2009, 77). 즉, 정동적 분위기는 ‘나’라는 개인 주체를 넘어서 존재하는 초개인적인 힘인 동시에, 주체성이 형성되는 환경적 조건으로서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주체화하는 나의 경험 곁에서 동시에 함께 생성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앤더슨은 희망, 절망, 불확실성 등의 정동적 분위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체/대상의 복잡한 얽힘과 그로부터 생성하는 다양한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한다(Anderson, 2006; Anderson et al., 2020).

2) 페미니즘과 감정지리학

이처럼 감정과 차별화되는 개념으로서 정동의 고유한 작동 원리를 신체 혹은 주체를 통해 규명하려는 시도들은, 지리학이 인간을 넘어선 신체와 환경, 주체와 대상 ‘사이’를 사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모든 지리학자가 감정과 정동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Thien, 2005; Bondi and Davidson, 2011). 현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감정과 정동을 따로 떨어져 경험하지 않기에, 그 불분명한 경계를 포착하기 어렵다. 댄스 클럽에서 춤을 추며 땀 흘리는 신체의 생생한 강도와, 그 순간 느끼는 즐거움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명확히 분리할 수 있겠는가? 또한, 비재현 이론가들의 설명에서 마치 정동이 감정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름 붙여진 감정은 신체에 작용하여 정동적 강도를 변화시키는 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즉, 춤은 우리를 즐겁게 하고, 즐거움이 우리를 춤추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댄스 클럽에 사회문화적으로 투영된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그곳을 ‘마음껏 몸을 흔들어도 되는 해방의 공간’ 혹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 허용되는 공간’으로 의미화하며, 이는 다시 댄스 클럽의 정동적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를 뒤집어 보자면, 즐거움, 행복, 해방, 일탈 등의 의미가 투영되지 않은 댄스 클럽은 움직이는 몸들이 덩어리진 공간일 뿐일 것이다. 결국 춤이 없는 즐거움은 공허하고, 즐거움이 없는 춤은 맹목적이다.

이처럼 정동/감정은 서로 꼬리를 물고 뒤엉키며,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필수불가결한 관계이다. 앞서 살펴본 아메드의 정동경제 개념 역시 감정이 사회적으로 순환하고 특정 대상에 달라붙어 정동적 가치를 축적한다는 차원에서, ‘정동적 감정’ 혹은 ‘감정적 정동’의 모호한 경계를 상기시킨다(Ahmed, 2014). 따라서 실제 연구 현장에서 그중 하나를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거나 그 둘을 엄격하게 분리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유의미하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험적 연구에 기반을 둔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감정과 정동의 구분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 그들은 정동지리학자들이 내놓은 다양한 개념적 메타포들(예를 들어, 수도관, 케이블, 리듬, 분위기 등)이 실제 삶에서 작동하는 감정의 권력관계를 포착하고,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티엔(Thien, 2005)은 정동 연구의 비재현적 뉘앙스를 비꼬는 “감정 이후 혹은 너머?(After or beyond Feeling?)”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정동을 인간을 넘어선 비인격적 힘으로만 간주하는 시각이 자칫 지리학 연구에서 감정의 중요성과 정치성을 탈색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특히 스리프트나 맥코맥의 추상적인 정동 이론에 녹아 있는 “남성주의적이고, 기술 관료적이며, [주체로부터] 거리를 두는”(Thien, 2005, 452)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러한 개념들이 감정과 정동의 경계를 강화하며, 감정을 다시 한번 여성적, 주관적, 개인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티엔은 이리가레, 버틀러 등의 주체에 대한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주체로부터 거리를 두기보다 주체와 공간의 긴밀한 관계로부터 생성하는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즉, 권력의 공간 안에서 타자와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감정적 주체’를 중심으로 감정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때, 감정이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협상해나가는 상호주체적인 과정이다(Thien, 2005, 453). 가령 여성들이 가부장적 공간에서 느끼는 분노, 공포, 무력감과 같은 감정들은 즉각적이고 신체적인 강도일 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감정적 주체로서 ‘여성’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어두운 밤길에서 여성이 느끼는 공포라는 감정은 단순히 심장이 빨리 뛰는 정동적 반응에 그치지 않는다. 그 공포는 여성의 신체를 취약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담론과 미디어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불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Valentine, 1989; Pain, 2000). 이렇듯 여성은 특정 정동/감정들(예를 들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주체로 신체/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이는 또 다른 집단적 감정(예를 들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을 유발한다. 따라서 티엔은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지리학 연구를 위해서, 감정과 정동을 분리하기보다 그들을 구체적인 삶의 사회공간적 맥락 속에 위치지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의 견해는 앞서 소개한 『감정지리학(Emotional Geographies)』(2005)의 서문에 잘 드러난다. 편집자인 본디, 데이비드슨, 스미스는 그간 감정에 서툴렀던 지리학계의 경향을 비판하며, 감정지리학이 개인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며, 따라서 지리학자들이 감정의 공간성과 관계성을 탐구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Bondi et al., 2005). 다시 말해, 정동은 감정으로부터 분리된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며, 사람과 환경의 관계 속에서 감정이 만들어지고, 감정이 재현되는 모든 과정에 뒤엉켜 있다. 신체와 장소를 흐르는 정동은 감정과 분리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데이비드슨(Davidson, 2003)은 정동/감정, 정체성, 공간성의 상호구성적 관계에 대해 현상학적으로 탐구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공포의 지리학(Phobic Geographies)』(2003)에서 광장공포증 환자가 경험하는 정동적 공간과 심리적 고통을 결부시킴으로써, 두려움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젠더화된 정체성을 구체화하는지 밝힌다. 즉, 공포라는 정동/감정은 특정 공적공간을 회피하게 만들고, 집이라는 사적공간의 의미를 바꾸며, 사회적 관계를 재편하는 등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지리를 만들어내는 사회공간적 과정이다.

공간에 위치지어진 감정과 정동의 관계를 보여주는 더 직접적인 예로는, 본디(Bondi, 2005)의 심리치료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본디는 감정이 ‘개인의 내면에 갇혀 있다’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감정과 정동이 뒤엉키는 역동적인 장으로서 상담실에 주목한다. 이때, 상담실에서 나타나는 심리치료 과정은 동시적이면서도 상호구성적인 세 단계로 이해될 수 있다. 첫번째 단계에서, 상담실을 찾은 내담자는 종종 자신의 모든 고통을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내담자의 진짜 마음의 상태는 말 이전에, 혹은 말과 어긋나게 신체를 통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심하게 떠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불안한 몸짓, 갑작스러운 침묵, 미세한 표정의 굳어짐 등은 내담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언어 이전의 원초적인 힘, 즉 정동이 신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이 날것의 에너지로서 정동들은 상담사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데, 본디는 이것이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인 전이(transference)와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를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우선 전이란 내담자가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상담사에게 옮겨와 반복하는 것이다. 그 예로, 비판적인 아버지 앞에서 느꼈던 위축감이 권위 있는 인물로 여겨지는 상담사 앞에서의 불안한 몸짓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상담사는 전이를 객관적으로 투영하는 ‘텅 빈 스크린’ 이 아니다. 오히려 상담사 역시 내담자의 불안한 정동에 영향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안쓰러움, 지루함, 짜증과 같은 감정적 반응으로서 역전이를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상담사가 경험하는 이 느낌이 결코 상담사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디는 이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담사들이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느낌은 본질적으로 초개인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즉, 한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관계적으로 그리고 맥락적으로 불러일으켜지는 것이다”(Bondi, 2005, 441). 결과적으로 상담사의 신체는 내담자의 정동/감정이 공명하는 ‘울림판’이 되며, 이러한 심리적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생성된다.

마지막으로 상담사는 자신의 역전이 감정을 단서로 삼아, 정동의 경험을 다시 내담자에게 되돌려주며 언어화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무의식에 잠겨 있던 감각을 의식하게 되며, 그 형언할 수 없던 느낌에 무력감, 억울함, 분노 등 이름을 붙여 상징화하기 시작한다. 본디는 이 의미-만들기 과정으로서 상징화의 치유적 힘을 강조한다. 실제로 말로 표현할 수 없던 혼란스러운 경험(정동)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감정)를 얻게 될 때, 우리는 붕괴의 위험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힘을 얻게 된다(Bondi, 2005, 445). 이처럼 상담실이라는 공간은, 내담자의 몸짓과 침묵 속에 흩어져 있던 비언어적 정동이 상담사와의 관계(전이/역전이)를 통해 구체적인 현상으로 재현되고, 마침내 언어화된 감정으로 번역되는 역동적인 장소이다. 이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인 과정 속에서, 감정과 정동은 서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뒤섞인다. 즉, 정동은 관계 속에서 감정으로 번역되고, 그 감정은 다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동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본디는 이러한 심리치료 과정이 “느껴지는 동시에 사유되고 [...] 수행적인 동시에 재현적이며, 개인적인 동시에 관계적인 것”(Bondi, 2005, 444)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본디는 심리치료의 실천을 통해, 감정이 결코 개인의 내면에 고립된 심리 상태가 아니며, 정동과 감정, 그리고 감정과 감정에 대한 재현 ‘사이’에서 발생하고 흐르는 관계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감정과 정동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정동지리학자들과 그러한 구분을 횡단하는 감정지리학자들 사이의 긴장은, 티엔의 정동지리학 비판(Thien, 2005)에 대한 즉각적인 반박으로 이어졌다. 우선 맥코맥(McCormack, 2006)은 티엔이 주요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수도관과 케이블’과 같은 메타포가 단순한 기계론적 비유가 아니며, 우리의 실제 삶을 구성하는 핵심 인프라이자 정동적 에너지의 흐름을 사유하는 유용한 방식임을 주장한다. 그는 티엔의 접근이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사람들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묻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 느낌을 표현하도록 요구하는 것만이 윤리적, 정치적, 관계적인 연구 방법은 아니다”(McCormack, 2006, 331)라고 반박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맥코맥은 과거 아일랜드의 인텔 제조 공장에서 고순도 수도관을 관리했던 경험과 미국에서 케이블 TV 설치 기사로 일하며 겪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특히 케이블 TV 설치 기사 시절, 고객들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 작업하며 느꼈던 불편한 침입의 감각, 예상치 못한 환대(함께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고향 아일랜드 이야기를 나눈 노인의 집) 등을 떠올린다. 결과적으로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물을 끓이고 컴퓨터를 켜는 행위 자체가 수많은 수도관과 케이블의 연결망에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기술적 인프라가 “우리를 실제 삶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다양하고 움직이는 물질성의 리듬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파악하고 증폭시킬 수 있게 한다”(McCormack, 2006, 332)고 역설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앤더슨과 해리슨(Anderson and Harrison, 2006)은 티엔이 스리프트와 맥코맥 등 소수의 학자만을 선택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이제 막 떠오르는 정동 연구 분야 전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를 희화화한다며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또한, 그들은 티엔이 감정을 기존의 사회공간적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며, 그가 버틀러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수행성, 즉 감정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감정이 기존의 사회적 관계(예를 들어, 젠더 정체성)를 매개하고 복제하는 과정을 설명할 뿐, 감정 표현과 행위가 어떻게 새로운 주체와 관계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이다. 앤더슨과 해리슨에 따르면, 이러한 관점은 티엔이 비판하고자 하는 사회적 관계를 오히려 자연스러운 원인이자 결과처럼 보이게 할 위험이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단순히 기존 관계들을 자동적으로 재생산하는 수동적인 것으로 축소시킬 위험을 동반한다(Anderson and Harrison, 2006, 333). 아울러 이들은 티엔이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모호한 비판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감정을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 한정함으로써 비인간과의 물질적・정동적 관계를 탐구할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앤더슨과 해리슨은 감정과 정동에 관한 연구들이 물질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주체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재고함으로써, 기존의 인간중심적, 담론적, 이데올로기적 질서의 정체성 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Anderson and Harrison, 2006, 334-335).

3) 무의식과 정신분석지리학

이 격렬한 논쟁 속에서 파일(Pile, 2010)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감정지리학자들’과 ‘비재현 이론에 기반한 정동지리학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며 감정과 정동, 나아가 주체와 무의식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그는 감정-정동에 대한 흑백 논리를 비판하며,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이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두 흐름 모두 1) 유동성을 중시하는 관계적 존재론을 따르며, 2) 연구 대상과의 근접성과 친밀감을 가치 있게 여기고, 3) 민족지적 방법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Pile, 2010, 10-11). 또 다른 공통점은 두 흐름 모두 신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하는데, 감정지리학은 신체를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주체의 장소로 보지만, 정동지리학은 신체를 개인을 넘어선 비-심리적인 장소로 본다는 점이 그렇다.

이러한 시각차는 사유와 정동, 무의식과 정동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이견을 야기한다. 감정지리학에서 정동은 무의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사유와 얽힌 심리적 대상으로 남지만, 정동지리학에서 정동은 사유는 물론이고 의식-전의식-무의식과 근본적으로 분리된 비-심리적인 힘으로 간주된다. 파일은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의 신체와 사유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양쪽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져온다고 분석한다.

“정동지리학에서 비인지적인 것은 계속해서 알 수 없고 재현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감정지리학에서 무의식은 표현된 상호주체적 관계들을 위해 버려진다. 어느 쪽도 무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혹은 무의식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과] 격렬한 열정은 표면에 머무르고,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른다.” (Pile, 2010, 15)

즉, 정동지리학은 정동을 신체적 반응(땀, 소름, 심박수 등)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힘으로 남겨둠으로써, 그 힘이 의식과 무의식의 안팎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포기해 버린다. 반대로 감정지리학은 표현된 감정(공포, 분노, 무력감 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언어의 상징 이면에 숨겨진 복잡한 무의식의 세계를 간과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두 흐름 모두 표면에 드러난 감정적・정동적 현상에 주목할 뿐, 그 표면 아래에서 깊게 흐르는 무의식의 차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파일은 이러한 침묵으로 인해, 두 흐름 모두 새로운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교착상태를 넘어서기 위해, 주체와 무의식 사이의 복잡한 얽힘을 탐구하는 정신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Pile, 2010, 13-16).

감정, 정동, 주체, 무의식을 둘러싼 이 같은 개념적 긴장에 대해 본디와 데이비드슨(Bondi and Davidson, 2011)은 “번역에서 길을 잃다(Lost in Translation)”라는 제목의 비평으로 응수한다. 그들은 감정과 정동이라는 두 개의 분리된 진영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미묘하고 복잡한 논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양극화”하는 오독과 번역의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Bondi and Davidson, 2011, 597). 그들은 어떤 개념들은 모호하고 흐릿할 때, 오히려 더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의 병폐를 진단하려는 파일의 시도는 그 초점과 분야를 고정시킬(fixing) 위험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이 고쳐질(fixing)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 말(words)이 가진 불안정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야생성(wildness)은 그것을 길들이고 싶어 하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구의 생명력에 핵심적이며 그 중심에 자리할 필요가 있다.” (Bondi and Davidson, 2011, 597-598)

이렇듯 감정이나 정동처럼 본질적으로 어수선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때, 연구자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마치 위의 인용문에서 영단어 fix를 ‘고정한다’라고 번역할지, ‘고친다’라고 번역할지를 고민하는 것과 같이) 헤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디와 데이비드슨이 역설하듯, 이러한 ‘길을 잃는’ 여정은 본질적으로 알쏭달쏭한 감정과 정동 연구에 생명력을 더하는 핵심적 요소이기도 하다.

파일(Pile, 2011)은 이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며, 자신의 2010년 논문이 두 진영의 경계를 확정하려던 것이 아니라, 감정과 정동의 지도화를 통해서 그 지도 위에 아직 표시되지 않은 빈 공간을 찾아내고, 바로 그곳에서 정신분석지리학과 같은 새로운 지리학적 이해가 자라날 틈을 확보하려 했던 것임을 다시 한번 설명한다. 아울러 파일에게 이 논쟁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두 진영의 비평가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 즉 공간과 스케일 같은 지리학 고유의 개념을 통해 감정과 정동의 문제를 어떻게 탐구할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그는 감정과 정동에 대한 번역과 지도화 과정에서 무언가 잃어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리적’ 의미를 찾을 가능성 역시 발생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짧은 비평을 끝맺는다: “나는 계속해서 정동, 감정, 그리고 느낌의 지도를 그릴 것이다. 나는 그 지도가 너무 흐릿하지도, 혹은 이미 답을 아는 [것처럼 너무 뚜렷하지도] 않기를 바란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작업을 통해 새로운, 그리고 더 나은 질문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Pile, 2011, 606).

감정과 정동의 경계를 둘러싼 비재현 지리학자들과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의 논쟁은 또 다른 질문들의 잠재성을 호명하며 일단락된다. 중요한 것은 감정과 정동을 둘러싼 다양한 개념과 이론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며, 이들 모두가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적 도구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연구 질문에 따라 누군가는 감정, 정동, 느낌, 나아가 주체-무의식, 인간-비인간의 뒤엉킴에 주목할 수도, 누군가는 그 개념들 간의 간극과 경계를 더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적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지리학 논의에서 제기된 주요 쟁점과 각 개념의 뉘앙스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연구에 신중하게 적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다양한 개념적 도구 중 정신분석 이론의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써, 무의식을 구체적인 공간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한다. 즉, 파일(Pile, 2010)이 감정과 정동 사이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존재에 주목하는 데 그쳤다면, 본 논문에서는 정신분석 이론이 실제 지리학 연구의 사례 속에서 어떻게 공간화되고 적용되는지를 규명함으로써 그 지도를 완성해 나갈 것이다.

3. 주체/타자와 무의식의 공간

무의식의 지도를 그리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감정과 정동을 느끼는 당사자로서 ‘주체’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체란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며 느끼는 행위자이자 의식의 중심을 뜻한다. 하지만 주체를 규정하는 관점은 철학 사조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지리학 내에서도 세부 분과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방법론적 차이에 따라 상이한 주체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Pile, 2008 참고). 그 모든 계보와 갈래를 본 논문에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어지는 장에서는 지리학에서 주체를 사유하는 몇 가지 주요한 관점의 궤적을 간략하게 짚어보고, 그중에서도 무의식의 공간을 탐색하는 데 핵심이 되는 정신분석적 주체에 집중하고자 한다.

우선 근대 철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에게 주체는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세계와 분리되어 객관적 지식을 탐구하는 확고한 정신적 존재, 즉 코기토(cogito)를 뜻했다. 지리학에서 데카르트적 주체는 공간을 객관적 실체로 보고 합리적 행위자를 가정한 실증주의적 공간과학 연구들에서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왔다. 그러나 지젝은 20세기 사상의 흐름이 이러한 데카르트적 주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하고 해체하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한다(Žižek, 1999). 가령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주체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존재이다. 알튀세르(Althusser, 1971)는 이러한 주체화의 양식을 이데올로기에 의한 호명으로 개념화한다. 호명은 개인이 국가나 법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의해 호출됨으로써 자신을 특정 주체로 인식 및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주체는 자본주의의 계급 갈등과 공간적 모순을 다루는 구조적, 정치경제적 관점의 비판 지리학 연구에 녹아 있다.

다른 맥락에서 푸코(Foucault, 2001)는 주체가 단순히 호명되는 것을 넘어, 한 시대의 특정한 담론과 권력/지식의 체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생산 및 규율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예는 그의 저서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2001)에서 잘 드러나는데, 푸코는 근대 이성에 대한 담론이 ‘광인’이라는 타자-주체를 어떻게 분류하고 배제했는지를 천착한다. 더 나아가 담론과 상호구성되는 공간적 실천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르페브르(Lefebvre, 1991)와 드 세르토(de Certeau, 1984)의 실천 이론에 기대어 지배적 공간 질서에 균열을 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행위자로서 실천적 주체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담론적/실천적 주체에 대한 선호는 공간, 장소, 경관 등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미시정치와 실천적 저항에 주목하는 포스트구조주의 지리학 연구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편, 현상학의 계보에서 메를로퐁티(Merleau-Ponty, 2002)는 데카르트의 정신-신체 이원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세계 속에 체화되어 장소를 지각하는 동시에 생성하는 신체-주체(body-subject) 개념을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은 고전적인 인본주의 지리학 개념인 시먼의 신체-발레(body-ballet)에서 잘 드러나며(Seamon, 2015), 최근에는 몸의 물질성과 수행성에 주목하는 비재현 지리학에서도 주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사용되고 있다(Wylie, 2005; Dewsbury, 2015).

마지막으로 정신분석 이론은 의식 너머의 무의식과 자아의 분열에 주목함으로써, 하나의 고정된 주체 개념을 전복한다. 지리학에서 이러한 정신분석적 주체에 대한 논의는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탐구하는 페미니스트 및 포스트식민주의 지리학에서 도드라진다. 예를 들어, 로즈(Rose, 1993)는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적 정신 구조를 통해, 전통적인 지리학의 시선(gaze)이 객관성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타자(여성, 유색인, 자연 등)를 정복하려는 남성적 주체의 무의식적 욕망에 기반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성차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는 남성/여성 주체의 이분법을 넘어 교차성, 수행성, 퀴어 등에 대한 연구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Valentine, 2007; Oswin, 2008). 또한, 포스트식민주의 지리학에서는 파농(Fanon, 1967)과 바바(Bhabha, 1994)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특히 파농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Black Skin, White Masks)』(1967)에서 피식민, 흑인 주체가 백인 지배자의 ‘하얀 가면’을 욕망하는 동시에, 지배자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검은 피부’를 혐오하게 되는 무의식적 분열과 실존적 고통을 분석한 바 있다. 바바는 『문화의 위치(The Location of Culture)』(1994)에서 파농의 논의를 발전시켜 피식민 주체의 흉내내기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 권력의 무의식을 교란하고 혼종성을 생산하는 양가적 실천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체와 무의식, 억압과 저항에 대한 논의는 포스트식민주의 지리학 연구의 핵심적인 이론적 틀로 쓰이고 있다(Sharp, 2023 참고).

1) 주체/타자의 위상학: 대상 a, 욕망, 환상

이처럼 정신분석적 렌즈는 주체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간-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지리학 연구에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물론 국내 지리학계에서도 이러한 유용성에 주목하여 정신분석 이론을 도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다(제갈영, 2010; 김미혜, 2024). 그러나 이들 선행 연구는 정신분석을 사회적 갈등의 일반화된 원인을 설명하는 분석 틀로 활용하거나, 주체의 윤리적 감화를 위한 교육적 수단으로 국한하여 다루어 온 경향이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주체와 공간의 무의식적 얽힘을 위상적으로 규명함으로써 논의의 층위를 공간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를 위해 먼저 정신분석 이론의 핵심 토대인 ‘프로이트의 자아’와 ‘라캉의 주체’ 개념을 지리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우선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 정신의 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위기, 고통을 탐색함으로써 정신분석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학자이다. 프로이트는 ‘나’라고 믿었던 의식적인 자아(Ego) 이면에 전의식과 무의식의 복잡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고 주장하며, 정신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메타포로서 공간적 모델을 제안한다(Blum and Secor, 2011, 1032-1042; Kingsbury and Pile, 2014, 2-8; 그림 1 참고). 그의 초기 저작에서 나타난 지형학적(topographical) 정신 모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언제나 접근 가능한 의식, 약간의 노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전의식, 그리고 의식적으로는 거의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Freud, 1976). 이때, 이 세 가지 정신의 영역은 서로 완벽하게 분리된 상태가 아니다. 따라서 무의식 속에 억압된 충동은 말실수, 농담, 꿈 등 의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끼어든다. 즉,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실수는 무의식에 잠재된 생각이나 기억이 우연을 가장하여 왜곡된 형태로 현실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무의식/전의식/의식의 상호작용은 자아 형성의 토대가 되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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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프로이트의 정신의 지도
(출처: Kingsbury and Pile, 2014, 2)

무의식/전의식/의식의 뒤엉킨 지형 속에서 구성되는 불완전한 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지형학적 모델을 구조적(structural) 정신 모델로 발전시킨다(Freud, 1973). 구조적 모델에 따르면, 주체는 완전한 자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무의식에 잠겨있는 이드(id), 무의식과 전의식의 경계에 놓인 자아(ego), 전의식과 의식을 아우르며 자아를 압박하는 초자아(super-ego)라는 세 가지 작인에 의해 분열된 채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무의식적 혼돈에 휩싸인 충동적인 나(이드)는 사회적인 금지와 요구에 의해 구성된 도덕적인 나(초자아)에 의해 억압되며, 이 과정에서 현실에 적응하고 인내하는 협상적인 내(자아)가 만들어진다. 즉, 이드/자아/초자아는 각각 완벽한 주체가 아니며, 대신 그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경계 넘기를 통해 불완전한 주체가 생성된다. 따라서 킹스버리와 파일은 프로이트의 ‘정신의 지도’에 재현된 분열된/연결된 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프로이트의 정신의 지도는 무의식, 전의식, 의식이라는 서로 동떨어져 있고 명확히 구분되는 ‘영토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지도의 영토들은 분명히 나뉘어져 있지만, 그 경계가 부정확하고 불확정적이며 수수께끼 같다. 가령 자아와 이드의 영토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대신 수많은 점들의 숲이 자아를 가로지르고 있을 뿐이다. 한편, 프로이트가 제시한 [모델]은 기이한 배치를 보인다. 초자아는 왼쪽 구석에 치우쳐져 있고, 지각-의식은 정신 외부에 떠 있으며, 이드는 그 밑바닥의 경계가 없이 뚫려 있는 듯하다.” (Kingsbury and Pile, 2014, 3)

이처럼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공간에 대한 발견을 통해,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자아에 대한 믿음을 해체하며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영미권 심리학계를 중심으로 큰 도전에 직면했다.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이 부상하면서, 증명하기 어려운 무의식을 다루는 정신분석은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비주류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소쇠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렌즈를 통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재해석했다. 구체적으로 라캉은 모호한 심리적 상태로 여겨지던 무의식을 언어에 기반해 재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욕망과 주체성이 개인의 내면이 아닌 외부의 상징적 질서, 즉 언어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을 생물학적 본능이 아닌 사회적・언어적 차원으로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새로운 주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혁명적인 전환점이 되었다(Fink, 1995; Homer, 2005).

라캉은 프로이트의 정신 모델에 나타난 세 가지 영역에 착안하여, 인간의 주체성이 세 가지 체계의 교차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Lacan, 2006). 언어와 법, 사회적 규범으로 대표되는 대타자(Other)의 세계인 상징계(the Symbolic), 이미지와 거울상, 타자(other)와의 동일시를 통해 ‘나’라는 감각을 형성하는 상상계(the Imaginary), 상징계와 상상계로 결코 포착되거나 재현될 수 없는, 무의식적이고 파편적인 현실의 핵으로서 실재계(the Real)가 그것이다. 이때, 주체는 실재계에서 상상계와 상징계로 들어서며 본원적 결여(lack)를 담지하게 된다(Lacan, 1977 참고). 먼저 주체가 실재계에서 상상계로 들어설 때, 소외(alienation)가 발생한다. 가령 아이는 통합되지 않은 자신의 신체를 파편적으로 경험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고 비로소 통합된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울 속에 재현된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내가 아닌 타자의(외부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착각에 기반한 상상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를 ‘나’라고 굳게 믿는 의식적 자아는 실제의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인 것이다(Fink, 1995, 48-53). 나아가 주체는 언어와 표상의 세계인 상징계로 들어서면서 분리(separation)를 겪는다. 가령 아이는 언어를 배우면서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라는 기표(signifier)는 결코 ‘나’의 존재, 즉 기의(signified) 그 자체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다. 이러한 기표와 기의 사이의 필연적인 불일치는 실제의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주체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내가 ‘나’라고 언어화되는 순간 진짜 ‘나’는 언어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다(Fink, 1995, 53-58). 따라서 라캉적 주체는 그 일부가 필연적으로 결여된, 실재계/상상계/상징계 속에서 분열된 존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라캉의 주체 개념이 프로이트의 자아 개념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자아는 본능적 욕구(이드)와 도덕적 규범(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따라서 비록 무의식의 비합리적인 충동에 영향을 받을지라도, 자아는 궁극적으로 현실의 삶을 중재하는 합리적이고 의식적인 ‘나’이다. 즉, 자아는 불완전하지만 비교적 통합된 의식의 중심에 가깝다. 그러나 라캉의 주체는 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무의식적인 존재이다. 주체는 타자의 이미지(거울상)와 담론(언어)에 의해서 재현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나, 본원적 결여로 인해 존재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존재-부재(being- lost, Žižek, 2008a, 15)의 뒤엉킴으로 인해, 라캉적 주체는 곧 주체가 될 것(about to arrive)이면서 동시에 이미 주체인 것(already arrived)으로서 잠재적이고 불확정적인 성격을 띤다(Fink, 1995, 63).

라캉의 주체 개념에 내포된 존재-부재는 ‘보로메오 매듭’에 잘 드러난다(Lacan, 1998; 그림 2 참고). 보로메오의 매듭은 세 개의 얽힌 고리로 구성되는데, 고리가 하나라도 끊어지면 모두 흩어지는 특성을 갖는다. 각각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를 의미하는 세 고리가 얽혀 만들어진 주체의 중앙은 텅 비어 있는데, 이는 소외와 분리로 인해 발생한 주체의 본원적 결여를 의미한다. 비어 있는 주체의 중심에는 주체가 실재계에서 상상계와 상징계로 진입하며, 이미지와 언어의 구조 속에서 잃어버린 대상 a(object a)가 위치한다. 대상 a는 주체가 실재계를 떠올리게 하는 상기물(reminder)이자 잔여물(remainder)로서 기능하는데, 이미지와 언어로 표상될 수 없기 때문에 주체는 결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Fink, 1995, 59-63). 따라서 대상 a의 자리는 공백(void)으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 공백의 가장자리를 더듬어 그것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대상 a의 특성은 오히려 주체가 그것을 끊임없이 욕망(desire)하게 하며, 언젠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환상(fantasy)을 통해 주체가 자신의 본원적 결여 속에서도 붕괴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Homer, 2005, 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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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보로메오 매듭, 뫼비우스의 띠, 토러스

대상 a, 욕망, 환상 등으로 구성된 라캉의 주체/타자 개념은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공간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공간적 아이디어를 메타포로 사용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라캉의 주체는 그 구조와 형식 자체가 공간적이다(Kingsbury, 2007, 252). 따라서 지리학자들은 라캉의 ‘주체성의 위상학’ (Lacan, 2006)에 대한 지리적 해석을 통해 주체 안팎의 물질적-심리적 공간 과정을 분석해 왔다. 대표적으로 블룸과 세코어(Blum and Secor, 2011, 1030)는 프로이트의 ‘정신의 지도’가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한 지형학(topography)에 얽매여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라캉의 위상적 도식이 주체 형성의 정신적 과정을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프로이트의 모델이 경계의 유동성을 함의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내부(마음)와 외부(현실)라는 지형학적 공간 구분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이때, 지형학은 3차원의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나타나는 양적이고 위치 중심적인 공간 이해를 뜻한다. 반면, 위상학은 질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공간으로서, 변형 속에서도 구조적 관계가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Martin and Secor, 2014 참고). 예를 들어, 지형학적 공간에서 도넛과 머그컵은 완전히 다른 도형이지만, 위상적 공간에서는 ‘하나의 구멍’이라는 구조적 관계를 공유하는 같은 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주체에 대입해 생각해 보자. 인간-공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체 외부의 물질적 공간과 주체 내부의 심리적 공간은 접히고 뒤틀리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이는 외부의 거울을 통해 내부의 자아를 인식하고, 외부의 언어를 통해 내부의 자아를 표상한다. 따라서 주체 형성의 과정을 위상적 공간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주체 안팎의 뒤엉킴 속에서도 유지되는, 불완전하고 분열된 주체를 포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뫼비우스의 띠’는 라캉의 위상적 주체 개념을 시각화하는 좋은 예이다(Lacan, 1977; 그림 2 참고). 뫼비우스의 띠는 하나의 면, 하나의 꼬임으로 이루어진 도형이다. 만약 우리가 손가락으로 띠를 잡는다면 분리된 안쪽 면과 바깥쪽 면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쪽 면을 따라 손가락을 이동시킬 경우, 이내 다른 면이라고 생각했던 반대쪽 면에 도착할 것이다. 즉, 뫼비우스의 띠는 모든 지점에서 안쪽과 바깥쪽의 영역이 구분되지만,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역전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안팎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비결정적인 도형이다. 이는 주체와 타자(이미지, 언어)라는 안팎의 접힘과 꼬임을 통해 형성되는, 분열되었지만 연속적인 라캉적 주체/타자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도식화한다(Fink, 1995, 123-125). 다시 말해, 주체와 타자는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동시에 타자는 곧-이미 주체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다른 예로 ‘토러스’는 주체/타자의 본원적 결여를 위상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욕망의 작동 방식을 잘 보여준다(Lacan, 2006; 그림 2 참고). 토러스는 평면 위에 있는 원을 이 원과 교차하지 않는 직선을 축으로 회전하였을 때 만들어지는 도넛 모양의 입체 곡면이다. 이때, 도넛의 표면을 감싸는 원의 회전은 주체의 요구(demand)를 나타낸다. 주체는 타자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구체적인 대상을 요구하지만, 그 어떤 대상도 주체의 본원적 결여를 충족시킬 수 없기에 요구는 하나의 기표에서 다른 기표로 미끄러지며 반복된다. 이러한 기표의 연쇄적인 이동과 대체, 즉 환유(metonymy)는 도넛의 표면을 계속해서 맴돌 뿐 결코 중심을 관통하지 못한다(Fink, 1995, 90-92). 결과적으로 이 요구의 환유적 반복 속에서 닿을 수 없는 도넛 중심의 비어 있는 구멍이 남게 되는데, 그 구멍이 역설적으로 주체의 핵심을 이룬다. 다시 말해, 토러스 중심의 공백은 주체의 본원적 결여이자 욕망의 원인인 대상 a이며, 주체는 그 공백의 가장자리를 감싸고 도는 방식으로 존재/부재 사이에서 진동한다.

뫼비우스의 띠와 토러스에서 나타나는 주체/타자의 위상적 관계는 외밀성(혹은 외심, extimacy)을 갖는다. 외밀성은 라캉이 친밀함(intimate)과 외부(exterior)를 결합하여 만든 신조어로, 주체의 핵심이 사실 외부에 있으며, 따라서 외부의 타자가 주체 자신보다 더 내밀하게 주체를 구성하는 역설적 상태를 의미한다(Kingsbury, 2007, 246). 이러한 안팎의 뒤엉킴은 주체가 끊임없이 외부의 타자를 욕망하게 함으로써, 타자와 완전한 합일(unity)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지속시키는 동력이다. 다시 아이가 상상계와 상징계에 진입하며 결여된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아이는 이미지와 언어를 통해 ‘나’를 구축하면서, 원래 자신과 하나라고 생각했던 엄마를 타자((m)Other)로 인식하기 시작한다(Homer, 2005, 72-73). 엄마와 하나였던 상태를 상실한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와 다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달리 말해, 대상 a는 주체인 아이가 상징계로 들어서며 잃어버린 타자의 조각이며, 실재계에서 타자와 합일되었던 충만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상기물/잔여물(rem(a)inder)인 것이다. 따라서 외부의 타자는 한때 주체 내부에 있었던, 하지만 이제 다시 가질 수 없게 된 잃어버린 그리움(missing)의 대상 a이며, 이는 주체의 끊임없는 욕망과 환상을 추동한다(Homer, 2005, 87-88). 결과적으로 안팎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외밀성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주체/타자가 연속적으로 뒤섞이는 위상적 주체를 만들어내며, 토러스처럼 외부의 타자(대상 a)가 주체의 가장 내밀한 중심(구멍)이 되는 욕망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상 a를 향한 욕망은 단순히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화된 상징계의 사회 속에서 결코 완전하게 채워질 수 없는 근원적인 결여를 의미한다. 그리고 환상은 바로 그 결여를 가리고 주체를 끊임없이 욕망하게 하는 무의식적인 시나리오이자 현실의 틀이다. 즉, “우리는 환상을 통해서 어떻게 욕망하는지를 배운다”(Žižek, 1992, 6). 대상 a는 이미지나 언어로 고정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주체는 그것을 욕망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언젠가 대상 a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가지면 자신의 욕망이 충족될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예를 들어, ‘좋은 삶’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가정 등 다양한 목표를 성취하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좋은 학교를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좋은 가정을 꾸린다고 하더라도, 좋은 삶에 대한 주체의 욕망은 쉽게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체의 환상 속에는 언제나 ‘더 좋은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상 a는 이전에 좋은 삶의 기준이라 생각했던 대상들을 벗어나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함으로써, 주체가 계속해서 더 좋은 삶을 욕망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지속하게 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은 우리의 내면에서 작동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외면에 펼쳐진 사회, 정치, 경제적 공간 자체에 존재하며 우리의 공간 인식과 경험에 깊숙이 개입한다. 달리 말해, 무의식은 의식의 세계로 발현되어 우리의 지리적 현실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지젝(Žižek, 2008b)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은 무의식적 환상이 어떻게 특정한 사회구조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기제가 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사람들이 실재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라캉의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우리가 보는 세상이 실제로는 상상계(이미지)와 상징계(언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사회로부터 배운 세상의 질서와 규범으로서, 암묵적인 사회적 고정관념의 총체이다. 이를테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집단적 환상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기만하는 허위의식이라고 생각한 알튀세르와 달리, 지젝은 사람들이 이미 이데올로기적 허구와 사회적 현실의 차이를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Žižek, 2008b, 25). 즉, 지젝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지금의 삶이 상징계에서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혼돈에 쌓인 무질서한 실재보다 ‘좋은 삶’의 희망을 보여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택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딜레마는 영화 매트릭스(1999)의 구조에도 드러난다. 매트릭스에서는 환상을 횡단하여 그 밖의 실재(라는 환상)를 마주한 주인공 네오를 보여주는데, 이때 등장하는 빨간약(환상을 벗어나기)과 파란약(환상 속에서 살기)의 메타포가 바로 라캉의 실재계와 상징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벌랜트(Berlant, 2011)의 『잔인한 낙관(cruel optimism)』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좋은 삶’의 약속들(예를 들어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가정 등)에 매달리는 이유를 분석한다. 지젝이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면, 벌랜트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끈적이는 정동에 주목한다. 벌랜트에 따르면, 잔인한 낙관은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라캉의 대상 a)이 실제로는 우리의 현실을 고통스럽게 함에도, 그 대상에 계속해서 깊은 정동적 애착을 유지하는 상황을 뜻한다(Berlant, 2011, 1-3). 즉, 그 욕망의 대상에 집착하는 과정이 우리를 소진시키거나, 애초에 달성 불가능하거나, 혹은 달성하더라도 기대했던 만족감을 주지 못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좋은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관주의가 잔인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야 할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진정한 변화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교착 상태(impasse)를 지속시키기 때문이다(Berlant, 2011, 48-49). 결과적으로 잔인한 낙관은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이 처한 구조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일상적 고통으로 치환하며, 현실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정치적 기제로 작용한다. 이렇듯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은 개인의 내면에 위치한 주관적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의 사회구조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외면의 실재이다. 다시 말해, 라캉이 주장했듯이 “무의식은 외부에 있다”(Lacan, 1970, 189).

2) 무의식의 공간: “무의식은 외부에 있다.”

이렇듯 정신분석 이론은 의식/무의식, 주체/타자, 안/밖의 경계를 해체하며, 우리 삶의 물질적-심리적 시공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는 그간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에서 당연시되었던 감정/정동의 흐름과 작동 방식을 무의식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감정/정동의 “표면 아래에서 깊게 흐르는 무의식”(Pile, 2010, 10)이 어떻게 새로운 심리공간적 관계와 정치적 효과를 발생시키는지 주요 정신분석지리학 선행 연구를 검토함으로써 알아볼 것이다.

먼저 ‘무의식적 공간’에 초점을 맞춘 지리학 연구들은 주체/타자의 위상적 관계가 모순적인 시공간을 생성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정신분석지리학자들은 공간이 언제나 “이중적이고, 분열되고, 거울에 비춰지고, 역설적이고, 모순적이고, 반대로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왔다(Kingsbury and Pile, 2014, 7). 실제로 무의식은 주체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타자와의 거리를 가로지르며, 근대적 이성과 합리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앞서 살펴본 외밀성 개념처럼, 주체/타자의 위상적 관계 속에서 주체의 가장 친밀한 것은 저 멀리 외면화(external intimacy)되어 있고, 저 멀리의 타자는 주체의 가장 친밀한 곳에 이물질이나 기생충과 같이 내면화(intimate exteriority)되어 있다(Kingsbury, 2007). 이에 대해 파일(Pile 2008)은 ‘친밀함/돌봄/근접성’과 ‘추상/무관심/거리’에 대한 명확한 이분법에 도전하며, 근접성이 항상 친밀함을 담보하고 거리가 항상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의 심리적 어려움을 목격하고 돌보는 것보다, 지구 반대편의 고통받는 타자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다. 즉, “우리와 그들 사이, 또는 나와 너 사이, 또는 하나와 여럿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Pile, 2008, 212).

나아가 정신분석지리학자들은 주체 외부의 물질적 공간과 주체 내부의 심리적 공간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며, 그 둘이 뒤엉키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위상적 과정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연구로 블룸과 세코어(Blum and Secor, 2014)의 “트라우마의 지도화(Mapping Trauma)”를 들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어떻게 그들의 공간 인식을 재구성하는지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생존자들의 심리적 공간 인식은 현실 공간과 일치하지 않았다. 총격이 벌어진 위치에서 가까이 있었던 생존 학생일수록 그 사건을 더 ‘멀게’ 느꼈고, 반면 총소리를 간접적으로 듣거나 나중에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사건의 위치를 더 ‘가깝게’ 인식했다. 이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물리적 시공간을 접고 뒤트는 위상적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생존자들에게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이 공간 인식은, 물리적으로는 거짓일지 몰라도 그들의 심리적 현실에서는 가장 진실한 공간이다. 이렇듯 불완전하고 분열된 주체는 공간 인식과 경험을 위상적으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무의식은 주체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어두운 동굴이나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우리의 일상적인 물질 세계 자체에 퍼져 있다(Pile, 2014 참고).

세코어(Secor, 2025)는 주체 외부에 분산되어 있는 무의식에 대한 관점을 비인간 물질의 영역으로 더욱 과감하게 확장함으로써, 물질과 무의식을 통해 전개되는 위상적 시공간을 시공간무의식(spacetimeunconscious)으로 개념화한다. 이는 물리학의 시공간물질(spacetimematter)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세코어는 위상적 시공간에서 나타나는 물질/무의식의 행위성에 주목하며 ‘실재 속의 무의식’을 통해 주체/타자 관계에 내재된 잠재성이 현실화되는 순간을 추적한다(Secor, 2025, 180-181). 먼저 물질에 내재된 무의식적 망각/기억의 예시로 물의 결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 분자는 얼음이 되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얼기 위해서는 먼지 같은 핵 생성자(nucleator)가 필요하다. 핵 생성자는 물의 외부에서 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물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명령으로 작동한다. 이는 물질/무의식이 주체인 물을 대신하여 얼음이 되는 지식을 기억하고 있으며, 시공간물질의 변화에 실질적으로 개입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무의식은 망각하는 주체를 대신해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인 것이다(Secor, 2025, 177-178). 이러한 무의식적 지식의 또 다른 예시로 세코어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반복되는 꿈/깨어남을 분석한다. 생존자는 수용소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온 후에도, 새벽 점호 구령인 ‘일어나’라는 말의 유령에 사로잡힌다. 이로 인해 그는 가족과 식사를 하는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내부의 꿈이 무너지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외부의 꿈으로 깨어나는 경험을 반복하게 한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말은 물의 핵 생성자처럼 작동한다. 즉, 현실의 꿈과 그 이면의 트라우마적 실재가 뒤엉킨, 주체에 잠재된 근본적인 분열이 무의식적 명령을 통해 현실화하는 것이다(Secor, 2025, 179). 이처럼 무의식의 공간성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무의식을 주체의 심리적 기제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기억이 위상적으로 얽히며 사건을 발생시키는 행위성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한편, ‘무의식적 주체’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은 공간적 현상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 긴장과 갈등, 권력 관계를 탐구한다. 이들은 사회적 배제, 인종주의, 민족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이 주체의 방어기제나 욕망, 환상과 깊이 연동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고전적인 예시로 시블리(Sibley, 1995)는 ‘대상관계이론’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주체의 불안을 외부로 전가하는 방어기제에서 비롯됨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주류 집단은 스스로의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타자를 ‘더러운 것’ 혹은 ‘위협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그들에게 투사(projection)한다. 그 결과 “내부의 두려움은 외재화되며, [주체는] 두려움을 외부의 위협과 결부시킴으로써 안전을 얻게 된다”(Sibley, 1995, 6). 이러한 무의식적 과정은 단순히 심리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타자를 주체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는 물리적 경계 짓기로 전이된다. 시블리는 이를 오염에 대한 원초적 공포가 공간적으로 구현된 아브젝시옹(abjection)의 과정으로 해석하는데, 주류 집단은 자신의 순수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혐오스러운 것으로 낙인찍고 그들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둔다(Sibley, 1995, 8-9). 즉, 사회적 배제는 주체의 내면적 불안을 반영하며, 이는 타자를 끊임없이 주변화하는 심리공간적 기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논의는 내스트(Nast, 2000)에 의해 인종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치는 ‘정치적 무의식’의 차원으로 심화된다. 내스트는 미국 사회의 인종적 거주지 분리나 흑인 공동체의 철거 재개발이 단순히 차별적인 도시 정책이 아니라, 백인 가부장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집단적 환상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내스트는 프로이트가 문명의 기원을 본능의 억압, 특히 근친상간 금기를 통한 자연 상태로부터의 결별에서 찾았던 점에 주목한다(Freud, 2002). 백인 사회는 자신들을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이성적 문명의 주체로 정립하기 위해, 흑인을 통제되지 않는 본능과 야만적인 자연으로 타자화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적 환상 속에 흑인 남성은 백인 어머니를 욕망하고 문명사회를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상정되며, 따라서 흑인에 대한 잔혹한 폭력과 인종차별적 공간 분리는 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필연적 조치로 정당화된다(Nast, 2000, 217-219). 결과적으로 도시의 인종차별적 풍경은 단순한 억압의 결과물이 아니라, 주류 사회의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이 공간에 투영되고 고착화된 물질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특정 시공간에서 나타나는 ‘타자’에 대한 감정적・정동적 반응은 무의식에 대한 정신분석 이론을 통해 그 구체적인 원인과 양상이 설명될 수 있다. 이는 난민, 이주자, 노숙자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배제와 억압의 정치에 대한 지리학 연구에 유용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정신분석지리학 연구는 지나친 이분법과 일반화에 기반하여, 무의식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오히려 단순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제갈영, 2010 참고). 구체적으로 파일로와 파(Philo and Parr, 2003)는 정신분석적 해석이 현상의 구체적인 사회공간적 맥락을 무시한 채, 검증하기 어려운 거대 서사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다른 차원에서 칼라드(Callard, 2003)는 지리학계가 사회적 저항이나 진보적 변화라는 정치적 목표에 부합하는 유순한 도구로서 정신분석 이론을 선별적으로 수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길들이기(taming) 과정에서 지리학자들이 무의식의 파괴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힘, 즉 죽음 충동이나 반복 강박,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분석의 진짜 괴물 같은 형상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고 지적한다(Callard, 2003, 308).

그러나 킹스버리(Kingsbury, 2007)는 이러한 비판이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지리학자들의 오해와 오독에 기반한다고 반박한다. 그는 지리학계가 정신분석을 단순히 인간 심리를 다루는 미시적 도구로 축소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거대 담론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비판하며, 라캉의 위상적 사유가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모순적인 현실의 구조를 포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자메이카 관광 산업에 대한 킹스버리(Kingsbury, 2005, 2011)의 사례 연구는 이러한 주장을 적절하게 뒷받침한다. 그는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이 어떻게 호화 휴양지의 모순적인 향유/착취의 공간을 생산하고 지속시키는지 분석한다. 특히 킹스버리는 주체/타자의 외밀한 관계를 교차시킴으로써, 욕망, 환상, 향유, 승화 등 외견상 내적이고 개인적인 세계가 외면화되고, 리조트, 해변, 현지인,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외적이고 사회적인 관광공간이 내면화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이러한 분석은 공간을 주체/타자 관계 속에서 내면화된 동시에 외면화된 것으로, 환상화된 동시에 현실화된 것으로 위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우리의 현실 공간에서 나타나는 감정/정동의 무의식적 작동 방식을 포착하게 한다.

먼저 킹스버리(Kingsbury, 2005)는 관광객의 시선에서 호화 리조트의 기제를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적 향유(enjoyment)가 관광의 부정의와 모순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정치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의 비판적 관광 연구가 관광지의 착취 구조나 ‘연출된 진정성’(MacCannell, 1973)을 기술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왜 참가자들(관광객, 현지인 등)이 이 불평등한 시스템에 그토록 매혹되고 공모하는지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킹스버리는 이러한 공모의 원인을 의식적인 합리성이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닌, 주체와 타자 사이의 정동적 유대와 욕망의 구조에서 찾는다. 이때, 관광 산업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를 추구하는 ‘쾌락 원칙’과 그 너머의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강렬하고 파괴적인 ‘향유’ 사이의 긴장을 관리하는 장치이다(Kingsbury, 2005, 122). 자메이카의 호화 리조트는 높은 벽을 통해 외부의 위협적인 향유, 즉 폭력, 빈곤, 무질서한 날것의 삶을 차단하고 내부의 안전한 쾌락만을 제공하려 한다. 특히 원 러브(One Love)라는 슬로건은 리조트를 계급과 인종을 초월한 사랑이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하며,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가 현실의 착취와 인종차별이라는 트라우마적 실재를 직면하지 않게 해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으로 작동한다. 이 환상은 관광객에게는 죄책감 없는 소비를, 현지인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딜 수 있는 상징적 완충재를 제공한다. 지젝의 표현대로 그들은 이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Žižek, 2008b, 25) 마치 진실인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모순된 관광공간을 유지하는 데 공모한다. 결국 호화 리조트는 겉으로는 평화롭고 우호적인 ‘원 러브’의 장소로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과 착취가 잔인하게 얽혀 있는 무의식의 전장인 것이다.

나아가 킹스버리(Kingsbury, 2011)는 완벽한 낙원으로서 관광공간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지탱하는 것이, 단순히 리조트의 높은 벽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사회공간적 승화(sublimation)임을 규명한다. 이를 위해 그는 기존에 착취적 ‘감정 노동’(Hochschild, 1983)으로 간주되던 ‘노동자의 미소’를 승화 개념을 통해 급진적으로 재해석한다. 라캉에게 승화란 일상적인 대상을 매혹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향유로 빛나는, “사물(the Thing)의 존엄성으로 격상시키는” 행위이다(Kingsbury, 2011, 659; Žižek, 1992, 83-85 참고). 킹스버리에 따르면, 리조트는 화려한 불쇼나 열정적인 춤을 통해 관광객을 대신해 향유하는 숭고한 ‘사물’로 노동자를 격상시키는 동시에, 그들이 발산하는 날것의 위험한 향유가 관광객을 위협하지 않도록 ‘서비스 체크리스트’와 같은 엄격한 규율로 길들이는 이중적 전략을 취한다(Kingsbury, 2011, 661-664). 결과적으로 순종적으로 길들여진 ‘노동자의 미소’는 위험한 향유를 안전하고 부드러운 접객 서비스로 승화하는 환상의 틀로 작동하며, 이를 통해 관광객은 위험한 ‘사물’로서 노동자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쾌락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킹스버리의 연구는 무의식의 파괴적이고 역동적인 힘(향유/승화)이 어떻게 일상적인 자본주의적 공간(관광공간/노동공간)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결국 자메이카의 호화 리조트는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가 명확히 분리된 이분법적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관광객의 향유(Kingsbury, 2005)와 노동자의 승화(Kingsbury, 2011)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교차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감정적・정동적 공모의 장이다.

이렇듯 정신분석지리학은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주체 개념을 넘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분열하고 욕망하는 위상적 주체와 그 무의식이 펼쳐내는 복잡한 물질적-심리적 시공간을 탐구해 왔다. 본 논문에 소개된 사례 연구들은 정신분석이 공간의 정치성을 소거하기보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사회공간적 관계가 어떻게 주체/타자의 외밀한 무의식과 함께 작동하는지를 파헤치는 강력한 분석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킹스버리와 파일(Kingsbury and Pile 2014, 6)은 이러한 정신분석지리학의 논의가 현대 인문지리학의 주요 흐름들과 깊이 공명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정신분석 이론은 언어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통해 세계의 구성을 탐색하는 포스트구조주의와 맥을 같이 하며, 비재현 이론과 함께 체화된 물질적・정동적 힘이 인간-너머의 관계 속에 어떻게 위치하는지에 주목한다. 나아가 인종화된 신체의 우월/열등에 대한 상상의 지리학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을 식민지화하는지를 포착함으로써 포스트식민주의와도 깊게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지리학에서 정신분석적 접근은 무의식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시공간 논리를 추적함으로써, 물질과 심리, 내면과 외면이 얽혀 있는 인간-공간 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4. 결론: 정신분석지리학으로의 초대

2000년대의 ‘감정적 전환’은 지리학에 새로운 연구 질문과 방법론을 제시하며,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공간과 복잡하게 관계 맺고 서로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길을 열었다. 영미권에서 시작된 이러한 변화는 국내 지리학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감정과 정동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그 지평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감정 개념에 기반한 건강지리학 연구(박수경, 2014, 2021; 박향기, 2024)부터, 정동 개념에 기반한 재현-너머 지리학 연구(신진숙, 2019; 김현철・최하니, 2023; 최혜진, 2025), 교수법적 차원에서 감정과 정동의 효용성을 탐색하는 지리교육 연구(김민성, 2023; 범영우・김미혜, 2023)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질적 성장에도, 2000년대 영미권 지리학계의 ‘감정적 전환’을 둘러싼 핵심적인 개념적 논쟁과 그 계보는 아직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학술적 간극에 응답하여, 감정과 정동 개념의 뉘앙스를 정리하고 그 배후에 놓인 지리학적 계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이다. 주지하다시피 정동은 언어나 의식으로 포착되기 이전에 신체에 직접 와닿는 인간-너머의 힘이자 강도로서,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잠재성을 의미한다. 감정은 이러한 정동적 힘이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포획되어 구체적인 이름과 의미를 갖게 된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정동이 항상 비인격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은 아니며, 감정이 항상 개인의 내밀한 심리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감정/정동은 인간과 공간 사이를 흐르며 뒤엉키기에, 이분법적 잣대만으로는 그 역동성을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이에 본 논문은 그러한 역동적인 흐름과 뒤엉킴을 심층적으로 독해하기 위한 렌즈로서 정신분석 이론을 제안한다. 정신분석은 감정과 정동의 표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을 추적함으로써, 현실의 사회공간적 갈등과 모순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Pile, 2010; Kingsbury and Pile, 2014). 실제로 영미권의 정신분석지리학 연구들은 감정지리학과 정동지리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의식과 무의식, 주체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순적인 시공간을 천착해 왔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물리적 거리감을 왜곡시키는 위상적 과정(Blum and Secor, 2014), 물질과 무의식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기억/망각, 깨어남/꿈의 뒤엉킴(Secor, 2025), 관광지의 친절한 미소가 은폐하는 동시에 지탱하는 자본주의적 향유/승화의 구조(Kingsbury, 2011) 등에 대한 연구들은 무의식이 어떻게 구체적인 지리적 현실을 생산하고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정신분석을 지리학으로 가져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일찍이 비판적 지리학자들은 정신분석 이론이 서구 중심적인 백인 부르주아 핵가족 모델에 편중되어 있으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소거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Kingsbury, 2004, 110). 정신분석지리학의 가능성을 주장했던 파일로와 파(Philo and Parr, 2003) 역시 정신분석이 자칫 검증 불가능한 거대 이론으로 회귀할 위험이 있으며,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텍스트 너머의 것들에 대한 연구자의 자의적 해석으로 도약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더 뼈아픈 지적은 칼라드(Callard, 2003)로부터 제기되었다. 그는 지리학계가 정신분석 이론을 수용하면서 저항과 차이를 강조하는 비판적 사회구성주의자들과 타협하기 위해, 관성, 무력함, 죽음 충동과 같이 다루기 까다로운 ‘괴물 같은’ 개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길들여왔다고 꼬집었다. 즉, 지리학이 무의식의 완고함과 파괴성을 외면한 채 낙관적인 정치적 도구로서 정신분석 이론을 편식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과 성찰을 통과하며 정신분석지리학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킹스버리와 파일은 2014년 출판된 『정신분석지리학(Psychoanalytic Geographies)』의 서문에서 정신분석지리학의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바는 정신분석에서 영감을 받은 지리학적 접근들이 보여주는 그 엄청난 폭과 깊이, 그리고 성숙함이다. 지난 20여 년간, 문화 연구나 문학 이론, 그리고 더 넓은 인문학 분야의 정신분석 연구들과 달리, 지리학에서 정신분석을 활용하려면 사과(apology)와 기본 원칙에 대한 재진술이 모두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지리학자들이 학계의 주변에 머무른다는 느낌이나, 예의 없는 풍자나 고의적인 반대 해석(주로 프로이트 사상에서 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널리 퍼진 오해에 기반한)에 대한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정신분석적 접근을 수용할 만큼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Kingsbury and Pile, 2014, 6-7)

이들의 선언처럼, 영미권 지리학계에서 정신분석지리학의 입지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미권의 축적된 성과에 비추어 볼 때, 국내 지리학계의 감정 및 정동 연구는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이며, 정신분석 이론을 지리학적으로 전유하는 데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물론 국내 지리학계에서도 정신분석 이론을 도입한 선구적인 시도들이 존재해 왔다. 제갈영(2010)은 사회지리학의 경계 논의나 정체성 정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정신분석적 접근을 소개한 바 있으며, 김미혜(2024)는 라캉의 초자아와 향유 개념을 통해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공간적 갈등을 윤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지리교육적 탐색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들 선행 연구는 2000년대 이후 지리학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감정과 정동 연구와 관련하여 정신분석 이론이 갖는 새로운 함의를 충분히 기술하지 못했다는 공통적인 아쉬움을 남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무의식을 성급한 해법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물질적-심리적 공간의 균열 속에서 발휘되는 감정/정동의 역동을 독해하는 대안적 렌즈로서 사용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는 정신분석지리학이 천착하는 주체의 위상적 변이와 공간의 무의식적 차원을 구체화함으로써, 지리학자들이 공간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불안정성으로서 감정, 정동, 무의식 등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함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차별성을 갖는다. 본 논문에 소개된 다양한 정신분석의 기본 개념들과 지리학에의 적용 사례들이 그러한 논의를 심화시키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최근 영미권에서 국내 사례를 다루는 정신분석지리학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는 점은(Ji, 2021; Lee, 2022, 2024 참고), 국내 정신분석지리학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정신분석지리학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후속 과제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본 논문은 고전적인 정신분석 개념을 전달하는 데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면서, 현대 심리학의 성과는 물론이고 최근 각광받고 있는 다양한 학술적 시도들을 충분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사실 인지심리학과 심리생리학의 최신 연구들은 뇌 활동의 시각화, 신경 전달 물질의 분석, 정밀하게 설계된 행동 실험 등을 활용하여 감정과 정동의 실체를 실증적으로 규명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임상 기반 연구는 인문지리학에서의 감정과 정동 연구가 주로 사용하는 질적 방법론과 궤를 달리하기에, 본 논문의 논점을 유지하기 위해 그 구체적인 검토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두었다. 그럼에도 무의식이 현대 심리학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 변화와 그것이 뇌의 작동 기제나 물리화학적 반응으로 대체되는 경향은 지리학자들이 정신분석 이론을 차용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비판적 지점이다. 특히 최근의 트라우마 연구들은 과거의 충격이 단순한 심리적 기억을 넘어 신경계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해마와 편도체의 기능 이상을 초래한다는 점을 뇌 영상 기법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van der Kolk, 2014; Herman, 2015). 이러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발견은 정신분석 이론이 가정했던 무의식의 작용을 실증적 토대 위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토양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러한 신경과학적 성과가 기존의 정신분석적 통찰을 부정하거나 기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체의 고통이 신체와 공간에 각인되는 방식을 더욱 정교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지리학의 확장 가능성에 여전히 긍정적인 기대를 품고 있다.

또한, 본 논문은 정신분석 고유의 주체성 이론과 심리공간적 함의를 희석시키지 않기 위해 행위자 연결망 이론이나 신유물론과의 적극적인 이론적 접합을 유보하였다. 그러나 무의식을 단순한 인간 심리의 산물을 넘어 물질적・네트워크적 효과로 확장하여 해석하는 작업은 정신분석지리학이 향후 시도해야 할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정동과 공간을 사유하는 흐름들에 대한 검토 역시 중요한 후속 연구 과제이다. 예를 들어, 세즈윅(Sedgwick, 2003)은 정동이 생물학적 목표에 얽매인 프로이트적 충동과 달리 시간과 대상에 구애받지 않는 ‘더 큰 자유’를 누린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고정된 대상을 갖지 않는 자유로운 정동은 사람, 사물, 이념 등 그 어떤 것에든 달라붙을 수 있는 강력한 접착성을 지니며, 이는 사회공간적 힘으로서 정동의 강력한 정치적 효과를 시사한다. 한편, 프로빈(Probyn, 2003)은 비재현 이론에서 정동을 주체와 분리된 비인격적 힘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자칫 실제 삶의 맥락으로부터 주체를 소외시키는 ‘거리두기’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정동을 다시 구체적인 주체의 경험으로 재결합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빈(Probyn, 2005)은 수치심을 타자와의 관계 단절 위기에서 발생하는 주체적인 반응이자, 타자에 대한 깊은 관심의 방증으로 재해석한다. 즉, 수치심으로 붉어진 얼굴의 홍조(blush)는 정동이 공중에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피부라는 구체적인 접촉지대에서, 주체의 역사와 관계망 속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규명한다(김현철, 2023 참고). 이러한 해석은 주체/타자, 인간-공간의 경계 안팎에서 마주침을 통해 형성되는 정동적・관계적 공간을 포착하는 데 유용한 단초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지리학에서 정신분석을 한다는 것은 고정된 이론의 틀을 현실에 덧씌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과 불안이 서려 있는 현실 공간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킹스버리와 파일이 비유했듯, “정신분석은 마치 사원의 기둥 위에 지붕이 얹히듯이 근본적인 개념들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정신분석의 기둥들은 평범한 인간 고통의 불안정한 기반으로부터 출현한다. 로마처럼, 정신분석은 그 폐허 속에 살아 있다”(Kingsbury and Pile, 2014, 8). 우리가 잔혹한 실재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 현실이라는 꿈속을 헤매는 존재라면(Lacan, 1977), 정신분석지리학은 그 꿈의 구조를 파헤치며 우리 삶과 공간의 폐허 속에 살아 숨 쉬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이 될 것이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2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5S1A5A800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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