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이론적 배경
1) 페미니스트 지리학: 여성의 경험, 실천 그리고 공간의 정체성
2) 경계공간(liminal space)
3) 비공식 경제, 비공식 공간
3. 사례와 연구 방법: 탄자니아 여성 어민의 공간 활용에 관한 질적연구
1) 연구지역
2) 개발도상국의 맥락에서의 소규모 어업(Small-Scale fisheries)
3) 연구 방법
4. 연구결과: 공간의 경계화와 여성 실천의 주체성
1) 가정 공간의 경계공간화(Liminal Space): 주변화된 주체의 대안적 공간 활용 분석
2) 어시장의 경계공간화(Liminal Space): 주변화된 주체의 신뢰 기반 공간 활용
3) ‘물리적 이동’이 아닌‘관계’로 구성된 공간 정체성
5. 결론
1. 서론
페미니스트 지리학에서는 공간이 공적/사적 또는 공식적/비공식으로 이분화된 채로 고정되었다는 기존의 공간론을 비판한다(김현미, 2008). 이들에게 공간은 물리적인 배경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와 일상적 실천 속에서 생성되는 사회적 생산물이다(양영란(譯), 2011; Massey, 2005). 특히 공간과 장소가 외부와의 분명한 경계 안에 특정 지어지고 고정된 정체성을 지녔다는 기존의 장소 인식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비판한다(정현주(譯), 2015). 그들은 공간이 관계, 젠더, 실천 등 다수의 외부 요소에 의해서 새롭게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정현주(譯), 2015; Valentine, 1989). 이런 맥락에서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되어 온 여성의 신체성과 가정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김현미, 2008; 최미정, 2021).
여성의 공간을 사적공간, 남성의 공간을 공적공간으로 이분화한 이분법적 구조를 해체하려는 다수의 연구가 있으나, 이러한 이분법 자체에 대한 비판은 부족하다(Sagawa, 2006). 사적인 공간을 여성의 공간으로, 공적인 공간을 남성의 공간으로 구분하는 것은 서구 중심적인 이분법이며, 이러한 이분법은 비서구 국가의 사회, 문화적 맥락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Sagawa, 2006).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맥락에서는 이와 같은 공/사 영역이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얽혀 있거나, 성별 구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Sagawa, 2006). 그럼에도 다수의 연구에서 이러한 이분법에 근간한 이론 분석 틀을 사용하는 오류를 범하여 탈식민주의적 인식이 부족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비공식 공간을 여성들의 공간으로, 공식 공간을 남성들의 공간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본 연구에서는 비공식 공간을‘일반적으로 경제활동이 직접적으로 수행되지 않고, 제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60%에 달한다(Plagerson et al., 2022). 비공식 경제에 대한 하나의 개념화된 정의는 없으나(Dell’Anno, 2022; Lloyd-Evans, 2008), 법적 인정, 규제 또는 보호의 부재가 비공식 경제의 일반적인 특징이다(Chant, 2007; Chant and Pedwell, 2008; Chen et al., 2006; Cross, 1998; Fernandez-Kelly and Shefner, 2006; Itzigsohn, 2000; Potter and Lloyd-Evans, 1998; Rakowski, 1994; Thomas, 1995; Lloyd-Evans, 2008에서 재인용). 또한 비공식 경제는 공식 경제와 연관되어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도시공간 연구는 여전히 제도화된 공공공간, 공식적 상업지구, 계획된 공공 인프라에 중점을 두어 연구되고 있다.
국내에서 이뤄진 도시의 비공식 공간연구는 대도시인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노점상 사례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김지언, 2016; 양윤서・권규상, 2020; 황진태 등, 2015). 드물게 비공식 주거지 연구(채상원, 2018)와 공장입지와 관련된 연구(채상원・신혜란, 2017)가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비공식 공간이 도시 내에서 갖는 의미를 분석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비공식 경제 공간이 대다수의 도시 거주자의 생계 활동을 책임지는 개발도상국(Mushi, 2023; Samiji and Mutalemwa, 2025)의 도시 비공식 공간연구를 포괄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해외 연구로는 네팔(Xheneti and Madden, 2024), 탄자니아(Magesa et al., 2024), 에티오피아(Lemma and Sharma, 2025)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비공식 경제와 일상 실천을 다룬 연구가 있으나, 비공식 경제와 공식 경제가 연결되는 메커니즘이나, 비공식 경제와 공간이 연동되는 방식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즉, 도시 인구의 다수가 비공식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도시 비공식 경제 공간연구는 도시 계획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선행연구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본 연구는 공간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그 경계의 공간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이론적 공백과 개발도상국의 비공식 경제에 대한 도시공간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리적 공백을 채우고자,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제1 도시인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의 도시 어시장인 음지지마(Mzizima) 어시장을 중심으로 도시 비공식 경제 공간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구성되는지 그 정체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탄자니아는 인구 6천만 명으로 농촌-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뚜렷하며 급격한 도시화를 겪고 있다. 세계은행(2021)은 탄자니아의 경제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은 2030년까지 인구 10만 명을 초과하여 메가시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다르에스살람은 이러한 급격한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약 75퍼센트가 비공식 부문-주로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한다는 특징이 있다(Mushi, 2023; Samiji and Mutalemwa, 2025). 탄자니아 도시 비공식 부문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Eijdenberg, 2016; Magesa et al., 2024; Riisgaard, 2022; Steiler and Nyirenda, 2021). 탄자니아 도시의 행상인들을 거래 방식에 따라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분석하여 행상인들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연구(Steiler and Nyirenda, 2021), 탄자니아의 여성 어민의 일상적 실천(손질, 가공, 판매)에 대한 연구(Magesa et al., 2024), 케냐와 탄자니아의 노동조합이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포섭하려는 시도가 기존 권력 구조와 충돌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Riisgaard, 2022)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이 다양한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의의가 있으나,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지리학적 관점에서 공간과 연계하여 분석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즉, 탄자니아 도시 인구의 대다수가 비공식 부문의 일자리에 종사하고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그들의 미시적 실천과 공간, 그리고 공식 경제와의 연관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본 연구는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비공식 경제 부문 중에서도 어업에 종사하는 여성 어민들의 일상적 실천을 분석한다. 여성 어민들은 어시장과 가정 공간이라는 공식, 비공식 공간에서 경제활동을 한다. 어시장에서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어류 구매를 위한 경매에 참여하고, 경매와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구매한 어류는 비공식 공간인 가정 공간으로 옮겨져 손질과 가공을 거쳐 판매된다. 이러한 일상적 실천과 여성 어민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가 비공식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본 논문은 분석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어시장의 비공식 공간과 가정 공간에서의 일상적 실천이 갖는 주체성을 가시화한다. 이를 통해 도시 분석을 공적공간, 사적공간으로 나누는 이분법에 대해 페미니스트 지리학이 비판(김현미, 2008)했던 지점을 뒷받침하고, 도시 비공식 공간이 어떻게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에서 경계공간으로 재구성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이론적 배경으로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을 토대로, 도린 매시의 관계적 공간 개념을 기본으로 하여 공간 구성의 과정과 의미를 분석한다. 또한 샤론 주킨의 ‘경계공간’개념을 통해 비공식적 경제 주체로 평가받는 여성들이 공식 경제와 관계를 맺기 위해 대안적으로 생성한 공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석한다. 질적연구방법을 사용하여 총 20여 명의 도시 여성 어민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와 세 명의 여성 어민의 가정 공간을 참여 관찰한 내용을 현상학적 방법으로 분석한다. 음지지마 어시장에서 인터뷰에 적합한 여성을 소개받아 인터뷰 대상자를 모집하였고, 인터뷰는 영어-스와힐리어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2. 이론적 배경
1) 페미니스트 지리학: 여성의 경험, 실천 그리고 공간의 정체성
공간에 대한 다양한 학문에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라는 이분법이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폴리스는 완전히 공적인 영역으로, 오이코스는 완전한 사적인 영역으로 상정한 것을 시작으로, 근대에서 로크가 공적/사적영역을 뚜렷하게 구분한 것처럼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은 개념적으로 교차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Baker, 2018). 이의 연장선상에서 19세기 산업화 이후 여성은 ‘집’이라고 하는 사적공간을 대표하는 주체로, 남성은 문화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적공간을 대표하는 주체로 영역이 분리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정현주(譯), 2015).
그러나 페미니스트 지리학은 이러한 이분법적 공간 개념에 도전하며, 공간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일상 속 실천을 통해 상대적이고 관계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으로 개념화한다(정현주(譯), 2015). 특히 여성의 공간 경험은 공적/사적 이분법을 넘나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실천으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공간의 젠더화 된 정치성과 권력 구조가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은 젠더와 공간의 상호구성적 관계를 분석하는 데 핵심적인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에서는 공간과 장소가 외부와의 분명한 경계 안에 특정 지어지고 고정된 정체성을 지녔다는 기존의 장소 인식을 전면적으로 비판한다(정현주(譯), 2015).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에 따르면 공간은 단지 측정되고 채워져야 할 배경에 머물거나, 혹은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인해 바뀔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최미정, 2021; 정현주(譯), 2015). 공간은 수많은 내, 외부의 변화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과 의미를 가지는 가변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최미정, 2021; 정현주(譯), 2015). 저명한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도린 매시(정현주(譯), 2015)에 따르면, ‘공간과 장소는 관계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며, ‘공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몸’과 ‘가정’을 핵심적인 분석 단위로 삼는다. 이들은 기존 지리학이 전제해 온 이분법―예컨대 가정과 일터, 몸과 정신, 재생산 노동(돌봄)과 생산 노동―이 자연스럽고 중립적인 구분인 양 받아들여지며 위계적인 질서를 정당화해 왔다는 점을 비판한다(김현미, 2008). 특히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되어 온 여성의 신체성과 가정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김현미, 2008; 최미정, 2021).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으로 ‘중심과 주변’, ‘이곳과 저곳’처럼 위계화된 공간 구분이 남성 중심적 시선 속에서 구성되었음을 드러내며,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성 주체를 타자화해 온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최미정, 2021). 나아가 여성의 공간적 경험을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 공간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것임을 강조한다(최미정, 2021).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에게 가정 공간의 의미는 때로 더욱 확장되어 지정학과 연결되어 분석되기도 한다. Brickell(2012)는 지정학이 집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얽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본 논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일상의 반복적 실천이 ‘집’과 ‘시장’을 경계공간으로 전환 시키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공간이 권력의 산물이자 실천의 장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공/사 구분, 공식/비공식 경제, 노동/돌봄 등의 경계가 어떻게 재의미화되는지를 드러내고, 개발도상국 도시 맥락에서 여성의 공간 실천을 페미니스트 지리학적 시각으로 조명한다. 젠더화된 공간 구성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론적 확장을 시도하고, 아프리카 도시의 비공식 경제 공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자 한다.
2) 경계공간(liminal space)
초창기 역치성/경계성(liminality)에 대한 논의는 아놀드 방주네프(Arnold Van Gennep)가 그의 연구에서 성장, 결혼, 죽음과 같은 의례의 한 지점에서 처음 제시했고, 이후 인류학자인 빅터 터너(Victor Turner)에 의해 구체화 되었다(강인철, 2019). 빅터는 통과의례를 넘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역치성/경계성(liminality)이라는 개념이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강인철, 2019). 터너에게 있어 역치성/경계성이란 현재 속한 범주가 아닌 다른 범주에 속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중간상태, 즉 문턱(threshold)에 머무르는 상태를 의미한다(조윤신, 2021). 즉, 그에게 있어 역치성이란 공적영역이나 사적영역으로 확실하게 나뉠 수 있는 분명한 공간이 아니라 그 중간의 상태를 의미한다(박수민・이희정, 2021).
이후 다양한 연구자들을 거쳐 샤론 주킨(1993)은 역치성/경계성의 개념을 공간과 결합한다. 경계공간은 양립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두 범주의 공간 - 예를 들면 공적공간과 사적공간, 문화적 공간과 상업적 공간, 글로벌 시장과 지역의 소규모 시장 등-이 상호작용을 하며 통합되는 공간을 의미한다(Zukin, 1993). 그녀는 또한 경계공간이란 사회나 개인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지만 아직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공간으로 분석한다(Zukin, 1993).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대부분의 경계공간과 관련된 논의는 도시의 공공・공적・경제 영역을 중심으로 분석되는 경향이 강했다(박수민・이희정, 2021; 조윤신, 2021). 해외 사례를 분석한 연구로는 김미지(2018)의 일본 도시 서점과 한국 대형서점의 사례가 있으나, 이 역시 대규모의 공적・상업적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한국에서 경계공간 개념을 도입하고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분석 대상이 주로 마크로(Macro) 및 메소(Meso) 수준에 집중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즉, 국내 연구에서는 국가 정책, 도시설계, 경제적 공간 활용과 같은 구조적 차원의 공간을 메소 수준의 상호작용과 분석이 주를 이루었으며, 경계공간이 개인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에 대한 마이크로(Micro) 수준의 공간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삶과 일터에 대한 마이크로 수준의 해외 연구에서는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다. Xheneti and Madden(2024)는 네팔 여성들의 비공식 공간을 분석하면서 가정이 기반이 되어 사업체를 꾸린 후 일하는 경우, -예를 들면 봉제업이나 식당 혹은 미용업- 작업을 실행하는 부분에서는 유연성이 있으나, 피로를 더 느끼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건강을 착취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진단한다. 덧붙여서 해당 연구는 비공식 경제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일상 실천에 대해 분석하여 사회적 관계의 얽힘을 설명했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비공식 경제가 작동하는 (경계)공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며, 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가 맺는 관계에 대한 분석이 미비하다는 한계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여성들의 일상 실천을 다룬 선행연구에서는 노점 운영을 통해서 여성들이 주체자가 되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중요한 결과를 시사했으나(Lemma and Sharma, 2025), 이 연구 역시 여성 노점상인들이 공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미시적인 공간에 대한 관점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앞서 페미니스트 지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간’과 ‘실천’은 상호 의존적이며 떼려야 뗄 수 없다(Rose, 1993; Ardender, 1981에서 재인용). ‘공간은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는 관점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몸, 노동, 감정이 공간의 의미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한다(김현미, 2008; 정현주(譯), 2011). 이러한 행위와 실천은 삶의 공간을 ‘경계공간(liminal space)’으로 전환시킨다. 경계공간 개념은 고정된 공간 정체성에서 탈피한 실천 공간의 정체성을 설명할 단서가 된다. 다시 말해, 이분법적 구분이 무너지고 혼성적 의미가 발생하는 공간적 전환점을 설명하는 데 유효하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개발도상국의 도시 여성 어민, 특히나 여성 어류 행상인의 실천과 공간의 정체성을 분석한다. 이들이 어시장에서 경험하는 노동, 가정에서 수행하는 가공, 마당에서의 판매 행위는 모두 ‘공간의 젠더화’와 ‘공간의 재구성’이 교차하는 경계공간의 현장이다.
3) 비공식 경제, 비공식 공간
본 논문은 여성들의 비공식 공간이 그들의 일상 실천에 의해‘경계공간화’되었음을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 틀을 명료화 하기 위해 이번 절에서는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 or Informal sector)와 비공식 공간(Informal space)에 대해 논의한다. 개발도상국의 맥락에서 비공식 경제는 거리나 시장에서의 거래, 조리된 음식의 판매, 자전거나 오토바이와 같은 이동 수단을 통한 운수업, 쓰레기 처리, 미용업, 청소업 등으로 대표된다(Blades et al., 2011). 이번 절에서는 이러한 비공식 경제의 정의와 본 논문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비공식 공간의 정의를 살펴본다.
(1) 비공식 경제(Informal sector)
‘비공식 부문(Informal sector)’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인류학자인 키스 하트(Keith Hart)가 북부 가나지역에서 수도인 아크라(Accra)로 이주해 온 비숙련 노동자들이 저소득 활동에 종사하는 모습을 분석한 것을 시작으로 처음 사용되었다(Chen, 2012). 초기(1970년대) 비공식 부문에 대한 학계의 동향은, 비공식 경제가 개발과 연관있다고 간주하여, 개발도상국에서 충분한 개발이 이루어지면 비공식 경제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Chen, 2012).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 개발이 진척된 이후에도 비공식 경제 부문에 여전히 다수의 노동자가 종사하며, 1990년대 시장 중심 경제와 세계화된 경제 성장 체제가 본격화된 이후에 비공식 영역이 감소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오히려 비공식 경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했다(Yusuff, 2011).
다수의 학자들이 비공식 경제에 대해 통계적으로 일관성이 있거나, 측정이 가능하고, 국제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통일된 정의는 없다고 주장한다(Dell’Anno, 2022; Lloyd-Evans, 2008). 비공식 경제에 대한 단일한 정의는 부재하지만, 일반적으로 법적 인정, 규제 또는 보호의 부재가 비공식 경제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Chant, 2007; Chant and Pedwell, 2008; Chen et al., 2006; Cross, 1998; Fernandez-Kelly and Shefner, 2006; Itzigsohn, 2000; Potter and Lloyd-Evans, 1998; Rakowski, 28; Thomas, 1995; Lloyd-Evans, 2008에서 재인용).
Dell’Anno(2022)는 그러나,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단위의 자영업이나 영세 임금노동인 비공식 생산은‘배제’라는 발생 원인을 통해 만들어진 전형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비공식 경제를 Dell’Anno가 분석한‘배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배제’라는 사회적 상황에 직면하여 공식적 임금노동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 어민을 분석한다. 다시 말해‘비공식 경제’는 학계에서도 단일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에(Dell’Anno, 2022; Lloyd-Evans, 2008; Yusuff, 2011), 본 논문에서는 공식 경제 혹은 공식 일자리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경제활동이라고 조작적인 정의를 내린다. 실제로 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수의 노동 인구가 전 생애 가운데 한 번도 공식 경제(공식 일자리)에 종사한 적이 없이, 전통적 생계 방식 또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 활동에 기반한 경제활동을 한다(Chen, 2012).
이러한 비공식 경제는 공식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비공식 경제를 공식 경제와 연결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Castells and Portes, 1989). 전 세계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인구는 약 60%에 이른다(Plagerson et al., 2022). 이러한 비공식 경제는 공식 경제와 나누어져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공식 경제와 노동력, 자원, 제품, 수요 등 다양한 연결망으로 연결되어 있다(Chen, 2012). 이 때문에 비공식 경제는 공식적인 규제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전 세계 노동력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Chen, 2012). 본 논문에서도 여성 어민의 비공식 경제는 어시장의 공식적 경매 활동과 지역에서의 판매 행위 등이 유동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비공식 경제의 공식 경제와의 연결성이 드러난다.
(2) 비공식 공간(Informal space)
비공식 공간은 학술적으로 개념화된 용어가 아니기에 본 논문에서는 조작적 정의를 사용하여 비공식 공간을 정의한다. 앞서 살펴본 비공식 경제의 범위는 그 범위가 대단히 넓고 단일하게 정의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Yusuff, 2011) 본 논문에서 비공식 공간을 비공식 경제가 작동하는 모든 장소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이 직접적으로 수행되지 않고 제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공간을 비공식적 공간으로 본 논문은 정의한다. 즉, 제도적이고 공식적인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의 주변부나 제도적 시야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거주지로 대표되는 가정 공간, 가정의 마당, 집으로 가는 골목길, 마을의 틈새처럼 경제적, 제도적 기능을 하는 곳이 아닌 정서적, 사회적, 재생산에 가까운 기능을 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더 좁게는 일상 실천을 통해 도시 공간이 기존의 정체성에 새로운 정체성이 더해져 재배열되는 경계적 장소로 분석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3. 사례와 연구 방법: 탄자니아 여성 어민의 공간 활용에 관한 질적연구
1) 연구지역
본 연구는 그림 1 탄자니아 지도에 나타난 것처럼,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제1의 도시이자 경제 수도인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에 위치한 음지지마 어시장(Mzizima fish market)과 이 어시장을 경제 공간으로 활용하는 여성 어민들의 가정 공간(Halsi, Dar Es Salaam/ Toangoma, Pwani)을 연구 지역으로 한다. 다르에스살람은 급격한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과,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에 종사하는 인구의 증가, 젠더화 된 생계전략이 나타나는 도시라는 점에서 본 연구가 하고자 하는 도시 여성의 일상 실천에 따른 공간의 정체성을 분석하는 것에 있어 적절한 사례적 맥락을 제공한다.
다르에스살람은 인구 700만으로 2030년까지 인구 1,000만의 메가시티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폭발적인 성장이 진행 중인 도시이다(World Bank, 2021). 뿐만 아니라, 탄자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며(Samiji and Mutalemwa, 2025), 동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항만도시이다(Rosen, 2019). 그러나 아직도 인구의 75%가 비공식 정착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곳은 허술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들이 미로와 같이 뒤엉킨 형태를 가진다(Rosen, 2019). 또한 도시 인구의 58%가 하나 이상의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의 57.4%가 여성이다(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2019).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인구의 오직 16,9% 만이 상설장소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76.6%의 인구는 이동하거나(28.3%), 고객의 집에서 판매하거나(11.3%), 노동자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집(21.2%) 등에서 경제활동을 한다(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2019). 다르에스살람의 도시화가 형식성(formality)을 가지고 확장되고 있다기보다는, 비공식성과 유동성(Mobility)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의 비공식 경제 공간이 구성되는 메커니즘을 탐색하기에 적절하다. 또한 배우자나, 자신의 거주지를 활용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28.4%)는 남성 노동자(11.4%)의 약 3배 정도 높다는 측면(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2019)에서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비공식 경제활동의 역학은 주목해야 한다.
음지지마 어시장은 지역 어업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어시장 중 하나이다. 이곳은 현재까지 여성 어민들의 비공식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이다(Mushi, 2023). 주변에 작은 어시장들에서 잡힌 어류가 음지지마 어시장으로 보내지기도 하고, 어선이 직접 음지지마 어시장에 정박하기도 한다. 다르에스살람의 여성 어민을 연구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여성 어민들이 어시장과 그 주변에 어업 가치 사슬(Value Chain)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Magesa et al., 2024).
어시장과 가정 공간은 여성들의 반복적인 실천에 따라 기존의 공간 정체성이 재구성되어 젠더화된 장으로서 체현된다. 그들은 어시장에서 생선을 구매하고, 가정에서 가공하며, 집 마당의 가판대 혹은 거리에서 이를 판매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일상적으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교차한다. 이들의 실천은 도시의 비공식 경제에서 여성의 존재와 기여를 드러낸다.
2) 개발도상국의 맥락에서의 소규모 어업(Small-Scale fisheries)
아프리카에서 어업은 여전히 식량안보, 고용 국내총생산 등에 기여하는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Binns et al., 2012). 어업의 형태는 전통적인 소규모 어업(small-scale fisheries)에서 현대적인 상업 어업까지 다양하지만, 많은 수의 어민들은 아직도 소규모 어업에 의존하고 있다(Binns et al., 2012).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소규모 어업은 지역 생계의 중추이며, 지역주민의 식량(영양)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다(FAO, 2021).
이 같은 소규모 어업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직접 어획을 하거나 무거운 장비들의 관리를 담당하고, 여성은 직접 어획을 하지 않지만 잡아 온 어류를 손질, 가공하여 판매하는 성별분업이 있다(Bradford and Katikiro, 2019). 이러한 성별분업의 배경에는 어업을 통한 생계유지에 필수 자산인 어선, 자본, 어획 기술, 장비 기술, 행정 및 지원 서비스에 접근하거나 통제하는 주체로서 여성들이 구조적인 장벽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Magesa et al., 2024). 이뿐만 아니라 아직도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여성 어민은 성별에 기반한 차별(전통적 신념), 법률, 부적절한 국가 규제 등으로 대표되는 제약을 경험한다(Magesa et al., 2024). 여성이 어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Peez, 2018) 여성 어민은 어업 생태 내에서‘비공식적인 기여자(informal contributor)’로 간주되고 있다(Magesa et al., 2024). 본 논문은 이러한 사회구조적 맥락에 의해 형성된 성별분업 속에서 그 역할과 가치가 조명되지 못한 여성 어민들의 일상 실천을 조명하고자 한다. 여성 어민은 직접적으로 어획을 하지는 않지만, 어시장에 나가서 생선을 구매하여 세척 등의 손질과 튀기는 가공 후 지역사회에 판매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한 여성 어민의 일상 실천이 공간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변형하는지 그 과정을 본 논문은 분석한다.
3)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질적 연구 방법(qualitative research method)을 활용하여,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의 음지지마 어시장(Mzizima fish market)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 어민들의 공간 활용과 실천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자료수집은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진행되었다. 심층 인터뷰의 분석을 통해 가정 공간의 활용이 여성 어민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파악하여, 세 명의 여성 어민에 한하여 참여관찰을 추가로 진행하였다. 참여관찰은 여성 어민의 가정에 방문하여 진행하였다.
(1)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s)
심층 인터뷰는 음지지마 어시장에서 생선을 가공・판매하는 여성 어민 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주로 어시장과 가정에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여성들로, 이들의 경험을 통해 공간이 노동과 일상의 실천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경계공간으로서의 특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분석한다.
인터뷰는 반구조화된(semi-structured)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인 인적 사항(나이, 고향, 주거지, 어시장에서의 경력)과 하루 지출 금액(교통비, 식비, 튀김용 기름 구입비 등), 어류 판매 장소(장소 선택 기준과 어시장을 판매 장소로 고려하지 않는 이유), 전 직업과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어시장에서의 노동 환경(쉼터, 대기 공간, 개선되어야 할 부분 등), 어류를 판매한 수입을 지출하는 곳 등에 대해 질문했다. 15개의 대질문을 설정했지만, 인터뷰 참여자의 경험과 관점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도록 대상자별로 분석에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답변에 대한 세부 질문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여성 어민들의 일상적 실천과 공간 활용의 맥락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한국어가 모국어인 연구자와 영어 소통이 어려운 스와힐리어(탄자니아 공용어)가 모국어인 참여자들이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영어-스와힐리어 동시통역사를 고용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현지 동시통역사에게 인터뷰 목적과 통역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통역 시 면담 대상자가 말한 그대로의 언어를 정제, 해석, 요약하지 않고 통역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육을 실시했다. 인터뷰 시작 전에 통역사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연구의 목적과 개인정보 사용 동의, 인터뷰 중단을 원할 시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했다. 인터뷰 내용은 현지 사정상 녹음할 수 없어 전사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가 현장에서 자세하게 기록한 45장의 연구 노트를 바탕으로 주제 분석 방식으로 초기 코드를 생성하고 주제를 도출했으며, 이후 현상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경험의 의미를 중심으로 본질과 해석에 초점을 두고 분석했다.
(2) 참여관찰(Participant observation)
본 연구에서는 연구자가 직접 연구 대상의 일상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참여관찰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 방법은 연구 참여자들이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활용하는지를 보다 생생하게 이해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조사 방법으로 선택되었다. 초기 연구 설계 당시에는 참여관찰을 연구 방법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 어민과의 인터뷰 결과 가정 공간의 의미가 중요함을 파악하였고 참여관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인터뷰가 끝난 후 참여관찰을 추가로 수행했다. 세 명의 여성 어민의 가정 공간에 직접 방문하여 참여자의 동선과 세부 활동 내역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들의 일상적 경험을 메모와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주요 관찰 내용은 여성 어민이 어시장을 다녀온 후 가정 공간에서 어류 가공에 필요한 도구를 꺼내어 가공하여 판매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여성 어민들은 양동이에 생선을 구매한 후 얼음(시장에서 한화 500원 정도로 구입 가능하며, 얼린 물병을 사용하기도 함)을 추가로 구입하여 생선의 부패를 방지한다. 가정 공간에 돌아온 여성 어민은 마당에서 생선을 물에 헹구어 씻은 후, 불을 피운 후 소금을 넣고 어류를 직접 튀긴다. 그 후 마당의 가판대를 정비하여 튀겨진 생선을 전시한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가족 구성원과 이웃(소비자)과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상호작용함을 관찰했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카메라를 제공하여 스스로 공간을 기록하도록 하는 포토보이스 방식을 고려했으나, 연구 환경 및 참여자의 촬영 장비 접근성 등의 제약으로 인해 연구자가 직접 현장을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에 인터뷰 대상자의 직접적인 시각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있으나, 연구자가 촬영한 사진과 구술자료를 종합하여 최대한 연구 참여자의 서사를 반영하고자 했다.
(3) 면담대상자
표 1은 면담대상자의 연령, 학력, 경력, 구입어류의 종류 등의 기본정보를 나타낸다. 면담대상자 20명 중 약 80%는 초등교육 이하의 학력이다. 다르에스살람의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74%가 초등교육까지의 학력인 점과 유사하다(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2019). 이들의 연령은 적게는 30대부터 60대까지이며 평균 연령은 42세로 중년층에 속한다. 다르에스살람의 비공식 경제 인구의 73.4%가 15 - 35세에 속한다는 통계에 미루어 볼 때(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2019), 면담대상자들은 평균보다 약간 높은 연령대를 가지고 있다. 어시장에서 일한 경험이 적게는 2년에서 많게는 30년이며 평균 경력은 8년이다. 면담대상자의 개인정보를 위해 인터뷰 시에도 실명을 요구하지 않고 기호화하여 이름을 표기하였다. 주거지는 음지지마 어시장에서 짧게는 3km, 길게는 20km가 넘는 곳에 거주한다. 현지의 심각한 교통체증과 도로 사정상 10km의 거리도 혼잡한 시간에는 상황에 따라 1시간에서 2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면담대상자들은 집에서 어시장까지 최소 한 시간에서 최대 세 시간을 통근한다. 주요한 교통수단으로는 버스(‘달라달라’라고 불리는 중형 버스)와 통근용 페리이다.
4. 연구결과: 공간의 경계화와 여성 실천의 주체성
1) 가정 공간의 경계공간화(Liminal Space): 주변화된 주체의 대안적 공간 활용 분석
(1) 재생산의 공간으로서 가정
전통적으로 가정은 가족 구성원의 돌봄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재생산의 장소로 기능해 왔다. 공적인 일터인 시장에 나가기 전, 가정은 휴식과 재생산의 공간으로 작동하며, 가족들의 삶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이곳에서 여성 어민들은 세면, 식사 준비, 자녀 및 가족 돌봄과 같은 일상적인 재생산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노동을 위한 준비 과정이자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필수적인 실천이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경제적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장과 달리, 가정 공간은 가족 간의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곳이며,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가사 노동을 수행하는 역할이 강조되는 영역으로 여겨진다.
가정 공간에서의 노동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에 의하여 그 가치를 조명받기 시작했다. 초기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자본주의 생산 체계가 얼마나 가정의 무임금 가사 노동에 의존하는지를 중심으로 재생산 영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박경환 등(譯), 2023). 그들은 주류의 자본주의 연구와 체계가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비판했다(ibid, 2020; Schwiter et al., 2018에서 재인용). 현대에 와서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노력으로 가정 공간에서의 재생산 활동에도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이와 같은 연구들은 가정과 일터의 공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비공식(가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에 대한 연구는 미비하다.
(2) 여성 어민의 실천: 비공식 주체의 대안 공간, 비공식 공간의 경계공간화
① 비공식 경제 주체로서의 여성: 저학력, 저자본, 긴 통근 시간
인터뷰 대상자의 대부분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어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을 시작한다. 대다수의 여성이 일터로 향하는 목적은 자녀의 학비와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어시장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는 52세 싱글맘 D씨는 매일 어시장에 나온다며 “돈이 없어 작은 것(생선)들을 사요. 돈이 있다면 큰 것(생선)을 사겠죠. 돈이 없을수록 작은 물고기를 사요.”라면서 작은 물고기를 살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한다. 시장에서 일하게 된 배경으로는 “아이는 4명이고 남편은 없어요, 4명을 홀로 기르는 것은 쉽지 않아요… 아이들 중 한 명은 자기가 일을 해서 괜찮지만 다른 자녀들을 위한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라고 밝힌다. 싱글맘이 아니더라도 가정 내에서 외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경력 13년 차 40세 F씨도 자녀의 학비와 생계비가 일하는 목적이라며 “남편이 아파요, 우리 집에서 5년 동안 나 한 사람만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시누이가 NHIF(건강보험료)를 내주고는 있지만 3명의 아이들 학비를 내야 해요.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4년째 어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41세 H씨는“남편은 있지만 (그에게) 정기적인 직업이 없어요. 날마다 일이 잡히면 하고 없으면 못하는거죠. 4명의 자녀가 있고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관련 비용을 지출해야 해요. 남편은 폐가 좋지 않아서 생선을 튀기는 일은 할 수 없어요.”라며 외벌이는 아니지만 배우자의 수업이 고정적이지 않아 어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을 시작했다고 답한다. 이렇듯 다양한 가족 형태 속에서도 대다수의 여성 어민들은 가족의 생계와 자녀의 학비가 원동력이 되어 어시장으로 향한다.
인터뷰에 응한 20명 중 80%의 여성 어민은 초등교육까지 받았거나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다. 오직 한 명의 여성 어민만이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다. 인터뷰 대상자 L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 여러 일을 하다가 마침내 어업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다른 여성 어민들은 모두 저학력으로 가사도우미(L씨), 요리사(K씨), 정원사(M씨), 기타 음식 행상인(N, P, R) 등 저학력, 저자본, 그리고 상대적으로 직업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직업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이처럼 여성 어민은 도시 내에서 여러 비공식 경제에 포함되어 노동하다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어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어시장으로의 긴 통근 시간도 도시 여성 어민의 특징 중 하나이다. 어시장으로의 평균 통근 시간은 한 시간 이상이었고, 도심에 위치한 어시장의 특성상 출퇴근 시간에는 길게는 3시간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교통비는 많게는 5,000 탄자니아 실링(약 2,500원), 평균적으로 2,000 탄자니아 실링(약 1,000원)으로, 주로 사용하는 대중교통은 ‘달라달라’라고 불리는 중형 버스와 편도 250원 정도하는 통근용 페리이다.
② 가정 공간의 경계공간화 - 작업공간
“여기서(음지지마 도시 어시장)는 일 안 할 거예요, 집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더 잘 알기에 때문에 거기가 더 좋아요.” - E(어시장 근무 경력 20년의 53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여성 어민들은 어시장에서 어류를 구입하여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림 2와 같이 그들이 집으로 향할 때, 집은 단순히 재생산의 공간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집으로 향하는 이유는 구입한 어류를 손질하고 가공하여 판매하기 위함이다.‘가정’이라는 공간은 이제 전통적인 재생산을 위한 사적, 비공식적 공간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작업장의 역할을 하는 공적, 공식적 경제 공간으로 그 정체성이 확장된다.
여성 어민은 재생산의 공간이었던, 이제는 경제 공간으로 그 정체성이 확장된 집으로 들어서서 가족과 인사를 한다. 오늘 어시장에서 구입한 생선의 양은 얼만큼이었는지, 어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말한다. 동시에 가족들은 여성 어민이 어시장에 간 사이에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침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등의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여성 어민과 그녀를 기다린 가족은 생선 손질을 위해서 큰 대야에 물을 받는다. 가득 담긴 생선을 물에 한두 번 세척한 후에 그림 3과 같이 곧바로 생선의 비늘을 제거한다. 집은 생선 손질을 위한 작업장으로 변했고, 공간은 순식간에 사적인 공간에서 경제활동을 위한 일터로서 그 기능이 변화한다. 즉, 집이라는 공간은 가족들이 생활하는 익숙한 사적공간이면서도, 동시에 생선을 판매하기 위한 작업장이 되는 이중적 역할을 하게 된다.
여성 어민이 생선 손질을 시작하는 순간, 가정 공간의 경계공간(Liminal space)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여성 어민은 가족 구성원과의 사적인 대화를 하는 동시에, 경제적 실천(생선 손질)을 하면서 가정은 사적공간이면서 공적 경제 공간으로 작동한다. 그림 4와 같이 생선을 씻고 손질하는 과정에서 노모와 딸은 여성 어민의 노동을 자연스럽게 돕게 되며, 이는 단순한 가족 내 돌봄 활동을 넘어서는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공동체의 형태로 전환된다. 이 공간은 샤론 주킨의 이론에서 설명한 두 범주의 공간이 상호작용하여 통합된 경계공간으로 작동하는 것이다(Zukin, 1993).
생선 손질이 끝나면 작업자(여성 어민)는 그림 5와 같이 마당에 불을 피우고 솥에 기름을 가득 담는다. 손질한 생선을 튀겨서 상품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은 생선을 판매하기 위한 가공의 장소로 그 기능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생선의 가공 공정에 있음에도 집이라는 공간은 공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고 정의 내리기 어렵다. 생선을 튀기는 동안, 집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돌봄 공간이기도 하다. 여성 어민의 자녀는 심부름을 하며 어머니의 노동을 돕지만, 이는 경제활동의 일부를 돕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수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이 공간에서는 경제적 생산과 가정 내 돌봄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이는 집을 전형적인 노동 공간이나 가정 공간으로만 정의할 수 없게 된다.
③ 경계공간의 정체성 재전환 - 상업 공간
이와 같이 재생산과 돌봄, 그리고 가공을 위한 작업장이었던 가정이라는 경계공간은 외부와의 관계로 인해 그 정체성을 한 번 더 전환한다. 생선튀김이 끝나고 그림 6, 7과 같이 마당 한편에 가판대가 놓이면서, 공간의 정체성은 다시 한번 변화한다. 이제 집은 어류 공정을 위한 작업장이 아니라, 상품을 전시하고 고객을 맞이하는 상업 공간으로 전환된다.
이전까지 가족 구성원만이 머물던 공간에 이웃과 지역주민들이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가정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도, 완전히 공적인 공간도 아닌 새로운 경계공간으로 변화한다. 기존에 전통적 의미의 가정일 때는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사전에 약속되었거나 친척, 가까운 지인 등 고정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생선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떤 이웃이 언제 방문할지 예측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즉, 가정은 시장과 같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방문하는 상업 공간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방문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낯선 고객이 아니라, 대부분 마을 내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여성 행상인과 이미 구면이라는 점에서, 이 공간은 완전히 공적인 공간이 될 수 없다. 판매 행위가 이루어지면서도 고객과 판매자가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정은 완전한 시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친밀한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작동하는 경계공간으로 남는다.
이 공간에서 여성 행상인은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시장과 지역사회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생선을 구매하러 온 이웃들은 시장 가격의 변화, 생선 수급 상황, 다른 행상인들의 거래 방식 등을 공유하며 경제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마을과 가정 내 일상적인 사건을 공유하는 사적 대화도 지속한다. 따라서, 이 공간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경제활동과 사회적 교류가 결합 된 경계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렇듯, 여성 행상인의 경제활동을 통해 가정 공간의 의미는 점진적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가정의 기능에 사회경제적 기능이 추가되어 공간의 역할이 확장된다. 처음에는 가정 내부에서 이루어지던 노동과 가사 활동이 여성의 경제활동(실천)을 통하여 경제적 생산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가정은 더 이상 재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결합 된 경계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기존의 사적・공적 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유동적인 공간이 된다.
(3) 지역사회 식량유통, 경제활성화 주체자로서의 여성 어민
① 지역사회 식량 유통의 주체자로서의 여성 어민
“만약 고기를 많이 사면 이틀 동안은 안 사러 와도 돼서 가끔은 오지 않아도 돼요. 우기에도 오지만 매번 오지는 않아요.” - R(어시장 근무 경력 15년의 51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우기에 와도 생선을 구할 수 있어요. 구해서 마을에다가 가져다 팔면 돈을 벌 수 있어요. 하지만 우기 때는 어떤 것도 구할 수 없을 때도 있어요.” - L(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34세 면담자)과의 인터뷰 중
여성 어민들은 마을 단위의 소규모 지역에 채소와 육류 외의 다양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식량 유통업자의 역할을 한다. 그림 8은 면담대상자의 활동 반경을 지도에 표기한 것으로, 붉은 점은 음지지마 어시장을 나타내며, 파란 점은 여성 어민의 가정 공간을 나타낸다. 여성 어민은 일상적 실천을 통해 다르에스살람 전역으로 생선을 유통한다. 도시의 식량을 유통하는 행위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여성 어민은 식량 유통의 주체자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 대상자의 대부분은 매일 어시장에 온다고 답한다. 응답자의 90% 이상은 우기(어획량이 적은 시기)에 어류를 구매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시장으로 향한다고 답했다. 나머지 어시장에 매일 온다고 답하지 않은 어민들의 경우에도, 한 번에 어류를 많이 구매하여 추가 구매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여성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우기와 건기를 가리지 않고 시장에서 어류를 구매해 집 근처에서 손질하고 가공한 뒤 판매한다. 이는 공식적인 도시 시스템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여성 어민들이 일상 실천을 통해 대체 공급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여성 어민이 생선을 구매하고, 사는 곳 근처 혹은 집에서 어류를 판매하는 실천 행위는 제도적 통계에 잡히지 않아 비가시적으로 보이지만, 개발도상국‘도시’라는 맥락에서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어류 유통의 주체자라는 역할은 그 중요성을 조명해야 한다.
② 지역 경제 활성화 주체자로서의 여성 어민
“남편은 없구요, 두 명의 아이가 있어서 아이들의 교육비를 내야 해요. 공교육은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집세가 월 30,000 탄자니아 실링(약 15,000원)인데 6개월 치를 한꺼번에 내야 해요. 이것들이 삶의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 J(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45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남편과는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세 명의 자녀가 있어요. 한 명은 학교에 안 다니는데 초등교육 끝나고 중학교 가길 거부해서 그 대신 잡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다른 한 명은 대학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Form 1(중학교 1학년) 이예요.” - K(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40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남편 없이 3명의 자녀와 엄마와 살고 있어요. Form 4(중학교 마지막 학년), Standard 2(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1살 아이가 있는데 애들 할머니가 보고 있어요. 저는 다섯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엄마가 탕가(Tanga, 경제 수도인 다르에스살람 주변의 해안 도시)에서 같은 일을 했었는데 다르에스살람에 오고 나서는 엄마는 일을 하시지 않고 내가 그 대신 일을 하고 있어요.” - P(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31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내가 직접 이 직업을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고기에 비해 생선을 안 먹는 사람은 적어서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 직업을 가진 것에 만족해요.” - S(어시장 근무 경력 10년의 41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여성 어민이 경계공간화된 가정에서 하는 실천은 지역사회의 식량 유통뿐만 아니라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주된 이유는 자녀의 학비를 벌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임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다. 그들이 생선튀김을 팔아서 번 수입은 자녀의 교육비가 되어 교육경제를 활성화한다. 아울러 집세, 식비 등에 지출하는 비용은 지역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여성 어민의 실천을 통해 경계화 된 비공식 경제 공간은 지역사회의 공식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어시장의 경계공간화(Liminal Space): 주변화된 주체의 신뢰 기반 공간 활용
(1) 공식적 경제 공간으로서의 어시장
어시장은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거래 공간으로, 법적・제도적 규율이 적용되는 시장 내 공인된 판매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도심의 어시장은 공식적인 유통 시스템과 가격 책정이 이루어지는 구조화된 공적공간으로 기능하며, 주변의 작은 어시장에서 어류를 공급받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음지지마 어시장에서는 새벽 조업을 마친 배들이 도착하는 시간(대략 오전 5시~6시 사이)에 맞춰 생선 경매가 시작된다. 어시장의 공식적인 운영 시스템에 따라, 시장 문이 열리기 전까지 여성 상인들은 시장 내부로 진입할 수 없으며, 공식적인 개장 시간이 되어야만 어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어시장 출입이 통제되는 이 시점에서, 여성 행상인들은 개개인의 양동이를 들고 시장 앞에서 대기한다. 그림 9와 같이 그들은 시장 문이 열리자마자 신선한 생선을 확보하기 위해 경매가 진행되는 구역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어시장 내부에서는 경매를 통해 생선이 거래된다. 유니폼을 입은 공인된 경매사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열띤 경매의 장을 만든다. 배에서 막 옮겨진 어류는 경매를 통해 거래되며, 가격은 공식적인 시장 가격과 수급에 따라 변동된다. 우기와 건기에 따른 어획량 차이로 인해 어류의 가격 변동 폭이 크다.
대부분의 대형 어류는 시내 고급 식당이나 호텔로 유통되는 반면, 여성 어민들은 그림 10과 같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어류를 구매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여성 행상인들 대부분은 초기 자본이 부족하여 대형 어류를 구매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어시장 내에서의 경제적 격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시장 내에 가판대를 소유한 상인은 대부분 협동조합에 가입한 자본을 가진 남성들이다. 어시장은 어류를 구매할 수 있는 초기 자본과 시장 내에 가판대를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거래 방식이 달라지는 공식적이고 제도화된 경제 공간으로 작동한다.
(2) 경계공간으로서의 어시장
① 네트워크 중심의 공간으로의 확장
그림 11과 같이 도시 어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매는 여성 행상인들이 생선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다른 지역의 작은 어촌에서는 경매 이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선을 구매할 수 있지만, 음지지마 어시장은 도시에 위치하며,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상인들이 모이는 공간이므로 주로 경매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어민들에게 있어서 경매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선 네트워크 중심의 상업적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어민 간의 네트워크와 협력은 경제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본이 없으면 물고기 사기가 어려워서 우기 때는 어려워요 … (중략) … 하나의 양동이를 두 명이 같이 공동 구매해요. 아침에 어시장에 왔지만, 물고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오후 1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고 어떤 날은 생선 구매에 실패할 때도 있어요. 그런 날은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죠.” - E(어시장 근무 경력 20년의 53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시즌마다 물고기 가격이 매우 달라요. 어획량이 많을 때는 1 양동이에 20,000실링(약 10,000원)이지만 지금은 똑같은 한 양동이에 110,000에서 130,000(약 55,000에서 65,000원)이에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어시장에) 오죠. 물고기 가격은 크게 변동하는데 파는 가격은 1년 내내 같아요.” - N(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42세 면담자)과의 인터뷰 중
경매는 그림 12와 같이 일정한 단위(예: 한 양동이)로 이루어진다. 여성 행상인들은 초기 자본이 부족하거나 어획량이 적은 시기에 양동이를 단독으로 구매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른 상인들과 협력하여 공동 구매를 하거나, 특정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구매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 여성 행상인들의 경제적 생존을 위한 중요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협력하는 상대는 같은 고향 출신이거나, 현재 비슷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어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형성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협력할 수도 있다. 즉, 생선을 구입하기 위해 형성된 관계는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지속적인 협력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이는 시장 내 거래 방식과 개인의 경제적 입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렇듯, 경매라는 공식적 거래 시스템이 운영되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여성 행상인들은 자신의 경제적 필요에 따라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신뢰 기반의 거래 방식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어시장은 단순한 공적공간이 아니라, 공적 경제활동과 사적 관계 형성이 혼재된 경계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② 경계공간의 정체성 재전환 - 사적공간
“(선원들의 공간에서 대기하며) 아침부터 왔지만, 오후 1시가 됐는데 아직도 생선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획량은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해서 요즘 살기가 어려워요.” - F(어시장 근무 경력 13년의 40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불 앞에서 튀기는게 힘들어요. 오늘도 아침 7시에 도착했는데 고기가 없어서 2시까지 기다리고 있어요. 고기가 많은 날에는 오전 8시나 9시면 집에 갈 수 있지만, 고기가 없어서 그냥 집에 간 날도 있어요.” - H(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41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오전 7시에 7시에 어시장에 왔지만 오늘은 아직도 (오후 2시) 좋은 값에 생선을 구입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왜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나요?) 생선을 사기만 한다면 동네에서는 경쟁이 심하지 않아 매번 다 팔 수 있어요.” - T(어시장 근무 경력 3년의 33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오전 6시에 도착한 여성 행상인이 생선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 오후에 들어오는 어선을 기다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시장은 또 다른 경계공간으로 그 정체성이 재전환된다. 어시장 한켠에 여성 어민들이 모여있다. 이 공간은 여성 어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 새로운 경계공간으로 작동한다. 여성 어민들은 오후에 배가 들어올 때까지 이 공간에서 대기하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시간 동안은 어시장은 공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경제적 거래의 장이 아닌 휴식과 쉼의 장소로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공간을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이 휴식 시간 동안 형성된 대화와 관계는 이후 다시 공적인 경매거래 시 활용될 관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성 어민들은 기다리는 동안 시장 가격의 변동, 생선 수급 상황, 경매 전략에 대한 정보 등을 교환하며, 이후의 경제활동(어류 경매 참가)을 위한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즉, 대기 공간으로서의 어시장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시장 내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장소로 기능하며, 사적, 공적영역의 경계가 상호작용하는 경계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게 된다.
어시장에서 대기 시간 동안 맺은 네트워크는 시장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시장에서 대기하며 얻은 정보들은 이후 여성 어민이 각 마을에서 생선을 판매할 때 고객들과 나누는 대화의 소재가 된다. 여성 행상인들은 시장에서 접한 가격 변동, 어획량, 유통 구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마을로 가져가며, 이를 바탕으로 생선 판매 전략을 조정하고, 지역 내 경제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한다.
이렇듯, 어시장은 공적공간으로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적 거래에 참여하는 발판이 된다. 이어서 특정 시간과 활동에 따라 그 의미가 확장 및 변형되는 유동적인 경계공간으로 작동한다. 여성 어민들의 경제활동은 비공식 경제 주체가 비공식 경제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와 정보 교환이 결합 된 복합적인 실천을 통하여 공식 경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관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기회와 배제의 경계공간에서의 생계 전략
“여기는(어시장) 파는 경쟁이 심해요, 집 근처는 경쟁이 심하지 않아요. Banana(지역 이름)는 어류를 파는 행상인이 많지 않거든요.” - A(어시장 근무 경력 10년의 42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시장은 기회와 배제가 상호작용하는 경계공간으로 작동한다. 여성 어민들에게 음지지마 어시장은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회의 공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배제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B씨는 여성 어민 중 유일하게 시장 내 가판대를 소유하고 있는 어민이다. 그녀의 가족이 이 가판대에서 일을 했고, 그 뒤를 이어받아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참여자 중 단 5%의 여성 어민만이 시장 내의 가판대인 고정된 장소에서 어류를 판매한다. 그 외의 대다수의 여성 어민은 집, 집 근처 도로, 집 근처 시장 등 대안 공간에서 생선을 판매한다. 그 이유는 시장 안이나 근처에는 고객들도 많지만 그만큼 판매자가 많아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 안의 가판대에 자리를 잡기는 여성 어민에게 제도적으로도 대단히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자본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음지지마 어시장은 여성 어민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노동조합 비용, 자본 부족, 제도적 접근의 제약으로 인해 배제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회와 배제가 상호작용하는 경계공간 속에서, 여성 어민들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적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비공식적 판매 장소를 경계화하는 대안을 스스로 생성하여 활용한다.
3) ‘물리적 이동’이 아닌‘관계’로 구성된 공간 정체성
앞서 살펴보았던 가정과 어시장의 경계공간화는 여성들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는 여성 어민들이 공간에서 맺는 관계를 바탕으로 한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
(1) 거리보다 관계: 여성 어민의 공간 선택 기준
여성 어민들이 어류 판매 장소를 선택할 때 단순하게 물리적으로 가깝기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 이전부터 축적된 고객(이웃 주민)과의 관계와 신뢰, 그리고 반복적 접촉을 중심으로 공간을 선택한다. 경력 3년의 30세 C씨는 “우분고(거주지명)가 생선을 팔기 더 쉬어요. 고객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파는 게 좋아요.”라며 지역사회에 돌아가서 장사를 하는 이유를 밝힌다. 경력 4년의 M씨는“여기서(어시장) 팔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집 근처에는 더 많은 고객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팔고 싶어요. 파는 장소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려요.”라며 집 근처인 Kitunda를 판매 장소로 선택한 기준을 밝힌다. 우기와 건기 가리지 않고 매일 같이 어시장을 찾는다는 48세의 Q씨 역시“집 위치가 좋아요. 정기적인 고객들이 많아서 집에서 주로 팔아요.”라며 판매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고객들과의 관계에 우선한다고 밝힌다.
즉, 어민들의 판매 공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며, 이 지점은 도린 매시(정현주(譯), 2015)의 관계적 공간과 그 뜻을 같이한다. 여성 어민들에게 있어서‘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은 거리나 입지에 앞선 고객과의 연속적 교류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을 활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도시의 비공식 경제 공간을 실천적으로 구성해 가는 방식이 단순한 생계전략을 넘어서는, 사회적・정서적 기반 위의 공간 구성임을 시사한다.
(2) 어시장으로의 진입: 사회적 관계가 기반이 된 노동 공간으로의 이동
여성 어민이 어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는 단순한 노동 선택의 결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과 비교를 통한 반복적인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로 다수의 여성 어민은 원가족의 구성원이 어업에 종사하거나, 종사했던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업에 종사했던 가족을 둔 여성 어민은 가족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업을 선택하게 된다. 어시장 경력 13년의 40세 F씨는“엄마가 이 일을 했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도와 이 일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 일을) 즐기고 있어요.”라며 직업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한다. 경력 4년의 42세 N씨도 “엄마도 이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이 일은) 엄마의 유산이에요.”라며 직업을 통해 어머니를 기억한다. 경력 3년의 38세 O씨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린 시절 아버지와 시장에 와보았던 경험을 회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어업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해보지는 않았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관계는 경제적 자본보다는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하여 여성 어민이 비공식 시장에 진입하는 주요 통로가 된다. 어시장 경력 10년 차인 44세 B씨는 가족으로부터 시장 내 가판대라는 공간을 물려받았다. 그녀는“일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언니와 다른 가족들이 이 일을 했고, 나에게 이 일을 하는 것을 제안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라며, 현재의 노동 공간은 자리가 남아 있거나 다른 공적인 과정을 통해 배정된 공간이 아니라, 가족 간 전수와 실천을 통해 계보화된 관계적 공간임을 강조한다. 이는 공간이 일방적인 배치나 자원 배분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을 경유한 사회적 기억과 반복된 실천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3) 직업적 경험이 바탕이 된 관계를 통한 직업 선택
“다른 여자가 생선 행상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여기서 일하는 것을 배웠어요. 다른 여자들에게 (어떻게 이 일을 하는지) 방법을 물어봤어요. …(중략)… 농업보다 이 일이 더 쉬워요. 농업은 다 손으로 일을 해야 했고 기술도 더 많이 필요하고 힘도 더 많이 드는데 어업보다 더 적은 돈을 벌어요.” - H(어시장 근무 경력 4년의 41세 면담자)와의 인터뷰 중
“옛날에 사모사(만두 모양의 현지 스낵) 팔 때가 더 힘들었어요. (그때는) 팔기 전에 4시간 정도 재료를 반죽해서 준비해야 하고 팔 때도 계속 앉아 있어야 했어요. 아직도 생선을 튀길 때 불 앞에 있는게 힘들지만, 가족을 먹일 수 있어서 이 일을 좋아해요.” - R(어시장 근무 경력 15년의 51세 면담자)과의 인터뷰 중
여성 어민은 자신의 경제활동 경험에서의 비교를 통해 어업이라는 실천 공간을 선택한다. 과거 타 직업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이 신체적으로 감당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다. 지나가는 여성이 어류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어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여성 어민 간의 수평적 관계망(peer network) 역시 이 직업의 지속성과 공간의 재구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서 서로를 따라 일하거나 공동 구매를 통해 생선을 조달하며, 공동의 공간 실천을 반복적으로 구성해 간다. 이러한 직업 선택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축적되는 과정을 거쳐 구체화되어 현재의 여성 어민의 공간을 구성한다. 반복적 실천은 물리적 공간을 익숙하게 만들고, 그 공간에 대한 신체적 감각과 정서적 애착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로써 어시장은 단순히 생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몸과 관계가 구성되고 기억이 축적되는 관계적 장소로 기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성 어민들이 현재의 공간에 존재하게 된 것은 단지 저임금, 저숙련, 저학력 노동자이기 때문에 흘러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공간을 재구성한 결과이다. 이는 관계의 유산과 생존을 위한 전략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어시장을 포함한 도시 비공식 경제 공간이 관계적 실천을 통해 어떻게 젠더화되고 구조화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즉, 여성 어민의 일상 실천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기반으로 공간을 구성해 나가는 능동적이고 반복적인 실천이다.
5. 결론
본 연구는 ‘공간은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샤론 주킨의 경계공간(liminal space) 개념을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이라는 개발도상국 도시 맥락에 적용하여 분석했다. 특히 가정과 어시장이라는 전통적으로 사적/비공식적 혹은 공적/공식적 공간으로 분리되어 왔던 공간들이 여성 어민의 일상적 실천을 통해 교차・재구성되어 경계공간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공간이 고정된 정체성을 지니지 않고, 반복적이고 관계적인 실천 속에서 정체성과 기능이 전환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공식/비공식, 공적/사적공간을 여성의 공간 혹은 남성의 공간으로 이분화하지 않고 그 경계의 본질을 살펴보려고 시도했다. 공간의 이분법은 서구 국가의 공간적 맥락에 기반한 이론적 틀을 비서구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여 비서구 국가의 사회, 공간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은 식민주의가 학계에 남긴 권력 구조를 비판하고 해체하려는 시도를 통하여 개발도상국 맥락에서의 비공식 경제와 공간을 분석을 시도했다는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과를 시사한다. 첫째, 가정 공간은 여성 어민의 실천(어류의 손질, 가공, 판매)을 통해 재생산과 돌봄의 영역(비공식, 사적영역)을 넘어 공적공간(작업장, 상업 공간)의 역할을 한다. 공간은 공/사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계공간으로 재구성되며, 여성 어민은 공간 활용을 통해 지역사회 식량 유통과 경제 활성화의 주체자로 전환되어 지역사회의 공식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어시장은 공적공간으로의 기능할 뿐만 아니라, 여성 어민 간의 비공식,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적 거래(경매)에 참가할 수 있는 경계공간으로 작동한다. 어시장은 여성 어민에게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한 기회의 공간이자, 자본의 부족으로 주변화될 수밖에 없는 배제의 공간으로, 기회와 배제가 공존하는 경계공간으로 작동한다. 셋째, 가정과 어시장의 경계공간화는 여성들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여성 어민들이 공간에서 맺어온 관계를 기반으로,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 결과는 도시 비공식 경제를 지탱하는 여성 어민의 주체적 실천을 가시화한다. 이로써 도시의 공식 경제가 유통하지 못하는 작은 단위의 지역에 식량 유통을 전담하고, 교육이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의 중심에 여성 어민이 위치함을 나타낸다. 특히 인터뷰에서 나타난 여성 어민들의 경제활동 목적이 자녀 교육, 주거비, 생계비 마련이라는 점은, 이들이 비공식 경제 공간에서 경계공간화하는 실천이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도시경제정책과 공간계획에서 비가시화된 여성 어민의 역할을 재조명하여 도시 정책에 포함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탄자니아 도시 어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어민의 공간을 분석했다. 그러나 본 연구는 남성 어민이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 어시장의 주요한 행위자인 유통업자, 그리고 정부의 제도 등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후속 연구에서는 다양한 행위자의 공간 실천을 분석하여 도시 어업의 다층적인 구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탄자니아와 같이 도시화율이 높은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같은 조건을 가진 다른 도시 어시장의 공간 실천 양상이 어떤 모습으로 같거나 다른지 비교연구를 해볼 필요도 있다. 이를 통해 도시 비공식 경제와 젠더의 교차 지점을 보다 구조적이고 비교적인 틀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여성 어민의 경제와 공간적 측면에 집중하여 사회, 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후속 연구를 통하여 다각화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