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1 August 2026. 561-581
https://doi.org/10.22776/kgs.2026.61.4.561

ABSTRACT


MAIN

  • 1. 서론

  • 2. 이론적 논의 및 선행연구

  •   1) 인류세 대가속과 댐

  •   2) 테크노스피어와 동아시아 국가

  • 3. 한국과 일본의 댐 건설의 궤적

  •   1) 치수의 전통과 서양 지식의 유입

  •   2) 제국과 식민지에서의 댐 건설

  •   3) 전쟁과 전후, 건설의 지연 혹은 회복

  •   4) 냉전시대, 토건국가의 발전주의

  • 4. 국가의 계획을 넘어서는 테크노스피어와 대가속 그 이후

  • 5. 결론

1. 서론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시스템이 변해 기존의 홀로세(Holocene)와 구별되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도래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제안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처음에는 대기 조성 변화,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시스템과학에서 주로 논의되었으나, 학문의 경계를 넘어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중요한 분석 틀로 자리 잡았다. 지구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 즉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와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박범순・김용진(역), 2024; 김지혜 등, 2025; Chakrabarty, 2009). 특히 1950년대 전후로 전세계 여러 생태-사회적 지표들이 급가속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른바 대가속(Great acceleration) 시기는 지구 행성 체계의 변곡점으로 꼽히고 있다(Steffen et al., 2015).

인류세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넘어서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며, 그 결과는 인간에게 낯설고 예측 불가능한 힘으로 나타난다. 인류세의 공간성을 대표하는 테크노스피어(technosphere)는 ‘인간의 산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공간적으로 어떻게 낯설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테크노스피어란 인간이 구축한 인프라 및 산업・주거 시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조직되는 에너지와 물질, 정보의 행성적 시스템이다. 따라서 테크노스피어는 단순히 거대한 인프라의 집합이 아니라 물리적 시설과, 물질, 에너지, 정보, 제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지구 지표면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지표면은 얕은 지각층과 대기권을 포괄하며, 일부 연구자들은 상공의 인공위성과 우주쓰레기까지 포함하기도 한다(Gärdebo et al., 2017).

여기에서 테크노스피어는 인간에 의해 구성된 인공 환경이지만 인간만의 산물은 아니다. 테크노스피어를 개념화한 지질학자 피터 하프는 대규모 기술 체계(테크노스피어)가 “인간의 직접적인 영향과 의도성”(Haff, 2014, 126)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테크노스피어는 “(대부분) 화석 에너지 자원을 탐색, 추출, 활용하여 그 자체의 존재와 전 세계 인구를 포함한 필수 구성 요소들의 존재를 지탱하는 글로벌 장치”(Haff, 2014, 129)로서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된다. 이러한 정의는 테크노스피어가 인간을 구성요소로 삼거나 인간이 동인이 되어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체계들이 인간과 구별되는 모종의 (준)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전에는 무관하였던 기술의 요소들이 네트워크화된 지구 체계로 결집하면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Haff, 2014, 128).

이 연구는 인간 규모(human scale)를 뛰어넘는 테크노스피어가 부분적으로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형성되고 변형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국가는 스케일의 차이로 인하여 인류세 논의에서 부차적이거나 제한적으로만 다루어졌지만, 오늘날 테크노스피어를 변형하는 하나의 심급으로 작용한다. 정치학자 다니엘 하우스크노스트가 이야기했듯 국가는 사회와 자연의 신진대사에서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영토에 유입되고 유출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구조화하고, 매개하며, 지시함으로써 그 영토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는 물론 그들과 외부 세계 간의 관계를 규정”(Hausknost, 2025, 235)한다. 여기에서 국가는 일관된 의지를 가진 유기적인 조직체라기보다는, 자신의 영토를 중심으로 테크노스피어의 핵심 요소를 구축하고 조정하고 재편하는 집합체에 가깝다. 국가는 특정 인프라의 건설과 운영을 기획하고 그 기능과 유지 여부를 판단하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제도적, 재정적 기반을 제공한다. 실제로 국가는 하프가 언급한 테크노스피어의 주요 요소인 에너지 및 자원 채굴 시스템, 발전, 송전 시스템, 통신, 교통, 금융 시스템 등의 형성과 운영, 폐쇄에도 깊이 관여한다. 국가가 테크노스피어 전체를 통제하거나 설계할 수는 없지만 특정 지역의 물질적 흐름과 공간적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국가에 대한 논의 없이 테크노스피어와 인간의 관계를 논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가와 인류세 테크노스피어 형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기에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테크노스피어를 조직하고 재편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 연구는 인류세를 서구 중심의 사상과 산업화 및 자본주의적 실천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그러한 실천의 궤적이 어떻게 동아시아의 국가 실천과 결합되어 테크노스피어를 구성하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국가의 실천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째, 인류세가 가시화되는 시기가 비서구, 특히 동아시아 국가에서 이른바 ‘근대화’를 경험하는 시기와 겹칠뿐더러 둘째,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치수(治水)’라는 국가 실천 위에 덧대어진 제국・식민・자본주의적 변형이 겹겹이 축적된 인류세적 현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는 주도적으로 인프라를 건설하고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인류세를 가시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특히 이 연구가 주목하는 한・일 사례는 아시아 내의 제국-식민의 관계와 전후 발전주의의 전개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때 국가 간 비교란 변수에 따른 인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이 아니라, 교차하는 역사 속에서 유사성과 차이를 중심으로 국가들을 병치하여 봄으로써 인류세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물과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하는 댐을 국가의 인프라적 실천으로 바라봄으로써, 인류세에서 국가의 의미를 재고하고자 한다. 대부분 국가에 의해 건설되는 대형 댐(높이 15m 이상)은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재구성하는 지구공학의 대표적인 대규모 기술 체계이자 국가가 테크노스피어에 개입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대형 댐은 인류세에서의 국가 행위성이 물질화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의 의도와 계획, 통제를 넘어서는 테크노스피어의 작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요컨대 이 연구는 첫째, 인류세에서의 동아시아 국가 행위성의 중요성을 검토하고, 둘째, 그 예시로서 한국과 일본의 댐 건설 역사를 추적한다. 셋째, 그렇게 형성된 댐이 어떻게 국가의 의도를 벗어나 생태계를 변형시키는지 분석하여 테크노스피어의 (준)자율적 효과에 대해 탐구한다. 이로써 이 연구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치수 실천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전쟁, 냉전, 발전주의와 같은 역사적 조건 속에서 변형되어 인류세적 현상을 구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연구는 테크노스피어를 형성하는 국가의 행위성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의도를 넘어서는 테크노스피어의 통제불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함으로써 인류세에 국가의 새로운 역할과 책임이 요청된다는 점을 가시화한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테크노스피어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응답-능력을 다시 사고하기 위한 서사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 자료로는 주로 댐 관련 2차 자료와 국제대댐회의 세계댐 등록부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였다. 본 연구에서 활용한 2차 자료는 국내외 댐 건설 및 수자원 개발과 관련된 학술논문, 단행본, 정부 보고서, 국제기구 자료, 관련 법령 및 정책 문서, 기사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자료는 시기별 분석에서 확인된 댐 건설 추세를 해당 시기의 정치・경제・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국제대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Large Dams, ICOLD)의 World Register of Dams는 각 회원국 국가위원회가 제출한 댐 정보를 집계한 국제 표준 데이터베이스로, 위치, 준공연도, 규모, 목적 등 댐의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현재 전 세계 댐 연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이며, Steffen et al.(2015)의 인류세 대가속 그래프에서도 동일한 자료가 활용되었다. 다만 국가별 자료의 구축 및 갱신 시기와 보고 기준의 차이, 역사적 자료의 누락 가능성 등이 존재하므로, 본 연구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외 문헌과 정책자료를 함께 검토하여 해석하였다.

2. 이론적 논의 및 선행연구

1) 인류세 대가속과 댐

인류세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1950년대를 지목하는 대가속 논의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구, GDP, 에너지 소비, 표면기온 등 다양한 사회경제 지표와 지구시스템 지표가 동시에 급증하는 패턴을 시각화하는 대가속 그래프를 통해 가시화되었다(Steffen et al., 2005; 2015). 특히 대가속 지표로서 대형 댐은 산업화와 에너지 이용 확대, 수자원 개발의 확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회경제적 지표로 언급되어 왔다(Steffen et al., 2005; 2015; Zalasiewicz et al., 2025). 이에 따르면 1950년 전후를 기점으로 전세계 대형 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 대형 댐 누적 건설량이 정점에 달한다.

대형 댐은 전 세계적으로 국가들의 근대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된 대표적인 인프라 프로젝트로, 국가의 개발 전략과 자원 관리 체계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물질적 장치이자(강호정 등(역), 2001),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어 왔다(Vörösmarty et al., 2010; Skalak et al., 2013). 국제대댐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에는 약 5만 2천 개 이상의 대형 댐이 존재하며, 6,500km3 이상의 물을 저수할 수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연간 총 하천 유출량의 약 15%에 해당한다(Nilsson et al., 2005). 이 가운데 상당수는 20세기 중반 이후, 이른바 대가속 시기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Zalasiewicz et al., 2025).

이 맥락에서 대형 댐은 인류세 대가속 논의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선 대형 댐은 산업화와 수자원 개발 확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회경제적 지표로서 인류세의 정치적・사회적 함의를 드러내는 인프라이다. 특히 댐은 사회적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용수 공급, 홍수 조절, 전력 생산 등을 통해 산업화와 도시화를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되는 동시에(The World Commission on Dams, 2000; Twardek et al., 2022), 다른 한편으로는 수몰지역 주민의 강제 이주와 문화 소실, 지역 간 비용과 이익의 불균등 분배 등을 야기하면서(Sneddon and Fox, 2008) 인류세의 명암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댐은 물질-기술 시스템이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재구성하는 지구공학적 장치로서 단순히 ‘사회경제’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및 지질계를 직접적으로 변형시킨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장희준・김창환, 2004; 이기석, 2005; 기근도, 2022; 황진태, 2025; Nilsson et al., 2005; Syvitski and Kettner, 2011; Poeppl et al., 2015). 예를 들어 댐은 하천의 흐름과 퇴적물 이동을 변화시켜 연안과 해양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쳐왔다. 지구시스템 연구들은 댐 건설이 하천 생태계의 종적・횡적 연결성을 약화시키고, 하류로 이동하던 퇴적물을 저수지에 가두면서 삼각주와 연안 생태계의 변화를 촉진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Dudgeon, 2011; Jennerjahn, 2012; Wohl, 2020).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대형 저수지의 급증은 전 지구적 퇴적물 순환 체계를 변화시켜 인류세의 지형학적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었다(Syvitski and Kettner, 2011; Sun et al., 2025). 스테판 등(Steffen et al., 2005)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담수의 약 40%와 퇴적물의 절반가량이 댐에 의해 차단되어 연안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생물다양성 역시 변화해왔다(Winemiller et al., 2016; Wu et al., 2019). 또한 대규모 저수로 인한 지각 하중 증가에 따라 인위적 지진 발생 가능성도 증가하였다(Chatterjee and Pandey-Geeta Mantraraj, 2025). 따라서 대형 댐은 대기 중 탄소나 평균기온 변화와 같은 다른 인류세 대가속 지표와 달리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개입해 온 과정을 공간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정 하천 유역에 물리적으로 각인된 존재로서 인간이 자연의 흐름을 어떻게 재구성해왔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세 대가속 논의에서 대형 댐은 여전히 총량 지표의 하나로만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논의는 인류세 대가속을 둘러싼 연구가 여전히 전 지구적 평균 곡선에 머물러 있으며, 지역적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관련 연구들은 ‘1950년 이후 전 세계적인 댐 건설 붐’을 강조하지만(Steffen et al., 2005; 2015), 실제로는 국가별로 가속의 시작 시점과 속도, 정점 형성, 그리고 이후의 전환이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댐 건설이 정체 또는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제기되면서, 대가속 프레임만으로는 현재의 변화 양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Head et al., 2025). 특히 아시아 지역은 세계 대형 댐의 상당 부분이 집중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후기 추격자 혹은 대가속을 강화한 지역 정도로 단순화되어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Jennerjahn, 2012; Syvitski et al., 2020). 이로 인해 국가 단위에서 나타나는 정치경제적 조건, 제도적 변화, 사회적 갈등이 댐 건설의 시간성과 어떻게 결합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댐이 국가가 테크노스피어에 개입하는 가시적인 물질 장치 중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통해 테크노스피어를 변형하는 국가의 역할을 논하고자 한다.

2) 테크노스피어와 동아시아 국가

테크노스피어는 환경을 변형시키는 기술의 거대화, 특히 행성적인 수준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이동을 야기하는 인프라와 연관이 있다(Haff, 2014; Gärdebo et al., 2017). 하프는 사이버네틱스와 체계 이론에 영향받아 테크노스피어의 가장 큰 특징을 체계의 자율성에 방점을 두어 설명한다. 테크노스피어와 인간이 서로의 스케일 차이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따라서 각 시스템의 층을 결정하는 매개를 거쳐야만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1) 예를 들어 사람이 컴퓨터 안에 있는 트렌지스터에 ‘접근’하려면 조작팔이 달린 현미경이 필요한데, 이때 현미경이 서로 다른 자율성을 지닌 두 체계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하프는 이러한 특성을 ‘접근불가능성의 규칙’이라고 묘사한다(Haff, 2014, 130-131). 하프의 주장은 서로 다른 층위의 스케일을 지닌 체계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체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층위에 접근가능한 조직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테크노스피어가 단순한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접근하고 총체적으로 대응할 ‘지도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즉, 테크노스피어는 생물권(biosphere)이 그러하듯 “복잡하지만 지도자가 없는 시스템”으로 묘사된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체계들이 독립적이라거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테크노스피어는 하위 체계에 대해 무심하지만, 하위 체계의 기능에 대한 지원을 일정 부분 수행해야 기능적으로 인정받고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다수의 인간을 ‘위해’ 기능하며, 인간이 에너지를 얻고, 직업을 갖고, 재생산하며, 지식을 확장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될 때만 테크노스피어는 유지된다. 하프가 ‘수행의 규칙’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문제는 테크노스피어가 요청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을 때 폐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Haff, 2014, 133).

그런데 테크노스피어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평가, 또는 인정받는 것일까? 누가 테크노스피어의 기능을 규정하고 그것을 건설하는 것일까? 하프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으며 다만 ‘인간’이 그 자리에 있다고만 언급한다. 한 연구는 테크노스피어의 가치가 인간의 편안함, 편의성, 자본 이득과 같은 가치에 의해서 평가된다고 논의한다(Wildcat and Schneider, 2025). 그러나 테크노스피어가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논의만으로는 테크노스피어의 건설과 작동에 대한 설명으로 불충분하다.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서 이해와 해명이 필요한 정치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국가가 안보와 국민의 안녕을 호명하면서 테크노스피어의 상당 부분을 형성해 왔다는 것에 주목한다. 테크노스피어의 핵심적인 요소인 댐, 도로, 발전소, 항만, 케이블, 인공위성 등 대규모 연결망을 형성하는 인프라 대부분은 근대 국가의 소명으로서 정당성을 획득해 왔기 때문이다. 즉, 국가는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고, 유지보수하며, 때때로 폐쇄를 감행하는 인프라적 실천을 통해서 테크노스피어를 질적이고 양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 국가 행위는 정치적인 집합적 결정을 통해 테크노스피어에 개입하는 일종의 ‘조작팔이 달린 현미경’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테크노스피어 ‘전체’를 통제하거나 전환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의 개조와 개입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인류세에서의 국가 행위성에 대한 연구는 일부 연구들이 인류세 거버넌스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을 뿐(Dryzek, 2016; Dryzek and Pickering, 2018), 테크노스피어와의 연결성 속에서 논의된 연구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이 인류세 문제를 ‘국가’를 넘어서는 문제로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가 야기하는 테크노스피어의 변화와 그 행성적 효과를 고려할 때 국가는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하우스크노스트의 연구는 주목할만하다(Hausknost, 2025). 그는 현대 국가가 화석 에너지 시스템과 자본주의 경제와 공진화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가가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촉진하고 유도해 왔을뿐더러 이를 통해 환경 통치의 역할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특히 1970년대부터 국가가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적 의제로 떠오른 환경문제를 다루는 존재로 부상하게 된 점을 중요하게 본다. 그는 이렇게 환경문제에 개입하는 국가를 ‘환경 국가’라고 정의하는데, 흥미롭게도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차원의 요청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는 스모그, 지역 대기 오염, 수질, 하천 오염, 유해 물질 규제, 산림 고사 등, 시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세계를 개선하라는 요청이며, 다른 한 가지는 기후와 주요 생지화학적 순환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도록 지구 시스템을 안정화하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제도화된 환경 기구들은 전자의 문제에만 집중해왔고,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다는 것이 하우스크노스트의 주장이다. 환경 국가들이 시민들의 높은 삶의 질을 위하여 지속불가능한 수준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천연자원과 희귀 광물을 추출해왔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시이다(Hausknost, 2025, 237-238). 결과적으로 인류세의 형태로 나타나는 작금의 현실은 이 후자의 요청에 대한 국가의 실패를 보여준다. 그의 논의를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인류세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중요한 단위 중 하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우스크노스트의 논의는 주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경험에서 도출된 것으로, 민주화 이전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한 동아시아 국가의 경험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이 국가들은 인류세가 가시화되는 1950년대 이후로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윌 스테판 등이 논의하는 대가속을 실질적으로 견인하였다(Steffen et al., 2015). 아시아의 국가 중심 ‘발전’은 인구, 에너지 및 식량자원 소비, 댐 등의 인프라 건설 가속, GDP 증가 등을 이끌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에너지원이나 목재 수입이 높기에 자원 추출이라는 측면에서 자국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생태계 변형에 깊게 관여해왔다. 또한 철강이나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비롯한 제조업 수출의 중심지로서 온실가스 다배출국가이기도 하다. 하다드와 해럴은 이러한 공통점과 더불어 동아시아 국가가 발전주의, 즉 “시민들의 물질적 소비 수준을 높이는 능력에서 정당성을 도출하는 통치 체제”에 대한 합의를 공유해왔다고 논의한다(Haddad and Harrell, 2021, 6).

이에 더해 채터지의 논의는 아시아 국가의 발전주의와 인류세를 엮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Chatterjee, 2020). 그녀는 유럽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화석 자본주의의 확산이라는 거대 서사를 넘어서 인류세가 좀 더 복잡한 역학 구도 속에서 출현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채터지는 인류세를 주도하는 논의들이 대부분 아시아 사회의 역사성, 특히 식민지 경험에 대한 분석 없이 서구 남성 자본가 계급으로 이어지는 “유럽 중심적 근대 서사를 무의식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Chatterjee, 2020, 6). 특히 아시아의 전기화(電氣化) 과정을 살펴보면 유럽 식민주의나 화석 자본주의 사이에는 뚜렷한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논한다. 이때 저렴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발전주의는 자본주의 확산의 부산물이라기 보다는 민족국가의 생존을 위한 도덕 경제를 반영한다. 또한 식민국, 혹은 독립 이후 후기식민국에서의 전력 인프라 개발은 제국의 중앙 통제와 기술 전파 보다는 때때로 표준화의 과정 없이 이루어졌으며, 제국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의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고도 논의한다. 특히 독립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전력 인프라 구축을 시장에 맡기기보다는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의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냉전 시대에 전력의 중앙집중화라는 국제정치적인 압력과 소비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모종의 도덕적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처럼 지역적 다양성을 보이는 테크노스피어 구축의 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이기 위해 국가적인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댐 건설은 치수(治水)와 이수(利水)의 관점에서 국가 통치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제국주의 확산과 산업화의 가속화, 그리고 냉전의 대결 구도 속에서 등장한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적 인프라 개발의 핵심이었다. 다시 말해, 댐을 통한 수력 발전은 “테크노민족주의적 자부심과 공리주의적 계산”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Chatterjee, 2020, 14). 본 연구는 동아시아 국가를 테크노스피어의 구성 인자로 이해하고, 댐이라는 물질적 인프라를 통해 그 과정을 분석한다. 이는 인류세를 서구 화석 자본주의의 결과로만 이해하는 시각을 넘어, 동아시아가 어떻게 인류세적 경관을 형성해 왔는지 보여주는 작업이다.

3. 한국과 일본의 댐 건설의 궤적

이 절은 전근대의 동아시아의 치수 실천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댐 건설의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그림 2는 국제대댐회의 데이터에 기반한 한국과 일본의 대댐 누적 그래프와 연도별 완공 댐 개수에 대한 그래프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국제대댐회의 데이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 데이터는 영토 국가 단위 통계이기 때문에, 댐 건설을 둘러싼 공간적・정치경제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식민지 시기 일본의 댐 인프라는 일본 본토뿐 아니라 조선, 대만, 중국 등 제국의 영역 전반에서 구축되었지만, 이러한 사항은 영토 단위의 통계에서는 일본, 한국, 중국, 북한 등의 자료로 분절되어 나타난다. 특히 본 연구에서 제시한 그림 1그림 2의 일본 댐 건설 그래프 역시 일본 ‘본토’를 기준으로 집계된 자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제국의 주변 지역에서 추진된 댐 인프라 사업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에도 해방 이전에 건설된 댐이라 하더라도 현재 북한 영토에 위치한 시설은 북한의 데이터베이스로, 남한 지역에 위치한 시설은 대한민국의 데이터베이스로 각각 기록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사용한 시계열 자료는 현재 대한민국 영토에 해당하는 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민지 시기 한반도 전체의 댐 건설 규모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가장 공신력 있는 글로벌 데이터로서 국가간 데이터를 비교하기에 용이하여 이 자료를 선택하였다(Le Delliou,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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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국과 일본에 건설된 연도별 댐의 누적 그래프(1800-2024)
(자료 출처: ICOLD/CIG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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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국과 일본에 건설된 연도별 댐 그래프(1800-2024)
(자료 출처: ICOLD/CIGB, 2025)2)

1) 치수의 전통과 서양 지식의 유입

물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치수는 동아시아 고대국가의 논의에서부터 나타난다. 벼농사를 근간으로 하는 동아시아에서는 습지 조성을 위한 관개 기술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때 치수는 단순히 물 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부터 변방으로 뻗어나가는 통치를 위해 수행된 국책사업 전반을 의미했다(문치웅・김은진, 2014). 치수가 운하와 관개와 같은 수리 사업뿐만 아니라, 행정구역과 교통체계, 세금부과 체계를 의미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수리 사업이 국가의 운용에 상징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규모 치수 사업은 고대부터 있었는데, 가령 기원후 330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백제의 벽골제는 약 3km에 달하는 제방 시설이다(정계옥, 1995). 고대 일본의 역사를 다루는 『일본서기』 역시 치수 사업이 기록되어 있다(서보경, 2012). 조선에는 『경국대전』에서 수리시설에 대한 규정이 있고, 후기에 들어서는 『제언절목(堤堰節目)』이란 규정집을 통해 농업용수를 저수하기 위한 제방과 방죽에 관한 규칙을 담아내기도 하였다(정계옥, 1995). 일본의 경우 17세기 전반에 농업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러한 생산성 상승은 대규모 댐 건설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다(Sippel, 2000). 흥미롭게도 대형 댐의 기록이 남아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1750년에 이미 대형 댐이 400개를 넘어섰다(Le Delliou, 2025). 일본은 지속적인 홍수로 인해서 물길을 조정할 필요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Sippel, 2000). 이렇듯 한일의 국가들은 각자의 제도 속에서 치수를 실천해 나갔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동아시아의 물관리는 서구 열강과 교류 확산으로 인해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통치 기술로서 치수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근대 토목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을 기점으로 하천 개발이 본격화되었는데, 네덜란드 출신의 공학자를 초빙하면서 서구 수리공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Nakazawa, 2007). 예컨대 요하니스 드 레이케와 같은 네덜란드 공학자는 일본 정부의 고문으로 하천 시스템 개선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세 강이 연결되는 저지대인 노비평야(濃尾平野)의 홍수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던 지방정부는 중앙 정부를 통해 네덜란드의 전문 지식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레이케가 주도한 종합 계획에 따라 세 강이 분리되었고 새로운 제방과 수로가 건설되었다. 물론 네덜란드의 지식이 바로 일본의 현실에 이식되었던 것이 아니라 현지의 재료와 상황에 맞게 절충되어 변형되었다(Sippel, 2000). 서구 공학자의 개입으로 인하여 물을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하는 수리공학적 통치가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근대적 하천 관리에 맞게 하천법이 제정되었다. 1896년 구(舊)하천법 제정은 치수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하천 관리 체계를 도입해 이후 댐 건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토대가 되었다(김선희・박화권, 2008; 安田, 2023). 일본의 전전(戰前)기 댐 건설은 법・행정・기술이 결합된 국가적 관리 체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선 역시 개화기 이후 서구 문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으나, 일본과 달리 근대 수리공학이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았다. 철도와 통신, 광산 개발 등의 분야에서 일부 서구 기술이 수용되었으나, 하천 관리와 댐 건설에 관한 근대적 공학 지식은 식민지기에 일본의 조사 사업과 수력개발 정책을 통해 도입되었다.

2) 제국과 식민지에서의 댐 건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의 팽창주의를 적극 수용하여 류큐 왕국을 강제 편입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잇달아 승리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은 근대적 토목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본국의 하천뿐만 아니라 식민지로 편입한 조선의 물길을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오타니 마사키(大谷, 2020)가 밝히듯, 식민지의 도로나 철도 사업과 달리 하천은 “직접 자연과 응대하는 토목사업”으로서 기술을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일본은 1910년대 중반부터 이미 연간 10~20개 수준의 댐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있었으며, 그림 1의 대댐 누적 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20~1930년대에는 20~30개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 1914년을 기준으로 이미 약 760개의 댐이 건설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이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장기간에 걸쳐 수리 인프라를 확충해 왔음을 방증한다. 이 시기는 이후 고도성장기 가속을 가능하게 한 제도적・기술적 기반이 축적되는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1910년대 이후 중공업의 발달과 함께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력 발전을 목적으로 한 댐 건설이 본격화되었다(Itsukushima, 2023). 실제로 전체 댐 가운데 상당수가 전력 생산을 주요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수력 발전을 단일 목적으로 하는 댐이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에만 135개 건설되었다(ICOLD/CIGB, 2025).

반면 1914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 지역에서 기록된 연간 댐 건설 수는 대체로 0~5개 수준이다. 일부 연도에서는 소규모 증가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상승 추세는 확인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산발적 건설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댐 건설을 위한 기초 조사와 기술적 준비는 식민지 통치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부터 1939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주요 하천 25개에 대한 조사 사업을 수행하였고, 1911년부터 1945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한반도의 포장수력(包藏水力)에 대한 조사도 시행하였다(김여택, 1995). 이러한 조사 사업은 수력 발전 잠재력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향후 수력 인프라 개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식민지 수자원 개발 정책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20).

한반도에서 근대적 의미의 댐 건설은 이러한 기초조사를 근거로 192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개발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 정책이 댐 건설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첫째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된 중공업화 정책으로, 수력발전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대규모 수력발전 댐이 건설되었다(홍성태, 2007; 양지혜, 2020; 오선실, 2020). 둘째는 한반도를 식량 생산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농업 정책으로, 미곡 증산을 목표로 소규모로 다수의 관개용 댐이 건설되었다(한국대댐회, 2023). 이러한 개발 전략은 수력발전과 농업 생산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존재하는 식민지 수리개발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림 2에서 확인되는 1920~1930년대의 완만한 증가 역시 이러한 식민지 개발 정책과 연결된다. 다만 이 시기 그래프의 수치는 주로 남한 지역에 구축된 관개용 댐 증가를 중심으로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기 대규모 수력발전용 댐의 상당수는 북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이러한 발전 인프라는 북부 공업지대의 전력 공급과 산업화 전략을 뒷받침하였다(김은혜, 2016; 오선실, 2020; 양지혜, 2023).

식민지 통치 말기에 접어들면서 댐 건설은 전시 동원 체제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게 된다. 1938년 제정된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조직된 근로보국대는 대형 토목사업에 동원되었으며, 이러한 노동 동원 체계는 청평댐(1943년 완공) 건설 과정에서 활용되었다(양훈도, 2018). 1943년 총독부는 전력 생산과 공급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선전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전력 체계를 일원화하였다(정예지, 2016). 이와 같은 전시 체계 속에서 전력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댐 건설 사업은 계속해서 추진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강 상류에 건설된 화천댐(1944 완공)이다. 이러한 사례는 댐이 단순한 수리 인프라를 넘어 전시 동원 경제와 산업 체계를 지탱하는 핵심시설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3) 전쟁과 전후, 건설의 지연 혹은 회복

이차세계대전, 태평양 전쟁과 한국의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의 발발은 댐 건설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전후 복구 사업의 맥락에서도 댐이 건설되었다. 일본의 경우 1941년과 1945년 사이 연간 댐 건설 수치는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댐 건설에 투입되던 자원・인력・물자가 전쟁 수행을 위해 전용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Itsukushima, 2023). 패전 직후에는 연간 댐 건설 수가 크게 감소하여 한 자릿수 수준까지 하락하였다. 이는 제국주의 시기에 추진되었던 인프라 건설의 가속이 전쟁 수행 및 패배와 함께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건설 규모는 점진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전쟁 직후 일본이 직면한 과제는 국토 복구, 산업 생산 회복, 전력 확보, 식량 문제 해결, 그리고 반복되는 대규모 홍수에 대한 대응이었다. 특히 194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는 대규모 풍수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재난 경험은 치수 목적의 대형 댐 건설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김문숙, 2024; 安田, 2023; Takahasi and Uitto, 2004). 복합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개별 하천 공사 중심의 대응을 넘어, 하천 유역 단위에서 물・전력・산업 수요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개발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이 과정에서 다목적댐은 치수와 이수, 발전 기능을 결합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Itsukushima, 2023; Nakamura et al., 2025). 1950년대 초반에는 연간 10~20개 수준에서 등락하며 전전(戰前)기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20~30개 수준으로 상승하였고 일부 연도에서는 30개에 근접하였다(그림 2 참고). 이에 따라 누적 곡선의 기울기도 1950년대 중반부터 점차 가파르게 상승하여, 단순한 전후 복구 단계를 넘어 건설 강도가 재강화되는 국면에 진입하였다(그림 2 참고). 특히 산업 재건과 도시화의 진전은 전력 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졌으며, 이에 따라 1950년대 댐 건설은 수력발전을 중심으로 한 발전용 댐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김문숙, 2024). 이러한 정책 방향에는 미국의 테네시강 유역개발(TVA) 모델이 중요한 참조 점으로 작용하였다. TVA는 유역 단위의 통합적 개발과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국가 재건을 추진하는 방식이었으며, 전후 일본의 인프라 정책 역시 이러한 개발 모델의 영향을 받아 재구성되었다(Steele, 2017). 대표적으로 사쿠마댐(1952년 착공, 1956년 완공)은 전후 일본의 국가 부흥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로 강조되었으며, 인프라 개발이 경제 회복과 정치적 상징성을 동시에 띠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Steele, 2017).

이러한 정책 방향은 제도적 정비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1950년 국토종합개발법 제정은 전후 국토 재건을 위한 종합적 개발정책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전력개발촉진법(1952), 공업용수법(1956), 특정다목적댐법(1957), 수도법(1957), 치산치수긴급조치법(1960), 수자원개발촉진법(1961), 수자원개발공단법(1961) 등 관련 법률이 잇달아 마련되었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国土交通省, 2001; Itsukushima, 2023). 이러한 제도적 정비는 기존의 하천 제방 중심 홍수 대응 체계를 점차 댐을 통한 조절 방식으로 전환하며, 수자원 관리의 정책 목표와 실행수단을 재구성하였다(Itsukushima, 2023). 댐은 국가적 자원 관리 전략의 중심 장치로서 그 역할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반면 1945년 해방 이후에도 한국의 연간 댐 건설 수치는 매우 낮은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났다(그림 2 참고). 1950년대 초반까지 연도별 건설량은 대체로 0~5개 수준에 머물며, 일부 연도에서 소규모 증가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상승 추세는 불안정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그림 1의 누적 그래프에서도 확인되는데, 1945년 이후 약 10여 년 동안 한국의 누적 댐 수 곡선은 매우 완만한 기울기를 보이며 증가 속도가 크게 둔화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동일한 시기 일본이 전후 재건과 함께 댐 건설을 빠르게 확대해 나간 것과 대비된다. 해방 이후 정치적 혼란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프라 파괴 상황에서 대규모 하천 토목공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쟁 과정에서 기존 수리시설과 전력 인프라의 상당 부분이 피해를 입었고, 국가 재정과 기술 기반 역시 크게 약화되었다. 한국의 초기 수자원 정책은 국내 자본과 기술만으로 추진되기 어려웠으며, 국제 원조와 차관, 외부 기술 협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재정비되었다(홍성태, 2006). 그럼에도 대형 댐이 건설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57년 완공된 괴산댐이다. 이 댐은 높이 약 28m의 중력식 콘크리트 댐으로 당시 대부분의 댐이 흙댐(Earth dam) 형태로 건설되던 상황을 고려하면 국내 기술로 설계・건설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배명순, 2014). 종합하면 1945년부터 1950년대까지의 시기는 댐 건설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전 과도기적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은 냉전 질서 속에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중요한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후 배상과 경제 협력의 틀 속에서 동남아시아 지역 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전쟁 배상 문제를 현금이 아닌 기술・노동력・공사 수행을 제공하는 ‘역무배상’ 방식으로 이행하면서, 일본 기업과 기술자들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건설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게 되었다(윤정환, 2022). 이는 제국주의 시기에 축적된 건설 기술과 인적 네트워크가 재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후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의 수리・에너지 기술과 자본을 공급하는 구조로 이어졌다(윤정환, 2022). 이러한 대외 인프라 건설 진출은 일본 국내에서 확대되던 전력・토목 산업과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면서 전후 경제성장 전략을 뒷받침하였다. 이는 전후 일본의 수자원 개발 체계가 국가를 매개로 국경을 넘어 공간적으로 확장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테크노스피어를 형성하는 국가의 역할이 영토를 넘어서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4) 냉전시대, 토건국가의 발전주의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는 냉전 질서가 더 공고히 형성되는 가운데 일본은 토건국가적 성격의 절정을 맞이하였고, 한국은 원조와 청구권 등을 기반으로 발전주의적 국가의 기틀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냉전의 대치 상황 속에서 댐이 반공주의적 장치로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제도적 장치, 기술 권력, 국제 원조와 차관, 배상 체계 속에서 물과 에너지, 산업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조직하여 테크노스피어 확장에 기여하였다.

그림 2를 보면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 댐 건설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수치는 일본의 댐 건설이 단순한 증가 단계를 넘어, 전전(戰前)기의 축적과 전후 재가속이 결합해 연간 30~50개 규모의 댐 건설 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한 구조적 정점 구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 댐 건설의 실질적 피크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형성되며, 이는 한국보다 약 10~15년 앞선 시점에 정점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대가속의 형상은 1950년대부터 마련되어 온 제도적・행정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1965년 개정된 하천법(신하천법)은 메이지 시기 제정된 기존 하천법을 대체하며 고도경제성장기에 급증한 치수와 이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였다. 이 법의 시행으로 하천 관리는 수계 단위의 일원적 관리 체계로 재편되었고, 건설성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관리 구조가 강화되었다(김선희・박화권, 2008; 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또한 치수특별회계법(1960)에 근거한 특별회계제도의 도입은 다목적댐 사업을 일반 재정과 분리된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하면서, 대규모 수자원 개발 사업의 안정적 재원 확보에 기여하였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1960년대 일본은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에 따라 물 부족과 전력 수요 증가를 동시에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 1962년 전국종합개발계획과 1965년 신하천법을 중심으로 하천 개발의 목표가 전력 생산에서 도시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Takahasi, 2009). 이 과정에서 댐은 단순한 발전시설을 넘어 도시화와 산업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국토 인프라로 재정의되었다.

반면에 한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간 댐 건설 수가 이전 시기에 비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1950년대까지는 대체로 한 자릿수 수준에 머물렀던 건설 규모는 1960년대 초반부터 약 10~20개 수준으로 확대되며 연간 두 자릿수 건설이 지속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대체로 15~40개 범위에서 변동하는 비교적 높은 건설 강도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해방 이후 장기간 지속되었던 정체 국면을 지나 한국의 댐 건설이 본격적인 발전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며, 이후 1980년대의 집중적 건설로 이어지는 가속 국면의 출발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내적인 국가 전략과 외부와의 관계가 맞물려서 이루어졌다. 특히 1960년대 주요 유역조사사업이 실시되면서 댐 건설의 기틀을 다잡았는데, 이는 USAID, UNDP, FAO, 대일청구권 자금 등 국제 원조와 협력 네트워크 속에서 수행되었다(이미홍, 2006). 또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기점으로 농업용수 확보, 공업화에 따른 전력 수요 대응, 홍수 조절과 생활 인프라 확충 등 다양한 국가적 수요가 제도적으로 조직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고와 외국 차관을 기반으로 한 수자원 종합개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김은혜, 2016; 한국대댐회, 2023). 이 과정에서 댐 건설은 농업・산업・에너지 정책을 동시에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으며 경제개발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댐과 관련된 행정 조직과 법적 기반도 빠르게 정비되었다. 1961년 건설부 산하에 수자원국이 신설되었고, 하천법과 수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수자원 관리 체계가 구축되었다(홍성태, 2007; 김문숙, 2024). 이어 유역조사(1965)와 수자원개발계획 수립이 진행되었으며, 공업용수도사업법(1965), 특정다목적댐법 제정(1966)과 한국수자원개발공사법(1967) 및 공사 설립은 댐 건설을 단순한 개별 사업이 아니라 조사・기획・재원 조달・시공을 포함하는 국가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홍성태, 2007; 박서현, 2024; 김문숙, 2024).

이 시기 대형 댐은 냉전 질서와 더불어 국가 내부의 발전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조국 근대화’를 견인하는 존재로서 여겨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양강댐이다. 소양강댐(1967년 착공, 1973년 완공)은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국책사업으로 인식되었다(홍성태, 2006; 오세현, 2023; 황진태, 2019; Park, 2025). 이 사업의 본격적인 구상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초기 단계에서 미국 상무부와 한국 정부의 협력 아래 미국 엔지니어들이 소양강댐 부지를 풍부한 전력 생산이 가능한 유력 후보지로 제안한 바 있다(Park, 2025). 이후 1961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일본 공영주식회사에 소양강댐 시설 설계를 의뢰하고 일본에서 도입된 중장비를 활용하는 등 해외 기술과 장비에 상당 부분 의존하였으며, 총사업비 가운데 약 30% 이상이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조달되었다(오세현, 2023). 이러한 사례들은 1960년대~1970년대 한국의 수자원 개발 정책과 인프라 건설이 국내 정책 의지뿐 아니라 국제 원조와 기술 협력 네트워크 속에서 추진되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도 한일 양국의 가속 그래프는 계속해서 유지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그 속도가 점차 둔화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 후반에는 한 해 건설량이 40~50개 수준에서 다소 낮아져 대체로 20~35개 범위로 이동한다. 1980년대에도 연간 건설량은 20~30개 사이에서 등락하며 일부 연도에서는 30개 내외를 유지하지만, 이전 시기와 같은 고강도의 집중적 건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대규모 댐 건설은 공간적인 한계로 인하여 무한정으로 지을 수 없을 뿐더러, 경제 성장의 둔화로 인한 인프라 투자가 약화되었고, 수자원의 추가적인 이용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伊藤・이철우, 2014).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댐 건설 예정지 주변의 지역사회에서는 주민 강제이주 문제와 환경 악영향 등을 둘러싼 반대 운동이 점차 확산되었으며(Takahasi and Uitto, 2004), 국가 주도의 대형 인프라 사업이 지역사회와 충돌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갈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1973년 수원지역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댐 건설로 영향을 받는 지역에 대한 보상 및 지원 제도를 마련하였다(김문숙, 2024). 그 결과 대규모 수자원 개발을 정당화하던 경제적 근거 역시 점차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이후 도시용수와 공업용수 수요에 대한 예측치와 실제 사용량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나타났으며, 이는 대규모 댐 건설 계획의 필요성에 대한 비판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었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특히 이미 1950년대부터 존재하였던 댐 반대 운동이 1980년대 후반에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춘 형태로 확산하게 되면서 국가 역시 이러한 반대의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즉,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댐 건설은 고도경제성장기 동안 형성된 급격한 가속 국면을 지나 경제성장 둔화와 환경문제의 부상 속에서 조정 단계로 이동하였다. 그럼에도 댐 건설 사업 자체는 완전히 축소되지 않았으며, 기존 정책의 관성이 일정 부분 지속되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 1980년대에 한국의 연간 댐 건설량은 절정을 맞이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이미 20~30개 수준에서 유지되던 건설 규모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더욱 큰 변동 폭을 보이며, 일부 연도에서는 40개 이상을 기록하는 등 전체 시기 중 최고치가 확인된다. 특히 1980년대 중반에는 50개를 넘는 연간 건설량이 등장하면서 한국 댐 건설의 정점을 찍었다. 이러한 집중적 건설은 그림 1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1980년대 구간에서 누적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수준에 도달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1960년대~1970년대에 시작된 댐 건설의 확대가 1980년대에 이르러 단기간에 고밀도로 집중되는 형태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며, 한국의 댐 건설 궤적이 압축적 가속(compressed acceleration)의 형태로 정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김지혜 등, 2025).

이와 같은 집중적 건설은 70년대와 같이 당시 추진되던 국가 개발 계획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과 다목적댐 건설 확대가 본격화되면서, 농업용수 확보, 공업용수 및 전력 공급, 홍수조절, 양수발전 확대 등 다양한 정책 목표가 제시된 시기였다. 제1・2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추진과 함께 국고와 외국 차관을 기반으로 한 수자원 종합개발 사업이 집중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댐 건설은 국가 경제개발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였다(김문숙, 2024). 실제로 이 시기에는 다목적댐 건설이 크게 늘었고, 1984년에는 단일 연도 기준 가장 많은 댐이 완공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 댐 건설 붐은 당시의 정치경제적 환경과도 맞물려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와 중동 건설 특수의 약화 이후 국내 경제는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은 내수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국가 주도의 인프라 건설은 경제 안정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장치로 작동하였다(홍성태, 2006). 예를 들어 낙동강 하굿둑 사업(1983~1987)의 경우 중동 건설 경기의 둔화와 경제 불안정 속에서 추진된 대표적인 토목 프로젝트로, 당시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경기 부양과 국가 발전 담론을 강화하기 위해 활용한 사례로 평가된다(최은령, 2023).

한국과 일본은 이 시기 댐 지표에서의 인류세 대가속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며, 냉전 질서 속에서 토건국가, 발전주의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여준다. 관료, 정치인, 건설 기업 사이의 긴밀한 토건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추진되었다는 것이다(홍성태, 2006; McCormack, 1995; Kerr, 2001; Michaud, 2015). 물론 한국의 경우 일본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국가의 지정학적 안보 담론과 댐이 결합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강 상류에 건설된 평화의 댐이다(Hwang, 2016). 평화의 댐 건설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따른 수공 위협 담론을 배경으로 추진되었으며, 국가 차원의 대국민 성금 모금 운동이 전개되는 등 강한 국가주의적 동원과 결합하였다(이미홍, 2005; 이상헌, 2005; 황정하, 2023). 이 사업은 수자원 관리 인프라를 넘어 안보 위협 대응이라는 명분 속에서 건설되었지만, 실제 댐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쟁과 예산 낭비 논란을 동시에 불러오기도 하였다(이상헌, 2005; 황정하, 2023). 이러한 사례는 댐 건설의 정당성이 단순히 인구 증가나 산업화에 따른 물・전력 공급의 필요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분단과 냉전이라는 동아시아 특유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댐은 국가 안보를 상징하는 인프라로 재해석되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제국-식민, 냉전, 발전주의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경로를 보인다는 점에서 인류세의 지역적 다양성을 보여준다(표 1 참조).3)

그러나 대형 댐의 수가 언제나 대가속의 형태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일본이 약 10년 앞서기는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은 모두 대형 댐 수가 포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점차 건설 규모가 줄어들게 되었다. 단순히 건설할 수 있는 입지가 포화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댐을 중심으로 구성된 테크노스피어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 절에서는 테크노스피어가 야기한 사회-생태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댐 건설의 둔화에 대해 논의한다.

표 1.

인류세 대가속의 관점에서 본 한국과 일본의 댐 건설 궤적 비교

구분 한국 일본
가속 진입 시기 1960년대 후반
(경제개발계획,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용수·전력 수요 증가)
1950년대 초
(전후 재건과 TVA 모델 수용, 전력 수요 증가)
가속의 정점 시기 1980년대 중반
(국토종합개발계획, 다목적댐 확대)
1960년대 중반~1970년대 초
(고도경제성장, 다목적댐 확대)
가속의 특징 상대적으로 지연·압축적 가속 상대적으로 조기 가속
지정학적 요인 매우 강함
(분단체제, 평화의 댐 등)
상대적으로 약함
감속 시기 1990년대 이후
(환경 갈등 확대, 댐 정책 전환)
1970년대 중반 이후
(환경운동 확산, 댐 정책 전환)

*가속 시기 구분은 기술적(descriptive) 판독에 기반함.

4. 국가의 계획을 넘어서는 테크노스피어와 대가속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가 어떻게 인간의 필요, 기술의 발달,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발전의 욕구를 동원하여 테크노스피어의 대표적인 시스템인 댐 건설을 주도하는지 살펴보았다. 이 절에서는 댐을 중심으로 테크노스피어의 통제 불가능성, 즉 국가의 계획과 의도(치수, 발전, 용수)를 초과하여 사회-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하프(Haff, 2014)가 이야기하는 테크노스피어의 자율성은 매우 논쟁적이지만, 소박한 수준에서는 인간의 의지와 계획, 통제를 벗어나 행위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소박한 자율성은 결과의 우연성이나 정보 부족에서 비롯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 논의와는 다르다. 후자가 행위자의 예측 실패나 지식의 한계를 전제한다면, 전자는 테크노스피어 자체가 인간의 의도와 구별되는 자율적 체계로서 작동한다는 존재론적 주장이다. 즉, 댐이 야기한 생태적 변화는 예측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실패가 아니라, 테크노스피어가 인간 규모를 넘어서는 스케일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완전히 통제될 수 없는 결과다. 국가는 환경영향평가・댐 등 사업심의위원회・하천법 개정과 같은 제도들을 통해 테크노스피어와 인간 사이의 매개 장치로서 기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노스피어가 야기한 변화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2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접근불가능성의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그러한 소박한 자율성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댐이 테크노스피어의 자율적 행위성 속에서 국가의 계획을 어떻게 초과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댐은 하천 유역 전체의 물질 흐름을 재조직할 뿐만 아니라 중장기의 생태적 변화를 야기한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생태적 변화는 두 국가의 생태적 결과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노스피어의 통제불가능성이 지역적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발현됨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2.1절에도 언급하였지만 댐의 생태계 영향은 전지구적인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닐슨 등(Nilsson et al., 2005)은 댐이 일반적으로 수몰, 유량 조절, 분절화를 야기해 상류와 하류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다. 댐을 만들기 위해 지역을 수몰시키는 경우 육상 생태계뿐만 아니라 주민의 건강과 문화의 소실을 야기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하구의 토사 유입을 방해하면서 범람원의 생산성을 감소시키고, 수생 군집에 광범위한 변화를 초래한다(Syvitski and Kettner, 2011; Nilsson et al., 2005). 댐이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나타난다. 댐 건설에서의 탄소 배출 역시 논의되고 있는데, 건설 시에 사용하는 자재뿐만 아니라 침수된 생물량과 퇴적물 내 유기물의 분해가 온실가스에 영향을 미친다고 논의되고 있다(Song et al., 2018).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러한 영향이 보고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1950년부터 1990년 사이 일본에서는 전국의 댐 저수지에 퇴적된 토사량은 약 8억 m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有働 et al., 2016), 이 시기는 앞서 확인된 일본 댐 건설의 전성기(1960년대 중반~1970년대 초)와 시기적으로 겹쳐진다. 이처럼 대규모로 차단된 토사는 하류의 하상 저하와 하천 지형 변화를 유발하였을 뿐 아니라, 해안까지 도달해야 할 모래 공급량을 현저히 감소시켜 연안 침식을 가속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有働 et al., 2016). 실제로 일본 해안선의 침식 문제를 분석한 연구들은 1950~1990년 사이 댐 건설로 인한 하천 모래 공급 감소가 해빈 면적 축소와 해안선 후퇴의 핵심 원인 중 하나였음을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梶村 et al., 2010; 有働 et al., 2016). 다시 말해 1960~1970년대 일본의 댐 건설 가속은 단순히 수자원 인프라의 확장 통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천-유역-연안으로 이어지는 물질 흐름 체계를 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지구공학적 개입이었다는 점에서 인류세 대가속의 물질적 흔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물질 흐름의 변화는 댐의 주요 건설 이유인 농업에도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범람원에서 농업을 하던 일본의 농업이 댐과 같은 인프라 개발과 하천의 직강화로 인하여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논 생태계 대신에 근대적 관개 기술에 의존한 논 생태계로 변화하였다(Washitani, 2007). 더불어 일본에서 댐은 외래 어류의 유입과 강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댐을 중심으로 상류 지역에서는 토착어종의 비율이 낮아졌으며, 무지개송어와 갈색송어, 큰입배스와 블루길과 같은 외래 어종이 증식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부영양화의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Han et al., 2008; Kawara et al., 1998).4)

댐에 의한 생물리학적 변화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논쟁적인 생태계 변화는 녹조와 부영양화로 이 문제는 4대강 사업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기도 하였다(김지혜, 2019; 박서현, 2023; Ha et al., 2003). 4대강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이 지닌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체내에서 검출되기도 하였다(Kim et al., 2023). 하천 하류의 퇴적물 유입 저하로 인하여 하상(강바닥)이 저하되었다(조연화, 2020). 또한 댐 건설로 인해 호수 종인 큰빗이끼벌레가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하였다(Ko et al., 2019; Hwang, 2021). 또한 낙동강 하류에는 하구 댐이 건설된 뒤 담수와 바닷물이 분리되어 어류 종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외래종이 증가했다고 보고되었다(Yoon et al., 2016).

이러한 변화에 따라 국가 역시 자신의 역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우스크노스트가 논의하듯이 국가들은 환경적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환경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Hausknost, 2025). 일본에서는 1980년대 댐 건설 반대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기존의 치수와 이수 중심에서 환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1997년 개정된 하천법은 하천 관리의 목적에 ‘하천 환경의 정비와 보전’을 명시적으로 추가하면서 기존의 이수・치수 중심 정책에 환경적 고려를 제도적으로 포함시켰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이와 함께 하천 계획 수립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의무화되었고, 공청회 개최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 청취 절차가 도입되는 등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참여가 제도화되었다(김선희・박화권, 2008; 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또한 1997년 환경영향평가법의 시행은 대형 인프라 사업의 환경적 영향을 보다 엄격하게 검토하도록 하였으며, 주민 의견 제출 범위 역시 확대되면서 댐 건설 사업의 사전 검토 절차가 강화되었다(선명수, 2010; 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또한 1990년대 초 나가라강 하구언 건설을 둘러싼 환경운동은 대형 공공사업의 환경적 영향을 둘러싼 전국적 논쟁을 촉발하였으며, 이후 일본 사회에서 댐과 하구둑 등 대형 토목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시민환경연구소(역), 2010; 伊藤・이철우, 2014).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95년 건설성(현재의 국토교통성)은 ‘댐 등 사업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대형 댐 건설 사업의 필요성과 지역사회 영향 등을 재검토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伊藤・이철우, 2014). 그 결과 신규 댐 건설에 대한 사전 합의 절차가 점차 엄격해지면서 계획 단계에서 중단되는 사업도 증가하였으며, 2010년까지 약 97개의 댐 사업이 중지된 것으로 보고되었다(김창수, 2015).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댐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변화도 나타났다. 2009년 민주당 정권은 신규 댐 건설 중단을 선언하며 일본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탈댐’정책을 공식적으로 제시하였다(伊藤・이철우, 2014). 다만 2012년 이후 자민당 정권이 다시 출범하면서 이러한 정책 대부분이 수정되었고, 탈댐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대신 최근 일본의 수자원 정책은 신규 댐 건설이 어려워진 상황, 즉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의 빈발, 국가 재정의 제약, 인구 감소 등에 대응하는 맥락에서 기존 댐의 높이 증대, 저수지 준설, 방류시설 개선 등과 같은 기존 시설의 재편과 관리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방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村田, 2017; Japan Commission on Large Dams, 2025).5)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연간 댐 건설 규모는 점차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이러한 감소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연간 건설량이 한 자릿수 수준까지 낮아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났으며,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연간 건설 수치가 매우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안정화 국면에 가까운 양상이 나타난다(그림 2 참고). 이러한 둔화의 배경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정책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권 정비 정책의 강화와 환경 보전 담론의 부상, 토지공개념 제도의 도입,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생활환경 개선과 국토 환경 관리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확대되었다(이상헌, 2005).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82~1991) 역시 점차 지방발전과 생활환경 개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 초점을 이동시키면서, 이전 시기와 같은 대규모 댐 중심의 개발 전략은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6)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환경운동과 주민 참여 요구가 확대되면서 대형 개발사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성찰이 공론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이후 댐 건설 속도 둔화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이상헌, 2005). 1990년대 이후 댐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지역 수준을 넘어 전국적 의제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였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1991)은 수돗물 수질 문제를 전국적 사회 이슈로 부각시켰고 물 환경 관리에 대한 시민적 관심을 일으켰다(최미옥, 2013). 이어 동강댐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찬반 갈등이 지역 내부를 넘어 전국적 환경운동과 여론 형성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정진주, 2001; 이시재, 2001; 장훈교, 2025). 이러한 갈등의 확산은 물관리 정책을 둘러싼 중앙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키웠으며, 결국 김대중 정부가 2000년 환경의 날을 계기로 동강댐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였다(이시재, 2001).

이와 함께 정책적・제도적 차원에서도 수자원 운영 체계의 변화가 진행되었다. 1994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면서 물 환경 관리 정책이 강화되었고, 지방자치제의 본격적인 시행은 지역 단위에서 수자원 개발 갈등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김문숙, 2024).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92~2001) 역시 지방 분산형 국토 구조 형성과 국토 환경 보전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이전 시기처럼 유역 단위 대형 댐 건설을 확대하기에는 제도적으로 어려워졌다. 또한 2013년 이후 댐 건설 사업 추진 절차가 기존 7단계에서 10단계로 확대되고 환경단체의 참여와 사전 검토 협의가 제도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속도 중심의 대형 댐 개발은 사실상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었다(김창수, 2015). 2019년부터 시행된 물관리기본법은 물의 공공성 강화, 건전한 물순환 유지, 수생태계 보전 등을 주요 목표로 하며 수자원 관리 정책의 방향을 유역 중심의 통합적・생태적 관리 체계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권혁준 등, 2020).

물론 토건국가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댐 건설의 침체 속에서도 대규모 수자원 개발은 홍수・가뭄 관리, 효율적 물관리,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명분을 통해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2009년 추진된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과 수질 개선을 명분으로 4대강 본류에 16개의 대형 보를 설치한 사업이었다(이철재・구도완, 2022).7) 윤석열 정부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기후대응댐” 건설을 계획하기도 하였다(환경부, 2024).

요컨대 한국과 일본에서의 댐 건설은 국가에 의해 추동되지만 댐의 효과는 국가 너머의 것으로, 물질 순환의 변화를 가져왔다. 댐이라는 테크노스피어의 요소가 새로운 바이오스피어를 형성하는 행위자로서 기능하고, 이러한 행위성은 다시 사람들의 의사결정과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에서 1950년대부터, 그리고 한국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발생하였던 댐 반대 운동, 혹은 더 적극적인 형태인 댐 해체(재자연화)논쟁은 그러한 사회-생태계의 변화에 주목하여 발생한 운동이며, 오늘날 국가 역시 그러한 주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변화는 민주화와 환경 담론의 확산,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참여 등 정치・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보자면 국가는 테크노스피어를 일방적으로 확장하는 행위자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체계들과의 조율 속에서 테크노스피어의 변형과 축소를 매개할 수도 있는 행위자이다. 특히 오늘날의 국가는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발전주의의 경로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서로 다른 요구(치수와 생태계 보전)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오늘날 국가는 여전히 테크노스피어와 인간 사이를 매개하지만, 하프(Haff, 2014)의 논의처럼 수행의 규칙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공존’이라는 인류세적 요청에도 부합하는 방식으로 테크노스피어를 조정하라는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때 국가는 단순히 테크노스피어에 변형을 가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변형의 결과에 다시 영향을 받아 자신의 행위를 조정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테크노스피어를 일방향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체로만 존재할 수 없고, 외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조정하는 응답-능력이 요청된다.

5. 결론

이 연구는 인류세 테크노스피어의 형성을 한국과 일본의 행위성과 그 너머의 문제로 살펴봄으로써, 인류세를 서구 중심의 단일 서사를 넘어 동아시아의 서사로서 살펴보았다. 한국과 일본은 대가속의 시기나 특징에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미있는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냉전・발전주의라는 공통 조건 속에서 댐을 통해 테크노스피어를 확장했으나, 일본이 조기・장기 가속(1950년대~1970년대 초)의 형태를 보였다면, 한국은 압축적 가속(1980년대 정점)의 형태를 보였고, 한국에서는 분단체제라는 지정학적 요인이 훨씬 강하게 작용했다. 이때 국가는 발전과 안보를 명분으로 물과 에너지 흐름을 재조직하는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테크노스피어의 형성과 확장을 매개하는 행위자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댐은 국가의 의도를 초과해 하천-연안 물질 순환 체계를 재구성했고, 이는 양국 모두에서 국가가 사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생태적 변화를 낳았다. 인류세에서의 국가는 더 이상 인프라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자신이 매개한 테크노스피어가 야기하는 생태적 변화에 응답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하프가 제시한 테크노스피어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라는 행위자의 역할을 살펴본다는 점, 그리고 채터지가 제기한 '아시아 인류세' 논의를 한일 비교를 통해 경험적으로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이 연구는 국가를 단순한 정치적 행위자가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조직하는 인프라 실천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 존재이며, 그 뒤바뀐 세계의 압박을 다시 경험하는 존재라는 점을 밝혔다. 다만 이 연구가 국가의 영토를 기준으로 한 시계열에 의존한다는 점, 그리고 한일 비교가 인과가 아니라 해석적 비교라는 점을 한계로 남겨둔다. 향후 이 연구는 중국과 대만, 동남아시아 등에서 나타나는 테크노스피어 형성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류세 서사를 보다 다중적, 다층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성과임(NRF-2024S1A5C3A03046443)

[2] 1) 여기에서 하프(Haff, 2014)의 논의에 따르면 인간 조직은 테크노스피어의 일부일 수 있지만 테크노스피어와는 다른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인간 신체와 세포의 관계로 논의될 수 있는데, 세포 수준(부분)의 자율성과 신체 수준(전체)의 자율성은 서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테크노스피어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지만 테크노스피어와 구분되는 체계를 지니고 있다.

[3] 2) 그림 2에서 나타난 1945년 댐 건설 수치의 기록적 증가(1944년 당시 남한 지역의 댐 개수가 38개로 기록되어 있으나, 1945년에는 이 수치가 122개로 급격히 증가)는 식민지 조선의 기록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보인다. 자료 구축 과정에서 발생한 통계적 불연속을 반영한 결과일 가능성과 동시에 식민지 시기 한반도에 건설된 수리・에너지 인프라가 일본제국의 통계 체계 속에서 별도의 범주로 구분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방 이후 남한의 국가 통계 체계가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일괄적으로 정리되면서 특정 연도에 집중된 것처럼 나타났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1945년에 나타나는 급격한 수치 증가는 식민지기 자료의 재분류와 해방 이후 국가 단위 통계 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연속적 자료의 반영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4] 3) 다만 이 연구에서 사용하는 가속 진입・정점・감속의 시기 구분은 연간 완공 댐 수와 누적 곡선 기울기에 대한 기술적(descriptive) 판독에 기반한 것으로, 통계적 변화점 분석(change-point analysis)을 통해 도출된 것은 아니다.

[5] 4) 외래종의 유입을 생태계 ‘파괴’와 동일하게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저수지 형성, 상류와 하류 사이의 물길 단절,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하여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었다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6] 5) 이와 함께 경제적인 변화도 댐 건설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은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댐 건설도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자산 가격의 급락과 장기 불황은 기업 투자와 공공 재정에 큰 압박을 가했으며, 특히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토목 산업에서도 구조적 조정이 나타났다(구도완, 2010). 이러한 경제 환경 변화는 대규모 공공 인프라 사업의 확대를 어렵게 만들었고, 댐을 포함한 토목사업의 정당성에 대한 재검토 논의를 촉발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1994년 발생한 심각한 가뭄으로 약 1,5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제한 급수를 경험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수자원 확보와 홍수 조절을 위한 댐 중심 정책이 일정 부분 유지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인교준, 2002).

[7] 6) 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집행을 통해 건설된 다목적 댐: 충주댐, 합천댐, 낙동강하구둑, 금강하구둑 등(자료 출처: 국토연구원, https://www.krihs.re.kr/menu.es?mid=a70203000000)

[8] 7) 그러나 이 구조물들은 높이 15m 미만으로 국제대댐회(ICOLD)가 정의하는 대형 댐 기준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본 연구의 댐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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