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29 February 2024. 110-112
https://doi.org/10.22776/kgs.2024.59.1.110


MAIN

  • 1. 애자일(agile)이란?

  • 2. 현대차의 지리적 해법

  • 3.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를 닮은 모듈화 부품 기업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 중 한국 기업의 간판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뉴욕 타임스퀘어 등 특정 지점에 한국 기업의 광고가 내걸리는 것이 뉴스가 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우스 코리아’보다 더 잘 알려진 한국 기업들이 적지 않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은 그 중에서도 선두그룹에 서 있다. K-pop을 위시한 한국 문화의 세계적 반향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현대차를 위시한 기업들을 통해 한국이 알려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언제 이렇게, 그리고 어떻게 성장한 것일까? 특히 토요타와 같은 선점 기업이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중견 자동차기업 함정’(middle-rank carmaker’s trap)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1. 애자일(agile)이란?

포드주의(Fordism)이라는 용어로 대량생산체계의 대명사가 된 포드(Ford)의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과 그를 뒷받침하는 테일러주의(Taylorism)가 2차 대전 이후의 생산체계를 지배했다면, 1970년대에는 재고관리에 방점을 두어 군더더기를 없애는 토요타의 ‘린’(lean) 생산방식이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21세기 들어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차의 성공은 어떤 단어로 대표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린(lean)과 대비되는(against) 애자일(agile)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민첩한, 날렵한 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널리 통용되면서 ‘애자일’이라는 영어 표현 그대로 사용되기도 한다(저자들은 국문 저술에서 ‘기민한’ 생산방식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책에서 밝히는 애자일 용어의 연원은 1991년 리하이 대학(Lehigh University)의 아이아코카 연구소(Iacocca Institute)에서 출간된 보고서에서 제조과정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애자일한 대응(agile responding)을 꼽은 것으로 설명한다. 린 방식이 점진적인 향상 과정 속에서 제한된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라면 애자일 방식은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포착하여 빠르게 태세전환을 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p. 232).

2. 현대차의 지리적 해법

이 책은 한국 학자들이 글로벌 독자를 대상으로 현대차의 성공 전략을 분석한 영문 단행본이다. 당연히 지리학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경제, 산업, 기업, 노동, 사회, 국가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이 서평의 독자들을 고려하여 저자들의 지리적 해석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대차 사측과 생산직 노조와의 갈등은 이미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여러 차례 연구된 바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연구를 오랜 시간 축적해오는 과정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어떻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현대차의 다양한 해법에 대한 분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 대표적인 것들이 지리적인 해법이라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차별점이다. 3명의 공저자가 모두 지리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의 조직 문화, 노사관계 등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현대차의 다양한 대응 중 지리적 해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과감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현대차는 노사관계 문제에 대해 그린필드 전략(greenfield strategy)이라는 지리적 해법을 사용했다. 기존에 이미 있는 공장과 그 지역의 인력 풀을 최대한 활용하는 브라운필드 전략(brownfield strategy)과 달리 새로운 공장과 인력 풀을 활용함으로써 기존에 형성되어있던 노사관계 문제를 공간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특히 이를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공간적 조정(spatial fix)의 예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지리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해석이다(p. 112).

현대차는 집적 경제와 수출 주도 전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울산 인근 지역에서 확장하는 전략을 취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1996년 신설 공장의 입지로 울산과는 매우 동떨어진 아산을 택하였다. 아산공장에서는 최대한 울산공장과 다른 분위기에서 고용을 함으로써 기존에 울산에서 형성되어 있는 노사관계를 회피하고자 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분석이다(p. 150). 또한 2003년 정몽구 회장의 결단으로 화성에 남양연구소라는 거대한 R&D센터를 건설한 것이 현대차 성장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또한 울산공장과 먼 수도권에 연구개발 기능을 육성함으로써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혁신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자 하였다(p. 123). 사후적으로는 연구개발 기능을 수도권에 집중하고자 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으나, 남양연구소가 입지한 화성시 남양읍은 경기도에서도 꽤나 외곽에 위치하여 당시에는 수도권으로서의 이점이 크지 않은 입지였다. 상당히 과감한 지리적 해법의 배경은 노사관계 문제에 대한 공간적인 해법이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분석이다(p. 125).

현대차의 그린필드 전략은 이후 해외진출 시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2000년대 이후로 현지법인 설립을 통해 유럽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미국에는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공장을 건설하였다. 토요타를 위시한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이 현지 합작법인 또는 조인트벤처 방식으로 공장을 건설하여 위험성을 낮추는 브라운필드 전략을 채택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는 점에서 책의 제목인 ‘agile against lean’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p. 217).

3.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를 닮은 모듈화 부품 기업

한국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산업구조에도 반영되는데 다단계의 부품 조립으로 이루어지는 자동차 산업이 가장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완성차 기업의 수요 독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통제적인 지배구조가 외부 협력기업까지 확대된 수직계열화(extended vertical integration)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p. 171).

보통 자동차 완성차 공장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기업을 그 단계에 따라 1, 2, 3차(tier) 기업으로 부르는데, 현대모비스의 경우에는 ‘0.5차’ 기업이라고 명명한 것은 저자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이다(p. 181). 학술적으로는 협력적 하청기업(cooperative subcontractors)에 대한 가부장적 통제(paternalistic control)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였지만(p. 176) 한국의 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한국 독자들은 이러한 용어가 없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들도 스스로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설명한 ‘권위적 실험주의’(authoritarian experimentalism) (p. 229) 역시 한국 기업 문화의 특수성으로부터 나온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배구조 전략은 해외 진출 시에도 그대로 복제되었는데, 0.5차 기업인 현대모비스가 그 선봉장 역할을 수행하였다(p. 238). 그 증거로 현대차 해외 공장은 한국 기업 또는 동반 진출 기업으로부터 부품을 조달하는 경향이 경쟁 기업에 비해 강하다. 현대차의 ‘부품 현지화율’은 타사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그마저도 통계치보다 실제는 더욱 낮을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추측이다(p. 215). 다만 이런 소수 모듈화 부품 기업에 의존할 경우 위기 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낮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p. 230). 또한 부품 기업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해야만 하는 모델이라는 한계도 지적하였는데(p. 241) 이 부분이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면서 향후 해외 시장 상황에 따라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초반부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기업과 국가의 발전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충실하게 정리하였다. 특히 발전주의 국가(developmental state)론과 그 이후의 적응적 발전주의 국가(adaptive developmental state)에 대해 잘 정리가 되어있다(pp. 5~8). 모든 한국 기업이 그러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발전주의 국가 한국을 이끌던 기업들에게 있어 거대한 분수령과 같았다. 현대차의 경우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등의 환경 변화를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재벌 총수 중심의 과감한 의사결정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지배구조 하에서 실험(experiment)과 임기응변(improvisation)의 여지가 컸고, 임기응변에 의한 학습(learning by improvisation) 방식으로 혁신을 이어나가게 된다(p. 231). 이 또한 모니터링에 의한 학습(learning by monitoring) 전략을 취해왔던 토요타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 주장했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반하여 현대차가 택한 전략은 ‘조직적 임기응변’(organizational improvisation)이며(p. 8) 이러한 애자일한 문제해결 방식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강조했던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과도 연결이 된다(p. 143).

저자들은 현대차에 대해 지난 수십 년 간 연구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고위직을 맡았던 전직 임직원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현대차의 전략에 대해 다면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현대차가 취해온 전략의 명과 암을 그 누구보다도 잘 분석할 수 있었을 것이나, 양쪽을 모두 강조하는 논조로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확대된 수직계열화(extended vertical integration) 전략에 대해서도 그 한계를 예상하고 있지만 책 전체의 논조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소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p. 193). 저자들이 전 세계의 영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미처 풀어놓지 않은 현대차에 대한 진단은 향후 다양한 학회, 세미나, 포럼 자리를 통해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과정에서 현대차의 지리적 해법에 대한 다른 지리학자들의 의견과 그에 대한 저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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