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Journal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30 June 2020. 343-362
https://doi.org/10.22776/kgs.2020.55.3.343

ABSTRACT


MAIN

  • 1. 서론

  • 2. 제주와 하와이의 자연 및 인문환경

  •   1) 자연환경

  •   2) 인문환경

  • 3. 전통 농업 관련 돌문화경관: 제주의 밭담과 하와이의 코나필드시스템

  •   1) 제주의 밭담

  •   2) 하와이의 코나필드시스템

  • 4. 전통 어업 관련 돌문화경관: 제주의 원담과 하와이의 로코이아(Loko i'a)

  •   1) 제주의 원담

  •   2) 하와이의 로코이아

  • 5. 제주와 하와이의 돌문화경관 비교분석

  • 6. 결론

1. 서론

제주도에는 수많은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성된 검은 다공질의 현무암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어왔다. 이는 특유의 돌문화경관을 이루며 ‘삼다도’ 제주의 특색을 명실 공히 부각시키고 있다. 제주의 돌문화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생활 속에 활용되고 있으며, 미래 후손들도 활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돌과 함께 형성된 독특한 제주 문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에 기반한 돌문화경관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 내 여러 석조 문화유산들에 대한 개별 연구에서 나아가 제주도 특유의 돌문화에 초점을 두어 문화경관의 차원에서 돌문화경관의 가치를 논한 연구들(강성기, 2011; 강연실, 2008; 김유정, 2012; 김종석, 1998; 김지수 등, 2018; 김형남, 2009; 이윤형・고광민, 2006; 임진강 등, 2017; 정광중, 2017; 정광중・김은석, 2008; 정주연 등, 2019; 제주역사연구회, 1993; 최영주, 1997; 최용복・정문섭, 2006)이 1990년대 이래,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제주도의 돌담인 ‘밭담’이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국가중요농업유산, 2014년 UN 세계식량농업기구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제주의 돌문화경관이 국내외로 주목받고 있음을 증거한다. 이에 이제는 더 나아가 제주도와 유사한 문화경관을 지닌 지역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제주 돌문화경관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확인할 시점이라 판단된다.

제주도와 유사한 돌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외 유산지역으로 태평양 한 가운데 위치한 하와이 제도가 있다. 대양 가운데에서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지질 및 지형환경이 제주도와 유사하며 현무암을 활용한 주거, 토지이용, 생업 활동이 이어져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지역이기도 하다. 하와이는 검은색 다공질의 화산암괴를 활용한 여러 돌 구조물이 이루는 독특한 전통 문화경관과 자연환경 및 생태계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복합유산’으로서 2010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바 있다. 따라서 본 연구진은 제주도와 유사한 화산지형적 특색을 지니며, 자연환경을 이용한 전통 농업 및 어업 시스템과 관련된 생활 문화유산이 독특한 하와이를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본 연구는 화산섬인 두 지역의 전통 생업과 관련된 경관 사례를 비교하여 동일한 자연환경 하에서 두 지역 간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돌문화경관 요소의 특색과 이것이 발달하게 된 배경을 비교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각 지역이 지닌 전통 농업 및 어업 관련 돌문화경관 요소를 살펴보고, 이것이 상이한 문화・역사적 맥락 하에서 독특하게 발달하게 된 배경을 비교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문헌연구와 현지답사를 수행하였다. 문헌연구는 제주도와 하와이 일대의 전통산업유산에 관한 선행연구와 관련 자료의 조사 및 검토를 통해 이루어졌다. 현지답사의 경우 제주도는 2017년 6월 3일, 2017년 9월 9일, 2018년 8월 31일~9월 1일, 11월 3~5일 등 수 차례에 걸쳐 진행하였다. 하와이의 경우 가장 많은 전통 어업경관이 분포한 오아후(O'ahu) 섬과 독특한 전통 농업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하와이(Hawai'i) 섬을 중심으로 2018년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하였다. 답사 시 하와이 주 행정관, 하와이 돌담 건축 전문가, 유산을 관리하는 현지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헌연구로부터 얻기 힘든 하와이 돌문화경관에 관한 구술 자료를 획득하였다.

2. 제주와 하와이의 자연 및 인문환경

1) 자연환경

북위 33°10′16″에서 33°34′14″, 동경 126°09′345″에서 126°58′51″에 걸쳐있는 제주도는 유라시아 대륙 동안 환태평양 조산대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63개의 부속 도서를 지닌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제주도의 총 면적은 1,847㎢로 동서로 약 73㎞, 남북으로 약 41㎞에 달하는 타원형의 순상화산섬이며, 동북동-서남서 방향으로 분포하고 있다. 섬 중앙의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 사면은 3~5°의 완만한 경사를, 남쪽과 북쪽 사면은 5° 이상의 상대적으로 급한 경사를 보이며, 가장 높은 해발고도는 1,950m이다. 제주도와 한반도 간 최단거리는 약 85km로 나타난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윤선 등, 2014).

하와이 제도는 북위 18°55′에서 28°27′, 서경 154°48′에서 178°22′ 사이에 걸쳐 나타나며, 8개의 주요 섬(하와이, 마우이, 카호올라웨, 라나이, 몰로카이, 오아후, 카우아이, 니하우)과 수많은 작은 암초, 환초, 해산 등이 나열된 열도로 이루어져있다(그림 1). 이 제도는 가장 큰 섬이면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하와이 섬에서 북서쪽의 쿠레 환초(Kure Atoll)까지 약 2,400km로 뻗어 있다. 이들은 태평양 해저로부터의 화산분출에 의해 형성된 큰 산맥의 일부로, 주변 수심은 평균 5,000m 이상이기 때문에 해면 위에서는 가장 낮은 섬이라도 해저에서는 높이 치솟은 산지로 나타난다(황상구 등, 2003).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하와이 섬의 마우나케아 산으로 해발고도 4,205m에 달한다. 하와이 제도에서 동쪽으로 북미대륙 서안까지의 최단거리는 약 3,700km, 서쪽으로 일본열도 동안까지의 최단거리는 약 6,500km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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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하와이 제도의 위치(출처: 구글어스)

섬의 형성조건 측면에서 하와이 제도와 제주도는 그 기원이 둘 다 해저열점에서의 화산활동에서 시작되었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한편, 화산섬의 발달시기와 형성과정에 있어는 차이를 나타낸다. 하와이 제도의 경우 약 7,500만 년 전 태평양판 가운데 위치한 하와이 열점(Hawaii hotspot)에서 지표상에 마그마를 분출하기 시작한 한편, 판이 북서쪽으로 51㎞/100만년의 속도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화산섬들과 해저산지가 북서-남동 방향의 열도 형태로 발달하였다(Hazlett and Hyndman, 1996). 따라서 열도 내에서 북서 방향에 위치한 섬일수록 생성연대가 오래되고 마그마 공급지로부터 멀어져 화산활동이 중단된 후 풍화, 침식을 오래 받았으며, 남동쪽으로 올수록 생성연대가 짧고 현재까지 화산활동이 매우 활발한 ‘젊은’ 섬에 해당된다(황상구 등, 2003). 제주도의 경우 약 180만 년 전 유라시아판이 북아메리카판 및 필리핀판과 만나는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해저열점에서의 반복적인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Brenna et al., 2015)에서 하와이 제도와 발달기원상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하와이 제도에 비해 열점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된 시기가 훨씬 더 최근에 가까우면서도 화산활동이 중단된 지 약 5,000년 정도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난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2017). 또한 열점 위 판의 이동이 미미한 가운데 한 지점에서의 반복적인 화산활동과 융기 작용이 나타난 결과 제주도는 열도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화산섬으로 발달하게 되었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제주발전연구원, 2013).

지질을 살펴보면 제주도는 현무암질 용암이 우세한 가운데 조면암질 용암과 안산암질 용암 등 비교적 다양한 지질 양상이 함께 나타나는 반면, 하와이 제도는 현무암질 용암이 거의 대부분의 지역을 덮고 있다(고보균・윤성효, 2016; Langenheim and Clague, 1987). 두 지역 모두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 용암이 우세한 영향으로 인해 매우 넓은 기저부와 완만한 경사면을 가진 순상화산체의 형태를 띤다. 하와이의 화산들은 대개 경사도가 2~3° 정도로 나타나며, 제주도도 전반적으로 5° 이하로 나타난다. 이러한 지질적 특성 하에 두 지역에서는 공통적으로 분석구, 분화구, 흑사장, 응회구/응회환, 용암동굴 등 다양한 화산지형이 분포하고 있다. 다만 하와이 일대에서는 지역의 기후 및 지질학적 특성상 화산활동이 중단된 화산체에서 나타나는 환초와 기요(guyot)가 별도로 나타난다. 환초는 열대 해상의 화산체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산호초가 화산활동 중단 이후 화산체의 개석으로 중심부의 산지가 침하된 후에도 산호초가 고리 형태로 남은 것을 말한다(한국지리정보연구회, 2004). 기요는 화산체가 오랜 시간 해수의 침식작용으로 정상부가 평탄하게 깎인 후 지각변동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오늘날 해저에 잠겨 나타나는 화산체를 말한다(한국지리정보연구회, 2004).

제주도와 하와이의 기후는 대륙보다 해양의 영향을 받아 연중 기온이 온난하고 변동이 적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북위 33~34°에 걸쳐있는 제주도는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이 더해져 아열대 기후를 띤다. 또한 중위도 편서풍대의 유라시아대륙 동안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여름철에는 해양성 아열대고기압, 겨울철에는 대륙성 한대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 몬순기후를 나타낸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연평균기온은 제주도 북서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제주시를 기준으로 15.8℃로 나타난다. 제주도의 남동 해안지역은 한반도 내 대표적인 다우지로, 여름철에 남풍계열의 계절풍으로 인해 제주도 남동사면을 중심으로 지형성 강수가 많이 발생하는데다 태풍이나 장마전선이 이 지역으로 유입됨에 따라 연강수량이 1,900mm 이상으로 나타난다(이승호, 1999;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북서 해안지역의 강수량은 1,100∼1,500mm로 한반도와 유사한 범위로 나타나는 가운데, 겨울철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을 직접 받아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특징을 보인다. 반면 남동 해안지역은 지형에 의해 찬 기단의 이류가 저지되어 상대적으로 온화한 겨울철을 보인다. 제주도 내 연평균 풍속은 3.0~7.0m/s의 범위로 나타나는데 이는 3.0m/s 이하인 한반도 내륙지역에 비해 높은 값이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북부와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평균풍속이 6∼14 m/s로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여름철에는 남서계절풍이 강해 한라산 남사면을 중심으로 평균풍속이 빠르게 나타나는 한편, 태풍이 주로 내습하는 9월에는 동북동 계열의 바람이 강하게 분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북위 18~28°에 걸쳐 나타나는 하와이 제도의 경우 열대 기후가 우세하게 나타나며,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습도, 북동 무역풍의 지속성, 짧은 거리 내 강수량의 큰 차이가 특징적이다(Price, 1983). 하와이의 계절은 여름(5~10월)과 겨울(10~4월)로 구분되는데, 저위도에 위치하여 연중 낮의 길이와 일사량에 큰 차이가 없어 기온이 일년 내내 비교적 일정하게 나타난다(Price, 1983). 하와이 제도 내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오아후 섬 남부에 위치한 호놀룰루를 기준으로 연평균기온은 25.3℃로 나타난다(미국 국립기상서비스). 하와이는 연중 불어오는 습한 무역풍으로 인해 연강수량이 최대 10,271mm에 이르는 세계적인 다우지로 꼽히지만 섬들 간, 그리고 섬 내에서도 지형적인 특징과 위치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가령 지대가 낮은 섬의 경우 연평균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반면, 고지대가 발달한 섬은 연평균강수량이 높게 나타나며, 하나의 섬 내에서도 사면향이 동향으로 나타나는 바람받이 사면에서는 강수량이 높고 서향인 바람그늘 사면에서는 강수량이 낮다. 또한 고도가 높아질수록 강수량이 점차 증가하여 610m~915m 고도에서 최대로 나타나지만 그 이상의 고도에서는 다시 감소한다. 그러다 산정부를 넘으면서 바람그늘 사면 저지대에서 최소값을 나타낸다(Giambelluca et al., 2013). 지형성 강수 외에도 활발한 대류로 인해 국지적으로 발달하는 적운 또한 강수의 원인으로 꼽힌다(Price, 1983). 그 외 겨울철에 발달하는 저기압성 폭풍으로 강한 폭우가 이따금씩 발생하여 겨울 강수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Otkin and Martin, 2004). 하와이 제도 전 지역에서 주풍향은 북동풍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연평균풍속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0.3~1.0m/s에서 1.5~2.0m/s 사이로 나타난다(Giambelluca et al., 2013). 하지만 섬마다의 지형기복에 따라 산지와 계곡에 의해 풍향과 풍속이 국지적으로 교란되어 나타나며, 마우이(Maui) 섬 할레아칼라산 서사면 해발 600~1,200m에서의 경우 28~44m/s의 강풍이 불기도 한다.

인간의 생산활동과 관련하여 토양을 살펴볼 경우 제주도에는 12개의 토양목 중 6개목의 토양이 나타나는데(농촌진흥청 토양환경지도), 토색에 따라 크게 흑색 화산회토, 농암갈색 화산회토, 암갈색 비화산회토, 갈색 삼림토 등 4개 토양군으로 구분된다(NIAST, 2000). 최대 60만~최소 2만5천 년 전 분출된 현무암 기원의 화산회를 모재로 한 화산회토(Andisols)는 제주도 토양의 80%를 차지하면서 유기물 함량이 매우 높고 강산성을 띠며 평균 이하의 자연비옥도를 보여 이들 분포지역은 밭, 과수원, 초지, 임지로 활용되고 있다(유순호・송관철, 1991; 국토지리정보원, 2012). 비화산회토는 그보다 오래된 120만~70만 년 전 분출된 현무암으로부터 유래한 충적층을 모재로 한 토양으로 약산성을 띠고 낮은 유기물 함량을 보이나 자연 비옥도가 높아 이들 지역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유순호・송관철, 1991; 국토지리정보원, 2012).

하와이 제도에는 10개목의 토양이 분포하여 제주도보다 그 다양성이 훨씬 높으며, 이들 의 기원은 현무암질 용암과 화산회, 고대 산호의 퇴적으로 형성된 석회암, 지표유출로 인한 충적퇴적물로 구성된다(Deenik and McClellan, 2007). 이곳에서도 제주도와 같이 화산회토(Andisols)가 토양피복지 중 39%로 가장 넓게 분포한다. 전체 면적의 10% 이내의 지역만이 성숙토로 덮여있고 그 외 대부분의 지역은 매우 적거나 희박한 토양피복을 나타낸다(Wentworth and Macdonald, 1953). 하와이에서는 짧은 거리 내에서도 토양이 달라지는데, 이는 토양 형성에 기여하는 요인들이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Deenik and McClellan, 2007). 가령 섬들 간 생성연대에 따라 풍화에 노출된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섬 간에 토양이 달리 나타난다. 지질연대가 가장 오래된 카우아이(Kaua’i) 섬에서는 10개목의 토양이 모두 나타나는 한편, 지질연대가 약 50만년으로 가장 짧은 하와이 섬에서는 6개목의 토양만 나타난다(Deenik and McClellan, 2007). 토양의 발달은 강수량의 차이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녀, 건조한 해안 저지대에서는 대체로 유기물이 많은 토양이, 습윤한 산지에서는 척박한 산성토양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Deenik and McClellan, 2007).

2) 인문환경

제주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은 초기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고산리 유적으로 B.C. 7,600년을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소상영, 2017). 신석기 시대 동안 제주도인들은 비교적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부족단위의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추정되며(전경수, 1987), 역사시대에 들어 3성 씨족의 공동연맹체적인 체제를 갖추었다가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고씨 씨족을 국주로 한 탐라국이 성립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후 차례로 백제, 신라의 속국이 되었으나 신라 말기에 점차 복속 관계에서 벗어났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번국으로서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다 1105년 고려의 군으로 개편된 이래 한반도의 정치행정체제에 완전히 편입되었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오늘날 제주도의 인구는 2019년 12월을 기준으로 약 67만 명에 달한다(국가통계포털).

하와이 일대는 유럽인의 발견 이전 문자가 없는 구전전승 문화에 기반했기 때문에 그 기원과 역사에 대해 학자들마다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최근의 탄소연대측정법 결과에 따르면 A.D. 940~1130년경 하와이의 남서쪽으로 약 4,000㎞ 떨어진 마르케사스 제도(Marquesas Islands)에서 폴리네시아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Kirch, 1989; Athens, 2014). 1300년경 폴리네시아인들이 타히티(Tahiti) 섬으로부터 두 번째로 대거 이주하였고, 이후 400년 이상 외부로부터 고립된 채 여러 부족으로 갈라진 부족사회 또는 소왕국을 이루어 서구의 발견 직전 최대 3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West, 2010). 1778년 영국 탐험가인 제임스 쿡(James Cook)이 최초의 유럽인으로 하와이에 발을 들이면서 서구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서양의 진보된 과학을 흡수한 강력한 군주 카메하메하 1세(Kamehameha I)가 1795년 하나의 통일된 하와이왕국을 이루었다. 이후 이곳은 북미와 아시아 대륙 간에 발달하고 있던 무역업을 촉진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중계지로 각광받게 되었다(주한미국대사관, 2004). 19세기에 들어 하와이에 들어온 미국 북동부 출신 선교사들과 이들의 후예가 이민, 토지정책 등에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강력히 행사하여 하와이 통치자들의 권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유럽계 백인들이 더욱 이곳으로 몰려들었다(주한미국대사관, 2004).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맞물려 하와이가 세계적인 사탕수수 수출지로 성장하면서 미국인 농장 소유주들이 노동력 조달을 위해 약 40만 명 이상의 아시아인 노동자를 끌어들이게 되었다(Liu, 1984). 하와이왕국은 이후 1894년 백인 중심의 하와이공화국이 되었다가 1898년 미국과 합병조약을 체결,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었다(하와이관광청). 2018년을 기준으로 오늘날 약 142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미국 인구조사국).

현 시점에서 하와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주요 돌문화경관 요소들은 대부분 하와이 원주민의 부족사회와 왕조시대에 탄생된 것들로, 미국 본토에 편입되고 난 이후부터는 이들 대부분이 해체되는 과정을 걸어왔다. 따라서 하와이 일대의 돌문화경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과정에서 본 연구는 하와이 제도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되기 이전인 하와이 원주민들의 부족사회(A.D. 500년경〜18세기 후반 이전)와 왕조시대(18세기 후반〜1892년)에 형성된 돌문화경관 사례지역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3. 전통 농업 관련 돌문화경관:
제주의 밭담과 하와이의 코나필드시스템

제주와 하와이 일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통농업 관련 돌문화경관으로서 농업활동을 위해 축조한 돌담인 제주의 ‘밭담’과 하와이의 ‘코나필드시스템(Kona Field System)’을 들 수 있다.

1) 제주의 밭담

밭담은 제주도에서 밭의 주변에 경지 경계를 따라 쌓은 담을 말한다. 밭담의 연원에 관하여 고문헌에서 크게 두 가지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1234년 고려시대 중엽 제주판관 김구의 지시로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경계용 돌담을 쌓기 시작했다는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1669년 간행된 『남사록(南槎錄)』에서 경지를 개간할 때 나오는 수많은 돌을 주변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돌담을 축조했다는 기록이다(강성기・정광중, 2019). 밭담이 처음 축조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으나, 토양의 발달이 미약하고 화산암으로 피복된 제주의 환경과 제주 전역에 걸쳐 형성되어있는 밭담의 규모로 보아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김종석, 1998). 13세기에 들어 대규모의 계획적 정리 및 확산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최소 800여 년 전부터 제주도 전역에서 본격적인 밭담 축조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밭담의 용도 및 기능은 크게 해풍과 토양유실로 인한 작물피해 방지, 경지 간 경계 구분, 방축 등으로 요약된다(강성기, 2011; 정승훈, 2014). 제주도는 개방수면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람의 강도와 빈도가 한반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특히 제주도는 겨울철 북풍계열의 강풍이 높은 빈도로 발생하며, 매년 여름철 수차례 지나가는 태풍의 영향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생육에 적합한 풍속일수가 더욱 적게 나타난다. 이에 제주도 주민들은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로 경작지를 둘러 담을 쌓아왔다. 이를 통해 강풍에 의한 물리적인 피해뿐 아니라 해풍에 실려 오는 해염으로 인한 염해와 투수성이 높은 지질 특성상 건조한 토양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김종석, 1998). 나아가 고려시대 중엽 이후 경지 간 경계용으로서의 기능을 공고히 하게 되었으며, 13세기 말 몽고의 제주도 목마장 개발로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마소의 방목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고자 방축의 기능을 함께 하게 되었다(강만익, 2009; 2013; 이병렬・이종수, 2014). 제주도에 관하여 작성된 1600~1940년대 문헌들에서는 밭담의 여러 기능 중 특히 방축을 주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시기적으로 조선왕조의 국마장이 15세기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강성기・정광중, 2019).

밭담은 다양한 크기의 현무암 암괴를 쌓아올린 구조를 지니며, 경지를 따라 선형의 형태로 나타난다(그림 2). 밭담의 높이는 지역별, 마을 내 경지의 위치, 우마의 체격, 재배작물, 쌓는 주체, 도로공사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0.5~2m의 범위로 나타나며 대개 1~1.2m 사이로 축조된다(이성우・김만규, 2012; 이코모스한국위원회, 2016; 정광중, 2017). 또한 해안에 가까울수록 해풍으로부터의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돌담의 높이가 더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강성기・정광중, 2016). 이들의 배치가 전형적인 등고선재배 양식을 보이는 것은 아니나,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으로 이뤄진 등고선을 따라 밭담이 해안지대에서부터 중산간지대에 걸쳐 이와 유사한 양상으로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 대부분의 농업지대에서 밭담이 존재하며, 특히 읍・면지역 마을 중 밭농업이 활발한 곳에서 잘 보존되어 나타난다. 밭담이 있는 농경지에서 재배되는 작물로 과거에는 제주도의 주 작물이었던 보리와 콩, 조, 고구마가 많았으나 오늘날에는 마늘, 양파, 무, 당근 등으로 다양하다(강성기・정광중, 2016). 밭담의 축조와 보수는 경작 과정에서 나오는 돌들을 보통 경지 주인인 개인 또는 가족단위로 가공 없이 경작지 주변에 쌓는 식으로 이뤄졌으며, 간혹 집안에 일손이 없을 경우 석공에게 의뢰하여 이루어졌다(강성기・정광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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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제주도의 밭담

2) 하와이의 코나필드시스템

코나필드시스템은 하와이 섬 내에서도 서부의 코나(Kona) 지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돌담으로 이루어진 농지환경체계를 말한다. 하와이 섬은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섬으로 지질연대가 50만년 정도로 짧아 하천과 하곡의 발달이 매우 미약하다(Vitousek et al., 2004). 그 결과 하와이 제도 내 상대적으로 지질연대가 오래된 섬에서는 하천과 관개시설을 이용한 습윤농법이 행해진 반면, 지질연대가 짧은 하와이 섬에서는 빗물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건조농법이 발달하게 되었다(Vitousek et al., 2004). 코나필드시스템은 고대 하와이때부터 건조농법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곳으로, 하와이 섬 서부에 위치한 코나 지역을 중심으로 약 15,500ha에 걸쳐 나타난다(Ladefoged et al., 2009). 이곳은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북동무역풍이 최대높이가 4,170m인 마우나로아(Mauna Loa)와 2,521m인 후알랄라이(Hualālai) 산을 넘어 내려오는 바람그늘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그림 3). 연중 북동무역풍이 몰고 오는 열대 해양의 습윤한 공기가 화산을 만나 바람받이 사면에 많은 비를 내리고, 산정을 넘어 상대적으로 건조해진 공기가 사면을 따라 내려오면서 해안으로 올수록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상태가 나타나게 된다(Giambelluca et al., 2013). 이때 바람그늘 사면을 따라 공기가 내려오면서 고도에 따라 상이한 미기후적 특징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활용하여 발달한 코나지역 고유의 농법이 바로 코나필드시스템이다. 코나 지역에서는 연강수량이 해안에서 600mm/yr 정도이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늘어나면서 600m 고도에서는 2,000mm/yr에 달하고, 그러다 더 높은 고도로 갈수록 연강수량이 다시 감소하는 양상을 나타낸다(Giambelluca et al., 2013). 이는 이 일대를 덮고 있는 최소 65년에서 만년 이상 된 용암류의 분포와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지역에 따라 토양 비옥도가 매우 상이하게 나타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코나필드시스템은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정도로 강수가 발생하는 일정 고도 지대와 용암류가 분출한지 약 4,000년 이상 되어 토양 발달 및 비옥도가 일정수준 이상인 지역이 중첩되는 곳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Ladefoged et al., 2009). 코나 지역의 원주민들은 이 일대를 고도에 따라 크게 4개 지대로 구분하여 지대별 미기후와 토양비옥도에 따라 작물, 재식 기법, 파종 및 수확 등 농사시기를 달리 하였다(Lincoln and Ladefoged, 2014)(그림 4)(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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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하와이 섬의 지형기복과 연평균강수량 및 코나필드시스템의 위치(Giambelluca et al.,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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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코나 지역의 전통 농업지대에 대한 현대 예술작품(Bishop Museum; Lincoln and Ladefoged(2014)에서 재인용)

표 1.

코나필드시스템의 지대별 명칭과 특징

명칭 고도(m) 강수(mm/yr) 주요 재배작물 특징
아마우
('Ama'u)
600~900 2,000~2,500 플랜테인
(바나나의 일종),
바나나
산림농업 지대. 나무 밑에 농작물(얌 등)을 함께 재배. 목재와
나무껍질 수확, 조류 사냥, 백단(sandalwood) 벌채.
영구거주를 위한 가옥은 부재.
아파아아
('Apa'a)
300~600/750 1,500~2,000 고구마(하단부),
타로(상단부)
사면방향과 평행한 긴 돌담((Kuaīwi)과 잘 정돈된 경지로
체계적으로 구성된 주 농업지대. 대부분의 주식작물이
이곳에서 재배됨. 일부 가옥 존재.
칼루울루
(Kaluulu)
150~300 800~1,500 빵나무(breadfruit),
고구마, 닥나무
빵나무 재배에 기반한 산림농업 지대. 일부 가옥 나타남.
쿨라
(Kula)
해안~150 800~1300 고구마, 닥나무 매우 건조한 저지대 평지. 해염입자의 영향을 받는 구간. 작은
정원과 동물우리를 지닌 가옥들 밀집지대. 수피포(樹皮布)
제작을 위한 닥나무 농장.
자료: Hommon(2013)Lincoln and Ladefoged(2014)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함.

이러한 코나필드시스템을 이루는 핵심 인프라는 특히 칼루울루(Kaluulu)와 아파아아(‘Apa‘a) 지대 사면을 따라 길게 내려오는 낮은 돌담인 ‘쿠아이위(Kuaīwi)’이다(그림 5). 원주민들의 언어로 ‘등뼈’를 의미하는 쿠아이위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돌로 쌓은 석벽(wall)이라기보다는 높이 0.3~1m, 폭 2~3m의 돌무더기(mound) 형태로, 규모는 높이 약 0.3~1m, 너비 2~3m 전후에서 최대 5m, 길이는 1km 정도에서 그 이상으로 나타난다(Allen, 2004; Hommon, 2013). 모르타르 없이 석재만을 이용해 축조하는 건성쌓기 공법 중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막쌓기 식으로 중・소규모의 거력과 큰 자갈들로 가장자리를 쌓고, 비교적 균일한 크기의 상대적으로 작은 암편들로 마운드 정상부의 표면을 덮는 형태로 구축된다(그림 6). 이러한 덮개부는 그 자체가 멀칭(mulching)의 역할을 하게 되어 토양수분의 증발과 토양 침식을 감소시키고 토양의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Major and Alle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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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코나필드시스템과 쿠아이위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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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쿠아이위의 3개 발달단계별 단면 모식도(McCoy et al., 2017)
①,②: 토양과 암편들로 구축된 낮은 마운드 형태의 초기 단면
③: 쿠아이위의 마지막 발달단계로, 오늘날 확인되는 전형적인 단면

하와이 원주민들은 척박한 산지사면에서 효율적으로 농지를 확보하여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 기후 특성상 고지대에서 많이 발생하는 강수가 저지대까지 내려와 저지대 작물 재배를 위한 수원 확보가 가능하도록 사면 방향과 평행하게 연속적으로 돌담을 쌓았다. 이렇게 농지시스템의 뼈대를 이루는 쿠아이위들 사이에 등고선 방향으로도 좀 더 높이가 낮은 마운드형 담을 쌓아 장방형의 경지를 분할함으로써 토양생성이 늦은 코나 지역에서 토양 유실을 막을 뿐만 아니라 수분을 보존하고 바람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자 하였다(Newman, 1972; Greene, 1993).

쿠아이위는 이러한 구조물은 경지간 경계 표시의 기능도 겸하였다. 하와이에 처음 입도한 유럽인들은 쿠아이위가 개개의 가족단위 토지구획 간 경계로서 기능한다고 보고한 바 있으며, 하와이의 19세기 토지 재판기록에 따르면 쿠아이위로 나뉜 장방형의 구획 내에서 개별적인 재판 청구가 이루어졌다(Kelly, 1983; Allen, 2004).

하와이 원주민들은 당시의 식량자원인 고구마, 타로(taro)를 비롯해 빵나무, 바나나, 멜론, 사탕수수, 코코넛, 파인애플, 닥나무 등 다양한 뿌리작물과 수목작물을 그것이 성장하기에 제일 좋은 최적의 지역에서 재배했다. 특히 코나필드시스템에서 특징적인 것은 쿠아이위 사이 경지에 고구마, 타로 등의 주요작물을 재배하는 한편, 돌담인 쿠아이위 위에서도 사탕수수나 티(Cordyline fruticosa)와 같은 키가 크고 잎이 긴 작물을 심었다는 점이다. Alderfer and Merkle(1943)Hommon(2013)의 연구에서 암편멀칭(rock mulch)이 이뤄진 경지에서는 지표에 유입된 강수의 3~10%만이 소실된 반면, 그렇지 않은 경지에서는 강수의 60%가 유출로 소실되는 것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이미 쿠아이위 그 자체로도 토양수분의 손실을 50% 이상 낮추고 토양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피복재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하와이 원주민들은 쿠아이위 위에서 재배한 작물 잎을 수확하여 경지 내 토양건조와 토양침식을 막기 위한 멀칭 기법에 추가적으로 활용하였다(Vitousek et al., 2004). 그러한 점에서 쿠아이위는 코나필드시스템 내 영양 순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하와이 원주민이 수백 년 동안 농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매개체라 할 수 있다(Vitousek et al., 2004).

4. 전통 어업 관련 돌문화경관:
제주의 원담과 하와이의 로코이아(Loko i'a)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로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이어오는 원시적인 어업형태 중 하나이다. 만조 시 해안 가까이로 이동해온 물고기를 가두기 위한 구조물의 재료로서 대나무 등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물이 활용되었는데(주강현, 2006), 열대 및 아열대 해상의 화산섬인 하와이제도와 제주도에서의 경우 현무암이 활용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결과 이들 지역에서는 일렬로 늘어선 검은 돌무더기가 푸른 바닷물을 반원형으로 가두는 특유의 돌문화경관이 해안 곳곳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예로부터 제주도에서는 이를 원담(갯담)이라 하였으며, 하와이에서는 로코이아(Loko i'a)라 불렀다.

1) 제주의 원담

원담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용 돌담으로, 크고 작은 암편과 자갈로 수심이 낮은 연안의 만입부를 둘러싼 인공담을 축조하여 밀물의 물살에 따라 고기들이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썰물이 되면 원담 안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정광중・김은석, 2008). 시기상 선사시대 수렵이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정주연 등, 2019), 지역에 따라 제주도 조천읍 조천리에서 동쪽으로 구좌읍 하도리까지의 동북부 해안지역에서는 ‘갯담(개)’, 그 외 지역에서는 ‘원담(원)’으로 불리고 있다(정광중, 2011; 정주연 등, 2019). 대부분의 원담은 현무암 돌을 쌓아올려 만들어졌지만 노출된 용암류 암반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김종석, 1998). 원담의 모양은 대부분 타원형이나 직선형으로 나타나며, 일부 원담에 한해 사다리꼴의 형태를 지니기도 한다(그림 7). 외담 또는 2~3겹의 겹담 구조를 지니며, 원담 안쪽으로는 바닥면과 직각을 이루고 바깥쪽은 비스듬히 경사져있는 경우가 많다(김종석, 1998; 이코모스한국위원회, 2016). 원담 내부의 바닥은 주로 모래와 해초로 이루어져있다. 원담의 규모 즉 담의 높이, 너비, 길이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길이 30~60m, 폭 1~2m, 높이 0.8~1.5m로 나타난다(이코모스한국위원회, 2016). 간조 시 원담의 면적은 소형의 경우 330㎡(약 100평) 이상, 중형인 경우 약 1,000㎡(약 300평), 대형인 경우 약 3,300㎡(약 1,000평) 정도에 달한다(이코모스한국위원회, 2016). 제주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민들이 공동으로 원담을 설치하여 연안에 들어오는 어류를 포획해왔으며, 각 원담은 마을주민들의 공동소유로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관리해왔다(김종석, 1998; 정광중, 2017). 고광민(2003)에 따르면 제주도 내 원담은 약 342개가 있었으나 근현대기간 동안 어로기기와 어로방법의 변화, 포구, 방파제, 해안도로, 관광용 시설물 등의 축조와 확장, 방치, 자연파괴 등으로 많은 수가 사라졌고, 2013년 조사 결과 이들 중 98개가 확인된 바 있다(정광중, 2017). 현재는 대부분이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으며, 일부 원담에 한해 마을주민들이 현재까지 어업용으로 활용하고 있다(이코모스한국위원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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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제주도의 원담(갯담)

2) 하와이의 로코이아

하와이 지역에서도 제주도의 원담과 같이 돌로 쌓아 만든 어로시설을 활용하여 다양한 어류를 포획해왔다. 고대 하와이인들은 태평양 연안의 원주민 중 가장 발전된 어류 양식을 하였는데 이는 하와이어로 로코이아(Loko i'a), 영어로 피시폰드(fishpond)라 불리는 양어지(養魚池)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해안에서 평평하고 얕은 곳을 바위로 벽을 쌓아 빙 둘러 만든 못에서 여러 종류의 식용 물고기를 키우며 이를 원하는 때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1778년 제임스 쿡이 이곳에 도착한 당시 최소 360개의 로코이아에서 연간 900톤 이상의 생선을 양식했으며(Costa-Pierce, 1987), 1830년까지 최소 449개의 로코이아가 설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Kikuchi, 1973). 특히 전체 로코이아 중 절반가량이 오아후 섬에 분포하였다(Costa-Pierce, 1987). 현재는 이들 중 약 25개의 로코이아가 남아 있으며, 그 중에서도 13개만이 사용되고 있다.

로코이아의 분포와 규모는 현지의 지형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오아후 섬의 진주만-칼리히만 일대와 같이 해안선이 복잡하여 많은 만입지형이 발달한 곳에 로코이아가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그림 8). 또한 해안에 인접하여 넓고 얕은 암반지대가 나타나는 곳에서도 집중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이들 지역에서 해안선으로부터 반원형의 돌담을 쌓아 수많은 로코이아를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Green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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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오아후 섬의 진주만과 칼리히만 인근에 분포하는 30개 이상의 로코이아

(좌: Klasner and Mikami(1998), 우: Costa-Pierce(1987))

로코이아는 대부분 연안 해상에 반원형의 돌담과 1곳 이상의 수문을 설치하여 염수로 가득 찬 해안못(shore pond)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유형의 양어지를 로코쿠아파(Loko kuapa)라 하는데, 폴리네시아에서도 하와이 제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로코쿠아파는 해안을 따라 비교적 얕은 두 지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만나는 반원형의 돌담을 쌓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만의 입구를 가로질러 돌담을 쌓는 방식으로 건설되었다(그림 9). 해안못 외에도 연안에 인접한 내륙못(inland pond)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가령 하천이나 샘으로부터 담수를 공급받는 동시에 연안에 평행하게 발달한 사주에 막혀 염수가 제한적으로 드나드는 석호에 발달한 로코이아의 경우 기수로 차 있으며, 하와이어로 로코푸우온(Loko pu'uone)으로 불린다. 연안 사주의 발달로 염수의 출입이 완전히 막혀 내륙의 담수로만 이루어진 로코이아의 경우 로코와이(Loko wai)라 한다(Green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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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오아후 섬의 로코이아

하와이인들이 로코이아에서 키운 주요 어종은 가숭어(Chelon haematocheilus), 갯농어(Chanos chanos), 실전갱이(Polydactylus sexfilis)였으며, 그 외 새우, 게, 장어 등도 함께 양식하였다. 이러한 어종의 먹이인 조류(algae)와 해초는 햇빛, 염분, 신선한 물이 적절한 비율로 결합될 때 가장 잘 자란다. 따라서 돌담으로 둘러싸인 수역의 수심이 햇빛이 투과할 수 있도록 0.6~1.5m 정도로 낮아야 했으며, 하천이나 용천으로부터 담수가 공급되는 로코이아의 경우 염수와 담수의 혼합으로 생산성이 더욱 높은 이상적인 양식지 조건을 갖추었다. 로코이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염분, 물고기의 먹이 공급, 온도 및 기타 환경적 요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Kelly, 1979; Greene, 1993).

로코이아의 재료로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들이 활용되었다. 돌담의 재료로서 물은 통과시키지만 어류가 빠져 나가는 것은 방지하는 다공질의 현무암과 산호석이, 수문에 설치된 살대 제작에는 목재가 사용되었다. 로코이아의 바닥은 사질성 퇴적층으로 이루어졌다. 돌담의 너비는 0.9m에서 5.7m 사이, 평균 1.5m 정도로 나타난다. 돌담의 높이는 만조 때 범람을 방지하도록 공통적으로 만조 수위 이상인 0.9~1.5m 정도로 건설되었다. 돌담의 길이와 그에 따른 수역의 면적은 지역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령 오아후 섬의 와이카루아 로코이아(Waikalua Loko i'a)의 돌담 길이는 약 427m, 해당 로코이아의 수역은 약 44,000㎡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헤이아이아 피쉬폰드(He‘eia Fishpond)의 돌담 길이는 1.5km가 넘으며 그에 따라 수역도 356,000㎡ 이상의 면적으로 나타난다(James, 2010).

하와이인들은 돌담 사이에 최소 1개 이상의 수문을 만들었으며, 약 1m의 수문에 나무 막대기를 약 1.3cm의 틈을 내 촘촘히 나열하거나 격자로 엮어 만든 살대(makaha, 마카하)를 설치해 치어는 로코이아 안으로 들어오고, 외부의 포식자가 들어오거나 내부에서 자란 성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차단하였다. 수문의 위치에 있어 정형화된 기준은 없으나, 유수의 흐름이 잘 오가면서 실트 침적 및 정체를 줄일 수 있는 곳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요에 따라 수문 근처에 망루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는 돌담 밖 주변부에서 다양한 어류가 유영하는 모습이나 돌담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을 지켜보는 동시에 로코이아에서 성장한 고기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지의 여부도 확인하는 목적을 지녔다(James, 2010). 그 외 망루 옆으로 작은 사각 못을 설치한 경우도 있는데, 이는 로코이아에서 성장한 성어들을 잡거나 판매하기 직전 일시적으로 보관한 장소로 추정된다.

전통적으로 로코이아는 부족장의 주도로 건설되어 엘리트계급인 부족장이나 제사장이 소유하고 파수꾼에 의해 관리되었다. 하나 이상의 로코이아를 소유했다는 것은 부족장의 지위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18세기 말까지 하와이 최고위 족장들이 300개 이상의 로코이아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떤 로코이아의 경우 오직 부족장과 제사장으로 이뤄진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허용되기도 했다(Apple and Kikuchi, 1975; Greene, 1993). 그러다 1840년경 후반 모든 로코이아가 하와이 귀족들에게 증여된 것을 시작으로,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팔리거나 임대되어 사용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는 매립, 개발되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 사유지나 일부 지역 커뮤니티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사용되는 연못의 경우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물고기를 양식하지 않고 현대적 양식기술로 고대 관행을 보완하여 운영하고 있다.

5. 제주와 하와이의 돌문화경관 비교분석

본 연구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유사한 지질 및 지형환경을 지닌 제주도와 하와이 제도에서 나타나는 전통 생업경관의 특색을 돌문화경관 요소를 중심으로 비교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문헌연구와 현지답사를 토대로 제주와 하와이의 자연환경을 비교하고, 이것이 반영된 각 지역의 돌문화경관을 크게 전통 농업 및 어업경관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제주와 하와이의 돌문화경관 간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였다. 우선 전반적으로 두 지역 모두 전통 생업경관을 이루는 돌문화경관 요소들이 화산암으로 이루어져있었다는 점에서 재료적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섬의 형성 시기는 다르나 섬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화산암, 그 중에서도 현무암질 용암이 널리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두 섬에서 나타나는 전통 건축물과 기념물 또한 현무암을 활용한 것들이 대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그 안에서도 지역에 따른 차이가 나타난다. 제주도의 경우 가장 널리 분포한 현무암과 조면현무암도 분출 당시의 환경과 구성광물의 비중에 따라 암색이 흑색에서 암회색, 담갈색, 회색에 걸쳐 나타나고 기공의 발달 정도도 다양하게 나타나나며, 일부 해안지역에서 나타나는 퇴적암의 경우 담황색 및 암갈색을 띠는 특징을 지닌다(국토지리정보원, 2012). 따라서 이를 활용하여 구축된 돌문화경관 요소들 역시 제주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상이한 암색과 기공 특징을 지닌 암편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영자, 2013). 하와이의 경우 제주도보다 훨씬 더 우세하게 거의 전 지역이 현무암질 용암류로 덮여있는 가운데, 세부적으로는 감람석현무암, 현무암, 피크라이트현무암 순으로 암석 유형별 비중이 나타난다(Wentworth and Macdonald, 1953). 이들 간 미세한 조성성분 차이에 따라 암색이 흑색이나 암회색을 띠는 경우도 있지만 중간정도의 회색에서 밝은 회색을 띠는 경우가 제주도보다 더 높은 빈도를 보이며, 기공의 발달정도나 형태 역시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Macdonald, 1949). 그 결과 하와이 일대의 돌문화경관 요소들을 이루는 암편들 역시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을 반영하여 제주도 돌문화경관 요소들과 유사한 경관을 구성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차이를 나타냈다.

전통 생업경관의 유형별로 구조와 용도를 비교할 경우 전통 농업과 관련된 돌문화경관으로서 하와이 섬의 코나필드시스템에서 확인되는 쿠아이위와 제주도의 밭담은 크게 대비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경관적 요소라 할 수 있다(표 2). 쿠아이위와 밭담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농지가 적은 화산지역에서 경지면적을 넓히기 위해 돌무더기를 반드시 걷어내고 치워야만 하는 불편함과 동시에 이를 적재할 수 있는 특정 장소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쿠아이위와 밭담이 위치하는 지점의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농지 주변에 불필요한 돌을 걷어내어 경지면적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분명히 유사성을 지닌다. 다른 하나는 쿠아이위나 밭담은 바람이나 빗물에 의한 토양의 유실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정 기간 수분을 보전하는 데에도 유효하며 더불어 작물 병충해의 속도를 완화시키는 기능까지도 겸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밭담과 쿠아이위는 둘 다 각 지역에서 경지 간 경계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표 2.

제주와 하와이의 전통 농업 관련 돌문화경관 비교

제주의 밭담 하와이의 쿠아이위
축조의 목적 및 필요성 농지 주변에 불필요한 돌을 걷어내어 경지면적을 넓힘
기능 바람/빗물에 의한 토양유실 저감, 토양수분 보전, 병충해 속도 완화
돌담의 설치구조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으로 분포한 등고선에
대략 평행한 방향으로 나열
등고선에 완연한 수직 방향으로
사면과 평행한 선적 구조
공간적 분포 섬 전역의 해안저지대를 중심으로
중산간지대에 걸쳐 비교적 고루 분포
하와이 제도 중
하와이섬과 마우이섬 서부에 국한
돌담구조가 발달하게
된 사회적 배경
필요에 의해 오래 전부터 시작,
13세기 이래 관 주도로 경지경계 구분을 위해 섬
전반에 걸쳐 분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지닌 코나 지역에
인구가 점차 밀집, 15세기에 성립된 강력한 족장사회
하에 농업시설의 대규모화 및 체계화

쿠아이위와 밭담 간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으로는 우선 돌담의 설치구조를 들 수 있다. 제주도의 밭담은 많은 온대 및 아열대지역에서 발달한 바와 같이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으로 분포한 등고선에 대략 평행한 방향으로 나열되어있는 반면, 코나필드시스템의 쿠아이위는 등고선에 완연한 수직 방향으로 사면과 평행한 선적 구조를 지닌다는 점이다. 이러한 코나필드시스템의 독특한 구조는 연중 무역풍의 비그늘 지역에 해당하여 강수량이 중산간지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지만 해안 저지대로 내려올수록 희박해지는 코나 지역 특유의 강수분포에서 기인하였다. 만일 이 지역에 기존 온대 및 아열대의 등고선 경작 구조에 기반한 돌담이 설치될 경우 사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를 차단하여 사면 하단부에서는 물을 공급받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사면방향으로 돌담을 세워 사면 위와 아래지역 모두 수원을 공급받게 하면서 각 고도에 따른 기온과 강수 및 토양비옥도에 적합한 작물을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재배했던 것이다(Lincoln and Ladefoged, 2014; Vitousek et al., 2004).

제주도와 하와이 제도에서 나타나는 농업용 돌담은 그것의 공간적 분포와 관련해서도 또 다른 차이를 지닌다. 제주도의 경우 밭담이 섬 전역의 해안저지대를 중심으로 중산간지대에 걸쳐 비교적 고루 분포하게 되었다. 이는 제주도의 주요 수원인 용천이 해안에 집중되어 나타나긴 하지만 중산간지대에도 적지 않은 수가 분포하고 있는 점(박원배, 2006), 투수성이 높은 화산암지대 특성상 하천과 하곡의 발달이 육지에 비해 미약하긴 하지만 오랜 침식뿐 아니라 화산성 단열, 용암동굴 붕괴, 지하수 유로 등으로 남・북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점(김상호, 1963)에 기반한다. 그러나 하와이에서는 오직 강수에만 의존하는 코나필드시스템과 같은 건조농법 돌담구조를 보이는 곳이 8개 섬 중에서 하와이섬과 마우이섬 동부에 국한되어 나타난다(Vitousek et al., 2004). 이는 두 섬이 하와이 열도 중 가장 마지막에 형성되어 다른 오래된 섬들에 비해 하천과 하곡이 발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관개시설에 기반한 습윤농법을 행할 수 없었던 척박한 환경에서 기인한다(Vitousek et al., 2004).

돌담구조가 발달하게 된 사회적 배경에 있어서도 두 지역 간 차이가 나타난다. 제주도의 경우 사람들이 밭담을 쌓아올리기 시작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필요에 의해 오래 전부터 시작해왔고, 13세기 이래 관 주도로 추가된 경지경계 구분이라는 명확한 용도를 필두로 섬 전반에 걸쳐 분포하게 되었다. 한편 하와이 섬의 코나필드시스템의 발달과 확장은 과거 하와이 원주민 사회에서 코나 지역의 사회・정치적, 인구학적 맥락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하와이 섬의 코나 지역은 강수량이 많은 습한 동부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온난하고 적당히 건조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Kamakau, 1961). 그러다 A.D. 1450년에서 1500년 사이 코나 지역에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Cordy, 1974a; 1974b), 1400년대에서 1600년대 초 사이 섬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강력한 족장사회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성립되면서 서구인의 유입 직전까지 코나가 정치적 중심지로 자리하였다(Greene, 1993). 급증하는 인구집단을 부양하기 위해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 하에서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농업시설의 축조가 이뤄질 수 있었고, 그 결과 선사시대 때부터 존재했던 코나필드시스템이 15세기를 기점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여 19세기까지 체계적 발달을 이루었다(Lincoln and Ladefoged, 2014). 즉, 족장의 권력이 중심화된 이래 경지시스템이 점차 발달, 확장해나가면서 서로 다른 곳에 산재해있던 농업지대들이 오늘날에 확인되는 하나의 연속된 체계로 발전해나간 것으로 사료된다.

전통 어업과 관련된 돌문화경관으로서 제주의 원담과 하와이의 로코이아는 조수간만에 따른 연안에서의 조류 흐름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가둔다는 점에서 구조와 형태 및 용도에 있어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지역에서 이를 설치하는 장소, 세부구조 및 규모, 그리고 돌담 내부공간의 이용방법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표 3). 제주의 원담은 밀물 때 원담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온 어류를 썰물 때 곧바로 뜰채 등을 이용해 포획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김종석, 1998). 반면 하와이의 로코이아는 평소 조수의 흐름에 따라 작은 치어가 돌담 중간에 설치한 일정한 통로를 통해 들어오도록 설계되었으며, 내부로 들어온 치어들은 성어가 될 때까지 가두어 키우다가 필요시 일정한 양을 포획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Apple and Kikuchi, 1975). 이러한 두 지역 간 돌담의 운용방식 차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차가 큰 장소에 원담이 설치되는 반면, 하와이에서는 고기들을 오랜 기간 양식하기 위해 항상 일정한 수준의 신선한 물이 차 있을 수 있도록 주로 강 하구 쪽을 선택하여 로코이아를 설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고기들이 노닐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공간 확보를 위해 로코이아는 돌담 내부공간의 면적이 제주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를 이루었으며, 그 결과 돌담의 길이도 훨씬 길게 축조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지니게 되었다. 하와이 제도에도 제주의 원담과 같은 석조 물고기덫(fishtrap)이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나, 로코이아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수를 보이며 원주민사회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중요도도 낮아(Kirch, 1985) 본 연구에서는 제외했다.1) 로코이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하면서 미래의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는 더 진보된 어로시설로 평가받고 있다(Greene, 1993). 특히 제주의 원담과 구별되는 로코이아의 특징적 요소인 수문은 오직 조류에 의존하는 기존의 폐쇄적인 돌담에서 어떤 조수에도 조절될 수 있는 인공 어로시설로 발전하게 한 기술 혁신으로 꼽힌다(Apple and Kikuchi, 1975).

표 3.

제주와 하와이의 전통 어업 관련 돌문화경관 비교

제주의 원담 하와이의 로코이아
용도 조수간만에 따른 연안에서의 조류 흐름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가둠
구조와 형태 주로 반원형~직선형의 돌담
설치하는 장소 상대적으로 조차가 큰 장소 항상 일정한 수준의 신선한 물이 차 있을 수 있도록
주로 강 하구 쪽을 선택
세부구조 및 규모 소형의 경우 100평 이상, 중형인 경우 300평, 대형인
경우 1,000평 정도. 돌담으로만 구성됨
고기들이 노닐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공간 확보를 위해
대규모로 나타남.
돌담과 함께 1~2개의 수문을 반드시 지님
돌담 내부공간의
이용방법
밀물 시 원담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온 어류를 썰물 때
곧바로 뜰채 등을 이용해 포획
조수의 흐름에 따라 통로를 통해 내부로 들어온
치어들을 성어가 될 때까지 가두어 키우다가 필요시
일정한 양을 포획
어업자원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성
마을 공동체 소유로
주민들이 공동 축조와 관리 및 공동 사용
1800년대 중반 이전에는 평민도 양식된 자원의
이용권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1800년대 중반 이후
이들의 접근성이 매우 제한됨

사회적 맥락 속에서도 두 지역에서 이 시설들을 활용한 양상에 차이가 확인된다. 제주의 원담이나 하와이의 로코이아 모두 개인이 축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규모로 나타난다. 따라서 두 지역에서 모두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어 이러한 어로시설이 축조되었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 원담은 관 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로 조성된 어로시설로, 마을 공동체가 합심해서 원담을 쌓고 공동 소유하며 그 마을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 원담에서 자유롭게 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강성기・정광중, 2019; 정광중, 2017). 이는 한반도의 다른 지방에서 나타나는 전통 어로시설들이 개인 소유였던 것과도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고광민, 2004). 겨울철 파도에 허물어진 원담을 정기적으로 보수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끼리 대소사 때 도움을 주고받는 접(接), 계(契)를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원담의 축조와 보수 등 관리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광민, 1997). 즉 원담은 공동어장을 점유하고 이용하는 어업공동체와 마을공동체가 연결되어, 공동노동과 거주공간의 영역성이 결합된 제주 특유의 ‘어촌공동체(김준, 2010)’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시설이다. 반면 하와이 로코이아의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거대했고, 따라서 축조에 소요되는 시간, 자재, 인력, 노동력 등의 직간접적 비용이 장기적, 집약적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러한 구조물의 축조 배후에 족장의 권력이 작용하였다(Apple and Kikuchi, 1975; Renger, 1974). 역사적으로 로코이아는 특히 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에 대규모 인구집단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이 강화된 때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Apple and Kikuchi, 1975; Kirch, 1985). Kelley(1979)에 따르면 1800년대 중반 하와이왕국의 대대적인 사회변혁2) 이전까지는 족장이나 왕의 지휘 하에 로코이아가 건설되기는 했으나 이들만의 사유물은 아니었고 모든 주민들이 로코이아 내 물고기의 이용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1800년대 중반 이후 로코이아에 대한 족장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힘이 강한 족장일수록 많은 로코이아를 소유하였다(Apple and Kikuchi, 1975; Kikuchi, 1973). 그 결과 로코이아에서 양식된 자원에 대한 접근성은 제주 원담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엘리트계층 소유의 로코이아는 평민에게 금기(kapu)로 여겨져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Apple and Kikuchi, 1975).

6. 결론

본 연구에서 문헌조사와 현지답사를 통해 현재 제주도와 하와이에서 나타나는 전통 농업 및 어업 관련 돌문화경관의 보존 상태와 보전 양상을 조사한 결과 두 지역은 이에 대해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와이 제도의 경우 대략 A.D. 500년경부터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한 이래 오랜 세월동안 도서별 또는 지역별로 부족사회를 이루며 다양한 돌문화경관 요소들을 창출하는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하와이왕조 시대(1795~1892년)까지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850년대부터 사탕수수 농업의 급성장과 함께 외부인들의 유입이 대거 이루어지고 이후 하와이왕국의 멸망, 공화국 수립기, 미국 합병을 거치면서 하와이 지역은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전통적 생활환경이 크게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하와이의 돌문화경관 요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소멸되는 국면을 맞게 되었으며, 그나마 잔존하게 된 유산들조차도 지역적으로 극히 한정되거나 영역이 축소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배경에는 하와이 지역이 미국 영토로 편입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진 관광개발과 함께 원주민 수의 감소,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환경과 농어업 환경의 붕괴 등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 결과 현재 하와이 고유의 전통적인 돌문화경관 요소들을 쉽게 접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관광객 유입도가 높은 오아후나 하와이 섬에서는 더욱 그러한 상황이다. 원주민들도 더 이상 과거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꾸리거나 농업 및 어업활동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답사 결과 하와이 원주민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돌문화경관 요소들은 관광자원화나 상품화와도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하와이지역의 돌문화경관 요소들은 이미 박제화 되었거나 사장된 사례가 많았다. 일부 유산들이 복원 또는 정비과정을 밟아 유적으로 잔존하고 있으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연구자들조차도 자유롭게 접근하여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도의 경우 하와이에 비해 오늘날 돌문화경관의 보존 상태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사료된다. 밭담의 경우 오늘날까지 밭농업 중심의 농업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제주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농업적 가치를 지니며, 최근에는 제주의 미학을 대표하는 빼어난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활발히 관광자원화되고 있다. 원담은 대부분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 현 시점의 활용도는 매우 낮지만, 한반도와는 매우 다른 제주도 특유의 돌문화경관에 대한 민, 관, 학 모든 부문에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를 가꾸고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지속가능하게 보전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제주의 일부 마을을 시작으로 주민 주도의 문화유산보전회, 향토보전회를 통해 지역의 유산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을 들 수 있다. 또한 관 주도의 문화유산 보존사업도 과거 하향식의 추진 방식에서 지역주민들과의 소통과 적극적인 참여를 도모하여 유산의 지속가능한 활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1) 하와이의 석조 물고기덫은 제주의 원담과 마찬가지로 밀물 때 돌담 너머로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담 안쪽에 가두어지면서 이를 그때그때 채집하기 위한 어로시설로, 태평양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석조 어로시설 중 하나이다(Apple and Kikuchi, 1975). 그러나 로코이아에 비해 수산자원의 획득이나 수급 등에서 경제성이 낮았으며, 로코이아의 경우 하와이 신화 속 영적 존재이자 수호자인 모오(Mo’o)와 연결된 종교적 의미도 지닌 반면(Greene, 1993) 석조 물고기덫은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없고, 정치적 중요도도 낮았다. 초기 정착민들에 의해 축조된 선사의 물고기덫을 후대에 로코이아와 같이 수문을 지닌 연못 형태로 변경하여 사용한 로코우메이키(Loko 'ume'iki)의 사례도 적지 않다(Kirch, 1985; Greene, 1993).

2) 1839년에 발의되어 1850년까지 이어진 하와이왕국 카메하메하 3세의 토지 재분배법(그레이트마헬레, Great Māhele)은 하와이 원주민 사회를 흔든 사회변혁 사건으로 꼽힌다. 카메하메하 3세는 서구인들로부터 하와이의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전 토지의 1/3을 하와이 주민들에게 분배하여 주민들 각자가 토지를 청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많은 원주민들은 문자가 없이 오직 구전으로 듣는 소식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대다수가 청구하지 않거나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많은 땅이 공화국 정부와 미국에서 온 정착민들에게 팔려나가게 되어 하와이왕국의 약화 및 붕괴를 앞당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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